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문헌 kowikisource https://ko.wikisource.org/wiki/%EC%9C%84%ED%82%A4%EB%AC%B8%ED%97%8C:%EB%8C%80%EB%AC%B8 MediaWiki 1.45.0-wmf.8 first-letter 미디어 특수 토론 사용자 사용자토론 위키문헌 위키문헌토론 파일 파일토론 미디어위키 미디어위키토론 틀토론 도움말 도움말토론 분류 분류토론 저자 저자토론 포털 포털토론 번역 번역토론 초안 초안토론 페이지 페이지토론 색인 색인토론 TimedText TimedText talk 모듈 모듈토론 번역:주자어류/권15 대학2 大學二 114 86375 394514 392552 2025-07-05T13:49:04Z Thomas Dongsob Ahn 16640 394514 wikitext text/x-wiki 朱子語類卷第十五 * *   大學二 '''대학(2) *   經下 '''경(하) *  15:1 器遠問: “致知者, 推致事物之理. 還當就甚麽樣事推致其理?” '''기원(器遠)<ref>조숙원(曹叔遠). 기원(器遠)은 그의 자(字).</ref>의 질문: 앎을 지극히 함(致知)이란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推致) 것입니다. 응당 어떤 사건의 이치를 지극히 해야 합니까?''' 曰: “眼前凡所應接底都是物. 事事都有箇極至之理, 便要知得到. 若知不到, 便都沒分明; 若知得到, 便著定<ref>이 부분은 주자어류휘교의 교감을 따라 便決定著로 해석하였다</ref>恁地做, 更無第二著·第三著. 止緣人見道理不破, 便恁地苟簡, 且恁地做也得, 都不做得第一義.” '''대답: 눈 앞에서 응접하는 모든 것이 물(物)이다. 사사건건에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죄다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알면 반드시(決定著) 그렇게 실천하게 되니 제2책(第二著)이니 제3책(第三著)이니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다만 도리를 분명하게 간파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어설픈 것이다. 당장은 저런 식으로 해도 되겠지만 어떻게해도 최선책(第一義)은 해낼 수 없다.''' 曹問: “如何是第一義?” '''조(기원)의 질문: 무엇이 최선책(第一義)입니까?''' 曰: “如‘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之類, 決定著恁地, 不恁地便不得. 又如在朝, 須著進君子, 退小人, 這是第一義. 有功決定著賞, 有罪決定著誅, 更無小人可用之理, 更無包含小人之理. 惟見得不破, 便道小人不可去, 也有可用之理. 這都是第二義·第三義, 如何會好! 若事事窮得盡道理, 事事占得第一義, 做甚麽剛方正大! 且如爲學, 決定是要做聖賢, 這是第一義, 便漸漸有進步處. 若便道自家做不得, 且隨分依稀做些子, 這是見不破. 所以說道: ‘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謂吾身不能者, 自賊者也.” 賀孫(62이후). '''대답: '임금은 인(仁)에 머물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은 효(孝)에 머문다'같은 것들은 반드시(決定著) 이와 같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예를 들어 조정에서 봉직할 때에는 반드시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내쳐야 하니 이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다. 공이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시상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주살해야 하니, 소인을 쓸 수 있다는 이치나 소인도 포용한다는 이치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을 완전히 내칠 수 없다는둥 소인을 써도 되는 이치가 있다는둥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제2책이니 제3책이니 하는 것들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사사건건에서 도리를 완전히 밝혀내면 사사건건마다 최선책(第一義)를 점할 수 있으니 무엇을 하든 강건하고 방정하고 올바르고 당당하다(剛方正大). 학문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니 (이렇게 하면) 점점 진보가 있게 된다. 만약 자기는 그렇게는 못하니까 일단 자기 분수에 맞게 조금만(依稀) 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ref>맹자4A:2</ref>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라는 뜻이다.''' 섭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卓錄云: '''<황탁의 기록> 曹兄問: "格物窮理, 須是事事物物上理會?” '''<조형의 질문: 격물궁리(格物窮理)는 사사물물 각각의 상황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曰: “也須是如此, 但窮理上須是見得十分徹底, 窮到極處, 須是見得第一著, 方是, 不可只到第三第四著便休了. 若窮不得, 只道我未窮得到底, 只得如此, 這是自恕之言, 亦非善窮理也. 且如事君, 便須是‘進思盡忠, 退思補過’, '道合則從, 不合則去'. 也有義不可得而去者, 不可不知.” '''<대답: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궁리할 적에 반드시 100퍼센트 철저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탐구가 지극한 지점(極處)까지 도달하여 반드시 최선책(第一著)을 이해해야만 한다. 제 3책이나 제 4책 정도에 도달하고 그만두어버리면 안 된다. (제대로) 궁리하지 못하고서, 그저 나는 끝까지 궁리하지 못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변명이지 궁리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아가면 충(忠)을 다할 생각을 하고 물러나면 잘못을 개선할 생각을'하고<ref>춘추좌씨전 선공 12년</ref>, '도가 맞으면 따르고 맞지 않으면 떠'나야<ref>예기 내칙</ref> 하지만 의리상 떠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몰라서는 안 된다.>''' 又云: “如‘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這皆是極處.” '''<다시 대답: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같은 것들은 모두 지극한 지점(極處)이다.> 以下致知.> '''<이 아래로는 치지(致知)에 관한 조목들> *  15:2 致知所以求爲眞知. 眞知, 是要徹骨都見得透. 道夫(60이후). '''치지는 참으로 알게(眞知)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다(眞知)는 것은 뼛속까지 꿰뚫어 투철히 이해하려는 것이다. *  15:3 問: “致知莫只是致察否?” '''질문: 치지는 그저 살피기를 지극히 한다(致察)는 것 아닙니까? 曰: “如讀書而求其義, 處事而求其當, 接物存心察其是非·邪正, 皆是也.” 㝢(61이후). '''대답: 예컨대 책을 읽을 적에 그 의리를 구하고, 일을 처리할 적에 마땅하게 하기를 구하고, 사물을 접하거나 마음을 수습하여 보존할(存心) 적에<ref>곧, 활동할 때나 혼자 묵상할 때나</ref>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살피는 행위가 모두 이것(치지)이다.''' *  15:4 因鄭仲履之問而言曰: “致知乃本心之知. 如一面鏡子, 本全體通明, 只被昏翳了, 而今逐旋磨去, 使四邊皆照見, 其明無所不到.” 蓋卿(65때). '''정중리의 질문에 대한 답: 치지는 본심의 앎(本心之知)이다.<ref>이 부분은 문법적으로 애매하다. 치지는 동작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심지지는 성질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마음의 성질을 말한다.지금 본문처럼 쓰면 '동작=성질'과 같이 되므로 말이 순조롭지 않다. 차라리 '치지의 지(知)라는 것은 본심지지를 말한다'정도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 조목 전체가 불교적 메타포와 어휘가 농후하지만 '본심'은 특히나 불교적 표현이다. 주희는 이 표현을 평소에 잘 쓰지 않는다. '본심지지'의 경우 어떤 내용성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 그 자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거울의 성질 가운데 밝게 비추고 투영하는 성질 정도를 지시하는 말이다.</ref> 예를 들어 거울은 본래 온전히 밝지만 흐린 것이 끼었을 뿐이다. 이제 점점 갈고닦아 사방을 모두 비추도록하면 그 밝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15:5 致知有甚了期! 方(41때). '''치지에 무슨 끝날 기약이 있겠나? *  15:6 致知工夫, 亦只是且據所已知者, 玩索推廣將去. 具於心者, 本無不足也. '''치지공부는 역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지하여 (그것을) 완미하고 확장해나가는 것 뿐이다. 마음에 갖춘 것은 본래 부족함이 없다.''' *  15:7 格物者, 格, 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若是窮得三兩分, 便未是格物. 須是窮盡得到十分, 方是格物. 賀孫(62이후). '''격물(格物)에서 격(格)은 남김없이 다한다(盡)는 뜻이다.<ref>주희가 격을 이렇게 풀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아래 15:9에서처럼 '이르다'로 풀이한다.</ref>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남김없이 다 파고들어야<ref>궁(窮)은 대개 '궁구하다'라고 풀이하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끝까지 탐구하고 파고들어 모조리 알고자하는 행위가 '궁구'이다. 여기서는 '파고들다'나 '탐구하다' 정도로 번역하겠다.</ref> 한다. 만약 2할이나 3할쯤 파고들었다면 격물이 아니다. 남김없이 파고들어 100퍼센트에 이르러야 격물이다.''' 하손의 기록. * <以下格物, 兼論窮理.> '''<이 아래로 격물에 관한 조목들. 궁리에 관한 논의도 겸한다.> *  15:8 居甫問: “格物工夫, 覺見不周給.” '''거보(서우)의 질문: 격물공부가 두루 미치지 않는 듯합니다. 曰: “須是四方八面去格.” 可學(62때). '''대답: 사방팔방에 나아가 탐구해야(格) 한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9 格物. 格, 猶至也, 如‘舜格于文祖’之‘格’, 是至于文祖處. 芝(63때). '''격물의 격은 이르다(至)와 같다.<ref>현실의 여러 사태와 사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 그것에 내재한 모종의 패턴을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까지가 '격'이다. 그래서 격물의 '격'은 이르다, 탐구하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번역어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격하다'로도 풀이하겠다.</ref> 예컨대 '순임금이 문조의 묘에 격하여(舜格于文祖)'<ref>상서 순전</ref>에서의 '격'은 문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0 問: “格物, 還是事未至時格, 事旣至然後格?” '''질문: 격물은 사태가 아직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태가 이른 뒤에 '격'하는 것입니까?<ref>육아로 비유하자면 애를 낳기 전에 육아의 도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를 낳은 후에 탐구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ref> 曰: “格, 是到那般所在. 也有事至時格底, 也有事未至時格底.” 芝(63때). '''대답: '격'은 (자신이) 저것이 있는 곳으로 이르는 것이다. 사태가 이르렀을 때 '격'하는 경우도 있고 사태가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경우도 있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1 格物者, 如言性, 則當推其如何謂之性; 如言心, 則當推其如何謂之心, 只此便是格物. 砥(61때). '''격물이란, 예를 들어 성(性)이다 하면 무엇을 성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하고 심(心)이다 하면 무엇을 심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격물이다. 지(砥)의 기록. (61세) *  15:12 窮理格物, 如讀經看史, 應接事物, 理會箇是處, 皆是格物. 只是常敎此心存, 莫敎他閑沒勾當處. 公且道如今不去學問時, 此心頓放那處? 賀孫(62이후). '''궁리와 격물은, 예컨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고 사태와 사물에 접하고 대응하면서 각각의 경우에 옳은 지점을 헤아리는 것이 모두 격물이다. 그저 늘 이 마음을 간직해야지, 한가로이 일 없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그대가 한 번 말해보라. 요즘 학문하지 않을 때에는 그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3 格物, 須是從切己處理會去. 待自家者已定疊, 然後漸漸推去, 這便是能格物. 道夫(60이후). '''격물은 자신에게 절실한 지점에서부터 헤아려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선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다음에 천천히 밀고 나가야 격물이 가능하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 “格物”二字最好. 物, 謂事物也. 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 便有一箇是, 一箇非, 是底便行, 非底便不行. 凡自家身心上, 皆須體驗得一箇是非. 若講論文字, 應接事物, 各各體驗, 漸漸推廣, 地步自然寬闊. 如曾子三省, 只管如此體驗去. 德明(44이후). '''격물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좋다. 물은 사건과 사물이다.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남김 없이 파고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는데 옳은 것이면 행하고 그른 것이면 행하지 않는다. 대개 옳고 그름을 자신의 심신상에서 모두 체험(體驗)해야 한다. 문자를 강론하고 사건과 사물에 대응할 적에 각각의 경우(의 옳고 그름)를 체험하며 점점 미루어 넓혀간다면 (자신의) 지평이 자연히 드넓어질 것이다. 증자(曾子)가 매일 세 가지 항목으로 반성한 것처럼<ref>논어 1:4.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불충했는가?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귐에 신실하지 못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ref> 그저 이렇게 체험해가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15 文振問: “物者, 理之所在, 人所必有而不能無者, 何者爲切?” '''문진(文振)의 질문: 물(物)은 이치가 있는 곳이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으며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절실합니까?''' 曰: “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皆人所不能無者. 但學者須要窮格得盡. 事父母, 則當盡其孝; 處兄弟, 則當盡其友. 如此之類, 須是要見得盡. 若有一毫不盡, 便是窮格不至也.” 人傑(51이후). '''대답: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든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는 이라면 더더욱 반드시 남김 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부모를 모실 때는 효를 다해야 하고 형제간에 지낼 때는 우애를 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남김 없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16 格物, 莫先於五品. 方子(59이후). '''격물(格物)의 대상은 오륜(五品)<ref>오품(五品)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 곧 오륜을 말한다. 상서 순전을 보라.</ref>이 최우선이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17 格物, 是窮得這事當如此, 那事當如彼. 如爲人君, 便當止於仁; 爲人臣, 便當止於敬. 又更上一著, 便要窮究得爲人君, 如何要止於仁; 爲人臣, 如何要止於敬, 乃是. 銖(67이후). '''격물(格物)은 이 사안은 이래야 하고 저 사안은 저래야 한다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임금은 어찌하여<ref>방법을 묻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것인지 불분명하다.</ref> 인에 멈추어야 하는지, 신하는 어찌하여 경에 멈추어야 하는지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18 格物者, 格其孝, 當考論語中許多論孝; 格其忠, 必‘將順其美, 匡救其惡’, 不幸而仗節死義. 古人愛物, 而伐木亦有時, 無一些子不到處, 無一物不被其澤. 蓋緣是格物得盡, 所以如此. 節(64이후). ''' '격물(格物)'이란, 효(孝)를 격(格)하려면 '논어'에서 효를 논한 많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하고 충(忠)을 격(格)하려면 반드시 '임금이 잘하는 것은 받들어 따르고(將順其美), 임금이 잘못하는 것은 바로잡아 제지해야(匡救其惡)'<ref>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장(將)은 소학집해에 의하면 받든다는 뜻. 광구(匡救)는 바로잡아 제지한다는 뜻이다. 일역판에서는 효경의 주석서 하나를 인용하여 장(將)을 행(行)의 뜻으로 풀이했다.</ref>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仗節死義).<ref>후한서 오한(吳漢)전. 장(仗)은 붙잡는다는 뜻.</ref> 옛사람들은 만물을 사랑하여 나무를 베는 것에도 때가 있었다. 이 사랑이 도달하지 못한 곳이 조금도 없었으며, 이 은택을 입지 못한 사물이 하나도 없었다. 대개 격물을 완전하게 해냈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9 格物, 須眞見得決定是如此. 爲子豈不知是要孝?爲臣豈不知是要忠?人皆知得是如此. 然須當眞見得子決定是合當孝, 臣決定是合當忠, 決定如此做, 始得. 㝢(61이후). '''격물(格物)할 적에는 결단코 반드시 이러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식이 되어서 어찌 효도해야 함을 모르겠나? 신하가 되어서 어찌 충성해야 함을 모르겠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자식은 결단코 반드시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결단코 반드시 충성해야 하며 결단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0 如今說格物, 只晨起開目時, 便有四件在這裏, 不用外尋, 仁義禮智是也. 如才方開門時, 便有四人在門裏. 僩(69이후). '''지금 말한 격물의 경우, 그저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이미 네 가지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밖에 나가 찾을 필요가 없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바로 이 네 가지이다. 마치 (조금 전) 문을 열자마자 (여러분) 네 사람이 문 안에 있었던 것과 같다.<ref>마지막 문장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강론하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빗댄 것일 수도 있다. 일역판에서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구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풀이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1 子淵說: “格物, 先從身上格去. 如仁義禮智, 發而爲惻隱·羞惡·辭遜·是非, 須從身上體察, 常常守得在這裏, 始得.” '''자연(子淵)이 말함: '격물'은 우선 자기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발현되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되는 것을 자기자신에게서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늘 속에 간직해야 됩니다. 曰: “人之所以爲人, 只是這四件, 須自認取意思是如何. 所謂惻隱者, 是甚麽意思? 且如赤子入井, 一井如彼深峻, 入者必死, 而赤子將入焉! 自家見之, 此心還是如何? 有一事不善, 在自家身上做出, 這裏定是可羞; 在別人做出, 這裏定是惡他. 利之所不當得, 或雖當得, 而吾心有所未安, 便要謙遜辭避, 不敢當之. 以至等閑禮數, 人之施於己者, 或過其分, 便要辭將去, 遜與別人, 定是如此. 事事物物上各有箇是, 有箇非, 是底自家心裏定道是, 非底自家心裏定道非. 就事物上看, 是底定是是, 非底定是非. 到得所以是之, 所以非之, 卻只在自家. 此四者, 人人有之, 同得於天者, 不待問別人假借. 堯舜之所以爲堯舜, 也只是這四箇, 桀紂本來亦有這四箇. 如今若認得這四箇分曉, 方可以理會別道理. 只是孝有多少樣, 有如此爲孝, 如此而爲不孝; 忠固是忠, 有如此爲忠, 又有如此而不喚做忠, 一一都著斟酌理會過.” 賀孫(62이후). '''대답: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바로 이 네 가지 뿐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드시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측은지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보자.<ref>맹자 2A:6</ref> 이 우물이 이토록 깊고 험하여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되는데 어떤 아이가 빠지려 한다! 자신이 그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어떤 좋지 못한 일을 자기 자신이 했다고 한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부끄러울(羞)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그를 미워할(惡) 것이다. 얻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그런 이익이 있거나, 혹여 비록 적절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겸손하게 사양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ref>감히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ref> 심지어 사소한 예절에서도(等閑禮數) 남이 나에게 베풀 때 분수를 넘어버리면 그것을 사양하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 반드시 이렇게 한다. 모든 사건과 사물에는 각각 옳고 그름이 있다. 옳은 것은 자기 마음 속에서 반드시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반드시 그르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니라) 사건과 사물쪽에 가서 보면 옳은 것은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반드시 그르다. 그러나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판단의 근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이 네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하늘로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요순이 요순이 된 이유 역시 이 네 가지일 뿐이다. 걸왕과 주왕도 원래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이 네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다른 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효(孝)에도 그 양상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해서 효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똑같이 했는데 불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忠)은 충인데, 이렇게 해서 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다시 똑같이 이렇게 했는데 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 신중히 살펴보고 헤아려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22 問: “格物最難. 日用間應事處, 平直者卻易見. 如交錯疑似處, 要如此則彼礙, 要如彼則此礙, 不審何以窮之?” '''질문: '격물'이 가장 어렵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에 대응하는 경우 중에서 평이직절한 것이야 보기 쉽습니다만 복잡하고 애매한 것들은 이렇게 하려 하면 저것이 장애가 되고, 저렇게 하려 하면 이것이 방해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탐구해야 합니까? 曰: “如何一頓便要格得恁地! 且要見得大綱, 且看箇大胚模是恁地, 方就裏面旋旋做細. 如樹, 初間且先斫倒在這裏, 逐旋去皮, 方始出細. 若難曉易曉底, 一齊都要理會得, 也不解恁地. 但不失了大綱, 理會一重了, 裏面又見一重; 一重了, 又見一重. 以事之詳略言, 理會一件又一件; 以理之淺深言, 理會一重又一重. 只管理會, 須有極盡時.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成四節次第, 恁地方是.” 㝢(61이후). '''대답: 어떻게 첫 술에(一頓)<ref>'일둔'은 한 차례, 한 번 등의 뜻이다. 주희는 종종 음식을 한 술 먹는 것을 '일둔'이라고 형용한다. 124:13 참조.</ref> 그렇게 (완벽하게) 격물하려 하는가? 우선은 큰 줄기(大綱)를 보아야 한다. 우선 전체적인 틀(mould)이<ref>大胚模에 대해서는 14:6 참조.</ref>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旋旋)<ref>선선(旋旋)은 차례차례 순서대로 조금씩 함을 말한다.</ref> 세밀한 것을 해나가야 한다. 나무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우선 나무를 베어 여기에 쓰러뜨려 놓은 다음에 순서대로(逐旋) 한겹씩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안쪽의 섬세한 부분이 드러난다. 만약 이해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모두 일제히 헤아리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할 수가 없다.<ref>여기서 해(解)는 can과 같다.</ref> 그러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 겹을 헤아리고 나면 그 안에 또 한 겹을 보게 되고, 그 한 겹을 이해하고 나면 또 다시 그 아래 한 겹을 보게 된다. 일의 자세함과 간략함으로 말하자면, (간략한 것) 한 건을 헤아리고 다시 (자세한 것) 한 건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치의 얕음과 깊음으로 말하자면, (얕은 것) 한 겹을 헤아리고 다시 (깊은 것) 한 겹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헤아리다 보면 반드시 완전히 남김없이 헤아리게 되는 때가(極盡時) 올 것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는'<ref>중용 20장.</ref> 것이 네 단계의 절차를 이룬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3 或問: “格物是學者始入道處, 當如何著力?” '''누군가의 질문: '격물'은 배우는 이가 처음으로 도(道)에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曰: “遇事接物之間, 各須一一去理會始得. 不成是精底去理會, 粗底又放過了; 大底去理會, 小底又不問了. 如此, 終是有欠闕. 但隨事遇物, 皆一一去窮極, 自然分明.” '''대답: 상황을 만나고 사물을 접하는 사이에 각각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 설마하니 정밀한 것은 헤아리고 거친 것은 방치하며 큰 것은 헤아리고 작은 것은 탐문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하면 결국 무언가 빠뜨리게 된다. 다만 사물과 상황에 따라 모두 하나하나 끝까지 파고들면 자연히 분명해진다. 又問: “世間有一種小有才底人, 於事物上亦能考究得仔細, 如何卻無益於己?” '''재질문: 세상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과 사물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할 수 있는데도 어째서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曰: “他理會底, 聖人亦理會, 但他理會底意思不是. 彼所爲者, 他欲人說, ‘他人理會不得者, 我理會得; 他人不能者, 我能之’, 卻不切己也.” '''대답: 그들이 헤아린 대상은 성인도 헤아리지만, 그들의 (상황과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려는 의도(意思)는 (성인의 의도와)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나는 헤아린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고 타인이 말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절실하지 못하다. 又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聖人何事不理會, 但是與人自不同.” 祖道(68때). '''다시 대답: '문왕과 무왕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남아있습니다. 현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불현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합니다. 문무의 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ref>논어 19:22</ref>라고 하였다. 성인<ref>직전 인용이 공자의 배움의 과정에 대한 것이므로 여기서 성인은 공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ref>이 어떤 일이든 헤아리지 않았겠는가? 다만 (남들이 알아주기나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히 다를 뿐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24 傅問: “而今格物, 不知可以就吾心之發見理會得否?” '''부(傅)<ref>일역판에서는 부정 傅定(자는 敬子)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15:21에서 질문한 자연(子淵)일 가능성도 있다.</ref>의 질문: 이제 '격물'을 할 때,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에서 발현하는 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는 것 아닙니까?<ref>마음에서 발현한 것을 면밀히 살피는 방식의 공부법은 당시 호남의 여러 학자들(예컨대 호굉)이 주장한 것으로 이른바 호상학파의 찰식단예(察識端倪)설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대한 이승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란 일상의 마음 씀씀이 가운데서 현행하는 의식의 흐름을 면밀하게 관찰하다가 '측은지심'과 같은 본성(性)의 실마리(端倪)가 문득 발현할 때 이를 즉각 포착하려는 자기직관의 수행법이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의 수양법은 성품을 '기르는 일(涵養)'보다 본성을 '찰식'하는 일에 방법론적 우선성을 두는 전형적인 '선찰식후함양'의 수행법이다. '성품 기르기(涵養)'보다 '마음 관찰하기(察識)'를 중시하는 호상학의 수행법은 양구산과 사상채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들 수행법은 다시 스승인 정명도의 '식인(識仁)'설에 근거를 두고 불교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이승환, 2009, "찰식에서 함양으로: 호상학의 이발찰식 수행법에 대한 주자의 비판")</ref> 曰: “公依舊是要安排, 而今只且就事物上格去. 如讀書, 便就文字上格; 聽人說話, 便就說話上格; 接物, 便就接物上格. 精粗大小, 都要格它. 久後會通, 粗底便是精, 小底便是大, 這便是理之一本處. 而今只管要從發見處理會. 且如見赤子入井, 便有怵惕·惻隱之心, 這箇便是發了, 更如何理會. 若須待它自然發了, 方理會它, 一年都能理會得多少! 聖賢不是敎人去黑淬淬裏守著. 而今且大著心胸, 大開著門, 端身正坐以觀事物之來, 便格它.” 蘷孫(68이후). '''대답: 그대는 여전히 머리를 굴려 안배(安排)하려고 한다. 지금은 우선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격물해야 한다. 독서의 경우는 읽고 있는 글에서 격물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에서 격물하고, 사물을 접할 때는 그렇게 접한 사물에서 격물하라. 정밀하든 거칠든, 크든 작든 모두 격물해야 한다. 오래도록 이렇게 하다가 회통(會通)<ref>회통은 융회관통(融會貫通)이다. 서로 달라 보였던 것이 녹아서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막혀 있던 것이 꿰뚫려 하나가 되는 지적 경험을 말한다.</ref>하면 거친 것이 곧 정밀한 것이요,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다. 여기가 바로 모든 이치의 단일한 뿌리가 되는 지점이다.<ref>현상적으로 우리가 보고 발견하는 인간세계와 자연세계의 패턴들은 그 양상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러한 패턴들이 공유하고 있는 패턴성 그 자체는 하나이다. 패턴의 이러한 다양성과 통일성을 주희는 자주 '리일분수(理一分殊)'라고 표현했다. '리지일본처(理之一本處)'는 패턴의 통일성, 곧 '리일'을 말한다.</ref> 이제 (그대는) 그저 발현된 지점에서만 헤아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놀랍고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발현된 지점인데, 여기서 더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만약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일년 내내 몇 개쯤 헤아릴 수 있겠나? 성현은 사람들더러 (마음이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저 암흑 속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슴을 크게 열고, 문을 넓게 열고,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 다가오는 사태와 사물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격물하라.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25 世間之物, 無不有理, 皆須格過. 古人自幼便識其具. 且如事君事親之禮, 鐘鼓鏗鏘之節, 進退揖遜之儀, 皆目熟其事, 躬親其禮. 及其長也, 不過只是窮此理, 因而漸及於天地鬼神日月陰陽草木鳥獸之理, 所以用工也易. 今人皆無此等禮數可以講習, 只靠先聖遺經自去推究, 所以要人格物主敬, 便將此心去體會古人道理, 循而行之. 如事親孝, 自家旣知所以孝, 便將此孝心依古禮而行之; 事君敬, 便將此敬心依聖經所說之禮而行之. 一一須要窮過, 自然浹洽貫通. 如論語一書, 當時門人弟子記聖人言行, 動容周旋, 揖遜進退, 至爲纖悉. 如鄕黨一篇, 可見當時此等禮數皆在. 至孟子時, 則漸已放棄. 如孟子一書, 其說已寬, 亦有但論其大理而已. 僩(69이후). '''세상 모든 것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으므로 모두 낱낱이 격물해야 한다. 옛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사물이 이치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군주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예법, (중요한 의식에서) 종치고 북치는 절차, (의식에서 사람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몸짓을 모두 눈으로 익히고 몸소 실천했다. 더 자라서는 그저 이 이치를<ref>사군사친, 종고갱장, 진퇴읍손에 내재한 의미를 말한다.</ref> 깊이 연구한 데 불과하다. 이어서 나아가 점차 천지, 귀신, 일월, 음양, 초목, 조수의 이치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쉬웠다.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예절(禮數)<ref>예수(禮數)는 숫자로 규정된 의식(ritual)의 절차를 말한다. 절을 두 번 하고 술을 세 번 따르는 등이 그것이다. 흔히 쓰는 '예절(禮節)'이란 말의 '절' 역시 이런 종류의 의식을 규정하는 절차와 단계, 참여자의 위아래를 나누는 등급 따위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통한다. 일역판에서 예수를 예절로 번역한 것을 참조하여 따랐다.</ref>(의 전통이 모두 사라져서) 그것을 전혀 강습할 수가 없으므로 오로지 성인이 남긴 경전에 의존하여 저 홀로 유추하고 연구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격물(格物)과 주경(主敬)<ref>주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1. 먼저 어려서 몸으로 익혀서 습관화하고 2. 나중에 머리로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캐묻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원하는 만큼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1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의 과정이 일종의 명상수련에 해당하는 '경(敬)'공부이다. '격물'은 '캐묻고 이해하는' 2번 과정이다.</ref>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마음에서 고대인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여 그 도리를 좇아 실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먼저 스스로 효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효심을 가지고 고대의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군주를 공경히 섬기는 것의 경우도 (먼저 그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인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깊이 연구하면 자연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꿰뚫게 된다. '논어' 한 권을 예로 들자면, 당시 문인제자들이 성인의 말과 행동, (중요한 의식에서의) 몸가짐과 동작,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지극히 상세하다. '향당(鄕黨)' 편을 보면 당시 이러한 예절(禮數)이 모두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버려졌다. '맹자' 한 권을 보면, 그 논의가 이미 완화되어,<ref>예절을 굳게 지키고 실천하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ref> 역시 거시적인 이치만<ref>디테일은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ref> 논하고 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6 問竇從周: “曾看‘格物’一段否?” '''선생이 두종주(竇從周)에게 질문: '격물' 한 단락은 읽어보았는가? 因言: 聖人只說“格物”二字,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且自一念之微, 以至事事物物, 若靜若動, 凡居處飮食言語, 無不是事, 無不各有箇天理人欲. 須是逐一驗過, 雖在靜處坐, 亦須驗箇敬·肆. 敬便是天理, 肆便是人欲. 如居處, 便須驗得恭與不恭; 執事, 便須驗得敬與不敬. 有一般人專要就寂然不動上理會, 及其應事, 卻七顚八倒, 到了, 又牽動他寂然底. 又有人專要理會事, 卻於根本上全無工夫. 須是徹上徹下, 表裏洞徹. 如居仁, 便自能由義; 由義, 便是居仁. “敬以直內”, 便能“義以方外”; 能“義以方外”, 便是“敬以直內.” 德明(44이후). '''(선생이) 이어서 말함: 성인은 단지 '격물' 두 글자를 말했을 뿐이니, 이는 구체적인 사태와 사물에서 이치를 헤아리도록 요구한 것이다. 하나의 미미한 생각에서부터 온갖 사사물물에 이르기까지,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거처, 음식, 언어 등 사태(事) 아닌 것이 없으며, 각각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함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각의 사태와 사물을 따라)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비록 고요한 곳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경건한지(敬) 방종한지(肆) 점검해야 한다. 경건하면 천리이고, 방종하면 인욕이다. 집에 있는 경우는 공손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하고, 일을 집행할 경우에는 경건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ref>거처공, 집사경(居處恭, 執事敬)은 논어 19:19</ref>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寂然不動)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사태에 대응할 적에 오히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자빠져서(七顚八倒) 결국 자신의 그 고요한 것까지 뒤흔들어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사태에서 헤아리려 하고 뿌리가 되는 지점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위쪽으로도 아래쪽으로도<ref>하학과 상달을 말한다.</ref> 끝까지 꿰뚫고, 바깥쪽으로도 안쪽으로도<ref>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을 말한다.</ref> 완전히 꿰뚫어야 한다. 인(仁)에 기거하면 저절로 의(義)로운 길을 걸을 수 있고, 의로운 길을 걸으면 곧 인에 기거하는 것이다.<ref>맹자 7A:33</ref>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敬以直內)' 하면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義以方外)' 할 수 있으며,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으면 곧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ref>주역 곤괘 문언전.</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27 才仲問: “格物, 是小學已有開明處了, 便從大學做將去, 推致其極.” '''재중(才仲)의 질문: '격물'은 소학의 단계에서 이미 개명(開明)된 것이 있고, 대학의 단계에서 (그 개명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나가서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曰: “人也不解無箇發明處. 才有些發見處, 便從此挨將去, 漸漸開明. 只如一箇事, 我才發心, 道‘我要做此事’, 只此便是發見開明處了, 便從此做將去. 五代時, 有一將官, 年大而不識字. 旣貴, 遂令人於每件物事上書一名字帖之, 渠子細看, 久之, 漸漸認得幾箇字. 從此推將去, 遂識字.” 璘(62때). '''대답: 사람은 (기존에) 발명(發明)된 부분이 없을 수 없다<ref>해(解)는 can의 의미.</ref>. 조금이라도 발현된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밀고 나가 점점 열어 밝힌다(開明).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에 대하여 발심(發心)하여, '내가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한다면 여기가 바로 발현된 부분이요 개명된 부분이니 거기에서 시작하여 해나가야 한다. 오대(五代) 때의 어떤 장수는 나이는 많은데 글자를 알지 못했다. 신분이 귀해진 그는 사람을 시켜 주변의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이게 하였다. 그는 그것들을 꾸준히 세심히 보았고, 점차 글자 몇 개를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밀고 나가서 마침내 글자를 알아보게 되었다.<ref>구오대사 권15 양서(梁書) 한건(韓建)</ref>''' 린(璘)의 기록. (62세) *  15:28 問: “格物則恐有外馳之病?” '''질문: '격물'을 하면 바깥쪽으로 정신이 팔리는(外馳) 병폐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曰: “若合做, 則雖治國平天下之事, 亦是己事. ‘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不成也說道外馳!” '''대답: 만약 응당 해야 하는 것이라면 치국평천하의 일이라 할지라도 역시 자기 (내면의) 일이다. '주공(周公)은 세 왕<ref>우, 탕, 문무를 말한다. 문왕과 무왕을 하나씩 세면 네 왕이지만 어째서인지 맹자는 셋으로 셌다.</ref>의 치적을 포괄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셨다. 혹여 (세 왕이 했던 것 가운데)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하여, 다행히 무언가 터득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앉아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ref>맹자 4B:20. 우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훌륭한 말을 좋아했다. 탕은 중도를 잡았으며 어진이를 세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 보기를 자기 몸의 상처 보듯 하였으며 도를 소망하면서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무왕은 가까이 있는 이를 편애하지 않고 멀리 있는 이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세 왕의 네 가지 일'이다.</ref> 설마하니 주공의 마음도 바깥쪽으로 팔렸다고 하진 않겠지? 又問: “若如此, 則恐有身在此而心不在此,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有此等患.” '''재질문: 그렇게하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 있지 않아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ref>대학 전7장.</ref>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曰: “合用他處, 也著用.” '''대답: 그렇게 해야하는 경우에는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ref>'著'는 '須著'의 뜻이다.</ref> 又問: “如此, 則不當論內外, 但當論合爲與不合爲.” '''재질문: 그렇다면 내면이냐 외면이냐를 논할 것이 아니라, 다만 응당 해야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논해야 할 뿐입니다. 先生頷之. 節(64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29 若格物, 則雖不能盡知, 而事至物來, 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 雖不中, 不遠矣. 節(64이후). ''' '격물'의 경우, 비록 모두 완전히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일이 닥치고 사물이 왔을 때 큰 것은 조금 더해서 처리하고 작은 것은 조금 덜어내서 처리하면(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ref>일역판의 각주에 의하면 이는 양팔저울로 무게를 재는 경우를 시각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큰 물건을 저울의 한쪽에 올려두면 다른 쪽 팔에는 좀 무거운 무게추를 더해주어야 균형이 맞다. 작은 물건을 올릴 경우엔 무게추를 덜어주어야 균형이 맞다.</ref>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雖不中, 不遠矣).<ref>대학 전9장.</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0 問: “格物工夫未到得貫通, 亦未害否?” '''질문: '격물' 공부는 꿰뚫는(貫通)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曰: “這是甚說話! 而今學者所以學, 便須是到聖賢地位, 不到不肯休, 方是. 但用工做向前去, 但見前路茫茫地白, 莫問程途, 少間自能到. 如何先立一箇不解做得便休底規模放這裏了, 如何做事! 且下手要做十分, 到了只做得五六分; 下手做五六分, 到了只做得三四分; 下手做三四分, 便無了. 且諸公自家裏來到建陽, 直到建陽方休. 未到建陽, 半路歸去, 便是不到建陽. 聖賢所爲, 必不如此. 如所謂: ‘君子鄕道而行, 半途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也, 俛焉日有孶孶, 斃而後已! ’又曰: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憂之如何? 如舜而已矣.’” 卓(미상). '''대답: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 배우는 이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반드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이 없어야 옳다. 다만 힘껏 앞을 향해 해나갈 뿐이다. 그저 앞길을 막막하게 보면서(茫茫地白) 어디까지 왔는지 묻지 말라(莫問程途). (계속 앞을 향해 나가면) 잠시 후에 저절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f>10:31의 유사한 구절을 참조하라.</ref> 어째서 해보기도 전에 '안 되면 그만둔다(不解做得便休)'는 한계(規模)<ref>규모(規模)는 틀, 구조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미리 이러이러한 틀을 잡아서 한계선을 정해둔다는 뜻으로 쓰였으므로 이렇게 의역하였다.</ref>를 여기다 정해두려 하는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일을 해내겠나? 처음부터 100%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50-60%정도만 하게 되고 처음부터 50-60%를 하려고 하면 결국 30-40%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처음부터 30-40%를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또, 그대들이 그대들 집에서 건양(建陽)까지 오려면 건양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멈춘다. 건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가면 건양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현이 하는 일은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예컨대 '군자는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에<ref>본문은 반도(半途)이나 인용 출처인 예기 표기(表記) 쪽은 '중도(中道)'이다.</ref> 그만두면 자신이 늙었음을 잊고 앞으로 살 날이 부족한 것도 모르고 날마다 부지런히(孶孶) 몰두하다(俛焉)<ref>'俛'에 관해서는 14:59 참조.</ref> 죽고 나서야 멈춘다.'<ref>예기 표기(表記)</ref> 고 하였고, 또 '순(舜)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한데 나는 여전히 평범한 촌사람을 면치 못하는구나. 이런 것은 (군자가)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여 어떻게 하는가? 순처럼 할 뿐이다.'<ref>맹자 4B:28</ref>라고 하였다.''' 탁(卓)의 기록. *  15:31 人多把這道理作一箇懸空底物. 大學不說窮理, 只說箇格物,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如此方見得實體. 所謂實體, 非就事物上見不得. 且如作舟以行水, 作車以行陸. 今試以衆人之力共推一舟於陸, 必不能行, 方見得舟果不能以行陸也, 此之謂實體. 德明(44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리를 공중에 붕 뜬 물건으로 여긴다.<ref>공중에 붕 떴다는 말은 공리공담, 실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14:44에 유사한 구문이 있으니 참조하라.</ref> '대학'에서 이치를 파고들라(窮理)고 말하지 않고 그저 사물에 나아가라(格物)고만 말한 것은 곧 사람들더러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여 (도리를) 헤아리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란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들어 물 위를 가고, 수레를 만들어 육지를 간다.'<ref>주례 고공기</ref>같은 경우 이제 시험삼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배를 육지 위로 밀어보면 결코 운행할 수 없을 것이니, 그제서야 비로소 배는 과연 육지를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다.<ref>실체(實體)는 문자 그대로 옮길 수 없다.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ousia)'의 번역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주자어류에서의 실체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치를 말한다. 한편 요즘 세간에서 종종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에서 '실체'는 우시아보다는 주자어류에서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운 것처럼 들린다.</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2 問: “道之不明, 蓋是後人舍事跡以求道.” '''질문: '도(道)가 밝지 못하게'<ref>중용 제 4장.</ref> 된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 구체적인 상황(事跡)을 도외시하기 때문입니까? 曰: “所以古人只道格物. 有物便有理, 若無事親事君底事, 何處得忠孝!” 節(64이후). '''대답: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저 '격물(格物)'이라고만 하였다.<ref>직전 조목 참조.</ref> 사물과 상황이 있으면 (그곳에) 이치가 있다. 만약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긴다는 상황(事)이 없다면 충(忠)과 효(孝)(라는 이치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3 “窮理”二字不若格物之爲切, 便就事物上窮格. 如漢人多推秦之所以失, 漢之所以得, 故得失易見. 然彼亦無那格底意思. 若格之而極其至, 則秦猶有餘失, 漢亦當有餘得也.” ''' '궁리(窮理)'라는 두 글자는 '격물(格物)'이라는 표현이 친근하고 절실한(切)<ref>'절(切)'은 어떤 말이 무척 구체적이고 실감나서 우리 피부에 딱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ref> 것에 미치지 못한다. 곧, 실제 사건과 사물의 현장에서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가 실패한(失) 이유와 한나라가 성공한(得) 이유를 많이 분석해준 덕에 (우리는) 그 득실(得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격(格)하는 정신은 없다.<ref>주희에 의하면 격물은 각각의 사건과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람들의 탐구는 방향이 틀렸다기 보다는 그 정도가 못미쳤다는 것이다.</ref> 만약 격(格)하여 그 극한까지 이르면 진나라에는 기존에 들춰내지 못했던 실패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한나라에는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성공 지점이 있을 것이다.''' 又云: “格, 謂至也, 所謂實行到那地頭. 如南劍人往建寧, 須到得郡廳上, 方是至, 若只到建陽境上, 卽不謂之至也.” 德明(44이후). '''다시 말함: '격(格)'은 '도달하다(至)'라는 뜻이다. 이른바 '실제로 가서 그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검(南劍)<ref>남송의 남검주.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연평구 즈음으로 복건 한가운데에 있다.</ref> 사람이 건녕(建寧)<ref>남송의 건녕부. 치소가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소속인 건구시(建瓯市)에 있다.</ref>에 가는 경우 반드시 군청(郡廳)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만약 건양(建陽)<ref>남송 건녕부 건양현. 건녕부 치소의 북쪽에 있다.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건양구. 남검주의 치소에서부터 걸어서 북상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먼저 도달하고, 여기서 더 북상하면 건양현에 도달한다. 물론 남검주의 서북쪽 끄트머리에서 출발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도달하기 전에 건양현 경내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역시 하나의 비유로서는 부자연스럽다. 건양을 '건녕'이라고 했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ref>의 경계에만 도달했을 뿐이라면 도달했다고 하지 않는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4 格物, 不說窮理, 卻言格物. 蓋言理, 則無可捉摸, 物有時而離; 言物, 則理自在, 自是離不得. 釋氏只說見性, 下梢尋得一箇空洞無稽底性, 亦由他說, 於事上更動不得. 賀孫(62이후). ''' '격물' 같은 경우, '궁리'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격물'이라고 말하였다. 생각건대 그 까닭은 이치(理)라고 말하면 붙잡을 것이 없어서 사물이 때로 (이치를 논의할 때) 분리되어 버리지만, 사물(物)이라고 말하면 이치는 자연히 그 안에 있어서 본래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ref>오늘날의 표현으로 치환하자면, 현실을 논하면 이론은 자연히 그 논의 속에 있지만 이론을 논하다보면 현실을 때로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ref> 석씨(釋氏)는 그저 '본성을 본다(見性)'고만 하는데, 결국 공허하고 근거 없는(空洞無稽)<ref>공동은 속이 빈 것이다. 이론만 있지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무계는 계고(稽考)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뿔달린 토끼나 날개달린 말처럼 현실에서 찾아내어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ref>본성을 찾는 것이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한다 해도(亦由他說)<ref>유(由)는 '따르다', 역(亦)은 '만일'로 풀었다.</ref> 현실의 사태에서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35 所謂窮理者, 事事物物, 各自有箇事物底道理, 窮之須要周盡. 若見得一邊, 不見一邊, 便不該通. 窮之未得, 更須款曲推明. 蓋天理在人, 終有明處. “大學之道, 在明明德”, 謂人合下便有此明德. 雖爲物欲掩蔽, 然這些明底道理未嘗泯絶. 須從明處漸漸推將去, 窮到是處, 吾心亦自有準則. 窮理之初, 如攻堅物, 必尋其罅隙可入之處, 乃從而擊之, 則用力爲不難矣. 孟子論四端, 便各自有箇柄靶, 仁義禮智皆有頭緖可尋. 卽其所發之端, 而求其可見之體, 莫非可窮之理也. 謨(50이후). '''이른바 궁리(窮理)란,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 각각에 본래 그 사태와 사물 고유의 도리가 있으니 그것을 반드시 남김없이 완전히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보지 않으면 두루 통달했다(該通)고 할 수 없다. 아직 다 탐구하지 못했다면 더욱 상세하게 미루어 밝혀야 한다. 생각건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으니 (우리 안에) 끝끝내 밝은 지점이 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밝은 덕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물욕에 엄폐(掩蔽)되었다 하더라도 이 밝은 도리는 결코 민멸된(泯絶) 적이 없다. 밝은 곳에서부터 점점 밀고 나가서 궁극적으로 올바른 지점(是處)에 도달하면 내 마음에도 저절로 준칙(準則)이 있게 된다. 궁리(窮理)의 초반부는 마치 단단한 물체를 가공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두들기면 힘쓰기가 어렵지 않다. 맹자가 사단(四端)을 논하여 각각 손잡이(柄靶)가 생겼다.<ref>착수할 지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ref> 인의예지(仁義禮智)에는 모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頭緖)가 있다. 발현되어 나온 실마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의 인식 시야에 들어온 본체(可見之體)를 찾아나가면 탐구(窮)할 수 없는 이치가 없다.'''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36 格物窮理, 有一物便有一理. 窮得到後, 遇事觸物皆撞著這道理: 事君便遇忠, 事親便遇孝, 居處便恭, 執事便敬, 與人便忠, 以至參前倚衡, 無往而不見這箇道理. 若窮不至, 則所見不眞, 外面雖爲善, 而內實爲惡, 是兩箇人做事了! 外面爲善是一箇人, 裏面又有一箇人說道: “我不好.” 如今須勝得那一箇不好底人去方是. 豈有學聖人之書, 爲市井之行, 這箇窮得箇甚道理! 而今說格物窮理, 須是見得箇道理親切了, 未解便能脫然去其舊習. 其始且見得箇道理如此, 那事不是, 亦不敢爲; 其次, 見得分曉, 則不肯爲; 又其次, 見得親切, 則不爲之, 而舊習都忘之矣. 子蒙(미상). ''' '격물'과 '궁리'로 말하자면, 물건이 하나 있으면 이치도 하나 있다. 가장 깊은 지점까지 탐구하고 나면 사태를 만나고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항상 이 도리와 조우하게 된다. 군주를 섬김에 있어서는 충(忠)이라는 도리와 조우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효(孝)라는 도리와 조우하며, 거처할 때는 공손함을,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함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충실함(忠)을 (만나고),<ref>논어 19:19</ref> 나아가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ref>논어15:5</ref> 어딜 가든 이 도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게 된 것이다. 만약 가장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못하면 보는 것이 참되지 않아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악하게 되니, 이는 마치 두 사람이 따로 일하는 셈이다. 겉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 있고, 속으로 '나는 나쁜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다. 이제 그 좋지 않은 사람을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성인의 책을 배우면서 행실은 시정잡배일 수 있나! 대체 무슨 도리를 탐구했다는 말인가! 이제 격물과 궁리를 말할 때, 반드시 이 도리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해야 하니, 구습을 곧바로 깨끗하게 벗어나는 것은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처음에는 우선 이 도리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저 옳지 않은 일을 역시 감히 하려고 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분명해지면서 (그런 옳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해져서 (옳지 않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 구습을 모두 잊게 된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37 不是要格那物來長我聰明見識了, 方去理會, 自是不得不理會. ''' '저 사물을 격물해서 나의 총명과 견식을 키워야겠다'하고난 다음에(方) 헤아리는(理會) 것이 아니다. 도저히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헤아리는(理會) 것이다.''' *  15:38 大學說一“格物”在裏, 卻不言其所格者如何. 學者欲見下工夫處, 但看孟子便得. 如說仁義禮智, 便窮到惻隱·羞惡·辭遜·是非之心; 說好貨好色好勇, 便窮到太王公劉文武; 說古今之樂, 便窮到與民同樂處; 說性, 便格到纖毫未動處. 這便見得他孟子胸中無一毫私意蔽窒得也, 故其知識包宇宙, 大無不該, 細無不燭! 道夫(60이후). ''' '대학'에서 '격물'을 언급하지만 격물하는 양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이가 노력을 기울일 곳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맹자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인의예지라면 곧바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깊이 탐구한다.<ref>맹자 1A:7</ref>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고 용맹을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곧바로 태왕, 공유, 문왕, 무왕의 사례를 깊이 탐구한다.<ref>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자 1B:5, 용맹을 좋아하는 일은 1B:3을 보라.</ref> 고금의 음악의 경우라면 곧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同樂) 측면을 깊이 탐구한다.<ref>맹자 1B:1</ref> 본성(性)을 말할 때는 털끝만큼도 움직임이 없는 지점(纖毫未動)<ref>주희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발동하기 전의 상태(未發)를 말한다.</ref>을 깊이 탐구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 어떤 사의(私意)도 맹자의 가슴 속을 가리거나 막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지식(知識)은 우주(宇宙)를 포괄한다. 큰다고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작다고 비추지도 않는 것도 없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39 居甫問: “格物窮理, 但理自有可以彼此者.” '''거보(居甫)의 질문: 사물을 탐구하고 이치를 파고들지만, 다만 이치 중에는 본래 이쪽저쪽 상황을 보고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曰: “不必如此看. 理有正, 有權. 今學者且須理會正. 如娶妻必告父母, 學者所當守. 至於不告而娶, 自是不是, 到此處別理會. 如事君匡救其惡, 是正理. 伊川說‘納約自牖’, 又是一等. 今於此一段未分明, 卻先爲彼引走. 如孔子說‘危行言孫’, 當春秋時亦自如此. 今不理會正當處, 纔見聖人書中有此語, 便要守定不移, 駸駸必至於行孫矣. 此等風俗, 浙江甚盛, 殊可慮!” 可學(62때). '''대답: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치에는 정(正)<ref>원칙이다.</ref>이 있고, 권(權)<ref>상황윤리이다.</ref>이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는 우선 정(正)을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맞이할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한다'는 것은<ref>맹자 5A:2</ref> 배우는 이가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에 관해서는 따로 헤아려야 한다. 군주를 섬길 때는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바로잡아 제지하는(匡救其惡)것이 정리(正理)이다.<ref>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15:18 참조.</ref> 하지만 이천(伊川)이 '약속을 창문으로 들인다'<ref>주역 감괘 육사효. 약(約)은 상대방을 속박하는 말이다. 이러이러한 것은 하지 않고 저러저러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등의 내용으로 군주를 제약하는 말이다. 문과 창문은 각각 큰길과 샛길을 뜻한다. 군주에게 윤리적 처방을 들일 때 정당하게 하는 것이 물론 좋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회를 틈타 측면으로 집어넣는 유도리를 발휘하는 게 좋다는 의미이다.</ref>에 대해 해설한 내용은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쪽 부분을<ref>원칙을 말한다.</ref> 아직 분명히 알지 못했는데 저쪽 부분으로 먼저 끌려가서는 안 된다. 공자가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ref>논어 14:4. 위(危)는 높음, 손(孫)은 낮음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도 행실도 높게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이에 대하여 군자는 행실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없지만 무도한 상황에서 타협없이 말하면 위험하므로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ref>고 했는데, 춘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역시 당연히 이와 같다.<ref>주희는 이를 상황윤리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것을 '원칙'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처럼 풀었는데 적절하지 않다.</ref> 지금 정당(正當)한 곳은 헤아리지도 않고 성인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자마자 그것을 꽉 붙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점차 행실마저 타협하여 낮춰서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풍속이 절강(浙江)에서 매우 성행하니 큰 걱정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40 問: “格物之義, 固要就一事一物上窮格. 然如呂氏楊氏所發明大本處, 學者亦須兼考.” '''질문: '격물'이란 물론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깊이 파고들라는(窮格) 것입니다. 하지만 여씨(呂氏)<ref>이정의 제자 여대림이다.</ref>와 양씨(楊氏)<ref>이정의 제자 양시.</ref>가 밝힌 큰 근본(大本)이 되는 지점<ref> 여대림이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의 영역에서 '중(中)'을 찾아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구중(求中)'론이라고 한다. '큰 근본이 되는 지점(大本處)'이란 중용의 한 구절에서 '중(中)'을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지칭한 것을 암시한다. 이정유서 18:82를 보라. 양시 역시 마음의 내면에 초월적 영역을 설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깊이 침잠한 끝에 극적으로 어떠한 경지로 도약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주희가 중용혹문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ref>도 배우는 이라면 역시 아울러 탐구해야 합니다. 曰: “識得, 卽事事物物上便有大本. 不知大本, 是不曾窮得也. 若只說大本, 便是釋老之學.” 德明(44이후). '''대답: (도리를) 알고 나면(識得)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 큰 근본(大本)이 있다.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큰 근본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만약 오직 큰 근본만 말할 뿐이라면 그것은 석씨와 노자의 학문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41 致知·格物, 只是一箇. 道夫(60이후).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은 하나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以下致知·格物.> '''<이 아래로 치지와 격물에 관한 조목> *  15:42 “致知·格物, 一胯底事.” '''치지와 격물은 하나(一胯)<ref>과(胯)는 개(個)와 같다. 수량사이다.</ref>이다. 先生擧左右指來比並. 泳(66때). 선생이 좌우 손가락을 들어 병렬시켰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43 格物, 是逐物格將去; 致知, 則是推得漸廣. 