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문헌
kowikisource
https://ko.wikisource.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EB%8C%80%EB%AC%B8
MediaWiki 1.45.0-wmf.7
first-letter
미디어
특수
토론
사용자
사용자토론
위키문헌
위키문헌토론
파일
파일토론
미디어위키
미디어위키토론
틀
틀토론
도움말
도움말토론
분류
분류토론
저자
저자토론
포털
포털토론
번역
번역토론
초안
초안토론
페이지
페이지토론
색인
색인토론
TimedText
TimedText talk
모듈
모듈토론
번역:천자문
114
12396
392613
392610
2025-06-26T12:16:57Z
2406:5900:1001:2070:D5A9:2A25:EE5A:B0E8
392613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제목 = 천자문
|저자 = [[저자:주흥사|주흥사]]
|역자 = [[사용자:jjw|jjw]]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위키백과|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2010년 8월 25일 석봉 한호의 필체를 목각한 《천자문》이 대한민국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되었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00px; background:#eeffee;"| 원문
!background:#eeeeff;"| 번역
|-
| {{더 크게|{{lang|zh|天地玄黃 宇宙洪荒}}}}
|rowspan=2|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크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ref>독음은 [http://handic.daum.net/dicha/view_top.do 다음한자사전] 을 따랐다. 두음법칙에 의해 독음이 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李)는 낱말의 앞에 올경우 이로 적었다.</ref>
|-
| {{더 크게|{{lang|zh|日月盈昃 辰宿列張}}}}
|rowspan=2|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은 자리를 잡아 늘어서 있다.
|-
|일월영측 진수열장
|-
| {{더 크게|{{lang|zh|寒來暑往 秋收冬藏}}}}
|rowspan=2|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
|-
| 한래서왕 추수동장
|-
| {{더 크게|{{lang|zh|閏餘成歲 律呂調陽}}}}
|rowspan=2| 윤달을 더하여 한해를 이루고 가락을 맞추어 양기를 돋운다.
|-
| 윤여성세 율려조양
|-
| {{더 크게|{{lang|zh|雲騰致雨 露結為霜}}}}
|rowspan=2|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얼어 서리가 된다.
|-
| 운등치우 노결위상
|-
| {{더 크게|{{lang|zh|金生麗水 玉出{山昆}岡}}}}
|rowspan=2| 금은 여수에서 나고 옥은 곤강에서 난다.
|-
| 금생여수 옥출곤강
|-
| {{더 크게|{{lang|zh|劍號巨闕 珠稱夜光}}}}
|rowspan=2| 검은 일컬어 거궐이요 구슬은 일컬어 야광이라.
|-
| 검호거궐 주칭야광
|-
| {{더 크게|{{lang|zh|果珍李柰 菜重芥薑}}}}
|rowspan=2| 과일 가운데 진미는 오얏과 능금이요 채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겨자와 생강이라.
|-
| 과진이내 채중개강
|-
| {{더 크게|{{lang|zh|海鹹河淡 鱗潛羽翔}}}}
|rowspan=2| 바다는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달린 물고기는 물에 잠기고 깃 달린 새는 높이 난다.
|-
| 해함하담 인잠우상
|-
| {{더 크게|{{lang|zh|龍師火帝 鳥官人皇}}}}
|rowspan=2| 복희씨<ref>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고 하며 용사는 복희의 별칭이다.</ref>, 신농씨<ref>화제 또는 염제(炎帝)는 신농씨의 별칭이다</ref>, 소호<ref>소호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ref> 와 황제헌원<ref>황제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술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어 인황이란 별칭이 붙었다.</ref>
|-
| 용사화제 조관인황
|-
| {{더 크게|{{lang|zh|始制文字 乃服衣裳}}}}
|rowspan=2| 문자를 처음 짓고 옷을 지어 입혔지.
|-
| 시제문자 내복의상
|-
| {{더 크게|{{lang|zh|推位讓國 有虞陶唐}}}}
|rowspan=2| 자리를 미루며 나라를 물려주니 유우<ref>순임금의 이름이다.</ref> 와 도당<ref>우 임금의 이름이다.</ref> 이라.
|-
| 추위양국 유우도당
|-
| {{더 크게|{{lang|zh|弔民伐罪 周發殷湯}}}}
|rowspan=2| 백성을 돕고 죄를 벌하니 주나라 무왕<ref>발(發)은 주 무왕의 이름</ref> 과 은나라 탕왕이라.
|-
| 조민벌죄 주발은탕
|-
| {{더 크게|{{lang|zh|坐朝問道 垂拱平章}}}}
|rowspan=2| 조정에 앉아 도를 묻기에 두 손으로 문장을 올리니,
|-
| 좌조문도 수공평장
|-
| {{더 크게|{{lang|zh|愛育黎首 臣伏戎羌}}}}
|rowspan=2| 백성을 아끼고<ref>여수(黎首)는 검은 머리, 즉 관직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ref> 오랑캐가 신하로 복종하게 하소서.
|-
| 애육여수 신복융강
|-
| {{더 크게|{{lang|zh|遐邇壹體 率賓歸王}}}}
|rowspan=2|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어 임금께 이끌려 따를 것입니다.
|-
| 하이일체 솔빈귀왕
|-
| {{더 크게|{{lang|zh|鳴鳳在樹 白駒食場}}}}
|rowspan=2|봉황은 나무에 내려 울고 흰망아지 풀을 뜯으니<ref>성군이 나면 봉황이 찾아와 울고 흰망아지가 나타난다는 전설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말함</ref>
|-
| 명봉재수 백구식장
|-
| {{더 크게|{{lang|zh|化被草木 賴及萬方}}}}
|rowspan=2| 덕화가 초목까지 미치고 만방에 퍼지리.
|-
| 화피초목 뇌급만방
|-
| {{더 크게|{{lang|zh|蓋此身髮 四大五常}}}}
|rowspan=2| 몸에 털이 덮힌 것과 같이 4대5상을 지키고<ref>4대는 하늘, 땅, 도(道), 임금. 5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ref>
|-
| 개차신발 사대오상
|-
| {{더 크게|{{lang|zh|恭惟鞠養 豈敢毁傷}}}}
|rowspan=2| 길러준 은혜를 공경하여 감히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
| 공유국양 기감훼상
|-
| {{더 크게|{{lang|zh|女慕貞烈 男效才良}}}}
|rowspan=2|여자는 정조를 따르고 남자는 재량을 본받아
|-
| 여모정렬 남효재량
|-
| {{더 크게|{{lang|zh|知過必改 得能莫忘}}}}
|rowspan=2|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배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
| 지과필개 득능막망
|-
| {{더 크게|{{lang|zh|罔談彼短 靡恃己長}}}}
|rowspan=2| 다른이의 단점을 입에 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마라
|-
| 망담피단 미시기장
|-
| {{더 크게|{{lang|zh|信使可覆 器欲難量}}}}
|rowspan=2| 믿었던 장점이 뒤집힐 수 있고 다른 사람 기량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신사가복 기욕난량
|-
| {{더 크게|{{lang|zh|墨悲絲染 詩讚羔羊}}}}
|rowspan=2| 이 때문에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탄식하였고<ref>묵자 소염론</ref> 시경은 고양을 찬송하였다.<ref>시경 고양편</ref>
|-
| 묵비사염 시찬고양
|-
| {{더 크게|{{lang|zh|景行維賢 克念作聖}}}}
|rowspan=2| 바르고 어진 것을 보고 행하여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
| 경행유현 극념작성
|-
| {{더 크게|{{lang|zh|德建名立 形端表正}}}}
|rowspan=2|덕을 쌓아 이름을 세우면 바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
|-
| 덕건명립 형단표정
|-
| {{더 크게|{{lang|zh|空谷傳聲 虛堂習聽}}}}
|rowspan=2| 빈 골짜기에 울리는 소리처럼 또한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공곡전성 허당습청
|-
| {{더 크게|{{lang|zh|禍因惡積 福緣善慶}}}}
|rowspan=2| 화는 악행을 쌓은 것이 원인이요 복은 선행의 결과이다.
|-
| 화인악적 복연선경
|-
| {{더 크게|{{lang|zh|尺璧非寶 寸陰是競}}}}
|rowspan=2| 커다란 옥 구슬이<ref>여기서 벽은 완벽의 유래가 된 옥구슬을 말한다. 척(尺)과 촌(寸)은 길이의 단위이나 크고 작은 것으로 의역하였다.</ref> 보배가 아니니 작은 시간을 경주하여야 하여라.
|-
| 척벽비보 촌음시경
|-
| {{더 크게|{{lang|zh|資父事君 曰嚴與敬}}}}
|rowspan=2|부모를 모시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엄정하면서도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니
|-
| 자부사군 왈엄여경
|-
| {{더 크게|{{lang|zh|孝當竭力 忠則盡命}}}}
|rowspan=2| 효도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다.
|-
| 효당갈력 충즉진명
|-
| {{더 크게|{{lang|zh|臨深履薄 夙興溫凊}}}}
|rowspan=2| 깊은 곳을 만나도 살얼음 지나듯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 덥고 차가운지 살피는 것(이 효도하는 마음가짐이며)
|-
| 임심리박 숙흥온정
|-
| {{더 크게|{{lang|zh|似蘭斯馨 如松之盛}}}}
|rowspan=2| 난초와 같이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굳센 것(이 충성하는 마음가짐이다.)
|-
| 사란사형 여송지성
|-
| {{더 크게|{{lang|zh|川流不息 淵澄取映}}}}
|rowspan=2|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고 연못은 맑아 그림자를 비추듯
|-
| 천류불식 연징취영
|-
| {{더 크게|{{lang|zh|容止若思 言辭安定}}}}
|rowspan=2| 얼굴은 생각과 같게 하고 말은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
|-
| 용지약사 언사안정
|-
| {{더 크게|{{lang|zh|篤初誠美 愼終宜令}}}}
|rowspan=2| 일을 시작할 때에 정성을 다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신중히 하면
|-
| 독초성미 신종의령
|-
| {{더 크게|{{lang|zh|榮業所基 籍甚無竟}}}}
|rowspan=2| 이를 바탕으로 이루는 업적이 끝없으리라.
|-
| 영업소기 적심무경
|-
| {{더 크게|{{lang|zh|學優登仕 攝職從政}}}}
|rowspan=2|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올라 직무를 맞고 정사를 돌볼 때에
|-
| 학우등사 섭직종정
|-
| {{더 크게|{{lang|zh|存以甘棠 去而益詠}}}}
|rowspan=2| 벼슬을 맡아 팥배나무 밑에서 정사를 본 소공과 같이 청렴하면 물러날 때 칭송을 들을 것이다.<ref>감당(甘棠)은 팥배나무이다. 주나라 소공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공명 정대하며 청렴하였다고 한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감당시를 읇었다. 시경 국풍편 감당</ref>
|-
| 존이감당 거이익영
|-
| {{더 크게|{{lang|zh|樂殊貴賤 禮別尊卑}}}}
|rowspan=2| 즐거움에 귀천이 없으나 예절에는 존비가 있으니
|-
| 악수귀천 예별존비
|-
| {{더 크게|{{lang|zh|上和下睦 夫唱婦隨}}}}
|rowspan=2| 상하가 화목하고 부부가 원만하며<ref>사자성어 부창부수의 출전이다.</ref>
|-
| 상화하목 부창부수
|-
| {{더 크게|{{lang|zh|外受傅訓 入奉母儀}}}}
|rowspan=2| 밖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에서는 어머니의 뜻을 받을며
|-
| 외수부훈 입봉모의
|-
| {{더 크게|{{lang|zh|諸姑伯叔 猶子比兒}}}}
|rowspan=2| 모든 고모 삼촌의 아이를 내 아이라 여기고
|-
| 제고백숙 유자비아
|-
| {{더 크게|{{lang|zh|孔懷兄弟 同氣連枝}}}}
|rowspan=2| 형제는 서로 품어주니 같은 기운에서 나온 가지기 때문이고
|-
| 공회형제 동기연지
|-
| {{더 크게|{{lang|zh|交友投分 切磨箴規}}}}
|rowspan=2| 벗을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고 규범을 염두에 두어 절제하여
|-
| 교우투분 절마잠규
|-
| {{더 크게|{{lang|zh|仁慈隱惻 造次弗離}}}}
|rowspan=2|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고
|-
| 인자은측 조차불리
|-
| {{더 크게|{{lang|zh|節義廉退 顛沛匪虧}}}}
|rowspan=2| 절의를 지키고 청렴히 물러나 이러한 (예의가) 이지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
| 절의염퇴 전패비휴
|-
| {{더 크게|{{lang|zh|性靜情逸 心動神疲}}}}
|rowspan=2| 성정이 고요하면 심정이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이 피로하니
|-
| 성정정일 심동신피
|-
| {{더 크게|{{lang|zh|守眞志滿 逐物意移}}}}
|rowspan=2| 참 뜻이 가득하도록 지키고 물욕을 멀리하라.
|-
| 수진지만 축물의이
|-
| {{더 크게|{{lang|zh|堅持雅操 好爵自縻}}}}
|rowspan=2| 우아하고 절개가 있으면 관작은 스스로 오게 되어 있다.
|-
| 견지아조 호작자미
|-
| {{더 크게|{{lang|zh|都邑華夏 東西二京}}}}
|rowspan=2| 화하<ref>중국의 별칭</ref> 의 도읍은 동서 2경이라
|-
|도읍화하 동서이경
|-
| {{더 크게|{{lang|zh|背邙面洛 浮渭據涇}}}}
|rowspan=2|낙양은 북망산을 등지고 낙수를 마주하고 장안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르는 구나.
|-
|배망면락 부위거경
|-
| {{더 크게|{{lang|zh|宮殿盤鬱 樓觀飛驚}}}}
|rowspan=2|궁전은 울창한 숲에 쌓였고 누각에 올라 놀라운 경치를 보며
|-
|궁전반울 누관비경
|-
| {{더 크게|{{lang|zh|圖寫禽獸 畵綵仙靈}}}}
|rowspan=2|날짐승 들짐승을 그리니 신선 사는 그림이로구나.
|-
|도사금수 화채선령
|-
| {{더 크게|{{lang|zh|丙舍傍啟 甲帳對楹}}}}
|rowspan=2|병사<ref>궁전 내에 있는 건물들을 뜻하는 낱말</ref> 옆을 열어 갑장<ref>동방삭이 만들었다는 장막</ref> 이 기둥을 마주하게 하고
|-
| 병사방계 갑장대영
|-
| {{더 크게|{{lang|zh|肆筵設席 鼓瑟吹笙}}}}
|rowspan=2|자리를 마련해 연회를 열고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부니
|-
|사연설석 고슬취생
|-
| {{더 크게|{{lang|zh|升階納陛 弁轉疑星}}}}
|rowspan=2| 계단을 올라 납폐하는 신료들은 별인듯 번쩍이고
|-
|승계납폐 변전의성
|-
| {{더 크게|{{lang|zh|右通廣內 左達承明}}}}
|rowspan=2| 오른쪽은 광내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에 닿아<ref>광내와 승명은 모두 고대 중국 궁내의 관직처</ref>
|-
|우통광내 좌달승명
|-
| {{더 크게|{{lang|zh|既集墳典 亦聚群英}}}}
|rowspan=2| 이미 분전<ref>삼황오제 시절의 법률과 의전을 뜻한다.</ref> 을 모은 곳에 영웅들이 모였도다.
|-
|기집분전 역취군영
|-
| {{더 크게|{{lang|zh|杜稾鍾隸 漆書壁經}}}}
|rowspan=2| 두고<ref>초서를 처음 썼다고 전해진다.</ref> 와 종례<ref>예서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ref> 의 글 칠서<ref>대나무에 칠을 한 뒤 쓴 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사용하였다.</ref> 와 벽경<ref>공자에게서 전해 왔다는 육경</ref>
|-
|두고종례 칠서벽경
|-
| {{더 크게|{{lang|zh|府羅將相 路俠槐卿}}}}
|rowspan=2|각 부에 장군과 재상이 있어 고관이 즐비하여 길이 좁다.
|-
|부라장상 노협괴경
|-
| {{더 크게|{{lang|zh|戶封八縣 家給千兵}}}}
|rowspan=2|여덟 고을을 봉지로 주고 천명의 군사로 지키게 하니<ref>한고조의 논공행상을 가리킨다.</ref>
|-
|호봉팔현 가급천병
|-
| {{더 크게|{{lang|zh|高冠陪輦 驅轂振纓}}}}
|rowspan=2|높은 관을 쓰고 수레에올라 바퀴를 구르며 갓끈을 떨치는 구나.
|-
|고관배련 구곡진영
|-
| {{더 크게|{{lang|zh|世祿侈富 車駕肥輕}}}}
|rowspan=2| 대대로 받는 녹으로 부귀를 누리며 수레는 (제물로) 무겁고 가마는 가벼우니
|-
|세록치부 거가비경
|-
| {{더 크게|{{lang|zh|策功茂實 勒碑刻銘}}}}
|rowspan=2|끝없이 쌓은 공적 비석에 세기는 구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 {{더 크게|{{lang|zh|磻溪伊尹 佐時阿衡}}}}
|rowspan=2| 반계의 (태공망)과 (탕왕을 도운) 이윤은 때가 도와 아형의 벼슬에 올랐고
|-
|반계이윤 좌시아형
|-
| {{더 크게|{{lang|zh|奄宅曲阜 微旦孰營}}}}
|rowspan=2| 곡부에 궁전을 지은 것은 주공 단<ref>주문왕의 아우, 노나라의 시조</ref> 이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
|-
|엄택곡부 미단숙영
|-
| {{더 크게|{{lang|zh|桓公匡合 濟弱扶傾}}}}
|rowspan=2|환공은 제후를 널리 합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했지
|-
|환공광합 제약부경
|-
| {{더 크게|{{lang|zh|綺迴漢惠 說感武丁}}}}
|rowspan=2|기리계<ref>한고조가 죽고 여희가 여씨 일족에서 황제를 즉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장량은 기리계의 도움으로 혜제가 즉위하도록 하였다.</ref> 가 한 혜제를 회복시키고 부열이 무정을 감동시키듯.<ref>은 나라 무정이 부열에게 감동하여 선정을 배풀었다는 고사</ref>
|-
|기회한혜 설감무정
|-
| {{더 크게|{{lang|zh|俊乂密勿 多士寔寧}}}}
|rowspan=2|준걸과 예사가 모이니 참으로 평안하구나.
|-
|준예밀물 다사식녕
|-
| {{더 크게|{{lang|zh|晉楚更霸 趙魏困橫}}}}
|rowspan=2|진과 초가 다시 패자가 되고 조와위는 연횡으로 곤궁에 빠져
|-
|진초갱패 조위곤횡
|-
| {{더 크게|{{lang|zh|假途滅虢 踐土會盟}}}}
|rowspan=2|진은 위계를 써 괵을 멸하고 천토에서 회맹하였고
|-
|가도멸괵 천토회맹
|-
| {{더 크게|{{lang|zh|何遵約法 韓弊煩刑}}}}
|rowspan=2|어찌 (한고조의) 약법을 두고 한비자의 낡고 번잡한 형벌을 따를 것인가
|-
|하준약법 한폐번형
|-
| {{더 크게|{{lang|zh|起翦頗牧 用軍最精}}}}
|rowspan=2|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은 군사를 가장 잘 다루었고
|-
|기전파목 용군최정
|-
| {{더 크게|{{lang|zh|宣威沙漠 馳譽丹青}}}}
|rowspan=2|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치니 단청에 넣어 기리는 구나.
|-
|선위사막 치예단청
|-
| {{더 크게|{{lang|zh|九州禹跡 百郡秦幷}}}}
|rowspan=2| 하우씨가 구주를 두어 백군이 진에 병합되고
|-
|구주우적 백군진병
|-
| {{더 크게|{{lang|zh|嶽宗恆岱 禪主云亭}}}}
|rowspan=2| 산중 으뜸은 항산과 태산이라 임금을 정하는 운정이 그곳에 있으며
|-
|악종항대 선주운정
|-
| {{더 크게|{{lang|zh|雁門紫塞 雞田赤城}}}}
|rowspan=2| 안문관과 만리장성, 계전과 적성
|-
|안문자새 계전적성
|-
| {{더 크게|{{lang|zh|昆池碣石 鉅野洞庭}}}}
|rowspan=2| 운남의 곤지와 부평의 갈석, 거야의 넓은 들판과 동정의 큰 호수
|-
|곤지갈석 거야동정
|-
| {{더 크게|{{lang|zh|曠遠緜邈 巖岫杳冥}}}}
|rowspan=2|아득히 멀리 줄지어 있으니 아득하고 묘연하구나.
|-
|광원면막 암수묘명
|-
| {{더 크게|{{lang|zh|治本於農 務茲稼穡}}}}
|rowspan=2| 다스림의 근본은 농업이니 때를 맞추어 심고 거두어야 하리
|-
|치본어농 무자가색
|-
| {{더 크게|{{lang|zh|俶載南畝 我藝黍稷}}}}
|rowspan=2|이제 남쪽 이랑을 일궈 나는 기장과 피를 가꾸어
|-
|숙재남묘 아예서직
|-
| {{더 크게|{{lang|zh|稅熟貢新 勸賞黜陟}}}}
|rowspan=2| 익으면 세를 내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 상을 권하고 (못된 자는) 내쫓으리라.
|-
|세숙공신 권상출척
|-
| {{더 크게|{{lang|zh|孟軻敦素 史魚秉直}}}}
|rowspan=2|맹자는 도타운 사람이었고 사어는 강직했으니
|-
|맹가돈소 사어병직
|-
| {{더 크게|{{lang|zh|庶幾中庸 勞謙謹敕}}}}
|rowspan=2|중용을 으뜸으로 삼고 겸손에 힘쓰고 경계해야지
|-
|서기중용 노겸근칙
|-
| {{더 크게|{{lang|zh|聆音察理 鏡貌辨色}}}}
|rowspan=2|들리는 소리 자세히 살피고 거울에 비치는 모양 꼼꼼히 구별하고
|-
|영음찰리 감모변색
|-
| {{더 크게|{{lang|zh|貽厥嘉猷 勉其祗植}}}}
|rowspan=2|그 아름다움이 후세에 미치도록 그 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며
|-
|이궐가유 면기지식
|-
| {{더 크게|{{lang|zh|省躬譏誡 寵增抗極}}}}
|rowspan=2|몸을 살펴 나무라고 탓할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총애가 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
|성궁기계 총증항극
|-
| {{더 크게|{{lang|zh|殆辱近恥 林皋幸即}}}}
|rowspan=2| 위태로운 치욕은 부끄러운 일에 의한 것이니 수풀과 언덕에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
|태욕근치 임고행즉
|-
| {{더 크게|{{lang|zh|兩疏見機 解組誰逼}}}}
|rowspan=2| 양소<ref>한나라의 소광과 소수</ref> 는 기회를 보아 관복을 벗으니 누가 핍박하였으랴
|-
|양소견기 해조수핍
|-
| {{더 크게|{{lang|zh|索居閒處 沈默寂寥}}}}
|rowspan=2|한가한 곳을 찾아 살며 고요히 살며 침묵한 채
|-
|색거한처 침묵적요
|-
| {{더 크게|{{lang|zh|求古尋論 散慮逍遙}}}}
|rowspan=2|옛일을 두고 논장을 찾고 염려를 잊고 소요하니
|-
|구고심론 산려소요
|-
| {{더 크게|{{lang|zh|欣奏累遣 慼謝歡招}}}}
|rowspan=2|기쁜 일은 알리고 누추한 것은 보내며 슬픈 일은 마다하고 기쁜 일을 환영하리
|-
|흔주루견 척사환초
|-
| {{더 크게|{{lang|zh|渠荷的歷 園莽抽條}}}}
|rowspan=2|도랑에 핀 연꽃의 이력, 동산에 자란 풀 가지
|-
|거하적력 원망추조
|-
| {{더 크게|{{lang|zh|枇杷晚翠 梧桐早凋}}}}
|rowspan=2|비파나무 만추에도 푸르른데 오동나무 일찍이 시들었고
|-
|비파만취 오동조조
|-
| {{더 크게|{{lang|zh|陳根委翳 落葉飄颻}}}}
|rowspan=2|고목 뿌리 덮은 낙엽 바람에 날리니
|-
|진근위예 낙엽표요
|-
| {{더 크게|{{lang|zh|遊鵾獨運 凌摩絳霄}}}}
|rowspan=2|댓닭 한 마리 홀로 해엄치며 노을진 하늘을 업수이 여기고
|-
|유곤독운 능마강소
|-
| {{더 크게|{{lang|zh|耽讀翫市 寓目囊箱}}}}
|rowspan=2|(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한 번 보면 상자에 넣은 듯 (잊지 않았다지)
|-
|탐독완시 우목낭상
|-
| {{더 크게|{{lang|zh|易輶攸畏 屬耳垣墻}}}}
|rowspan=2|가벼이 경솔하게 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담장에도 귀가 있다 하기 때문
|-
|역유유외 속이원장
|-
| {{더 크게|{{lang|zh|具膳飡飯 適口充腸}}}}
|rowspan=2|반찬이나 저녁밥이야 먹고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
|-
|구선손반 적구충장
|-
| {{더 크게|{{lang|zh|飽飫烹宰 飢厭糟糠}}}}
|rowspan=2|배부르면 재상의 요리도 물리게 되고 배 고프면 겨 지게미로도 족하니
|-
|포어팽재 기염조강
|-
| {{더 크게|{{lang|zh|親戚故舊 老少異糧}}}}
|rowspan=2|친척이나 옛친구 노소에 따라 음식도 다를 밖에
|-
|친척고구 노소이량
|-
| {{더 크게|{{lang|zh|妾御績紡 侍巾帷房}}}}
|rowspan=2|아내가 길쌈하여 어른 방에 수건을 받들고
|-
|첩어적방 시건유방
|-
| {{더 크게|{{lang|zh|紈扇圓潔 銀燭煒煌}}}}
|rowspan=2|흰 비단으로 지은 부채 둥글고 깨끗하며 은촛대 불빛 밝으니
|-
|환선원결 은촉위황
|-
| {{더 크게|{{lang|zh|晝眠夕寐 藍笋象床}}}}
|rowspan=2|낮에 자고 저녁에 또 자려 푸른 대로 코끼리 침상을 만들지
|-
|주면석매 남순상상
|-
| {{더 크게|{{lang|zh|絃歌酒讌 接盃舉觴}}}}
|rowspan=2|거문거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주연을 열고 술잔을 들어 부딛히고
|-
|현가주연 접배거상
|-
| {{더 크게|{{lang|zh|矯手頓足 悅豫且康}}}}
|rowspan=2|손을 들고 발을 움직여 춤추며 이처럼 평안함을 즐거워하세
|-
|교수돈족 열예차강
|-
| {{더 크게|{{lang|zh|嫡後嗣續 祭祀烝嘗}}}}
|rowspan=2| 맏이는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어
|-
|적후사속 제사증상
|-
| {{더 크게|{{lang|zh|稽顙再拜 悚懼恐惶}}}}
|rowspan=2|이마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
|-
|계상재배 송구공황
|-
| {{더 크게|{{lang|zh|牋牒簡要 顧答審詳}}}}
|rowspan=2|편지는 간략히 요지만 쓰고 답신은 자세히 살펴서 하라.
|-
|전첩간요 고답심상
|-
| {{더 크게|{{lang|zh|骸垢想浴 執熱願涼}}}}
|rowspan=2|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생각이 나고 열이 차면 서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
|-
|해구상욕 집열원량
|-
| {{더 크게|{{lang|zh|驢騾犢特 駭躍超驤}}}}
|rowspan=2|노새며 망아지, 숫송아지가 놀라뛰며 내달리듯
|-
|여라독특 해약초양
|-
| {{더 크게|{{lang|zh|誅斬賊盜 捕獲叛亡}}}}
|rowspan=2|적도는 잡아 죽이고 배역자는 잡아들이리
|-
|주참적도 포획반망
|-
| {{더 크게|{{lang|zh|布射遼丸 嵇琴阮嘯}}}}
|rowspan=2|여포는 활 잘 쏘았고 의료는 돌 잘 던졌으며 혜강은 금을 잘켰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지
|-
|포사료환 혜금완소
|-
| {{더 크게|{{lang|zh|恬筆倫紙 鈞巧任釣}}}}
|rowspan=2|붓을 만든 건 몽념 종이를 만든 건 채륜, 마륜의 교묘한 솜씨<ref>마륜은 지남차를 만들었다고 한다.</ref> 임공자의 낚시대<ref>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ref>
|-
|염필윤지 균교임조
|-
| {{더 크게|{{lang|zh|釋紛利俗 竝皆佳妙}}}}
|rowspan=2|이러한 재주를 세상에 푸니 모두다 뛰어나고 신기하였다.
|-
|석분리속 병개가묘
|-
| {{더 크게|{{lang|zh|毛施淑姿 工顰妍笑}}}}
|rowspan=2|오나라 모타와 월나라 서시의 자태는 찡그린 모습도 아름다워라
|-
|모시숙자 공빈연소
|-
| {{더 크게|{{lang|zh|年矢每催 曦暉朗耀}}}}
|rowspan=2| 세월은 살같이 언제나 제촉하나 햇빛 달빛은 밝게 빛나
|-
|연시매최 희휘낭요
|-
| {{더 크게|{{lang|zh|璇璣懸斡 晦魄環照}}}}
|rowspan=2|천문을 보는 기계 매달려 돌듯 그믐이 지나 다시 보름이 되니
|-
|선기현알 회백환조
|-
| {{더 크게|{{lang|zh|指薪修祜 永綏吉劭}}}}
|rowspan=2|손가락에 섶불을 단 듯 수양에 전념하면 영원토록 평안하고 길하리라.
|-
|지신수우 영수길소
|-
| {{더 크게|{{lang|zh|矩步引領 俯仰廊廟}}}}
|rowspan=2|반듯하게 걸으며 옷길을 끌고 사당에 엎드려 예의를 다하고
|-
|구보인령 부앙낭묘
|-
| {{더 크게|{{lang|zh|束帶矜莊 徘徊瞻眺}}}}
|rowspan=2|허리띠를 단단히 묶어 긍지를 갖고 여러 곳을 두루 살펴라
|-
|속대긍장 배회첨조
|-
| {{더 크게|{{lang|zh|孤陋寡聞 愚蒙等誚}}}}
|rowspan=2|(이런 글을 쓴 나는) 고루하고 들은 것 없어 어리석단 꾸짖음을 면치 못하리
|-
|고루과문 우몽등초
|-
| {{더 크게|{{lang|zh|謂語助者 焉哉乎也}}}}
|rowspan=2|어조사에는 언재호야가 있다.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역주 ==
<references/>
= 라이선스 =
{{번역 저작권
|원문 = {{PD-old-100}}
|번역 = {{PD-자작}}
}}
[[분류:한시]]
0ksc5ep4rpgkmgwoeerzxi3nldah6jl
392614
392613
2025-06-26T12:19:23Z
2406:5900:1001:2070:D5A9:2A25:EE5A:B0E8
392614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제목 = 천자문
|저자 = [[저자:주흥사|주흥사]]
|역자 = [[사용자:jjw|jjw]]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위키백과|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2010년 8월 25일 석봉 한호의 필체를 목각한 《천자문》이 대한민국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되었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00px; background:#eeffee;"| 원문
!background:#eeeeff;"| 번역
|-
| {{더 크게|{{lang|zh|天地玄黃 宇宙洪荒}}}}
|rowspan=2|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크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ref>독음은 [http://handic.daum.net/dicha/view_top.do 다음한자사전] 을 따랐다. 두음법칙에 의해 독음이 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李)는 낱말의 앞에 올경우 이로 적었다.</ref>
|-
| {{더 크게|{{lang|zh|日月盈昃 辰宿列張}}}}
|rowspan=2|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은 자리를 잡아 늘어서 있다.
|-
|일월영측 진수열장
|-
| {{더 크게|{{lang|zh|寒來暑往 秋收冬藏}}}}
|rowspan=2|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
|-
| 한래서왕 추수동장
|-
| {{더 크게|{{lang|zh|閏餘成歲 律呂調陽}}}}
|rowspan=2| 윤달을 더하여 한해를 이루고 가락을 맞추어 양기를 돋운다.
|-
| 윤여성세 율려조양
|-
| {{더 크게|{{lang|zh|雲騰致雨 露結為霜}}}}
|rowspan=2|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얼어 서리가 된다.
|-
| 운등치우 노결위상
|-
| {{더 크게|{{lang|zh|金生麗水 玉出昆岡}}}}
|rowspan=2| 금은 여수에서 나고 옥은 곤강에서 난다.
|-
| 금생여수 옥출곤강
|-
| {{더 크게|{{lang|zh|劍號巨闕 珠稱夜光}}}}
|rowspan=2| 검은 일컬어 거궐이요 구슬은 일컬어 야광이라.
|-
| 검호거궐 주칭야광
|-
| {{더 크게|{{lang|zh|果珍李柰 菜重芥薑}}}}
|rowspan=2| 과일 가운데 진미는 오얏과 능금이요 채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겨자와 생강이라.
|-
| 과진이내 채중개강
|-
| {{더 크게|{{lang|zh|海鹹河淡 鱗潛羽翔}}}}
|rowspan=2| 바다는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달린 물고기는 물에 잠기고 깃 달린 새는 높이 난다.
|-
| 해함하담 인잠우상
|-
| {{더 크게|{{lang|zh|龍師火帝 鳥官人皇}}}}
|rowspan=2| 복희씨<ref>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고 하며 용사는 복희의 별칭이다.</ref>, 신농씨<ref>화제 또는 염제(炎帝)는 신농씨의 별칭이다</ref>, 소호<ref>소호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ref> 와 황제헌원<ref>황제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술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어 인황이란 별칭이 붙었다.</ref>
|-
| 용사화제 조관인황
|-
| {{더 크게|{{lang|zh|始制文字 乃服衣裳}}}}
|rowspan=2| 문자를 처음 짓고 옷을 지어 입혔지.
|-
| 시제문자 내복의상
|-
| {{더 크게|{{lang|zh|推位讓國 有虞陶唐}}}}
|rowspan=2| 자리를 미루며 나라를 물려주니 유우<ref>순임금의 이름이다.</ref> 와 도당<ref>우 임금의 이름이다.</ref> 이라.
|-
| 추위양국 유우도당
|-
| {{더 크게|{{lang|zh|弔民伐罪 周發殷湯}}}}
|rowspan=2| 백성을 돕고 죄를 벌하니 주나라 무왕<ref>발(發)은 주 무왕의 이름</ref> 과 은나라 탕왕이라.
|-
| 조민벌죄 주발은탕
|-
| {{더 크게|{{lang|zh|坐朝問道 垂拱平章}}}}
|rowspan=2| 조정에 앉아 도를 묻기에 두 손으로 문장을 올리니,
|-
| 좌조문도 수공평장
|-
| {{더 크게|{{lang|zh|愛育黎首 臣伏戎羌}}}}
|rowspan=2| 백성을 아끼고<ref>여수(黎首)는 검은 머리, 즉 관직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ref> 오랑캐가 신하로 복종하게 하소서.
|-
| 애육여수 신복융강
|-
| {{더 크게|{{lang|zh|遐邇壹體 率賓歸王}}}}
|rowspan=2|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어 임금께 이끌려 따를 것입니다.
|-
| 하이일체 솔빈귀왕
|-
| {{더 크게|{{lang|zh|鳴鳳在樹 白駒食場}}}}
|rowspan=2|봉황은 나무에 내려 울고 흰망아지 풀을 뜯으니<ref>성군이 나면 봉황이 찾아와 울고 흰망아지가 나타난다는 전설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말함</ref>
|-
| 명봉재수 백구식장
|-
| {{더 크게|{{lang|zh|化被草木 賴及萬方}}}}
|rowspan=2| 덕화가 초목까지 미치고 만방에 퍼지리.
|-
| 화피초목 뇌급만방
|-
| {{더 크게|{{lang|zh|蓋此身髮 四大五常}}}}
|rowspan=2| 몸에 털이 덮힌 것과 같이 4대5상을 지키고<ref>4대는 하늘, 땅, 도(道), 임금. 5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ref>
|-
| 개차신발 사대오상
|-
| {{더 크게|{{lang|zh|恭惟鞠養 豈敢毁傷}}}}
|rowspan=2| 길러준 은혜를 공경하여 감히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
| 공유국양 기감훼상
|-
| {{더 크게|{{lang|zh|女慕貞烈 男效才良}}}}
|rowspan=2|여자는 정조를 따르고 남자는 재량을 본받아
|-
| 여모정렬 남효재량
|-
| {{더 크게|{{lang|zh|知過必改 得能莫忘}}}}
|rowspan=2|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배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
| 지과필개 득능막망
|-
| {{더 크게|{{lang|zh|罔談彼短 靡恃己長}}}}
|rowspan=2| 다른이의 단점을 입에 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마라
|-
| 망담피단 미시기장
|-
| {{더 크게|{{lang|zh|信使可覆 器欲難量}}}}
|rowspan=2| 믿었던 장점이 뒤집힐 수 있고 다른 사람 기량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신사가복 기욕난량
|-
| {{더 크게|{{lang|zh|墨悲絲染 詩讚羔羊}}}}
|rowspan=2| 이 때문에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탄식하였고<ref>묵자 소염론</ref> 시경은 고양을 찬송하였다.<ref>시경 고양편</ref>
|-
| 묵비사염 시찬고양
|-
| {{더 크게|{{lang|zh|景行維賢 克念作聖}}}}
|rowspan=2| 바르고 어진 것을 보고 행하여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
| 경행유현 극념작성
|-
| {{더 크게|{{lang|zh|德建名立 形端表正}}}}
|rowspan=2|덕을 쌓아 이름을 세우면 바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
|-
| 덕건명립 형단표정
|-
| {{더 크게|{{lang|zh|空谷傳聲 虛堂習聽}}}}
|rowspan=2| 빈 골짜기에 울리는 소리처럼 또한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공곡전성 허당습청
|-
| {{더 크게|{{lang|zh|禍因惡積 福緣善慶}}}}
|rowspan=2| 화는 악행을 쌓은 것이 원인이요 복은 선행의 결과이다.
|-
| 화인악적 복연선경
|-
| {{더 크게|{{lang|zh|尺璧非寶 寸陰是競}}}}
|rowspan=2| 커다란 옥 구슬이<ref>여기서 벽은 완벽의 유래가 된 옥구슬을 말한다. 척(尺)과 촌(寸)은 길이의 단위이나 크고 작은 것으로 의역하였다.</ref> 보배가 아니니 작은 시간을 경주하여야 하여라.
|-
| 척벽비보 촌음시경
|-
| {{더 크게|{{lang|zh|資父事君 曰嚴與敬}}}}
|rowspan=2|부모를 모시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엄정하면서도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니
|-
| 자부사군 왈엄여경
|-
| {{더 크게|{{lang|zh|孝當竭力 忠則盡命}}}}
|rowspan=2| 효도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다.
|-
| 효당갈력 충즉진명
|-
| {{더 크게|{{lang|zh|臨深履薄 夙興溫凊}}}}
|rowspan=2| 깊은 곳을 만나도 살얼음 지나듯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 덥고 차가운지 살피는 것(이 효도하는 마음가짐이며)
|-
| 임심리박 숙흥온정
|-
| {{더 크게|{{lang|zh|似蘭斯馨 如松之盛}}}}
|rowspan=2| 난초와 같이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굳센 것(이 충성하는 마음가짐이다.)
|-
| 사란사형 여송지성
|-
| {{더 크게|{{lang|zh|川流不息 淵澄取映}}}}
|rowspan=2|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고 연못은 맑아 그림자를 비추듯
|-
| 천류불식 연징취영
|-
| {{더 크게|{{lang|zh|容止若思 言辭安定}}}}
|rowspan=2| 얼굴은 생각과 같게 하고 말은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
|-
| 용지약사 언사안정
|-
| {{더 크게|{{lang|zh|篤初誠美 愼終宜令}}}}
|rowspan=2| 일을 시작할 때에 정성을 다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신중히 하면
|-
| 독초성미 신종의령
|-
| {{더 크게|{{lang|zh|榮業所基 籍甚無竟}}}}
|rowspan=2| 이를 바탕으로 이루는 업적이 끝없으리라.
|-
| 영업소기 적심무경
|-
| {{더 크게|{{lang|zh|學優登仕 攝職從政}}}}
|rowspan=2|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올라 직무를 맞고 정사를 돌볼 때에
|-
| 학우등사 섭직종정
|-
| {{더 크게|{{lang|zh|存以甘棠 去而益詠}}}}
|rowspan=2| 벼슬을 맡아 팥배나무 밑에서 정사를 본 소공과 같이 청렴하면 물러날 때 칭송을 들을 것이다.<ref>감당(甘棠)은 팥배나무이다. 주나라 소공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공명 정대하며 청렴하였다고 한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감당시를 읇었다. 시경 국풍편 감당</ref>
|-
| 존이감당 거이익영
|-
| {{더 크게|{{lang|zh|樂殊貴賤 禮別尊卑}}}}
|rowspan=2| 즐거움에 귀천이 없으나 예절에는 존비가 있으니
|-
| 악수귀천 예별존비
|-
| {{더 크게|{{lang|zh|上和下睦 夫唱婦隨}}}}
|rowspan=2| 상하가 화목하고 부부가 원만하며<ref>사자성어 부창부수의 출전이다.</ref>
|-
| 상화하목 부창부수
|-
| {{더 크게|{{lang|zh|外受傅訓 入奉母儀}}}}
|rowspan=2| 밖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에서는 어머니의 뜻을 받을며
|-
| 외수부훈 입봉모의
|-
| {{더 크게|{{lang|zh|諸姑伯叔 猶子比兒}}}}
|rowspan=2| 모든 고모 삼촌의 아이를 내 아이라 여기고
|-
| 제고백숙 유자비아
|-
| {{더 크게|{{lang|zh|孔懷兄弟 同氣連枝}}}}
|rowspan=2| 형제는 서로 품어주니 같은 기운에서 나온 가지기 때문이고
|-
| 공회형제 동기연지
|-
| {{더 크게|{{lang|zh|交友投分 切磨箴規}}}}
|rowspan=2| 벗을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고 규범을 염두에 두어 절제하여
|-
| 교우투분 절마잠규
|-
| {{더 크게|{{lang|zh|仁慈隱惻 造次弗離}}}}
|rowspan=2|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고
|-
| 인자은측 조차불리
|-
| {{더 크게|{{lang|zh|節義廉退 顛沛匪虧}}}}
|rowspan=2| 절의를 지키고 청렴히 물러나 이러한 (예의가) 이지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
| 절의염퇴 전패비휴
|-
| {{더 크게|{{lang|zh|性靜情逸 心動神疲}}}}
|rowspan=2| 성정이 고요하면 심정이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이 피로하니
|-
| 성정정일 심동신피
|-
| {{더 크게|{{lang|zh|守眞志滿 逐物意移}}}}
|rowspan=2| 참 뜻이 가득하도록 지키고 물욕을 멀리하라.
|-
| 수진지만 축물의이
|-
| {{더 크게|{{lang|zh|堅持雅操 好爵自縻}}}}
|rowspan=2| 우아하고 절개가 있으면 관작은 스스로 오게 되어 있다.
|-
| 견지아조 호작자미
|-
| {{더 크게|{{lang|zh|都邑華夏 東西二京}}}}
|rowspan=2| 화하<ref>중국의 별칭</ref> 의 도읍은 동서 2경이라
|-
|도읍화하 동서이경
|-
| {{더 크게|{{lang|zh|背邙面洛 浮渭據涇}}}}
|rowspan=2|낙양은 북망산을 등지고 낙수를 마주하고 장안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르는 구나.
|-
|배망면락 부위거경
|-
| {{더 크게|{{lang|zh|宮殿盤鬱 樓觀飛驚}}}}
|rowspan=2|궁전은 울창한 숲에 쌓였고 누각에 올라 놀라운 경치를 보며
|-
|궁전반울 누관비경
|-
| {{더 크게|{{lang|zh|圖寫禽獸 畵綵仙靈}}}}
|rowspan=2|날짐승 들짐승을 그리니 신선 사는 그림이로구나.
|-
|도사금수 화채선령
|-
| {{더 크게|{{lang|zh|丙舍傍啟 甲帳對楹}}}}
|rowspan=2|병사<ref>궁전 내에 있는 건물들을 뜻하는 낱말</ref> 옆을 열어 갑장<ref>동방삭이 만들었다는 장막</ref> 이 기둥을 마주하게 하고
|-
| 병사방계 갑장대영
|-
| {{더 크게|{{lang|zh|肆筵設席 鼓瑟吹笙}}}}
|rowspan=2|자리를 마련해 연회를 열고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부니
|-
|사연설석 고슬취생
|-
| {{더 크게|{{lang|zh|升階納陛 弁轉疑星}}}}
|rowspan=2| 계단을 올라 납폐하는 신료들은 별인듯 번쩍이고
|-
|승계납폐 변전의성
|-
| {{더 크게|{{lang|zh|右通廣內 左達承明}}}}
|rowspan=2| 오른쪽은 광내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에 닿아<ref>광내와 승명은 모두 고대 중국 궁내의 관직처</ref>
|-
|우통광내 좌달승명
|-
| {{더 크게|{{lang|zh|既集墳典 亦聚群英}}}}
|rowspan=2| 이미 분전<ref>삼황오제 시절의 법률과 의전을 뜻한다.</ref> 을 모은 곳에 영웅들이 모였도다.
|-
|기집분전 역취군영
|-
| {{더 크게|{{lang|zh|杜稾鍾隸 漆書壁經}}}}
|rowspan=2| 두고<ref>초서를 처음 썼다고 전해진다.</ref> 와 종례<ref>예서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ref> 의 글 칠서<ref>대나무에 칠을 한 뒤 쓴 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사용하였다.</ref> 와 벽경<ref>공자에게서 전해 왔다는 육경</ref>
|-
|두고종례 칠서벽경
|-
| {{더 크게|{{lang|zh|府羅將相 路俠槐卿}}}}
|rowspan=2|각 부에 장군과 재상이 있어 고관이 즐비하여 길이 좁다.
|-
|부라장상 노협괴경
|-
| {{더 크게|{{lang|zh|戶封八縣 家給千兵}}}}
|rowspan=2|여덟 고을을 봉지로 주고 천명의 군사로 지키게 하니<ref>한고조의 논공행상을 가리킨다.</ref>
|-
|호봉팔현 가급천병
|-
| {{더 크게|{{lang|zh|高冠陪輦 驅轂振纓}}}}
|rowspan=2|높은 관을 쓰고 수레에올라 바퀴를 구르며 갓끈을 떨치는 구나.
