위키문헌 kowikisource https://ko.wikisource.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EB%8C%80%EB%AC%B8 MediaWiki 1.45.0-wmf.4 first-letter 미디어 특수 토론 사용자 사용자토론 위키문헌 위키문헌토론 파일 파일토론 미디어위키 미디어위키토론 틀토론 도움말 도움말토론 분류 분류토론 저자 저자토론 포털 포털토론 번역 번역토론 초안 초안토론 페이지 페이지토론 색인 색인토론 TimedText TimedText talk 모듈 모듈토론 청산리 벽계수야 0 1438 390409 382644 2025-06-08T01:55:17Z ZornsLemon 15531 390409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靑山裏碧溪水 |지은이 = [[저자:황진이|황진이]]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황진이의 시조. [[청구영언]]에 수록되어 있다. 현대 한국어로는 [[청산리 벽계수야/현대 한국어]]를 참조할 것 }} {{옛한글}} ==시조==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1 to=71 fromsection="二八六" tosection="二八六" /> {{옛한글 끝}} ==한시== {{옛한글 처음}} <poem> <big>靑山裏碧溪水</big>(청산리벽계수) <big>莫誇易移去</big>(막과이이거) <big>一到滄海不復還</big>(일도창해부복환) <big>明月滿空山</big>(명월만공산) <big>暫休且去奈何</big>(잠휴차거나하) </poem> {{옛한글 끝}} == 라이선스 == {{PD-old-100}} [[분류:시조]] 79gz27g5wsvuqzqiv81qn8i1xqal6m1 조선말 규범집 0 1553 390453 284910 2025-06-08T11:41:32Z Namoroka 1939 390453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 설명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간 * [[조선말 규범집 (1966)]] - 초판 * [[조선말 규범집 (1987)]] - 제1차개정판 * [[조선말 규범집 (2010)]] - 제2차개정판 ;중화인민공화국 출간 * [[조선말 규범집 (2016)]] {{동음이의}} 4xz1kfnfi4f1pott0bap1imd8g7v1jm 390454 390453 2025-06-08T11:41:43Z Namoroka 1939 390454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 설명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간 * [[조선말 규범집 (1966년)]] - 초판 * [[조선말 규범집 (1987년)]] - 제1차개정판 * [[조선말 규범집 (2010년)]] - 제2차개정판 ;중화인민공화국 출간 * [[조선말 규범집 (2016년)]] {{동음이의}} bt2so14nqej009kb2h8ee0zb13ae81z 동짓달 기나긴 밤을 0 4045 390410 382731 2025-06-08T01:58:51Z ZornsLemon 15531 390410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冬至ㅅᄃᆞᆯ 기나긴 밤을 |저자 = [[저자:황진이|황진이]] |이전 = |다음 = |edition = true |설명 = 《[[청구영언]]》의 〈[[청구영언/규수삼인|이삭대엽 규수삼인]]〉에 실린 시조. }} {{옛한글}} ==== 원문 ==== <poem>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八七" tosection="二八七" /> {{옛한글 끝}} </poem> ==== 현대어 ==== <poem>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poem> == 라이선스 == {{PD-old-100}} [[분류:시조]] 2dxuuf29mt7ryv5fz8nviqmlwd5ulj2 390411 390410 2025-06-08T02:00:42Z ZornsLemon 15531 390411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冬至ㅅᄃᆞᆯ 기나긴 밤을 |저자 = [[저자:황진이|황진이]] |이전 = |다음 = |edition = true |설명 = 《[[청구영언]]》의 〈[[청구영언/규수삼인|이삭대엽 규수삼인]]〉에 실린 시조. }} {{옛한글}} {{옛한글 시작}} === 원문 ===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八七" tosection="二八七" /> === 현대어 === <poem>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 오신 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poem> {{옛한글 끝}} == 저작권 == {{PD-old-100}} [[분류:시조]] c2ib8bdc173837e92niaueohawkcv79 내 언제 무신하여 0 4055 390412 382736 2025-06-08T02:02:31Z ZornsLemon 15531 390412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title = 내 언제 무신ᄒᆞ여 | author = [[저자:황진이|황진이]] | section = | previous = | next = | edition = true | notes =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 {{옛한글}} {{옛한글 시작}} === 원문 ===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八八" tosection="二八八" /> === 현대어 === <poem> 내 언제 신의 없이 굴어 임을 언제 속였길래 달이 기운 깊은 밤에 오려는 뜻이 전혀 없네 가을바람에 지는 잎 소리야 나인들 어찌 하리 </poem> {{옛한글 끝}} == 저작권 == {{PD-old-100}} [[분류:시조]] mk7uw1kkkjc7d6t29bpg1x30ng7s2ce 매화 녯등걸에 0 26836 390414 383078 2025-06-08T02:12:16Z ZornsLemon 15531 390414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매화(梅花) 녯 등걸에 |다른 표기 = |지은이 = [[저자:매화|매화]]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 {{옛한글}}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九○" tosection="二九○" /> {{옛한글 끝}} ==저작권== {{PD-old-100}} {{분류:시조}} oa7tyrljxjqvlyw6qf2smwmdivs8s5g 조선어 신 철자법 0 34689 390541 290488 2025-06-08T11:58:44Z Namoroka 1939 390541 wikitext text/x-wiki {{미완성}} {{머리말 | 제목 = 조선어 신 철자법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 어문 연구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조선어 철자법]] | 연도 = | 설명 = 1948년 1월 15일에 나온 것. 원본 불선명이며 일부 내용이 불확실한 것은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 문법", '조선어 절차법의 기초', "조선어 철자법" 등을 참조하여 추정했다. [[:File:조선어 신 철자법.pdf|원본 PDF]] 및 [[:File:조선어신철자법.pdf|한글화 PDF]] }} {{옛한글}} <pages index="조선어 신 철자법.pdf" from="1" to="58" /> {{PD-KPGov}} {{PD-1996}} [[분류:한글]] 2yw7dw3e0qhnjc5fq05457sgw0o9ver 조선어 철자법 0 34784 390535 197878 2025-06-08T11:49:04Z Namoroka 1939 390535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조선어 철자법 |다른 표기 = |저자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 조선어 및 조선문학 연구소 |역자 = |부제 = |부제 다른 표기 = |이전 = [[조선어 신 철자법]] (1948) |다음 = [[조선말 규범집 (1966년)]] |설명 = 1954년 9월에 나온 것. }} ==머리말==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은 현행 조선어 철자법에 부분적인 동요가 존재하며 광범한 사회층에서 조선어 철자법의 통일에 대한 요망이 절실함을 인정하고, 1954년초, 과학원 조선어 및 조선 문학 연구소 안에 《조선어 철자법 규정 작성 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위원회로 하여금 형행 조선어 철자법의 규준으로 된 《조선어 철자법》초안을 작성하게 하였다. 동 연구소에 망라된 과학 일'군들의 성의 있는 노력의 결과, 1954년 4월에 《조선어 철자법》초안이 완성 되였으며 그 후 2개월 여에 걸친 과학원 내외에서의 공개적이며 집체적인 신중한 토의의 결과, 현행 조선어 철자법에 관한 일정한 성안을 얻게 되여, 이에 《조선어 철자법》의 표제 밑에 발간하기로 한다. 이곳에 발간하는 《조선어 철자법》은 조선어 철자법 규정의 력사에서 이미 확고히 뿌리 박고 있으며 과학적으로도 그 정당성이 충분히 검열된 철자법에서의 형태주의 원칙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다. 또한 최근 조선어의 어음 조직, 문법 구조 및 어휘 구성에 나타난 변화를 고려하여, 종래 조선어 철자법의 규준으로 인정되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적지 않은 수정을 가하게 되였다. 이 곳에 발간하는 《조선어 철자법》은 오늘날의 조선 인민의 문자 생활에서 일정한 규범적 역활을 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인민의 문자 생활의 앞으로의 더 한층의 발전을 위하여는, 장래에 조선 문자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조선어 철자법도 더욱 환성되여야 할 것이다. 조선어 및 조선 문학 연구소 과학 일'군들은 조선어 철자법의 앞으로의 더 한층의 완성화를 위하여 계속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조선어 철자법》을 발간하면서, 《모든 것을 민주 기지 강화를 위한 전후 인민 경제 복구 발전에로!》라는 조선 로동당과 공화국 정부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조국의 우수한 문화의 더 한층의 개화를 위하여 전체 조선 인민이 자기의 언어와 문자에 대하여 더욱 깊은 관심을 돌릴 것을 기대한다. 1954년 9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br/> 조선어 및 조선 문학 연구소 ==총칙== 1. 조선어 철자법은 단어에서 일정한 의미를 가지는 매개의 부분을 언제나 동일한 형태로 표기하는 형태주의 원칙을 그 기본으로 삼는다. 2. 조선어 철자법은 그 표기에 있어 일반 어음학적 원리에 의거하되, 조선어에 고유한 발음상의 제 규칙을 존중한다. 3. 문장에서 단어는 원칙적으로 띄여 쓴다. 4. 표준어는 조선 인민 사이에 사용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 가운데서 이를 정한다. 5. 모든 문서는 왼 쪽으로부터 오른 쪽으로 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제1장 자모의 순서와 그 이름== 제1항. 현재 쓰이고 있는 조선어 자모의 순서와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ㄱ |ㄴ |ㄷ |ㄹ |ㅁ |ㅂ |-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 |(비읍) |- |ㅅ |ㅇ |ㅈ |ㅊ |ㅋ |ㅌ |- |(시읏)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 |ㅍ |ㅎ |ㄲ |ㄸ |ㅃ |- |(피읖) |(히읗) |(된기윽) |(된디읃) |(된비읍) |- |ㅆ |ㅉ |- |(된시읏) |(된지읒) |- |ㅏ |ㅑ |ㅓ |ㅕ |ㅗ |ㅛ |ㅜ |- |(아) |(야) |(어) |(여) |(오) |(요) |(우) |- |ㅠ |ㅡ |ㅣ |ㅐ |ㅒ |ㅔ |ㅖ |- |(유) |(으) |(이) |(애) |(얘) |(에) |(예) |- |ㅚ |ㅟ |ㅘ |ㅝ |ㅙ |ㅞ |- |(외) |(위) |(와) |(워) |(왜) |(웨) |} 자음에 한하여는 또한 각각 다음과 같이 부를 수도 있다. {| class="wikitable" |(그) |(느) |(드) |(르) |(므) |(브) |(스) |(으) |- |(즈) |(츠) |(크) |(트) |(프) |(흐) |(끄) |(뜨) |- |(쁘) |(쓰) |(쯔) |} ==제2장 어간과 토의 표기== 제2항. 조선어 철자법은 단어의 표기에 있어 형태주의 원칙을 그 기본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어간과 토가 어우를 적에는 각각 그 형태를 고정시켜 어간과 토의 원형을 밝히여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 |떡이||떡을||떡에 |- |손이||손을||손에 |- |맏이||맏을||맏에 |- |팔이||팔을||팔에 |- |밤이||밤을||밤에 |- |집이||집을||집에 |- |옷이||옷을||옷에 |- |콩이||콩을||콩에 |- |낮이||낮을||낮에 |- |꽃이||꽃을||꽃에 |- |부엌이||부엌을||부엌에 |- |밭이||밭을||밭에 |- |앞이||앞을||앞에 |- |밖이||밖을||밖에 |- |삯이||삯을||삯에 |- |흙이||흙을||흙에 |- |곬이||곬을||곬에 |- |삶이||삶을||삶에 |- |값이||값을||값에 |} {| class="wikitable" |- |먹다||먹고||먹어 |- |신다||신고||신어 |- |믿다||믿고||믿어 |- |넘다||넘고||넘어 |- |입다||입고||입어 |- |웃다||웃고||웃어 |- |찾다||찾고||찾아 |- |좇다||좇고||좇아 |- |같다||같고||같아 |- |높다||높고||높아 |- |좋다||좋고||좋아 |- |깎다||깎고||깎아 |- |앉다||앉고||앉아 |- |많다||많고||많아 |- |늙다||늙고||늙어 |- |젊다||젊고||젊어 |- |넓다||넓고||넓어 |- |훑다||훑고||훑어 |- |읊다||읊고||읊어 |- |없다||없고||없어 |- |있다||있고||있어 |} 제3항. 다음과 같은 단어들은 오늘날의 언어 의식에 비추어 아래와 같이 갈라 적는다. 례; 1) 어간과 토를 구별하여 적는 것. 같이 (같게: 함께) 넘어 가다 늘어지다 (길게 되다: 기운이 줄어지다) 더불어 돌아 가다 (기계가 돌아 가다: 집으로 돌아 가다: 죽다) 들어 가다 말미암아 밖에 (바깥에: 그것 이외에 [싸울밖에 없다]) 벌어지다 (열리다: 전개되다) 붉어지다 (붉게 되다) 빌어 먹다 (얻어 먹다) 흩어지다 떨어 버리다 떨어지다 쓸어 버리다 엎어지다 일어 나다 2) 어간과 토를 구별하지 않고 적는 것. 나타나다 드러나다 (발각되다) 바라보다 바라지다 (가로 퍼지다) 부러지다 불거지다 (겉으로 쑥 내밀다) 배라먹다 (≪빌어 먹다≫를 얕잡아 쓰는 말) 사라지다 자라나다 자빠지다 쓰러지다 (넘어지다) 마저 (그 동무마저) 부터 (오늘부터) 조차 (너조차) 제4항. 어간과 토가 어우를 적에 토의 성질에 따라 어간의 끝소리가 여러 가지로 바뀌여 들리고, 오늘날 쓰이는 조선어 자모로서는 그 어간의 형태를 고정시킬 수 없거나 또는 재래의 표기법상의 관습이 굳어져 있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1) 어간의 끝소리를 ≪ㄹ≫∼≪ㅇ(령)≫으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가 ≪ㄴ≫, ≪ㅂ≫, ≪ㅅ≫, ≪오≫로 시작되는 토 우에서는 들리지 않고, 기타의 토 우에서는 [ㄹ]와 비슷하게 들린다. 례; {| class="wikitable" |- |┌ 갈다||갈고||갈며 |- |└ 가니||갑니다||가시니||가오 |- |┌ 돌다||돌고||돌며 |- |└ 도니||돕니다||도시니||도오 |- |┌ 불다||불고||불며 |- |└ 부니||붑니다||부시니||부오 |} 어간이 ≪ㄹ≫로 끝나는 동사와 형용사는 전부 이에 속한다. 2) 어간의 끝소리를 ≪ㅅ≫∼≪ㅇ(령)≫으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가 모음 토 우에서는 들리지 않고, 자음 토 우에서는 다음에 오는 자음을 되게 내게(≪ㄱ≫, ≪ㄷ≫, ≪ㅅ≫, ≪ㅈ≫을 [ㄲ}, [ㄸ], [ㅃ], [ㅆ], [ㅉ]로 내게) 한다. 례; {| class="wikitable" |- |┌ 낫다||낫고||낫지 |- |└ 나아||나으니 |- |┌ 잇다||잇고||잇지 |- |└ 이어||이으니 |- |┌ 짓다||짓고||짓지 |- |└ 지어||지으니 |} 3) 어간의 끝소리를 ≪ㅎ≫∼≪ㅇ(령)≫으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가 모음 토 및 ≪ㄴ≫, ≪ㄹ≫, ≪ㅁ≫, ≪ㅂ≫으로 시작되는 토 우에서는 들리지 않고, 그 외의 토 우에서는 다음에 오는 자음을 세게 내게(≪ㄱ≫, ≪ㄷ≫, ≪ㅈ≫을 [ㅋ], [ㅌ], [ㅊ]로 내게) 한다. 례; {| class="wikitable" |- |┌ 거멓다||거멓고||거멓지 |- |│ 거머오||거머니||거머랴||거머면 |- |└ 거멉니다||(거매지다) |- |┌ 커다랗다|커다랗고||커다랗지 |- |│ 커다라오||커다라니||커다라랴||커다라면 |- |└ 커다랍니다||(커다래지다) |- |┌ 하얗다||하얗고||하얗지 |- |│ 하야오||하야니||하야랴||하야면 |- |└ 하얍니다||(하얘지다) |} 4) 어간의 끝소리를 ≪ㄷ≫∼≪ㄹ≫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가 자음 토 우에서는 [ㄷ]와 비슷하게 들리고, 모음 토 우에서는 [ㄹ]와 비슷하게 들린다. 례; {| class="wikitable" |┌ 걷다||걷고||걷지 |- |└ 걸어||걸으니 |- |┌ 묻다||묻고||묻지 |- |└ 물어||물으니 |- |┌ 듣다||듣고||듣지 |- |└ 들어||들으니 |} 5) 어간의 끝소리를 ≪ㅂ≫∼≪오≫, ≪우≫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가 모음 토 및 ≪ㄴ≫, ≪ㄹ≫, ≪ㅁ≫, ≪ㅂ≫, ≪시≫로 시작되는 토 우에서는 반모음 [우]로 들리고, 기타의 토 우에서는 [ㅂ]로 들린다. 례; {| class="wikitable" |- |┌ 돕다||돕고||돕지 |- |└ 도와||도우니 |- |┌ 춥다||춥고||춥지 |- |└ 추워||추우니 |- |┌ 맵다||맵고||맵지 |- |└ 매워||매우니 |} 6) 어간의 끝소리를 ≪ㅇ(령)≫∼≪ㄹ≫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 ≪―르≫가 ≪―어≫, ≪―었≫과 어우를 적에 [―르러], [―르렀]으로 들린다. 례; {| class="wikitable" |- |┌ 누르다(黃)||누르고||누르지 |- |└ 누르러||누르렀다 |- |┌ 이르다(至)||이르고||이르지 |- |└ 이르러||이르렀다 |- |┌ 푸르다(靑)||푸르고||푸르지 |- |└ 푸르러||푸르렀다 |} 7) 어간의 끝소리를 ≪르≫∼≪ㄹㄹ≫로 적는 경우. 어간의 끝소리 ≪―르≫가 ≪―아, ―어≫, ≪―았, ―었≫, ≪―이≫와 어우를 적에 [―ㄹ라], [―ㄹ러], [―ㄹ랐], [―ㄹ렀], [―ㄹ리]로 들린다. 례; {| class="wikitable" |- |┌ 가르다||가르고||가르지 |- |└ 갈라||갈랐다||갈리다 |- |┌ 흐르다||흐르고||흐르지 |- |└ 흘러||흘렀다||흘리다 |- |┌ 기르다||기르고||기르지 |- |└ 길러||길렀다||길리다 |} 제5항. 한'자<ref>원문은 "'"가 없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같은 교수님의 사이트의 례에 따라 있는 것으로 썼다.</ref>어 기원의 단어에서 본음이 ≪녀, 뇨, 뉴, 니≫인 것은 어느 위치에서나 본음 대로 적고, 발음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을 원칙적 방향으로 삼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참고― |- |녀자(女子)||여자||남녀(男女) |- |녕변(寧邊)||영변||안녕(安寧) |- |뇨도(尿道)||요도||수뇨관(輸尿管) |- |뉴대(紐帶)||유대 |- |니탄(泥炭)||이탄 |} 제6항. 한'자어 기원의 단어에서 본음이 ≪ㄹ≫로 시작되는 것은 어느 위치에서나 본음 대로 적고, 발음도 그와 같이 하는 것을 원칙적 방향으로 삼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참고― |- |락원(樂園)||낙원||오락(娛樂) |- |량심(良心)||양심||개량(改良) |- |력사(歷史)||역사||리력(履歷) |- |로동(勞動)||노동||근로(勤勞) |- |료금(料金)||요금||재료(材料) |- |루각(樓閣)||누각||고루(高樓) |- |류학(留學)||유학||보류(保留) |- |릉묘(陵墓)||능묘||구릉(丘陵) |- |리유(理由)||이유||도리(道理) |- |래일(來日)||내일||미래(未來) |- |례의(禮儀)||예의||사례(謝禮) |- |뢰성(雷聲)||뇌성||우뢰(雨雷) |} 어느 위치에서나 [ㄹ]음을 아니 내는 단어는 아니 내는 대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노예(奴隷)||노례 |- |예속(隷屬)||례속 |} 제7항. 한'자어 기원의 단어에서 모음 ≪ㅖ≫가 들어 있는 음절로는 ≪계≫, ≪례≫, ≪혜≫만을 인정한다. 례; {| class="wikitable" |- |계산(計算)||계획(計劃)||세계(世界) |- |례의(禮儀)||사례(謝禮)||례외(例外) |- |혜택(惠澤)||은혜(恩惠) |} 따라서 ≪계≫, ≪례≫, ≪혜≫ 이외의 ≪셰≫, ≪졔≫, ≪쳬≫, ≪폐≫ 등은 각각 ≪세≫, ≪제≫, ≪체≫, ≪페≫ 등으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세계(世界)||셰계 |- |제도(制度)||졔도 |- |체류(滯留)||쳬류 |- |페회(閉會)||폐회 |} 그러나 ≪揭≫만은 ≪게≫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 |게시판(揭示板)||게재(揭載) |} 제8항. 한'자어 기원의 단어에서 모음 ≪ㅢ≫가 들어 있는 음절로는 ≪희≫, ≪의≫만을 인정한다. 례; {| class="wikitable" |- |회의(會議)||희망(希望) |- |옥희(玉姬)||유희(遊戱) |- |의학(醫學)||의의(意義) |} 제9항. 한 형태부 안의 두 음절 사이에서 나는 된소리는 아래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거꾸로|| 것구로 |- |부썩||붓석 |- |해쑥하다||햇숙하다 |- |깨끗하다||깻긋하다 |- |아끼다||앗기다 |- |어깨||엇개 |- |어떠하다||엇더하다 |- |어찌||엇지 |- |여쭈다||엿주다 |- |오빠||옷바 |- |으뜸||읏듬 |- |이따금||잇다금 |} 한 형태부 안에서 받침 ≪ㄹ≫ 다음에 된소리를 내는 다음의 단어들도 아래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말씀||말슴 |- |벌써||벌서 |} 그러나 토에 있어서는 비록 ≪ㄹ≫ 다음에 된소리를 내더라도 아래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지 아니한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ㄹ가||―ㄹ까 |- |―ㄹ수록||―ㄹ쑤록 |- |―ㄹ지라도||―ㄹ찌라도 |- |―올시다||―올씨다 |} 제10항. 한 형태부 안의 두 음절 사이에서 나는 설측음은 ≪ㄹㄹ≫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걸레||걸네 |- |놀라다||놀나다 |- |벌레||벌네 |- |실룩실룩||실눅실눅 |- |진달래||진달내 |- |알락달락||알낙달낙 |- |얼른||얼는 |} 제11항. 단어의 끝 또는 련발되지 않는 음의 앞에서 [ㄱ], [ㄷ], [ㅂ]로 발음되더라도, 매개의 단어의 형태부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그 원형에 따라 받침을 바로 잡아 적는다. 다만 [ㄷ]로 발음되면서도 원형을 밝힐 수 없는 것은 ≪ㅅ≫으로 적는다. 례; 1) [ㄱ]로 발음되면서도 ≪ㄱ≫, ≪ㄲ≫, ≪ㅋ≫, ≪ㄳ≫으로 갈라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ㄱ≫― |속||속옷||먹다 |- !≪ㄲ≫― |밖||닦다 |- !≪ㅋ≫― |부엌||부엌안 |- !≪ㄳ≫― |삯||넋없다 |} 2) [ㄷ]로 발음되면서도 ≪ㄷ≫, ≪ㅌ≫, ≪ㅅ≫, ≪ㅆ≫, ≪ㅈ≫, ≪ㅊ≫으로 갈라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ㄷ≫― |낟(穀)||낟알||맏(昆)||맏아들 |- !≪ㅌ≫― |낱(個)||팥||팥알||같다||얕다 |- !≪ㅅ≫― |낫(鎌)||옷||벗다||빗다||솟다 |- !≪ㅆ≫― |가겠다||되였다||받았다||심었다||있다 |- !≪ㅈ≫― |낮(晝)||젖||젖어미||늦다||짖다 |- !≪ㅊ≫― |꽃||꽃아래||쫓다 |} 3) [ㅂ]로 발음되면서도 ≪ㅂ≫, ≪ㅍ≫, ≪ㅄ≫으로 갈라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ㅂ≫― |밥||톱||업다(負) |- !≪ㅍ≫― |무릎||무릎아래||짚다||엎다(覆) |- !≪ㅄ≫― |값||값없다||없다(無) |} 4) [ㄷ]로 발음되면서도 ≪ㅅ≫으로 갈라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뭇||첫||헛||덧저고리||핫옷 |- |빗나가다||엇먹다||짓밟다||그릇||무릇 |- |사뭇||얼핏||걸핏하면||잘못하다||따뜻하다 |- |벙긋벙긋||싱긋싱긋 |} 제12항. 현재 조선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받침을 전부 들고 그 례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 !rowspan="2" colspan="2"|ㄱ― |국||녹||박||떡 |- |막다||먹다||썩다 |- !rowspan="2" colspan="2"|ㄴ― |논||문||산 |- |논다||신다||안다 |- !rowspan="3" colspan="2"|ㄷ― |곧(卽)||낟(穀)||맏 |- |걷다(捲)||곧다||굳다||닫다||돋다 |- |묻다||믿다||받다||뜯다||뻗다||얻다 |- |colspan="11" style="background-color:#FFF"|ㄷ받침이 적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ㄷ받침으로 표기되는 단어의 례; |- !rowspan="3" colspan="2"| |걷다(步)||겯다||긷다||눋다 |- |다닫다||닫다(走)||듣다||묻다(問) |- |붇다(殖)||싣다||깨닫다||일컫다 |- !colspan="2"|ㄹ― |길||날||돌||물||불 |- |colspan="11" style="background-color:#FFF"|ㄹ받침이 적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ㄹ받침으로 표기되는 단어의 례; |- !rowspan="3" colspan="2"| |갈다||걸다||길다||날다||놀다 |- |달다||돌다||멀다||물다||밀다 |- |벌다||불다||설다||잘다||질다 |- !rowspan="2" colspan="2"|ㅁ― |곰||꿈||땀 |- |남다||담다||심다 |- !rowspan="3" colspan="2"|ㅂ― |밥||집||탑||입 |- |곱다(屈指)||굽다(曲)||잡다||좁다 |- |집다||업다(負) |- |colspan="11" style="background-color:#FFF"|ㅂ받침이 적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ㅂ받침으로 표기되는 단어의 례; |- !rowspan="2" colspan="2"| |곱다(姸)||굽다(燒)||깁다||눕다||덥다 |- |돕다||밉다||맵다||쉽다||춥다 |- !rowspan="2" colspan="2"|ㅅ― |갓||낫||맛||벗||엿||옷 |- |벗다||솟다||씻다||웃다 |- |colspan="11" style="background-color:#FFF"|ㅅ받침이 적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ㅅ받침으로 표기되는 단어의 례; |- !rowspan="3" colspan="2"| |긋다||낫다(癒, 優)||붓다(注) |- |잣다(紡)||젓다(攪)||줏다(拾) |- |짓다(作)||잇다(連) |- !colspan="2"|ㅇ― |공||꿩||땅 |- !rowspan="5" colspan="2"|ㅈ― |낮||빚||젖 |- |갖다||궂다||낮다||늦다||맞다 |- |맺다||부르짖다||빚다||젖다 |- |짖다||찾다||꽂다||꾸짖다 |- |잊다 |- !rowspan="2" colspan="2"|ㅊ― |갗||낯||닻||덫||돛||몇||빛 |- |숯||꽃||옻||윷||좇다||쫓다 |- !colspan="2"|ㅋ― |녘||부엌 |- !rowspan="2" colspan="2"|ㅌ― |겉||낱||밑||밭||볕||솥||팥 |- |끝||같다||맡다||밭다||붙다||얕다 |- !rowspan="2" colspan="2"|ㅍ― |늪||숲||앞||옆||갚다||깊다||높다 |- |덮다||싶다||짚다||무릎||헝겊 |- !rowspan="6"|ㅎ―!!rowspan="2"|1) |낳다||넣다||놓다||닿다||좋다 |- |땋다||빻다||쌓다||찧다 |- !rowspan="4"|2) |거멓다||길다랗다||깊다랗다 |- |높다랗다||누렇다||동그렇다 |- |벌겋다||커다랗다||퍼렇다 |- |허옇다||이렇다 |- !rowspan="3" colspan="2"|ㄲ― |밖 |- |겪다||낚다||닦다||묶다||볶다||섞다 |- |솎다||깎다||꺾다||엮다 |- !colspan="2"|ㄳ― |넋||몫||삯 |- !colspan="2"|ㄵ― |끼얹다||앉다||얹다 |- !rowspan="2" colspan="2"|ㄶ― |귀찮다||괜찮다||많다||점잖다 |- |하찮다||꼲다||끊다||언잖다 |- !rowspan="3" colspan="2"|ㄺ― |기슭||닭||흙 |- |굵다||긁다||늙다||맑다||묽다||밝다 |- |붉다||얽다||읽다 |- !colspan="2"|ㄻ― |곪다||굶다||닮다||삶다||젊다||옮다 |- !colspan="2"|ㄼ― |여덟||넓다||밟다||짧다||얇다 |- !colspan="2"|ㄽ― |곬||돐 |- !colspan="2"|ㄾ― |핥다||훑다 |- !colspan="2"|ㄿ― |읊다||읊조리다 |- !rowspan="2" colspan="2"|ㅀ― |곯다||닳다||싫다||끓다||뚫다||쓿다 |- |앓다||옳다||잃다 |- !rowspan="2" colspan="2"|ㅄ― |값||없다||맥없다||부질없다||시름없다 |- |실없다||가엾다 |- !colspan="2"|ㅆ― |겠다||았다||었다||였다||있다 |} 제13항. 어간이 ≪아, 어, 여≫ 또는 ≪았, 었, 였≫과 어우를 적에는 어간의 모음의 성질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갈라 적는다. 어간의 모음이 1) ≪ㅏ, ㅑ, ㅗ, ㅏㅡ, ㅗㅡ≫인 경우; … 아, 았 2) ≪ㅓ, ㅕ, ㅜ, ㅡ, ㅓㅡ, ㅜㅡ, ㅡㅡ, ㅣㅡ≫인 경우; … 어, 었 3) ≪ㅣ, ㅐ, ㅔ, ㅚ, ㅟ, ㅢ≫인 경우 및 어간의 끝소리가 ≪하≫인 경우; …여, 였 1) ≪아≫, ≪았≫으로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막다||막아||막았다 |- |얇다||얇아||얇았다 |- |오다||와||왔다 |- |따르다||따라||따랐다 |- |오르다||올라||올랐다 |} 2) ≪어≫, ≪었≫으로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겪다||겪어||겪었다 |- |넣다||넣어||넣었다 |- |두다||두어||두었다 |- |크다||커||컸다 |- |거르다||걸러||걸렀다 |- |부르다||불러||불렀다 |- |치르다||치러||치렀다 |} 3) ≪여≫, ≪였≫으로 적는 경우. {| class="wikitable" |- |개다||개여||개였다 |- |기다||기여||기였다 |- |되다||되여||되였다 |- |베다||베여||베였다 |- |쥐다||쥐여||쥐였다 |- |희다||희여||희였다 |- |하다||하여||하였다 |} 그러나 어간의 끝음절에 받침이 있을 경우에는 ≪어≫, ≪었≫으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 |길다||길어||길었다 |- |맺다||맺어||맺었다 |- |심다||심어||심었다 |- |짓다||지어||지었다 |- |잇다||이어||이었다 |} 제14항. 개별적인 경우, 어간의 음이 줄어진 경우에는 음이 줄어진 대로 적되, 되도록 형태를 고정시키도록 받침을 바로 잡는다. 례; {| class="wikitable" |- !―본말―!!―준말― |- |가지고||갖고 |- |기러기야||기럭아 |- |디디고||딛고 |- |미치고||및고 |- |아기야||악아 |- |어제그저께||엊그저께 |- |어제저녁||엊저녁 |} 제15항. 개별적인 경우, 어간과 토가 유착되여 음이 줄어진 때에는 음이 줄어진 대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 !―본말―!!―준말― |- |그것으로||그걸로 |- |그것이||그게 |- |나는||난 |- |나를||날 |- |너는||넌 |- |너를||널 |- |무엇이||무에 |- |무엇을||무얼 |} 제16항. 모음으로 끝난 어간과 모음 토가 어우를 적에, 각종의 모음 적응의 현상이 일어나 음이 줄어질 수 있는 때에는, 음이 줄어진 대로 적는 것을 허용한다. {| class="wikitable" |- !rowspan="4"|1) |┌ 뜨다||뜨이다||뜨이여||뜨이였다 |- |└ 뜨다||띄다||띄여||띄였다 |- |┌ 쓰다||쓰이다||쓰이여||쓰이였다 |- |└ 쓰다||씌다||씌여||씌였다 |- !rowspan="4"|2) |┌ 모이다||모이다||모이여||모이였다 |- |└ 모이다||뫼다||뫼여||뫼였다 |- |┌ 보이다||보이다||보이여||보이였다 |- |└ 보이다||뵈다||뵈여||뵈였다 |- !rowspan="8"|3) |┌ 고이다||고이여||고이였다 |- |└ 괴다||괴여||괴였다 |- |┌ 꼬이다||꼬이여||꼬이였다 |- |└ 꾀다||꾀여||꾀였다 |- |┌ 쏘이다||쏘이여||쏘이였다 |- |└ 쐬다||쐬여||쐬였다 |- |┌ 쪼이다||쪼이여||쪼이였다 |- |└ 쬐다||쬐여||쬐였다 |- !rowspan="4"|4) |┌ 가지다||가지여||가지였다 |- |└ 가지다||가져||가졌다 |- |┌ 오시다||오시여||오시였다 |- |└ 오시다||오셔||오셨다 |- !rowspan="8"|5) |┌ 개다||개여서||개였다 |- |└ 개다||개서||갰다 |- |┌ 되다||되여서||되였다 |- |└ 되다||돼서||됐다 |- |┌ 메다||메여서||메였다 |- |└ 메다||메서||멨다 |- |┌ 하다||하여서||하였다 |- |└ 하다||해서||했다 |} 다음의 경우에는 음이 줄어진 대로만 적는다. {| class="wikitable" |- !rowspan="6"|1) |담그다||담가||감갔다 |- |잠그다||잠가||잠갔다 |- |치르다||치러||치렀다 |- |크다||커||컸다 |- |따르다||따라||따랐다 |- |쓰다||써||썼다 |- !rowspan="4"|2) |가다||가||갔다 |- |사다||사||샀다 |- |서다||서||섰다 |- |켜다||켜||켰다 |} 제17항.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어져 다음에 오는 자음 토를 세게 나게 할 때에는 ≪ㅎ≫을 중간에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자음 토를 센소리로 적는 것도 허용한다. {| class="wikitable" |- !―본말―!!―갑―!!―을― |- |가하다||가ㅎ다||가타 |- |다정하다||다정ㅎ다||다정타 |- |례하건대||례ㅎ건대||례컨대 |- |정결하다||정결ㅎ다||정결타 |} 다음의 단어들은 항상 센소리로만 적는다. {| class="wikitable" |- |결코||기어코||불피코||하마터면||요컨대 |} 그러나 ≪아니하다≫가 줄어진 경우에는 ≪않다≫로 적는다. ==제3장 합성어의 표기== 제18항. 합성어의 표기에 있어서는 어음 동화 현상의 유무를 물론하고 두 개의 어근을 따로따로 밝히여 적는다.<br/> 례; 1) 동화 현상이 일어 나지 않는 경우. Ⅰ) 자음과 자음 사이 {| class="wikitable" |걷잡다||국그릇||낮보다||낮잡다 |- |눈물||돋보다||밤낮||밥벌이 |- |꽃철||옷속 |} Ⅱ) 자음과 모음 사이 {| class="wikitable" |눈웃음||물오르다||물오리||밥알 |- |살얼음||속없다||속옷||손아귀 |- |집안||철없다 |} 그러나 어근이 분명하지 아니한 것은 그 원형을 밝히여 적지 아니한다.<br/> 례; {| class="wikitable" |며칠||오라버니||이틀 |} 2) 동화 현상이 일어 나는 경우. Ⅰ) 자음과 자음 사이 {| class="wikitable" |겁나다||겉늙다||국말이||굶주리다||몇날 |- |밥물||빛나다||칼날||흙내||엎누르다 |} Ⅱ) 자음과 모음 사이 {| class="wikitable" |값없다||넋없다||무릎아래||부엌안 |- |젖어미||팥알||꽃아래||옷안||옻오르다 |} 제19항. 합성어의 사이에 첫째번 어근의 끝소리가 모음이나 ≪ㄴ≫, ≪ㄹ≫, ≪ㅁ≫, ≪ㅇ≫인 때에 재래의 소위 ≪사이 ㅅ≫ 소리가 나는 것과, 둘째번 어근의 첫소리가 ≪야≫, ≪여≫, ≪요≫, ≪유≫, ≪이≫인 때에 다시 구개음화한 [ㄴ]나 [ㄹ]가 나는 것은 그 중간에 ≪사이 표≫(')를 둔다. 1) 소위 ≪사이 ㅅ≫ 소리가 나는 것.<br/> 례; {| class="wikitable" |그믐'달||기'발||길'짐승||나루'배||날'짐승 |- |낚시'대||내'물||담배'대||들'것||들'돌||들'보 |- |들'숨||등'불||디딜'방아||뒤'간||문'간||물'것 |- |발'새||보리'짚||불'길||배'전||손'등 |- |초'불||코'날||코'등||움'집||일'군 |} 2) 소위 ≪사이 ㅅ≫ 소리와 다시 구개음화한 [ㄴ]나 [ㄹ]가 나는 것.<br/> 례; {| class="wikitable" |겹'이불||공'일||낮'일||논'일||놋'요강 |- |담'요||들'일||대'잎||물'약||밤'이슬 |- |밭'이랑||버들'잎||부엌'일||베개'잇||속'잎 |- |잣'엿||콩'엿||편'윷||홑'이불||꽃'잎 |- |앞'이마||어금'이||옷'임자||이불'잇 |} 3) 한'자어에서 이에 준할 만한 경우에도 ≪사이 표≫를 둘 수 있다.<br/> 례; {| class="wikitable" |군'적(郡的)||도'적(道的)||대'가(代價) |- |리'과(理科)||수'자(數字)||호'수(號數) |} 제20항. 합성어 또는 이에 준할 만한 단어의 사이에서 [ㅂ]나 [ㅎ]가 보태진 것은 보태진 대로 다음과 같이 적는다.<br/> 례; {| class="wikitable" !1) |맵쌀||좁쌀||찹쌀||햅쌀 |- !rowspan="2"|2) |마파람||머리카락||살코기||수캐 |- |수탉||휘파람||안팎||암캐||암탉 |} 제21항. 합성어의 사이에서 빠진 음은 빠진 대로 적는다.<br/> 례; {| class="wikitable" |겨우살이||다달이||마되||마소||모자라다 |- |바느질||부나비||부넘기||부삽||부손 |- |소나무||차돌||차조||따님||미닫이 |} 제22항. 합성어에서 첫째번 어근의 끝소리 [ㄹ]가 페쇄음으로 된 것은 ≪ㄷ≫으로 적는다.<br/> 례; {| class="wikitable" |섣달||숟가락||이튿날 |} ==제4장 접두사와 어근의 표기== 제23항. 접두사와 어근이 결합될 때에는 접두사와 어근의 형태를 고정시켜 이를 따로따로 적는다.<br/> 례; {| class="wikitable" |덧신||덧저고리||맏누이||맏아들||선잠 |- |선웃음||짓구기다||짓찧다||참빗||참외 |- |헛디디다||헛소리||홀아비||홀어미||엇먹다 |- |엇셈 |} 제24항. 접두사와 어근이 사이에도 제19항에 준하여 ≪사이 표≫를 둔다.<br/> 례; {| class="wikitable" |덧'이||새'노랗다||시'누렇다||짓'이기다 |- |헛'일||홑'이불||해'곡식||해'조 |} ==제5장 어근과 접미사의 표기== 제25항.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어근과 결합될 때에는 원칙적으로 어근과 접미사의 형태를 고정시켜 이를 따로따로 적는다.<br/> 례; 1) 새로운 단어를 파생시키는 접미사. {| class="wikitable" |값지다||낚시||늙수그레하다||늙정이 |- |덮개||부엌데기||빛나다||홀지다||꽃답다 |- |끝장||뜯게질||뜯적뜯적하다||앍죽앍죽하다 |- |엎드리다||엎지르다||옆댕이||읊조리다||잎사귀 |} 2) 동사의 사역 피동을 나타내는 접미사. {| class="wikitable" |감기다||담기다||맡기다||벗기다 |- |숨기다||끊기다||뜯기다||쫓기다 |- |안기다||옮기다||웃기다 |- |걷히다||닫히다||막히다||먹히다 |- |박히다||밝히다||잡히다||앉히다 |- |얽히다||익히다||입히다||읽히다 |} 3) 힘줌을 나타내는 접미사 《치》. {| class="wikitable" |놓치다||덮치다||받치다||뻗치다 |- |엎치다 |} 4) 형용사를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 ≪히≫, ≪추≫. {| class="wikitable" |굳히다||굽히다||궂히다||넓히다 |- |밝히다||젖히다||좁히다 |- |갖추다||낮추다||늦추다||맞추다 |} 5) 어근과 결합되여 동사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하≫. {| class="wikitable" |급하다||속하다||착하다 |- |텁텁하다||푹하다||딱하다 |- |똑똑하다||뜻하다||씩씩하다 |} 6) ≪하다≫가 붙어서 형용사로 되는 어간과 결합되여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히≫. {| class="wikitable" |넉넉히||답답히||꾸준히||똑똑히 |} 제26항. 둘받침의 어근과 접미사가 결합되여 둘받침중의 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골막하다||널다랗다||널직하다 |- |말끔하다||말쑥하다||말짱하다 |- |실쭉하다||할짝할짝하다||얄팍하다 |- |골병||골탕||넙적다리 |} 제27항. 어근과 접미사가 결합되여 아주 다른 뜻으로 변한 것은 어근과 접미사를 밝히여 적지 아니한다.<br/> 례; {| class="wikitable" |거두다(收)||고치다(改)||기르다(養) |- |넙치(廣魚)||도리다(抉)||도리깨(連枷) |- |드리다(獻)||만나다(逢)||미루다(轉拖) |- |바치다(納)||부치다(寄送)||점잖다 |- |코끼리(象)||이루다(成) |} 제28항. 어근에 ≪브≫가 결합된 경우에는 어근과 접미사를 구별하여 적지 아니한다.<br/> 례; {| class="wikitable" |가쁘다||기쁘다||나쁘다 |- |미쁘다||바쁘다||예쁘다 |- |고프다||슬프다||아프다 |} 제29항.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어근과 결합될 때에는 어근과 접미사를 따로따로 밝히여 적는 경우와 밝히여 적지 않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정한다. ㄱ) 어근과 접미사를 밝히여 적는 경우.<br/> 례; 1) 형용사 또는 동사 어근에 붙어서 명사나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 class="wikitable" !rowspan="4"|Ⅰ) |길이||깊이||높이||다듬이 |- |맞이||미닫이||벌이||벼훑이 |- |살림살이||손잡이||쇠붙이||해돋이 |- |땀받이 |- !rowspan="3"|Ⅱ) |같이||굳이||길이||깊이 |- |높이||많이||부질없이||실없이 |- |적이||좋이 |} 2) 명사의 어근에 붙어서 명사나 또는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 class="wikitable" !Ⅰ) |륙손이||삼발이||네눈이||애꾸눈이 |- !rowspan="2"|Ⅱ) |곳곳이||낱낱이||몫몫이||샅샅이 |- |집집이 |} 3) 형용사 또는 동사 어근에 붙어서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음≫. {| class="wikitable" |걸음||물음||묶음||믿음 |- |졸음||죽음(死)||품갚음||얼음 |- |엮음||울음||웃음||잊음 |} 4) 동사의 사역 피동을 나타내거나 형용사를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 ≪이≫, ≪우≫, ≪으키≫, ≪이키≫, ≪애≫. {| class="wikitable" |낚이다||녹이다||높이다 |- |놓이다||닦이다||덮이다 |- |먹이다||박이다||속이다 |- |핥이다||깎이다||쌓이다 |- |옥이다 |- |돋우다 |- |일으키다||돌이키다 |- |없애다 |} 5) ≪하다≫가 붙어서 형용사로 되는 어근과 결합되여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 class="wikitable" |바특이||반듯이(正平)||콤직이||꼿꼿이 |- |끔찍이||깨끗이||따뜻이||똑똑이||뚜렷이 |} 6)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 ≪없≫. {| class="wikitable" |객없다||부질없다||시름없다 |} 7) 어근에 ≪이≫가 붙어서 된 동사의 접미사 ≪이≫. {| class="wikitable" |번득이다||번쩍이다||속삭이다||움직이다 |} ㄴ) 어근과 접미사를 밝히여 적지 아니하는 경우.<br/> 례; 1) 형용사 또는 동사의 어근에 ≪이≫, ≪음≫ 이외의 접미사가 붙어서 명사나 부사로 된 것. {| class="wikitable" !rowspan="3"|Ⅰ) |귀머거리||마감||마개||마중 |- |무덤||주검(屍)||코뚜레||까마귀 |- |뜨더귀||쓰레기||올가미 |- !rowspan="2"|Ⅱ) |너무||도로||바루||비로소 |- |자주||뜨덤뜨덤 |} 2) 명사의 어근에 ≪이≫ 이외의 접미사가 붙어서 명사로 된 것. {| class="wikitable" |나머지||모가지||바가지||바깥||사타구니 |- |지붕||지푸라기||꼬락서니||끄트머리 |- |싸라기 |} 3) 형용사의 어근에 접미사 ≪읏≫이 붙어서 부사로 된 것. {| class="wikitable" |거뭇거뭇||불긋불긋||오긋오긋 |} 4) 의성-의태어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명사로 된 것. {| class="wikitable" !rowspan="2"|Ⅰ) |기러기||개구리||귀뚜라미||매미 |- |꾀꼬리||꽹과리||딱따구리 |- !rowspan="2"|Ⅱ) |누더기||더퍼리||두드러기||무더기 |- |칼싹두기||깍두기||떠버리||얼루기 |} 5) ≪하다≫가 아니 붙는 형용사의 어근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명사나 부사로 된 것. {| class="wikitable" !Ⅰ) |동그라미||부스러기 |- !Ⅱ) |갑자기||반드시(必)||슬며시||일찌기 |} 6) 형용사의 어근에 접미사 ≪앟, 엏≫ 또는 ≪업≫이 붙어서 되였다고 보이는 것. {| class="wikitable" !rowspan="3"|Ⅰ) |가맣다||거멓다||노랗다||누렇다 |- |동그랗다||둥그렇다||발갛다||벌겋다 |- |파랗다||퍼렇다||싸느랗다||써느렇다 |- !rowspan="2"|Ⅱ) |간지럽다||미덥다||부드럽다||시끄럽다 |- |징그럽다||어지럽다 |} 제30항.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히≫와 ≪이≫는 그 어느 하나로만 발음될 때에는 그 발음 대로 적는다. 1) ≪히≫로 적는 것. {| class="wikitable" |감히||극히||작히 |} 2) ≪이≫로 적는 것. {| class="wikitable" |너부죽이||적이||지긋이 |- |큼직이||따뜻이||뚜렷이 |} 제31항.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가 ≪이≫와 ≪히≫로 혼용되여 발음될 때에는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적는다. 1) 어근에 직접 ≪하다≫를 붙일 수 있는 경우에는 ≪히≫로 적는다.<br/> 례; {| class="wikitable" |가지런히||가히||고요히||공손히||능히 |- |덤덤히||도저히||마땅히||부지런히||분명히 |- |속히||심히||자연히||족히||쾌히 |- |튼튼히||흔히||꾸준히||열렬히||열심히 |} 2) 어근에 직접 ≪하다≫를 붙일 수 없는 경우에는 ≪이≫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곰곰이||곳곳이||기어이||나날이 |- |나란이||번번이||집집이||헛되이 |- |일일이 |} ==제6장 표준 발음법 및 표준어와 관련된 철자법== 제32항. ≪ㄷ≫ 또는 ≪ㅌ≫으로 끝난 어근 밑에 접미사 ≪이≫ 또는 ≪히≫가 올 때 ≪ㄷ≫, ≪ㅌ≫이 구개음화하여 [ㅈ], [ㅊ]에 가깝게 발음되더라도 ≪ㄷ≫, ≪ㅌ≫으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굳이[구지]||해돋이[해도지] |- |땀받이[땀바지]||걷히다[거치다] |- |닫히다[다치다]||묻히다[무치다] |- |같이[가치]||쇠붙이[쇠부치] |- |핥이다[할치다] |} 제33항. 뒤에 오는 모음 ≪이≫가 앞에 있는 모음에 영향을 주어 동화 현상이 일어 날 수 있더라도, 본래의 모음을 그대로 적고, 적은 대로 발음한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고기||괴기 |- |맡기다||맽기다 |- |먹이다||멕이다 |- |박히다||백히다 |- |속이다||쇡이다 |- |숨기다||쉼기다 |- |잡히다||잽히다 |- |아비||애비 |- |어미||에미 |} 제34항. 한자어에서 [ㅅ], [ㅈ], [ㅊ]를 첫소리로 삼고, ≪ㅡ≫를 가진 자음은 그 본음 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ㅣ]로 변한 것에 한하여 ≪ㅣ≫로 적는다. 1) ≪ㅡ≫로 적는 것. {| class="wikitable" |슬하||습관||승리||즉시 |- |증인||증거||측량|||층계 |} 2) ≪ㅣ≫로 적는 것. {| class="wikitable" |금실||질책||편집||법칙 |- |원칙 |} 제35항. 한자 ≪不≫은 본음은 [불]이나 다음에 [ㄷ], [ㅈ]를 첫소리로 하는 자가 올 때에는 [부]로 발음되므로 그와 같이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rowspan="2"|1) |부단(不斷)||부당(不當)||부도체(不導體) |- |부동(不動)||부득불(不得不) |- !rowspan="3"|2) |부자연(不自然)||부적당(不適當) |- |부족(不足)||부주의(不注意) |- |부지중(不知中) |} 제36항. 때에 따라 달리 발음되는 한자는 그 발음되는 대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노기(怒氣)||대로(大怒) |- |당분(糖分)||사탕(砂糖) |- |륙일(六日)||류월(六月) |- |백두산(白頭山)||배천(白川) |- |습득(拾得)||십원(拾圓) |- |승강기(昇降機)||항복(降服) |- |승낙(承諾)||허락(許諾) |- |십일(十日)||시월(十月) |- |안녕(安寧)||재령(載寧) |} 제37항. 한자어에서 두 모음 사이에서 ≪ㄴ≫이 [ㄹ]로만 발음되는 것은 ≪ㄹ≫로 적고, [ㄴ]로만 발음되는 것은 ≪ㄴ≫으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 !!―갑―!!―을― |- !rowspan="3"|1) |대로(大怒)||대노 |- |허락(許諾)||허낙 |- |회령(會寧)||회녕 |- !2) |의논(議論)||의론 |} 제38항. 한자어에서 두 모음 사이에서 ≪ㄴ≫이 [ㄹ]로도 발음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본음 대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기념(記念)||기렴 |- |기능(技能)||기릉 |} 제39항. 한'자음이 련발될 때에 ≪ㄴㄴ≫이 [ㄹㄹ]로도 발음하거나 ≪ㄴㄹ≫을 [ㄹㄹ]로 발음하거나 또는 ≪ㄹㄴ≫을 [ㄹㄹ]로 발음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이를 본음 대로 적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 !!―갑―!!―을― |- !rowspan="3"|1) |곤난(困難)||골란 |- |관념(觀念)||괄렴 |- |만년(萬年)||말련 |- !rowspan="4"|2) |관리(管理)||괄리 |- |련락(連絡)||렬락 |- |론리(論理)||롤리 |- |전라도(全羅道)||절라도 |- !rowspan="2"|3) |말년(末年)||말련 |- |발노(發怒)||발로 |} 제40항. 다음의 한자어들은 발음과 표기상 주의를 요한다.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 !!―갑―!!―을― |- |干潟地||간석지||간사지 |- |攪亂||고란||각란 |- |句讀點||구두점||구독점 |- |茶菓||다과||차과 |- |撞着||당착||동착 |- |挑發||도발||조발 |- |變更||변경||변갱 |- |便所||변소||편소 |- |復興||부흥||복흥 |- |不眠症||불면증||불민증 |- |沸騰||비등||불등 |- |使嗾||사촉||사수 |- |遡及||소급||삭급 |- |示唆||시사||시준 |- |省略||생략||성략 |- |洗滌||세척||선조 |- |推進||추진||취진 |- |捕捉||포착||포촉 |- |敗北||패배||패북 |- |嗅覺||후각||취각 |- |灰燼||회신||회진 |- |役割||역할||역활 |- |軟弱||연약||난약 |- |誤謬||오유||오류 |- |一切||일체||일절 |- |歪曲||외곡||의곡 |- |衛戍 司令部||위수 사령부||위술 사령부 |} 제41항. 종래에 표준어로 인정되던 단어들 가운데서 우선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 class="wikitable" |≪놀≫을||≪노을≫로 |- |≪눈추리≫를||≪눈초리≫로 |- |≪달걀≫을||≪닭알≫로 |- |≪도둑≫을||≪도적≫로 |- |≪부수다(碎)≫를||≪부시다≫로 |- |≪쇠고기≫를||≪소고기≫로 |- |접미사≪장이≫을||≪쟁이≫로 |- |≪줍다(拾)≫를||≪줏다≫로 |- |≪태나다≫를||≪태여나다≫로 |- |≪아내≫를||≪안해≫로 |- |≪외치다≫를||≪웨치다≫로 |- |≪위(上)≫를||≪우≫로 |- |≪원수(怨讐)≫를||≪원쑤≫로 |} 제42항. 명사 ≪우≫와 접두사 ≪웃≫, 명사 ≪예≫와 접두사 ≪옛≫을 구별하여 사용한다. {| class="wikitable" !명사― |우에서||우로부터 |- !rowspan="2"|접두사― |웃마을||웃사람||웃저고리 |- |웃어른||웃옷||옷'이 |- !명 사― |예로부터 |- !접두사― |옛날||옛말||옛'이야기 |} 제43항. 종래 ≪어≫로 적던 다음의 단어들을 ≪여≫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구태어≫를||≪구태여≫로 |- |≪도리어≫를||≪도리여≫로 |- |≪드디어≫를||≪드디여≫로 |- |≪헤어지다≫를||≪헤여지다≫로 |- |≪헤엄치다≫를||≪헤염치다≫로 |} 그러나<br/> ≪기어코(期於)≫, ≪기어이≫는 그 대로 둔다. 제44항. 과거의 반복된 행동을 나타내는 ≪군≫을 인정하고, 영탄의 뜻을 나타내는 토로는 ≪구나≫를 인정한다.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Ⅰ) 가군 하였다||가곤 하였다 |- |Ⅱ) 가는구나(가는군)||가는고나 |} ==제7장 띄여 쓰기== 제45항. 단어는 각각 띄여 쓰되 토는 웃말에 붙이여 쓴다. 례; 우리는 자기의 언어와 자기의 조국을 사랑한다. 제46항. 