賜(66이후). '''격물은 각각의 사물을 하나하나 탐구(格)해나가는 것이고, 치지는 점차 넓게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다. 사(賜)의 기록. (66세 이후) *  15:44 剡伯問格物·致知. '''섬백(剡伯)<ref>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어류 및 여러 다른 문헌에서 공섬(龔剡), 공섬백(龔剡伯), 공염(龔郯), 공염백(龔郯伯)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ef>이 격물과 치지에 관하여 질문. 曰: “格物, 是物物上窮其至理; 致知, 是吾心無所不知. 格物, 是零細說; 致知, 是全體說.” 時擧(64이후). '''대답: 격물은 각각의 사물에서 그 지극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내 마음에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격물은 구체적인 설명이고, 치지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  15:45 張仁叟問致知·格物. '''장인수(張仁叟)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物莫不有理, 人莫不有知. 如孩提之童, 知愛其親; 及其長也, 知敬其兄; 以至於飢則知求食, 渴則知求飮, 是莫不有知也. 但所知者止於大略, 而不能推致其知以至於極耳. 致之爲義, 如以手推送去之義. 凡經傳中云致者, 其義皆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이치가 없는 사물도 없고 앎이 없는 사람도 없다.<ref>대학장구 격물보망장을 참조하라.</ref> 예컨대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ref>맹자 7A:15. 어류 14:92를 참조하라.</ref>같은 경우부터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을줄 알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을줄 아는'<ref>공자가어 왕언해</ref>데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앎이다. 단지 아는 것이 대략적인 데 그쳐서 그 앎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도록 밀고 나갈(推致) 수 없을 뿐이다. '치(致)'는 손으로 밀어낸다(推送)는 뜻이다. 경전에서 '치'라고 한 곳들은 그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5:46 問: “知如何致? 物如何格?” '''질문: 지(知)는 어떻게 지극히(致) 하며, 물(物)은 어떻게 탐구(格)합니까?''' 曰: “‘孩提之童, 莫不知愛其親; 及其長也, 莫不知敬其兄.’ 人皆有是知, 而不能極盡其知者, 人欲害之也. 故學者必須先克人欲以致其知, 則無不明矣. ‘致’字, 如推開去. 譬如暗室中見些子明處, 便尋從此明處去. 忽然出到外面, 見得大小大明. 人之致知, 亦如此也. 格物是‘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之類. 事事物物, 各有箇至極之處. 所謂‘止’者, 卽至極之處也. 然須是極盡其理, 方是可止之地. 若得八分, 猶有二分未盡, 也不是. 須是極盡, 方得.” '''대답: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ref>맹자 7A:15. 직전 조목 참조.</ref>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앎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한까지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욕(人欲)이 (그 앎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반드시 먼저 인욕을 극복하여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하니, 그렇게하면 밝지 않은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젖히는(推開) 것을 의미한다. 마치 암실에서 미약한 빛을 발견하여 그 빛을 따라 (출구를) 찾아 나가다 보면 홀연히 암실 밖으로 나와서 이토록(大小) 큰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앎을 지극히하는 것도 이와 같다. 격물은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문다' 같은 것이다.<ref>임금과 신하가 '물'이고 인과 경이 그 물에 내재한 도리이다. 사사물물에서 그것에 내재한 도리를 찾는 것이 격물이다. 14:104 참조.</ref> 사태와 사물마다 각각 지극한 지점이 있다. 이른바 '멈춘다(止)'는 것은 바로 그 지극한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치를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 비로소 멈출 만한 곳이 된다. 만약 80%는 되었는데 20%가 미진하다면, 그건 (멈출 지점이) 아니다. 반드시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만 한다. 又曰: “知在我, 理在物.” 祖道(68때). '''다시 대답: 앎은 나에게 있고, 이치는 사물에 있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47 黃去私問致知·格物. '''황거사(黃去私)<ref>황의강의 형 황의용(黃義勇).</ref>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致’字有推出之意, 前輩用‘致’字多如此. 人誰無知? 爲子知孝, 爲父知慈. 只是知不盡, 須是要知得透底. 且如一穴之光, 也喚做光, 然逐旋開剗得大, 則其光愈大. 物皆有理, 人亦知其理, 如當慈孝之類, 只是格不盡. 但物格於彼, 則知盡於此矣.” '''대답: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낸다(推出)는 뜻이 있다. 선배 학자들이 '치'자를 이런 의미로 쓴 경우가 많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앎이 없겠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할 줄 알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할 줄 안다. 단지 이 앎이 미진할 뿐이니 반드시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벼파서(開剗)<ref>개잔(開剗)은 작은 구멍을 날카로운 물건으로 깎고 파내어 크게 만드는 것이다.</ref> 점점[逐旋] 크게 만들면 그 빛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고 사람들도 그 이치를 알고 있으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애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그저 탐구(格)가 미진할 뿐이다. 단, 저쪽에서 사물을 깊이 탐구하기만 하면 앎은 이쪽에서 남김없이 완전해지게 된다.''' 又云: “知得此理盡, 則此箇意便實. 若有知未透處, 這裏面便黑了.” 人傑(51이후). '''다시 대답: 이 이치를 완전히 다 알게 되면 이 의지(意)<ref>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가 진실하게 된다. 만약 앎에 아직 철저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이 안쪽이<ref>의지(意)를 말한다.</ref> 캄캄해져버린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48 劉圻父說格物·致知. '''유기부(劉圻父)<ref>이름은 자환(自寰)이다.</ref>가 격물과 치지를 설명했다. 曰: “他所以下‘格’字·‘致’字者, 皆是爲自家元有是物, 但爲他物所蔽耳. 而今便要從那知處推開去, 是因其所已知而推之, 以至於無所不知也.” 義剛(64이후). '''대답: 대학에서 '격(格)'과 '치(致)'라는 글자를 쓴 이유는, 모든 것이 본래 자신의 소유이지만 외물에 의해 가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아는 곳에서부터 밀어 젖혀 나가야 하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고 나가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49 郭叔雲問: “爲學之初, 在乎格物. 物物有理, 第恐氣稟昏愚, 不能格至其理.” '''곽숙운(郭叔雲)의 질문: 배움의 시작은 격물에 있습니다. 사물마다 이치를 가지고 있지만 (저의) 기질(氣稟)이 어리석고 어두워 그 이치를 다 탐구해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曰: “人箇箇有知, 不成都無知, 但不能推而致之耳. 格物理至徹底處.” '''대답: 사람은 누구나 앎을 가지고 있다. 설마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는가? 단지 밀고 나가서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격물은<ref>일역판은 고정연원록 하권 20의 구문을 근거로 格物理至徹底處 앞에 格物是 세 글자를 더하여 번역했다.</ref> 사물의 이치를 철저한 지점까지 탐구하는 것이다. ''' 又云: “致知·格物, 只是一事, 非是今日格物, 明日又致知. 格物, 以理言也; 致知, 以心言也.” 恪(64때). '''또 말함: 치지와 격물은 하나일 뿐이니 오늘 격물하고 내일 다시 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파악의 대상인) 이치 쪽에서 말한 것이고, 치지는 (파악의 주체인) 마음 쪽에서 말한 것이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50 問: “致知, 是欲於事理無所不知; 格物, 是格其所以然之故. 此意通否?” '''질문: (일설에 의하면)<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자리에 '일설(一說)' 두 글자가 있다.</ref> 치지는 사태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고, 격물은 (해당 사태와 사물이) 지금과 같이 된 이유(所以然之故)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통합니까?''' 曰: “不須如此說. 只是推極我所知, 須要就那事物上理會. 致知, 是自我而言; 格物, 是就物而言. 若不格物, 何緣得知. 而今人也有推極其知者, 卻只泛泛然竭其心思, 都不就事物上窮究. 如此, 則終無所止.”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이미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려면 반드시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치지는 내쪽에서 말한 것이고 격물은 사물쪽에서 말한 것이다. 격물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앎을 얻겠나? 지금 사람들 중에서도 앎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막연히 자기 심사(心思)를 고갈시킬 뿐, 전혀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끝내 멈출 곳(所止)<ref>사람이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지극히 선한, 최선의 지점을 말한다.</ref>이 없다.''' 義剛曰: “只是說所以致知, 必在格物.” '''나(義剛)의 말: 그래서 '앎을 지극히하는(致知) 것은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는(格物) 데에 달려있다'<ref>대학 본문의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15:140을 참조하라.</ref>고 말했습니다.''' 曰: “正是如此. 若是極其所知去推究那事物, 則我方能有所知.” 義剛(64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미) 아는 것을 지극히하여 저 사태와 사물들을 미루어 탐구할 때 자신에게 비로소 앎이 생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1 致知·格物, 固是合下工夫, 到後亦離這意思不得. 學者要緊在求其放心. 若收拾得此心存在, 已自看得七八分了. 如此, 則本領處是非善惡, 已自分曉. 惟是到那變處方難處, 到那裏便用子細硏究. 若那分曉底道理卻不難見, 只是學者見不親切, 故信不及, 如漆雕開所謂“吾斯之未能信”. 若見得親切, 自然信得及. 看得大學了, 閒時把史傳來看, 見得古人所以處事變處, 儘有短長. 賀孫(62이후). '''치지와 격물은 물론 (배움의) 처음부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나중에가서도 이 (격물치지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要緊)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求其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따라서 주희의 경학체계 안에서 구방심 공부는 '거경(居敬)' 공부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류 59:156, 160 등을 보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제자들이 이미 질문하고 있다. 곽신환 역주 주자언론동이고(2002)의 137쪽을 보라. 高海波, "试论朱子对《孟子》「求放心」句的诠释"(2020)을 참조하라.</ref>. 만약 이 마음을 잘 수습하여 보존할 수 있다면 이미 70-80%는 (도리를) 이해한 것이다. 이와 같다면, 근본적인 지점(本領處)에서의 시비와 선악에 대한 이해가 이미 밝은 것이다. 오직 변칙적인 상황의 경우 대처하기 어려울 뿐이니, 그런 케이스들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명확한 도리 같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단지 (그 도리에 대하여) 배우는 이의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칠조개(漆雕開)가 '저는 이것을 아직 믿지 못하겠습니다'<ref>논어 5:5</ref>고 한 것과 같다.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하면 자연히 믿어진다. '대학'을 다 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역사서의 인물전기를 읽어보면 옛사람들이 변칙적인 사태에 대처한 것에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현저함을 볼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52 人之一心, 本自光明. 常提撕他起, 莫爲物欲所蔽, 便將這箇做本領, 然後去格物·致知. 如大學中條目, 便是材料. 聖人敎人, 將許多材料來修治平<ref>조선고사본에서는 '治平'를 '持'로 적었다.</ref>此心, 令常常光明耳. <按:“修治”字疑.> 伊川云: “我使他思時便思, 如此方好". 倘臨事不醒, 只爭一晌時, 便爲他引去. 且如我兩眼光𪰻𪰻, 又白日裏在大路上行, 如何會被別人引去草中! 只是我自昏睡, 或暗地裏行, 便被別人胡亂引去耳. 但只要自家常醒得他做主宰, 出乎萬物之上, 物來便應. 易理會底, 便理會得; 難理會底, 思量久之也理會得. 若難理會底便理會不得, 是此心尙昏未明, 便用提醒他. 驤<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ref>(60·65때). '''사람의 마음은 본래 광명하다. 항상 그것을 일깨워(提撕) 물욕에 가리지 않도록 하여 이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은 후에 격물과 치지를 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의 조목들은 재료이다. 성인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이 마음을 평안히 다스려(修治平) 항상 빛나게 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여정덕의 안(按):“수치(修治)”두 글자는 의심스럽다>.<ref>이부분의 교감은 의견이 갈린다. 현행본의 편자인 여정덕은 이 두 글자를 빼고 '평(平)' 하나만 남기는 쪽을 추천했다. 홍계희가 편집한 조선정판본은 '평(平)'을 작은 글자로 썼다. 이 경우 '평'은 그 바로 앞의 '치(治)'를 평성(平聲)으로 읽으라는 음주(音注)가 된다. 이의철의 고문해의는 조선정판본의 교감을 비판하였으나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주자어류휘교 쪽은 성화본을 추종하여 '평'을 주석으로 보았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을 따라 '수치평'을 '수지(修持)'로 바꿔서 해석했다. 어느쪽이 옳은지 알 수 없기에 여기서는 우선 저본 그대로 글자를 하나하나 풀어두었다.</ref> 이천(伊川)이 말하길, '내가 내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였을 때 (내 마음이) 생각을 하는 것, 이렇게 되어야 좋다'<ref>이정유서 18:85. 이정유서와 비교해보면 글자에 다소 출입이 있다. 정이는 여기서 나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상태와 내 통제에 따라 마음이 활발히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안히 안정되기도 하는 상태를 비교하고 있다.</ref> 사태에 임하여 일을 처리할 적에 깨어있지 않으면 순식간에(只爭一晌時)<ref>晌은 수량사이다.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爭은 다투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어 = 순식간에.</ref> 저쪽에게 이끌려가버린다.<ref>내가 사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나를 다루게 된다는 뜻이다.</ref> 예컨대 내가 두 눈을 부릅떠 안광이 번쩍번쩍하고 더군다나 백주대낮에 큰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풀숲으로 끌고갈 수 있겠나? 나 자신도 혼침하고 또 어두운 곳을 가고 있으면 남에게 아무렇게나 끌려 가버리고 만다. 그저 스스로 늘 자기 마음을 깨워서 관리자[主宰]로 삼아, 만물의 바깥에 있으면서 사물이 오면 바로 대응하도록 할 뿐이다. 헤아리기 쉬운 것은 바로 헤아릴 수 있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도 심사숙고하면 헤아릴 수 있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헤아릴 수 없다면 이는 이 마음이 아직 어두워 밝지 못해서이니 그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양(驤)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  15:53 問“致知在格物”. '''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에 관한 질문. 曰: “知者, 吾自有此知. 此心虛明廣大, 無所不知, 要當極其至耳. 今學者豈無一斑半點, 只是爲利欲所昏, 不曾致其知. 孟子所謂四端, 此四者在人心, 發見於外. 吾友還曾平日的見其有此心, 須是見得分明, 則知可致. 今有此心而不能致, 臨事則昏惑, 有事則膠擾, 百種病根皆自此生.” '''대답: 지(知)란, 우리에게 본래 이 앎<ref>도덕적인 앎을 말한다.</ref>이 있다. 우리 마음은 허명(虛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할 뿐이다.<ref>'요당(要當)'은 '...해야한다.'</ref> 오늘날 배우는 이에게 어찌 한 조각의(一斑半點) 앎도 없겠나? 단지 이익과 욕심에 가려져서 그 앎을 지극히한 적이 없을 뿐이다. 맹자가 이른바 사단(四端)이란, 이 네 가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서 밖으로 발현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吾友)<ref>주희는 종종 제자들을 이렇게 불렀다.</ref>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본[的見] 적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분명히 보아야만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마음이 있는데도 (앎을) 지극히하지 못하면 일을 처리할 때는 흐리멍텅하고 큰 사건이 생기면 허둥지둥한다. 온갖 병의 뿌리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 又問: “凡日用之間作事接人, 皆是格物窮理?” '''재질문: 일상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모두 격물궁리입니까? 曰: “亦須知得要本. 若不知得, 只是作事, 只是接人, 何處爲窮理!” '''대답: 역시 핵심(要本)을 알아야 한다. 핵심을 알지 못하면 그냥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 것일 뿐이다. 대체 어디가 궁리가 되겠나?''' *  15:54 致知分數多. 如博學·審問·愼思·明辨, 四者皆致知, 只力行一件是行. 言致, 言格, 是要見得到盡處. 若理有未格處, 是於知之之體尙有未盡. 格物不獨是仁孝慈敬信五者, 此只是大約說耳. 且如說父子, 須更有母在, 更有夫婦在. 凡萬物萬事之理皆要窮. 但窮到底, 無復餘蘊, 方是格物. 大雅(49이후). ''' '치지'는 비중(分數)이 크다. 예를 들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이 네 가지 모두 치지이며, 역행(力行) 하나만 행(行)에 관한 것이다.<ref>중용 제 20장에 나오는 공부의 다섯 항목이다. 앞의 네 가지(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고)는 모두 이지적인 행위, 역행 하나만 몸소 실천하는 행위이다. 굳이 계산하자면 '치지'가 전체 공부의 80%를 차지하는 셈이다.</ref> '지극히하다(致)'니 '탐구하다(格)'니 하는 것은 끝까지[盡處]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치에 대항여 (끝까지) 탐구하지(格) 못한 점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의 본질(知之之體)에 있어 미진함이 있는 것이다. 격물은 인(仁), 효(孝), 자(慈), 경(敬), 신(信) 다섯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ref>대학 전3장에서 열거한 다섯 덕목이다.</ref> 이는 대략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부자(父子)'라고 말하면 그 안에는 필시 어머니도 포함되고 부부도 포함된다.<ref>부친과 아들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는(e.g. 부자유친) 모친과 자녀, 부친과 모친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도 포함한다는 뜻이다.</ref> 무릇 모든 사태와 사물의 이치는 모조리 탐구해야(窮) 한다. 바닥까지 파고들어(窮) 남은 것이 없어야만 '격물(格物)'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55 致知·格物, 便是“志於道”. “據於德”, 卻是討得箇匡格子. 義剛(64이후). ''' 치지와 격물은 바로 '도에 뜻을 두었다'이다. '덕을 굳게 지켰다'<ref>이상 논어 7:6.</ref>는 테두리(匡格子)<ref>일역판에서는 광격(匡格)을 광곽(匡郭)과 같은 것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현대중국어에서 광격(框格)이 네모난 프레임, 격자 등을 의미하므로 광격자는 그냥 그대로 테두리나 프레임 정도로 풀이하면 된다. '격(格)'을 '곽(郭)'으로 바꿔서 풀이하는 것은 지나치다.</ref>를 마련한(討得)<ref>토(討)는 물건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올 수도 있고 어디서 주워올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없던 것을 찾아서 가져왔으면 모두 '토'이다. 14:161을 참조하라.</ref> 것이다.<ref>덕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택할 수 있는 행위의 선택지들 가운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한 후 해야 할 것의 영역 안에 꾸준히 머무르며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테두리'로 비유한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6 格物·致知, 是極粗底事; “天命之謂性”, 是極精底事. 但致知·格物, 便是那“天命之謂性”底事. 下等事, 便是上等工夫. 義剛(64이후). '''격물과 치지는 매우 거친 일이고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는 것은 매우 정밀한 일이다.<ref>거친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 일상의 공간에 속한다는 뜻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질료적 감각이 없는 형이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ref> 그러나 치지와 격물이 곧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의 일이다. 하등의 일이 곧 상등의 공부(工夫)이다.<ref>형이하의 세계를 관찰하고 파고들어 그것에 내재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그러므로 하등의 세계에서 상등의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7 曹又問致知·格物. '''조(曹)<ref>아마도 조숙원(曹叔遠)인 듯하다. 자는 기원(器遠).</ref>가 다시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此心愛物, 是我之仁; 此心要愛物, 是我之義; 若能分別此事之是, 此事之非, 是我之智; 若能別尊卑上下之分, 是我之禮. 以至於萬物萬事<ref>조선고사본에서는 '萬事'가 없다.</ref>, 皆不出此四箇道理. 其實只是一箇心, 一箇根柢出來抽枝長葉.”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이 대상(物)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인(仁)이고, 이 마음이 대상을 사랑해야만 한다 것은 나의 의(義)이다. 만약 이 일은 옳고 이 일은 그르다고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지(智)이다. 만약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분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예(禮)이다. 모든 사태와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네 가지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저 이 한 마음일 뿐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가지가 뻗고 잎이 자라는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5:58 蔣端夫問: “‘致知在格物.’ 胸中有見, 然後於理無不見.” '''장단부(蔣端夫)<ref>인적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61:81에도 등장한다.</ref>의 질문: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의 경우, (먼저) 가슴 속에 본 것이 있은 후에야 보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됩니다. 曰: “胸中如何便有所見? 譬如嬰兒學行, 今日學步, 明日又步, 積習旣久, 方能行. 天地萬物莫不有理. 手有手之理, 足有足之理, 手足若不擧行, 安能盡其理! 格物者, 欲究極其物之理, 使無不盡, 然後我之知無所不至. 物理卽道理, 天下初無二理.” 震(65때). '''대답: 가슴 속에 어떻게 바로 본 것이 있게 되는가? 아기가 걷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오늘 걸음을 배우고 내일 또 걸어서 습관이 오래 쌓인 후에야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천지 만물에는 이치 없는 것이 없다. 손에는 손의 이치가 있고, 발에는 발의 이치가 있다.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치를 다할 수 있겠나! 격물이란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남김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나의 앎이 다다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사물의 이치(物理)가 바로 도덕적 이치(道理)이니, 천하에 애초에 두 가지 이치가 없다.<ref>물리와 도리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각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다.</ref>''' 진(震)의 기록. (65세) *  15:59 問: “知至·意誠, 求知之道, 必須存神索至, 不思則不得誠. 是否?” '''질문: '지지(知至)'와 '의성(意誠)'<ref>팔조목 가운데 치지와 성의를 수련한 결과를 말한다. 앎을 지극히 하는 공부를 하여 앎이 지극해진 상태,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하여 의지가 진실해진 상태이다. 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의 경우, 앎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정신을 보존하여 지극한 지점을 찾아야 하고(存神索至)<ref>양웅의 법언(法言) 문신(問神)편의 한 구절이다. 색(索)은 수색하다, 지(至)는 지극한 지점이다.</ref>, 사려하지(思) 않으면 진실해질 수 없습니다. 맞습니까? 曰: “致知·格物, 亦何消如此說. 所謂格物, 只是眼前處置事物, 酌其輕重, 究極其當處, 便是, 亦安用存神索至! 只如吾胸中所見, 一物有十分道理, 若只見三二分, 便是見不盡. 須是推來推去, 要見盡十分, 方是格物. 旣見盡十分, 便是知止<ref>조선정판본에서는 '止'를 '至'로 썼다.</ref>.” 震(65때). '''대답: 치지와 격물을 어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겠나. 이른바 격물이란 단지 눈앞에서 사태와 사물을 처리하면서 각각의 경중을 따져 각각의 마땅한 지점이 어디인지 깊이 탐구하는 것일 뿐이다. '존신색지(存神索至)'를 또 어디다 쓰겠는가? 예를 들어 자기 가슴 속에서 이해한 것으로 말하자면, 한 사물에 100%의 이치가 있는데 그 중 20~30%를 이해했을 뿐이라면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꾸준히 밀고 나가서 100%를 모두 이해해야 비로소 격물이다. 100%를 모두 이해하고 나면 '멈추어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안(知止)' 것<ref>조선정판본을 따르자면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知至)'이다. 애초에 질문자의 질문이 지지(知至)였음을 감안하면 조선정판본의 기록도 말이 된다.</ref>이다.''' 진(震)의 기록. (65세) *  15:60 或問: “致知須要誠. 旣是誠了, 如何又說誠意?" <ref>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는 이 자리에 '왈(曰)'자가 있어서 여기서부터 주희의 대답임을 표시하였다. 지록에서는 '왈' 대신 '선생운(先生云)'이라고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치지(致知)'를 하려면 진실해야(誠)합니다. 그런데, 이미 (치지의 과정에서) 진실해졌는데 왜 다시 '성의(誠意)'를 말합니까? "致知上本無‘誠’字, 如何强安排‘誠’字在上面說? 爲學之始, 須在致知. 不致其知, 如何知得! 欲致其知, 須是格物. 格物云者, 要窮到九分九釐以上, 方是格.” 謙(65때). '''(대답): (대학에서) '치지' 앞에는 본래 '성(誠)'자가 없는데 어째서 억지로 '성'자를 앞에다 배치하고 말하는가? 배움의 시작은 반드시 치지에 달려있다. 그 앎을 지극히하지(致其知) 못하면 어떻게 (도리를) 알 수 있겠나(知得)? 앎을 지극히하려면 반드시 격물해야 한다. 격물이란, (도리를) 99%<ref>'구분구리(九分九釐)'의 분과 리는 오늘날 '할푼리'라고 할 때의 푼과 리이다. 오늘날은 할이 1/10, 푼이 1/100, 리가 1/1000이지만 주희 당시에는 푼이 1/10, 리가 1/100이었다.</ref>이상 탐구해내야만 비로소 '격'이다. 겸(謙)의 기록. (65세) *  15:61 若不格物·致知, 那箇誠意·正心, 方是捺在這裏, 不是自然. 若是格物·致知, 便自然不用强捺. '''격물치지(格物致知)하지 않으면 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은 이 안쪽에[在這裏]<ref>어류의 많은 조목들에서 '在這裏'는 '이 안쪽', '내면' 등을 의미한다. 일역판은 미우라 쿠니오의 선행연구에 따라 이 표현을 단순한 강조표현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ref> 억지로 눌러두는(捺) 것이니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격물치지하면 자연히 억지로 누를 필요가 없다.'''<ref>예컨대,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도리의 경우, 왜 사랑해야 하는지 알아야(격물치지)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중단없이(성의정심)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어떠한 도리를 열심히 실천하려고만 한다면(격물치지 없는 성의정심) 이는 '억지로 눌러두는' 것에 불과하다.</ref> *  15:62 元昭問: “致知·格物, 只作窮理說?” '''원소(元昭)<ref>서림(徐琳)의 자(字)이다.</ref>의 질문: 치지와 격물을 그저 '이치를 탐구한다(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曰: “不是只作窮理說. 格物, 所以窮理.” '''대답: 궁리(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궁리의 방법(所以)이다.<ref>격물은 구체적인 사태나 사물에 1)접근해서 2)자세히 관찰하며 생각하고 3)그러다 이치를 발견하고 4)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발견의 수준을 고도화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궁리(=이치를 탐구함)는 2번에서 4번까지의 의미로 쓰일 뿐 1번의 뉘앙스는 거의 없다. 주희는 '격물'이라는 말을 다소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한다. 1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4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고 3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1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는 식이다. 이 조목에서는 격물을 1번 뜻으로 사용했지만 15:59나 15:60에서는 4번 뜻을 강조하고 있다.</ref>''' 又問: “格物是格物與人. 知物與人之異, 然後可作工夫<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此意頗切當)'가 더 있다.</ref>.” '''재질문: 격물이란 사물과 사람을 '격'하는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의 차이를 알고 나서야 힘써 노력(工夫)할 수 있습니다.<ref>격물을 1번~2번 정도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ref><ref>조선고사본을 따르자면 이 단락 전부가 인용이며 마지막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라고 평가하는 형태가 된다.</ref>''' 曰: “若作致知在格物論, 只是胡說! 旣知人與物異後, 待作甚合殺? 格物, 是格盡此物. 如有一物, 凡十瓣, 已知五瓣, 尙有五瓣未知, 是爲不盡. 如一鏡焉, 一半明, 一半暗, 是一半不盡. 格盡物理, 則知盡. 如元昭所云, 物格·知至當如何說?” '''대답: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 (는 대학의 원문)으로 논하자면, (방금 자네의 말은) 그저 헛소리(胡說)일 뿐이다. 사람과 사물이 다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장차(待) 어떻게(作甚) 마무리하려(合殺) 하는가?<ref>고문해의의 해석을 따랐다. 원소가 격물과 궁리(=치지)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게 설정한 것에 화가 난 주희가 '그런 식으로는 치지가 격물에 달려있다는 경문을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는 장차, '작심'은 어떻게, '합살'은 매조지함이다. 합살은 본래 악곡의 연주를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39:2에서 '如何合殺'이라고 말한 부분을 참조하라.</ref> 격물이란 이 사물을 남김없이 '격'하는 것이다.<ref>격물을 4번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ref>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 모두 열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조각은 알았지만 나머지 다섯 조각은 아직 알지 못한다면 이는 남김없이 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거울이 있는데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면 이는 절반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완전히 '격'하면 앎은 남김 없이 완전해진다. 자네(元昭)의 말과 같다면 '사물을 다 탐구한 뒤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知至)'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ref>직전 질문에서 원소는 '격'을 1~2번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물을 모두 '격'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앎이 지극해지지는 않는다. 주희는 격물을 4번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대학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격물의 완료가 곧바로 앎의 지극함을 의미한다.</ref>''' 子上問: “向見先生答江德功書如此說.” '''나(子上)<ref>정가학(鄭可學)의 자이다. 조선고사본에 따라 본 조목의 기록자를 정가학으로 간주하고 이와 같이 번역했다.</ref>의 질문: 전에 선생님께서 강덕공(江德功)<ref>강묵(江默).</ref>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ref>회암집 권 44의 답강덕공 제 2서를 말한다. 此所謂‘格物而至於物, 則物理盡’者也. 物理皆盡, 則吾之知識廓然貫通, 無有蔽礙, 而意無不誠, 心無不正矣. 此大學本經之意, 而程子之說然也. 其宏綱實用, 固已洞然無可疑者 : 而微細之間, 主賓次第․文義訓詁詳密精當, 亦無一毫之不合. 今不深考, 而必欲訓致知以․窮理’, 則於主賓之分有所末安 : 知者吾心之知, 理者事物之理. 以此知彼, 自有主賓之辨, 不當以此字訓彼字也. 訓格物以‘接物’, 則於究極之功有所未明. 人莫不與物接, 但或徒接而不求其理, 或粗求而不究其極, 是以雖與物接, 而不熊知其理之所以然與其所當然也. 今曰一與物接而理無不窮, 則亦太輕易矣. 蓋特出於聞聲悟道․見色明心之餘論, 而非吾之所謂窮理者, 固未可同年而語也. 且考之他書, ‘格’字亦無訓‘接’者. 以義理言之則不通, 以訓詁考之則不合, 以功用求之則又無可下手之實地, 竊意聖人之言必不如是之差殊疎略, 以病後世之學者也.</ref> 曰: “渠如何說, 已忘卻.” '''대답: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잊어버렸다. 子上云: “渠作接物.” '''자상: 그는 (격물을) '접물(接物)'로 풀었습니다.<ref>격물을 1번 뜻으로 푼 것이다.</ref> 曰: “又更錯.”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기록자를 '可學'으로 적시하고 있다.</ref> '''대답: 더더욱 틀렸구나. *  15:63 陳問: “大學次序, 在聖人言之, 合下便都能如此, 還亦須從致知格物做起? 但他義理昭明, 做得來恐易.” '''진(陳)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 순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시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그래도 성인은 의리(義理)에 매우 밝으니 (격물치지)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曰: “也如此學. 只是聖人合下體段已具, 義理都曉得, 略略恁地勘驗一過. 其實大本處都盡了, 不用學, 只是學那沒緊要底. 如中庸言: ‘及其至也, 雖聖人有所不知不能焉.’ 人多以至爲道之精妙處. 若是道之精妙處有所不知不能, 便與庸人無異, 何足以爲聖人! 這至, 只是道之盡處, 所不知不能, 是沒緊要底事. 他大本大根元無欠闕, 只是古今事變, 禮樂制度, 便也須學.” 寅. '''대답: (성인) 역시 그렇게 배운다. 다만 성인은 애초에 뼈대(體段)<ref>디테일은 몰라도 구조적 측면에서는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비근한 번역어는 아마도 '와꾸'일 것이다.</ref>가 이미 갖춰져 있고 의리(義理)에도 모두 밝으니 대략적으로 그렇게 한 번 점검해보는 것이다. 사실, 큰 근본이 이미 다 되었으므로 더 배울 필요가 없다. 그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는 것 뿐이다. '중용'에서 말하길,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ref>중용 제12장.</ref>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부분'을 도(道)의 정묘(精妙)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도의 정묘한 지점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지극한 부분'은 단지 도를 남김없이 다 한 지점이요,<ref>주희는 이 '지극'을 문제의 핵심부나 산의 정상처럼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나중에 나오는 물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것들로 파악했다. 63:60을 참조하라.</ref>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일 뿐이다. 성인은 큰 근본과 뿌리에서는 부족함이 없으나, 고금(古今)의 사변(事變), 예악제도(禮樂制度)는 역시 배워야 한다.''' 인(寅)의 기록. *  15:64 子善問物格. '''자선(子善)<ref>반시거의 자(字)이다.</ref>이 '물격(物格)'<ref>격물이 완성된 결과가 물격이다.</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物格是要得外面無不盡, 裏面亦淸徹無不盡, 方是不走作.” 恪(64때). <以下物格.> '''대답: 사물이 '격'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바깥쪽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안쪽으로도 역시 맑고 투명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여야 비로소 (마음이) 달아나지 않게 된다.<ref>바깥쪽, 안쪽, 달아남 등의 키워드는 15:28, 66, 67, 69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15:66을 참고하라.</ref> 각(恪)의 기록. (64세) <以下物格.> '''<이 아래로 물격(物格)에 관한 조목들> *  15:65 上而無極·太極, 下而至於一草·一木·一昆蟲之微, 亦各有理. 一書不讀, 則闕了一書道理; 一事不窮, 則闕了一事道理; 一物不格, 則闕了一物道理. 須著逐一件與他理會過. 道夫(60이후). '''위로는 무극(無極)인 태극(太極)<ref>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첫 구문이다. 주희는 이 부분을 '극 없는 위대한 극'으로 풀었다. 태극은 세계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이치(理)인데, 그것이 이치라는 것은 형체와 질감 없이 순전히 이론적인 존재, 곧 형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태극의 이러한 형이상자적인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로 '무극'이다.</ref>에서부터 아래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미미한 곤충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이치가 있다. 책 한 권을 읽지 않으면 책 한 권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고, 사태 하나를 파고들지(窮) 않으면 사태 하나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며, 사물 하나를 탐구하지(格)하지 않으면 사물 하나어치의 도리를 결여하게 된다. 반드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헤아려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66 叔文問: “格物莫須用合內外否?” '''숙문(叔文)의 질문: 격물 공부는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ref>이치를 알고자하는 '안쪽'의 노력(즉, 인식)과 여러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려는 '바깥쪽'의 노력(즉, 실천) 양쪽이 모두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15:28, 15:69를 참조하라. 아래 15:67도 같은 내용이다. '안쪽과 바깥쪽의 합일(合內外)'이라는 표현은 이정유서 11:18이 유명하다. '경건함으로 안쪽을 곧게하고 의로움으로 바깥쪽을 바르게 하니 안쪽과 바깥쪽을 합일하는 도리이다(敬以直內, 義以方外, 合內外之道也.)' </ref> 曰: “不須恁地說. 物格後, 他內外自然合. 蓋天下之事, 皆謂之物, 而物之所在, 莫不有理. 且如草木禽獸, 雖是至微至賤, 亦皆有理. 如所謂‘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自家知得這箇道理, 處之而各得其當便是. 且如鳥獸之情, 莫不好生而惡殺, 自家知得是恁地, 便須‘見其生不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方是. 要之, 今且自近以及遠, 由粗以至精.” 道夫(60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사물이 '격'되고 나면 안쪽과 바깥쪽은 자연히 합치한다. 대개 천하의 모든 사태를 통틀어 '사물(物)'이라고 부르는데, 사물이 있는 곳에 이치가 없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초목과 금수는 비록 지극히 미미하고 천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모두 이치가 있다. 예를 들어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ref>산의 남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ref>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ref>산의 북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ref>을 벤다'<ref>주례(周禮) 지관(地官) 산우(山虞)</ref>는 말 처럼, 자신이 이러저러한 도리를 알고서 각각의 사물을 처리하기를 각자에게 적합하고 알맞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본능적으로(情) 모두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자신이 (동물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ref>이것이 안쪽이고 가까운 곳이고 거친 것이다.</ref>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해야'<ref>이것이 바깥쪽이고 먼 곳이고 정밀한 것이다. 출전은 맹자 1A:7</ref> 한다. 요컨대, 이제 가까운 데에서부터 먼 곳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정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ref>이치를 알고자하는 노력의 끝에 이치를 알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치에 맞게 사태에 대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안쪽'은 독립변수, '바깥쪽'은 종속변수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寓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우(寓)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67 問: “格物須合內外始得?” '''질문: 격물은 반드시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해야만 합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주광호(2020, 482)도 이 부분을 번역하고 유려하게 해설하고 있으니 참고하라.</ref> 曰: “他內外未嘗不合. 自家知得物之理如此, 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 便見合內外之理. 目前事事物物, 皆有至理. 如一草一木, 一禽一獸, 皆有理. 草木春生秋殺, 好生惡死. ‘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皆是順陰陽道理. <砥錄作“皆是自然底道理”.> 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 ‘見生不忍見死, 聞聲不忍食肉’, 非其時不伐一木, 不殺一獸, ‘不殺胎, 不殀夭, 不覆巢’, 此便是合內外之理.” 㝢(61이후). '''대답: 안쪽과 바깥쪽은 애초에 합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자기 스스로 이 사물의 이치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면 그 이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사물에) 대응하게 되니, (이렇게 되었을 때 여기서 우리는)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를 보게 된다. 눈앞의 사태와 사물에는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에도 모두 이치가 있다. 초목은 봄에 나고 가을에 죽으며, (금수는)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을 베는'<ref>직전 조목 참조.</ref> 것은 모두 음양의 도리를 따른 것이다.<지(砥)의 기록에서는 "모두 자연스러운 도리이다."> 자기 스스로 만물이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아 한 몸임을(均氣同體),<ref>여대림(呂大臨)이 극기명(克己銘)에서 만물일체를 주장한 부분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비록 상호 독립된 개체인 것처럼 보여도 그 구성물질은 모두 우주로부터 골고루 나누어받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실은 한 몸(同體)이다.</ref> 알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ref>직전 조목 참조. 글자에는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하고, 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짐승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며, '새끼를 밴 것을 죽이지 않으며, 어린 개체를 죽이지 않으며, 둥지를 뒤엎지 않는다'.<ref>예기 왕제</ref> 이것이 바로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砥錄略.> '''<지(砥)의 기록은 생략한다.> *  15:68 “知至, 謂天下事物之理知無不到之謂. 若知一而不知二, 知大而不知細, 知高遠而不知幽深, 皆非知之至也. 要須四至八到, 無所不知, 乃謂至耳.” '''지지(知至)란 천하의 사태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나의 앎이 이르지(到) 않은 경우가 없음을 말한다. 만약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고, 큰 것은 알지만 작은 것은 모르고, 고원(高遠)한 것은 알지만 심오한(幽深) 것은 모른다면, 이는 모두 '앎이 이른(知之至)'<ref>지지(知至)의 지(至)는 '지극하다'라고도 풀지만 '이르렀다'고도 풀이한다. 지극(至極)이라는 말부터가 극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니 사실 '지극하다'와 '이르렀다'는 서로 통한다. 본고에서는 문맥에 따라 두 번역어를 바꿔 쓰고 있다.</ref>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방팔방에 두루 이르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르렀다(=지극해졌다)'고 할 수 있다. 因指燈曰: “亦如燈燭在此, 而光照一室之內, 未嘗有一些不到也.” 履孫(65때). 이어서 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 등불이 여기 있으면서 그 빛이 실내 전체를 밝혀서 그 빛이 이르지(到) 않는 곳이 조금도 없는 것과 같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以下知至.> '''<이 아래로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69 知至, 謂如親其所親, 長其所長, 而不能推之天下, 則是不能盡之於外; 欲親其所親, 欲長其所長, 而自家裏面有所不到, 則是不能盡之於內. 須是其外無不周, 內無不具, 方是知至. 履孫(65때). '''지지(知至)로 말하자면, 어버이를 친애하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되<ref>맹자 4A:11</ref> 그것을 미루어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바깥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어버이를 친애하고 싶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고 싶은데 자기 안에서 (지극한 데까지)도달하지 못한 바가 있으면 이는 안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바깥쪽으로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안쪽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지지(知至)이다.<ref>안쪽과 바깥쪽에 관해서는 앞선 15:66과 67을 참조하라.</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70 子升問: “知止便是知至否?” '''자승의 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가 곧 '앎이 지극해졌다(知至)' 아닙니까? 曰: “知止就事上說, 知至就心上說. 知止, 知事之所當止; 知至, 則心之知識無不盡.” 木之(68때). '''대답: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지지(知止)는 각각의 사태에 있어서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아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에 미진한 데가 없는 것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5:71 知止, 就事上說; 知至, 就心上說, 擧其重而言. 閎祖(59이후).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각자 더 중점을 둔 부분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ref>직전 15:70을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72 問: “‘致知’之‘致’, ‘知至’之‘至’, 有何分別?” '''질문: '치지(致知)'의 '치'와 '지지(知至)'의 '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ref>대학의 본문을 보면 팔조목을 순서대로 나열한 후 그것을 도치시켜서 역순으로 나열한다. 예컨대 격물(格物)에 대해서는 물격(物格)이라고 하고 성의(誠意)에 대해서는 의성(意誠)이라고 하는 식이다. 유독 치지(致知)만 지치(知致)가 아니라 지지(知至)라고 적혀있다.</ref> 曰: “上一‘致’字, 是推致, 方爲也. 下一‘至’字, 是已至.” <先著“至”字, 旁著“人”字, 爲“致”. 是人從旁推至.> 節(64이후). '''대답: 위의 '치(致)'자는 밀고 나가는(推致) 것이니 곧 (어떤) 행위(爲)이다. 아래의 '지(至)'자는 이미 도달한(至) 것이다. <먼저 '지(至)'자를 쓰고 옆에 '인(人)'자를 쓰면 '치(致)'자가 된다. 옆에서 사람이 미는 것이다.><ref>이 파자해는 무척 이상하다. 우선 치(致)의 우변이 인(人)이라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에게 어떤 근거가 있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73 格物, 只是就事上理會; 知至, 便是此心透徹. 廣(65이후). '''격물(格物)은 실제 사태에서 헤아리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이 마음이 완전히 투명한 것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5:74 格物, 便是下手處; 知至, 是知得也. 德明(44이후). '''격물은 (공부에) 착수하는 곳이고, 지지(知至)는 (공부의 결과) 앎을 이룬 것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75 致知未至, 譬如一箇鐵片, 亦割得物事, 只是不如磨得芒刃十分利了, 一鍤便破. 若知得切了, 事事物物至面前, 莫不迎刃而解. 賀孫(62이후). '''치지(致知) 공부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未至) 것은, 비유하자면, 쇠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물건을 자를 수야 있겠지만 100% 예리하게 갈아낸 날카로운 칼날(芒刃)이 단번에 (물건을) 파괴하는 것만은 못하다. 앎이 절실해지고나면 온갖 사태와 사물이 면전에 도달하자마자 모조리 포정(庖丁)의 칼에 닿은 소고기처럼 해체되어버린다(迎刃而解).<ref>14:80 참조.</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6 未知得至時, 一似捕龍蛇, 捉虎豹相似. 到知得至了, 卻恁地平平做將去, 然節次自有許多工夫. 到後來絜矩, 雖是自家所爲, 皆足以興起斯民. 又須是以天下之心審自家之心, 以自家之心審天下之心, 使之上下四面都平均齊一而後可. 賀孫(62이후).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知至) 못했을 때는 마치 용과 뱀과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는 것 같다가도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오히려 이렇게 평이하게 해 나가게 된다.<ref>고수나 달인의 도드라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일을 숨쉬듯이 평이하게 해낸다는 것이다. 온갖 애를 써가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괴인들보다 평범하게 주먹 한 번 휙 휘두르는 사이타마가 훨씬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 '원펀맨'의 장면들이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간의 훈련을 거치고 나온 손오공과 손오반이 초사이어인 상태를 평이하고 차분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묘사한 '드래곤볼'을 참조하라.</ref> 하지만 그 중간 단계들에는 자연히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나중에 혈구(絜矩) 부분에 이르면<ref>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f>, 비록 자기 한 사람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백성들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다.<ref>전 10장. 윗사람이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고 그 도덕성이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아랫사람들 역시 윗사람과 똑같은 심사를 가진 사람이니만큼 금방 그것을 따라하여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 노인을 잘 모시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효심이 흥하고 ......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마음이 흥한다.'</ref> 또, 천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의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살펴서 상하사방이 모두 고르고 균일하게(平均齊一) 되어야만 한다.<ref>이 부분은 혈구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평균제일(平均齊一)'이라고 한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균질화라기보다는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간격이 균일해진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내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들면 나는 내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위에서 아래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아래' 각 마디가 모두 똑같이 '상호존중'이라는 동일한 간격으로 정렬될 것이다. 전 10장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7 鄭仲履問: “某觀大學知至, 見得是乾知道理.” '''정중리(鄭仲履)의 질문: 제가 '대학'의 지지(知至)를 살펴보고 건지(乾知)의 도리라고 이해했습니다.<ref>주역 계사상전 1의 '건이 (세상의) 큰 시작을 맡고 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乾知大始, 坤作成物)'를 말한다. 주희는 이 '지(知)'를 담당하고 주관한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여기서 정중리는 '알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듯하다. 74:21 참조.</ref> 曰: “何用說乾知! 只理會自家知底無不盡, 便了.” 蓋卿(65때). '''대답: '건지(乾知)'를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저 자신의 앎에 미진함이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78 知至, 如易所謂極深; ‘惟深也, 故能通天下之志’, 這一句略相似. 能慮, 便是硏幾; 如所謂‘惟幾也, 故能成天下之務’, 這一句卻相似. 蘷孫(68이후). '''지지(知至)<ref>조선정판본은 '지(至)'가 '지(止)'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주희는 여기서 주역 계사전의 '극심'과 '연기'라는 개념쌍을 대학의 '지지'와 '능려'라는 개념쌍과 비교하고 있는데 대학 본문의 체제상 '능려'와 짝이 되는 것은 '지지(知至)'가 아니라 '지지(知止)'이기 때문이다. 번역자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이 조목은 14:163과 사실상 같으니 함께 놓고 비교하는 것이 좋다.</ref>는 '역(易)'에서 이른바 극심(極深)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어류 14:146과 163을 참조하라.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ref>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천하 모든 것의 의지를 완전히 이해한다(通)'는 (계사전의) 구절과 대략 비슷하다. 능려(能慮)는 연기(硏幾)이다.<ref>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ref>'사태의 기미를 세밀하게 살폈(幾)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계사전) 구절과 비슷하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79 問: “定·靜·安·慮·得與知至·意誠·心正是兩事, 只要行之有先後. 據先生解安·定·慮·得與知至似一般, 如何?” '''질문: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ref>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알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定), 안정되면 조용해지고(靜), 조용해지면 편안해지고(安), 편안해지면 심사숙고할 수 있게 되고(慮), 심사숙고하면 실제로 그 최선의 지점을 찾아 머물게 된다(得). 대학 경문에서 '멈출 곳을 안(知止)' 다음 일어나는 일련의 연쇄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ref>과 지지(知至), 의성(意誠), 심정(心正)은 서로 별개의 일이고,<ref>팔조목의 과정이다. 대학 경문에서 묘사한 인식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팔조목에서 묘사한 과정이 서로 별개의 프로세스라는 말이다. 주희는 이 두 프로세스를 나란히 놓고 이쪽의 이 단계는 저쪽의 저 단계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5:139에서는 '앎이 지극해짐(知至)'까지가 경문의 '지지(知止)'에 해당하고 그 이후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여섯 조목은 경문의 정/정/안/려/득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14:174에서는 팔조목의 치지와 성의 사이에 정/정/안/려/득을 모두 배치했다. 14:157에서도 치지 뒤에 정/정/안/려/득을 배치했지만 성의가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ref> 단지 실천에 선후 순서가 필요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바에 따르면, 안, 정, 려, 득과 지지(知至)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ref>확신하기 어려우나 질문자는 정/정/안/려/득을 먼저 실천하고 성의/정심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ref> 曰: “前面只是大綱且如此說, 後面卻是學者用力處.” 去僞(46때). '''대답: 앞부분<ref>경문의 정정안려득 부분이다.</ref>은 단지 큰 얼개를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뒷부분<ref>팔조목 쪽이다.</ref>이 오히려 배우는 이가 힘써야 할 곳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5:80 致知, 不是知那人不知底道理, 只是人面前底. 且如義利兩件, 昨日雖看義當爲然, 而卻又說未做也無害; 見得利不可做, 卻又說做也無害; 這便是物未格, 知未至. 今日見得義當爲, 決爲之; 利不可做, 決定是不做, 心下自肯自信得及, 這便是物格, 便是知得至了. 此等說話, 爲無恁地言語, 冊子上寫不得. 似恁地說出, 卻較見分曉. 植(64때). '''치지(致知)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도리를 알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 면전에 있는 것(을 알라는 것)뿐이다. 의(義)와 리(利) 두 가지를 예로 들자면, 어제는 비록 정의(義)를 마땅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오히려 다시 '아직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사리사욕(利)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서도 오히려 다시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이는 사물(物)을 아직 끝까지 탐구(格)하지 못했고, 앎(知)이 아직 지극해지지(至) 못한 것이다. 오늘 정의를 마땅히 실천해야 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그렇게 실천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추구하지 않아서 마음 속에서 기꺼이 스스로 믿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사물이 끝까지 탐구된(格) 것이요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학 본문에) 이런 말이 없기 때문에 책에는(冊子)<ref>대학장구 혹은 대학혹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 쓸 수 없었다.<ref>이 부분은 지시대명사가 많아서 직역만으로는 뜻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책자'를 주희 본인의 주석서로 본 것은 번역자의 추측이다.</ref> 이런식으로 설명하면 비교적 분명하게 이해되는 것 같다.<ref>이 조목의 대의는 28:19와 흡사하다.</ref> 식(植)의 기록. <以下物格·知至.> '''<이 아래로는 물격(物格),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81 問: “格物·窮理之初, 事事物物也要見到那裏了?” '''질문:'격물(格物)'과 '궁리(窮理)'의 초기단계에서 모든 사태와 사물을 그런 수준까지(那裏)<ref>후술하겠지만, 이치를 100% 이해하여 의심이 없는 수준을 말한다</ref> 보아야합니까? 曰: “固是要見到那裏. 然也約摸是見得, 直到物格·知至, 那時方信得及.” 㝢(61이후). '''대답: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수준까지 보아야 한다. 하지만 (초기단계에는 먼저) 큰 틀(約摸)을 보고, 물격(物格)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비로소 (이치를) 믿을 수 있게 된다.<ref>28:25의 말미가 이 조목과 일치한다. 28:25는 논어 5:5의 해석에 관한 문답이다.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게 하였는데 칠조개가 '저는 아직 이것에 대해 아직 믿지 못합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답하니 공자가 기뻐한다. 여기서 '믿음'은 이치(理)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앎이 지극(知至)해지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면 이치를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82 守約問: “物格·知至, 到曾子悟忠恕於一唯處, 方是知得至否?” '''수약(守約)<ref>이굉조의 자가 수약이다.</ref>의 질문: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증자가 '예(唯)'라는 한 마디로 충서(忠恕)를 깨달은 정도에 이르러야<ref>논어 4:15</ref> 비로소 앎이 지극해지는 것(知至) 아닙니까? 曰: “亦是如此. 只是就小處一事一物上理會得到, 亦是知至.” 賀孫(62이후). '''대답: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일사일물처럼 작은 곳에 나아가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역시 지지(知至)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83 或問: “‘物格而后知至’一句, 或謂'物格而知便至'. 如此, 則與下文‘而后’之例不同.”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而后知至)'는 구절에서, 어떤 이는 '사물이 탐구되면 앎은 곧 지극해진다(物格而知便至)'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아래 문장에서 '이후에(而后)'를 반복하는 체제와 일관되지 않습니다.<ref>대학 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후에'를 반복하고 있다.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 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 의성이후심정(意誠而后心正) 심정이후신수(心正而后身修) 신수이후가제(身修而后家齊) 가제이후국치(家齊而后國治) 국치이후천하평(國治而后天下平). '이후에'라고하면 앞 단계와 뒷 단계의 선후가 명확하다. 먼저 앞 단계를 마치고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면 곧'이라고 쓰면 앞 단계가 완료됨과 동시에 뒷단계도 완료되므로 전자와 후자는 선후관계가 아니게 된다.</ref> 曰: “看他文勢, 只合與下文一般說. 但且謂之物格, 則不害其爲一事一物在. 到知, 則雖萬物亦只是一箇知. 故必理無不窮, 然後知方可盡. 今或問中卻少了他這意思.” '''대답: 대학의 문장의 흐름을 보면 아래쪽 문장들과 일치하도록 ('이후에'라고) 말해야 한다. 다만 사물이 탐구되었다고(格) 한다면 (탐구된 것이) 한 가지 사태나 한 가지 사물에 그쳐도 된다. '앎'의 경우, 사물이 제아무리 많아도 앎은 그저 하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탐구하지(窮) 않은 이치가 없어야만 앎을 다했다 할 수 있다. 지금 대학혹문에는 이 의미가 빠져 있다.<ref>회암집 권46의 답황상백 제4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논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5:84 “大學物格·知至處, 便是凡聖之關. 物未格, 知未至, 如何殺也是凡人. 須是物格·知至, 方能循循不已, 而入於聖賢之域, 縱有敏鈍遲速之不同, 頭勢也都自向那邊去了. 今物未格, 知未至, 雖是要過那邊去, 頭勢只在這邊. 如門之有限, 猶未過得在.”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진다는 지점이 바로 범부와 성인을 가르는 관문(凡聖之關)이다.<ref>관문은 누군가는 통과시키고 누군가는 통과시키지 않는 군사요새이다. 예컨대 장안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야 한다. 넘지 못하면 장안에도 못가는 것이고 넘으면 장안에 들어갈 수 있다. 후금의 군대가 북경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해관(山海關)을 넘어야 한다. 넘으면 천하를 차지하지만 넘지 못하면 거병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 이처럼 'xx관'이라는 표현은 우리를 어떤 경지로 인도하는 잘 닦인 길이라기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돌려보내는 난관과 같은 이미지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ref> 사물이 아직 '격'되지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도(如何殺)<ref>살(殺)은 살(煞)과 통한다. 현대 중국어 '셤머(什麽:무엇)' 정도에 해당한다.</ref> 범부이다. 