|-
|고관배련 구곡진영
|-
| {{더 크게|{{lang|zh|世祿侈富 車駕肥輕}}}}
|rowspan=2| 대대로 받는 녹으로 부귀를 누리며 수레는 (제물로) 무겁고 가마는 가벼우니
|-
|세록치부 거가비경
|-
| {{더 크게|{{lang|zh|策功茂實 勒碑刻銘}}}}
|rowspan=2|끝없이 쌓은 공적 비석에 세기는 구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 {{더 크게|{{lang|zh|磻溪伊尹 佐時阿衡}}}}
|rowspan=2| 반계의 (태공망)과 (탕왕을 도운) 이윤은 때가 도와 아형의 벼슬에 올랐고
|-
|반계이윤 좌시아형
|-
| {{더 크게|{{lang|zh|奄宅曲阜 微旦孰營}}}}
|rowspan=2| 곡부에 궁전을 지은 것은 주공 단<ref>주문왕의 아우, 노나라의 시조</ref> 이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
|-
|엄택곡부 미단숙영
|-
| {{더 크게|{{lang|zh|桓公匡合 濟弱扶傾}}}}
|rowspan=2|환공은 제후를 널리 합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했지
|-
|환공광합 제약부경
|-
| {{더 크게|{{lang|zh|綺迴漢惠 說感武丁}}}}
|rowspan=2|기리계<ref>한고조가 죽고 여희가 여씨 일족에서 황제를 즉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장량은 기리계의 도움으로 혜제가 즉위하도록 하였다.</ref> 가 한 혜제를 회복시키고 부열이 무정을 감동시키듯.<ref>은 나라 무정이 부열에게 감동하여 선정을 배풀었다는 고사</ref>
|-
|기회한혜 설감무정
|-
| {{더 크게|{{lang|zh|俊乂密勿 多士寔寧}}}}
|rowspan=2|준걸과 예사가 모이니 참으로 평안하구나.
|-
|준예밀물 다사식녕
|-
| {{더 크게|{{lang|zh|晉楚更霸 趙魏困橫}}}}
|rowspan=2|진과 초가 다시 패자가 되고 조와위는 연횡으로 곤궁에 빠져
|-
|진초갱패 조위곤횡
|-
| {{더 크게|{{lang|zh|假途滅虢 踐土會盟}}}}
|rowspan=2|진은 위계를 써 괵을 멸하고 천토에서 회맹하였고
|-
|가도멸괵 천토회맹
|-
| {{더 크게|{{lang|zh|何遵約法 韓弊煩刑}}}}
|rowspan=2|어찌 (한고조의) 약법을 두고 한비자의 낡고 번잡한 형벌을 따를 것인가
|-
|하준약법 한폐번형
|-
| {{더 크게|{{lang|zh|起翦頗牧 用軍最精}}}}
|rowspan=2|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은 군사를 가장 잘 다루었고
|-
|기전파목 용군최정
|-
| {{더 크게|{{lang|zh|宣威沙漠 馳譽丹青}}}}
|rowspan=2|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치니 단청에 넣어 기리는 구나.
|-
|선위사막 치예단청
|-
| {{더 크게|{{lang|zh|九州禹跡 百郡秦幷}}}}
|rowspan=2| 하우씨가 구주를 두어 백군이 진에 병합되고
|-
|구주우적 백군진병
|-
| {{더 크게|{{lang|zh|嶽宗恆岱 禪主云亭}}}}
|rowspan=2| 산중 으뜸은 항산과 태산이라 임금을 정하는 운정이 그곳에 있으며
|-
|악종항대 선주운정
|-
| {{더 크게|{{lang|zh|雁門紫塞 雞田赤城}}}}
|rowspan=2| 안문관과 만리장성, 계전과 적성
|-
|안문자새 계전적성
|-
| {{더 크게|{{lang|zh|昆池碣石 鉅野洞庭}}}}
|rowspan=2| 운남의 곤지와 부평의 갈석, 거야의 넓은 들판과 동정의 큰 호수
|-
|곤지갈석 거야동정
|-
| {{더 크게|{{lang|zh|曠遠緜邈 巖岫杳冥}}}}
|rowspan=2|아득히 멀리 줄지어 있으니 아득하고 묘연하구나.
|-
|광원면막 암수묘명
|-
| {{더 크게|{{lang|zh|治本於農 務茲稼穡}}}}
|rowspan=2| 다스림의 근본은 농업이니 때를 맞추어 심고 거두어야 하리
|-
|치본어농 무자가색
|-
| {{더 크게|{{lang|zh|俶載南畝 我藝黍稷}}}}
|rowspan=2|이제 남쪽 이랑을 일궈 나는 기장과 피를 가꾸어
|-
|숙재남묘 아예서직
|-
| {{더 크게|{{lang|zh|稅熟貢新 勸賞黜陟}}}}
|rowspan=2| 익으면 세를 내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 상을 권하고 (못된 자는) 내쫓으리라.
|-
|세숙공신 권상출척
|-
| {{더 크게|{{lang|zh|孟軻敦素 史魚秉直}}}}
|rowspan=2|맹자는 도타운 사람이었고 사어는 강직했으니
|-
|맹가돈소 사어병직
|-
| {{더 크게|{{lang|zh|庶幾中庸 勞謙謹敕}}}}
|rowspan=2|중용을 으뜸으로 삼고 겸손에 힘쓰고 경계해야지
|-
|서기중용 노겸근칙
|-
| {{더 크게|{{lang|zh|聆音察理 鏡貌辨色}}}}
|rowspan=2|들리는 소리 자세히 살피고 거울에 비치는 모양 꼼꼼히 구별하고
|-
|영음찰리 감모변색
|-
| {{더 크게|{{lang|zh|貽厥嘉猷 勉其祗植}}}}
|rowspan=2|그 아름다움이 후세에 미치도록 그 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며
|-
|이궐가유 면기지식
|-
| {{더 크게|{{lang|zh|省躬譏誡 寵增抗極}}}}
|rowspan=2|몸을 살펴 나무라고 탓할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총애가 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
|성궁기계 총증항극
|-
| {{더 크게|{{lang|zh|殆辱近恥 林皋幸即}}}}
|rowspan=2| 위태로운 치욕은 부끄러운 일에 의한 것이니 수풀과 언덕에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
|태욕근치 임고행즉
|-
| {{더 크게|{{lang|zh|兩疏見機 解組誰逼}}}}
|rowspan=2| 양소<ref>한나라의 소광과 소수</ref> 는 기회를 보아 관복을 벗으니 누가 핍박하였으랴
|-
|양소견기 해조수핍
|-
| {{더 크게|{{lang|zh|索居閒處 沈默寂寥}}}}
|rowspan=2|한가한 곳을 찾아 살며 고요히 살며 침묵한 채
|-
|색거한처 침묵적요
|-
| {{더 크게|{{lang|zh|求古尋論 散慮逍遙}}}}
|rowspan=2|옛일을 두고 논장을 찾고 염려를 잊고 소요하니
|-
|구고심론 산려소요
|-
| {{더 크게|{{lang|zh|欣奏累遣 慼謝歡招}}}}
|rowspan=2|기쁜 일은 알리고 누추한 것은 보내며 슬픈 일은 마다하고 기쁜 일을 환영하리
|-
|흔주루견 척사환초
|-
| {{더 크게|{{lang|zh|渠荷的歷 園莽抽條}}}}
|rowspan=2|도랑에 핀 연꽃의 이력, 동산에 자란 풀 가지
|-
|거하적력 원망추조
|-
| {{더 크게|{{lang|zh|枇杷晚翠 梧桐早凋}}}}
|rowspan=2|비파나무 만추에도 푸르른데 오동나무 일찍이 시들었고
|-
|비파만취 오동조조
|-
| {{더 크게|{{lang|zh|陳根委翳 落葉飄颻}}}}
|rowspan=2|고목 뿌리 덮은 낙엽 바람에 날리니
|-
|진근위예 낙엽표요
|-
| {{더 크게|{{lang|zh|遊鵾獨運 凌摩絳霄}}}}
|rowspan=2|댓닭 한 마리 홀로 해엄치며 노을진 하늘을 업수이 여기고
|-
|유곤독운 능마강소
|-
| {{더 크게|{{lang|zh|耽讀翫市 寓目囊箱}}}}
|rowspan=2|(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한 번 보면 상자에 넣은 듯 (잊지 않았다지)
|-
|탐독완시 우목낭상
|-
| {{더 크게|{{lang|zh|易輶攸畏 屬耳垣墻}}}}
|rowspan=2|가벼이 경솔하게 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담장에도 귀가 있다 하기 때문
|-
|역유유외 속이원장
|-
| {{더 크게|{{lang|zh|具膳飡飯 適口充腸}}}}
|rowspan=2|반찬이나 저녁밥이야 먹고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
|-
|구선손반 적구충장
|-
| {{더 크게|{{lang|zh|飽飫烹宰 飢厭糟糠}}}}
|rowspan=2|배부르면 재상의 요리도 물리게 되고 배 고프면 겨 지게미로도 족하니
|-
|포어팽재 기염조강
|-
| {{더 크게|{{lang|zh|親戚故舊 老少異糧}}}}
|rowspan=2|친척이나 옛친구 노소에 따라 음식도 다를 밖에
|-
|친척고구 노소이량
|-
| {{더 크게|{{lang|zh|妾御績紡 侍巾帷房}}}}
|rowspan=2|아내가 길쌈하여 어른 방에 수건을 받들고
|-
|첩어적방 시건유방
|-
| {{더 크게|{{lang|zh|紈扇圓潔 銀燭煒煌}}}}
|rowspan=2|흰 비단으로 지은 부채 둥글고 깨끗하며 은촛대 불빛 밝으니
|-
|환선원결 은촉위황
|-
| {{더 크게|{{lang|zh|晝眠夕寐 藍笋象床}}}}
|rowspan=2|낮에 자고 저녁에 또 자려 푸른 대로 코끼리 침상을 만들지
|-
|주면석매 남순상상
|-
| {{더 크게|{{lang|zh|絃歌酒讌 接盃舉觴}}}}
|rowspan=2|거문거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주연을 열고 술잔을 들어 부딛히고
|-
|현가주연 접배거상
|-
| {{더 크게|{{lang|zh|矯手頓足 悅豫且康}}}}
|rowspan=2|손을 들고 발을 움직여 춤추며 이처럼 평안함을 즐거워하세
|-
|교수돈족 열예차강
|-
| {{더 크게|{{lang|zh|嫡後嗣續 祭祀烝嘗}}}}
|rowspan=2| 맏이는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어
|-
|적후사속 제사증상
|-
| {{더 크게|{{lang|zh|稽顙再拜 悚懼恐惶}}}}
|rowspan=2|이마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
|-
|계상재배 송구공황
|-
| {{더 크게|{{lang|zh|牋牒簡要 顧答審詳}}}}
|rowspan=2|편지는 간략히 요지만 쓰고 답신은 자세히 살펴서 하라.
|-
|전첩간요 고답심상
|-
| {{더 크게|{{lang|zh|骸垢想浴 執熱願涼}}}}
|rowspan=2|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생각이 나고 열이 차면 서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
|-
|해구상욕 집열원량
|-
| {{더 크게|{{lang|zh|驢騾犢特 駭躍超驤}}}}
|rowspan=2|노새며 망아지, 숫송아지가 놀라뛰며 내달리듯
|-
|여라독특 해약초양
|-
| {{더 크게|{{lang|zh|誅斬賊盜 捕獲叛亡}}}}
|rowspan=2|적도는 잡아 죽이고 배역자는 잡아들이리
|-
|주참적도 포획반망
|-
| {{더 크게|{{lang|zh|布射遼丸 嵇琴阮嘯}}}}
|rowspan=2|여포는 활 잘 쏘았고 의료는 돌 잘 던졌으며 혜강은 금을 잘켰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지
|-
|포사료환 혜금완소
|-
| {{더 크게|{{lang|zh|恬筆倫紙 鈞巧任釣}}}}
|rowspan=2|붓을 만든 건 몽념 종이를 만든 건 채륜, 마륜의 교묘한 솜씨<ref>마륜은 지남차를 만들었다고 한다.</ref> 임공자의 낚시대<ref>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ref>
|-
|염필윤지 균교임조
|-
| {{더 크게|{{lang|zh|釋紛利俗 竝皆佳妙}}}}
|rowspan=2|이러한 재주를 세상에 푸니 모두다 뛰어나고 신기하였다.
|-
|석분리속 병개가묘
|-
| {{더 크게|{{lang|zh|毛施淑姿 工顰妍笑}}}}
|rowspan=2|오나라 모타와 월나라 서시의 자태는 찡그린 모습도 아름다워라
|-
|모시숙자 공빈연소
|-
| {{더 크게|{{lang|zh|年矢每催 曦暉朗耀}}}}
|rowspan=2| 세월은 살같이 언제나 제촉하나 햇빛 달빛은 밝게 빛나
|-
|연시매최 희휘낭요
|-
| {{더 크게|{{lang|zh|璇璣懸斡 晦魄環照}}}}
|rowspan=2|천문을 보는 기계 매달려 돌듯 그믐이 지나 다시 보름이 되니
|-
|선기현알 회백환조
|-
| {{더 크게|{{lang|zh|指薪修祜 永綏吉劭}}}}
|rowspan=2|손가락에 섶불을 단 듯 수양에 전념하면 영원토록 평안하고 길하리라.
|-
|지신수우 영수길소
|-
| {{더 크게|{{lang|zh|矩步引領 俯仰廊廟}}}}
|rowspan=2|반듯하게 걸으며 옷길을 끌고 사당에 엎드려 예의를 다하고
|-
|구보인령 부앙낭묘
|-
| {{더 크게|{{lang|zh|束帶矜莊 徘徊瞻眺}}}}
|rowspan=2|허리띠를 단단히 묶어 긍지를 갖고 여러 곳을 두루 살펴라
|-
|속대긍장 배회첨조
|-
| {{더 크게|{{lang|zh|孤陋寡聞 愚蒙等誚}}}}
|rowspan=2|(이런 글을 쓴 나는) 고루하고 들은 것 없어 어리석단 꾸짖음을 면치 못하리
|-
|고루과문 우몽등초
|-
| {{더 크게|{{lang|zh|謂語助者 焉哉乎也}}}}
|rowspan=2|어조사에는 언재호야가 있다.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역주 ==
<references/>
= 라이선스 =
{{번역 저작권
|원문 = {{PD-old-100}}
|번역 = {{PD-자작}}
}}
[[분류:한시]]
9hyiy1mxkop94dy9qoy62ov661rd5of
392617
392614
2025-06-26T12:32:57Z
2406:5900:1001:2070:D5A9:2A25:EE5A:B0E8
392617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제목 = 천자문
|저자 = [[저자:주흥사|주흥사]]
|역자 = [[사용자:jjw|jjw]]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위키백과|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2010년 8월 25일 석봉 한호의 필체를 목각한 《천자문》이 대한민국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되었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00px; background:#eeffee;"| 원문
!background:#eeeeff;"| 번역
|-
| {{더 크게|{{lang|zh|天地玄黃 宇宙洪荒}}}}
|rowspan=2|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크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ref>독음은 [http://handic.daum.net/dicha/view_top.do 다음한자사전] 을 따랐다. 두음법칙에 의해 독음이 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李)는 낱말의 앞에 올경우 이로 적었다.</ref>
|-
| {{더 크게|{{lang|zh|日月盈昘 辰宿列張}}}}
|rowspan=2|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은 자리를 잡아 늘어서 있다.
|-
|일월영측 진수열장
|-
| {{더 크게|{{lang|zh|寒來暑往 秋收冬藏}}}}
|rowspan=2|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
|-
| 한래서왕 추수동장
|-
| {{더 크게|{{lang|zh|閏餘成歲 律呂調陽}}}}
|rowspan=2| 윤달을 더하여 한해를 이루고 가락을 맞추어 양기를 돋운다.
|-
| 윤여성세 율려조양
|-
| {{더 크게|{{lang|zh|雲騰致雨 露結為霜}}}}
|rowspan=2|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얼어 서리가 된다.
|-
| 운등치우 노결위상
|-
| {{더 크게|{{lang|zh|金生麗水 玉出昆岡}}}}
|rowspan=2| 금은 여수에서 나고 옥은 곤강에서 난다.
|-
| 금생여수 옥출곤강
|-
| {{더 크게|{{lang|zh|劍號巨闕 珠稱夜光}}}}
|rowspan=2| 검은 일컬어 거궐이요 구슬은 일컬어 야광이라.
|-
| 검호거궐 주칭야광
|-
| {{더 크게|{{lang|zh|果珍李柰 菜重芥薑}}}}
|rowspan=2| 과일 가운데 진미는 오얏과 능금이요 채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겨자와 생강이라.
|-
| 과진이내 채중개강
|-
| {{더 크게|{{lang|zh|海鹹河淡 鱗潛羽翔}}}}
|rowspan=2| 바다는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달린 물고기는 물에 잠기고 깃 달린 새는 높이 난다.
|-
| 해함하담 인잠우상
|-
| {{더 크게|{{lang|zh|龍師火帝 鳥官人皇}}}}
|rowspan=2| 복희씨<ref>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고 하며 용사는 복희의 별칭이다.</ref>, 신농씨<ref>화제 또는 염제(炎帝)는 신농씨의 별칭이다</ref>, 소호<ref>소호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ref> 와 황제헌원<ref>황제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술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어 인황이란 별칭이 붙었다.</ref>
|-
| 용사화제 조관인황
|-
| {{더 크게|{{lang|zh|始制文字 乃服衣裳}}}}
|rowspan=2| 문자를 처음 짓고 옷을 지어 입혔지.
|-
| 시제문자 내복의상
|-
| {{더 크게|{{lang|zh|推位讓國 有虞陶唐}}}}
|rowspan=2| 자리를 미루며 나라를 물려주니 유우<ref>순임금의 이름이다.</ref> 와 도당<ref>우 임금의 이름이다.</ref> 이라.
|-
| 추위양국 유우도당
|-
| {{더 크게|{{lang|zh|弔民伐罪 周發殷湯}}}}
|rowspan=2| 백성을 돕고 죄를 벌하니 주나라 무왕<ref>발(發)은 주 무왕의 이름</ref> 과 은나라 탕왕이라.
|-
| 조민벌죄 주발은탕
|-
| {{더 크게|{{lang|zh|坐朝問道 垂拱平章}}}}
|rowspan=2| 조정에 앉아 도를 묻기에 두 손으로 문장을 올리니,
|-
| 좌조문도 수공평장
|-
| {{더 크게|{{lang|zh|愛育黎首 臣伏戎羌}}}}
|rowspan=2| 백성을 아끼고<ref>여수(黎首)는 검은 머리, 즉 관직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ref> 오랑캐가 신하로 복종하게 하소서.
|-
| 애육여수 신복융강
|-
| {{더 크게|{{lang|zh|遐邇壹體 率賓歸王}}}}
|rowspan=2|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어 임금께 이끌려 따를 것입니다.
|-
| 하이일체 솔빈귀왕
|-
| {{더 크게|{{lang|zh|鳴鳳在樹 白駒食場}}}}
|rowspan=2|봉황은 나무에 내려 울고 흰망아지 풀을 뜯으니<ref>성군이 나면 봉황이 찾아와 울고 흰망아지가 나타난다는 전설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말함</ref>
|-
| 명봉재수 백구식장
|-
| {{더 크게|{{lang|zh|化被草木 賴及萬方}}}}
|rowspan=2| 덕화가 초목까지 미치고 만방에 퍼지리.
|-
| 화피초목 뇌급만방
|-
| {{더 크게|{{lang|zh|蓋此身髮 四大五常}}}}
|rowspan=2| 몸에 털이 덮힌 것과 같이 4대5상을 지키고<ref>4대는 하늘, 땅, 도(道), 임금. 5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ref>
|-
| 개차신발 사대오상
|-
| {{더 크게|{{lang|zh|恭惟鞠養 豈敢毁傷}}}}
|rowspan=2| 길러준 은혜를 공경하여 감히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
| 공유국양 기감훼상
|-
| {{더 크게|{{lang|zh|女慕貞烈 男效才良}}}}
|rowspan=2|여자는 정조를 따르고 남자는 재량을 본받아
|-
| 여모정렬 남효재량
|-
| {{더 크게|{{lang|zh|知過必改 得能莫忘}}}}
|rowspan=2|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배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
| 지과필개 득능막망
|-
| {{더 크게|{{lang|zh|罔談彼短 靡恃己長}}}}
|rowspan=2| 다른이의 단점을 입에 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마라
|-
| 망담피단 미시기장
|-
| {{더 크게|{{lang|zh|信使可覆 器欲難量}}}}
|rowspan=2| 믿었던 장점이 뒤집힐 수 있고 다른 사람 기량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신사가복 기욕난량
|-
| {{더 크게|{{lang|zh|墨悲絲染 詩讚羔羊}}}}
|rowspan=2| 이 때문에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탄식하였고<ref>묵자 소염론</ref> 시경은 고양을 찬송하였다.<ref>시경 고양편</ref>
|-
| 묵비사염 시찬고양
|-
| {{더 크게|{{lang|zh|景行維賢 克念作聖}}}}
|rowspan=2| 바르고 어진 것을 보고 행하여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
| 경행유현 극념작성
|-
| {{더 크게|{{lang|zh|德建名立 形端表正}}}}
|rowspan=2|덕을 쌓아 이름을 세우면 바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
|-
| 덕건명립 형단표정
|-
| {{더 크게|{{lang|zh|空谷傳聲 虛堂習聽}}}}
|rowspan=2| 빈 골짜기에 울리는 소리처럼 또한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공곡전성 허당습청
|-
| {{더 크게|{{lang|zh|禍因惡積 福緣善慶}}}}
|rowspan=2| 화는 악행을 쌓은 것이 원인이요 복은 선행의 결과이다.
|-
| 화인악적 복연선경
|-
| {{더 크게|{{lang|zh|尺璧非寶 寸陰是競}}}}
|rowspan=2| 커다란 옥 구슬이<ref>여기서 벽은 완벽의 유래가 된 옥구슬을 말한다. 척(尺)과 촌(寸)은 길이의 단위이나 크고 작은 것으로 의역하였다.</ref> 보배가 아니니 작은 시간을 경주하여야 하여라.
|-
| 척벽비보 촌음시경
|-
| {{더 크게|{{lang|zh|資父事君 曰嚴與敬}}}}
|rowspan=2|부모를 모시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엄정하면서도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니
|-
| 자부사군 왈엄여경
|-
| {{더 크게|{{lang|zh|孝當竭力 忠則盡命}}}}
|rowspan=2| 효도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다.
|-
| 효당갈력 충즉진명
|-
| {{더 크게|{{lang|zh|臨深履薄 夙興溫凊}}}}
|rowspan=2| 깊은 곳을 만나도 살얼음 지나듯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 덥고 차가운지 살피는 것(이 효도하는 마음가짐이며)
|-
| 임심리박 숙흥온정
|-
| {{더 크게|{{lang|zh|似蘭斯馨 如松之盛}}}}
|rowspan=2| 난초와 같이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굳센 것(이 충성하는 마음가짐이다.)
|-
| 사란사형 여송지성
|-
| {{더 크게|{{lang|zh|川流不息 淵澄取映}}}}
|rowspan=2|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고 연못은 맑아 그림자를 비추듯
|-
| 천류불식 연징취영
|-
| {{더 크게|{{lang|zh|容止若思 言辭安定}}}}
|rowspan=2| 얼굴은 생각과 같게 하고 말은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
|-
| 용지약사 언사안정
|-
| {{더 크게|{{lang|zh|篤初誠美 愼終宜令}}}}
|rowspan=2| 일을 시작할 때에 정성을 다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신중히 하면
|-
| 독초성미 신종의령
|-
| {{더 크게|{{lang|zh|榮業所基 籍甚無竟}}}}
|rowspan=2| 이를 바탕으로 이루는 업적이 끝없으리라.
|-
| 영업소기 적심무경
|-
| {{더 크게|{{lang|zh|學優登仕 攝職從政}}}}
|rowspan=2|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올라 직무를 맞고 정사를 돌볼 때에
|-
| 학우등사 섭직종정
|-
| {{더 크게|{{lang|zh|存以甘棠 去而益詠}}}}
|rowspan=2| 벼슬을 맡아 팥배나무 밑에서 정사를 본 소공과 같이 청렴하면 물러날 때 칭송을 들을 것이다.<ref>감당(甘棠)은 팥배나무이다. 주나라 소공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공명 정대하며 청렴하였다고 한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감당시를 읇었다. 시경 국풍편 감당</ref>
|-
| 존이감당 거이익영
|-
| {{더 크게|{{lang|zh|樂殊貴賤 禮別尊卑}}}}
|rowspan=2| 즐거움에 귀천이 없으나 예절에는 존비가 있으니
|-
| 악수귀천 예별존비
|-
| {{더 크게|{{lang|zh|上和下睦 夫唱婦隨}}}}
|rowspan=2| 상하가 화목하고 부부가 원만하며<ref>사자성어 부창부수의 출전이다.</ref>
|-
| 상화하목 부창부수
|-
| {{더 크게|{{lang|zh|外受傅訓 入奉母儀}}}}
|rowspan=2| 밖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에서는 어머니의 뜻을 받을며
|-
| 외수부훈 입봉모의
|-
| {{더 크게|{{lang|zh|諸姑伯叔 猶子比兒}}}}
|rowspan=2| 모든 고모 삼촌의 아이를 내 아이라 여기고
|-
| 제고백숙 유자비아
|-
| {{더 크게|{{lang|zh|孔懷兄弟 同氣連枝}}}}
|rowspan=2| 형제는 서로 품어주니 같은 기운에서 나온 가지기 때문이고
|-
| 공회형제 동기연지
|-
| {{더 크게|{{lang|zh|交友投分 切磨箴規}}}}
|rowspan=2| 벗을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고 규범을 염두에 두어 절제하여
|-
| 교우투분 절마잠규
|-
| {{더 크게|{{lang|zh|仁慈隱惻 造次弗離}}}}
|rowspan=2|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고
|-
| 인자은측 조차불리
|-
| {{더 크게|{{lang|zh|節義廉退 顛沛匪虧}}}}
|rowspan=2| 절의를 지키고 청렴히 물러나 이러한 (예의가) 이지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
| 절의염퇴 전패비휴
|-
| {{더 크게|{{lang|zh|性靜情逸 心動神疲}}}}
|rowspan=2| 성정이 고요하면 심정이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이 피로하니
|-
| 성정정일 심동신피
|-
| {{더 크게|{{lang|zh|守眞志滿 逐物意移}}}}
|rowspan=2| 참 뜻이 가득하도록 지키고 물욕을 멀리하라.
|-
| 수진지만 축물의이
|-
| {{더 크게|{{lang|zh|堅持雅操 好爵自縻}}}}
|rowspan=2| 우아하고 절개가 있으면 관작은 스스로 오게 되어 있다.
|-
| 견지아조 호작자미
|-
| {{더 크게|{{lang|zh|都邑華夏 東西二京}}}}
|rowspan=2| 화하<ref>중국의 별칭</ref> 의 도읍은 동서 2경이라
|-
|도읍화하 동서이경
|-
| {{더 크게|{{lang|zh|背邙面洛 浮渭據涇}}}}
|rowspan=2|낙양은 북망산을 등지고 낙수를 마주하고 장안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르는 구나.
|-
|배망면락 부위거경
|-
| {{더 크게|{{lang|zh|宮殿盤鬱 樓觀飛驚}}}}
|rowspan=2|궁전은 울창한 숲에 쌓였고 누각에 올라 놀라운 경치를 보며
|-
|궁전반울 누관비경
|-
| {{더 크게|{{lang|zh|圖寫禽獸 畵綵仙靈}}}}
|rowspan=2|날짐승 들짐승을 그리니 신선 사는 그림이로구나.
|-
|도사금수 화채선령
|-
| {{더 크게|{{lang|zh|丙舍傍啟 甲帳對楹}}}}
|rowspan=2|병사<ref>궁전 내에 있는 건물들을 뜻하는 낱말</ref> 옆을 열어 갑장<ref>동방삭이 만들었다는 장막</ref> 이 기둥을 마주하게 하고
|-
| 병사방계 갑장대영
|-
| {{더 크게|{{lang|zh|肆筵設席 鼓瑟吹笙}}}}
|rowspan=2|자리를 마련해 연회를 열고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부니
|-
|사연설석 고슬취생
|-
| {{더 크게|{{lang|zh|升階納陛 弁轉疑星}}}}
|rowspan=2| 계단을 올라 납폐하는 신료들은 별인듯 번쩍이고
|-
|승계납폐 변전의성
|-
| {{더 크게|{{lang|zh|右通廣內 左達承明}}}}
|rowspan=2| 오른쪽은 광내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에 닿아<ref>광내와 승명은 모두 고대 중국 궁내의 관직처</ref>
|-
|우통광내 좌달승명
|-
| {{더 크게|{{lang|zh|既集墳典 亦聚群英}}}}
|rowspan=2| 이미 분전<ref>삼황오제 시절의 법률과 의전을 뜻한다.</ref> 을 모은 곳에 영웅들이 모였도다.
|-
|기집분전 역취군영
|-
| {{더 크게|{{lang|zh|杜稾鍾隸 漆書壁經}}}}
|rowspan=2| 두고<ref>초서를 처음 썼다고 전해진다.</ref> 와 종례<ref>예서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ref> 의 글 칠서<ref>대나무에 칠을 한 뒤 쓴 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사용하였다.</ref> 와 벽경<ref>공자에게서 전해 왔다는 육경</ref>
|-
|두고종례 칠서벽경
|-
| {{더 크게|{{lang|zh|府羅將相 路俠槐卿}}}}
|rowspan=2|각 부에 장군과 재상이 있어 고관이 즐비하여 길이 좁다.
|-
|부라장상 노협괴경
|-
| {{더 크게|{{lang|zh|戶封八縣 家給千兵}}}}
|rowspan=2|여덟 고을을 봉지로 주고 천명의 군사로 지키게 하니<ref>한고조의 논공행상을 가리킨다.</ref>
|-
|호봉팔현 가급천병
|-
| {{더 크게|{{lang|zh|高冠陪輦 驅轂振纓}}}}
|rowspan=2|높은 관을 쓰고 수레에올라 바퀴를 구르며 갓끈을 떨치는 구나.
|-
|고관배련 구곡진영
|-
| {{더 크게|{{lang|zh|世祿侈富 車駕肥輕}}}}
|rowspan=2| 대대로 받는 녹으로 부귀를 누리며 수레는 (제물로) 무겁고 가마는 가벼우니
|-
|세록치부 거가비경
|-
| {{더 크게|{{lang|zh|策功茂實 勒碑刻銘}}}}
|rowspan=2|끝없이 쌓은 공적 비석에 세기는 구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 {{더 크게|{{lang|zh|磻溪伊尹 佐時阿衡}}}}
|rowspan=2| 반계의 (태공망)과 (탕왕을 도운) 이윤은 때가 도와 아형의 벼슬에 올랐고
|-
|반계이윤 좌시아형
|-
| {{더 크게|{{lang|zh|奄宅曲阜 微旦孰營}}}}
|rowspan=2| 곡부에 궁전을 지은 것은 주공 단<ref>주문왕의 아우, 노나라의 시조</ref> 이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
|-
|엄택곡부 미단숙영
|-
| {{더 크게|{{lang|zh|桓公匡合 濟弱扶傾}}}}
|rowspan=2|환공은 제후를 널리 합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했지
|-
|환공광합 제약부경
|-
| {{더 크게|{{lang|zh|綺迴漢惠 說感武丁}}}}
|rowspan=2|기리계<ref>한고조가 죽고 여희가 여씨 일족에서 황제를 즉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장량은 기리계의 도움으로 혜제가 즉위하도록 하였다.</ref> 가 한 혜제를 회복시키고 부열이 무정을 감동시키듯.<ref>은 나라 무정이 부열에게 감동하여 선정을 배풀었다는 고사</ref>
|-
|기회한혜 설감무정
|-
| {{더 크게|{{lang|zh|俊乂密勿 多士寔寧}}}}
|rowspan=2|준걸과 예사가 모이니 참으로 평안하구나.
|-
|준예밀물 다사식녕
|-
| {{더 크게|{{lang|zh|晉楚更霸 趙魏困橫}}}}
|rowspan=2|진과 초가 다시 패자가 되고 조와위는 연횡으로 곤궁에 빠져
|-
|진초갱패 조위곤횡
|-
| {{더 크게|{{lang|zh|假途滅虢 踐土會盟}}}}
|rowspan=2|진은 위계를 써 괵을 멸하고 천토에서 회맹하였고
|-
|가도멸괵 천토회맹
|-
| {{더 크게|{{lang|zh|何遵約法 韓弊煩刑}}}}
|rowspan=2|어찌 (한고조의) 약법을 두고 한비자의 낡고 번잡한 형벌을 따를 것인가
|-
|하준약법 한폐번형
|-
| {{더 크게|{{lang|zh|起翦頗牧 用軍最精}}}}
|rowspan=2|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은 군사를 가장 잘 다루었고
|-
|기전파목 용군최정
|-
| {{더 크게|{{lang|zh|宣威沙漠 馳譽丹青}}}}
|rowspan=2|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치니 단청에 넣어 기리는 구나.
|-
|선위사막 치예단청
|-
| {{더 크게|{{lang|zh|九州禹跡 百郡秦幷}}}}
|rowspan=2| 하우씨가 구주를 두어 백군이 진에 병합되고
|-
|구주우적 백군진병
|-
| {{더 크게|{{lang|zh|嶽宗恆岱 禪主云亭}}}}
|rowspan=2| 산중 으뜸은 항산과 태산이라 임금을 정하는 운정이 그곳에 있으며
|-
|악종항대 선주운정
|-
| {{더 크게|{{lang|zh|雁門紫塞 雞田赤城}}}}
|rowspan=2| 안문관과 만리장성, 계전과 적성
|-
|안문자새 계전적성
|-
| {{더 크게|{{lang|zh|昆池碣石 鉅野洞庭}}}}
|rowspan=2| 운남의 곤지와 부평의 갈석, 거야의 넓은 들판과 동정의 큰 호수
|-
|곤지갈석 거야동정
|-
| {{더 크게|{{lang|zh|曠遠緜邈 巖岫杳冥}}}}
|rowspan=2|아득히 멀리 줄지어 있으니 아득하고 묘연하구나.
|-
|광원면막 암수묘명
|-
| {{더 크게|{{lang|zh|治本於農 務茲稼穡}}}}
|rowspan=2| 다스림의 근본은 농업이니 때를 맞추어 심고 거두어야 하리
|-
|치본어농 무자가색
|-
| {{더 크게|{{lang|zh|俶載南畝 我藝黍稷}}}}
|rowspan=2|이제 남쪽 이랑을 일궈 나는 기장과 피를 가꾸어
|-
|숙재남묘 아예서직
|-
| {{더 크게|{{lang|zh|稅熟貢新 勸賞黜陟}}}}
|rowspan=2| 익으면 세를 내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 상을 권하고 (못된 자는) 내쫓으리라.
|-
|세숙공신 권상출척
|-
| {{더 크게|{{lang|zh|孟軻敦素 史魚秉直}}}}
|rowspan=2|맹자는 도타운 사람이었고 사어는 강직했으니
|-
|맹가돈소 사어병직
|-
| {{더 크게|{{lang|zh|庶幾中庸 勞謙謹敕}}}}
|rowspan=2|중용을 으뜸으로 삼고 겸손에 힘쓰고 경계해야지
|-
|서기중용 노겸근칙
|-
| {{더 크게|{{lang|zh|聆音察理 鏡貌辨色}}}}
|rowspan=2|들리는 소리 자세히 살피고 거울에 비치는 모양 꼼꼼히 구별하고
|-
|영음찰리 감모변색
|-
| {{더 크게|{{lang|zh|貽厥嘉猷 勉其祗植}}}}
|rowspan=2|그 아름다움이 후세에 미치도록 그 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며
|-
|이궐가유 면기지식
|-
| {{더 크게|{{lang|zh|省躬譏誡 寵增抗極}}}}
|rowspan=2|몸을 살펴 나무라고 탓할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총애가 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
|성궁기계 총증항극
|-
| {{더 크게|{{lang|zh|殆辱近恥 林皋幸即}}}}
|rowspan=2| 위태로운 치욕은 부끄러운 일에 의한 것이니 수풀과 언덕에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
|태욕근치 임고행즉
|-
| {{더 크게|{{lang|zh|兩疏見機 解組誰逼}}}}
|rowspan=2| 양소<ref>한나라의 소광과 소수</ref> 는 기회를 보아 관복을 벗으니 누가 핍박하였으랴
|-
|양소견기 해조수핍
|-
| {{더 크게|{{lang|zh|索居閒處 沈默寂寥}}}}
|rowspan=2|한가한 곳을 찾아 살며 고요히 살며 침묵한 채
|-
|색거한처 침묵적요
|-
| {{더 크게|{{lang|zh|求古尋論 散慮逍遙}}}}
|rowspan=2|옛일을 두고 논장을 찾고 염려를 잊고 소요하니
|-
|구고심론 산려소요
|-
| {{더 크게|{{lang|zh|欣奏累遣 慼謝歡招}}}}
|rowspan=2|기쁜 일은 알리고 누추한 것은 보내며 슬픈 일은 마다하고 기쁜 일을 환영하리
|-
|흔주루견 척사환초
|-
| {{더 크게|{{lang|zh|渠荷的歷 園莽抽條}}}}
|rowspan=2|도랑에 핀 연꽃의 이력, 동산에 자란 풀 가지
|-
|거하적력 원망추조
|-
| {{더 크게|{{lang|zh|枇杷晚翠 梧桐早凋}}}}
|rowspan=2|비파나무 만추에도 푸르른데 오동나무 일찍이 시들었고
|-
|비파만취 오동조조
|-
| {{더 크게|{{lang|zh|陳根委翳 落葉飄颻}}}}
|rowspan=2|고목 뿌리 덮은 낙엽 바람에 날리니
|-
|진근위예 낙엽표요
|-
| {{더 크게|{{lang|zh|遊鵾獨運 凌摩絳霄}}}}
|rowspan=2|댓닭 한 마리 홀로 해엄치며 노을진 하늘을 업수이 여기고
|-
|유곤독운 능마강소
|-
| {{더 크게|{{lang|zh|耽讀翫市 寓目囊箱}}}}
|rowspan=2|(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한 번 보면 상자에 넣은 듯 (잊지 않았다지)
|-
|탐독완시 우목낭상
|-
| {{더 크게|{{lang|zh|易輶攸畏 屬耳垣墻}}}}
|rowspan=2|가벼이 경솔하게 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담장에도 귀가 있다 하기 때문
|-
|역유유외 속이원장
|-
| {{더 크게|{{lang|zh|具膳飡飯 適口充腸}}}}
|rowspan=2|반찬이나 저녁밥이야 먹고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
|-
|구선손반 적구충장
|-
| {{더 크게|{{lang|zh|飽飫烹宰 飢厭糟糠}}}}
|rowspan=2|배부르면 재상의 요리도 물리게 되고 배 고프면 겨 지게미로도 족하니
|-
|포어팽재 기염조강
|-
| {{더 크게|{{lang|zh|親戚故舊 老少異糧}}}}
|rowspan=2|친척이나 옛친구 노소에 따라 음식도 다를 밖에
|-
|친척고구 노소이량
|-
| {{더 크게|{{lang|zh|妾御績紡 侍巾帷房}}}}
|rowspan=2|아내가 길쌈하여 어른 방에 수건을 받들고
|-
|첩어적방 시건유방
|-
| {{더 크게|{{lang|zh|紈扇圓潔 銀燭煒煌}}}}
|rowspan=2|흰 비단으로 지은 부채 둥글고 깨끗하며 은촛대 불빛 밝으니
|-
|환선원결 은촉위황
|-
| {{더 크게|{{lang|zh|晝眠夕寐 藍笋象床}}}}
|rowspan=2|낮에 자고 저녁에 또 자려 푸른 대로 코끼리 침상을 만들지
|-
|주면석매 남순상상
|-
| {{더 크게|{{lang|zh|絃歌酒讌 接盃舉觴}}}}
|rowspan=2|거문거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주연을 열고 술잔을 들어 부딛히고
|-
|현가주연 접배거상
|-
| {{더 크게|{{lang|zh|矯手頓足 悅豫且康}}}}
|rowspan=2|손을 들고 발을 움직여 춤추며 이처럼 평안함을 즐거워하세
|-
|교수돈족 열예차강
|-
| {{더 크게|{{lang|zh|嫡後嗣續 祭祀烝嘗}}}}
|rowspan=2| 맏이는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어
|-
|적후사속 제사증상
|-
| {{더 크게|{{lang|zh|稽顙再拜 悚懼恐惶}}}}
|rowspan=2|이마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
|-
|계상재배 송구공황
|-
| {{더 크게|{{lang|zh|牋牒簡要 顧答審詳}}}}
|rowspan=2|편지는 간략히 요지만 쓰고 답신은 자세히 살펴서 하라.
|-
|전첩간요 고답심상
|-
| {{더 크게|{{lang|zh|骸垢想浴 執熱願涼}}}}
|rowspan=2|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생각이 나고 열이 차면 서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
|-
|해구상욕 집열원량
|-
| {{더 크게|{{lang|zh|驢騾犢特 駭躍超驤}}}}
|rowspan=2|노새며 망아지, 숫송아지가 놀라뛰며 내달리듯
|-
|여라독특 해약초양
|-
| {{더 크게|{{lang|zh|誅斬賊盜 捕獲叛亡}}}}
|rowspan=2|적도는 잡아 죽이고 배역자는 잡아들이리
|-
|주참적도 포획반망
|-
| {{더 크게|{{lang|zh|布射遼丸 嵇琴阮嘯}}}}
|rowspan=2|여포는 활 잘 쏘았고 의료는 돌 잘 던졌으며 혜강은 금을 잘켰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지
|-
|포사료환 혜금완소
|-
| {{더 크게|{{lang|zh|恬筆倫紙 鈞巧任釣}}}}
|rowspan=2|붓을 만든 건 몽념 종이를 만든 건 채륜, 마륜의 교묘한 솜씨<ref>마륜은 지남차를 만들었다고 한다.</ref> 임공자의 낚시대<ref>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ref>
|-
|염필윤지 균교임조
|-
| {{더 크게|{{lang|zh|釋紛利俗 竝皆佳妙}}}}
|rowspan=2|이러한 재주를 세상에 푸니 모두다 뛰어나고 신기하였다.
|-
|석분리속 병개가묘
|-
| {{더 크게|{{lang|zh|毛施淑姿 工顰妍笑}}}}
|rowspan=2|오나라 모타와 월나라 서시의 자태는 찡그린 모습도 아름다워라
|-
|모시숙자 공빈연소
|-
| {{더 크게|{{lang|zh|年矢每催 曦暉朗耀}}}}
|rowspan=2| 세월은 살같이 언제나 제촉하나 햇빛 달빛은 밝게 빛나
|-
|연시매최 희휘낭요
|-
| {{더 크게|{{lang|zh|璇璣懸斡 晦魄環照}}}}
|rowspan=2|천문을 보는 기계 매달려 돌듯 그믐이 지나 다시 보름이 되니
|-
|선기현알 회백환조
|-
| {{더 크게|{{lang|zh|指薪修祜 永綏吉劭}}}}
|rowspan=2|손가락에 섶불을 단 듯 수양에 전념하면 영원토록 평안하고 길하리라.
|-
|지신수우 영수길소
|-
| {{더 크게|{{lang|zh|矩步引領 俯仰廊廟}}}}
|rowspan=2|반듯하게 걸으며 옷길을 끌고 사당에 엎드려 예의를 다하고
|-
|구보인령 부앙낭묘
|-
| {{더 크게|{{lang|zh|束帶矜莊 徘徊瞻眺}}}}
|rowspan=2|허리띠를 단단히 묶어 긍지를 갖고 여러 곳을 두루 살펴라
|-
|속대긍장 배회첨조
|-
| {{더 크게|{{lang|zh|孤陋寡聞 愚蒙等誚}}}}
|rowspan=2|(이런 글을 쓴 나는) 고루하고 들은 것 없어 어리석단 꾸짖음을 면치 못하리
|-
|고루과문 우몽등초
|-
| {{더 크게|{{lang|zh|謂語助者 焉哉乎也}}}}
|rowspan=2|어조사에는 언재호야가 있다.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역주 ==
<references/>
= 라이선스 =
{{번역 저작권
|원문 = {{PD-old-100}}
|번역 = {{PD-자작}}
}}
[[분류:한시]]
2cnbyi712yuobgbw8m0n6fgyoax0rh3
392618
392617
2025-06-26T12:33:47Z
2406:5900:1001:2070:D5A9:2A25:EE5A:B0E8
392618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제목 = 천자문
|저자 = [[저자:주흥사|주흥사]]
|역자 = [[사용자:jjw|jjw]]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위키백과|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2010년 8월 25일 석봉 한호의 필체를 목각한 《천자문》이 대한민국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되었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00px; background:#eeffee;"| 원문
!background:#eeeeff;"| 번역
|-
| {{더 크게|{{lang|zh|天地玄黃 宇宙洪荒}}}}
|rowspan=2|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크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ref>독음은 [http://handic.daum.net/dicha/view_top.do 다음한자사전] 을 따랐다. 두음법칙에 의해 독음이 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李)는 낱말의 앞에 올경우 이로 적었다.</ref>
|-
| {{더 크게|{{lang|zh|日月盈厠 辰宿列張}}}}
|rowspan=2|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은 자리를 잡아 늘어서 있다.
|-
|일월영측 진수열장
|-
| {{더 크게|{{lang|zh|寒來暑往 秋收冬藏}}}}
|rowspan=2|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
|-
| 한래서왕 추수동장
|-
| {{더 크게|{{lang|zh|閏餘成歲 律呂調陽}}}}
|rowspan=2| 윤달을 더하여 한해를 이루고 가락을 맞추어 양기를 돋운다.
|-
| 윤여성세 율려조양
|-
| {{더 크게|{{lang|zh|雲騰致雨 露結為霜}}}}
|rowspan=2|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얼어 서리가 된다.