어근에 직접, 또는 어근 다음에 토 ≪아, 어, 여≫가 들어 가고 ≪하다≫가 붙은 것은 띄여 쓰지 않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건설하다||건설 하다 |- |공부하다||공부 하다 |- |반듯하다||반듯 하다 |- |부지런하다||부지런 하다 |- |사랑하다||사랑 하다 |- |슬퍼하다||슬퍼 하다 |- |좋아하다||좋아 하다 |- |착하다||착 하다 |- |튼튼하다||튼튼 하다 |- |일하다||일 하다 |} 그러나 어근 다음에 ≪아, 어, 여≫ 이외의 토가 들어 갈 때에는 띄여 쓴다. 례; 건설을 하다 공부를 하다 반듯은 하다 부지런도 하다 슬퍼도 하다 좋아도 하다 튼튼도 하다 일을 하다 제47항. 어근에 직접 ≪되다≫, ≪시키다≫가 붙은 것은 띄여 쓰지 않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공부되다||공부 되다 |- |운동되다||운동 되다 |- |일되다||일 되다 |- |공부시키다||공부 시키다 |- |운동시키다||운동 시키다 |- |일시키다||일 시키다 |} 그러나 어근 다음에 토가 들어 갈 때에는 띄여 쓴다. 공부가 되다 운동도 되다 일이 되다 공부를 시키다 운동도 시키다 일을 시키다 제48항. 어근에 직접, 또는 어근 다음에 토 ≪아, 어, 여≫가 들어 가고 ≪지다≫가 붙은 것은 띄여 쓰지 않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갑―!!―을― |- |건방지다||건방 지다 |- |그늘지다||그늘 지다 |- |기름지다||기름 지다 |- |넘어지다||넘어 지다 |- |눈물지다||눈물 지다 |- |늘어지다||늘어 지다 |- |모지다||모 지다 |- |추워지다||추워 지다 |- |풀어지다||풀어 지다 |- |떨어지다||떨어 지다 |- |엎어지다||엎어 지다 |- |의지다||의 지다 |} 그러나 어근 다음에 ≪아, 어, 여≫ 이외의 토가 들어 갈 때에는 띄여 쓴다. 례; 그늘이 지다 기름이 지다 눈물이 지다 해가 지다 제49항. ≪아니하다≫, ≪못하다≫는 앞에 ≪…지≫가 있는 경우에는 붙이여 쓰고, 그 이외의 경우에는 띄여 쓴다. 례; 1) 붙이여 쓰는 경우. 놀지를 아니한다. 눈이 밝지 못하다. 책을 읽지 아니한다. 앉지를 못한다. 2) 띄여 쓰는 경우. 그 동무는 일을 아니 한다. 그래도 운동이야 못 하리. 그 사람은 노래도 못 한다. 제50항. 의성-의태어에서 반복되는 두 개의 어근은 띄여 쓰지 않는다. 례; 너울너울 둥실둥실 번쩍번쩍 슬적슬적 허비적허비적 꿈지럭꿈지럭 땡땡 뾰족뾰족 어슬렁어슬렁 올공올공 제51항. 여러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고유 명사는 단어마다 띄여 쓴다. 례; 로동 신문 삼국 유사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제일 인민 학교 평양 사법 대학 제52항. 다음과 같은 고유 명사는 띄여 쓰지 않는다. 례; {| class="wikitable" |금강산||우랄산||금강||돈강 |- |부전호||바이칼호||황해||지중해 |- |강원도||함경북도||제주도||대동군 |- |순안읍||성내리 |} 제53항. 사람의 성과 이름은 띄여 쓴다. 례; 김 일성 김 책 리 순신 을지 문덕 제54항. 년월일은 해와 날을 각각 단위로 하여 띄여 쓴다. 례; 1945년 8월 15일 1950년 6월 25일 제55항. 한'자어 기원의 단어들에서 다음과 같이 접두사 또는 접미사로 인정되는 것은 띄여 쓰지 않는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 !!―갑―!!―을― |- !rowspan="8"|1) |각급||각 급 |- |경공업||경 공업 |- |무책임||무 책임 |- |매개||매 개 |- |반과학적||반 과학적 |- |비인간적||비 인간적 |- |중공업||중 공업 |- |총공격||총 공격 |- !rowspan="7"|2) |과학원||과학 원 |- |맑스주의||맑스 주의 |- |민주주의||민주 주의 |- |사무국||사무 국 |- |전기화||전기 화 |- |조선어||조선 어 |- |연구소||연구 소 |} 그러나 다음과 같이 관형사로 인정되는 것은 띄여 쓰고, 접미사에 준한다고 인정되는 것은 붙이여 쓴다. 례; (갑을 취하고 을을 버린다) {| class="wikitable" ! !!―갑―!!―을― |- !rowspan="4"|1) |각 대학||각대학 |- |매 공장||매공장 |- |전 인민적||전인민적 |- |제 문제||제문제 |- !rowspan="4"|2) |공산당||공산 당 |- |금일중||금일 중 |- |량국간||량국 간 |- |력사상||력사 상 |} ==제8장 문장 부호== 제55항. 문장에 쓰는 부호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한다. 1. 점.―문장이 끝남을 보일 때 또는 략자 략어임을 보일 때 쓴다. 2. 두점:―한 문장이 대체로 끝나면서, 뒤에 오는 문장이 앞에 있는 문장의 설명으로 될 때 쓴다. 3. 반점,―의미가 중단되여 읽을 때 잠간 쉬는 것이 좋을 때 쓴다. 4. 반두;―의미가 중단되는 곳에서 반점과 구별하여 표시하는 것이 적당할 때 쓴다. 5. 의문표?―의문의 뜻을 나타낼 때 그 말의 다음에 쓴다. 6. 감탄표!―감탄의 뜻을 나타낼 때 그 말의 다음에 쓴다. 7. 인용표≪ ≫―다른 말을 따다가 쓰는 데 그 말의 앞뒤에 갈라서 쓴다. 8. 거듭 인용표< >―다른 말을 따다가 쓰는 데 그 안에 또 다시 따온 말이 있을 때 그 앞 뒤에 갈라서 쓴다. 9. 이음표- ―합성된 단어에서 그 구성 부분을 보이기 위하여 또는 한 단어를 두 줄에 걸쳐 적을 때 쓸 수 있다. 10. 횡선― ―동격어, 총괄어 또는 삽입어의 앞뒤에, 또는 서술이 중단되거나 생략되였음을 보일 때 쓴다. 11. 점선.… ―서술이 중단되거나 생략되였음을 보일 때 쓴다. 12. 괄호.( ), (( )), [ ], { }―어떤 부분을 한 덩어리로 묶을 때 이들을 각각 적당히 쓴다. ==[[/용례 색인]]==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scsnnwrunmrvlfsnlfz24atjs25dc3d 조선말 띄여쓰기규범 0 35921 390450 337850 2025-06-08T11:37:25Z Namoroka 1939 390450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띄여쓰기규범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2000 | 설명 = 주체89(2000)년 학우서방 출판.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앞으로 띄여쓰기를 잘 고쳐 사람들의 독서력을 올릴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말 규범은 민족어의 특징과 요구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지켜야 할 언어사용준칙을 규제하고 있다.》 <pages index="조선말_띄여쓰기규범.pdf" from="4" fromsection="baleum" to="47" />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a4b4cas8cy8er5vucnqfmc5x7s8posu 390451 390450 2025-06-08T11:38:12Z Namoroka 1939 390451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띄여쓰기규범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2000 | 설명 = 주체89(2000)년 학우서방 출판.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앞으로 띄여쓰기를 잘 고쳐 사람들의 독서력을 올릴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말 규범은 민족어의 특징과 요구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지켜야 할 언어사용준칙을 규제하고 있다.》 <pages index="조선말_띄여쓰기규범.pdf" from="4" fromsection="baleum" to="47" /> {{PD-KPGov}}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qr97c56258iojlc2be8sso55zgqs4v4 390452 390451 2025-06-08T11:38:39Z Namoroka 1939 390452 wikitext text/x-wiki {{미완성}}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띄여쓰기규범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2000 | 설명 = 주체89(2000)년 학우서방 출판.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앞으로 띄여쓰기를 잘 고쳐 사람들의 독서력을 올릴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말 규범은 민족어의 특징과 요구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지켜야 할 언어사용준칙을 규제하고 있다.》 <pages index="조선말_띄여쓰기규범.pdf" from="4" fromsection="baleum" to="47" /> {{PD-KPGov}}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hv05a5blaf3p4g5wmutgyctb7xxxkzn 조선말 규범집 (1966년) 0 36063 390459 266531 2025-06-08T11:43:29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266531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필요}} ==머리말== 오늘 우리 인민은 조선로동당의 정학한 령도밑에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힘차게 내달으면서 민족적인 대번영을 이룩하고있다. 이러한 발전하는 현실은 우리 말을 더한층 발달시키고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문화성을 더욱더 높일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글을 쓰고 말을 하는데서 지켜야 할 온갖 규범들을 과학적으로 더욱 정밀화하는것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중요성에 비추어 국어사정위원회는 《조선말규범집》을 채택하여 공포한다. 이 규범집은 맞춤법, 띄여쓰기, 문장부호법 및 표준발음법과 관련된 규범들을 더욱 정밀화한 규정을 담고있다. 이규범집이 나감과 함께 《조선어절차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1954년)은 쓰지 않는다. 이 규범집에서 쓴 학술용어들은 앞으로 다듬는데 따라서 바뀔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1966년 6월 ==차례== *[[/맞춤법|맞춤법]] **총칙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3장. 어간와 토의 적기 **제4장. 합성어의 적기 **제5장. 접두사와 어근의 적기 **제6장. 어근와 접미사의 적기 **제7장. 한자어의 적기 *[[/띄여쓰기|띄여쓰기]] **총칙 **제1장. 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2장.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3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관형사, 부사, 감동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5장. 섞갈리기 쉬운것들의 띄여쓰기 **제6장. 특수한 말의 띄여쓰기 *[[/문장부호법|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점(.) **제3항. 두점(:) **제4항. 반두점(;) **제5항. 반점(,) **제6항. 물음표(?) **제7항. 느낌표(!) **제8항. 이음표(-) **제9항. 풀이표(―) **제10항. 줄임표(…) **제11항. 인용표(《 》, 〈 〉) **제12항. 괄호( ( ), 〔 〕) **제13항. 밑점( ... ) **제14항. 숨김표(○○○) **제15항. 같음표( 〃 ) **제16항. 물결표(~) **제17항. 인용표와 관ㄹ호 안에서의 부호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 *[[/표준발음법|표준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의 발음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의 발음 **제4장. 받침이 뒤의 모모음과 이어질 때의 발음 **제5장. 받침에 따라 그뒤의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내는 발음 **제6장. 《ㅎ》과 관련되는 발음 **제7장. 동화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8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9장. 한자어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한 단어를 이를 때의 발음 **제10장. 단어들이 어울릴 때의 발음 **제11장. 한자어에서의 된소리의 발음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pqopyozxu5tjhjlxb741z6kpu5q3b7k 390531 390459 2025-06-08T11:45:27Z Namoroka 1939 390531 wikitext text/x-wiki {{출처 필요}} {{저작권 정보 없음}}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1966 | 설명 = }} ==머리말== 오늘 우리 인민은 조선로동당의 정학한 령도밑에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힘차게 내달으면서 민족적인 대번영을 이룩하고있다. 이러한 발전하는 현실은 우리 말을 더한층 발달시키고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문화성을 더욱더 높일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글을 쓰고 말을 하는데서 지켜야 할 온갖 규범들을 과학적으로 더욱 정밀화하는것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중요성에 비추어 국어사정위원회는 《조선말규범집》을 채택하여 공포한다. 이 규범집은 맞춤법, 띄여쓰기, 문장부호법 및 표준발음법과 관련된 규범들을 더욱 정밀화한 규정을 담고있다. 이규범집이 나감과 함께 《조선어절차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1954년)은 쓰지 않는다. 이 규범집에서 쓴 학술용어들은 앞으로 다듬는데 따라서 바뀔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1966년 6월 ==차례== *[[/맞춤법|맞춤법]] **총칙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3장. 어간와 토의 적기 **제4장. 합성어의 적기 **제5장. 접두사와 어근의 적기 **제6장. 어근와 접미사의 적기 **제7장. 한자어의 적기 *[[/띄여쓰기|띄여쓰기]] **총칙 **제1장. 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2장.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3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관형사, 부사, 감동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5장. 섞갈리기 쉬운것들의 띄여쓰기 **제6장. 특수한 말의 띄여쓰기 *[[/문장부호법|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점(.) **제3항. 두점(:) **제4항. 반두점(;) **제5항. 반점(,) **제6항. 물음표(?) **제7항. 느낌표(!) **제8항. 이음표(-) **제9항. 풀이표(―) **제10항. 줄임표(…) **제11항. 인용표(《 》, 〈 〉) **제12항. 괄호( ( ), 〔 〕) **제13항. 밑점( ... ) **제14항. 숨김표(○○○) **제15항. 같음표( 〃 ) **제16항. 물결표(~) **제17항. 인용표와 관ㄹ호 안에서의 부호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 *[[/표준발음법|표준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의 발음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의 발음 **제4장. 받침이 뒤의 모모음과 이어질 때의 발음 **제5장. 받침에 따라 그뒤의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내는 발음 **제6장. 《ㅎ》과 관련되는 발음 **제7장. 동화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8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9장. 한자어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한 단어를 이를 때의 발음 **제10장. 단어들이 어울릴 때의 발음 **제11장. 한자어에서의 된소리의 발음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bekmfn0ugw8s7y6nvgaldr5xqh8o1u7 390532 390531 2025-06-08T11:46:59Z Namoroka 1939 390532 wikitext text/x-wiki {{출처 필요}} {{스캔으로 이동|조선말규범집(1966).pdf}}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1966 | 설명 = }} ==머리말== 오늘 우리 인민은 조선로동당의 정학한 령도밑에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힘차게 내달으면서 민족적인 대번영을 이룩하고있다. 이러한 발전하는 현실은 우리 말을 더한층 발달시키고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문화성을 더욱더 높일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글을 쓰고 말을 하는데서 지켜야 할 온갖 규범들을 과학적으로 더욱 정밀화하는것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중요성에 비추어 국어사정위원회는 《조선말규범집》을 채택하여 공포한다. 이 규범집은 맞춤법, 띄여쓰기, 문장부호법 및 표준발음법과 관련된 규범들을 더욱 정밀화한 규정을 담고있다. 이규범집이 나감과 함께 《조선어절차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1954년)은 쓰지 않는다. 이 규범집에서 쓴 학술용어들은 앞으로 다듬는데 따라서 바뀔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1966년 6월 ==차례== *[[/맞춤법|맞춤법]] **총칙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3장. 어간와 토의 적기 **제4장. 합성어의 적기 **제5장. 접두사와 어근의 적기 **제6장. 어근와 접미사의 적기 **제7장. 한자어의 적기 *[[/띄여쓰기|띄여쓰기]] **총칙 **제1장. 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2장.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3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관형사, 부사, 감동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5장. 섞갈리기 쉬운것들의 띄여쓰기 **제6장. 특수한 말의 띄여쓰기 *[[/문장부호법|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점(.) **제3항. 두점(:) **제4항. 반두점(;) **제5항. 반점(,) **제6항. 물음표(?) **제7항. 느낌표(!) **제8항. 이음표(-) **제9항. 풀이표(―) **제10항. 줄임표(…) **제11항. 인용표(《 》, 〈 〉) **제12항. 괄호( ( ), 〔 〕) **제13항. 밑점( ... ) **제14항. 숨김표(○○○) **제15항. 같음표( 〃 ) **제16항. 물결표(~) **제17항. 인용표와 관ㄹ호 안에서의 부호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 *[[/표준발음법|표준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의 발음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의 발음 **제4장. 받침이 뒤의 모모음과 이어질 때의 발음 **제5장. 받침에 따라 그뒤의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내는 발음 **제6장. 《ㅎ》과 관련되는 발음 **제7장. 동화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8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9장. 한자어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한 단어를 이를 때의 발음 **제10장. 단어들이 어울릴 때의 발음 **제11장. 한자어에서의 된소리의 발음 {{PD-KPGov}} {{PD-1996}}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b3n40ap2msmu7810homdq4c08xy3we5 390533 390532 2025-06-08T11:48:23Z Namoroka 1939 390533 wikitext text/x-wiki {{출처 필요}} {{스캔으로 이동|[[파일:조선말규범집(1966).pdf]]}}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1966 | 설명 = 사회과학원 출판. [[조선어 철자법]](1954)를 개정한 것이다. }} ==머리말== 오늘 우리 인민은 조선로동당의 정학한 령도밑에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향하여 힘차게 내달으면서 민족적인 대번영을 이룩하고있다. 이러한 발전하는 현실은 우리 말을 더한층 발달시키고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문화성을 더욱더 높일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글을 쓰고 말을 하는데서 지켜야 할 온갖 규범들을 과학적으로 더욱 정밀화하는것은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중요성에 비추어 국어사정위원회는 《조선말규범집》을 채택하여 공포한다. 이 규범집은 맞춤법, 띄여쓰기, 문장부호법 및 표준발음법과 관련된 규범들을 더욱 정밀화한 규정을 담고있다. 이규범집이 나감과 함께 《조선어절차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1954년)은 쓰지 않는다. 이 규범집에서 쓴 학술용어들은 앞으로 다듬는데 따라서 바뀔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1966년 6월 ==차례== *[[/맞춤법|맞춤법]] **총칙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3장. 어간와 토의 적기 **제4장. 합성어의 적기 **제5장. 접두사와 어근의 적기 **제6장. 어근와 접미사의 적기 **제7장. 한자어의 적기 *[[/띄여쓰기|띄여쓰기]] **총칙 **제1장. 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2장.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3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관형사, 부사, 감동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5장. 섞갈리기 쉬운것들의 띄여쓰기 **제6장. 특수한 말의 띄여쓰기 *[[/문장부호법|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점(.) **제3항. 두점(:) **제4항. 반두점(;) **제5항. 반점(,) **제6항. 물음표(?) **제7항. 느낌표(!) **제8항. 이음표(-) **제9항. 풀이표(―) **제10항. 줄임표(…) **제11항. 인용표(《 》, 〈 〉) **제12항. 괄호( ( ), 〔 〕) **제13항. 밑점( ... ) **제14항. 숨김표(○○○) **제15항. 같음표( 〃 ) **제16항. 물결표(~) **제17항. 인용표와 관ㄹ호 안에서의 부호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 *[[/표준발음법|표준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의 발음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의 발음 **제4장. 받침이 뒤의 모모음과 이어질 때의 발음 **제5장. 받침에 따라 그뒤의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내는 발음 **제6장. 《ㅎ》과 관련되는 발음 **제7장. 동화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8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9장. 한자어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한 단어를 이를 때의 발음 **제10장. 단어들이 어울릴 때의 발음 **제11장. 한자어에서의 된소리의 발음 {{PD-KPGov}} {{PD-1996}}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avqx1pz1fwmo2jaszkckeeq62v17jit 390534 390533 2025-06-08T11:48:41Z Namoroka 1939 390534 wikitext text/x-wiki {{출처 필요}} {{스캔으로 이동|[[:파일:조선말규범집(1966).pdf]]}}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1966 | 설명 = 사회과학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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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되었다고 믿어진다. 특히 북녘의 자료는 남북분단 45년에 벌어진 民族的 同質性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선 조금도 보탬없이 그 문헌에 나타난 그대로 읽고 그곳의 情況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文獻에 접할 때에 미리 생각할 것은 국가의 理念과 體制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공산국가는 원래 혁명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獨裁를 표방하고, 그 권력구조의 충추는 共産黨 조직이다. 따라서,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權力의 核으로서 모든 사업을 지도하는 首領으로서 부각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北韓도 이러한 共産國家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다른 것은 일제하의 革命傅統, 소련과 중국 노선을 배격하는 자주노선 主體思想을 그 이념으로 숭상하는 점이다. 그래서, 권력의 最高頂上인 수령이 숭앙의 대상이며, 敎示라고 부르는 그 담화에서는 으례 프롤레타리아 革命의 체험과 완수, 강인한 革命傳統의 계승과 구현, 영생불멸의 主體思想의 확립과 관철 등이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다. 또한, 제2인자인 指導者는 그 다음으로 부각되며, 그 담화의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체제하이기 때문에, 받드는 측에서는 가령 당의 방침을 좇아 金日成의 혁명적 文風을 따라 배우자든가, 당의 唯一思想으로 뭉쳐 사회주의 民族文化의 찬란한 꽃을 피우자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나타내는 것은 최대의 榮光이며 더없는 忠誠의 표시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제하에 원자료를 읽어야 비로소 그 사실을 바로 이해하게 되며, 그 진실의 올바른 이해는 심각한 民族的 異質化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현실에 처하여 우선 시급한 것은 그 原資料를 그대로 널리 제공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필요한 자료를 의도적으로 제외하지 말고, 原文을 빼지도 보태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전후를 하려 골고루 사실대로 제공함으로써 뜻하지 않은 誤解와 이후의 不信을 미리 씻게 할 수 있을 것이다. 開放의 물결을 타고 범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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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主化의 물결과 함께 對共産圈 자료의 개방정책이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엄격히 통제되던 그 자료가 공개됨에 따라 차단되었던 장막 속의 情報가 우리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이를 계기로 하여 장기간 금지로 여겼던 未知의 세계에서 들어오는 知識에 대해서도 건전한 認識을 가지고 올바르게 섭렵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오늘의 國際化 추세로 보더라도 그러한 지식과 정보는 국제적으로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고 믿어진다. 특히 북녘의 자료는 남북분단 45년에 벌어진 民族的 同質性을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선 조금도 보탬없이 그 문헌에 나타난 그대로 읽고 그곳의 情況을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文獻에 접할 때에 미리 생각할 것은 국가의 理念과 體制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즉, 공산국가는 원래 혁명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獨裁를 표방하고, 그 권력구조의 충추는 共産黨 조직이다. 따라서,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權力의 核으로서 모든 사업을 지도하는 首領으로서 부각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北韓도 이러한 共産國家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다른 것은 일제하의 革命傅統, 소련과 중국 노선을 배격하는 자주노선 主體思想을 그 이념으로 숭상하는 점이다. 그래서, 권력의 最高頂上인 수령이 숭앙의 대상이며, 敎示라고 부르는 그 담화에서는 으례 프롤레타리아 革命의 체험과 완수, 강인한 革命傳統의 계승과 구현, 영생불멸의 主體思想의 확립과 관철 등이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다. 또한, 제2인자인 指導者는 그 다음으로 부각되며, 그 담화의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체제하이기 때문에, 받드는 측에서는 가령 당의 방침을 좇아 金日成의 혁명적 文風을 따라 배우자든가, 당의 唯一思想으로 뭉쳐 사회주의 民族文化의 찬란한 꽃을 피우자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정을 나타내는 것은 최대의 榮光이며 더없는 忠誠의 표시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제하에 원자료를 읽어야 비로소 그 사실을 바로 이해하게 되며, 그 진실의 올바른 이해는 심각한 民族的 異質化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현실에 처하여 우선 시급한 것은 그 原資料를 그대로 널리 제공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필요한 자료를 의도적으로 제외하지 말고, 原文을 빼지도 보태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전후를 하려 골고루 사실대로 제공함으로써 뜻하지 않은 誤解와 이후의 不信을 미리 씻게 할 수 있을 것이다. 開放의 물결을 타고 범람하고 있는 市中의 자료는 전후나 眞否조차 가리기 어려울 만큼 변형되어 사실을 사실대로 캐기에는 적지 않은 혼돈이 있겠기 때문이다. 이 叢書의 취지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 계획은 앞으로 연륜이 거듭된 뒤에야 비로소 갖추어지고 소기의 目的도 달성되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계획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이 총서에 소록할 著述에 대한 著者의 승락 및 게재료의 지불이다. 특히 우리 法에 따라 당연히 지불해야 할 揭載料를 막힌 장벽으로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그 저자에게 사례할 돈이 전달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또한 민족적 이질화의 극복과 함께 그 날은 반드시 와야 할 것이다. 한편, 이 叢書를 계획하고 편찬하면서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쳤다. 첫째는 原資料의 입수요, 둘째는 선명하게 인쇄하는 문제였다. 첫째 문제는 전후를 가려 골고루 제공하려는 계획에 차질을 초래하나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길밖에 없고, 둘째 문제는 원자료의 活字와 紙質이 워낙 좋지 않아서 그 이상 깨끗한 印刷가 불가능하나 原文을 그대로 재현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 문제는 오직 그 原資料에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독자 제위의 넓은 양해가 있기를 바람니다. 1989년 월 일 {{PD-KPGov}}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px78nmnhmb4t95mxctdrcjc9y59jmzr 조선말 규범집 (1966년)/맞춤법 0 36065 390463 157236 2025-06-08T11:43:30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맞춤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맞춤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157236 wikitext text/x-wiki =맞춤법= ==총  칙== 1. 맞춤법은 단어에서 뜻을 가지는 매개의 부분을 언제나 같게 적는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2. 조선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1항. 조선말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ㄱ||ㄴ||ㄷ||ㄹ||ㅁ||ㅂ||ㅅ |- |(기윽)||(니은)||(디읃)||(리을)||(미음)||(비읍)||(시읏) |- |ㅇ||ㅈ||ㅊ||ㅋ||ㅌ||ㅍ||ㅎ |- |(이응)||(지읒)||(치읓)||(키읔)||(티읕)||(피읖)||(히읗) |- |ㄲ||ㄸ||ㅃ||ㅆ||ㅉ |- |(된기윽)||(된디읃)||(된비읍)||(된시읏)||(된지읒) |- |ㅏ||ㅑ||ㅓ||ㅕ||ㅗ||ㅛ||ㅜ |- |(아)||(야)||(어)||(여)||(오)||(요)||(우) |- |ㅠ||ㅡ||ㅣ||ㅐ||ㅒ||ㅔ||ㅖ |- |(유)||(으)||(이)||(애)||(얘)||(에)||(예) |- |ㅚ||ㅟ||ㅢ||ㅘ||ㅝ||ㅙ||ㅞ |- |(외)||(위)||(의)||(와)||(워)||(왜)||(웨) |} 자음자의 이름은 각각 다음과 같이 부를수도 있다. {| class="wikitable" |(그)||(느)||(드)||(르)||(므)||(브)||(스)||(으)||(즈)||(츠) |- |(크)||(트)||(프)||(흐)||(끄)||(뜨)||(쁘)||(쓰)||(쯔) |}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2항. 조선글에서 쓰는 받침은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받침!!례 |- |rowspan="2"|ㄱ||┌ 박(박이, 박을, 박에) |- |└ 먹다(먹으니, 먹어, 먹지) |- |rowspan="2"|ㄴ||┌ 논(논이, 논을, 논에) |- |└ 안다(안으니, 안아, 안지) |- |rowspan="3"|ㄷ||┌ 맏아들 |- |│ 굳다(굳으니, 굳어, 굳지) |- |└ 듣다(들으니, 들어, 듣지) |- |rowspan="2"|ㄹ||┌ 길(길이, 길을, 길에) |- |└ 밀다(미니, 밀어, 밀지) |- |rowspan="2"|ㅁ||┌ 땀(땀이, 땀을, 땀에) |- |└ 심다(심으니, 심어, 심지) |- |rowspan="3"|ㅂ||┌ 집(집이, 집을, 집에) |- |│ 곱다(곱으니, 곱아, 곱지) |- |└ 굽다(구우니, 구워어, 굽지) |- |rowspan="3"|ㅅ||┌ 옷(옷이, 옷을, 옷에) |- |│ 솟다(솟으니, 솟아, 솟지) |- |└ 잇다(이으니, 이어, 잇지) |- |rowspan="2"|ㅇ||┌ 땅(땅이, 땅을, 땅에) |- |└ 동이다(동이니, 동여, 동이지) |- |rowspan="2"|ㅈ||┌ 젖(젖이, 젖을, 젖에) |- |└ 맞다(맞으니, 맞아, 맞지) |- |rowspan="2"|ㅊ||┌ 빛(빛이, 빛을, 빛에) |- |└ 쫓다(쫓으니, 쫓아, 쫓지) |- |ㅋ||부엌(부엌이, 부엌을, 부엌에) |- |rowspan="2"|ㅌ||┌ 밭(밭이, 밭을, 밭에) |- |└ 맡다(맡으니, 맡아, 맡지) |- |rowspan="2"|ㅍ||┌ 숲(숲이, 숲을, 숲에) |- |└ 높다(높으니, 높아, 높지) |- |rowspan="2"|ㅎ||┌ 좋다(좋으니, 좋아, 좋지) |- |└ 빨갛다(빨가니, 빨개, 빨갛지) |- |rowspan="2"|ㄲ||┌ 밖(밖이, 밖을, 밖에) |- |└ 엮다(엮으니, 엮어, 엮지) |- |ㄳ||몫(몫이, 몫을, 몫에) |- |ㄵ||앉다(앉으니, 앉아, 앉지) |- |ㄶ||많다(많으니, 많아, 많지) |- |rowspan="2"|ㄺ||┌ 닭(닭이, 닭을, 닭에) |- |└ 맑다(맑으니, 맑아, 맑지) |- |rowspan="2"|ㄻ||┌ 삶(삶이, 삶을, 삶에) |- |└ 젊다(젊으니, 젊어, 젊지) |- |rowspan="2"|ㄼ||┌ 여덟(여덟이, 여덟을, 여덟에) |- |└ 넓다(넓으니, 넓어, 넓지) |- |ㄽ||돐(돐이, 돐을, 돐에) |- |ㄾ||훑다(훑으니, 훑어, 훑지) |- |ㄿ||읊다(읊으니, 읊어, 읊지) |- |ㅀ||옳다(옳으니, 옳아, 옳지) |- |rowspan="2"|ㅄ||┌ 값(값이, 값을, 값에) |- |└ 없다(없으니, 없어, 없지) |- |ㅆ||있다(있으니, 있어, 있지) |} 제3항. 받침 ≪ㄷ, ㅌ, ㅅ, ㅆ, ㅈ, ㅊ≫가운데서 어느 하나로 적어야 할 까닭이 없는것은 전통적관습을 따라 ≪ㅅ≫으로 적는다. 례: 무릇, 벙긋벙긋, 사뭇, 숫돌, 첫째, 헛소문, 햇곡식, 얼핏, 빗나가다, 읽으렷다 제4항. 한 형태부안의 두 모음사이에서 나는 자음은 설측음이 아닌 한에서 받침으로 적지 않는다. 례: {| class="wikitable" ! !!옳음!!그름 |- !rowspan="8"|1) |겨누다||견우다 |- |디디다||딛이다 |- |메추리||멧추리 |- |비치다(해가 비치다)||빛이다 |- |소쿠리||속쿠리 |- |시키다(일을 시키다)||식히다 |- |지키다||직히다 |- |여기다||역이다 |- !rowspan="9"|2) |기쁘다||깃브다 |- |바싹||밧삭 |- |부썩||붓석 |- |해쓱하다||햇슥하다 |- |아끼다||앗기다 |- |여쭈다||엿주다 |- |오빠||옵바 |- |우뚝||읏둑 |- |으뜸||읏듬 |} 제5항. 한 형태부안의 두 모음사이에서 나는 설측음은 ≪ㄹㄹ≫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걸레||걸네 |- |놀라다||놀나다 |- |벌레||벌네 |- |실룩실룩||실눅실눅 |- |빨래||빨내 |- |알락달락||알낙달낙 |- |얼른||얼는 |} 제6항. 한 형태부안에서 받침 ≪ㄴ, ㄹ, ㅁ, ㅇ≫ 다음의 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경우는 아래 음절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반짝반짝||반작 |- |알뜰살뜰||알들살들 |- |말씀||말슴 |- |벌써||벌서 |- |훨씬||훨신 |- |활짝||활작 |- |옴짝달싹||옴작달삭 |- |뭉뚝하다||뭉둑하다 |} 그러나 토에서는 ≪ㄹ≫뒤에서 된소리가 나더라도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 -ㄹ가|| -ㄹ까 |- | -ㄹ수록|| -ㄹ쑤록 |- | -ㄹ지라도|| -ㄹ찌라도 |- | -올시다|| -올씨다 |} 제7항. 형태부의 소리가 줄어진 경우에는 준대로 적되 본래형태를 잘 파악할수 있도록 받침을 바로잡아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갖고(가지고)||갓고 |- |기럭아(기러기야)||기러가 |- |딛고(디디고)||딧고 |- |엊그저께(어제그저께)||엇그저께 |- |엊저녁(어제저녁)||엇저녁 |} ==제3장  어간과 토의 적기== 제8항. 어간과 토가 어울릴적에는 각각 그 본디형태를 밝혀적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 class="wikitable" |집이,||집을,||집에 |- |팥이,||팥을,||팥에 |- |흙이,||흙을,||흙에 |- |입다,||입으니,||입어,||입지 |- |낳다,||낳으니,||낳아,||낳지 |- |젊다,||젊으니,||젊어,||젊지 |} 제9항. 오늘날 말줄기에 토가 붙은것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것들을 밝혀적지 않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나타나다||낱아나다 |- |바라보다||발아보다 |- |바라지다||발아지다 |- |부러지다||불어지다 |- |사라지다||아지다 |- |자라나다||잘아나다 |- |자빠뜨리다||잡바뜨리다 |} 어간에 토가 붙은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도 뜻이 딴 단어로 넘어간것은 그 어간과 토를 밝히지 않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나마(열흘나마 걸렸다)||남아 |- |너머(고개넘어에 있다)||넘어 |- |드러나다(일이 드러나다)||들어나다 |- |쓰러지다||쓸어지다 |} 제10항. 일부 용언에서 어간과 토가 어울릴적에 어간의 끝소리가 일정하게 바뀌여지는것은 바뀐대로 적는다. 1) 어간의 끝을 ≪ㄹ≫로 적거나 빼버리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2"|갈다 ―||갈고,||갈며,||갈아 |- |가니,||갑니다,||가시니,||가오 |- |rowspan="2"|돌다 ―||돌고,||돌며,||돌아 |- |도니,||돕니다,||도시니,||도오 |- |rowspan="2"|불다 ―||불고,||불며,||불어 |- |부니,||붑니다,||부시니,||부오 |} 어간이 ≪ㄹ≫로 끝나는 동사와 형용사는 전부 여기에 속한다. 2) 어간의 끝을 ≪ㅅ≫으로 적거나 빼버리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2"|낫다 ―||낫고,||낫지 |- |나으니,||나아 |- |rowspan="2"|짓다 ―||짓고,||짓지 |- |지으니,||지어 |- |rowspan="2"|잇다 ―||잇고,||잇지 |- |이으니, 이어 |} 3) 어간의 끝을 ≪ㅎ≫으로 적거나 빼버리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3"|벌겋다 ―||벌겋고,||벌겋지 |- |벌거오,||벌거니,||벌거랴 |- |걸거면,||벌겁니다,||벌개서 |- |rowspan="3"|커다랗다 ―||커다랗고,||커다랗지 |- |커다라오,||커다라니,||커다라랴 |- |커다랍니다,||커다래서 |- |rowspan="3"|허옇다 ―||허옇고,||허옇지 |- |허여오,||허여니,||허여랴,||허여면 |- |허엽니다,||허얘서 |} ≪ㅎ≫받침으로 끝난 본디의 어간이 두 음절이상인 동사나 형용사는 전부 여기에 속한다. 4) 어간의 끝을 ≪ㄷ≫―≪ㄹ≫로 적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2"|걷다 ―||걷고,||걷지 |- |걸으니,||걸어 |- |rowspan="2"|듣다 ―||듣고,||듣지 |- |들으니,||들어 |- |rowspan="2"|묻다 ―||묻고,||묻지 |- |물으니,||물어 |} 5) 어간의 끝을 ≪ㅂ≫―≪오(우)≫로 적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2"|고맙다 ―||걷고,||걷지 |- |걸으니,||걸어 |- |rowspan="2"|곱다 ―||곱고,||곱지 |- |고우니,||고와 |- |rowspan="2"|춥다 ―||춥고,||춥지 |- |추우니,||추워 |} 6) 어간의 끝을 ≪ㄹ≫―≪르ㄹ≫로 적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2"|누르다 ―||누르고,||누르지 |- |누르러,||누르렀다 |- |rowspan="2"|푸르다 ―||푸르고,||푸르지 |- |푸르러,||푸르렀다 |- |rowspan="2"|이르다 ―||이르고,||이르지 |- |이르러,||이르렀다 |} 7) 어간의 끝을 ≪르≫―≪ㄹㄹ≫로 적는 경우 례: {| class="wikitable" |rowspan="2"|기르다 ―||기르고,||기르지 |- |길러,||길렀다 |- |rowspan="2"|흐르다 ―||흐르고,||흐르지 |- |흘러,||흘렀다 |- |rowspan="2"|빠르다 ―||빠르고,||빠르지 |- |빨라,||빨랐다 |} 제11항. 어간이 ≪아, 어, 여≫ 또는 ≪았, 었, 였≫과 어울릴적에는 그 어간의 모음의 성질에 따라 각각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적는다. 1) 어간의 모음이 ≪ㅏ, ㅑ, ㅗ, ㅏㅡ, ㅗㅡ≫인 경우에는 ≪아, 았≫으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막다,||막아,||막았다 |- |얇다,||얇아,||얇았다 |- |따르다,||따라,||따랐다 |- |오르다,||올라,||올랐다 |} 어간의 모음이 ≪ㅏㅡ, ㅗㅡ≫인것이라도 합성어간인 경우에는 ≪어, 었≫으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받들다,||받들어,||받들었다 |- |올들다,||올들어,||올들었다 |} 2) 어간의 모음이 ≪ㅓ, ㅕ, ㅜ, ㅓㅡ, ㅜㅡ, ㅡㅡ, ㅣㅡ≫인 경우에는 ≪어, 었≫으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넣다,||넣어,||넣었다 |- |겪다,||겪어,||겪었다 |- |두다,||두어,||두었다 |- |크다,||커,||컸다 |- |거들다,||거들어,||거들었다 |- |부르다,||불러,||불렀다 |- |흐르다 ―||흘러,||흘렀다 |- |치르다,||치러,||치렀다 |} 3) 어간의 모음이 ≪ㅣ, ㅐ, ㅔ, ㅚ, ㅟ, ㅢ≫인 경우와 어간이 ≪하≫인 경우에는 ≪여, 였≫으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기다,||기여,||기였다 |- |개다,||개여,||개였다 |- |베다,||베여,||베였다 |- |되다,||되여,||되였다 |- |쥐다,||쥐여,||쥐였다 |- |희다,||희여,||희였다 |- |하다,||하여,||하였다 |} 그러나 어간의 끝음절에 받침이 있을 때에는 ≪어, 었≫으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길다,||길어,||길었다 |- |심다,||심어,||심었다 |- |짓다,||지어,||지었다 |- |잇다,||이어,||이었다 |- |맺다,||맺어,||맺었다 |} 부사로 된 다음과 같은 단어는 아래와 같이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구태여||구태어 |- |도리여||도리어 |- |드디여||드디어 |} 제12항. 모음으로 끝난 어간과 모음으로 시작한 토나 접미사가 어울릴적에 소리가 줄어든것은 준대로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rowspan="22"|1) !⎰뜨다 |뜨이다||뜨이여||뜨이였다 |- !⎱뜨다 |띄다||띄여||띄였다 |- !⎰쓰다 |쓰이다||쓰이여||쓰이였다 |- !⎱쓰다 |씌다||씌여||씌였다 |- !⎰모이다 |모이여||모이였다 |- !⎱모이다 |뫼여||뫼였다;||모여||모였다 |- !⎰보다 |보아||보았다 |- !⎱보다 |봐||봤다 |- !⎰쏘다 |쏘아||쏘았다 |- !⎱쏘다 |쏴||쐈다 |- !⎰주다 |주어||주었다 |- !⎱주다 |줘||줬다 |- !⎰꾸다 |꾸어||꾸었다 |- !⎱꾸다 |꿔||꿨다 |- !⎰고이다 |고이여||고이였다 |- !⎱괴다 |괴여||괴였다 |- !⎰쏘이다 |쏘이여||쏘이였다 |- !⎱쐬다 |쐬여||쐬였다 |- !⎰쪼이다 |쪼이여||쪼이였다 |- !⎱쬐다 |쬐여||쬐였다 |- !⎰가지다 |가지여||가지였다 |- !⎱가지다 |가져||가졌다 |- !rowspan="4"|2) !⎰하다 |하여서||하였다 |- !⎱하다 |해서||했다 |- !⎰되다 |되여서||되였다 |- !⎱되다 |돼서||됐다 |- !rowspan="4"|3) !⎰개다 |개여서||개였다 |- !⎱개다 |개서||갰다 |- !⎰메다 |메여서||메였다 |- !⎱메다 |메서||갰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어들은 줄어든대로만 적는다. :례: :{| class="wikitable" !rowspan="4"|1) |살찌다||살쪄||살쪘다 |- |지다||져||졌다 |- |치다||쳐||쳤다 |- |찌다||쪄||쪘다 |- !rowspan="6"|2) |건느다||건너||건넜다 |- |잠그다||잠가||잠갔다 |- |치르다||치러||치렀다 |- |크다||커||컸다 |- |따르다||따라||따랐다 |- |쓰다||써||썼다 |- !rowspan="4"|3) |가다||가||갔다 |- |사다||사||샀다 |- |서다||서||섰다 |- |켜다||켜||켰다 |} 제13항.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어지면서 다음에 온 토의 첫소리 자음이 거세게 될 때에는 거센소리로 적는다. {| class="wikitable" !본말!!준말 |- |가하다||가타 |- |다정하다||다정타 |- |례하건대||례컨대 |} :그러나 ≪아니하다≫가 줄어든 경우에는 ≪않다≫로 적는다. ==제4장  합성어의 적기== 제14항. 합성어는 매개 어근의 본디형태를 각각 밝혀적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 class="wikitable" !rowspan="2"|1) |걷잡다||낮보다||눈웃음||돋보다||물오리 |- |밤알||손아귀||철없다||꽃철||끝나다 |- !rowspan="2"|2) |값있다||겉늙다||몇날||빛나다||칼날||팥알 |- |흙내 |} :그러나 오늘날 어근이 뚜렷하지 않은것은 그 본디형태를 밝혀적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며칠||부랴부랴||부리나게||오라버니||이틀||이태 |} 제15항. 합성어를 이룰적에 [ㅂ]이 덧나거나 순한소리가 거센소리로 바뀌여나는것은 덧나고 바뀌여나는대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멥쌀||좁쌀||찹쌀 |- |머리카락||살코기||안팎||암탉 |} 제16항. 합성어를 이룰적에 빠진 소리는 빠진대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다달이||마소||모자라다||바느질||부나비 |- |부삽||부손||소나무||여닫이 |} 제17항. 합성어에서 앞 어근의 끝소리 [ㄹ]이 폐쇄음으로 된것은 ≪ㄷ≫으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섣달||숟가락||이튿날 |} 제18항. 종전에 써오던 사이표(')는 발음교육 등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없앤다. ==제5장  접두사와 어근의 적기== 제19항. 접두사와 어근이 어울릴적에는 각각 그 본디형태를 밝혀적는다. 례: {|class="wikitable" |덧신||덧저고리||맏누이||빗보다||선웃음 |- |짓밟다||침외||헛디디다 |} ==제6장  어근과 접미사의 적기== 제20항. 자음으로 시작한 접미사가 어근과 어울릴적에는 각각 그 형태를 밝혀적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1) 새 단어를 새끼치는 접미사 :례: :{|class="wikitable" |곧추||낚시||늙수그레하다||덮개||셋째||넷째 |- |힘껏||꽃답다||끝장||뜯적뜯적하다||잎사귀 |} :2) 동사의 사역 또는 피동을 나타내는 접미사 :례: :{|class="wikitable" |감기다||담기다||맡기다||옮기다||웃기다||걷히다 |- |막히다||밝히다||앉히다||익히다||입히다 |} :3) 힘줌을 나타내는 ≪치≫ :례: :{|class="wikitable" |밀치다||열치다||뻗치다||엎치다||받치다 |} :4) 형용사를 동사로 만드는 ≪이≫, ≪히≫, ≪추≫ :례: :{|class="wikitable" |높이다||굳히다||굽히다||넓히다||밟히다 |- |낮추다||늦추다 |} :5) ≪하다≫가 붙어서 형용사로 될수 있는 어근과 어울려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히≫ :례: :{|class="wikitable" |넉넉히||답답히||꾸준히||똑똑히 |} 제21항. ≪ㄺ ㄼ ㄾ ㅀ≫ 등의 둘받침으로 끝난 어근에 접미사가 어울릴적에 그 둘받침중의 한 소리가 따로 나지 않는것은 아니나는대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말끔하다||말쑥하다||실쭉하다||할짝할짝하다 |- |넙적다리 |} 제22항. 어근과 접미사가 어울리여 아주 다른 뜻으로 바뀐것은 그 어근과 접미사를 밝혀적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거두다||기르다||도리다||colspan="2"|드리다(선물을 드리다) |- |미루다||colspan="2"|바치다(맹비를 바치다)||colspan="2"|부치다(편지를 부치다) |- |이루다 |} 제23항. 모음으로 된 접미사가 어근과 어울릴적에는 다음과 같이 갈라적는다. :1) 어근과 접미사를 밝혀 적는 경우 ::(1) 명사나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례: ::{|class="wikitable" !rowspan="2"|① |길이||깊이||높이||미닫이||벼훑이||살림살이 |- |손잡이||쇠붙이||해돋이 |- !