반드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져야만 순차적으로 중단 없이 계속 (전진)해서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入於聖賢之域). 민첩한가 둔한가(敏鈍)의 차이와 빠르냐 느리냐(遲速)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추세(頭勢)는 완전히 그쪽<ref>관문 너머의 성현의 영역쪽</ref>으로 향해 간다. 지금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格)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비록 그쪽으로 가고자 해도 추세(頭勢)는 이쪽을<ref>관문을 넘지 못한 범부의 영역쪽</ref> 향해 있다. 문에 문턱이 있는데 아직 그걸 넘어가지 못한 셈이다.''' 問: “伊川云‘非樂不足以語君子’, 便是物未格, 知未至, 未過得關否?” '''질문: 이천(伊川)이 '즐기지 못하면 군자라 하기에 부족하다'<ref>이정유서 17:69. 글자의 출입은 있으나 대의는 같다. 논어집주 1:1에도 인용되어있다.</ref>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사물이 탐구되지(格) 않고 앎지 지극하지 못하여 관문을 넘지 못한 것입니까? 曰: “然. 某嘗謂, 物格·知至後, 雖有不善, 亦是白地上黑點; 物未格, 知未至, 縱有善, 也只是黑地上白點.” 伯羽(61때). '''대답: 그렇다. 내가 일찍이 말했듯, 물격지지한 뒤라면 비록 불선(不善)이 있더라도 역시 흰 땅 위의 검은 점과 같고, 물격지지하지 못했다면 비록 선(善)이 있더라도 역시 검은 땅 위의 흰 점과 같을 뿐이다. 백우(伯羽)의 기록. (61세) <以下論格物·致知·誠意是學者之關.> '''<이하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가 배우는 이에게 관문임을 논하는 조목들> *  15:85 格物是夢覺關. <格得來是覺, 格不得只是夢.> 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過得此二關, 上面工夫卻一節易如一節了. 到得平天下處, 尙有些工夫. 只爲天下闊, 須著如此點檢.” '''격물은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요, <격물을 해내면 깬 것이고 격물하지 못하면 꿈일 뿐이다> 성의(誠意)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성의를 해내면 선이고, 해내지 못하면 악일 뿐이다> 이 두 관문을 넘어서면 그 위쪽단계의 노력(工夫)은 매 단계 더 쉬워진다. 평천하의 단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그저 천하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렇게 (평천하 조목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뿐이다. 又曰: “誠意是轉關處.” '''다시 말함: 성의는 전환점(轉關處)<ref>번역은 '전환'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에도 '관(關)'자가 쓰였음에 유의하라. 주희는 관문이라는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ref>이다. 又曰: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 蘷孫(68이후). '''또 말함: 성의는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관문이다(人鬼關). <성의를 해내면 사람이고, 해내지 못하면 귀신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86 致知·誠意, 是學者兩箇關. 致知乃夢與覺之關, 誠意乃惡與善之關. 透得致知之關則覺, 不然則夢; 透得誠意之關則善, 不然則惡. 致知·誠意以上工夫較省, 逐旋開去, 至於治國·平天下地步愈闊, 卻須要照顧得到. 人傑(51이후). '''치지와 성의는 배우는 이의 두 관문이다. 치지는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고, 성의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치지의 관문을 돌파하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넘지 못하면 꿈속이다. 성의의 관문을 돌파하면 선이고 넘지 못하면 악이다. 치지와 성의의 다음 단계의 공부(工夫)은 비교적 힘이 덜 든다. 순서대로 열어(開)<ref>관문의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ref> 나가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면 그 범위(地步)가 더욱 넓어지므로 오히려 더 주의해야(照顧) 한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87 知至·意誠, 是凡聖界分關隘. 未過此關, 雖有小善, 猶是黑中之白; 已過此關, 雖有小過, 亦是白中之黑. 過得此關, 正好著力進步也. 道夫(60이후).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은 범부와 성인의 경계를 가르는 관문(關隘)<ref>애(隘)는 험준한 곳에 설치된 요새이다. 기본적으로 '관'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통과의 어려움을 약간 더 강조한 표현으로 보인다.</ref>이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비록 작은 선(善)이 있더라도 여전히 검은 바탕 위의 하얀 점이다. 이 관문을 넘고 나면, 비록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역시 흰 바탕의 검은 점이다.<ref>15:84를 보라.</ref> 이 관문을 넘고 나면 힘써 전진하기에 딱 좋다(正好).'''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88 “大學所謂‘知至·意誠’者, 必須知至, 然後能誠其意也. 今之學者只說操存, 而不知講明義理, 則此心憒憒, 何事於操存也! 某嘗謂誠意一節, 正是聖凡分別關隘去處. 若能誠意, 則是透得此關; 透此關後, 滔滔然自在去爲君子. 不然, 則崎嶇反側, 不免爲小人之歸也.” ''' '대학'에서 이른바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이란, 반드시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야 의지가 진실해질(意誠)<ref>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단지 마음을 지키는(操存) 것만 말할 뿐<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공부, 일종의 명상 공부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의의 단계를 말한다.</ref> 의리(義理)를 강론하여 밝힐(講明) 줄 모른다.<ref>지적 사유를 통해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공부이다. 여기서는 치지의 단계를 말한다.</ref>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그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니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부터 성의(誠意)의 단계는 성인과 범부를 가름하는 관문(關隘)이 되는 자리(去處)라고 했다. 만약 의지를 진실하게(誠意) 할 수 있으면 이 관문을 돌파한 것이다. 이 관문을 돌파한 후에는 도도(滔滔)<ref>황하나 양자강처럼 큰 물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부단히 흐르는 모양이 '도도'한 것이다.</ref>히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군자가 될 것이다. 돌파하지 못하면 길이 구불구불 험난하여<ref>관문은 기본적으로 지세가 매우 험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통과가 용이한 지점에 설치하는 방어시설이다. 그러므로 여행자가 어떤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은 매우 험하고 난해하고 비효율적인 우회로를 찾아가야 함을 뜻한다.</ref> 결국 소인이 되는 걸 면치 못할 것이다.''' “致知所以先於誠意者如何?” '''(누군가의 질문): 치지가 성의에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致知者, 須是知得盡, 尤要親切. 尋常只將‘知至’之‘至’作‘盡’字說, 近來看得合作‘切至’之‘至’. 知之者切, 然後貫通得誠意底意思, 如程先生所謂眞知者是也.” 謨(50이후). '''대답: 치지란, 반드시 남김없이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친근하고 절실해야(親切) 한다. 보통은 그저 '지지(知至)'의 '지(至)'를 '남김없이 다함(盡)'이라고 해설하나, 나는 요즘 '절실하다(切至)'<ref>'절지'는 18:6에서도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ref>라고 할 때의 '지(至)'로 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앎이 절실해진 뒤에야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誠意)'는 것의 취지를 관통할 수 있다.<ref>정말로 자신의 실존에 호소하는 절실한 도덕인식은 자연스럽게 간절한 실천의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통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ref> 정자(程子)가 말한 '참된 앎(眞知)'<ref>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 바로 그것이다.<ref>본 조목은 약간의 글자 출입을 제외하면 117:10의 후반부와 일치한다.</ref> '''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89 論誠意, 曰: “過此一關, 方是人, 不是賊!” '''성의(誠意)를 논하며 말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사람이고, 도적(賊)<ref>한 두 사람이 은밀히 돌아다니며 재물을 훔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수십수백명이 무리지어 유랑하며 마을을 약탈하는 것도 '도적(賊)'이라고 불렀다. 관문은 군대가 지키는 요새이니 도적떼는 통과하지 못한다.</ref>이 아니다. 又曰: “過此一關, 方會進.” '''다시 말함: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一本云: “過得此關, 道理方牢固.”> 方子(59이후). '''<다른 책에서는 '이 관문을 넘어서야 도리가 비로소 견고해진다'라고 했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90 鍾唐傑問意誠. '''종당걸(鍾唐傑)<ref>원주(袁州) 평향(萍鄉) 사람이다. 주자문인(朱子門人) 354쪽을 보라.</ref>이 성의에 대해 물었다. 曰: “意誠只是要情願做工夫, 若非情願, 亦强不得. 未過此一關, 猶有七分是小人.” 蓋卿(65때). '''대답: 의성(意誠)이란 진정으로 원하여(情願) 노력(工夫)하려는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면 역시 강요할 수 없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여전히 70%는 소인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91 意誠·心正, 過得此關, 義理方穩. 不然, 七分是小人在. '''의성(意誠)과 심정(心正)의 경우, 그 관문을 넘어서야 의리(義理)가 비로소 안정된다. 넘지 못하면 70%는 소인이다. 又曰: “意不誠底, 是私過; 心不正底, 是公過.” 方子(59이후). '''다시 말함: 의지(意)가<ref>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ref> 진실하지 않으면 '사(私)'에서 잘못된 것이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공(公)'에서 잘못된 것이다.<ref>이 부분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추후 보충하겠다. 16:131을 참조하라.</ref> *  15:92 深自省察以致其知, 痛加剪落以誠其意. 升卿(62때). '''깊이(深自) 성찰하여 앎을 지극히하고, 통렬히 잘라내어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 승경(升卿)의 기록. (62세) <致知·誠意.> '''<치지와 성의에 관한 조목> *  15:93 知與意皆出於心. 知是知覺處, 意是發念處. 閎祖(59이후). '''지(知)와 의(意)는 모두 마음(心)에서 나온다. 지는 지각(知覺)하는 곳이고, 의는 의념(念)이 일어나는 곳이다.<ref>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94 致知, 無毫釐之不盡. 守其所止, 無須臾之或離. 致知, 如一事只知得三分, 這三分知得者是眞實, 那七分不知者是虛僞. 爲善, 須十分知善之可好, 若知得九分, 而一分未盡, 只此一分未盡, 便是鶻突苟且之根. 少間說便爲惡也不妨, 便是意不誠. 所以貴致知, 窮到極處謂之‘致’. 或得於小而失於大, 或得於始而失於終, 或得於此而失於彼, 或得於己而失於人, 極有深淺. 惟致知, 則無一事之不盡, 無一物之不知. 以心驗之, 以身體之, 逐一理會過, 方堅實. 僩(69이후). '''치지(致知)는 털끝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멈춰야 할 최선의 지점을 고수하여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치지란, 가령 어떤 사안에 관하여 단지 30%만 알았다면, 알고 있는 30%만 진실이며 알지 못하는 나머지 70%는 허위이다. 선을 행하려면 선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100% 알아야 하니, 만약 90%는 알겠는데 10% 미진하다면 바로 그 미진한 10%가 곧 (선을 행함에 있어서의) 모호함과 구차함의(鶻突苟且) 뿌리가 된다. 머지않아 '악을 행하는 것도 괜찮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곧 의지(意)가 진실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므로 치지(致知)를 귀하게 여기니, 지극한 지점에 이를 때까지 탐구하고 파고드는 것을 '치(致)'라고 한다. 작은 것은 얻고 큰 것은 잃거나, 처음에는 얻고 나중에는 잃거나, 여기서는 얻고 저기서는 잃거나, 자신에게는 얻고 타인에게는 잃는 경우가 있으니, (앎에 있어서) 깊이의 차이가 지극히 크다. 오직 앎이 지극해야만 한 가지 사안도 남김없이 다하지 못함이 없고, 한 가지 사물도 남김없이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 마음으로 체감하고 몸으로 체험하며(以心驗之, 以身體之)<ref>양시(楊時)의 말이다. 구산집 권 12와 권 27을 보라. 어류 113:13도 참조하라.</ref> 하나하나 헤아려나가야 비로소 견실하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95 說爲學次第, 曰: “本末精粗, 雖有先後, 然一齊用做去. 且如致知·格物而後誠意, 不成說自家物未格, 知未至, 且未要誠意, 須待格了, 知了, 卻去誠意. 安有此理! 聖人亦只說大綱自然底次序是如此. 拈著底, 須是逐一旋旋做將去始得. 常說田子方說文侯聽樂處, 亦有病. 不成只去明官, 不去明音? 亦須略去理會始得. 不能明音, 又安能明官! 或以宮爲商, 以角爲徵, 自家緣何知得. 且如‘籩豆之事, 則有司存’, 非謂都不用理會籩豆, 但比似容貌·顔色·辭氣爲差緩耳. 又如官名, 在孔子有甚緊要處? 聖人一聽得郯子會, 便要去學. 蓋聖人之學, 本末精粗, 無一不備, 但不可輕本而重末也. 今人閒坐過了多少日子, 凡事都不肯去理會. 且如儀禮一節, 自家立朝不曉得禮, 臨事有多少利害!” 雉(미상). '''배움의 순서에 대하여 말함: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 사이에 물론 선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제히 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치지와 격물 다음이 성의라고 해서 설마 '나는 사물을 아직 격하지 못했고 앎을 아직 지극히하지 못했으니 의지를 진실되게 하는 공부는 아직 할 필요 없다. 반드시 격물과 치지를 완수하기를 기다렸다가 의지를 참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 참인가?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나! 성인도 단지 대강의 자연스러운 순서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자신이) 잡은 것을(拈著底)<ref>아마도 그때그때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사태, 사안, 상황, 사물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고문해의는 이 '잡은' 것을 '요점을 잡아서 말해보자면' 정도로 해석했다.</ref>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야 된다. 나는 늘 전자방(田子方)이 문후(文侯)가 음악을 듣는 것을 가지고 말한 곳에 병통이 있다고 말한다.<ref>전국책 권22 위책(魏策)에 보인다. 위문후와 전자방이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중 문후가 종소리의 높낮이가 맞지 않다는 것을 듣고 알아냈다. 전자방은 문후의 음감을 칭찬하는 대신 '임금이 밝으면 관리의 일을 즐기고 밝지 못하면 음악을 즐긴다'라고 충고했다.</ref> 설마하니 관리의 일에만 밝고 음악에는 밝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음악) 역시 대강이라도 이해해야만 한다.<ref>여기서 주희는 음악을 '잡은 것(拈著底)'의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다.</ref> 음악에 밝지 못하면서 어떻게 관리의 일에 밝을 수 있겠나? 누군가가 궁(宮)을 상(商)이라고 하고 각(角)을 치(徵)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걸 무슨 수로 알아채겠나? 예를 들어, '변두(籩豆)의 일은 담당자(有司)가 있다'<ref>논어8:4. 여기서 증자는 제사그릇(籩豆)의 종류와 그 각각에 무얼 담느냐와 같은 디테일한 사안은 그것을 담당하는 하급관리가 알아서 할 일이므로 고위 정무직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위 정무직이 신경쓸 일은 행동거지(動容貌)가 사납거나 태만하지 않게 하는 것(斯遠暴慢矣), 안색을 바로잡아(正顔色) 신실하게 하는 것(斯近信矣) 말하는 매너가(出辭氣) 비루하거나 도리에 위배되지 않게 하는 것(斯遠鄙倍矣)이다.</ref>는 말은 변두와 관련된 일을 전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용모, 안색, 사기에 비하여(比似) 다소(差) 느슨하다는(緩)<ref>덜 중요하다는 뜻이다.</ref> 것일 뿐이다. 또 관직 명칭(官名) 같은 것은 공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 성인<ref>공자</ref>은 담자(郯子)가 (관직 명칭의 유래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듣자마자 그에게 가서 배웠다.<ref>이 이야기는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17년조에 보인다.</ref> (공자가 그렇게 한) 까닭은 성인의 배움은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단지 근본을 경시하고 말엽을 중시하면 안 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ref>'다소(多少)'는 종종 현대중국어 '얼마나(多麽)'와 같다. 여기서는 말의 앞뒤를 고려하여 평서형으로 풀었다.</ref> 날들을 일없이 앉아 보내면서 그 모든 사안들에 대하여 기꺼이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례(儀禮)의 한 절목(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도) 자신이 입조(立朝)했는데 (문제의 그) 예(禮)를 알지 못한다면 실무에 임하면서 득실(利害)이 대체 얼마나 많겠나? 치(雉)의 기록. *  15:96 吳仁甫問: “誠意在致知·格物後, 如何?” '''오인보(吳仁甫)의 질문: 성의가 치지와 격물 뒤에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源頭只在致知. 知至之後, 如從上面<ref>판본에 따라 '面上'인 경우도 있다. 자세한 것은 일역판(2007)의 교감주를 참조하라.</ref>放水來, 已自迅流湍決, 只是臨時又要略略撥剔, 莫令壅滯爾.” 銖(67이후). '''대답: 원천(源頭)은 치지에 있다.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는 마치 위에서부터 물이 흘러와서 이미(已自) 급류(迅流)가 둑을 터뜨리고 나온(湍決) 것과 같다. 그저 그때그때 (가로막는 것들을) 대충 제거하여 막힘이 없도록 해주면 될 뿐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97 問: “誠意莫只是意之所發, 制之於初否?” '''누군가의 질문: 성의는 의지의 발현을 초기에 제어하는(制之於初) 것입니까? 曰: “若說制, 便不得. 須是先致知·格物, 方始得. 人莫不有知, 但不能致其知耳. 致其知者, 自裏面看出, 推到無窮盡處, 自外面看入來, 推到無去處, 方始得了. 意方可誠. 致知·格物是源頭上工夫. 看來知至便自心正, 不用‘誠意’兩字也得. 然無此又不得, 譬如過水相似, 無橋則過不得. 意有未誠, 也須著力. 不應道知已至, 不用力.” '''대답: 제어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반드시 먼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을 해야만 한다. 앎(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致知) 것이란, 안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바깥쪽으로 끝없는 지경까지 밀고 나가고, 바깥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안쪽으로 막다른 지점까지(無去處)<ref> 직역하면 '더는 갈 곳 없는 지점'이다. 18:4, 18:72를 참조하라.</ref> 밀고 들어가야만 비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 치지와 격물은 원천에서의 노력(工夫)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저절로 마음이 바르게 될 테니 '성의'라는 두 글자는 필요 없을 것도 같다(看來).<ref>'간래(看來)'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뒤집기 위해 적당한 추측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순서대로라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인데 치지의 결과 정심이 이루어지면 성의는 불필요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영문으로치면 'it seems...'와 같다.</ref> 하지만 '성의'가 없으면 또 안 된다. 마치 물을 건너는 것과 같아서 다리가 없으면 건널 수 없다. 의지에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다시 힘을 써야 한다. 앎이 이미 지극하니 더 힘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15:98 知若至, 則意無不誠. 若知之至, 欲著此物亦留不住. 東西南北中央皆著不得. 若是不誠之人, 亦不肯盡去, 亦要留些子在. 泳(66때). '''앎이 지극하면 의지는 진실하지 않음이 없다. 앎이 지극하면 이 물건<ref>사의나 사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을 마음에 붙여놓으려(著)<ref>주자어류에서 '착(著)'이 이렇게 본래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15:101을 보라.</ref>해도 머물지 못한다. 동서남북과 중앙 어디에도 붙여놓지 못한다. 반면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사의와 사욕을) 기꺼이 모두 제거하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기려 한다.<ref>마지막 글자인 '재(在)'는 문장의 분위기를 단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허사이다.</ref> <知至·意誠.>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99 問: “知至到意誠之間, 意自不聯屬. 須是別識得天理人欲分明, 盡去人欲, 全是天理, 方誠.” '''누군가의 질문: 지지(知至)에서 의성(意誠)까지는 뜻(意)이<ref>여기서 '의(意)'자는 '의성(意誠)'의 '의'와는 다른 뜻으로 쓰였음에 주의하라.</ref>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습니다.<ref>내버려두어도 아래로 흘러가는 물처럼 두 단계가 이어지지 않고, 그 사이에 모종의 인위적 노력을 쏟아야만 이어진다는 말이다.</ref>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분명히 식별하고 인욕을 모두 제거하여 오로지 천리만 있어야 비로소 진실해집니다.<ref>식별하고(別識) 모두 제거하는(盡去)등의 행위가 바로 앞에서 암시한 인위적 노력이다.</ref> 曰: “固是. 這事不易言. 須是格物精熟, 方到此. 居常無事, 天理實然. 有纖毫私欲, 便能識破他, 自來點檢慣了. 譬有賊來, 便識得, 便捉得他. 不曾用工底, 與賊同眠同食也不知!” 大雅(49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 일은 쉽게 말할 수 없다.<ref>이 단계를 설명하기 난해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 단계를 쉬운 것처럼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ref> 반드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 해야만 여기에<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의성'의 단계를 말한다.</ref> 도달할 수 있다. 평소(居常) 특별한 일이 없을 적에 천리(天理)는 진실로 이러하다(實然).<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천리가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ref>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있을 경우 그것을 바로 간파(識破)할 수 있는 것은 전부터(自來) (자신을) 점검(點檢)하는 데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위쪽에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精熟)'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익숙하게 점검하는' 노력이다.</ref> 비유하자면, 도적이 오면 바로 알아차리고 체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평소 노력하지 않는 이는 도적과 함께 먹고 자면서도 알지 못한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100 周震亨問知至·意誠, 云: “有知其如此, 而行又不如此者, 是如何?” '''주진형(周震亨)이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하여 질문: 어떤 이가 이치가 그러함을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此只是知之未至.” '''대답: 이는 단지 그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問: “必待行之皆是, 而後驗其知至歟?” '''재질문: 반드시 그의 행동이 모두 옳게 된 다음에야 그의 앎이 지극해졌음을 확인(驗)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不必如此說. 而今說與公是知之未至, 公不信, 且去就格物·窮理上做工夫. 窮來窮去, 末後自家眞箇見得此理, 是善與是惡, 自心甘意肯不去做, 此方是意誠. 若猶有一毫疑貳底心, 便是知未至, 意未誠, 久後依舊去做. 然學者未能便得會恁地, 須且致其知. 工夫積累, 方會知至.” '''대답: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ref>여기서 '여(與)'는 현대 중국어의 '급(給)'처럼 '~에게' 정도의 의미이다.</ref> 말하기를 그대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우선 사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格物窮理) 데에 힘을 써보라. 깊이 연구한 끝에 스스로 이 이치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이 선과 악을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악을) 행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의지가 진실되게(意誠) 된 것이다. 만약 여전히 조금이라도 의심(疑貳)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않은 것이고,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않은 것이니, 시간이 오래 지나면 도로 (악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가 곧바로 그렇게 (의지가 진실되게) 될 수는 없으니, 우선 반드시 앎을 지극하게 해야 한다. 노력(工夫)이 쌓여야 앎을 지극하게 할 수 있다.''' *  15:101 “‘知至而后意誠’, 須是眞知了, 方能誠意. 知苟未至, 雖欲誠意, 固不得其門而入矣. 惟其胸中了然, 知得路逕如此, 知善之當好, 惡之當惡, 然後自然意不得不誠, 心不得不正.” ''' '앎이 지극해진(知至) 뒤에 의지가 진실해진다(意誠)'는 것은 반드시 진정으로 알아야 비로소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면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정말이지 문을 찾아 들어갈 방법이 없다. 오직 가슴 속에서 분명하게 길이(路逕) 이와 같음을 알고 선이란 좋아해야 마땅하고 악이란 미워해야 마땅함을 안 뒤에야 비로소 자연히 의지가 진실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因指燭曰: “如點一條蠟燭在中間, 光明洞達, 無處不照, 雖欲將不好物事來, 亦沒安頓處, 自然著它不得. 若是知未至, 譬如一盞燈, 用罩子蓋住, 則光之所及者固可見, 光之所不及處則皆黑暗無所見, 雖有不好物事安頓在後面, 固不得而知也. '''이어서 촛불을 가리키며 말함: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촛불을 밝혀두어(點) 그 빛이 사방에 미쳐 구석구석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면 설령 좋지 않은 것들을(不好物事) 가져오려고 해도 역시 놓을(安頓) 자리가 없으니 자연히 그런 것들은 여기 붙어있을 수 없다(著它不得).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은 비유하자면 등잔(盞燈)을 등갓(罩子)으로 덮은 것과 같아서 빛이 닿는 곳이야 물론 볼 수 있겠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완전히 깜깜해서 보이지 않으므로 설령 좋지 않은 물건을 뒤에다 가져다 놓아도 정말이지 알아챌 도리가 없다. <炎錄云: “知旣至, 則意可誠. 如燈在中間, 纔照不及處, 便有賊潛藏在彼, 不可知. 若四方八面都光明了, 他便無著身處.”> '''<염(炎)의 기록: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의지(意)가 진실해질 수 있다.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등불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빛이 비추지 않는 곳에 도적이 숨어들면 알아챌 수가 없다. 만약 사방팔방이 모두 밝아지면 도둑이 몸 붙일 곳이 없게 된다.> 所以貴格物, 如佛·老之學, 它非無長處, 但它只知得一路. 其知之所及者, 則路逕甚明, 無有差錯; 其知所不及處, 則皆顚倒錯亂, 無有是處, 緣無格物工夫也.” '''그래서 격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부처와 노자의 학문은,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길 하나(一路)를 알 뿐이다. 그들의 앎이 미치는 곳에서는 길(路逕)이 매우 분명하여 잘못될 곳이 없으나 그들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모두 전도착란(顚倒錯亂)<ref>넘어지고 헤매는 것이다. 길을 모를 때 여행자가 겪는 어려움이 보통 넘어지는 것과 길을 잃는 것이다.</ref>하여 옳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는 격물의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問: “物未格時, 意亦當誠.”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 않았을 때에도 의지는 응당 진실하게 해야합니까?''' 曰: “固然. 豈可說物未能格, 意便不用誠! 自始至終, 意常要誠. 如人適楚, 當南其轅. 豈可謂吾未能到楚, 且北其轅! 但知未至時, 雖欲誠意, 其道無由. 如人夜行, 雖知路從此去, 但黑暗, 行不得. 所以要得致知. 知至則道理坦然明白, 安而行之. 今人知未至者, 也知道善之當好, 惡之當惡. 然臨事不如此者, 只是實未曾見得. 若實見得, 自然行處無差.” 僩(69이후). '''대답: 당연히 그렇다. 어찌 '사물을 아직 탐구하지 못했으니 의지는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지는 항상 진실하게 해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초(楚)나라<ref>남쪽지방의 대명사이다. 북쪽지방의 경우는 연(燕)나라.</ref>로 가고자 한다면 수레의 머리(轅)가 남쪽을 향해야 한다. 어찌 '나는 아직 초나라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일단 수레 머리를 북쪽으로 돌려놓아야겠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저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는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그 길(道)을 따라 걸을 수 없을 뿐이다. 마치 사람이 밤길을 갈 적에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너무 어두워서 나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앎을 지극하게 해야(致知) 하는 것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도리(道理)가 탄연명백(坦然明白)<ref>앞길이 밝고 평탄한 것이다. 계속해서 도덕원칙을 길로, 그 원칙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밝기로, 그 원칙에 대한 의욕적인 실천을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하라.</ref>하니 편안하게 나아갈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앎은 아직 지극하지 못해도 선은 마땅히 좋아해야 하고 악은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태에 임하여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저 (도리를)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자연히 실천에도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02 欲知知之眞不眞, 意之誠不誠, 只看做不做如何. 眞箇如此做底, 便是知至·意誠. 道夫(60이후). '''(어떤 사람의) 앎이 진정한지, 의지가 진실한지 알고 싶다면 그저 실천 여부를 보면 된다. 정말로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앎이 지극하고(知至) 의지가 진실한(誠意)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03 問“知至而后意誠”. '''<nowiki/>'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에 관한 질문.''' 曰: “知則知其是非. 到意誠實, 則無不是, 無有非, 無一毫錯, 此已是七八分人. 然又不是今日知至, 意亂發不妨, 待明日方誠. 如言孔子‘七十而從心’, 不成未七十心皆不可從! 只是說次第如此. 白居易詩云: ‘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詩人玩弄至此!” 可學(62때). '''대답: 안다는 것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아는 것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그 사람의 행동에) 옳지 않음이 없고, 그른 것이 없으며, 털끝만큼의 착오도 없다. 이는 이미 70-80%는 된 사람이다. 그러나 또 '오늘 막 앎이 지극해졌으니 (오늘은) 의지가 어지러이 발출해도 괜찮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의지를 진실되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일흔이 되고나서는 마음을 따라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ref>논어 2:4</ref>는 말이 설마 일흔이 되기 전에는 자기 마음을 따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겠나? 단지 순서가 그러하다는 것 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행년 서른아홉, 세모(歲暮)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ref>시의 제목은 은궤(隱几)이다. 본래 '사십심부동(四十心不動)'인 걸 여기서는 '맹자심부동(孟子心不動)'으로 바꿔서 썼다. 이 시를 인용한 다른 조목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주희는 정말로 이렇게 외고 있었던 듯하다.</ref>라고 했는데, 시인의 말재주가(玩弄) 이정도 수준에 이르렀구나!<ref>15:104와 140:32가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백거이의 재치를 진지하게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璘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린(璘)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104 舜功問: “致知·誠意是如何先後?” '''순공(舜功)의 질문: 치지(致知)와 성의(誠意)는 어째서 선후가 이렇게 됩니까? 曰: “此是當初一發同時做底工夫, 及到成時, 知至而后意誠耳. 不是方其致知, 則脫空妄語, 猖狂妄行, 及到誠意方始旋收拾也. 孔子‘三十而立’, 亦豈三十歲正月初一日乃立乎! 白樂天有詩: “吾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此詩人滑稽耳!” 璘(62때). '''대답: 이는 애초에 동시(一發同時)에 하는 공부(工夫)다. 다 완성된 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나서 의지가 진실해진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치지의 단계에서 헛소리를 하고(脫空妄語)<ref>'탈공'은 근거할 만한 실질이 없는 것이다.</ref> 미친짓을 하다가(猖狂妄行), 성의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서둘러(旋) 수습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홀로 섰다(立)'고 한 것이 어찌 서른이 되는 해의 정월 초하루가 되어서야 홀로 섰다는 말이겠나? 백락천(白樂天)이 시에서 '내(吾) 나이<ref>본래는 15:103에서와 같이 '행년(行年)'이다.</ref> 서른아홉, 세모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라고 한 것은 시인이 재주를 넘은(滑稽)<ref>활계 (혹은 '골계')는 순간적인 재치로 웃음을 유발하는 말재주를 말하기도 하고, 강남지방에서 유행했다는 일종의 곡예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에 골계열전(滑稽列傳)이 있다.</ref>것 뿐이다.<ref>15:103과 140:32를 참고하라.</ref> 린(璘)의 기록. (62세) *  15:105 學者到知至意誠, 便如高祖之關中, 光武之河內. 芝(63때). '''배우는 이가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마치 한고조(高祖)의 관중(關中), 광무제(光武)의 하내(河內)와 같다.<ref>관중은 오늘날 섬서성 서안(西安) 인근이고 하내는 하남성 심양(沁阳) 인근이다. 두 곳은 각각 한고조 유방과 후한 광무제의 근거지로 그 기반이 굳건하여 그들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치지와 성의 공부가 완성되면 이는 배우는 이의 굳건한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자치통감 권61 헌제 흥평2년 윤5월조를 보라.</ref> *  15:106 問:“‘知至而后意誠, 故天下之理, 反求諸身, 實有於此.' 似從外去討得來”云云. '''질문: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졌으므로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정말로 (자기 내면에) 다 있다.'<ref>고문해의는 이 구문을 대학혹문의 초기 판본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측했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이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흡사한 구절이 있다. 혹문의 전 5장 8번째 조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천하 사물을 다 탐구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내게 갖춰져 있는 것이요 외부로부터 얻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격물(格物)에 대하여 역시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면' 천하 사물이 내게 있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데 이 또한 그럴싸하긴 하다.<양시의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다'는 것은 바로 '물격지지(物格知至)' 이후의 일이니, 이치에 대한 탐구가 지극하여 남김없이 다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저 모든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누구나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잡고 다리로 걷는 것처럼 완벽하게 자기 안에 갖추어져 있어서 털끝만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음을알 수 있다. 정말로 이러한 것을 바로 격물(格物)의 일로 여긴 것도 아니고, 또한 '단순히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에만 힘쓰면 천하의 이치는 저절로 모두 진실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又有以爲天下之物, 不可勝窮, 然皆備於我, 而非從外得也. 所謂格物, 亦曰反身而誠, 則天下之物無不在我者, 是亦似矣.〈楊中立說〉然反身而誠, 乃爲物格知至以後之事, 言其窮理之至無所不盡. 故凡天下之理, 反求諸身, 皆有以見其如目視耳聽手持足行之畢具於此, 而無毫髮之不實耳. 固非以是方爲格物之事, 亦不謂但務反求諸身, 而天下之理自然無不誠也.)" 주희는 여기서 시선을 내면에 고정해두고 (어차피 사물은 다 내 안에 있는 것 아니냐는 전제하에) 스스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배격하기 위해 격물이란 시선을 외부에 두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용과 같은 주요 경전에서 말한 '반구저신(反求諸身)'과 같은 권위있는 표현을 존중해야 하므로 1. 먼저 나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치를 탐색하고 탐구하여 알고 나면 2. 그 이치가 내 안에 앎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3. 돌이켜 내 안에서 구해보면 다 거기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경전의 문구와 조화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놓고 나면 우리는 모두 이치를 외부에서 구해서 마련해 가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게 되면 이치가 본래부터 자신 안에 상존한다는 주희의 본성론에 위배되는 것 처럼 들린다. 본 조목에서의 질문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ref>같은 경우, (천하의 이치를) 아마도 바깥쪽에서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생략)<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로 다음과 같은 문답이 더 있다. 아마도 여기서 생략처리된 부분일 것이다.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이 안쪽이고 무엇이 바깥쪽인가?' 내가 답했다. '치지격물이란 바깥에 가서 이치를 마련해온 뒤에 비로소 자신에게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깥에 가서 구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먼저 이 이치가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이 모르게 된 것인가? (이치를) 알게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이치가 있게 된 것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先生問節曰: "如何是内, 如何是外?" 節答曰: "致知格物是去外討, 然后方有諸己, 是去外討得入來." 曰: "是先有此理後自家不知? 是知得後方有此理?" 節無以答.)"</ref> 曰: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厲聲言“弗思”二字.> '''대답: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외부에서 내 안으로 녹아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ref>맹자 6A:6</ref> <'생각하지 않을(弗思)' 두 글자를 강하게 말했다.> 又笑曰: “某常說, 人有兩箇兒子, 一箇在家, 一箇在外去幹家事. 其父卻說道在家底是自家兒子, 在外底不是!” 節(64이후). '''또 웃으며 말함: 내가 늘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은 집에 있고 다른 아들은 밖에 나가서 가족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아비가 집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고 밖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구나!<ref>여기서 감절(甘節)은 치지와 성의 공부의 결과 내면에 확보하게 된 '이치'란 본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바깥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이치를 인식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객관적인 어떤 것, 나와 무관한 것을 가져와서 애써 내면화하는 작업, 남의 아들을 잡아와서 내 아들로 만드는 작업이다. 주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치는 물론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본유한다고 생각하므로 바깥에 있는 아들이나 집안에 있는 아들이나 다 자신의 아들이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07 或問: “知至以後, 善惡旣判, 何由意有未誠處?” '''어떤 사람의 질문: 앎이 지극해진 다음 선악도 이미 판별되었는데 무슨 연유로 의지에 아직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 曰: “克己之功, 乃是知至以後事.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一念纔放下, 便是失其正. 自古無放心底聖賢, 然一念之微, 所當深謹, 纔說知至後不用誠意, 便不是. ‘人心惟危, 道心惟微’, 毫釐間不可不子細理會. 纔說太快, 便失卻此項工夫也.” 銖. '''대답: 극기(克己)<ref>논어 12:1</ref>하는 노력은 앎이 지극해진 이후의 일이다.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ref>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ref> 한 생각(一念)이라도 놓치는(放下) 순간 그 바름을 잃게 된다. 예로부터 마음을 놓치는(放心) 성현은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생각은 은미하니 깊이 삼가야 한다.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를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바로 틀린 것이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ref>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제 15장</ref> 털끝만한 것까지 세심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충 빨리 하라고 말하는 순간 이 항목에서의 공부(工夫)를 상실하게 된다. 수(銖)<ref>중화서국판에서는 록(錄)으로 오기했다.</ref>의 기록. (67세 이후) *  15:108 問椿: “知極其至, 有時意又不誠, 是如何?” '''선생이 나(椿)에게 질문했다: 앎이 지극해졌는데도 종종 의지가 또 진실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椿無對. '''나(椿)는 대답하지 못했다. 曰: “且去這裏子細窮究.” '''선생: 일단 이 부분을 세심하게 연구해 보아라. 一日, 稟云: “是知之未極其至.” '''하루는 내가 말씀드렸다: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先生曰: “是則是. 今有二人: 一人知得這是善, 這是惡; 又有一人眞知得這是善當爲, 惡不可爲. 然後一人心中, 如何見得他是眞知處?”. '''선생: 그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이것이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이 선이므로 당연히 해야 하고 이것은 악이므로 당연히 하면 안 됨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眞知). 그렇다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그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眞知) 알 수 있을까?<ref>이에 대하여 주희 자신은 15:102에서처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15:100에서처럼 행동을 보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대학장구 전6장에서는 이는 남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독(愼獨)'해야 한다고 말한다.</ref> 椿亦無以應. '''나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先生笑曰: “且放下此一段, 緩緩尋思, 自有超然見到處.” 椿(59때)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이 부분을 내려놓고 천천히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초연(超然)히 깨닫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춘(椿)의 기록. (59세) *  15:109 誠意, 方能保護得那心之全體. '''의지를 진실되게 하면(誠意) 비로소 이 마음 전체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以下誠意.> '''<이 아래로 성의에 관한 조목들> *  15:110 問“實其心之所發, 欲其一於理而無所雜”. ''' '마음이 발하는 것(心之所發)<ref>주희에 따르면 이 네 글자가 바로 의(意)자의 사전적 정의이다.</ref>을 진실되게 하고, 그것이 한결같이(一)<ref>이 형용사는 순수성과 일관성을 의미한다. 순수하고 일관되게 이치에 귀속한다는 뜻이다.</ref> 이치에 귀속하여 다른 것과 섞이지 않게하라'<ref>대학혹문의 경1장 부분에 "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라는 말이 있다. 대학장구는 크게 두 종류의 통행본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에서 유행했던 사서대전본이고 다른 하나는 오영(吳英)과 오지충(吳志忠) 부자가 교감한 가경 16년본(1811)이다. 가경본은 후에 중화서국판 사서집주의 저본이 된다. 대전본에서는 성의에 대하여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라고 적은 반면 가경본에서는 "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라고 적고 있어서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주희는 대학장구와 혹문을 매우 여러번 개수했기 때문에 이본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단지 어느쪽이 더 최신버전인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어류의 이 부분은 아무래도 통행본 대학혹문과 가경본 대학장구를 섞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버전보다 앞선 것인지 더 나중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쉬지아싱(許家星)의 "论朱子的诚意之学—以诚意章詮释修改为中心(2011)", 최혜미의 "大學章句 ‘誠意’의 주석에 대한 韓·中 학자들의 변석 양상 一考(2016)"을 참고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只爲一, 便誠; 二, 便雜. ‘如惡惡臭, 如好好色’, 一故也. ‘小人閒居爲不善, <止><ref>긴 문장을 중간부분을 생략해서 인용할 적에 '~까지'라는 의미로 이 글자를 작게 쓴다.</ref>著其善’, 二故也. 只要看這些便分曉. 二者, 爲是眞底物事, 卻著些假攙放裏, 便成詐僞. 如這一盞茶, 一味是茶, 便是眞. 才有些別底滋味, 便是有物夾雜了, 便是二.” 蘷孫(68이후). '''대답: "하나(一)면 순수하고(誠) 둘이면(二) 잡스럽다(雜). '악취를 싫어하듯이 악을 싫어하고, 호색을 좋아하듯이 선을 좋아'<ref>대학 전 6장.</ref>하는 까닭은 하나(一)이기 때문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악을 행하고 (중략) 선함을 드러내'<ref>대학 전 6장을 축약한 것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불선한 짓을 하여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다 군자를 본 이후에는 겸연쩍게 자신의 불선함을 가리고 선함을 드러낸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이다.</ref>는 까닭은 둘(二)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보아야 하는데, 보기만 하면 바로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둘이란, 진짜 물건 안에다 가짜를 조금 섞어 넣은 것으로, 곧 사기와 거짓(詐僞)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차 한 잔이 한결같이 차 맛만 난다면 이는 진짜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맛이 첨가되면 곧 섞인 물건이요 둘(二)이다. *  15:111 意誠後, 推盪得渣滓靈利, 心盡是義理.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게 된 후에는 찌꺼기(渣滓)를 깨끗하게(靈利)<ref>영리(靈利):남김없이 모조리 깔끔하게</ref> 씻어내서(推盪)<ref>우리말 '소탕(掃蕩)하다'의 '탕(蕩)'과 통한다. 남김없이 제거했다는 뜨이다. 일역판에서는 '눌러서 짜내다(押し出す)' 정도로 번역했는데 썩 만족스럽지 않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치약 튜브이고 찌꺼기는 치약이고 성의공부는 치약을 모조리 쥐어짜내는 과정처럼 느껴진다.</ref> 마음이 전부 의리(義理)로 가득하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以下意誠.> '''<이 아래로는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112 意誠, 如蒸餅, 外面是白麵, 透裏是白麵. 意不誠, 如蒸餅外面雖白, 裏面卻只是粗麵一般.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다는(意誠) 것은 증병(蒸餅)<ref>쪙빙은 얇은 밀가루 피 여러겹을 마치 계란말이처럼 층층이 쌓아서 쪄낸 음식이다. 각 층 사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다. 오늘날 중국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재료와 형태만으로 따지자면 오늘날 한국의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레이프케잌과 비슷하다. 다만, 주희 당시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쪙빙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 번역자는 자신이 없다. 일역판에서는 찐만두라고 번역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16:87에서 동일한 비유를 들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겉부분도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고 속으로 들어가도 고운 밀가루로(白麵) 만든 것과 같다.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은 증병의 겉부분은 비록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더라도 속부분은 거친 밀가루로(粗麵)<ref>입자가 굵고 거친 통밀가루 같은 것을 떠올리면 좋다.</ref> 만든 것과 같다.<ref>이 비유는 16:87에서도 반복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13 “心, 言其統體; 意, 是就其中發處. 正心, 如戒懼不睹不聞; 誠意, 如愼獨.” '''심(心)은 통체로(統體) 말한 것이고, 의(意)는 그 속에서 발출하는(發) 것이다.<ref>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 통체로 지시하면 '심'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주희의 심(心)은 인지적인 기관(mind)과 정서적 기관(heart)를 하나로 합친 거에 가깝다. 이때문에 많은 영역자들이 습관처럼 '허트-마인드(heart-mind)'라는 신조어를 써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 의(意)는 그러한 '심'에서 솟아나는(發) 의지(will)나 동기(motive)에 가깝다. '마음'과 '의지'를 정의하는 조목들은 권5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5:88을 보라.</ref> 정심(正心)은 '(자신이) 보고 듣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두려워한다'<ref>중용 제 1장의 '계신공구'부분을 패러프레이즈한 것이다. '(자신이) 보지 않는 바를 삼가고 경계하며 (자신이) 듣지 않는 바를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주희에 의하면 이는 미발(未發)의 상태에서의 자기수양의 노력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명상공부이다. 우리 마음의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이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활동하는 양상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했을 때 보다(睹)와 듣다(聞)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마음의 적극적 활동을 말한다. 그런 활동을 중지하면 '계신공구'이다. 62:91, 62:79를 보라.</ref>는 것과 같고, 성의는 '혼자만 아는 곳을 삼간다(愼獨)'<ref>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주희는 계신공구를 미발단계에서의 공부, 신독을 이발단계에서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체인공부, 후자는 찰식공부이다. 62:92를 보라.</ref>와 같다. 又曰: “由小而大. 意小心大.” 閎祖(59이후). '''또 말함: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라. 의(意)는 작고 심(心)은 크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正心·誠意.> '''<이 아래로 정심(正心)과 성의(誠意)에 관한 조목들> *  15:114 康叔臨問: “意旣誠矣, 心安有不正?” '''강숙림(康叔臨)의 질문: 의지가 이미 진실한데, 마음에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습니까? 曰: “誠只是實. 雖是意誠, 然心之所發有不中節處, 依舊未是正. 亦不必如此致疑, 大要只在致知格物上. 如物格·知至上鹵莽, 雖見得似小, 其病卻大. 自修身以往, 只是如破竹然, 逐節自分明去. 今人見得似難, 其實卻易. 人入德處, 全在致知·格物. 譬如適臨安府, 路頭一正, 著起草鞋, 便會到. 未須問所過州縣那箇在前, 那箇在後, 那箇是繁盛, 那箇是荒索. 工夫全在致知·格物上.” 謙(65때). '''대답: '성(誠)'은 '실(實)'이다. 비록 의지가 진실하더라도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心之所發)이<ref>의지(意)를 말한다.</ref> 각각의 상황에 정확히 온당하지(中節) 않은 경우가 있으면<ref>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엉망인 일들을 떠올려 보라.</ref> 아직 여전히 바르지(正)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고,<ref>성의 단계와 정심 단계 사이의 연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ref> 핵심은 그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만약 사물이 다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단계에서(物格知至) 소홀하면, 보이기는 작게 보여도 그 병폐가 크다. 수신(修身)의 단계 이후로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마디 저절로 분명해진다.<ref>대학에서 제가, 치국, 평천하 부분은 파죽지세로 이해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ref>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워 보여도 사실은 쉽다. 사람이 덕(德)으로 들어가는 지점은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비유하자면, 임안부(臨安府)<ref>오늘날 항저우. 당시 남송의 수도였다.</ref>에 갈 적에 길이 정확하기만 하다면(一正)<ref>중국어에서 일(一)은 종종 조건(if)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도 문맥을 살펴 그렇게 해석했다. '한결같이'일 가능성도 있다.</ref> 짚신만 신으면<ref>'착(著)'은 뒤에 신발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오면 '신발을 신다'가 된다. '기(起)'는 현대중국어에서 동사의 뒤에 붙어서 동작의 방향(주로 위쪽)을 표현하거나 그 동작이 시작됨, 그 동작의 가능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칸치라이(看起來)'는 '내가 이렇게 보면...' 정도의 의미이고 '쭈어치(做起)'는 시작한다는 의미이다.</ref> 도달할 수 있다. 중간에 거쳐가는 주현(州縣) 가운데 어느 것이 앞이고 어느것이 뒤인지, 어느 것이 번성하고 어느 것이 황량한지 물을 필요가 없다. 힘 쓸 곳은(工夫)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以下論格物·致知·誠意·正心.> '''<이 아래로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에 관한 조목들> *  15:115 問: “心, 本也. 意, 特心之所發耳. 今欲正其心, 先誠其意, 似倒說了.” '''질문: 마음(心)은 뿌리(本)이고, 의지(意)는 그저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 정도입니다. 지금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설명은 순서가 뒤집힌 것 같습니다. 曰: “心無形影, 敎人如何撑拄. 須是從心之所發處下手, 先須去了許多惡根. 如人家裏有賊, 先去了賊, 方得家中寧. 如人種田, 不先去了草, 如何下種. 須去了自欺之意, 意誠則心正. 誠意最是一段中緊要工夫, 下面一節輕一節.” '''대답: "마음은 형체가 없는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탱하고있으라고(撑拄)<ref>탱주(撑拄)는 지탱(支撑)과 같다. 어떤 물건이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는 것이다.</ref> 해야 할까? 반드시 마음에서 발출한 곳에서 착수해야 하며, (거기서) 우선 수많은 악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예컨대 집에 도둑이 들면 우선 도둑을 없애야만 집안이 평온해지는 것과 같다. 예컨대 누군가 밭에 파종할 적에 우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씨를 뿌릴 수 있겠나? 반드시 자신을 기만하려는 의지를<ref>'자기자신을 기만함(自欺)'은 대학 전 6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주희는 이를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지만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의 윤리학 용어로 '의지박약(Akrasia)'에 가깝다. 이찬의 '지행문제의 도덕심리학적 이해(2009)'를 참조하라.</ref> 제거해야 한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 '성의'는 일련의 공부 가운데 매우 중요한 공부이며, 그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가벼워진다. 或云: “致知·格物也緊要.” '''누군가가 말함: 치지와 격물도 중요합니다. 曰: “致知, 知之始; 誠意, 行之始.” 蘷孫(68이후). '''대답: 치지는 앎(知)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行)의 시작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16 或問: “意者心之所發, 如何先誠其意?”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에서 발출하는 것인데, 어떻게 (마음보다) 의지를 먼저 진실하게 합니까? 曰: “小底卻會牽動了大底. 心之所以不正, 只是私意牽去. 意才實, 心便自正. 聖賢下語, 一字是一字, 不似今人作文字, 用這箇字也得, 改做那一字也得.” '''대답: 역설적으로 작은 것이 큰 것을 끌고 갈 수 있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까닭은 단지 사사로운 의지(私意)가 끌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는 순간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 성현이 구사하는 언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의미가 있으니,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쓸 때처럼 이 글자를 써도 되고 저 글자로 바꿔써도 된다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  15:117 格物者, 知之始也; 誠意者, 行之始也. 意誠則心正, 自此去, 一節易似一節. 拱壽(65때). '''격물은 앎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의 시작이다. 의지가 진실해면 마음이 바르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매 단계 더 쉬워진다.<ref>15:115를 축약한 듯한 내용이다.</ref> 공수(拱壽)의 기록. (65세) *  15:118 致知·誠意兩節若打得透時, 已自是箇好人. 其它事一節大如一節, 病敗一節小如一節. 自修(65때). '''치지와 성의 두 단계를 투철하게 해내면(打得透), 이미(已自) 좋은 사람이다. 그 다음 단계는, 일의 스케일은 매 단계 더 커지지만, 병폐는 매 단계 더 작아진다. 자수(自修)의 기록. (65세) *  15:119 格物者, 窮事事物物之理; 致知者, 知事事物物之理. 無所不知, 知其不善之必不可爲, 故意誠; 意旣誠, 則好樂自不足以動其心, 故心正. 恪.<ref>중화서국판에서는 기록자의 이름을 '格'이라고 적었으나 옳지 못하다. 조선정판본 등을 따라 恪으로 교감한다.</ref> '''격물이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치지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모르는 것이 없어서, 선하지 않은 짓을 행해서는 절대로 안 됨을 알기 때문에 의지가 진실해진다. 의지가 성실해지면 좋아하는(好樂)<ref>대학 전 7장에서 마음의 바름을 깨뜨리는 요소들 중 하나로 거론한다.</ref> 것이 자연히 마음을 동요하지 못하게 되므로 마음이 바르게 된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120 格物·致知·正心·誠意, 不可著纖毫私意在其中. <椿錄云: “便不是矣.”> 致知·格物, 十事格得九事通透, 一事未通透, 不妨; 一事只格得九分, 一分不透, 最不可. 凡事不可著箇“且”字. “且”字, 其病甚多. '''격물, 치지, 정심, 성의는 그 속에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의지(私意)도 두어서는 안 된다. <춘(椿)의 기록에는 '옳지 않다(便不是矣).'> 치지와 격물에 있어서 열 가지 사안 가운데 아홉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했는데 한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는 괜찮지만, 한 가지 사안을 90%만 탐구하여 이해하고 나머지 10%는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불가하다.<ref>비유하자면, 열 문제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홉 문제를 철저히 이해했으나 한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직 건드리지도 못한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단 풀이에 성공한 아홉문제의 경우는 완전히 이해가 되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고 나머지 한 문제도 수험생의 철저한 성미로 볼 때 시간이 허락될 때 이해해낼 것이다. 반면에 한 문제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90%까지만 이해한 상태에서 그만두고 방치하는 학생이라면 '철저한 성미'가 없음을 알 수 있고, 풀었다는 그 문제 또한 정말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ref> 모든 일에 '일단은(且)'<ref>'일단은 이렇게'라거나 '우선 이렇게 해두고'라는 표현에는 대충대충의 혐의가 있다. 물론 주희 본인은 이 말을 종종 사용한다.</ref>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일단은'에는 병폐가 매우 많다. *  15:121 格物·致知·誠意·正心, 雖是有許多節次, 然其進之遲速, 則又隨人資質敏鈍. 履孫(65때).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비록 여러 단계가 있지만, 진전의 속도는 또 그 사람의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 <ref>이 조목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을 구박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전진의 속도는 어차피 자질에 따른 것이니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15:84를 보라.</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22 大學於格物·誠意, 都鍛煉成了, 到得正心·修身處, 只是行將去, 都易了. 蘷孫(68이후). ''' '대학'은 격물과 성의에서 단련(鍛煉)이 모두 끝난다. 정심과 수신의 경우는 그저 쭉 나아가는 것 뿐이니 모두 한결 쉽다.<ref>이 조목은 16:123과 매우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23 致知·誠意·正心, 知與意皆從心出來. 知則主於別識, 意則主於營爲. 知近性, 近體; 意近情, 近用. 端蒙(50이후). '''치지, 성의, 정심에서 지(知)와 의(意)는 모두 심(心)에서 나온다. 지는 식별(別識)을 주관하고,<ref>이치를 식별하는 일이다. 15:99에서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ref> 의는 영위(營爲)<ref>의도를 가지고 개입하여 일을 처리함을 말한다. 1:18을 참조하라.</ref>를 주관한다. 지는 본성(性), 본체(體)에 가깝다. 의는 감정(情), 작용(用)에 가깝다.<ref>주희의 심리학 체계에 의하면 심(心)은 우리 정신영역을 통틀어 지시하는 말이다. 그 심의 생래적 퀄리티가 성(性)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래적 퀄리티가 현실로 발현된 모습이 정(情)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면, 보고 느끼고 슬퍼하고 우는 모든 일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心)이 보고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슬퍼하고 마음이 운 것이니 모두 마음이 주관한 일이다. 이 슬픔은 마음이 타고난 어떤 성질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 발현된 것이다. 발현된 것이 감정이고,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 쪽이 본성이다. 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  15:124 敬之問誠意·正心·修身. '''경지(敬之)<ref>주희의 삼남인 주재(朱在)이다.</ref>가 성의, 정심, 수신을 질문. 曰: “若論淺深意思, 則誠意工夫較深, 正心工夫較淺; 若以小大看, 則誠意較緊細, 而正心·修身地位又較大, 又較施展.” 賀孫(62이후). '''대답: 깊이로 논하자면 성의의 노력(工夫)이 더 깊고 정심의 노력이 더 얕다. 크기로 보자면 성의가 더 긴밀하고 세밀하다. 정심과 수신의 영역은 더 크고 더 널리 펼쳐진다.<ref>넓고 크다는 것은 응용의 영역이 넓고 크다는 뜻이다. 예컨대 평천하의 공부는 치국의 공부에 비해 적용 면적이 넓고 크다. 