|-
| 운등치우 노결위상
|-
| {{더 크게|{{lang|zh|金生麗水 玉出昆岡}}}}
|rowspan=2| 금은 여수에서 나고 옥은 곤강에서 난다.
|-
| 금생여수 옥출곤강
|-
| {{더 크게|{{lang|zh|劍號巨闕 珠稱夜光}}}}
|rowspan=2| 검은 일컬어 거궐이요 구슬은 일컬어 야광이라.
|-
| 검호거궐 주칭야광
|-
| {{더 크게|{{lang|zh|果珍李柰 菜重芥薑}}}}
|rowspan=2| 과일 가운데 진미는 오얏과 능금이요 채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겨자와 생강이라.
|-
| 과진이내 채중개강
|-
| {{더 크게|{{lang|zh|海鹹河淡 鱗潛羽翔}}}}
|rowspan=2| 바다는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달린 물고기는 물에 잠기고 깃 달린 새는 높이 난다.
|-
| 해함하담 인잠우상
|-
| {{더 크게|{{lang|zh|龍師火帝 鳥官人皇}}}}
|rowspan=2| 복희씨<ref>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고 하며 용사는 복희의 별칭이다.</ref>, 신농씨<ref>화제 또는 염제(炎帝)는 신농씨의 별칭이다</ref>, 소호<ref>소호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ref> 와 황제헌원<ref>황제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술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어 인황이란 별칭이 붙었다.</ref>
|-
| 용사화제 조관인황
|-
| {{더 크게|{{lang|zh|始制文字 乃服衣裳}}}}
|rowspan=2| 문자를 처음 짓고 옷을 지어 입혔지.
|-
| 시제문자 내복의상
|-
| {{더 크게|{{lang|zh|推位讓國 有虞陶唐}}}}
|rowspan=2| 자리를 미루며 나라를 물려주니 유우<ref>순임금의 이름이다.</ref> 와 도당<ref>우 임금의 이름이다.</ref> 이라.
|-
| 추위양국 유우도당
|-
| {{더 크게|{{lang|zh|弔民伐罪 周發殷湯}}}}
|rowspan=2| 백성을 돕고 죄를 벌하니 주나라 무왕<ref>발(發)은 주 무왕의 이름</ref> 과 은나라 탕왕이라.
|-
| 조민벌죄 주발은탕
|-
| {{더 크게|{{lang|zh|坐朝問道 垂拱平章}}}}
|rowspan=2| 조정에 앉아 도를 묻기에 두 손으로 문장을 올리니,
|-
| 좌조문도 수공평장
|-
| {{더 크게|{{lang|zh|愛育黎首 臣伏戎羌}}}}
|rowspan=2| 백성을 아끼고<ref>여수(黎首)는 검은 머리, 즉 관직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ref> 오랑캐가 신하로 복종하게 하소서.
|-
| 애육여수 신복융강
|-
| {{더 크게|{{lang|zh|遐邇壹體 率賓歸王}}}}
|rowspan=2|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어 임금께 이끌려 따를 것입니다.
|-
| 하이일체 솔빈귀왕
|-
| {{더 크게|{{lang|zh|鳴鳳在樹 白駒食場}}}}
|rowspan=2|봉황은 나무에 내려 울고 흰망아지 풀을 뜯으니<ref>성군이 나면 봉황이 찾아와 울고 흰망아지가 나타난다는 전설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말함</ref>
|-
| 명봉재수 백구식장
|-
| {{더 크게|{{lang|zh|化被草木 賴及萬方}}}}
|rowspan=2| 덕화가 초목까지 미치고 만방에 퍼지리.
|-
| 화피초목 뇌급만방
|-
| {{더 크게|{{lang|zh|蓋此身髮 四大五常}}}}
|rowspan=2| 몸에 털이 덮힌 것과 같이 4대5상을 지키고<ref>4대는 하늘, 땅, 도(道), 임금. 5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ref>
|-
| 개차신발 사대오상
|-
| {{더 크게|{{lang|zh|恭惟鞠養 豈敢毁傷}}}}
|rowspan=2| 길러준 은혜를 공경하여 감히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
| 공유국양 기감훼상
|-
| {{더 크게|{{lang|zh|女慕貞烈 男效才良}}}}
|rowspan=2|여자는 정조를 따르고 남자는 재량을 본받아
|-
| 여모정렬 남효재량
|-
| {{더 크게|{{lang|zh|知過必改 得能莫忘}}}}
|rowspan=2|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배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
| 지과필개 득능막망
|-
| {{더 크게|{{lang|zh|罔談彼短 靡恃己長}}}}
|rowspan=2| 다른이의 단점을 입에 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마라
|-
| 망담피단 미시기장
|-
| {{더 크게|{{lang|zh|信使可覆 器欲難量}}}}
|rowspan=2| 믿었던 장점이 뒤집힐 수 있고 다른 사람 기량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신사가복 기욕난량
|-
| {{더 크게|{{lang|zh|墨悲絲染 詩讚羔羊}}}}
|rowspan=2| 이 때문에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탄식하였고<ref>묵자 소염론</ref> 시경은 고양을 찬송하였다.<ref>시경 고양편</ref>
|-
| 묵비사염 시찬고양
|-
| {{더 크게|{{lang|zh|景行維賢 克念作聖}}}}
|rowspan=2| 바르고 어진 것을 보고 행하여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
| 경행유현 극념작성
|-
| {{더 크게|{{lang|zh|德建名立 形端表正}}}}
|rowspan=2|덕을 쌓아 이름을 세우면 바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
|-
| 덕건명립 형단표정
|-
| {{더 크게|{{lang|zh|空谷傳聲 虛堂習聽}}}}
|rowspan=2| 빈 골짜기에 울리는 소리처럼 또한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공곡전성 허당습청
|-
| {{더 크게|{{lang|zh|禍因惡積 福緣善慶}}}}
|rowspan=2| 화는 악행을 쌓은 것이 원인이요 복은 선행의 결과이다.
|-
| 화인악적 복연선경
|-
| {{더 크게|{{lang|zh|尺璧非寶 寸陰是競}}}}
|rowspan=2| 커다란 옥 구슬이<ref>여기서 벽은 완벽의 유래가 된 옥구슬을 말한다. 척(尺)과 촌(寸)은 길이의 단위이나 크고 작은 것으로 의역하였다.</ref> 보배가 아니니 작은 시간을 경주하여야 하여라.
|-
| 척벽비보 촌음시경
|-
| {{더 크게|{{lang|zh|資父事君 曰嚴與敬}}}}
|rowspan=2|부모를 모시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엄정하면서도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니
|-
| 자부사군 왈엄여경
|-
| {{더 크게|{{lang|zh|孝當竭力 忠則盡命}}}}
|rowspan=2| 효도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다.
|-
| 효당갈력 충즉진명
|-
| {{더 크게|{{lang|zh|臨深履薄 夙興溫凊}}}}
|rowspan=2| 깊은 곳을 만나도 살얼음 지나듯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 덥고 차가운지 살피는 것(이 효도하는 마음가짐이며)
|-
| 임심리박 숙흥온정
|-
| {{더 크게|{{lang|zh|似蘭斯馨 如松之盛}}}}
|rowspan=2| 난초와 같이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굳센 것(이 충성하는 마음가짐이다.)
|-
| 사란사형 여송지성
|-
| {{더 크게|{{lang|zh|川流不息 淵澄取映}}}}
|rowspan=2|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고 연못은 맑아 그림자를 비추듯
|-
| 천류불식 연징취영
|-
| {{더 크게|{{lang|zh|容止若思 言辭安定}}}}
|rowspan=2| 얼굴은 생각과 같게 하고 말은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
|-
| 용지약사 언사안정
|-
| {{더 크게|{{lang|zh|篤初誠美 愼終宜令}}}}
|rowspan=2| 일을 시작할 때에 정성을 다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신중히 하면
|-
| 독초성미 신종의령
|-
| {{더 크게|{{lang|zh|榮業所基 籍甚無竟}}}}
|rowspan=2| 이를 바탕으로 이루는 업적이 끝없으리라.
|-
| 영업소기 적심무경
|-
| {{더 크게|{{lang|zh|學優登仕 攝職從政}}}}
|rowspan=2|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올라 직무를 맞고 정사를 돌볼 때에
|-
| 학우등사 섭직종정
|-
| {{더 크게|{{lang|zh|存以甘棠 去而益詠}}}}
|rowspan=2| 벼슬을 맡아 팥배나무 밑에서 정사를 본 소공과 같이 청렴하면 물러날 때 칭송을 들을 것이다.<ref>감당(甘棠)은 팥배나무이다. 주나라 소공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공명 정대하며 청렴하였다고 한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감당시를 읇었다. 시경 국풍편 감당</ref>
|-
| 존이감당 거이익영
|-
| {{더 크게|{{lang|zh|樂殊貴賤 禮別尊卑}}}}
|rowspan=2| 즐거움에 귀천이 없으나 예절에는 존비가 있으니
|-
| 악수귀천 예별존비
|-
| {{더 크게|{{lang|zh|上和下睦 夫唱婦隨}}}}
|rowspan=2| 상하가 화목하고 부부가 원만하며<ref>사자성어 부창부수의 출전이다.</ref>
|-
| 상화하목 부창부수
|-
| {{더 크게|{{lang|zh|外受傅訓 入奉母儀}}}}
|rowspan=2| 밖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에서는 어머니의 뜻을 받을며
|-
| 외수부훈 입봉모의
|-
| {{더 크게|{{lang|zh|諸姑伯叔 猶子比兒}}}}
|rowspan=2| 모든 고모 삼촌의 아이를 내 아이라 여기고
|-
| 제고백숙 유자비아
|-
| {{더 크게|{{lang|zh|孔懷兄弟 同氣連枝}}}}
|rowspan=2| 형제는 서로 품어주니 같은 기운에서 나온 가지기 때문이고
|-
| 공회형제 동기연지
|-
| {{더 크게|{{lang|zh|交友投分 切磨箴規}}}}
|rowspan=2| 벗을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고 규범을 염두에 두어 절제하여
|-
| 교우투분 절마잠규
|-
| {{더 크게|{{lang|zh|仁慈隱惻 造次弗離}}}}
|rowspan=2|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고
|-
| 인자은측 조차불리
|-
| {{더 크게|{{lang|zh|節義廉退 顛沛匪虧}}}}
|rowspan=2| 절의를 지키고 청렴히 물러나 이러한 (예의가) 이지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
| 절의염퇴 전패비휴
|-
| {{더 크게|{{lang|zh|性靜情逸 心動神疲}}}}
|rowspan=2| 성정이 고요하면 심정이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이 피로하니
|-
| 성정정일 심동신피
|-
| {{더 크게|{{lang|zh|守眞志滿 逐物意移}}}}
|rowspan=2| 참 뜻이 가득하도록 지키고 물욕을 멀리하라.
|-
| 수진지만 축물의이
|-
| {{더 크게|{{lang|zh|堅持雅操 好爵自縻}}}}
|rowspan=2| 우아하고 절개가 있으면 관작은 스스로 오게 되어 있다.
|-
| 견지아조 호작자미
|-
| {{더 크게|{{lang|zh|都邑華夏 東西二京}}}}
|rowspan=2| 화하<ref>중국의 별칭</ref> 의 도읍은 동서 2경이라
|-
|도읍화하 동서이경
|-
| {{더 크게|{{lang|zh|背邙面洛 浮渭據涇}}}}
|rowspan=2|낙양은 북망산을 등지고 낙수를 마주하고 장안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르는 구나.
|-
|배망면락 부위거경
|-
| {{더 크게|{{lang|zh|宮殿盤鬱 樓觀飛驚}}}}
|rowspan=2|궁전은 울창한 숲에 쌓였고 누각에 올라 놀라운 경치를 보며
|-
|궁전반울 누관비경
|-
| {{더 크게|{{lang|zh|圖寫禽獸 畵綵仙靈}}}}
|rowspan=2|날짐승 들짐승을 그리니 신선 사는 그림이로구나.
|-
|도사금수 화채선령
|-
| {{더 크게|{{lang|zh|丙舍傍啟 甲帳對楹}}}}
|rowspan=2|병사<ref>궁전 내에 있는 건물들을 뜻하는 낱말</ref> 옆을 열어 갑장<ref>동방삭이 만들었다는 장막</ref> 이 기둥을 마주하게 하고
|-
| 병사방계 갑장대영
|-
| {{더 크게|{{lang|zh|肆筵設席 鼓瑟吹笙}}}}
|rowspan=2|자리를 마련해 연회를 열고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부니
|-
|사연설석 고슬취생
|-
| {{더 크게|{{lang|zh|升階納陛 弁轉疑星}}}}
|rowspan=2| 계단을 올라 납폐하는 신료들은 별인듯 번쩍이고
|-
|승계납폐 변전의성
|-
| {{더 크게|{{lang|zh|右通廣內 左達承明}}}}
|rowspan=2| 오른쪽은 광내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에 닿아<ref>광내와 승명은 모두 고대 중국 궁내의 관직처</ref>
|-
|우통광내 좌달승명
|-
| {{더 크게|{{lang|zh|既集墳典 亦聚群英}}}}
|rowspan=2| 이미 분전<ref>삼황오제 시절의 법률과 의전을 뜻한다.</ref> 을 모은 곳에 영웅들이 모였도다.
|-
|기집분전 역취군영
|-
| {{더 크게|{{lang|zh|杜稾鍾隸 漆書壁經}}}}
|rowspan=2| 두고<ref>초서를 처음 썼다고 전해진다.</ref> 와 종례<ref>예서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ref> 의 글 칠서<ref>대나무에 칠을 한 뒤 쓴 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사용하였다.</ref> 와 벽경<ref>공자에게서 전해 왔다는 육경</ref>
|-
|두고종례 칠서벽경
|-
| {{더 크게|{{lang|zh|府羅將相 路俠槐卿}}}}
|rowspan=2|각 부에 장군과 재상이 있어 고관이 즐비하여 길이 좁다.
|-
|부라장상 노협괴경
|-
| {{더 크게|{{lang|zh|戶封八縣 家給千兵}}}}
|rowspan=2|여덟 고을을 봉지로 주고 천명의 군사로 지키게 하니<ref>한고조의 논공행상을 가리킨다.</ref>
|-
|호봉팔현 가급천병
|-
| {{더 크게|{{lang|zh|高冠陪輦 驅轂振纓}}}}
|rowspan=2|높은 관을 쓰고 수레에올라 바퀴를 구르며 갓끈을 떨치는 구나.
|-
|고관배련 구곡진영
|-
| {{더 크게|{{lang|zh|世祿侈富 車駕肥輕}}}}
|rowspan=2| 대대로 받는 녹으로 부귀를 누리며 수레는 (제물로) 무겁고 가마는 가벼우니
|-
|세록치부 거가비경
|-
| {{더 크게|{{lang|zh|策功茂實 勒碑刻銘}}}}
|rowspan=2|끝없이 쌓은 공적 비석에 세기는 구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 {{더 크게|{{lang|zh|磻溪伊尹 佐時阿衡}}}}
|rowspan=2| 반계의 (태공망)과 (탕왕을 도운) 이윤은 때가 도와 아형의 벼슬에 올랐고
|-
|반계이윤 좌시아형
|-
| {{더 크게|{{lang|zh|奄宅曲阜 微旦孰營}}}}
|rowspan=2| 곡부에 궁전을 지은 것은 주공 단<ref>주문왕의 아우, 노나라의 시조</ref> 이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
|-
|엄택곡부 미단숙영
|-
| {{더 크게|{{lang|zh|桓公匡合 濟弱扶傾}}}}
|rowspan=2|환공은 제후를 널리 합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했지
|-
|환공광합 제약부경
|-
| {{더 크게|{{lang|zh|綺迴漢惠 說感武丁}}}}
|rowspan=2|기리계<ref>한고조가 죽고 여희가 여씨 일족에서 황제를 즉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장량은 기리계의 도움으로 혜제가 즉위하도록 하였다.</ref> 가 한 혜제를 회복시키고 부열이 무정을 감동시키듯.<ref>은 나라 무정이 부열에게 감동하여 선정을 배풀었다는 고사</ref>
|-
|기회한혜 설감무정
|-
| {{더 크게|{{lang|zh|俊乂密勿 多士寔寧}}}}
|rowspan=2|준걸과 예사가 모이니 참으로 평안하구나.
|-
|준예밀물 다사식녕
|-
| {{더 크게|{{lang|zh|晉楚更霸 趙魏困橫}}}}
|rowspan=2|진과 초가 다시 패자가 되고 조와위는 연횡으로 곤궁에 빠져
|-
|진초갱패 조위곤횡
|-
| {{더 크게|{{lang|zh|假途滅虢 踐土會盟}}}}
|rowspan=2|진은 위계를 써 괵을 멸하고 천토에서 회맹하였고
|-
|가도멸괵 천토회맹
|-
| {{더 크게|{{lang|zh|何遵約法 韓弊煩刑}}}}
|rowspan=2|어찌 (한고조의) 약법을 두고 한비자의 낡고 번잡한 형벌을 따를 것인가
|-
|하준약법 한폐번형
|-
| {{더 크게|{{lang|zh|起翦頗牧 用軍最精}}}}
|rowspan=2|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은 군사를 가장 잘 다루었고
|-
|기전파목 용군최정
|-
| {{더 크게|{{lang|zh|宣威沙漠 馳譽丹青}}}}
|rowspan=2|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치니 단청에 넣어 기리는 구나.
|-
|선위사막 치예단청
|-
| {{더 크게|{{lang|zh|九州禹跡 百郡秦幷}}}}
|rowspan=2| 하우씨가 구주를 두어 백군이 진에 병합되고
|-
|구주우적 백군진병
|-
| {{더 크게|{{lang|zh|嶽宗恆岱 禪主云亭}}}}
|rowspan=2| 산중 으뜸은 항산과 태산이라 임금을 정하는 운정이 그곳에 있으며
|-
|악종항대 선주운정
|-
| {{더 크게|{{lang|zh|雁門紫塞 雞田赤城}}}}
|rowspan=2| 안문관과 만리장성, 계전과 적성
|-
|안문자새 계전적성
|-
| {{더 크게|{{lang|zh|昆池碣石 鉅野洞庭}}}}
|rowspan=2| 운남의 곤지와 부평의 갈석, 거야의 넓은 들판과 동정의 큰 호수
|-
|곤지갈석 거야동정
|-
| {{더 크게|{{lang|zh|曠遠緜邈 巖岫杳冥}}}}
|rowspan=2|아득히 멀리 줄지어 있으니 아득하고 묘연하구나.
|-
|광원면막 암수묘명
|-
| {{더 크게|{{lang|zh|治本於農 務茲稼穡}}}}
|rowspan=2| 다스림의 근본은 농업이니 때를 맞추어 심고 거두어야 하리
|-
|치본어농 무자가색
|-
| {{더 크게|{{lang|zh|俶載南畝 我藝黍稷}}}}
|rowspan=2|이제 남쪽 이랑을 일궈 나는 기장과 피를 가꾸어
|-
|숙재남묘 아예서직
|-
| {{더 크게|{{lang|zh|稅熟貢新 勸賞黜陟}}}}
|rowspan=2| 익으면 세를 내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 상을 권하고 (못된 자는) 내쫓으리라.
|-
|세숙공신 권상출척
|-
| {{더 크게|{{lang|zh|孟軻敦素 史魚秉直}}}}
|rowspan=2|맹자는 도타운 사람이었고 사어는 강직했으니
|-
|맹가돈소 사어병직
|-
| {{더 크게|{{lang|zh|庶幾中庸 勞謙謹敕}}}}
|rowspan=2|중용을 으뜸으로 삼고 겸손에 힘쓰고 경계해야지
|-
|서기중용 노겸근칙
|-
| {{더 크게|{{lang|zh|聆音察理 鏡貌辨色}}}}
|rowspan=2|들리는 소리 자세히 살피고 거울에 비치는 모양 꼼꼼히 구별하고
|-
|영음찰리 감모변색
|-
| {{더 크게|{{lang|zh|貽厥嘉猷 勉其祗植}}}}
|rowspan=2|그 아름다움이 후세에 미치도록 그 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며
|-
|이궐가유 면기지식
|-
| {{더 크게|{{lang|zh|省躬譏誡 寵增抗極}}}}
|rowspan=2|몸을 살펴 나무라고 탓할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총애가 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
|성궁기계 총증항극
|-
| {{더 크게|{{lang|zh|殆辱近恥 林皋幸即}}}}
|rowspan=2| 위태로운 치욕은 부끄러운 일에 의한 것이니 수풀과 언덕에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
|태욕근치 임고행즉
|-
| {{더 크게|{{lang|zh|兩疏見機 解組誰逼}}}}
|rowspan=2| 양소<ref>한나라의 소광과 소수</ref> 는 기회를 보아 관복을 벗으니 누가 핍박하였으랴
|-
|양소견기 해조수핍
|-
| {{더 크게|{{lang|zh|索居閒處 沈默寂寥}}}}
|rowspan=2|한가한 곳을 찾아 살며 고요히 살며 침묵한 채
|-
|색거한처 침묵적요
|-
| {{더 크게|{{lang|zh|求古尋論 散慮逍遙}}}}
|rowspan=2|옛일을 두고 논장을 찾고 염려를 잊고 소요하니
|-
|구고심론 산려소요
|-
| {{더 크게|{{lang|zh|欣奏累遣 慼謝歡招}}}}
|rowspan=2|기쁜 일은 알리고 누추한 것은 보내며 슬픈 일은 마다하고 기쁜 일을 환영하리
|-
|흔주루견 척사환초
|-
| {{더 크게|{{lang|zh|渠荷的歷 園莽抽條}}}}
|rowspan=2|도랑에 핀 연꽃의 이력, 동산에 자란 풀 가지
|-
|거하적력 원망추조
|-
| {{더 크게|{{lang|zh|枇杷晚翠 梧桐早凋}}}}
|rowspan=2|비파나무 만추에도 푸르른데 오동나무 일찍이 시들었고
|-
|비파만취 오동조조
|-
| {{더 크게|{{lang|zh|陳根委翳 落葉飄颻}}}}
|rowspan=2|고목 뿌리 덮은 낙엽 바람에 날리니
|-
|진근위예 낙엽표요
|-
| {{더 크게|{{lang|zh|遊鵾獨運 凌摩絳霄}}}}
|rowspan=2|댓닭 한 마리 홀로 해엄치며 노을진 하늘을 업수이 여기고
|-
|유곤독운 능마강소
|-
| {{더 크게|{{lang|zh|耽讀翫市 寓目囊箱}}}}
|rowspan=2|(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한 번 보면 상자에 넣은 듯 (잊지 않았다지)
|-
|탐독완시 우목낭상
|-
| {{더 크게|{{lang|zh|易輶攸畏 屬耳垣墻}}}}
|rowspan=2|가벼이 경솔하게 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담장에도 귀가 있다 하기 때문
|-
|역유유외 속이원장
|-
| {{더 크게|{{lang|zh|具膳飡飯 適口充腸}}}}
|rowspan=2|반찬이나 저녁밥이야 먹고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
|-
|구선손반 적구충장
|-
| {{더 크게|{{lang|zh|飽飫烹宰 飢厭糟糠}}}}
|rowspan=2|배부르면 재상의 요리도 물리게 되고 배 고프면 겨 지게미로도 족하니
|-
|포어팽재 기염조강
|-
| {{더 크게|{{lang|zh|親戚故舊 老少異糧}}}}
|rowspan=2|친척이나 옛친구 노소에 따라 음식도 다를 밖에
|-
|친척고구 노소이량
|-
| {{더 크게|{{lang|zh|妾御績紡 侍巾帷房}}}}
|rowspan=2|아내가 길쌈하여 어른 방에 수건을 받들고
|-
|첩어적방 시건유방
|-
| {{더 크게|{{lang|zh|紈扇圓潔 銀燭煒煌}}}}
|rowspan=2|흰 비단으로 지은 부채 둥글고 깨끗하며 은촛대 불빛 밝으니
|-
|환선원결 은촉위황
|-
| {{더 크게|{{lang|zh|晝眠夕寐 藍笋象床}}}}
|rowspan=2|낮에 자고 저녁에 또 자려 푸른 대로 코끼리 침상을 만들지
|-
|주면석매 남순상상
|-
| {{더 크게|{{lang|zh|絃歌酒讌 接盃舉觴}}}}
|rowspan=2|거문거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주연을 열고 술잔을 들어 부딛히고
|-
|현가주연 접배거상
|-
| {{더 크게|{{lang|zh|矯手頓足 悅豫且康}}}}
|rowspan=2|손을 들고 발을 움직여 춤추며 이처럼 평안함을 즐거워하세
|-
|교수돈족 열예차강
|-
| {{더 크게|{{lang|zh|嫡後嗣續 祭祀烝嘗}}}}
|rowspan=2| 맏이는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어
|-
|적후사속 제사증상
|-
| {{더 크게|{{lang|zh|稽顙再拜 悚懼恐惶}}}}
|rowspan=2|이마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
|-
|계상재배 송구공황
|-
| {{더 크게|{{lang|zh|牋牒簡要 顧答審詳}}}}
|rowspan=2|편지는 간략히 요지만 쓰고 답신은 자세히 살펴서 하라.
|-
|전첩간요 고답심상
|-
| {{더 크게|{{lang|zh|骸垢想浴 執熱願涼}}}}
|rowspan=2|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생각이 나고 열이 차면 서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
|-
|해구상욕 집열원량
|-
| {{더 크게|{{lang|zh|驢騾犢特 駭躍超驤}}}}
|rowspan=2|노새며 망아지, 숫송아지가 놀라뛰며 내달리듯
|-
|여라독특 해약초양
|-
| {{더 크게|{{lang|zh|誅斬賊盜 捕獲叛亡}}}}
|rowspan=2|적도는 잡아 죽이고 배역자는 잡아들이리
|-
|주참적도 포획반망
|-
| {{더 크게|{{lang|zh|布射遼丸 嵇琴阮嘯}}}}
|rowspan=2|여포는 활 잘 쏘았고 의료는 돌 잘 던졌으며 혜강은 금을 잘켰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지
|-
|포사료환 혜금완소
|-
| {{더 크게|{{lang|zh|恬筆倫紙 鈞巧任釣}}}}
|rowspan=2|붓을 만든 건 몽념 종이를 만든 건 채륜, 마륜의 교묘한 솜씨<ref>마륜은 지남차를 만들었다고 한다.</ref> 임공자의 낚시대<ref>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ref>
|-
|염필윤지 균교임조
|-
| {{더 크게|{{lang|zh|釋紛利俗 竝皆佳妙}}}}
|rowspan=2|이러한 재주를 세상에 푸니 모두다 뛰어나고 신기하였다.
|-
|석분리속 병개가묘
|-
| {{더 크게|{{lang|zh|毛施淑姿 工顰妍笑}}}}
|rowspan=2|오나라 모타와 월나라 서시의 자태는 찡그린 모습도 아름다워라
|-
|모시숙자 공빈연소
|-
| {{더 크게|{{lang|zh|年矢每催 曦暉朗耀}}}}
|rowspan=2| 세월은 살같이 언제나 제촉하나 햇빛 달빛은 밝게 빛나
|-
|연시매최 희휘낭요
|-
| {{더 크게|{{lang|zh|璇璣懸斡 晦魄環照}}}}
|rowspan=2|천문을 보는 기계 매달려 돌듯 그믐이 지나 다시 보름이 되니
|-
|선기현알 회백환조
|-
| {{더 크게|{{lang|zh|指薪修祜 永綏吉劭}}}}
|rowspan=2|손가락에 섶불을 단 듯 수양에 전념하면 영원토록 평안하고 길하리라.
|-
|지신수우 영수길소
|-
| {{더 크게|{{lang|zh|矩步引領 俯仰廊廟}}}}
|rowspan=2|반듯하게 걸으며 옷길을 끌고 사당에 엎드려 예의를 다하고
|-
|구보인령 부앙낭묘
|-
| {{더 크게|{{lang|zh|束帶矜莊 徘徊瞻眺}}}}
|rowspan=2|허리띠를 단단히 묶어 긍지를 갖고 여러 곳을 두루 살펴라
|-
|속대긍장 배회첨조
|-
| {{더 크게|{{lang|zh|孤陋寡聞 愚蒙等誚}}}}
|rowspan=2|(이런 글을 쓴 나는) 고루하고 들은 것 없어 어리석단 꾸짖음을 면치 못하리
|-
|고루과문 우몽등초
|-
| {{더 크게|{{lang|zh|謂語助者 焉哉乎也}}}}
|rowspan=2|어조사에는 언재호야가 있다.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역주 ==
<references/>
= 라이선스 =
{{번역 저작권
|원문 = {{PD-old-100}}
|번역 = {{PD-자작}}
}}
[[분류:한시]]
h96q75uips8eznkgqcghh8ryfjvgtku
392619
392618
2025-06-26T12:34:38Z
2406:5900:1001:2070:D5A9:2A25:EE5A:B0E8
392619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제목 = 천자문
|저자 = [[저자:주흥사|주흥사]]
|역자 = [[사용자:jjw|jjw]]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위키백과|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2010년 8월 25일 석봉 한호의 필체를 목각한 《천자문》이 대한민국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되었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00px; background:#eeffee;"| 원문
!background:#eeeeff;"| 번역
|-
| {{더 크게|{{lang|zh|天地玄黃 宇宙洪荒}}}}
|rowspan=2|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크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ref>독음은 [http://handic.daum.net/dicha/view_top.do 다음한자사전] 을 따랐다. 두음법칙에 의해 독음이 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李)는 낱말의 앞에 올경우 이로 적었다.</ref>
|-
| {{더 크게|{{lang|zh|日月盈昃 辰宿列張}}}}
|rowspan=2|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은 자리를 잡아 늘어서 있다.
|-
|일월영측 진수열장
|-
| {{더 크게|{{lang|zh|寒來暑往 秋收冬藏}}}}
|rowspan=2|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
|-
| 한래서왕 추수동장
|-
| {{더 크게|{{lang|zh|閏餘成歲 律呂調陽}}}}
|rowspan=2| 윤달을 더하여 한해를 이루고 가락을 맞추어 양기를 돋운다.
|-
| 윤여성세 율려조양
|-
| {{더 크게|{{lang|zh|雲騰致雨 露結為霜}}}}
|rowspan=2|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얼어 서리가 된다.
|-
| 운등치우 노결위상
|-
| {{더 크게|{{lang|zh|金生麗水 玉出昆岡}}}}
|rowspan=2| 금은 여수에서 나고 옥은 곤강에서 난다.
|-
| 금생여수 옥출곤강
|-
| {{더 크게|{{lang|zh|劍號巨闕 珠稱夜光}}}}
|rowspan=2| 검은 일컬어 거궐이요 구슬은 일컬어 야광이라.
|-
| 검호거궐 주칭야광
|-
| {{더 크게|{{lang|zh|果珍李柰 菜重芥薑}}}}
|rowspan=2| 과일 가운데 진미는 오얏과 능금이요 채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겨자와 생강이라.
|-
| 과진이내 채중개강
|-
| {{더 크게|{{lang|zh|海鹹河淡 鱗潛羽翔}}}}
|rowspan=2| 바다는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달린 물고기는 물에 잠기고 깃 달린 새는 높이 난다.
|-
| 해함하담 인잠우상
|-
| {{더 크게|{{lang|zh|龍師火帝 鳥官人皇}}}}
|rowspan=2| 복희씨<ref>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고 하며 용사는 복희의 별칭이다.</ref>, 신농씨<ref>화제 또는 염제(炎帝)는 신농씨의 별칭이다</ref>, 소호<ref>소호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ref> 와 황제헌원<ref>황제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술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어 인황이란 별칭이 붙었다.</ref>
|-
| 용사화제 조관인황
|-
| {{더 크게|{{lang|zh|始制文字 乃服衣裳}}}}
|rowspan=2| 문자를 처음 짓고 옷을 지어 입혔지.
|-
| 시제문자 내복의상
|-
| {{더 크게|{{lang|zh|推位讓國 有虞陶唐}}}}
|rowspan=2| 자리를 미루며 나라를 물려주니 유우<ref>순임금의 이름이다.</ref> 와 도당<ref>우 임금의 이름이다.</ref> 이라.
|-
| 추위양국 유우도당
|-
| {{더 크게|{{lang|zh|弔民伐罪 周發殷湯}}}}
|rowspan=2| 백성을 돕고 죄를 벌하니 주나라 무왕<ref>발(發)은 주 무왕의 이름</ref> 과 은나라 탕왕이라.
|-
| 조민벌죄 주발은탕
|-
| {{더 크게|{{lang|zh|坐朝問道 垂拱平章}}}}
|rowspan=2| 조정에 앉아 도를 묻기에 두 손으로 문장을 올리니,
|-
| 좌조문도 수공평장
|-
| {{더 크게|{{lang|zh|愛育黎首 臣伏戎羌}}}}
|rowspan=2| 백성을 아끼고<ref>여수(黎首)는 검은 머리, 즉 관직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ref> 오랑캐가 신하로 복종하게 하소서.
|-
| 애육여수 신복융강
|-
| {{더 크게|{{lang|zh|遐邇壹體 率賓歸王}}}}
|rowspan=2|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어 임금께 이끌려 따를 것입니다.
|-
| 하이일체 솔빈귀왕
|-
| {{더 크게|{{lang|zh|鳴鳳在樹 白駒食場}}}}
|rowspan=2|봉황은 나무에 내려 울고 흰망아지 풀을 뜯으니<ref>성군이 나면 봉황이 찾아와 울고 흰망아지가 나타난다는 전설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말함</ref>
|-
| 명봉재수 백구식장
|-
| {{더 크게|{{lang|zh|化被草木 賴及萬方}}}}
|rowspan=2| 덕화가 초목까지 미치고 만방에 퍼지리.
|-
| 화피초목 뇌급만방
|-
| {{더 크게|{{lang|zh|蓋此身髮 四大五常}}}}
|rowspan=2| 몸에 털이 덮힌 것과 같이 4대5상을 지키고<ref>4대는 하늘, 땅, 도(道), 임금. 5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ref>
|-
| 개차신발 사대오상
|-
| {{더 크게|{{lang|zh|恭惟鞠養 豈敢毁傷}}}}
|rowspan=2| 길러준 은혜를 공경하여 감히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
| 공유국양 기감훼상
|-
| {{더 크게|{{lang|zh|女慕貞烈 男效才良}}}}
|rowspan=2|여자는 정조를 따르고 남자는 재량을 본받아
|-
| 여모정렬 남효재량
|-
| {{더 크게|{{lang|zh|知過必改 得能莫忘}}}}
|rowspan=2|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배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
| 지과필개 득능막망
|-
| {{더 크게|{{lang|zh|罔談彼短 靡恃己長}}}}
|rowspan=2| 다른이의 단점을 입에 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마라
|-
| 망담피단 미시기장
|-
| {{더 크게|{{lang|zh|信使可覆 器欲難量}}}}
|rowspan=2| 믿었던 장점이 뒤집힐 수 있고 다른 사람 기량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신사가복 기욕난량
|-
| {{더 크게|{{lang|zh|墨悲絲染 詩讚羔羊}}}}
|rowspan=2| 이 때문에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탄식하였고<ref>묵자 소염론</ref> 시경은 고양을 찬송하였다.<ref>시경 고양편</ref>
|-
| 묵비사염 시찬고양
|-
| {{더 크게|{{lang|zh|景行維賢 克念作聖}}}}
|rowspan=2| 바르고 어진 것을 보고 행하여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
| 경행유현 극념작성
|-
| {{더 크게|{{lang|zh|德建名立 形端表正}}}}
|rowspan=2|덕을 쌓아 이름을 세우면 바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
|-
| 덕건명립 형단표정
|-
| {{더 크게|{{lang|zh|空谷傳聲 虛堂習聽}}}}
|rowspan=2| 빈 골짜기에 울리는 소리처럼 또한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공곡전성 허당습청
|-
| {{더 크게|{{lang|zh|禍因惡積 福緣善慶}}}}
|rowspan=2| 화는 악행을 쌓은 것이 원인이요 복은 선행의 결과이다.
|-
| 화인악적 복연선경
|-
| {{더 크게|{{lang|zh|尺璧非寶 寸陰是競}}}}
|rowspan=2| 커다란 옥 구슬이<ref>여기서 벽은 완벽의 유래가 된 옥구슬을 말한다. 척(尺)과 촌(寸)은 길이의 단위이나 크고 작은 것으로 의역하였다.</ref> 보배가 아니니 작은 시간을 경주하여야 하여라.
|-
| 척벽비보 촌음시경
|-
| {{더 크게|{{lang|zh|資父事君 曰嚴與敬}}}}
|rowspan=2|부모를 모시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엄정하면서도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니
|-
| 자부사군 왈엄여경
|-
| {{더 크게|{{lang|zh|孝當竭力 忠則盡命}}}}
|rowspan=2| 효도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다.
|-
| 효당갈력 충즉진명
|-
| {{더 크게|{{lang|zh|臨深履薄 夙興溫凊}}}}
|rowspan=2| 깊은 곳을 만나도 살얼음 지나듯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 덥고 차가운지 살피는 것(이 효도하는 마음가짐이며)
|-
| 임심리박 숙흥온정
|-
| {{더 크게|{{lang|zh|似蘭斯馨 如松之盛}}}}
|rowspan=2| 난초와 같이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굳센 것(이 충성하는 마음가짐이다.)
|-
| 사란사형 여송지성
|-
| {{더 크게|{{lang|zh|川流不息 淵澄取映}}}}
|rowspan=2|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고 연못은 맑아 그림자를 비추듯
|-
| 천류불식 연징취영
|-
| {{더 크게|{{lang|zh|容止若思 言辭安定}}}}
|rowspan=2| 얼굴은 생각과 같게 하고 말은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
|-
| 용지약사 언사안정
|-
| {{더 크게|{{lang|zh|篤初誠美 愼終宜令}}}}
|rowspan=2| 일을 시작할 때에 정성을 다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신중히 하면
|-
| 독초성미 신종의령
|-
| {{더 크게|{{lang|zh|榮業所基 籍甚無竟}}}}
|rowspan=2| 이를 바탕으로 이루는 업적이 끝없으리라.
|-
| 영업소기 적심무경
|-
| {{더 크게|{{lang|zh|學優登仕 攝職從政}}}}
|rowspan=2|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올라 직무를 맞고 정사를 돌볼 때에
|-
| 학우등사 섭직종정
|-
| {{더 크게|{{lang|zh|存以甘棠 去而益詠}}}}
|rowspan=2| 벼슬을 맡아 팥배나무 밑에서 정사를 본 소공과 같이 청렴하면 물러날 때 칭송을 들을 것이다.<ref>감당(甘棠)은 팥배나무이다. 주나라 소공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공명 정대하며 청렴하였다고 한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감당시를 읇었다. 시경 국풍편 감당</ref>
|-
| 존이감당 거이익영
|-
| {{더 크게|{{lang|zh|樂殊貴賤 禮別尊卑}}}}
|rowspan=2| 즐거움에 귀천이 없으나 예절에는 존비가 있으니
|-
| 악수귀천 예별존비
|-
| {{더 크게|{{lang|zh|上和下睦 夫唱婦隨}}}}
|rowspan=2| 상하가 화목하고 부부가 원만하며<ref>사자성어 부창부수의 출전이다.</ref>
|-
| 상화하목 부창부수
|-
| {{더 크게|{{lang|zh|外受傅訓 入奉母儀}}}}
|rowspan=2| 밖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에서는 어머니의 뜻을 받을며
|-
| 외수부훈 입봉모의
|-
| {{더 크게|{{lang|zh|諸姑伯叔 猶子比兒}}}}
|rowspan=2| 모든 고모 삼촌의 아이를 내 아이라 여기고
|-
| 제고백숙 유자비아
|-
| {{더 크게|{{lang|zh|孔懷兄弟 同氣連枝}}}}
|rowspan=2| 형제는 서로 품어주니 같은 기운에서 나온 가지기 때문이고
|-
| 공회형제 동기연지
|-
| {{더 크게|{{lang|zh|交友投分 切磨箴規}}}}
|rowspan=2| 벗을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고 규범을 염두에 두어 절제하여
|-
| 교우투분 절마잠규
|-
| {{더 크게|{{lang|zh|仁慈隱惻 造次弗離}}}}
|rowspan=2|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고
|-
| 인자은측 조차불리
|-
| {{더 크게|{{lang|zh|節義廉退 顛沛匪虧}}}}
|rowspan=2| 절의를 지키고 청렴히 물러나 이러한 (예의가) 이지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
| 절의염퇴 전패비휴
|-
| {{더 크게|{{lang|zh|性靜情逸 心動神疲}}}}
|rowspan=2| 성정이 고요하면 심정이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이 피로하니
|-
| 성정정일 심동신피
|-
| {{더 크게|{{lang|zh|守眞志滿 逐物意移}}}}
|rowspan=2| 참 뜻이 가득하도록 지키고 물욕을 멀리하라.
|-
| 수진지만 축물의이
|-
| {{더 크게|{{lang|zh|堅持雅操 好爵自縻}}}}
|rowspan=2| 우아하고 절개가 있으면 관작은 스스로 오게 되어 있다.
|-
| 견지아조 호작자미
|-
| {{더 크게|{{lang|zh|都邑華夏 東西二京}}}}
|rowspan=2| 화하<ref>중국의 별칭</ref> 의 도읍은 동서 2경이라
|-
|도읍화하 동서이경
|-
| {{더 크게|{{lang|zh|背邙面洛 浮渭據涇}}}}
|rowspan=2|낙양은 북망산을 등지고 낙수를 마주하고 장안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르는 구나.
|-
|배망면락 부위거경
|-
| {{더 크게|{{lang|zh|宮殿盤鬱 樓觀飛驚}}}}
|rowspan=2|궁전은 울창한 숲에 쌓였고 누각에 올라 놀라운 경치를 보며
|-
|궁전반울 누관비경
|-
| {{더 크게|{{lang|zh|圖寫禽獸 畵綵仙靈}}}}
|rowspan=2|날짐승 들짐승을 그리니 신선 사는 그림이로구나.
|-
|도사금수 화채선령
|-
| {{더 크게|{{lang|zh|丙舍傍啟 甲帳對楹}}}}
|rowspan=2|병사<ref>궁전 내에 있는 건물들을 뜻하는 낱말</ref> 옆을 열어 갑장<ref>동방삭이 만들었다는 장막</ref> 이 기둥을 마주하게 하고
|-
| 병사방계 갑장대영
|-
| {{더 크게|{{lang|zh|肆筵設席 鼓瑟吹笙}}}}
|rowspan=2|자리를 마련해 연회를 열고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부니
|-
|사연설석 고슬취생
|-
| {{더 크게|{{lang|zh|升階納陛 弁轉疑星}}}}
|rowspan=2| 계단을 올라 납폐하는 신료들은 별인듯 번쩍이고
|-
|승계납폐 변전의성
|-
| {{더 크게|{{lang|zh|右通廣內 左達承明}}}}
|rowspan=2| 오른쪽은 광내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에 닿아<ref>광내와 승명은 모두 고대 중국 궁내의 관직처</ref>
|-
|우통광내 좌달승명
|-
| {{더 크게|{{lang|zh|既集墳典 亦聚群英}}}}
|rowspan=2| 이미 분전<ref>삼황오제 시절의 법률과 의전을 뜻한다.</ref> 을 모은 곳에 영웅들이 모였도다.
|-
|기집분전 역취군영
|-
| {{더 크게|{{lang|zh|杜稾鍾隸 漆書壁經}}}}
|rowspan=2| 두고<ref>초서를 처음 썼다고 전해진다.</ref> 와 종례<ref>예서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ref> 의 글 칠서<ref>대나무에 칠을 한 뒤 쓴 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사용하였다.</ref> 와 벽경<ref>공자에게서 전해 왔다는 육경</ref>
|-
|두고종례 칠서벽경
|-
| {{더 크게|{{lang|zh|府羅將相 路俠槐卿}}}}
|rowspan=2|각 부에 장군과 재상이 있어 고관이 즐비하여 길이 좁다.
|-
|부라장상 노협괴경
|-
| {{더 크게|{{lang|zh|戶封八縣 家給千兵}}}}
|rowspan=2|여덟 고을을 봉지로 주고 천명의 군사로 지키게 하니<ref>한고조의 논공행상을 가리킨다.</ref>
|-
|호봉팔현 가급천병
|-
| {{더 크게|{{lang|zh|高冠陪輦 驅轂振纓}}}}
|rowspan=2|높은 관을 쓰고 수레에올라 바퀴를 구르며 갓끈을 떨치는 구나.
|-
|고관배련 구곡진영
|-
| {{더 크게|{{lang|zh|世祿侈富 車駕肥輕}}}}
|rowspan=2| 대대로 받는 녹으로 부귀를 누리며 수레는 (제물로) 무겁고 가마는 가벼우니
|-
|세록치부 거가비경
|-
| {{더 크게|{{lang|zh|策功茂實 勒碑刻銘}}}}
|rowspan=2|끝없이 쌓은 공적 비석에 세기는 구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 {{더 크게|{{lang|zh|磻溪伊尹 佐時阿衡}}}}
|rowspan=2| 반계의 (태공망)과 (탕왕을 도운) 이윤은 때가 도와 아형의 벼슬에 올랐고
|-
|반계이윤 좌시아형
|-
| {{더 크게|{{lang|zh|奄宅曲阜 微旦孰營}}}}
|rowspan=2| 곡부에 궁전을 지은 것은 주공 단<ref>주문왕의 아우, 노나라의 시조</ref> 이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
|-
|엄택곡부 미단숙영
|-
| {{더 크게|{{lang|zh|桓公匡合 濟弱扶傾}}}}
|rowspan=2|환공은 제후를 널리 합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했지
|-
|환공광합 제약부경
|-
| {{더 크게|{{lang|zh|綺迴漢惠 說感武丁}}}}
|rowspan=2|기리계<ref>한고조가 죽고 여희가 여씨 일족에서 황제를 즉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장량은 기리계의 도움으로 혜제가 즉위하도록 하였다.</ref> 가 한 혜제를 회복시키고 부열이 무정을 감동시키듯.<ref>은 나라 무정이 부열에게 감동하여 선정을 배풀었다는 고사</ref>
|-
|기회한혜 설감무정
|-
| {{더 크게|{{lang|zh|俊乂密勿 多士寔寧}}}}
|rowspan=2|준걸과 예사가 모이니 참으로 평안하구나.