② |네눈이||삼발이 |- !③ |같이||굳이||깊이||많이||좋이 |- !④ |곳곳이||낱낱이||샅샅이||집집이 |} :::그러나 의성의태어에 붙어서 명사를 이루는것은 밝혀적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매미||꾀꼬리||딱따구리||더퍼리||두드러기 |- |무더기||깍두기||얼루기 |} ::(2)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음≫ ::례: ::{|class="wikitable" |갚음||걸음(걸음을 걷다)||물음||믿음||졸음 |- |꽃묶음||얼음||엮음||웃음 |}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단어는 어근과 접미사를 밝혀 적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거름(거름을 내다)||고름 |} ::(3) 동사의 사역 또는 피동을 나타내거나 형용사를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들인 ≪이≫, ≪우≫, ≪으키≫, ≪이키≫, ≪애≫ ::례: ::{|class="wikitable" |놓이다||먹이다||쌓이다||돋우다||일으키다||돌이키다||없애다 |} ::(4) ≪하다≫가 붙어서 형용사로 될수 있는 어근과 어울려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례: ::{|class="wikitable" |비륵이||반듯이(반듯하게 펴놓다)||큼직이||꼿꼿이 |- |끔찍이||깨끗이||따뜻이||뚜렷이 |} ::(5) 형용사를 만드는 ≪없≫ ::례: ::{|class="wikitable" |객없다||부질없다||시름없다 |} ::(6) ≪거리≫와 어울릴수 있는 어근에 붙어서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례: ::{|class="wikitable" |번득이다||번쩍이다||속삭이다||움직이다 |} :2) 어근과 접미사를 밝혀적지 않는 경우 ::(1) 어근에 ≪이≫, ≪음≫ 이외의 접미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명사나 부사 ::례: ::{|class="wikitable" !rowspan="2"|① |나머지||마감||마개||마중||지붕||끄트머리 |- |바깥||뜨더귀||쓰레기||올가미 |- !② |너무||도로||바투||비로소||자주||뜨덤뜨덤 |- !③ |거뭇거뭇||나붓나붓||울긋불긋 |} ::(2) 어떤 토나 ≪하다≫가 붙어서 단어를 이루는 일이 없는 어근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된 명사나 부사 ::례: ::{|class="wikitable" |옫그라미||부스러기 |- |갑자기||반드시(반드시 승리할것이다)||슬며시 |- |일찌기 |} ::(3) 접미사 ≪앟, 엏≫ 또는 ≪업≫, ≪읍≫이 붙어서 이루어진 형용사 ::례: ::{|class="wikitable" |가맣다||누렇다||둥그렇다||발갛다||파랗다 |- |싸느랗다||간지럽다||미덥다||부드럽다||시끄럽다 |- |징그럽다||어지럽다||우습다 |} 제24항. 부사에서 접미사 ≪이≫나 ≪히≫가 그 어느 하나로만 소리나는것은 그 소리대로 적는다. :1) ≪히≫로 적는것 :례: :{|class="wikitable" |감히||극히||도저히||자연히||작히 |} :2) ≪이≫로 적는것 :례: :{|class="wikitable" |고이||너부죽이||지긋이 |} 제25항. 부사의 접미사 ≪이≫, ≪히≫의 어느것인지 똑똑치 않을적에는 다음과 같이 갈라적는다. :1) 어근에 직접 ≪하다≫를 붙일수 있는 경우에는 ≪히≫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가지런히||고요히||공손히||덤덤히||마땅히 |- |부지런히||튼튼히||흔히||꾸준히 |} :2) 어근에 직접 ≪하다≫를 붙일수 없는 경우에는 ≪이≫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간간이||기어이||번번이 |} ==제7장  한자어의 적기== 제26항. 한자어는 음절마다 한자의 현대소리에 따라 적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class="wikitable" |국가(國家)||혁명(革命)||천리마(千里馬) |- |녀자(女子)||뇨소(尿素)||락원(樂園) |- |로동(勞動)||례외(例外) |} :그러나 아래와 같은 한자어는 변한 소리대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나팔||라팔(喇叭) |- |나사||라사(螺絲) |- |남색||람색(藍色) |- |노||로(櫓) |- |유리||류리(瑠璃) |} 제27항. 한자어에서 모음 ≪ㅖ≫가 들어있는 음절로는 ≪계≫, ≪례≫, ≪혜≫, ≪예≫만을 인정한다. 례: {|class="wikitable" |계산(計算)||계획(計劃) |- |세계(世界)||례외(例外) |- |례절(禮節)||경례(敬禮) |- |혜택(惠澤)||은혜(恩惠) |- |예술(藝術) |} :그러나 그 본디소리가 ≪게≫인 한자는 그대로 적는다. :례: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게시판(揭示板)||계시판 |- |게재(揭載)||계재 |} 제28항. 한자어에서 모음 ≪ㅢ≫가 들어있는 음절로는 ≪희≫, ≪의≫만을 인정한다. 례: {|class="wikitable" |회의(會議)||희망(希望) |- |유희(遊戱)||의학(醫學) |- |의의(意義) |} 8w5ksq481be0pqpn40bb6jpziwecp09 조선말 규범집 (1966년)/띄여쓰기 0 36098 390461 268464 2025-06-08T11:43:29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띄여쓰기]]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띄여쓰기]]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268464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필요}} '''총  칙'''  단어를 단위로 하여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자모를 음절단위로 묶어쓰는 특성을 고려하여 특수한 어휘부류는 붙여쓰기로 한다. ==제1장. 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1항. 토가 붙은 명사는 뒤의 명사와 띄여쓴다. {| |례:||나라와 인민의 재산 |- |||사람과의 사업 |- |||학교에서의 정서교양 |} 제2항. 명사들이 토 없이 직접 어울린 경우에는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를 단위로 띄여쓴다.(수사가 섞이여도 단일한 사물의 명칭으로 되는것은 여기에 준한다.) :1) 일반적인 대상을 나타내는 경우 :{| |례:||사회주의농촌의 발전된 모습 |- |||사회주의농촌건설을 힘껏 돕는다. |- |||사회주의농촌건설속도가 빠르다. |- |||사회주의농촌건설속도 장성정형을 보면… |- |||부르죠아민주주의혁명의 단계 |-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일으켰다. |- |||15세기중엽 기사회경제형편을 보면… |- |||간부부 부부장동무를 만났다. |- |||조직계획처 처장에게 보냈다.<br/>(그러나 ≪조직계획처장≫으로 준 경우는 붙여쓴다.) |- |||제관작업반 반장과 담화한다.<br/>(그러나 ≪제관작업반장≫으로 준 경우는 붙여쓴다.) |- |||이웃집 마루방 벽에 걸린 그림 |- |||건너마을 벽돌집 아주머니가 주었다. |- |||건너마을 벽돌집아주머니가 주었다.<br/>(≪벽돌집아주머니≫가 고유한 명칭으로 된 경우) |- |||이네발짐승이다. |- |||세벌김을 맨다. |- |||10층아빠트가 들어섰다. |- |||도인민위원회들에서 맡아본다. |- |||형제적사회주의국가인민을 비롯하여… |- |||도내 제철공장 콕스 7천여톤 절약. |} :2) 고유한 대상을 나타내는 경우 :{| |례:||우리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 |||새날협동농장으로 갑니다. |- |||만경대위생편의봉사사업소에서 왔다. |- |||평안남도 순천군 백송리에서 왔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과학원 고고학및민속학연구소 고고학연구실 |- |||신포어류통졸임공장 종합가공직장 병졸임작업반에서… |- |||승리58형이 나왔다. |- |||로동신문에 난 기사 |- |||리순신훈장을 받았다. |- |||박칠복의 토론 |} :3) 고유한 명칭의 앞뒤에 보통명사적인것이 어울린 경우 ::(1) 칭호는 뒤에 온것만 붙인다. ::{| |례:||한인선동무의 토론 |- |||리옥희아주머니의 솜씨 |- |||아쉬뜨그라미드각하에게 낸 편지 |- |||김준식박사를 만났다. |- |||조창길부부장에게 보였다. |- |||박사 김준식의 론문 |- |||인민배우 황욱동지의 연기 |- |||부부장 조창길에게 보냈다. |} ::(2) 동격어나 이에 준하는 단위들은 띄여쓴다. ::{| |례:||당보 로동신문의 기사 |-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 ::(3) 고유한 명칭의 중간에 끼는 ≪직속, 부속, 산하…≫ 등은 앞 단위에 붙여쓴다. ::{| |례:||평양사범대학부속 고등건설학교 |-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 :::그러나 고유한 기관명칭이 아닐적에는 의미에 따라 처리한다. :::{| |례:||사범대학 부속중학교들 |- |||보건성산하 제약공장들 |} ::(4) 고유한 명칭의 앞뒤에 온 기타의 보통명사적인것은 띄여쓴다. ::{| |례:||량강도 지방공업 |- |||조선중앙방송위원회 탁구선수 |- |||우리 나라 중앙방송위원회 |} :4) 나란히 어울린것에 공통적으로 걸리는 단위가 온 경우 :{| |례:||아침저녁식사를 여기서 한다. |- |||선전선동사업을 강화한다. |- |||국내국제정세를 연구한다. |- |||기술문화사상혁명을 수행한다. |- |||교육문화보건위생사업에서의 성과 |} ::그러나 반점(,)을 찍어서 렬거할 경우는 뒤에 오는 칭호를 제외하고는 띄여쓴다. ::{| |례:||세멘트, 강철, 석탄 생산실적 |- |||대학내 교원, 학생, 사무원들 |- |||교원, 학생, 사무원 협의회 |- |||김장범, 박곰손, 황영순동무들입니다. |} :5) 앞 명사를 다시 받는 ≪자신, 자체, 전체…≫가 온 경우 :{| |례:||기술자자신이 만들었다. |- |||지구자체도 돈다. |- |||남녀로소전체가 일떠섰다. |- |||로동자전체를 대표한다. |} ::≪스스로, 모두…≫도 이에 준한다. ::{| |례:||학생스스로가 깨달았다. |- |||아들딸모두가 씩씩하게 자란다. |} 제3항. 불완전명사는 그앞 단어에 붙여쓴다. {| |례:||것…지금 바로 종을 칠것 |- |||나위…더 말할나위가 없다. |- |||녁…일행은 날이 샐녘에 떠났다. |- |||만큼…그가 가져온만큼은 가져다 주어야지. |- |||지…그가 떠난지가 한시간이 넘었다. |} :다음의 한자어도 불완전명사에 준하여 처리한다. :{| |례:||상…시간상으로 앞섰다.  |- |||중…회의중이였다. |- |||간…형제간이다. |- |||전…그가 오기전에 다 읽자. |- |||외…계획외에 더 생산했다. |- |||후…그가 온후에 시작하자. |- |||전…춘향전, 심청전 |- |||초…금년초에 공사가 끝났다. |- |||발…평양발, 함흥발 |- |||행…개성행, 부산행 |- |||래…몇십년래의 처음 보는 대풍작 |- |||부…3일부 신문 |- |||별…개인별 경쟁 |- |||용…학생용 가방 |- |||급…60키로급 |- |||분…5월분 계획 |- |||착…10시작 15분착 38렬차 |} :그러나  ≪등, 대, 겸…≫은 띄여쓰며 ≪및≫도 이에 준한다. :{| |례:||걷고 뛰고 달리는 등 운동을 한다. |- |||곽바위, 김꽃분이, 윤장미 등이 제기했다. |- |||김미나리 등이 제기했다. |- |||의학대학 대 운수대학 축구시합 |- |||대학교원 겸 공장기사 |- |||학교교양대 및 가정교양 <br/>(기관이나 부서이름의 속에 들어간 ≪및≫은 붙여쓴다―고고학및민속학연구소) |} 제4항. 동사나 형용사의 ≪ㄴ≫, ≪ㄹ≫ 형이 시칭의 뜻이 없이 명사와 어울리면서 그앞에 다시 ≪ㄴ≫, ≪ㄹ≫ 형의 규정어를 받을수 있는것은 붙여쓴다. {| |례:||된장(묽은 된장) |- |||식은땀(심한 식은땀) |- |||작은아버지(키가 큰 작은아버지) |- |||잔돈(많은 잔돈) |- |||뜬소문(돌아가는 뜬소문) |- |||들돌(내려놓은 들돌) |} ==제2장.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5항. 수는 아라비아수자로만 적는것을 원칙으로 하되 ≪천, 만, 억, 조≫ 등의 단위를 우리 글자로 달아줄적에는 그 단위에서 띄여쓰며 특별한 목적으로 순전히 우리 글자로만 적을 경우에는 ≪만, 억, 조≫ 등의 단위에서 띄여쓴다. :1) 아라비아수자로 적을 때에는 단의 자리로부터 세자리까지는 반점을 찍지 않고 붙여쓰며 그이상의 자리수에서는 세자리씩 올라가면서 반점(,)을 찍는다. :{| |례:||1)||93억 7천 258만 6천 365(9,372,586,365) |- | || ||93억 8만 365(9,300,080,365) |- | ||2)||구십삼억 칠천이백오십팔만 륙천삼백예순다섯(9,372,586,365) |- | || ||구십삼억 팔만 삼백예순다섯(9,300,080,365) |} 제6항. ≪수≫나 ≪여≫가 수사와 직접 어울려서 대략의 수량을 나타내는것은 붙여쓴다. {| |례:||수십, 수백만, 백여, 천여, 50여 |} :[붙임]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뒤에 온 ≪여≫도 붙여쓴다. :{| |례:||5년여, 3시간여 |} 제7항. 수사가 토 없이 완전명사와 어울린것은 띄여쓴다. {| |례:||두 공산주의자의 이야기 |- |||세 기술일군이 창안하였다. |- |||일곱 녀학생의 아름다운 행실 |} :그러나 련달아세여나갈 때의 단위로 될수 있는 ≪년, 월, 일, 시, 분, 초, 호, 차, 개, 번, 켤레, 마리, 톨, 알…≫ 등은 제3항에 준하여 앞 단위에 붙여쓴다. :{| |례:||일년, 이년, 삼년 |- |||1년, 2년, 3년 |- |||1966년 6월 22일 |- |||2시 39분 28초 |- |||5호 |- |||9차 |- |||서른켤레 |- |||다섯알 |} 제8항. 대명사는 불완전명사와 직접 어울린것만 붙여쓴다. {| |례:||이것, 그이, 저분, 무엇때문에, 누구것이나, |- |||이 책, 우리 나라, 우리 오빠, 내 조국, 내 만년필, 누구 가방 |} 제9항. 같은 수사나 대명사가 거듭되면서 강조하거나 여럿의 뜻을 나타내는것은 붙여쓴다. {| |례:||누구누구, 무엇무엇(뭣뭣), 하나하나 |} :[붙임] 같은 명사가 거듭되는것도 여기에 준한다. :{| |례:||구석구석(이), 집집(을), 가지가지(에) |} ==제3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10항. 동사나 형용사끼리 어울렸을 경우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이 한다. :1) 토가 붙은 동사나 형용사가 다른 동사나 형용사와 어울린것은 띄여씀을 원칙으로 한다. :{| |례:||가지고 오다, 가면서 말하다, 들어서 올린다, 붉게 타다, 깨끗하여 좋다 |} ::그러나 하나로 녹아붙은 아래와 같은것은 붙여쓴다. ::짜고들다, 먹고떨어지다 :2) ≪아, 어, 여≫형의 동사나 형용사가 다른 동사나 형용사와 직접 어울려서 동작, 상태 등을 나타내는것은 붙여쓴다. :{| |례:||(1)||돌아가다, 일어나다, 받아물다, 떠받다, 떠오르다, 퍼붓다, |- | || ||꺼내다, 약하여먹다, 분석하여가지다, 무거워보이다 |- |colspan="3"|≪아다, 어다, 여다≫형도 이에 준한다. |- | || ||올려다보다, 넘겨다보다 |- |||(2)||젊어가다, 견디여나다, 버티여내다, 쓸어버리다, 물어보다, |- ||| ||운동하여보다, 가르쳐주다, 웃어쌓다, 추동시켜쌓다, |- ||| ||써있다, 읽어내다, 돌아치다 |- |||(3)||다듬어지다, 벌어지다, 붉어지다, 보얘지다, 행복하여지다, |- ||| ||좋아지다, 반가워하다, 기뻐하다, 만족해하다 |} :3) ≪아, 어, 여≫형이 아닌 다른 형뒤에서도 보조적으로 쓰인 동사나 형용사는 붙여쓴다. :{| |례:||읽고있다, 읽는가싶다, 읽을가보다, 읽고싶다, 쓰다나니, 오고말고 |} :4) ≪아, 어, 여≫형의 동사나 형용사가 잇달아있을 경우에는 행동의 단위에 따라 아래와 같이 띄여쓴다. :{| |례:||기여넘어가 살펴보다 |- |||들어가 집어올리다 |} :5) 토 ≪나, 디…≫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동사나 형용사가 겹친것은 붙여쓴다. :{| |례:||기나긴, 크나큰, 다디단, 쓰디쓴 |} :6) ≪듯, 만, 번, 법, 사, 척, 체…≫가 붙은 동사나 형용사가 ≪하다≫와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 |례:||올듯하다, 들을만하다, 만날번했다, 갈법하다, 웃을사하다, 그럴사하다, 아는체하다 |} 제11항. 동사, 형용사가 명사, 부사와 어울린 경우의 띄여쓰기는 다음과 같기 한다. :1) 명사나 부사에 ≪하다, 되다, 시키다≫가 직접 붙은것은 붙여쓴다. :{| |례:||건설하다, 겨냥하다, 나무하다, 눈짓하다, 바느질하다, 세련되다, 련관되다, |- |||모순되다, 참되다, 일시키다 |- |||잘하다, 더하다, 못하다, 못되다, 방긋하다, 덜그럭덜그럭하다, 아니하다 |- |||공화국 청년된 영예 |} :2) 명사에 ≪지다≫가 직접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 |례:||값지다, 모지다, 살지다, 홑지다, 그늘지다, 굽이지다, 장마지다, 얼룩지다 |} :3) 명사에 ≪답다, 겹다, 맞다, 궂다, 적다, 어리다≫ 등이 직접 어울려서 형용사를 이루는것은 붙여쓴다. :{| |례:||꽃답다, 남자답다, 흥겹다, 눈물겹다, 능청맞다, 멋적다, 지성어리다, 피어리다 |} :4) 명사에 고유어로 된 동사가 직접 어울려서 동사나 형용사를 이루는것은 붙여쓴다. :{| |례:||가살부리다, 극성부리다, 심술피우다, 익살피우다, 방정떨다, 엄부럭떨다, 소리치다, |- |||활개치다, 굽이치다, 고동치다, 발벗고(나서다), 끝맺다, 시집가다, 맴돌다 |- |||빛나다, 유벌나다, 끝나다, 류다르다, 멋들어지다, 눈부시다, 감사납다, 길차다, |- |||힘차다, 낯익다, 눈멀다, 힘들다 |} ::[붙임] 그러나 문맥과 발음으로 보아 앞에 있는 명사에 붙은 토가 준것이 뚜렸할 경우에는 띄여쓴다. ::{| |례:||무슨 일(을) 할가? |- |||우리들의 정성(을) 담은 선물을 보냈다. |} 제12항. ≪앞, 뒤, 곱, 겹≫ 등이 접두사와 같이 되여 동사나 형용사와 어울린것은 붙여쓴다. {| |례:||앞서다, 뒤서다, 뒤늦다, 뒤떨어지다, 곱먹다, 겹쓰다 |} ==제4장. 관형사, 부사, 감동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13항. 관형사는 기본적으로 아래의 단어와 띄여쓴다.    례: 모든 책상, 여러 책, 온갖 문제, 새 규정책, 온 마을, 별의별 이야기,      별 이야기, 각 도서관, 여느 기술자들   그러나 어근이나 접두사로 된 다음과 같은 경우는 붙여쓴다.    례: 새해, 새살림, 새집, 새세계, 온종일, 전인민적, 각살림 제14항. 뜻이 비슷하거나 맞서는 부사를 겹쳐쓸 경우 또는 같은 부사를 잇달아쓸 경우는 붙여쓴다.    례: 가로세로, 더욱더, 모두다, 좀더, 서로서로, 이리저리, 이래저래,      거듭거듭, 고루고루, 더한층, 어슬렁어슬렁, 울긋불긋 [붙임] 그러나 명확히 끊기여발음되는 경우는 띄여쓴다.    례: 좀 더, 한층 더, 더구나 더 제15항. 두개이상의 말들이 합치여 한마디의 부사와 같이 된 경우는 붙여쓴다.    례: 간밤에, 이다음, 여러차례, 어느새, 요사이, 두고두고, 곧이곧대로 제16항. 감동사나 느낌을 나타내는 말마디를 잇대여쓸 경우는 소리내는 특성이나 그 뜻을 고려하여 따로 띄여쓴다.    례: 아아 아!   얼씨구 절씨구 얼싸 둥둥      아 아아!   얼씨구절씨구 얼싸둥둥 ==제5장. 섞갈리기 쉬운것들의 띄여쓰기== 제17항. ≪나, 니, 락, 다, 든, 쿵, 듯, 둥, 쑥, 숭…≫형의 동사, 형용사를 겹쳐쓸 경우는 붙여쓴다.    례: 가나오나, 자나깨나, 겯거니틀거니, 이러니저러니, 높으락낮으락, 들락날락,      이렇다저렇다, 왔다갔다, 이렇든저렇든, 이러쿵저러쿵, 죽을둥살둥,      들쑥날쑥, 씻은듯부신듯, 본숭만숭 제18항. 명사에 동사나 형용사가 어울려서 하나로 녹아붙은 아래와 같은것은 붙여쓴다.    례: 한결같다, 새벽같이, 번개같이, 쥐죽은듯이, 가뭇없이, 난데없이,      두말없이, 꼼짝없이, 할수없이, 할것없이, 다름아니라, 두말말고 제19항. 동사나 형용사끼리 어울려서 하나로 녹아붙은 아래와 같은것은 붙여쓴다.    례: 아닌게아니라, 덮어놓고, 듣다못해, 하다못해, 보아하니, 아니나다를가 제20항. 명사와 토 없이 직접 어울린 ≪너머≫, ≪따라≫는 붙여쓴다.    례: 산너머 외가집에 갔다.      오늘따라 바람이 세군. 제21항. 여러가지 문장부호나 기타 부호 다음에 오는 토는 그 부호뒤에 붙여쓴다.    례: ≪가≫에서 ≪ㅏ≫가 모음이다.      X는 모르는 수다. ==제6장. 특수한 말의 띄여쓰기== 제22항. 학술용어는 하나의 대상으로 묶어지는 덩이를 단위로 띄여쓴다.    례: 작은물병아리, 나도국수나무, 꿩의다리아재비 제23항. 아래와 같은 익은 한자어는 비록 자립적으로 쓰이는 단위로 갈라낼수 있는 경우라도 붙여쓴다.    례: 련전련승, 오십보백보, 대대손손, 동서남북 i3buroao4rvyvmbqkashbuflmoarttv 조선말 규범집 (1966년)/문장부호법 0 36106 390465 156550 2025-06-08T11:43:30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문장부호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문장부호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156550 wikitext text/x-wiki =문장부호법= ==총  칙== 1. 현대조선말의 문장부호는 문장들, 문장안의 각 단위들을 뜻과 기능에 따라 갈라주기 위하여 친다. 2. 이 문장부호법은 가로쓴 현대조선말의 글에서 쓴다.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 |.||점||≪ ≫||인용표 |- |:||두점||< >||거듭인용표 |- |;||반두점||( )||반달괄호 |- |,||반점||[ ]||꺾쇠괄호 |- |?||의문표||···||밑점 |- |!||감탄표||○○○||숨김표 |- | - ||이음표||〃||같음표 |- |―||풀이표||∼||물결표 |- |…||줄임표 |} ==제2항. 점(.) == 1) 문장이 끝났음을 보일 때 문장 끝의 오른편 아래쪽에 찍는다. 례: 우리는 영광스러운 로동당시대에 살고있다. 2) 략자나 준말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오른편 아래쪽에 찍는다. 례: 1945. 10. 10. :【붙임】달과 날의 수자를 합쳐서 이룬 명사에서는 그 수자사이에 찍는다. :례: 5.1절, 8.15, 6.6절, 3.8절 3) 대목이나 장, 절을 가르는 부호에 괄호나 동그라미가 없을적에 그 부호의 뒤에 찍는다. 례: I. 1. 3. ==제3항. 두점(:) == 1) 뒤에 설명을 보라는것을 밝히는 단어나 간단한 말마디 뒤에 찍는다. {| |례:||몰음: |- |||주의: |- |||비교: |- |||김옥희동무의 토론: |} 2) 한 문장이 대체로 끝나면서 뒤에 오는 말들이 앞 문장을 설명하거나 보충할 때에 그앞 문장의 끝에 찍을수 있다. {| |례:||장내는 바하흐로 흥성거렸다: 손님들이 밀려들고, 아이들이 뛰놀고, 풍악소리가 들리고 하면서… |- |||우리 공장에서는 여러 제품들을 만들고있다: 옷장, 책상, 걸상 등. |} ==제4항. 반두점(;) == 1) 앞 문장안에 이미 반점(,)으로 구분된 말이 여러개 잇달아있을 때 더 크게 묶어지는 단위가 있으면 그사이에 찍을수 있다. {| |례:||상점에는 무우, 배추, 시금치 등과 같은 남새; 물고기, 미역, 젓갈 등과 같은 갖가지 수산물; 그리고 여러가지 과실들이 차있다. |} 2) 북합문이나 아주 긴 문장에서 일부 단위가 반점(,)으로 끊어져있을 때에 더 큰 단위를 보이기 위하여 찍을수 있다. {| |례:||이들은 로동자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는데 많은 힘을 돌리였다. 로동자의 기능수준, 기업소의 발전전망, 생산의 장성속도 등을 고려하여 이 사업을 계획성있게 끌고나갔으며; 직종, 기능, 작업장 등의 조건을 잘 타산하여 기술작업반을 조직하여 잘 운영하였으며; 기능이 높고낮은 로동자를 잘 배합하여 개별전습을 잘하도록 하였다. |} ==제5항. 반점(,) == 1) 복합문에서 접속토가 없이 문장들이 이어질 때 단순문사이에 찍는다. {| |례:||나는 로동자, 너는 농장원. |} 2) 어떤 문장이나 말마디가 종결토로 끝났다 하더라도 뒤의 문장이나 말마디와 밀접히 련결되여있을적에는 그 종결토의 뒤에 찍는다. {| |례:||바람이 세다, 창문을 주의해라. |- |||오리라, 오리라, 통일의 그날은 반드시 오리라 |} 3) 죽 들어 말한 단어나 말마디들 사이를 갈라주기 위하여 찍는다. {| |례:||공장에서, 농장에서, 바다와 땅밑에서―어디서나 기적이 창조된다. |} 4) 문장의 첫머리나 가운데에 들어있는 호칭어, 삽입어, 감동어 같은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찍는다. {| |례:||순희야, 너 언제 왔느냐? |- |||우리는, 다시말하면, 계획을 앞당겨하려는 굳은 결심을 가진 우리는… |- |||아, 우리 조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5) 제시어에 찍는다. {| |례:||당, 그가 있음으로 하여 오늘의 천리마시대가 있다. |} 6) 문장성분의 차례를 바꾸어 한 부분을 특별히 힘주어나타낼 때에는 그 힘준 말뒤에 찍는다. {| |례:||나가자, 앞으로, 원쑤를 무찌르고. |} 7) 두개이상의 규정하는 말이 있을 때는 그사이에 찍을수 있다. {| |례:||한데 뭉친, 아무도 꺽을수 없는 인민의 힘 |- |||인민들의, 꺾을수 없는 힘 |} 8) 문장에서 단어들의 관계가 섞갈릴수 있을적에는 그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찍는다. {| |례:||가을은, 무덥고 찌고 숨막히는 여름 삼복때와는 달라서 하늘이 아주 맑다. |} ==제6항. 의문표(?) == 1) 물음을 나타내는 문장끝에 친다. {| |례:||사회주의건설에서 청년들이 할 임무는 무엇인가? |- |||기차가 도착하였어? |} :【붙임】그러나 의문토로 끝나는 모든 경우에 의문표(?)를 치는것은 아니다. :{| |례:||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 |||도대체, 그래, 이것이 이찌되였단 말인가! |} 2) 표현을 꾸미기 위하여 의문법을 리용한 문장에서도 친다. {| |례:||매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다음에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 |||내가 왜 이러고있을가? 빨리 가야지. |- |||우리들에게 예비가 있는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 3) 의심쩍거나 망서리게 됨을 나타낼 때 친다. {| |례:||김동무가 왔다? |- |||어떻게 할가? 이것도 가져갈가? |} ==제7항. 감탄표(!) == 1) 감탄의 뜻을 나타내는 문장끝에 친다. {| |례:||아, 금강산은 참말 아름답구나! |- |||여기에 한 당원의 투쟁의 력사가 아로새겨져있다! |- |||동무들, 돌격 앞으로! |- |||백전백승의 맑스-레닌주의기치 만세! |} 2) 호칭어, 감동어, 제시어들이 센 감동적어조를 가지고있을 때 그뒤에 친다. {| |례:||동지들과 벗들! 우리의 생활이 행복할수록 남녘땅형제들을 잊지 말자. |- |||천리마! 이것은 조선인민의 기상을 얼마나 잘 나타내고있는가. |} :【붙임】(1) 호칭어, 감동어, 제시어가 있는 문장의 마지막에 어떤 부호를 치는가 하는것은 제2항, 제6항 및 제7항 1)의 규정을 따른다. (2) 호칭어나 감동어가 겹치는 경우에는 느낌의 센 정도에 따라 알맞게 가려칠수 있다. {| |례:||┌ 동지들! 천리마기수들! |- |||└ 동지들, 천리마기수들! |- |||┌ 아! 참 좋구나! |- |||└ 아! 참 좋구나. |- |||┌ 어머니! 이걸 보세요. |- |||└ 어머니, 이걸 보세요! |} ==제8항. 이음표(-) == 두개이상의 단어가 어울리여 하나의 통일된 개념을 나타낼 때 친다. {| |례:||(1)||맑스-레닌주의 |- | || ||공업-농업국가 |- | ||(2)||굳은-넓은잎나무 |} ==제9항. 풀이표(―) == 1) 동격어뒤에 둔다. {| |례:||영광스러운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 | ||렬사들이 걸어온 길―혁명투쟁의 길은 빛나는 업적들로 가득차있다. |} :【붙임】제시어다음에는 반점(,)을 찍을수도 있고[제5항 5) 참조], 풀이표(―)를 둘수도 있다.. :{| |례:||우리 생활―그것은 곧 예술이다. |} 2) 같은 종류의 문장성분들과 그것에 대한 총괄어의 사이에 둔다. {| |례:||벼, 보리, 밀, 옥수수―이런 알곡들은… |- |||이런 알곡들―벼, 보리, 밀들은… |} 3) ≪에서―까지≫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쓴다. {| |례:||평양―신의주 |- |||10시―12시 |} 4) 서로 맞서는 관계를 나타낼 때 쓴다. {| |례:||사대―공대 축구시합 |} ==제10항. 줄임표(…) == 1) 문장의 일부가 줄어진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찍되 석점(…)을 찍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 |례:||그때 박동무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 |||저는 그때 그것을 알고있었습니다만… |- |||그래도 어떻게 그러걸… |} 2) 제목이나 차례의 뒤에 보충하는 설명을 붙일 때 쓸수 있다. 이때의 점의 수는 제한이 없다. {| |례:||머리말……………편집위원회 |- |||물리강좌…………박옥희 |} ==제11항. 인용표(≪ ≫, < >) == 1) 이미 이루어진 말이나 글을 따올 때는 그 문장의 앞뒤에 갈라친다. {| |례:||≪순희가 이겼지≫ 하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였다. |} 2) 어떤 말을 특별히 드러내서 나타낼적에 그것의 앞뒤에 갈라친다. {| |례:||≪전기화속도≫ |- |||≪서광≫(2부) |- |||≪승리58형≫ |} 3) ≪소위≫라는 뜻을 가지고 따온말마디의 앞뒤에도 갈라친다. {| |례:||미제는 ≪원조≫를 미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한다. |} 4) 인용표안에 또 다른 따온말이 있을 때는 거듭인용표(< >)를 둔다. {| |례:||≪우리는 <달리는 천리마에 또한번 박차를 가하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나아간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 ==제12항. 괄호(( ), []) == 1) 본문을 보충하기 위하여 붙인 말의 앞뒤에 갈라친다. {| |례:||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였다. (그해도 풍년이 들었었다.) 어머니는 내가 떠날 때… |} 2) 특별히 설명하는 말을 끼울 경우에 그 앞뒤에 갈라친다. {| |례:||박근숙동무(2중천리마기수이다.)는 오늘도 자기 계획을 넘쳐하였다. |} 3) 따온말의 나온 곳을 밝히는 말마디의 앞뒤에 갈라친다. {| |례:||≪조선로동당의 력사는 내외의 원쑤들을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온 력사이고 이 투쟁속에서 당원들, 전체 인민들을 굳게 단결시켜온 력시이며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개조하여온 력사이고 사회주의적기초우에서 민족 경제와 문화를 건설하여온 력사이다.≫(≪조선로동당력사교재≫, 조선로동당출판사, 1964년판, 519페지) |} 4) 괄호안에 또 다른 괄호가 있게 될 때에는 바깥것은 꺾쇠괄호([ ])로, 안의것은 반달괄호(( ))로 묶을수 있다. {| |례:||≪근대철학의 큰 기본문제는 존재에 대한 사유의 관계여하의 문제이다.≫[≪루드위히 프이에트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에프. 엥겔스), 조선로동당출판사, 1957년판, 25페지] |} 5) 제목이나 종목을 특별히 드러내놓기 위하여 꺾쇠괄호([ ])를 쓴다. {| |례:||[지리편] |- ||| 1. 면적 |- ||| 2. 인구 |} ==제13항. 밑점(···) == 문장안에서 특별히 중점을 두고 힘주어말하는 부분이나 읽는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한 부분에 찍되 점의 수는 글자의 수에 따른다. {| |례: |우리의 관심은 <ruby><rb>어디서</rb><rt>・・・</rt></ruby>, <ruby><rb>언제</rb><rt>・・</rt></ruby> 그리고 <ruby><rb>어떻게</rb><rt>・・・</rt></ruby><ref>원문에서는 점이 문자밑에 있음.</ref> 이 문제가 해결되는가에 있었다. |} :【붙임】힘주어말하는 부분을 드러내기 위하여서는 밑줄(   )이나 기타를 쓸수도 있다. ==제14항. 숨김표(○○○) == 문장에서 글자로 나타내고싶지 않을적에 그 글자 수만큼 두되 숨김표의 띄여쓰기도 숨긴말의 띄여쓰기에 따른다. {| |례:||○○명으로 조직된 우리 습격조는 ○○○방향의 ○○, ○○○을 향하여 떠났다. |} :【붙임】숨김표는 ≪□□□≫나 기타도 쓸수 있다. ==제15항. 같음표(〃) == 같은 말이나 같은 표현이 겹쳐나올 때 두번째부터의 그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쓸수 있다. {| |례:||제1작업반 반장 |- |||제2 〃  〃 |- |||제3 〃  부반장 |} ==제16항. 물결표(∼) == 1) ≪내지≫라는 뜻으로 쓰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은 마지막 수자에만 붙인다. {| |례:||5∼8월, 10∼12원, 100∼150명 |} 2) 단위가 되풀이되면서 그 일부를 줄일 때 쓴다 {| |례:||체육 |- |||∼가 |- |||∼하다 |} ==제17항. 인용표와 괄호 안에서의 부호== 1) 인용표나 괄호 안의 말이 문장인 경우는 거기에 문장으로서 필요한 부호를 친다. {| |례:||≪올해도 거름을 많이 냅시다! 50톤은 문제없습니다.≫라고 순희는 신이 나서 말한다. |- |||우리는 그때 몹시 긴장되여있었다.(상반년계획을 5월안으로 끝낼 작정이였다. 그리고 새로운 과업들이 더 있었던것이다.) |} 2) 인용표나 괄호 안의 말이 문장이 아닌 경우는 그것을 위한 아무 부호도 치지 않는다. {| |례:||다시한번 ≪평양속도≫를 창조하자! |- |||학생들(다섯사람)은 노래부르며 마을앞을 지나갔다. |} :그러나 인용표나 괄호 안의 말이 여러 마디일적에는 그것들사이에 구별하는 부호를 친다. :{| |례:||≪견주다, 겨누다, 겨루다≫는 소리가 비슷하나 뜻이 다른 딴 단어들이다. |- |||같이 있던 네사람(작업반장, 경숙동무, 태식아바이, 운전공)이 달려왔다. |} 3) 인용표안에 있는 문장의 끝에서 전체 문장도 끝나는 경우는 끝맺는 부호를 다음과 같이 친다. :(1) 인용표안의 문장과 천체로서의 문장이 같은 종류의 문장일적에는 인용표밖에만 해당한 부호를 친다. ::①다같이 서술문인 경우 ::{| |례:||우리는 참으로 ≪닫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 |} ::②다같이 의문문인 경우 ::{| |례:||속담에도 있다싶이 아무러면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 날가≫? |} ::③다같이 감탄문인 경우 ::{| |례:||동무들, 결의한대로 ≪금년과제를 당창건기념일안으로≫! |} :(2) 인용표안의 문장과 전체로서의 문장이 다른 종류의 문장일적에는 인용표의 안팎에 각각 해당한 부호를 친다. :{| |례:||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의 말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 |||아니, 벌써 ≪진달래꽃이 피였다.≫? |} 4) 괄호안의 말이 전체 문장의 끝에 있는 경우는 괄호뒤에 아무 부호도 치지 않는다. {| |례:||공든 탑이 무너지랴? (속담) |- |||우리는 몹시 기뻤다. (분기계획이 보름전에 끝났던것이다.) |}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 1) 제목글이 종결토로 끝난 서술문, 감탄문, 의문문인 경우는 문장의 끝에 해당한 부호를 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 |례:||우리는 이렇게 자랐다. |- |||꾸려놓으니 참 좋다! |} :그러나 특수한 출판물에서 특별히 큰 활자를 쓴 경우는 점(.)에 한하여 찍지 않을수 있다. 2) 신문, 잡지 등의 제목글이 명명문이거나 또는 종결토 없이 끝난 문장인 경우는 부호를 치지 않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 |례:||꽃피는 예술 |- |||창고장에 대한 이야기 |} :【붙임】그러나 특별히 감정의 색채를 뚜렷이하기 위하여 해당한 부호를 칠수도 있다.. :{| |례:||승리의 력사! |- |||제국주의자들의 ≪친선≫? |}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갈라가는 부호와 그 짜는 차례는 다음과 같이 통일하며 그 이름도 하나로 정하여 부른다. {| |Ⅰ, Ⅱ, Ⅲ………||로마수자 일, 이, 삼… |- |1, 2, 3…………||아라비아수자 일, 이, 삼… |- |1) 2) 3)…………||반괄호 일, 이, 삼… |- |(1) (2) (3)………||괄호 일, 이, 삼… |- |①②③……………||동그라미 일, 이, 삼… |} nxzsv6nufcyslhfiz0pyy33z3obzfxu 조선말 규범집 (1966년)/표준발음법 0 36107 390467 156176 2025-06-08T11:43:30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표준발음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표준발음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156176 wikitext text/x-wiki ==총  칙== 표준발음법은 현대조선말의 여러가지 발음들가운데서 조선말발달에 맞는것을 가려잡음을 원칙으로 한다. ==제1장. 모음의 발음== 제1항. 모음들이 일정한 자리에서 각각 길고 낮은 소리와 짧고 높은 소리의 차이가 있는것은 있는대로 발음한다. 례<ref>점은 원문에서는 문자 아래에 있음</ref>: {| class="wikitable" |- !짧고 높은 소리!!길고 낮은 소리 |- |<ruby><rb>밤</rb><rt>・</rt></ruby>(낮과 밤)||<u>밤</u>(밤과 대추) |- |<ruby><rb>사</rb><rt>・</rt></ruby>다(책을 사다)||<u>사</u>람 |- |<ruby><rb>곱</rb><rt>・</rt></ruby>다(손이 곱다)||<u>곱다</u>(꽃이 곱다) |} 제2항. ≪ㅢ≫는 겹모음으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3항. ≪ㅟ≫는 어떤 자리에서도 홑모음으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4항. 한자어에서 ≪ㄱ, ㄹ, ㅎ≫뒤에 있는 ≪ㅖ≫는 제대로 발음하지 않는다. 글에서 ≪계, 례, 혜≫로 되여있는것은 각각 [게, 레, 헤]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계속―[게속]||의례―[의레] |- |관계―[관게]||혜택―[헤택] |} ==제2장. 단어 첫머리의 발음== 제5항. ≪ㄹ≫은 모든 모음앞에서 [ㄹ]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class="wikitable" |론문||락하산||리론 |- |리||로||린 |- |라지오||로케트 |} 제6항. ≪ㄴ≫은 모은 모음앞에서 [ㄴ]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class="wikitable" |니탄||뇨소||니켈||뉴톤 |} ==제3장. 받침소리의 발음== 제7항. 우리 말의 받침소리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7개다. 제8항. 받침소리 [ㄹ]는 음절의 첫소리로 되는 [ㄹ]와는 달리 설측음으로 발음한다. :【붙임】그러나 다른 음절의 첫소리인 [ㅎ]가 뒤에 이어질 때는 모음앞에서 나는것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제9항. 받침자모와 받침소리의 호상관계는 다음과 같다. 1) 받침 ≪ㄲ, ㅋ, ㄳ, ㄺ≫의 받침소리는 [ㄱ]다. 례: {|class="wikitable" |밖―[박]||부엌―[부억] |- |몫―[목]||닭―[닥] |- |밝다―[받따] |} :【붙임】받침 ≪ㄺ≫은 그뒤에 토나 접사 ≪고, 기, 게…≫ 등이 올 때는 [ㄹ]로 발음할수 있다. :례: :{|class="wikitable" |밝고―[발꼬]||읽기―[일끼] |- |굵게―[굴께] |} 2) 받침 ≪ㅌ, ㅈ, ㅊ, ㅅ, ㅆ≫의 받침소리는 [ㄷ]다. 례: {|class="wikitable" |밭―[받]||젖―[젇] |- |꽃―[꼳]||옷―[옫] |- |있다―[읻따] |} 3) 받침 ≪ㅍ, ㅄ, ㄿ, ㄼ≫의 받침소리는 [ㅂ]다. 례: {|class="wikitable" |잎―[입]||값―[갑] |- |읊다―[읍따]||밟다―[밥따] |- |넓지―[넙찌] |} :【붙임】 :(1) 받침 ≪ㄼ≫은 그뒤에 토나 접사 ≪고, 기, 게…≫ 등이 올 때는 [ㄹ]로 발음할수 있다. :례: :{|class="wikitable" |밟고―[발꼬]||넓기―[널끼] |- |떫게―[떨께] |} :(2) ≪여덟≫만은 언제나 [여덜]로 발음한다. 4) 받침 ≪ㄾ, ㄽ, ㅀ≫의 받침소리는 [ㄹ]다. 례: {|class="wikitable" |훑다―[훌따]||돐―[돌] |- |옳다―[올타] |} 5) 받침 ≪ㄻ≫의 받침소리는 [ㅁ]다. 례: {|class="wikitable" |삶다―[삼따]||젊고―[점꼬] |} 6) 받침 ≪ㄵ, ㄶ≫의 받침소리는 [ㄴ]다. 례: {|class="wikitable" |앉다―[안따]||얹고―[언꼬] |- |많다―[만타]||많지―[만치] |} ==제4장. 받침이 뒤의 모음과 이어질 때의 발음== 제10항. 모음으로 시작한 토나 접미사의 앞에 있는 받침은 그 모음에 이어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먹이―[머기]||부엌에―[부어케] |- |깎으니―[까끄니]||받으면―[바드면] |- |밭에―[바테]||옷을―[오슬] |- |잊었다―[이젇따]||꽃이―[꼬치] |- |입에―[이베]||잎을―[이플] |- |손으로―[소느로]||몸에―[모메] |- |발을―[바를]||깊이―[기피] |- |삼발이―[삼바리] |} :【붙임】 :(1) 그러나 부름을 나타내는 토 ≪아≫앞에 있는 ≪ㅅ≫받침은 [ㄷ]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나의 벗아―[버다] |} :(2) 받침 ≪ㅎ≫과 관련되는 발음은 제17항의 규정을 따른다. :(3) 받침 ≪ㄷ, ㅌ≫뒤에 모음 ≪ㅣ≫가 오는 경우의 발음은 제23항의 규정을 따른다. 제11항. 한자어에서 모음앞에 있는 받침은 그 모음에 이어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rowspan="2"|1) |국영―[구경]||금요일―[그묘일] |- |일요일―[이료일]||절약―[저략] |- !rowspan="3"|2) |colspan="2"|3.1(삼일)―[사밀] |- |colspan="2"|8.15(팔일오)―[파리로] |- |colspan="2"|6.25(륙이오)―[류기오] |} 제12항. ≪아, 어, 오, 우, 애, 외≫로 시작한 고유어 어근의 앞에 있는 받침 ≪ㅋ, ㄲ, ㄳ, ㄺ≫, ≪ㅌ, ㅈ, ㅊ, ㅅ≫, ≪ㅍ, ㅄ≫은 받침소리 [ㄱ], [ㄷ], [ㅂ]로 끊어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부엌안―[부억안→부어간] |- |팥알―[팓알→파달] |- |옷안―[옫안→오단] |- |덧없다―[덛업따→더덥따] |- |값어치―[갑어치→가버치] |} 제13항. 모음으로 시작한 토나 접미사 앞에 있는 둘받침은 왼쪽 받침이 받침소리가 되고 오른쪽 받침은 뒤의 모음에 이어난다. 례: {|class="wikitable" |닭이―[달기]||없이―[업시→업씨] |- |읊어―[을퍼]||돐을―[돌슬→돌쓸] |- |얹으니―[언즈니]||삶아―[살마] |- |넋이―[넉시→넉씨]||훑어―[훌터] |- |밟아―[발바] |} :【붙임】 :(1) 둘받침 ≪ㄶ, ㅀ≫과 관련되는 발음은 제17항의 규정을 따른다. :(2) 둘받침 ≪ㄾ≫뒤에 ≪ㅣ≫가 오는 경우의 발음은 제23항의 규정을 따른다. ==제5장. 받침에 따라 그뒤의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내는 발음== 제14항. 토나 접미사의 첫머리에 온 순한소리는 용언의 어간의 끝소리 ≪ㄴ≫, ≪ㅁ≫에 이어낼 때 해당한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안다―[안따]||감다―[감따] |- |안고―[안꼬]||감겠다―[감껟따] |- |안지―[안찌]||감지―[감찌] |- |안기―[안끼]||감게―[감께] |} :【붙임】 :(1) 둘받침 ≪ㄻ, ㄵ≫으로 끝난 어간뒤에서도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옮다―[옴따]||앉기―[안끼] |- |옮겠다―[옴껟따] |} :(2) 그러나 접미사가 피동이나 사역의 뜻을 나타내는 ≪기≫일적에는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안기다―[안기다]||감기다―[감기다] |- |신기다―[신기다]||남기다―[남기다] |- |옮기다―[옴기다] |} 제15항. 한자어안에서는 ≪ㄹ≫받침뒤에 오는 순한 소리 ≪ㄷ, ㅅ, ㅈ≫을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발달―[발딸]||발전―[발쩐] |- |결승―[결씅] |} :【붙임】그러나 같은 한자가 겹처서 이루어진 한자어에서는 된소리로 내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절절하다―[절절∼] |} ==제6장. ≪ㅎ≫과 관련되는 발음== 제16항. 토나 접미사의 첫머리에 온 순한소리는 어간의 끝받침 ≪ㅎ, ㄶ, ㅀ≫뒤에서 ≪ㅎ≫과 어울리여 거센소리로 된다. 례: {|class="wikitable" |좋다―[조타]||많더라―[만터라] |- |좋고―[조코]||많기―[만키] |- |옳지―[올치]||옳겠다―[올켇따] |} 제17항. 어간끝의 ≪ㅎ≫은 모음으로 시작한 토나 접미사 앞에서 발음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닿아―[다아] |- |많으니―[만으니→마느니] |- |싫어―[실어→시러] |} 제18항. 음절의 첫소리 [ㅎ]는 모음이나 유향자음 뒤에서 약하게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마흔||아흐레||안해||열흘||일흔 |} 제19항. 어간끝의 ≪ㅎ≫은 ≪ㅅ≫이나 ≪ㄴ≫으로 시작한 토앞에서 [ㄷ]처럼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좋소―[졷쏘]||좋니―[졷니→존니] |} :【붙임】자모 ≪ㅎ≫의 이름 ≪히읗≫은 ≪히읏≫과 같이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히읗―[히읃]||히읗이―[히으시] |- |히읗을―[히으슬]||히읗에―[히으세] |- |히읗과―[히읃꽈] |} 제20항. 둘받침 ≪ㄶ≫이나 ≪ㅀ≫으로 끝나는 어간에 ≪ㅅ≫이나 ≪ㄴ≫으로 시작하는 토가 이어질 때의 발음은 다음과 같다. 례: {|class="wikitable" |많소―[만쏘]||옳소―[올쏘] |- |많네―[만네]||홇네―[올레] |} 제21항. 한 단어안에서 ≪ㄱ, ㄷ, ㅂ, ㅈ≫뒤에 ≪ㅎ≫이 올 때 그 ≪ㅎ≫은 각각 [ㅋ, ㅌ, ㅍ, ㅊ]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먹히다―[먹키다]||맏형―[맏텽] |- |역할―[역칼]||꽂이다―[꼳치다] |- |잡히다―[잡피다]||입학―[입팍] |- |대접하다―[대접파다] |} :【붙임】구개음으로 되는 현상에 대하여는 제23항을 보라. 제22항. 둘받침으로 끝난 형태부뒤에 접미사 ≪히≫가 올 때는 둘받침의 왼쪽 자모는 제대로 받침소리로 내고 오른쪽 자모는 ≪ㅎ≫과 합하여 해당한 거센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밝히다―[발키다]||밟히다―[발피다] |- |앉히다―[안치다] |} ==제7장. 동화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23항. 받침 ≪ㄷ, ㅌ, ㄾ≫뒤에 토나 접미사인 ≪이≫가 올 때 받침 ≪ㄷ, ㅌ≫은 그 ≪이≫와 어울려 각각 [지, 치]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굳이―[구지]||밭이―[바치] |- |붙이다―[부치다]||벼훑이―[벼훌치] |} 제24항. 받침소리 [ㄱ, ㄷ, ㅂ]뒤에 자음 [ㄴ, ㅁ, ㄹ]가 이어질 때는 다음과 같이 발음한다. :1) :{|class="wikitable" !colspan="2"|ㄱ+ㄴ→[ㅇ+ㄴ] |- |익는다―[잉는다]||닦네―[당네] |- !colspan="2"|ㄱ+ㅁ→[ㅇ+ㅁ] |- |적멸―[정멸]||먹물―[멍물] |- !colspan="2"|ㄱ+ㄹ→[ㅇ+ㄹ] |- |식료품―[싱료품]||격려―[경려] |} :2) :{|class="wikitable" !colspan="2"|ㄷ+ㄴ→[ㄴ+ㄴ] |- |받는다―[반는다]||있네―[인네] |- |웃느냐―[운느냐] |- !colspan="2"|ㄷ+ㅁ→[ㄴ+ㅁ] |- |밭모―[반모]||웃맵시―[운맵씨] |- |맏며느리―[만며느리] |} ::【붙임】≪ㄷ+ㅁ≫의 경우에 [ㅁ+ㅁ]로 발음하는것을 바른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겉모양―[건모양]||(검모양) |- |덧물―[던물]||(덤물) |} :3) :{|class="wikitable" !colspan="2"|ㅂ+ㄴ→[ㅁ+ㄴ] |- |집누에―[짐누에]||엎는다―[엄는다] |- !colspan="2"|ㅂ+ㅁ→[ㅁ+ㅁ] |- |밥물―[밤물] |- !ㅂ+ㄹ→[ㅁ+ㄹ] |- |법령―[범령] |} 제25항. 받침소리 [ㅂ, ㄷ]를 뒤에 온 [ㄱ, ㅂ]와 같아지게 발음하는것은 바른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그름!!그름 |- |밥그릇―(박그릇)||밭관개―(박관개) |- |엿보다―(엽보다)||돋보기―(돕보기) |} 제26항. 받침소리 [ㄴ, ㅁ]가 뒤에 온 자음 [ㄱ, ㄲ, ㅋ]를 닮아서 [ㅇ]로 되는것은 바른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그름!!그름 |- |안기다―(앙기다)||남기다―(낭기다) |- |온갖―(옹갇)||삼키다―(상키다) |- |산꼭대기―(상꼭때기)||참고―(창고) |- |손칼―(송칼)||감기―(강기) |} 제27항. 받침소리 [ㄴ]가 뒤에 온 자음 [ㅂ, ㅃ, ㅍ, ㅁ]를 닮아서 [ㅁ]로 되는것은 바른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그름!!그름 |- |선바위―(섬바위)||산뽕―(삼뽕) |- |산포도―(삼포도)||전보―(점보) |- |간병원―(감병원)||산마루―(삼마루) |- |원만―(웜만) |} 제28항 받침소리 [ㄹ]뒤에 자음 [ㄴ]가 왔거나 받침소리 [ㄴ]뒤에 자음 [ㄹ]가 올적에는 그 [ㄴ]는 [ㄹ]로 발음한다. 례: :1) :{|class="wikitable" |별나라―[별라라]||들놀이―[들로리] |- |칠남매―[칠람매]||할는지―[할른지] |} :2) :{|class="wikitable" |근로자―[글로자]||찬란―[찰란] |- |천리―[철리]||분류―[불류] |- |근래―[글래]||완료―[왈료] |} 제29항. 한자어에서 받침소리 [ㄴ]와 다음 음절의 첫소리 [ㄴ]가 이어질 때는 제대로 [ㄴㄴ]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class="wikitable" |안녕―[안녕]||신념―[신념] |- |안내―[안내] |} :【붙임】다음 단어들은 이미 그 발음이 굳어진대로 ≪ㄹㄹ≫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곤난―[골란]||한나산―[할라산] |} 제30항. ≪ㅏ, ㅓ, ㅗ, ㅜ≫가 그뒤의 음절에 있는 ≪ㅣ≫의 영향을 입어 [ㅐ, ㅔ, ㅚ, ㅟ]로 각각 변하는것은 바른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문화어로 결정되여 맞춤법에서 이미 고정된것은 여기에서 문제로 삼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잡히다―[잡피다]||(잽피다) |- |녹이다―[노기다]||(뇌기다) |- |먹이다―[머기다]||(메기다) |- |눕히다―[눕피다]||(뉩피다) |- |고기―[고기]||(괴기) |} ==제8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31항. 합성어(또는 접두사와 어근이 어울린 단어)의 앞 형태부가 자음으로 끝나고 둘째 형태부가 ≪이, 야, 여, 요, 유≫로 시작될 때는 그사이에서 [ㄴ]를 덧내여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밭일||물약 |- |부엌일||콩엿 |- |짓이기다||담요 |} 제32항. 합성어(또는 접두사와 어근이 어울린 단어)의 첫 형태부가 모음으로 끝나고 둘째 형태부가 ≪이, 야, 여, 요, 유≫로 시작될 때는 그사이에서 [ㄴㄴ]를 덧내여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바다일―[바단닐]||대잎―[댄닢] |- |수여우―[순녀우] |} 제33항. 앞 어근이 모음으로 끝나고 뒤 어근이 순한소리나 유향자음으로 시작한 합성어에서는 그 두 어근사이에서 받침소리 [ㄷ]를 덧내는것처럼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배전―[밷전→밷쩐] |- |배머리―[밷머리→밴머리] |- |가위밥―[가윋밥→가윋빱] |} 제34항. 합성어의 앞 어근이 유향자음으로 끝나고 뒤 어근의 첫소리가 순한소리일 때는 그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그믐달―[그믐딸] |- |손등―[손뜽] |} ==제9장. 한자어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한 단어를 이룰 때의 발음== 제35항. [ㄹ]첫소리를 가진 한자어앞에 [ㄴ]를 끝소리로 하는 접두사가 올 때는 그 [ㄹ]를 [ㄹ]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전력량―[전령량] |} 제36항. 끝소리가 [ㄴ]로 끝나는 한자어뒤에 [ㄹ]첫소리를 가지는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한 단어로 되였을 때는 그 [ㄹ]첫소리를 [ㄹ]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class="wikitable" |보관료―[보관료]||생산력―[생산력] |- |생산량―[생산량] |} ==제10장. 단어들이 어울릴 때의 발음== 제37항. 받침소리 [ㄱ, ㄷ, ㅂ]로 끝나는 앞 단어와 유향자음으로 시작하는 뒤 단어가 잇달아발음될 때는 앞 단어의 받침소리를 뒤 단어의 유향자음에 같아지는 방향으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밥 먹는다―[밤 멍는다] |- |옷 만든다―[온 만든다] |- |약 마신다―[양 마신다] |- |적극 노력한다―[적끙 노력칸다] |} :【붙임】뒤 단어의 첫소리가 순한소리인 경우에는 그것을 된소리로 내지 않는다. :비교: :{|class="wikitable" |막 들어온다―[막 드러온다] |- |막 떨어진다―[막 떠러진다] |} 제38항. 