다만 공부의 내용이 얼마나 정밀한가를 따지자면 치국이 평천하보다 정밀하다.</ref> *  15:125 誠意·正心·修身, 意是指已發處看, 心是指體看. 意是動, 心又是該動靜. 身對心而言, 則心正是內. 能如此修身, 是內外都盡. 若不各自做一節功夫, 不成說我意已誠矣, 心將自正! 則恐懼·好樂·忿懥引將去, 又卻邪了. 不成說心正矣, 身不用管! 則外面更不顧, 而遂心跡有異矣. 須是“無所不用其極”. 端蒙(50이후). '''성의, 정심, 수신의 경우, 의지(意)는 이미 발출한 지점을 지시한 것이고 마음(心)은 본체(體)를 지시한 것이다. 의지는 움직임이고, 마음은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포함한다.<ref>마음의 여러 측면을 이발과 미발에 배속한 것에 관해서는 5:71을 참조하라.</ref> 몸(身)과 마음(心)을 상대하여 말하면 마음이 바로 안쪽이다. 이렇게 몸을 닦을(修)<ref>'수(修)'는 대개 '닦다'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기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컨디션을 올리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옷을 수선(修繕)하거나 차량을 수리(修理)한다고 할때도 이 '수'자를 쓴다. 늘 안경을 닦아 깨끗함을 유지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닦고 거실 창문을 닦는 것도 '닦다'이다. 더 나은 번역어를 고민해보았으나 딱히 떠오르지 않아 우선은 '닦다'로 해둔다.</ref> 수 있다면 안쪽과 바깥쪽이 모두 남김없이 완전해진다. 만약 각각의 단계에서 고유한 노력(功夫)을 별도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설마하니 '내 의지가 이미 진실하니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라고 할 참인가? 그러면 두려움(恐懼), 좋아함(好樂), 분노(忿懥)<ref>대학 전7장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는 원인으로 두려움, 좋아함, 분노, 근심걱정을 꼽았다.</ref>에 끌려가서 (마음이) 사특해져버릴 것이다. 설마하니 '내 마음이 바르게 되었으니 몸은 돌볼 필요가 없다!'고 할 참인가? 그러면 외면을 더는 돌보지 않아서 결국 마음과 행적에 차이가 생겨버린다. 반드시 '모든 일에서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ref>대학 전 2장.</ref>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6 或問: “意者, 乃聽命於心者也. 今曰‘欲正其心, 先誠其意’, 意乃在心之先矣.”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ref>대학 경 1장</ref>고 하는데, 의지가 마음의 앞에 있게 됩니다. 曰: “‘心’字卒難摸索. 心譬如水: 水之體本澄湛, 卻爲風濤不停, 故水亦搖動. 必須風濤旣息, 然後水之體得靜. 人之無狀汙穢, 皆在意之不誠. 必須去此, 然後能正其心. 及心旣正後, 所謂好惡哀矜, 與修身齊家中所說者, 皆是合有底事. 但當時時省察其固滯偏勝之私耳.” 僩(69이후). '''대답: '심(心)'이라는 개념은 포착하기 어렵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물과 같다. 물의 본체(體)<ref>'체(體)'는 보통 '본체'라고 번역하는데 영역자들의 경우 '실체(substance)'나 '본질(essence)'을 선호한다. 여기서는 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말한다.</ref>는 맑고 투명(澄湛)하지만, 바람과 파도가 그치지 않아서 물 역시 요동치게 된다. 반드시 바람과 파도가 멈춘 뒤에야 물의 본체가 고요해진다. 사람의 추악하고(無狀) 더러운 행실은 모두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다. 반드시 이것을 제거한 뒤에야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마음이 바르게 되고 나서 보면 (대학에서) 이른바 좋아함과 싫어함(好惡), 가엽고 불쌍히 여김(哀矜) 및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부분에서 말하는 것들<ref>대학 전 8장에서는 수신과 제가를 해설하는데, 감정적 치우침으로 인하여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문구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친애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미워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외경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애긍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거만함에서 편벽됨이 생긴다. 그런데 주희는 대학장구의 이 부분 주석에서 이러한 감정들이 '사람에게 있어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在人, 本有當然之則)'라고 하여 한편으로 긍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감정들이 치우치고 함닉하여 수신과 제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긴 하지만 한결같이 부정적인 대학 본문의 엄격함에 비하면 주희의 주석은 확실히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ref>이 모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다(合有底事).<ref>대학장구에서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本有當然之則)'고 한 것과 상통한다.</ref> 다만 때때로 그 막히고 치우친 사사로움을 성찰해야 할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壯祖錄疑同聞別出.> '''<장조(壯祖)의 기록은 동석에서 같은 말을 들은 듯하다. 별도의 조목으로 따로 배치했다.><ref>바로 다음 조목이다. 15:115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5:127 問: “心者, 身之主; 意者, 心之發. 意發於心, 則意當聽命於心. 今曰‘意誠而后心正’, 則是意反爲心之管束矣, 何也?” '''질문: 마음(心)은 몸(身)의 주인이고 의지(意)가 마음에서 발출한다면 의지는 당연히 마음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대학에서는)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하니, 의지가 역으로 마음을 통제(管束)하는 꼴이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曰: “心之本體何嘗不正? 所以不得其正者, 蓋由邪惡之念勃勃而興, 有以動其心也. 譬之水焉, 本自瑩淨寧息, 蓋因波濤洶湧, 水遂爲其所激而動也. 更是大學次序, 誠意最要. 學者苟於此一節分別得善惡·取舍·是非分明, 則自此以後, 凡有忿懥·好樂·親愛·畏敬等類, 皆是好事. 大學之道, 始不可勝用矣.” 壯祖(미상). '''대답: 마음의 본체가 언제 한 번 바르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마음이) 바름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사악(邪惡)한 생각(念)이 뭉게뭉게(勃勃) 일어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본래는 깨끗하고 고요하지만(瑩淨寧息), 파도가 거칠게 치솟으면(洶湧) 그 결과 물도 격동하게 된다. 더욱이 '대학'의 순서에서는 성의(誠意)가 가장 중요하다. 배우는 이들이 이 대목에서 선악과 취사와 시비의 분별을 명확히 할 수만 있으면 그 이후에 나오는 저 모든 분노(忿懥), 좋아함(好樂), 친애(親愛), 외경(畏敬) 등의 일들이 모두 좋은 일(好事)이다.<ref>'모두 좋은 일'에 관해서는 15:126을 보라. 분노와 좋아함은 15:125를, 친애와 외경은 126을 보라.</ref> '대학'의 도는 이때 비로소 이루 다 쓸 수 없게(不可勝用) 된다.<ref>그 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맹자 7A:23이나 7B:31을 보라.</ref> 장조(壯祖)의 기록.<ref>장조가 주희를 사사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15:126의 원주가 사실이라면 역시 69세 이후에 들은 내용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f> *  15:128 問: “心如何正?” '''질문: 마음은 어떻게 바로잡습니까? 曰: “只是去其害心者.” 端蒙(50이후). '''대답: 마음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9 或問正心修身. '''어떤 사람이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에 관하여 질문. 曰: “今人多是不能去致知處著力, 此心多爲物欲所陷了. 惟聖人能提出此心, 使之光明, 外來底物欲皆不足以動我, 內中發出底又不陷了.” 祖道(68때). '''대답: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치지(致知)에 힘을 쓰지 못하여 이 마음이 대부분 물욕에 함닉(陷)당하게 되었다.<ref>주희가 욕망이 마음을 '함'한다고 할 때의 주된 이미지는 사람을 깊은 물에 빠뜨리는(陷溺) 장면이다. 11:5와 13:23을 보라.</ref> 오직 성인만이 이 마음을 끌어내어(提出)<ref>물에 빠진 사람을 붙잡아 끄집어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좋다.</ref> 밝게 만들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밖에서 들어온 물욕이 나를 움직이기 부족하고 안에서 발출한 것도 나를 함닉시키지 못하게 된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130 心纔不正, 其終必至於敗國亡家. 僩(69이후).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파멸시키는(敗國亡家) 지경에 이른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31 "誠意正心章, 一說能誠其意, 而心自正; 一說意誠矣, 而心不可不正.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문(問)'자가 이 조목의 제일 앞에 있다. 조선고사본 쪽이 더 합리적이므로 그쪽을 따라 번역한다.</ref>: 修身齊家亦然否?" 질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장은, 어디서는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만 있으면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고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의지가 진실해졌어도 마음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ref>전자는 성의의 완성과 함께 정심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말인 반면 후자는 성의 이후에도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 정심해야 한다는 말이다.</ref>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이와 같습니까? 曰: “此是交會處, 不可不看.” '''대답: 이것은 두 단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니<ref>성의단계와 정심단계가 교차하고 수신단계와 제가단계가 교차한다는 말이다.</ref>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又曰: “誠意以敬爲先.” 泳(66때). 또 말함: 성의는 경(敬) 공부가 우선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32 或問: “正心·修身<ref>매우 많은 판본에서는 '성의(誠意)'로 적혀있다. 다만 주희가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가지고 답변하는 만큼 질문도 정심과 수신이어야 말이 된다. 본 조목과 사실상 동일한 16:166쪽도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질문하고 있다. 전경당본(1876)에서 이러한 근거로 이렇게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ref>, 莫有淺深否?” '''누군가의 질문: 정심과 수신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습니까?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自心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出來. 但正心, 卻是萌芽上理會. 若修身與絜矩等事, 都<ref>직전 교감주와 마찬가지로 전경당본(1876)에서 却을 都로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 다만 16:166은 却이다. 어느쪽을 택해도 큰 차이는 없으나 이 경우는 특별히 더 강한 근거가 없는 한 却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ref>是各就地頭上理會.” '''대답: 정심은 마음의 레벨에서 말한 것이고 수신은 실제 사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應事接物) 레벨에서 말한 것이다. 무슨 사태가 됐든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수신과 혈구(絜矩)<ref>대학 전 10장에서 언급한 혈구지도를 말한다. 15:76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같은 것도 모두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정심은 (마음에서 막 틔워나온) 맹아(萌芽)의 레벨에서 탐구하는 것이고 수신과 혈구 같은 일들은 각각의 사례에 나아가 탐구하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6:166과 거의 동일하다.</ref> *  15:133 毅然問: “‘家齊, 而后國治, 天下平.’ 如堯有丹朱, 舜有瞽瞍, 周公有管蔡, 卻能平治, 何也?” '''의연(毅然)<ref>황의강(黃義剛)이다.</ref>의 질문: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는데, 요(堯)에게는 단주(丹朱)<ref>요의 아들로 불초자식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고, 순(舜)에게는 고수(瞽瞍)<ref>순의 아버지로 못난 아비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고, 주공에게는 관채(管蔡)<ref>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형제들이다. 못난 형제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고 태평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ref>고대의 성인들은 집안도 다스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냐는 질문이다.</ref> 曰: “堯不以天下與丹朱而與舜, 舜能使瞽瞍不格姦, 周公能致辟于管蔡, 使不爲亂, 便是措置得好了. 然此皆聖人之變處. 想今人家不解有那瞽瞍之父, 丹朱之子, 管蔡之兄, 都不須如此思量, 且去理會那常處.” 淳(61·70때). '''대답: 요는 천하를 단주에게 주지 않고 순에게 주었으며, 순은 고수가 간사함에 이르지 못하게 했고(不格姦),<ref>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ref> 주공은 관숙과 채숙을 주살하여(致辟) (주나라의) 혼란거리가 되지 못하게 했으니<ref>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숙은 죽였고 채숙은 가택연금시켰고 곽숙(霍叔)은 서인으로 강등시켰다.</ref> 적절히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성인이 임기응변한(變) 경우이다.<ref>'상(常)'은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적인 윤리이다. 반면에 '변(變)'은 원칙의 준수가 역설적으로 윤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칙을 뒤집음으로써(주로 정 반대 방향을 뒤집는다)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말하자면 '상황윤리'이다. 15:39과 51에서 정도와 상도를 구분한 것을 참조하라.</ref> 생각건대 지금 사람들은 고수와 같은 아버지나 단주와 같은 아들이나 관채와 같은 형이 있을 수 없으니<ref>'불해(不解)'는 cannot이다.</ref>, 전혀 그런쪽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우선은 (성인이) 상도(常)를 쓴 지점을 탐구하라.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  15:134 “壹是”, 一切也. 漢書平帝紀“一切”, 顔師古注: “猶如以刀切物, 取其整齊.” 泳(66때). ''' '일시(壹是)'는 일체(一切)라는 뜻이다.<ref>대학 경 1장의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라는 구문의 자구풀이이다.</ref> 한서(漢書) 평제기(平帝紀)의 '일체(一切)'에 대한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에서 '마치 칼로 물건을 자른 것 같다는 뜻으로, 그 가지런하다는(整齊) 속성을 취한 것이다.<ref>다수의 물건의 크기와 모양, 배치 간격 등이 고르고 가지런한 모양을 말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한서 평제기 원문과 그에 대한 안사고의 주석은 원시(元始) 원년(元年) 춘정월 조에 보인다.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 영(泳)의 기록. (66세) *  15:135 李從之問: “‘壹是皆以修身爲本’, 何故只言修身?” '''이종지(李從之)<ref>'주자문인' p.84 에서는 이덕지(李德之)의 오기로 본다.</ref>의 질문: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ref>대학 경 제 1장</ref>고 했는데, 왜 그저 수신만 말합니까? 曰: “修身是對天下國家說. 修身是本, 天下國家是末. 凡前面許多事, 便是理會修身. ‘其所厚者薄, 所薄者厚’, 又是以家對國說.” 㽦(59때). '''대답: 수신은 천하, 국, 가에 상대해서 말한 것이다. 수신이 근본이고 천하, 국, 가는 말단이다.<ref>위 인용구에 이어서 대학 경 1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그 근본이 어지럽고서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후하게(厚) 할 것을 박하게(薄) 하고 박하게(薄) 할 것을 후하게(厚) 하는 경우는 존재한 적이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이에 대한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근본은 몸(身)을 말하고 후하게 할 것은 집안(家)을 말한다(本, 謂身也, 所厚, 謂家也).'</ref> 무릇 (팔조목) 앞부분의 여러 일들은<ref>격물, 치지, 성의, 정심을 말한다.</ref> 수신의 실천이다. '후하게 할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할 것을 후하게 한다'는 것은 집안(家)<ref>후하게 할 것이다.</ref>을 나라(國)<ref>박하게 할 것이다.</ref>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순(㽦)의 기록. (59세) *  15:136 問: “大學解: ‘所厚, 謂家.’ 若誠意正心, 亦可謂之厚否?” '''질문: '대학'의 해설서<ref>대학장구를 말한다.</ref>에서 '후하게 할 것은 집안이다'<ref>15:135를 보라.</ref>라고 했는데, 성의와 정심 역시 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曰: “不可. 此只言先後緩急. 所施則有厚薄.” 節(64이후). '''대답: 불가하다. 이는<ref>격물부터 수신까지의 단계를 말하는 듯하다.</ref> 단지 선후와 완급을 말할 뿐이다.<ref>격물부터 수신까지는 시간적 순서와 시급성의 순서를 기준으로 이와 같이 정렬한 것일 뿐이다. '격물에게 후하게 베풀어주고 성의에게 덜 베풀어준다' 같은 말은 어색하다.</ref> 베푸는 바에는<ref>제가 이후부터는 수양의 결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이므로 '베푸는' 단계이다.</ref> 후하고 박하고가 있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37 問: “大學之書, 不過明德·新民二者而已. 其自致知·格物以至平天下, 乃推廣二者, 爲之條目以發其意, 而傳意則又以發明其條目者. 要之, 不過此心之體不可不明, 而致知·格物·誠意·正心, 乃其明之之工夫耳.” '''질문: '대학'이라는 책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 두 가지일 뿐입니다.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의 여덟 조목은) 곧 이 두 가지를 확장하여 (이 두 가지를 위한) 조목으로 삼아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드러낸 것이며, 전(傳)<ref>대학은 가장 앞쪽인 경 1장에서 팔조목을 대략적으로 소개한 후 그 뒤의 전(傳)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한다.</ref>의 뜻은 다시 그 조목들(의 의미를) 밝힌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마음의 본체는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치지, 격물, 성의, 정심이 바로 그것을 밝히려는 공부(工夫)인 것에 불과합니다. 曰: “若論了得時, 只消‘明明德’一句便了, 不用下面許多. 聖人爲學者難曉, 故推說許多節目. 今且以明德·新民互言之, 則明明德者, 所以自新也; 新民者, 所以使人各明其明德也. 然則雖有彼此之間, 其爲欲明之德, 則彼此無不同也. 譬之明德卻是材料,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 卻是下工夫以明其明德耳. 於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之際, 要得常見一箇明德隱然流行于五者之間, 方分明. 明德如明珠, 常自光明, 但要時加拂拭耳. 若爲物欲所蔽, 卽是珠爲泥涴, 然光明之性依舊自在.” 大雅(49이후). '''대답: 다 깨닫고(了得) 난 시점으로 논하자면 '명명덕(明明德)' 한 구절만 있으면 되니, 그 아래에 붙은 저 많은 것들이 다 불필요하다. 성인은 배우는 이들이 (명명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저 많은 단계들을 (두고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제 먼저 명덕과 신민을 짝지어 말하자면, 명명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신민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자신의 명덕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냐 타인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덕을 밝히고자 하는 점에 있어서는(其爲欲明之德)<ref>이 구문을 축자역하면 '그 밝히고자 하는 덕이 됨'이 된다. 직역으로 무난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으므로 일단 이렇게 의역해둔다.</ref> 서로 차이가 없다. 비유하자면 명덕은 원재료이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애써 노력하여(下工夫) 그 명덕을 밝히려는 것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의 단계에서 항상 명덕이 은연중에 이 다섯 가지 사이에서 흐르고 있음을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의 이해가) 분명해진다. 명덕은 마치 밝은 구슬(明珠)과 같아서 항상 스스로 밝게 빛나긴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털고 닦아주어야 한다. 만약 물욕이 뒤덮어버리면(蔽),<ref>통상적으로 이 글자는 '가리다' '가리워지다'로 번역한다. 하지만 '가리다'는 이 글자의 본래 이미지가 바가지나 이불 같은 것으로 휙 덮어버리는 것, 혹은 진흙 같은 것을 쏟아부어 뒤덮어버리는 것임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ref> 구슬은 진흙에 오염되겠지만, 그래도 저 빛나는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以下總論綱領·條目.> '''<이하의 조목들은 대학의 강령과 조목들에 대한 총론> *  15:138 大學“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此三箇是大綱, 做工夫全在此三句內. 下面知止五句是說效驗如此. 上面是服藥, 下面是說藥之效驗. 正如說服到幾日效如此, 又服到幾日效又如此. 看來不須說效亦得, 服到日子滿時, 自然有效. 但聖人須要說到這田地, 敎人知“明明德”三句. 後面又分析開八件: 致知至修身五件, 是明明德事; 齊家至平天下三件, 是新民事. 至善只是做得恰好. 後面傳又立八件, 詳細剖析八件意思. 大抵閑時喫緊去理會, 須要把做一件事看, 橫在胸中, 不要放下. 若理會得透徹, 到臨事時, 一一有用處. 而今人多是閑時不喫緊理會, 及到臨事時, 又不肯下心推究道理, 只說且放過一次亦不妨. 只是安于淺陋, 所以不能長進, 終於無成. 大抵是不曾立得志, 枉過日子. 且如知止, 只是閑時窮究得道理分曉, 臨事時方得其所止. 若閑時不曾知得, 臨事如何了得? 事親固是用孝, 也須閑時理會如何爲孝, 見得分曉, 及到事親時, 方合得這道理. 事君亦然. 以至凡事都如此. ''' '대학'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 이 세 가지가 큰 줄기(大綱)이니, 실제로 힘을 쓰는(工夫) 것은 전적으로 이 세 구 안에 있다. 그 아래 '지지(知止)'로 시작하는 다섯 구는<ref>정/정/안/려/득의 다섯 항목을 말한다. 권 14의 말미에 자세하다. 예컨대 14:157과 158을 보라.</ref> 그 효험이 이와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위는<ref>삼강령이다.</ref> 약을 복용하는 것이고, 아래는<ref>정/정/안/려/득이다.</ref> 약의 효험을 말한 것이다. 마치 복용한지 며칠이 지나면 효과가 이러하고, 다시 며칠 복용하면 효과가 또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만 보니 효험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복용을 시작하여 날짜가 차면 자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단, 성인은 반드시 이 지점까지 설명하여 사람들이 '명명덕' 세 구에 대하여 잘 알게 하려고 한 것뿐이다. 그 다음 부분에서 다시 여덟 건을<ref>경 1장에서 설명한 격/치/성/정/수/제/치/평의 팔조목이다.</ref> 분석하는데, 치지에서 수신까지 다섯 건은 명명덕의 일이고, 제가에서 평천하까지 세 건은 신민의 일이다. 지어지선은 단지 (명명덕과 신민을) 잘 해낸다는 것이다. 그 뒤의 전(傳) 부분에서 여덟 건을 세워서 팔조목의 의미를 상세히 분석한다.<ref>전 1장부터 10장까지에서 순차적으로 팔조목을 설명한 것을 말한다.</ref> 대체로 한가할 때 절실히(喫緊) 헤아려서, 반드시 한 번에 한 건씩 주목하여 마음 한켠에 걸어두고(橫在胸中)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투철하게 이해하면 실제 사태에 직면했을 적에 하나하나 다 쓸모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한가할 때도 절실하게 헤아리려하지 않고,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도 기꺼이 심력을 다해 도리를 탐구하려하지 않으며, 그저 '한 번 쯤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천박하고 비루한(淺陋) 식견에 안주해버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이는 대개 한 번도 마음의 지향점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여(立得志) 하루하루 헛되이 시간만 보내서(枉過)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한가할 때 도리를 철저히 탐구하여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 비로소 그 멈출 곳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得其所止). 만약 한가할 때 이해해두지 않으면 실제 사태에 직면하여 어떻게 일을 제대로 처리할(了得) 수 있겠나? 부모를 모시는 데에는 물론 당연히 효(孝)의 도리를 사용하지만, 역시 한가할 때 어떻게 해야 효(孝)가 되는 건지 헤아려서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로 부모를 모실 때가 되었을 때 이 도리에 부합할 수 있다. 임금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又問: “知止, 是萬事萬物皆知得所止, 或只指一事而言?” '''재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모든 사태와 모든 사물에 있어 각각 멈출 지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한 가지 사안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曰: “此徹上徹下, 知得一事, 亦可謂之知止.” '''대답: 한 가지 일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역시 '멈출 곳을 알았다(知止)'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又問: “上達天理, 便是事物當然之則至善處否?” '''재질문: '위로 천리에 통달하고...(上達天理)'<ref>논어 14:37</ref>는 바로 사태와 사물의 '당연(當然)한 법칙(則)'<ref>법칙에는 두 가지 구분되는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만유인력의 법칙'의 경우처럼 어떠한 현상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의 법칙'의 경우처럼 우리가 어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룰을 말한다. 전자와 같은 의미를 주희는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라고 하고 후자와 같은 의미는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고 한다. 대학혹문 11장, 주자어류 17:43 등을 참조하라.</ref>이요 지극히 선한 지점(至善處) 아닙니까? 曰: “只是合禮<ref>조선고사본은 '理'이다. 여기서는 '예'로 두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ref>處, 便是天理. 所以聖人敎人致知·格物, 亦只要人理會得此道理.” '''대답: 그저 예(禮)에 합치하는 지점이 곧 천리(天理)이다. 성인이 사람들에게 치지격물하도록 한 까닭 역시 그저 사람들이 이 도리를 이해하게 하려고 해서였을 뿐이다. 又問: “大學'表裏精粗'如何?” '''재질문: '대학'에서 '바깥쪽 측면과 안쪽 측면, 정밀한 부분과 거친 부분(表裏精粗)'<ref>대학장구 전 5장.</ref>은 어떻습니까? 曰: “自是如此. 粗是大綱, 精是裏面曲折處.” '''대답: 말 그대로다. 거친 부분은 큰 틀(大綱)이고 정밀한 부분은 안쪽의 상세한(曲折) 부분이다. 又曰: “外面事要推闡, 故'齊家而后治國, 平天下'; 裏面事要切己, 故修身·正心, 必先誠意. 致知愈細密.” '''다시 말함: 바깥쪽 일은 미루어 드러내야(推闡)<ref>불명확한 도리를 추론하여(推) 명백하게 설명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闡) 것이다.</ref> 하므로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하였다. 안쪽 일은 자신에게 절실해야 하므로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앎을 지극히하는 것은 더욱 정밀한 작업이다. 又問眞知. '''다시 '진정한 앎(眞知)'이 무엇인지 질문. 曰: “曾被虎傷者, 便知得是可畏. 未曾被虎傷底, 須逐旋思量箇被傷底道理, 見得與被傷者一般, 方是.” 明作(63이후). '''대답: 호랑이에게 다쳐본 사람은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호랑이에게 다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차근차근 '호랑이에게 다침'의 도리를 잘 생각해서 호랑이에게 정말 다쳐본 사람과 똑같이 (호랑이의 무서움에 대하여 절실하게) 알게 되어야 한다.<ref>호랑이 이야기의 원조는 이정유서 2上:24이다.</ref>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39 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 大學中大抵虛字多. 如所謂“欲”·“其”·“而后”, 皆虛字; “明明德·新民·止於至善”, “致知·格物·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實字. 今當就其緊要實處著工夫. 如何是致知·格物以至于治國·平天下? 皆有節目, 須要一一窮究著實, 方是. 道夫(60이후). '''격물과 치지는 그 멈출 곳을 알고자하는(知其所止)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그 멈출 곳을 얻고자하는(得其所止) 것이다.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그 멈출 곳을 안 것이고, 의성, 심정, 신수, 가제, 국치, 천하평은 그 멈출 곳을 얻은 것이다. '대학'에는 대체로 허자(虛字)가 많다. 이른바 '원하다(欲)', '그(其)', '이후에(而后)'는 모두 허자이고,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 치지, 격물,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실자(實字)이다. 이제 응당 그 중요하고 실질적인 지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치지하고 격물하여 치국과 평천하까지 이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학에) 모두 각각의 단계가 있으니 하나하나 착실하게 탐구하여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0 自“欲明明德於天下”至“先致其知”, 皆是隔一節, 所以言欲如此者, 必先如此. “致知在格物”, 知與物至切近, 正相照在. 格物所以致知, 物才格, 則知已至, 故云在, 更無次第也. 閎祖(59이후). '''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에서부터 '...먼저 앎을 지극히해야 한다.'라는 구절까지 모두 한 단계 간격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ref>팔조목 가운데 뒤의 일곱조목간의 관계는 모두 'ㅇㅇ하려면 먼저 ㅇㅇ한다'의 형식으로 서술하지만 마지막 두 조목인 치지와 격물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렇게 간단하게 서술한다.</ref>고 (특이하게 말)한 것은 지(知)와 물(物)이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하고(相照) 있기 때문이다.<ref>소박하게 설명하자면 인식이라는 이벤트는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객체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므로 격물(인식대상에 접근하여 탐구)과 치지(탐구의 결과 앎을 획득)는 동일한 이벤트를 각각 객체쪽과 주체쪽에서 해설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조목은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한다.</ref> 사물을 탐구하여 그로써 앎이 지극해지는 것이니, 사물이 탐구되자마자 앎은 이미 지극하다. 그래서 '~에 있다(在)'고 말하고 별도의 선후 순서가 없는 것이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41 大學“明明德於天下”以上, 皆有等級. 到致知格物處, 便較親切了, 故文勢不同, 不曰“致知者先格其物”, 只曰“致知在格物”也. “意誠而后心正”, 不說是意誠了便心正. 但無詐僞便是誠. 心不在焉, 便不正. 或謂但正心, 不須致知·格物, 便可以修身·齊家, 卻恐不然. 聖人敎人窮理, 只道是人在善惡中, 不能分別得, 故善或以爲惡, 惡或以爲善; 善可以不爲不妨, 惡可以爲亦不妨. 聖人便欲人就外面攔截得緊, 見得道理分明, 方可正得心, 誠得意. 不然, 則聖人告顔子, 如何不道非禮勿思, 卻只道勿視聽言動? 如何又先道“居處恭, 執事敬”, 而後“與人忠”?“敬”字要體得親切, 似得箇“畏”字. ''' '대학'에서 '명명덕을 천하에 밝힌다' 다음의 것들은 모두 (뚜렷하게) 등급이 나눠지는데 치지와 격물에 이르러서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더 긴밀하다.<ref>이 부분은 직전 조목의 설명을 참조하라.</ref> 그래서 문세(文勢)가 달라지는데, '앎을 지극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사물을 탐구한다'고 하지 않고 그저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할 뿐이다.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의 경우, 의지가 진실해지기만 하면 마음이 곧바로 바르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만과 작위가 없기만하면 곧 '진실(誠)'하다. (이에 더하여) 마음을 여기에 두지 않으면(心不在焉)<ref>대학장구 전 7장. '마음이 여기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ref> 바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그저 마음만 바르게 하면(正心) 치지도 격물도 필요 없이 바로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인이 사람들로하여금 이치를 탐구하게 한 것은 그저 (다음과 같은) 이런 말이다(只道).<ref>여기서부터 '성득의(誠得意)' 까지가 궁리(窮理) 공부의 취지를 설명한 것이다.</ref> 사람은 선악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여 때로는 선을 악으로 오인하고 악을 선으로 오인한 결과 선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악은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성인은 사람들이 바깥쪽을 단단히 막아내고(攔截)<ref>뒤에서 언급될 '비례물시'의 경우처럼 행동거지를 잘 다스려 악을 멀리하고 도리를 견지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란절(攔截)은 길을 막아 적의 전진을 돈좌(頓挫)시키는 행위를 말한다.</ref> 도리를 분명히 보기를 바랐으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得心)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 있다(誠得意).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안자(顔子)에게 왜 '예가 아니면 생각하지 말라(非禮勿思)'<ref>만약 이렇게 말했으면 공자는 안회에게 어떤 도덕심리상의 공부, 예컨대 성의나 정심 공부를 주문한 것이 된다.</ref>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실행하지도 말라(勿視聽言動)'고만 말했겠나?<ref>논어 12:1. 이른바 '극기복례'장을 말한다.이는 모두 구체적인 행실과 행동거지의 레벨에서 악을 경계하라는 것이니 성의나 정심과 같은 도덕심리 레벨에서의 공부와는 범주가 다르다.</ref> 왜 또 먼저 '집에서 기거할 적에는 공손하고, 나가서 집무할 때에는 경건하라(居處恭, 執事敬)'고 말한 뒤에야 '남과 교제할 적에 진심을 다하라(與人忠)'고 했겠나?<ref>논어 13:19. 거처공과 집사경은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이고 여인충은 마음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도덕심리 공부이다. 전자를 후자보다 우선했다는 주장이다.</ref> '경건하라(敬)'는 글자는 친근하고 절실하게 체득해야 한다. '두려움(畏)'<ref>일을 처리할 적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미칠 파장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신함을 말한다. 이는 '두려움'의 정서에 가깝다.</ref>과 비슷하다.<ref>이 조목은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다. 주희는 어디선가 접한 잘못된 입장을 세운 뒤 그것을 공박하려고 한다. 이때 문제의 '잘못된 입장'은 도리에 대한 지적인 탐구와 이해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도덕의지와 정서, 정념 같은 심리적인 힘을 고양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스탠스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을 논박하려면 이지적인 탐구와 이해의 중요성, 즉 '궁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더니 금방 일상에서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빠져버린다.</ref>''' <銖記:先生嘗因諸生問敬宜何訓, 曰: “是不得而訓也. 惟‘畏’庶幾近之.” 銖云: “以‘畏’訓‘敬’, 平淡中有滋味.” 曰: “然.”> 榦(미상). '''<수(銖)의 기록: 선생은 일찍이 '경'자를 어떻게 풀이(訓)<ref>위에서 말한 것처럼 'A라는 글자는 B라는 글자와 뜻이 같다.'는 식의 글자풀이를 말한다.</ref>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이는 풀이할(訓) 수 없다. 오직 '두려움(畏)'이 가장 가까울 뿐이다'라고 하였다. 내가(銖) '경을 외로 풀이하니 담박한(平淡) 가운데 깊은 맛이 있다(滋味)'고 했다.<ref> '평담(平淡)'은 맛으로 치면 물과 같은 것이다. '경' 같은 단어의 뜻은 특수한 학문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는데 반해 '외'는 일상언어에 가까우므로 그 평범성과 일상성을 물맛에 비긴 것이다. 다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입 안에 넣고 굴려보면 그 안에 비범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바로 '자미(滋味)가 있다'이다. 비슷한 표현이 26:93에 보이니 참조하라.</ref> 선생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간(榦)의 기록. *  15:142 “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 <至>"致知在格物.” “欲”與“先”字, 謂如欲如此, 必先如此, 是言工夫節次. 若“致知在格物”, 則致知便在格物上. 看來“欲”與“先”字, 差慢得些子, “在”字又緊得些子. 履孫(65때). '''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부터>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에 관해서는, '하고자 한다면(欲)'과 '먼저(先)'라는 글자는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欲) 반드시 먼저(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부의 단계별 순서를 말한 것이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같은 경우 치지가 바로 격물에 있다는 것이다.<ref>치지가 격물에 수반한다는 말이다.</ref> 내 생각에 '하고자 한다면'과 '먼저'라는 글자는 (앞 조목과 뒷 조목을 연결시키는 정도가)<ref>이 부분은 일역판의 의견을 따랐다.</ref> 조금 느슨하고, '있다(在)'는 글자는 그보다 조금 더 긴밀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43 大學言‘物格而后知至', <止>'天下平.’ 聖人說得寬. 不說道能此卽能彼, 亦不說道能此而後可學彼. 只是如此寬說, 後面逐段節節更說, 只待人自看得如何. 振(미상). '''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 부터 '천하가 태평해진다'까지는 성인이 느슨하게 말하였다(說得寬). '이것을 잘 하면 저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고 '이것을 잘 하게 된 이후에 저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느슨하게 말해놓고 뒷부분에서는 순서대로 조목조목 다시 설명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스스로 어떻게 이해할지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그저 기다릴(待)<ref>이 '기다린다'는 표현은 책을 저술해놓고 서문의 말미에 자주 사용한다. 자신이 할 일은 다 했으니 훗날의 독자가 내 저술의 취지를 제대로 알아줄지 말지는 내 손을 떠난 문제이므로 훗날의 일로 맡겨놓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다.</ref> 뿐이다. 진(振)의 기록. *  15:144 蔡元思問: “大學八者條目, 若必待行得一節了, 旋進一節, 則沒世窮年, 亦做不徹. 看來日用之間, 須是隨其所在而致力: 遇著物來面前, 便用格; 知之所至, 便用致; 意之發, 便用誠; 心之動, 便用正; 身之應接, 便用修; 家便用齊; 國便用治, 方得.” '''채원사(蔡元思)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을 만약 반드시 한 조목을 완전히 해내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 단계로 점차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다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일상생활 중에 처한 상황에 따라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어떤 사물과 조우하여 그것이 눈앞에 이르면 격물을 사용하고, 앎이 이르는 곳에서는 치지를 사용하며, 의지가 발출하면 성의를 사용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정심을 사용하고, 몸이 사태와 사물을 접하고 응대할(應接) 때면 수신을 사용하며, 집안에서는 제가를 사용하고, 나라에서는 치국을 사용해야만 됩니다. 曰: “固是. 他合下便說‘古之欲明明德於天下’, 便是就這大規模上說起. 只是細推他節目緊要處, 則須在致知·格物·誠意迤邐做將去”云云. '''대답: 물론 그렇다. '대학'에서 (팔조목을 언급하는) 첫 시작을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전체적인 구조를 거론한 것이다. 단지 그 조목들 가운데 긴요한 곳을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치지, 격물, 성의부터 순서대로 해나가야 한다. (후략) 又曰: “有國家者, 不成說家未齊, 未能治國, 且待我去齊得家了, 卻來治國; 家未齊者, 不成說身未修, 且待我修身了, 卻來齊家! 無此理. 但細推其次序, 須著如此做. 若隨其所遇, 合當做處, 則一齊做始得.” 僩(69이후). '''다시 대답: 국(國)과 가(家)를 가진 자가 설마하니 '집안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으니 나라를 아직 다스릴 수 없구나. 우선 가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말할 것인가? 집안을 아직 다스리지 못한 자가 설마하니 '몸이 아직 닦이지 않았으니 우선 몸을 제대로 닦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집안을 다스리겠다'고 말하겠는가? 그런 이치는 없다. 그러나 그 순서를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ref>격물치지부터 치국평천하까지의 정방향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ref> 일상에서 조우하는 상황에 따라 마땅한 것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모든 공부를) 일제히 수행해야만 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45 大學自致知以至平天下, 許多事雖是節次如此, 須要一齊理會. 不是說物格後方去致知, 意誠後方去正心. 若如此說, 則是當意未誠, 心未正時有家也不去齊, 如何得! 且如“在下位不獲乎上”數句, 意思亦是如此. 若未獲乎上, 更不去治民, 且一向去信朋友; 若未信朋友時, 且一向去悅親, 掉了朋友不管. 須是多端理會, 方得許多節次.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知, 不是做一件淨盡無餘, 方做一件. 若如此做, 何時得成! 又如喜怒上做工夫, 固是; 然亦須事事照管, 不可專於喜怒. 如易損卦“懲忿窒慾”, 益卦“見善則遷, 有過則改”, 似此說話甚多. 聖人卻去四頭八面說來, 須是逐一理會. 身上許多病痛, 都要防閑. 明作(63이후). ''' '대학'에서 치지부터 평천하까지 많은 일들이 비록 순서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일제히 힘써야(理會) 한다. 사물을 탐구한 후에야 비로소 앎을 지극히하러 가고, 의지가 진실해진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하러 간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못하고 마음이 아직 바르지 못한 때에는 집안이 있더라도 집안을 다스리러 가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이럴 수 있겠나! 예를들어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등의 몇 구절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ref>맹자 7A:12와 중용 제 20장에 비슷한 구문이 있다. 다음은 맹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 길이 있으니,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믿음을 받는데 길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쁨을 받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 길이 있으니, 몸을 돌이켜봄에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기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몸을 성실히 하는데 길이 있으니,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居下位而不獲於上, 民不可得而治也. 獲於上有道, 不信於友, 弗獲於上矣. 信於友有道, 事親弗悅, 弗信於友矣. 悅親有道, 反身不誠, 不悅於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其身矣).' 팔조목을 치국부터 성의까지 역순으로 나열한 것과 비슷한 논조이다.</ref>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을 때 다시 백성을 다스리는 쪽으로 가지 않고 전적으로 벗에게 믿음을 받는 쪽만 신경써버리고,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때도 전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쪽만 신경써버려서 벗과의 관계는 완전히 방기하여 돌보지 않는다. 반드시 다방면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저 여러가지 단계들은 성인 역시 간략하게 선후를 구분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ref>여(與)는 오늘날 중국어 'gei(給)'와 같다.</ref> 것일 뿐이니 한 단계를 깨끗하게 해내고 나서야 다음 단계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체 어느때 다 성취할 수 있겠나!<ref>이 지점까지는 이전 몇 조목과 그 논조가 같으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ref> 또, 기쁨과 노여움(喜怒)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옳다. 다만 역시 사안마다 돌봐야 하며, 기쁨과 노여움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ref>화제가 기쁨과 노여움으로 옮겨간 것에는 어떤 대화의 맥락이 작용했음이 틀림 없으나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ref> '주역'의 손괘(損卦)에서는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懲忿窒慾)'<ref>주역 손괘 상전.</ref>고 하고, 익괘(益卦)에서는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見善則遷, 有過則改)'<ref>주역 익괘 상전.</ref>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말이 매우 많다. 성인은 온갓 방면(四頭八面)에 관하여 다 말하였으니, 하나하나 공을 들여 살펴야 한다. 일신상의 수많은 병통에 대하여 모두 방비해야 한다.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46 問: “知至了意便誠? 抑是方可做誠意工夫?” '''질문: '앎이 지극해지면 의지는 바로 진실해집니까? 아니면 그제서야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也不能恁地說得. 這箇也在人. 一般人自便能如此. 一般人自當循序做. 但知至了, 意誠便易. 且如這一件事知得不當如此做, 末梢又卻如此做, 便是知得也未至. 若知得至時, 便決不如此. 如人旣知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豈肯更試去食烏喙, 蹈水火! 若是知得未至時, 意決不能誠.”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것도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응당 순서에 따라 실천해야 한다. 단, 앎이 지극해지고나면 의지가 진실해지는 것은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다시 그렇게 하고 말았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앎이 지극해진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이미 오훼(烏喙)<ref>각시투구꽃의 뿌리덩이로 초오(草烏)라고도 한다. 오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덩이가 부자(附子)인데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독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사약의 주 성분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약용으로도 쓴다.</ref>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과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때, 그가 어찌 다시 오훼를 한 번 먹어보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를 한 번 밟아보려 하겠나?<ref>그렇게 하면 죽는다는 걸 지극하게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그걸 먹거나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100% 진심인 것이다.</ref>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 의지는 결코 진실해질 수 없다. 問: “知未至之前, 所謂愼獨, 亦不可忽否?” '''질문: 앎이 지극해지기 전에도 이른바 '신독(愼獨)'<ref>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이는 일종의 성의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제자는 '격물치지를 완수하기 이전에도 성의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거지요?'라고 물은 것이다. 15:113을 참조하라.</ref>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曰: “也不能恁地說得. 規模合下皆當齊做. 然這裏只是說學之次序如此, 說得來快, 無恁地勞攘, 且當循此次序. 初間‘欲明明德於天下’時, 規模便要恁地了. 旣有恁地規模, 當有次序工夫; 旣有次序工夫, 自然有次序功效: ‘物格, 而后知至; 知至, 而后意誠; 意誠, 而后心正; 心正, 而后身修; 身修, 而后家齊; 家齊, 而后國治; 國治, 而后天下平.’ 只是就這規模恁地廣開去, 如破竹相似, 逐節恁地去.” 㝢(61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큰 틀(規模)에서는 원래부터 모두 일제히 해야 한다. 여기서는 배움의 순서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요, 빠르게 설명하면 그렇게 번잡하지도 않으니 일단은 이 순서를 따라야 한다. 처음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큰 틀은 이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틀이 잡힌 다음에는 반드시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어야 한다.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으면 자연히 순서에 따른 효과가 있다.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며,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이며, 몸이 닦인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며,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ref>이것이 순서대로 노력한 결과 순서대로 체감하는 효과이다.</ref> 단지 이 큰 구도(規模) 속에서 이렇게 확장해 나가야 한다. 마치 대나무를 쪼개듯이 각각의 마디를 따라 이렇게 해나가야 한다.<ref>대나무 쪼개기의 비유는 15:114를 보라. 여덟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세로방향으로 쪼개면 각각의 마디를 순서에 따라 파죽지세로 쪼개나가게 된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147 說大學次序, 曰: “致知·格物, 是窮此理; 誠意·正心·修身, 是體此理; 齊家·治國·平天下, 只是推此理. 要做三節看.” 雉(미상). ''' '대학'의 순서를 설명함: 치지와 격물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은 이치를 체득(體)하는 것이며, 제가, 치국, 평천하는 이치를 미루어 확장하는(推) 것이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치(雉)의 기록. *  15:148 大學一篇卻是有兩箇大節目: 物格·知至是一箇, 誠意·修身是一箇. 才過此二關了, 則便可直行將去. 泳(66때). ''' '대학'에는 모두 두 개의 중요한 단계가 있다.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이고, 성의수신(誠意修身)이 하나이다. 이 두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49 物格·知至, 是一截事; 意誠·心正·身修, 是一截事; 家齊·國治·天下平, 又是一截事. 自知至交誠意, 又是一箇過接關子; 自修身交齊家, 又是一箇過接關子. 賀孫(62이후). '''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의 덩어리이고, 의성(意誠)과 심정(心正)과 신수(身修)가 또 하나의 덩어리이며, 가제(家齊)와 국치(國治)와 천하평(天下平)이 또 하나의 덩어리이다. 지지(知至)와 성의(誠意)의 교차점이 두 영역이 연접한 관문(過接關子)<ref>과접(過接)은 두 영역이 붙어있어서(接) 그 경계선을 통과(過)할 수 있는 지점이다. 68:28에서 봄과 가을을 겨울과 여름이라는 두 영역 사이의 '과접처'라고 설명한 것을 참조하라. 관자(關子)는 관문이다.</ref>이고, 수신(修身)에서 제가(齊家)의 교차점이 또 두 영역이 연접한 또 하나의 관문이다.<ref>본 조목에서는 팔조목을 '공부형'(격물 치지 성의)로 쓰기도 하고 '완성형'(물격 지지 의성)으로 쓰기도 하는데 딱히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두 개의 관문을 소개할 적에 전자를 '지지와 성의의 관문'이라고 소개했으면 그 뒤쪽 관문은 응당 '신수와 제가'의 관문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또 신수가 아니라 '수신'이라고 쓴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는 알기 어렵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0 自格物至修身, 自淺以及深; 自齊家至平天下, 自內以及外. 敬仲(62때). '''격물에서 수신까지는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요,<ref>15:124에서는 성의가 깊고 정심은 얕다고 했다.</ref> 제가에서 평천하까지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경중(敬仲)의 기록. (62세) *  15:151 或問: “格物·致知, 到貫通處, 方能分別取舍. 初間亦未嘗不如此, 但較生澀勉强否?” '''누군가의 질문: 격물과 치지는 관통하는 경지(貫通處)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시비선악을) 취사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초기에도 이렇게 (취사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상대적으로 생소하여 애써가며 해야하는 것 뿐이지 않습니까<ref>숙련자가 힘을 빼고 하는 일을 초심자가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ref>? 曰: “格物時是窮盡事物之理, 這方是區處理會. 到得知至時, 卻已自有箇主宰, 會去分別取舍. 初間或只見得表, 不見得裏; 只見得粗, 不見得精. 到知至時, 方知得到; 能知得到, 方會意誠, 可者必爲, 不可者決不肯爲. 到心正, 則胸中無些子私蔽. 洞然光明正大, 截然有主而不亂, 此身便修, 家便齊, 國便治, 而天下可平.” 賀孫(62이후). '''대답: '격물'의 단계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때이니, 이는 곧 (사물과 사태에 대하여) 처리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이미 주체성(主宰)이 생겨 취사분별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간혹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거나, 거친 스케치만 보고 정밀한 디테일은 보지 못한다. 앎이 지극해짐(知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겉과 속, 거침과 정밀함을 모두) 알게 된다. 알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의지가 성실해질 수 있어서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되면(心正) 가슴 속을 뒤덮은(蔽)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어서 투명하게(洞然) 광명정대(光明正大)하며,<ref>'뒤덮다(蔽)'에 대해서는 15:137을 참조하라. 덮고 있는 것이 없으니 마음 본연의 광명정대한 빛(곧, 명덕)이 밖으로 발산하는데 막힘이 없다. 이 빛은 휘황찬란하다기보다는 밝고 명료하고 또렷한 실내조명 같은 것이다. 불 꺼진 방은 어둑하여 사물의 윤곽이 흐려서 대강의 스케치만 보인다. 그러다 불이 켜지면 그 밝은 빛에 힘입어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고 명료하게 포커스가 잡힌다. 통연(洞然)은 그런 느낌을 형용하는 말이다.</ref> 칼로 자른듯이(截然) 주관이 있어(有主) 혼란스럽지 않게 된다.<ref>사태와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게 보이므로 시비선악의 취사분별이 확고하여 혼란스럽거나 흔들림이 없다.</ref> 이에 몸이 닦이고, 집안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해질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2 格物·致知, 比治國·平天下, 其事似小. 然打不透, 則病痛卻大, 無進步處.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這裏縱有未盡處, 病痛卻小. 格物·致知, 如“知及之”; 正心·誠意, 如“仁能守之”. 到得“動之不以禮”處, 只是小小未盡善. 蓋卿(65때). '''격물과 치지는 치국과 평천하에 비하면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커서 진보할 수 없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規模)은 크지만 이 단계에서 조금 미진하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격물과 치지는 '앎이 이른 것(知及之)'과 같고, 정심과 성의는 '인으로 지킬 수 있다(仁能守之)'와 같다.<ref>논어 15:32. '앎이 미쳐도 인으로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앎이 이른다는 것은 이지적인 사유의 결과 주어진 도덕원칙에 대하여 납득하는 것을 말하고 인으로 지킨다는 것은 그러한 도덕원칙을 몸으로 받아들여 그 원칙과의 싱크로율이 고조됨을 말한다. 이지적으로 납득하기만 하고 그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치 잘 만들어졌으되 그것을 실행할 리소스가 부족한 앱(App)처럼 '얻더라도 반드시 잃게' 된다.</ref> '예로써 움직이지 않는다'<ref>논어15:32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고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더라도 (그들을) 예로써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선(善)하지 못하다(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예는 이치를 현실사회에서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규칙들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주희는 여기서 '장중하게 임하고 예로써 움직이는' 것을 대학의 치국과 평천하 단계의 일에 비기고 있다.</ref>의 경우는 단지 선(善)하지 못한 부분이 소소하게 있다는 것뿐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方子錄云: “格物·誠意, 其事似乎小. 然若打不透, 卻是大病痛.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若有未到處, 其病卻小, 蓋前面大本領已自正了. 學者若做到物格·知至處, 此是十分以上底人.”> '''<방자(方子)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함: 격물과 성의는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크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은 크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이는 (팔조목의) 앞쪽에 위치한 근본적인 부분(大本領)에서 이미 올바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가 만약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데까지 이르렀으면 그는 이미 100%를 초과한(十分以上)<ref>마치 요즘 사람처럼 주희도 '100% 이상'이니 '200%'니 하는 과장법을 쓴다. 14:106을 참조하라.</ref> 인물이다.> *  15:153 問: “看來大學自格物至平天下, 凡八事, 而心是在當中, 擔著兩下者. 前面格物·致知·誠意, 是理會箇心; 後面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心之功用.” '''질문: 제 생각에 '대학'은 격물에서 평천하까지 이르기까지 일이 모두 여덟가지가 있는데 마음(心)이 그 한가운데에 있으면서(當中) (앞과 뒤) 양쪽(兩下)<ref>이 다음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격/치/성 까지가 앞쪽이고 수/제/치/평이 뒤쪽이다.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앞쪽이 수기(修己), 뒤쪽이 치인(治人)이다.</ref>을 모두 지탱하고 있습니다. 앞쪽의 격물, 치지, 성의는 마음을 헤아리는(理會) 것이고, 뒤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마음의 효과(功用)입니다.<ref>배우는 이가 실제로 작업하는 지점은 '수기' 부분이고, 수기에서 열심히 작업한 결과가 '치인'이라는 말이다.</ref> 曰: “據他本經, 去修身上截斷. 然身亦是心主之.” 士毅(미상). '''대답: 대학의 본경(本經)<ref>대학 경 1장을 말한다.</ref>에서는 수신(修身)을 기준으로 자른다.<ref>대학 경 1장.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ref> 그러나 몸 또한 마음이 주재하는 것이다. 사의(士毅)의 기록. *  15:154 自明明德至於治國·平天下, 如九層寶塔, 自下至上, 只是一箇塔心. 四面雖有許多層, 其實只是一箇心. 明德·正心·誠意·修身, 以至治國·平天下, 雖有許多節次, 其實只是一理. 須逐一從前面看來, 看後面, 又推前面去. 故曰“知至而後意誠, 意誠而后心正”也. 子蒙(미상). ''' 명명덕에서 치국, 평천하까지는 마치 아홉 층의 보탑(九層寶塔)과 같으니,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그저 탑의 중심축(心) 하나가 있을 뿐이다. 외면(四面)에 제아무리 층이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중심축 하나 뿐이다. 명덕, 정심, 성의, 수신에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기까지 제아무리 단계가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이치(理)' 하나 뿐이다. 반드시 하나하나 앞에서부터 이해해나가야 한다. 뒷부분에 대한 이해도 결국 앞부분을 확장해(推)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했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155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至‘致知在格物’, 詳其文勢, 似皆是有爲而後爲者.”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까지, 문장의 흐름(文勢)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무엇을 한 이후에 무엇을 한다는 것 같습니다.<ref>대학 경문에서 팔조목을 설명하는 대목은 'A를 한 이후에 B를 한다'와 같은 형태로 문장을 구성한다. 15:83을 참조하라.</ref> 曰: “皆是合當爲者. 經文旣自明德說至新民, 止於至善, 下文又卻反覆明辨, 以見正人者必先正己. 孟子曰: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亦是此意.” 道夫(60이후). '''대답: 모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다. 경문에서 이미 명덕에서 신민과 지어지선까지 설명해놓고<ref>삼강령이다.</ref> 그 아래 문장에서 다시 반복해서 분명히 변론하여<ref>팔조목이다.</ref> 남을 바로잡으려는(正人) 이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正己) 함을 보여주었다. 맹자가 말하길,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안에 있고, 집안의 근본은 자기 일신에 있다'<ref>맹자 7A:5</ref>고 했다. 이것도 역시 같은 취지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56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 至‘致知在格物’, 向疑其似於爲人. 今觀之, 大不然. 蓋大人, 以天下爲度者也. 天下苟有一夫不被其澤, 則於吾心爲有慊; 而吾身於是八者有一毫不盡, 則亦何以明明德於天下耶! 夫如是, 則凡其所爲, 雖若爲人, 其實則亦爲己而已.”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 전에는 그것이 위인지학(爲人)<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 그런데 '대학혹문'에서는 이런 뜻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정의한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ref>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인(大人)은 (생각의) 기준(度)이 천하인 사람입니다.<ref>漢書 권 52에서 '무릇 성인은 천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자입니다(夫聖人以天下為度者也).'라고 하였다.</ref> (대인은)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慊). 그런데 자신의 일신에 이 여덟 가지 조목 가운데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히 해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명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이와 같다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비록 위인지학(爲人)같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역시 위기지학(爲己)일 뿐입니다.<ref>천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치국 평천하가 모두 직분 내의 일이다. 그러므로 위인지학(직분 바깥의 일에 종사함)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위기지학(직분 안쪽의 일에 종사함)이라는 논리이다.</ref> 先生曰: “爲其職分之所當爲也.” 道夫(60이후). '''선생의 대답: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파일:KakaoTalk 20240605 154354490.jpg|섬네일|주자어류 15-156 그림]] <ref>중화서국본 314쪽의 그림을 참조할 것</ref> * 9t3zi415kei3qa4czfw92ge7j53ywqs 394515 394514 2025-07-05T14:09:44Z Thomas Dongsob Ahn 16640 394515 wikitext text/x-wiki 朱子語類卷第十五 * *   大學二 '''대학(2) *   經下 '''경(하) *  15:1 器遠問: “致知者, 推致事物之理. 還當就甚麽樣事推致其理?” '''기원(器遠)<ref>조숙원(曹叔遠). 기원(器遠)은 그의 자(字).</ref>의 질문: 앎을 지극히 함(致知)이란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推致) 것입니다. 응당 어떤 사건의 이치를 지극히 해야 합니까?''' 曰: “眼前凡所應接底都是物. 事事都有箇極至之理, 便要知得到. 若知不到, 便都沒分明; 若知得到, 便著定<ref>이 부분은 주자어류휘교의 교감을 따라 便決定著로 해석하였다</ref>恁地做, 更無第二著·第三著. 止緣人見道理不破, 便恁地苟簡, 且恁地做也得, 都不做得第一義.” '''대답: 눈 앞에서 응접하는 모든 것이 물(物)이다. 