|-
|준예밀물 다사식녕
|-
| {{더 크게|{{lang|zh|晉楚更霸 趙魏困橫}}}}
|rowspan=2|진과 초가 다시 패자가 되고 조와위는 연횡으로 곤궁에 빠져
|-
|진초갱패 조위곤횡
|-
| {{더 크게|{{lang|zh|假途滅虢 踐土會盟}}}}
|rowspan=2|진은 위계를 써 괵을 멸하고 천토에서 회맹하였고
|-
|가도멸괵 천토회맹
|-
| {{더 크게|{{lang|zh|何遵約法 韓弊煩刑}}}}
|rowspan=2|어찌 (한고조의) 약법을 두고 한비자의 낡고 번잡한 형벌을 따를 것인가
|-
|하준약법 한폐번형
|-
| {{더 크게|{{lang|zh|起翦頗牧 用軍最精}}}}
|rowspan=2|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은 군사를 가장 잘 다루었고
|-
|기전파목 용군최정
|-
| {{더 크게|{{lang|zh|宣威沙漠 馳譽丹青}}}}
|rowspan=2|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치니 단청에 넣어 기리는 구나.
|-
|선위사막 치예단청
|-
| {{더 크게|{{lang|zh|九州禹跡 百郡秦幷}}}}
|rowspan=2| 하우씨가 구주를 두어 백군이 진에 병합되고
|-
|구주우적 백군진병
|-
| {{더 크게|{{lang|zh|嶽宗恆岱 禪主云亭}}}}
|rowspan=2| 산중 으뜸은 항산과 태산이라 임금을 정하는 운정이 그곳에 있으며
|-
|악종항대 선주운정
|-
| {{더 크게|{{lang|zh|雁門紫塞 雞田赤城}}}}
|rowspan=2| 안문관과 만리장성, 계전과 적성
|-
|안문자새 계전적성
|-
| {{더 크게|{{lang|zh|昆池碣石 鉅野洞庭}}}}
|rowspan=2| 운남의 곤지와 부평의 갈석, 거야의 넓은 들판과 동정의 큰 호수
|-
|곤지갈석 거야동정
|-
| {{더 크게|{{lang|zh|曠遠緜邈 巖岫杳冥}}}}
|rowspan=2|아득히 멀리 줄지어 있으니 아득하고 묘연하구나.
|-
|광원면막 암수묘명
|-
| {{더 크게|{{lang|zh|治本於農 務茲稼穡}}}}
|rowspan=2| 다스림의 근본은 농업이니 때를 맞추어 심고 거두어야 하리
|-
|치본어농 무자가색
|-
| {{더 크게|{{lang|zh|俶載南畝 我藝黍稷}}}}
|rowspan=2|이제 남쪽 이랑을 일궈 나는 기장과 피를 가꾸어
|-
|숙재남묘 아예서직
|-
| {{더 크게|{{lang|zh|稅熟貢新 勸賞黜陟}}}}
|rowspan=2| 익으면 세를 내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 상을 권하고 (못된 자는) 내쫓으리라.
|-
|세숙공신 권상출척
|-
| {{더 크게|{{lang|zh|孟軻敦素 史魚秉直}}}}
|rowspan=2|맹자는 도타운 사람이었고 사어는 강직했으니
|-
|맹가돈소 사어병직
|-
| {{더 크게|{{lang|zh|庶幾中庸 勞謙謹敕}}}}
|rowspan=2|중용을 으뜸으로 삼고 겸손에 힘쓰고 경계해야지
|-
|서기중용 노겸근칙
|-
| {{더 크게|{{lang|zh|聆音察理 鏡貌辨色}}}}
|rowspan=2|들리는 소리 자세히 살피고 거울에 비치는 모양 꼼꼼히 구별하고
|-
|영음찰리 감모변색
|-
| {{더 크게|{{lang|zh|貽厥嘉猷 勉其祗植}}}}
|rowspan=2|그 아름다움이 후세에 미치도록 그 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며
|-
|이궐가유 면기지식
|-
| {{더 크게|{{lang|zh|省躬譏誡 寵增抗極}}}}
|rowspan=2|몸을 살펴 나무라고 탓할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총애가 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
|성궁기계 총증항극
|-
| {{더 크게|{{lang|zh|殆辱近恥 林皋幸即}}}}
|rowspan=2| 위태로운 치욕은 부끄러운 일에 의한 것이니 수풀과 언덕에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
|태욕근치 임고행즉
|-
| {{더 크게|{{lang|zh|兩疏見機 解組誰逼}}}}
|rowspan=2| 양소<ref>한나라의 소광과 소수</ref> 는 기회를 보아 관복을 벗으니 누가 핍박하였으랴
|-
|양소견기 해조수핍
|-
| {{더 크게|{{lang|zh|索居閒處 沈默寂寥}}}}
|rowspan=2|한가한 곳을 찾아 살며 고요히 살며 침묵한 채
|-
|색거한처 침묵적요
|-
| {{더 크게|{{lang|zh|求古尋論 散慮逍遙}}}}
|rowspan=2|옛일을 두고 논장을 찾고 염려를 잊고 소요하니
|-
|구고심론 산려소요
|-
| {{더 크게|{{lang|zh|欣奏累遣 慼謝歡招}}}}
|rowspan=2|기쁜 일은 알리고 누추한 것은 보내며 슬픈 일은 마다하고 기쁜 일을 환영하리
|-
|흔주루견 척사환초
|-
| {{더 크게|{{lang|zh|渠荷的歷 園莽抽條}}}}
|rowspan=2|도랑에 핀 연꽃의 이력, 동산에 자란 풀 가지
|-
|거하적력 원망추조
|-
| {{더 크게|{{lang|zh|枇杷晚翠 梧桐早凋}}}}
|rowspan=2|비파나무 만추에도 푸르른데 오동나무 일찍이 시들었고
|-
|비파만취 오동조조
|-
| {{더 크게|{{lang|zh|陳根委翳 落葉飄颻}}}}
|rowspan=2|고목 뿌리 덮은 낙엽 바람에 날리니
|-
|진근위예 낙엽표요
|-
| {{더 크게|{{lang|zh|遊鵾獨運 凌摩絳霄}}}}
|rowspan=2|댓닭 한 마리 홀로 해엄치며 노을진 하늘을 업수이 여기고
|-
|유곤독운 능마강소
|-
| {{더 크게|{{lang|zh|耽讀翫市 寓目囊箱}}}}
|rowspan=2|(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한 번 보면 상자에 넣은 듯 (잊지 않았다지)
|-
|탐독완시 우목낭상
|-
| {{더 크게|{{lang|zh|易輶攸畏 屬耳垣墻}}}}
|rowspan=2|가벼이 경솔하게 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담장에도 귀가 있다 하기 때문
|-
|역유유외 속이원장
|-
| {{더 크게|{{lang|zh|具膳飡飯 適口充腸}}}}
|rowspan=2|반찬이나 저녁밥이야 먹고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
|-
|구선손반 적구충장
|-
| {{더 크게|{{lang|zh|飽飫烹宰 飢厭糟糠}}}}
|rowspan=2|배부르면 재상의 요리도 물리게 되고 배 고프면 겨 지게미로도 족하니
|-
|포어팽재 기염조강
|-
| {{더 크게|{{lang|zh|親戚故舊 老少異糧}}}}
|rowspan=2|친척이나 옛친구 노소에 따라 음식도 다를 밖에
|-
|친척고구 노소이량
|-
| {{더 크게|{{lang|zh|妾御績紡 侍巾帷房}}}}
|rowspan=2|아내가 길쌈하여 어른 방에 수건을 받들고
|-
|첩어적방 시건유방
|-
| {{더 크게|{{lang|zh|紈扇圓潔 銀燭煒煌}}}}
|rowspan=2|흰 비단으로 지은 부채 둥글고 깨끗하며 은촛대 불빛 밝으니
|-
|환선원결 은촉위황
|-
| {{더 크게|{{lang|zh|晝眠夕寐 藍笋象床}}}}
|rowspan=2|낮에 자고 저녁에 또 자려 푸른 대로 코끼리 침상을 만들지
|-
|주면석매 남순상상
|-
| {{더 크게|{{lang|zh|絃歌酒讌 接盃舉觴}}}}
|rowspan=2|거문거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주연을 열고 술잔을 들어 부딛히고
|-
|현가주연 접배거상
|-
| {{더 크게|{{lang|zh|矯手頓足 悅豫且康}}}}
|rowspan=2|손을 들고 발을 움직여 춤추며 이처럼 평안함을 즐거워하세
|-
|교수돈족 열예차강
|-
| {{더 크게|{{lang|zh|嫡後嗣續 祭祀烝嘗}}}}
|rowspan=2| 맏이는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어
|-
|적후사속 제사증상
|-
| {{더 크게|{{lang|zh|稽顙再拜 悚懼恐惶}}}}
|rowspan=2|이마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
|-
|계상재배 송구공황
|-
| {{더 크게|{{lang|zh|牋牒簡要 顧答審詳}}}}
|rowspan=2|편지는 간략히 요지만 쓰고 답신은 자세히 살펴서 하라.
|-
|전첩간요 고답심상
|-
| {{더 크게|{{lang|zh|骸垢想浴 執熱願涼}}}}
|rowspan=2|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생각이 나고 열이 차면 서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
|-
|해구상욕 집열원량
|-
| {{더 크게|{{lang|zh|驢騾犢特 駭躍超驤}}}}
|rowspan=2|노새며 망아지, 숫송아지가 놀라뛰며 내달리듯
|-
|여라독특 해약초양
|-
| {{더 크게|{{lang|zh|誅斬賊盜 捕獲叛亡}}}}
|rowspan=2|적도는 잡아 죽이고 배역자는 잡아들이리
|-
|주참적도 포획반망
|-
| {{더 크게|{{lang|zh|布射遼丸 嵇琴阮嘯}}}}
|rowspan=2|여포는 활 잘 쏘았고 의료는 돌 잘 던졌으며 혜강은 금을 잘켰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지
|-
|포사료환 혜금완소
|-
| {{더 크게|{{lang|zh|恬筆倫紙 鈞巧任釣}}}}
|rowspan=2|붓을 만든 건 몽념 종이를 만든 건 채륜, 마륜의 교묘한 솜씨<ref>마륜은 지남차를 만들었다고 한다.</ref> 임공자의 낚시대<ref>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ref>
|-
|염필윤지 균교임조
|-
| {{더 크게|{{lang|zh|釋紛利俗 竝皆佳妙}}}}
|rowspan=2|이러한 재주를 세상에 푸니 모두다 뛰어나고 신기하였다.
|-
|석분리속 병개가묘
|-
| {{더 크게|{{lang|zh|毛施淑姿 工顰妍笑}}}}
|rowspan=2|오나라 모타와 월나라 서시의 자태는 찡그린 모습도 아름다워라
|-
|모시숙자 공빈연소
|-
| {{더 크게|{{lang|zh|年矢每催 曦暉朗耀}}}}
|rowspan=2| 세월은 살같이 언제나 제촉하나 햇빛 달빛은 밝게 빛나
|-
|연시매최 희휘낭요
|-
| {{더 크게|{{lang|zh|璇璣懸斡 晦魄環照}}}}
|rowspan=2|천문을 보는 기계 매달려 돌듯 그믐이 지나 다시 보름이 되니
|-
|선기현알 회백환조
|-
| {{더 크게|{{lang|zh|指薪修祜 永綏吉劭}}}}
|rowspan=2|손가락에 섶불을 단 듯 수양에 전념하면 영원토록 평안하고 길하리라.
|-
|지신수우 영수길소
|-
| {{더 크게|{{lang|zh|矩步引領 俯仰廊廟}}}}
|rowspan=2|반듯하게 걸으며 옷길을 끌고 사당에 엎드려 예의를 다하고
|-
|구보인령 부앙낭묘
|-
| {{더 크게|{{lang|zh|束帶矜莊 徘徊瞻眺}}}}
|rowspan=2|허리띠를 단단히 묶어 긍지를 갖고 여러 곳을 두루 살펴라
|-
|속대긍장 배회첨조
|-
| {{더 크게|{{lang|zh|孤陋寡聞 愚蒙等誚}}}}
|rowspan=2|(이런 글을 쓴 나는) 고루하고 들은 것 없어 어리석단 꾸짖음을 면치 못하리
|-
|고루과문 우몽등초
|-
| {{더 크게|{{lang|zh|謂語助者 焉哉乎也}}}}
|rowspan=2|어조사에는 언재호야가 있다.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역주 ==
<references/>
= 라이선스 =
{{번역 저작권
|원문 = {{PD-old-100}}
|번역 = {{PD-자작}}
}}
[[분류:한시]]
9hyiy1mxkop94dy9qoy62ov661rd5of
392626
392619
2025-06-26T13:51:18Z
2406:5900:1001:2070:A26F:EE70:E517:F1C
392626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제목 = 천자문
|저자 = [[저자:주흥사|주흥사]]
|역자 = [[사용자:jjw|jjw]]
|부제 =
|이전 =
|다음 =
|설명 =
{{위키백과|천자문}}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2010년 8월 25일 석봉 한호의 필체를 목각한 《천자문》이 대한민국 보물 제1659호로 지정되었다.
}}
{|class="wikitable"
!style="width:200px; background:#eeffee;"| 원문
!background:#eeeeff;"| 번역
|-
| {{더 크게|{{lang|zh|天地玄黃 宇宙洪荒}}}}
|rowspan=2|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크다.
|-
|천지현황 우주홍황<ref>독음은 [http://handic.daum.net/dicha/view_top.do 다음한자사전] 을 따랐다. 두음법칙에 의해 독음이 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리(李)는 낱말의 앞에 올경우 이로 적었다.</ref>
|-
| {{더 크게|{{lang|zh|日月盈昃 辰宿列張}}}}
|rowspan=2|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은 자리를 잡아 늘어서 있다.
|-
|일월영측 진수열장
|-
| {{더 크게|{{lang|zh|寒來暑往 秋收冬藏}}}}
|rowspan=2|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니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갈무리하여 둔다.
|-
| 한래서왕 추수동장
|-
| {{더 크게|{{lang|zh|閏餘成歲 律呂調陽}}}}
|rowspan=2| 윤달을 더하여 한해를 이루고 가락을 맞추어 양기를 돋운다.
|-
| 윤여성세 율려조양
|-
| {{더 크게|{{lang|zh|雲騰致雨 露結為霜}}}}
|rowspan=2| 구름은 올라가 비가 되고 이슬은 얼어 서리가 된다.
|-
| 운등치우 노결위상
|-
| {{더 크게|{{lang|zh|金生麗水 玉出崑岡}}}}
|rowspan=2| 금은 여수에서 나고 옥은 곤강에서 난다.
|참고로 崑은 昆과 같다.
|-
| 금생여수 옥출곤강
|-
| {{더 크게|{{lang|zh|劍號巨闕 珠稱夜光}}}}
|rowspan=2| 검은 일컬어 거궐이요 구슬은 일컬어 야광이라.
|-
| 검호거궐 주칭야광
|-
| {{더 크게|{{lang|zh|果珍李柰 菜重芥薑}}}}
|rowspan=2| 과일 가운데 진미는 오얏과 능금이요 채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겨자와 생강이라.
|-
| 과진이내 채중개강
|-
| {{더 크게|{{lang|zh|海鹹河淡 鱗潛羽翔}}}}
|rowspan=2| 바다는 짜고 강물은 싱거우며 비늘 달린 물고기는 물에 잠기고 깃 달린 새는 높이 난다.
|-
| 해함하담 인잠우상
|-
| {{더 크게|{{lang|zh|龍師火帝 鳥官人皇}}}}
|rowspan=2| 복희씨<ref>복희는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였다고 하며 용사는 복희의 별칭이다.</ref>, 신농씨<ref>화제 또는 염제(炎帝)는 신농씨의 별칭이다</ref>, 소호<ref>소호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ref> 와 황제헌원<ref>황제는 《황제내경》과 같은 의술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어 인황이란 별칭이 붙었다.</ref>
|-
| 용사화제 조관인황
|-
| {{더 크게|{{lang|zh|始制文字 乃服衣裳}}}}
|rowspan=2| 문자를 처음 짓고 옷을 지어 입혔지.
|-
| 시제문자 내복의상
|-
| {{더 크게|{{lang|zh|推位讓國 有虞陶唐}}}}
|rowspan=2| 자리를 미루며 나라를 물려주니 유우<ref>순임금의 이름이다.</ref> 와 도당<ref>우 임금의 이름이다.</ref> 이라.
|-
| 추위양국 유우도당
|-
| {{더 크게|{{lang|zh|弔民伐罪 周發殷湯}}}}
|rowspan=2| 백성을 돕고 죄를 벌하니 주나라 무왕<ref>발(發)은 주 무왕의 이름</ref> 과 은나라 탕왕이라.
|-
| 조민벌죄 주발은탕
|-
| {{더 크게|{{lang|zh|坐朝問道 垂拱平章}}}}
|rowspan=2| 조정에 앉아 도를 묻기에 두 손으로 문장을 올리니,
|-
| 좌조문도 수공평장
|-
| {{더 크게|{{lang|zh|愛育黎首 臣伏戎羌}}}}
|rowspan=2| 백성을 아끼고<ref>여수(黎首)는 검은 머리, 즉 관직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ref> 오랑캐가 신하로 복종하게 하소서.
|-
| 애육여수 신복융강
|-
| {{더 크게|{{lang|zh|遐邇壹體 率賓歸王}}}}
|rowspan=2| 멀고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어 임금께 이끌려 따를 것입니다.
|-
| 하이일체 솔빈귀왕
|-
| {{더 크게|{{lang|zh|鳴鳳在樹 白駒食場}}}}
|rowspan=2|봉황은 나무에 내려 울고 흰망아지 풀을 뜯으니<ref>성군이 나면 봉황이 찾아와 울고 흰망아지가 나타난다는 전설에 빗대어 태평성대를 말함</ref>
|-
| 명봉재수 백구식장
|-
| {{더 크게|{{lang|zh|化被草木 賴及萬方}}}}
|rowspan=2| 덕화가 초목까지 미치고 만방에 퍼지리.
|-
| 화피초목 뇌급만방
|-
| {{더 크게|{{lang|zh|蓋此身髮 四大五常}}}}
|rowspan=2| 몸에 털이 덮힌 것과 같이 4대5상을 지키고<ref>4대는 하늘, 땅, 도(道), 임금. 5상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ref>
|-
| 개차신발 사대오상
|-
| {{더 크게|{{lang|zh|恭惟鞠養 豈敢毁傷}}}}
|rowspan=2| 길러준 은혜를 공경하여 감히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
| 공유국양 기감훼상
|-
| {{더 크게|{{lang|zh|女慕貞烈 男效才良}}}}
|rowspan=2|여자는 정조를 따르고 남자는 재량을 본받아
|-
| 여모정렬 남효재량
|-
| {{더 크게|{{lang|zh|知過必改 得能莫忘}}}}
|rowspan=2|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고 배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
| 지과필개 득능막망
|-
| {{더 크게|{{lang|zh|罔談彼短 靡恃己長}}}}
|rowspan=2| 다른이의 단점을 입에 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마라
|-
| 망담피단 미시기장
|-
| {{더 크게|{{lang|zh|信使可覆 器欲難量}}}}
|rowspan=2| 믿었던 장점이 뒤집힐 수 있고 다른 사람 기량은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
| 신사가복 기욕난량
|-
| {{더 크게|{{lang|zh|墨悲絲染 詩讚羔羊}}}}
|rowspan=2| 이 때문에 묵자는 실이 물드는 것을 탄식하였고<ref>묵자 소염론</ref> 시경은 고양을 찬송하였다.<ref>시경 고양편</ref>
|-
| 묵비사염 시찬고양
|-
| {{더 크게|{{lang|zh|景行維賢 克念作聖}}}}
|rowspan=2| 바르고 어진 것을 보고 행하여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
| 경행유현 극념작성
|-
| {{더 크게|{{lang|zh|德建名立 形端表正}}}}
|rowspan=2|덕을 쌓아 이름을 세우면 바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
|-
| 덕건명립 형단표정
|-
| {{더 크게|{{lang|zh|空谷傳聲 虛堂習聽}}}}
|rowspan=2| 빈 골짜기에 울리는 소리처럼 또한 빈집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공곡전성 허당습청
|-
| {{더 크게|{{lang|zh|禍因惡積 福緣善慶}}}}
|rowspan=2| 화는 악행을 쌓은 것이 원인이요 복은 선행의 결과이다.
|-
| 화인악적 복연선경
|-
| {{더 크게|{{lang|zh|尺璧非寶 寸陰是競}}}}
|rowspan=2| 커다란 옥 구슬이<ref>여기서 벽은 완벽의 유래가 된 옥구슬을 말한다. 척(尺)과 촌(寸)은 길이의 단위이나 크고 작은 것으로 의역하였다.</ref> 보배가 아니니 작은 시간을 경주하여야 하여라.
|-
| 척벽비보 촌음시경
|-
| {{더 크게|{{lang|zh|資父事君 曰嚴與敬}}}}
|rowspan=2|부모를 모시고 임금을 섬기는 것은 엄정하면서도 정성스러워야 하는 것이니
|-
| 자부사군 왈엄여경
|-
| {{더 크게|{{lang|zh|孝當竭力 忠則盡命}}}}
|rowspan=2| 효도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야 하고 충성은 목숨도 바쳐야 하는 것이다.
|-
| 효당갈력 충즉진명
|-
| {{더 크게|{{lang|zh|臨深履薄 夙興溫凊}}}}
|rowspan=2| 깊은 곳을 만나도 살얼음 지나듯 조심하고 일찍 일어나 덥고 차가운지 살피는 것(이 효도하는 마음가짐이며)
|-
| 임심리박 숙흥온정
|-
| {{더 크게|{{lang|zh|似蘭斯馨 如松之盛}}}}
|rowspan=2| 난초와 같이 향기롭고 소나무처럼 굳센 것(이 충성하는 마음가짐이다.)
|-
| 사란사형 여송지성
|-
| {{더 크게|{{lang|zh|川流不息 淵澄取映}}}}
|rowspan=2| 냇물을 쉬지 않고 흐르고 연못은 맑아 그림자를 비추듯
|-
| 천류불식 연징취영
|-
| {{더 크게|{{lang|zh|容止若思 言辭安定}}}}
|rowspan=2| 얼굴은 생각과 같게 하고 말은 안정되게 하여야 한다.
|-
| 용지약사 언사안정
|-
| {{더 크게|{{lang|zh|篤初誠美 愼終宜令}}}}
|rowspan=2| 일을 시작할 때에 정성을 다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신중히 하면
|-
| 독초성미 신종의령
|-
| {{더 크게|{{lang|zh|榮業所基 籍甚無竟}}}}
|rowspan=2| 이를 바탕으로 이루는 업적이 끝없으리라.
|-
| 영업소기 적심무경
|-
| {{더 크게|{{lang|zh|學優登仕 攝職從政}}}}
|rowspan=2| 학문이 뛰어나 벼슬에 올라 직무를 맞고 정사를 돌볼 때에
|-
| 학우등사 섭직종정
|-
| {{더 크게|{{lang|zh|存以甘棠 去而益詠}}}}
|rowspan=2| 벼슬을 맡아 팥배나무 밑에서 정사를 본 소공과 같이 청렴하면 물러날 때 칭송을 들을 것이다.<ref>감당(甘棠)은 팥배나무이다. 주나라 소공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공명 정대하며 청렴하였다고 한다. 소공이 죽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감당시를 읇었다. 시경 국풍편 감당</ref>
|-
| 존이감당 거이익영
|-
| {{더 크게|{{lang|zh|樂殊貴賤 禮別尊卑}}}}
|rowspan=2| 즐거움에 귀천이 없으나 예절에는 존비가 있으니
|-
| 악수귀천 예별존비
|-
| {{더 크게|{{lang|zh|上和下睦 夫唱婦隨}}}}
|rowspan=2| 상하가 화목하고 부부가 원만하며<ref>사자성어 부창부수의 출전이다.</ref>
|-
| 상화하목 부창부수
|-
| {{더 크게|{{lang|zh|外受傅訓 入奉母儀}}}}
|rowspan=2| 밖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안에서는 어머니의 뜻을 받을며
|-
| 외수부훈 입봉모의
|-
| {{더 크게|{{lang|zh|諸姑伯叔 猶子比兒}}}}
|rowspan=2| 모든 고모 삼촌의 아이를 내 아이라 여기고
|-
| 제고백숙 유자비아
|-
| {{더 크게|{{lang|zh|孔懷兄弟 同氣連枝}}}}
|rowspan=2| 형제는 서로 품어주니 같은 기운에서 나온 가지기 때문이고
|-
| 공회형제 동기연지
|-
| {{더 크게|{{lang|zh|交友投分 切磨箴規}}}}
|rowspan=2| 벗을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고 규범을 염두에 두어 절제하여
|-
| 교우투분 절마잠규
|-
| {{더 크게|{{lang|zh|仁慈隱惻 造次弗離}}}}
|rowspan=2| 어질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여 떠나지 말아야 하고
|-
| 인자은측 조차불리
|-
| {{더 크게|{{lang|zh|節義廉退 顛沛匪虧}}}}
|rowspan=2| 절의를 지키고 청렴히 물러나 이러한 (예의가) 이지러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
| 절의염퇴 전패비휴
|-
| {{더 크게|{{lang|zh|性靜情逸 心動神疲}}}}
|rowspan=2| 성정이 고요하면 심정이 편안하고 마음이 동요하면 정신이 피로하니
|-
| 성정정일 심동신피
|-
| {{더 크게|{{lang|zh|守眞志滿 逐物意移}}}}
|rowspan=2| 참 뜻이 가득하도록 지키고 물욕을 멀리하라.
|-
| 수진지만 축물의이
|-
| {{더 크게|{{lang|zh|堅持雅操 好爵自縻}}}}
|rowspan=2| 우아하고 절개가 있으면 관작은 스스로 오게 되어 있다.
|-
| 견지아조 호작자미
|-
| {{더 크게|{{lang|zh|都邑華夏 東西二京}}}}
|rowspan=2| 화하<ref>중국의 별칭</ref> 의 도읍은 동서 2경이라
|-
|도읍화하 동서이경
|-
| {{더 크게|{{lang|zh|背邙面洛 浮渭據涇}}}}
|rowspan=2|낙양은 북망산을 등지고 낙수를 마주하고 장안에는 위수와 경수가 흐르는 구나.
|-
|배망면락 부위거경
|-
| {{더 크게|{{lang|zh|宮殿盤鬱 樓觀飛驚}}}}
|rowspan=2|궁전은 울창한 숲에 쌓였고 누각에 올라 놀라운 경치를 보며
|-
|궁전반울 누관비경
|-
| {{더 크게|{{lang|zh|圖寫禽獸 畵綵仙靈}}}}
|rowspan=2|날짐승 들짐승을 그리니 신선 사는 그림이로구나.
|-
|도사금수 화채선령
|-
| {{더 크게|{{lang|zh|丙舍傍啟 甲帳對楹}}}}
|rowspan=2|병사<ref>궁전 내에 있는 건물들을 뜻하는 낱말</ref> 옆을 열어 갑장<ref>동방삭이 만들었다는 장막</ref> 이 기둥을 마주하게 하고
|-
| 병사방계 갑장대영
|-
| {{더 크게|{{lang|zh|肆筵設席 鼓瑟吹笙}}}}
|rowspan=2|자리를 마련해 연회를 열고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부니
|-
|사연설석 고슬취생
|-
| {{더 크게|{{lang|zh|升階納陛 弁轉疑星}}}}
|rowspan=2| 계단을 올라 납폐하는 신료들은 별인듯 번쩍이고
|-
|승계납폐 변전의성
|-
| {{더 크게|{{lang|zh|右通廣內 左達承明}}}}
|rowspan=2| 오른쪽은 광내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에 닿아<ref>광내와 승명은 모두 고대 중국 궁내의 관직처</ref>
|-
|우통광내 좌달승명
|-
| {{더 크게|{{lang|zh|既集墳典 亦聚群英}}}}
|rowspan=2| 이미 분전<ref>삼황오제 시절의 법률과 의전을 뜻한다.</ref> 을 모은 곳에 영웅들이 모였도다.
|-
|기집분전 역취군영
|-
| {{더 크게|{{lang|zh|杜稾鍾隸 漆書壁經}}}}
|rowspan=2| 두고<ref>초서를 처음 썼다고 전해진다.</ref> 와 종례<ref>예서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ref> 의 글 칠서<ref>대나무에 칠을 한 뒤 쓴 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사용하였다.</ref> 와 벽경<ref>공자에게서 전해 왔다는 육경</ref>
|-
|두고종례 칠서벽경
|-
| {{더 크게|{{lang|zh|府羅將相 路俠槐卿}}}}
|rowspan=2|각 부에 장군과 재상이 있어 고관이 즐비하여 길이 좁다.
|-
|부라장상 노협괴경
|-
| {{더 크게|{{lang|zh|戶封八縣 家給千兵}}}}
|rowspan=2|여덟 고을을 봉지로 주고 천명의 군사로 지키게 하니<ref>한고조의 논공행상을 가리킨다.</ref>
|-
|호봉팔현 가급천병
|-
| {{더 크게|{{lang|zh|高冠陪輦 驅轂振纓}}}}
|rowspan=2|높은 관을 쓰고 수레에올라 바퀴를 구르며 갓끈을 떨치는 구나.
|-
|고관배련 구곡진영
|-
| {{더 크게|{{lang|zh|世祿侈富 車駕肥輕}}}}
|rowspan=2| 대대로 받는 녹으로 부귀를 누리며 수레는 (제물로) 무겁고 가마는 가벼우니
|-
|세록치부 거가비경
|-
| {{더 크게|{{lang|zh|策功茂實 勒碑刻銘}}}}
|rowspan=2|끝없이 쌓은 공적 비석에 세기는 구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 {{더 크게|{{lang|zh|磻溪伊尹 佐時阿衡}}}}
|rowspan=2| 반계의 (태공망)과 (탕왕을 도운) 이윤은 때가 도와 아형의 벼슬에 올랐고
|-
|반계이윤 좌시아형
|-
| {{더 크게|{{lang|zh|奄宅曲阜 微旦孰營}}}}
|rowspan=2| 곡부에 궁전을 지은 것은 주공 단<ref>주문왕의 아우, 노나라의 시조</ref> 이 아니면 누가할 것인가
|-
|엄택곡부 미단숙영
|-
| {{더 크게|{{lang|zh|桓公匡合 濟弱扶傾}}}}
|rowspan=2|환공은 제후를 널리 합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구했지
|-
|환공광합 제약부경
|-
| {{더 크게|{{lang|zh|綺迴漢惠 說感武丁}}}}
|rowspan=2|기리계<ref>한고조가 죽고 여희가 여씨 일족에서 황제를 즉위시키고자 하였으나 장량은 기리계의 도움으로 혜제가 즉위하도록 하였다.</ref> 가 한 혜제를 회복시키고 부열이 무정을 감동시키듯.<ref>은 나라 무정이 부열에게 감동하여 선정을 배풀었다는 고사</ref>
|-
|기회한혜 설감무정
|-
| {{더 크게|{{lang|zh|俊乂密勿 多士寔寧}}}}
|rowspan=2|준걸과 예사가 모이니 참으로 평안하구나.
|-
|준예밀물 다사식녕
|-
| {{더 크게|{{lang|zh|晉楚更霸 趙魏困橫}}}}
|rowspan=2|진과 초가 다시 패자가 되고 조와위는 연횡으로 곤궁에 빠져
|-
|진초갱패 조위곤횡
|-
| {{더 크게|{{lang|zh|假途滅虢 踐土會盟}}}}
|rowspan=2|진은 위계를 써 괵을 멸하고 천토에서 회맹하였고
|-
|가도멸괵 천토회맹
|-
| {{더 크게|{{lang|zh|何遵約法 韓弊煩刑}}}}
|rowspan=2|어찌 (한고조의) 약법을 두고 한비자의 낡고 번잡한 형벌을 따를 것인가
|-
|하준약법 한폐번형
|-
| {{더 크게|{{lang|zh|起翦頗牧 用軍最精}}}}
|rowspan=2|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은 군사를 가장 잘 다루었고
|-
|기전파목 용군최정
|-
| {{더 크게|{{lang|zh|宣威沙漠 馳譽丹青}}}}
|rowspan=2|위엄을 사막에까지 떨치니 단청에 넣어 기리는 구나.
|-
|선위사막 치예단청
|-
| {{더 크게|{{lang|zh|九州禹跡 百郡秦幷}}}}
|rowspan=2| 하우씨가 구주를 두어 백군이 진에 병합되고
|-
|구주우적 백군진병
|-
| {{더 크게|{{lang|zh|嶽宗恆岱 禪主云亭}}}}
|rowspan=2| 산중 으뜸은 항산과 태산이라 임금을 정하는 운정이 그곳에 있으며
|-
|악종항대 선주운정
|-
| {{더 크게|{{lang|zh|雁門紫塞 雞田赤城}}}}
|rowspan=2| 안문관과 만리장성, 계전과 적성
|-
|안문자새 계전적성
|-
| {{더 크게|{{lang|zh|昆池碣石 鉅野洞庭}}}}
|rowspan=2| 운남의 곤지와 부평의 갈석, 거야의 넓은 들판과 동정의 큰 호수
|-
|곤지갈석 거야동정
|-
| {{더 크게|{{lang|zh|曠遠緜邈 巖岫杳冥}}}}
|rowspan=2|아득히 멀리 줄지어 있으니 아득하고 묘연하구나.
|-
|광원면막 암수묘명
|-
| {{더 크게|{{lang|zh|治本於農 務茲稼穡}}}}
|rowspan=2| 다스림의 근본은 농업이니 때를 맞추어 심고 거두어야 하리
|-
|치본어농 무자가색
|-
| {{더 크게|{{lang|zh|俶載南畝 我藝黍稷}}}}
|rowspan=2|이제 남쪽 이랑을 일궈 나는 기장과 피를 가꾸어
|-
|숙재남묘 아예서직
|-
| {{더 크게|{{lang|zh|稅熟貢新 勸賞黜陟}}}}
|rowspan=2| 익으면 세를 내고 햇곡식으로 제사를 지내 상을 권하고 (못된 자는) 내쫓으리라.
|-
|세숙공신 권상출척
|-
| {{더 크게|{{lang|zh|孟軻敦素 史魚秉直}}}}
|rowspan=2|맹자는 도타운 사람이었고 사어는 강직했으니
|-
|맹가돈소 사어병직
|-
| {{더 크게|{{lang|zh|庶幾中庸 勞謙謹敕}}}}
|rowspan=2|중용을 으뜸으로 삼고 겸손에 힘쓰고 경계해야지
|-
|서기중용 노겸근칙
|-
| {{더 크게|{{lang|zh|聆音察理 鏡貌辨色}}}}
|rowspan=2|들리는 소리 자세히 살피고 거울에 비치는 모양 꼼꼼히 구별하고
|-
|영음찰리 감모변색
|-
| {{더 크게|{{lang|zh|貽厥嘉猷 勉其祗植}}}}
|rowspan=2|그 아름다움이 후세에 미치도록 그 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며
|-
|이궐가유 면기지식
|-
| {{더 크게|{{lang|zh|省躬譏誡 寵增抗極}}}}
|rowspan=2|몸을 살펴 나무라고 탓할 일은 없는지 반성하고 총애가 늘면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
|성궁기계 총증항극
|-
| {{더 크게|{{lang|zh|殆辱近恥 林皋幸即}}}}
|rowspan=2| 위태로운 치욕은 부끄러운 일에 의한 것이니 수풀과 언덕에 있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
|-
|태욕근치 임고행즉
|-
| {{더 크게|{{lang|zh|兩疏見機 解組誰逼}}}}
|rowspan=2| 양소<ref>한나라의 소광과 소수</ref> 는 기회를 보아 관복을 벗으니 누가 핍박하였으랴
|-
|양소견기 해조수핍
|-
| {{더 크게|{{lang|zh|索居閒處 沈默寂寥}}}}
|rowspan=2|한가한 곳을 찾아 살며 고요히 살며 침묵한 채
|-
|색거한처 침묵적요
|-
| {{더 크게|{{lang|zh|求古尋論 散慮逍遙}}}}
|rowspan=2|옛일을 두고 논장을 찾고 염려를 잊고 소요하니
|-
|구고심론 산려소요
|-
| {{더 크게|{{lang|zh|欣奏累遣 慼謝歡招}}}}
|rowspan=2|기쁜 일은 알리고 누추한 것은 보내며 슬픈 일은 마다하고 기쁜 일을 환영하리
|-
|흔주루견 척사환초
|-
| {{더 크게|{{lang|zh|渠荷的歷 園莽抽條}}}}
|rowspan=2|도랑에 핀 연꽃의 이력, 동산에 자란 풀 가지
|-
|거하적력 원망추조
|-
| {{더 크게|{{lang|zh|枇杷晚翠 梧桐早凋}}}}
|rowspan=2|비파나무 만추에도 푸르른데 오동나무 일찍이 시들었고
|-
|비파만취 오동조조
|-
| {{더 크게|{{lang|zh|陳根委翳 落葉飄颻}}}}
|rowspan=2|고목 뿌리 덮은 낙엽 바람에 날리니
|-
|진근위예 낙엽표요
|-
| {{더 크게|{{lang|zh|遊鵾獨運 凌摩絳霄}}}}
|rowspan=2|댓닭 한 마리 홀로 해엄치며 노을진 하늘을 업수이 여기고
|-
|유곤독운 능마강소
|-
| {{더 크게|{{lang|zh|耽讀翫市 寓目囊箱}}}}
|rowspan=2|(한나라 왕총은) 독서를 즐겨 한 번 보면 상자에 넣은 듯 (잊지 않았다지)
|-
|탐독완시 우목낭상
|-
| {{더 크게|{{lang|zh|易輶攸畏 屬耳垣墻}}}}
|rowspan=2|가벼이 경솔하게 구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담장에도 귀가 있다 하기 때문
|-
|역유유외 속이원장
|-
| {{더 크게|{{lang|zh|具膳飡飯 適口充腸}}}}
|rowspan=2|반찬이나 저녁밥이야 먹고 배를 채우면 그만인 것
|-
|구선손반 적구충장
|-
| {{더 크게|{{lang|zh|飽飫烹宰 飢厭糟糠}}}}
|rowspan=2|배부르면 재상의 요리도 물리게 되고 배 고프면 겨 지게미로도 족하니
|-
|포어팽재 기염조강
|-
| {{더 크게|{{lang|zh|親戚故舊 老少異糧}}}}
|rowspan=2|친척이나 옛친구 노소에 따라 음식도 다를 밖에
|-
|친척고구 노소이량
|-
| {{더 크게|{{lang|zh|妾御績紡 侍巾帷房}}}}
|rowspan=2|아내가 길쌈하여 어른 방에 수건을 받들고
|-
|첩어적방 시건유방
|-
| {{더 크게|{{lang|zh|紈扇圓潔 銀燭煒煌}}}}
|rowspan=2|흰 비단으로 지은 부채 둥글고 깨끗하며 은촛대 불빛 밝으니
|-
|환선원결 은촉위황
|-
| {{더 크게|{{lang|zh|晝眠夕寐 藍笋象床}}}}
|rowspan=2|낮에 자고 저녁에 또 자려 푸른 대로 코끼리 침상을 만들지
|-
|주면석매 남순상상
|-
| {{더 크게|{{lang|zh|絃歌酒讌 接盃舉觴}}}}
|rowspan=2|거문거를 뜯고 노래를 부르며 주연을 열고 술잔을 들어 부딛히고
|-
|현가주연 접배거상
|-
| {{더 크게|{{lang|zh|矯手頓足 悅豫且康}}}}
|rowspan=2|손을 들고 발을 움직여 춤추며 이처럼 평안함을 즐거워하세
|-
|교수돈족 열예차강
|-
| {{더 크게|{{lang|zh|嫡後嗣續 祭祀烝嘗}}}}
|rowspan=2| 맏이는 뒤를 이어 제사를 지내어
|-
|적후사속 제사증상
|-
| {{더 크게|{{lang|zh|稽顙再拜 悚懼恐惶}}}}
|rowspan=2|이마를 조아려 두 번 절하여 송구하고 두려운 마음을 보여야 한다.
|-
|계상재배 송구공황
|-
| {{더 크게|{{lang|zh|牋牒簡要 顧答審詳}}}}
|rowspan=2|편지는 간략히 요지만 쓰고 답신은 자세히 살펴서 하라.
|-
|전첩간요 고답심상
|-
| {{더 크게|{{lang|zh|骸垢想浴 執熱願涼}}}}
|rowspan=2|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생각이 나고 열이 차면 서늘하기를 원하게 되는 것
|-
|해구상욕 집열원량
|-
| {{더 크게|{{lang|zh|驢騾犢特 駭躍超驤}}}}
|rowspan=2|노새며 망아지, 숫송아지가 놀라뛰며 내달리듯
|-
|여라독특 해약초양
|-
| {{더 크게|{{lang|zh|誅斬賊盜 捕獲叛亡}}}}
|rowspan=2|적도는 잡아 죽이고 배역자는 잡아들이리
|-
|주참적도 포획반망
|-
| {{더 크게|{{lang|zh|布射遼丸 嵇琴阮嘯}}}}
|rowspan=2|여포는 활 잘 쏘았고 의료는 돌 잘 던졌으며 혜강은 금을 잘켰고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지
|-
|포사료환 혜금완소
|-
| {{더 크게|{{lang|zh|恬筆倫紙 鈞巧任釣}}}}
|rowspan=2|붓을 만든 건 몽념 종이를 만든 건 채륜, 마륜의 교묘한 솜씨<ref>마륜은 지남차를 만들었다고 한다.</ref> 임공자의 낚시대<ref>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ref>
|-
|염필윤지 균교임조
|-
| {{더 크게|{{lang|zh|釋紛利俗 竝皆佳妙}}}}
|rowspan=2|이러한 재주를 세상에 푸니 모두다 뛰어나고 신기하였다.
|-
|석분리속 병개가묘
|-
| {{더 크게|{{lang|zh|毛施淑姿 工顰妍笑}}}}
|rowspan=2|오나라 모타와 월나라 서시의 자태는 찡그린 모습도 아름다워라
|-
|모시숙자 공빈연소
|-
| {{더 크게|{{lang|zh|年矢每催 曦暉朗耀}}}}
|rowspan=2| 세월은 살같이 언제나 제촉하나 햇빛 달빛은 밝게 빛나
|-
|연시매최 희휘낭요
|-
| {{더 크게|{{lang|zh|璇璣懸斡 晦魄環照}}}}
|rowspan=2|천문을 보는 기계 매달려 돌듯 그믐이 지나 다시 보름이 되니
|-
|선기현알 회백환조
|-
| {{더 크게|{{lang|zh|指薪修祜 永綏吉劭}}}}
|rowspan=2|손가락에 섶불을 단 듯 수양에 전념하면 영원토록 평안하고 길하리라.
|-
|지신수우 영수길소
|-
| {{더 크게|{{lang|zh|矩步引領 俯仰廊廟}}}}
|rowspan=2|반듯하게 걸으며 옷길을 끌고 사당에 엎드려 예의를 다하고
|-
|구보인령 부앙낭묘
|-
| {{더 크게|{{lang|zh|束帶矜莊 徘徊瞻眺}}}}
|rowspan=2|허리띠를 단단히 묶어 긍지를 갖고 여러 곳을 두루 살펴라
|-
|속대긍장 배회첨조
|-
| {{더 크게|{{lang|zh|孤陋寡聞 愚蒙等誚}}}}
|rowspan=2|(이런 글을 쓴 나는) 고루하고 들은 것 없어 어리석단 꾸짖음을 면치 못하리
|-
|고루과문 우몽등초
|-
| {{더 크게|{{lang|zh|謂語助者 焉哉乎也}}}}
|rowspan=2|어조사에는 언재호야가 있다.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역주 ==
<references/>
= 라이선스 =
{{번역 저작권
|원문 = {{PD-old-100}}
|번역 = {{PD-자작}}
}}
[[분류:한시]]
hw57g2fy97bm6kcc91rd1kll4gyjuno
번역:주자어류/권17 대학혹문상 大學四或問上
114
86377
392658
392601
2025-06-27T08:07:56Z
Thomas Dongsob Ahn
16640
55
392658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ref>장식의 말. 17:45를 보라.</ref> 위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ref>군무를 말한다.</ref>·전곡(錢穀)<ref>재무를 말한다.</ref>·변두(籩豆)<ref>제사와 의전을 말한다.</ref>·유사(有司)<ref>그밖의 모든 실무를 말한다.</ref>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理會]<ref>'리회(理會)'의 번역에 관해서는 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ref>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위. 효행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된다.</ref>나 여묘(廬墓)<ref>부모의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사는 행위. 역시 효행의 일종으로 거론된다.</ref> 같은 것은,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듬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행위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곧 남을 위하는[爲人] 행위이다.<ref> 이 부분은 대학혹문의 특정 구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대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의 사무를 보기를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사무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갑병, 전곡, 변두, 유사의 업무조차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구나 하여 수행한다면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고 여묘살이하고 망가진 수레와 파리한 말을 타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하는[爲人] 것일 뿐이다.(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馬, 亦爲人耳.)'</ref>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기원(器遠)<ref>주희의 제자 조숙원(曹叔遠)</ref>의 질문: 자방(子房)<ref>한(漢)의 개국공신 장량(張良, BC 250-BC 186).</ref>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대답: 그는 애당초 오직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남헌이 말하기를(南軒云)'이 더 있다.</ref>“爲己者無所爲而然”.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다. 이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이 응당 해야 할 바라고 보아서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떤 다른 (목적)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也. 這是見得凡事皆吾所當爲, 非求人知, 不求人譽, 無倚無靠之謂否?)'가 더 있다.</ref>
'''행부(行夫)<ref>'행보'라고 읽어야 할지 '행부'라고 읽어야 할지 확실치 않다.</ref>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질문함.<ref>이 부분에 대해서는 17:45와 46, 47을 참조하라.</ref>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대답: 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有所爲者] 남을 위한다는 것[爲人]이다. 이에 관해서는 반드시 천하의 일이 기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본연의 직분[性分]의 범위 밖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니 (그렇게 알게 된) 뒤에 그것을 실천해야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될 뿐이다.<ref>대학혹문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활연대공하여, 천하를 봄에 그 어떤 사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고, 그 어떤 일도 자신의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다. 혹여 천한 필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여전히 자기 직분의 범위 안에 있다고 여긴다.(是以君子之心, 豁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去聲內也)'</ref>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의 경우,<ref>맹자 7B:33.</ref> 요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망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애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통곡한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망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니, 이는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기꺼이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더러 하라고 시키면 그제서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경우[爲人]가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내가(道夫) 말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ref>17:47을 참조하라.</ref>는 매우[已甚] 분명하니, (이러한 행위들이 위기가 되느냐 위인이 되느냐는) 사람들 각자의 소견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ref>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는 뜻이다.</ref>
又問: “割股一事如何?”