앞 단어가 받침으로 끝나고 뒤 단어의 첫소리가 [아, 어, 오, 우] 등일적에는 절음현상이 일어나게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옷우에―[옫우에] |- |팥 아홉키로―[팓아홉키로] |- |꽃잎우에―[꼰닙우에] |} 제39항. 앞 단어가 받침으로 끝나고 뒤 단어의 첫소리가 [이, 야, 여, 요, 유] 등일적에는 제31항에서와 같이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흙 이기다||한 일 |- |짚 열단||할 일 |- |옷 열벌 |} 제40항. 뒤 단어가 ≪있다≫인 경우에는 앞 단어의 끝소리가 [ㄱ, ㄷ, ㅂ] 등과 같은 자음이라 할지라도 절음현상이 일어나게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례: {|class="wikitable" |값있는―[갑인는] |- |옷 있는 곳―[옫인는곧] |- |부엌 있는쪽―[부억인는쪽] |} :【붙임】≪맛있다≫, ≪멋있다≫만은 [마싣다], [머싣다]로 발음하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41항. 규정형토 ≪ㄹ≫뒤에 순한소리로 시작하는, 자립어없는 단어가 오거나 토의 한부분이 올 때는 그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갈바―[갈빠]||갈데―[갈떼] |- |갈곳―[갈꼳]||갈것―[갈껃] |- |갈적―[갈쩍]||갈가?―[갈까] |- |갈수록―[갈쑤록]||갈지라도―[갈찌라도] |} 제42항. ≪열≫, ≪여덟≫ 뒤에 순한소리로 시작하는 명사가 올 때는 그 순한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한다. 례: {|class="wikitable" |열개―[열깨]||열단―[열딴] |- |여덟자―[여덜짜]||여덟벌―[여덜뻘] |- |열그릇―[열끄릇] |} ==제11장. 한자어에서의 된소리 발음== 제43항.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사이소리를 내여 발음한다. :1) ∼과(科, 課) :{|class="wikitable" |내과―[내꽈]||외과―[외꽈] |- |경리과―[경리꽈] |} :2) ∼가(價) :{|class="wikitable" |단가―[단까]||대가―[대까] |- |원가―[원까]||평가―[평까] |} :3) ∼적(的) :{|class="wikitable" |당적―[당쩍]||군적―[군쩍] |- |도적―[도쩍]||내적―[내쩍] |} :4) ∼권(券, 權) :{|class="wikitable" |려행권―[려행꿘]||관람권―[관람꿘] |- |생존권―[생존꿘]||인권―[인꿘] |} ::【붙임】≪권(卷)≫의 경우는 된소리로 발음하지 않는다. ::례: ::{|class="wikitable" !옳음!!그름 |- |일권―[일권]||(일꿘) |- |상권―[상권]||(상꿘) |- |하권―[하권]||(하꿘) |} :5) ∼법(法) :{|class="wikitable" |헌법―[헌뻡]||형법―[형뻡] |- |문법―[문뻡] |} :6) ∼점(點) :{|class="wikitable" |우점―[우쩜]||거점―[거쩜] |- |팔점―[팔쩜]||구점―[구쩜] |} :7) ∼건(件) :{|class="wikitable" |안건―[안껀]||사건―[사껀] |- |문건―[문껀] |} :8) 기타 :{|class="wikitable" |성과―[성꽈]||창고―[창꼬] |- |성격―[성껵]||조건―[조껀] |} pfzrsb6xsqkxp6nonae8h3noysrw192 청구영언 0 36388 390422 389402 2025-06-08T02:55:01Z ZornsLemon 15531 390422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청구영언 |다른 표기=靑丘永言 |저자=[[저자:김천택|김천택]] |설명= }} {{스캔으로 이동|[[색인: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 [[/서|청구영언서(靑丘永言序)]] - 정래교(鄭來僑) * [[/중대엽 북전|중대엽, 북전, 초삭대엽]] ** [[/초중대엽|초중대엽(初中大葉)]] ** [[/이중대엽|이중대엽(二中大葉)]] ** [[/삼중대엽|삼중대엽(三中大葉)]] ** [[/북전|북전(北殿)]] ** [[/이북전|이북전(二北殿)]] ** [[/초삭대엽|초삭대엽(初數大葉)]] * [[/이삭대엽|이삭대엽(二數大葉)]] ** [[/여말|여말(麗末)]] - 고려말 3명이 쓴 작품 6수 ** [[/본조|본조(本朝)]] - 조선조 41명이 쓴 작품 203수 ** [[/열성어제|열성어제(列聖御製)]] - 세 왕의 작품 5수 ** [[/여항육인|여항육인(閭巷六人)]] - 여항인 6명의 작품 65수 ** [[/규수삼인|규수삼인(閨秀三人)]] - 규수 3명의 작품 5수 ** [[/연대결고|연대결고(年代缺考)]] - 연대를 알 수 없는 3명의 작품 3수 ** [[/무명씨|무명씨(無名氏)]] -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 주제별 104수 * [[/삼삭대엽|삼삭대엽(三數大葉)]] * [[/낙시조|낙시조(樂時調)]] * [[/장진주사|장진주사(將進酒辭)]] * [[/맹상군가|맹상군가(孟嘗君歌)]] * [[/만횡청류|만횡청류(蔓橫淸類)]] * [[/후발|청구영언후발(靑丘永言後跋)]] - 마악노초(磨嶽老樵) 이정섭(李廷燮) {{PD-old-100}} hfse5tq4p7qc860n9u8vp7122sqt17q 조선말 규범집 (1987년)/맞춤법 0 37436 390475 334004 2025-06-08T11:43:31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87)/맞춤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87년)/맞춤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4004 wikitext text/x-wiki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1988).pdf" from="8" to="29" /> 7ermsq89lyr3ki040soq0uafns5xhu7 조선말 규범집 (1987년)/문화어발음법 0 37437 390479 334057 2025-06-08T11:43:32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87)/문화어발음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87년)/문화어발음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4057 wikitext text/x-wiki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1988).pdf" from=78 to=92 tosection="pronunciation" /> pgyij2xy22hexutwtyyrzkw4mz7dvdg 조선말 규범집 (1987년)/내려쓰기 0 37453 390471 334041 2025-06-08T11:43:31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87)/내려쓰기]]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87년)/내려쓰기]]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4041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필요}}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1988).pdf" from=92 to=92 onlysection="vertical" /> 6219vumpgyc1sxmmucvlzv33n8nv6s4 조선말 규범집 (2010년) 0 37454 390481 353157 2025-06-08T11:43:32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0)]]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0년)]]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53157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부제 = | 저자 = | 이전 = [[조선말 규범집 (1987)]] | 다음 = | 설명 = 2010년 제2차 개정판. }} ==차례== *[[/맞춤법|맞춤법]] **총칙 **제1장. 조선어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3장. 어간와 토의 적기 **제4장. 합친말의 적기 **제5장. 앞붙이와 말뿌리의 적기 **제6장. 말뿌리와 뒤붙이의 적기 **제7장. 한자말의 적기 *[[/띄여쓰기규정|띄여쓰기규정]] **총칙 **제1항. 토뒤의 단어나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는 띄여쓴다 **제2항. 하나의 대상이나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말마디들은 토가 끼이였거나 품사가 달라도 붙여쓴다 **제3항. 고유한 대상의 이름을 붙여쓰되 마디를 이루면서 잇달리는것은 매 마디마디 띄여쓴다 **제4항. 수사는 백, 천, 만, 억, 조단위로 띄여쓰며 수사뒤에 오는 단위명사와 일부 단어는 붙여쓴다 **제5항. 불완전명사(단위명사포함)는 앞단어에 붙여쓰되 그뒤에 오는 단어는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6항. 단어들사이의 맞물림관계를 고려하여 뜻을 리해하기 쉽게 띄여쓰기를 할수 있다 *[[/문장부호법|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우리 글에서 쓰는 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점(.) **제3항. 두점(:) **제4항. 반점(,) **제5항. 물음표(?) **제6항. 느낌표(!) **제7항. 이음표(-) **제8항. 풀이표(―) **제9항. 줄임표(…, ……, ………) **제10항. 인용표(《 》) **제11항. 거듭인용표(〈 〉) **제12항. 쌍괄호와 꺾쇠괄호(( ), [ ]) **제13항. 인용표와 쌍괄호안에서의 부호사용법 **제14항. 밑점(......) **제15항. 숨김표(×××, □□□, ○○○ 등) **제16항. 같음표(〃) **제17항. 물결표(~)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사용법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그 이름도 다음과 같이 통일하여 부르기로 한다.) *[[/문화어발음법|문화어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의 발음 **제2장. 첫소리자음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와 관련한 발음 **제4장. 받침의 이어내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5장. 받침에 끊어내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6장. 된소리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7장. 《ㅎ》과 어울린 거센소리되기현상과 관련되는 발음 **제8장. 닮기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9장. 소리끼우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10장. 약화 또는 빠지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조선글의 쓰기|조선글의 쓰기]]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bq0uoobhzkj434vk3npg4rwdmu8lvqa 390538 390481 2025-06-08T11:54:40Z Namoroka 1939 390538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 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조선말 규범집 (1987년)]] | 다음 = | 연도 = 2010 | 설명 = 2010년 제2차 개정판. }} {{보조 목차|1= *[[/맞춤법|맞춤법]] **총칙 **제1장. 조선어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부의 적기 **제3장. 어간와 토의 적기 **제4장. 합친말의 적기 **제5장. 앞붙이와 말뿌리의 적기 **제6장. 말뿌리와 뒤붙이의 적기 **제7장. 한자말의 적기 *[[/띄여쓰기규정|띄여쓰기규정]] **총칙 **제1항. 토뒤의 단어나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는 띄여쓴다 **제2항. 하나의 대상이나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말마디들은 토가 끼이였거나 품사가 달라도 붙여쓴다 **제3항. 고유한 대상의 이름을 붙여쓰되 마디를 이루면서 잇달리는것은 매 마디마디 띄여쓴다 **제4항. 수사는 백, 천, 만, 억, 조단위로 띄여쓰며 수사뒤에 오는 단위명사와 일부 단어는 붙여쓴다 **제5항. 불완전명사(단위명사포함)는 앞단어에 붙여쓰되 그뒤에 오는 단어는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6항. 단어들사이의 맞물림관계를 고려하여 뜻을 리해하기 쉽게 띄여쓰기를 할수 있다 *[[/문장부호법|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우리 글에서 쓰는 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점(.) **제3항. 두점(:) **제4항. 반점(,) **제5항. 물음표(?) **제6항. 느낌표(!) **제7항. 이음표(-) **제8항. 풀이표(―) **제9항. 줄임표(…, ……, ………) **제10항. 인용표(《 》) **제11항. 거듭인용표(〈 〉) **제12항. 쌍괄호와 꺾쇠괄호(( ), [ ]) **제13항. 인용표와 쌍괄호안에서의 부호사용법 **제14항. 밑점(......) **제15항. 숨김표(×××, □□□, ○○○ 등) **제16항. 같음표(〃) **제17항. 물결표(~) **제18항. 제목글에서의 부호사용법 **제19항. 대목이나 장, 절 등을 가르는 부호와 그 차례(그 이름도 다음과 같이 통일하여 부르기로 한다.) *[[/문화어발음법|문화어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의 발음 **제2장. 첫소리자음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와 관련한 발음 **제4장. 받침의 이어내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5장. 받침에 끊어내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6장. 된소리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7장. 《ㅎ》과 어울린 거센소리되기현상과 관련되는 발음 **제8장. 닮기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9장. 소리끼우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10장. 약화 또는 빠지기현상과 관련한 발음 *[[/조선글의 쓰기|조선글의 쓰기]] }} {{PD-KPGov}}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ke4io0hdinzpj6v6bo5k3aabqlqdilq 조선말 규범집 (2010년)/맞춤법 0 37455 390485 335937 2025-06-08T11:43:33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0)/맞춤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0년)/맞춤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5937 wikitext text/x-wiki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2010).pdf" from="2" to="22" /> ruuajj4gka2wb4nzk3tcet9c5my3ynp 조선말 규범집 (2010년)/띄여쓰기규정 0 37456 390483 335958 2025-06-08T11:43:33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0)/띄여쓰기규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0년)/띄여쓰기규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5958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필요}}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2010).pdf" from="23" to="27" /> 1ayicohs4fzgmv51j5me5ihtabjobz8 조선말 규범집 (2010년)/문화어발음법 0 37491 390489 335994 2025-06-08T11:43:34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0)/문화어발음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0년)/문화어발음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5994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필요}}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2010).pdf" from="45" to="57" /> c1xowc3cisjnjnhjkjbvok148qkya9z 조선말 규범집 (2010년)/조선글의 쓰기 0 37492 390491 335996 2025-06-08T11:43:34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0)/조선글의 쓰기]]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0년)/조선글의 쓰기]]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5996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필요}}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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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제7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조선말 맞춤법|조선말 맞춤법]] ***총칙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소 적기 ***제3장 어간과 토 적기 ***제4장 합성어 적기 ***제5장 접두사와 어근 적기 ***제6장 어근과 접미사 적기 ***제7장 한자어 적기 **[[/조선말 띄여쓰기|조선말 띄여쓰기]] ***총칙 ***제1장 명사,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2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3장 관형사, 부사, 감탄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기타 띄여쓰기 **[[/조선말 문장부호법|조선말 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마침표( . ) ***제3항 가운데점( ・ ) ***제4항 두점(:) ***제5항 반두점( ; ) ***제6항 빗금( / ) ***제7항 쉼표( , ) ***제8항 물음표( ? ) ***제9항 느낌표( ! ) ***제10항 이음표 ( - ) ***제11항 풀이표( ― ) ***제12항 줄임표( ・・・ ) ***제13항 인용표( "", '' ) ***제14항 서명표( 《》, 〈〉) ***제15항 몪음표(소괄호, 중괄호, 대괄호)( ( ), [ ], {} ) ***제16항 드러냄표( _ ) ***제17항 숨김표(○○○, ××× ) ***제18항 빠짐표( □□□ ) ***제19항 같음표( 〃 ) ***제20항 물결표 ( ~ ) ***제21항 인용표나 몪음표 안에서의 부호 ***제22항 제목에서의 부호 *조선말 어휘규범 **[[/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br>(1978년 12월 5일,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2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기존 어휘들에 대한 처리 ***제2장 새명사, 술어에 대한 처리 ***제3장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에 대한 처리 ***제4장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에 대한 처리 **[[/다듬은 말 처리세칙|다듬은 말 처리세칙]]<br>(1990년 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6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같게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제2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달리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방언어휘사정원칙|방언어휘사정원칙]]<br>(1990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7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대응되는 표준어휘가 없는 방언어휘에 대한 처리 ***제2장 대응되는 표준어휘가 있는 방언어휘에 대한 처리 **[[/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규범화원칙|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규범화원칙]]<br>(1981년 12월 13일,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4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기존 자연과학기술용어에 대한 처리 ***제2장 새 자연과학기술용어에 대한 처리 **[[/한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한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br>(1995년 8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9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1) 성모 ***2) 운모 **[[/〈외국어표기법〉통일안|〈외국어표기법〉통일안]]<br>(1990년 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6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1. 일본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2. 영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3. 독일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4. 로씨야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5. 프랑스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6. 이딸리아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7. 에스빠냐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외래어표기세칙|외래어표기세칙]]<br>(1990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7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지명표기세칙|지명표기세칙]]<br>(1997년,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10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1. 외국지명의 표기 ***2. 국내지명의 표기 **[[/외국인명의 조선말표기세칙|외국인명의 조선말표기세칙]]<br>(2001년 9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14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세칙|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세칙]]<br>(2000년 9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13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2007년-2015년 명사술어 통일안|2007년-2015년 명사술어 통일안]] **[[/악기의 조선어명칭|악기의 조선어명칭]]<br>(2012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24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1. 서양악기의 조선어명칭 ***2. 중국악기의 조선어명칭 *부록 **[[/부록1|부록 1: 한국과 조선의 맞춤법 합의안]] **[[/부록2|부록 2: 한국에서 규범화한 한자어, 일본어식 한자어 및 외래어]] ***부록 2-1: 한국에서 규범화한 한자어 ***부록 2-2: 한국에서 규범화한 일본어식 한자어 ***부록 2-3: 한국에서 규범화한 외래어 **[[/부록3|부록 3: 한국과 조선의 외래어 합의안]] **[[/부록4|부록 4: 한국과 조선의 띄여쓰기 합의안]] [[분류:한국어 어문 규정]] me2bmegdn6bhgfz1uz82kcea6iad1ox 390539 390493 2025-06-08T11:55:53Z Namoroka 1939 390539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조선말규범집 | 다른 표기 =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연도 = 2016 | 설명 = 연변교육출판사 출판. }} ==차례== *조선말 '4칙'규범 **[[/조선말 표준발음법|조선말 표준발음법]] ***총칙 ***제1장 모음 'ㅚ, ㅟ, ㅢ, ㅖ'의 발음 ***제2장 단어 첫머리의 자음 'ㄴ, ㄹ'의 발음 ***제3장 받침소리의 발음 ***제4장 된소리현상과 관련한 발음 ***제5장 'ㅎ'과 관련한 발음 ***제6장 동화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제7장 사이소리현상이 일어날 때의 발음 **[[/조선말 맞춤법|조선말 맞춤법]] ***총칙 ***제1장 자모의 차례와 그 이름 ***제2장 형태소 적기 ***제3장 어간과 토 적기 ***제4장 합성어 적기 ***제5장 접두사와 어근 적기 ***제6장 어근과 접미사 적기 ***제7장 한자어 적기 **[[/조선말 띄여쓰기|조선말 띄여쓰기]] ***총칙 ***제1장 명사, 수사, 대명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2장 동사, 형용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3장 관형사, 부사, 감탄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기타 띄여쓰기 **[[/조선말 문장부호법|조선말 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마침표( . ) ***제3항 가운데점( ・ ) ***제4항 두점(:) ***제5항 반두점( ; ) ***제6항 빗금( / ) ***제7항 쉼표( , ) ***제8항 물음표( ? ) ***제9항 느낌표( ! ) ***제10항 이음표 ( - ) ***제11항 풀이표( ― ) ***제12항 줄임표( ・・・ ) ***제13항 인용표( "", '' ) ***제14항 서명표( 《》, 〈〉) ***제15항 몪음표(소괄호, 중괄호, 대괄호)( ( ), [ ], {} ) ***제16항 드러냄표( _ ) ***제17항 숨김표(○○○, ××× ) ***제18항 빠짐표( □□□ ) ***제19항 같음표( 〃 ) ***제20항 물결표 ( ~ ) ***제21항 인용표나 몪음표 안에서의 부호 ***제22항 제목에서의 부호 *조선말 어휘규범 **[[/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br>(1978년 12월 5일,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2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기존 어휘들에 대한 처리 ***제2장 새명사, 술어에 대한 처리 ***제3장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에 대한 처리 ***제4장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에 대한 처리 **[[/다듬은 말 처리세칙|다듬은 말 처리세칙]]<br>(1990년 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6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같게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제2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달리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방언어휘사정원칙|방언어휘사정원칙]]<br>(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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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관형사, 부사, 감탄사와 관련한 띄여쓰기 ***제4장 기타 띄여쓰기 **[[/조선말 문장부호법|조선말 문장부호법]] ***총칙 ***제1항 문장부호의 종류와 이름 ***제2항 마침표( . ) ***제3항 가운데점( ・ ) ***제4항 두점(:) ***제5항 반두점( ; ) ***제6항 빗금( / ) ***제7항 쉼표( , ) ***제8항 물음표( ? ) ***제9항 느낌표( ! ) ***제10항 이음표 ( - ) ***제11항 풀이표( ― ) ***제12항 줄임표( ・・・ ) ***제13항 인용표( "", '' ) ***제14항 서명표( 《》, 〈〉) ***제15항 몪음표(소괄호, 중괄호, 대괄호)( ( ), [ ], {} ) ***제16항 드러냄표( _ ) ***제17항 숨김표(○○○, ××× ) ***제18항 빠짐표( □□□ ) ***제19항 같음표( 〃 ) ***제20항 물결표 ( ~ ) ***제21항 인용표나 몪음표 안에서의 부호 ***제22항 제목에서의 부호 *조선말 어휘규범 **[[/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br>(1978년 12월 5일,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2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기존 어휘들에 대한 처리 ***제2장 새명사, 술어에 대한 처리 ***제3장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에 대한 처리 ***제4장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에 대한 처리 **[[/다듬은 말 처리세칙|다듬은 말 처리세칙]]<br>(1990년 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6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같게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제2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달리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방언어휘사정원칙|방언어휘사정원칙]]<br>(1990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7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제1장 대응되는 표준어휘가 없는 방언어휘에 대한 처리 ***제2장 대응되는 표준어휘가 있는 방언어휘에 대한 처리 **[[/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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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526 wikitext text/x-wiki ==부록 1: 한국과 조선의 맞춤법 합의안== {| class="wikitable" !차례!!합의안!!한국!!조선!!회의!!비고 |- |1||가까워||가까워||가까와||9차||‘-워/-와’류 |- |2||가뜩가뜩이||가뜩가뜩이||가뜩가뜩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3||가뜩이||가뜩이||가뜩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4||가랑이||가랑니||가랑이||9차||니/이 |- |5||가루채, 가루체||가루체||가루채||16차|| |- |6||가르마||가르마||가리마||15차|| |- |7||가무라기, 가무레기||가무라기||가무레기||15차||‘가무레기’는 입말체로 뜻풀이 |- |8||가슴노리||가슴놀이||가슴노리||15차||-놀이/-노리 |- |9||가죽나무||가죽나무||가중나무||16차|| |- |10||가지더부살이||가지더부살이||가지더부사리||15차|| |- |11||각담, 객담||각담, 객담||각담||15차||뜻풀이는 ‘객담’에서 한다. |- |12||각성받이||각성바지||각성받이||12차|| |- |13||간, 칸||칸||간, 칸||15차||올림말에서 ‘간’과 ‘칸’을 인정하고 뜻풀이는 ‘칸’에서 한다. |- |14||간거리||간거리||간걸이||15차|| |- |15||간이||간니||간이||9차||니/이 |- |16||갈고리, 갈구리(의미를 구분하여)||갈고리||갈고리, 갈구리||15차||‘갈구리’는 입말체로 뜻풀이 |- |17||거퍼, 거푸||거푸||거퍼, 거푸||17차||‘거푸’는 기본 표제어이고 ‘거퍼’는 동의어 |- |18||개전, 개준||개전||개전, 개준||12차||改悛 |- |19||객적다||객쩍다||객적다||11차||-쩍다/-적다 |- |20||갱충적다||갱충쩍다||갱충적다||11차||-쩍다/-적다 |- |21||갹출||갹출||거출||12차||醵出 |- |22||걀쯤이||걀쯤이||걀쯤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23||거매지다||거메지다||거매지다||15차||ㅔ/ㅐ |- |24||거머리, 거마리||거머리||거마리||15차|| |- |25||거머멀쑥하다||거머멀쑥하다||거머멀숙하다||17차|| |- |26||거북이||거북이||거부기||16차|| |- |27||거적||거적||거적, 거저기||12차|| |- |28||거추장스럽다, 거치장스럽다||거추장스럽다||거치장스럽다||17차|| |- |29||거칠다||거칠다||거칠다, 거치르다||12차|| |- |30||건건찝찔하다||건건찝찔하다||건건찝질하다||15차|| |- |31||건너-||건너-, 건넌-, 건넛-||건너-, 건넌-||12차||사이시읏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론의한다.<br>용례: 건너방, 건너마을, 건너산, 건너편, 건너집 |- |32||걸죽하다||걸쭉하다||걸죽하다||12차||-쭉하다/-죽하다 |- |33||겹겹이||겹겹이||겹겹이, 겹겹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34||경정||경정||갱정||15차||更正, 更定 |- |35||계면쩍다||겸연쩍다, 계면쩍다||게면쩍다, 계면쩍다||15차|| |- |36||고독고독이||고독고독이||고독고독히||18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37||고마워||고마워||고마와||9차||‘-워/-와’류 |- |38||고만이||고만이||고마니||15차|| |- |39||고탑탑히||고탑탑히||고탑탑이||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40||꼬독꼬독이||꼬독꼬독이||꼬독꼬독히||18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41||곪기다||곰기다||곪기다||11차|| |- |42||곰곰이||곰곰이||곰곰히||11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43||곱배기||곱빼기||곱배기||11차||빼기/박이/배기 |- |44||관자노리||관자놀이||관자노리||15차||-놀이/-노리 |- |45||괴로워||괴로워||괴로와||9차||‘-워/-와’류 |- |46||구둑구둑이||구둑구둑이||구둑구둑히||18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47||구슬붕이, 구슬봉이||구슬붕이||구슬봉이||18차||모두 인정 |- |48||궁냥||궁량||궁냥||18차|| |- |49||귀동이, 귀둥이||귀둥이||귀동이||12차||‘-동이, -둥이’ 복수 인정 |- |50||귀류법, 귀유법||귀류법||귀유법||15차||歸謬法 |- |51||귀밑때기||귀밑때기||귀밑대기||13차||~때기/~대기 |- |52||귀살머리적다||귀살머리쩍다||귀살머리적다||11차||-쩍다/-적다 |- |53||귀살적다||귀살쩍다||귀살적다||11차||-쩍다/-적다 |- |54||그그러께, 그끄러께||그끄러께||그그러께, 그끄러께||11차||모두 인정 |- |55||그그저께, 그끄저께||그끄저께||그그저께, 그끄저께||11차||모두 인정 |- |56||그그제, 그끄제||그끄제||그그제, 그끄제||11차||모두 인정 |- |57||그뜩그뜩이||그뜩그뜩이||그뜩그뜩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58||그뜩이||그뜩이||그뜩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59||그럴사하다||그럴싸하다||그럴사하다||12차||-싸하다/-사하다 |- |60||그윽히||그윽이||그윽히||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61||근근이||근근이||근근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62||근원둥이||근원둥이||근원동이||12차||-둥이 |- |63||금이||금니||금이||9차||니/이 |- |64||기다랗다, 길다랗다||기다랗다||기다랗다, 길다랗다||15차||모두 인정 |- |65||길금||기름||길금||16차||엿길금 |- |66||길죽길죽||길쭉길쭉||길죽길죽||12차||-쭉하다/-죽하다 |- |67||길죽스름하다||길쭉스름하다||길죽스름하다||12차||-쭉하다/-죽하다 |- |68||길죽하다||길쭉하다||길죽하다||12차||-쭉하다/-죽하다 |- |69||길직길직하다||길찍길찍하다||길직길직하다||12차||-찍하다/-직하다 |- |70||길직하다||길찍하다||길직하다||12차||-찍하다/-직하다 |- |71||길쯤이||길쯤이||길쯤히||12차||‘-이/-히’에서 ‘-이’로 하는 부류 |- |72||-깔||-깔||-갈||11차||-깔/-갈<br>용례: 맛깔, 빛깔, 색깔 |- |73||깜찍하다||깜찍하다||깜직하다||14차||조선에 ‘깜직하다’가 없음 |- |74||‘깨끗찮다’는 올림말에서 제외하고 뜻풀이에서 줄어든 형태는 쓰지 않는다.(13차)<br>올림말에서 선정이 되면 다시 론의한다.(15차)||깨끗잖다||깨끗찮다||13차<br>15차||‘하’의 줄어듦 |- |75||-깨나||-깨나||-개나||11차||《조대》의 ‘개04’ 두번째 반달내용을 삭제한다.<br>용례: 돈깨나, 욕깨나 |- |76||꺼매지다||꺼메지다||꺼매지다||15차||ㅔ/ㅐ |- |77||꼬끼요||꼬끼오||꼬끼요||13차|| |- |78||꼬마둥이||꼬마둥이||꼬마동이||12차||-둥이/-동이 |- |79||꽃받이||꽃바지||꽃받이||12차|| |- |80||끼다, 끼우다||끼우다||끼다, 끼우다||13차||사동접미사 ‘-우-’가 탈락한 형태<br>끼다: ‘끼우다’의 준말 |- |81||나가뒹굴다||x||나가딩굴다||17차|| |- |82||나뒹굴다||나뒹굴다||나딩굴다||17차|| |- |83||나무때기||나무때기||나무대기, 나무때기||15차|| |- |84||나붓기다||나부끼다||나붓기다||12차|| |- |85||‘나쎄’는 올리지 않고 사이시읏표기에 대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낫세’와 ‘나세’ 중에서 선택한다.||나쎄||나세||14차|| |- |86||날자, 날짜||날짜||날자||15차||모두 인정 |- |87||남비, 냄비||냄비||남비||15차|| |- |88||내리뒹굴다||x||내리딩굴다||17차|| |- |89||냥돈사||양돈사||냥돈사||17차|| |- |90||냥초||양초||냥초||17차|| |- |91||내노라하다, 내로라하다(의미를 구분하여)||내로라하다||내노라하다||15차||‘내노라하다’는 입말체로 뜻풀이 |- |92||너끈하다||너끈하다||넉근하다||18차|| |- |93||넋두리||넋두리||넉두리||11차|| |- |94||널따랗다, 넓다랗다||널따랗다||널다랗다, 넓다랗다||16차||‘널따랗다, 넓다랗다’를 의미를 구분하여 복수 표기로 인정하되 ‘널따랗다’는 ‘너르다’에서, ‘넓다랗다’는 ‘넓다’에서 파생된 말로 본다. |- |95||널부러지다||널브러지다||널부러지다||17차|| |- |96||널빤지, 널판지||널빤지||널판지||15차||모두 인정 |- |97||널직널직||널찍널찍||널직널직||12차||-찍하다/-직하다 |- |98||널직널직하다||널찍널찍하다||널직널직하다||12차||-찍하다/-직하다 |- |99||널직하다, 넓직하다(의미를 구분하여)||널찍하다||널직하다||11차<br>12차||넓직하다(11차), 널직하다(12차)<br>‘널직하다’는 ‘너르다’에, ‘넓직하다’는 ‘넓다’에 ‘-직하다’가 결합하여 파생된 말로 본다. |- |100||널판대기||널판때기||널판대기||11차||~때기/~대기 |- |101||넓적하다||넓적하다||넙적하다||11차||‘넓다’의 의미일 때만 ‘넓적하다’이고 ‘대답을 넙적하다’는 그대로 ‘넙적하다’이다.<br>용례: 넓적넓적하다, 둥글넓적하다 |- |102||넓죽하다||넓죽하다||넙죽하다||11차||‘넓다’의 의미일 때만 ‘넓죽하다’이고 ‘대답을 넙죽하다’는 그대로 ‘넙죽하다’이다.<br>용례: 넓죽넓죽하다, 넓죽이 |- |103||-노라면, -느라면(의미를 구분하여)||-노라면||-노라면, -느라면||17차|| |- |104||노랑이, 노랭이(의미를 구분하여)||노랑이||노랑이, 노랭이||11차||노랑이: 색깔. 노랭이: 린색한 사람을 비유한 것. |- |105||어느 부위나 언저리를 의미할 때는 ‘-노리’로 쓰고 ‘맥놀이’는 ‘-놀이’로 쓴다.||-놀이||-노리||15차||-놀이/-노리<br>용례: 가슴노리, 관자노리, 어깨노리, 맥놀이 |- |106||노량, 놀량||노량||놀량||18차||‘노량’은 부사만, ‘놀량’은 명사만 인정. |- |107||노른자위, 노란자위||노른자위||노란자위||18차||모두 인정 |- |108||노치||노티||노치||12차|| |- |109||녹말, 농마||녹말||농마||18차||모두 인정 |- |110||논고||논꼬||논고||11차||-꼬/-고<br>용례: 물고 |- |111||놋좆, 노젖||놋좆||노젖||18차||모두 인정 |- |112||누래(서)||누레(서)||누래(서)||9차||ㅔ/ㅐ |- |113||눈섭, 눈썹||눈썹||눈섭||12차||모두 인정 |- |114||느직느직히||느직느직이||느직느직히||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115||늘리다, 늘이다(의미를 구분하여)||늘리다, 늘이다||늘이다||13차||늘리다: ‘늘다’의 사동사. 늘이다: 본디 보다 더 길게 하다. |- |116||늦둥이||늦둥이||늦동이||12차||-둥이/-동이 |- |117||닐리리, 늴리리||늴리리||닐리리||12차||모두 인정 |- |118||-다마다, -다 말다||-다마다||-다 말다||9차||모두 인정 |- |119||-다시피||-다시피||-다싶이||12차||‘-다시피’만을 올림말로 인정하고 뜻풀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 |120||달걀, 닭알||달걀||닭알||11차||모두 인정 |- |121||더욱이||더욱이||더우기||11차|| |- |122||더펄이||더펄이||더퍼리||11차|| |- |123||덧이||덧니||덧이||9차||니/이 |- |124||도리어||도리어||도리여||15차||-어/-여 |- |125||돋우||도두||돋우||11차|| |- |126||돌, 돐(의미를 구분하여)||돌||돌, 돐||11차|| |- |127||돌겻||돌꼇||돌겻||12차|| |- |128||1.‘되어/되여’를 복수로 인정하되 뜻풀이에서는 ‘되여’를 사용하고 ‘되다’의 활용정보는 ‘되어, 되여’를 모두 제시한다.<br>2. 나머지의 경우도 복수로 인정하되 뜻풀이에서는 ‘-어’를 사용한다.||되어||되여||14차||어미 ‘-어/-여’<br>☞ 참고:<br>한국 현행 규범: 어간의 끝음절 모음이 ‘ㅏ, ㅗ’일 때에는 어미를 ‘-아’로 적고 그 밖의 모음일 때에는 ‘-어’로 적는다.<br>조선 현행 규범: 말줄기의 모음이 ‘ㅣ, ㅐ, ㅔ, ㅚ, ㅟ, ㅢ’인 경우와 줄기가 ‘하’인 경우에는 ‘여, 였’으로 적는다. 그러나 말줄기의 끝소리마디에 받침이 있을 때에는 ‘어, 었’으로 적는다. |- |129||둑, 뚝||둑||둑, 뚝||16차|| |- |130||-둥이||-둥이||-동이, -둥이||15차||단, ‘귀둥이/귀동이, 선둥이/선동이, 해방둥이/해방동이, 후둥이/후동이’만 복수를 인정한다. ‘전쟁동이, 행복동이’는 올림말로 올리지 않는다.<br>용례: 근원둥이, 꼬마둥이, 늦둥이, 막내둥이, 막둥이, 쉰둥이, 쌍둥이, 약둥이, 업둥이, 외둥이, 육삭둥이/륙삭둥이, 칠삭둥이, 팔삭둥이 |- |131||뒤꼍||뒤꼍||뒤곁||16차|| |- |132||뒤치닥거리||뒤치다꺼리||뒤치닥거리||11차|| |- |133||뒹굴다, 딩굴다(의미를 구분하여)||뒹굴다||뒹굴다, 딩굴다||17차||뒹굴다: 누워서 이리저리 구르다. 딩굴다: 우의 뜻 제외한 나머지 뜻.<br>용례: 나뒹굴다, 나가뒹굴다, 내리뒹굴다 |- |134||드디어||드디어||드디여||15차||-어/-여 |- |135||드레(박)||두레(박)||드레(박)||16차|| |- |136||따개비, 딱개비||따개비||따깨비, 딱개비||17차||삼각따개비/삼각딱개비→삼각따개비<br>흰줄따깨비→흰줄딱개비 |- |137||~때기, ~대기||~때기, ~대기||~때기, ~대기||13차||‘상판대기, 판대기, 옆대기, 코판대기’는 ‘~대기’로 하고 그 외의 경우에는 모두 ‘~때기’로 한다.<br>사전에는 ‘~때기’와 ‘~대기’로 올린다.<br>용례: 귀밑때기, 널판대기, 상판대기, 코판대기, 판대기, 옆대기 |- |138||때죽나무||때죽나무||때쭉나무||16차|| |- |139||뚝뚝히||뚝뚝이||뚝뚝히||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140||-뜨리다, -트리다||-뜨리다, -트리다||-뜨리다||13차|| |- |141||-(ㄹ)사하다||-(ㄹ)싸하다||-(ㄹ)사하다, -(ㄹ)싸하다||12차||-싸하다/-사하다<br>용례: 그럴사하다, 맵사하다, 머절사하다, 오도발사하다, 골사하다, 얼사하다 |- |142||올림말에서 선정이 되면 다시 론의한다.||마뜩찮다||마뜩잖다||15차||‘하’의 줄어듦 |- |143||마상이, 매생이||마상이||매생이||18차||모두 인정 |- |144||막내둥이||막내둥이||막내동이||12차||-둥이/-동이 |- |145||막둥이||막둥이||막동이||12차||-둥이/-동이 |- |146||만끽||만끽||만긱||15차||滿喫 |- |147||맛깔||맛깔||맛갈||11차||-깔/-갈<br>용례: 빛깔, 색깔 |- |148||매워||매워||매와||9차||‘-워/-와’류 |- |149||맥놀이||맥놀이||맥노리||15차||-놀이/-노리 |- |150||맥맥히||맥맥이||맥맥히01||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151||맥적다||맥쩍다||맥적다||11차||-쩍다/-적다 |- |152||맨드라미, 맨드래미||맨드라미||맨드라미, 맨드래미||15차|| |- |153||맵사하다||맵싸하다||맵사하다||15차|| |- |154||머지않다, 멀지 않다||머지않다||멀지 않다||15차||올림말에서 시간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의미로 ‘머지않다’를 인정하고 ‘멀지 않다’도 시간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의미로 쓸 수 있다. |- |155||먹이다, 메기다(의미를 구분하여)||먹이다, 메기다||먹이다||15차|| |- |156||멋적다||멋쩍다||멋적다||11차||-쩍다/-적다 |- |157||무, 무우||무||무, 무우||15차||무: ‘무우’의 준말 |- |158||무뚝뚝히||무뚝뚝이||무뚝뚝히||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159||무리꾸럭||무리꾸럭||무리꾸럭, 물이꾸럭||13차|| |- |160||물고||물꼬||물고||11차||-꼬/-고<br>용례: 논고 |- |161||물매미||물맴이||물매미||16차|| |- |162||미나리깡||미나리꽝||미나리깡||15차||겹모음/홑모음 |- |163||미얄||미얄||미알||18차|| |- |164||민츨하다||민출하다||민츨하다||16차|| |- |165||-바리||-바리||-바리, -발이||12차||-바리/-발이<br>용례: 악바리, 약바리 |- |166||바틈하다||x||바툼하다||15차|| |- |167||-박이, -배기||-박이||-배기||12차||이리박이/이리배기, 토박이/토배기, 본토박이/본토배기, 외톨박이/외톨배기, 쌍열박이/쌍알배기/쌍대배기 |- |168||-받이||-바지||-받이||12차||남북이 똑같이 쓰던 ‘성바지’도‘성받이’로 한다.<br>용례: 각성받이, 꽃받이, 언덕받이, 타성받이, 딴성받이, 큰성받이, 성받이 |- |169||발작, 발짝(의미를 구분하여)||발짝||발작||11차||발짝: 단위명사. 발작: ‘발자국’의 준말 |- |170||발췌, 발취||발췌||발췌, 발취||12차||拔萃 |- |171||밥배기||밥빼기||밥배기||11차||빼기/박이/배기 |- |172||-배기||-빼기||-배기||12차||빼기/박이/배기<br>‘-빼기, -배기’는 ‘-배기’<br>용례: 악착배기, 앍둑배기, 앍작배기, 앍족배기, 억척배기, 얽둑배기, 얼룩배기, 외줄배기, 과녁배기, 곱배기, 밥배기 |- |173||-벌, -뻘||-뻘03||벌07||12차||-뻘/-벌<br>용례: 조카벌/조카뻘, 삼촌벌/삼촌뻘 |- |174||벌이다||벌이다||벌리다④⑤⑥, 벌이다||15차|| |- |175||벗어부치다||벗어부치다||벗어붙이다||15차|| |- |176||벚나무, 벚꽃||벚나무, 벚꽃||벗나무, 벗꽃||16차|| |- |177||벼씨, 볍씨||볍씨||벼씨||9차||뜻풀이 어휘 선정은 추후 론의 |- |178||별미적다||별미쩍다||별미적다||11차||-쩍다/-적다 |- |179||병조림, 병졸임||병조림||병졸임||18차||모두 인정 |- |180||본토박이, 본토배기||본토박이||본토배기||12차||빼기/박이/배기<br>‘-박이, -배기’는 복수 인정 |- |181||볼따귀, 볼때기||볼때기||볼따귀, 볼때기||15차|| |- |182||부나비, 불나비||부나비, 불나비||부나비||11차||모두 인정<br>용례: 부나방, 불나방 |- |183||부치다(파생적 의미)||부치다||붙이다||17차||《조대》에서 ‘붙이다’④⑤⑥의 의미일 때 ‘부치다’로 적음. |- |184||비게||비계||비게||15차||ㅖ/ㅔ |- |185||비짜루(식물명)||비짜루||비자루||17차|| |- |186||빛깔||빛깔||빛갈||11차||-깔/-갈<br>용례: 맛깔, 색깔 |- |187||빼곡히||빼곡히||빼곡이||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188||빼꼭히||빼꼭히||빼꼭이||12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189||뼘, 뽐||뼘02||뽐01||14차||겹모음/홑모음 |- |190||뽀두라지, 뾰두라지||뾰두라지||뽀두라지||14차||겹모음/홑모음 |- |191||사글세||사글세||사글세, 삭월세||15차|| |- |192||사랑이||사랑니||사랑이||9차||니/이 |- |193||살살이||살살이||살사리||11차|| |- |194||살쾡이||살쾡이||살괭이||15차|| |- |195||삼각따개비||삼각따개비||삼각딱개비||17차|| |- |196||상판대기||상판때기||상판대기||13차|| |- |197||색깔||색깔||색갈||11차||-깔/-갈<br>용례: 맛깔, 빛깔 |- |198||섞박지||섞박지||석박지||17차|| |- |199||선동이, 선둥이||선둥이||선동이||12차||‘-동이, -둥이’ 복수 인정 |- |200||섣부르다||섣부르다||서뿌르다||11차||‘ㄷ’받침 표기 |- |201||설거지||설거지||설겆이||12차||설거지물 |- |202||설움, 설음||설움||설음||11차||모두 인정 |- |203||섭쓸리다||섭슬리다||섭쓸리다||11차|| |- |204||성받이||성바지||성바지||12차|| |- |205||소고기, 쇠고기||소고기, 쇠고기||소고기||11차||모두 인정<br>용례: 소가죽, 쇠가죽 |- |206||소리넓이, 소리너비(의미를 구분하여)||소리넓이||소리너비||15차||소리넓이: 음역. 소리너비: 음폭 |- |207||손벽, 손뼉||손뼉||손벽||12차||모두 인정 |- |208||손짭손||손짭손||손잡손||15차|| |- |209||송곳이||송곳니||송곳이||9차||니/이 |- |210||수개, 수캐||수캐||수개||9차||뜻풀이 어휘 선정은 추후 론의<br>용례: 수강아지/수캉아지, 수기와/수키와, 수닭/수탉, 수돌쩌귀/수톨쩌귀, 수돼지/수퇘지, 수병아리/수평아리 |- |211||숨바꼭질||숨바꼭질||숨박곡질||15차|| |- |212||쉰둥이||쉰둥이||쉰동이||12차||-둥이/-동이 |- |213||-스러운||-스러운||-스러운, -스런||13차|| |- |214||슬다, 쓸다||슬다||쓸다||18차||모두 인정 |- |215||시라소니||스라소니||시라소니||17차|| |- |216||싸라기, 싸래기||싸라기||싸래기||11차||‘ㅣ’모음 역행동화류<br>용례: 지푸라기/지푸래기, 할아비/할애비, 검부러기/검부레기, 구덩이/구뎅이 |- |217||쌍대배기||x||쌍대배기||12차||빼기/박이/배기<br>‘-박이, -배기’는 복수 인정 |- |218||쌍둥이||쌍둥이||쌍동이, 쌍둥이||12차||-둥이/-동이 |- |219||쌍알박이, 쌍알배기||쌍알박이||쌍알배기||12차||빼기/박이/배기<br>‘-박이, -배기’는 복수 인정 |- |220||아낙군수||아낙군수||안악군수||12차|| |- |221||아내, 안해||아내||안해||12차||모두 인정 |- |222||뜻풀이에서는 줄어들지 않은 본래의 형태를 쓴다.