사사건건에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죄다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알면 반드시(決定著) 그렇게 실천하게 되니 제2책(第二著)이니 제3책(第三著)이니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다만 도리를 분명하게 간파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어설픈 것이다. 당장은 저런 식으로 해도 되겠지만 어떻게해도 최선책(第一義)은 해낼 수 없다.''' 曹問: “如何是第一義?” '''조(기원)의 질문: 무엇이 최선책(第一義)입니까?''' 曰: “如‘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之類, 決定著恁地, 不恁地便不得. 又如在朝, 須著進君子, 退小人, 這是第一義. 有功決定著賞, 有罪決定著誅, 更無小人可用之理, 更無包含小人之理. 惟見得不破, 便道小人不可去, 也有可用之理. 這都是第二義·第三義, 如何會好! 若事事窮得盡道理, 事事占得第一義, 做甚麽剛方正大! 且如爲學, 決定是要做聖賢, 這是第一義, 便漸漸有進步處. 若便道自家做不得, 且隨分依稀做些子, 這是見不破. 所以說道: ‘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謂吾身不能者, 自賊者也.” 賀孫(62이후). '''대답: '임금은 인(仁)에 머물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은 효(孝)에 머문다'같은 것들은 반드시(決定著) 이와 같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예를 들어 조정에서 봉직할 때에는 반드시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내쳐야 하니 이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다. 공이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시상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주살해야 하니, 소인을 쓸 수 있다는 이치나 소인도 포용한다는 이치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을 완전히 내칠 수 없다는둥 소인을 써도 되는 이치가 있다는둥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제2책이니 제3책이니 하는 것들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사사건건에서 도리를 완전히 밝혀내면 사사건건마다 최선책(第一義)를 점할 수 있으니 무엇을 하든 강건하고 방정하고 올바르고 당당하다(剛方正大). 학문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니 (이렇게 하면) 점점 진보가 있게 된다. 만약 자기는 그렇게는 못하니까 일단 자기 분수에 맞게 조금만(依稀) 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ref>맹자4A:2</ref>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라는 뜻이다.''' 섭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卓錄云: '''<황탁의 기록> 曹兄問: "格物窮理, 須是事事物物上理會?” '''<조형의 질문: 격물궁리(格物窮理)는 사사물물 각각의 상황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曰: “也須是如此, 但窮理上須是見得十分徹底, 窮到極處, 須是見得第一著, 方是, 不可只到第三第四著便休了. 若窮不得, 只道我未窮得到底, 只得如此, 這是自恕之言, 亦非善窮理也. 且如事君, 便須是‘進思盡忠, 退思補過’, '道合則從, 不合則去'. 也有義不可得而去者, 不可不知.” '''<대답: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궁리할 적에 반드시 100퍼센트 철저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탐구가 지극한 지점(極處)까지 도달하여 반드시 최선책(第一著)을 이해해야만 한다. 제 3책이나 제 4책 정도에 도달하고 그만두어버리면 안 된다. (제대로) 궁리하지 못하고서, 그저 나는 끝까지 궁리하지 못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변명이지 궁리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아가면 충(忠)을 다할 생각을 하고 물러나면 잘못을 개선할 생각을'하고<ref>춘추좌씨전 선공 12년</ref>, '도가 맞으면 따르고 맞지 않으면 떠'나야<ref>예기 내칙</ref> 하지만 의리상 떠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몰라서는 안 된다.>''' 又云: “如‘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這皆是極處.” '''<다시 대답: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같은 것들은 모두 지극한 지점(極處)이다.> 以下致知.> '''<이 아래로는 치지(致知)에 관한 조목들> *  15:2 致知所以求爲眞知. 眞知, 是要徹骨都見得透. 道夫(60이후). '''치지는 참으로 알게(眞知)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다(眞知)는 것은 뼛속까지 꿰뚫어 투철히 이해하려는 것이다. *  15:3 問: “致知莫只是致察否?” '''질문: 치지는 그저 살피기를 지극히 한다(致察)는 것 아닙니까? 曰: “如讀書而求其義, 處事而求其當, 接物存心察其是非·邪正, 皆是也.” 㝢(61이후). '''대답: 예컨대 책을 읽을 적에 그 의리를 구하고, 일을 처리할 적에 마땅하게 하기를 구하고, 사물을 접하거나 마음을 수습하여 보존할(存心) 적에<ref>곧, 활동할 때나 혼자 묵상할 때나</ref>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살피는 행위가 모두 이것(치지)이다.''' *  15:4 因鄭仲履之問而言曰: “致知乃本心之知. 如一面鏡子, 本全體通明, 只被昏翳了, 而今逐旋磨去, 使四邊皆照見, 其明無所不到.” 蓋卿(65때). '''정중리의 질문에 대한 답: 치지는 본심의 앎(本心之知)이다.<ref>이 부분은 문법적으로 애매하다. 치지는 동작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심지지는 성질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마음의 성질을 말한다.지금 본문처럼 쓰면 '동작=성질'과 같이 되므로 말이 순조롭지 않다. 차라리 '치지의 지(知)라는 것은 본심지지를 말한다'정도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 조목 전체가 불교적 메타포와 어휘가 농후하지만 '본심'은 특히나 불교적 표현이다. 주희는 이 표현을 평소에 잘 쓰지 않는다. '본심지지'의 경우 어떤 내용성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 그 자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거울의 성질 가운데 밝게 비추고 투영하는 성질 정도를 지시하는 말이다.</ref> 예를 들어 거울은 본래 온전히 밝지만 흐린 것이 끼었을 뿐이다. 이제 점점 갈고닦아 사방을 모두 비추도록하면 그 밝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15:5 致知有甚了期! 方(41때). '''치지에 무슨 끝날 기약이 있겠나? *  15:6 致知工夫, 亦只是且據所已知者, 玩索推廣將去. 具於心者, 本無不足也. '''치지공부는 역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지하여 (그것을) 완미하고 확장해나가는 것 뿐이다. 마음에 갖춘 것은 본래 부족함이 없다.''' *  15:7 格物者, 格, 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若是窮得三兩分, 便未是格物. 須是窮盡得到十分, 方是格物. 賀孫(62이후). '''격물(格物)에서 격(格)은 남김없이 다한다(盡)는 뜻이다.<ref>주희가 격을 이렇게 풀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아래 15:9에서처럼 '이르다'로 풀이한다.</ref>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남김없이 다 파고들어야<ref>궁(窮)은 대개 '궁구하다'라고 풀이하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끝까지 탐구하고 파고들어 모조리 알고자하는 행위가 '궁구'이다. 여기서는 '파고들다'나 '탐구하다' 정도로 번역하겠다.</ref> 한다. 만약 2할이나 3할쯤 파고들었다면 격물이 아니다. 남김없이 파고들어 100퍼센트에 이르러야 격물이다.''' 하손의 기록. * <以下格物, 兼論窮理.> '''<이 아래로 격물에 관한 조목들. 궁리에 관한 논의도 겸한다.> *  15:8 居甫問: “格物工夫, 覺見不周給.” '''거보(서우)의 질문: 격물공부가 두루 미치지 않는 듯합니다. 曰: “須是四方八面去格.” 可學(62때). '''대답: 사방팔방에 나아가 탐구해야(格) 한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9 格物. 格, 猶至也, 如‘舜格于文祖’之‘格’, 是至于文祖處. 芝(63때). '''격물의 격은 이르다(至)와 같다.<ref>현실의 여러 사태와 사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 그것에 내재한 모종의 패턴을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까지가 '격'이다. 그래서 격물의 '격'은 이르다, 탐구하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번역어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격하다'로도 풀이하겠다.</ref> 예컨대 '순임금이 문조의 묘에 격하여(舜格于文祖)'<ref>상서 순전</ref>에서의 '격'은 문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0 問: “格物, 還是事未至時格, 事旣至然後格?” '''질문: 격물은 사태가 아직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태가 이른 뒤에 '격'하는 것입니까?<ref>육아로 비유하자면 애를 낳기 전에 육아의 도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를 낳은 후에 탐구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ref> 曰: “格, 是到那般所在. 也有事至時格底, 也有事未至時格底.” 芝(63때). '''대답: '격'은 (자신이) 저것이 있는 곳으로 이르는 것이다. 사태가 이르렀을 때 '격'하는 경우도 있고 사태가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경우도 있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1 格物者, 如言性, 則當推其如何謂之性; 如言心, 則當推其如何謂之心, 只此便是格物. 砥(61때). '''격물이란, 예를 들어 성(性)이다 하면 무엇을 성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하고 심(心)이다 하면 무엇을 심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격물이다. 지(砥)의 기록. (61세) *  15:12 窮理格物, 如讀經看史, 應接事物, 理會箇是處, 皆是格物. 只是常敎此心存, 莫敎他閑沒勾當處. 公且道如今不去學問時, 此心頓放那處? 賀孫(62이후). '''궁리와 격물은, 예컨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고 사태와 사물에 접하고 대응하면서 각각의 경우에 옳은 지점을 헤아리는 것이 모두 격물이다. 그저 늘 이 마음을 간직해야지, 한가로이 일 없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그대가 한 번 말해보라. 요즘 학문하지 않을 때에는 그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3 格物, 須是從切己處理會去. 待自家者已定疊, 然後漸漸推去, 這便是能格物. 道夫(60이후). '''격물은 자신에게 절실한 지점에서부터 헤아려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선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다음에 천천히 밀고 나가야 격물이 가능하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 “格物”二字最好. 物, 謂事物也. 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 便有一箇是, 一箇非, 是底便行, 非底便不行. 凡自家身心上, 皆須體驗得一箇是非. 若講論文字, 應接事物, 各各體驗, 漸漸推廣, 地步自然寬闊. 如曾子三省, 只管如此體驗去. 德明(44이후). '''격물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좋다. 물은 사건과 사물이다.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남김 없이 파고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는데 옳은 것이면 행하고 그른 것이면 행하지 않는다. 대개 옳고 그름을 자신의 심신상에서 모두 체험(體驗)해야 한다. 문자를 강론하고 사건과 사물에 대응할 적에 각각의 경우(의 옳고 그름)를 체험하며 점점 미루어 넓혀간다면 (자신의) 지평이 자연히 드넓어질 것이다. 증자(曾子)가 매일 세 가지 항목으로 반성한 것처럼<ref>논어 1:4.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불충했는가?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귐에 신실하지 못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ref> 그저 이렇게 체험해가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15 文振問: “物者, 理之所在, 人所必有而不能無者, 何者爲切?” '''문진(文振)의 질문: 물(物)은 이치가 있는 곳이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으며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절실합니까?''' 曰: “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皆人所不能無者. 但學者須要窮格得盡. 事父母, 則當盡其孝; 處兄弟, 則當盡其友. 如此之類, 須是要見得盡. 若有一毫不盡, 便是窮格不至也.” 人傑(51이후). '''대답: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든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는 이라면 더더욱 반드시 남김 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부모를 모실 때는 효를 다해야 하고 형제간에 지낼 때는 우애를 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남김 없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16 格物, 莫先於五品. 方子(59이후). '''격물(格物)의 대상은 오륜(五品)<ref>오품(五品)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 곧 오륜을 말한다. 상서 순전을 보라.</ref>이 최우선이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17 格物, 是窮得這事當如此, 那事當如彼. 如爲人君, 便當止於仁; 爲人臣, 便當止於敬. 又更上一著, 便要窮究得爲人君, 如何要止於仁; 爲人臣, 如何要止於敬, 乃是. 銖(67이후). '''격물(格物)은 이 사안은 이래야 하고 저 사안은 저래야 한다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임금은 어찌하여<ref>방법을 묻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것인지 불분명하다.</ref> 인에 멈추어야 하는지, 신하는 어찌하여 경에 멈추어야 하는지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18 格物者, 格其孝, 當考論語中許多論孝; 格其忠, 必‘將順其美, 匡救其惡’, 不幸而仗節死義. 古人愛物, 而伐木亦有時, 無一些子不到處, 無一物不被其澤. 蓋緣是格物得盡, 所以如此. 節(64이후). ''' '격물(格物)'이란, 효(孝)를 격(格)하려면 '논어'에서 효를 논한 많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하고 충(忠)을 격(格)하려면 반드시 '임금이 잘하는 것은 받들어 따르고(將順其美), 임금이 잘못하는 것은 바로잡아 제지해야(匡救其惡)'<ref>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장(將)은 소학집해에 의하면 받든다는 뜻. 광구(匡救)는 바로잡아 제지한다는 뜻이다. 일역판에서는 효경의 주석서 하나를 인용하여 장(將)을 행(行)의 뜻으로 풀이했다.</ref>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仗節死義).<ref>후한서 오한(吳漢)전. 장(仗)은 붙잡는다는 뜻.</ref> 옛사람들은 만물을 사랑하여 나무를 베는 것에도 때가 있었다. 이 사랑이 도달하지 못한 곳이 조금도 없었으며, 이 은택을 입지 못한 사물이 하나도 없었다. 대개 격물을 완전하게 해냈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9 格物, 須眞見得決定是如此. 爲子豈不知是要孝?爲臣豈不知是要忠?人皆知得是如此. 然須當眞見得子決定是合當孝, 臣決定是合當忠, 決定如此做, 始得. 㝢(61이후). '''격물(格物)할 적에는 결단코 반드시 이러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식이 되어서 어찌 효도해야 함을 모르겠나? 신하가 되어서 어찌 충성해야 함을 모르겠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자식은 결단코 반드시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결단코 반드시 충성해야 하며 결단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0 如今說格物, 只晨起開目時, 便有四件在這裏, 不用外尋, 仁義禮智是也. 如才方開門時, 便有四人在門裏. 僩(69이후). '''지금 말한 격물의 경우, 그저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이미 네 가지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밖에 나가 찾을 필요가 없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바로 이 네 가지이다. 마치 (조금 전) 문을 열자마자 (여러분) 네 사람이 문 안에 있었던 것과 같다.<ref>마지막 문장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강론하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빗댄 것일 수도 있다. 일역판에서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구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풀이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1 子淵說: “格物, 先從身上格去. 如仁義禮智, 發而爲惻隱·羞惡·辭遜·是非, 須從身上體察, 常常守得在這裏, 始得.” '''자연(子淵)이 말함: '격물'은 우선 자기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발현되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되는 것을 자기자신에게서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늘 속에 간직해야 됩니다. 曰: “人之所以爲人, 只是這四件, 須自認取意思是如何. 所謂惻隱者, 是甚麽意思? 且如赤子入井, 一井如彼深峻, 入者必死, 而赤子將入焉! 自家見之, 此心還是如何? 有一事不善, 在自家身上做出, 這裏定是可羞; 在別人做出, 這裏定是惡他. 利之所不當得, 或雖當得, 而吾心有所未安, 便要謙遜辭避, 不敢當之. 以至等閑禮數, 人之施於己者, 或過其分, 便要辭將去, 遜與別人, 定是如此. 事事物物上各有箇是, 有箇非, 是底自家心裏定道是, 非底自家心裏定道非. 就事物上看, 是底定是是, 非底定是非. 到得所以是之, 所以非之, 卻只在自家. 此四者, 人人有之, 同得於天者, 不待問別人假借. 堯舜之所以爲堯舜, 也只是這四箇, 桀紂本來亦有這四箇. 如今若認得這四箇分曉, 方可以理會別道理. 只是孝有多少樣, 有如此爲孝, 如此而爲不孝; 忠固是忠, 有如此爲忠, 又有如此而不喚做忠, 一一都著斟酌理會過.” 賀孫(62이후). '''대답: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바로 이 네 가지 뿐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드시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측은지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보자.<ref>맹자 2A:6</ref> 이 우물이 이토록 깊고 험하여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되는데 어떤 아이가 빠지려 한다! 자신이 그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어떤 좋지 못한 일을 자기 자신이 했다고 한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부끄러울(羞)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그를 미워할(惡) 것이다. 얻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그런 이익이 있거나, 혹여 비록 적절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겸손하게 사양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ref>감히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ref> 심지어 사소한 예절에서도(等閑禮數) 남이 나에게 베풀 때 분수를 넘어버리면 그것을 사양하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 반드시 이렇게 한다. 모든 사건과 사물에는 각각 옳고 그름이 있다. 옳은 것은 자기 마음 속에서 반드시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반드시 그르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니라) 사건과 사물쪽에 가서 보면 옳은 것은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반드시 그르다. 그러나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판단의 근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이 네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하늘로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요순이 요순이 된 이유 역시 이 네 가지일 뿐이다. 걸왕과 주왕도 원래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이 네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다른 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효(孝)에도 그 양상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해서 효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똑같이 했는데 불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忠)은 충인데, 이렇게 해서 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다시 똑같이 이렇게 했는데 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 신중히 살펴보고 헤아려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22 問: “格物最難. 日用間應事處, 平直者卻易見. 如交錯疑似處, 要如此則彼礙, 要如彼則此礙, 不審何以窮之?” '''질문: '격물'이 가장 어렵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에 대응하는 경우 중에서 평이직절한 것이야 보기 쉽습니다만 복잡하고 애매한 것들은 이렇게 하려 하면 저것이 장애가 되고, 저렇게 하려 하면 이것이 방해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탐구해야 합니까? 曰: “如何一頓便要格得恁地! 且要見得大綱, 且看箇大胚模是恁地, 方就裏面旋旋做細. 如樹, 初間且先斫倒在這裏, 逐旋去皮, 方始出細. 若難曉易曉底, 一齊都要理會得, 也不解恁地. 但不失了大綱, 理會一重了, 裏面又見一重; 一重了, 又見一重. 以事之詳略言, 理會一件又一件; 以理之淺深言, 理會一重又一重. 只管理會, 須有極盡時.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成四節次第, 恁地方是.” 㝢(61이후). '''대답: 어떻게 첫 술에(一頓)<ref>'일둔'은 한 차례, 한 번 등의 뜻이다. 주희는 종종 음식을 한 술 먹는 것을 '일둔'이라고 형용한다. 124:13 참조.</ref> 그렇게 (완벽하게) 격물하려 하는가? 우선은 큰 줄기(大綱)를 보아야 한다. 우선 전체적인 틀(mould)이<ref>大胚模에 대해서는 14:6 참조.</ref>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旋旋)<ref>선선(旋旋)은 차례차례 순서대로 조금씩 함을 말한다.</ref> 세밀한 것을 해나가야 한다. 나무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우선 나무를 베어 여기에 쓰러뜨려 놓은 다음에 순서대로(逐旋) 한겹씩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안쪽의 섬세한 부분이 드러난다. 만약 이해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모두 일제히 헤아리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할 수가 없다.<ref>여기서 해(解)는 can과 같다.</ref> 그러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 겹을 헤아리고 나면 그 안에 또 한 겹을 보게 되고, 그 한 겹을 이해하고 나면 또 다시 그 아래 한 겹을 보게 된다. 일의 자세함과 간략함으로 말하자면, (간략한 것) 한 건을 헤아리고 다시 (자세한 것) 한 건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치의 얕음과 깊음으로 말하자면, (얕은 것) 한 겹을 헤아리고 다시 (깊은 것) 한 겹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헤아리다 보면 반드시 완전히 남김없이 헤아리게 되는 때가(極盡時) 올 것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는'<ref>중용 20장.</ref> 것이 네 단계의 절차를 이룬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3 或問: “格物是學者始入道處, 當如何著力?” '''누군가의 질문: '격물'은 배우는 이가 처음으로 도(道)에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曰: “遇事接物之間, 各須一一去理會始得. 不成是精底去理會, 粗底又放過了; 大底去理會, 小底又不問了. 如此, 終是有欠闕. 但隨事遇物, 皆一一去窮極, 自然分明.” '''대답: 상황을 만나고 사물을 접하는 사이에 각각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 설마하니 정밀한 것은 헤아리고 거친 것은 방치하며 큰 것은 헤아리고 작은 것은 탐문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하면 결국 무언가 빠뜨리게 된다. 다만 사물과 상황에 따라 모두 하나하나 끝까지 파고들면 자연히 분명해진다. 又問: “世間有一種小有才底人, 於事物上亦能考究得仔細, 如何卻無益於己?” '''재질문: 세상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과 사물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할 수 있는데도 어째서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曰: “他理會底, 聖人亦理會, 但他理會底意思不是. 彼所爲者, 他欲人說, ‘他人理會不得者, 我理會得; 他人不能者, 我能之’, 卻不切己也.” '''대답: 그들이 헤아린 대상은 성인도 헤아리지만, 그들의 (상황과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려는 의도(意思)는 (성인의 의도와)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나는 헤아린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고 타인이 말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절실하지 못하다. 又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聖人何事不理會, 但是與人自不同.” 祖道(68때). '''다시 대답: '문왕과 무왕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남아있습니다. 현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불현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합니다. 문무의 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ref>논어 19:22</ref>라고 하였다. 성인<ref>직전 인용이 공자의 배움의 과정에 대한 것이므로 여기서 성인은 공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ref>이 어떤 일이든 헤아리지 않았겠는가? 다만 (남들이 알아주기나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히 다를 뿐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24 傅問: “而今格物, 不知可以就吾心之發見理會得否?” '''부(傅)<ref>일역판에서는 부정 傅定(자는 敬子)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15:21에서 질문한 자연(子淵)일 가능성도 있다.</ref>의 질문: 이제 '격물'을 할 때,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에서 발현하는 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는 것 아닙니까?<ref>마음에서 발현한 것을 면밀히 살피는 방식의 공부법은 당시 호남의 여러 학자들(예컨대 호굉)이 주장한 것으로 이른바 호상학파의 찰식단예(察識端倪)설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대한 이승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란 일상의 마음 씀씀이 가운데서 현행하는 의식의 흐름을 면밀하게 관찰하다가 '측은지심'과 같은 본성(性)의 실마리(端倪)가 문득 발현할 때 이를 즉각 포착하려는 자기직관의 수행법이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의 수양법은 성품을 '기르는 일(涵養)'보다 본성을 '찰식'하는 일에 방법론적 우선성을 두는 전형적인 '선찰식후함양'의 수행법이다. '성품 기르기(涵養)'보다 '마음 관찰하기(察識)'를 중시하는 호상학의 수행법은 양구산과 사상채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들 수행법은 다시 스승인 정명도의 '식인(識仁)'설에 근거를 두고 불교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이승환, 2009, "찰식에서 함양으로: 호상학의 이발찰식 수행법에 대한 주자의 비판")</ref> 曰: “公依舊是要安排, 而今只且就事物上格去. 如讀書, 便就文字上格; 聽人說話, 便就說話上格; 接物, 便就接物上格. 精粗大小, 都要格它. 久後會通, 粗底便是精, 小底便是大, 這便是理之一本處. 而今只管要從發見處理會. 且如見赤子入井, 便有怵惕·惻隱之心, 這箇便是發了, 更如何理會. 若須待它自然發了, 方理會它, 一年都能理會得多少! 聖賢不是敎人去黑淬淬裏守著. 而今且大著心胸, 大開著門, 端身正坐以觀事物之來, 便格它.” 蘷孫(68이후). '''대답: 그대는 여전히 머리를 굴려 안배(安排)하려고 한다. 지금은 우선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격물해야 한다. 독서의 경우는 읽고 있는 글에서 격물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에서 격물하고, 사물을 접할 때는 그렇게 접한 사물에서 격물하라. 정밀하든 거칠든, 크든 작든 모두 격물해야 한다. 오래도록 이렇게 하다가 회통(會通)<ref>회통은 융회관통(融會貫通)이다. 서로 달라 보였던 것이 녹아서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막혀 있던 것이 꿰뚫려 하나가 되는 지적 경험을 말한다.</ref>하면 거친 것이 곧 정밀한 것이요,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다. 여기가 바로 모든 이치의 단일한 뿌리가 되는 지점이다.<ref>현상적으로 우리가 보고 발견하는 인간세계와 자연세계의 패턴들은 그 양상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러한 패턴들이 공유하고 있는 패턴성 그 자체는 하나이다. 패턴의 이러한 다양성과 통일성을 주희는 자주 '리일분수(理一分殊)'라고 표현했다. '리지일본처(理之一本處)'는 패턴의 통일성, 곧 '리일'을 말한다.</ref> 이제 (그대는) 그저 발현된 지점에서만 헤아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놀랍고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발현된 지점인데, 여기서 더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만약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일년 내내 몇 개쯤 헤아릴 수 있겠나? 성현은 사람들더러 (마음이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저 암흑 속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슴을 크게 열고, 문을 넓게 열고,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 다가오는 사태와 사물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격물하라.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25 世間之物, 無不有理, 皆須格過. 古人自幼便識其具. 且如事君事親之禮, 鐘鼓鏗鏘之節, 進退揖遜之儀, 皆目熟其事, 躬親其禮. 及其長也, 不過只是窮此理, 因而漸及於天地鬼神日月陰陽草木鳥獸之理, 所以用工也易. 今人皆無此等禮數可以講習, 只靠先聖遺經自去推究, 所以要人格物主敬, 便將此心去體會古人道理, 循而行之. 如事親孝, 自家旣知所以孝, 便將此孝心依古禮而行之; 事君敬, 便將此敬心依聖經所說之禮而行之. 一一須要窮過, 自然浹洽貫通. 如論語一書, 當時門人弟子記聖人言行, 動容周旋, 揖遜進退, 至爲纖悉. 如鄕黨一篇, 可見當時此等禮數皆在. 至孟子時, 則漸已放棄. 如孟子一書, 其說已寬, 亦有但論其大理而已. 僩(69이후). '''세상 모든 것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으므로 모두 낱낱이 격물해야 한다. 옛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사물이 이치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군주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예법, (중요한 의식에서) 종치고 북치는 절차, (의식에서 사람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몸짓을 모두 눈으로 익히고 몸소 실천했다. 더 자라서는 그저 이 이치를<ref>사군사친, 종고갱장, 진퇴읍손에 내재한 의미를 말한다.</ref> 깊이 연구한 데 불과하다. 이어서 나아가 점차 천지, 귀신, 일월, 음양, 초목, 조수의 이치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쉬웠다.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예절(禮數)<ref>예수(禮數)는 숫자로 규정된 의식(ritual)의 절차를 말한다. 절을 두 번 하고 술을 세 번 따르는 등이 그것이다. 흔히 쓰는 '예절(禮節)'이란 말의 '절' 역시 이런 종류의 의식을 규정하는 절차와 단계, 참여자의 위아래를 나누는 등급 따위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통한다. 일역판에서 예수를 예절로 번역한 것을 참조하여 따랐다.</ref>(의 전통이 모두 사라져서) 그것을 전혀 강습할 수가 없으므로 오로지 성인이 남긴 경전에 의존하여 저 홀로 유추하고 연구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격물(格物)과 주경(主敬)<ref>주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1. 먼저 어려서 몸으로 익혀서 습관화하고 2. 나중에 머리로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캐묻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원하는 만큼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1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의 과정이 일종의 명상수련에 해당하는 '경(敬)'공부이다. '격물'은 '캐묻고 이해하는' 2번 과정이다.</ref>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마음에서 고대인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여 그 도리를 좇아 실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먼저 스스로 효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효심을 가지고 고대의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군주를 공경히 섬기는 것의 경우도 (먼저 그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인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깊이 연구하면 자연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꿰뚫게 된다. '논어' 한 권을 예로 들자면, 당시 문인제자들이 성인의 말과 행동, (중요한 의식에서의) 몸가짐과 동작,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지극히 상세하다. '향당(鄕黨)' 편을 보면 당시 이러한 예절(禮數)이 모두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버려졌다. '맹자' 한 권을 보면, 그 논의가 이미 완화되어,<ref>예절을 굳게 지키고 실천하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ref> 역시 거시적인 이치만<ref>디테일은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ref> 논하고 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6 問竇從周: “曾看‘格物’一段否?” '''선생이 두종주(竇從周)에게 질문: '격물' 한 단락은 읽어보았는가? 因言: 聖人只說“格物”二字,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且自一念之微, 以至事事物物, 若靜若動, 凡居處飮食言語, 無不是事, 無不各有箇天理人欲. 須是逐一驗過, 雖在靜處坐, 亦須驗箇敬·肆. 敬便是天理, 肆便是人欲. 如居處, 便須驗得恭與不恭; 執事, 便須驗得敬與不敬. 有一般人專要就寂然不動上理會, 及其應事, 卻七顚八倒, 到了, 又牽動他寂然底. 又有人專要理會事, 卻於根本上全無工夫. 須是徹上徹下, 表裏洞徹. 如居仁, 便自能由義; 由義, 便是居仁. “敬以直內”, 便能“義以方外”; 能“義以方外”, 便是“敬以直內.” 德明(44이후). '''(선생이) 이어서 말함: 성인은 단지 '격물' 두 글자를 말했을 뿐이니, 이는 구체적인 사태와 사물에서 이치를 헤아리도록 요구한 것이다. 하나의 미미한 생각에서부터 온갖 사사물물에 이르기까지,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거처, 음식, 언어 등 사태(事) 아닌 것이 없으며, 각각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함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각의 사태와 사물을 따라)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비록 고요한 곳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경건한지(敬) 방종한지(肆) 점검해야 한다. 경건하면 천리이고, 방종하면 인욕이다. 집에 있는 경우는 공손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하고, 일을 집행할 경우에는 경건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ref>거처공, 집사경(居處恭, 執事敬)은 논어 19:19</ref>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寂然不動)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사태에 대응할 적에 오히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자빠져서(七顚八倒) 결국 자신의 그 고요한 것까지 뒤흔들어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사태에서 헤아리려 하고 뿌리가 되는 지점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위쪽으로도 아래쪽으로도<ref>하학과 상달을 말한다.</ref> 끝까지 꿰뚫고, 바깥쪽으로도 안쪽으로도<ref>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을 말한다.</ref> 완전히 꿰뚫어야 한다. 인(仁)에 기거하면 저절로 의(義)로운 길을 걸을 수 있고, 의로운 길을 걸으면 곧 인에 기거하는 것이다.<ref>맹자 7A:33</ref>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敬以直內)' 하면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義以方外)' 할 수 있으며,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으면 곧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ref>주역 곤괘 문언전.</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27 才仲問: “格物, 是小學已有開明處了, 便從大學做將去, 推致其極.” '''재중(才仲)의 질문: '격물'은 소학의 단계에서 이미 개명(開明)된 것이 있고, 대학의 단계에서 (그 개명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나가서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曰: “人也不解無箇發明處. 才有些發見處, 便從此挨將去, 漸漸開明. 只如一箇事, 我才發心, 道‘我要做此事’, 只此便是發見開明處了, 便從此做將去. 五代時, 有一將官, 年大而不識字. 旣貴, 遂令人於每件物事上書一名字帖之, 渠子細看, 久之, 漸漸認得幾箇字. 從此推將去, 遂識字.” 璘(62때). '''대답: 사람은 (기존에) 발명(發明)된 부분이 없을 수 없다<ref>해(解)는 can의 의미.</ref>. 조금이라도 발현된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밀고 나가 점점 열어 밝힌다(開明).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에 대하여 발심(發心)하여, '내가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한다면 여기가 바로 발현된 부분이요 개명된 부분이니 거기에서 시작하여 해나가야 한다. 오대(五代) 때의 어떤 장수는 나이는 많은데 글자를 알지 못했다. 신분이 귀해진 그는 사람을 시켜 주변의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이게 하였다. 그는 그것들을 꾸준히 세심히 보았고, 점차 글자 몇 개를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밀고 나가서 마침내 글자를 알아보게 되었다.<ref>구오대사 권15 양서(梁書) 한건(韓建)</ref>''' 린(璘)의 기록. (62세) *  15:28 問: “格物則恐有外馳之病?” '''질문: '격물'을 하면 바깥쪽으로 정신이 팔리는(外馳) 병폐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曰: “若合做, 則雖治國平天下之事, 亦是己事. ‘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不成也說道外馳!” '''대답: 만약 응당 해야 하는 것이라면 치국평천하의 일이라 할지라도 역시 자기 (내면의) 일이다. '주공(周公)은 세 왕<ref>우, 탕, 문무를 말한다. 문왕과 무왕을 하나씩 세면 네 왕이지만 어째서인지 맹자는 셋으로 셌다.</ref>의 치적을 포괄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셨다. 혹여 (세 왕이 했던 것 가운데)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하여, 다행히 무언가 터득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앉아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ref>맹자 4B:20. 우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훌륭한 말을 좋아했다. 탕은 중도를 잡았으며 어진이를 세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 보기를 자기 몸의 상처 보듯 하였으며 도를 소망하면서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무왕은 가까이 있는 이를 편애하지 않고 멀리 있는 이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세 왕의 네 가지 일'이다.</ref> 설마하니 주공의 마음도 바깥쪽으로 팔렸다고 하진 않겠지? 又問: “若如此, 則恐有身在此而心不在此,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有此等患.” '''재질문: 그렇게하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 있지 않아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ref>대학 전7장.</ref>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曰: “合用他處, 也著用.” '''대답: 그렇게 해야하는 경우에는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ref>'著'는 '須著'의 뜻이다.</ref> 又問: “如此, 則不當論內外, 但當論合爲與不合爲.” '''재질문: 그렇다면 내면이냐 외면이냐를 논할 것이 아니라, 다만 응당 해야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논해야 할 뿐입니다. 先生頷之. 節(64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29 若格物, 則雖不能盡知, 而事至物來, 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 雖不中, 不遠矣. 節(64이후). ''' '격물'의 경우, 비록 모두 완전히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일이 닥치고 사물이 왔을 때 큰 것은 조금 더해서 처리하고 작은 것은 조금 덜어내서 처리하면(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ref>일역판의 각주에 의하면 이는 양팔저울로 무게를 재는 경우를 시각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큰 물건을 저울의 한쪽에 올려두면 다른 쪽 팔에는 좀 무거운 무게추를 더해주어야 균형이 맞다. 작은 물건을 올릴 경우엔 무게추를 덜어주어야 균형이 맞다.</ref>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雖不中, 不遠矣).<ref>대학 전9장.</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0 問: “格物工夫未到得貫通, 亦未害否?” '''질문: '격물' 공부는 꿰뚫는(貫通)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曰: “這是甚說話! 而今學者所以學, 便須是到聖賢地位, 不到不肯休, 方是. 但用工做向前去, 但見前路茫茫地白, 莫問程途, 少間自能到. 如何先立一箇不解做得便休底規模放這裏了, 如何做事! 且下手要做十分, 到了只做得五六分; 下手做五六分, 到了只做得三四分; 下手做三四分, 便無了. 且諸公自家裏來到建陽, 直到建陽方休. 未到建陽, 半路歸去, 便是不到建陽. 聖賢所爲, 必不如此. 如所謂: ‘君子鄕道而行, 半途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也, 俛焉日有孶孶, 斃而後已! ’又曰: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憂之如何? 如舜而已矣.’” 卓(미상). '''대답: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 배우는 이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반드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이 없어야 옳다. 다만 힘껏 앞을 향해 해나갈 뿐이다. 그저 앞길을 막막하게 보면서(茫茫地白) 어디까지 왔는지 묻지 말라(莫問程途). (계속 앞을 향해 나가면) 잠시 후에 저절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f>10:31의 유사한 구절을 참조하라.</ref> 어째서 해보기도 전에 '안 되면 그만둔다(不解做得便休)'는 한계(規模)<ref>규모(規模)는 틀, 구조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미리 이러이러한 틀을 잡아서 한계선을 정해둔다는 뜻으로 쓰였으므로 이렇게 의역하였다.</ref>를 여기다 정해두려 하는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일을 해내겠나? 처음부터 100%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50-60%정도만 하게 되고 처음부터 50-60%를 하려고 하면 결국 30-40%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처음부터 30-40%를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또, 그대들이 그대들 집에서 건양(建陽)까지 오려면 건양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멈춘다. 건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가면 건양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현이 하는 일은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예컨대 '군자는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에<ref>본문은 반도(半途)이나 인용 출처인 예기 표기(表記) 쪽은 '중도(中道)'이다.</ref> 그만두면 자신이 늙었음을 잊고 앞으로 살 날이 부족한 것도 모르고 날마다 부지런히(孶孶) 몰두하다(俛焉)<ref>'俛'에 관해서는 14:59 참조.</ref> 죽고 나서야 멈춘다.'<ref>예기 표기(表記)</ref> 고 하였고, 또 '순(舜)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한데 나는 여전히 평범한 촌사람을 면치 못하는구나. 이런 것은 (군자가)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여 어떻게 하는가? 순처럼 할 뿐이다.'<ref>맹자 4B:28</ref>라고 하였다.''' 탁(卓)의 기록. *  15:31 人多把這道理作一箇懸空底物. 大學不說窮理, 只說箇格物,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如此方見得實體. 所謂實體, 非就事物上見不得. 且如作舟以行水, 作車以行陸. 今試以衆人之力共推一舟於陸, 必不能行, 方見得舟果不能以行陸也, 此之謂實體. 德明(44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리를 공중에 붕 뜬 물건으로 여긴다.<ref>공중에 붕 떴다는 말은 공리공담, 실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14:44에 유사한 구문이 있으니 참조하라.</ref> '대학'에서 이치를 파고들라(窮理)고 말하지 않고 그저 사물에 나아가라(格物)고만 말한 것은 곧 사람들더러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여 (도리를) 헤아리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란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들어 물 위를 가고, 수레를 만들어 육지를 간다.'<ref>주례 고공기</ref>같은 경우 이제 시험삼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배를 육지 위로 밀어보면 결코 운행할 수 없을 것이니, 그제서야 비로소 배는 과연 육지를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다.<ref>실체(實體)는 문자 그대로 옮길 수 없다.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ousia)'의 번역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주자어류에서의 실체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치를 말한다. 한편 요즘 세간에서 종종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에서 '실체'는 우시아보다는 주자어류에서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운 것처럼 들린다.</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2 問: “道之不明, 蓋是後人舍事跡以求道.” '''질문: '도(道)가 밝지 못하게'<ref>중용 제 4장.</ref> 된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 구체적인 상황(事跡)을 도외시하기 때문입니까? 曰: “所以古人只道格物. 有物便有理, 若無事親事君底事, 何處得忠孝!” 節(64이후). '''대답: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저 '격물(格物)'이라고만 하였다.<ref>직전 조목 참조.</ref> 사물과 상황이 있으면 (그곳에) 이치가 있다. 만약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긴다는 상황(事)이 없다면 충(忠)과 효(孝)(라는 이치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3 “窮理”二字不若格物之爲切, 便就事物上窮格. 如漢人多推秦之所以失, 漢之所以得, 故得失易見. 然彼亦無那格底意思. 若格之而極其至, 則秦猶有餘失, 漢亦當有餘得也.” ''' '궁리(窮理)'라는 두 글자는 '격물(格物)'이라는 표현이 친근하고 절실한(切)<ref>'절(切)'은 어떤 말이 무척 구체적이고 실감나서 우리 피부에 딱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ref> 것에 미치지 못한다. 곧, 실제 사건과 사물의 현장에서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가 실패한(失) 이유와 한나라가 성공한(得) 이유를 많이 분석해준 덕에 (우리는) 그 득실(得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격(格)하는 정신은 없다.<ref>주희에 의하면 격물은 각각의 사건과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람들의 탐구는 방향이 틀렸다기 보다는 그 정도가 못미쳤다는 것이다.</ref> 만약 격(格)하여 그 극한까지 이르면 진나라에는 기존에 들춰내지 못했던 실패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한나라에는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성공 지점이 있을 것이다.''' 又云: “格, 謂至也, 所謂實行到那地頭. 如南劍人往建寧, 須到得郡廳上, 方是至, 若只到建陽境上, 卽不謂之至也.” 德明(44이후). '''다시 말함: '격(格)'은 '도달하다(至)'라는 뜻이다. 이른바 '실제로 가서 그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검(南劍)<ref>남송의 남검주.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연평구 즈음으로 복건 한가운데에 있다.</ref> 사람이 건녕(建寧)<ref>남송의 건녕부. 치소가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소속인 건구시(建瓯市)에 있다.</ref>에 가는 경우 반드시 군청(郡廳)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만약 건양(建陽)<ref>남송 건녕부 건양현. 건녕부 치소의 북쪽에 있다.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건양구. 남검주의 치소에서부터 걸어서 북상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먼저 도달하고, 여기서 더 북상하면 건양현에 도달한다. 물론 남검주의 서북쪽 끄트머리에서 출발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도달하기 전에 건양현 경내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역시 하나의 비유로서는 부자연스럽다. 건양을 '건녕'이라고 했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ref>의 경계에만 도달했을 뿐이라면 도달했다고 하지 않는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4 格物, 不說窮理, 卻言格物. 蓋言理, 則無可捉摸, 物有時而離; 言物, 則理自在, 自是離不得. 釋氏只說見性, 下梢尋得一箇空洞無稽底性, 亦由他說, 於事上更動不得. 賀孫(62이후). ''' '격물' 같은 경우, '궁리'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격물'이라고 말하였다. 생각건대 그 까닭은 이치(理)라고 말하면 붙잡을 것이 없어서 사물이 때로 (이치를 논의할 때) 분리되어 버리지만, 사물(物)이라고 말하면 이치는 자연히 그 안에 있어서 본래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ref>오늘날의 표현으로 치환하자면, 현실을 논하면 이론은 자연히 그 논의 속에 있지만 이론을 논하다보면 현실을 때로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ref> 석씨(釋氏)는 그저 '본성을 본다(見性)'고만 하는데, 결국 공허하고 근거 없는(空洞無稽)<ref>공동은 속이 빈 것이다. 이론만 있지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무계는 계고(稽考)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뿔달린 토끼나 날개달린 말처럼 현실에서 찾아내어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ref>본성을 찾는 것이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한다 해도(亦由他說)<ref>유(由)는 '따르다', 역(亦)은 '만일'로 풀었다.</ref> 현실의 사태에서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35 所謂窮理者, 事事物物, 各自有箇事物底道理, 窮之須要周盡. 若見得一邊, 不見一邊, 便不該通. 窮之未得, 更須款曲推明. 蓋天理在人, 終有明處. “大學之道, 在明明德”, 謂人合下便有此明德. 雖爲物欲掩蔽, 然這些明底道理未嘗泯絶. 須從明處漸漸推將去, 窮到是處, 吾心亦自有準則. 窮理之初, 如攻堅物, 必尋其罅隙可入之處, 乃從而擊之, 則用力爲不難矣. 孟子論四端, 便各自有箇柄靶, 仁義禮智皆有頭緖可尋. 卽其所發之端, 而求其可見之體, 莫非可窮之理也. 謨(50이후). '''이른바 궁리(窮理)란,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 각각에 본래 그 사태와 사물 고유의 도리가 있으니 그것을 반드시 남김없이 완전히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보지 않으면 두루 통달했다(該通)고 할 수 없다. 아직 다 탐구하지 못했다면 더욱 상세하게 미루어 밝혀야 한다. 생각건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으니 (우리 안에) 끝끝내 밝은 지점이 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밝은 덕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물욕에 엄폐(掩蔽)되었다 하더라도 이 밝은 도리는 결코 민멸된(泯絶) 적이 없다. 밝은 곳에서부터 점점 밀고 나가서 궁극적으로 올바른 지점(是處)에 도달하면 내 마음에도 저절로 준칙(準則)이 있게 된다. 궁리(窮理)의 초반부는 마치 단단한 물체를 가공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두들기면 힘쓰기가 어렵지 않다. 맹자가 사단(四端)을 논하여 각각 손잡이(柄靶)가 생겼다.<ref>착수할 지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ref> 인의예지(仁義禮智)에는 모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頭緖)가 있다. 발현되어 나온 실마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의 인식 시야에 들어온 본체(可見之體)를 찾아나가면 탐구(窮)할 수 없는 이치가 없다.'''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36 格物窮理, 有一物便有一理. 窮得到後, 遇事觸物皆撞著這道理: 事君便遇忠, 事親便遇孝, 居處便恭, 執事便敬, 與人便忠, 以至參前倚衡, 無往而不見這箇道理. 若窮不至, 則所見不眞, 外面雖爲善, 而內實爲惡, 是兩箇人做事了! 外面爲善是一箇人, 裏面又有一箇人說道: “我不好.” 如今須勝得那一箇不好底人去方是. 豈有學聖人之書, 爲市井之行, 這箇窮得箇甚道理! 而今說格物窮理, 須是見得箇道理親切了, 未解便能脫然去其舊習. 其始且見得箇道理如此, 那事不是, 亦不敢爲; 其次, 見得分曉, 則不肯爲; 又其次, 見得親切, 則不爲之, 而舊習都忘之矣. 子蒙(미상). ''' '격물'과 '궁리'로 말하자면, 물건이 하나 있으면 이치도 하나 있다. 가장 깊은 지점까지 탐구하고 나면 사태를 만나고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항상 이 도리와 조우하게 된다. 군주를 섬김에 있어서는 충(忠)이라는 도리와 조우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효(孝)라는 도리와 조우하며, 거처할 때는 공손함을,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함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충실함(忠)을 (만나고),<ref>논어 19:19</ref> 나아가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ref>논어15:5</ref> 어딜 가든 이 도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게 된 것이다. 만약 가장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못하면 보는 것이 참되지 않아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악하게 되니, 이는 마치 두 사람이 따로 일하는 셈이다. 겉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 있고, 속으로 '나는 나쁜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다. 이제 그 좋지 않은 사람을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성인의 책을 배우면서 행실은 시정잡배일 수 있나! 대체 무슨 도리를 탐구했다는 말인가! 이제 격물과 궁리를 말할 때, 반드시 이 도리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해야 하니, 구습을 곧바로 깨끗하게 벗어나는 것은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처음에는 우선 이 도리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저 옳지 않은 일을 역시 감히 하려고 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분명해지면서 (그런 옳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해져서 (옳지 않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 구습을 모두 잊게 된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37 不是要格那物來長我聰明見識了, 方去理會, 自是不得不理會. ''' '저 사물을 격물해서 나의 총명과 견식을 키워야겠다'하고난 다음에(方) 헤아리는(理會) 것이 아니다. 도저히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헤아리는(理會) 것이다.''' *  15:38 大學說一“格物”在裏, 卻不言其所格者如何. 學者欲見下工夫處, 但看孟子便得. 如說仁義禮智, 便窮到惻隱·羞惡·辭遜·是非之心; 說好貨好色好勇, 便窮到太王公劉文武; 說古今之樂, 便窮到與民同樂處; 說性, 便格到纖毫未動處. 這便見得他孟子胸中無一毫私意蔽窒得也, 故其知識包宇宙, 大無不該, 細無不燭! 道夫(60이후). ''' '대학'에서 '격물'을 언급하지만 격물하는 양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이가 노력을 기울일 곳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맹자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인의예지라면 곧바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깊이 탐구한다.<ref>맹자 1A:7</ref>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고 용맹을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곧바로 태왕, 공유, 문왕, 무왕의 사례를 깊이 탐구한다.<ref>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자 1B:5, 용맹을 좋아하는 일은 1B:3을 보라.</ref> 고금의 음악의 경우라면 곧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同樂) 측면을 깊이 탐구한다.<ref>맹자 1B:1</ref> 본성(性)을 말할 때는 털끝만큼도 움직임이 없는 지점(纖毫未動)<ref>주희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발동하기 전의 상태(未發)를 말한다.</ref>을 깊이 탐구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 어떤 사의(私意)도 맹자의 가슴 속을 가리거나 막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지식(知識)은 우주(宇宙)를 포괄한다. 큰다고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작다고 비추지도 않는 것도 없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39 居甫問: “格物窮理, 但理自有可以彼此者.” '''거보(居甫)의 질문: 사물을 탐구하고 이치를 파고들지만, 다만 이치 중에는 본래 이쪽저쪽 상황을 보고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曰: “不必如此看. 理有正, 有權. 今學者且須理會正. 如娶妻必告父母, 學者所當守. 至於不告而娶, 自是不是, 到此處別理會. 如事君匡救其惡, 是正理. 伊川說‘納約自牖’, 又是一等. 今於此一段未分明, 卻先爲彼引走. 如孔子說‘危行言孫’, 當春秋時亦自如此. 今不理會正當處, 纔見聖人書中有此語, 便要守定不移, 駸駸必至於行孫矣. 此等風俗, 浙江甚盛, 殊可慮!” 可學(62때). '''대답: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치에는 정(正)<ref>원칙이다.</ref>이 있고, 권(權)<ref>상황윤리이다.</ref>이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는 우선 정(正)을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맞이할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한다'는 것은<ref>맹자 5A:2</ref> 배우는 이가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에 관해서는 따로 헤아려야 한다. 군주를 섬길 때는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바로잡아 제지하는(匡救其惡)것이 정리(正理)이다.<ref>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15:18 참조.</ref> 하지만 이천(伊川)이 '약속을 창문으로 들인다'<ref>주역 감괘 육사효. 약(約)은 상대방을 속박하는 말이다. 이러이러한 것은 하지 않고 저러저러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등의 내용으로 군주를 제약하는 말이다. 문과 창문은 각각 큰길과 샛길을 뜻한다. 군주에게 윤리적 처방을 들일 때 정당하게 하는 것이 물론 좋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회를 틈타 측면으로 집어넣는 유도리를 발휘하는 게 좋다는 의미이다.</ref>에 대해 해설한 내용은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쪽 부분을<ref>원칙을 말한다.</ref> 아직 분명히 알지 못했는데 저쪽 부분으로 먼저 끌려가서는 안 된다. 공자가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ref>논어 14:4. 위(危)는 높음, 손(孫)은 낮음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도 행실도 높게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이에 대하여 군자는 행실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없지만 무도한 상황에서 타협없이 말하면 위험하므로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ref>고 했는데, 춘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역시 당연히 이와 같다.<ref>주희는 이를 상황윤리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것을 '원칙'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처럼 풀었는데 적절하지 않다.</ref> 지금 정당(正當)한 곳은 헤아리지도 않고 성인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자마자 그것을 꽉 붙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점차 행실마저 타협하여 낮춰서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풍속이 절강(浙江)에서 매우 성행하니 큰 걱정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40 問: “格物之義, 固要就一事一物上窮格. 然如呂氏楊氏所發明大本處, 學者亦須兼考.” '''질문: '격물'이란 물론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깊이 파고들라는(窮格) 것입니다. 하지만 여씨(呂氏)<ref>이정의 제자 여대림이다.</ref>와 양씨(楊氏)<ref>이정의 제자 양시.</ref>가 밝힌 큰 근본(大本)이 되는 지점<ref> 여대림이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의 영역에서 '중(中)'을 찾아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구중(求中)'론이라고 한다. '큰 근본이 되는 지점(大本處)'이란 중용의 한 구절에서 '중(中)'을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지칭한 것을 암시한다. 이정유서 18:82를 보라. 양시 역시 마음의 내면에 초월적 영역을 설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깊이 침잠한 끝에 극적으로 어떠한 경지로 도약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주희가 중용혹문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ref>도 배우는 이라면 역시 아울러 탐구해야 합니다. 曰: “識得, 卽事事物物上便有大本. 不知大本, 是不曾窮得也. 若只說大本, 便是釋老之學.” 德明(44이후). '''대답: (도리를) 알고 나면(識得)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 큰 근본(大本)이 있다.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큰 근본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만약 오직 큰 근본만 말할 뿐이라면 그것은 석씨와 노자의 학문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41 致知·格物, 只是一箇. 道夫(60이후).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은 하나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以下致知·格物.> '''<이 아래로 치지와 격물에 관한 조목> *  15:42 “致知·格物, 一胯底事.” '''치지와 격물은 하나(一胯)<ref>과(胯)는 개(個)와 같다. 수량사이다.</ref>이다. 先生擧左右指來比並. 泳(66때). 선생이 좌우 손가락을 들어 병렬시켰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43 格物, 是逐物格將去; 致知, 則是推得漸廣. 賜(66이후). '''격물은 각각의 사물을 하나하나 탐구(格)해나가는 것이고, 치지는 점차 넓게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다. 사(賜)의 기록. (66세 이후) *  15:44 剡伯問格物·致知. '''섬백(剡伯)<ref>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어류 및 여러 다른 문헌에서 공섬(龔剡), 공섬백(龔剡伯), 공염(龔郯), 공염백(龔郯伯)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ef>이 격물과 치지에 관하여 질문. 曰: “格物, 是物物上窮其至理; 致知, 是吾心無所不知. 格物, 是零細說; 致知, 是全體說.” 時擧(64이후). '''대답: 격물은 각각의 사물에서 그 지극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내 마음에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격물은 구체적인 설명이고, 치지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  15:45 張仁叟問致知·格物. '''장인수(張仁叟)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物莫不有理, 人莫不有知. 如孩提之童, 知愛其親; 及其長也, 知敬其兄; 以至於飢則知求食, 渴則知求飮, 是莫不有知也. 但所知者止於大略, 而不能推致其知以至於極耳. 致之爲義, 如以手推送去之義. 凡經傳中云致者, 其義皆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이치가 없는 사물도 없고 앎이 없는 사람도 없다.<ref>대학장구 격물보망장을 참조하라.</ref> 예컨대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ref>맹자 7A:15. 어류 14:92를 참조하라.