'''(내가) 다시 질문함: 할고(割股)는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대답: 할고(割股)는 물론 옳지 않지만, 만약 성심(誠心)으로 한 일이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면 역시 (옳은 쪽으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나의 말): 요즘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재질문: "요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들 자신의 (할고 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자인합니다<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곡절(을 살펴보면) 역시 매우 난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윽고, ...(再問: 如今都不問如何, 都<不只>自認自家不是, 然其曲折亦甚難處. 久之,)'가 더 있다.</ref>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사정을) 자세히 물으시고 한동안 경악하셨다. 이내 안색을 바로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사람) 자신의 계산이 지나쳤던[過計] 것일 뿐이다. 설사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역시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의 일(에 대처하는 자세로는) 오직 정직함[直] 뿐이다. (그 사람은) 어디 한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행부(行夫)의 말: 그래도 (체포될 경우) 옥에 갇혀 돈을 써야 하니[著]<ref>'著'은 종종 '須著'의 준말로 쓰인다. '~해야 한다'의 의미이다. 17:38의 용례를 참조하라.</ref>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대답: 세상에 어떻게[那] 조금도 젖지 않고[霑濕]<ref>'점유(沾濡)'라고도 쓴다.</ref> 면할 수[解]<ref>'解'는 영어에서의 can과 같다.</ref> 있겠는가! 앞서 말한 경우 같으면, (그 사람은)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했더라면 그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하고서 곧 그렇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어는 것처럼[滴水滴凍]<ref>'적수성동(滴水成凍)'의 형태로도 사용한다. 확고부동함, 과감함, 엄정함을 의미하며, 확실하게 하나하나 사안을 격파해가는 기상을 형용하기도 한다. 주자어류사휘연구 p.255 참조.</ref> 해나가서 뒷날의 여러 사건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f>본 조목의 후반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일역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짐작한다. 송회요집고등을 보면 당시 의도적인 할고를 통해 효자로 인정받아 세금과 요역을 면제받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급 관청에서는 할고행위가 보고되면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자행한 것인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고, 조사 결과 불순한 할고라고 판단되면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사건의 당사자는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할고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자신이 위선자로 지목되어 관청의 조사를 받게 될까 두려워 할고하지 않았고, 그 결과 (어쩌면 할고를 통해 병이 나을 수도 있었을) 부모가 사망한 것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질문: ‘극명덕(克明德)’<ref>대학 전 1장.</ref>에 대하여 ‘극(克)은 능(能)이다.’<ref>해당부분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ref>고 하였는데, 《대학혹문》 에서는 도리어 ‘이겨내려는[克] 노력을 다할 수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能'자가 없고 '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라고 쓰고 있다.</ref>고 풀이하여 다시‘이겨내어 다스리다[克治]’의 ‘극(克)’처럼 보이는데, 어째서입니까?<ref>극(克)은 능(能)이나 승(勝)으로 훈한다. 대학장구에서는 능으로 훈했는데 혹문에서는 승으로 훈했으니 이상하다는 질문이다.</ref>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ref>여유량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於'를 '如'로 적고 있다.</ref>‘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대답: 이 ‘극(克)’ 자는 비록 ‘능(能)’ 자로 훈(訓)하지만, 그래도 ‘극(克)’ 자가 ‘능(能)’ 자보다 무겁다. ‘능(能)’ 자는 힘이 없고 ‘극(克)’ 자는 힘이 있다. 곧 다른 사람은 능하지 못한데 문왕(文王)만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단지 ‘능명덕(能明德)’이라고만 썼으면 말의 뜻이 모두 약해졌을 것이다. 무릇 글자 중에는 훈(訓)과 뜻[義]은 같지만 음향[聲響]이 완전히[頓] 달라서 힘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극(克)’과 ‘능(能)’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능히 삼택의 마음을 안다[克宅厥心]’<ref>상서 주서 입정(立政)편 제 12장. 본래 '惟克厥宅心'이어야 하는데 본 조목에서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택(宅)'은 지위이다. 입정편에서 세 가지 큰 지위에 거한 자를 '삼택' 혹은 '삼유택(三有宅)'이라고 부른다. '惟克厥宅心'은 문왕(文王)이 이 삼택의 마음을 능히 잘 알았다는 뜻이다.</ref>, ‘능히 큰 덕을 밝힌다[克明俊德]’<ref>상서 우서 요전 제 2장. 대학 전 1장에서도 인용하고 있다.</ref> 등과 같은 것들에서 (이 차이를) 볼 수 있다.<ref>주희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대학혹문에서 밝은 명령에 대해 설명한 곳에서 말하기를(或問說明命處云)'이 더 있다.</ref>: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如何是體? 如何是用?'이 없고 '일상 속의 어디가 전체대용의 지점입니까?(日用間如何是全體大用處)'라고 적혀 있다.</ref>
'''질문:‘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이 일상[日用] 속에서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다'<ref>대학혹문.</ref>에서, 체(體)는 무엇이고 용(用)은 무엇입니까?<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대학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전체대용(全體大用)'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명덕(明德)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양상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ref>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이 없고, 그 대신 '可見.'과 '如喜怒哀樂'의 사이에 '體與用不相離, 如這是體, 起來運行便是用.'이 있다.</ref>‘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ref>조선고사본에서는 '擧此一節'</ref>, 體·用便<ref>조선고사본에서는 '便'을 '亦'으로 적었다.</ref>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하의 주석에서처럼 '희노는 용이요,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如喜怒是用, 所以能喜怒者, 便是體)'라고 적고 있다.</ref>”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을 간단히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 㝢同.)'라고 적고 있다.</ref>
'''대답: 체(體)와 용(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몸[身]은 체(體)이고 일어나 가려는 것은 용(用)이다.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모두 경악하고 측은한 마음[怵惕惻隱之心]이 있다’는 단지 이 한 가지 단서에서 체(體)와 용(用)을 볼 수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용(用)이고, 희노애락의 원천[所以喜怒哀樂]은 체(體)이다. <진순의 기록: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ref>'소이(所以)'는 가능근거이다. 우리의 몸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걷고 달리는 것이 가능하고 핸드폰이 있어야 앱이 돌아가는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솟구침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능근거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ref><ref>본 조목은 서우와 진순이 각각 기록한 것인데 조선고사본에서는 진순의 것을 수록했고 여정덕본에서는 서우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되 진순의 것을 주석으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ref>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 구문이 더 있다. '늘 반복하여 생각하지만 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용』(제 16장)에서 말하기를, '마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은 귀신(鬼神)의 성정과 공효[德]가 이처럼 성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몸 밖에 (실제로) 있는 물건입니다만, 지금 이른바 (밝은) 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나의 이 작은 마음 속에 갖추어진 것이니, 애초에 어찌 형체가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정말로 그것이 앞에 참여하고 있고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듯이 하라"고 하니,(常反覆思之, 而未會其意. 如中庸言, 如在其上, 如其左右, 是言鬼神之德如此其盛也. 猶曰鬼神者, 身外之物也. 今之所謂德者, 乃天之所以命我, 而具於一心之微, 初豈有形體之可見? 今乃曰眞若見其參於前而倚於衡,)'</ref> 不知<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其'가 더 있다.</ref>所見者果何物耶?”
'''질문: 《대학혹문》에서 ‘"항상 거기에 눈을 두어서[常目在之]"<ref>대학 전 1장에 나오는 '고식(顧諟)'에 대한 주희의 풀이이다. 대학장구에 보인다.</ref> 마치 정말로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음"<ref>논어 15:5</ref>을 보듯이 한다면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제 7장. '이루어진 본성을 간직하고 간직함이 도의가 나오는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ref>’<ref>대학혹문. 어류 16:9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물건입니까?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대답: 이 어찌 볼 수 있는 물건이겠는가? 다만 뭇 사람들이 성찰(省察)할 줄 몰라서 일상생활[常行日用] 속에서 매양 이 (밝은) 덕(德)을 잊고 지내며,<ref>'與'는 뒤따라오는 명사구를 목적어로 확정해준다. '相'은 뒤따라오는 동사의 일방적인 적용을 나타낸다. 뭇 사람들'이' 밝은 덕'을' 잊고 사는 것이지, 밝은 덕과 사람들이 서로를 잊고 산다는 말이 아니다.</ref> 자신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른바 '자세히 살핀다[顧諟]'는 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늘 이 이치(理)를 간직하고 있으라는 것 정도이다.<ref>'在'는 단정적 어감의 어기사로, 문언의 '焉'과 같다.</ref> 일단 말을 냈으면 말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當然之則]이 있으니 실언해서는 안 되고, 일단 일을 행했으면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에 불과할 뿐이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무슨 물건이 있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는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질문: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17:51을 참조하라.</ref>를 인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대답: 하늘이 명(命)한 바를 '밝은 명령(明命)'이라 하고, 내가 내 속에 얻은 것을 '밝은 덕(明德)'이라 하니, (이 둘은)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것을[這些] 자기 속에 잘 간직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속에 간직하기만 하면,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충(忠)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반드시 효(孝)할 수 있을 것이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를 보면 깜짝 놀라는(怵惕)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고, 담을 뚫고 넘어[穿窬] (도둑질하는) 무리를 보면 수치스럽고 미워하는[羞惡]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며, 응당 공경(恭敬)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공경할 수 있을 것이고, 응당 사양[辭遜]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사양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반드시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곧 이 본성(性)이 발현한 것이 모두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이것을<ref>밝은 명령이자 밝은 덕.</ref> 잘 간직하지도 못하면서 틔워나오길 기대한다면 그 무엇이 도리에 합치할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질문: '자세히 살피다[顧諟]’<ref>대학 전 1장.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顧諟天之明命]'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ref> 구절은 《대학혹문》에서 다시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대답: 사람의 본성(性)은 본래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일상생활[日用]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 뿐이다. 법칙[則]이란 이른바 천리(天理)이다. 사람이 매사를 옳게 한다면 곧 천리(天理)에 합치된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동일한)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만약 이 뜻을 이해한다면 하늘이 어찌 (사람보다) 클 것이며 사람이 어찌 (하늘보다) 작을 것인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다[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에 대한 질문.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대답: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의 탄생은 하늘에서 얻었으니, 이 사람을 낳은 이상 하늘은 다시 사람 안에 있게 된다. 말하고 움직이며 보고 듣는 것[語言動作視聽] 모두가 다 하늘이다. 바로 지금 (내가) 말하고 떠드는 것도 하늘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살핀다[顧諟]'함은 항상 (명덕의) 찬란한 광명(光明)이 내 눈 앞을 비추도록 보라는 것이다.<ref>유사한 표현이 14:73에 있으니 참조하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덕원(德元)<ref>곽우인(郭友仁)</ref>의 질문: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ref>물그릇에 새긴 글귀이다. 대학 전 2장에 보인다.</ref>은 어느 책에서 보입니까?
曰: “只<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是'가 있다.</ref>見於大學.”
'''대답: 오직 《대학》에서만 보인다.
又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又曰'이 없다.</ref>: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得'이 있다.</ref>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다시 말함: 성탕(成湯)의 공부(工夫)는 모두 '경(敬)' 자 하나에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대단히 단정하고 삼가는[修飭]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가 실천한 공부를 말할 때 또한 매우 드러나게[著] 말했다. 예를 들어 우(禹)임금의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했다[克勤于邦, 克儉于家]'<ref>상서 우서 대우모 제 14장.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으니, (이는) 너의 현명함이니라.(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ref> 같은 부류는 도리어 대강(大綱)을 말한 것이다. 탕(湯) 임금에 대해서는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했다[檢身若不及]'<ref>아무리 단속해도 부족하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상서 상서 이훈 제 5장. '위에 거하시어 능히 밝히시며, 아래에 거하시어 능히 충성하시며, 사람을 허여하되 다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시어 만방을 소유함에 이르셨으니, 오직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居上克明, 爲下克忠,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以至于有萬邦, 玆惟艱哉)'</ref>고 말한다.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내가[文蔚] 말함: '의(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제어하며[以義制事, 以禮制心]',<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8장.</ref>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불리지 않았다[不邇聲色, 不殖貨利]'<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5장.</ref> 등의 말에서 '날로 새로워짐[日新]'<ref>대학 전 2장.</ref>의 효과[功]를 볼 수 있습니다.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說'이 있다.</ref>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대답: 진실로 그렇다. 내가 《대학혹문》 중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상세히 실은 것은, 남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요, 역시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썼으면[經心] 해서일 뿐이다.
문위(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
" 17:56 묻다: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경(敬)이 태만(怠)함을 이기면 길(吉)하고, 태만(怠)함이 경(敬)을 이기면 멸(滅)하며, 의(義)가 욕심(欲)을 이기면 따르고[從], 욕심(欲)이 의(義)를 이기면 흉(凶)하다.' '종(從)' 자의 뜻은 어떻습니까?"
o 답하다: "종(從)은 순(順)이다. 경(敬)하면 곧 세워지고[?起], 태(怠)하면 곧 쓰러진다[放倒]. 이치[理]로써 일을 따르는 것이 의(義)이고, 이치[理]로써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욕(欲)이다. 여기에서 경(敬)과 의(義)는 하나의 체(體)·용(用)이니, 또한 곤괘(坤卦)에서 경(敬)·의(義)를 설명한 것과 같다."
o 우(?)의 기록. (61세 이후)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 17:57 “‘엄밀하고 굳세다[瑟兮僩兮]’는 것은 엄숙하고 두려워함[恂慄]이다. ‘한(僩)’ 자는 옛날에는 너그럽고 큼[寬大]으로 훈(訓)했다. 내가 경(經)과 자(子)에 실린 바를 보니, 혹 ‘忄’ 변을 따르거나 혹 ‘扌’ 변을 따르는 다름이 있지만, 모두 굳세고 굳건한 모습[武毅之貌]이 있다고 말하므로, 내가 주(注) 가운데 바로 무의(武毅)로써 그것을 설명했다.”
o 도부(道夫)가 말하다: “이와 같이 주(注)해야 비로소 ‘슬(瑟)’ 자 및 아랫글의 순률(恂慄) 설(說)과 서로 부합합니다.”
o 답하다: “또한 예컨대 ‘순(恂)’ 자를 정씨(鄭氏, 정현)는 ‘준(峻)’으로 읽었다. 내가 처음에 말하기를, 이것은 단지 ‘온순한 모습[恂恂如也]’의 ‘순(恂)’이니, 어찌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장자(莊子)》를 읽다가 이른바 ‘나무에 있을 때는 곧 두려워 떨며 무서워한다[木處則惴慄恂懼]’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씨(鄭氏)의 음(音)이 마땅함을 알았다. 이와 같은 부분은 내가 《혹문(或問)》 중에 미처 싣지 못했다. 요컨대 이와 같은 부분은 모름지기 글을 많이 읽은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o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58 묻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배우는 자의 일인데,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盛德至善]’을 《혹문(或問)》에서는 곧 성인(聖人)을 가리켜 말했으니, 어째서입니까?”
o 답하다: “뒷부분에서 설명한 것이 커서 성인(聖人)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이는 윗글의 ‘문왕(文王)이 계속 밝히고 공경하여 그침[緝熙敬止]’에 연결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 또한 손 놓고 팔짱 끼고[揷手掉臂] 저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모름지기 배워야 비로소 된다. 공자(孔子)께서 이르신 바 ‘덕(德)을 닦지 못하며, 학문(學)을 강론하지 못하며, 의(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하며,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이것이 무슨 긴요함이 있는가? 성인께서 도리어 근심하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직 그것을 근심하셨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이다. 이른바 ‘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者]’는 곧 단지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직 성인(聖)이라도 생각을 망령되이 하면 미치광이가 되고, 오직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우(寓)도 같음.
• 17:59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 이미 배우고도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다시 강습(講習)하고 토론(討論)하여 그것을 구하니, 뼈나 뿔을 다루는 자가 이미 자르고[切]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磋]과 같다. 잘라서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磋] 매끄럽고 윤택함[滑澤]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뼈나 뿔을 다루는 자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미 닦고도[修]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또한 성찰(省察)하고 극치(克治)하여 그것을 마치니, 옥이나 돌을 다루는 자가 이미 쪼고[琢]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磨]과 같다. 쪼는 것[琢]은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磨] 정밀하고 세밀함[精細]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옥이나 돌을 다루는 것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것을 취하여 군자가 지선(至善)에 임함을 비유하니, 이미 격물(格物)하여 머무를 곳[所止]을 알기를 구하고, 또한 힘을 써서 그 머무를 곳[所止]을 얻기를 구한다. 정심(正心)·성의(誠意)가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이다①. ‘엄밀하고 굳세며[瑟兮僩兮], 빛나고 성대함[赫兮喧兮]’ 여기에 이르면,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등에 넘쳐[睟面盎背] 밖으로 드러나니,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의 증험(驗)이다.”
o 도부(道夫)가 말하다: “그러므로 《혹문(或問)》 중에 시종(始終)과 조리(條理)의 구별이 있는 것이니,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o 답하다: “그렇다.”
o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o ①: (편집자 주: 원문에는 각주 표시가 있으나 내용은 없음)
• 17:60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다”는 도리어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의 일로 삼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는 도리어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로 삼으니, 모두 공부(工夫)가 정밀(精密)함을 요구한다. 도학(道學)은 시작하는 부분이고, 자수(自修)는 성취하는 부분이다. 중간의 공부는 이미 강구(講求)하고 또다시 강구하며, 이미 극치(克治)하고 또다시 극치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미 정밀한데 그 더욱 정밀함을 구하고, 이미 치밀한데 그 더욱 치밀함을 구하는 것이다.
o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7:61 주(周)가 묻다: “절차(切磋)는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이고, 탁마(琢磨)는 마치는 조리[終條理]입니다. 마치는 조리가 비교적 치밀합니까?”
o 답하다: “시작하는 조리와 마치는 조리 모두 치밀해야 하니, 강론하고 익힘[講貫]에 더욱 강론하고 익히며, 수양하고 삼감[修飭]에 더욱 수양하고 삼가야 한다.”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62 묻다: “탁마(琢磨) 뒤에 다시 슬한(瑟僩)·혁훤(赫喧)이 있는데, 어찌하여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이 됩니까?”
o 답하다: “그것은 공부하는 부분이 아니라 성취된 뒤의 기상(氣象)이 그러한 것이다. ‘점잖고 교양 있는 문왕[穆穆文王]’ 또한 기상(氣象)이다.”
o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pxr31lgu2r97zwfgvovf6sb1vd6a6j9
두시언해/중간본/권3
0
99461
392629
392442
2025-06-26T14:50:03Z
ZornsLemon
15531
/* 질병(疾病) */
392629
wikitext
text/x-wiki
{{머리말
| 제목 = 두시언해 중간본 권3
| 다른 표기 = 分類杜工部詩 諺解 卷之三
| 부제 =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저자:두보|두보]]
| 역자 =
| 이전 = [[../권2|권2]]
| 다음 = [[../권4|권4]]
| 설명 =
}}
==술회(述懷) 하(下)==
* [[/기부서회|기부서회(夔府書懷)]]
* [[/추일형남술회|추일형남술회(秋日荊南述懷)]]
* [[/견민|견민(遣悶)]]
* [[/풍질|풍질(風疾)]]
* [[/수숙견흥|수숙견흥(水宿遣興)]]
* [[/관정후희증|관정후희증(官定後戱贈)]]
* [[/지덕2재|지덕2재(至德二載)]]
* [[/우목|우목(寓目)]]
* [[/문관군수하남하북|문관군수하남하북(聞官軍收河南河北)]]
* [[/공낭|공낭(空囊)]]
* [[/견회|견회(遣懷)]]
* [[/견의|견의(遣意)]]
* [[/독립|독립(獨立)]]
* [[/원유|원유(遠遊)]]
* [[/서보|서보(徐步)]]
* [[/수좌|수좌(愁坐)]]
* [[/운산|운산(雲山)]]
* [[/의장|의장(倚杖)]]
* [[/병적|병적(屛跡)]]
* [[/귀래|귀래(歸來)]]
* [[/강상치수|강상치수(江上値水)]]
* [[/발민|발민(撥悶)]]
* [[/산수|산수(散愁)]]
* [[/수|수(愁)]]
* [[/여야서회|여야서회(旅夜書懷)]]
* [[/귀|귀(歸)]]
* [[/객구관|객구관(客舊館)]]
* [[/견수|견수(遣愁)]]
* [[/즉사|즉사(卽事)]]
* [[/협중남물|협중남물(峽中覽物)]]
* [[/억정남자|억정남자(憶鄭南玼)]]
* [[/회파상유|회파상유(懷㶚上遊)]]
* [[/강상|강상(江上)]]
* [[/강한|강한(江漢)]]
* [[/수백|수백(垂白)]]
* [[/추협|추협(秋峽)]]
* [[/독좌 2수|독좌 2수(獨坐 二首)]]
* [[/남경정백중승|남경정백중승(覽鏡呈栢中丞)]]
* [[/동둔북엄|동둔북엄(東屯北俺)]]
* [[/유탄|유탄(有歎)]]
* [[/민|민(悶)]]
* [[/독좌|독좌(獨坐)]]
* [[/모귀|모귀(暮歸)]]
* [[/희작배해체견민|희작배해체견민(戱作俳諧體遣悶)]]
* [[/견우|견우(遣憂)]]
* [[/견민정로|견민정로(遣悶呈路)]]
* [[/장음|장음(長吟)]]
* [[/누상|누상(樓上)]]
==질병(疾病)==
* [[/병후과옥의음|병후과옥의음(病後過王倚飮)]]
* [[/취위추마|취위추마(醉爲墜馬)]]
* [[/이롱|이롱(耳聾)]]
* [[/노병|노병(老病)]]
==회고(懷古)==
* [[/술고|술고(述古)]]
* [[/견흥|견흥(遣興)]]
* [[/억석|억석(憶昔)]]
* [[/동도금화산|동도금화산(冬到金華山)]]
* [[/진습유고택|진습유고택(陳拾遺故宅)]]
* [[/과곽대공고택|과곽대공고택(過郭代公故宅)]]
* [[/영회고적|영회고적(詠懷古跡)]]
* [[/공안현회고|공안현회고(公安縣懷古)]]
* [[/과송원외지문구장|과송원외지문구장(過宋員外之問舊莊)]]
* [[/석순행|석순행(石笋行)]]
* [[/석서행|석서행(石犀行)]]
* [[/석경|석경(石鏡)]]
* [[/금대|금대(琴臺)]]
==저작권==
{{PD-old}}
0lskt54fmrsatto14ck4h22icqd9f5s
페이지:언역 분류두공부시 (003).pdf/19
250
100053
392627
389187
2025-06-26T14:39:29Z
ZornsLemon
15531
392627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倩ᄋᆞᆫ 美笑貌ㅣ라 此ᄂᆞᆫ 言承諸公之笑語也ㅣ라 駸駸ᄋᆞᆫ 馬行이 疾이니 此ᄂᆞᆫ 美諸公之俊逸이라 ○ ᄂᆞᄎᆞᆯ 펴 도톼 아ᄅᆞᆷ다이 웃고 放逸ᄒᆞᆫ 바ᄅᆞᆫ ᄃᆞ톼 ᄲᆞᆯ리 녀ᄂᆞᆫ ᄃᆞᆺ도다】
朗鑑存愚直 皇天實照臨 【照臨ᄋᆞᆫ 甫ㅣ 言向諸公之誠ᄋᆞᆯ 天實臨之也ㅣ라 ○ ᄆᆞᆯᄀᆞᆫ 거우루레 내의 愚直호ᄆᆞᆯ 다마 뒷ᄂᆞ니 큰 하ᄂᆞᆯ히 眞實로 照臨ᄒᆞ야 계시니라】
公孫仍恃險 候景未生擒 【公孫述候景으로 比叛逆之人ᄒᆞ니라 ○ 公孫이 지즈로 險호ᄆᆞᆯ 민ᄂᆞ니 候景ᄋᆞᆯ 사ᄅᆞ잡지 못ᄒᆞ엿도다】
書信中原闊 干戈北斗深 【書信ᄋᆞᆫ 家書也ㅣ라 長安城이 上直北斗ᄒᆞ니라 此ᄂᆞᆫ 言故鄕書信이 不通ᄒᆞ니 長安애 有兵亂也ㅣ라 ○ 書信ᄋᆞᆫ 中原이 闊遠ᄒᆞ니 干戈ᄂᆞᆫ 北斗애 기펏도다】
畏人千里井 問俗九州箴 【古有人이 臨行ᄒᆞ야 瀉馬殘草於井中ᄒᆞ고 復來飮此井ᄒᆞ다가 爲殘草의 所刺喉而死故戒之曰 千里井에 不瀉剉이라 ᄒᆞ니 甫ㅣ 借言畏人於千里之道路也ㅣ라 楊雄이 作九州箴ᄒᆞ니 甫ㅣ 周流州縣而欲知風俗則見此箴也ㅣ라 ○ 사ᄅᆞᆷ 저후므란 千里ㅅ 우므레 ᄒᆞ고 風俗 무로므란 九州ㅅ 箴ᄋᆞᆯ 보노라】
戰血流依舊 軍聲動至今 【此ᄂᆞᆫ 言戰伐이 未息也ㅣ라 ○ 사호ᄂᆞᆫ 피ᄂᆞᆫ 녜를 브터 흐르고 軍兵의 소리ᄂᆞᆫ 이제 니르리 뮈놋다】
葛洪尸定解 許靖力還任 【尸解{{sic|ᄋᆞᆫ|ᄂᆞᆫ}} 陰君이 受尸解之法이러니 後에 死葬石子岡이어ᄂᆞᆯ 人發其棺ᄒᆞ야 但見一劒ᄒᆞ니 是ᄂᆞᆫ 登仙者ㅣ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1h906cxm5sda1oxvhdekr981sskfaeq
페이지:언역 분류두공부시 (003).pdf/21
250
100058
392628
389259
2025-06-26T14:41:33Z
ZornsLemon
15531
392628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童稚頻書札 盤飱詎糝藜 【札ᄋᆞᆫ 木簡之薄小者也ㅣ라 짒 글워리 오나ᄂᆞᆯ 머글 것 업수믈 알시라 ○ 아ᄒᆡᄃᆞᆯ히 ᄌᆞ조 유무ᄒᆞᄂᆞ니 盤애 먹ᄂᆞᆫ 거슨 어느 ᄉᆞ라기 조ᄎᆞᆫ 도ᄐᆞ랏 羹이리오】
我行何到此 物理直難齊 【此ᄂᆞᆫ 甫ㅣ 言我ㅣ 何以離鄕而來此殊方乎오 如此之理ᄅᆞᆯ 實難知也ㅣ로다 ○ 내 녀 엇뎨 예 왓ᄂᆞ뇨 物理ᄅᆞᆯ 곧 難히아 ᄀᆞᄌᆞ기 ᄒᆞᆯ 거시로다】
高枕飜星月 嚴城疊鼓鞞 【노피 벼개 볘여쇼매 별와 ᄃᆞ리 두위잇고 嚴嚴ᄒᆞᆫ 城에ᄂᆞᆫ 부플 여러 번 티놋다】
風號聞虎豹 水宿伴鳧鷖 【ᄇᆞᄅᆞ매 우르는 소리란 버믈 드르리로소니 므레 자맨 올히ᄅᆞᆯ 벗 삼노라】
異縣驚虛往 同人惜解携 【다ᄅᆞᆫ ᄀᆞ올 와셔 나ᄃᆞ리 虛히 가ᄆᆞᆯ 놀라고 同心ᄒᆞᆫ 사ᄅᆞᄆᆞᆯ 자밧다가 노호ᄆᆞᆯ 앗기노라】
蹉跎長汎鷁 展轉屢聞鷄 【鷁ᄋᆞᆫ 大鳥ㅣ니 畵船首ᄒᆞ야 以驚水神ᄒᆞᄂᆞ니라 展轉ᄋᆞᆫ 卧不安이라 ○ 蹉跎히 長常 ᄇᆡᄅᆞᆯ ᄠᅴ우고 展轉ᄒᆞ야셔 ᄌᆞ조 ᄃᆞᆯᄀᆡ 쇠릴 듣노라】
嶷嶷瑚璉器 隂隂桃李蹊 【嶷嶷ᄋᆞᆫ 高也ㅣ라 瑚璉ᄋᆞᆫ 宗廟애 盛黍稷器니 貴重而華美者ㅣ라 李廣傳애 桃李不言호ᄃᆡ 下自成蹊라 ᄒᆞ니 以喻權貴之門에 人自趍歸ᄒᆞ니 兩句ᄂᆞᆫ 皆指群公而言ᄒᆞ다 ○ 嶷嶷ᄒᆞ야 瑚璉ㅅ 그릇 ᄀᆞᆮ고 隂隂ᄒᆞᆫ 桃李옛 길히로다
餘波期救涸 費日苦輕齎 【莊子애 鮒在車轍曰 吾ㅣ 得斗水ㅣ면 可以活矣라 ᄒᆞ다 苦輕齎ᄂᆞᆫ 甫ㅣ 言爲容애 久費時日ᄒᆞ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m3i16sptwhoyafz0g9qqbp93j5mn4ju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51
250
101215
392641
392091
2025-06-27T02:31:16Z
ZornsLemon
15531
39264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du|가비락}}에<ref>그라벨로타(Gravelotta)</ref> 일으러 ᄯᅩ ᄒᆞᆫ번 ᄊᆞ화 ᄃᆡ젼 양ᄎᆞ에 필경 나오지 못ᄒᆞ고 그 셩 가온ᄃᆡ 에운 바ㅣ 되야 겨우 포ᄃᆡ로 방어ᄒᆞ니 {{du|보국}} 군즁에셔 {{du|법국}} 댱군 {{u|마마형}}이 와 구완ᄒᆞᆯ 쥴 알고 몬져 군ᄉᆞᄅᆞᆯ 넷셰 난화 뎨일 뎨이 ᄃᆡ군 십뉵만 명으로 {{u|파션}}을 에워 불급 수일에 량식이 진ᄒᆞ야 항복바든 바ㅣ 되고 졔ᄉᆞᆷ 졔ᄉᆞ ᄃᆡ군 이십ᄉᆞᆷ만 명은 {{du|법국}} 쟝군 {{u|마마형}}을 영격ᄒᆞᆯ새 {{u|마마형}}이 팔월 이십뉵일에 {{du|ᄉᆞ득ᄂᆡ}}<ref>스테네(Stenay)</ref> 지방에 일으러 {{du|모ᄉᆞ하}}ᄅᆞᆯ<ref>뫼즈(Meuse)</ref> 건너 남으로 ᄒᆡᆼᄒᆞ니 {{du|모ᄉᆞ하}} 남편은 수목이 ᄎᆞᆷ텬ᄒᆞ야 일광을 가리더라 {{du|일이만}} 군사ㅣ 가만이 ᄆᆡ복ᄒᆞ얏다가 {{du|법}}군이 하수ᄅᆞᆯ 건너 밥먹음을 보고 홀연이 만묵총즁으로셔 졍긔포양ᄒᆞ고 고각이 노호ᄒᆞ야 풍우ᄀᆞᆺ치 다라드니 {{du|법}}군이 대패ᄒᆞ야 사상이 산젹ᄒᆞ거ᄂᆞᆯ {{u|마댱군}}이 엇지ᄒᆞᆯ 쥴 모르고 젼령 퇴군ᄒᆞ야 {{du|유단}}<ref>세단(Sedan)</ref> ᄯᅡ으로 모히라 ᄒᆞ니 군사ㅣ 령을 듯고 ᄌᆡᆼ션공후ᄒᆞ야 도망ᄒᆞᆯ새 항오가 다 어질업더라 이십칠일 ᄉᆞ초에 {{u|마댱군}}이 겨우 {{du|유단}} ᄯᅡ에 일으러 {{du|법}}황게 글왈을 올녀 왈 신등의 오든 길이 다 {{du|일이만}} 군ᄉᆞ의게 ᄲᆡᆺ긴 바ㅣ 되얏스니 청컨ᄃᆡ 폐하ᄂᆞᆫ 다른 길노 죳ᄎᆞ 속히 {{du|유단}}에 일으러 ᄀᆞᆺ치 도라갈 길을 ᄎᆞᆺ사이다 ᄒᆞᆫ디 {{du|법}}황이 대경실ᄉᆡᆨᄒᆞ야 급히 어림군을 명ᄒᆞ야 젼군이 일졔히 퇴ᄒᆞᆯ새 연로에 군ᄉᆞㅣ 흣터지고 ᄒᆡᆼ댱이 소조ᄒᆞ며 겸ᄒᆞ야 젹인의게 잡힐가 ᄒᆞ야 감히 쳘로 노은 ᄃᆡ로 향치 못ᄒᆞ고 오직 그 친신ᄒᆞᆫ ᄉᆞᄅᆞᆷ 수인으로 더부러 말을 달니여 급히 {{du|유단}}에 일으니 이ᄂᆞᆫ {{du|법}}황이 평ᄉᆡᆼ에 뎨일 고ᄉᆡᆼᄒᆞᄂᆞᆫ ᄯᅡ히라 좌우ㅣ 그 위ᄐᆡᄒᆞᆷ을 알고 {{du|법}}황을 권ᄒᆞ야 피ᄒᆞ고ᄌᆞ ᄒᆞ니 {{du|법}}황이 불청 왈 짐이 졔군으로 더부러 사ᄉᆡᆼ을 ᄀᆞᆺ치 ᄒᆞᆯ 거시오 ᄎᆞ마 바리지 못ᄒᆞ노라 ᄒᆞ더라 오호ㅣ라 인ᄉᆡᆼ이 지ᄎᆞ에 실노 ᄎᆞᆷ혹ᄒᆞ도다
{{du|법}}장군 {{u|마마형}}이 군ᄉᆞᄅᆞᆯ 지휘ᄒᆞ야 {{du|유단}}을 직힐새 팔월 이십팔일 밤에 {{du|일이만}} 뎨ᄉᆞᆷ 뎨ᄉᆞ 대군이 유단 셩하에 일으러 ᄉᆞ면으로 에우니 병셰 호대ᄒᆞᆫ지라 {{du|법}}병이 감히 ᄊᆞ호지 못ᄒᆞ고 ᄯᅩᄒᆞᆫ 도망치도 못ᄒᆞ더라
{{du|일이만}} 군사ㅣ 깁ᄒᆡ 병법을 릉통ᄒᆞ야 구월 일일 아ᄎᆞᆷ에 장구ᄃᆡ진ᄒᆞ거ᄂᆞᆯ 마장군이 신션ᄉᆞ졸ᄒᆞ야 말을 달니여 나가다가 탄환을 마ᄌᆞ 락마ᄒᆞ거ᄂᆞᆯ 군새 급히 구ᄒᆞ야 오니라 {{du|법}}황이 {{u|마쟝군}}의 즁히 상ᄒᆞᆷ을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jwkruz37urfck5fzxrt37d35w2rboum
페이지:孔夫子言行錄.djvu/8
250
101590
392612
2025-06-26T12:16:02Z
Ghdtjdals
1846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겨ᄭᅵ치지안이ᄒᆞ거들어워셔익이지못ᄒᆞ니라<br/> 십ᄉᆞ년十四年을ᄉᆞ乙巳ᄂᆞᆫ공ᄌᆞ에츈츄春秋가오십뉵셰五十六歲시라졍승政丞일을셥ᄒᆡᆼ攝行ᄒᆞᄉᆞ쇼졍묘少正卯를버히시고나라졍ᄉᆞ政事에참예叅與ᄒᆞᄉᆞ드르신지삼월三月에노국魯國이크게다스리ᄂᆞᆫ지라젯齊나라ᄉᆞ람이녀악女樂을보ᄂᆡ여져희沮戰ᄒᆞ고ᄯᅩ계환...
39261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Ghdtjdals"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겨ᄭᅵ치지안이ᄒᆞ거들어워셔익이지못ᄒᆞ니라<br/>
십ᄉᆞ년十四年을ᄉᆞ乙巳ᄂᆞᆫ공ᄌᆞ에츈츄春秋가오십뉵셰五十六歲시라졍승政丞일을셥ᄒᆡᆼ攝行ᄒᆞᄉᆞ쇼졍묘少正卯를버히시고나라졍ᄉᆞ政事에참예叅與ᄒᆞᄉᆞ드르신지삼월三月에노국魯國이크게다스리ᄂᆞᆫ지라젯齊나라ᄉᆞ람이녀악女樂을보ᄂᆡ여져희沮戰ᄒᆞ고ᄯᅩ계환ᄌᆞ季桓子|교郊에졔ᄉᆞ祭祀ᄒᆞ고ᄃᆡ부大夫의게번육膰肉을보ᄂᆡ지아니ᄒᆞ거늘공ᄌᆞ갈오ᄉᆞᄃᆡ가히갈지어다ᄒᆞ시고드듸여ᄒᆡᆼᄒᆞᄉᆞ위국衛國으로가셔ᄌᆞ로子路의쳐형妻兄안탁츄顔濁鄒집에쥬인主人ᄒᆞ야거居ᄒᆞ시고진국陳國으로가실ᄉᆡ광匡ᄯᅡ로지나시니광匡ᄯᅡᄉᆞᄅᆞᆷ이그릇양화陽貨로인증認証ᄒᆞ고에우기를급急히ᄒᆞᄂᆞᆫ지라이믜에운거슬푸시고위국衛國으로도라오ᄉᆞ거ᄇᆡᆨ옥蘧伯玉의집에머물으시다가남ᄌᆞ南子를보시고인ᄒᆞ야송宋나라로가시니ᄉᆞ마환퇴司馬桓魋가살ᄒᆡ殺害코ᄌᆞᄒᆞ거늘도로진국陳國으로가셔ᄉᆞ셩졍ᄌᆞ司城貞子의집에유留ᄒᆞ시고거居ᄒᆞ신지삼년三年에위衛나라로도라오시니영靈공이능히쓰지못ᄒᆞᄂᆞᆫ지라진晉나라조씨趙氏가신家臣불흘佛肐이즁中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fdqqnxnjfss95jmqf50go8asqxxu074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34
250
101591
392615
2025-06-26T12:19:49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분주|다|로}}鴥{{더더작게|휼}}彼{{더더작게|피}}飛{{더더작게|비}}準{{더더작게|쥰}}{{분주|이|여}}載{{더더작게|ᄌᆡ}}飛{{더더작게|비}}載{{더더작게|ᄌᆡ}}止{{더더작게|지}}{{분주|로|다}}嗟{{더더작게|챠}}我{{더더작게|아}}兄{{더더작게|형}}弟{{더더작게|뎨}}邦{{더더작게|방}}人{{더더작게|인}}諸{{더더작게|져}}友{{더더작게|우}}ᅵ莫{{더더작게|막}...
39261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awhunt"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big>
{{분주|다|로}}鴥{{더더작게|휼}}彼{{더더작게|피}}飛{{더더작게|비}}準{{더더작게|쥰}}{{분주|이|여}}載{{더더작게|ᄌᆡ}}飛{{더더작게|비}}載{{더더작게|ᄌᆡ}}止{{더더작게|지}}{{분주|로|다}}嗟{{더더작게|챠}}我{{더더작게|아}}兄{{더더작게|형}}弟{{더더작게|뎨}}邦{{더더작게|방}}人{{더더작게|인}}諸{{더더작게|져}}友{{더더작게|우}}ᅵ莫{{더더작게|막}}肻{{더더작게|긍}}念{{더더작게|념}}亂{{더더작게|란}}{{분주|ᄒᆞᄂᆞ|니}}誰{{더더작게|슈}}無{{더더작게|무}}父{{더더작게|부}}母{{더더작게|모}}{{분주|오|}}<br>
:沔{{더더작게|면}}ᄒᆞᆫ뎌流{{더더작게|류}}水{{더더작게|슈}}ᅵ여海{{더더작게|ᄒᆡ}}예朝{{더더작게|죠}}ᄒᆞ며宗{{더더작게|종}}ᄒᆞ놋다鴥{{더더작게|휼}}ᄒᆞᆫ뎌飛{{더더작게|비}}ᄒᆞᄂᆞᆫ準{{더더작게|쥰}}이여곧飛{{더더작게|비}}ᄒᆞ며곧止{{더더작게|지}}ᄒᆞ놋다嗟{{더더작게|챠}}흡다우리兄{{더더작게|형}}弟{{더더작게|뎨}}와邦{{더더작게|방}}人{{더더작게|인}}ᄉ모든버디즐겨亂{{더더작게|란}}을念{{더더작게|념}}티아니ᄒᆞᄂᆞ니뉘父{{더더작게|부}}母{{더더작게|모}}ᅵ업ᄉᆞ료
</big>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lprl8jalfkrv3iawt9xinyadfkug8xe
페이지:孔夫子言行錄.djvu/9
250
101592
392616
2025-06-26T12:31:35Z
Ghdtjdals
1846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모牟로쎠반畔ᄒᆞ야공ᄌᆞ를브르거늘공ᄌᆞㅣ가시지아니ᄒᆞ시고셔西흐로죠간ᄌᆞ趙簡子을보려ᄒᆞ시다가도라와거ᄇᆡᆨ옥蘧伯玉의집에거居ᄒᆞ시니영공靈公이진陳으로써뭇거늘ᄃᆡ답지아니ᄒᆞ시고ᄒᆡᆼ行ᄒᆞᄉᆞ다시진나라에가시니계환ᄌᆞ季桓子ㅣ이믜쥭고강ᄌᆞ康子ㅣ환ᄌᆞ桓子에유언遺言을인因ᄒᆞ야공ᄌᆞ를불르려ᄒᆞᆫ...
392616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Ghdtjdals"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모牟로쎠반畔ᄒᆞ야공ᄌᆞ를브르거늘공ᄌᆞㅣ가시지아니ᄒᆞ시고셔西흐로죠간ᄌᆞ趙簡子을보려ᄒᆞ시다가도라와거ᄇᆡᆨ옥蘧伯玉의집에거居ᄒᆞ시니영공靈公이진陳으로써뭇거늘ᄃᆡ답지아니ᄒᆞ시고ᄒᆡᆼ行ᄒᆞᄉᆞ다시진나라에가시니계환ᄌᆞ季桓子ㅣ이믜쥭고강ᄌᆞ康子ㅣ환ᄌᆞ桓子에유언遺言을인因ᄒᆞ야공ᄌᆞ를불르려ᄒᆞᆫᄃᆡ그신ᄒᆡㅣ말녀긋치고이에염구冉求을부르니라공ᄌᆞㅣᄎᆡ蔡와밋셥葉ᄯᅡᆼ으로가신ᄃᆡ쵸쇼왕楚昭王이장찻셔ᄉᆞ書社ᄯᅡᆼ으로써공ᄌᆞ를봉封ᄒᆞ고ᄌᆞᄒᆞ니영윤ᄌᆞ셔令尹子西ㅣ불가不可라ᄒᆞ야이에긋치ᄂᆞᆫ지라ᄯᅩ위국衛國으로도라오시니ᄯᆡ에영공靈公이임의쥭고위衛나라임군쳡輒이공ᄌᆞ를뫼셔졍ᄉᆞᄒᆞ고염구冉求ᄂᆞᆫ계씨季氏의쟝슈將帥가되여졔齊나라로더부러싸와공이잇ᄂᆞᆫ지라강ᄌᆞ康子ㅣ이에공ᄌᆞ를부르거늘공ᄌᆞㅣ노국魯國으로도라오시니실상ᄋᆡ공實狀哀公에십일년졍ᄉᆞ十一年丁巳라공ᄌᆞ에츈츄春秋ㅣ뉵십팔셰六十八歲시라그러나놋魯나라에셔맛츰ᄂᆡ공ᄌᆞ를쓰지못ᄒᆞ고공ᄌᆞㅣᄯᅩᄒᆞᆫ벼슬를구求ᄒᆞ시지아니ᄒᆞᄉᆞ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qundyvj53upx0f6e8g62sbh5bb9hd27
페이지:Weolinseokbo Vol. 25.djvu/56
250
101593
392620
2025-06-26T12:47:15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功{{*|고ᇰ}}德{{*|득〮}}을〮 일우〮디〮 몯〯ᄒᆞ면〮 十{{*|씹〮}}方{{*|바ᇰ}}世{{*|솅〮}}界{{*|갱〮}} 現{{*|ᅘᅧᆫ〮}}在{{*|ᄍᆡᆼ〮}}諸{{*|졍}}佛{{*|뿌ᇙ〮}}ᄋᆞᆯ〮 소기〮ᅀᆞᆸ논〮디〮라〮 未{{*|밍〮}}來{{*|ᄅᆡᆼ}}世{{*|솅〮}}예〮 菩{{*|뽕}}提{{*|똉}}ᄅᆞᆯ〮 몯〯 일우〮오리〮ᅌᅵ다〮 ᄒᆞ〮시〮니라〮 ○ 녜〯 達{{*|따ᇙ〮}}尼{{*|닝}}迦{{*|...