||아녜요||안예요||13차||본래의 형태는 ‘아니에요’로 한다. |- |223||아름다워||아름다워||아름다와||9차||‘-워/-와’류 |- |224||아릿답다||아리땁다||아릿답다||11차|| |- |225||‘아무렇다’의 준말로 인정||x||아뭏다||11차||‘아무튼, 아무튼지’를 부사로 인정한다. |- |226||아무튼||아무튼||아뭏든, 아무튼||9차||‘하’의 줄어듦 |- |227||악바리||악바리||악바리, 악발이||12차||-바리/-발이 |- |228||악착배기||악착빼기||악착배기||12차|| |- |229||안간힘||안간힘||안깐힘||12차|| |- |230||안다미||안다미, 안담||안담||17차|| |- |231||안뒤꼍||안뒤꼍||안뒤곁||16차|| |- |232||안스럽다||안쓰럽다||안스럽다||12차|| |- |233||알력, 알륵||알력||알륵||12차||軋轢 |- |234||앍둑배기||앍둑빼기||앍둑배기||12차|| |- |235||앍작배기||앍작빼기||앍작배기||12차|| |- |236||앍족배기||앍족빼기||앍족배기||12차|| |- |237||암닭, 암탉||암탉||암닭||9차||뜻풀이 어휘 선정은 추후 론의<br>용례: 암강아지/암캉아지, 암기와/암키와, 암개/암캐, 암돌쩌귀/암톨쩌귀, 암돼지/암퇘지, 암병아리/암평아리 |- |238||앞꼍||x||앞곁||16차|| |- |239||앞이||앞니||앞이||9차||니/이 |- |240||애되다, 앳되다||앳되다||애되다||11차||모두 인정 |- |241||약둥이||약둥이||약동이||12차||-둥이/-동이 |- |242||약바리||약빠리||약발이||12차||-바리/-발이 |- |243||얄따랗다||얄따랗다||얇다랗다||16차|| |- |244||어구, 어귀(의미를 구분하여)||어귀||어구, 어귀||15차||어구: 어떤 때나 철에 접어드는 첫머리. 어귀: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 |245||어금이||어금니||어금이||9차||니/이 |- |246||어깨노리||어깨놀이||어깨노리||15차||-놀이/-노리 |- |247||언덕받이||언덕바지||언덕받이||12차|| |- |248||업둥이||업둥이||업동이||12차||-둥이/-동이 |- |249||엉거주춤히||엉거주춤히||엉거주춤이||15차||‘-이/-히’에서 ‘-히’로 하는 부류 |- |250||여남은, 여라문||여남은||여라문||15차|| |- |251||연거퍼, 연거푸||연거푸||연거퍼||13차<br>15차||‘연거푸’가 기본표제어이고 ‘연거퍼’는 동의어. |- |252||열따랗다||열따랗다||x||16차|| |- |253||열쭝이||열쭝이||열중이||15차|| |- |254||옆대기, 옆댕이||옆댕이||옆대기, 옆댕이||15차|| |- |255||예스럽다, 옛스럽다||예스럽다||옛스럽다||11차||모두 인정 |} ==부록 2: 한국에서 규범화한 한자어, 일본어식 한자어 및 외래어== 부록 2-1: 한국에서 규범화한 한자어 {| class="wikitable" |가가호호 → 집집마다||{{lang|zh-Hans-CN|每家、家家户户}} |- |가두판매 → 거리팔기/거리판매||{{lang|zh-Hans-CN|街头贩卖}} |- |분실하다 → 잃어버리다||{{lang|zh-Hans-CN|遗失、丢失}} |- |각선미 → 다리맵시||{{lang|zh-Hans-CN|腿部曲线美}} |- |난색을 표명하다 → 어려운 빛을 나타내다||{{lang|zh-Hans-CN|表示为难}} |- |사고 다발지역 → 사고 잦은 곳||{{lang|zh-Hans-CN|事故多发地带}} |- |선하차 후승차 → 내린 다음 타기||{{lang|zh-Hans-CN|先下车,后乘车}} |- |촉수를 엄금하시오 → 손대지 마시오||{{lang|zh-Hans-CN|请勿触手}} |- |품행이 단정함 → 행실이 바름||{{lang|zh-Hans-CN|行为端正}} |- |미상불 → 아닌 게 아니라||{{lang|zh-Hans-CN|果然、确实}} |- |미연에 → 미리||{{lang|zh-Hans-CN|预先、事先}} |- |불가결한 → 없어서는 아니 되는||{{lang|zh-Hans-CN|不可缺少的}} |- |불가분의 → 나누려 하여도 나눌 수 없는||{{lang|zh-Hans-CN|不可分割的}} |- |불가불/부득불 → 아니할 수 없어/마지못하여 결국||{{lang|zh-Hans-CN|不得不、没办法}} |- |불가피한 →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lang|zh-Hans-CN|不可避免的}} |- |급기야/필경에 → 마침내/끝내는||{{lang|zh-Hans-CN|终于、终究}} |} 부록 2-2: 한국에서 규범화한 일본어식 한자어 {| class="wikitable" |가봉 → 시침질||{{lang|zh-Hans-CN|绷(缝纫法的一种)}} |- |거래선 → 거래처||{{lang|zh-Hans-CN|客户、往来店家}} |- |게양하다 → 달다/걸다||{{lang|zh-Hans-CN|挂}} |- |견본 → 본보기||{{lang|zh-Hans-CN|榜样、样儿、样本}} |- |고뿌 → 잔/컵||{{lang|zh-Hans-CN|杯}} |- |곤색 → 감색/검남색/진남색||{{lang|zh-Hans-CN|深蓝色}} |- |공급원 → 공급처||{{lang|zh-Hans-CN|供应处}} |- |과물 → 과일||{{lang|zh-Hans-CN|水果}} |- |구락부 → 단체||{{lang|zh-Hans-CN|团体、组织;集体}} |- |구루마 → 손수레/달구지||{{lang|zh-Hans-CN|手推车}} |- |구보 → 달리기||{{lang|zh-Hans-CN|跑步}} |- |노가다 → 공사판 노동자||{{lang|zh-Hans-CN|建筑工人}} |- |다마 → 구슬/알/전구||{{lang|zh-Hans-CN|珠子/灯泡}} |- |다마네기 → 양파||{{lang|zh-Hans-CN|洋葱}} |- |닭도리탕 → 닭볶음탕||{{lang|zh-Hans-CN|鸡块汤}} |- |담수어 → 민물고기||{{lang|zh-Hans-CN|淡水鱼}} |- |대금 → 값||{{lang|zh-Hans-CN|价、价钱、价格;代价;意义;值}} |- |망년회 → 송년 모임||{{lang|zh-Hans-CN|辞年会、岁末宴会、迎新晚会、除夕晚会}} |} 부록 2-3: 한국에서 규범화한 외래어 {| class="wikitable" |그린벨트 → 개발 제한 구역||{{lang|zh-Hans-CN|禁止开发地区;绿化地带}} |- |글로벌 → 세계화, 세계적||{{lang|zh-Hans-CN|全世界的、全球化、综合的}} |- |글로벌 스탠더드 → 국제표준||{{lang|zh-Hans-CN|国际标准}} |- |내비게이션 → 길도우미||{{lang|zh-Hans-CN|导航系统}} |- |네티즌 → 누리꾼||{{lang|zh-Hans-CN|网民、网友}} |- |덤핑 → 막팔기, 헐값 팔기||{{lang|zh-Hans-CN|倾销、抛售}} |- |도킹하다 → 만나다||{{lang|zh-Hans-CN|(航天器在轨道上)对接}} |- |로드맵 → 정책 계획안, 일정표||{{lang|zh-Hans-CN|日程表;方案、推进计划}} |- |로밍 → 어울통신||{{lang|zh-Hans-CN|漫游通信}} |- |리더십 → 지도력, 통솔력||{{lang|zh-Hans-CN|指挥能力、领导能力}} |- |리플 → 댓글||{{lang|zh-Hans-CN|帖子、跟帖}} |- |마스터 피스 → 걸작||{{lang|zh-Hans-CN|杰作}} |- |머니 론더링 → 돈세탁||{{lang|zh-Hans-CN|洗钱}} |- |메뉴얼 → 설명서, 지도서||{{lang|zh-Hans-CN|说明书、指导书}} |- |미팅 → 모임, 모꼬지||{{lang|zh-Hans-CN|会议、集合}} |- |바로미터 → 척도, 잣대, 지표||{{lang|zh-Hans-CN|尺度、指标}} |- |발코니 → 난간||{{lang|zh-Hans-CN|阳台、楼座、栏杆}} |- |백그라운드 → 배경||{{lang|zh-Hans-CN|背景}} |- |베일 → 장막||{{lang|zh-Hans-CN|面纱、遮盖物}} |- |벤치마킹 → 견주기, (컴퓨터)성능 시험||{{lang|zh-Hans-CN|基准评比法}} |- |보이코트 → 거절, 거부, 배척||{{lang|zh-Hans-CN|不买同盟、抵制购货}} |- |부킹 → 예약||{{lang|zh-Hans-CN|预约、预定、演出合同}} |- |브랜드 → 상표||{{lang|zh-Hans-CN|商标}} |- |브레인 스토밍 → 발상모으기||{{lang|zh-Hans-CN|集思广益、献计献策}} |- |블랙리스트 → 감시 대상 명단||{{lang|zh-Hans-CN|黑名单}} |- |블로그 → 누리사랑방||{{lang|zh-Hans-CN|博客}} |- |샘플링 → 표본뽑기||{{lang|zh-Hans-CN|抽样、取样}} |- |서포터스 → 응원단||{{lang|zh-Hans-CN|拥护者、支持者、拉拉队}} |- |스크린 쿼터 → 상영시간 할당제||{{lang|zh-Hans-CN|国产影片配额制}} |- |스키드 마크 → 타이어 밀린 자국||{{lang|zh-Hans-CN|刹车痕迹}} |- |스킨십 → 살갗 닿기, 피부 접촉||{{lang|zh-Hans-CN|肤触}} |- |스팸메일 → 쓰레기편지||{{lang|zh-Hans-CN|垃圾邮件、邮寄广告宣传品}} |- |스포트 라이트 → 각광, 주시||{{lang|zh-Hans-CN|引人关注、聚光灯}} |- |스폰서 → 후원자||{{lang|zh-Hans-CN|出资人、赞助人}} |- |스프링 쿨러 → 자동 물뿌리개||{{lang|zh-Hans-CN|自动洒水灭火系统、洒水器}} |- |시너지효과 → 상승효과||{{lang|zh-Hans-CN|增长效果}} |- |시드 → 우선권||{{lang|zh-Hans-CN|种子选手、安排种子选手的出场序}} |- |시뮬레이션 → 모의실험||{{lang|zh-Hans-CN|模拟实验}} |- |시스템 → 조직, 체재, 방식||{{lang|zh-Hans-CN|方法、组织、系统、体系}} |- |어젠다 → 의제, 안건||{{lang|zh-Hans-CN|议题}} |- |엔트리 → 참가자||{{lang|zh-Hans-CN|参加比赛名单、登记、登录}} |- |엠바고 → 보도유예||{{lang|zh-Hans-CN|封港令、报道资料等的报道时间表}} |} ==부록 3: 한국과 조선의 외래어 합의안== {| class="wikitable" !순번!!합의안!!한국!!조선!!회의!!비고 |- |001||가께수리, 개개수리||가께수리(←&일kakesuzuri, ~경대)||개개수리(←&일kakesuzuri, ~장)||12차|| |- |002||가니트||가닛(garnet)||가네트(&영garnet)||14차|| |- |003||가돌리늄||가돌리늄(gadolinium)||가돌리니움(&도gadolinium)||12차|| |- |004||가라데||가라테(&일karate[{{lang|ja-JP|唐手}}])||가라데(&일karate)||12차|| |- |005||가솔린||가솔린(gasoline)||가소링, 가솔린(&영gasoline)||12차|| |- |006||가제, 거즈||가제(&독Gaze), 거즈(gauze)||가제(&도Gaze)||12차|| |- |007||가톨릭, 카톨릭||가톨릭(Catholic)||카톨릭(&영catholic)||15차|| |- |008||갈락토즈||갈락토오스(galactose)||갈락토즈(&영galactose)||12차|| |- |009||갈륨||갈륨(gallium)||갈리움(&영gallium)||12차|| |- |010||갤런||갤런(gallon)||갈론(&영gallon)||15차|| |- |011||게르마늄||게르마늄(&독Germanium)||게르마니움(&도Germanium)||12차|| |- |012||게이지, 게지||게이지(gauge)||게지, 계지(&영gauge)||13차|| |- |013||게임, 껨||게임(game)||겜, 껨(&영game)||15차||껨: ‘단위’의 의미 |- |014||고니오메터, 고니오미터||고니오미터(goniometer)||고니오메터(&영goniometer)||12차|| |- |015||고딕||고딕(gothic)||고지크(&영gothic)||15차|| |- |016||고로께||크로켓(croquette)||고로께(←croquette)||18차|| |- |017||고뿌, 컵||컵(cup)||고뿌(←&영cup)||15차||뜻풀이에서는 ‘컵’을 사용 |- |018||고셰||고셰(Gaucher, ~병)||고쉐(&프Gaucher, ~병)||12차|| |- |019||골, 꼴||골(goal)||꼴(&영goal)||13차|| |- |020||골덴||코르덴(←corded velveteen)||골덴(&영corduroy)||15차|| |- |021||공||공(gong)||공그(&영gong)||12차|| |- |022||그라프, 그래프||그래프(graph)||그라프(&영graph)||12차|| |- |023||그라픽, 그래픽||그래픽(graphic)||그라휘크(&영graphic)||15차|| |- |024||그람, 그램||그램(gram)||그람(&영gramme)||12차|| |- |025||그루빠, 그룹||그룹(group)||그루빠, 그룹(&로группа)||12차||그루빠/그룹: 집단. 그룹: 기업체의 무리 |- |026||그리프, 클립||클립(clip)||그리프(←&영clip), 클리프(&영clip)||14차|| |- |027||글라디올러스||글라디올러스(gladiolus)||글라디올라스(&영gladiolus)||12차|| |- |028||글루코시다제||글루코시다아제(&독Glukosidase)||글루코시다제(&영glucosidase)||12차|| |- |029||글루코즈||글루코오스(glucose)||글루코즈(&영glucose)||14차|| |- |030||글리신||글리신(glycine)||그리신, 글리신(&영glycine)||12차|| |- |031||기브스||깁스(&독Gips)||기프스(&도Gips)||12차|| |- |032||기아||기어(gear)||기야(&영gear)||12차|| |- |033||까딸로그, 카탈로그||카탈로그(catalog)||까딸로그(&로катарлог)||13차|| |- |034||까비네트, 캐비닛||캐비닛(cabinet)||까비네트(&로кабинет)||13차|| |- |035||깜빠니야, 캠페인||캠페인(campaign)||깜빠니야(&로кампания)||13차|| |- |036||깽||갱(gang)||깽(&영gang)||13차|| |- |037||꼬냐크, 꼬냑||코냑(←&프cognac)||꼬냐크, 코냐크(&프cognac)||15차|| |- |038||꼬삐, 카피||카피(copy)||꼬삐(&영copy)||13차|| |- |039||꼴호즈||콜호스(&러kolkhoz)||꼴호즈(&로колхоз)||15차|| |- |040||꼼바인, 콤바인||콤바인(combine)||꼼바인(&로комбайн)||13차|| |- |041||꼼비나트||콤비나트(&러kombinat)||꼼비나트(&로комбинат)||15차|| |- |042||꽁떼||콩테(&프conté)||꽁떼(&프conté)||13차|| |- |043||꽁뜨||콩트(&프conte)||꽁뜨(&프conte)||15차|| |- |044||끼릴||키릴(Cyrill, ~글자)||끼릴(&로Кирил, ~글자)||15차|| |- |045||나노메터, 나노미터||나노미터(nanometer)||나노메터(&영nanometre)||12차|| |- |046||나일론||나일론(nylon)||나이론(&영nylon)||12차|| |- |047||나트, 너트||너트(nut)||나트(&영nut)||12차|| |- |048||나트륨||나트륨(&독Natrium)||나트리움(&라Natrium)||12차|| |- |049||나프사, 나프타||나프타(naphtha)||나프사(&영naphtha)||12차|| |- |050||나프탈린||나프탈렌(naphthalene)||나프탈린(&도Naphthalin)||12차|| |- |051||내프킨||냅킨(napkin)||내프킨(←&영napkin)||15차|| |- |052||넌센스||난센스(nonsense)||넌센스(&영nonsense)||12차|| |- |053||넵투늄||넵투늄(neptunium)||넵투니움(&영neptunium)||12차|| |- |054||노벨륨||노벨륨(nobelium)||노벨리움(&영Nobelium)||12차|| |- |055||녹다운||녹다운(knockdown)||노크다운(&영knockdown)||12차|| |- |056||뉘앙스, 뉴앙스||뉘앙스(&프nuance)||뉴앙스(&프nuance)||15차|| |- |057||뉴톤||뉴턴(Newton)||뉴톤(&영Newton)||12차|| |- |058||다리아, 달리아||달리아(dahlia)||다리아(←&영dahlia)||12차|| |- |059||다쁘, 탭||탭(tap)||다쁘(&영tap)||13차|| |- |060||다스, 타스||다스(&일dâsu)||타스(←&영dozen)||13차|| |- |061||다이나마이트||다이너마이트(dynamite)||다이나마이트(&영dynamite)||12차|| |- |062||다이아||다이아(←diamond)||다이야(&영dia)||12차|| |- |063||다이아몬드||다이아몬드(diamond)||다이야몬드(&영diamond)||12차|| |- |064||다이알||다이얼(dial)||다이얄(&영dial)||12차|| |- |065||다이야, 다이어그램||다이어그램(diagram)||다이야(&영dia)||14차|| |- |066||다이야, 타이어||타이어(tire)||다이야(←&영tire)||14차|| |- |067||단스, 댄스||댄스(dance)||단스(&영dance)||12차|| |- |068||달러, 딸라||달러(dollar)||딸라(&영dollar)||13차|| |- |069||댐, 땜||댐(dam)||땜(←&영dam)||13차|| |- |070||더블||더블(double)||다블(&영double)||12차|| |- |071||데니어||데니어(denier)||데닐(&프denier)||12차|| |- |072||데리크||데릭(derrick)||데리크(&영derrick)||13차|| |- |073||데시그람, 데시그램||데시그램(decigram)||데시그람(&영decigramme)||12차|| |- |074||데시메터, 데시미터||데시미터(decimeter)||데시메터(&영decimetre)||12차|| |- |075||데쌩||데생(&프dessin)||데쌍(&프dessin)||18차|| |- |076||데이타||데이터(data)||데터(&영data)||15차|| |- |077||데카그람, 데카그램||데카그램(decagram)||데카그람(&영decagramme)||12차|| |- |078||데카당스||데카당스(&프décadence)||데까당스(&프decadence)||12차|| |- |079||데카메터, 데카미터||데카미터(decameter)||데카메터(&영decametre)||12차|| |- |080||뎅구, 뎅기||뎅기(dengue, ~열)||뎅구(&영Dengue, ~열)||12차|| |- |081||도나트, 도넛||도넛(doughnut)||도나트(&영doughnut)||14차|| |- |082||도라이바, 드라이버||드라이버(driver)||도라이바(←&영driver)||12차|| |- |083||도람, 드럼||드럼(drum, ~통)||도람(←&영drum, ~통)||12차|| |- |084||도레라, 추레라, 트레일러||트레일러(trailer)||도레라, 추레라(←&영trailer)||13차||도레라: 소형. 추레라: 대형 |- |085||도레스, 드레스||드레스(dress)||도레스(←&영dress)||15차|| |- |086||도마도, 토마토||토마토(tomato)||도마도(←&영tomato)||13차|| |- |087||도크||독(dock)||도크(영dock)||12차|| |- |088||두리안||두리안(durian)||듀리안(&영durian)||12차|| |- |089||드람, 드램||드램(dram)||드람(&영dram)||12차|| |- |090||디기탈리스||디기탈리스(digitalis)||디기탈리쓰(&라Digitalis)||12차|| |- |091||디바이||디바이(Debye)||데바이(Debye)||18차|| |- |092||디스토마, 지스토마||디스토마(distoma)||지스토마(&라distoma)||12차|| |- |093||디스프로슘||디스프로슘(dysprosium)||디스프로시움(&영dysprosium)||12차|| |- |094||디아스타제||디아스타아제(&독Diastase)||디아스타제(←&영diastase)||12차|| |- |095||디옵터||디옵터(diopter)||디옵트리(&영dioptrie)||12차|| |- |096||디자인||디자인(design)||데자인(&영design)||12차|| |- |097||디플레이션, 디플레이숀||디플레이션(deflation)||데플레이숀(deflation)||18차|| |- |098||딜레마, 딜렘마||딜레마(dilemma)||딜렘마(dilemma)||18차|| |- |099||땅크, 탕크, 탱크||탱크(가스~, 물~)(tank)||탕크(가스~, 물~), 땅크(물~)(&영tank)||15차||땅크: 전차. 탕크: 용기 |- |100||뜨락또르, 트랙터||트랙터(tractor)||뜨락또르(&로<span style="border-bottom: 1px dotted; cursor: help;" title="Трактор&#10;원문은 이와 같다.">Тратор</span>)||13차|| |- |101||뜨랄, 트롤||트롤(trawl)||뜨랄(&로<span style="border-bottom: 1px dotted; cursor: help;" title="Трал&#10;원문은 이와 같다.">Tpaл</span>)||13차|| |- |102||라듐||라듐(radium)||라디움(&영radium)||12차|| |- |103||라디에터||라디에이터(radiator)||라지에터(&영radiator)||15차|| |- |104||라디오, 라지오||라디오(radio)||라지오(&영radio)||12차|| |- |105||라디오미터, 라지오메터||라디오미터(radiometer)||라지오메터(&영radiometer)||12차|| |- |106||라디오존데, 라지오존데||라디오존데(&독Radiosonde)||라지오존데(&도Radiosonde)||12차|| |- |107||라벨||라벨, 레이블(label)||라벨(&영label)||12차|| |- |108||라이노타이프, 리노찌프||라이노타이프(Linotype)||리노찌프(&로линотип)||12차|| |- |109||라일락, 라이락||라일락(lilac)||라이락(lilac)||18차|| |- |110||라케트||라켓(racket)||라케트(&도Rakett)||13차|| |} ==부록 4: 한국과 조선의 띄여쓰기 합의안== {| class="wikitable" !류형!!구분!!순번!!합의안!!한국!!조선!!회의!!비고!!용례 |- |보조용언||||1||보조용언은 띄여쓰되 ‘-아/-어’ 바로 다음에 오는 보조용언은 앞말에 붙여쓴다.||띄여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씀도 허용한다.||붙여쓴다.||6차||||남아있다, 넘어서다, 먹여주다, 밝아오다, 깊어지다 / 합의하고 있다 |- |수사||||2||‘만, 억, 조’ 단위로 띄여쓴다.||‘만, 억, 조’ 단위로 띄여쓴다.||‘백, 천, 만, 억, 조’ 단위로 띄여쓴다.||9차||||이십륙억 삼천사백오십륙만 칠천팔백구십팔 |- |의존명사||호칭어||3||붙여쓴다.||띄여쓴다.||붙여쓴다.||15차||||김군, 길동님, 홍길동씨, 순희양 |- |||관직명||4||띄여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띄여쓴다.||붙여쓴다.||15차|||| |- |||단위명사||5||앞말에 붙여쓴다.||띄여쓴다.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수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붙여쓴다.||6차||||한개, 두포기, 한벌, 다섯묶음, 세두름 |- |명사련결체||일반||6||《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은 뜻풀이를 할 때 붙여쓰되 올림말이 아니더라도 의미적으로 련관을 이루는 명사련결체는 두 단어까지 붙여쓸 수 있다. 단이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따로 심의한다.||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띄여쓴다.||붙여쓰되 뜻이 통하게 띄여쓴다.||14차||||국가발전 계획을 수립했다. 봄 여름 가을을 고향에서 보냈다.(‘봄여름’으로 붙이지 않는다.) |- |||합성어||7||붙여쓴다.||붙여쓴다.||붙여쓴다.||5차|||| |- |||고유명: 인명||8||이름과 호는 성에 붙여쓴다.||붙여쓰되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여쓸 수 있다.||붙여쓴다.||6차||||김양수, 서화담 |- |||고유명: 지명||9||지명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앞말에 붙여쓴다.||붙여쓴다.||붙여쓴다.||6차||||서울시, 종로구, 평양시 |- |||고유명: 기관, 기구, 단체 등의 명칭||10||의미 단위별로 띄여쓴다.||단어별로 띄여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여쓸 수 있다.||붙여쓴다.||6차||||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 |명사련결체||붙여쓰면 두가지 뜻으로 리해될 수 있는 경우||11||의미 단위별로 뜻이 통하게 띄여쓴다.||||뜻이 통하게 띄여쓴다.||9차||||중세 언어연구(중세에 진행된 언어연구)/중세언어 연구(중세의 언어연구), 김인옥어머니(어머니 자신)/김인옥 어머니(김인옥의 어머니) |- |||명사끼리 토 없이 결합되여 하나의 대상, 현상,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12||붙여쓴다.||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띄여쓴다.||붙여쓴다.||9차||||가야금병창, 가상기억장치, 공장로동자 |- |||앞의 명사를 다시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어휘부류||13||띄여쓴다.||띄여쓴다.||붙여쓴다.||9차||자신, 자체, 전체, 전부, 전원, 일행, 일가, 일동||학생 전원, 답사자 일행, 지배인 자신, 학급 전체 |- |||서로 다른 품사가 토 없이 결합되여 하나의 대상,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14||붙여쓴다.||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띄여쓴다.||붙여쓴다.||9차||||2중영웅, 1호발전기, 7개년계획 |- |||전문용어||15||의미 단위로 붙여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토 없이 결합된 단어가 너무 길어 읽고 리해하기 힘들 때에는 의미 단위로 띄여쓸 수 있다.||단어별로 띄여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쓸 수 있다.||붙여쓴다.||9차||||만성골수성백혈병, 급성복막염,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 |||||16||띄여쓴다.||단음절로 련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쓸수 있다.||리해하기 쉽게 띄여쓴다.||5차|||| |- |대명사||합성어||17||‘우리말, 우리글’은 합성어로 보고 붙여쓰고 ‘우리 나라’는 구로 보아 띄여쓴다.||우리말, 우리글, 우리나라||우리 말, 우리 글, 우리 나라||10차|||| |- |||지명+‘어, 산, 강, 해’||18||지명과 결합된 ‘어, 산, 강, 해’ 등은 모두 붙여쓴다.||붙여쓴다.||||10차||||라틴어, 에베레스트산, 티그리스강, 아드리아해 |} j810biac0hkhvfmwdj0255nr1ez1t82 색인:졔환공.djvu 252 85087 390443 324494 2025-06-08T11:26:57Z Namoroka 1939 390443 proofread-index text/x-wiki {{:MediaWiki:Proofreadpage_index_template |종류=book |제목=[[졔환공]] |언어=ko |권= |저자=현공렴 |번역자= |편집자= |삽화가= |학교= |출판사= |위치= |연도=1918 |정렬 키= |ISBN= |OCLC= |LCCN= |BNF_ARK= |ARC= |DOI= |출처=djvu |그림=1 |진행 상황=C |쪽별 색인=<pagelist 71=서지 72=광고 73=빈면/> |권별 색인= |목차=《제환공》은 중국 춘추시대의 패자인 제환공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문서가 생성되면 머리말로 이 내용을 옮겨주세요 --> |너비= |머리말= |꼬리말= }} [[분류:옛한글 문헌 전자화 프로젝트 2024년 상반기]] 9y8145j5zwzg9vlc7robq7szzx7mm6n 번역:주자어류/권17 대학혹문상 大學四或問上 114 86377 390394 390376 2025-06-07T15:16:45Z Thomas Dongsob Ahn 16640 44작업중 390394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어떤 이가 ‘격물(格物)’ 장(章)에 본래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 있었느냐고 질문함.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  17:46 問爲己.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  17:48 行夫問“爲己者無所爲而然”.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又問: “割股一事如何?”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今有以此要譽者.”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 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 不知所見者果何物耶?”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曰: “只見於大學.” 又曰: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pv7es3nwxilthq94ml83fbpy1c0p04f 390423 390394 2025-06-08T04:04:13Z Thomas Dongsob Ahn 16640 44 390423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  17:46 問爲己.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  17:48 行夫問“爲己者無所爲而然”.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又問: “割股一事如何?”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今有以此要譽者.”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 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 不知所見者果何物耶?”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曰: “只見於大學.” 又曰: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jyc7yr6bsrdk7bomauwy5ep00xiz3yc 390428 390423 2025-06-08T05:25:33Z Thomas Dongsob Ahn 16640 47-48 작업중 390428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 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함을 본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전곡(錢穀)·변두(籩豆)·유사(有司)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 허벅지 살을 베어냄)·여묘(廬墓,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삶)와 같이,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을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이니, 이들은 모두 자신을 위하는 것[爲己]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o 기원(器遠)이 묻다: “자방(子房, 장량)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o 답하다: “그는 당초 단지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단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爲己者無所爲而然”. 행부(行夫)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묻다.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o 답하다: “하는 바가 있는 자[有所爲者]는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이는 모름지기 천하의 일이 실제로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성분(性分) 밖의 것이 아님을 본 뒤에야 그것을 행하여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된다. 또한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哭死而哀, 非爲生者].’ 지금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죽은 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슬퍼할 만하다고 여겨 곡함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어떤 부류의 사람은 죽은 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곧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한 사람이 한 가지 선한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에게 하라고 시키기를 기다려 비로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o 도부(道夫)가 말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는 이미 매우 분명하니,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又問: “割股一事如何?” o 또한 묻다: “할고(割股) 한 가지 일은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o 답하다: “할고(割股)는 진실로 그 자체로 옳지 않다. 만약 성심(誠心)으로 그것을 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또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o “지금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자세히 물으시고 오랫동안 놀라고 의아해하시다가, 비로소 안색을 바로 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단지 자기 자신이 지나치게 계산했을 뿐이다[過計]. 설령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자기 자신 또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천하의 일은 오직 그 곧음[直]뿐이다. 시험 삼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또한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o 행부(行夫)가 말하다: “또한 옥에 갇혀 돈을 써서 힘든 일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o 답하다: “세상에서 어찌 완전히 젖지 않고[霑濕] 면할 수 있겠는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의리(義理)에 불안해하는 걱정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편안한 걱정이라면, 단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함을 보면 곧 그렇게 물방울이 얼음을 녹이듯[滴水滴凍] 해나가서 뒷날의 많은 일이 모두 없을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 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 不知所見者果何物耶?”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曰: “只見於大學.” 又曰: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3wohey3tdxhyxlw42po8nggs4we3516 390436 390428 2025-06-08T07:02:44Z Thomas Dongsob Ahn 16640 47 390436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ref>장식의 말. 17:45를 보라.</ref> 위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ref>군무를 말한다.</ref>·전곡(錢穀)<ref>재무를 말한다.</ref>·변두(籩豆)<ref>제사와 의전을 말한다.</ref>·유사(有司)<ref>그밖의 모든 실무를 말한다.</ref>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理會]<ref>'리회(理會)'의 번역에 관해서는 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ref>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위. 효행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된다.</ref>나 여묘(廬墓)<ref>부모의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사는 행위. 역시 효행의 일종으로 거론된다.</ref> 같은 것은,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듬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행위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곧 남을 위하는[爲人] 행위이다.<ref> 이 부분은 대학혹문의 특정 구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대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의 사무를 보기를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사무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갑병, 전곡, 변두, 유사의 업무조차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구나 하여 수행한다면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고 여묘살이하고 망가진 수레와 파리한 말을 타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하는[爲人] 것일 뿐이다.(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馬, 亦爲人耳.)'</ref>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기원(器遠)<ref>주희의 제자 조숙원(曹叔遠)</ref>의 질문: 자방(子房)<ref>한(漢)의 개국공신 장량(張良, BC 250-BC 186).</ref>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대답: 그는 애당초 오직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爲己者無所爲而然”. 행부(行夫)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묻다.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o 답하다: “하는 바가 있는 자[有所爲者]는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이는 모름지기 천하의 일이 실제로는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성분(性分) 밖의 것이 아님을 본 뒤에야 그것을 행하여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된다. 또한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哭死而哀, 非爲生者].’ 지금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죽은 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슬퍼할 만하다고 여겨 곡함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어떤 부류의 사람은 죽은 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곧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한 사람이 한 가지 선한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하려고 해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에게 하라고 시키기를 기다려 비로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o 도부(道夫)가 말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는 이미 매우 분명하니,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又問: “割股一事如何?” o 또한 묻다: “할고(割股) 한 가지 일은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o 답하다: “할고(割股)는 진실로 그 자체로 옳지 않다. 만약 성심(誠心)으로 그것을 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또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o “지금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자세히 물으시고 오랫동안 놀라고 의아해하시다가, 비로소 안색을 바로 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단지 자기 자신이 지나치게 계산했을 뿐이다[過計]. 설령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자기 자신 또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천하의 일은 오직 그 곧음[直]뿐이다. 시험 삼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또한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o 행부(行夫)가 말하다: “또한 옥에 갇혀 돈을 써서 힘든 일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o 답하다: “세상에서 어찌 완전히 젖지 않고[霑濕] 면할 수 있겠는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의리(義理)에 불안해하는 걱정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편안한 걱정이라면, 단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함을 보면 곧 그렇게 물방울이 얼음을 녹이듯[滴水滴凍] 해나가서 뒷날의 많은 일이 모두 없을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 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 不知所見者果何物耶?”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曰: “只見於大學.” 又曰: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em6l5rsrjhkebsdd8s14c1955atdk5a 위키문헌:사랑방 4 87889 390442 389206 2025-06-08T11:22:13Z Namoroka 1939 /* 한국 저작권 틀 개정 관련 */ 새 문단 390442 wikitext text/x-wiki {{절차 머리말 | 제목 = 사랑방 | 부제 = | 이전 = | 다음 = | 단축 = 문:사 | 설명 = 사랑방은 위키문헌 공동체의 토론 문서입니다. 자유롭게 질문하거나 의견을 남겨 주세요. 기존 토론에 참여하거나 [{{SERVER}}{{localurl:{{NAMESPACE}}:{{BASEPAGENAME}}|action=edit&section=new}} 새 문단을 만들어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위키미디어 재단 등의 소식은 [[위키문헌:소식지|소식지]] 문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관리 등 [[문:관리자|관리자]]가 필요한 요청의 경우 [[문:관리자 게시판|관리자 게시판]]을 이용하면 더 빠를 수 있습니다. }} {{/안내문}} == 대문 개선에 관한 의견 수렴 == 현재의 대문이 굉장히 오래 된 것도 맞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없다는 의견을 많이 받아, 대문의 모습과 내용을 일부 바꿔 보았습니다. * [[사용자:Aspere/대문 초안]] 현재 대문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변경하였습니다. * 최상단 오른쪽의 링크 일부 수정 * 위키문헌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삽입 * "둘러보기"에 분류와 더불어 대표적인 포털을 삽입 ** 제대로 정비된 포털 자체가 많지 않아 그나마 단기간에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포털을 중심으로 삽입하였습니다. 대표 이미지 또한 완벽하지 않으며 바뀔 수 있습니다. * 대표적인 문헌 몇 개를 선정해 "추천 문헌" 란 제작 ** 마찬가지로 포함된 문헌 자체는 바꿀 여지가 있습니다. * 거의 유지관리가 되지 않는 "특집 기사", "오늘의 역사", "하이라이트" 항목 삭제 한 번씩 보시고 드시는 감상이나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둘러보기"나 "추천 문헌"에 어떤 것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간단한 것도 환영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일 (금) 19:57 (KST) :소개 부분이 조금 길고 여백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각 항목간의 여백이 일정치 않습니다. "위키문헌이란" 항목의 제일 밑 부분은 여백이 없는데 "진행중인 공동 작업"과 "새로 올라온 문헌"에는 여백이 있고요. 주제별 색인에서 그림은 가운데 정렬을 하거나 기본 갤러리 기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표현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조선노동당"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또한 추천 문헌에서 훈민정음 그림과 하단의 "숙종의 한글편지", "개벽/1923년 2월/님의 노래" 부분이 서로 조화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7일 (화) 19:04 (KST) ::여백은 기기 환경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는 만큼 정확히 일치시키기가 어렵습니다. 타 언어판 대문을 보시더라도 좌우 불균형이 거의 기본일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일부러 여백이 많아 보이게끔 배치한 게 맞습니다 (현재 대문이 너무 빡빡하다는 지적을 몇 번 받아서). 포털도 마찬가지로 강제로 가운데 정렬시키면 환경에 따라 깨지기 때문에 기본 정렬로 놔둔 것입니다. ::또한 추천 문헌의 위아래 부분은 전혀 다른 부분인데 둘 사이가 조화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내용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7일 (화) 19:23 (KST) :::여백을 일부로 의도하신거라면 이해하겠습니다. 훈민정음만 왜 우측에 따로 나와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와이드스크린으로 보면 <code><nowiki>----</nowiki></code>로 구분된 부분이 훈민정음 그림의 좌측으로 올라와 보기 좋지가 않습니다. 벡터 2022가 아니라 기존 벡터 스킨을 쓰시면 바로 확인이 되겠네요. [https://imgdb.in/mnIc 그림 링크]--[[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24 (KST) ::::{{핑|Namoroka}} 그림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 문제 확인이 안 되서 가지고 있는 모든 모니터를 다 꺼내오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일단 오른쪽 먹는 문제는 {{틀|clear}}를 넣어 봤습니다. 제가 레거시벡터를 거의 안 써서 저게 넘어간다고 인지를 못 했네요. (제가 주로 쓰는 모니터에서도 우연의 일치로 레거시벡터에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림에 생기는 여백 문제는 틀을 가져온 [[:ja:|일본어판 대문]]에도 확인해보니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로 여백이 크게 나타난다면 확실히 고치긴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칠지 당장은 생각이 안 나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42 (KST) :::::"위키문헌이란"의 윗부분과 "새로 올라온 문헌"의 윗부분의 여백도 아~주 미묘하게 여백이 다르네요. 해당 부분의 margin을 %가 아닌 em으로 지정하면 문제가 안 발생할 것 같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도 margin을 1% 1% 1% 0로 정의했다가 같은 줄에서 1em 0로 지정하는 등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이러면 가장 마지막에 지정한 margin만 적용되는것 아닌가요? / 그리고 그림이 8개가 있으면 좁은 스크린에서, 적어도 벡터 2022에서는 그림이 3개/3개/2개 이런식으로 표시되는데 그러면 좌우를 비교했을 때 우측에 빈 공간이 너무 많이 남지 않는가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48 (KST) ::::::일단 그림은 [[특:차이/349148|center 태그를 강제로 넣으면]] 가운데로 가기는 합니다. (이게 더 보기 좋은지 확신이 안 서서 원래대로 되돌려놓기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표시되는 그림 개수 자체는 화면의 좌우폭에 따라 자동으로 되는 거라 신벡터 스킨 자체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6개 / 2개로 나옵니다) 남는 폭이 애매하게 그림 하나가 안 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7일 (화) 23:53 (KST) :::::::<code><nowiki><gallery align="center"></nowiki></code>은 잘못된 코드 같고, <code><nowiki><center><gallery align="center"></nowiki></code> 대신 <code><nowiki><gallery style="text-align:center"></nowiki></code> 이게 맞을 듯 싶습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01 (KST) :::::::<code><nowiki><gallery class="center"></nowiki></code>가 있네요. 아니면 <code><nowiki><gallery mode=packed></nowiki></code>나 <code><nowiki><gallery mode=packed-hover></nowiki></code>는 어떠신지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14 (KST) :::::::추가로 만약에 packed를 쓰거나, 쓰지 않더라도 대문에 병렬되어 표시되는 그림은 가로세로 비율이 똑같이 나오도록 나중에 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23 (KST)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자르는 거야 어렵지 않고 여차하면 대문 용도로 문헌에 로컬 업로드도 해버리면 되니까요. 사진은 그래도 조금 더 어울리는 게 있을지 한번 더 찾아본 다음 잘라보겠습니다. ::::::::일단은 packed-hover가 제일 나은 것 같아서 그걸로 해 두긴 했습니다.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많이 배워가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34 (KST) ::::::그리고 좌우 높이가 약간 다른 건 말슴하신 대로 퍼센트 빼니까 동일하게 보입니다. 일단 제가 가지고 있는 모니터 상으로는 동일하게 나오는데 혹시 또 문제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8일 (수) 00:35 (KST) :::::::그림에서 packed를 쓸지 말지는, 취향 차이인 듯 싶으니 이건 다른 사용자분들도 보시고 의견을 달아주셨으면 좋겠네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8일 (수) 22:38 (KST) 오래된 토론이긴 한데 어떻게든 결론을 내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일부 수정점을 남기겠습니다. 사용하는 파일들을 1:1 비율이 되게끔 잘라 로컬에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보호는 아직 안 걸었습니다). 조선노동당 포털은 제가 저것까지 정비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과감하게 날려버렸습니다. 이 이외에 특별히 변경한 것은 없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19일 (수) 15:53 (KST) :{{핑|Namoroka}} 토론에 참여해주신 다른 분이 안 계셔서 연락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이 정도로 일단 도입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금 더 다듬을 만한 게 있을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19일 (수) 15:53 (KST) ::저는 큰 이의가 없습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3월 19일 (수) 18:30 (KST) {{알림}} 대문을 수정하였습니다. 