</ref>같은 경우부터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을줄 알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을줄 아는'<ref>공자가어 왕언해</ref>데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앎이다. 단지 아는 것이 대략적인 데 그쳐서 그 앎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도록 밀고 나갈(推致) 수 없을 뿐이다. '치(致)'는 손으로 밀어낸다(推送)는 뜻이다. 경전에서 '치'라고 한 곳들은 그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5:46 問: “知如何致? 物如何格?” '''질문: 지(知)는 어떻게 지극히(致) 하며, 물(物)은 어떻게 탐구(格)합니까?''' 曰: “‘孩提之童, 莫不知愛其親; 及其長也, 莫不知敬其兄.’ 人皆有是知, 而不能極盡其知者, 人欲害之也. 故學者必須先克人欲以致其知, 則無不明矣. ‘致’字, 如推開去. 譬如暗室中見些子明處, 便尋從此明處去. 忽然出到外面, 見得大小大明. 人之致知, 亦如此也. 格物是‘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之類. 事事物物, 各有箇至極之處. 所謂‘止’者, 卽至極之處也. 然須是極盡其理, 方是可止之地. 若得八分, 猶有二分未盡, 也不是. 須是極盡, 方得.” '''대답: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ref>맹자 7A:15. 직전 조목 참조.</ref>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앎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한까지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욕(人欲)이 (그 앎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반드시 먼저 인욕을 극복하여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하니, 그렇게하면 밝지 않은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젖히는(推開) 것을 의미한다. 마치 암실에서 미약한 빛을 발견하여 그 빛을 따라 (출구를) 찾아 나가다 보면 홀연히 암실 밖으로 나와서 이토록(大小) 큰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앎을 지극히하는 것도 이와 같다. 격물은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문다' 같은 것이다.<ref>임금과 신하가 '물'이고 인과 경이 그 물에 내재한 도리이다. 사사물물에서 그것에 내재한 도리를 찾는 것이 격물이다. 14:104 참조.</ref> 사태와 사물마다 각각 지극한 지점이 있다. 이른바 '멈춘다(止)'는 것은 바로 그 지극한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치를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 비로소 멈출 만한 곳이 된다. 만약 80%는 되었는데 20%가 미진하다면, 그건 (멈출 지점이) 아니다. 반드시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만 한다. 又曰: “知在我, 理在物.” 祖道(68때). '''다시 대답: 앎은 나에게 있고, 이치는 사물에 있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47 黃去私問致知·格物. '''황거사(黃去私)<ref>황의강의 형 황의용(黃義勇).</ref>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致’字有推出之意, 前輩用‘致’字多如此. 人誰無知? 爲子知孝, 爲父知慈. 只是知不盡, 須是要知得透底. 且如一穴之光, 也喚做光, 然逐旋開剗得大, 則其光愈大. 物皆有理, 人亦知其理, 如當慈孝之類, 只是格不盡. 但物格於彼, 則知盡於此矣.” '''대답: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낸다(推出)는 뜻이 있다. 선배 학자들이 '치'자를 이런 의미로 쓴 경우가 많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앎이 없겠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할 줄 알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할 줄 안다. 단지 이 앎이 미진할 뿐이니 반드시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벼파서(開剗)<ref>개잔(開剗)은 작은 구멍을 날카로운 물건으로 깎고 파내어 크게 만드는 것이다.</ref> 점점[逐旋] 크게 만들면 그 빛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고 사람들도 그 이치를 알고 있으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애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그저 탐구(格)가 미진할 뿐이다. 단, 저쪽에서 사물을 깊이 탐구하기만 하면 앎은 이쪽에서 남김없이 완전해지게 된다.''' 又云: “知得此理盡, 則此箇意便實. 若有知未透處, 這裏面便黑了.” 人傑(51이후). '''다시 대답: 이 이치를 완전히 다 알게 되면 이 의지(意)<ref>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가 진실하게 된다. 만약 앎에 아직 철저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이 안쪽이<ref>의지(意)를 말한다.</ref> 캄캄해져버린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48 劉圻父說格物·致知. '''유기부(劉圻父)<ref>이름은 자환(自寰)이다.</ref>가 격물과 치지를 설명했다. 曰: “他所以下‘格’字·‘致’字者, 皆是爲自家元有是物, 但爲他物所蔽耳. 而今便要從那知處推開去, 是因其所已知而推之, 以至於無所不知也.” 義剛(64이후). '''대답: 대학에서 '격(格)'과 '치(致)'라는 글자를 쓴 이유는, 모든 것이 본래 자신의 소유이지만 외물에 의해 가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아는 곳에서부터 밀어 젖혀 나가야 하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고 나가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49 郭叔雲問: “爲學之初, 在乎格物. 物物有理, 第恐氣稟昏愚, 不能格至其理.” '''곽숙운(郭叔雲)의 질문: 배움의 시작은 격물에 있습니다. 사물마다 이치를 가지고 있지만 (저의) 기질(氣稟)이 어리석고 어두워 그 이치를 다 탐구해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曰: “人箇箇有知, 不成都無知, 但不能推而致之耳. 格物理至徹底處.” '''대답: 사람은 누구나 앎을 가지고 있다. 설마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는가? 단지 밀고 나가서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격물은<ref>일역판은 고정연원록 하권 20의 구문을 근거로 格物理至徹底處 앞에 格物是 세 글자를 더하여 번역했다.</ref> 사물의 이치를 철저한 지점까지 탐구하는 것이다. ''' 又云: “致知·格物, 只是一事, 非是今日格物, 明日又致知. 格物, 以理言也; 致知, 以心言也.” 恪(64때). '''또 말함: 치지와 격물은 하나일 뿐이니 오늘 격물하고 내일 다시 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파악의 대상인) 이치 쪽에서 말한 것이고, 치지는 (파악의 주체인) 마음 쪽에서 말한 것이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50 問: “致知, 是欲於事理無所不知; 格物, 是格其所以然之故. 此意通否?” '''질문: (일설에 의하면)<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자리에 '일설(一說)' 두 글자가 있다.</ref> 치지는 사태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고, 격물은 (해당 사태와 사물이) 지금과 같이 된 이유(所以然之故)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통합니까?''' 曰: “不須如此說. 只是推極我所知, 須要就那事物上理會. 致知, 是自我而言; 格物, 是就物而言. 若不格物, 何緣得知. 而今人也有推極其知者, 卻只泛泛然竭其心思, 都不就事物上窮究. 如此, 則終無所止.”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이미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려면 반드시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치지는 내쪽에서 말한 것이고 격물은 사물쪽에서 말한 것이다. 격물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앎을 얻겠나? 지금 사람들 중에서도 앎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막연히 자기 심사(心思)를 고갈시킬 뿐, 전혀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끝내 멈출 곳(所止)<ref>사람이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지극히 선한, 최선의 지점을 말한다.</ref>이 없다.''' 義剛曰: “只是說所以致知, 必在格物.” '''나(義剛)의 말: 그래서 '앎을 지극히하는(致知) 것은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는(格物) 데에 달려있다'<ref>대학 본문의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15:140을 참조하라.</ref>고 말했습니다.''' 曰: “正是如此. 若是極其所知去推究那事物, 則我方能有所知.” 義剛(64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미) 아는 것을 지극히하여 저 사태와 사물들을 미루어 탐구할 때 자신에게 비로소 앎이 생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1 致知·格物, 固是合下工夫, 到後亦離這意思不得. 學者要緊在求其放心. 若收拾得此心存在, 已自看得七八分了. 如此, 則本領處是非善惡, 已自分曉. 惟是到那變處方難處, 到那裏便用子細硏究. 若那分曉底道理卻不難見, 只是學者見不親切, 故信不及, 如漆雕開所謂“吾斯之未能信”. 若見得親切, 自然信得及. 看得大學了, 閒時把史傳來看, 見得古人所以處事變處, 儘有短長. 賀孫(62이후). '''치지와 격물은 물론 (배움의) 처음부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나중에가서도 이 (격물치지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要緊)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求其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따라서 주희의 경학체계 안에서 구방심 공부는 '거경(居敬)' 공부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류 59:156, 160 등을 보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제자들이 이미 질문하고 있다. 곽신환 역주 주자언론동이고(2002)의 137쪽을 보라. 高海波, "试论朱子对《孟子》「求放心」句的诠释"(2020)을 참조하라.</ref>. 만약 이 마음을 잘 수습하여 보존할 수 있다면 이미 70-80%는 (도리를) 이해한 것이다. 이와 같다면, 근본적인 지점(本領處)에서의 시비와 선악에 대한 이해가 이미 밝은 것이다. 오직 변칙적인 상황의 경우 대처하기 어려울 뿐이니, 그런 케이스들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명확한 도리 같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단지 (그 도리에 대하여) 배우는 이의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칠조개(漆雕開)가 '저는 이것을 아직 믿지 못하겠습니다'<ref>논어 5:5</ref>고 한 것과 같다.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하면 자연히 믿어진다. '대학'을 다 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역사서의 인물전기를 읽어보면 옛사람들이 변칙적인 사태에 대처한 것에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현저함을 볼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52 人之一心, 本自光明. 常提撕他起, 莫爲物欲所蔽, 便將這箇做本領, 然後去格物·致知. 如大學中條目, 便是材料. 聖人敎人, 將許多材料來修治平<ref>조선고사본에서는 '治平'를 '持'로 적었다.</ref>此心, 令常常光明耳. <按:“修治”字疑.> 伊川云: “我使他思時便思, 如此方好". 倘臨事不醒, 只爭一晌時, 便爲他引去. 且如我兩眼光𪰻𪰻, 又白日裏在大路上行, 如何會被別人引去草中! 只是我自昏睡, 或暗地裏行, 便被別人胡亂引去耳. 但只要自家常醒得他做主宰, 出乎萬物之上, 物來便應. 易理會底, 便理會得; 難理會底, 思量久之也理會得. 若難理會底便理會不得, 是此心尙昏未明, 便用提醒他. 驤<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ref>(60·65때). '''사람의 마음은 본래 광명하다. 항상 그것을 일깨워(提撕) 물욕에 가리지 않도록 하여 이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은 후에 격물과 치지를 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의 조목들은 재료이다. 성인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이 마음을 평안히 다스려(修治平) 항상 빛나게 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여정덕의 안(按):“수치(修治)”두 글자는 의심스럽다>.<ref>이부분의 교감은 의견이 갈린다. 현행본의 편자인 여정덕은 이 두 글자를 빼고 '평(平)' 하나만 남기는 쪽을 추천했다. 홍계희가 편집한 조선정판본은 '평(平)'을 작은 글자로 썼다. 이 경우 '평'은 그 바로 앞의 '치(治)'를 평성(平聲)으로 읽으라는 음주(音注)가 된다. 이의철의 고문해의는 조선정판본의 교감을 비판하였으나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주자어류휘교 쪽은 성화본을 추종하여 '평'을 주석으로 보았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을 따라 '수치평'을 '수지(修持)'로 바꿔서 해석했다. 어느쪽이 옳은지 알 수 없기에 여기서는 우선 저본 그대로 글자를 하나하나 풀어두었다.</ref> 이천(伊川)이 말하길, '내가 내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였을 때 (내 마음이) 생각을 하는 것, 이렇게 되어야 좋다'<ref>이정유서 18:85. 이정유서와 비교해보면 글자에 다소 출입이 있다. 정이는 여기서 나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상태와 내 통제에 따라 마음이 활발히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안히 안정되기도 하는 상태를 비교하고 있다.</ref> 사태에 임하여 일을 처리할 적에 깨어있지 않으면 순식간에(只爭一晌時)<ref>晌은 수량사이다.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爭은 다투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어 = 순식간에.</ref> 저쪽에게 이끌려가버린다.<ref>내가 사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나를 다루게 된다는 뜻이다.</ref> 예컨대 내가 두 눈을 부릅떠 안광이 번쩍번쩍하고 더군다나 백주대낮에 큰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풀숲으로 끌고갈 수 있겠나? 나 자신도 혼침하고 또 어두운 곳을 가고 있으면 남에게 아무렇게나 끌려 가버리고 만다. 그저 스스로 늘 자기 마음을 깨워서 관리자[主宰]로 삼아, 만물의 바깥에 있으면서 사물이 오면 바로 대응하도록 할 뿐이다. 헤아리기 쉬운 것은 바로 헤아릴 수 있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도 심사숙고하면 헤아릴 수 있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헤아릴 수 없다면 이는 이 마음이 아직 어두워 밝지 못해서이니 그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양(驤)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  15:53 問“致知在格物”. '''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에 관한 질문. 曰: “知者, 吾自有此知. 此心虛明廣大, 無所不知, 要當極其至耳. 今學者豈無一斑半點, 只是爲利欲所昏, 不曾致其知. 孟子所謂四端, 此四者在人心, 發見於外. 吾友還曾平日的見其有此心, 須是見得分明, 則知可致. 今有此心而不能致, 臨事則昏惑, 有事則膠擾, 百種病根皆自此生.” '''대답: 지(知)란, 우리에게 본래 이 앎<ref>도덕적인 앎을 말한다.</ref>이 있다. 우리 마음은 허명(虛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할 뿐이다.<ref>'요당(要當)'은 '...해야한다.'</ref> 오늘날 배우는 이에게 어찌 한 조각의(一斑半點) 앎도 없겠나? 단지 이익과 욕심에 가려져서 그 앎을 지극히한 적이 없을 뿐이다. 맹자가 이른바 사단(四端)이란, 이 네 가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서 밖으로 발현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吾友)<ref>주희는 종종 제자들을 이렇게 불렀다.</ref>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본[的見] 적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분명히 보아야만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마음이 있는데도 (앎을) 지극히하지 못하면 일을 처리할 때는 흐리멍텅하고 큰 사건이 생기면 허둥지둥한다. 온갖 병의 뿌리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 又問: “凡日用之間作事接人, 皆是格物窮理?” '''재질문: 일상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모두 격물궁리입니까? 曰: “亦須知得要本. 若不知得, 只是作事, 只是接人, 何處爲窮理!” '''대답: 역시 핵심(要本)을 알아야 한다. 핵심을 알지 못하면 그냥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 것일 뿐이다. 대체 어디가 궁리가 되겠나?''' *  15:54 致知分數多. 如博學·審問·愼思·明辨, 四者皆致知, 只力行一件是行. 言致, 言格, 是要見得到盡處. 若理有未格處, 是於知之之體尙有未盡. 格物不獨是仁孝慈敬信五者, 此只是大約說耳. 且如說父子, 須更有母在, 更有夫婦在. 凡萬物萬事之理皆要窮. 但窮到底, 無復餘蘊, 方是格物. 大雅(49이후). ''' '치지'는 비중(分數)이 크다. 예를 들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이 네 가지 모두 치지이며, 역행(力行) 하나만 행(行)에 관한 것이다.<ref>중용 제 20장에 나오는 공부의 다섯 항목이다. 앞의 네 가지(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고)는 모두 이지적인 행위, 역행 하나만 몸소 실천하는 행위이다. 굳이 계산하자면 '치지'가 전체 공부의 80%를 차지하는 셈이다.</ref> '지극히하다(致)'니 '탐구하다(格)'니 하는 것은 끝까지[盡處]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치에 대항여 (끝까지) 탐구하지(格) 못한 점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의 본질(知之之體)에 있어 미진함이 있는 것이다. 격물은 인(仁), 효(孝), 자(慈), 경(敬), 신(信) 다섯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ref>대학 전3장에서 열거한 다섯 덕목이다.</ref> 이는 대략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부자(父子)'라고 말하면 그 안에는 필시 어머니도 포함되고 부부도 포함된다.<ref>부친과 아들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는(e.g. 부자유친) 모친과 자녀, 부친과 모친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도 포함한다는 뜻이다.</ref> 무릇 모든 사태와 사물의 이치는 모조리 탐구해야(窮) 한다. 바닥까지 파고들어(窮) 남은 것이 없어야만 '격물(格物)'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55 致知·格物, 便是“志於道”. “據於德”, 卻是討得箇匡格子. 義剛(64이후). ''' 치지와 격물은 바로 '도에 뜻을 두었다'이다. '덕을 굳게 지켰다'<ref>이상 논어 7:6.</ref>는 테두리(匡格子)<ref>일역판에서는 광격(匡格)을 광곽(匡郭)과 같은 것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현대중국어에서 광격(框格)이 네모난 프레임, 격자 등을 의미하므로 광격자는 그냥 그대로 테두리나 프레임 정도로 풀이하면 된다. '격(格)'을 '곽(郭)'으로 바꿔서 풀이하는 것은 지나치다.</ref>를 마련한(討得)<ref>토(討)는 물건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올 수도 있고 어디서 주워올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없던 것을 찾아서 가져왔으면 모두 '토'이다. 14:161을 참조하라.</ref> 것이다.<ref>덕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택할 수 있는 행위의 선택지들 가운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한 후 해야 할 것의 영역 안에 꾸준히 머무르며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테두리'로 비유한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6 格物·致知, 是極粗底事; “天命之謂性”, 是極精底事. 但致知·格物, 便是那“天命之謂性”底事. 下等事, 便是上等工夫. 義剛(64이후). '''격물과 치지는 매우 거친 일이고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는 것은 매우 정밀한 일이다.<ref>거친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 일상의 공간에 속한다는 뜻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질료적 감각이 없는 형이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ref> 그러나 치지와 격물이 곧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의 일이다. 하등의 일이 곧 상등의 공부(工夫)이다.<ref>형이하의 세계를 관찰하고 파고들어 그것에 내재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그러므로 하등의 세계에서 상등의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7 曹又問致知·格物. '''조(曹)<ref>아마도 조숙원(曹叔遠)인 듯하다. 자는 기원(器遠).</ref>가 다시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此心愛物, 是我之仁; 此心要愛物, 是我之義; 若能分別此事之是, 此事之非, 是我之智; 若能別尊卑上下之分, 是我之禮. 以至於萬物萬事<ref>조선고사본에서는 '萬事'가 없다.</ref>, 皆不出此四箇道理. 其實只是一箇心, 一箇根柢出來抽枝長葉.”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이 대상(物)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인(仁)이고, 이 마음이 대상을 사랑해야만 한다 것은 나의 의(義)이다. 만약 이 일은 옳고 이 일은 그르다고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지(智)이다. 만약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분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예(禮)이다. 모든 사태와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네 가지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저 이 한 마음일 뿐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가지가 뻗고 잎이 자라는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5:58 蔣端夫問: “‘致知在格物.’ 胸中有見, 然後於理無不見.” '''장단부(蔣端夫)<ref>인적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61:81에도 등장한다.</ref>의 질문: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의 경우, (먼저) 가슴 속에 본 것이 있은 후에야 보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됩니다. 曰: “胸中如何便有所見? 譬如嬰兒學行, 今日學步, 明日又步, 積習旣久, 方能行. 天地萬物莫不有理. 手有手之理, 足有足之理, 手足若不擧行, 安能盡其理! 格物者, 欲究極其物之理, 使無不盡, 然後我之知無所不至. 物理卽道理, 天下初無二理.” 震(65때). '''대답: 가슴 속에 어떻게 바로 본 것이 있게 되는가? 아기가 걷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오늘 걸음을 배우고 내일 또 걸어서 습관이 오래 쌓인 후에야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천지 만물에는 이치 없는 것이 없다. 손에는 손의 이치가 있고, 발에는 발의 이치가 있다.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치를 다할 수 있겠나! 격물이란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남김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나의 앎이 다다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사물의 이치(物理)가 바로 도덕적 이치(道理)이니, 천하에 애초에 두 가지 이치가 없다.<ref>물리와 도리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각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다.</ref>''' 진(震)의 기록. (65세) *  15:59 問: “知至·意誠, 求知之道, 必須存神索至, 不思則不得誠. 是否?” '''질문: '지지(知至)'와 '의성(意誠)'<ref>팔조목 가운데 치지와 성의를 수련한 결과를 말한다. 앎을 지극히 하는 공부를 하여 앎이 지극해진 상태,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하여 의지가 진실해진 상태이다. 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의 경우, 앎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정신을 보존하여 지극한 지점을 찾아야 하고(存神索至)<ref>양웅의 법언(法言) 문신(問神)편의 한 구절이다. 색(索)은 수색하다, 지(至)는 지극한 지점이다.</ref>, 사려하지(思) 않으면 진실해질 수 없습니다. 맞습니까? 曰: “致知·格物, 亦何消如此說. 所謂格物, 只是眼前處置事物, 酌其輕重, 究極其當處, 便是, 亦安用存神索至! 只如吾胸中所見, 一物有十分道理, 若只見三二分, 便是見不盡. 須是推來推去, 要見盡十分, 方是格物. 旣見盡十分, 便是知止<ref>조선정판본에서는 '止'를 '至'로 썼다.</ref>.” 震(65때). '''대답: 치지와 격물을 어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겠나. 이른바 격물이란 단지 눈앞에서 사태와 사물을 처리하면서 각각의 경중을 따져 각각의 마땅한 지점이 어디인지 깊이 탐구하는 것일 뿐이다. '존신색지(存神索至)'를 또 어디다 쓰겠는가? 예를 들어 자기 가슴 속에서 이해한 것으로 말하자면, 한 사물에 100%의 이치가 있는데 그 중 20~30%를 이해했을 뿐이라면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꾸준히 밀고 나가서 100%를 모두 이해해야 비로소 격물이다. 100%를 모두 이해하고 나면 '멈추어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안(知止)' 것<ref>조선정판본을 따르자면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知至)'이다. 애초에 질문자의 질문이 지지(知至)였음을 감안하면 조선정판본의 기록도 말이 된다.</ref>이다.''' 진(震)의 기록. (65세) *  15:60 或問: “致知須要誠. 旣是誠了, 如何又說誠意?" <ref>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는 이 자리에 '왈(曰)'자가 있어서 여기서부터 주희의 대답임을 표시하였다. 지록에서는 '왈' 대신 '선생운(先生云)'이라고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치지(致知)'를 하려면 진실해야(誠)합니다. 그런데, 이미 (치지의 과정에서) 진실해졌는데 왜 다시 '성의(誠意)'를 말합니까? "致知上本無‘誠’字, 如何强安排‘誠’字在上面說? 爲學之始, 須在致知. 不致其知, 如何知得! 欲致其知, 須是格物. 格物云者, 要窮到九分九釐以上, 方是格.” 謙(65때). '''(대답): (대학에서) '치지' 앞에는 본래 '성(誠)'자가 없는데 어째서 억지로 '성'자를 앞에다 배치하고 말하는가? 배움의 시작은 반드시 치지에 달려있다. 그 앎을 지극히하지(致其知) 못하면 어떻게 (도리를) 알 수 있겠나(知得)? 앎을 지극히하려면 반드시 격물해야 한다. 격물이란, (도리를) 99%<ref>'구분구리(九分九釐)'의 분과 리는 오늘날 '할푼리'라고 할 때의 푼과 리이다. 오늘날은 할이 1/10, 푼이 1/100, 리가 1/1000이지만 주희 당시에는 푼이 1/10, 리가 1/100이었다.</ref>이상 탐구해내야만 비로소 '격'이다. 겸(謙)의 기록. (65세) *  15:61 若不格物·致知, 那箇誠意·正心, 方是捺在這裏, 不是自然. 若是格物·致知, 便自然不用强捺. '''격물치지(格物致知)하지 않으면 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은 이 안쪽에[在這裏]<ref>어류의 많은 조목들에서 '在這裏'는 '이 안쪽', '내면' 등을 의미한다. 일역판은 미우라 쿠니오의 선행연구에 따라 이 표현을 단순한 강조표현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ref> 억지로 눌러두는(捺) 것이니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격물치지하면 자연히 억지로 누를 필요가 없다.'''<ref>예컨대,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도리의 경우, 왜 사랑해야 하는지 알아야(격물치지)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중단없이(성의정심)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어떠한 도리를 열심히 실천하려고만 한다면(격물치지 없는 성의정심) 이는 '억지로 눌러두는' 것에 불과하다.</ref> *  15:62 元昭問: “致知·格物, 只作窮理說?” '''원소(元昭)<ref>서림(徐琳)의 자(字)이다.</ref>의 질문: 치지와 격물을 그저 '이치를 탐구한다(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曰: “不是只作窮理說. 格物, 所以窮理.” '''대답: 궁리(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궁리의 방법(所以)이다.<ref>격물은 구체적인 사태나 사물에 1)접근해서 2)자세히 관찰하며 생각하고 3)그러다 이치를 발견하고 4)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발견의 수준을 고도화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궁리(=이치를 탐구함)는 2번에서 4번까지의 의미로 쓰일 뿐 1번의 뉘앙스는 거의 없다. 주희는 '격물'이라는 말을 다소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한다. 1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4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고 3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1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는 식이다. 이 조목에서는 격물을 1번 뜻으로 사용했지만 15:59나 15:60에서는 4번 뜻을 강조하고 있다.</ref>''' 又問: “格物是格物與人. 知物與人之異, 然後可作工夫<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此意頗切當)'가 더 있다.</ref>.” '''재질문: 격물이란 사물과 사람을 '격'하는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의 차이를 알고 나서야 힘써 노력(工夫)할 수 있습니다.<ref>격물을 1번~2번 정도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ref><ref>조선고사본을 따르자면 이 단락 전부가 인용이며 마지막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라고 평가하는 형태가 된다.</ref>''' 曰: “若作致知在格物論, 只是胡說! 旣知人與物異後, 待作甚合殺? 格物, 是格盡此物. 如有一物, 凡十瓣, 已知五瓣, 尙有五瓣未知, 是爲不盡. 如一鏡焉, 一半明, 一半暗, 是一半不盡. 格盡物理, 則知盡. 如元昭所云, 物格·知至當如何說?” '''대답: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 (는 대학의 원문)으로 논하자면, (방금 자네의 말은) 그저 헛소리(胡說)일 뿐이다. 사람과 사물이 다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장차(待) 어떻게(作甚) 마무리하려(合殺) 하는가?<ref>고문해의의 해석을 따랐다. 원소가 격물과 궁리(=치지)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게 설정한 것에 화가 난 주희가 '그런 식으로는 치지가 격물에 달려있다는 경문을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는 장차, '작심'은 어떻게, '합살'은 매조지함이다. 합살은 본래 악곡의 연주를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39:2에서 '如何合殺'이라고 말한 부분을 참조하라.</ref> 격물이란 이 사물을 남김없이 '격'하는 것이다.<ref>격물을 4번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ref>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 모두 열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조각은 알았지만 나머지 다섯 조각은 아직 알지 못한다면 이는 남김없이 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거울이 있는데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면 이는 절반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완전히 '격'하면 앎은 남김 없이 완전해진다. 자네(元昭)의 말과 같다면 '사물을 다 탐구한 뒤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知至)'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ref>직전 질문에서 원소는 '격'을 1~2번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물을 모두 '격'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앎이 지극해지지는 않는다. 주희는 격물을 4번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대학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격물의 완료가 곧바로 앎의 지극함을 의미한다.</ref>''' 子上問: “向見先生答江德功書如此說.” '''나(子上)<ref>정가학(鄭可學)의 자이다. 조선고사본에 따라 본 조목의 기록자를 정가학으로 간주하고 이와 같이 번역했다.</ref>의 질문: 전에 선생님께서 강덕공(江德功)<ref>강묵(江默).</ref>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ref>회암집 권 44의 답강덕공 제 2서를 말한다. 此所謂‘格物而至於物, 則物理盡’者也. 物理皆盡, 則吾之知識廓然貫通, 無有蔽礙, 而意無不誠, 心無不正矣. 此大學本經之意, 而程子之說然也. 其宏綱實用, 固已洞然無可疑者 : 而微細之間, 主賓次第․文義訓詁詳密精當, 亦無一毫之不合. 今不深考, 而必欲訓致知以․窮理’, 則於主賓之分有所末安 : 知者吾心之知, 理者事物之理. 以此知彼, 自有主賓之辨, 不當以此字訓彼字也. 訓格物以‘接物’, 則於究極之功有所未明. 人莫不與物接, 但或徒接而不求其理, 或粗求而不究其極, 是以雖與物接, 而不熊知其理之所以然與其所當然也. 今曰一與物接而理無不窮, 則亦太輕易矣. 蓋特出於聞聲悟道․見色明心之餘論, 而非吾之所謂窮理者, 固未可同年而語也. 且考之他書, ‘格’字亦無訓‘接’者. 以義理言之則不通, 以訓詁考之則不合, 以功用求之則又無可下手之實地, 竊意聖人之言必不如是之差殊疎略, 以病後世之學者也.</ref> 曰: “渠如何說, 已忘卻.” '''대답: 그가 뭐라고 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子上云: “渠作接物.” '''내(子上)가 말함: 그는 (격물을) '접물(接物)'로 풀었습니다.<ref>격물을 1번 뜻으로 푼 것이다.</ref> 曰: “又更錯.”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기록자를 '可學'으로 적시하고 있다.</ref> '''대답: 더더욱 틀렸구나. *  15:63 陳<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글자가 없다.</ref>問: “大學次序, 在聖人言之, 合下便都能如此, 還亦須從致知格物做起? 但他義理昭明, 做得來恐易<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耶'가 더 있다.</ref>.” '''진(陳)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 순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시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그래도 성인은 의리(義理)에 매우 밝으니 (격물치지)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曰: “也如此學. 只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易'이 더 있다.</ref>聖人合下體段已具<ref>조선고사본은 '具'를 '其'로 썼다.</ref>, 義理都曉得, 略略恁地<ref>조선고사본은 '略略恁地'가 없고 '但'이 있다.</ref>勘驗一過. 其實大本處都盡了, 不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用'을 '要'로 썼다.</ref>學, 只是學那沒<ref>조선고사본에서는 '沒'을 '不'로 썼다.</ref>緊要底. 如中庸言: ‘及其至也, 雖聖人有所不知不能焉.’ 人多以至爲道之精妙處. 若是道之精妙處有所不知不能, 便與庸人無異, 何足以爲聖人! 這至, 只是道之盡處, 所不知不能, 是沒緊要底事. 他大本大根元無欠闕, 只是古今事變, 禮樂制度, 便也須學.” 寅. <ref>기록자명의 경우 조선고사본은 淳, 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㝢',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寅'이다.</ref> '''대답: (성인) 역시 그렇게 배운다. 다만 성인은 애초에 뼈대(體段)<ref>디테일은 몰라도 구조적 측면에서는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비근한 번역어는 아마도 '와꾸'일 것이다.</ref>가 이미 갖춰져 있고 의리(義理)에도 모두 밝으니 대략적으로 그렇게 한 번 점검해보는 것이다. 사실, 큰 근본이 이미 다 되었으므로 더 배울 필요가 없다. 그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는 것 뿐이다. '중용'에서 말하길,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ref>중용 제12장.</ref>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부분'을 도(道)의 정묘(精妙)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도의 정묘한 지점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지극한 부분'은 단지 도를 남김없이 다 한 지점이요,<ref>주희는 이 '지극'을 문제의 핵심부나 산의 정상처럼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나중에 나오는 물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것들로 파악했다. 63:60을 참조하라.</ref>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일 뿐이다. 성인은 큰 근본과 뿌리에서는 부족함이 없으나, 고금(古今)의 사변(事變), 예악제도(禮樂制度)는 역시 배워야 한다.''' 인(寅)의 기록. *  15:64 子善問物格. '''자선(子善)<ref>반시거의 자(字)이다.</ref>이 '물격(物格)'<ref>격물이 완성된 결과가 물격이다.</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物格是要得外面無不盡, 裏面亦淸徹無不盡, 方是不走作.” 恪(64때). <以下物格.>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 여정덕이 붙인 주석일 것이다. 조선정판본에서는 물격을 '격물(格物)'이라고 적고 있어 다른 모든 판본과 다르다.</ref> '''대답: 사물이 '격'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바깥쪽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안쪽으로도 역시 맑고 투명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여야 비로소 (마음이) 달아나지 않게 된다.<ref>바깥쪽, 안쪽, 달아남 등의 키워드는 15:28, 66, 67, 69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15:66을 참고하라.</ref> 각(恪)의 기록. (64세) <以下物格.> '''<이 아래로 물격(物格)에 관한 조목들> *  15:65 上而無極·太極, 下而至於一草·一木·一昆蟲之微, 亦各有理. 一書不讀, 則闕了一書道理; 一事不窮, 則闕了一事道理; 一物不格, 則闕了一物道理. 須著逐一件與他理會過. 道夫(60이후). '''위로는 무극(無極)인 태극(太極)<ref>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첫 구문이다. 주희는 이 부분을 '극 없는 위대한 극'으로 풀었다. 태극은 세계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이치(理)인데, 그것이 이치라는 것은 형체와 질감 없이 순전히 이론적인 존재, 곧 형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태극의 이러한 형이상자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로 '무극'이다. 주희의 태극론에 관해서는 주광호(2020) 제 13장을 참조하라.</ref>에서부터 아래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미미한 곤충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이치가 있다. 책 한 권을 읽지 않으면 책 한 권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고, 사태 하나를 파고들지(窮) 않으면 사태 하나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며, 사물 하나를 탐구하지(格)하지 않으면 사물 하나어치의 도리를 결여하게 된다. 반드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헤아려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66 叔文問: “格物莫須用合內外否?” '''숙문(叔文)의 질문: 격물 공부는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ref>이치를 알고자하는 '안쪽'의 노력(즉, 인식)과 여러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려는 '바깥쪽'의 노력(즉, 실천) 양쪽이 모두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15:28, 15:69를 참조하라. 아래 15:67도 같은 내용이다. '안쪽과 바깥쪽의 합일(合內外)'이라는 표현은 이정유서 11:18이 유명하다. '경건함으로 안쪽을 곧게하고 의로움으로 바깥쪽을 바르게 하니 안쪽과 바깥쪽을 합일하는 도리이다(敬以直內, 義以方外, 合內外之道也.)' </ref> 曰: “不須恁地說. 物格後, 他內外自然合. 蓋天下之事, 皆謂之物, 而物之所在, 莫不有理. 且如草木禽獸, 雖是至微至賤, 亦皆有理. 如所謂‘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自家知得這箇道理, 處之而各得其當便是. 且如鳥獸之情, 莫不好生而惡殺, 自家知得是恁地, 便須‘見其生不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方是. 要之, 今且自近以及遠, 由粗以至精.” 道夫(60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사물이 '격'되고 나면 안쪽과 바깥쪽은 자연히 합치한다. 대개 천하의 모든 사태를 통틀어 '사물(物)'이라고 부르는데, 사물이 있는 곳에 이치가 없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초목과 금수는 비록 지극히 미미하고 천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모두 이치가 있다. 예를 들어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ref>산의 남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ref>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ref>산의 북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ref>을 벤다'<ref>주례(周禮) 지관(地官) 산우(山虞)</ref>는 말 처럼, 자신이 이러저러한 도리를 알고서 각각의 사물을 처리하기를 각자에게 적합하고 알맞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본능적으로(情) 모두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자신이 (동물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ref>이것이 안쪽이고 가까운 곳이고 거친 것이다.</ref>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해야'<ref>이것이 바깥쪽이고 먼 곳이고 정밀한 것이다. 출전은 맹자 1A:7</ref> 한다. 요컨대, 이제 가까운 데에서부터 먼 곳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정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ref>이치를 알고자하는 노력의 끝에 이치를 알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치에 맞게 사태에 대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안쪽'은 독립변수, '바깥쪽'은 종속변수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寓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우(寓)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67 問: “格物須合內外始得?” '''질문: 격물은 반드시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해야만 합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주광호(2020, 482)도 이 부분을 번역하고 유려하게 해설하고 있으니 참고하라.</ref> 曰: “他內外未嘗不合. 自家知得物之理如此, 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 便見合內外之理. 目前事事物物, 皆有至理. 如一草一木, 一禽一獸, 皆有理. 草木春生秋殺, 好生惡死. ‘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皆是順陰陽道理. <砥錄作“皆是自然底道理”.> 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 ‘見生不忍見死, 聞聲不忍食肉’, 非其時不伐一木, 不殺一獸, ‘不殺胎, 不殀夭, 不覆巢’, 此便是合內外之理.” 㝢(61이후). '''대답: 안쪽과 바깥쪽은 애초에 합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자기 스스로 이 사물의 이치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면 그 이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사물에) 대응하게 되니, (이렇게 되었을 때 여기서 우리는)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를 보게 된다. 눈앞의 사태와 사물에는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에도 모두 이치가 있다. 초목은 봄에 나고 가을에 죽으며, (금수는)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을 베는'<ref>직전 조목 참조.</ref> 것은 모두 음양의 도리를 따른 것이다.<지(砥)의 기록에서는 "모두 자연스러운 도리이다."> 자기 스스로 만물이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아 한 몸임을(均氣同體),<ref>여대림(呂大臨)이 극기명(克己銘)에서 만물일체를 주장한 부분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비록 상호 독립된 개체인 것처럼 보여도 그 구성물질은 모두 우주로부터 골고루 나누어받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실은 한 몸(同體)이다.</ref> 알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ref>직전 조목 참조. 글자에는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하고, 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짐승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며, '새끼를 밴 것을 죽이지 않으며, 어린 개체를 죽이지 않으며, 둥지를 뒤엎지 않는다'.<ref>예기 왕제</ref> 이것이 바로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砥錄略.> '''<지(砥)의 기록은 생략한다.> *  15:68 “知至, 謂天下事物之理知無不到之謂. 若知一而不知二, 知大而不知細, 知高遠而不知幽深, 皆非知之至也. 要須四至八到, 無所不知, 乃謂至耳.” '''지지(知至)란 천하의 사태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나의 앎이 이르지(到) 않은 경우가 없음을 말한다. 만약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고, 큰 것은 알지만 작은 것은 모르고, 고원(高遠)한 것은 알지만 심오한(幽深) 것은 모른다면, 이는 모두 '앎이 이른(知之至)'<ref>지지(知至)의 지(至)는 '지극하다'라고도 풀지만 '이르렀다'고도 풀이한다. 지극(至極)이라는 말부터가 극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니 사실 '지극하다'와 '이르렀다'는 서로 통한다. 본고에서는 문맥에 따라 두 번역어를 바꿔 쓰고 있다.</ref>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방팔방에 두루 이르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르렀다(=지극해졌다)'고 할 수 있다. 因指燈曰: “亦如燈燭在此, 而光照一室之內, 未嘗有一些不到也.” 履孫(65때). 이어서 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 등불이 여기 있으면서 그 빛이 실내 전체를 밝혀서 그 빛이 이르지(到) 않는 곳이 조금도 없는 것과 같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以下知至.> '''<이 아래로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69 知至, 謂如親其所親, 長其所長, 而不能推之天下, 則是不能盡之於外; 欲親其所親, 欲長其所長, 而自家裏面有所不到, 則是不能盡之於內. 須是其外無不周, 內無不具, 方是知至. 履孫(65때). '''지지(知至)로 말하자면, 어버이를 친애하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되<ref>맹자 4A:11</ref> 그것을 미루어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바깥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어버이를 친애하고 싶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고 싶은데 자기 안에서 (지극한 데까지)도달하지 못한 바가 있으면 이는 안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바깥쪽으로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안쪽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지지(知至)이다.<ref>안쪽과 바깥쪽에 관해서는 앞선 15:66과 67을 참조하라.</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70 子升問: “知止便是知至否?” '''자승의 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가 곧 '앎이 지극해졌다(知至)' 아닙니까? 曰: “知止就事上說, 知至就心上說. 知止, 知事之所當止; 知至, 則心之知識無不盡.” 木之(68때). '''대답: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지지(知止)는 각각의 사태에 있어서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아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에 미진한 데가 없는 것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5:71 知止, 就事上說; 知至, 就心上說, 擧其重而言. 閎祖(59이후).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각자 더 중점을 둔 부분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ref>직전 15:70을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72 問: “‘致知’之‘致’, ‘知至’之‘至’, 有何分別?” '''질문: '치지(致知)'의 '치'와 '지지(知至)'의 '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ref>대학의 본문을 보면 팔조목을 순서대로 나열한 후 그것을 도치시켜서 역순으로 나열한다. 예컨대 격물(格物)에 대해서는 물격(物格)이라고 하고 성의(誠意)에 대해서는 의성(意誠)이라고 하는 식이다. 유독 치지(致知)만 지치(知致)가 아니라 지지(知至)라고 적혀있다.</ref> 曰: “上一‘致’字, 是推致, 方爲也. 下一‘至’字, 是已至.” <先著“至”字, 旁著“人”字, 爲“致”. 是人從旁推至.> 節(64이후). '''대답: 위의 '치(致)'자는 밀고 나가는(推致) 것이니 곧 (어떤) 행위(爲)이다. 아래의 '지(至)'자는 이미 도달한(至) 것이다. <먼저 '지(至)'자를 쓰고 옆에 '인(人)'자를 쓰면 '치(致)'자가 된다. 옆에서 사람이 미는 것이다.><ref>이 파자해는 무척 이상하다. 우선 치(致)의 우변이 인(人)이라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에게 어떤 근거가 있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73 格物, 只是就事上理會; 知至, 便是此心透徹. 廣(65이후). '''격물(格物)은 실제 사태에서 헤아리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이 마음이 완전히 투명한 것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5:74 格物, 便是下手處; 知至, 是知得也. 德明(44이후). '''격물은 (공부에) 착수하는 곳이고, 지지(知至)는 (공부의 결과) 앎을 이룬 것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75 致知未至, 譬如一箇鐵片, 亦割得物事, 只是不如磨得芒刃十分利了, 一鍤便破. 若知得切了, 事事物物至面前, 莫不迎刃而解. 賀孫(62이후). '''치지(致知) 공부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未至) 것은, 비유하자면, 쇠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물건을 자를 수야 있겠지만 100% 예리하게 갈아낸 날카로운 칼날(芒刃)이 단번에 (물건을) 파괴하는 것만은 못하다. 앎이 절실해지고나면 온갖 사태와 사물이 면전에 도달하자마자 모조리 포정(庖丁)의 칼에 닿은 소고기처럼 해체되어버린다(迎刃而解).<ref>14:80 참조.</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6 未知得至時, 一似捕龍蛇, 捉虎豹相似. 到知得至了, 卻恁地平平做將去, 然節次自有許多工夫. 到後來絜矩, 雖是自家所爲, 皆足以興起斯民. 又須是以天下之心審自家之心, 以自家之心審天下之心, 使之上下四面都平均齊一而後可. 賀孫(62이후).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知至) 못했을 때는 마치 용과 뱀과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는 것 같다가도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오히려 이렇게 평이하게 해 나가게 된다.<ref>고수나 달인의 도드라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일을 숨쉬듯이 평이하게 해낸다는 것이다. 온갖 애를 써가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괴인들보다 평범하게 주먹 한 번 휙 휘두르는 사이타마가 훨씬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 '원펀맨'의 장면들이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간의 훈련을 거치고 나온 손오공과 손오반이 초사이어인 상태를 평이하고 차분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묘사한 '드래곤볼'을 참조하라.</ref> 하지만 그 중간 단계들에는 자연히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나중에 혈구(絜矩) 부분에 이르면<ref>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f>, 비록 자기 한 사람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백성들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다.<ref>전 10장. 윗사람이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고 그 도덕성이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아랫사람들 역시 윗사람과 똑같은 심사를 가진 사람이니만큼 금방 그것을 따라하여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 노인을 잘 모시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효심이 흥하고 ......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마음이 흥한다.'</ref> 또, 천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의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살펴서 상하사방이 모두 고르고 균일하게(平均齊一) 되어야만 한다.<ref>이 부분은 혈구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평균제일(平均齊一)'이라고 한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균질화라기보다는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간격이 균일해진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내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들면 나는 내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위에서 아래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아래' 각 마디가 모두 똑같이 '상호존중'이라는 동일한 간격으로 정렬될 것이다. 전 10장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7 鄭仲履問: “某觀大學知至, 見得是乾知道理.” '''정중리(鄭仲履)의 질문: 제가 '대학'의 지지(知至)를 살펴보고 건지(乾知)의 도리라고 이해했습니다.<ref>주역 계사상전 1의 '건이 (세상의) 큰 시작을 맡고 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乾知大始, 坤作成物)'를 말한다. 주희는 이 '지(知)'를 담당하고 주관한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여기서 정중리는 '알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듯하다. 74:21 참조.</ref> 曰: “何用說乾知! 只理會自家知底無不盡, 便了.” 蓋卿(65때). '''대답: '건지(乾知)'를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저 자신의 앎에 미진함이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78 知至, 如易所謂極深; ‘惟深也, 故能通天下之志’, 這一句略相似. 能慮, 便是硏幾; 如所謂‘惟幾也, 故能成天下之務’, 這一句卻相似. 蘷孫(68이후). '''지지(知至)<ref>조선정판본은 '지(至)'가 '지(止)'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주희는 여기서 주역 계사전의 '극심'과 '연기'라는 개념쌍을 대학의 '지지'와 '능려'라는 개념쌍과 비교하고 있는데 대학 본문의 체제상 '능려'와 짝이 되는 것은 '지지(知至)'가 아니라 '지지(知止)'이기 때문이다. 번역자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이 조목은 14:163과 사실상 같으니 함께 놓고 비교하는 것이 좋다.</ref>는 '역(易)'에서 이른바 극심(極深)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어류 14:146과 163을 참조하라.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ref>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천하 모든 것의 의지를 완전히 이해한다(通)'는 (계사전의) 구절과 대략 비슷하다. 능려(能慮)는 연기(硏幾)이다.<ref>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ref>'사태의 기미를 세밀하게 살폈(幾)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계사전) 구절과 비슷하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79 問: “定·靜·安·慮·得與知至·意誠·心正是兩事, 只要行之有先後. 據先生解安·定·慮·得與知至似一般, 如何?” '''질문: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ref>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알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定), 안정되면 조용해지고(靜), 조용해지면 편안해지고(安), 편안해지면 심사숙고할 수 있게 되고(慮), 심사숙고하면 실제로 그 최선의 지점을 찾아 머물게 된다(得). 대학 경문에서 '멈출 곳을 안(知止)' 다음 일어나는 일련의 연쇄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ref>과 지지(知至), 의성(意誠), 심정(心正)은 서로 별개의 일이고,<ref>팔조목의 과정이다. 대학 경문에서 묘사한 인식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팔조목에서 묘사한 과정이 서로 별개의 프로세스라는 말이다. 주희는 이 두 프로세스를 나란히 놓고 이쪽의 이 단계는 저쪽의 저 단계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5:139에서는 '앎이 지극해짐(知至)'까지가 경문의 '지지(知止)'에 해당하고 그 이후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여섯 조목은 경문의 정/정/안/려/득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14:174에서는 팔조목의 치지와 성의 사이에 정/정/안/려/득을 모두 배치했다. 14:157에서도 치지 뒤에 정/정/안/려/득을 배치했지만 성의가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ref> 단지 실천에 선후 순서가 필요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바에 따르면, 안, 정, 려, 득과 지지(知至)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ref>확신하기 어려우나 질문자는 정/정/안/려/득을 먼저 실천하고 성의/정심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ref> 曰: “前面只是大綱且如此說, 後面卻是學者用力處.” 去僞(46때). '''대답: 앞부분<ref>경문의 정정안려득 부분이다.</ref>은 단지 큰 얼개를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뒷부분<ref>팔조목 쪽이다.</ref>이 오히려 배우는 이가 힘써야 할 곳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5:80 致知, 不是知那人不知底道理, 只是人面前底. 且如義利兩件, 昨日雖看義當爲然, 而卻又說未做也無害; 見得利不可做, 卻又說做也無害; 這便是物未格, 知未至. 今日見得義當爲, 決爲之; 利不可做, 決定是不做, 心下自肯自信得及, 這便是物格, 便是知得至了. 此等說話, 爲無恁地言語, 冊子上寫不得. 似恁地說出, 卻較見分曉. 植(64때). '''치지(致知)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도리를 알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 면전에 있는 것(을 알라는 것)뿐이다. 의(義)와 리(利) 두 가지를 예로 들자면, 어제는 비록 정의(義)를 마땅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오히려 다시 '아직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사리사욕(利)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서도 오히려 다시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이는 사물(物)을 아직 끝까지 탐구(格)하지 못했고, 앎(知)이 아직 지극해지지(至) 못한 것이다. 오늘 정의를 마땅히 실천해야 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그렇게 실천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추구하지 않아서 마음 속에서 기꺼이 스스로 믿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사물이 끝까지 탐구된(格) 것이요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학 본문에) 이런 말이 없기 때문에 책에는(冊子)<ref>대학장구 혹은 대학혹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 쓸 수 없었다.<ref>이 부분은 지시대명사가 많아서 직역만으로는 뜻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책자'를 주희 본인의 주석서로 본 것은 번역자의 추측이다.</ref> 이런식으로 설명하면 비교적 분명하게 이해되는 것 같다.<ref>이 조목의 대의는 28:19와 흡사하다.</ref> 식(植)의 기록. <以下物格·知至.> '''<이 아래로는 물격(物格),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81 問: “格物·窮理之初, 事事物物也要見到那裏了?” '''질문:'격물(格物)'과 '궁리(窮理)'의 초기단계에서 모든 사태와 사물을 그런 수준까지(那裏)<ref>후술하겠지만, 이치를 100% 이해하여 의심이 없는 수준을 말한다</ref> 보아야합니까? 曰: “固是要見到那裏. 然也約摸是見得, 直到物格·知至, 那時方信得及.” 㝢(61이후). '''대답: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수준까지 보아야 한다. 하지만 (초기단계에는 먼저) 큰 틀(約摸)을 보고, 물격(物格)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비로소 (이치를) 믿을 수 있게 된다.<ref>28:25의 말미가 이 조목과 일치한다. 28:25는 논어 5:5의 해석에 관한 문답이다.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게 하였는데 칠조개가 '저는 아직 이것에 대해 아직 믿지 못합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답하니 공자가 기뻐한다. 여기서 '믿음'은 이치(理)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앎이 지극(知至)해지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면 이치를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82 守約問: “物格·知至, 到曾子悟忠恕於一唯處, 方是知得至否?” '''수약(守約)<ref>이굉조의 자가 수약이다.</ref>의 질문: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증자가 '예(唯)'라는 한 마디로 충서(忠恕)를 깨달은 정도에 이르러야<ref>논어 4:15</ref> 비로소 앎이 지극해지는 것(知至) 아닙니까? 曰: “亦是如此. 只是就小處一事一物上理會得到, 亦是知至.” 賀孫(62이후). '''대답: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일사일물처럼 작은 곳에 나아가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역시 지지(知至)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83 或問: “‘物格而后知至’一句, 或謂'物格而知便至'. 如此, 則與下文‘而后’之例不同.”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而后知至)'는 구절에서, 어떤 이는 '사물이 탐구되면 앎은 곧 지극해진다(物格而知便至)'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아래 문장에서 '이후에(而后)'를 반복하는 체제와 일관되지 않습니다.<ref>대학 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후에'를 반복하고 있다.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 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 의성이후심정(意誠而后心正) 심정이후신수(心正而后身修) 신수이후가제(身修而后家齊) 가제이후국치(家齊而后國治) 국치이후천하평(國治而后天下平). '이후에'라고하면 앞 단계와 뒷 단계의 선후가 명확하다. 먼저 앞 단계를 마치고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면 곧'이라고 쓰면 앞 단계가 완료됨과 동시에 뒷단계도 완료되므로 전자와 후자는 선후관계가 아니게 된다.</ref> 曰: “看他文勢, 只合與下文一般說. 但且謂之物格, 則不害其爲一事一物在. 到知, 則雖萬物亦只是一箇知. 故必理無不窮, 然後知方可盡. 今或問中卻少了他這意思.” '''대답: 대학의 문장의 흐름을 보면 아래쪽 문장들과 일치하도록 ('이후에'라고) 말해야 한다. 다만 사물이 탐구되었다고(格) 한다면 (탐구된 것이) 한 가지 사태나 한 가지 사물에 그쳐도 된다. '앎'의 경우, 사물이 제아무리 많아도 앎은 그저 하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탐구하지(窮) 않은 이치가 없어야만 앎을 다했다 할 수 있다. 지금 대학혹문에는 이 의미가 빠져 있다.<ref>회암집 권46의 답황상백 제4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논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5:84 “大學物格·知至處, 便是凡聖之關. 物未格, 知未至, 如何殺也是凡人. 須是物格·知至, 方能循循不已, 而入於聖賢之域, 縱有敏鈍遲速之不同, 頭勢也都自向那邊去了. 今物未格, 知未至, 雖是要過那邊去, 頭勢只在這邊. 如門之有限, 猶未過得在.”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진다는 지점이 바로 범부와 성인을 가르는 관문(凡聖之關)이다.<ref>관문은 누군가는 통과시키고 누군가는 통과시키지 않는 군사요새이다. 예컨대 장안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야 한다. 넘지 못하면 장안에도 못가는 것이고 넘으면 장안에 들어갈 수 있다. 후금의 군대가 북경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해관(山海關)을 넘어야 한다. 넘으면 천하를 차지하지만 넘지 못하면 거병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 이처럼 'xx관'이라는 표현은 우리를 어떤 경지로 인도하는 잘 닦인 길이라기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돌려보내는 난관과 같은 이미지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ref> 사물이 아직 '격'되지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도(如何殺)<ref>살(殺)은 살(煞)과 통한다. 현대 중국어 '셤머(什麽:무엇)' 정도에 해당한다.</ref> 범부이다. 반드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져야만 순차적으로 중단 없이 계속 (전진)해서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入於聖賢之域). 민첩한가 둔한가(敏鈍)의 차이와 빠르냐 느리냐(遲速)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추세(頭勢)는 완전히 그쪽<ref>관문 너머의 성현의 영역쪽</ref>으로 향해 간다. 