39262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功{{*|고ᇰ}}德{{*|득〮}}을〮 일우〮디〮 몯〯ᄒᆞ면〮 十{{*|씹〮}}方{{*|바ᇰ}}世{{*|솅〮}}界{{*|갱〮}} 現{{*|ᅘᅧᆫ〮}}在{{*|ᄍᆡᆼ〮}}諸{{*|졍}}佛{{*|뿌ᇙ〮}}ᄋᆞᆯ〮 소기〮ᅀᆞᆸ논〮디〮라〮 未{{*|밍〮}}來{{*|ᄅᆡᆼ}}世{{*|솅〮}}예〮 菩{{*|뽕}}提{{*|똉}}ᄅᆞᆯ〮 몯〯 일우〮오리〮ᅌᅵ다〮 ᄒᆞ〮시〮니라〮 ○ 녜〯 達{{*|따ᇙ〮}}尼{{*|닝}}迦{{*|강}}ㅣ 그윗 거슬〮 일버ᅀᅥ〮늘〮 甁{{*|뼈ᇰ}}沙{{*|상}}王{{*|ᅌᅪᇰ}}이〮 三{{*|삼}}寶{{*|보ᇢ〯}}ᄅᆞᆯ〮 信{{*|신〮}}敬{{*|겨ᇰ〮}}ᄒᆞ〮더니〮 達{{*|따ᇙ〮}}尼{{*|닝}}迦{{*|강}}ㅣ 袈{{*|강}}裟{{*|상}} 니벳〮거늘〮 보고〮 묻〯디〮 아니〮ᄒᆞᆫ대〮 比{{*|삥〮}}丘{{*|쿠ᇢ}}ㅣ 부텻긔〮 ᄉᆞᆯᄫᅩ〮ᄃᆡ〮 이〮 達{{*|따ᇙ〮}}尼{{*|닝}}迦{{*|강}}ㅣ 아〯래〮 엇〯던 業{{*|ᅌᅥᆸ〮}}을〮 시므관〮ᄃᆡ〮 甁{{*|뼈ᇰ}}沙{{*|상}}王{{*|ᅌᅪᇰ}}이〮 이〮리 赦{{*|샹〮}}ᄒᆞ〮ᄂᆞ니〮ᅌᅵᆺ고〮 부톄〯 니ᄅᆞ샤〮ᄃᆡ〮 過{{*|광〮}}去{{*|컹〮}}에〮 ᄒᆞᆫ 金{{*|금}}翅{{*|싱〮}}鳥{{*|됴ᇢ〯}}王{{*|ᅌᅪᇰ}}이〮 이쇼〮ᄃᆡ〮 모〮미〮 ᄀᆞ자ᇰ〮 커〮 두〯 ᄂᆞᆯ〮갯〮 ᄉᆞᅀᅵ〮 六{{*|륙〮}}千{{*|쳔}}餘{{*|영}}里{{*|링〯}}러니〮 샤ᇰ녜〮 海{{*|ᄒᆡ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ap33e5uusdoud93z5dyjjvze3jvmnmt
페이지:Weolinseokbo Vol. 25.djvu/57
250
101594
392621
2025-06-26T12:47:40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中{{*|듀ᇰ}}에〮 드〮러 龍{{*|료ᇰ}}ᄋᆞᆯ〮 자바〮 먹거든〮 龍{{*|료ᇰ}}ᄃᆞᆯ〮ᄒᆡ〮 샤ᇰ녯〮 法{{*|법〮}}에〮 金{{*|금}}翅{{*|싱〮}}鳥{{*|됴ᇢ〯}}ᄅᆞᆯ〮 므ᅀᅴ〮여 샤ᇰ녜〮 袈{{*|강}}裟{{*|상}}ᄅᆞᆯ〮 求{{*|꾸ᇢ}}ᄒᆞ〮야〮 宮{{*|구ᇰ}}門{{*|몬}} 우희〮 뒷〮거든〮 金{{*|금}}翅{{*|싱〮}}鳥{{*|됴ᇢ〯}}ㅣ 袈{{*|강}}裟{{*|상}} 보고〮 恭{{*|고...
39262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中{{*|듀ᇰ}}에〮 드〮러 龍{{*|료ᇰ}}ᄋᆞᆯ〮 자바〮 먹거든〮 龍{{*|료ᇰ}}ᄃᆞᆯ〮ᄒᆡ〮 샤ᇰ녯〮 法{{*|법〮}}에〮 金{{*|금}}翅{{*|싱〮}}鳥{{*|됴ᇢ〯}}ᄅᆞᆯ〮 므ᅀᅴ〮여 샤ᇰ녜〮 袈{{*|강}}裟{{*|상}}ᄅᆞᆯ〮 求{{*|꾸ᇢ}}ᄒᆞ〮야〮 宮{{*|구ᇰ}}門{{*|몬}} 우희〮 뒷〮거든〮 金{{*|금}}翅{{*|싱〮}}鳥{{*|됴ᇢ〯}}ㅣ 袈{{*|강}}裟{{*|상}} 보고〮 恭{{*|고ᇰ}}敬{{*|겨ᇰ〮}}心{{*|심}}을〮 내〯야〮 나ᅀᅡ〮 드〮러 龍{{*|료ᇰ}}ᄋᆞᆯ〮 자바〮 먹디〮 아니〮ᄒᆞ〮ᄂᆞ니〮 金{{*|금}}翅{{*|싱〮}}鳥{{*|됴ᇢ〯}}ㅣ 龍{{*|료ᇰ}} 머그ᇙ〮 저기〮면〮 ᄂᆞᆯ〮개로〮 바ᄅᆞ〮ᄅᆞᆯ〮 텨〮든〮 므〮리〮 갈아〮 디〮여 龍{{*|료ᇰ}}이〮 나〮거든〮 자바〮 먹ᄂᆞ니〮 그제 ᄒᆞᆫ 龍{{*|료ᇰ}}이〮 金{{*|금}}翅{{*|싱〮}}鳥{{*|됴ᇢ〯}}의〮게 ᄧᅩ쳐〮 즉〮재 袈{{*|강}}裟{{*|상}}ᄅᆞᆯ〮 뎌ᇰ〮바기〮예〮 이〮여 ᄀᆞ〯ᅀᆞᆯ〮 조차〮 ᄃᆞᆮ더〮니〮 그제 金{{*|금}}翅{{*|싱〮}}鳥{{*|됴ᇢ〯}}ㅣ 婆{{*|빵}}羅{{*|랑}}門{{*|몬}}이〮 ᄃᆞ외야〮 龍{{*|료ᇰ}}ᄋᆞᆯ〮 ᄧᅩ차〮 ᄃᆞᄅᆞ며〮 種{{*|죠ᇰ〯}}種{{*|죠ᇰ〯}}ᄋᆞ〮로〮 구지〮조ᄃᆡ〮 네〯 엇〯뎨〮 袈{{*|강}}裟{{*|상}}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6kp37az70dud99awnvlhy443calmfjd
페이지:Weolinseokbo Vol. 25.djvu/58
250
101595
392622
2025-06-26T12:48:03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ᄅᆞᆯ〮 더디〮디〮 아니〮ᄒᆞ〮ᄂᆞᆫ다〮 龍{{*|료ᇰ}}이〮 주그ᇙ〮가〮 두려〮 더 구디〮 자바〮 ᄇᆞ리〮디〮 아니〮터니〮 그제 바ᄅᆞᆳ〮 ᄀᆞ〯ᅀᅢ〮 ᄒᆞᆫ 仙{{*|션}}人{{*|ᅀᅵᆫ}}이〮 잇거늘〮 龍{{*|료ᇰ}}이〮 두려〮 仙{{*|션}}人{{*|ᅀᅵᆫ}}ᄋᆡ〮게 니〮거늘〮 金{{*|금}}翅{{*|싱〮}}鳥{{*|됴ᇢ〯}}ㅣ 仙{{*|션}}人{{*|ᅀᅵᆫ}} 보고〮...
39262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ᄅᆞᆯ〮 더디〮디〮 아니〮ᄒᆞ〮ᄂᆞᆫ다〮 龍{{*|료ᇰ}}이〮 주그ᇙ〮가〮 두려〮 더 구디〮 자바〮 ᄇᆞ리〮디〮 아니〮터니〮 그제 바ᄅᆞᆳ〮 ᄀᆞ〯ᅀᅢ〮 ᄒᆞᆫ 仙{{*|션}}人{{*|ᅀᅵᆫ}}이〮 잇거늘〮 龍{{*|료ᇰ}}이〮 두려〮 仙{{*|션}}人{{*|ᅀᅵᆫ}}ᄋᆡ〮게 니〮거늘〮 金{{*|금}}翅{{*|싱〮}}鳥{{*|됴ᇢ〯}}ㅣ 仙{{*|션}}人{{*|ᅀᅵᆫ}} 보고〮 나ᅀᅡ〮 드〮디〮 몯〯거늘〮 仙{{*|션}}人{{*|ᅀᅵᆫ}}이〮 즉〮재 나〮 金{{*|금}}翅{{*|싱〮}}鳥{{*|됴ᇢ〯}} 爲{{*|윙〮}}ᄒᆞ〮야〮 說{{*|ᄉᆑᇙ〮}}法{{*|법〮}}ᄒᆞ고〮 金{{*|금}}翅{{*|싱〮}}鳥{{*|됴ᇢ〯}} ᄀᆞᄅᆞ쳐〮 龍{{*|료ᇰ}} 向{{*|햐ᇰ〮}}ᄒᆞ〮야〮 서르 懺{{*|참〮}}悔{{*|횡〮}}ᄒᆞ고〮 各{{*|각〮}}各{{*|각〮}} 가게〮 ᄒᆞ니〮 넷〯 仙{{*|션}}人{{*|ᅀᅵᆫ}}은〮 이〮젯 내 모〮미〮 긔〯오〮 金{{*|금}}翅{{*|싱〮}}鳥{{*|됴ᇢ〯}}ᄂᆞᆫ〮 甁{{*|뼈ᇰ}}沙{{*|상}}王{{*|ᅌᅪᇰ}}이〮 긔〯오〮 龍{{*|료ᇰ}}ᄋᆞᆫ〮 達{{*|따ᇙ〮}}尼{{*|닝}}迦{{*|강}}ㅣ 긔〯라〮 녜〯 袈{{*|강}}裟{{*|상}}ㅅ 히〮믈〮 니버〮 金{{*|금}}翅{{*|싱〮}}鳥{{*|됴ᇢ〯}}ᄋᆡ〮 머구〮믈〮 免{{*|면〯}}코〮 이〮제 ᄯᅩ〮 내 袈{{*|강}}裟{{*|상}}ㅅ 因{{*|ᅙᅵᆫ}}緣{{*|ᄋᆑᆫ}}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fems8a3xnp8aigufioaqpvyoxjjbv5h
페이지:Weolinseokbo Vol. 25.djvu/59
250
101596
392623
2025-06-26T12:48:40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으〮로〮 王{{*|ᅌᅪᇰ}}難{{*|난}}ᄋᆞᆯ〮 버스〮니〮 이〮럴ᄊᆡ〮 袈{{*|강}}裟{{*|상}}ㅅ 威{{*|ᅙᅱᆼ}}力{{*|륵〮}}이〮 不{{*|부ᇙ〮}}可{{*|캉〯}}思{{*|ᄉᆞᆼ}}議{{*|ᅌᅴᆼ〮}}라〮 ○ 龍{{*|료ᇰ}}王{{*|ᅌᅪᇰ}}이〮 世{{*|솅〮}}尊{{*|존}}ᄭᅴ〮 ᄉᆞᆯᄫᅩ〮ᄃᆡ〮 이〮 海{{*|ᄒᆡᆼ〯}}中{{*|듀ᇰ}}에〮 無{{*|뭉}}數{{*|숭〮}} 가짓〮 龍{{*|료ᇰ}}ᄋᆞ...
39262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으〮로〮 王{{*|ᅌᅪᇰ}}難{{*|난}}ᄋᆞᆯ〮 버스〮니〮 이〮럴ᄊᆡ〮 袈{{*|강}}裟{{*|상}}ㅅ 威{{*|ᅙᅱᆼ}}力{{*|륵〮}}이〮 不{{*|부ᇙ〮}}可{{*|캉〯}}思{{*|ᄉᆞᆼ}}議{{*|ᅌᅴᆼ〮}}라〮 ○ 龍{{*|료ᇰ}}王{{*|ᅌᅪᇰ}}이〮 世{{*|솅〮}}尊{{*|존}}ᄭᅴ〮 ᄉᆞᆯᄫᅩ〮ᄃᆡ〮 이〮 海{{*|ᄒᆡᆼ〯}}中{{*|듀ᇰ}}에〮 無{{*|뭉}}數{{*|숭〮}} 가짓〮 龍{{*|료ᇰ}}ᄋᆞᆯ〮 네〯 가짓〮 金{{*|금}}翅{{*|싱〮}}鳥{{*|됴ᇢ〯}}ㅣ 샤ᇰ녜〮 자바〮 먹ᄂᆞ니〮 願{{*|ᅌᅯᆫ〮}}ᄒᆞᆫᄃᆞᆫ〮 부톄〯 擁{{*|ᅙᅩᇰ〯}}護{{*|ᅘᅩᆼ〮}}ᄒᆞ〮샤〮 샤ᇰ녜〮 便{{*|뼌}}安{{*|ᅙᅡᆫ}}케〮 ᄒᆞ〮쇼셔〮 世{{*|솅〮}}尊{{*|존}}이〮 니버〮 겨〯신 皂{{*|쪼ᇢ〯}}衣{{*|ᅙᅴᆼ}}ᄅᆞᆯ〮 바ᄉᆞ샤〮 海{{*|ᄒᆡᆼ〯}}龍{{*|료ᇰ}}王{{*|ᅌᅪᇰ}}ᄃᆞ려〮 니ᄅᆞ샤〮ᄃᆡ〮 네〯 이〮 오〮ᄉᆞᆯ〮 가져〮다가〮 龍{{*|료ᇰ}}ᄃᆞᆯ〮ᄒᆞᆯ〮 ᄂᆞᆫ호〮아 주라〮 ᄒᆞᆫ 시〯ᄅᆞᆯ〮 맛나〮도〮 金{{*|금}}翅{{*|싱〮}}鳥{{*|됴ᇢ〯}}ㅣ 犯{{*|뻠〯}}觸{{*|쵹〮}}디〮 몯〯ᄒᆞ리〮며〮 禁{{*|금〮}}戒{{*|갱〮}} 디니〮ᄂᆞᆫ 사〯ᄅᆞᄆᆞᆫ〮 願{{*|ᅌᅯᆫ〮}}ᄒᆞ〮논 이〯ᄅᆞᆯ〮 반ᄃᆞ〮기 得{{*|득〮}}ᄒᆞ리〮라〮 그ᄢᅴ〮 龍{{*|료ᇰ}}ᄃᆞᆯ〮히〮 너교〮ᄃᆡ〮 부텻 皂{{*|쪼ᇢ〯}}衣{{*|ᅙᅴᆼ}} 甚{{*|씸〮}}히〮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mxt8ydd1dch1tiumd1tc7h64nlqtt2o
페이지:Weolinseokbo Vol. 25.djvu/60
250
101597
392624
2025-06-26T12:49:13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져〯그니〮 어딋〮던〮 차〮 도ᄅᆞ리〮오〮 그ᄢᅴ〮 부톄〯 龍{{*|료ᇰ}}ᄋᆡ〮 疑{{*|ᅌᅴᆼ}}心{{*|심}}ᄋᆞᆯ〮 아〯ᄅᆞ〮시고〮 龍{{*|료ᇰ}}王{{*|ᅌᅪᇰ}}ᄃᆞ려〮 니ᄅᆞ샤〮ᄃᆡ〮 비록〮 三{{*|삼}}千{{*|쳔}}大{{*|땡〮}}千{{*|쳔}}世{{*|솅〮}}界{{*|갱〮}}예〮 잇ᄂᆞᆫ 사〯ᄅᆞᄆᆡ〮게 各{{*|각〮}}各{{*|각〮}} 如{{*|ᅀᅧᆼ}}來{{*|ᄅᆡᆼ}}ㅅ 皂...
392624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져〯그니〮 어딋〮던〮 차〮 도ᄅᆞ리〮오〮 그ᄢᅴ〮 부톄〯 龍{{*|료ᇰ}}ᄋᆡ〮 疑{{*|ᅌᅴᆼ}}心{{*|심}}ᄋᆞᆯ〮 아〯ᄅᆞ〮시고〮 龍{{*|료ᇰ}}王{{*|ᅌᅪᇰ}}ᄃᆞ려〮 니ᄅᆞ샤〮ᄃᆡ〮 비록〮 三{{*|삼}}千{{*|쳔}}大{{*|땡〮}}千{{*|쳔}}世{{*|솅〮}}界{{*|갱〮}}예〮 잇ᄂᆞᆫ 사〯ᄅᆞᄆᆡ〮게 各{{*|각〮}}各{{*|각〮}} 如{{*|ᅀᅧᆼ}}來{{*|ᄅᆡᆼ}}ㅅ 皂{{*|쪼ᇢ〯}}衣{{*|ᅙᅴᆼ}}ᄅᆞᆯ〮 ᄂᆞᆫ호〮아 주〮어도〮 乃{{*|냉〯}}終{{*|쥬ᇰ}}내〯 다ᄋᆞ디〮 아니〮ᄒᆞ리〮라〮 그ᄢᅴ〮 龍{{*|료ᇰ}}이〮 無{{*|뭉}}央{{*|ᅙᅣᇰ}} 數{{*|숭〮}}百{{*|ᄇᆡᆨ〮}} 千{{*|쳔}}萬{{*|먼〮}} 그테〮 ᄂᆞᆫ호〮아 주〮어도〮 그 오〮시〮 녜〯라온〮 ᄃᆞᆺ〮ᄒᆞ〮더라〮 부톄〯 니ᄅᆞ샤〮ᄃᆡ〮 如{{*|ᅀᅧᆼ}}來{{*|ᄅᆡᆼ}}ㅅ 옷〮 보니〮ᄂᆞᆫ〮 즉〮재 龍{{*|료ᇰ}}ᄋᆡ〮 모〮ᄆᆞᆯ〮 버서〮 賢{{*|ᅘᅧᆫ}}劫{{*|겁〮}}中{{*|듀ᇰ}}에〮 다〯 無{{*|뭉}}着{{*|땩〮}}ᄋᆞᆯ〮 得{{*|득〮}}ᄒᆞ〮야〮 반ᄃᆞ〮기 般{{*|반}}泥{{*|녱}}洹{{*|ᅘᅪᆫ}}ᄒᆞ리〮라〮 그ᄢᅴ〮 네〯 金{{*|금}}翅{{*|싱〮}}鳥{{*|됴ᇢ〯}}王{{*|ᅌᅪᇰ}}이〮 各{{*|각〮}}各{{*|각〮}} 千{{*|쳔}}眷{{*|권〮}}屬{{*|쑉〮}}과〮 ᄒᆞᆫᄢᅴ〮 와〮 부텨ᄭᅴ〮 ᄉᆞᆯᄫᅩ〮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b4eirp29ialrc3e97csh4m0niqy6kwg
페이지:孔夫子言行錄.djvu/10
250
101598
392625
2025-06-26T13:23:58Z
Ghdtjdals
1846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이에시셔詩書을산삭刪削ᄒᆞ시고예악禮樂을바르게ᄒᆞ시며쥬역周易을일그실ᄉᆡ가쥭ᄭᅳᆫ이셰번ᄭᅳᆫ어지고츈츄春秋를지으실ᄉᆡᄎᆡᆨ冊머리에츈왕정월春王正月이라크게쓰셧스니인ᄂᆞᆫ의리義理발키믈표表ᄒᆞ심일너라평상平常의목이말으시되도쳔盜泉물을잡슈시지아니ᄒᆞ시고괴력恠力과난신亂神을말삼아니ᄒᆞ시며늘근이를편...
39262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Ghdtjdals"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이에시셔詩書을산삭刪削ᄒᆞ시고예악禮樂을바르게ᄒᆞ시며쥬역周易을일그실ᄉᆡ가쥭ᄭᅳᆫ이셰번ᄭᅳᆫ어지고츈츄春秋를지으실ᄉᆡᄎᆡᆨ冊머리에츈왕정월春王正月이라크게쓰셧스니인ᄂᆞᆫ의리義理발키믈표表ᄒᆞ심일너라평상平常의목이말으시되도쳔盜泉물을잡슈시지아니ᄒᆞ시고괴력恠力과난신亂神을말삼아니ᄒᆞ시며늘근이를편안케ᄒᆞ시고붕우朋友의게밋부게ᄒᆞ시며어린이를품으시고온양溫良ᄒᆞ고공검恭儉ᄒᆞ시며겸양謙讓ᄒᆞᄉᆞᄃᆡ셩인大聖人니되시니라일즉ᄐᆡ산泰山에올으ᄉᆞ쳔하天下를젹다ᄒᆞ시고낙슈 洛水우에임臨ᄒᆞ시ᄆᆡ거문거복이글을지고나오거늘운두경運斗經을지으시고도道를ᄒᆡᆼ行코ᄌᆞᄒᆞᄉᆞ텬하天下에쳘환轍環ᄒᆞ시되맛참ᄂᆡᄯᅳᆺ슬일우시지못ᄒᆞ시고고국故國에도라오ᄉᆞ졔ᄌᆞ弟子삼쳔三千을거ᄂᆞ리시고도덕道德과학문學問을강습講習ᄒᆞᄉᆞ여년餘年을보ᄂᆡ시니뉵예六藝를통달通達ᄒᆞᆫᄌᆡ칠십이인七十二人이오최우등最優等으로도통道統을이은ᄌᆞᄂᆞᆫ안ᄌᆞ顔子와증ᄌᆞ曾子가제일第一이실너라<br/>
노ᄋᆡ공魯哀公십뉵十六년임술壬戌사월四月긔축己丑에승하昇遐ᄒᆞ시니츈츄春秋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gd1zquiim225e4m7mb2o0h3zj3l1l6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94
250
101599
392630
2025-06-26T15:30:35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우ᄃᆡᄒᆞ야 경즁의 폐단이 업게 ᄒᆞ니 이에 ᄇᆡᆨ셩이 다 심만의족ᄒᆞ야 환희고무ᄒᆞ더라 연이 {{du|오}}황의 이 거조ᄂᆞᆫ 츌어부득이요 진심이 아니라 겨우 대란을 평졍ᄒᆞᄆᆡ ᄉᆞᆷ년이 못ᄒᆞ야 소위 신졔도ᄂᆞᆫ 다 유명무실이러니 일쳔팔ᄇᆡᆨ오십일년 【쳘종 이년】 십이월 ᄉᆞᆷ십일일에 {{du|오}}황이 다시 조셔ᄅᆞᆯ 나려...
39263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우ᄃᆡᄒᆞ야 경즁의 폐단이 업게 ᄒᆞ니 이에 ᄇᆡᆨ셩이 다 심만의족ᄒᆞ야 환희고무ᄒᆞ더라 연이 {{du|오}}황의 이 거조ᄂᆞᆫ 츌어부득이요 진심이 아니라 겨우 대란을 평졍ᄒᆞᄆᆡ ᄉᆞᆷ년이 못ᄒᆞ야 소위 신졔도ᄂᆞᆫ 다 유명무실이러니 일쳔팔ᄇᆡᆨ오십일년 【쳘종 이년】 십이월 ᄉᆞᆷ십일일에 {{du|오}}황이 다시 조셔ᄅᆞᆯ 나려 모든 신법은 일졔히 혁파ᄒᆞ고 다시 ᄇᆡᆨ셩을 학ᄃᆡᄒᆞ더라
{{du|오}}민이 다시 도탄에 드럿스나 오직 학교ᄂᆞᆫ 신법 이후에 점점 확장ᄒᆞ야 민간에 아ᄒᆡ 륙셰로붓터 십이셰ᄭᅡ지 다 학당에 들고 경비ᄂᆞᆫ 관가로셔 판급ᄒᆞ니 이에 독셔ᄒᆞᄂᆞᆫ 아ᄒᆡ ᄇᆡᆨ인 즁 칠팔십인이라 글 읽ᄂᆞᆫ 소ᄅᆡ 처처에 만터라
{{du|구쥬}} 각국이 이믜 다 ᄇᆡᆨ셩이 나라의 근본이 됨을 알고 션졍을 ᄒᆡᆼᄒᆞ거눌 구구ᄒᆞᆫ 한 {{du|오국}}이 엇지 타국과 달니 ᄇᆡᆨ셩을 압졔ᄒᆞ리요 일쳔팔ᄇᆡᆨ륙십년【쳘종 십일년】에 {{du|오}}황 {{u|약슬}}이 홀연히 령을 나려 왈 이졔 짐이 ᄭᆡ다랏노라 치국ᄒᆞᆷ은 반다시 상하ㅣ 상통ᄒᆞᆷ이 올타 ᄒᆞ고 곳 의원을 셰워 대소 신민이 다 거관ᄒᆞᄂᆞᆫ 권이 잇게 ᄒᆞ고 오월 일일에 ᄯᅩ 령ᄒᆞ야 왈 이졔 의원을 셰웟스니 국가에 리익이 여긔 잇다 ᄒᆞ고 일쳔팔ᄇᆡᆨ륙십칠년【대군쥬 사년】에 이르러ᄂᆞᆫ {{du|오국}}이 향일에 두호ᄒᆞ든 {{du|일이만}} 동뉴인만 거관ᄒᆞᄂᆞᆫ 권을 쥴 ᄲᅮᆫ 아니라 지어 {{du|아라사}} 동뉴의 {{du|{{sic|황|항}}가리}}인도 다 거관ᄒᆞᄂᆞᆫ 권을 가지게 ᄒᆞ니 이럼으로 {{du|항가리}}인이 {{du|오}}황과 {{du|오}}후ᄅᆞᆯ 청ᄒᆞ야 {{du|ᄑᆡ사특}}에<ref>페쉬트(Pesth)</ref> 이르러 존호ᄅᆞᆯ 올녀 왈 {{du|항가리}}왕 {{du|항가리}}왕비라 ᄒᆞ니 그 ᄋᆡᄃᆡᄒᆞᄂᆞᆫ 졍을 가지러라
이ᄯᅢ에 {{du|오}}병이 {{du|보로사}}의게 ᄑᆡᄒᆞ야 젼일 {{du|의ᄃᆡ리}}에 어덧든 ᄯᅡ도 ᄯᅩᄒᆞᆫ {{du|의ᄃᆡ리}}에 돌녀보ᄂᆡ고 {{du|일이만}}의 ᄆᆡᆼ주도 ᄯᅩ {{du|보국}}에 ᄲᆡ앗기ᄆᆡ 험조간난을 다 렬녁ᄒᆞᆫ지라 {{du|오}}왕이 이에 강ᄀᆡ히 신민다려 일너 왈 {{du|오국}}이 비록 일ᄑᆡ도지 ᄒᆞ얏스나 만일 녀졍도치ᄒᆞ면 {{du|구쥬}} 각국에 아ᄅᆡ 되지 아닐지라 짐이 비록 어리셕으나 젼ᄉᆞ의 그르믈 다 아랏노라 대져 국가 졔도ㅣ 올치 아니ᄒᆞ야 이 지경에 이르럿더니 이졔 법을 곳쳐 ᄇᆡᆨ셩이 다 ᄌᆞ유ᄌᆞᄌᆡᄒᆞ야 속박됨이 업스니 ᄇᆡᆨ셩이 ᄌᆞ연 붓죳칠 거시요 ᄯᅩ 텬하에 빙권ᄌᆞ셰ᄒᆞᄂᆞᆫ 나라ᄂᆞᆫ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dko6e9kbqzihut7wp7q9r8fdih1pjcx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95
250
101600
392631
2025-06-26T15:31:03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ᄆᆡ양 사사로이 민회 잇셔 국가의 대환을 짓거ᄂᆞᆯ 이졔 {{du|오국}}에 민회 업스니 이ᄂᆞᆫ 짐이 민심을 순히 ᄒᆞᆷ을 가지요 져 ᄇᆡᆨ셩의 질고ㅣ 상달치 못ᄒᆞᄂᆞᆫ ᄌᆞᄅᆞᆯ 다 직언불휘ᄒᆞ고 ᄯᅩ 의원이 잇셔 살피니 상하ㅣ 엇지 옹폐ᄒᆞᆫ 한이 잇스리요 ᄒᆞ더라 ᄃᆡ져 이 수어ᄅᆞᆯ 보면 {{du|오}}황이 ᄌᆞ강ᄒᆞᄂᆞᆫ 도...
39263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ᄆᆡ양 사사로이 민회 잇셔 국가의 대환을 짓거ᄂᆞᆯ 이졔 {{du|오국}}에 민회 업스니 이ᄂᆞᆫ 짐이 민심을 순히 ᄒᆞᆷ을 가지요 져 ᄇᆡᆨ셩의 질고ㅣ 상달치 못ᄒᆞᄂᆞᆫ ᄌᆞᄅᆞᆯ 다 직언불휘ᄒᆞ고 ᄯᅩ 의원이 잇셔 살피니 상하ㅣ 엇지 옹폐ᄒᆞᆫ 한이 잇스리요 ᄒᆞ더라 ᄃᆡ져 이 수어ᄅᆞᆯ 보면 {{du|오}}황이 ᄌᆞ강ᄒᆞᄂᆞᆫ 도리ᄅᆞᆯ 통달ᄒᆞ야 다시ᄂᆞᆫ 인민을 학ᄃᆡ치 아니ᄒᆞᆯ 거시요 일쳔팔ᄇᆡᆨ칠십ᄉᆞ년【대군쥬 십일년】에 ᄯᅩ 션유 왈 {{du|오}}민이 관원을 공쳔ᄒᆞ야 국ᄉᆞᄅᆞᆯ 의론ᄒᆞ니 아국에 다시 ᄂᆡ란이 업슬 거시요 ᄂᆡ졍이 정ᄒᆞ면 외국이 감히 침노치 못ᄒᆞ리니 ᄌᆞ강ᄒᆞᄂᆞᆫ 도리 여긔셔 더ᄒᆞᆷ이 업다 ᄒᆞ고 말이 더욱 명ᄇᆡᆨ투쳘 ᄒᆞ더라
::뎨ᄉᆞ졀 상무와 토산이라
{{du|오}}민이 란리지여에 다ᄒᆡᆼ이 국가ㅣ 졍령을 곳쳐 폐단이 졈졈 소졔ᄒᆞ야 증증일상ᄒᆞᄂᆞᆫ 긔상이 잇스니 통계 {{du|오국}} 인구 ᄉᆞᆷ쳔구ᄇᆡᆨ만에 ᄆᆡ년 ᄆᆡᄇᆡᆨ인 즁 ᄉᆡᆼ사 인수ᄅᆞᆯ 비교ᄒᆞ니 ᄃᆡ강 ᄒᆞᆫ ᄉᆞᄅᆞᆷ이 더 ᄉᆡᆼᄒᆞ고 상무도 ᄎᆞᄎᆞ 흥왕ᄒᆞ야 일쳔팔ᄇᆡᆨ팔십ᄉᆞ년【대군주 이십일년】에 입구 화물이 {{du|영}}금 륙쳔일ᄇᆡᆨ만 방이라 일쳔팔ᄇᆡᆨ칠십ᄉᆞ년【대군주 십일년】의 이쳔오ᄇᆡᆨ만 방 입구에 비ᄒᆞ면 돈연히 ᄉᆞᆷᄇᆡ가 더ᄒᆞ니 일로 미루워 보면 {{du|오}}민의 부ᄒᆞᆷ이 ᄯᅩᄒᆞᆫ ᄉᆞᆷᄇᆡ요 일쳔팔ᄇᆡᆨ팔십ᄉᆞ년【대군주 이십일년】에ᄂᆞᆫ 츌구 화물이 {{du|영}}금 륙쳔구ᄇᆡᆨ만 방이 되니 일쳔팔ᄇᆡᆨ륙십오년【대군쥬 이년】에 ᄉᆞᆷ쳔ᄉᆞᄇᆡᆨ만 방과 비ᄒᆞ면 츌구화ㅣ ᄯᅩᄒᆞᆫ 갑졀이 더ᄒᆞ니 {{du|오국}}의 토산이 ᄯᅩᄒᆞᆫ 봉봉발발ᄒᆞ야 막지 못ᄒᆞᆷ을 가지요 토산이 이믜 만흐ᄆᆡ 금은이 츙일ᄒᆞ야 릉히 여ᄌᆡ로 외국 물건을 ᄉᆞ고 {{du|오국}}의 농민은 원ᄅᆡ ᄉᆞᆷ분지 이라 농ᄉᆞ지여에 ᄯᅩ 산에 드러 조흔 ᄌᆡ목을 작벌ᄒᆞ야 파ᄂᆞᆫ 고로 츌구화 즁 량식과 ᄌᆡ목이 뎨일이 되고 ᄯᅩ 가ᄂᆞᆫ 측과 굴근 ᄉᆞᆷ과 과실로 비진 술과 감남으로 ᄶᆞ은 기름이 다 토산이요 ᄯᅩ 양의 털로 ᄌᆞ리ᄅᆞᆯ 직조ᄒᆞ고 남방 ᄉᆞᄅᆞᆷ은 양ᄌᆞᆷ을 잘ᄒᆞ야 ᄆᆡ년 실 갑시 {{du|영}}금 이ᄇᆡᆨ이십오만 방이요 농가에셔 ᄯᅩ 겸ᄒᆞ야 벌을 길너 벌의 통이 일쳔오ᄇᆡᆨ만 좌히 되고 ᄆᆡ년 ᄭᅮᆯ 갑시 {{du|영}}금 팔ᄇᆡᆨ만 방이 되니 대져 양과 누에와 벌은 비록 동물로 획리ᄒᆞᄂᆞᆫ 거시나 그 풀의 아름다옴과 ᄲᅩᆼ의 번셩ᄒᆞᆷ과 ᄇᆡᆨ화의 고음을 알 거시요 ᄯᅩ ᄀᆡ광ᄒᆞᄂᆞᆫ 리 잇셔 ᄆᆡ년 갑시 항상 {{du|영}}금 구ᄇᆡᆨ만 {{sic|ᄇᆡᆨ}}에<ref>영국 화폐 단위 (sterling)</ref> 이르더라
{{nop}}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2qe34xg85keuawtmcytslt8yb0qcvbo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96
250
101601
392632
2025-06-26T15:31:28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근년에 {{du|오}}졍이 ᄇᆡᆨ셩을 권장ᄒᆞ야 긔계로 물화ᄅᆞᆯ 직조ᄒᆞ게 ᄒᆞ고 ᄒᆡ관에 입구셰ᄅᆞᆯ 즁히 ᄒᆞ니 당장에 현효ᄂᆞᆫ 업스나 발셔 단예가 보이니 통계ᄒᆞ야 털로 직조ᄒᆞᄂᆞᆫ 자ㅣ 졍자 칠십오만 ᄀᆡ【서인이 직조의 다과ᄅᆞᆯ 상고ᄒᆞᆯᄉᆡ 실과 ᄉᆞ에 다 틀이 잇고 그 틀 ᄒᆞ나에 졍ᄌᆞ<ref>가락(spindle)</ref> 하...
39263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근년에 {{du|오}}졍이 ᄇᆡᆨ셩을 권장ᄒᆞ야 긔계로 물화ᄅᆞᆯ 직조ᄒᆞ게 ᄒᆞ고 ᄒᆡ관에 입구셰ᄅᆞᆯ 즁히 ᄒᆞ니 당장에 현효ᄂᆞᆫ 업스나 발셔 단예가 보이니 통계ᄒᆞ야 털로 직조ᄒᆞᄂᆞᆫ 자ㅣ 졍자 칠십오만 ᄀᆡ【서인이 직조의 다과ᄅᆞᆯ 상고ᄒᆞᆯᄉᆡ 실과 ᄉᆞ에 다 틀이 잇고 그 틀 ᄒᆞ나에 졍ᄌᆞ<ref>가락(spindle)</ref> 하나식이 잇셔 그 졍ᄌᆞᄅᆞᆯ 셰이면 그 다소ᄅᆞᆯ 알미라】가 되고 면화와 사의 졍자ᄂᆞᆫ 이ᄇᆡᆨ만 ᄀᆡ가 되니 만일 {{du|영국}} 직조창에 졍ᄌᆞ 오쳔만 ᄀᆡ와 {{du|미국}}의 일쳔만 ᄀᆡ와 비ᄒᆞ면 비록 대단히 젹으나 ᄎᆞᄎᆞ 오ᄅᆡ면 필연 가관이 잇슬 거시요 ᄯᅩ 셰갈포와 조흔 비단을 ᄶᆞ아 만치ᄂᆞᆫ 아니ᄒᆞ되 ᄉᆡᆼᄋᆡ 박ᄒᆞ지 아니ᄒᆞ고 ᄯᅩ 술을 잘 비져 술집이 ᄉᆞᆷ쳔이ᄇᆡᆨ 처ㅣ 되고 ᄆᆡ년 술 츌구가 십오만만 근이 되고 【ᄆᆡ근 십륙냥】 ᄯᅩ ᄉᆞ탕 졔조창이 이ᄇᆡᆨ 처이라 ᄆᆡ년 홍당무 소용이 【홍당무ᄂᆞᆫ ᄉᆞ탕 졔조ᄒᆞᄂᆞᆫ 거시라】 {{du|영}}칭 일ᄇᆡᆨ이십오만 돈이요 【{{du|청국}}은 감졔로 ᄉᆞ탕을 졔조ᄒᆞ고 {{du|오국}}은 홍당무로 졔조ᄒᆞᆷ이라】 슉피ᄅᆞᆯ 졔조ᄒᆞᆷ과 조희ᄅᆞᆯ 쓰ᄂᆞᆫ 자ㅣ 잇셔 각국이 다 리익을 보고 기즁 더욱 공교ᄒᆞᆫ ᄌᆞᄂᆞᆫ 편리ᄒᆞᆫ 젹은 긔계ᄅᆞᆯ ᄆᆡᆫ드러 그림 그리ᄂᆞᆫ 긔계와 의약에 쓰ᄂᆞᆫ 침과 칼이며 악공의 ᄉᆡᆼ황과 비파와 쥭방울과 통소가 다 셰상에 유명ᄒᆞ더라
{{du|오국}} 쳘로ᄂᆞᆫ ᄉᆞ만 이쳔리요 국가ㅣ 우졍국을 셜립ᄒᆞ야 ᄆᆡ인 ᄆᆡ년에 십이 봉식 되니 {{du|영국}}에 비ᄒᆞ면 겨우 ᄉᆞᆷ분 일이요 젼보ᄂᆞᆫ 셜시ᄒᆞᆫ지 오ᄅᆡ지 아니ᄆᆡ 민간이 그 리익을 아지 못ᄒᆞ야 ᄆᆡ년에 칠인을 합ᄒᆞ야 겨우 한 봉이 되더라
::뎨오졀 국채라
{{du|오국}}의 국채 ᄯᅩᄒᆞᆫ 적지 아니ᄒᆞ니 일쳔칠ᄇᆡᆨ팔십구년【뎡종 십ᄉᆞᆷ년】에ᄂᆞᆫ {{du|영}}금 ᄉᆞᆷ쳔오ᄇᆡᆨ만 방이러니 구십 여년 ᄅᆡ로 년년이 증가ᄒᆞ야 ᄉᆞᆷ만오쳔ᄉᆞᆷᄇᆡᆨ만 방에 이르니 젼에 비ᄒᆞ면 곳 십ᄇᆡ라 대져 {{du|오국}}은 국용이 입불부츌ᄒᆞ야 금년에ᄂᆞᆫ 명년이 나흘가 바라고 명년에ᄂᆞᆫ ᄯᅩ 후명년이나 무ᄉᆞᆷ 도리 잇슬가 ᄒᆞ다가 필경 이 지경에 이르니 {{du|구쥬}} 각국에 이다지 츌입이 상젹지 못ᄒᆞᆫ 나라ᄂᆞᆫ 업스며 지어 ᄆᆡ년 셰츌은 {{du|영}}금 륙쳔ᄉᆞᄇᆡᆨ만 방이 되니 {{du|영국}} 셰츌과 근ᄉᆞᄒᆞ고 그 셰입 거두ᄂᆞᆫ 법을 보면 두 가지 용렬ᄒᆞᆫ 일이 잇스니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2avaevlkiq7zg12vlcca7nf31dqdw4e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97
250
101602
392633
2025-06-26T15:31:51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일은 국가로셔 산통계표ᄅᆞᆯ 방ᄆᆡᄒᆞ며 【{{du|셔반아}}이 {{du|여송}}표<ref>루손(Luson, Philippine)</ref> 팜과 갓틈이라】 일은 념셰요 【{{du|청국}} 탁지 셰입 즁 가장 거관이 념셰라 셔인이 ᄆᆡ양 그 학졍됨을 비소ᄒᆞ거ᄂᆞᆯ {{du|오국}}이 {{du|청국}}과 갓더라】 국가 셰츌에ᄂᆞᆫ ᄇᆡᆨ셩의게 ᄒᆞᆫ가지 큰 리익이 잇스니 학교 경비라 ᄆᆡ년...
39263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일은 국가로셔 산통계표ᄅᆞᆯ 방ᄆᆡᄒᆞ며 【{{du|셔반아}}이 {{du|여송}}표<ref>루손(Luson, Philippine)</ref> 팜과 갓틈이라】 일은 념셰요 【{{du|청국}} 탁지 셰입 즁 가장 거관이 념셰라 셔인이 ᄆᆡ양 그 학졍됨을 비소ᄒᆞ거ᄂᆞᆯ {{du|오국}}이 {{du|청국}}과 갓더라】 국가 셰츌에ᄂᆞᆫ ᄇᆡᆨ셩의게 ᄒᆞᆫ가지 큰 리익이 잇스니 학교 경비라 ᄆᆡ년 {{du|영}}금 일ᄇᆡᆨ칠십오만 방이 되더라 【ᄎᆞ외에 ᄯᅩ 각 디방의 보조ᄒᆞᄂᆞᆫ 금ᄋᆡᆨ이 잇셔 가관ᄒᆞᆯ 자ㅣ 만터라】
::뎨륙졀 병비라
{{du|오국}} 병비 ᄯᅩᄒᆞᆫ {{du|구쥬}}의 풍긔 잇셔 유용ᄒᆞᆫ ᄌᆡ물을 헛되이 바리니 그 법에 남자ㅣ 장셩ᄒᆞ면 군젹에 너허 ᄉᆞᆷ년 긔한이 ᄎᆞ면 ᄯᅩ 예비병에 들게 ᄒᆞ고 칠년이 지ᄂᆡᆫ 후에야 비로소 군젹에 졔안ᄒᆞ고 그 졔안ᄒᆞ기 젼에ᄂᆞᆫ 젼ᄌᆡᆼ이 잇스면 다 나가 ᄊᆞ오ᄂᆞᆫ 고로 승평ᄒᆞᆯ ᄯᅢ에 ᄋᆡᆨ병이 ᄉᆞᆷ십만이요 만일 병련화결ᄒᆞ야 대젼이 되면 가히 일ᄇᆡᆨ만 명을 조발ᄒᆞᆯ 거시요 {{du|오국}}은 본ᄅᆡ 연ᄒᆡ변이 만치 아니ᄒᆞ나 ᄯᅩᄒᆞᆫ 병함을 예비ᄒᆞ고 ᄯᅩ 기즁 쳘갑션이 심다ᄒᆞ야 군비가 과다ᄒᆞ더라
{{nop}}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c5y8jnxvm9kaylapzb34cc71765kjqf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98
250
101603
392634
2025-06-26T15:32:15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ᄐᆡ셔신사 권십팔 :{{du|영국}} {{u|마간셔}} 원본 {{u|리졔마ᄐᆡ}} 번역 {{du|청국}} {{u|채이강}} 슐고 ::{{du|의대리국}}이라 【ᄯᅩ 일홈ᄒᆞ야 왈 {{du|의국}}이라】 ::뎨일졀 {{du|나마}}국이 ᄑᆡᄒᆞᆫ 후 졍형이라 {{du|즁국}} 한나라 ᄯᅢ【{{du|신라}} 시】에 ᄐᆡ셔에 ᄒᆞᆫ 대국이 잇스니 {{du|구라파}}의 남편 졀반과 {{du|아비리가}}의 븍편 졀반과 {{...
392634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ᄐᆡ셔신사 권십팔
:{{du|영국}} {{u|마간셔}} 원본 {{u|리졔마ᄐᆡ}} 번역 {{du|청국}} {{u|채이강}} 슐고
::{{du|의대리국}}이라 【ᄯᅩ 일홈ᄒᆞ야 왈 {{du|의국}}이라】
::뎨일졀 {{du|나마}}국이 ᄑᆡᄒᆞᆫ 후 졍형이라
{{du|즁국}} 한나라 ᄯᅢ【{{du|신라}} 시】에 ᄐᆡ셔에 ᄒᆞᆫ 대국이 잇스니 {{du|구라파}}의 남편 졀반과 {{du|아비리가}}의 븍편 졀반과 {{du|아셰아}} 셔편 졀반 모든 유명ᄒᆞᆫ 나라ᄅᆞᆯ 합ᄒᆞ야 ᄒᆞᆫ 나라이 되고 인구ᄂᆞᆫ 오쳔ᄉᆞᄇᆡᆨ만이요 【혹 말ᄒᆞ되 이ᄯᅢ {{du|한}}나라 인민이 오쳔구ᄇᆡᆨ만이 된다 ᄒᆞ나 {{du|당}}나라ᄂᆞᆫ 불과 ᄉᆞ쳔만이 되니 대져 인구ᄂᆞᆫ ᄌᆞ고 이ᄅᆡ로 점점 느러 왓스니 연즉 {{du|한}}나라 인민이 당나라보다 지나지 못ᄒᆞᆷ을 가히 알너라】 그 도셩이 지금 {{du|의대리국}} {{du|나마}}부에 잇ᄂᆞᆫ 고로 국명을 {{du|나마}}라 ᄒᆞ고 수ᄇᆡᆨ년을 젼ᄒᆞ야 둘에 난호와 {{du|군ᄉᆞ단졍}}<ref>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ref>【즉금 {{du|토이기}} 도셩이라】에 도읍ᄒᆞᆫ ᄌᆞᄂᆞᆫ 동{{du|나마}}가 되고 {{du|나마}} 고국은 셔{{du|나마}}히 되야 인위 {{du|나마}}로 도셩을 ᄉᆞᆷ더니 ᄯᅩ 수ᄇᆡᆨ년을 지나ᄆᆡ 셔{{du|나마}}ㅣ 항상 {{du|구쥬}} 븍방 흉노의 만모ᄅᆞᆯ 당ᄒᆞ야 심지어 그 도셩을 쳔답ᄒᆞ고 부고ᄅᆞᆯ 노략ᄒᆞ며 옥토ᄅᆞᆯ ᄲᆡ앗기니 {{du|나마}}의 형셰 돈연히 쇠미ᄒᆞ고 ᄯᅩ {{du|고탁}}<ref>고스(Goth)</ref> 부락 ᄉᆞᄅᆞᆷ들과 {{du|륜파졔}} 부락 ᄉᆞᄅᆞᆷ과 {{du|법난극}}<ref>프랑크(Frank)</ref> 부락 ᄉᆞᄅᆞᆷ 【{{du|법난서}} 인종과 근ᄉᆞᄒᆞᆫ ᄉᆞᄅᆞᆷ이라】과 {{du|일이만}} ᄉᆞᄅᆞᆷ들이 분분히 소요 겁탈ᄒᆞ기ᄅᆞᆯ 마지 아니ᄒᆞ니 {{du|나마}}ㅣ 그 릉학을 바드ᄆᆡ 엇지ᄒᆞᆯ길 업셔 ᄆᆡ양 금ᄇᆡᆨ을 쥬어 돌녀 {{sic|부|보}}ᄂᆡ기도 ᄒᆞ며 혹 져의 임의로 토디ᄅᆞᆯ 점령ᄒᆞ고 법도ᄅᆞᆯ 셰워 엄연이 {{du|의대리}} 인군과 갓튼 ᄌᆞ도 잇셔 【이ᄯᅢ에 {{du|나마}}ㅣ 변ᄒᆞ야 {{du|의대리}} 되얏더라】 여ᄎᆞ히 ᄉᆞᄇᆡᆨ년을 지나ᄆᆡ {{du|의대리}}의 잔약ᄒᆞᆷ을 말ᄒᆞᆯ 수 업더라
{{du|즁국}} {{du|송}}나라 ᄯᅢ【{{du|고려}}시】에 일으러 {{du|의대리}} 비로소 위엄을 ᄯᅥᆯ쳐 금셩 탕디에 옥야쳔리라 그 험요ᄒᆞᆫ 곳에ᄂᆞᆫ 포ᄃᆡᄅᆞᆯ ᄊᆞ코 군긔ᄅᆞᆯ 졔조ᄒᆞ며 위풍이 ᄉᆞ방에 진동ᄒᆞ니 셕일 븍방 도젹이 다시 감히 엿보지 못ᄒᆞ더라
{{nop}}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713yxjtfm2p7muhuazs81y6wbs6a2b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99
250
101604
392635
2025-06-26T15:32:50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국셰 이믜 졍ᄒᆞᄆᆡ 군신 상하ㅣ 다 부요ᄒᆞᆫ 긔상이 잇더니 력ᄃᆡ 이ᄅᆡ로 셩외의 거ᄒᆞᄂᆞᆫ 부호ㅣ 왕왕이 그 형셰ᄅᆞᆯ 밋고 소민을 학ᄃᆡᄒᆞ니 소민이 다 ᄑᆡᄒᆞ야 셩ᄂᆡ로 들어오니 이럼으로 셩외에 인연이 요락ᄒᆞ고 젼답이 황무ᄒᆞ거ᄂᆞᆯ 부호ㅣ 후회막급ᄒᆞ야 젼일 긔습을 곳치니 이에 소민이 환향ᄒᆞᄂᆞᆫ 자ㅣ...