아마 문제가 없으리라고 99% 정도 확신하긴 하는데...혹시 뭔가 잘못되어 있으면 주저 말고 말씀해 주세요.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20일 (목) 22:24 (KST) == 저작권 틀의 번역명 == 저작권 틀의 명칭이 {{틀|PD-미국}}과 같이 한국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이를 모두 다른 언어판에 맞춰 영어식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틀은 미국 연방 정부의 작품만 해당하는데 이름은 그냥 "미국"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PD-USGov이고요. 해당 틀들을 모두 PD-미국-정부 이런 식으로 번역하는 수고를 할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언어판이나 공용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카피해 오는게 훨씬 수월합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12일 (일) 03:18 (KST) :틀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틀 내용이 오래 된 경우도 많고요. 어차피 넘겨주기를 남겨두면 괜찮을 테니 과감히 바꾸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2일 (일) 03:25 (KST) == 초안 이름공간 도입 제안 == 현재 위키문헌에는 등재 기준 자체는 충족하는 것으로 보이나 문서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90마745]] 문서나 [[71다2016]] 같이 봇으로 긁어온 판례 문서, [[분석심리학 논문집/Chapter2]]와 같이 번역되지 않고 방치된 문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같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는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문서 품질이 안 좋다고 지우는 것은 점차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는 위키미디어 운동의 취지 자체에 반하는 것이어서 손을 대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래서 [[w:위키백과:초안|위키백과의 초안 이름공간]]을 동일하게 도입해서 이러한 문서를 따로 격리해 놓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저품질 문서가 표시된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사용자 참여에 의한 문서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3일 (월) 16:47 (KST) :{{찬성}}: 동의합니다. [[사용자:Korbine287|Korbine287]] ([[사용자토론:Korbine287|토론]]) 2025년 1월 15일 (수) 17:03 (KST) :{{찬성}} --[[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16일 (목) 22:01 (KST) {{알림}} 지침화를 위해 [[위키문헌:초안]] 문서를 생성하였습니다. 위키백과의 해당 문서를 들고 온 다음 위키문헌 실정에 맞게 약간 수정해 주었는데, 어색한 부분이 보이신다면 자유로운 수정 부탁드립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9일 (일) 17:45 (KST) * 초안 이름공간의 설정은 제안문의 "위키백과의 초안 이름공간을 동일하게 도입"이라는 문구에 따라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정과 동일하게 도입하도록 조정되었습니다. 특기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초안 이름공간의 영어 넘겨주기 (<code>Draft</code>-><code>초안</code>, <code>Draft_talk</code>-><code>초안토론</code>)가 설정됩니다. ** 초안 이름공간의 내용은 검색엔진의 수집을 거부하도록 설정됩니다. ** 위 검색엔진의 수집 거부는 <code><nowiki>__INDEX__</nowiki></code> [[:mw:Help:Magic words#Behavior switches|매직 워드]]를 무시합니다. (초안 이름공간의 특정 문서만 검색엔진이 수집하도록 설정할 수 없습니다.) ** 초안 이름공간에서도 시각편집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0일 (목) 22:41 (KST) :: 이 기능은 한국시간으로 다음 주 화요일 (2월 4일) 23시를 전후하여 적용될 예정입니다. (목요일 (UTC) 재단 패치 업데이트: 한국시간 금요일 오전 6시라서 무리, 금요일 (UTC)에는 패치 업데이트는 긴급상황에만 가능, 다음주 월요일은 제가 바빠서...)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0일 (목) 22:48 (KST) == [[틀:번역 미완료]] 삭제 제안 == 해당 틀이 저작권적으로 모호한 면이 많고 최대한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위키미디어 운동 자체의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 {{틀|번역 미완료}} 틀을 삭제하고 전부 {{틀|GFDL/CC-BY-SA-4.0}} 틀로 교체할 것을 제안합니다. # 완성되지 않은 문서의 저작권을 판단할 수 없게끔 하는 구조 #* 위키문헌에 있는 모든 문서는 최소한 {{틀|GFDL/CC-BY-SA-4.0}} 라이선스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보다 더 풀어질 수는 있지만 더 좁혀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특별히 라이선스를 정한 것이 아니라면 {{틀|GFDL/CC-BY-SA-4.0}} 라이선스를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문서가 미완성인 경우에도 이 라이선스 규칙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런데 해당 틀의 내용은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쓰지 말고 기다려봐라" 라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이는 문서 기여의 근본적 취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문서를 완성해야만 자유 저작물이 된다고 보는 것도 이상하고요. # 저작권 결정권을 "번역을 완성한 사용자"에게 주는 시스템 자체의 의문 #* 위키문헌은 그 특성 상 여러 명이 기여하며, 저작권 정책에 따라 문서에 기여한 부분에 대한 저작권은 개인이 가지나 문서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기여자가 문서 전체에 대한 라이선스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 만약 기여자가 여러 명인데 각자 사용하고자 하는 라이선스가 다른 경우에 부분별로 라이선스를 나눠서 표시할 수도 없을 것이고, 한 사용자가 CC-BY-SA를 주장하는 부분을 다른 사용자가 편집한 다음 "나는 퍼블릭으로 배포하겠다"라고 하면 이것을 저작권 침해로 봐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해당 틀을 사용한 문서의 주기여자 모두에게 연락을 넣어야 하겠으나, 현실적으로 이 틀을 사용하는 문서는 오래 전 미완료 상태로 방치된 문서인 경우가 많아 현실적으로 연락이 닿을 가능성도 낮을 것 같고, {{틀|GFDL/CC-BY-SA-4.0}}와 호환되지 않는 라이선스를 주장하며 위키문헌에 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그럴 경우 삭제 대상입니다). 따라서 현재 사용자분들의 총의만으로 결정해도 괜찮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관련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5일 (수) 20:47 (KST) :동의합니다. 저장하기를 누른 그 순간 GFDL/CC-BY-SA-4.0로 배포하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16일 (목) 14:03 (KST) {{알림}} 장기간 새로운 의견 제시가 없어 총의가 형성되었다고 보고, {{틀|번역 미완료}}를 {{틀|GFDL/CC-BY-SA-4.0}}으로 치환한 다음 해당 틀을 삭제하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21:09 (KST) == what is this word?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what is this word?}} == What is this word?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What is this word?_2}} == What is this word? == {{토론 이동|위키문헌:질문방#What is this word?_3}} == [[틀:판독 불가]] 개편 알림 == {{틀|판독 불가}} 틀을 한국어 위키문헌 실정에 맞게 '□' 기호를 표시하게끔 변경하였습니다. 틀을 이용하면 추적이 간편하다는 이점이 있으므로, 앞으로 작업하시는 분들께서는 수동으로 '□' 기호를 입력하기보다는 해당 틀을 사용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넘겨주기인 {{틀|?}}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7일 (금) 10:50 (KST) :영어판과 틀 구성이 조금 다른데, {{틀|판독 불가}}는 한 글자에만 사용하고 {{틀|미판독 문자}}는 두 글자 이상에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요? ::그 틀도 따로 있다는 걸 까먹고 있었네요. 일단 역할이 동일하니 넘겨주기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외출 중이어서 정리 작업은 조금만 있다가 하겠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18일 (토) 17:25 (KST) == "해석" 이름공간 도입 제안 == 현재 많은 문서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식으로 수록되어 있는 "해석문"(번역이 아님)을 수록하기 위하여 "해석:" 이름공간을 새롭게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 생성 필요 이유에 관한 설명 # 통일되지 않은 방식: 여러분이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현재 있는 문서들에는 해석이 중구난방으로 달려 있습니다. 방식도 통일되어 있지 않고 극단적으로 해석이 원문처럼 둔갑한 경우도 많습니다. #* 현재 방식의 문제는 [[위키문헌토론:한문 해석문의 수록|한문 해석문의 수록 지침 도입 토론]]에 자세히 정리해 둔 것이 있습니다. #* 통일안으로 만들어진 한문 해석문 지침의 경우, 틀 사용 방식이 어렵기도 하고 "한문은 아닌데 해석문이긴 한 경우"를 전혀 커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 번역 이름공간으로 대체 불가: [[번역:언간독]]과 같은 경우, 한문도 아니고 원문([[언간독]])은 분명 한국어이기 때문에 "번역"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해석은 등재해주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 추가를 통해 기대되는 효과 # 명확한 구분: 위키문헌은 근본적으로 '''원문을 수록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마음대로 해석문을 만들면 안 됩니다. 이것이 너무 가혹한 정책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번역" 이름공간이고요. 현재 "해석문"은 번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문도 아닌 애매한 상태이나, "번역" 이름공간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이름공간을 주는 것이 매 번 제기되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수용하면서도 해석문의 작성을 가능하게끔 하는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 번역 이름공간과의 구분: 전 지침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한문은 엄연한 의미에서는 한국어이다"라는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습니다. # 활동 장려: 해석문을 만드는 방식으로 위키문헌에 기여하고자 하는 분들께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면 되는지 더 명확해지는 것인 만큼, 이를 매개로 해석 활동을 하고 싶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 문서 간의 관계 정리: 해석이라기보다는 한자 독음만 적는 경우([[대한민국헌법]]과 [[대한민국헌법 (한자혼용)]]의 관계 등)까지도 포함하면 문서 간의 관계를 더 구조적으로 정비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해석이 있다는 것도 모를 수도 있지만 아에 이름공간으로 정비해 버리면 서로 연관지어주기 더 쉬우리라고 생각합니다. # 정확한 원문 / 이해가 쉬운 텍스트의 동시 제공: 원문에 한자음이 표시되지 않은 경우 이해를 위해 편집자가 임의로 적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엄연한 의미에서 원문 훼손인 만큼, 이럴 때 해석 이름공간을 이용하면 확실히 원문은 원문대로, 해석은 해석대로 분리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름공간 번호는 (큰 상관은 없으나) 112(해석)와 113(해석토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번역 이름공간이 114-115번이어서 임의로 생각해낸 번호입니다. 또한 일반-해석 사이의 연결은 밑에서 제안하는 것처럼 스크립트를 이용한 버튼 사용을 제가 제안하고는 있지만, 꼭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단순히 상단에 틀을 붙이는 정도로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해석 이름공간을 실제로 도입한다면 지금까지의 편집 지침·경향·관행을 뜯어고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꼭 한 마디씩이라도 의견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8:31 (KST) :{{찬성}} 아무래도 지금 규칙을 만들어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유비무환이 더 좋다고 보는 입장이라서요. [[사용자:NZ 토끼들|NZ 토끼들]] ([[사용자토론:NZ 토끼들|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8:36 (KST) :번역 이름공간만을 사용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새로운 이름 공간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찬성합니다. [[사용자:Respice post te|Respice post te]] ([[사용자토론:Respice post te|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9:12 (KST) :{{찬성}} 찬성합니다. -- [[사용자:Jjw|Jjw]] ([[사용자토론:Jjw|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9:54 (KST) :{{찬성}} 개인적으로는 중국어 위키백과의 간체자-정체자 변환처럼 한자를 1:1 단순 대응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러한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여전히 의미가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고대 또는 중세 한국어를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해석과 번역이 개념상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로 옮겨도 여전히 "번역"의 개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련지요? 번역 이름공간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요? [[위키문헌:한문 해석문의 수록]] 생성 당시에 토론에 참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18:21 (KST) ::또한 여전히 해석이나 번역을 사용하더라도 여전히 교정 기능을 사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시 [[:en:Page:รัฐธรรมนูญ (ฉบับชั่วคราว) ๒๕๕๗ (๒) ๒๕๕๙.pdf/1]]--[[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18:22 (KST) ::: 이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문"과 "중국어"의 경계가 불명확해서 생깁니다. 한문이라고 하나로 이야기하긴 하지만 단어만 한자로 쓰는 경우("한국식 한문")부터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까지 넓게 분포하기 때문에 어디까지 한국어의 변형인지, 어디부터 중국어인지 선을 긋기가 어려우니까요. [[위키문헌:사랑방/보존 4#한문으로 되어 있는 원문 텍스트의 이동 제안|실제로 과거 토론에서도 관련한 문제가 논의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한문은 "번역", "해석", "풀이" 등 온갖 용어가 섞여 사용되긴 하는데, 저번에 총의를 수렴할 때는 "그래도 한문은 한국어에 속하니까 "번역"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상당수 제기되어서 이를 반영한 제안입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0:08 (KST) ::: 또한 한자를 음으로 자동으로 변환하는 것은 저도 정말 보고 싶은 기능인데, 한자와 한자음이 한국어에서 간체-정체 관계처럼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예외를 전부 처리해주려면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金"은 거의 항상 "금"으로 읽지만 사람 이름에 들어가는 순간 전부 "김"으로 읽는데 소프트웨어적으로 일반 단어와 인명을 구분해주기가... 만들 수만 있으면 국한문 혼용 문헌의 접근성이 엄청 좋아질 것 같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0:08 (KST) ::::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기본 변환 테이블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code>-{zh-tw:歐; zh-cn:奥; zh-hk:奧}--</code>와 같이 지정하고 있고, 한국어 위키문헌에서 필요한 기능은 각 언어별로 양방향 전환이 필요한 중국어와 달리 한자 → 한글 단방향 변환만 필요하기에 더욱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까지 이러한 논의가 없었나 보네요. 하여튼 이건 나중에 따로 해야하는 얘기입니다. / 원문이 아닌 모든 한국어는 번역 이름공간으로 가지 않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해석 이름공간에는 "현대 한국어로 풀어서 설명한 것"만을 포함하고,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옮긴 것은 포함하지 않는 건가요? 아님 해석 문서에 가능하면 둘 다 기재하는 건가요?--[[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2:58 (KST) ::::: 둘 다 포함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원문도 원문에 따라 한자만 있는 경우, 한글 독음을 달아둔 경우, 원문 내에서 아에 풀이까지 해주는 경우가 모두 있는데 독음을 달아주는 것을 포함해 원문에 무엇인가를 보충하는 것을 편집자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면 독자 입장에서 원문에는 없는데 따로 달아준 것인지, 아니면 원문에 이미 있던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테니 확실히 구별해 표시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위키문헌은 원문을 그대로 넣는 곳"이라고 소개하면서 정작 저런 것 하나하나를 봐 주기 시작하면 결국은 "어디까지 괜찮은가"라는 문제가 생기고 결국은 다시 중구난방으로 돌아가는 셈일 것이고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07 (KST) === 자바스크립트를 통한 "해석" 버튼 표시 === 이름공간을 실제로 도입할 경우 원문과 해석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줄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상단에 틀을 부착하는 방식도 나쁘지는 않으나, 타 사이트에서 영감을 얻어서 상단에 링크 버튼을 추가하는 스크립트를 제작해왔습니다. ; 스크립트 설명 일반 이름공간(ns:0)의 문서일 경우 "문서"와 "토론" 사이에 "해석"으로 가는 링크를, 해석 이름공간(가칭)의 경우 "해석"과 "토론" 사이에 "문서"로 가는 링크를 삽입해줍니다. 도입 시 아마도 [[미디어위키:common.js]]에 해당 내용을 삽입해서 모든 사용자에게 표시되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스크립트 실험판 크게 두 버전을 만들었는데, 둘 중 어떤 것이 더 나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관련해서 여러분의 의견을 꼭 받고 싶습니다. : '''[[사용자:Aspere/haeseoktest.js|버전 1]]''': 상대편 문서가 없을 경우 빨간 링크로 표시합니다. :* 장점: 문서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만큼, 활동 유도에 효과적입니다. :* 단점: 모든 문서가 해석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너무 과도한 표시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 '''[[사용자:Aspere/haeseoktest-withoutlink.js|버전 2]]''': 상대편 문서가 없을 경우 아에 링크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 장점: 깔끔하고 해석문이 필요 없을 경우에 편리합니다. :* 단점: 해석문으로 가는 링크가 없어지는 셈이다 보니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접근하기 어려워집니다. 토론 문서도 존재하지는 않지만 빨간 링크로 표시하고 있으며, 영어 위키낱말사전 등에서는 Citations 이름공간이 별도로 있는데 이 경우에도 문서가 없더라도 그대로 표시하고 있으므로 첫 번째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en:wikt:위키백과]] 필요 없는 문서에서는 별도 틀로 숨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추가로 여기에서도 Gadget-DocTabs.js를 이미 사용 중입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04 (KST) :옳으신 말씀입니다. 또 그걸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공부해와야겠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13 (KST) ; 스크립트 사용해 보기 [[특수:내사용자문서/common.js]]에 다음 줄을 삽입해 주세요. '''두 개를 동시에 넣지 마세요!''' * '''버전 1''': <code><nowiki>importScript("User:Aspere/haeseoktest.js");</nowiki></code> ([[사용자:Aspere/haeseoktest.js]]) * '''버전 2''': <code><nowiki>importScript("User:Aspere/haeseoktest-withoutlink.js"); </nowiki></code> ([[사용자:Aspere/haeseoktest-withoutlink.js]]) 현재 스크립트는 "해석" 이름공간이 없는 만큼 "번역" 이름공간으로 작동하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표시되는 모습은 [[언간독]] 및 [[번역:언간독]] 문서를 보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3일 (목) 18:31 (KST) :일단 첫 번째 버전부터 [[특수:고유링크/354414|common.js 생성]]을 통해 테스트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3:54 (KST) ::* [[User:Aspere/haeseoktest.js]] ::코드를 검토하기 위해 링크를 달아 놓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3:56 (KST) ::: 링크를 좀 눈에 잘 띄게 걸어둘 걸 그랬네요. 신경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3 (KST) ::가젯으로 Gadget-DocTabs.js라는 비슷한 기능이 있고, 이 기능은 하위 문서를 탭으로 보여주는 기능이라 1:1 비교는 어렵겠으나 API 사용을 더 선호하여 선택하신 까닭이 있으실까요?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5 (KST) :::사실 저도 JS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JS 실력이 안 좋기 때문에 상세하게 조언해 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6 (KST) :::: 간단한 이유입니다. 제가 API밖에 몰라서... 저도 이것저것 조합하면서 만든 것이고 "하여튼 작동하니 좋았쓰" 마인드로 완성해서 아마 분명히 개선점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6 (KST) :::::저도 왜 API를 썼는지 이유가 궁금해서 여쭤 본 거고, JS에서 API를 사용하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사실 자바스크립트는 사용자가 사용 중인 컴퓨터나 장치의 에셋을 사용하는 거고, 루아나 API는 서버 에셋을 사용하므로 사실 그 사실만 놓고 본다면 API 써도 문제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5:27 (KST) : <s>$.ready는 현재 depracted된 표현입니다.</s>--[[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08 (KST) :: (대충 진짜 몰랐다는 답변) 혹시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조언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5일 (토) 23:11 (KST) ::: 제가 다른 사항과 착각하였습니다. 그대로 사용하셔도 무방합니다.--[[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26일 (일) 18:12 (KST) == 문헌 사랑방의 대량 메시지 == 낱말사전의 경우에는 [[:분류:메시지 전달을 받지 않는 사용자]] 분류를 추가하고 아예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대량 메시지를 받지 않거나, 다른 공간에 모아 두는 것으로 작년에 사용자들(지금은 없지만...)간 협의를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메타에서 이러한 대량 메시지를 받아야 하는가 받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은 찾지 못했고, 그래서 낱말사전에서는 메인공간 뿐만 아니라 기간별 하위 문서에도 대량 메시지를 지웠거나 아예 받지 않습니다. [[w:위키백과:사랑방_(기술)/2025년_1월#MediaWiki_message_delivery_봇의_오동작|백과 사랑방에 오동작 보고]]를 잘못 올리면서 생각난 건데, 문헌에서도 의논하려고 생각을 해 뒀다가 잊은 내용이라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문헌 사랑방에서 가장 먼저 노출되어야 하는 건 문헌 사용자들이 문헌에 관해 남기는 의견이지 메타에서 뭐 규정 만들거나 행사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절대 다수의 메시지가 문헌과는 관련도가 크지 않은 안건이고, 대량 메시지 내용이 더 많아서 사실상 '정보 공해'라고 생각합니다. 문헌 사용자들도 메시지에 적힌 요청처럼 한국어로 번역을 해 준다거나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습니다. 현재 대량 메시지는 모두 지우고, 이후 기간별 하위 문서가 만들어질 경우 그 하위 문서들에도 위 분류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3:48 (KST) :{{찬성}} 이전과 달리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진 만큼 충분히 신경써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받지 않는 것은 좀 너무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따로 받는 곳을 만드는 게 어떨까 싶은데 기술적인 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14:11 (KST) ::{{ㄷ|Aspere}} 딱 제 수준에서는 아예 사랑방을 남겨 두고 자유게시판을 새로 만든 다음 자유게시판에 메시지 거부 분류를 넣는 식의 트릭을 떠 올릴 수 있긴 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24일 (금) 21:13 (KST) :[[:w:백:소식지]] 처럼 격리소를 만들어 두는 방안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0일 (목) 21:44 (KST)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위키백과에 그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네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22:10 (KST) 특별한 의견이 없으면 위에서 레비님이 말씀해주신 것을 참고해서 [[위키문헌:소식지]](가칭)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일단 해 보고 안 맞는 것 같으면 그 때 없애도 되니까요.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22:10 (KST) :{{ㄷ|Revi C.|Aspere}} 잘 모르는 게 사실이긴 하나, 완벽한 격리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술상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위키백과 소식지 공간이 좋은 예시인 건 사실인데, 사실 위키백과 사랑방은 소식지 공간이 있어도 사실 몇몇 대량 메시지가 올라 옵니다. 이건 대량 메시지 봇의 소스코드를 확인해 봐야 하는 부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3:16 (KST) ::관련 HTML 태그에 뭐 디자인 넣을 때 쓰는 class 같은 거에 표시해 놓고 봇이 식별해서 보내는 건가 싶긴 합니다. 사실 저도 봇이랑 가상 키보드 만들 때 그걸 찾는 식으로 구문을 작성하고 효과 띄우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용자:Jeebeen|Jeebeen]] ([[사용자토론:Jeebeen|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3:19 (KST) :: 대량메시지의 발송은 '대량메시지 목록'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메타의 대량메시지 목록을 수정하면 됩니다. — regards, [[User:-revi|<span style="color:green;font-family:Courier new, serif;font-variant:small-caps">Revi</span>]] 2025년 1월 31일 (금) 14:12 (KST) {{알림}} [[문:소식지]] 문서를 만들어서 현재까지 사랑방에 올라온 대량메시지를 옮겨 두었습니다. 또한 메타에 있는 대량메시지 수신 목록도 보이는 대로 소식지 쪽으로 가게끔 수정했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2월 6일 (목) 00:20 (KST) == Request to buy book == There is a book I want to buy, but I want to ask first: #Is this book available? #I'm willing to give you people money to buy this in South Korea since I don't have a South Korean phone and thus I can't register an account. Do you guys accept Venmo payments? [https://www.hanauction.com/htm/off_auction_read.htm?id=6593&off_id=35&page=9&ac_num=44&PHPSESSID=69f7e0e46946ba4f2df13a4e2dc69561] [[사용자:Blahhmosh|Blahhmosh]] ([[사용자토론:Blahhmosh|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12:13 (KST) :It was already sold out more than 10 years ago. You already know that copy of this book is available on Nat'l Library of Korea. [[:File:NLK-한古朝46-가2239 竹溪遺稿.pdf]] Is there any particular reason you need an original copy? --[[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19:40 (KST) ::This book is also available for checkout at the [https://clio.columbia.edu/catalog/3791963?counter=1 Columbia University Library], fyi.--[[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30일 (목) 19:42 (KST) ::The reason I want another copy is because this copy you posted has many worn out characters, so I need another copy of this book to fill in all the worn out characters with the correct characters @[[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Blahhmosh|Blahhmosh]] ([[사용자토론:Blahhmosh|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5:24 (KST) :::I'll ask the library near where I live if it is possible to borrow or check books.--[[사용자:Namoroka|Namoroka]] ([[사용자토론:Namoroka|토론]]) 2025년 1월 31일 (금) 05:29 (KST) == 관리자 선거 절차 일부 수정 제안 == [[위키문헌토론:관리자 선거 절차#당선자 결정에서의 조건 2 (반대표보다 최소 20표 이상 많은 찬성표) 삭제 제안|위키문헌토론:관리자 선거 절차]]에서 관리자 당선을 결정할 때의 조건 중 하나로 써 있는 "반대표보다 최소 20표 이상 많은 찬성표" 조문을 삭제하면 어떨까 하는 토론을 발제하였습니다. 한 번씩 읽어보시고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2월 10일 (월) 02:15 (KST) == 국회회의록 에디터톤 마무리 == 지난 1월 한 달 동안 진행되었던 [[문:국회회의록 에디터톤|국회회의록 에디터톤]]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참여자 여러분 덕분에 위키문헌 내부의 문서 보충과 더불어 위키백과 문서와의 연계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에디터톤 결과는 [[위키문헌:국회회의록 에디터톤/채점표]] 문서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종합 순위 * 1위 (1명): [[사:ZornsLemon|ZornsLemon]] (750,029 바이트) * 2위 (2명): [[사:Aspere|Aspere]] (599,680 바이트), [[사:Raccoon Dog|Raccoon Dog]] (334,597 바이트) * 3위 (1명): [[사:jjw|jjw]] (105,491 바이트) * 한자 서브 챌린지 참여자: [[사:ZornsLemon|ZornsLemon]] (92,683 바이트), [[사:Aspere|Aspere]] (5,573 바이트) ; 주제별 완성한 문서 {| class="wikitable" |- ! 시기·사건 !! 문서 |- | [[:w:대한민국 제헌 헌법|대한민국 제헌 헌법]]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헌/제1회/제2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헌/제1회/제6차]] |- | [[:w:국회 프락치 사건|국회 프락치 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헌/제3회/제1차]] |- | [[:w:사사오입 개헌|사사오입 개헌]]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3대/제19회/제90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3대/제19회/제91차]] |- | [[:w:4·19 혁명|4·19 혁명]] |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7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8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9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0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1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2차]] * [[국회본회의_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4대/제35회/제13차]] |- | [[:w:국회 오물투척사건|국회 오물투척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6대/제58회/제14차]] |- | [[:w:삼선 개헌|삼선 개헌]]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7대/제69회/제3차]] |- | [[:w: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10대/제103회/제2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10대/제103회/제5차]] |- | [[:w: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 (한글 텍스트화)/제12대/제132회/개회식]]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12대/제132회/개회식]] |- | [[:w: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19대/제320회/제2차]] |- | [[:w: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22대/제418회/제16차]] * [[국회본회의 회의록/제22대/제419회/제4차]] |} [[사용자:Aspere|Aspere]] ([[사용자토론:Aspere|토론]]) 2025년 2월 10일 (월) 14:47 (KST) == 색인 이름공간 == 관련 틀을 수정 중이어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 편집 버튼을 누른 후 아무 내용도 수정하지 않고 바로 저장([[w:WP:NULL|Null edit]])하면 정상적으로 표시됩니다. 곧 수정할 예정이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2월 23일 (일) 03:10 (KST) [[분류:메시지 전달을 받지 않는 사용자]] == [[위키문헌:저작권 토론]] (가칭) 신설 제안 == 지금 각 문서의 저작권 관련 논의는 각 토론 문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서의 내용에 관련한 논의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나, 가시성이 너무 떨어져서 정말 "부르지 않으면 모르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의견을 받자고 토론을 여는 것인데 몰라서 의견을 못 남기는 건 좀 역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판의 [[:en:Wikisource:Copyright discussions|Wikisource:Copyright discussions]]을 도입하여 이러한 논의를 한 곳으로 모아 진행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w:백:삭제 토론|위키백과의 삭제 토론]]처럼 관련 논의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부르지 않아도"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좀 더 넓혀보자는 취지입니다. 해당 문서에는 삭제 토론 틀처럼 별도의 틀을 달아 안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당 문서의 이름은 일단 직역하긴 했는데 어감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아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영어판에서 토론 알림용으로 사용하는 <nowiki>{{</nowiki>[[:en:Template:Copyvio|Copyvio]]<nowiki>}}</nowiki>는 한국어판에 {{틀|저작권 의심}}으로 일단 존재는 하지만 한 번 손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핑|Namoroka|ZornsLemon}} 저작권 논의 관련해서 특히 활발히 활동하시는 사용자 분들이라 생각해서 호출드립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9일 (일) 22:08 (KST) :저작권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라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3월 9일 (일) 22:21 (KST) ::괜찮은 것 같습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3월 12일 (수) 00:52 (KST) {{알림}} [[위키문헌:저작권 토론]] 문서를 생성하였습니다. 이게 토론 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시험적인 성격으로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Aspere|Aspere]] ([[사토:Aspere|토론]]) 2025년 3월 12일 (수) 17:43 (KST) == [[위키문헌토론:저작권 정책#저작권 정책 개정]]에 관하여 == 안녕하세요 여러분. 현재 저작권 정책의 일부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토론을 개설하였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사:Takipoint123|Takipoint123]] ([[사토:Takipoint123|토론]]) 2025년 3월 13일 (목) 02:30 (KST) == Photocopying Ancient texts in SKY and other universities == Hello. I'm planning on going to South Korea some time in April because some ancient historical texts are stored there that I need to copy. Can you check with me on the photocopying and loaning policies of these universities? I don't speak Korean, so I had a really hard time understanding their photocopying and loaning policies. *https://lib.pusan.ac.kr/ *https://lib.kookmin.ac.kr/ *https://library.history.go.kr/ *https://library.kmu.ac.kr *https://east.skku.edu/ *https://library.korea.ac.kr/ *https://library.sogang.ac.kr/ *https://library.yonsei.ac.kr/ *http://kostma.korea.ac.kr/ *https://library.cnu.ac.kr/ *https://ndlsearch.ndl.go.jp *http://www.library.pref.osaka.jp/site/nakato/english-nakato.html *https://lib.ewha.ac.kr/ *https://dldml2xhd.tistory.com/15920276 *https://lib.snu.ac.kr *https://lib.khu.ac.kr *https://lib.gnu.ac.kr *https://lib.dongguk.edu/search/detail/CATTOT000000239323 *https://www.nfm.go.kr *https://libs.yu.ac.kr/ *https://lib.jnu.ac.kr/ *https://elibrary.wku.ac.kr/ *https://dl.jbnu.ac.kr/ *https://www.gogung.go.kr/ Specifically, I want to see what their policies on scanning ancient historical texts are. I've searched the internet and couldn't find anything related to some of them.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3월 23일 (일) 15:02 (KST) :Oh, and one more thing, I'm here because I want to read '''ancient historical texts''', which are obviously very fragile, so do I need special permissions to read these books? And is it possible to scan these books? [[사:Blahhmosh|Blahhmosh]] ([[사토:Blahhmosh|토론]]) 2025년 3월 23일 (일) 15:04 (KST) == 韓語維基文庫《大韓民國憲法》文本之原貌問題及設立大使館頁面之建議 |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本文|본문}}의{{ruby|原型|원형}}{{ruby|問題|문제}}및{{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ruby|設立|설립}}{{ruby|提案|제안}} ==   (本人母語爲漢語而非韓語,韓語文本乃程式翻譯所成,或有錯誤或未臻完善,尚祈海涵。答覆若用漢文(古漢文、今白話文皆可)、英文、德文,則在下能直接讀之;亦歡迎韓文回覆,在下將以翻譯程式讀之。)   (저의{{ruby|母國語|모국어}}는{{ruby|中國語|중국어}}이며{{ruby|韓國語|한국어}}가아닙니다.{{ruby|本|본}}{{ruby|韓國語|한국어}}{{ruby|本文|본문}}는{{ruby|機械|기계}}{{ruby|飜譯|번역}}으로{{ruby|作成|작성}}된것이므로{{ruby|誤謬|오류}}나{{ruby|未洽|미흡}}한{{ruby|部分|부분}}이있을수있습니다.{{ruby|諒解|양해}}부탁드립니다.{{ruby|答辯|답변}}이{{ruby|漢文|한문}}({{ruby|古文|고문}},{{ruby|現代|현대}}{{ruby|白話文|백화문}}모두{{ruby|可能|가능}}),{{ruby|英語|영어}},{{ruby|獨逸語|독일어}}로{{ruby|作成|작성}}될{{ruby|境遇|경우}}저는{{ruby|直接|직접}}읽을수있습니다.{{ruby|韓國語|한국어}}로{{ruby|答辯|답변}}하셔도좋으며,{{ruby|飜譯|번역}}프로그램을통해읽겠습니다.) === 一、《大韓民國憲法》文本之原貌問題 === === {{ruby|一|일}}.《{{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本文|본문}}의{{ruby|原型|원형}}{{ruby|問題|문제}} ===   考諸韓語維基文庫[[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所收錄之文本,皆以純諺文示之。然而,按其歷史,該等憲法原文蓋爲'''漢諺混寫'''。具體情形如下: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의[[대한민국헌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에{{ruby|收錄|수록}}된{{ruby|本文|본문}}는모두{{ruby|純|순}}한글로만{{ruby|表示|표시}}되어있습니다.그러나그{{ruby|歷史|역사}}에따르면,{{ruby|該當|해당}}{{ruby|憲法|헌법}}의{{ruby|原文|원문}}은{{ruby|大部分|대부분}}'''{{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으로{{ruby|作成|작성}}되었을{{ruby|可能性|가능성}}이큽니다.{{ruby|具體的|구체적}}인{{ruby|狀況|상황}}은다음과같습니다: :* '''自一九四八年至一九八七年之十份《大韓民國憲法》''':於韓語維基百科[[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分類中所收之文本,悉以'''純諺文'''呈示。然考諸相關資料,當時所定之憲法原文,蓋爲'''漢諺混寫'''。 :* '''{{ruby|一九四八年|일구사팔년}}부터{{ruby|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까지의열{{ruby|個|개}}의《{{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百科|백과}}의[[대한민국헌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分類|분류}}에{{ruby|收錄|수록}}된{{ruby|本文|본문}}는모두'''{{ruby|純|순}}한글'''로{{ruby|表示|표시}}되어있습니다.그러나{{ruby|關聯|관련}}{{ruby|資料|자료}}에따르면,{{ruby|當時|당시}}{{ruby|制定|제정}}된{{ruby|憲法|헌법}}의{{ruby|原文|원문}}은{{ruby|大槪|대개}}'''{{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으로{{ruby|作成|작성}}되었을{{ruby|可能性|가능성}}이큽니다. :* '''一九一九年大韓民國臨時政府之《[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章_(1919年) 大韓民國臨時憲章]》與《[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法_(1919年) 大韓民國臨時憲法]》''':見於中文維基文庫,未見於韓語維基文庫。此二文本係臨時政府在華所制,或其原文即爲'''漢文''',然具體情形在下難以考定。 :* '''{{ruby|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ruby|大韓民國臨時政府|대한민국임시정부}}의《[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章_(1919年) {{ruby|大韓民國臨時憲章|대한민국임시헌장}}]》및《[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臨時憲法_(1919年) {{ruby|大韓民國臨時憲法|대한민국임시헌법}}]》''':이는{{ruby|中國語|중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서볼수있으나{{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는{{ruby|收錄|수록}}되어있지않습니다.이두{{ruby|文書|문서}}는{{ruby|臨時政府|임시정부}}가{{ruby|中國|중국}}에서{{ruby|制定|제정}}한것으로,그{{ruby|原文|원문}}이'''{{ruby|漢文|한문}}'''일{{ruby|可能性|가능성}}이있으나{{ruby|具體的|구체적}}인{{ruby|狀況|상황}}은제가{{ruby|確認|확인}}할수없습니다.   按中文維基文庫所錄,'''一九八七年現行本'''《[[s:zh:大韓民國憲法|大韓民國憲法]]》備有漢語翻譯及漢諺混寫原文,而'''一九四八年本'''《[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憲法_(1948年) 大韓民國憲法]》僅見中文翻譯,而無原文。至於'''一九一九年臨時政府之兩文本''',則僅有中文譯本,未詳其原文爲韓文抑或漢文。   {{ruby|中國語|중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ruby|收錄|수록}}된{{ruby|資料|자료}}에따르면,'''{{ruby|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ruby|現行本|현행본}}'''《[[s:zh:大韓民國憲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은{{ruby|漢字|한자}}{{ruby|飜譯|번역}}및{{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ruby|原文|원문}}이{{ruby|包含|포함}}되어있고,'''{{ruby|一九四八年本|일구사팔년본}}'''《[https://zh.wikisource.org/wiki/大韓民國憲法_(1948年) {{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은{{ruby|中國語|중국어}}{{ruby|飜譯|번역}}만있고{{ruby|原文|원문}}은{{ruby|包含|포함}}되어있지않습니다.또한,'''{{ruby|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ruby|臨時政府|임시정부}}의두{{ruby|文書|문서}}'''역시{{ruby|中國語|중국어}}{{ruby|飜譯|번역}}만있고{{ruby|原文|원문}}이{{ruby|韓國語|한국어}}인지{{ruby|漢文|한문}}인지{{ruby|明確|명확}}하지않습니다.   據此推想,自一九四八年至一九八七年之各版本,皆應以'''漢諺混寫'''爲原文。今韓語維基文庫所存者純以諺文示之,或非原貌。   이에비추어보면,{{ruby|一九四八年|일구사팔년}}부터{{ruby|一九八七年|일구팔칠년}}까지의모든버전은'''{{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으로{{ruby|作成|작성}}되었을{{ruby|可能性|가능성}}이큽니다.{{ruby|現在|현재}}{{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있는{{ruby|텍스트|rext}}는{{ruby|純|순}}한글로만{{ruby|表示|표시}}되어있어{{ruby|原型|원형}}을{{ruby|完全|완전}}히{{ruby|反映|반영}}하지못하고있을수있습니다.   是以建議:   따라서다음과같은{{ruby|提案|제안}}을드립니다: :* '''於韓語維基文庫[[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分類下,補全各版本憲法之原始漢諺混寫文本,並明示其爲原始文獻。''' :*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의[[대한민국헌법|{{ruby|大韓民國憲法|대한민국헌법}}]]{{ruby|分類|분류}}하에{{ruby|各|각}}버전의{{ruby|憲法|헌법}}의{{ruby|原來|원래}}{{ruby|漢字|한자}}한글{{ruby|混用|혼용}}{{ruby|本文|본문}}를{{ruby|補完|보완}}하고,이를{{ruby|原文|원문}}으로{{ruby|明示|명시}}하십시오.''' :* '''如一九一九年臨時政府之憲章及憲法原文爲漢文,則亦宜補錄考定並註明為原始文獻。''' :* '''{{ruby|萬若|만약}}{{ruby|一九一九年|일구일구년}}{{ruby|臨時政府|임시정부}}의{{ruby|憲章|헌장}}및{{ruby|憲法|헌법}}의{{ruby|原文|원문}}이{{ruby|漢文|한문}}이라면,이를{{ruby|調査|조사}}하여{{ruby|原文|원문}}으로{{ruby|追加|추가}}하고{{ruby|原本|원본}}{{ruby|資料|자료}}임을{{ruby|明示|명시}}하십시오.''' === 二、設立大使館頁面之建議 === === {{ruby|二|이}}.{{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ruby|設立|설립}}{{ruby|提案|제안}} ===   各語言之維基文庫,多於社群入口設立'''大使館'''頁面,以便非該語言之使用者得以溝通聯繫。例如:   여러{{ruby|言語|언어}}의위키{{ruby|文獻|문헌}}에서는{{ruby|大槪|대개}}{{ruby|使用者|사용자}}커뮤니티의{{ruby|入口|입구}}에'''{{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를{{ruby|設定|설정}}하여그{{ruby|言語|언어}}를모르는{{ruby|使用者|사용자}}도{{ruby|連絡|연락}}하고{{ruby|疏通|소통}}할수있도록하고있습니다.{{ruby|例|예}}를들어: :* '''[https://zh.wikisource.org/wiki/Wikisource:大使館 中文維基文庫大使館]''':提供官話白話文外十五種語文之導引,且於[https://zh.wikisource.org/wiki/社群主頁 社群主頁]設有英語入口,便於搜尋。 :* '''[https://zh.wikisource.org/wiki/Wikisource:大使館 {{ruby|中國語|중국어}}위키{{ruby|文獻|문헌}}{{ruby|大使館|대사관}}]''':{{ruby|官話|관화}}{{ruby|白話文|백화문}}외에도{{ruby|十五個|십오개}}{{ruby|言語|언어}}로{{ruby|案內|안내}}를{{ruby|提供|제공}}하며,[https://zh.wikisource.org/wiki/社群主頁 {{ruby|使用者|사용자}}모임]{{ruby|페이지|page}}에{{ruby|英語|영어}}로된{{ruby|入口|입구}}가있어{{ruby|檢索|검색}}이{{ruby|容易|용이}}합니다.   然本人於嘗試聯繫韓語維基文庫社群時,未能於社群主頁或其他入口見設大使館頁面。爲促進跨語言交流與合作,故建議:   그러나제가{{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ruby|使用者|사용자}}모임와{{ruby|連絡|연락}}을{{ruby|試圖|시도}}했을때,커뮤니티{{ruby|主要|주요}}{{ruby|페이지|page}}나다른{{ruby|入口|입구}}에서{{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를찾을수없었습니다.{{ruby|言語間|언어간}}{{ruby|疏通|소통}}과{{ruby|協力|협력}}을{{ruby|促進|촉진}}하기위해,다음과같은{{ruby|提案|제안}}을드립니다: :* '''於韓語維基文庫設立大使館頁面,並以主要國際語言(如英語、漢語等)標示聯繫方法,以便異語使用者能通暢聯絡。''' :* '''{{ruby|韓國語|한국어}}위키{{ruby|文獻|문헌}}에{{ruby|大使館|대사관}}{{ruby|페이지|page}}를{{ruby|設立|설립}}하고,{{ruby|主要|주요}}{{ruby|國際|국제}}{{ruby|言語|언어}}(例:{{ruby|英語|영어}},{{ruby|中國語|중국어}}등)로{{ruby|連絡|연락}}{{ruby|方法|방법}}을{{ruby|表示|표시}}하여다른{{ruby|言語|언어}}{{ruby|使用者|사용자}}들이{{ruby|圓滑|원활}}히{{ruby|連絡|연락}}할수있도록하십시오.'''   謹此奉陳,並頌 文祺。   {{ruby|謹呈|근정}}합니다. {{ruby|文運|문운}}을기원합니다. ::::[[사:Xsgzjmxs|Xsgzjmxs]] ([[사토:Xsgzjmxs|토론]]) 2025년 4월 3일 (목) 15:28 (KST) :{{답장|Xsgzjmxs}}, [[:zh:大韓民國臨時憲章 (1919年)]]와 [[:zh:大韓民國臨時憲法 (1919年)]]는 중국어 번역문이며, 당시 실제 원문은 말씀하신대로 국한문혼용의 한국어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맞습니다. 두 문서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호)]] 및 [[대한민국임시헌법 (제2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임시헌법 (제2호)]]의 경우 순한글로만 기록되어 있어 수정이 필요해 보이네요.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ij_001_0010_00010]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ij_001_0010_00020] / 대사관은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이 있으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4월 3일 (목) 21:47 (KST) :예를 들어 [[대한민국헌법 (제1호) 국한문]]에 국한문 제헌헌법을 올려두었습니다. [[사:ZornsLemon|Z.Lemon]] ([[사토:ZornsLemon|토론]]) 2025년 4월 3일 (목) 22:21 (KST) :: 有勞相助,甚爲感念!<br>  援助을주심에깊이感謝드립니다. ::   另有一事欲就教於君:竊以爲《大韓民國憲法》(第一號)之[[대한민국헌법 (제1호) 국한문|漢諺混寫本]]與[[대한민국헌법_(제1호)|純諺文本]]實係同一文本,並無實質差異,故其於維基文庫之編排,或可共列於一頁之中,且陳明以漢諺混寫者爲原文,純諺文者爲其對應之譯本。如此編次,不惟便於讀者參照比較,亦可避免彼此分置而互無指引之弊。蓋若分頁而置,且不設標示,則閱者或見其一而不知其二,未免有所遺闕。<br>  또한가지아뢰고자하는바가있습니다:思索건대《大韓民國憲法》(第一號)의[[대한민국헌법 (제1호) 국한문|漢字한글混用本]]과[[대한민국헌법_(제1호)|純粹한글本]]은實質的으로同一한文獻으로,內容上別다른差異는없사온즉,維基文獻에서는兩本文을一페이지에倂記하고,混用本을原文으로삼아純한글本을그對應飜譯으로明記함이어떨까합니다.이와같이編輯한다면,讀者가兩本을對照해읽기에容易할뿐만아니라,兩本을따로이配置하되서로간아무런案內도없을境遇,한쪽만보고他쪽의存在를알지못하게되는弊端도막을수있으리라思料됩니다. ::   又據《大韓民國憲法》(第一號)[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e/2007_11_25_WarMemorial_120.JPG 實物照片],觀其版面所用空格分詞,與今行標準略有不同。譬如首頁一段,原應爲:<br>  아울러《大韓民國憲法》(第一號)[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e/2007_11_25_WarMemorial_120.JPG 實物寫眞]에따르면,그紙面에使用된空白區分方式은現行表記基準과다소差異가있사옵니다.例컨대初頁의本文은다음과같이되어야할것입니다: :: :: [[파일:2007 11 25 WarMemorial 120.JPG|섬네일|《大韓民國憲法》(第一號)實物寫眞]] :: :: ::::  大韓民國憲法 ::::   前 文 :::: 悠久한歷史와傳統에빛나는 우리들大韓國民은 己未三一運動으로大韓民國을建立하여 世界에宣布한偉大한獨立精神을繼承하여 이제民主獨立國家를再建함에있어서 正義人道와同胞愛로써民族의團結을鞏固히하며 모든社會的弊習을打破하고 民主主義諸制度를樹立하여政治、經濟、社會、文化의모든領域에있어서各人의機會를均等히하고 能力을最高度로發揮케하며 各人의責任과義務를完遂⋯⋯ :: ::   依此觀之,維基文庫之錄文,或應如實反映原始版本之格式,庶幾尊重史實,保存原貌。誠願編輯諸君詳察之。<br>  이와같이살펴볼때,위키文獻의收錄文은原本의形式을忠實히反映함이마땅할것이며,그리함으로써歷史的事實을尊重하고元來의面貌를保存하는데에도貢獻할수있으리라信합니다.
바라건대編輯에關係되신여러先生님들께서깊이살펴주시기를仰望하옵니다. :: 
  順頌<br>時綏。 :: [[사:Xsgzjmxs|Xsgzjmxs]] ([[사토:Xsgzjmxs|토론]]) 2025년 4월 11일 (금) 10:12 (KST) == Digital Library of the National Library of Korea on Wikimedia Commons == [[c:Category:Books_in_the_Digital_Library_of_the_National_Library_of_Korea]] [[사:維基小霸王|維基小霸王]] ([[사토:維基小霸王|토론]]) 2025년 5월 20일 (화) 20:38 (KST) == 한국 저작권 틀 개정 관련 == * [[틀:PD-대한민국/연습장|틀:PD-대한민국]] ([[commons:Template:PD-South Korea|Template:PD-South Korea]]) * [[틀:PD-대한민국-법인/연습장|틀:PD-대한민국-법인]] ([[commons:Template:PD-South Korea-organization|Template:PD-South Korea-organization]]) → 기존의 [[틀:PD-대한민국-업무상]] * [[틀:PD-대한민국-무명/연습장|틀:PD-대한민국-무명]] ([[commons:Template:PD-South Korea-anon|Template:PD-South Korea-anon]]) * [[틀:PD-대한민국-비보호/연습장|틀:PD-대한민국-비보호]] ([[commons:Template:PD-South Korea-exempt|Template:PD-South Korea-exempt]]) → 기존의 [[틀:PD-대한민국]] 한국 저작권 틀을 공용에 맞추어 개정하려고 하는데 이름을 정하는데 있어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명칭을 "PD-대한민국"과 "PD-South Korea"와 같이 한글과 영문 중 무엇으로 해야할지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위키문헌:사랑방#저작권 틀의 번역명]]에서 이미 영문명으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남기긴 하였는데, [[틀:PD-대한민국]]의 경우 거의 만 개에 가까운 문서에 사용 중이어서 영향이 클 것 같아 한 번 더 여쭤봅니다.--[[사:Namoroka|Namoroka]] ([[사토:Namoroka|토론]]) 2025년 6월 8일 (일) 20:22 (KST) hx6v56q04ckts3nw81nxl6ex4xknqhh 색인:조선말규범집(1988).pdf 252 90701 390457 335907 2025-06-08T11:42:47Z Namoroka 1939 390457 proofread-index text/x-wiki {{:MediaWiki:Proofreadpage_index_template |종류=book |제목=[[조선말 규범집 (1987년)|조선말규범집]] |언어=ko-KP |권= |저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번역자= |편집자= |삽화가= |학교= |출판사=사회과학출판사 |위치=평양 |연도=1988 |정렬 키=조선말규범집1987 |ISBN= |OCLC= |LCCN= |BNF_ARK= |ARC= |DOI= |출처=pdf |그림=1 |진행 상황=C |쪽별 색인=; 표지 <pagelist from=1 to=2 1=표지 2=- 3=1 5=1 8=1 /> ; 머리말 <pagelist from=3 to=4 3=1 /> ; 차례 <pagelist from=5 to=7 5=1 /> ; 본문 <pagelist from=8 8=1 93=서지 94=- /> |권별 색인= |목차= |너비= |머리말= |꼬리말= }} gere59i8ar2gv26b4fqv2ukucc1fm8j 조선말 규범집 (1987년)/띄여쓰기 0 90780 390473 334081 2025-06-08T11:43:31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87)/띄여쓰기]]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87년)/띄여쓰기]]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4081 wikitext text/x-wiki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1988).pdf" from="30" to="62" /> r9qwvl6z4an7lh64q95b1o14p51u8o2 색인:조선말규범집 4칙규범(2016).pdf 252 90796 390458 334395 2025-06-08T11:42:57Z Namoroka 1939 390458 proofread-index text/x-wiki {{:MediaWiki:Proofreadpage_index_template |종류=book |제목=[[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규범집]] |언어=ko-CN |권= |저자=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번역자= |편집자= |삽화가= |학교= |출판사=연변교육출판사 |위치=연변 |연도=2016 |정렬 키= |ISBN= |OCLC= |LCCN= |BNF_ARK= |ARC= |DOI= |출처=pdf |그림=1 |진행 상황=C |쪽별 색인=; 표지 <pagelist from=1 to=2 1=표지 2=서지 /> ; 본문 <pagelist from=3 3=1 /> |권별 색인= |목차= |너비= |머리말= |꼬리말= }} k0j3hapcso8uo0zpetgt5zqc4uikhw6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띄여쓰기 0 91164 390513 335754 2025-06-08T11:43:37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조선말 띄여쓰기]]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띄여쓰기]]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5754 wikitext text/x-wiki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 4칙규범(2016).pdf" from="50" to="63" /> 2or2px5x5tos1d12v8cd197ve5z7sox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문장부호법 0 91237 390519 335895 2025-06-08T11:43:37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조선말 문장부호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문장부호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35895 wikitext text/x-wiki <pages index="조선말규범집 4칙규범(2016).pdf" from="64" to="83" /> qjg0q4jballhw9hs19zazk6zmlidlr8 색인:조선말규범집(2010).pdf 252 91244 390455 335913 2025-06-08T11:42:28Z Namoroka 1939 390455 proofread-index text/x-wiki {{:MediaWiki:Proofreadpage_index_template |종류=book |제목=[[조선말 규범집 (2010년)|조선말규범집]] |언어=ko-KP |권= |저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번역자= |편집자= |삽화가= |학교= |출판사= |위치=평양 |연도=2010 |정렬 키= |ISBN= |OCLC= |LCCN= |BNF_ARK= |ARC= |DOI= |출처=pdf |그림=1 |진행 상황=X |쪽별 색인=; 표지 <pagelist from=1 to=1 1=표지 /> ; 본문 <pagelist from=2 2=4 /> |권별 색인= |목차= |너비= |머리말= |꼬리말= }} 0yfbqjng2584bnvfr1hhdi0o9tiqpvh 390456 390455 2025-06-08T11:42:43Z Namoroka 1939 390456 proofread-index text/x-wiki {{:MediaWiki:Proofreadpage_index_template |종류=book |제목=[[조선말 규범집 (2010년)|조선말규범집]] |언어=ko-KP |권= |저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어사정위원회 |번역자= |편집자= |삽화가= |학교= |출판사= |위치=평양 |연도=2010 |정렬 키= |ISBN= |OCLC= |LCCN= |BNF_ARK= |ARC= |DOI= |출처=pdf |그림=1 |진행 상황=C |쪽별 색인=; 표지 <pagelist from=1 to=1 1=표지 /> ; 본문 <pagelist from=2 2=4 /> |권별 색인= |목차= |너비= |머리말= |꼬리말= }} nyfx9usljch9n66x3xnx6wraeglkv6d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 0 94664 390517 347176 2025-06-08T11:43:37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76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div> (1978년 12월 5일,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2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1. 기존 어휘들은 그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새 명사, 술어는 조선말 단어조정법에 맞게 만들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한어나 다른 언어에서 바당들여 쓴다. :3.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는 되도록 알기 쉬운 말로 바꾸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4.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은 '원음에 따르고 습관을 존중'하는 원칙에 좇아 처리한다. <div style="text-align:center;">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의 구체적 방안</div> ==제1장 기존 어휘들에 대한 처리== 기존 어휘들은 그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class="wikitable" | {| |례: |- |경색(竞赛) | →경쟁 |- |성본(成本) | →원가 |- |풍수(丰收) | →풍작 |- |연원(演员) | →배우 |} |} 기존 어휘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생활의 특성에 맞지 않는 것들은 다른 말로 바꾸어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한의 | →중의 |- |상공업 | →공상업 |- |만주흑송 | →동북흑송 |} |} 동의어적 관계를 이룬 두 단어 가운데서 어느 하나로 가려잡기 어려운 것은 두가지를 다 쓸 수 있다. {| class="wikitable" | {| |례: |- |무력간섭 | =무장간섭 |- |변성암 | =변질암 |} |} ==제2장 새명사, 술어에 대한 처리== 새 명사, 술어는 조선말 단더조성법에 맞게 만들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class="wikitable" | {| |례: |- |사과배(苹果梨) |- |선줄군(带头人) |- |대물림보배(传家宝) |- |귀향지식청년(回乡知识青年) |} |}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한어나 다른 언어에서 받아들여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당팔고(觉八股) |- |정풍(整风) |- |대자보(大字报) |- |콰이발(快板) |- |양걸(춤)(秧歌) |- |하다(哈达) |} |} ==제3장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에 대한 처리==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는 될수록 알기 쉬운 말로 바꾸어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class="wikitable" | {| |례: |- |엽충(叶虫) | →되지벌레 |- |가부(家凫) | →집오리 |- |야로비자찌야 | →봄맞이처리 |} |} 대중 속에서 이미 널리 씌여왔고 또 해당되는 조선말이 없는 외래어는 그대로 쓰며 동의어적 관계를 이룬 외래어와 조선말이 다 대중 속에 일정한 기초가 있는 것은 두가지를 다 쓸 수 있다. '''외래어를 쓰는 경우''' {| class="wikitable" | {| |례: |- |뜨락또르(拖拉机) |- |텔레비죤(电视) |- |라지오(收音机) |} |} '''같이 쓰는 경우''' {| class="wikitable" | {| |례: |- |빨찌산 | =유격대 |- |노트 | =공책, 학습장, 필기장 |} |}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할술용어는 일반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에틸알콜(乙醇) |- |말라티온(马拉硫磷) |} |} ==제4장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에 대한 처리==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은 '원음에 따르고 습관을 존중'하는 원칙에 좇아 처리한다. 1) 외국의 인명, 지명, 국가명칭; 신문, 잡지, 통신사의 명칭과 국내 소수민족의 인명, 지명, 민족명칭은 일반적으로 '원음에 따르'는 원칙에 좇아 처리한다. {| class="wikitable" | {| |례: |- |고리끼(高尔基) |- |도꾜(东京) |- |로므니아(罗马尼亚) |- |《쁘라우다(지)》(真理报) |- |우란후(乌兰夫) |- |우룸치(乌鲁木齐) |- |위글족(维吾尔族) |} |} 그러나 습관적으로 조선말 한자음독법으로 써왔거나 의역하여 써온 것은 그대로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호지명(胡志明) |- |일본(日本) |- |장족(藏族) |- |《인민의 소리(지)》(人民之声报) |} |} 2) 한어로 명명된 국내의 인명, 지명과 신문, 잡지, 통신사의 명칭은 전통적 습관에 좇아 일반적으로 조선말 한자음독법으로 처리한다. {| class="wikitable" | {| |례: |- |로신(鲁迅) |- |북경(北京) |- |《인민일보》(人民日报) |- |《인민문학》(人民文学) |} |} 그러나 이미 습관적으로 음차하여 써왔거나 의역하여 써온 것은 그대로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시얼(喜儿) |- |황니허(黄尼河) |- |《붉은기》(《红旗》) |} |} 3) 외국의 당, 정부, 사회단체, 군사 등의 조직기구와 직무의 명칭은 조선말 습관에 맞게 의역하여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朝鲜劳动党中央委员会总书记) |- |미국국무장관(美国国务卿) |- |대통령(总统) |} |} 그러나 국제조직기구의 명칭으로서 원음 대로 써온 것은 그대로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유엔(联合国) |} |} 4) 국내의 당, 정부, 군사 등의 조직기구와 직무의 명칭은 조선말 한자음독법으로 처리한다. {| class="wikitable" | {| |례: |- |전국인민대표대회(全国人民代表大会) |- |국무원판공청(国务院办公厅) |- |지부서기(支部书记) |} |} 그러나 조선말 한자음독법으로 처리하면 조선말 습관에 맞지 않는 것은 의역하여 쓰며 이미 한어음 대로 써온 것은 그대로 쓴다. {| class="wikitable" | {| |례: |- |석탄공업부(煤矿工业部) |- |학생모집위원회(招生委员会) |- |퇀장(团长)(국내의 군사직함에서) |- |패장(排长)(국내의 군사직함에서) |} |} a941y8zgziv2evdk7y5tjox4g4pk049 조선말 규범집 (2016년)/다듬은 말 처리세칙 0 94702 390499 347180 2025-06-08T11:43:35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다듬은 말 처리세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다듬은 말 처리세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0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다듬은 말 처리세칙</div> (1990년 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6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조선과 한국에서 다듬은 말은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2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한 〈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과 우리 나라 언어생활의 구체적 실정에 따라 다음과 같이 처리한다. 우리 나라 언어생활의 현실적 요구에 맞고 과학성 있게 잘 다듬어진 말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쓰고 그렇지 못한 것은 잠시 받아들여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1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같게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같게 다듬어진 말은 본래말과 함께 받아들여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본래말이 어렵거나 잘 쓰이지 않을 경우에는 다듬은 말만 받아들여 쓰고 본래말은 버린다. 1) 본래말과 함께 받아들여 쓰는 경우 {|class="wikitable" | {| |례: |- |가축 | =집짐승 |- |거세 | =불치기 |- |경작지 | =부침땅 |- |쾌도 | =걸그림 |- |내화벽돌 | =불벽돌 |- |린경 | =비늘줄기 |- |사각주 | =빗각기둥 |- |삼륜자전거 | =세바퀴자전거 |- |피공 | =껍질눈 |- |화서 | =꽃차례 |- |엽육 | =잎살 |- |육간장 | =고기간장 |} |} 2) 본래말을 버리고 다듬은 말만 쓰는 경우 {|class="wikitable" | {| |례: |- |엽충 | →돼지벌레 |- |산도 | →밭벼 |- |육괴 | →고기덩이 |} |} ==제2장 조선과 한국에서 서로 달리 다듬어진 말에 대한 처리== 1) 우리 나라 언어생활의 현실적 요구에 맞고 과학성 있게 잘 다듬어진 말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칼고기(검어) |가루콕스(분콕스) |- |알쓸이못(산란지) |눈피해(설해) |- |앞모음(전모음) |종마찌끼(전분박) |- |다짐로라(진압로라) |나물당콩, 남새당콩(채두) |} |} 2) 우리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비추어 과학적 개념이 정밀하지 못한 일부 다듬은 말은 받아들이지 않거나 고쳐 다듬어 쓴다. ① 다듬은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말을 그대로 쓰는 경우 {|class="wikitable" | {| |례: |- |휘거 | ×스케트무용 |- |어육장 | ×물고기장 |- |온수성어족 | ×더운물물고기 |- |입장표 | ×나들표 |- |위 | ×밥통, 밥주머니 |} |} ② 고쳐 다듬어 쓰는 경우 {|class="wikitable" | {| |례: |- |가잠견 | ―뽕누에고치 | →집누에고치 |- |가잠사료 | ―뽕누에먹이 | →집누에먹이 |- |급출발 | ―갑작달리기 | →갑작출발 |- |다이빙 | ―뛰여들기 | →물에 뛰여들기 |- |목형 | ―나무신골 | →나무골 |- |목야 | ―나무풀판 | →목축벌 |- |매파 | ―중매군 | →중매할멈 |- |봉고도 | ―장대뛰기 | →장대높이뛰기 |- |시간종료신호 | ―끝신호 | →시간끝신호 |- |종련락 | ―곧추보내기 | →세로보내기 |- |종모돈 | ―종자수퇘지 | →씨수퇘지 |- |종빈돈 | ―종자암퇘지 | →씨암퇘지 |} |} 3) 몇개의 다듬은 말이 있지만 어느 하나로 고착시키기 어려운 것은 잠시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말을 그대로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방파제 | ←물결막이뚝, 갯둑 |- |보식 | ←누비기, 때워심기, 끼워심기 |- |부란병 | ←물커짐병, 물컹병 |- |백혈구 | ←흰피알, 흰피톨 |- |적혈구 | ←붉은피알, 붉은피톨 |- |혈청료법 | ←피물료법, 피말강이 |} |} 4) 단어화하지 못하고 해석식으로 풀이되였거나 어색하게 다듬어져 우리 나라 인민대중들 속에 자리를 잡기 어려운 일부 다듬은 말은 잠시 받아들여 쓰지 않고 본래말을 그대로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가로횡단면 | ×거리길 가로자름면 |- |가변지수 | ×변하는 어깨수 |- |가식성숙기 | ×먹게 익은 때 |- |가식포 | ×림시 심은 밭 |- |가조종 | ×조종할 수 있는 |- |가측 | ×잴 수 있는 |- |가해문제 | ×풀리는 문제 |- |가해성 | ×풀이 있음성 |- |고기축적기 | ×물고기 쌓는 기계 |- |고사률 | ×말라죽는 률 |- |난연성 | ×타기 힘듦성 |- |량성동주 | ×암수 같은 그루 |- |부향제 | ×냄새돋굼감 |- |피하주사 | ×살가죽밑주사 |} |} 5) 합성어에서 소괄호를 쳐 만들어진 다듬은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말을 그대로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련속영접 | ×련속(차)맞이 |- |소암양신경 | ×작은바위(모양)신경 |- |수탁역 | ×(짐)맡는 역 |- |제일교시 | ×첫째(공부)시간 |- |착유작업 | ×기름먹이기(작업) |- |어미 | ×(말)꼬리 |} |} 6) 다듬은 학술용어가 일반어적인 색채를 띠거나 용어의 체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일정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말을 그대로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대엽행(생물) | ×마주 난 잎 |- |반함수역(수산, 해양) | ×덜짠물구역 |- |수하지(농학) | ×늘어진 가지 |- |뜨락또르용 삼각제설기(림학) | ×뜨락또르눈치개 |- |외화실(기계) | ×바깥불칸 |} |} tdy45nluf1clxk4eeba5ijk79ys5lax 조선말 규범집 (2016년)/방언어휘사정원칙 0 94714 390501 347183 2025-06-08T11:43:35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방언어휘사정원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방언어휘사정원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3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방언어휘사정원칙</div> (1990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7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k9mjcxo8vxxzyi0xnvd0a28i5fndfmj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규범화원칙 0 94715 390521 347185 2025-06-08T11:43:38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규범화원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규범화원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5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조선말 자연과학기술용어의 규범화원칙</div> (1981년 12월 13일, 동북3성조선어문사업 제4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ioblx7ixfjydeugp4k48gbpiqr7wx4c 조선말 규범집 (2016년)/한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0 94716 390529 347186 2025-06-08T11:43:39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한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한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6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한어단어의 조선말표기법</div> (1995년 8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9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erfe6cy4on8dl4dxa6sxnwjn5lcfjk0 조선말 규범집 (2016년)/〈외국어표기법〉통일안 0 94717 390497 347187 2025-06-08T11:43:35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외국어표기법〉통일안]]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외국어표기법〉통일안]]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7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외국어표기법〉통일안</div> (1990년 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6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jykmamtny3lhb2usafhu9ftndpab06e 조선말 규범집 (2016년)/외래어표기세칙 0 94718 390511 347188 2025-06-08T11:43:36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외래어표기세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외래어표기세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8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외래어표기세칙</div> (1990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7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dss3qc63nj4r7c5e4v5in5b2jslfy05 조선말 규범집 (2016년)/지명표기세칙 0 94719 390527 347189 2025-06-08T11:43:38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지명표기세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지명표기세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89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지명표기세칙</div> (1997년,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10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6t6goycukj3vihslgf64g87tv36m27o 조선말 규범집 (2016년)/외국인명의 조선말표기세칙 0 94720 390509 347190 2025-06-08T11:43:36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외국인명의 조선말표기세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외국인명의 조선말표기세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90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외국인명의 조선말표기세칙</div> (2001년 9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14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khd13c83nox5uyv3hxhn8m421wifscr 조선말 규범집 (2016년)/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세칙 0 94721 390525 347196 2025-06-08T11:43:38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세칙]]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세칙]]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96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세칙</div> (2000년 9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13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는 〈조선말 명사, 술어의 규범화원칙〉에 준하여 처리한다. 1. 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는 해당 민족의 원음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class="wikitable" | {| |례: |- |mongol |蒙古族 |몽고족 |→몽골족 |- |Dai |傣族 |태족 |→따이족 |} |} 2. 조선말표기가 소수민족의 원음과는 다소 다를지라도 이미 굳어진 것은 관용에 따라 그대로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uygur |维吾尔族 |위구르족 |→위글족 |} |} 3. 관습적으로 한어의 소수민족명칭을 조선말 한자음독법으로 써온 것은 그대로 쓴다. {|class="wikitable" | {| |례: |- |苗族 |묘족 |- |回族 |후이족 |→회족 |} |} 4. 중국 소수민족명칭의 조선말표기는 〈중국 조선말 어휘규범 인명, 지명, 국가명칭 등에 대한 처리원칙〉에 준하여 우리 나라의 정치, 문화 생활의 특성에 맞게 처리한다. {|class="wikitable" | {| |례: |- |满族 |만주족 |→만족 |- |藏族 |서장족, 티베트족 |→장족 |} |} 96l5qb5r2qa7kc9bxwy0ruumm04f578 조선말 규범집 (2016년)/2007년-2015년 명사술어 통일안 0 94722 390495 347192 2025-06-08T11:43:35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2007년-2015년 명사술어 통일안]]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2007년-2015년 명사술어 통일안]]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92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2007년-2015년 명사술어 통일안</div> ftpk0kgzk704oh0wfhuzd9ddsgobksw 조선말 규범집 (2016년)/악기의 조선어명칭 0 94723 390507 347194 2025-06-08T11:43:36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악기의 조선어명칭]]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악기의 조선어명칭]]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94 wikitext text/x-wiki <div style="text-align:center;">악기의 조선어명칭</div> (2012년 12월,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제24차 실무회의에서 심의, 채택) jdq6sxl4a6tklpy9fnpwnhsl0023309 조선말 규범집 (2016년)/부록4 0 94724 390505 347195 2025-06-08T11:43:36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2016)/부록4]]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2016년)/부록4]]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47195 wikitext text/x-wiki 부록 4: 한국과 조선의 띄여쓰기 합의안 {| class="wikitable sortable" !류형 !구분 !순번 !합의안 !한국 !조선 !회의 !비고 !용례 |- |보조용언 | |1 |보조용언은 띄여쓰되 '-아/-어' 바로 다음에 오는 보조용언은 앞말에 붙여쓴다. |띄여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씀도 허용한다. |붙여쓴다. |6차 | |남아있다, 넘어서다, 먹여주다, 밝아오다, 깊어지다 / 합의하고 있다 |- |수사 | |2 |'만, 억, 조' 단위로 띄여쓴다. |'만, 억, 조' 단위로 띄여쓴다 |'백, 천, 만, 억, 조' 단위로 띄여쓴다 |9차 | |이십륙억 삼천사백오십륙만 칠천팔백구십팔 |- |의존명사 |호칭어 |3 |붙여쓴다. |띄여쓴다. |붙여쓴다. |15차 | |김군, 길동님, 홍길동씨, 순희양 |- | |관직명 |4 |띄여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띄여쓴다 |붙여쓴다. |15차 | | |- | |단위명사 |5 |앞말에 붙여쓴다. |띄여쓴다.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수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쓸 수 있다. |붙여쓴다. |6차 | |한개, 두포기, 한벌, 다섯묶음, 세두름 |- |명사련결체 |일반 |6 |《겨레말큰사전》의 올림말은 뜻풀이를 할 때 붙여쓰되 올림말이 아니더라도 의미적으로 련관을 이루는 명사련결체는 두단어까지 붙여쓸 수 있다. 단 이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따로 심의한다. |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띄여쓴다. |붙여쓰되 뜻이 통하게 띄여쓴다. |14차 | |국가벌전 계획을 수립했다. 봄 여름 가을을 고향에서 보냈다.('봄여름'으로 붙이지 않는다.) |- | |합성어 |7 |붙여쓴다. |붙여쓴다. |5차 | | |- | |고유명: 인명 |8 |이름과 호는 성에 붙여쓴다. |붙여쓰되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띄여쓸 수 있다. |붙여쓴다 |6차 | |김양수, 서화담 |- | |고유명: 지명 |9 |지명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앞말에 붙여쓴다. |붙여쓴다. |붙여쓴다. |6차 | |서울시, 종로구, 평양시 |- | |고유명: 기관, 기구, 단체 등의 명칭 |10 |의미 단위별로 띄여쓴다. |단어별로 띄여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여쓸 수 있다. |붙여쓴다. |6차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 |명사련결체 |붙여쓰면 두가지 뜻으로 리해될 수 있는 경우 |11 |의미 단위별로 뜻이 통하게 띄여쓴다. | |뜻이 통하게 띄여쓴다. |9차 | |중세 언어연구(중세에 진행된 언어연구)/중세언어 연구(중세의 언어연구), 김인옥어머니(어머니 자신)/김인옥 어머니(김인옥의 어머니) |- | |명사끼리 토 없이 결합되여 하나의 대상, 현상,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 |12 |붙여쓴다. |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띄여쓴다. |붙여쓴다. |9차 | |가야금병창, 가상기억장치, 공장로동자 |- | |앞의 명사를 다시 받는다고 할 수 있는 어휘부류 |13 |띄여쓴다. |띄여쓴다. |붙여쓴다. |9차 |자신, 자체, 전체, 전부, 전원, 일행, 일가, 일동 |학생 전원, 답사자 일행, 지배인 자신, 학급 전체 |- | |서로 다른 품사가 토 없이 결합되여 하나의 대상, 행동, 상태를 나타내는 경우 |14 |붙여쓴다. |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띄여쓴다. |붙여쓴다. |9차 | |2중영웅, 1호발전기, 7개년계획 |- | |전문용어 |15 |의미 단위로 붙여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토 없이 결합된 단어가 너무 길어 읽고 리해하기 힘들 때에는 의미 단위로 띄여쓸 수 있다. |단어별로 띄여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쓸 수 있다. |붙여쓴다. |9차 | |만성골수성백혈병, 급성복막염,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 | | |16 |띄여쓴다. |단음절로 련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쓸 수 있다. |리해하기 쉽게 띄여쓴다. |5차 | | |- |대명사 |합성어 |17 |'우리말, 우리글'은 합성어로 보고 붙여쓰고 '우리 나라'는 구로 보아 띄여쓴다. |우리말, 우리글, 우리나라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나라 |10차 | | |- | |지명+'어, 산, 강, 해' |18 |지명과 결합된 '어, 산, 강, 해' 등은 모두 붙여쓴다. |붙여쓴다. | |10차 | |라틴어, 에베레스트산, 티그리스강, 아드리아해 |} 27her5bj6u1xp5vphh68opecxlc2c81 틀:PD-IDGov 10 97736 390438 384489 2025-06-08T10:43:34Z Namoroka 1939 390438 wikitext text/x-wiki {{저작권 | 그림 = PD-icon.svg | 설명 = {{저작권 범위}} [[:id:Undang-Undang Republik Indonesia Nomor 28 Tahun 2014|저작권에 관한 인도네시아 공화국 법률 2014년 제28호]] 제43조에 따른 인도네시아 공화국 정부가 공표하고 배포하는 저작물로, 저작권 침해의 대상이 되지 않아 [[w: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에서 '''[[위키문헌:퍼블릭 도메인|퍼블릭 도메인]]'''입니다. <div> <ol style="list-style-type:lower-alpha;"> <li> 원본 성질의 국장 및 애국가의 공표, 배포, 송신 그리고/또는 복제</li> <li> 법령규정에 의하여 보호되거나 해당 저작물에 표시되거나 해당 저작물이 공표, 배포, 송신 그리고/또는 복제되는 때에 보호된다고 표시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가 또는 정부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모든 사항의 공표, 배포, 송신 그리고/또는 복제</li> <li> 그 출처에 관한 규정을 완전히 명시하고 보도국, 방송사업자 및 신문 또는 기타 유사한 출처에서 시사 뉴스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가져오는 행위</li> <!--<li> 비상업적 성격 그리고/또는 저작자 또는 당사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해당 저작자가 해당 제작과 보급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는 경우 정보기술 및 통신 매체를 통한 저작권 콘텐츠의 제작과 보급</li> <li> 법령규정에 따라 존엄성과 상식을 고려한 대통령과 부통령,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 국가 영웅, 국가기관 지도자, 부처/비부처의 지도자 그리고/또는 지역 대표의 초상화 복제, 공표 그리고/또는 배포</li> --> ... </ol> </div> | 그림2 = National emblem of Indonesia Garuda Pancasila.svg | 분류 = {{{분류|{{{category|PD-IDGov}}}}}} }}<noinclude> {{설명문서}} </noinclude> af9afjue4sbduxjugxakhl8pukhfxj3 모듈:PD-South Korea 828 98027 390441 390099 2025-06-08T11:21:42Z Namoroka 1939 390441 Scribunto text/plain require('strict') local p = {} --p stands for package local getArgs = require('Module:Arguments').getArgs local yesno = require('Module:Yesno') local PD = require('Module:PD') function p._PD_South_Korea(args) local deathyear = PD.getAuthorDeathYear({args[1], args['사망연도'], args.deathyear}) local pubyear = PD.getPublicationYear({args[2], args['공표연도'], args.pubyear}) local category = args['분류'] or args.category local film = args['영화'] or args.film local uraa = yesno(args.uraa or args.URAA) or false local warning = yesno(args['경고숨김'] or args.nowarning) or false -- Should we use PD-old? if pubyear and pubyear < PD.PD_US_cutoff and deathyear and PD.currentyear - deathyear > 100 then return require('Module:PD-old')._PD_old({['category'] = category}) end if deathyear and deathyear >= math.max(2013 - 50, PD.currentyear - 70) then return PD.error_text("PD-대한민국 틀은 " .. math.max(2013 - 49, PD.currentyear - 69) .. "년 후에 사망한 저자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PD-대한민국") end local published_info if pubyear and deathyear then published_info = pubyear .. "년에 공표된 " elseif pubyear then published_info = pubyear .. "년에 공표" else published_info = "" end local text = PD.license_scope() .. " 대한민국에서 '''[[위키문헌:퍼블릭 도메인|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 (대한민국)|저작권법]] 제39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관할 아래 있는 모든 저작물은 저작자(공동저작물은 맨 마지막으로 사망한 저작자)가 사망한 후 70년이 경과하면 저작재산권이 소멸됩니다(1987년 7월 전에는 30년, 2013년 7월 1일 전에는 50년).\n\n다만 구 [[저작권법 (대한민국, 제3916호)|저작권법(법률 제3916호, 시행 1987.7.1.)]] 제36조 제1항에 따라, 저작자가 사망한 후 40년이 경과하고 50년이 되기 전에 공표된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은 공표한 때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소멸됩니다(1987년 7월부터 2013년 6월까지만 적용).