지금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格)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비록 그쪽으로 가고자 해도 추세(頭勢)는 이쪽을<ref>관문을 넘지 못한 범부의 영역쪽</ref> 향해 있다. 문에 문턱이 있는데 아직 그걸 넘어가지 못한 셈이다.''' 問: “伊川云‘非樂不足以語君子’, 便是物未格, 知未至, 未過得關否?” '''질문: 이천(伊川)이 '즐기지 못하면 군자라 하기에 부족하다'<ref>이정유서 17:69. 글자의 출입은 있으나 대의는 같다. 논어집주 1:1에도 인용되어있다.</ref>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사물이 탐구되지(格) 않고 앎지 지극하지 못하여 관문을 넘지 못한 것입니까? 曰: “然. 某嘗謂, 物格·知至後, 雖有不善, 亦是白地上黑點; 物未格, 知未至, 縱有善, 也只是黑地上白點.” 伯羽(61때). '''대답: 그렇다. 내가 일찍이 말했듯, 물격지지한 뒤라면 비록 불선(不善)이 있더라도 역시 흰 땅 위의 검은 점과 같고, 물격지지하지 못했다면 비록 선(善)이 있더라도 역시 검은 땅 위의 흰 점과 같을 뿐이다. 백우(伯羽)의 기록. (61세) <以下論格物·致知·誠意是學者之關.> '''<이하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가 배우는 이에게 관문임을 논하는 조목들> *  15:85 格物是夢覺關. <格得來是覺, 格不得只是夢.> 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過得此二關, 上面工夫卻一節易如一節了. 到得平天下處, 尙有些工夫. 只爲天下闊, 須著如此點檢.” '''격물은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요, <격물을 해내면 깬 것이고 격물하지 못하면 꿈일 뿐이다> 성의(誠意)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성의를 해내면 선이고, 해내지 못하면 악일 뿐이다> 이 두 관문을 넘어서면 그 위쪽단계의 노력(工夫)은 매 단계 더 쉬워진다. 평천하의 단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그저 천하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렇게 (평천하 조목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뿐이다. 又曰: “誠意是轉關處.” '''다시 말함: 성의는 전환점(轉關處)<ref>번역은 '전환'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에도 '관(關)'자가 쓰였음에 유의하라. 주희는 관문이라는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ref>이다. 又曰: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 蘷孫(68이후). '''또 말함: 성의는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관문이다(人鬼關). <성의를 해내면 사람이고, 해내지 못하면 귀신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86 致知·誠意, 是學者兩箇關. 致知乃夢與覺之關, 誠意乃惡與善之關. 透得致知之關則覺, 不然則夢; 透得誠意之關則善, 不然則惡. 致知·誠意以上工夫較省, 逐旋開去, 至於治國·平天下地步愈闊, 卻須要照顧得到. 人傑(51이후). '''치지와 성의는 배우는 이의 두 관문이다. 치지는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고, 성의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치지의 관문을 돌파하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넘지 못하면 꿈속이다. 성의의 관문을 돌파하면 선이고 넘지 못하면 악이다. 치지와 성의의 다음 단계의 공부(工夫)은 비교적 힘이 덜 든다. 순서대로 열어(開)<ref>관문의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ref> 나가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면 그 범위(地步)가 더욱 넓어지므로 오히려 더 주의해야(照顧) 한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87 知至·意誠, 是凡聖界分關隘. 未過此關, 雖有小善, 猶是黑中之白; 已過此關, 雖有小過, 亦是白中之黑. 過得此關, 正好著力進步也. 道夫(60이후).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은 범부와 성인의 경계를 가르는 관문(關隘)<ref>애(隘)는 험준한 곳에 설치된 요새이다. 기본적으로 '관'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통과의 어려움을 약간 더 강조한 표현으로 보인다.</ref>이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비록 작은 선(善)이 있더라도 여전히 검은 바탕 위의 하얀 점이다. 이 관문을 넘고 나면, 비록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역시 흰 바탕의 검은 점이다.<ref>15:84를 보라.</ref> 이 관문을 넘고 나면 힘써 전진하기에 딱 좋다(正好).'''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88 “大學所謂‘知至·意誠’者, 必須知至, 然後能誠其意也. 今之學者只說操存, 而不知講明義理, 則此心憒憒, 何事於操存也! 某嘗謂誠意一節, 正是聖凡分別關隘去處. 若能誠意, 則是透得此關; 透此關後, 滔滔然自在去爲君子. 不然, 則崎嶇反側, 不免爲小人之歸也.” ''' '대학'에서 이른바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이란, 반드시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야 의지가 진실해질(意誠)<ref>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단지 마음을 지키는(操存) 것만 말할 뿐<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공부, 일종의 명상 공부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의의 단계를 말한다.</ref> 의리(義理)를 강론하여 밝힐(講明) 줄 모른다.<ref>지적 사유를 통해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공부이다. 여기서는 치지의 단계를 말한다.</ref>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그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니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부터 성의(誠意)의 단계는 성인과 범부를 가름하는 관문(關隘)이 되는 자리(去處)라고 했다. 만약 의지를 진실하게(誠意) 할 수 있으면 이 관문을 돌파한 것이다. 이 관문을 돌파한 후에는 도도(滔滔)<ref>황하나 양자강처럼 큰 물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부단히 흐르는 모양이 '도도'한 것이다.</ref>히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군자가 될 것이다. 돌파하지 못하면 길이 구불구불 험난하여<ref>관문은 기본적으로 지세가 매우 험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통과가 용이한 지점에 설치하는 방어시설이다. 그러므로 여행자가 어떤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은 매우 험하고 난해하고 비효율적인 우회로를 찾아가야 함을 뜻한다.</ref> 결국 소인이 되는 걸 면치 못할 것이다.''' “致知所以先於誠意者如何?” '''(누군가의 질문): 치지가 성의에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致知者, 須是知得盡, 尤要親切. 尋常只將‘知至’之‘至’作‘盡’字說, 近來看得合作‘切至’之‘至’. 知之者切, 然後貫通得誠意底意思, 如程先生所謂眞知者是也.” 謨(50이후). '''대답: 치지란, 반드시 남김없이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친근하고 절실해야(親切) 한다. 보통은 그저 '지지(知至)'의 '지(至)'를 '남김없이 다함(盡)'이라고 해설하나, 나는 요즘 '절실하다(切至)'<ref>'절지'는 18:6에서도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ref>라고 할 때의 '지(至)'로 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앎이 절실해진 뒤에야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誠意)'는 것의 취지를 관통할 수 있다.<ref>정말로 자신의 실존에 호소하는 절실한 도덕인식은 자연스럽게 간절한 실천의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통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ref> 정자(程子)가 말한 '참된 앎(眞知)'<ref>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 바로 그것이다.<ref>본 조목은 약간의 글자 출입을 제외하면 117:10의 후반부와 일치한다.</ref> '''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89 論誠意, 曰: “過此一關, 方是人, 不是賊!” '''성의(誠意)를 논하며 말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사람이고, 도적(賊)<ref>한 두 사람이 은밀히 돌아다니며 재물을 훔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수십수백명이 무리지어 유랑하며 마을을 약탈하는 것도 '도적(賊)'이라고 불렀다. 관문은 군대가 지키는 요새이니 도적떼는 통과하지 못한다.</ref>이 아니다. 又曰: “過此一關, 方會進.” '''다시 말함: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一本云: “過得此關, 道理方牢固.”> 方子(59이후). '''<다른 책에서는 '이 관문을 넘어서야 도리가 비로소 견고해진다'라고 했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90 鍾唐傑問意誠. '''종당걸(鍾唐傑)<ref>원주(袁州) 평향(萍鄉) 사람이다. 주자문인(朱子門人) 354쪽을 보라.</ref>이 성의에 대해 물었다. 曰: “意誠只是要情願做工夫, 若非情願, 亦强不得. 未過此一關, 猶有七分是小人.” 蓋卿(65때). '''대답: 의성(意誠)이란 진정으로 원하여(情願) 노력(工夫)하려는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면 역시 강요할 수 없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여전히 70%는 소인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91 意誠·心正, 過得此關, 義理方穩. 不然, 七分是小人在. '''의성(意誠)과 심정(心正)의 경우, 그 관문을 넘어서야 의리(義理)가 비로소 안정된다. 넘지 못하면 70%는 소인이다. 又曰: “意不誠底, 是私過; 心不正底, 是公過.” 方子(59이후). '''다시 말함: 의지(意)가<ref>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ref> 진실하지 않으면 '사(私)'에서 잘못된 것이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공(公)'에서 잘못된 것이다.<ref>이 부분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추후 보충하겠다. 16:131을 참조하라.</ref> *  15:92 深自省察以致其知, 痛加剪落以誠其意. 升卿(62때). '''깊이(深自) 성찰하여 앎을 지극히하고, 통렬히 잘라내어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 승경(升卿)의 기록. (62세) <致知·誠意.> '''<치지와 성의에 관한 조목> *  15:93 知與意皆出於心. 知是知覺處, 意是發念處. 閎祖(59이후). '''지(知)와 의(意)는 모두 마음(心)에서 나온다. 지는 지각(知覺)하는 곳이고, 의는 의념(念)이 일어나는 곳이다.<ref>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94 致知, 無毫釐之不盡. 守其所止, 無須臾之或離. 致知, 如一事只知得三分, 這三分知得者是眞實, 那七分不知者是虛僞. 爲善, 須十分知善之可好, 若知得九分, 而一分未盡, 只此一分未盡, 便是鶻突苟且之根. 少間說便爲惡也不妨, 便是意不誠. 所以貴致知, 窮到極處謂之‘致’. 或得於小而失於大, 或得於始而失於終, 或得於此而失於彼, 或得於己而失於人, 極有深淺. 惟致知, 則無一事之不盡, 無一物之不知. 以心驗之, 以身體之, 逐一理會過, 方堅實. 僩(69이후). '''치지(致知)는 털끝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멈춰야 할 최선의 지점을 고수하여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치지란, 가령 어떤 사안에 관하여 단지 30%만 알았다면, 알고 있는 30%만 진실이며 알지 못하는 나머지 70%는 허위이다. 선을 행하려면 선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100% 알아야 하니, 만약 90%는 알겠는데 10% 미진하다면 바로 그 미진한 10%가 곧 (선을 행함에 있어서의) 모호함과 구차함의(鶻突苟且) 뿌리가 된다. 머지않아 '악을 행하는 것도 괜찮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곧 의지(意)가 진실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므로 치지(致知)를 귀하게 여기니, 지극한 지점에 이를 때까지 탐구하고 파고드는 것을 '치(致)'라고 한다. 작은 것은 얻고 큰 것은 잃거나, 처음에는 얻고 나중에는 잃거나, 여기서는 얻고 저기서는 잃거나, 자신에게는 얻고 타인에게는 잃는 경우가 있으니, (앎에 있어서) 깊이의 차이가 지극히 크다. 오직 앎이 지극해야만 한 가지 사안도 남김없이 다하지 못함이 없고, 한 가지 사물도 남김없이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 마음으로 체감하고 몸으로 체험하며(以心驗之, 以身體之)<ref>양시(楊時)의 말이다. 구산집 권 12와 권 27을 보라. 어류 113:13도 참조하라.</ref> 하나하나 헤아려나가야 비로소 견실하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95 說爲學次第, 曰: “本末精粗, 雖有先後, 然一齊用做去. 且如致知·格物而後誠意, 不成說自家物未格, 知未至, 且未要誠意, 須待格了, 知了, 卻去誠意. 安有此理! 聖人亦只說大綱自然底次序是如此. 拈著底, 須是逐一旋旋做將去始得. 常說田子方說文侯聽樂處, 亦有病. 不成只去明官, 不去明音? 亦須略去理會始得. 不能明音, 又安能明官! 或以宮爲商, 以角爲徵, 自家緣何知得. 且如‘籩豆之事, 則有司存’, 非謂都不用理會籩豆, 但比似容貌·顔色·辭氣爲差緩耳. 又如官名, 在孔子有甚緊要處? 聖人一聽得郯子會, 便要去學. 蓋聖人之學, 本末精粗, 無一不備, 但不可輕本而重末也. 今人閒坐過了多少日子, 凡事都不肯去理會. 且如儀禮一節, 自家立朝不曉得禮, 臨事有多少利害!” 雉(미상). '''배움의 순서에 대하여 말함: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 사이에 물론 선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제히 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치지와 격물 다음이 성의라고 해서 설마 '나는 사물을 아직 격하지 못했고 앎을 아직 지극히하지 못했으니 의지를 진실되게 하는 공부는 아직 할 필요 없다. 반드시 격물과 치지를 완수하기를 기다렸다가 의지를 참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 참인가?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나! 성인도 단지 대강의 자연스러운 순서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자신이) 잡은 것을(拈著底)<ref>아마도 그때그때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사태, 사안, 상황, 사물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고문해의는 이 '잡은' 것을 '요점을 잡아서 말해보자면' 정도로 해석했다.</ref>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야 된다. 나는 늘 전자방(田子方)이 문후(文侯)가 음악을 듣는 것을 가지고 말한 곳에 병통이 있다고 말한다.<ref>전국책 권22 위책(魏策)에 보인다. 위문후와 전자방이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중 문후가 종소리의 높낮이가 맞지 않다는 것을 듣고 알아냈다. 전자방은 문후의 음감을 칭찬하는 대신 '임금이 밝으면 관리의 일을 즐기고 밝지 못하면 음악을 즐긴다'라고 충고했다.</ref> 설마하니 관리의 일에만 밝고 음악에는 밝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음악) 역시 대강이라도 이해해야만 한다.<ref>여기서 주희는 음악을 '잡은 것(拈著底)'의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다.</ref> 음악에 밝지 못하면서 어떻게 관리의 일에 밝을 수 있겠나? 누군가가 궁(宮)을 상(商)이라고 하고 각(角)을 치(徵)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걸 무슨 수로 알아채겠나? 예를 들어, '변두(籩豆)의 일은 담당자(有司)가 있다'<ref>논어8:4. 여기서 증자는 제사그릇(籩豆)의 종류와 그 각각에 무얼 담느냐와 같은 디테일한 사안은 그것을 담당하는 하급관리가 알아서 할 일이므로 고위 정무직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위 정무직이 신경쓸 일은 행동거지(動容貌)가 사납거나 태만하지 않게 하는 것(斯遠暴慢矣), 안색을 바로잡아(正顔色) 신실하게 하는 것(斯近信矣) 말하는 매너가(出辭氣) 비루하거나 도리에 위배되지 않게 하는 것(斯遠鄙倍矣)이다.</ref>는 말은 변두와 관련된 일을 전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용모, 안색, 사기에 비하여(比似) 다소(差) 느슨하다는(緩)<ref>덜 중요하다는 뜻이다.</ref> 것일 뿐이다. 또 관직 명칭(官名) 같은 것은 공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 성인<ref>공자</ref>은 담자(郯子)가 (관직 명칭의 유래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듣자마자 그에게 가서 배웠다.<ref>이 이야기는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17년조에 보인다.</ref> (공자가 그렇게 한) 까닭은 성인의 배움은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단지 근본을 경시하고 말엽을 중시하면 안 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ref>'다소(多少)'는 종종 현대중국어 '얼마나(多麽)'와 같다. 여기서는 말의 앞뒤를 고려하여 평서형으로 풀었다.</ref> 날들을 일없이 앉아 보내면서 그 모든 사안들에 대하여 기꺼이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례(儀禮)의 한 절목(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도) 자신이 입조(立朝)했는데 (문제의 그) 예(禮)를 알지 못한다면 실무에 임하면서 득실(利害)이 대체 얼마나 많겠나? 치(雉)의 기록. *  15:96 吳仁甫問: “誠意在致知·格物後, 如何?” '''오인보(吳仁甫)의 질문: 성의가 치지와 격물 뒤에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源頭只在致知. 知至之後, 如從上面<ref>판본에 따라 '面上'인 경우도 있다. 자세한 것은 일역판(2007)의 교감주를 참조하라.</ref>放水來, 已自迅流湍決, 只是臨時又要略略撥剔, 莫令壅滯爾.” 銖(67이후). '''대답: 원천(源頭)은 치지에 있다.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는 마치 위에서부터 물이 흘러와서 이미(已自) 급류(迅流)가 둑을 터뜨리고 나온(湍決) 것과 같다. 그저 그때그때 (가로막는 것들을) 대충 제거하여 막힘이 없도록 해주면 될 뿐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97 問: “誠意莫只是意之所發, 制之於初否?” '''누군가의 질문: 성의는 의지의 발현을 초기에 제어하는(制之於初) 것입니까? 曰: “若說制, 便不得. 須是先致知·格物, 方始得. 人莫不有知, 但不能致其知耳. 致其知者, 自裏面看出, 推到無窮盡處, 自外面看入來, 推到無去處, 方始得了. 意方可誠. 致知·格物是源頭上工夫. 看來知至便自心正, 不用‘誠意’兩字也得. 然無此又不得, 譬如過水相似, 無橋則過不得. 意有未誠, 也須著力. 不應道知已至, 不用力.” '''대답: 제어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반드시 먼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을 해야만 한다. 앎(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致知) 것이란, 안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바깥쪽으로 끝없는 지경까지 밀고 나가고, 바깥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안쪽으로 막다른 지점까지(無去處)<ref> 직역하면 '더는 갈 곳 없는 지점'이다. 18:4, 18:72를 참조하라.</ref> 밀고 들어가야만 비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 치지와 격물은 원천에서의 노력(工夫)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저절로 마음이 바르게 될 테니 '성의'라는 두 글자는 필요 없을 것도 같다(看來).<ref>'간래(看來)'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뒤집기 위해 적당한 추측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순서대로라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인데 치지의 결과 정심이 이루어지면 성의는 불필요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영문으로치면 'it seems...'와 같다.</ref> 하지만 '성의'가 없으면 또 안 된다. 마치 물을 건너는 것과 같아서 다리가 없으면 건널 수 없다. 의지에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다시 힘을 써야 한다. 앎이 이미 지극하니 더 힘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15:98 知若至, 則意無不誠. 若知之至, 欲著此物亦留不住. 東西南北中央皆著不得. 若是不誠之人, 亦不肯盡去, 亦要留些子在. 泳(66때). '''앎이 지극하면 의지는 진실하지 않음이 없다. 앎이 지극하면 이 물건<ref>사의나 사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을 마음에 붙여놓으려(著)<ref>주자어류에서 '착(著)'이 이렇게 본래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15:101을 보라.</ref>해도 머물지 못한다. 동서남북과 중앙 어디에도 붙여놓지 못한다. 반면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사의와 사욕을) 기꺼이 모두 제거하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기려 한다.<ref>마지막 글자인 '재(在)'는 문장의 분위기를 단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허사이다.</ref> <知至·意誠.>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99 問: “知至到意誠之間, 意自不聯屬. 須是別識得天理人欲分明, 盡去人欲, 全是天理, 方誠.” '''누군가의 질문: 지지(知至)에서 의성(意誠)까지는 뜻(意)이<ref>여기서 '의(意)'자는 '의성(意誠)'의 '의'와는 다른 뜻으로 쓰였음에 주의하라.</ref>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습니다.<ref>내버려두어도 아래로 흘러가는 물처럼 두 단계가 이어지지 않고, 그 사이에 모종의 인위적 노력을 쏟아야만 이어진다는 말이다.</ref>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분명히 식별하고 인욕을 모두 제거하여 오로지 천리만 있어야 비로소 진실해집니다.<ref>식별하고(別識) 모두 제거하는(盡去)등의 행위가 바로 앞에서 암시한 인위적 노력이다.</ref> 曰: “固是. 這事不易言. 須是格物精熟, 方到此. 居常無事, 天理實然. 有纖毫私欲, 便能識破他, 自來點檢慣了. 譬有賊來, 便識得, 便捉得他. 不曾用工底, 與賊同眠同食也不知!” 大雅(49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 일은 쉽게 말할 수 없다.<ref>이 단계를 설명하기 난해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 단계를 쉬운 것처럼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ref> 반드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 해야만 여기에<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의성'의 단계를 말한다.</ref> 도달할 수 있다. 평소(居常) 특별한 일이 없을 적에 천리(天理)는 진실로 이러하다(實然).<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천리가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ref>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있을 경우 그것을 바로 간파(識破)할 수 있는 것은 전부터(自來) (자신을) 점검(點檢)하는 데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위쪽에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精熟)'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익숙하게 점검하는' 노력이다.</ref> 비유하자면, 도적이 오면 바로 알아차리고 체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평소 노력하지 않는 이는 도적과 함께 먹고 자면서도 알지 못한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100 周震亨問知至·意誠, 云: “有知其如此, 而行又不如此者, 是如何?” '''주진형(周震亨)이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하여 질문: 어떤 이가 이치가 그러함을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此只是知之未至.” '''대답: 이는 단지 그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問: “必待行之皆是, 而後驗其知至歟?” '''재질문: 반드시 그의 행동이 모두 옳게 된 다음에야 그의 앎이 지극해졌음을 확인(驗)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不必如此說. 而今說與公是知之未至, 公不信, 且去就格物·窮理上做工夫. 窮來窮去, 末後自家眞箇見得此理, 是善與是惡, 自心甘意肯不去做, 此方是意誠. 若猶有一毫疑貳底心, 便是知未至, 意未誠, 久後依舊去做. 然學者未能便得會恁地, 須且致其知. 工夫積累, 方會知至.” '''대답: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ref>여기서 '여(與)'는 현대 중국어의 '급(給)'처럼 '~에게' 정도의 의미이다.</ref> 말하기를 그대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우선 사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格物窮理) 데에 힘을 써보라. 깊이 연구한 끝에 스스로 이 이치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이 선과 악을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악을) 행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의지가 진실되게(意誠) 된 것이다. 만약 여전히 조금이라도 의심(疑貳)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않은 것이고,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않은 것이니, 시간이 오래 지나면 도로 (악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가 곧바로 그렇게 (의지가 진실되게) 될 수는 없으니, 우선 반드시 앎을 지극하게 해야 한다. 노력(工夫)이 쌓여야 앎을 지극하게 할 수 있다.''' *  15:101 “‘知至而后意誠’, 須是眞知了, 方能誠意. 知苟未至, 雖欲誠意, 固不得其門而入矣. 惟其胸中了然, 知得路逕如此, 知善之當好, 惡之當惡, 然後自然意不得不誠, 心不得不正.” ''' '앎이 지극해진(知至) 뒤에 의지가 진실해진다(意誠)'는 것은 반드시 진정으로 알아야 비로소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면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정말이지 문을 찾아 들어갈 방법이 없다. 오직 가슴 속에서 분명하게 길이(路逕) 이와 같음을 알고 선이란 좋아해야 마땅하고 악이란 미워해야 마땅함을 안 뒤에야 비로소 자연히 의지가 진실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因指燭曰: “如點一條蠟燭在中間, 光明洞達, 無處不照, 雖欲將不好物事來, 亦沒安頓處, 自然著它不得. 若是知未至, 譬如一盞燈, 用罩子蓋住, 則光之所及者固可見, 光之所不及處則皆黑暗無所見, 雖有不好物事安頓在後面, 固不得而知也. '''이어서 촛불을 가리키며 말함: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촛불을 밝혀두어(點) 그 빛이 사방에 미쳐 구석구석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면 설령 좋지 않은 것들을(不好物事) 가져오려고 해도 역시 놓을(安頓) 자리가 없으니 자연히 그런 것들은 여기 붙어있을 수 없다(著它不得).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은 비유하자면 등잔(盞燈)을 등갓(罩子)으로 덮은 것과 같아서 빛이 닿는 곳이야 물론 볼 수 있겠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완전히 깜깜해서 보이지 않으므로 설령 좋지 않은 물건을 뒤에다 가져다 놓아도 정말이지 알아챌 도리가 없다. <炎錄云: “知旣至, 則意可誠. 如燈在中間, 纔照不及處, 便有賊潛藏在彼, 不可知. 若四方八面都光明了, 他便無著身處.”> '''<염(炎)의 기록: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의지(意)가 진실해질 수 있다.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등불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빛이 비추지 않는 곳에 도적이 숨어들면 알아챌 수가 없다. 만약 사방팔방이 모두 밝아지면 도둑이 몸 붙일 곳이 없게 된다.> 所以貴格物, 如佛·老之學, 它非無長處, 但它只知得一路. 其知之所及者, 則路逕甚明, 無有差錯; 其知所不及處, 則皆顚倒錯亂, 無有是處, 緣無格物工夫也.” '''그래서 격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부처와 노자의 학문은,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길 하나(一路)를 알 뿐이다. 그들의 앎이 미치는 곳에서는 길(路逕)이 매우 분명하여 잘못될 곳이 없으나 그들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모두 전도착란(顚倒錯亂)<ref>넘어지고 헤매는 것이다. 길을 모를 때 여행자가 겪는 어려움이 보통 넘어지는 것과 길을 잃는 것이다.</ref>하여 옳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는 격물의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問: “物未格時, 意亦當誠.”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 않았을 때에도 의지는 응당 진실하게 해야합니까?''' 曰: “固然. 豈可說物未能格, 意便不用誠! 自始至終, 意常要誠. 如人適楚, 當南其轅. 豈可謂吾未能到楚, 且北其轅! 但知未至時, 雖欲誠意, 其道無由. 如人夜行, 雖知路從此去, 但黑暗, 行不得. 所以要得致知. 知至則道理坦然明白, 安而行之. 今人知未至者, 也知道善之當好, 惡之當惡. 然臨事不如此者, 只是實未曾見得. 若實見得, 自然行處無差.” 僩(69이후). '''대답: 당연히 그렇다. 어찌 '사물을 아직 탐구하지 못했으니 의지는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지는 항상 진실하게 해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초(楚)나라<ref>남쪽지방의 대명사이다. 북쪽지방의 경우는 연(燕)나라.</ref>로 가고자 한다면 수레의 머리(轅)가 남쪽을 향해야 한다. 어찌 '나는 아직 초나라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일단 수레 머리를 북쪽으로 돌려놓아야겠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저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는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그 길(道)을 따라 걸을 수 없을 뿐이다. 마치 사람이 밤길을 갈 적에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너무 어두워서 나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앎을 지극하게 해야(致知) 하는 것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도리(道理)가 탄연명백(坦然明白)<ref>앞길이 밝고 평탄한 것이다. 계속해서 도덕원칙을 길로, 그 원칙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밝기로, 그 원칙에 대한 의욕적인 실천을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하라.</ref>하니 편안하게 나아갈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앎은 아직 지극하지 못해도 선은 마땅히 좋아해야 하고 악은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태에 임하여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저 (도리를)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자연히 실천에도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02 欲知知之眞不眞, 意之誠不誠, 只看做不做如何. 眞箇如此做底, 便是知至·意誠. 道夫(60이후). '''(어떤 사람의) 앎이 진정한지, 의지가 진실한지 알고 싶다면 그저 실천 여부를 보면 된다. 정말로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앎이 지극하고(知至) 의지가 진실한(誠意)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03 問“知至而后意誠”. '''<nowiki/>'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에 관한 질문.''' 曰: “知則知其是非. 到意誠實, 則無不是, 無有非, 無一毫錯, 此已是七八分人. 然又不是今日知至, 意亂發不妨, 待明日方誠. 如言孔子‘七十而從心’, 不成未七十心皆不可從! 只是說次第如此. 白居易詩云: ‘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詩人玩弄至此!” 可學(62때). '''대답: 안다는 것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아는 것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그 사람의 행동에) 옳지 않음이 없고, 그른 것이 없으며, 털끝만큼의 착오도 없다. 이는 이미 70-80%는 된 사람이다. 그러나 또 '오늘 막 앎이 지극해졌으니 (오늘은) 의지가 어지러이 발출해도 괜찮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의지를 진실되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일흔이 되고나서는 마음을 따라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ref>논어 2:4</ref>는 말이 설마 일흔이 되기 전에는 자기 마음을 따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겠나? 단지 순서가 그러하다는 것 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행년 서른아홉, 세모(歲暮)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ref>시의 제목은 은궤(隱几)이다. 본래 '사십심부동(四十心不動)'인 걸 여기서는 '맹자심부동(孟子心不動)'으로 바꿔서 썼다. 이 시를 인용한 다른 조목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주희는 정말로 이렇게 외고 있었던 듯하다.</ref>라고 했는데, 시인의 말재주가(玩弄) 이정도 수준에 이르렀구나!<ref>15:104와 140:32가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백거이의 재치를 진지하게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璘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린(璘)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104 舜功問: “致知·誠意是如何先後?” '''순공(舜功)의 질문: 치지(致知)와 성의(誠意)는 어째서 선후가 이렇게 됩니까? 曰: “此是當初一發同時做底工夫, 及到成時, 知至而后意誠耳. 不是方其致知, 則脫空妄語, 猖狂妄行, 及到誠意方始旋收拾也. 孔子‘三十而立’, 亦豈三十歲正月初一日乃立乎! 白樂天有詩: “吾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此詩人滑稽耳!” 璘(62때). '''대답: 이는 애초에 동시(一發同時)에 하는 공부(工夫)다. 다 완성된 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나서 의지가 진실해진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치지의 단계에서 헛소리를 하고(脫空妄語)<ref>'탈공'은 근거할 만한 실질이 없는 것이다.</ref> 미친짓을 하다가(猖狂妄行), 성의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서둘러(旋) 수습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홀로 섰다(立)'고 한 것이 어찌 서른이 되는 해의 정월 초하루가 되어서야 홀로 섰다는 말이겠나? 백락천(白樂天)이 시에서 '내(吾) 나이<ref>본래는 15:103에서와 같이 '행년(行年)'이다.</ref> 서른아홉, 세모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라고 한 것은 시인이 재주를 넘은(滑稽)<ref>활계 (혹은 '골계')는 순간적인 재치로 웃음을 유발하는 말재주를 말하기도 하고, 강남지방에서 유행했다는 일종의 곡예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에 골계열전(滑稽列傳)이 있다.</ref>것 뿐이다.<ref>15:103과 140:32를 참고하라.</ref> 린(璘)의 기록. (62세) *  15:105 學者到知至意誠, 便如高祖之關中, 光武之河內. 芝(63때). '''배우는 이가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마치 한고조(高祖)의 관중(關中), 광무제(光武)의 하내(河內)와 같다.<ref>관중은 오늘날 섬서성 서안(西安) 인근이고 하내는 하남성 심양(沁阳) 인근이다. 두 곳은 각각 한고조 유방과 후한 광무제의 근거지로 그 기반이 굳건하여 그들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치지와 성의 공부가 완성되면 이는 배우는 이의 굳건한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자치통감 권61 헌제 흥평2년 윤5월조를 보라.</ref> *  15:106 問:“‘知至而后意誠, 故天下之理, 反求諸身, 實有於此.' 似從外去討得來”云云. '''질문: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졌으므로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정말로 (자기 내면에) 다 있다.'<ref>고문해의는 이 구문을 대학혹문의 초기 판본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측했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이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흡사한 구절이 있다. 혹문의 전 5장 8번째 조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천하 사물을 다 탐구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내게 갖춰져 있는 것이요 외부로부터 얻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격물(格物)에 대하여 역시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면' 천하 사물이 내게 있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데 이 또한 그럴싸하긴 하다.<양시의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다'는 것은 바로 '물격지지(物格知至)' 이후의 일이니, 이치에 대한 탐구가 지극하여 남김없이 다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저 모든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누구나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잡고 다리로 걷는 것처럼 완벽하게 자기 안에 갖추어져 있어서 털끝만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음을알 수 있다. 정말로 이러한 것을 바로 격물(格物)의 일로 여긴 것도 아니고, 또한 '단순히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에만 힘쓰면 천하의 이치는 저절로 모두 진실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又有以爲天下之物, 不可勝窮, 然皆備於我, 而非從外得也. 所謂格物, 亦曰反身而誠, 則天下之物無不在我者, 是亦似矣.〈楊中立說〉然反身而誠, 乃爲物格知至以後之事, 言其窮理之至無所不盡. 故凡天下之理, 反求諸身, 皆有以見其如目視耳聽手持足行之畢具於此, 而無毫髮之不實耳. 固非以是方爲格物之事, 亦不謂但務反求諸身, 而天下之理自然無不誠也.)" 주희는 여기서 시선을 내면에 고정해두고 (어차피 사물은 다 내 안에 있는 것 아니냐는 전제하에) 스스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배격하기 위해 격물이란 시선을 외부에 두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용과 같은 주요 경전에서 말한 '반구저신(反求諸身)'과 같은 권위있는 표현을 존중해야 하므로 1. 먼저 나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치를 탐색하고 탐구하여 알고 나면 2. 그 이치가 내 안에 앎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3. 돌이켜 내 안에서 구해보면 다 거기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경전의 문구와 조화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놓고 나면 우리는 모두 이치를 외부에서 구해서 마련해 가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게 되면 이치가 본래부터 자신 안에 상존한다는 주희의 본성론에 위배되는 것 처럼 들린다. 본 조목에서의 질문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ref>같은 경우, (천하의 이치를) 아마도 바깥쪽에서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생략)<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로 다음과 같은 문답이 더 있다. 아마도 여기서 생략처리된 부분일 것이다.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이 안쪽이고 무엇이 바깥쪽인가?' 내가 답했다. '치지격물이란 바깥에 가서 이치를 마련해온 뒤에 비로소 자신에게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깥에 가서 구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먼저 이 이치가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이 모르게 된 것인가? (이치를) 알게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이치가 있게 된 것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先生問節曰: "如何是内, 如何是外?" 節答曰: "致知格物是去外討, 然后方有諸己, 是去外討得入來." 曰: "是先有此理後自家不知? 是知得後方有此理?" 節無以答.)"</ref> 曰: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厲聲言“弗思”二字.> '''대답: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외부에서 내 안으로 녹아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ref>맹자 6A:6</ref> <'생각하지 않을(弗思)' 두 글자를 강하게 말했다.> 又笑曰: “某常說, 人有兩箇兒子, 一箇在家, 一箇在外去幹家事. 其父卻說道在家底是自家兒子, 在外底不是!” 節(64이후). '''또 웃으며 말함: 내가 늘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은 집에 있고 다른 아들은 밖에 나가서 가족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아비가 집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고 밖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구나!<ref>여기서 감절(甘節)은 치지와 성의 공부의 결과 내면에 확보하게 된 '이치'란 본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바깥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이치를 인식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객관적인 어떤 것, 나와 무관한 것을 가져와서 애써 내면화하는 작업, 남의 아들을 잡아와서 내 아들로 만드는 작업이다. 주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치는 물론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본유한다고 생각하므로 바깥에 있는 아들이나 집안에 있는 아들이나 다 자신의 아들이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07 或問: “知至以後, 善惡旣判, 何由意有未誠處?” '''어떤 사람의 질문: 앎이 지극해진 다음 선악도 이미 판별되었는데 무슨 연유로 의지에 아직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 曰: “克己之功, 乃是知至以後事.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一念纔放下, 便是失其正. 自古無放心底聖賢, 然一念之微, 所當深謹, 纔說知至後不用誠意, 便不是. ‘人心惟危, 道心惟微’, 毫釐間不可不子細理會. 纔說太快, 便失卻此項工夫也.” 銖. '''대답: 극기(克己)<ref>논어 12:1</ref>하는 노력은 앎이 지극해진 이후의 일이다.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ref>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ref> 한 생각(一念)이라도 놓치는(放下) 순간 그 바름을 잃게 된다. 예로부터 마음을 놓치는(放心) 성현은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생각은 은미하니 깊이 삼가야 한다.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를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바로 틀린 것이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ref>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제 15장</ref> 털끝만한 것까지 세심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충 빨리 하라고 말하는 순간 이 항목에서의 공부(工夫)를 상실하게 된다. 수(銖)<ref>중화서국판에서는 록(錄)으로 오기했다.</ref>의 기록. (67세 이후) *  15:108 問椿: “知極其至, 有時意又不誠, 是如何?” '''선생이 나(椿)에게 질문했다: 앎이 지극해졌는데도 종종 의지가 또 진실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椿無對. '''나(椿)는 대답하지 못했다. 曰: “且去這裏子細窮究.” '''선생: 일단 이 부분을 세심하게 연구해 보아라. 一日, 稟云: “是知之未極其至.” '''하루는 내가 말씀드렸다: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先生曰: “是則是. 今有二人: 一人知得這是善, 這是惡; 又有一人眞知得這是善當爲, 惡不可爲. 然後一人心中, 如何見得他是眞知處?”. '''선생: 그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이것이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이 선이므로 당연히 해야 하고 이것은 악이므로 당연히 하면 안 됨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眞知). 그렇다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그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眞知) 알 수 있을까?<ref>이에 대하여 주희 자신은 15:102에서처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15:100에서처럼 행동을 보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대학장구 전6장에서는 이는 남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독(愼獨)'해야 한다고 말한다.</ref> 椿亦無以應. '''나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先生笑曰: “且放下此一段, 緩緩尋思, 自有超然見到處.” 椿(59때)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이 부분을 내려놓고 천천히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초연(超然)히 깨닫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춘(椿)의 기록. (59세) *  15:109 誠意, 方能保護得那心之全體. '''의지를 진실되게 하면(誠意) 비로소 이 마음 전체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以下誠意.> '''<이 아래로 성의에 관한 조목들> *  15:110 問“實其心之所發, 欲其一於理而無所雜”. ''' '마음이 발하는 것(心之所發)<ref>주희에 따르면 이 네 글자가 바로 의(意)자의 사전적 정의이다.</ref>을 진실되게 하고, 그것이 한결같이(一)<ref>이 형용사는 순수성과 일관성을 의미한다. 순수하고 일관되게 이치에 귀속한다는 뜻이다.</ref> 이치에 귀속하여 다른 것과 섞이지 않게하라'<ref>대학혹문의 경1장 부분에 "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라는 말이 있다. 대학장구는 크게 두 종류의 통행본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에서 유행했던 사서대전본이고 다른 하나는 오영(吳英)과 오지충(吳志忠) 부자가 교감한 가경 16년본(1811)이다. 가경본은 후에 중화서국판 사서집주의 저본이 된다. 대전본에서는 성의에 대하여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라고 적은 반면 가경본에서는 "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라고 적고 있어서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주희는 대학장구와 혹문을 매우 여러번 개수했기 때문에 이본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단지 어느쪽이 더 최신버전인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어류의 이 부분은 아무래도 통행본 대학혹문과 가경본 대학장구를 섞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버전보다 앞선 것인지 더 나중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쉬지아싱(許家星)의 "论朱子的诚意之学—以诚意章詮释修改为中心(2011)", 최혜미의 "大學章句 ‘誠意’의 주석에 대한 韓·中 학자들의 변석 양상 一考(2016)"을 참고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只爲一, 便誠; 二, 便雜. ‘如惡惡臭, 如好好色’, 一故也. ‘小人閒居爲不善, <止><ref>긴 문장을 중간부분을 생략해서 인용할 적에 '~까지'라는 의미로 이 글자를 작게 쓴다.</ref>著其善’, 二故也. 只要看這些便分曉. 二者, 爲是眞底物事, 卻著些假攙放裏, 便成詐僞. 如這一盞茶, 一味是茶, 便是眞. 才有些別底滋味, 便是有物夾雜了, 便是二.” 蘷孫(68이후). '''대답: "하나(一)면 순수하고(誠) 둘이면(二) 잡스럽다(雜). '악취를 싫어하듯이 악을 싫어하고, 호색을 좋아하듯이 선을 좋아'<ref>대학 전 6장.</ref>하는 까닭은 하나(一)이기 때문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악을 행하고 (중략) 선함을 드러내'<ref>대학 전 6장을 축약한 것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불선한 짓을 하여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다 군자를 본 이후에는 겸연쩍게 자신의 불선함을 가리고 선함을 드러낸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이다.</ref>는 까닭은 둘(二)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보아야 하는데, 보기만 하면 바로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둘이란, 진짜 물건 안에다 가짜를 조금 섞어 넣은 것으로, 곧 사기와 거짓(詐僞)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차 한 잔이 한결같이 차 맛만 난다면 이는 진짜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맛이 첨가되면 곧 섞인 물건이요 둘(二)이다. *  15:111 意誠後, 推盪得渣滓靈利, 心盡是義理.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게 된 후에는 찌꺼기(渣滓)를 깨끗하게(靈利)<ref>영리(靈利):남김없이 모조리 깔끔하게</ref> 씻어내서(推盪)<ref>우리말 '소탕(掃蕩)하다'의 '탕(蕩)'과 통한다. 남김없이 제거했다는 뜨이다. 일역판에서는 '눌러서 짜내다(押し出す)' 정도로 번역했는데 썩 만족스럽지 않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치약 튜브이고 찌꺼기는 치약이고 성의공부는 치약을 모조리 쥐어짜내는 과정처럼 느껴진다.</ref> 마음이 전부 의리(義理)로 가득하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以下意誠.> '''<이 아래로는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112 意誠, 如蒸餅, 外面是白麵, 透裏是白麵. 意不誠, 如蒸餅外面雖白, 裏面卻只是粗麵一般.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다는(意誠) 것은 증병(蒸餅)<ref>쪙빙은 얇은 밀가루 피 여러겹을 마치 계란말이처럼 층층이 쌓아서 쪄낸 음식이다. 각 층 사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다. 오늘날 중국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재료와 형태만으로 따지자면 오늘날 한국의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레이프케잌과 비슷하다. 다만, 주희 당시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쪙빙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 번역자는 자신이 없다. 일역판에서는 찐만두라고 번역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16:87에서 동일한 비유를 들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겉부분도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고 속으로 들어가도 고운 밀가루로(白麵) 만든 것과 같다.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은 증병의 겉부분은 비록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더라도 속부분은 거친 밀가루로(粗麵)<ref>입자가 굵고 거친 통밀가루 같은 것을 떠올리면 좋다.</ref> 만든 것과 같다.<ref>이 비유는 16:87에서도 반복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13 “心, 言其統體; 意, 是就其中發處. 正心, 如戒懼不睹不聞; 誠意, 如愼獨.” '''심(心)은 통체로(統體) 말한 것이고, 의(意)는 그 속에서 발출하는(發) 것이다.<ref>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 통체로 지시하면 '심'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주희의 심(心)은 인지적인 기관(mind)과 정서적 기관(heart)를 하나로 합친 거에 가깝다. 이때문에 많은 영역자들이 습관처럼 '허트-마인드(heart-mind)'라는 신조어를 써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 의(意)는 그러한 '심'에서 솟아나는(發) 의지(will)나 동기(motive)에 가깝다. '마음'과 '의지'를 정의하는 조목들은 권5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5:88을 보라.</ref> 정심(正心)은 '(자신이) 보고 듣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두려워한다'<ref>중용 제 1장의 '계신공구'부분을 패러프레이즈한 것이다. '(자신이) 보지 않는 바를 삼가고 경계하며 (자신이) 듣지 않는 바를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주희에 의하면 이는 미발(未發)의 상태에서의 자기수양의 노력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명상공부이다. 우리 마음의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이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활동하는 양상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했을 때 보다(睹)와 듣다(聞)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마음의 적극적 활동을 말한다. 그런 활동을 중지하면 '계신공구'이다. 62:91, 62:79를 보라.</ref>는 것과 같고, 성의는 '혼자만 아는 곳을 삼간다(愼獨)'<ref>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주희는 계신공구를 미발단계에서의 공부, 신독을 이발단계에서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체인공부, 후자는 찰식공부이다. 62:92를 보라.</ref>와 같다. 又曰: “由小而大. 意小心大.” 閎祖(59이후). '''또 말함: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라. 의(意)는 작고 심(心)은 크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正心·誠意.> '''<이 아래로 정심(正心)과 성의(誠意)에 관한 조목들> *  15:114 康叔臨問: “意旣誠矣, 心安有不正?” '''강숙림(康叔臨)의 질문: 의지가 이미 진실한데, 마음에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습니까? 曰: “誠只是實. 雖是意誠, 然心之所發有不中節處, 依舊未是正. 亦不必如此致疑, 大要只在致知格物上. 如物格·知至上鹵莽, 雖見得似小, 其病卻大. 自修身以往, 只是如破竹然, 逐節自分明去. 今人見得似難, 其實卻易. 人入德處, 全在致知·格物. 譬如適臨安府, 路頭一正, 著起草鞋, 便會到. 未須問所過州縣那箇在前, 那箇在後, 那箇是繁盛, 那箇是荒索. 工夫全在致知·格物上.” 謙(65때). '''대답: '성(誠)'은 '실(實)'이다. 비록 의지가 진실하더라도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心之所發)이<ref>의지(意)를 말한다.</ref> 각각의 상황에 정확히 온당하지(中節) 않은 경우가 있으면<ref>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엉망인 일들을 떠올려 보라.</ref> 아직 여전히 바르지(正)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고,<ref>성의 단계와 정심 단계 사이의 연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ref> 핵심은 그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만약 사물이 다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단계에서(物格知至) 소홀하면, 보이기는 작게 보여도 그 병폐가 크다. 수신(修身)의 단계 이후로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마디 저절로 분명해진다.<ref>대학에서 제가, 치국, 평천하 부분은 파죽지세로 이해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ref>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워 보여도 사실은 쉽다. 사람이 덕(德)으로 들어가는 지점은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비유하자면, 임안부(臨安府)<ref>오늘날 항저우. 당시 남송의 수도였다.</ref>에 갈 적에 길이 정확하기만 하다면(一正)<ref>중국어에서 일(一)은 종종 조건(if)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도 문맥을 살펴 그렇게 해석했다. '한결같이'일 가능성도 있다.</ref> 짚신만 신으면<ref>'착(著)'은 뒤에 신발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오면 '신발을 신다'가 된다. '기(起)'는 현대중국어에서 동사의 뒤에 붙어서 동작의 방향(주로 위쪽)을 표현하거나 그 동작이 시작됨, 그 동작의 가능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칸치라이(看起來)'는 '내가 이렇게 보면...' 정도의 의미이고 '쭈어치(做起)'는 시작한다는 의미이다.</ref> 도달할 수 있다. 중간에 거쳐가는 주현(州縣) 가운데 어느 것이 앞이고 어느것이 뒤인지, 어느 것이 번성하고 어느 것이 황량한지 물을 필요가 없다. 힘 쓸 곳은(工夫)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以下論格物·致知·誠意·正心.> '''<이 아래로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에 관한 조목들> *  15:115 問: “心, 本也. 意, 特心之所發耳. 今欲正其心, 先誠其意, 似倒說了.” '''질문: 마음(心)은 뿌리(本)이고, 의지(意)는 그저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 정도입니다. 지금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설명은 순서가 뒤집힌 것 같습니다. 曰: “心無形影, 敎人如何撑拄. 須是從心之所發處下手, 先須去了許多惡根. 如人家裏有賊, 先去了賊, 方得家中寧. 如人種田, 不先去了草, 如何下種. 須去了自欺之意, 意誠則心正. 誠意最是一段中緊要工夫, 下面一節輕一節.” '''대답: "마음은 형체가 없는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탱하고있으라고(撑拄)<ref>탱주(撑拄)는 지탱(支撑)과 같다. 어떤 물건이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는 것이다.</ref> 해야 할까? 반드시 마음에서 발출한 곳에서 착수해야 하며, (거기서) 우선 수많은 악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예컨대 집에 도둑이 들면 우선 도둑을 없애야만 집안이 평온해지는 것과 같다. 예컨대 누군가 밭에 파종할 적에 우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씨를 뿌릴 수 있겠나? 반드시 자신을 기만하려는 의지를<ref>'자기자신을 기만함(自欺)'은 대학 전 6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주희는 이를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지만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의 윤리학 용어로 '의지박약(Akrasia)'에 가깝다. 이찬의 '지행문제의 도덕심리학적 이해(2009)'를 참조하라.</ref> 제거해야 한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 '성의'는 일련의 공부 가운데 매우 중요한 공부이며, 그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가벼워진다. 或云: “致知·格物也緊要.” '''누군가가 말함: 치지와 격물도 중요합니다. 曰: “致知, 知之始; 誠意, 行之始.” 蘷孫(68이후). '''대답: 치지는 앎(知)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行)의 시작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16 或問: “意者心之所發, 如何先誠其意?”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에서 발출하는 것인데, 어떻게 (마음보다) 의지를 먼저 진실하게 합니까? 曰: “小底卻會牽動了大底. 心之所以不正, 只是私意牽去. 意才實, 心便自正. 聖賢下語, 一字是一字, 不似今人作文字, 用這箇字也得, 改做那一字也得.” '''대답: 역설적으로 작은 것이 큰 것을 끌고 갈 수 있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까닭은 단지 사사로운 의지(私意)가 끌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는 순간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 성현이 구사하는 언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의미가 있으니,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쓸 때처럼 이 글자를 써도 되고 저 글자로 바꿔써도 된다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  15:117 格物者, 知之始也; 誠意者, 行之始也. 意誠則心正, 自此去, 一節易似一節. 拱壽(65때). '''격물은 앎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의 시작이다. 의지가 진실해면 마음이 바르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매 단계 더 쉬워진다.<ref>15:115를 축약한 듯한 내용이다.</ref> 공수(拱壽)의 기록. (65세) *  15:118 致知·誠意兩節若打得透時, 已自是箇好人. 其它事一節大如一節, 病敗一節小如一節. 自修(65때). '''치지와 성의 두 단계를 투철하게 해내면(打得透), 이미(已自) 좋은 사람이다. 그 다음 단계는, 일의 스케일은 매 단계 더 커지지만, 병폐는 매 단계 더 작아진다. 자수(自修)의 기록. (65세) *  15:119 格物者, 窮事事物物之理; 致知者, 知事事物物之理. 無所不知, 知其不善之必不可爲, 故意誠; 意旣誠, 則好樂自不足以動其心, 故心正. 恪.<ref>중화서국판에서는 기록자의 이름을 '格'이라고 적었으나 옳지 못하다. 조선정판본 등을 따라 恪으로 교감한다.</ref> '''격물이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치지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모르는 것이 없어서, 선하지 않은 짓을 행해서는 절대로 안 됨을 알기 때문에 의지가 진실해진다. 의지가 성실해지면 좋아하는(好樂)<ref>대학 전 7장에서 마음의 바름을 깨뜨리는 요소들 중 하나로 거론한다.</ref> 것이 자연히 마음을 동요하지 못하게 되므로 마음이 바르게 된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120 格物·致知·正心·誠意, 不可著纖毫私意在其中. <椿錄云: “便不是矣.”> 致知·格物, 十事格得九事通透, 一事未通透, 不妨; 一事只格得九分, 一分不透, 最不可. 凡事不可著箇“且”字. “且”字, 其病甚多. '''격물, 치지, 정심, 성의는 그 속에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의지(私意)도 두어서는 안 된다. <춘(椿)의 기록에는 '옳지 않다(便不是矣).'> 치지와 격물에 있어서 열 가지 사안 가운데 아홉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했는데 한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는 괜찮지만, 한 가지 사안을 90%만 탐구하여 이해하고 나머지 10%는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불가하다.<ref>비유하자면, 열 문제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홉 문제를 철저히 이해했으나 한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직 건드리지도 못한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단 풀이에 성공한 아홉문제의 경우는 완전히 이해가 되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고 나머지 한 문제도 수험생의 철저한 성미로 볼 때 시간이 허락될 때 이해해낼 것이다. 반면에 한 문제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90%까지만 이해한 상태에서 그만두고 방치하는 학생이라면 '철저한 성미'가 없음을 알 수 있고, 풀었다는 그 문제 또한 정말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ref> 모든 일에 '일단은(且)'<ref>'일단은 이렇게'라거나 '우선 이렇게 해두고'라는 표현에는 대충대충의 혐의가 있다. 물론 주희 본인은 이 말을 종종 사용한다.</ref>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일단은'에는 병폐가 매우 많다. *  15:121 格物·致知·誠意·正心, 雖是有許多節次, 然其進之遲速, 則又隨人資質敏鈍. 履孫(65때).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비록 여러 단계가 있지만, 진전의 속도는 또 그 사람의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 <ref>이 조목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을 구박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전진의 속도는 어차피 자질에 따른 것이니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15:84를 보라.</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22 大學於格物·誠意, 都鍛煉成了, 到得正心·修身處, 只是行將去, 都易了. 蘷孫(68이후). ''' '대학'은 격물과 성의에서 단련(鍛煉)이 모두 끝난다. 정심과 수신의 경우는 그저 쭉 나아가는 것 뿐이니 모두 한결 쉽다.<ref>이 조목은 16:123과 매우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23 致知·誠意·正心, 知與意皆從心出來. 知則主於別識, 意則主於營爲. 知近性, 近體; 意近情, 近用. 端蒙(50이후). '''치지, 성의, 정심에서 지(知)와 의(意)는 모두 심(心)에서 나온다. 지는 식별(別識)을 주관하고,<ref>이치를 식별하는 일이다. 15:99에서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ref> 의는 영위(營爲)<ref>의도를 가지고 개입하여 일을 처리함을 말한다. 1:18을 참조하라.</ref>를 주관한다. 지는 본성(性), 본체(體)에 가깝다. 의는 감정(情), 작용(用)에 가깝다.<ref>주희의 심리학 체계에 의하면 심(心)은 우리 정신영역을 통틀어 지시하는 말이다. 그 심의 생래적 퀄리티가 성(性)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래적 퀄리티가 현실로 발현된 모습이 정(情)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면, 보고 느끼고 슬퍼하고 우는 모든 일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心)이 보고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슬퍼하고 마음이 운 것이니 모두 마음이 주관한 일이다. 이 슬픔은 마음이 타고난 어떤 성질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 발현된 것이다. 발현된 것이 감정이고,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 쪽이 본성이다. 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  15:124 敬之問誠意·正心·修身. '''경지(敬之)<ref>주희의 삼남인 주재(朱在)이다.</ref>가 성의, 정심, 수신을 질문. 曰: “若論淺深意思, 則誠意工夫較深, 正心工夫較淺; 若以小大看, 則誠意較緊細, 而正心·修身地位又較大, 又較施展.” 賀孫(62이후). '''대답: 깊이로 논하자면 성의의 노력(工夫)이 더 깊고 정심의 노력이 더 얕다. 크기로 보자면 성의가 더 긴밀하고 세밀하다. 정심과 수신의 영역은 더 크고 더 널리 펼쳐진다.<ref>넓고 크다는 것은 응용의 영역이 넓고 크다는 뜻이다. 예컨대 평천하의 공부는 치국의 공부에 비해 적용 면적이 넓고 크다. 다만 공부의 내용이 얼마나 정밀한가를 따지자면 치국이 평천하보다 정밀하다.</ref> *  15:125 誠意·正心·修身, 意是指已發處看, 心是指體看. 意是動, 心又是該動靜. 身對心而言, 則心正是內. 能如此修身, 是內外都盡. 若不各自做一節功夫, 不成說我意已誠矣, 心將自正! 則恐懼·好樂·忿懥引將去, 又卻邪了. 不成說心正矣, 身不用管! 則外面更不顧, 而遂心跡有異矣. 須是“無所不用其極”. 端蒙(50이후). '''성의, 정심, 수신의 경우, 의지(意)는 이미 발출한 지점을 지시한 것이고 마음(心)은 본체(體)를 지시한 것이다. 