39263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국셰 이믜 졍ᄒᆞᄆᆡ 군신 상하ㅣ 다 부요ᄒᆞᆫ 긔상이 잇더니 력ᄃᆡ 이ᄅᆡ로 셩외의 거ᄒᆞᄂᆞᆫ 부호ㅣ 왕왕이 그 형셰ᄅᆞᆯ 밋고 소민을 학ᄃᆡᄒᆞ니 소민이 다 ᄑᆡᄒᆞ야 셩ᄂᆡ로 들어오니 이럼으로 셩외에 인연이 요락ᄒᆞ고 젼답이 황무ᄒᆞ거ᄂᆞᆯ 부호ㅣ 후회막급ᄒᆞ야 젼일 긔습을 곳치니 이에 소민이 환향ᄒᆞᄂᆞᆫ 자ㅣ 점점 만하 다시 셕일 긔상이 잇더라
당시에ᄂᆞᆫ {{du|구쥬}} 각국이 다 교화ㅣ 업셔 우쥰ᄒᆞᆫ 모양이 가소롭고 오직 {{du|의대리}}ᄂᆞᆫ {{du|즁국}} {{du|븍송}} ᄐᆡ조 이후로 【고려시】 ᄉᆞᆷᄇᆡᆨ년을 문물이 융성ᄒᆞ고 젼답의 거름ᄒᆞᄂᆞᆫ 법이 잇셔 추슈ㅣ 젼일보다 갑졀이요 농민의 의식이 요족ᄒᆞ고 기즁 {{du|륜파졔}}와 {{du|토사가니}}<ref>투스카니(Tuscany)</ref> 냥ᄉᆡᆼ은 더욱 농ᄉᆞ법을 아ᄂᆞᆫ 고로 만국의 농민이 다 그 법을 효측ᄒᆞ며 부호ᄂᆞᆫ ᄌᆞ본을 ᄂᆡ여 공작 졔조창을 셜시ᄒᆞᄆᆡ ᄶᆞᄂᆞᆫ 비단이 졍미ᄒᆞ고 ᄯᅩ 면화와 베의 후ᄑᆡᄒᆞ야 바리ᄂᆞᆫ 거슬 가져다가 조희ᄅᆞᆯ ᄯᅳ며 유리로 거울을 ᄆᆡᆫ들며 조각ᄒᆞᄂᆞᆫ 그림이 일시에 읏듬이 되고 상고ᄂᆞᆫ 각국을 ᄅᆡ왕ᄒᆞ야 륙도ᄂᆞᆫ 동방 {{du|아셰아}}의 물화ᄅᆞᆯ 약ᄃᆡ의게 싯고 ᄉᆞ막 ᄯᅡ으로 단이며 수로ᄂᆞᆫ {{du|홍ᄒᆡ}}로 {{du|디즁ᄒᆡ}}ᄭᅡ지 본국 {{du|ᄇᆡ셜니}}ᄒᆡ에<ref>베니스(Venice)</ref> 이르니 이에 {{du|구라파}} {{du|아셰아}}의 무역이 ᄐᆡ반이나 {{du|의ᄃᆡ리}} 상고 장악 중에 잇스니 이럼으로 농공상이 다 크게 부요ᄒᆞ고 ᄯᅩ 당시에 {{du|구쥬}} 각국이 {{du|유ᄐᆡ}}국의 셩젹이 【셩젹은 {{u|야소}} 강셩ᄒᆞᆫ ᄌᆞ최라】 회회교인【븍방 도젹의 종락이라】의 졈거ㅣ 될가 염녀ᄒᆞ야 각기 중병을 보ᄂᆡ여 회인과 ᄊᆞ온지 이ᄇᆡᆨ여년에 비로소 병화ㅣ 침식ᄒᆞ니 기간 젼ᄌᆡᆼ시에 군량과 치중을 다 {{du|의ᄃᆡ리}} 션쳑에 수운ᄒᆞᄆᆡ {{du|비셜니}} 항구에 잇ᄂᆞᆫ 상고ㅣ 그 허다ᄒᆞᆫ 물건을 싯고 바든 션가만 ᄒᆞ야도 ᄯᅩᄒᆞᆫ 불가승수요 ᄃᆡ져 {{du|의ᄃᆡ리}} 항구ㅣ 셋시 잇스니 일은 {{du|비셜니}}요 일은 {{du|피사}}요<ref>피사(Pisa)</ref> 일은 {{du|경나아}}ㅣ라<ref>제노바(Genova)</ref> {{du|구쥬}} 각국의 션쳑을 통합ᄒᆞ야도 이 ᄉᆞᆷ 항구ᄅᆞᆯ ᄯᅡ르지 못ᄒᆞᄂᆞᆫ 고로 이 ᄉᆞᆷ 항구에셔 독히 {{du|구라파}} 상무 대권을 가져 ᄌᆞ고 이ᄅᆡ에 쳐음이 되더라
이ᄯᅢ에 {{du|영국}} 도셩 {{du|륜돈}}과 {{du|법국}} 도셩 {{du|파리}}ᄂᆞᆫ 다 큰 도회라 연이나 그 셩즁에 토실과 초가집이 ᄐᆡ반이요 심지어 거친 풀이 무셩ᄒᆞᆫ 곳이 잇고 {{du|의대리}}ᄂᆞᆫ 층누쳡각이 반공에 솟고 화동 조량과 분벽 ᄉᆞ창이 광채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s5duzwysghhsqq12k53zp3cmi76hnes
페이지:언역 분류두공부시 (003).pdf/51
250
101605
392636
2025-06-26T15:36:06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酷見凍餒不足恥 多病沈年苦無健 【얼며 주류믈 ᄀᆞ장 보ᄆᆞᆫ 足히 붓그럽디 아니ᄒᆞ니 病 하며 ᄒᆡ 기퍼 심히 健壯호미 업세라】 王生怪我顔色惡 答云伏枕艱難遍 【王生이 내의 ᄂᆞᆺ비치 사오나오ᄆᆞᆯ 怪異히 너기ᄂᆞ니 對答ᄒᆞ야 닐오ᄃᆡ 벼개예 굽스러 어려우미 ᄀᆞᄃᆞᆨᄒᆞ야라】 瘧癘三秋孰可忍 寒熱百日相交戰 【세 ᄀ...
392636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酷見凍餒不足恥 多病沈年苦無健 【얼며 주류믈 ᄀᆞ장 보ᄆᆞᆫ 足히 붓그럽디 아니ᄒᆞ니 病 하며 ᄒᆡ 기퍼 심히 健壯호미 업세라】
王生怪我顔色惡 答云伏枕艱難遍 【王生이 내의 ᄂᆞᆺ비치 사오나오ᄆᆞᆯ 怪異히 너기ᄂᆞ니 對答ᄒᆞ야 닐오ᄃᆡ 벼개예 굽스러 어려우미 ᄀᆞᄃᆞᆨᄒᆞ야라】
瘧癘三秋孰可忍 寒熱百日相交戰 【세 ᄀᆞᄋᆞᆯ히도록 고브ᇝ 病 알호ᄆᆞᆯ 뉘 可히 ᄎᆞᄆᆞ리오 치위와 더위왜 온 나ᄅᆞᆯ 서로 섯거 사호ᄂᆞ다】
頭白眼暗坐有胝 肉黃皮皺命如綫 【胝ᄂᆞᆫ 皮厚也ㅣ니 久坐不起故로 有胝라 ○ 머리 셰오 누니 어듭고 안자쇼매 ᄉᆞᆯ햇 가치 둣거우미 잇ᄂᆞ니 ᄉᆞᆯ히 누르고 가치 설지고 목수미 실낫 ᄀᆞᆮ호라】
王生哀我未平復 爲我力致美肴膳 【此下로 至終宴ᄋᆞᆫ 極感設饌殷勤之意ᄒᆞ다 ○ 이 소니 내의 病 됴치 못호ᄆᆞᆯ 어엿비 너겨 나ᄅᆞᆯ 爲ᄒᆞ야 됴ᄒᆞᆫ 차바ᄂᆞᆯ 힘ᄡᅥ 닐위ᄂᆞ다】
遣人向市賖香粳 喚婦出房親自饌 【王生 呼其妻ᄒᆞ야 令作饌也ㅣ라 ○ 사ᄅᆞᆷ 브려 져재 가 옷고ᄉᆞᆫ ᄡᆞᄅᆞᆯ 사고 겨집 블러 房ᄋᆡ 나 親히 스싀로 차반 ᄆᆡᆼᄀᆞᆯ라 ᄒᆞᄂᆞ다】
長安冬葅酸且綠 金城土酥靜如練 【金城ᄋᆞᆫ 縣名이라 酥ᄂᆞᆫ 以羊乳로 爲之也ㅣ라 ○ 長安앳 겨ᄋᆞᆳ 디히ᄂᆞᆫ 싀오 ᄯᅩ ᄑᆞᄅᆞ고 金城ㅅ ᄯᅡ햇 酥ᄂᆞᆫ 조히 깁 ᄀᆞᆮ도다】
兼求畜豕且割鮮 密沽斗酒諧終宴 【鮮ᄋᆞᆫ 謂新殺者也ㅣ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hs8rk8zj5dmrxjm11tkcisbf5qq12g8
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14
250
101606
392637
2025-06-27T01:24:23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튱信신이ᄡᅥ德을進진ᄒᆞᄂᆞᆫ배오辭ᄉᆞᄅᆞᆯ修슈ᄒᆞ야그誠셩을立닙ᄒᆞ욤이ᄡᅥ業업에居거ᄒᆞᄂᆞᆫ배라至지ᄒᆞᆯᄃᆡᄅᆞᆯ알아至지ᄒᆞ논디라可가히더브러㡬긔ᄒᆞᆯ거시며終죵ᄒᆞᆯᄃᆡᄅᆞᆯ알아終죵ᄒᆞ논디라可가히더브려義의ᄅᆞᆯ存존ᄒᆞᆯ거시니이런故고로上상位위예居거ᄒᆞ야驕교티아니ᄒᆞ며下하位위예在ᄌᆡᄒᆞ야憂우티...
392637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튱信신이ᄡᅥ德을進진ᄒᆞᄂᆞᆫ배오辭ᄉᆞᄅᆞᆯ修슈ᄒᆞ야그誠셩을立닙ᄒᆞ욤이ᄡᅥ業업에居거ᄒᆞᄂᆞᆫ배라至지ᄒᆞᆯᄃᆡᄅᆞᆯ알아至지ᄒᆞ논디라可가히더브러㡬긔ᄒᆞᆯ거시며終죵ᄒᆞᆯᄃᆡᄅᆞᆯ알아終죵ᄒᆞ논디라可가히더브려義의ᄅᆞᆯ存존ᄒᆞᆯ거시니이런故고로上상位위예居거ᄒᆞ야驕교티아니ᄒᆞ며下하位위예在ᄌᆡᄒᆞ야憂우티아니ᄒᆞᄂᆞ니故고로乾건乾건ᄒᆞ야그時시ᄅᆞᆯ因인ᄒᆞ야惕텩ᄒᆞ면비록危위ᄒᆞ나咎구ㅣ없스리라
九구四ᄉᆞ曰왈或혹躍약在ᄌᆡ淵연无무咎구{{작게|ᄂᆞᆫ}}何하謂위也야오子ᄌᆞ{{작게|ㅣ}}曰왈上샹下하無무常샹{{작게|이}}非비爲위邪샤也야{{작게|ㅣ며}}進진退퇴无무恒ᄒᆞᆼ{{작게|이}}非비離리羣근也야{{작게|ㅣ라}}君군子ᄌᆞ進진德덕修슈業업{{작게|은}}欲욕及급時시也야{{작게|ㅣ니}}故고로<noinclude><references/></noinclude>
pfr6nh6fzm8ha1yvifb7tzvwo55hjmi
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15
250
101607
392638
2025-06-27T01:43:09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无무咎구{{작게|ㅣ니라}}<br> :九구四ᄉᆞ애ᄀᆞᆯ오ᄃᆡ或혹躍약在ᄌᆡ淵연无무咎구ᄂᆞᆫ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上샹ᄒᆞ며下하홈이常샹이없슴이邪샤ᄅᆞᆯᄒᆞ욤이아니며進진ᄒᆞ며退퇴홈이恒ᄒᆞᆼ이업슴이羣군을離리ᄒᆞ욤이아니라君군子ᄌᆡ德덕을進진ᄒᆞ며業업을修슈홈은時시예及급고져홈이니故고로咎구ㅣ업스니라<br> 九구五오曰...
392638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无무咎구{{작게|ㅣ니라}}<br>
:九구四ᄉᆞ애ᄀᆞᆯ오ᄃᆡ或혹躍약在ᄌᆡ淵연无무咎구ᄂᆞᆫ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上샹ᄒᆞ며下하홈이常샹이없슴이邪샤ᄅᆞᆯᄒᆞ욤이아니며進진ᄒᆞ며退퇴홈이恒ᄒᆞᆼ이업슴이羣군을離리ᄒᆞ욤이아니라君군子ᄌᆡ德덕을進진ᄒᆞ며業업을修슈홈은時시예及급고져홈이니故고로咎구ㅣ업스니라<br>
九구五오曰왈飛비龍룡在ᄌᆡ天텬利리見견大대人인은何하謂위也야{{작게|오}}子ᄌᆞㅣ曰왈同동聲셩相샹應응{{작게|ᄒᆞ며}}同동氣긔相샹求구{{작게|ᄒᆞ야}}水슈流류濕습{{작게|ᄒᆞ며}}火화就ᄎᆔ燥조{{작게|ᄒᆞ며}}雲운從죵龍룡{{작게|ᄒᆞ며}}風풍從죵虎호{{작게|ㅣ라}}聖셩人인{{작게|이}}作작而이萬만物믈{{작게|이}}都도{{작게|ᄒᆞᄂᆞ니}}本본乎호天텬者쟈{{작게|ᄂᆞᆫ}}親친上샹ᄒᆞ고本본<noinclude><references/></noinclude>
6sv2by06v9xq7k0ota9zcl0zd04axnb
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16
250
101608
392639
2025-06-27T02:10:00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乎흐地디者쟈{{작게|ᄂᆞᆫ}}親친下하{{작게|ᄒᆞᄂᆞ니}}則즉各각從죵其기類류也야{{작게|ㅣ니라}} :九구五오애ᄀᆞᆯ오ᄃᆡ飛비龍룡在ᄌᆡ天텬利리見견大대人인은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同동ᄒᆞᆫ聲셩이서ᄅᆞ應응ᄒᆞ며同ᄒᆞᆫ氣긔ㅣ서ᄅᆞ求구ᄒᆞ야水슈ㅣ濕습애流류ᄒᆞ며火화ㅣ燥조애就츄ㅣᄒᆞ며雲운이龍룡을終죵ᄒᆞ며風풍이虎호...
39263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乎흐地디者쟈{{작게|ᄂᆞᆫ}}親친下하{{작게|ᄒᆞᄂᆞ니}}則즉各각從죵其기類류也야{{작게|ㅣ니라}}
:九구五오애ᄀᆞᆯ오ᄃᆡ飛비龍룡在ᄌᆡ天텬利리見견大대人인은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同동ᄒᆞᆫ聲셩이서ᄅᆞ應응ᄒᆞ며同ᄒᆞᆫ氣긔ㅣ서ᄅᆞ求구ᄒᆞ야水슈ㅣ濕습애流류ᄒᆞ며火화ㅣ燥조애就츄ㅣᄒᆞ며雲운이龍룡을終죵ᄒᆞ며風풍이虎호ᄅᆞᆯ從죵ᄒᆞ논디라聖셩人인이作작홈애萬만物믈이覩도ᄒᆞᄂᆞ니天텬애本본ᄒᆞᆫ者쟈ᄂᆞᆫ上샹애親친ᄒᆞ고地디예本ᄒᆞᆫ者쟈ᄂᆞᆫ下하애親친ᄒᆞᄂᆞ니곧各각各각그類류를從죵홈이니라
上샹九구曰왈亢항龍룡有유悔회ᄂᆞᆫ何하謂위也야{{작게|ㅣ오}}子ᄌᆞㅣ曰왈貴귀而이无무位위{{작게|ᄒᆞ며}}高고而이무民민ᄒᆞ며賢<noinclude><references/></noinclude>
4y34349jqwgaa9us9m7hlm8h2uc7afa
페이지:(고대소설)몽결초한숑.djvu/10
250
101609
392640
2025-06-27T02:27:35Z
Sy.lee.kr
1730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그공을포장ᄒᆞ시옴이엇지아름답지아니ᄒᆞ오리잇가복망폐하ᄂᆞᆫ굽어삷히쇼셔옥졔그말을조치사즉시칙지를나리사져마무로염라왕을봉ᄒᆞ시고ᄇᆡᆨ모황월과운번보ᄀᆡ를ᄉᆞ급ᄒᆞ신ᄃᆡ쥬작판관이욱칙을밧자와디부에도라와젼ᄒᆞ니십ᄃᆡ왕이마무로더브러향안을ᄇᆡ셜ᄒᆞ고칙지를밧들어닑은후광록사를명ᄒᆞ야잔ᄎᆡ를베풀고...
39264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Sy.lee.kr"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그공을포장ᄒᆞ시옴이엇지아름답지아니ᄒᆞ오리잇가복망폐하ᄂᆞᆫ굽어삷히쇼셔옥졔그말을조치사즉시칙지를나리사져마무로염라왕을봉ᄒᆞ시고ᄇᆡᆨ모황월과운번보ᄀᆡ를ᄉᆞ급ᄒᆞ신ᄃᆡ쥬작판관이욱칙을밧자와디부에도라와젼ᄒᆞ니십ᄃᆡ왕이마무로더브러향안을ᄇᆡ셜ᄒᆞ고칙지를밧들어닑은후광록사를명ᄒᆞ야잔ᄎᆡ를베풀고마무로ᄒᆞ여곰복ᄉᆡᆨ을곳치게ᄒᆞ니마무텬은을슉사ᄒᆞ고이에머리에통텬관을쓰고몸에곤룡포를착ᄒᆞ고손에ᄇᆡᆨ올홀을쥐고ᄇᆡᆨ옥룡상에단졍히안져슴애긔우-엄슉ᄒᆞ고위풍이름々ᄒᆞ더라문무쳔관이차례로사ᄇᆡᄒᆞ고쳔셰를불너즐기ᄂᆞᆫ지라이ᄯᆡ마무-ᄉᆡ로렴라왕좌에즉위함ᄋᆡ젼상에ᄃᆡ연을ᄇᆡ셜ᄒᆞ고디부십젼명왕과사ᄌᆡ텬왕과사ᄒᆡ룡왕이며졔위보살과오ᄇᆡᆨ라한과문무졔신을ᄃᆡ졉ᄒᆞ니모도사례ᄒᆞ고죵일진환ᄒᆞᆫ후잔ᄎᆡ를파함ᄋᆡ각각도라가니라익일에ᄉᆡ염왕이즁관을모하의론왈ᄂᆡ이졔즁임을당ᄒᆞ엿슴ᄋᆡ쳔연ᄒᆞ야셰월만보ᄂᆡ지못ᄒᆞᆯ지라오날붓터졍사를다사릴지니ᄂᆡ드름ᄋᆡ디부에사ᄇᆡᆨ년을미결ᄒᆞᆫ대송이잇다ᄒᆞ니이무ᄉᆞᆷ어려온일이뇨쥬작판관이쥬왈이송사ᄂᆞᆫ다른숑사와갓지아니ᄒᆞᆫ지라옛날초한젹에모든호걸과영웅들이디부에드러와셔ᄊᆞ화숑ᄉᆞ를ᄒᆞ려ᄒᆞ오나능히결단치못ᄒᆞ온지라일로인ᄒᆞ와근심ᄒᆞᄂᆞᆫᄇᆡ로소이다염왕이소왈십왕이다지혜업스며문무쳔관이모다무용이로다이러ᄒᆞ고어이텬록을먹으리요ᄒᆞ고즉시문셔를드리라ᄒᆞ니쥬작판관이승명ᄒᆞ고ᄉᆞᄇᆡᆨ년묵은문셔를다가져오니그싸흔것이산과갓더라염왕이좌우를명ᄒᆞ야문셔를올니라ᄒᆞ야자셰히보니이■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m7glqldd8xqd7d4vt1e50cmsfsjs8fh
페이지:(고대소설)몽결초한숑.djvu/11
250
101610
392642
2025-06-27T02:34:45Z
Sy.lee.kr
1730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한나라태죠류방과려후와쳑부인과죠왕여의와쟝량과한신과소하와죠참과긴긔와왕릉과긔신과쥬가와종공과쥬발과하우영과ᄑᆡᆼ월과번쾌와싀무와쟝이와력이긔와영포와진희와난포와괵쳘과허부와진평과륙가와슈하와관영과한ᄉᆡᆼ과슉손통과력샹과ᄒᆡ연과부관과근흡과진무와왕흡과셜구와쥬챵과졍관과츙달과악쳔츄와장오와왕예와려다동...
39264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Sy.lee.kr"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한나라태죠류방과려후와쳑부인과죠왕여의와쟝량과한신과소하와죠참과긴긔와왕릉과긔신과쥬가와종공과쥬발과하우영과ᄑᆡᆼ월과번쾌와싀무와쟝이와력이긔와영포와진희와난포와괵쳘과허부와진평과륙가와슈하와관영과한ᄉᆡᆼ과슉손통과력샹과ᄒᆡ연과부관과근흡과진무와왕흡과셜구와쥬챵과졍관과츙달과악쳔츄와장오와왕예와려다동과려승과양희와진왕ᄌᆞ영과왕항과옹치와고긔와계포와셔초ᄑᆡ왕항젹과범증과룡져와죵리ᄆᆡ와쥬란과환초와우ᄌᆞ긔와우미인과졍공과은개와쟝감과사마흔과동예와왕리와항ᄇᆡᆨ과항장과항타와뎐횡과초부와강동ᄌᆞ졔팔쳔인등이다송ᄉᆞ문셔여날
렴왕이보기를다ᄒᆞ고왈이만송사를ᄉᆞᄇᆡᆨ년ᄭᆞ지두엇더뇨ᄒᆞ며차탄ᄒᆞ기를마지아니ᄒᆞ고즉시ᄉᆞ쟈쳔여명을각기검극을잡아좌우에셰우고문무쳔관을ᄃᆡ오를삼아동셔로분ᄒᆞ야안게ᄒᆞ고염왕이ᄇᆡᆨ옥룡상에단졍이좌졍이후친이붓을들고쥬작판관으로문셔를밧들어ᄒᆞ고우두라찰과마두라찰ᄇᆡᆨ여명으로ᄒᆞ여곰문밧게송사ᄒᆞᄂᆞᆫ사ᄅᆞᆷ을금지ᄒᆞ야요란히구지말고차례로ᄒᆞᆫ아식드리되착란치말며령ᄒᆞᄂᆞᆫᄃᆡ로불너드려무른후에쳐단ᄒᆞ리라ᄒᆞ고즉시한태죠류방을불너드려문왈그ᄃᆡ셰상에셔무ᄉᆞᆷ원통ᄒᆞᆫ일이잇서이에니르럿나뇨한태죠-왈
내쳑금포의로ᄑᆡᄐᆡᆨ에셔니러나강포ᄒᆞᆫ진을멸ᄒᆞ고무도ᄒᆞᆫ항우를잡고텬하를통일ᄒᆞᆫ후공이잇ᄂᆞᆫ졔쟝들각각봉작ᄒᆞ야그ᄃᆡ졉함이박지아니ᄒᆞᆷ이업셔날뎌의등이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2jqmrtvxbmubti34mi9pl7vuxn8s20r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35
250
101611
392643
2025-06-27T02:37:12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沔{{더더작게|면}}彼{{더더작게|피}}流{{더더작게|류}}水{{더더작게|슈}}{{분주|ᅵ|여}}基{{더더작게|기}}流{{더더작게|류}}湯{{더더작게|샹}}湯{{더더작게|샹}}{{분주|이로|다}}鴥{{더더작게|휼}}彼{{더더작게|피}}飛{{더더작게|비}}隼{{더더작게|쥰}}{{분주|이|여}}載{{더더작게|ᄌᆡ}}飛{{더더작게|비}}載{{더더작게|ᄌᆡ}}揚{{더더작게|양}}{{분주|이로|다...
39264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awhunt"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big>
○沔{{더더작게|면}}彼{{더더작게|피}}流{{더더작게|류}}水{{더더작게|슈}}{{분주|ᅵ|여}}基{{더더작게|기}}流{{더더작게|류}}湯{{더더작게|샹}}湯{{더더작게|샹}}{{분주|이로|다}}鴥{{더더작게|휼}}彼{{더더작게|피}}飛{{더더작게|비}}隼{{더더작게|쥰}}{{분주|이|여}}載{{더더작게|ᄌᆡ}}飛{{더더작게|비}}載{{더더작게|ᄌᆡ}}揚{{더더작게|양}}{{분주|이로|다}}念{{더더작게|념}}彼{{더더작게|피}}不{{더더작게|블}}蹟{{더더작게|젹}}{{분주|ᄒᆞ|야}}載{{더더작게|ᄌᆡ}}起{{더더작게|긔}}載{{더더작게|ᄌᆡ}}行{{더더작게|ᄒᆡ}}{{분주|호|하}}心{{더더작게|심}}之{{더더작게|지}}憂{{더더작게|우}}矣{{더더작게|의}}{{분주|여|}}不{{더더작게|블}}可{{더더작게|가}}弭{{더더작게|미}}忘{{더더작게|망}}{{분주|이로|다}}<br>
:沔{{더더작게|면}}ᄒᆞᆫ뎌流{{더더작게|류}}水{{더더작게|슈}}ᅵ여그流{{더더작게|류}}ᅵ湯{{더더작게|샹}}湯{{더더작게|샹}}ᄒᆞ도다鴥{{더더작게|휼}}ᄒᆞᆫ뎌飛{{더더작게|비}}ᄒᆞᄂᆞᆫ隼{{더더작게|쥰}}이여곧飛{{더더작게|비}}ᄒᆞ며곧揚{{더더작게|양}}ᄒᆞ놋다뎌蹟{{더더작게|젹}}디아니믈念{{더더작게|념}}ᄒᆞ야곧起{{더더작게|긔}}ᄒᆞ며곧行{{더더작게|ᄒᆡᆼ}}호라心{{더더작게|심}}의憂{{더더작게|우}}홈이여可{{더더작게|가}}히弭{{더더작게|미}}ᄒᆞ야
</big>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co46zqu1r9hapfuszlg4chvcdu6jha2
페이지:(만고웅변)소진장의젼.djvu/31
250
101612
392644
2025-06-27T02:43:55Z
Ming9113
18465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 시작}} 에진을칠거시오쵸국에셔ᄂᆞᆫ무관에진을칠거시오위국에셔ᄂᆞᆫᄒᆞ외에진을칠거시오졔국에셔ᄂᆞᆫ쳥ᄒᆞ를근널거시오연국에셔ᄂᆞᆫ날ᄂᆡᆫ군ᄉᆞ로ᄊᆞ홈을도을지니진나라에셔ᄂᆞᆫ관을막기겨를치못ᄒᆞᄀᆡᆺ거ᄂᆞᆯ어늬결를에군ᄉᆞ를타쳐로옴기ᄀᆡᆺ나잇가ᄃᆡ져진나라에갓가운나라ᄂᆞᆫ위나라만ᄒᆞᆷ이업스나연국이북...
392644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Ming9113" /></noinclude>{{옛한글 시작}}
에진을칠거시오쵸국에셔ᄂᆞᆫ무관에진을칠거시오위국에셔ᄂᆞᆫᄒᆞ외에진을칠거시오졔국에셔ᄂᆞᆫ쳥ᄒᆞ를근널거시오연국에셔ᄂᆞᆫ날ᄂᆡᆫ군ᄉᆞ로ᄊᆞ홈을도을지니진나라에셔ᄂᆞᆫ관을막기겨를치못ᄒᆞᄀᆡᆺ거ᄂᆞᆯ어늬결를에군ᄉᆞ를타쳐로옴기ᄀᆡᆺ나잇가ᄃᆡ져진나라에갓가운나라ᄂᆞᆫ위나라만ᄒᆞᆷ이업스나연국이북방에잇셔가장머러지니ᄃᆡ왕은진짓ᄉᆞ신을보ᄂᆡ야ᄒᆞᆫ즉죵약이스ᄉᆞ로풀니리이다혜문왕이々말을듯더니죳타ᄒᆞ고젼일에ᄲᆡ셧든양름에일곱셩을위국에도로보ᄂᆡ야강화ᄒᆞ니위국에ᄯᅩᄒᆞᆫ사ᄅᆞᆷ으로ᄒᆞ야곰진국에회ᄉᆞᄒᆞ게ᄒᆞ며ᄯᅩᄯᆞᆯ노쎠연ᄐᆡᄌᆞ의게혼인ᄒᆞ거ᄂᆞᆯ됴왕이々쇼문을듯고쇼진을불너ᄎᆡᆨ망ᄒᆞ야왈그ᄃᆡ가죵약을창시ᄒᆞ야륙국이화친ᄒᆞ고셔로더부러진국을막ᄌᆞᄒᆞ더니이졔일년이못되야위연량국이모다진국으로더부러통ᄒᆞ니죵약에밋지못ᄒᆞᆷ이발근지라만일진아라군ᄉᆞ가졸디에됴국에오면오히려위연량국에구원을바라ᄀᆡᆺ나뇨쇼진이황공ᄒᆞ야ᄉᆞ례왈신이쳥컨ᄃᆡᄃᆡ왕을위ᄒᆞ야연나라에ᄉᆞ신을나가면반다시위국에보ᄒᆞᆷ이잇스리이다쇼진이々에됴나라를바리고연나라에가니연역왕이쎠상국을ᄉᆞᆷ더라이ᄯᆡ역왕이ᄉᆡ로즉위ᄒᆞᄆᆡ졔션왕이그연국에상고잇스믈인ᄒᆞ야쳐셔십셩을ᄎᆔᄒᆞ니역왕이쇼진다려일너왈당쵸에션왕이나라로쎠그ᄃᆡ의게붓치여륙국이화친ᄒᆞ얏더니이졔션왕의ᄲᅧ가식지아니ᄒᆞ야제나라군ᄉᆞ가디경을누르며나의십셩을ᄲᆡ스니환슈에ᄆᆡᆼ셔가어ᄃᆡ잇나잇가쇼진왈신이쳥컨ᄃᆡ々왕을위ᄒᆞ야제국으로ᄒᆞ야곰십셩을밧드러연나라에도라오게ᄒᆞ리이다역왕이허락ᄒᆞ거ᄂᆞᆯ쇼진이졔션<noinclude><references/></noinclude>
g8ys16h2j79ndxf4pe5f7we7z4p5mot
페이지:(고대소설)몽결초한숑.djvu/12
250
101613
392645
2025-06-27T02:46:20Z
Sy.lee.kr
1730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신ᄌᆞ의도리를ᄉᆡᆼ각지아니ᄒᆞ고반역을ᄭᅬᄒᆞ다가쥬륙을면치못ᄒᆞ여거날도로혀나를원망ᄒᆞ야이리픽박ᄒᆞ야송ᄉᆞ를니릐헛스니바라건ᄃᆡ대왕은나의원통함을자셰히삷혀명ᄇᆡᆨ히쳐결ᄒᆞ쇼셔 ᄒᆞ거날염왕왈그대ᄂᆞᆫ아즉물너스라내분명히삷혀쳐치ᄒᆞ리라ᄒᆞᆫ대ᄒᆞᆫ태죠-물너나다 ᄯᅩ셔초ᄑᆡ왕항젹을불너드러문...
39264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Sy.lee.kr"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신ᄌᆞ의도리를ᄉᆡᆼ각지아니ᄒᆞ고반역을ᄭᅬᄒᆞ다가쥬륙을면치못ᄒᆞ여거날도로혀나를원망ᄒᆞ야이리픽박ᄒᆞ야송ᄉᆞ를니릐헛스니바라건ᄃᆡ대왕은나의원통함을자셰히삷혀명ᄇᆡᆨ히쳐결ᄒᆞ쇼셔
ᄒᆞ거날염왕왈그대ᄂᆞᆫ아즉물너스라내분명히삷혀쳐치ᄒᆞ리라ᄒᆞᆫ대ᄒᆞᆫ태죠-물너나다
ᄯᅩ셔초ᄑᆡ왕항젹을불너드러문왕그대ᄂᆞᆫ개셰영웅이어날무ᄉᆞᆷ일로이럿타시구챠히숑ᄉᆞᄒᆞ나뇨항우-길이탄왕
과인이이십ᄉᆞ셰에팔쳔자제를거나리고강동에셔니러나아홉번싸화진나라쟝수장감을퍄ᄒᆞ고그후에한왕류방으로더브러형양과셩고사이에셔팔년을싸화텬하를다롤ᄉᆡ류방이형셰궁ᄒᆞ야화친을쳥ᄒᆞ기로내텬하을반분ᄒᆞ고군사를파ᄒᆞ야동으로팽셩에도라가더니뎌간ᄉᆞ한류방이언약을ᄇᆡ반ᄒᆞ고졔후병을ᄒᆞᆸᄒᆞ야과인의뒤흘엄습ᄒᆞ니엇지대장부의할배리요과인이군사를ᄑᆡᄒᆞ야오강에니르러려마동륙인의핍박함을님어ᄌᆞ문이사ᄒᆞ엿스니엇지원통치아니리요
ᄒᆞ거날염왕왈ᄃᆡ왕의소원ᄃᆡ로할것이니물너잇스라항우물너나거날ᄯᅩ한신을불너문왈너ᄂᆞᆫ초나라를바리고한나라에도라가대쟝이되야텬하를평뎡ᄒᆞ고벼ᄉᆞᆯ이왕작에니르럿스니부귀-인신에극ᄒᆞ거날무ᄉᆞᆷ일로다시진희로더부러반ᄒᆞ기를ᄭᅬᄒᆞ다가쥭으뇨ᄯᅩ이졔무엇이원굴타ᄒᆞ야번거로히숑사ᄒᆞ나뇨이ᄂᆞᆫ모다너의ᄌᆞᄎᆔ함은ᄉᆡᆼ각지아니코도로혀사ᄅᆞᆷ을원망함이니엇지그르지아니리오한신이々말을듯고울며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93eqpbf1tb8kt8wvkpaxywu3vlpt5as
392646
392645
2025-06-27T02:46:37Z
Sy.lee.kr
17306
392646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Sy.lee.kr"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신ᄌᆞ의도리를ᄉᆡᆼ각지아니ᄒᆞ고반역을ᄭᅬᄒᆞ다가쥬륙을면치못ᄒᆞ여거날도로혀나를원망ᄒᆞ야이리픽박ᄒᆞ야송ᄉᆞ를니릐헛스니바라건ᄃᆡ대왕은나의원통함을자셰히삷혀명ᄇᆡᆨ히쳐결ᄒᆞ쇼셔
ᄒᆞ거날염왕왈그대ᄂᆞᆫ아즉물너스라내분명히삷혀쳐치ᄒᆞ리라ᄒᆞᆫ대ᄒᆞᆫ태죠-물너나다
ᄯᅩ셔초ᄑᆡ왕항젹을불너드러문왕그대ᄂᆞᆫ개셰영웅이어날무ᄉᆞᆷ일로이럿타시구챠히숑ᄉᆞᄒᆞ나뇨항우-길이탄왈
과인이이십ᄉᆞ셰에팔쳔자제를거나리고강동에셔니러나아홉번싸화진나라쟝수장감을퍄ᄒᆞ고그후에한왕류방으로더브러형양과셩고사이에셔팔년을싸화텬하를다롤ᄉᆡ류방이형셰궁ᄒᆞ야화친을쳥ᄒᆞ기로내텬하을반분ᄒᆞ고군사를파ᄒᆞ야동으로팽셩에도라가더니뎌간ᄉᆞ한류방이언약을ᄇᆡ반ᄒᆞ고졔후병을ᄒᆞᆸᄒᆞ야과인의뒤흘엄습ᄒᆞ니엇지대장부의할배리요과인이군사를ᄑᆡᄒᆞ야오강에니르러려마동륙인의핍박함을님어ᄌᆞ문이사ᄒᆞ엿스니엇지원통치아니리요
ᄒᆞ거날염왕왈ᄃᆡ왕의소원ᄃᆡ로할것이니물너잇스라항우물너나거날ᄯᅩ한신을불너문왈너ᄂᆞᆫ초나라를바리고한나라에도라가대쟝이되야텬하를평뎡ᄒᆞ고벼ᄉᆞᆯ이왕작에니르럿스니부귀-인신에극ᄒᆞ거날무ᄉᆞᆷ일로다시진희로더부러반ᄒᆞ기를ᄭᅬᄒᆞ다가쥭으뇨ᄯᅩ이졔무엇이원굴타ᄒᆞ야번거로히숑사ᄒᆞ나뇨이ᄂᆞᆫ모다너의ᄌᆞᄎᆔ함은ᄉᆡᆼ각지아니코도로혀사ᄅᆞᆷ을원망함이니엇지그르지아니리오한신이々말을듯고울며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2vygij091fxl6inkiqqfbo0cf7xi68e
페이지:(고대소설)몽결초한숑.djvu/13
250
101614
392647
2025-06-27T02:53:29Z
Sy.lee.kr
1730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ᄃᆞ왈 쇼장이회음에셔니러나처음에항우를셤김ᄋᆡ벼살을불과집극랑을ᄒᆞ이고말삼을듯지아니ᄒᆞ며계교를쓰지아니ᄒᆞ기로이ᄋᆡ항우를바리고한나라에도라간즉한왕이쇼쟝을상장군인슈를쥬며먹ᄂᆞᆫ밥을밀우워나를먹게ᄒᆞ고닙ᄂᆞᆫ옷을버서나를닙게ᄒᆞ며언쳥계종ᄒᆞ기로힘을다ᄒᆞ야대병을거나리고진챵녯길로죠차나와삼진을...
392647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Sy.lee.kr"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ᄃᆞ왈
쇼장이회음에셔니러나처음에항우를셤김ᄋᆡ벼살을불과집극랑을ᄒᆞ이고말삼을듯지아니ᄒᆞ며계교를쓰지아니ᄒᆞ기로이ᄋᆡ항우를바리고한나라에도라간즉한왕이쇼쟝을상장군인슈를쥬며먹ᄂᆞᆫ밥을밀우워나를먹게ᄒᆞ고닙ᄂᆞᆫ옷을버서나를닙게ᄒᆞ며언쳥계종ᄒᆞ기로힘을다ᄒᆞ야대병을거나리고진챵녯길로죠차나와삼진을뎡ᄒᆞ고항우를파ᄒᆞ야오년에한왕으로ᄒᆞ여곰졔업을일우게ᄒᆞ엿스니고왕금ᄅᆡ에공업이소쟝의우회오를쟈-업거ᄂᆞᆯ한왕이무단이소쟝을의심ᄒᆞ야진평의간사한ᄭᅬ를써거짓운몽ᄯᅡᄒᆡ졔후를죠회밧난다ᄒᆞ고소장을잡아다가초왕에벼상을앗고회음후를봉ᄒᆞ니이ᄂᆞᆫ죄업ᄂᆞᆫ사ᄅᆞᆷ을쥭이기어려워마지못ᄒᆞ야함이러니그후에ᄃᆡ나라정승진희반할ᄯᅣ에소쟝의사인이(좌우에친근히잇ᄂᆞᆫ사ᄅᆞᆷ이라)죄잇기로소쟝이쥭이고져ᄒᆞ엿더니그아오ᄉᆞ공져-소장을무소ᄒᆞ되소장이진회로더브러ᄭᅬ를통ᄒᆞ야ᄒᆞᆫ가지로반ᄒᆞ려ᄒᆞᆫ다함ᄋᆡ려후-소하와함ᄭᅴ의론ᄒᆞ고소장을쥭이고삼족을멸ᄒᆞ엿사오니텬하에어이々러ᄒᆞᆫ각골지통이잇사오며ᄯᅩ소장이젼일에관상ᄒᆞᄂᆞᆫ허부라ᄒᆞᄂᆞᆫᄉᆞ람의게상을뵈오리니허부-기려닐오ᄃᆡ소장의몸이극히귀ᄒᆞ고와셕종신ᄒᆞ리라ᄒᆞ옴ᄋᆡ그말을ᄆᆡᆺ삽고잇셧더니맛참ᄅᆡ몸이육장이되엿ᄉᆞ오니엇지원통치아니하리잇고
ᄒᆞ거날염왕이々말삼을듯고왈그러ᄒᆞ면허부를잡아오라ᄒᆞ야급히하령ᄒᆞ야허부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prpi17djvins5lypdtr17ip9s06gzx2
페이지:(만고웅변)소진장의젼.djvu/32
250
101615
392648
2025-06-27T02:57:51Z
Ming9113
18465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 시작}} 왕을보고왈연왕은ᄃᆡ왕의동ᄆᆡᆼ이오진왕의ᄉᆞ랑ᄒᆞᄂᆞᆫᄉᆞ회라이졔ᄃᆡ왕이그십셩을리롭게아라ᄎᆔᄒᆞ시니다만연국에셔졔국을원망ᄒᆞᆯᄲᅮᆫ아니라진국이ᄯᅩᄒᆞᆫ졔국을원망ᄒᆞᆯ거시니십셩을어더원망을두곤ᄃᆡ로ᄆᆡ지면이거슨착ᄒᆞᆫ게교가아니々ᄃᆡ왕이신의게교를드르ᄉᆞ연국에십셩을돌녀보ᄂᆡ면연진에깃부물...
392648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Ming9113" /></noinclude>{{옛한글 시작}}
왕을보고왈연왕은ᄃᆡ왕의동ᄆᆡᆼ이오진왕의ᄉᆞ랑ᄒᆞᄂᆞᆫᄉᆞ회라이졔ᄃᆡ왕이그십셩을리롭게아라ᄎᆔᄒᆞ시니다만연국에셔졔국을원망ᄒᆞᆯᄲᅮᆫ아니라진국이ᄯᅩᄒᆞᆫ졔국을원망ᄒᆞᆯ거시니십셩을어더원망을두곤ᄃᆡ로ᄆᆡ지면이거슨착ᄒᆞᆫ게교가아니々ᄃᆡ왕이신의게교를드르ᄉᆞ연국에십셩을돌녀보ᄂᆡ면연진에깃부물ᄆᆡ질거시니졔국에셔연진을어드면텬하를호령ᄒᆞ야부르기가어럽지아늘션왕이ᄃᆡ열ᄒᆞ야이에십셩으로연국에돌녀보ᄂᆡ더라역왕의모ᄂᆞᆫ문부인이니본ᄅᆡ쇼진의ᄌᆡ죠를흠모ᄒᆞ야좌우로ᄒᆞ야곰쇼진을불너궁죵에드러오게ᄒᆞ고이에더부러ᄉᆞ통ᄒᆞ니역왕이알지라도말은ᄒᆞ지안커ᄂᆞᆯ쇼진이두려워ᄒᆞ야연나라상국ᄌᆞ지로더부러친ᄒᆞᆷ을ᄆᆡ져ᄯᅡᆯ의혼인을일우고ᄯᅩ그아오쇼ᄃᆡ쇼려로ᄒᆞ야곰ᄌᆞ지와형졔지의를ᄆᆡ져ᄌᆞ연스ᄉᆞ로굿게ᄒᆞ얏더라문부인이여러번쇼진을부르되쇼진이더욱두려워ᄒᆞ야감히드러가지못ᄒᆞ며이에역왕을달ᄂᆡ여왈연졔의형셰가마참ᄂᆡ셔로아우르게될지라신은원컨ᄃᆡᄃᆡ왕을위ᄒᆞ야졔국에반간을ᄒᆞᆯ가ᄒᆞ나이다역왕왈반간은엇더케ᄒᆞ나뇨쇼진이ᄃᆡ왈신이그짓연국에득죄ᄒᆞᆷ이되야졔국으로다라나면졔왕이반다시신을즁용할거시니신이졔국에졍치를ᄑᆡᄒᆞ게ᄒᆞ야ᄊᅠ연나라ᄯᅡ히되게ᄒᆞ리이다역왕이허락ᄒᆞ고쇼진의졍승인을거둔ᄃᆡ쇼진이다라나졔국에가니졔션왕이그일홈을즁히역여ᄀᆡᆨ경을ᄉᆞᆷ거ᄂᆞᆯ쇼진이션왕ᄭᅴ젼녑과죵고에질거운걸노권ᄒᆞ며션왕이ᄌᆡ물을죠와ᄒᆞ면기결셰로ᄒᆞ야곰후ᄒᆞ게밧도록ᄒᆞ며션왕이호ᄉᆡᆨ을ᄒᆞ면궁녀로ᄒᆞ야곰미ᄉᆡᆨ을ᄲᅩᆸ게ᄒᆞ야듸리니이ᄂᆞᆫ다름이아니라졔국이어지러우물ᄀᆘᆮ려연국으로ᄒᆞ야곰그틈을타게ᄒᆞᆷ이나션왕은젼연히ᄭᆡ
{{옛한글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sstyf20x61uhvl27p1lhhobs2blm2cu
페이지:(고대소설)몽결초한숑.djvu/14
250
101616
392649
2025-06-27T02:59:06Z
Sy.lee.kr
1730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불너드려ᄭᅮ지져왈네인간의셔엇지ᄉᆞᄅᆞᆷ의화북을알니뇨ᄒᆞ날이사ᄅᆞᆷ을삼겨냐심ᄋᆡ부귀복록과사ᄉᆡᆼ길흉을졈지ᄒᆞ시거날네엇지한신을속여미리ᄭᆡ닷지못ᄒᆞ고죽게ᄒᆞ엿나뇨허부-ᄃᆡ왈 계상에사ᄅᆞᆷ의상을보ᄂᆞᆫ쟈-엇지그름이잇스리오그럼으로옛젹당거ᄂᆞᆫᄎᆡᄐᆡᆨ의샹을보고그ᄉᆞ십년부귀할쥴을알앗고려...