\n\n추가로 현행 저작권법 제49조에 의해 개인인 저작재산권자가 상속인 없이 사망하여 민법 또는 그밖의 법률에 의해 저작재산권이 국가에 귀속될 때도 저작권이 소멸합니다.\n" local PD_KR_cutoff if deathyear and 1963 <= deathyear then -- 70Y text = text .. "\n이 저작물의 저자는 ".. deathyear .. "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사후 70년 규정에 따라 " .. ( deathyear + 71 ) .. "년에 대한민국에서 저작재산권이 소멸하였습니다." PD_KR_cutoff = deathyear + 71 elseif deathyear and 1956 <= deathyear and deathyear < 1963 then -- 50Y if deathyear and pubyear and 1956 <= deathyear and deathyear < 1963 and deathyear + 40 < pubyear and pubyear < deathyear + 50 then text = text .. "\n" .. published_info .. "이 저작물의 저자는 ".. deathyear .. "년에 사망하였고, 사후 40년이 경과하고 50년이 되기 전에 공표되었기 때문에 " .. ( pubyear + 11 ) .. "년에 대한민국에서 저작재산권이 소멸하였습니다." PD_KR_cutoff = pubyear + 11 else text = text .. "\n" .. published_info .. "이 저작물의 저자는 ".. deathyear .. "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사후 50년 규정에 따라 " .. ( deathyear + 51 ) .. "년에 대한민국에서 저작재산권이 소멸하였습니다." PD_KR_cutoff = deathyear + 51 end elseif deathyear and deathyear < 1956 then -- 30Y text = text .. "\n" .. published_info .. "이 저작물의 저자는 ".. deathyear .. "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사후 30년 규정에 따라 " .. ( deathyear + 31 ) .. "년에 대한민국에서 저작재산권이 소멸하였습니다." PD_KR_cutoff = deathyear + 31 end local license_data = { ['image'] = PD.PD_image, ['image_r'] = 'Flag of South Korea.svg', ['text'] = text, } if pubyear and pubyear < PD.PD_US_cutoff then license_data['text'] = text .. "\n----\n" .. PD.license_scope() .. " " .. PD.PD_US_cutoff .. "년 1월 1일 전인 " .. pubyear .. "년에" .. " 공표되었으므로, '''미국'''에서 '''[[위키문헌:퍼블릭 도메인|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PD.shorter_term_text(deathyear, film, {deathyear_display_hide = "yes"}) license_data['category'] = args['분류'] or args.category or "PD-대한민국-US" elseif uraa and PD_KR_cutoff <= 1996 then license_data['text'] = text .. "\n----\n" .. PD.license_scope() .. " 미국 밖에서 처음 공표되었고(이와 동시에 30일 이내에 미국에서 공표되지 않았고), '''그리고''' 1989년 3월 1일 전에 미국의 저작권 형식 요건(갱신 및/또는 저작권 공고)을 준수하지 않고 처음 공표되었거나, 또는 1964년 전에 공표되어 저작권 갱신을 받지 않았으며, '''그리고''' [[w:우루과이 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날짜(1996년 1월 1일)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PD.shorter_term_text(deathyear, film, {deathyear_display_hide = "yes"}) license_data['category'] = args['분류'] or args.category or "PD-대한민국-1996" elseif uraa and 1996 < PD_KR_cutoff then license_data['text'] = text .. "\n----\n" .. PD.license_scope() .. " 미국 밖에서 처음 공표되었고(이와 동시에 30일 이내에 미국에서 공표되지 않았고), '''그리고''' 1989년 3월 1일 전에 미국의 저작권 형식 요건(갱신 및/또는 저작권 공고)을 준수하지 않고 공표되었거나, 또는 1964년 전에 공표되어 저작권 갱신을 받지 않았으며, '''그리고''' [[w:우루과이 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날짜(1996년 1월 1일)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strong class='error'>1996년 1월 1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닙니다.</strong>" .. PD.shorter_term_text(deathyear, film, {deathyear_display_hide = "yes"}) license_data['category'] = args['분류'] or args.category or "PD-대한민국-저작권 침해 의심" elseif uraa then license_data['text'] = text .. "\n----\n" .. PD.license_scope() .. " 미국 밖에서 처음 공표되었고(이와 동시에 30일 이내에 미국에서 공표되지 않았고), '''그리고''' 1989년 3월 1일 전에 미국의 저작권 형식 요건(갱신 및/또는 저작권 공고)을 준수하지 않고 처음 공표되었거나, 또는 1964년 전에 공표되어 저작권 갱신을 받지 않았으며, '''그리고''' [[w:우루과이 라운드|우루과이 라운드]] 날짜(1996년 1월 1일)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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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고 굼지 말고 病 업시 누리다가 有子코 有孫ᄒᆞ오면 긔 願인가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四八" /> <section begin="二四九" /><poem> 春風 桃李花들아 고온 양ᄌᆞ 쟈랑 말고 長松 綠竹을 歲寒에 보려므나 亭亭코 落落한 節을 고칠 줄이 이시랴 </poem><br> <section end="二四九" /> <section begin="二五○" /><poem> 唐虞ᄂᆞᆫ 언제 時節 孔孟은 뉘시런고 淳風 禮樂이 戰國이 되야시니 이 몸이 서근 션븨로 擊節悲歌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五○" /> <section begin="二五一" /><poem> 泰山에 올라 안자 四海를 구버 보니 天地 四方이 훤츨도 ᄒᆞᆫ져이고 丈夫의 浩然之氣를 오ᄂᆞᆯ이야 알괘라 </poem><br> <section end="二五一" /> <section begin="二五二" /><poem> 不忠 不孝ᄒᆞ고 罪만흔 이내 몸이 苟苟히 사라 이셔 ᄒᆡ 온 일 업거니와 그러나 太平聖代에 늙기 셜워 ᄒᆞ오라 </poem><br> <section end="二五二" /> <section begin="二五三" /><poem> 오ᄂᆞᆯ은 川獵ᄒᆞ고 來日은 山行 가ᄉᆡ 곳다림 모릐 ᄒᆞ고 降神으란 글픠 ᄒᆞ리 </poem> {{옛한글쪽 끝}} <section end="二五三"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fvdjvsy3pa0xsxtwg4n4lks0jtk2wmn 경성출 경운흥하니 0 100560 390384 2025-06-07T12:04:38Z ZornsLemon 15531 새 문서: {{머리말 |제목 = 경성출(景星出) 경운흥(慶雲興)ᄒᆞ니 |다른 표기 = |지은이 = [[저자:김유기|김유기]]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 {{옛한글}}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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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二五九" /> <section begin="二六○" /><poem> 울 밋 陽地ㅅ편에 외ᄡᅵ를 ᄲᅧ허 두고 ᄆᆡ거니 붓도도와 빗김에 달화 내니 어즈버 東陵瓜地ᄂᆞᆫ 예야 긘가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六○" /> <section begin="二六一" /><poem> 田園에 나믄 興을 전나귀에 모도 싯고 溪山 니근 길로 훙치며 도라와셔 아ᄒᆡ 琴書를 다스려라 나믄 ᄒᆡ를 보내리라 </poem> {{옛한글쪽 끝}} <section end="二六一"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6kprynyem1f2tucvdj60m1h7wrb01mf 페이지: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67 250 100563 390389 2025-06-07T14:43:56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六二" /><poem> 雲霄에 오로젼들 ᄂᆞ래 업시 어이ᄒᆞ며 蓬島로 가쟈 ᄒᆞ니 舟楫을 어이ᄒᆞ리 ᄎᆞᆯ하리 山林에 主人 되야 이 世界를 니즈리라 </poem><br> <section end="二六二" /> <section begin="二六三" /><poem> 知足이면 不辱이오 知止면 不殆라 ᄒᆞ니 功成 名遂ᄒᆞ면 마ᄂᆞᆫ 거시 긔 올흐니 어즈버 宦海 諸君子ᄂᆞᆫ 모다 조심 ᄒᆞ... 39038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六二" /><poem> 雲霄에 오로젼들 ᄂᆞ래 업시 어이ᄒᆞ며 蓬島로 가쟈 ᄒᆞ니 舟楫을 어이ᄒᆞ리 ᄎᆞᆯ하리 山林에 主人 되야 이 世界를 니즈리라 </poem><br> <section end="二六二" /> <section begin="二六三" /><poem> 知足이면 不辱이오 知止면 不殆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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ᄒᆞᆫ번 늘근 後에 다시 져머 보ᄂᆞᆫ 것가 更少年 ᄒᆞ닷 말이 千萬古에 업슨말이 우리ᄂᆞᆫ 그런 줄 알므로 ᄆᆡ... 39039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六八" /><poem> ᄒᆞᆫ ᄃᆞᆯ 셜흔 날에 醉ᄒᆞᆯ 날이 몃 날이리 盞 자븐 날이야 眞實로 내 날이라 그날곳 지나간 後ㅣ면 뉘 집 날이 될 줄 알리 </poem><br> <section end="二六八" /> <section begin="二六九" /><poem> 사ᄅᆞᆷ이 ᄒᆞᆫ번 늘근 後에 다시 져머 보ᄂᆞᆫ 것가 更少年 ᄒᆞ닷 말이 千萬古에 업슨말이 우리ᄂᆞᆫ 그런 줄 알므로 ᄆᆡ양 醉코 노노라 </poem><br> <section end="二六九" /> <section begin="二七○" /><poem> 人生을 혜아리니 아마도 늣거웨라 旅逆 光陰에 시름이 半이여니 므스 일 몃 百年 살리라 아니 놀고 어이리 </poem><br> <section end="二七○" /> <section begin="二七一" /><poem> 世上 사ᄅᆞᆷ들아 이내 말 드러 보소 靑春이 ᄆᆡ양이며 白髮이 검ᄂᆞᆫ 것가 엇더타 有限ᄒᆞᆫ 人生이 아니 놀고 어이리 </poem><br> <section end="二七一" /> <section begin="二七二" /><poem> 梅窓에 月上ᄒᆞ고 竹逕에 風淸ᄒᆞᆫ 제 素琴을 빗기 안고 두세 曲調 흣ᄐᆞ다가 醉ᄒᆞ고 花塢에 져 이셔 夢羲皇을 ᄒᆞ놋다 </poem><br> <section end="二七二" /> <section begin="二七三" /><poem> 午睡를 느지 ᄭᆡ야 醉眼을 여러 보니 밤비에 ᄀᆞᆺ 픤 곳이 暗香을 보내ᄂᆞ다 아마도 山家에 ᄆᆞᆯ근 맛시 이 죠흔가 ᄒᆞ노라 </poem> {{옛한글쪽 끝}} <section end="二七三"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a1zb3ut1o67vmksay46sczk329qlydc 페이지: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69 250 100565 390391 2025-06-07T14:44:43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七四" /><poem> 泰山에 올라 안자 天下를 두로 보니 世路ㅣ 多岐ᄒᆞ여 어이 져리 머흔 게고 阮籍이 이러ᄒᆞᆷ으로 窮途哭을 ᄒᆞ닷다 </poem><br> <section end="二七四" /> <section begin="二七五" /><poem> 堯日月 舜乾坤은 녜대로 잇것마ᄂᆞᆫ 世上 人事ᄂᆞᆫ 어이 져리 달란ᄂᆞᆫ고 이 몸이 느저 난 줄을 못내 슬허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 39039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七四" /><poem> 泰山에 올라 안자 天下를 두로 보니 世路ㅣ 多岐ᄒᆞ여 어이 져리 머흔 게고 阮籍이 이러ᄒᆞᆷ으로 窮途哭을 ᄒᆞ닷다 </poem><br> <section end="二七四" /> <section begin="二七五" /><poem> 堯日月 舜乾坤은 녜대로 잇것마ᄂᆞᆫ 世上 人事ᄂᆞᆫ 어이 져리 달란ᄂᆞᆫ고 이 몸이 느저 난 줄을 못내 슬허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七五" /> <section begin="二七六" /><poem> 人間 번우한 일을 다 주어 후리치고 康衢 烟月에 일 업시 노닐며셔 어즈버 聖化 千載애 이러구러 지내리라 </poem><br> <section end="二七六" /> <section begin="二七七" /><poem> 尼山에 降彩ᄒᆞ샤 大聖人을 내오시니 繼往聖 開來學에 德業도 노프실샤 아마도 群聖中 集大成은 夫子ㅣ신가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七七" /> <section begin="二七八" /><poem> 遏人慾 存天理ᄂᆞᆫ 秋天에 氣象이오 知言 養氣ᄂᆞᆫ 古今에 긔 뉘런고 아마도 擴前聖所未發은 孟軻ㅣ신가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七八" /> <section begin="二七九" /><poem> 杜拾遺의 忠君愛國이 日月로 爭光ᄒᆞᆯ로다 間關 劒閣에 ᄠᅳᆺ 둘 듸 젼혀 업서 어즈버 無限 丹衷을 一部 詩에 부치도다 </poem> {{옛한글쪽 끝}} <section end="二七九"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o750ubebeeynpyp3p4y18i6cnrwcwky 페이지: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70 250 100566 390392 2025-06-07T14:45:05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八○" /><poem> 岳鵬擧의 一生 肝膽이 석지 아닌 忠孝ㅣ로다 背上 四字ᄂᆞᆫ 무어시라 ᄒᆞ엿ᄃᆞᆫ고 南枝上 一片宋日이 耿耿 丹衷에 비최엿다 </poem><br> <section end="二八○" /> <section begin="二八一" /><poem> 北扉下 져믄 날에 에엿불슨 文天祥이여 八年 燕霜에 검ᄃᆞᆫ 머리 다 희거다 至今히 從容就死를 못내 슬허 ᄒᆞ노라 </poem><br> <sec... 39039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八○" /><poem> 岳鵬擧의 一生 肝膽이 석지 아닌 忠孝ㅣ로다 背上 四字ᄂᆞᆫ 무어시라 ᄒᆞ엿ᄃᆞᆫ고 南枝上 一片宋日이 耿耿 丹衷에 비최엿다 </poem><br> <section end="二八○" /> <section begin="二八一" /><poem> 北扉下 져믄 날에 에엿불슨 文天祥이여 八年 燕霜에 검ᄃᆞᆫ 머리 다 희거다 至今히 從容就死를 못내 슬허 ᄒᆞ노라 </poem><br> <section end="二八一" /> <section begin="二八二" /><poem> 沃野千里 긴 담 안헤 阿房宮을 노피 짓고 當年에 어린 ᄠᅳᆺ은 萬歲計를 ᄒᆞ려ᄐᆞ니 어ᄂᆡ덧 陳迹이 되도다 긔 뉘 타슬 사므리 </poem><br> <section end="二八二" /> <section begin="二八三" /><poem> 莊生의 ᄒᆞᄂᆞᆫ 일이 아마도 多事ᄒᆞ다 斥鷃 大鵬을 비겨 므슴 ᄒᆞ렷ᄐᆞᆫ고 두어라 物之不齊를 견훌 줄이 이시랴 </poem><br> <section end="二八三" /> <section begin="二八四" /><poem> 賀季眞의 鏡湖水ᄂᆞᆫ 榮寵으로 어덧거니 비록 말고젼들 므슴 핑계 ᄒᆞ려니오 엇더타 내의 이 江山은 걸닌 곳 업세라 </poem><br> <section end="二八四" /> <section begin="二八五" /><poem> 叩馬諫 不聽커ᄂᆞᆯ 首陽山에 드러가셔 周粟을 아니 먹고 ᄆᆞ츰내 餓死키ᄂᆞᆫ 千秋에 賊子의 ᄆᆞ음을 것거 보려 홈이라 </poem> {{옛한글쪽 끝}} <section end="二八五"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jafwmxwfxeadmmsgek1w6f7fbhqriew 페이지: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71 250 100567 390393 2025-06-07T14:48:30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정래교" />::金君履叔 以善唱名國中 一洗下里之陋 而能自爲新聲 瀏喨可聽 又製新曲數十闋 以傳於世 少年習而唱之 余觀其詞 皆艶麗有理致 音調節腔 淸濁高下 自叶於律 可與松江公新飜 後先方駕矣 履叔非特能於歌 亦見其能於文也 嗚呼 使今之世 有善觀風者 必采是詞 而列於樂官 用之鄕人 用之邦國 不但爲里巷歌謠而止爾 奈何徒使履... 39039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정래교" />::金君履叔 以善唱名國中 一洗下里之陋 而能自爲新聲 瀏喨可聽 又製新曲數十闋 以傳於世 少年習而唱之 余觀其詞 皆艶麗有理致 音調節腔 淸濁高下 自叶於律 可與松江公新飜 後先方駕矣 履叔非特能於歌 亦見其能於文也 嗚呼 使今之世 有善觀風者 必采是詞 而列於樂官 用之鄕人 用之邦國 不但爲里巷歌謠而止爾 奈何徒使履叔 爲燕趙悲慨之音 以鳴其不平也 且是歌也 多引江湖山林放浪隱遯之語 反覆嗟歎而不已 其亦衰世之意歟 歲戊申暮春 黑窩書 <section end="정래교" /> <section begin="규수삼인" />:{{크게|閨秀三人}} <section end="규수삼인" /> <section begin="황진" />::{{크게|黃眞}} <section end="황진" /> <section begin="二八六" /><poem> 靑山裏 碧溪水ㅣ야 수이 감을 쟈랑 마라 一到 滄海ᄒᆞ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明月이 滿空山ᄒᆞ니 수여 간들 엇더리 </poem> {{옛한글쪽 끝}}<section end="二八六" /><noinclude><references/></noinclude> 4y78o1e76wwo732cydpb52trsuzi0a8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26 250 100568 390395 2025-06-07T15:52:09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39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드려 이 ᄯᅡ를 엇게 ᄒᆞ신 거시 우리의 의로옴을 인ᄒᆞᆷ이라 ᄒᆞ지말나 실샹은 그 모든 나라 ᄇᆡᆨ셩이 악ᄒᆞᆷ으로 여호와ᄭᅴ셔 너희 압헤셔 ᄶᅩᆺ차내심이니 {{절||五}} 너희가 드러가셔 그 ᄯᅡ를 엇ᄂᆞᆫ 거슨 너희 의로옴을 인ᄒᆞᆷ도 아니오 너희 ᄆᆞᄋᆞᆷ이 졍직ᄒᆞᆷ을 인ᄒᆞᆷ도 아니라 그 모든 나라 ᄇᆡᆨ셩이 악ᄒᆞᆫ고로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 압헤셔 ᄶᅩᆺ차내시고 ᄯᅩ 여호와ᄭᅴ셔 너희 렬조 {{u|아브라함}}과 {{u|이삭}}과 {{u|야곱}}의게 ᄆᆡᆼ셰ᄒᆞ신 말ᄉᆞᆷ을 일우려ᄒᆞ심이라 {{절||六}} 너희가 맛당히 알 거슨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게 이 아름다온 ᄯᅡ를 주어 엇게 ᄒᆞ신 거시 너희 의로옴을 인ᄒᆞᆷ도 아니니 대개 너희는 목이 곳은 ᄇᆡᆨ셩이니라 {{절||七}} 너희가 광야에셔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격노케 ᄒᆞ던 거슬 긔억ᄒᆞ고 니져ᄇᆞ리지말나 너희가 {{du|애굽}} ᄯᅡ에셔 나오던 날노브터 이 곳에 니르기ᄭᆞ지 여호와를 거역ᄒᆞ엿스며 {{절||八}} ᄯᅩ {{du|호렙}}산에셔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ᄒᆞ매 여호와ᄭᅴ셔 진노ᄒᆞ샤 너희를 멸ᄒᆞ려ᄒᆞ신지라 {{절||九}} 그 ᄯᅢ에 내가 산에 올나가셔 돌비를 밧으니 곳 여호와ᄭᅴ셔 너희로 더브러 세우신 언약의 돌비라 산 우에셔 ᄉᆞ십일 ᄉᆞ십야를 잇스며 ᄯᅥᆨ도 먹지아니ᄒᆞ고 물도 마시지아니ᄒᆞ엿노라 {{절||十}} 여호와ᄭᅴ셔 내게<noinclude><references/></noinclude> qt2mycwhl0xtkbt67pneq2o6zul5fnx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27 250 100569 390396 2025-06-07T16:02:57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396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두 돌비를 주시니 하ᄂᆞ님의 손으로 쓰신 거시라 그 우에 긔록ᄒᆞᆫ 말ᄉᆞᆷ은 너희 춍회로 모힌 날에 여호와ᄭᅴ셔 산에셔 불 가온ᄃᆡ로 말ᄆᆡ암아 너희게 닐ᄋᆞ신 모든 말ᄉᆞᆷ이라 {{절||十一}} ᄉᆞ십일 ᄉᆞ십야를 지내매 여호와ᄭᅴ셔 내게 그 두 돌비 곳 언약의 비를 주시고 {{절||十二}} ᄀᆞᆯᄋᆞ샤ᄃᆡ 너는 니러나셔 속히여긔셔 ᄂᆞ려가라 네가 인도ᄒᆞ야 {{du|애굽}} ᄯᅡ에셔 나오게 ᄒᆞᆫ 네 ᄇᆡᆨ셩이 스ᄉᆞ로 패괴ᄒᆞᆫ지라 나의 명ᄒᆞᆫ 길을 급히 ᄯᅥ나 ᄌᆞ긔를 위ᄒᆞ야 ᄒᆞᆫ 우샹을 ᄆᆞᆫ드럿다 ᄒᆞ시고 {{절||十三}} ᄯᅩ 내게 닐너 ᄀᆞᆯᄋᆞ샤ᄃᆡ 내가 이 ᄇᆡᆨ셩을 보니 목이 곳은 ᄇᆡᆨ셩이라 {{절||十四}} 나를 막지말나 내가 뎌희를 멸ᄒᆞ고 그 일홈을 텬하에셔 도말ᄒᆞ고 너로 ᄒᆞ여곰 뎌희보다 강ᄒᆞ고 큰 나라이 되게 ᄒᆞ리라 ᄒᆞ시거ᄂᆞᆯ {{절||十五}} 이에 내가 도리켜 산에셔 ᄂᆞ려올ᄯᅡ에 산에 불이 붓ᄂᆞᆫ지라 그 언약의 두 비가 내 두 손에 잇ᄂᆞᆫᄃᆡ {{절||十六}} 내가 보니 너희가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 범죄ᄒᆞ야 송아지의 형샹을 부어 ᄆᆞᆫ들고 여호와ᄭᅴ셔 너희게 명ᄒᆞ신 길을 급히 ᄯᅥ낫거ᄂᆞᆯ {{절||十七}} 내가 그 두 비를 가졋다가 두 손에셔 던져 너희 목젼에 ᄭᆡ트리고 {{절||十八}} 젼과 ᄀᆞᆺ치 ᄉᆞ십일 ᄉᆞ십야를 여호와 압헤 업드려 ᄯᅥᆨ도 먹지안코 물도 마시지아니ᄒᆞ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눈 압헤셔 큰 죄를 범ᄒᆞ야<noinclude><references/></noinclude> 01q1pc8lywc21biajvml8qmr6v3ygn3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28 250 100570 390397 2025-06-07T16:11:27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397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악을 ᄒᆡᆼᄒᆞᆷ으로 격노케 ᄒᆞᆷ이라 {{절||十九}} 여호와ᄭᅴ셔 노를 발ᄒᆞ시고 심히 분내샤 너희를 멸ᄒᆞ려ᄒᆞ시거ᄂᆞᆯ 내가 두려워ᄒᆞ더니 여호와ᄭᅴ셔 이 ᄯᅢ에도 내 말을 드르시ᄂᆞᆫ지라 {{절||二十}} 여호와ᄭᅴ셔 ᄯᅩ {{u|아론}}의게 진노ᄒᆞ샤 멸ᄒᆞ려ᄒᆞ시거ᄂᆞᆯ 내가 그 ᄯᅢ에 ᄯᅩᄒᆞᆫ {{u|아론}}을 위ᄒᆞ야 긔도ᄒᆞ엿고 {{절||二一}} 이에 너희 죄 가음 곳 너희가 ᄆᆞᆫ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오고 ᄲᅡ코 잘게 갈아 ᄯᅴᄭᅳᆯ ᄀᆞᆺ치 가늘게 ᄒᆞ야 그 ᄯᅴᄭᅳᆯ을 산에셔 흘너 ᄂᆞ리ᄂᆞᆫ 시내에 ᄲᅮ렷노라 {{절||二二}} 너희가 ᄯᅩ {{du|다베라}}와 {{du|맛사}}와 밋 {{du|기브롯핫다와}}에셔 여호와를 격노케 ᄒᆞ엿ᄂᆞ니라 {{절||二三}} ᄯᅩ 여호와ᄭᅴ셔 {{du|가데스바네아}}에셔 너희를 보내여 닐ᄋᆞ시기를 너희는 올나가셔 내가 너희게 준 ᄯᅡ를 엇어 긔업을 삼으라 ᄒᆞ시매 너희가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ᄒᆞ야 밋지아니ᄒᆞ엿고 그 말ᄉᆞᆷ을 듯지아니ᄒᆞ엿ᄂᆞ니 {{절||二四}} 내가 너희를 아ᄂᆞᆫ 날브터 옴으로 너희가 ᄒᆞᆼ샹 여호와를 거역ᄒᆞ엿ᄂᆞ니라 {{절||二五}} 그 ᄯᅢ에 여호와ᄭᅴ셔 너희를 멸ᄒᆞ시겟다 말ᄉᆞᆷᄒᆞ심으로 내가 여젼히 ᄉᆞ십일 ᄉᆞ십야를 여호와 압헤 업ᄃᆡ여 {{절||二六}} 여호와ᄭᅴ 긔도ᄒᆞ야 ᄀᆞᆯᄋᆞᄃᆡ 쥬 여호와여 위엄으로 구쇽ᄒᆞ신 쥬의 ᄇᆡᆨ셩 곳 강ᄒᆞ신 손으로 {{du|애굽}}에셔 인도ᄒᆞ야 내신 쥬의 긔업을 멸ᄒᆞ지마옵시고 {{절||二七}} 쥬의 죵 {{u|아브라함}}과 {{u|이삭}}과<noinclude><references/></noinclude> k42tfcsrdyctf5txgt50y7dafsmmlut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29 250 100571 390398 2025-06-07T16:14:41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398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u|야곱}}을 ᄉᆡᆼ각ᄒᆞ샤 이 ᄇᆡᆨ셩의 강퍅ᄒᆞᆷ과 악ᄒᆞᆷ과 죄를 보지마옵쇼셔 {{절||二八}} 두렵건대 우리를 인도ᄒᆞ야 내신 그 ᄯᅡ 사ᄅᆞᆷ들이 말ᄒᆞ기를 여호와ᄭᅴ셔 그 허락ᄒᆞ신 ᄯᅡ으로 뎌희를 인도ᄒᆞ야 드릴 능력이 업슬ᄲᅮᆫ더러 ᄯᅩ 뎌희를 뮈워ᄒᆞ심으로 인도ᄒᆞ야 내샤 광야에셔 죽이려ᄒᆞ신다 ᄒᆞᆯ가 ᄒᆞᄂᆞ이다 {{절||二九}} 그러나 뎌희들은 쥬의 ᄇᆡᆨ셩이오 쥬의 긔업이니 쥬ᄭᅴ셔 크신 권능과 펴신 팔노 인도ᄒᆞ야 내신쟈로소이다 ᄒᆞ엿노라 == 십쟝 == {{절|十|一}} 그 ᄯᅢ에 여호와ᄭᅴ셔 내게 닐ᄋᆞ시기를 네가 두 돌비를 젼과 ᄀᆞᆺ치 ᄭᅡᆨ가 ᄆᆞᆫ들고 나무 궤 ᄒᆞ나를 ᄆᆞᆫ드러 가지고 산에 올나 내 압흐로 오라 {{절||二}} 네가 젼에 ᄭᆡ트린 돌비에 쓴 말을 내가 그 비에 쓸터이니 너는 그 궤에 너흐라 ᄒᆞ시기에 {{절||三}} 내가 곳 조각목으로 궤 ᄒᆞᆫ나를 ᄆᆞᆫ들고 돌비 둘을 젼과 ᄀᆞᆺ치 ᄭᅡᆨ가 ᄆᆞᆫ드러 손에 들고 산에 올나가니 {{절||四}} 여호와ᄭᅴ셔 그 총회로 모힌 날에 산에셔 불 가온ᄃᆡ로브터 너희게 닐ᄋᆞ신바 그 십계명을 젼에 쓰신 것 ᄀᆞᆺ치 그 돌비에 써셔 내게 주시ᄂᆞᆫ지라 {{절||五}} 이에 내가 도리켜 산에셔 ᄂᆞ려와 그 돌비를 내가 ᄆᆞᆫ든 그 궤에 너헛ᄂᆞᆫᄃᆡ 지금도 거긔 잇ᄂᆞ니 이는 여호와ᄭᅴ셔 내게 명ᄒᆞ신대로 ᄒᆞᆷ이라 {{절||六}} (이에 {{du|이스라엘}} ᄌᆞ손이 {{du|브에롯}}{{upe}}<noinclude><references/></noinclude> 8ornclpja9f6yua4sy5u549fzwui3zn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30 250 100572 390399 2025-06-07T16:17:12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39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du|브네야아간}}에셔 ᄯᅥ나 {{du|모세라}}에 니르니 {{u|아론}}은 거긔셔 죽어 거긔 장ᄉᆞᄒᆞ고 그 아ᄃᆞᆯ {{u|엘느아살}}이 니어 졔ᄉᆞ쟝이 된지라 {{절||七}} ᄯᅩ 거긔셔 발ᄒᆡᆼᄒᆞ야 {{du|굿고다}}에 니르고 {{du|굿고다}}에셔 발ᄒᆡᆼᄒᆞ야 {{du|욧바다}}에 니르니 시내가 만흔 ᄯᅡ이라 {{절||八}} 그 ᄯᅢ에 여호와ᄭᅴ셔 {{u|레위}} 지파를 구별ᄒᆞ야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여호와 압헤 서셔 셤기고 그 일홈으로 츅복ᄒᆞ게 ᄒᆞ엿스니 그 일이 오ᄂᆞᆯ날ᄭᆞ지 니른지라 {{절||九}} 이럼으로 {{u|레위}}는 그 형뎨들 가온ᄃᆡ 분깃도 업고 긔업도 업고 오직 여호와ᄭᅴ셔 그 긔업이시니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뎌희게 닐ᄋᆞ신대로 되엿더라) {{절||十}} 내가 처음과 ᄀᆞᆺ치 ᄉᆞ십일 ᄉᆞ십야를 산에 머믈넛더니 여호와ᄭᅴ셔 그 ᄯᅢ에도 내 말을 드르시고 너희를 멸ᄒᆞ지아니ᄒᆞ신지라 {{절||十一}} 이에 여호와ᄭᅴ셔 내게 닐ᄋᆞ샤ᄃᆡ 너는 니러나 ᄇᆡᆨ셩을 압서 발ᄒᆡᆼᄒᆞ라 뎌희가 드러가 내가 그 렬조의게 ᄆᆡᆼ셰ᄒᆞ야 주마고ᄒᆞᆫ ᄯᅡ를 엇으리라 ᄒᆞ셧ᄂᆞ니라 ○ {{절||十二}} {{du|이스라엘}}아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게 요구ᄒᆞ시ᄂᆞᆫ 거시 무어시냐 오직 이ᄲᅮᆫ이니 곳 너희가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경외ᄒᆞ야 그 모든 길을 ᄒᆡᆼᄒᆞ고 그를 ᄉᆞ랑ᄒᆞ고 ᄆᆞᄋᆞᆷ을 다ᄒᆞ고 ᄯᅳᆺ을 다ᄒᆞ야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셤기고 {{절||十三}} ᄯᅩ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게 명ᄒᆞᄂᆞᆫ<noinclude><references/></noinclude> ag8zf265h2zq3zisq8dh1aznq36wkqt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31 250 100573 390400 2025-06-07T16:19:45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40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여호와의 계명과 률례를 직혀 너희가 복을 엇게 ᄒᆞ심이라 {{절||十四}} 대개 하ᄂᆞᆯ과 모든 하ᄂᆞᆯ의 하ᄂᆞᆯ과 밋 ᄯᅡ와 ᄯᅡ 우에 잇ᄂᆞᆫ 거슨 다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 본ᄅᆡ 쇽ᄒᆞᆫ 거시로되 {{절||十五}} 오직 여호와ᄭᅴ셔 너희 렬조를 깃버ᄒᆞ시고 ᄉᆞ랑ᄒᆞ샤 그 후 ᄌᆞ손 된 너희를 만민 즁에셔 ᄲᅡ샤 오ᄂᆞᆯ날과 ᄀᆞᆺ치 ᄒᆞ셧ᄂᆞ니 {{절||十六}} 그런즉 너희는 ᄆᆞᄋᆞᆷ에 할례를 ᄒᆡᆼᄒᆞ고 다시 목을 곳게 ᄒᆞ지말나 {{절||十七}}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쥬의 쥬이시오 크고 능ᄒᆞ시며 두려우신 하ᄂᆞ님이시라 사ᄅᆞᆷ을 편벽되히 보지아니 ᄒᆞ시며 뢰물을 밧지 아니ᄒᆞ시고 {{절||十八}} 외로온 ᄌᆞ식과 과부를 위ᄒᆞ야 신원 ᄒᆞ시고 나그내를 ᄉᆞ랑ᄒᆞ샤 식물과 의복을 주시ᄂᆞ니 {{절||十九}} 너희는 맛당히 나그내를 ᄉᆞ랑ᄒᆞ라 젼에 너희도 {{du|애굽}} ᄯᅡ에셔 나그내가 되엿ᄂᆞ니라 {{절||二十}}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경외ᄒᆞ고 셤기며 친근이ᄒᆞ고 그 일홈을 ᄀᆞᄅᆞ쳐 ᄆᆡᆼ셰ᄒᆞ라 {{절||二一}} 그는 너희 찬숑ᄒᆞᆯ 쟈시오 ᄯᅩ 너희 하ᄂᆞ님이시니 너희가 목도ᄒᆞᆫ바 이러ᄒᆞᆫ 크고 두려운 일을 ᄒᆡᆼᄒᆞ신쟈시라 {{절||二二}} 너희 렬조가 {{du|애굽}}으로 ᄂᆞ려간 거시 겨우 칠십인이러니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로 ᄒᆞ여곰 하ᄂᆞᆯ에 별과 ᄀᆞᆺ치 만하지게 ᄒᆞ셧ᄂᆞ니라 {{nop}}<noinclude><references/></noinclude> 1uh6b9vrfuvknoxahkbyzabh3m2opb8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32 250 100574 390401 2025-06-07T16:24:41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40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nop}} == 십일쟝 == {{절|十一|一}} 너희는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ᄉᆞ랑ᄒᆞ고 ᄒᆞᆼ샹 그 직임과 률례와 규례와 계명을 직히라 {{절||二}} 너희는 오ᄂᆞᆯ날 맛당히 알나 대개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의 징계와 위엄과 강ᄒᆞ신 손과 펴신 팔을 아지도 못ᄒᆞ고 보지도 못ᄒᆞᆫ 너희 ᄌᆞ녀들의게 말ᄒᆞᄂᆞᆫ 거시 아니라 {{절||三}} 여호와ᄭᅴ셔 {{du|애굽}} 즁에셔 {{du|애굽}} 왕 {{u|바로}}와 그 온 ᄯᅡ에 ᄒᆡᆼᄒᆞ신 이젹과 긔ᄉᆞ와 {{절||四}} ᄯᅩ {{du|애굽}} 군ᄃᆡ와 ᄆᆞᆯ과 병거에 ᄒᆡᆼᄒᆞ신 일이니 곳 뎌희가 너희 뒤를 ᄶᅩᆺ차올 ᄯᅢ에 {{du|홍}}ᄒᆡ 물노 덥허 멸ᄒᆞ시매 오ᄂᆞᆯ날ᄭᆞ지 니른 거시오 {{절||五}} ᄯᅩ 이 곳에 니르기ᄭᆞ지 광야에셔 너희게 ᄒᆡᆼᄒᆞ신 일과 {{절||六}} ᄯᅩ {{u|르우벤}} ᄌᆞ손 되ᄂᆞᆫ {{u|엘니압}}의 아ᄃᆞᆯ {{u|다단}}과 {{u|아비람}}의게 ᄒᆞ신 일이니 곳 온 {{du|이스라엘}} 가온ᄃᆡ셔 ᄯᅡ이 그 입을 여러 뎌희와 그 족쇽과 그 쟝막과 뎌희를 좃ᄂᆞᆫ ᄉᆡᆼ물들을 다 삼킨 일이라 {{절||七}} 너희는 여호와ᄭᅴ셔 ᄒᆡᆼᄒᆞ신 이 모든 이젹을 목도ᄒᆞ엿ᄂᆞ니 {{절||八}} 그런즉 너희는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게 명ᄒᆞᄂᆞᆫ 계명을 다 직히라 그리ᄒᆞ면 너희가 강ᄒᆞ여질거시오 너희가 건너가 엇으랴ᄒᆞᄂᆞᆫ ᄯᅡ에 드러가 엇을 거시오 {{절||九}} ᄯᅩ 여호와ᄭᅴ셔 너희 렬조의게 ᄆᆡᆼ셰ᄒᆞ야 뎌희와 뎌희 ᄌᆞ손의게 주마고 ᄒᆞ신 ᄯᅡ에셔 너희 날을 길게 ᄒᆞ리니 곳 졋과 ᄭᅮᆯ이 흐르ᄂᆞᆫ ᄯᅡ이라 {{절||十}} 너희가 나아가셔<noinclude><references/></noinclude> czn60k21iqtzm7g8s70609ohdck81i0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33 250 100575 390402 2025-06-07T16:27:39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40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엇으랴ᄒᆞᄂᆞᆫ ᄯᅡ는 너희가 나온 {{du|애굽}} ᄯᅡ와 ᄀᆞᆺ지아니ᄒᆞ니 거긔셔는 씨를 ᄲᅮ린 후에 ᄇᆞᆲ으며 물 주기를 ᄎᆡ소 밧헤 물 대듯ᄒᆞ엿거니와 {{절||十一}} 너희가 건너가셔 엇을 ᄯᅡ는 산과 골ᄶᅡᆨ이가 잇고 하ᄂᆞᆯ에셔 ᄂᆞ리ᄂᆞᆫ 비를 마시ᄂᆞᆫ ᄯᅡ이라 {{절||十二}} 그 ᄯᅡ는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싀셔 권고ᄒᆞ시ᄂᆞᆫ ᄯᅡ이니 셰초로브터 셰말ᄭᆞ지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ᄒᆞᆼ샹 감찰ᄒᆞ시ᄂᆞ니라 {{절||十三}} 너희가 만일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게 명ᄒᆞᄂᆞᆫ 나의 계명을 잘 직혀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ᄉᆞ랑ᄒᆞ고 ᄆᆞᄋᆞᆷ을 다ᄒᆞ고 ᄯᅳᆺ을 다ᄒᆞ야 셤기면 {{절||十四}} 내가 너희 ᄯᅡ에 비를 주ᄃᆡ 가을 비와 봄 비를 ᄯᅢ를 ᄯᆞ라 ᄂᆞ려 너희로 ᄒᆞ여곰 그 곡식을 거두고 새 술과 기름을 엇게 ᄒᆞᆯ 거시오 {{절||十五}} ᄯᅩ 륙츅을 위ᄒᆞ야 들에 풀이 나게 ᄒᆞ리니 너희가 먹고 ᄇᆡ부르리라 {{절||十六}} 너희는 스ᄉᆞ로 삼갈지니 ᄆᆞᄋᆞᆷ이 미혹ᄒᆞ야 도리켜 다른 신들을 셤겨 거긔 절ᄒᆞ지말나 {{절||十七}} 두렵건대 여호와ᄭᅴ셔 너희를 향ᄒᆞ야 진노ᄒᆞ샤 하ᄂᆞᆯ을 닷쳐 비가 ᄂᆞ리지안케 ᄒᆞ시며 ᄯᅡ이 소산을 내지안케 ᄒᆞ야 여호와의 주시ᄂᆞᆫ 그 아름다온 ᄯᅡ에셔 속히 멸ᄒᆞ심 닙을가 ᄒᆞ노니 {{절||十八}} 너희는 이 말을 너희 ᄆᆞᄋᆞᆷ과 ᄯᅳᆺ에 간슈ᄒᆞ고 ᄯᅩ 긔록ᄒᆞ야 네 손목에 ᄆᆡ여 표를 삼고 미간에 붓쳐 장식을 삼고 {{절||十九}} ᄯᅩ 너희 ᄌᆞ녀를<noinclude><references/></noinclude> 18jzqmhi332qxcehikjc7d254uaidn2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34 250 100576 390403 2025-06-07T16:32:05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40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ᄀᆞᄅᆞ쳐 집에 안졋거나 길에 ᄒᆡᆼᄒᆞ거나 누엇거나 니러나거나 다 이 말ᄉᆞᆷ을 강론ᄒᆞ고 {{절||二十}} ᄯᅩ 너희 집 문셜쥬와 너희 집 문에 쓰라 {{절||二一}} 그리ᄒᆞ면 여호와ᄭᅴ셔 너희 렬조의게 주마고 ᄆᆡᆼ셰ᄒᆞ신 ᄯᅡ에셔 너희 사ᄂᆞᆫ 날과 너희 ᄌᆞ녀들의 사ᄂᆞᆫ 날이 만케 ᄒᆞ시기를 하ᄂᆞᆯ이 ᄯᅡ를 덥ᄂᆞᆫ 날과 ᄀᆞᆺ치 오래 ᄒᆞ리니 {{절||二二}} 만일 내가 너희게 명ᄒᆞᄂᆞᆫ 이 모든 계명을 너희가 잘 직혀 ᄒᆡᆼᄒᆞ며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를 ᄉᆞ랑ᄒᆞ고 그 모든 길노 ᄒᆡᆼᄒᆞ야 친근히 ᄒᆞ면 {{절||二三}} 여호와ᄭᅴ셔 그 모든 나라 ᄇᆡᆨ셩을 다 너희 압헤셔 ᄶᅩᆺ차내시리니 너희가 너희 나라보다 크고 강ᄒᆞᆫ 나라들을 엇을지라 {{절||二四}} 무릇 너희가 발바닥으로 ᄇᆞᆲᄂᆞᆫ 곳은 다 너희 거시 되리니 너희 디경은 광야로브터 {{du|레바논}}ᄭᆞ지와 {{du|유브라데}}강으로브터 셔ᄒᆡᄭᆞ지라 {{절||二五}} 너희를 당ᄒᆞᆯ 사ᄅᆞᆷ이 업슬 거시오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의 ᄇᆞᆲᄂᆞᆫ 모든 ᄯᅡ이 너희를 무셔워ᄒᆞ고 너희를 두려워ᄒᆞ게 ᄒᆞ시기를 젼에 말ᄉᆞᆷᄒᆞ심과 ᄀᆞᆺ치 ᄒᆞ시리라 ○ {{절||二六}} 볼지어다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 압헤 복과 져주를 두노니 {{절||二七}} 너희가 만일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게 명ᄒᆞᄂᆞᆫ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의 계명을 준ᄒᆡᆼᄒᆞ면 복을 엇을 거시오 {{절||二八}} 너희가 만일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의 계명을 준ᄒᆡᆼ치<noinclude><references/></noinclude> jcvnmnwj54h5hf37olrnz81zobygzuy 페이지:셩경젼셔 구약 권1.pdf/535 250 100577 390404 2025-06-07T16:34:45Z Aspere 5453 /* 교정 안 됨 */ 390404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Aspere" /></noinclude>아니ᄒᆞ고 도리켜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게 명ᄒᆞᆫ 길에셔 ᄯᅥ나 본ᄅᆡ 아지도 못ᄒᆞ던 다른 신들을 좃치면 져주를 밧으리라 {{절||二九}}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가 드러가 엇을 ᄯᅡ으로 인도ᄒᆞ야 드리실 ᄯᅢ에 너희는 {{du|그리심}}산에셔 복을 빌고 {{du|에발}}산에셔 져주ᄒᆞᆯ지니 {{절||三十}} 이 두 산은 {{du|요단}} 건너 ᄒᆡ 지ᄂᆞᆫ 편 길 뒤에 잇서 {{du|아라바}}에 거ᄒᆞᄂᆞᆫ {{du|가나안}} 사ᄅᆞᆷ의 ᄯᅡ {{du|길갈}} 마진 편 {{du|모레}} 샹수리 나무 겻헤 잇지아니ᄒᆞ냐 {{절||三一}} 너희는 {{du|요단}}강을 건너 너희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게 주시ᄂᆞᆫ ᄯᅡ으로 드러가 엇으랴ᄒᆞ니 반ᄃᆞ시 그 ᄯᅡ를 엇어 거긔셔 거ᄒᆞᆯ 거시오 {{절||三二}} 내가 오ᄂᆞᆯ날 너희 압헤 베프ᄂᆞᆫ 모든 률례와 규례를 다 직혀 ᄒᆡᆼᄒᆞᆯ지니라 == 십이쟝 == {{절|十二|一}} 너희가 셰샹에 사ᄂᆞᆫ 모든 날 동안 너희 렬조의 하ᄂᆞ님 여호와ᄭᅴ셔 너희게 주어 엇게 ᄒᆞ시ᄂᆞᆫ ᄯᅡ에셔 ᄒᆞᆼ샹 직혀 ᄒᆡᆼᄒᆞᆯ 률례와 법도가 이러ᄒᆞ니 {{절||二}} 너희가 ᄶᅩᆺ차낼 여러 나라 ᄇᆡᆨ셩들이 ᄌᆞ긔의 신들을 셤기ᄂᆞᆫ 모든 곳을 반ᄃᆞ시 멸ᄒᆞᆯ지니 놉흔 산에도 잇고 언덕에도 잇고 푸른 나무 아래도 잇ᄂᆞᆫ 거시라 {{절||三}} 그 졔단을 헐며 그 셕샹을 부스고 그 {{wu|아세라}} 목샹을 불살오며 그 신의 우샹을 ᄶᅵᆨ어ᄇᆞ려 그 일홈을 그 곳에셔 멸ᄒᆞ되 {{절||四}} 다만<noinclude><references/></noinclude> a4hp6vt4ka93sby3k5za4fhu3td05gh 청구영언/여항육인 0 100578 390405 2025-06-08T01:08:56Z ZornsLemon 15531 새 문서: {{머리말 |제목=청구영언 |부제=이삭대엽(二數大葉) 여항육인(閭巷六人) |이전=[[../열성어제|열성어제]] |다음=[[../규수삼인|규수삼인]] |설명= }} {{옛한글}}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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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온 후(後)에 |다른 표기 = |지은이 = [[저자:소백주|소백주]]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평안도 관찰사 박엽이 손님과 장기를 둘 때 소백주에게 시켜 부른 노래이다. }} {{옛한글}}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八九" tosection="二八九" /> {{옛한글 끝}} ===해설=== 곳곳에 장기 말 명칭이 들어가 있다. 相(상), 事(사), 拙(졸), 病(병), 마, 챠, 포(抱) ==저작권== {{PD-old-100}} {{분류:시조}} p2fe4fgcmlkri35y7xf334hbb6lixie 390417 390416 2025-06-08T02:23:01Z ZornsLemon 15531 /* 해설 */ 390417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상공(相公)을 뵈온 후(後)에 |다른 표기 = |지은이 = [[저자:소백주|소백주]]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평안도 관찰사 박엽이 손님과 장기를 둘 때 소백주에게 시켜 부른 노래이다. }} {{옛한글}}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八九" tosection="二八九" /> {{옛한글 끝}} ===해설=== 곳곳에 장기 말 명칭이 들어가 있다. 相(상), 事(사), 拙(졸), 病(병), 마, 챠, 抱(포) ==저작권== {{PD-old-100}} {{분류:시조}} 7lvvbsuxyc0g7am53io48pbssqgj02c 390418 390417 2025-06-08T02:23:28Z ZornsLemon 15531 /* 해설 */ 390418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제목 = 상공(相公)을 뵈온 후(後)에 |다른 표기 = |지은이 = [[저자:소백주|소백주]] |역자 =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평안도 관찰사 박엽이 손님과 장기를 둘 때 소백주에게 시켜 부른 노래이다. }} {{옛한글}} {{옛한글 시작}} <pages index="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 from=72 to=72 fromsection="二八九" tosection="二八九" /> {{옛한글 끝}} ===참고=== 곳곳에 장기 말 명칭이 들어가 있다. 相(상), 事(사), 拙(졸), 病(병), 마, 챠, 抱(포) ==저작권== {{PD-old-100}} {{분류:시조}} ph5h06sopito2n148yywf6ge3mz26wg 저자:소백주 100 100582 390415 2025-06-08T02:15:03Z ZornsLemon 15531 새 문서: {{저자 |이름 = 소백주 |다른 표기 = 小栢舟 |표기 코드 = |이름 첫 글자 = ㅅ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 |사망 연도 = ? |설명 = 조선 광해군 때의 평양 기생. |그림 = |그림 크기 = |위키백과 링크 =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소백주 }} == 저작 == === 시조 === * 상공을 뵈... 390415 wikitext text/x-wiki {{저자 |이름 = 소백주 |다른 표기 = 小栢舟 |표기 코드 = |이름 첫 글자 = ㅅ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 |사망 연도 = ? |설명 = 조선 광해군 때의 평양 기생. |그림 = |그림 크기 = |위키백과 링크 =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소백주 }} == 저작 == === 시조 === * [[상공을 뵈온 후에]] {{PD-old-100}} drdjr6qbdrbwczlsekjqwkgw01dxvyk 페이지:김천택 청구영언 (디지털한글박물관, 1728).pdf/73 250 100583 390419 2025-06-08T02:51:26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九一" /><poem> 활 지어 ᄑᆞᆯ헤 걸고 칼 ᄀᆞ라 녀페 ᄎᆞ고 鐵瓮城 邊에 筒盖 볘고 누어시니 보완다 보괴라 솔의에 ᄌᆞᆷ 못 드러 ᄒᆞ노라 </poem> <section end="二九一" /> <section begin="이중집" />::{{크게|李仲集}} <section end="이중집" /> <section begin="二九二" /><poem> 뉘라셔 날 늙다ᄂᆞᆫ고 늘근이도 이러ᄒᆞᆫ가 곳 보면 반갑고 盞 보면 우... 39041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section begin="二九一" /><poem> 활 지어 ᄑᆞᆯ헤 걸고 칼 ᄀᆞ라 녀페 ᄎᆞ고 鐵瓮城 邊에 筒盖 볘고 누어시니 보완다 보괴라 솔의에 ᄌᆞᆷ 못 드러 ᄒᆞ노라 </poem> <section end="二九一" /> <section begin="이중집" />::{{크게|李仲集}} <section end="이중집" /> <section begin="二九二" /><poem> 뉘라셔 날 늙다ᄂᆞᆫ고 늘근이도 이러ᄒᆞᆫ가 곳 보면 반갑고 盞 보면 우음 난다 春風에 흣ᄂᆞᄂᆞᆫ 白髮이야 낸들 어이 ᄒᆞ리오 </poem> <section end="二九二" /> <section begin="서호주인" />::{{크게|西湖主人}} 【茂豊正摠】 <section end="서호주인" /> <section begin="二九三" /><poem> 이 몸이 ᄡᅳᆯ듸업서 世上이 ᄇᆞ리오매 西湖 녯집을 다시 ᄡᅳᆯ고 누어시니 一身이 閑暇ᄒᆞᆯᄧᅵ나 님 못 뵈와 ᄒᆞ노라 </poem> <section end="二九三" /> <section begin="有名氏作品跋" />::我東自麗季至國朝 名公碩士及閭巷閨秀之作 爲永言以傳於世者皆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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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조}} 4uij0jbpp1dsp84pi7klmk47yogbfa2 저자:임진 100 100589 390429 2025-06-08T06:45:39Z ZornsLemon 15531 새 문서: {{저자 |이름 = 임진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1526년 |사망 연도 = 1587년 |설명 = 조선 전기의 무신. 자는 희선(希善). |그림 = |위키백과 링크 = 임진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임진 }} == 작품 == ===시조=== * [[활 지어 팔에 걸고]] {{PD-old-100}} 390429 wikitext text/x-wiki {{저자 |이름 = 임진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1526년 |사망 연도 = 1587년 |설명 = 조선 전기의 무신. 자는 희선(希善). |그림 = |위키백과 링크 = 임진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임진 }} == 작품 == ===시조=== * [[활 지어 팔에 걸고]] {{PD-old-100}} mlxbb4we664aulxuu55xiinv56sgxj0 390430 390429 2025-06-08T06:48:18Z ZornsLemon 15531 390430 wikitext text/x-wiki {{저자 |이름 = 임진(林晉)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1526년 |사망 연도 = 1587년 |설명 = 조선 전기의 무신. 자는 희선(希善). |그림 = |위키백과 링크 =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임진 }} == 작품 == ===시조=== * [[활 지어 팔에 걸고]] {{PD-old-100}} 5btlcuq1id8k3tbzj6iwdxf8z52gcml 390431 390430 2025-06-08T06:49:03Z ZornsLemon 15531 390431 wikitext text/x-wiki {{저자 |이름 = 임진 |다른 표기 = 林晉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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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x-wiki {{저자 |이름 = 이총 |다른 표기 = 李摠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 |사망 연도 = ? |설명 = 조선 전기의 문신. 갑자사화 때 처형된 종실. 사후 신원되어 무풍정(茂豊正)에 추증되었다. 자는 백원(百源), 호는 서호주인(西湖主人)·구로주인(鷗鷺主人)·월창(月牕). |그림 = |위키백과 링크 =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이총 }} == 저작 == === 시조 === * [[이 몸이 쓸 데 없어]] {{PD-old-100}} 1wk218hj2pjle74pyse93h4g0ewjg9b 390434 390433 2025-06-08T07:00:48Z ZornsLemon 15531 390434 wikitext text/x-wiki {{저자 |이름 = 이총 |다른 표기 = 李摠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 |사망 연도 = ? |설명 =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갑자사화 때 처형된 종실. 사후 신원되어 무풍정(茂豊正)에 추증되었다. 자는 백원(百源), 호는 서호주인(西湖主人)·구로주인(鷗鷺主人)·월창(月牕). |그림 = |위키백과 링크 =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 |정렬 = 이총 }} == 저작 == === 시조 === * [[이 몸이 쓸 데 없어]] {{PD-old-100}} rrpu4o2wq4kjjsrzbu56ry3orgtbdxy 390435 390434 2025-06-08T07:01:37Z ZornsLemon 15531 390435 wikitext text/x-wiki {{저자 |이름 = 이총 |다른 표기 = 李摠 |이름 첫 글자 = ㅇ |국적 = 조선 |탄생 연도 = ? |사망 연도 = ? |설명 =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갑자사화 때 처형된 종실. 사후 신원되어 무풍정(茂豊正)에 추증되었다. 자는 백원(百源), 호는 서호주인(西湖主人)·구로주인(鷗鷺主人)·월창(月牕). |그림 = |위키백과 링크 = 이총 (왕족) |위키인용집 링크 = |공용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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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부모 모르게 혼약한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공주와 혼약을 맺으라는 황명을 받은 후, 시름시름 앓고 누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소저와 공주 모두와 혼약하게 된다. 후반부는 소저를 시기한 공주와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 * [[조생원전 (신구서림)]] (1917) * [[조생원전 (한구001400)]] {{작은 스캔 링크|조생원전 한구001400.djvu}} {{동음이의}} [[분류:고전소설]] rolzp5fl199e6yws4snxb8sgnigh2vt 조선말 규범집 (1966) 0 100593 390460 2025-06-08T11:43:29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90460 wikitext text/x-wiki #넘겨주기 [[조선말 규범집 (1966년)]] 8kx2qnqir7pamshuya6thqu7hdvufgf 조선말 규범집 (1966)/띄여쓰기 0 100594 390462 2025-06-08T11:43:30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띄여쓰기]]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띄여쓰기]]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90462 wikitext text/x-wiki #넘겨주기 [[조선말 규범집 (1966년)/띄여쓰기]] dczzq7bqpkutayarnvoflcq6hniv2lz 조선말 규범집 (1966)/맞춤법 0 100595 390464 2025-06-08T11:43:30Z Namoroka 1939 Namoroka님이 [[조선말 규범집 (1966)/맞춤법]] 문서를 [[조선말 규범집 (1966년)/맞춤법]]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390464 wikitext text/x-wiki #넘겨주기 [[조선말 규범집 (1966년)/맞춤법]] juah292tado06ztevd9wq1mmdofvqox 조선말 규범집 (1966)/문장부호법 0 100596 39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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