39264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Sy.lee.kr"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불너드려ᄭᅮ지져왈네인간의셔엇지ᄉᆞᄅᆞᆷ의화북을알니뇨ᄒᆞ날이사ᄅᆞᆷ을삼겨냐심ᄋᆡ부귀복록과사ᄉᆡᆼ길흉을졈지ᄒᆞ시거날네엇지한신을속여미리ᄭᆡ닷지못ᄒᆞ고죽게ᄒᆞ엿나뇨허부-ᄃᆡ왈
계상에사ᄅᆞᆷ의상을보ᄂᆞᆫ쟈-엇지그름이잇스리오그럼으로옛젹당거ᄂᆞᆫᄎᆡᄐᆡᆨ의샹을보고그ᄉᆞ십년부귀할쥴을알앗고려문ᅟᅳᆫ류방을보고텬자될쥴알고사회를삼앗나니엇지헛되다ᄒᆞ리오쇼ᄉᆡᆼ이한신의상모를보니극히비샹ᄒᆞ야귀히될지라그럼으로후에왕후-되리라닐넛삽고ᄯᅩ슈한을뭇기로칠심이셰를살니라ᄒᆞ엿ᄉᆞ오니대뎌사ᄅᆞᆷ의화복과슈요쟝단이그마암에션악에달녓ᄂᆞᆫ지라한신이과연칠십이셰를살수한이잇스되초나라를바리고한으로도라갈졔삼분산에니르러쵸부의게길을무러ᄌᆞ셰히안연후에도로혀쵸부를쥭엿슴ᄋᆡ일노ᄒᆞ여십년을감슈ᄒᆞ고ᄯᅩ졔왕뎐광이력이긔의달ᄂᆡᄂᆞᆫ말을들어임의한나라에항복ᄒᆞ엿거ᄂᆞᆯ한신이괴철의말을듯고졔나라를엄습ᄒᆞ야파ᄒᆞ니뎐광이분ᄒᆞ야력이긔의속음이되엿다ᄒᆞ야인ᄒᆞ야력이긔를삷아쥭여슴ᄋᆡ이ᄭᅡ닭으로ᄯᅩ십년을감수ᄒᆞ고구리산의십면ᄆᆡ복ᄒᆞ야쵸나라군사백만을쥭여슴ᄋᆡ이ᄂᆞᆫ음덕에크게해론고로이십년을감슈하엿스니ᄯᅩ누구를ᄒᆞᆫ하오며ᄯᅩ사ᄅᆞᆷ이지혜로써 능히화를피ᄒᆞ니나한신의수하에한모서-잇스니이ᄂᆞᆫ곳괴쳘이라일작한신다려닐아ᄃᆡ졔나라ᄯᅡ흘웅거ᄒᆞ야텬하를삼분하면쟝군의몸이반셕ᄀᆞᆺ흐리라하되한신이그말을듯지아니ᄒᆞ다가졔몸이망ᄒᆞ엿거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hgtj1kp8zbreg6amrl3selo4v15zro9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36
250
101617
392650
2025-06-27T02:59:25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忘{{더더작게|망}}티몯ᄒᆞ리로다<br> ○鴥{{더더작게|휼}}彼{{더더작게|피}}飛{{더더작게|비}}隼{{더더작게|쥰}}{{분주|이|여}}率{{더더작게|솔}}彼{{더더작게|피}}中{{더더작게|즁}}陵{{더더작게|릉}}{{분주|이로|다}}民{{더더작게|민}}之{{더더작게|지}}訛{{더더작게|와}}言{{더더작게|언}}{{분주|을|}}寧{{더더작게|녕}}莫{{더더작게|막}}之{{더더작게|지}}...
39265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awhunt"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big>
:忘{{더더작게|망}}티몯ᄒᆞ리로다<br>
○鴥{{더더작게|휼}}彼{{더더작게|피}}飛{{더더작게|비}}隼{{더더작게|쥰}}{{분주|이|여}}率{{더더작게|솔}}彼{{더더작게|피}}中{{더더작게|즁}}陵{{더더작게|릉}}{{분주|이로|다}}民{{더더작게|민}}之{{더더작게|지}}訛{{더더작게|와}}言{{더더작게|언}}{{분주|을|}}寧{{더더작게|녕}}莫{{더더작게|막}}之{{더더작게|지}}懲{{더더작게|징}}{{분주|고|}}我{{더더작게|아}}友{{더더작게|우}}敬{{더더작게|경}}矣{{더더작게|의}}{{분주|면|}}讒{{더더작게|참}}言{{더더작게|언}}基{{더더작게|기}}興{{더더작게|흥}}{{분주|가|}}<br>
:鴥{{더더작게|휼}}ᄒᆞᆫ뎌飛{{더더작게|비}}ᄒᆞᄂᆞᆫ隼{{더더작게|쥰}}이여뎌中{{더더작게|즁}}陵{{더더작게|릉}}을率{{더더작게|솔}}ᄒᆞ놋다民{{더더작게|민}}의訛{{더더작게|와}}言{{더더작게|언}}을엇디懲{{더더작게|징}}ᄒᆞ리업슨고우리友{{더더작게|우}}ᅵ敬{{더더작게|경}}ᄒᆞ면讒{{더더작게|참}}言{{더더작게|언}}이그興{{더더작게|흥}}ᄒᆞ랴<br>
::沔{{더더작게|면}}水{{더더작게|슈}}三{{더더작게|삼}}章{{더더작게|쟝}}
</big>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7dhao6ph9mduv48ccmmrn0jyunvahyy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37
250
101618
392651
2025-06-27T03:38:51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鶴{{더더작게|학}}鳴{{더더작게|명}}于{{더더작게|우}}九{{더더작게|구}}皐{{더더작게|고}}{{분주|ᅵ어|든}}聲{{더더작게|셩}}聞{{더더작게|문}}于{{더더작게|우}}野{{더더작게|야}}{{분주|ᅵ라|니}}魚{{더더작게|어}}潜{{더더작게|ᄌᆞᆷ}}在{{더더작게|ᄌᆡ}}淵{{더더작게|연}}{{분주|ᄒᆞ|나}}或{{더더작게|혹}}在{{더더작게|ᄌᆡ}}于{{더더작게|우}}渚{{더...
39265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awhunt"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big>
鶴{{더더작게|학}}鳴{{더더작게|명}}于{{더더작게|우}}九{{더더작게|구}}皐{{더더작게|고}}{{분주|ᅵ어|든}}聲{{더더작게|셩}}聞{{더더작게|문}}于{{더더작게|우}}野{{더더작게|야}}{{분주|ᅵ라|니}}魚{{더더작게|어}}潜{{더더작게|ᄌᆞᆷ}}在{{더더작게|ᄌᆡ}}淵{{더더작게|연}}{{분주|ᄒᆞ|나}}或{{더더작게|혹}}在{{더더작게|ᄌᆡ}}于{{더더작게|우}}渚{{더더작게|져}}{{분주|ᅵ라|니}}樂{{더더작게|락}}彼{{더더작게|피}}之{{더더작게|지}}園{{더더작게|원}}{{분주|애|}}爰{{더더작게|원}}有{{더더작게|유}}樹{{더더작게|슈}}檀{{더더작게|단}}{{분주|ᄒᆞ|니}}基{{더더작게|기}}下{{더더작게|하}}維{{더더작게|유}}蘀{{더더작게|탁}}{{분주|이니|라}}他{{더더작게|타}}山{{더더작게|산}}之{{더더작게|지}}石{{더더작게|셕}}{{분주|이|}}可{{더더작게|가}}以{{더더작게|이}}爲{{더더작게|위}}錯{{더더작게|착}}{{분주|이니|라}}<br>
:鶴{{더더작게|학}}이九{{더더작게|구}}皐{{더더작게|고}}애셔鳴{{더더작게|명}}ᄒᆞ거든聲{{더더작게|셩}}이野{{더더작게|야}}에聞{{더더작게|문}}ᄒᆞᄂᆞ니라魚{{더더작게|어}}ᅵ潜{{더더작게|ᄌᆞᆷ}}ᄒᆞ여淵{{더더작게|연}}의이시나或{{더더작게|혹}}渚{{더더작게|져}}에인ᄂᆞ니라라온뎌園{{더더작게|원}}애이예樹{{더더작게|슈}}ᄒᆞᆫ檀{{더더작게|단}}이이시
</big>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q0yhumi4j7jsnppezhw2zgyvpz46269
페이지:(만고웅변)소진장의젼.djvu/33
250
101619
392652
2025-06-27T03:45:41Z
Ming9113
18465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 시작}} 닷지못ᄒᆞ니상국젼영과ᄀᆡᆨ경ᄆᆡᆼ모가극히간ᄒᆞ되듯지아니ᄒᆞ더라션왕이훙ᄒᆞ고아달민왕디가셔니이ᄂᆞᆫ나라졍치를근간이ᄒᆞ며진나라ᄯᆞᆯ노장가들어왕후를ᄉᆞᆷ으며젼영을봉ᄒᆞ야셜공을ᄉᆞᆷ고호왈졍곽군이라ᄒᆞ며쇼진은ᄀᆡᆨ경으로용ᄉᆞᄒᆞᆷ이여젼ᄒᆞ더라ᄌᆡ셜장의쇼진이가됴나라를바렷단만을드르니죵약이장...
39265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Ming9113" /></noinclude>{{옛한글 시작}}
닷지못ᄒᆞ니상국젼영과ᄀᆡᆨ경ᄆᆡᆼ모가극히간ᄒᆞ되듯지아니ᄒᆞ더라션왕이훙ᄒᆞ고아달민왕디가셔니이ᄂᆞᆫ나라졍치를근간이ᄒᆞ며진나라ᄯᆞᆯ노장가들어왕후를ᄉᆞᆷ으며젼영을봉ᄒᆞ야셜공을ᄉᆞᆷ고호왈졍곽군이라ᄒᆞ며쇼진은ᄀᆡᆨ경으로용ᄉᆞᄒᆞᆷ이여젼ᄒᆞ더라ᄌᆡ셜장의쇼진이가됴나라를바렷단만을드르니죵약이장찻풀닐지라위국에양능일곱골을쥬지아니ᄒᆞᆫᄃᆡ양왕이로ᄒᆞ야사ᄅᆞᆷ으로ᄒᆞ야곰진나라에ᄯᅡᆼ을ᄎᆞ지니진혜왕이공ᄌᆞ화로ᄃᆡ장을ᄉᆞᆷ고장의로부장을ᄉᆞᆷ아군ᄉᆞ를거ᄂᆞ리고위국을쳐셔포양을항복바드ᄆᆡ쟝의진왕ᄭᅴ쳥ᄒᆞ야다시포양으로위국에돌녀보ᄂᆡ며ᄯᅩ공ᄌᆞ유로위국에볼모ᄒᆞ야더부러화친을ᄆᆡᆺ게ᄒᆞ니위양왕이깁히진왕의ᄯᅳ슬감격ᄒᆞ야ᄒᆞ거ᄂᆞᆯ장의이에달ᄂᆡ여왈진왕이위국ᄃᆡ졉ᄒᆞ기를심히두텁게ᄒᆞ니셩을엇고도ᄎᆔᄒᆞ지아니ᄒᆞ며ᄯᅩ볼모를듸리게ᄒᆞ니위국에셔ᄂᆞᆫ진국에가히무례ᄒᆞ지못ᄒᆞᆯ거시오ᄉᆞ례ᄒᆞᆯ바를ᄉᆡᆼ각ᄒᆞᆯ지니이다양왕왈엇지쎠ᄉᆞ례ᄒᆞ리오장의왈토디외에ᄂᆞᆫ진국이욕심ᄂᆡ지앗나니ᄃᆡ왕은ᄯᅡᆼ을베혀진국에ᄉᆞ례ᄒᆞ면진국에셔위국ᄉᆞ랑ᄒᆞᆷ이더욱깁흘거시오만일진위가합병ᄒᆞ야졔후를도모코ᄌᆞᄒᆞ면ᄃᆡ왕의ᄎᆔᄒᆞ심이반다시이졔듸리ᄂᆞᆫ것보담십ᄇᆡ나되오리이다양왕이그말을그러이아라쇼량에ᄯᅡ흘베혀진국에ᄉᆞ례ᄒᆞ며감히볼모를밧지아느니진왕이ᄃᆡ열ᄒᆞ야공손연을파면식이고장의를쎠셔상국을ᄉᆞᆷ다이ᄯᆡ에쵸나라위왕이훙ᄒᆞ고그아달웅괴셔니이ᄂᆞᆫ회왕이라장의사ᄅᆞᆷ을보ᄂᆡ여회왕ᄭᅴ글을일우고그쳐ᄌᆞ를마져진국에도라오게ᄒᆞ며젼일에구슬도젹ᄒᆞ얏다는원통ᄒᆞᆷ을말ᄒᆞ니쵸회왕이쇼양을면ᄎᆡᆨᄒᆞ야왈장의ᄂᆞᆫ어진션ᄇᆡ라그ᄃᆡ가엇지ᄒᆞ야ᄭᅴ쳔거치아니ᄒᆞ고핍박ᄒᆞ
{{옛한글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saxzdif3w2xm3lsot2jlwsnuuuouhcu
페이지:(만고웅변)소진장의젼.djvu/34
250
101620
392653
2025-06-27T03:55:20Z
Ming9113
18465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 시작}} 야진국으로ᄒᆞ야곰쓰게ᄒᆞ얏나뇨쇼양이묵연이붓그러우물견ᄃᆡ못ᄒᆞ야집에도라가병이발ᄒᆞ야쥭더라장의가쇼진을쓸가회왕이두려워ᄒᆞ야다시쇼진의합죵을쎠셔졔후를결년코ᄌᆞᄒᆞ나쇼진이임이연국에득죄ᄒᆞ야연국을바리고졔국으로다라낫거ᄂᆞᆯ장의이에진왕ᄭᅴ뵈와상국을ᄉᆞ면ᄒᆞ고스ᄉᆞ로위국에가니혜문왕왈그ᄃᆡ가진나...
39265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Ming9113" /></noinclude>{{옛한글 시작}}
야진국으로ᄒᆞ야곰쓰게ᄒᆞ얏나뇨쇼양이묵연이붓그러우물견ᄃᆡ못ᄒᆞ야집에도라가병이발ᄒᆞ야쥭더라장의가쇼진을쓸가회왕이두려워ᄒᆞ야다시쇼진의합죵을쎠셔졔후를결년코ᄌᆞᄒᆞ나쇼진이임이연국에득죄ᄒᆞ야연국을바리고졔국으로다라낫거ᄂᆞᆯ장의이에진왕ᄭᅴ뵈와상국을ᄉᆞ면ᄒᆞ고스ᄉᆞ로위국에가니혜문왕왈그ᄃᆡ가진나라를노코위국에오믄엇지ᄒᆞᆷ이니잇고장의ᄃᆡ왈륙국이쇼진의말에ᄲᅡ져능히스ᄉᆞ로풀지못ᄒᆞ니신이만일위국에ᄌᆞ로를잡으면위국으로ᄒᆞ야곰먼져진국을섬기게ᄒᆞ야졔후의머리가되게ᄒᆞ리이다혜문왕이허락ᄒᆞ거ᄂᆞᆯ장의가위국에향ᄒᆞ니위양왕이과연쎠셔상국을ᄉᆞᆷ거ᄂᆞᆯ장의이에달ᄂᆡ여왈ᄃᆡ량은남으로쵸국을이웃ᄒᆞ며북으로됴국을이웃ᄒᆞ며동에ᄂᆞᆫ졔국을이웃ᄒᆞ며셔흐로ᄒᆞᆫ국을이웃ᄒᆞ야산쳔의험ᄒᆞᆫ걸노가히미들거시업스니이ᄂᆞᆫᄉᆞ분에다셧길이ᄶᅵ진데라그런고로진국을셤기지아니ᄒᆞ면나라이편치못ᄒᆞ리라ᄒᆞ니위양왕이게교를졍치못ᄒᆞ거ᄂᆞᆯ장의감안이사ᄅᆞᆷ으로ᄒᆞ야곰진국에보ᄂᆡ야위국을치게ᄒᆞ야위군을ᄃᆡ파ᄒᆞ며옥ᄯᅡᆼ을ᄎᆔᄒᆞ니양왕이로ᄒᆞ야진나라셤기물질겨ᄒᆞ지안코합죵을ᄒᆞ고ᄌᆞᄒᆞ야이에쵸회왕으로죵약장을ᄉᆞᆷ으니이ᄯᆡ쇼진이졔국에더욱즁ᄒᆞ게되얏더라이ᄯᆡ졔나라상국젼영이병드러쥭고아달젼문이셜공이되야호왈ᄆᆡᆼ상군이라ᄒᆞ더라젼영이아달을ᄉᆞ십여인이나두엇스니젼문은쳔쳡쇼ᄉᆡᆼ이라오월오일에낫스며쳐음낫슬ᄯᆡ젼영이그쳡을경게ᄒᆞ야ᄂᆡ바리고기르지말나ᄒᆞ얏더니그쳡이참아바리지못ᄒᆞ고이에ᄉᆞ々로이길넛더라임이지라ᄆᆡ다셧살먹어셔그모가다리고젼영을뵈운ᄃᆡ젼영이로ᄒᆞ야그명령어긔물ᄎᆡᆨᄒᆞᆫᄃᆡ젼문이돈슈ᄒᆞ야왈
{{옛한글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1b980f3wsfoqcc1kak3gwsovv5c9pij
페이지:詩經諺解 제7책.djvu/12
250
101621
392654
2025-06-27T04:27:34Z
Lifestory24
1730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實{{더 작게|실}}右{{더 작게|우}}序{{더 작게|셔}}有{{더 작게|유}}周{{더 작게|쥬ㅣ라}}薄{{더 작게|박}}言{{더 작게|언}}震{{더 작게|진}}之{{더 작게|지ᄒᆞ니}}莫{{더 작게|막}}不{{더 작게|블}}震{{더 작게|진}}疊{{더 작게|쳡ᄒᆞ며}}懷{{더 작게|회}}柔{{더 작게|유}}百{{더 작게|ᄇᆡᆨ}}神{{더 작게|신ᄒᆞ야}}及{{더 작게|급}}河{{더 작게|하}}喬{{더 작게|교}}...
392654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ifestory24"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實{{더 작게|실}}右{{더 작게|우}}序{{더 작게|셔}}有{{더 작게|유}}周{{더 작게|쥬ㅣ라}}薄{{더 작게|박}}言{{더 작게|언}}震{{더 작게|진}}之{{더 작게|지ᄒᆞ니}}莫{{더 작게|막}}不{{더 작게|블}}震{{더 작게|진}}疊{{더 작게|쳡ᄒᆞ며}}懷{{더 작게|회}}柔{{더 작게|유}}百{{더 작게|ᄇᆡᆨ}}神{{더 작게|신ᄒᆞ야}}及{{더 작게|급}}河{{더 작게|하}}喬{{더 작게|교}}嶽{{더 작게|악ᄒᆞ니}}允{{더 작게|윤}}王{{더 작게|왕}}維{{더 작게|유}}后{{더 작게|후ㅣ샷다}}<br/>
:진실로周{{더 작게|쥬}}를右{{더 작게|우}}序{{더 작게|셔}}혼디라잠ᄭᅡᆫ震{{더 작게|진}}ᄒᆞ니震{{더 작게|진}}ᄒᆞ야疊{{더 작게|쳡}}디아닐이업스며百{{더 작게|ᄇᆡᆨ}}神{{더 작게|신}}을懷{{더 작게|회}}ᄒᆞ야柔{{더 작게|유}}ᄒᆞ야河{{더 작게|하}}와喬{{더 작게|교}}嶽{{더 작게|악}}애及{{더 작게|급}}ᄒᆞ니진실로王{{더 작게|왕}}이后{{더 작게|후}}ㅣ샷다<br/>
明{{더 작게|명}}昭{{더 작게|쇼}}有{{더 작게|유}}周{{더 작게|쥬ㅣ}}式{{더 작게|식}}序{{더 작게|셔}}在{{더 작게|ᄌᆡ}}位{{더 작게|위}}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5bjtr1ozzu2vdhjqqeenkyzxm53qqpf
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17
250
101622
392655
2025-06-27T04:44:34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현人인{{작게|이}}在ᄌᆡ하位위而이无무輔보{{작게|ㅣ라}}是시以이動동而이有유悔회也야{{작게|ㅣ니라}} :上샹九구애ᄀᆞᆯ오ᄃᆡ亢항龍룡有유悔회ᄂᆞᆫ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貴귀호ᄃᆡ位위ㅣ업스며高고호ᄃᆡ民민이업스며賢현人인이下하位위예이셔輔보ᄒᆞᆯ이업슨디라일로ᄡᅥ動동ᄒᆞ면悔회ㅣ 인ᄂᆞ니라 潜ᄌᆞᆷ龍룡勿믈用용은下하...
392655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현人인{{작게|이}}在ᄌᆡ하位위而이无무輔보{{작게|ㅣ라}}是시以이動동而이有유悔회也야{{작게|ㅣ니라}}
:上샹九구애ᄀᆞᆯ오ᄃᆡ亢항龍룡有유悔회ᄂᆞᆫ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貴귀호ᄃᆡ位위ㅣ업스며高고호ᄃᆡ民민이업스며賢현人인이下하位위예이셔輔보ᄒᆞᆯ이업슨디라일로ᄡᅥ動동ᄒᆞ면悔회ㅣ 인ᄂᆞ니라
潜ᄌᆞᆷ龍룡勿믈用용은下하也야ㅣ오
:潜ᄌᆞᆷ龍룡勿믈用용은下하홈이오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時시舍샤也야ㅣ오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은時시로舍샤홈이오【本義】時시ㅣ終죵日일乾건乾건은行ᄒᆡᆼ事ᄉᆞ也야{{작게|ㅣ오}}<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vjeb52rv03or5tsxw2qp08vortip0c
392656
392655
2025-06-27T04:46:25Z
Zymeu
18464
392656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현人인{{작게|이}}在ᄌᆡ하位위而이无무輔보{{작게|ㅣ라}}是시以이動동而이有유悔회也야{{작게|ㅣ니라}}
:上샹九구애ᄀᆞᆯ오ᄃᆡ亢항龍룡有유悔회ᄂᆞᆫ엇디닐옴고子ᄌᆞㅣᄀᆞᆯᄋᆞ샤ᄃᆡ貴귀호ᄃᆡ位위ㅣ업스며高고호ᄃᆡ民민이업스며賢현人인이下하位위예이셔輔보ᄒᆞᆯ이업슨디라일로ᄡᅥ動동ᄒᆞ면悔회ㅣ 인ᄂᆞ니라
潜ᄌᆞᆷ龍룡勿믈用용은下하也야{{작게|ㅣ오}}
:潜ᄌᆞᆷ龍룡勿믈用용은下하홈이오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時시舍샤也야{{작게|ㅣ오}}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은時시로舍샤홈이오【本義】時시ㅣ終죵日일乾건乾건은行ᄒᆡᆼ事ᄉᆞ也야{{작게|ㅣ오}}<noinclude><references/></noinclude>
se1gm44d849ep1m507ubo1xx2tgjltn
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18
250
101623
392657
2025-06-27T06:12:33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終죵日일乾건乾건은事ᄉᆞᄅᆞᆯ行ᄒᆡᆼ홈이오<br> 或혹躍약在ᄌᆡ淵연은自ᄌᆞ試시也{{작게|야ㅣ오}}<br> :或혹躍약在ᄌᆡ淵연은스스로試시홈이오<br> 飛비龍룡在ᄌᆡ天텬은上샹治티也야{{작게|ㅣ오}}<br> :飛비龍룡在ᄌᆡ天텬은上샹의治티ㅣ오【本義】上샹애서治티홈이오<br> 亢항龍룡有유悔회{{작게|ᄂᆞᆫ}}窮궁之지災ᄌᆡ也야{{작게|ㅣ오}}<br> :亢항龍룡有유...
392657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終죵日일乾건乾건은事ᄉᆞᄅᆞᆯ行ᄒᆡᆼ홈이오<br>
或혹躍약在ᄌᆡ淵연은自ᄌᆞ試시也{{작게|야ㅣ오}}<br>
:或혹躍약在ᄌᆡ淵연은스스로試시홈이오<br>
飛비龍룡在ᄌᆡ天텬은上샹治티也야{{작게|ㅣ오}}<br>
:飛비龍룡在ᄌᆡ天텬은上샹의治티ㅣ오【本義】上샹애서治티홈이오<br>
亢항龍룡有유悔회{{작게|ᄂᆞᆫ}}窮궁之지災ᄌᆡ也야{{작게|ㅣ오}}<br>
:亢항龍룡有유悔회{{작게|ᄂᆞᆫ}}窮궁의災ᄌᆡㅣ오
乾건元원用용九구{{작게|ᄂᆞᆫ}}天텬下하ㅣ治티也야{{작게|ㅣ라}}<br>
:乾건元원의九구用용홈은天텬下하ㅣ治티홈이라
潛ᄌᆞᆷ龍룡勿물用용{{작게|은}}陽양氣긔潛ᄌᆞᆷ藏장{{작게|이오}}<br>
潛ᄌᆞᆷ龍룡勿물用용은陽양氣긔ㅣ潛ᄌᆞᆷ藏장홈이오<noinclude><references/></noinclude>
4uveriucidyavwl1rjzbve4ailphkhe
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19
250
101624
392659
2025-06-27T08:10:19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天텬下하ㅣ文문明명{{작게|이오}}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天텬下하ㅣ文문明명홈이오 終죵日일乾건乾건{{작게|은}}與여時시偕ᄒᆡ行ᄒᆡᆼ{{작게|이오}} :終죵日일乾건乾건은時시로더브러ᄒᆞᆷᄭᅴ行ᄒᆡᆼ홈이오 或혹躍약在ᄌᆡ淵연{{작게|은}}乾건道도ㅣ乃내革혁{{작게|이오}} :或혹躍약在ᄌᆡ淵연은乾건의道도ㅣ이예革혁홈이오 飛비龍...
39265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天텬下하ㅣ文문明명{{작게|이오}}
:見현龍룡在ᄌᆡ田뎐은天텬下하ㅣ文문明명홈이오
終죵日일乾건乾건{{작게|은}}與여時시偕ᄒᆡ行ᄒᆡᆼ{{작게|이오}}
:終죵日일乾건乾건은時시로더브러ᄒᆞᆷᄭᅴ行ᄒᆡᆼ홈이오
或혹躍약在ᄌᆡ淵연{{작게|은}}乾건道도ㅣ乃내革혁{{작게|이오}}
:或혹躍약在ᄌᆡ淵연은乾건의道도ㅣ이예革혁홈이오
飛비龍룡在ᄌᆡ天텬{{작게|은}}이예天텬德덕애位위홈이오
亢항龍룡有유悔회{{작게|ᄂᆞᆫ}}與여時시偕ᄒᆡ極극{{작게|이오}}
:亢항龍룡有유悔회ᄂᆞᆫ時로더브러ᄒᆞᆷᄭᅴ極극홈이오
乾건元원用용九구{{작게|ᄂᆞᆫ}}乃내見견天텬則측{{작게|이라}}
:乾건元원用용九구ᄂᆞᆫ이예天텬則측을見견ᄒᆞᆯ거시라<noinclude><references/></noinclude>
0g5sfzoxoji32ebhzj4j2baj2jpcs4b
페이지:사민필지.djvu/15
250
101625
392660
2025-06-27T10:01:36Z
Yoonhee12
18497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이돌ㅅ덩이가기운과서로문질님에셔나ᄂᆞᆫ불이오 ᄯᅩ별ᄯᅩᆼᄯᅥ러진다ᄂᆞᆫ것은그ᄃᆞᆫ니ᄂᆞᆫ돌속에여러모양쇠가잇스니문질이ᄂᆞᆫ불에돌은타셔업서지고쇠는타지안이ᄂᆞᆫ고로ᄯᅥ러지ᄂᆞᆫ것이니라이것이별과갓치멀지아니코ᄯᅡ헤셔ᄆᆡ우갓가오니라텬하는은하슈ㅣ니라여러만흔별이서로모혀잇ᄂᆞᆫ거시나다만너무멀...
39266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Yoonhee12"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이돌ㅅ덩이가기운과서로문질님에셔나ᄂᆞᆫ불이오 ᄯᅩ별ᄯᅩᆼᄯᅥ러진다ᄂᆞᆫ것은그ᄃᆞᆫ니ᄂᆞᆫ돌속에여러모양쇠가잇스니문질이ᄂᆞᆫ불에돌은타셔업서지고쇠는타지안이ᄂᆞᆫ고로ᄯᅥ러지ᄂᆞᆫ것이니라이것이별과갓치멀지아니코ᄯᅡ헤셔ᄆᆡ우갓가오니라텬하는은하슈ㅣ니라여러만흔별이서로모혀잇ᄂᆞᆫ거시나다만너무멀어그별들은뵈이지안이ᄒᆞ고그별의빗만환ᄒᆞ게빗최ᄂᆞᆫ거시니만일큰쳔리경으로보면그별들의수를력력히다보고헤ᄂᆞᆫ니라몃ᄇᆡᆨ만년젼처음에이ᄯᅡ히ᄃᆞᆫᄃᆞᆫᄒᆞᆫ덩이가안이오다만ᄒᆞᆫᄯᅳ겁고빗잇ᄂᆞᆫ긔운ᄲᅮᆫ이라이긔운이구을너돌ᄆᆡᄎᆞᄎᆞ엉긔여쇠녹인물과ᄀᆞᆺ치되고구을너도ᄂᆞᆫ대로ᄀᆞ헤ᄯᅳ거운긔운이헤여지며ᄎᆞᄎᆞ굿어저거쥭이되나밋처둑겁게굿지못ᄒᆞᆷ으로속에ᄯᅳ거운불이곳곳이터저솟고여화산이되여불ㅅ길이나오고터저솟고이며ᄯᅩ굿어더더귀가지니쳔만산악이되고졈졈깁히굿어둑거워지니이에ᄯᅡ덩이가되엿ᄂᆞᆫ지라이어케된후에크게만흔비가붓ᄂᆞᆫᄃᆞ시여러ᄒᆡ를ᄂᆞ리워ᄯᅡ깁흔곳에메이며넘처덥히니닐ᄋᆞᆫ바다히라바다와륙디를말ᄒᆞ건ᄃᆡ바다흔ᄉᆞ분지삼이오육디는ᄉᆞ분지일이며륙디잇ᄂᆞᆫ곳을말ᄒᆞ건ᄃᆡ오분지사는젹도북편이오오분지일은젹도남편이니ᄯᅡ히둥군연고로그즁에삼분지이는동펀에잇고삼분지일은셔편에잇셔셔로마조잇ᄂᆞ니라이갓치된후에바다속과륙디에풀이나고ᄯᅩ덤불나무가나고ᄯᅩ큰나무가나고ᄯᅩ물고기가나고ᄯᅩ물과륙디속에ᄃᆞᆫ이ᄂᆞᆫ즘승이나고ᄯᅩ나ᄂᆞᆫ새가나고ᄯᅩ긔ᄂᆞᆫ즘승이나고사ᄅᆞᆷ이나종에나니텬디만물이다사ᄅᆞᆷ의살기에쓰일것인고로만물이다ᄀᆞᆺ초인후에야사ᄅᆞᆷ이낫ᄂᆞ니라
이셰상륙디와바다흘다ᄉᆞᆺ세분별ᄒᆞ야일홈ᄒᆞ니륙디동북간은아시아(亞細亞)라닐ᄋᆞ고남은아프리가(阿弗利加)라닐ᄋᆞ고셔북간은유로바[歐羅巴]라일ᄋᆞ고동남간은오스트렐랴(大洋洲)ㅣ라닐ᄋᆞ
ᄉᆞ민필지 오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l2ne1bt3zp95y1rco53jlbeo3bgtbaq
392663
392660
2025-06-27T11:43:53Z
Yoonhee12
18497
39266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Yoonhee12"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이돌ㅅ덩이가기운과서로문질님에셔나ᄂᆞᆫ불이오 ᄯᅩ별ᄯᅩᆼᄯᅥ러진다ᄂᆞᆫ것은그ᄃᆞᆫ니ᄂᆞᆫ돌속에여러모양쇠가잇스니문질이ᄂᆞᆫ불에돌은타셔업서지고쇠는타지안이ᄂᆞᆫ고로ᄯᅥ러지ᄂᆞᆫ것이니라이것이별과갓치멀지아니코ᄯᅡ헤셔ᄆᆡ우갓가오니라텬하는은하슈ㅣ니라여러만흔별이서로모혀잇ᄂᆞᆫ거시나다만너무멀어그별들은뵈이지안이ᄒᆞ고그별의빗만환ᄒᆞ게빗최ᄂᆞᆫ거시니만일큰쳔리경으로보면그별들의수를력력히다보고헤ᄂᆞᆫ니라몃ᄇᆡᆨ만년젼처음에이ᄯᅡ히ᄃᆞᆫᄃᆞᆫᄒᆞᆫ덩이가안이오다만ᄒᆞᆫᄯᅳ겁고빗잇ᄂᆞᆫ긔운ᄲᅮᆫ이라이긔운이구을너돌ᄆᆡᄎᆞᄎᆞ엉긔여쇠녹인물과ᄀᆞᆺ치되고구을너도ᄂᆞᆫ대로ᄀᆞ헤ᄯᅳ거운긔운이헤여지며ᄎᆞᄎᆞ굿어저거쥭이되나밋처둑겁게굿지못ᄒᆞᆷ으로속에ᄯᅳ거운불이곳곳이터저솟고여화산이되여불ㅅ길이나오고터저솟고이며ᄯᅩ굿어더더귀가지니쳔만산악이되고졈졈깁히굿어둑거워지니이에ᄯᅡ덩이가되엿ᄂᆞᆫ지라이어케된후에크게만흔비가붓ᄂᆞᆫᄃᆞ시여러ᄒᆡ를ᄂᆞ리워ᄯᅡ깁흔곳에메이며넘처덥히니닐ᄋᆞᆫ바다히라바다와륙디를말ᄒᆞ건ᄃᆡ바다흔ᄉᆞ분지삼이오육디는ᄉᆞ분지일이며륙디잇ᄂᆞᆫ곳을말ᄒᆞ건ᄃᆡ오분지사는젹도북편이오오분지일은젹도남편이니ᄯᅡ히둥군연고로그즁에삼분지이는동펀에잇고삼분지일은셔편에잇셔셔로마조잇ᄂᆞ니라이갓치된후에바다속과륙디에풀이나고ᄯᅩ덤불나무가나고ᄯᅩ큰나무가나고ᄯᅩ물고기가나고ᄯᅩ물과륙디속에ᄃᆞᆫ이ᄂᆞᆫ즘승이나고ᄯᅩ나ᄂᆞᆫ새가나고ᄯᅩ긔ᄂᆞᆫ즘승이나고사ᄅᆞᆷ이나종에나니텬디만물이다사ᄅᆞᆷ의살기에쓰일것인고로만물이다ᄀᆞᆺ초인후에야사ᄅᆞᆷ이낫ᄂᆞ니라<br/>
이셰상륙디와바다흘다ᄉᆞᆺ세분별ᄒᆞ야일홈ᄒᆞ니륙디동북간은아시아(亞細亞)라닐ᄋᆞ고남은아프리가(阿弗利加)라닐ᄋᆞ고셔북간은유로바[歐羅巴]라일ᄋᆞ고동남간은오스트렐랴(大洋洲)ㅣ라닐ᄋᆞ
ᄉᆞ민필지 오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bgvhq2h44ftvuw43wmucfw8i4dxtq26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38
250
101626
392661
2025-06-27T11:02:42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니그아래蘀{{더더작게|탁}}ᄒᆞ얀ᄂᆞ니라他{{더더작게|타}}山{{더더작게|산}}앳石{{더더작게|셕}}이可{{더더작게|가}}히ᄡᅥ錯{{더더작게|착}}을삼을띠니라<br> ○鶴{{더더작게|학}}鳴{{더더작게|명}}于{{더더작게|우}}九{{더더작게|구}}皐{{더더작게|고}}{{분주|ᅵ어|든}}聲{{더더작게|셩}}聞{{더더작게|문}}于{{더더작게|우}}天{{더더작게|텬}}{{분주|이...
392661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awhunt"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big>
:니그아래蘀{{더더작게|탁}}ᄒᆞ얀ᄂᆞ니라他{{더더작게|타}}山{{더더작게|산}}앳石{{더더작게|셕}}이可{{더더작게|가}}히ᄡᅥ錯{{더더작게|착}}을삼을띠니라<br>
○鶴{{더더작게|학}}鳴{{더더작게|명}}于{{더더작게|우}}九{{더더작게|구}}皐{{더더작게|고}}{{분주|ᅵ어|든}}聲{{더더작게|셩}}聞{{더더작게|문}}于{{더더작게|우}}天{{더더작게|텬}}{{분주|이니|라}}魚{{더더작게|어}}在{{더더작게|ᄌᆡ}}于{{더더작게|우}}渚{{더더작게|져}}{{분주|ᄒᆞ|나}}或{{더더작게|혹}}潜{{더더작게|ᄌᆞᆷ}}在{{더더작게|ᄌᆡ}}淵{{더더작게|연}}{{분주|이니|라}}樂{{더더작게|락}}彼{{더더작게|피}}之{{더더작게|지}}園{{더더작게|원}}{{분주|애|}}爰{{더더작게|원}}有{{더더작게|유}}樹{{더더작게|슈}}檀{{더더작게|단}}{{분주|ᄒᆞ|니}}基{{더더작게|기}}下{{더더작게|하}}維{{더더작게|유}}穀{{더더작게|곡}}{{분주|이니|라}}他{{더더작게|타}}山{{더더작게|산}}之{{더더작게|지}}石{{더더작게|셕}}{{분주|이|}}可{{더더작게|가}}以{{더더작게|이}}功{{더더작게|공}}玉{{더더작게|옥}}{{분주|이니|라}}<br>
:鶴{{더더작게|학}}이九{{더더작게|구}}皐{{더더작게|고}}애셔鳴{{더더작게|명}}ᄒᆞ거든聲{{더더작게|셩}}이天{{더더작게|텬}}에聞{{더더작게|문}}ᄒᆞᄂᆞ니라魚{{더더작게|어}}ᅵ渚{{더더작게|져}}에
</big>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dydqc9dp31ycctu85vtvpwknhblje97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39
250
101627
392662
2025-06-27T11:21:20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이시나或{{더더작게|혹}}潜{{더더작게|ᄌᆞᆷ}}ᄒᆞ야淵{{더더작게|연}}에인ᄂᆞ니라라온뎌園{{더더작게|원}}애이예樹{{더더작게|슈}}ᄒᆞᆫ檀{{더더작게|단}}이이시니그아래穀{{더더작게|곡}}이니라他{{더더작게|타}}山{{더더작게|산}}앳石{{더더작게|셕}}이可{{더더작게|가}}히ᄡᅥ玉{{더더작게|옥}}을功{{더더작게|공}}ᄒᆞᆯ띠니라<br> ::鶴{{더더...
39266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Lawhunt"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big>
:이시나或{{더더작게|혹}}潜{{더더작게|ᄌᆞᆷ}}ᄒᆞ야淵{{더더작게|연}}에인ᄂᆞ니라라온뎌園{{더더작게|원}}애이예樹{{더더작게|슈}}ᄒᆞᆫ檀{{더더작게|단}}이이시니그아래穀{{더더작게|곡}}이니라他{{더더작게|타}}山{{더더작게|산}}앳石{{더더작게|셕}}이可{{더더작게|가}}히ᄡᅥ玉{{더더작게|옥}}을功{{더더작게|공}}ᄒᆞᆯ띠니라<br>
::鶴{{더더작게|학}}鳴{{더더작게|명}}二{{더더작게|이}}章{{더더작게|쟝}}<br><br><br>
詩{{더더작게|시}}經{{더더작게|경}}諺{{더더작게|언}}觧{{더더작게|ᄒᆡ}}卷{{더더작게|권}}之{{더더작게|지}}十{{더더작게|십}}
</big>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1td0mv5f6yp4p3y702kszmm28ob1n1x
페이지:사민필지.djvu/16
250
101628
392664
2025-06-27T11:57:01Z
Yoonhee12
18497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ᄉᆞ민필지 륙<br/> 고셔편은아메리가ㅣ라(亞米利加)일ᄋᆞᄃᆡ두ᄶᅩᆨ이남북에련ᄒᆞᆫ고로남아미리가ㅣ라북아미리가ㅣ라일ᄋᆞ고ᄯᅩ바다/혼(흔)/아시아동편과아미리가셔편사이는ᄐᆡ평양이라일ᄋᆞ고아프리가며유로바셔편과아메리가동편사이는대셔양이라일ᄋᆞ고아시아남편과아프리가동편과오스드렐랴셔편ᄉᆞ이는인도양이라닐ᄋ...
392664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Yoonhee12"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ᄉᆞ민필지 륙<br/>
고셔편은아메리가ㅣ라(亞米利加)일ᄋᆞᄃᆡ두ᄶᅩᆨ이남북에련ᄒᆞᆫ고로남아미리가ㅣ라북아미리가ㅣ라일ᄋᆞ고ᄯᅩ바다/혼(흔)/아시아동편과아미리가셔편사이는ᄐᆡ평양이라일ᄋᆞ고아프리가며유로바셔편과아메리가동편사이는대셔양이라일ᄋᆞ고아시아남편과아프리가동편과오스드렐랴셔편ᄉᆞ이는인도양이라닐ᄋᆞ고남극과북극에는남빙양이라북빙양이라닐ᄋᆞ며ᄯᅩ형톄가둥글어각디방이어ᄃᆡ어ᄃᆡ를분별ᄒᆞᆯ길이업는고로남북극ᄭᆞᆺᄭᆞᆺᄒᆞᆷ을의지ᄒᆞ야삼ᄇᆡᆨ륙십경선을뎡ᄒᆞ고{{작게|경션은ᄭᅩᆺᄭᅩᆺ이션줄이라}}젹도를{{작게|젹도는항상ᄒᆡ빗을바로밧ᄂᆞᆫᄃᆡ니ᄯᅡᄒᆞᆫ허리니라}}의지ᄒᆞ야삼ᄇᆡᆨ륙십위션을뎡ᄒᆞ고{{작게|위션은가로누은줄이라}}경션이나위션이나그틈사이는도슈라닐ᄋᆞ고경션은영국(英國)도셩(都城)브터시작ᄒᆞ야동경션몃도슈라ᄒᆞ며위션은젹도에셔시작ᄒᆞ야남위션몃도슈라북위션몃도슈라ᄒᆞ여텬하각디방과바다와산쳔을다헤아리ᄂᆞ니라<br/>
때략칠쳔년젼에사ᄅᆞᆷ이처음으로나셔디구동편젹도북편가온ᄃᆡ륙디일홈은버시아라ᄒᆞᄂᆞᆫ곳에살더니ᄎᆞᄎᆞ손이번셩ᄒᆞ고사ᄅᆞᆷ의수가만하지ᄆᆡ그ᄯᅡ에셔다용납ᄒᆞᆯ수가업고ᄯᅩ후속이소원ᄒᆞᆫ지라각각헤여저각디방으로난호여갈ᄉᆡ엇던이들은동북간으로가니이는아시아(亞細亞)ᄯᅡ히라이사ᄅᆞᆷ들을몽고족(蒙古族)이라일홈ᄒᆞ니몽고사ᄅᆞᆷ들은살빗치좀누르며털빗과눈ㅅ빗은검고엇던이들은동남으로가니이는오스드롈랴ᄯᅡ히라이사ᄅᆞᆷ들을멜레족이라일홈ᄒᆞ니멜레ㅅ사ᄅᆞᆷ들은살ㅅ빗치검불그며털빗과눈빗은검고엇던이들은셔남으로가니이는아프리가ᄯᅡ히라이사ᄅᆞᆷ들을이듸오변족이라일홈ᄒᆞ니이듸오변사ᄅᆞᆷ들은살빗치검으며털은검은양의털ᄀᆞᆺ고눈빗도검고엇던이들은셔북으로가니이는유로바ᄯᅡ히라이사ᄅᆞᆷ들을고ᄀᆡ션족이라ᄒᆞ니고ᄀᆡ션사ᄅᆞᆷ은살빗치희며털빗은검으ᄃᆡ북편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9yj49996sii8ku618ppkrhgngyfb0v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