의지는 움직임이고, 마음은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포함한다.<ref>마음의 여러 측면을 이발과 미발에 배속한 것에 관해서는 5:71을 참조하라.</ref> 몸(身)과 마음(心)을 상대하여 말하면 마음이 바로 안쪽이다. 이렇게 몸을 닦을(修)<ref>'수(修)'는 대개 '닦다'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기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컨디션을 올리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옷을 수선(修繕)하거나 차량을 수리(修理)한다고 할때도 이 '수'자를 쓴다. 늘 안경을 닦아 깨끗함을 유지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닦고 거실 창문을 닦는 것도 '닦다'이다. 더 나은 번역어를 고민해보았으나 딱히 떠오르지 않아 우선은 '닦다'로 해둔다.</ref> 수 있다면 안쪽과 바깥쪽이 모두 남김없이 완전해진다. 만약 각각의 단계에서 고유한 노력(功夫)을 별도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설마하니 '내 의지가 이미 진실하니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라고 할 참인가? 그러면 두려움(恐懼), 좋아함(好樂), 분노(忿懥)<ref>대학 전7장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는 원인으로 두려움, 좋아함, 분노, 근심걱정을 꼽았다.</ref>에 끌려가서 (마음이) 사특해져버릴 것이다. 설마하니 '내 마음이 바르게 되었으니 몸은 돌볼 필요가 없다!'고 할 참인가? 그러면 외면을 더는 돌보지 않아서 결국 마음과 행적에 차이가 생겨버린다. 반드시 '모든 일에서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ref>대학 전 2장.</ref>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6 或問: “意者, 乃聽命於心者也. 今曰‘欲正其心, 先誠其意’, 意乃在心之先矣.”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ref>대학 경 1장</ref>고 하는데, 의지가 마음의 앞에 있게 됩니다. 曰: “‘心’字卒難摸索. 心譬如水: 水之體本澄湛, 卻爲風濤不停, 故水亦搖動. 必須風濤旣息, 然後水之體得靜. 人之無狀汙穢, 皆在意之不誠. 必須去此, 然後能正其心. 及心旣正後, 所謂好惡哀矜, 與修身齊家中所說者, 皆是合有底事. 但當時時省察其固滯偏勝之私耳.” 僩(69이후). '''대답: '심(心)'이라는 개념은 포착하기 어렵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물과 같다. 물의 본체(體)<ref>'체(體)'는 보통 '본체'라고 번역하는데 영역자들의 경우 '실체(substance)'나 '본질(essence)'을 선호한다. 여기서는 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말한다.</ref>는 맑고 투명(澄湛)하지만, 바람과 파도가 그치지 않아서 물 역시 요동치게 된다. 반드시 바람과 파도가 멈춘 뒤에야 물의 본체가 고요해진다. 사람의 추악하고(無狀) 더러운 행실은 모두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다. 반드시 이것을 제거한 뒤에야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마음이 바르게 되고 나서 보면 (대학에서) 이른바 좋아함과 싫어함(好惡), 가엽고 불쌍히 여김(哀矜) 및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부분에서 말하는 것들<ref>대학 전 8장에서는 수신과 제가를 해설하는데, 감정적 치우침으로 인하여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문구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친애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미워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외경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애긍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거만함에서 편벽됨이 생긴다. 그런데 주희는 대학장구의 이 부분 주석에서 이러한 감정들이 '사람에게 있어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在人, 本有當然之則)'라고 하여 한편으로 긍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감정들이 치우치고 함닉하여 수신과 제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긴 하지만 한결같이 부정적인 대학 본문의 엄격함에 비하면 주희의 주석은 확실히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ref>이 모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다(合有底事).<ref>대학장구에서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本有當然之則)'고 한 것과 상통한다.</ref> 다만 때때로 그 막히고 치우친 사사로움을 성찰해야 할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壯祖錄疑同聞別出.> '''<장조(壯祖)의 기록은 동석에서 같은 말을 들은 듯하다. 별도의 조목으로 따로 배치했다.><ref>바로 다음 조목이다. 15:115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5:127 問: “心者, 身之主; 意者, 心之發. 意發於心, 則意當聽命於心. 今曰‘意誠而后心正’, 則是意反爲心之管束矣, 何也?” '''질문: 마음(心)은 몸(身)의 주인이고 의지(意)가 마음에서 발출한다면 의지는 당연히 마음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대학에서는)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하니, 의지가 역으로 마음을 통제(管束)하는 꼴이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曰: “心之本體何嘗不正? 所以不得其正者, 蓋由邪惡之念勃勃而興, 有以動其心也. 譬之水焉, 本自瑩淨寧息, 蓋因波濤洶湧, 水遂爲其所激而動也. 更是大學次序, 誠意最要. 學者苟於此一節分別得善惡·取舍·是非分明, 則自此以後, 凡有忿懥·好樂·親愛·畏敬等類, 皆是好事. 大學之道, 始不可勝用矣.” 壯祖(미상). '''대답: 마음의 본체가 언제 한 번 바르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마음이) 바름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사악(邪惡)한 생각(念)이 뭉게뭉게(勃勃) 일어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본래는 깨끗하고 고요하지만(瑩淨寧息), 파도가 거칠게 치솟으면(洶湧) 그 결과 물도 격동하게 된다. 더욱이 '대학'의 순서에서는 성의(誠意)가 가장 중요하다. 배우는 이들이 이 대목에서 선악과 취사와 시비의 분별을 명확히 할 수만 있으면 그 이후에 나오는 저 모든 분노(忿懥), 좋아함(好樂), 친애(親愛), 외경(畏敬) 등의 일들이 모두 좋은 일(好事)이다.<ref>'모두 좋은 일'에 관해서는 15:126을 보라. 분노와 좋아함은 15:125를, 친애와 외경은 126을 보라.</ref> '대학'의 도는 이때 비로소 이루 다 쓸 수 없게(不可勝用) 된다.<ref>그 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맹자 7A:23이나 7B:31을 보라.</ref> 장조(壯祖)의 기록.<ref>장조가 주희를 사사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15:126의 원주가 사실이라면 역시 69세 이후에 들은 내용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f> *  15:128 問: “心如何正?” '''질문: 마음은 어떻게 바로잡습니까? 曰: “只是去其害心者.” 端蒙(50이후). '''대답: 마음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9 或問正心修身. '''어떤 사람이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에 관하여 질문. 曰: “今人多是不能去致知處著力, 此心多爲物欲所陷了. 惟聖人能提出此心, 使之光明, 外來底物欲皆不足以動我, 內中發出底又不陷了.” 祖道(68때). '''대답: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치지(致知)에 힘을 쓰지 못하여 이 마음이 대부분 물욕에 함닉(陷)당하게 되었다.<ref>주희가 욕망이 마음을 '함'한다고 할 때의 주된 이미지는 사람을 깊은 물에 빠뜨리는(陷溺) 장면이다. 11:5와 13:23을 보라.</ref> 오직 성인만이 이 마음을 끌어내어(提出)<ref>물에 빠진 사람을 붙잡아 끄집어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좋다.</ref> 밝게 만들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밖에서 들어온 물욕이 나를 움직이기 부족하고 안에서 발출한 것도 나를 함닉시키지 못하게 된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130 心纔不正, 其終必至於敗國亡家. 僩(69이후).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파멸시키는(敗國亡家) 지경에 이른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31 "誠意正心章, 一說能誠其意, 而心自正; 一說意誠矣, 而心不可不正.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문(問)'자가 이 조목의 제일 앞에 있다. 조선고사본 쪽이 더 합리적이므로 그쪽을 따라 번역한다.</ref>: 修身齊家亦然否?" 질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장은, 어디서는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만 있으면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고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의지가 진실해졌어도 마음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ref>전자는 성의의 완성과 함께 정심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말인 반면 후자는 성의 이후에도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 정심해야 한다는 말이다.</ref>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이와 같습니까? 曰: “此是交會處, 不可不看.” '''대답: 이것은 두 단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니<ref>성의단계와 정심단계가 교차하고 수신단계와 제가단계가 교차한다는 말이다.</ref>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又曰: “誠意以敬爲先.” 泳(66때). 또 말함: 성의는 경(敬) 공부가 우선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32 或問: “正心·修身<ref>매우 많은 판본에서는 '성의(誠意)'로 적혀있다. 다만 주희가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가지고 답변하는 만큼 질문도 정심과 수신이어야 말이 된다. 본 조목과 사실상 동일한 16:166쪽도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질문하고 있다. 전경당본(1876)에서 이러한 근거로 이렇게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ref>, 莫有淺深否?” '''누군가의 질문: 정심과 수신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습니까?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自心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出來. 但正心, 卻是萌芽上理會. 若修身與絜矩等事, 都<ref>직전 교감주와 마찬가지로 전경당본(1876)에서 却을 都로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 다만 16:166은 却이다. 어느쪽을 택해도 큰 차이는 없으나 이 경우는 특별히 더 강한 근거가 없는 한 却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ref>是各就地頭上理會.” '''대답: 정심은 마음의 레벨에서 말한 것이고 수신은 실제 사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應事接物) 레벨에서 말한 것이다. 무슨 사태가 됐든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수신과 혈구(絜矩)<ref>대학 전 10장에서 언급한 혈구지도를 말한다. 15:76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같은 것도 모두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정심은 (마음에서 막 틔워나온) 맹아(萌芽)의 레벨에서 탐구하는 것이고 수신과 혈구 같은 일들은 각각의 사례에 나아가 탐구하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6:166과 거의 동일하다.</ref> *  15:133 毅然問: “‘家齊, 而后國治, 天下平.’ 如堯有丹朱, 舜有瞽瞍, 周公有管蔡, 卻能平治, 何也?” '''의연(毅然)<ref>황의강(黃義剛)이다.</ref>의 질문: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는데, 요(堯)에게는 단주(丹朱)<ref>요의 아들로 불초자식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고, 순(舜)에게는 고수(瞽瞍)<ref>순의 아버지로 못난 아비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고, 주공에게는 관채(管蔡)<ref>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형제들이다. 못난 형제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고 태평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ref>고대의 성인들은 집안도 다스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냐는 질문이다.</ref> 曰: “堯不以天下與丹朱而與舜, 舜能使瞽瞍不格姦, 周公能致辟于管蔡, 使不爲亂, 便是措置得好了. 然此皆聖人之變處. 想今人家不解有那瞽瞍之父, 丹朱之子, 管蔡之兄, 都不須如此思量, 且去理會那常處.” 淳(61·70때). '''대답: 요는 천하를 단주에게 주지 않고 순에게 주었으며, 순은 고수가 간사함에 이르지 못하게 했고(不格姦),<ref>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ref> 주공은 관숙과 채숙을 주살하여(致辟) (주나라의) 혼란거리가 되지 못하게 했으니<ref>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숙은 죽였고 채숙은 가택연금시켰고 곽숙(霍叔)은 서인으로 강등시켰다.</ref> 적절히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성인이 임기응변한(變) 경우이다.<ref>'상(常)'은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적인 윤리이다. 반면에 '변(變)'은 원칙의 준수가 역설적으로 윤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칙을 뒤집음으로써(주로 정 반대 방향을 뒤집는다)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말하자면 '상황윤리'이다. 15:39과 51에서 정도와 상도를 구분한 것을 참조하라.</ref> 생각건대 지금 사람들은 고수와 같은 아버지나 단주와 같은 아들이나 관채와 같은 형이 있을 수 없으니<ref>'불해(不解)'는 cannot이다.</ref>, 전혀 그런쪽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우선은 (성인이) 상도(常)를 쓴 지점을 탐구하라.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  15:134 “壹是”, 一切也. 漢書平帝紀“一切”, 顔師古注: “猶如以刀切物, 取其整齊.” 泳(66때). ''' '일시(壹是)'는 일체(一切)라는 뜻이다.<ref>대학 경 1장의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라는 구문의 자구풀이이다.</ref> 한서(漢書) 평제기(平帝紀)의 '일체(一切)'에 대한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에서 '마치 칼로 물건을 자른 것 같다는 뜻으로, 그 가지런하다는(整齊) 속성을 취한 것이다.<ref>다수의 물건의 크기와 모양, 배치 간격 등이 고르고 가지런한 모양을 말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한서 평제기 원문과 그에 대한 안사고의 주석은 원시(元始) 원년(元年) 춘정월 조에 보인다.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 영(泳)의 기록. (66세) *  15:135 李從之問: “‘壹是皆以修身爲本’, 何故只言修身?” '''이종지(李從之)<ref>'주자문인' p.84 에서는 이덕지(李德之)의 오기로 본다.</ref>의 질문: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ref>대학 경 제 1장</ref>고 했는데, 왜 그저 수신만 말합니까? 曰: “修身是對天下國家說. 修身是本, 天下國家是末. 凡前面許多事, 便是理會修身. ‘其所厚者薄, 所薄者厚’, 又是以家對國說.” 㽦(59때). '''대답: 수신은 천하, 국, 가에 상대해서 말한 것이다. 수신이 근본이고 천하, 국, 가는 말단이다.<ref>위 인용구에 이어서 대학 경 1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그 근본이 어지럽고서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후하게(厚) 할 것을 박하게(薄) 하고 박하게(薄) 할 것을 후하게(厚) 하는 경우는 존재한 적이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이에 대한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근본은 몸(身)을 말하고 후하게 할 것은 집안(家)을 말한다(本, 謂身也, 所厚, 謂家也).'</ref> 무릇 (팔조목) 앞부분의 여러 일들은<ref>격물, 치지, 성의, 정심을 말한다.</ref> 수신의 실천이다. '후하게 할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할 것을 후하게 한다'는 것은 집안(家)<ref>후하게 할 것이다.</ref>을 나라(國)<ref>박하게 할 것이다.</ref>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순(㽦)의 기록. (59세) *  15:136 問: “大學解: ‘所厚, 謂家.’ 若誠意正心, 亦可謂之厚否?” '''질문: '대학'의 해설서<ref>대학장구를 말한다.</ref>에서 '후하게 할 것은 집안이다'<ref>15:135를 보라.</ref>라고 했는데, 성의와 정심 역시 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曰: “不可. 此只言先後緩急. 所施則有厚薄.” 節(64이후). '''대답: 불가하다. 이는<ref>격물부터 수신까지의 단계를 말하는 듯하다.</ref> 단지 선후와 완급을 말할 뿐이다.<ref>격물부터 수신까지는 시간적 순서와 시급성의 순서를 기준으로 이와 같이 정렬한 것일 뿐이다. '격물에게 후하게 베풀어주고 성의에게 덜 베풀어준다' 같은 말은 어색하다.</ref> 베푸는 바에는<ref>제가 이후부터는 수양의 결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이므로 '베푸는' 단계이다.</ref> 후하고 박하고가 있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37 問: “大學之書, 不過明德·新民二者而已. 其自致知·格物以至平天下, 乃推廣二者, 爲之條目以發其意, 而傳意則又以發明其條目者. 要之, 不過此心之體不可不明, 而致知·格物·誠意·正心, 乃其明之之工夫耳.” '''질문: '대학'이라는 책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 두 가지일 뿐입니다.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의 여덟 조목은) 곧 이 두 가지를 확장하여 (이 두 가지를 위한) 조목으로 삼아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드러낸 것이며, 전(傳)<ref>대학은 가장 앞쪽인 경 1장에서 팔조목을 대략적으로 소개한 후 그 뒤의 전(傳)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한다.</ref>의 뜻은 다시 그 조목들(의 의미를) 밝힌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마음의 본체는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치지, 격물, 성의, 정심이 바로 그것을 밝히려는 공부(工夫)인 것에 불과합니다. 曰: “若論了得時, 只消‘明明德’一句便了, 不用下面許多. 聖人爲學者難曉, 故推說許多節目. 今且以明德·新民互言之, 則明明德者, 所以自新也; 新民者, 所以使人各明其明德也. 然則雖有彼此之間, 其爲欲明之德, 則彼此無不同也. 譬之明德卻是材料,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 卻是下工夫以明其明德耳. 於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之際, 要得常見一箇明德隱然流行于五者之間, 方分明. 明德如明珠, 常自光明, 但要時加拂拭耳. 若爲物欲所蔽, 卽是珠爲泥涴, 然光明之性依舊自在.” 大雅(49이후). '''대답: 다 깨닫고(了得) 난 시점으로 논하자면 '명명덕(明明德)' 한 구절만 있으면 되니, 그 아래에 붙은 저 많은 것들이 다 불필요하다. 성인은 배우는 이들이 (명명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저 많은 단계들을 (두고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제 먼저 명덕과 신민을 짝지어 말하자면, 명명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신민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자신의 명덕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냐 타인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덕을 밝히고자 하는 점에 있어서는(其爲欲明之德)<ref>이 구문을 축자역하면 '그 밝히고자 하는 덕이 됨'이 된다. 직역으로 무난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으므로 일단 이렇게 의역해둔다.</ref> 서로 차이가 없다. 비유하자면 명덕은 원재료이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애써 노력하여(下工夫) 그 명덕을 밝히려는 것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의 단계에서 항상 명덕이 은연중에 이 다섯 가지 사이에서 흐르고 있음을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의 이해가) 분명해진다. 명덕은 마치 밝은 구슬(明珠)과 같아서 항상 스스로 밝게 빛나긴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털고 닦아주어야 한다. 만약 물욕이 뒤덮어버리면(蔽),<ref>통상적으로 이 글자는 '가리다' '가리워지다'로 번역한다. 하지만 '가리다'는 이 글자의 본래 이미지가 바가지나 이불 같은 것으로 휙 덮어버리는 것, 혹은 진흙 같은 것을 쏟아부어 뒤덮어버리는 것임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ref> 구슬은 진흙에 오염되겠지만, 그래도 저 빛나는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以下總論綱領·條目.> '''<이하의 조목들은 대학의 강령과 조목들에 대한 총론> *  15:138 大學“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此三箇是大綱, 做工夫全在此三句內. 下面知止五句是說效驗如此. 上面是服藥, 下面是說藥之效驗. 正如說服到幾日效如此, 又服到幾日效又如此. 看來不須說效亦得, 服到日子滿時, 自然有效. 但聖人須要說到這田地, 敎人知“明明德”三句. 後面又分析開八件: 致知至修身五件, 是明明德事; 齊家至平天下三件, 是新民事. 至善只是做得恰好. 後面傳又立八件, 詳細剖析八件意思. 大抵閑時喫緊去理會, 須要把做一件事看, 橫在胸中, 不要放下. 若理會得透徹, 到臨事時, 一一有用處. 而今人多是閑時不喫緊理會, 及到臨事時, 又不肯下心推究道理, 只說且放過一次亦不妨. 只是安于淺陋, 所以不能長進, 終於無成. 大抵是不曾立得志, 枉過日子. 且如知止, 只是閑時窮究得道理分曉, 臨事時方得其所止. 若閑時不曾知得, 臨事如何了得? 事親固是用孝, 也須閑時理會如何爲孝, 見得分曉, 及到事親時, 方合得這道理. 事君亦然. 以至凡事都如此. ''' '대학'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 이 세 가지가 큰 줄기(大綱)이니, 실제로 힘을 쓰는(工夫) 것은 전적으로 이 세 구 안에 있다. 그 아래 '지지(知止)'로 시작하는 다섯 구는<ref>정/정/안/려/득의 다섯 항목을 말한다. 권 14의 말미에 자세하다. 예컨대 14:157과 158을 보라.</ref> 그 효험이 이와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위는<ref>삼강령이다.</ref> 약을 복용하는 것이고, 아래는<ref>정/정/안/려/득이다.</ref> 약의 효험을 말한 것이다. 마치 복용한지 며칠이 지나면 효과가 이러하고, 다시 며칠 복용하면 효과가 또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만 보니 효험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복용을 시작하여 날짜가 차면 자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단, 성인은 반드시 이 지점까지 설명하여 사람들이 '명명덕' 세 구에 대하여 잘 알게 하려고 한 것뿐이다. 그 다음 부분에서 다시 여덟 건을<ref>경 1장에서 설명한 격/치/성/정/수/제/치/평의 팔조목이다.</ref> 분석하는데, 치지에서 수신까지 다섯 건은 명명덕의 일이고, 제가에서 평천하까지 세 건은 신민의 일이다. 지어지선은 단지 (명명덕과 신민을) 잘 해낸다는 것이다. 그 뒤의 전(傳) 부분에서 여덟 건을 세워서 팔조목의 의미를 상세히 분석한다.<ref>전 1장부터 10장까지에서 순차적으로 팔조목을 설명한 것을 말한다.</ref> 대체로 한가할 때 절실히(喫緊) 헤아려서, 반드시 한 번에 한 건씩 주목하여 마음 한켠에 걸어두고(橫在胸中)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투철하게 이해하면 실제 사태에 직면했을 적에 하나하나 다 쓸모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한가할 때도 절실하게 헤아리려하지 않고,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도 기꺼이 심력을 다해 도리를 탐구하려하지 않으며, 그저 '한 번 쯤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천박하고 비루한(淺陋) 식견에 안주해버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이는 대개 한 번도 마음의 지향점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여(立得志) 하루하루 헛되이 시간만 보내서(枉過)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한가할 때 도리를 철저히 탐구하여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 비로소 그 멈출 곳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得其所止). 만약 한가할 때 이해해두지 않으면 실제 사태에 직면하여 어떻게 일을 제대로 처리할(了得) 수 있겠나? 부모를 모시는 데에는 물론 당연히 효(孝)의 도리를 사용하지만, 역시 한가할 때 어떻게 해야 효(孝)가 되는 건지 헤아려서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로 부모를 모실 때가 되었을 때 이 도리에 부합할 수 있다. 임금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又問: “知止, 是萬事萬物皆知得所止, 或只指一事而言?” '''재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모든 사태와 모든 사물에 있어 각각 멈출 지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한 가지 사안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曰: “此徹上徹下, 知得一事, 亦可謂之知止.” '''대답: 한 가지 일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역시 '멈출 곳을 알았다(知止)'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又問: “上達天理, 便是事物當然之則至善處否?” '''재질문: '위로 천리에 통달하고...(上達天理)'<ref>논어 14:37</ref>는 바로 사태와 사물의 '당연(當然)한 법칙(則)'<ref>법칙에는 두 가지 구분되는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만유인력의 법칙'의 경우처럼 어떠한 현상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의 법칙'의 경우처럼 우리가 어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룰을 말한다. 전자와 같은 의미를 주희는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라고 하고 후자와 같은 의미는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고 한다. 대학혹문 11장, 주자어류 17:43 등을 참조하라.</ref>이요 지극히 선한 지점(至善處) 아닙니까? 曰: “只是合禮<ref>조선고사본은 '理'이다. 여기서는 '예'로 두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ref>處, 便是天理. 所以聖人敎人致知·格物, 亦只要人理會得此道理.” '''대답: 그저 예(禮)에 합치하는 지점이 곧 천리(天理)이다. 성인이 사람들에게 치지격물하도록 한 까닭 역시 그저 사람들이 이 도리를 이해하게 하려고 해서였을 뿐이다. 又問: “大學'表裏精粗'如何?” '''재질문: '대학'에서 '바깥쪽 측면과 안쪽 측면, 정밀한 부분과 거친 부분(表裏精粗)'<ref>대학장구 전 5장.</ref>은 어떻습니까? 曰: “自是如此. 粗是大綱, 精是裏面曲折處.” '''대답: 말 그대로다. 거친 부분은 큰 틀(大綱)이고 정밀한 부분은 안쪽의 상세한(曲折) 부분이다. 又曰: “外面事要推闡, 故'齊家而后治國, 平天下'; 裏面事要切己, 故修身·正心, 必先誠意. 致知愈細密.” '''다시 말함: 바깥쪽 일은 미루어 드러내야(推闡)<ref>불명확한 도리를 추론하여(推) 명백하게 설명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闡) 것이다.</ref> 하므로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하였다. 안쪽 일은 자신에게 절실해야 하므로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앎을 지극히하는 것은 더욱 정밀한 작업이다. 又問眞知. '''다시 '진정한 앎(眞知)'이 무엇인지 질문. 曰: “曾被虎傷者, 便知得是可畏. 未曾被虎傷底, 須逐旋思量箇被傷底道理, 見得與被傷者一般, 方是.” 明作(63이후). '''대답: 호랑이에게 다쳐본 사람은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호랑이에게 다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차근차근 '호랑이에게 다침'의 도리를 잘 생각해서 호랑이에게 정말 다쳐본 사람과 똑같이 (호랑이의 무서움에 대하여 절실하게) 알게 되어야 한다.<ref>호랑이 이야기의 원조는 이정유서 2上:24이다.</ref>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39 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 大學中大抵虛字多. 如所謂“欲”·“其”·“而后”, 皆虛字; “明明德·新民·止於至善”, “致知·格物·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實字. 今當就其緊要實處著工夫. 如何是致知·格物以至于治國·平天下? 皆有節目, 須要一一窮究著實, 方是. 道夫(60이후). '''격물과 치지는 그 멈출 곳을 알고자하는(知其所止)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그 멈출 곳을 얻고자하는(得其所止) 것이다.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그 멈출 곳을 안 것이고, 의성, 심정, 신수, 가제, 국치, 천하평은 그 멈출 곳을 얻은 것이다. '대학'에는 대체로 허자(虛字)가 많다. 이른바 '원하다(欲)', '그(其)', '이후에(而后)'는 모두 허자이고,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 치지, 격물,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실자(實字)이다. 이제 응당 그 중요하고 실질적인 지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치지하고 격물하여 치국과 평천하까지 이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학에) 모두 각각의 단계가 있으니 하나하나 착실하게 탐구하여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0 自“欲明明德於天下”至“先致其知”, 皆是隔一節, 所以言欲如此者, 必先如此. “致知在格物”, 知與物至切近, 正相照在. 格物所以致知, 物才格, 則知已至, 故云在, 更無次第也. 閎祖(59이후). '''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에서부터 '...먼저 앎을 지극히해야 한다.'라는 구절까지 모두 한 단계 간격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ref>팔조목 가운데 뒤의 일곱조목간의 관계는 모두 'ㅇㅇ하려면 먼저 ㅇㅇ한다'의 형식으로 서술하지만 마지막 두 조목인 치지와 격물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렇게 간단하게 서술한다.</ref>고 (특이하게 말)한 것은 지(知)와 물(物)이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하고(相照) 있기 때문이다.<ref>소박하게 설명하자면 인식이라는 이벤트는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객체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므로 격물(인식대상에 접근하여 탐구)과 치지(탐구의 결과 앎을 획득)는 동일한 이벤트를 각각 객체쪽과 주체쪽에서 해설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조목은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한다.</ref> 사물을 탐구하여 그로써 앎이 지극해지는 것이니, 사물이 탐구되자마자 앎은 이미 지극하다. 그래서 '~에 있다(在)'고 말하고 별도의 선후 순서가 없는 것이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41 大學“明明德於天下”以上, 皆有等級. 到致知格物處, 便較親切了, 故文勢不同, 不曰“致知者先格其物”, 只曰“致知在格物”也. “意誠而后心正”, 不說是意誠了便心正. 但無詐僞便是誠. 心不在焉, 便不正. 或謂但正心, 不須致知·格物, 便可以修身·齊家, 卻恐不然. 聖人敎人窮理, 只道是人在善惡中, 不能分別得, 故善或以爲惡, 惡或以爲善; 善可以不爲不妨, 惡可以爲亦不妨. 聖人便欲人就外面攔截得緊, 見得道理分明, 方可正得心, 誠得意. 不然, 則聖人告顔子, 如何不道非禮勿思, 卻只道勿視聽言動? 如何又先道“居處恭, 執事敬”, 而後“與人忠”?“敬”字要體得親切, 似得箇“畏”字. ''' '대학'에서 '명명덕을 천하에 밝힌다' 다음의 것들은 모두 (뚜렷하게) 등급이 나눠지는데 치지와 격물에 이르러서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더 긴밀하다.<ref>이 부분은 직전 조목의 설명을 참조하라.</ref> 그래서 문세(文勢)가 달라지는데, '앎을 지극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사물을 탐구한다'고 하지 않고 그저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할 뿐이다.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의 경우, 의지가 진실해지기만 하면 마음이 곧바로 바르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만과 작위가 없기만하면 곧 '진실(誠)'하다. (이에 더하여) 마음을 여기에 두지 않으면(心不在焉)<ref>대학장구 전 7장. '마음이 여기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ref> 바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그저 마음만 바르게 하면(正心) 치지도 격물도 필요 없이 바로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인이 사람들로하여금 이치를 탐구하게 한 것은 그저 (다음과 같은) 이런 말이다(只道).<ref>여기서부터 '성득의(誠得意)' 까지가 궁리(窮理) 공부의 취지를 설명한 것이다.</ref> 사람은 선악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여 때로는 선을 악으로 오인하고 악을 선으로 오인한 결과 선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악은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성인은 사람들이 바깥쪽을 단단히 막아내고(攔截)<ref>뒤에서 언급될 '비례물시'의 경우처럼 행동거지를 잘 다스려 악을 멀리하고 도리를 견지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란절(攔截)은 길을 막아 적의 전진을 돈좌(頓挫)시키는 행위를 말한다.</ref> 도리를 분명히 보기를 바랐으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得心)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 있다(誠得意).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안자(顔子)에게 왜 '예가 아니면 생각하지 말라(非禮勿思)'<ref>만약 이렇게 말했으면 공자는 안회에게 어떤 도덕심리상의 공부, 예컨대 성의나 정심 공부를 주문한 것이 된다.</ref>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실행하지도 말라(勿視聽言動)'고만 말했겠나?<ref>논어 12:1. 이른바 '극기복례'장을 말한다.이는 모두 구체적인 행실과 행동거지의 레벨에서 악을 경계하라는 것이니 성의나 정심과 같은 도덕심리 레벨에서의 공부와는 범주가 다르다.</ref> 왜 또 먼저 '집에서 기거할 적에는 공손하고, 나가서 집무할 때에는 경건하라(居處恭, 執事敬)'고 말한 뒤에야 '남과 교제할 적에 진심을 다하라(與人忠)'고 했겠나?<ref>논어 13:19. 거처공과 집사경은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이고 여인충은 마음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도덕심리 공부이다. 전자를 후자보다 우선했다는 주장이다.</ref> '경건하라(敬)'는 글자는 친근하고 절실하게 체득해야 한다. '두려움(畏)'<ref>일을 처리할 적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미칠 파장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신함을 말한다. 이는 '두려움'의 정서에 가깝다.</ref>과 비슷하다.<ref>이 조목은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다. 주희는 어디선가 접한 잘못된 입장을 세운 뒤 그것을 공박하려고 한다. 이때 문제의 '잘못된 입장'은 도리에 대한 지적인 탐구와 이해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도덕의지와 정서, 정념 같은 심리적인 힘을 고양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스탠스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을 논박하려면 이지적인 탐구와 이해의 중요성, 즉 '궁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더니 금방 일상에서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빠져버린다.</ref>''' <銖記:先生嘗因諸生問敬宜何訓, 曰: “是不得而訓也. 惟‘畏’庶幾近之.” 銖云: “以‘畏’訓‘敬’, 平淡中有滋味.” 曰: “然.”> 榦(미상). '''<수(銖)의 기록: 선생은 일찍이 '경'자를 어떻게 풀이(訓)<ref>위에서 말한 것처럼 'A라는 글자는 B라는 글자와 뜻이 같다.'는 식의 글자풀이를 말한다.</ref>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이는 풀이할(訓) 수 없다. 오직 '두려움(畏)'이 가장 가까울 뿐이다'라고 하였다. 내가(銖) '경을 외로 풀이하니 담박한(平淡) 가운데 깊은 맛이 있다(滋味)'고 했다.<ref> '평담(平淡)'은 맛으로 치면 물과 같은 것이다. '경' 같은 단어의 뜻은 특수한 학문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는데 반해 '외'는 일상언어에 가까우므로 그 평범성과 일상성을 물맛에 비긴 것이다. 다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입 안에 넣고 굴려보면 그 안에 비범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바로 '자미(滋味)가 있다'이다. 비슷한 표현이 26:93에 보이니 참조하라.</ref> 선생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간(榦)의 기록. *  15:142 “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 <至>"致知在格物.” “欲”與“先”字, 謂如欲如此, 必先如此, 是言工夫節次. 若“致知在格物”, 則致知便在格物上. 看來“欲”與“先”字, 差慢得些子, “在”字又緊得些子. 履孫(65때). '''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부터>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에 관해서는, '하고자 한다면(欲)'과 '먼저(先)'라는 글자는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欲) 반드시 먼저(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부의 단계별 순서를 말한 것이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같은 경우 치지가 바로 격물에 있다는 것이다.<ref>치지가 격물에 수반한다는 말이다.</ref> 내 생각에 '하고자 한다면'과 '먼저'라는 글자는 (앞 조목과 뒷 조목을 연결시키는 정도가)<ref>이 부분은 일역판의 의견을 따랐다.</ref> 조금 느슨하고, '있다(在)'는 글자는 그보다 조금 더 긴밀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43 大學言‘物格而后知至', <止>'天下平.’ 聖人說得寬. 不說道能此卽能彼, 亦不說道能此而後可學彼. 只是如此寬說, 後面逐段節節更說, 只待人自看得如何. 振(미상). '''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 부터 '천하가 태평해진다'까지는 성인이 느슨하게 말하였다(說得寬). '이것을 잘 하면 저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고 '이것을 잘 하게 된 이후에 저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느슨하게 말해놓고 뒷부분에서는 순서대로 조목조목 다시 설명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스스로 어떻게 이해할지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그저 기다릴(待)<ref>이 '기다린다'는 표현은 책을 저술해놓고 서문의 말미에 자주 사용한다. 자신이 할 일은 다 했으니 훗날의 독자가 내 저술의 취지를 제대로 알아줄지 말지는 내 손을 떠난 문제이므로 훗날의 일로 맡겨놓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다.</ref> 뿐이다. 진(振)의 기록. *  15:144 蔡元思問: “大學八者條目, 若必待行得一節了, 旋進一節, 則沒世窮年, 亦做不徹. 看來日用之間, 須是隨其所在而致力: 遇著物來面前, 便用格; 知之所至, 便用致; 意之發, 便用誠; 心之動, 便用正; 身之應接, 便用修; 家便用齊; 國便用治, 方得.” '''채원사(蔡元思)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을 만약 반드시 한 조목을 완전히 해내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 단계로 점차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다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일상생활 중에 처한 상황에 따라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어떤 사물과 조우하여 그것이 눈앞에 이르면 격물을 사용하고, 앎이 이르는 곳에서는 치지를 사용하며, 의지가 발출하면 성의를 사용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정심을 사용하고, 몸이 사태와 사물을 접하고 응대할(應接) 때면 수신을 사용하며, 집안에서는 제가를 사용하고, 나라에서는 치국을 사용해야만 됩니다. 曰: “固是. 他合下便說‘古之欲明明德於天下’, 便是就這大規模上說起. 只是細推他節目緊要處, 則須在致知·格物·誠意迤邐做將去”云云. '''대답: 물론 그렇다. '대학'에서 (팔조목을 언급하는) 첫 시작을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전체적인 구조를 거론한 것이다. 단지 그 조목들 가운데 긴요한 곳을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치지, 격물, 성의부터 순서대로 해나가야 한다. (후략) 又曰: “有國家者, 不成說家未齊, 未能治國, 且待我去齊得家了, 卻來治國; 家未齊者, 不成說身未修, 且待我修身了, 卻來齊家! 無此理. 但細推其次序, 須著如此做. 若隨其所遇, 合當做處, 則一齊做始得.” 僩(69이후). '''다시 대답: 국(國)과 가(家)를 가진 자가 설마하니 '집안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으니 나라를 아직 다스릴 수 없구나. 우선 가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말할 것인가? 집안을 아직 다스리지 못한 자가 설마하니 '몸이 아직 닦이지 않았으니 우선 몸을 제대로 닦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집안을 다스리겠다'고 말하겠는가? 그런 이치는 없다. 그러나 그 순서를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ref>격물치지부터 치국평천하까지의 정방향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ref> 일상에서 조우하는 상황에 따라 마땅한 것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모든 공부를) 일제히 수행해야만 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45 大學自致知以至平天下, 許多事雖是節次如此, 須要一齊理會. 不是說物格後方去致知, 意誠後方去正心. 若如此說, 則是當意未誠, 心未正時有家也不去齊, 如何得! 且如“在下位不獲乎上”數句, 意思亦是如此. 若未獲乎上, 更不去治民, 且一向去信朋友; 若未信朋友時, 且一向去悅親, 掉了朋友不管. 須是多端理會, 方得許多節次.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知, 不是做一件淨盡無餘, 方做一件. 若如此做, 何時得成! 又如喜怒上做工夫, 固是; 然亦須事事照管, 不可專於喜怒. 如易損卦“懲忿窒慾”, 益卦“見善則遷, 有過則改”, 似此說話甚多. 聖人卻去四頭八面說來, 須是逐一理會. 身上許多病痛, 都要防閑. 明作(63이후). ''' '대학'에서 치지부터 평천하까지 많은 일들이 비록 순서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일제히 힘써야(理會) 한다. 사물을 탐구한 후에야 비로소 앎을 지극히하러 가고, 의지가 진실해진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하러 간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못하고 마음이 아직 바르지 못한 때에는 집안이 있더라도 집안을 다스리러 가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이럴 수 있겠나! 예를들어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등의 몇 구절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ref>맹자 7A:12와 중용 제 20장에 비슷한 구문이 있다. 다음은 맹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 길이 있으니,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믿음을 받는데 길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쁨을 받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 길이 있으니, 몸을 돌이켜봄에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기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몸을 성실히 하는데 길이 있으니,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居下位而不獲於上, 民不可得而治也. 獲於上有道, 不信於友, 弗獲於上矣. 信於友有道, 事親弗悅, 弗信於友矣. 悅親有道, 反身不誠, 不悅於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其身矣).' 팔조목을 치국부터 성의까지 역순으로 나열한 것과 비슷한 논조이다.</ref>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을 때 다시 백성을 다스리는 쪽으로 가지 않고 전적으로 벗에게 믿음을 받는 쪽만 신경써버리고,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때도 전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쪽만 신경써버려서 벗과의 관계는 완전히 방기하여 돌보지 않는다. 반드시 다방면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저 여러가지 단계들은 성인 역시 간략하게 선후를 구분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ref>여(與)는 오늘날 중국어 'gei(給)'와 같다.</ref> 것일 뿐이니 한 단계를 깨끗하게 해내고 나서야 다음 단계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체 어느때 다 성취할 수 있겠나!<ref>이 지점까지는 이전 몇 조목과 그 논조가 같으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ref> 또, 기쁨과 노여움(喜怒)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옳다. 다만 역시 사안마다 돌봐야 하며, 기쁨과 노여움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ref>화제가 기쁨과 노여움으로 옮겨간 것에는 어떤 대화의 맥락이 작용했음이 틀림 없으나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ref> '주역'의 손괘(損卦)에서는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懲忿窒慾)'<ref>주역 손괘 상전.</ref>고 하고, 익괘(益卦)에서는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見善則遷, 有過則改)'<ref>주역 익괘 상전.</ref>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말이 매우 많다. 성인은 온갓 방면(四頭八面)에 관하여 다 말하였으니, 하나하나 공을 들여 살펴야 한다. 일신상의 수많은 병통에 대하여 모두 방비해야 한다.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46 問: “知至了意便誠? 抑是方可做誠意工夫?” '''질문: '앎이 지극해지면 의지는 바로 진실해집니까? 아니면 그제서야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也不能恁地說得. 這箇也在人. 一般人自便能如此. 一般人自當循序做. 但知至了, 意誠便易. 且如這一件事知得不當如此做, 末梢又卻如此做, 便是知得也未至. 若知得至時, 便決不如此. 如人旣知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豈肯更試去食烏喙, 蹈水火! 若是知得未至時, 意決不能誠.”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것도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응당 순서에 따라 실천해야 한다. 단, 앎이 지극해지고나면 의지가 진실해지는 것은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다시 그렇게 하고 말았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앎이 지극해진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이미 오훼(烏喙)<ref>각시투구꽃의 뿌리덩이로 초오(草烏)라고도 한다. 오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덩이가 부자(附子)인데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독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사약의 주 성분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약용으로도 쓴다.</ref>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과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때, 그가 어찌 다시 오훼를 한 번 먹어보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를 한 번 밟아보려 하겠나?<ref>그렇게 하면 죽는다는 걸 지극하게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그걸 먹거나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100% 진심인 것이다.</ref>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 의지는 결코 진실해질 수 없다. 問: “知未至之前, 所謂愼獨, 亦不可忽否?” '''질문: 앎이 지극해지기 전에도 이른바 '신독(愼獨)'<ref>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이는 일종의 성의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제자는 '격물치지를 완수하기 이전에도 성의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거지요?'라고 물은 것이다. 15:113을 참조하라.</ref>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曰: “也不能恁地說得. 規模合下皆當齊做. 然這裏只是說學之次序如此, 說得來快, 無恁地勞攘, 且當循此次序. 初間‘欲明明德於天下’時, 規模便要恁地了. 旣有恁地規模, 當有次序工夫; 旣有次序工夫, 自然有次序功效: ‘物格, 而后知至; 知至, 而后意誠; 意誠, 而后心正; 心正, 而后身修; 身修, 而后家齊; 家齊, 而后國治; 國治, 而后天下平.’ 只是就這規模恁地廣開去, 如破竹相似, 逐節恁地去.” 㝢(61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큰 틀(規模)에서는 원래부터 모두 일제히 해야 한다. 여기서는 배움의 순서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요, 빠르게 설명하면 그렇게 번잡하지도 않으니 일단은 이 순서를 따라야 한다. 처음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큰 틀은 이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틀이 잡힌 다음에는 반드시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어야 한다.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으면 자연히 순서에 따른 효과가 있다.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며,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이며, 몸이 닦인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며,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ref>이것이 순서대로 노력한 결과 순서대로 체감하는 효과이다.</ref> 단지 이 큰 구도(規模) 속에서 이렇게 확장해 나가야 한다. 마치 대나무를 쪼개듯이 각각의 마디를 따라 이렇게 해나가야 한다.<ref>대나무 쪼개기의 비유는 15:114를 보라. 여덟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세로방향으로 쪼개면 각각의 마디를 순서에 따라 파죽지세로 쪼개나가게 된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147 說大學次序, 曰: “致知·格物, 是窮此理; 誠意·正心·修身, 是體此理; 齊家·治國·平天下, 只是推此理. 要做三節看.” 雉(미상). ''' '대학'의 순서를 설명함: 치지와 격물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은 이치를 체득(體)하는 것이며, 제가, 치국, 평천하는 이치를 미루어 확장하는(推) 것이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치(雉)의 기록. *  15:148 大學一篇卻是有兩箇大節目: 物格·知至是一箇, 誠意·修身是一箇. 才過此二關了, 則便可直行將去. 泳(66때). ''' '대학'에는 모두 두 개의 중요한 단계가 있다.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이고, 성의수신(誠意修身)이 하나이다. 이 두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49 物格·知至, 是一截事; 意誠·心正·身修, 是一截事; 家齊·國治·天下平, 又是一截事. 自知至交誠意, 又是一箇過接關子; 自修身交齊家, 又是一箇過接關子. 賀孫(62이후). '''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의 덩어리이고, 의성(意誠)과 심정(心正)과 신수(身修)가 또 하나의 덩어리이며, 가제(家齊)와 국치(國治)와 천하평(天下平)이 또 하나의 덩어리이다. 지지(知至)와 성의(誠意)의 교차점이 두 영역이 연접한 관문(過接關子)<ref>과접(過接)은 두 영역이 붙어있어서(接) 그 경계선을 통과(過)할 수 있는 지점이다. 68:28에서 봄과 가을을 겨울과 여름이라는 두 영역 사이의 '과접처'라고 설명한 것을 참조하라. 관자(關子)는 관문이다.</ref>이고, 수신(修身)에서 제가(齊家)의 교차점이 또 두 영역이 연접한 또 하나의 관문이다.<ref>본 조목에서는 팔조목을 '공부형'(격물 치지 성의)로 쓰기도 하고 '완성형'(물격 지지 의성)으로 쓰기도 하는데 딱히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두 개의 관문을 소개할 적에 전자를 '지지와 성의의 관문'이라고 소개했으면 그 뒤쪽 관문은 응당 '신수와 제가'의 관문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또 신수가 아니라 '수신'이라고 쓴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는 알기 어렵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0 自格物至修身, 自淺以及深; 自齊家至平天下, 自內以及外. 敬仲(62때). '''격물에서 수신까지는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요,<ref>15:124에서는 성의가 깊고 정심은 얕다고 했다.</ref> 제가에서 평천하까지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경중(敬仲)의 기록. (62세) *  15:151 或問: “格物·致知, 到貫通處, 方能分別取舍. 初間亦未嘗不如此, 但較生澀勉强否?” '''누군가의 질문: 격물과 치지는 관통하는 경지(貫通處)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시비선악을) 취사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초기에도 이렇게 (취사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상대적으로 생소하여 애써가며 해야하는 것 뿐이지 않습니까<ref>숙련자가 힘을 빼고 하는 일을 초심자가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ref>? 曰: “格物時是窮盡事物之理, 這方是區處理會. 到得知至時, 卻已自有箇主宰, 會去分別取舍. 初間或只見得表, 不見得裏; 只見得粗, 不見得精. 到知至時, 方知得到; 能知得到, 方會意誠, 可者必爲, 不可者決不肯爲. 到心正, 則胸中無些子私蔽. 洞然光明正大, 截然有主而不亂, 此身便修, 家便齊, 國便治, 而天下可平.” 賀孫(62이후). '''대답: '격물'의 단계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때이니, 이는 곧 (사물과 사태에 대하여) 처리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이미 주체성(主宰)이 생겨 취사분별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간혹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거나, 거친 스케치만 보고 정밀한 디테일은 보지 못한다. 앎이 지극해짐(知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겉과 속, 거침과 정밀함을 모두) 알게 된다. 알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의지가 성실해질 수 있어서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되면(心正) 가슴 속을 뒤덮은(蔽)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어서 투명하게(洞然) 광명정대(光明正大)하며,<ref>'뒤덮다(蔽)'에 대해서는 15:137을 참조하라. 덮고 있는 것이 없으니 마음 본연의 광명정대한 빛(곧, 명덕)이 밖으로 발산하는데 막힘이 없다. 이 빛은 휘황찬란하다기보다는 밝고 명료하고 또렷한 실내조명 같은 것이다. 불 꺼진 방은 어둑하여 사물의 윤곽이 흐려서 대강의 스케치만 보인다. 그러다 불이 켜지면 그 밝은 빛에 힘입어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고 명료하게 포커스가 잡힌다. 통연(洞然)은 그런 느낌을 형용하는 말이다.</ref> 칼로 자른듯이(截然) 주관이 있어(有主) 혼란스럽지 않게 된다.<ref>사태와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게 보이므로 시비선악의 취사분별이 확고하여 혼란스럽거나 흔들림이 없다.</ref> 이에 몸이 닦이고, 집안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해질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2 格物·致知, 比治國·平天下, 其事似小. 然打不透, 則病痛卻大, 無進步處.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這裏縱有未盡處, 病痛卻小. 格物·致知, 如“知及之”; 正心·誠意, 如“仁能守之”. 到得“動之不以禮”處, 只是小小未盡善. 蓋卿(65때). '''격물과 치지는 치국과 평천하에 비하면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커서 진보할 수 없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規模)은 크지만 이 단계에서 조금 미진하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격물과 치지는 '앎이 이른 것(知及之)'과 같고, 정심과 성의는 '인으로 지킬 수 있다(仁能守之)'와 같다.<ref>논어 15:32. '앎이 미쳐도 인으로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앎이 이른다는 것은 이지적인 사유의 결과 주어진 도덕원칙에 대하여 납득하는 것을 말하고 인으로 지킨다는 것은 그러한 도덕원칙을 몸으로 받아들여 그 원칙과의 싱크로율이 고조됨을 말한다. 이지적으로 납득하기만 하고 그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치 잘 만들어졌으되 그것을 실행할 리소스가 부족한 앱(App)처럼 '얻더라도 반드시 잃게' 된다.</ref> '예로써 움직이지 않는다'<ref>논어15:32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고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더라도 (그들을) 예로써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선(善)하지 못하다(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예는 이치를 현실사회에서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규칙들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주희는 여기서 '장중하게 임하고 예로써 움직이는' 것을 대학의 치국과 평천하 단계의 일에 비기고 있다.</ref>의 경우는 단지 선(善)하지 못한 부분이 소소하게 있다는 것뿐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方子錄云: “格物·誠意, 其事似乎小. 然若打不透, 卻是大病痛.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若有未到處, 其病卻小, 蓋前面大本領已自正了. 學者若做到物格·知至處, 此是十分以上底人.”> '''<방자(方子)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함: 격물과 성의는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크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은 크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이는 (팔조목의) 앞쪽에 위치한 근본적인 부분(大本領)에서 이미 올바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가 만약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데까지 이르렀으면 그는 이미 100%를 초과한(十分以上)<ref>마치 요즘 사람처럼 주희도 '100% 이상'이니 '200%'니 하는 과장법을 쓴다. 14:106을 참조하라.</ref> 인물이다.> *  15:153 問: “看來大學自格物至平天下, 凡八事, 而心是在當中, 擔著兩下者. 前面格物·致知·誠意, 是理會箇心; 後面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心之功用.” '''질문: 제 생각에 '대학'은 격물에서 평천하까지 이르기까지 일이 모두 여덟가지가 있는데 마음(心)이 그 한가운데에 있으면서(當中) (앞과 뒤) 양쪽(兩下)<ref>이 다음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격/치/성 까지가 앞쪽이고 수/제/치/평이 뒤쪽이다.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앞쪽이 수기(修己), 뒤쪽이 치인(治人)이다.</ref>을 모두 지탱하고 있습니다. 앞쪽의 격물, 치지, 성의는 마음을 헤아리는(理會) 것이고, 뒤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마음의 효과(功用)입니다.<ref>배우는 이가 실제로 작업하는 지점은 '수기' 부분이고, 수기에서 열심히 작업한 결과가 '치인'이라는 말이다.</ref> 曰: “據他本經, 去修身上截斷. 然身亦是心主之.” 士毅(미상). '''대답: 대학의 본경(本經)<ref>대학 경 1장을 말한다.</ref>에서는 수신(修身)을 기준으로 자른다.<ref>대학 경 1장.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ref> 그러나 몸 또한 마음이 주재하는 것이다. 사의(士毅)의 기록. *  15:154 自明明德至於治國·平天下, 如九層寶塔, 自下至上, 只是一箇塔心. 四面雖有許多層, 其實只是一箇心. 明德·正心·誠意·修身, 以至治國·平天下, 雖有許多節次, 其實只是一理. 須逐一從前面看來, 看後面, 又推前面去. 故曰“知至而後意誠, 意誠而后心正”也. 子蒙(미상). ''' 명명덕에서 치국, 평천하까지는 마치 아홉 층의 보탑(九層寶塔)과 같으니,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그저 탑의 중심축(心) 하나가 있을 뿐이다. 외면(四面)에 제아무리 층이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중심축 하나 뿐이다. 명덕, 정심, 성의, 수신에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기까지 제아무리 단계가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이치(理)' 하나 뿐이다. 반드시 하나하나 앞에서부터 이해해나가야 한다. 뒷부분에 대한 이해도 결국 앞부분을 확장해(推)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했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155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至‘致知在格物’, 詳其文勢, 似皆是有爲而後爲者.”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까지, 문장의 흐름(文勢)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무엇을 한 이후에 무엇을 한다는 것 같습니다.<ref>대학 경문에서 팔조목을 설명하는 대목은 'A를 한 이후에 B를 한다'와 같은 형태로 문장을 구성한다. 15:83을 참조하라.</ref> 曰: “皆是合當爲者. 經文旣自明德說至新民, 止於至善, 下文又卻反覆明辨, 以見正人者必先正己. 孟子曰: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亦是此意.” 道夫(60이후). '''대답: 모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다. 경문에서 이미 명덕에서 신민과 지어지선까지 설명해놓고<ref>삼강령이다.</ref> 그 아래 문장에서 다시 반복해서 분명히 변론하여<ref>팔조목이다.</ref> 남을 바로잡으려는(正人) 이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正己) 함을 보여주었다. 맹자가 말하길,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안에 있고, 집안의 근본은 자기 일신에 있다'<ref>맹자 7A:5</ref>고 했다. 이것도 역시 같은 취지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56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 至‘致知在格物’, 向疑其似於爲人. 今觀之, 大不然. 蓋大人, 以天下爲度者也. 天下苟有一夫不被其澤, 則於吾心爲有慊; 而吾身於是八者有一毫不盡, 則亦何以明明德於天下耶! 夫如是, 則凡其所爲, 雖若爲人, 其實則亦爲己而已.”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 전에는 그것이 위인지학(爲人)<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 그런데 '대학혹문'에서는 이런 뜻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정의한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ref>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인(大人)은 (생각의) 기준(度)이 천하인 사람입니다.<ref>漢書 권 52에서 '무릇 성인은 천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자입니다(夫聖人以天下為度者也).'라고 하였다.</ref> (대인은)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慊). 그런데 자신의 일신에 이 여덟 가지 조목 가운데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히 해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명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이와 같다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비록 위인지학(爲人)같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역시 위기지학(爲己)일 뿐입니다.<ref>천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치국 평천하가 모두 직분 내의 일이다. 그러므로 위인지학(직분 바깥의 일에 종사함)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위기지학(직분 안쪽의 일에 종사함)이라는 논리이다.</ref> 先生曰: “爲其職分之所當爲也.” 道夫(60이후). '''선생의 대답: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파일:KakaoTalk 20240605 154354490.jpg|섬네일|주자어류 15-156 그림]] <ref>중화서국본 314쪽의 그림을 참조할 것</ref> * 60ess0t78pwx35gfwtb27kdmy6r17jz 번역:주자어류/권16 대학3 大學三 114 86376 394566 388076 2025-07-06T11:04:18Z Thomas Dongsob Ahn 16640 /* 傳三章釋止於至善 */ 394566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6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3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 전 1장. '명명덕(明明德)' 해석(傳一章釋明明德) == * 16:1 問“克明德”. ''' '극명덕(克明德)'<ref>대학 전 1장의 첫 구문이다. 원출전은 서경 주서 강고편.</ref>에 관한 질문. 曰: “德之明與不明, 只在人之克與不克耳. 克, 只是眞箇會明其明德.” 節(64이후). '''대답: 덕이 밝으냐 밝지 않으냐는 단지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능히(克)'는 진정으로 그 밝은 덕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진덕수의 서산독서기 권 22에서도 인용하고 있다. '問克明徳.曰: 徳之明與不明, 只在人之克與不克, 須是真个㑹明其明徳.'</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 問明德·明命. ''' '밝은 덕(明德)'과 '밝은 명령(明命)'에 관한 질문.<ref>역시 대학 전 1장이다.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ref> 曰: “便是天之所命謂性者. 人皆有此明德, 但爲物欲之所昏蔽, 故暗塞爾.” 㽦(59때). '''대답: 이는 바로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性)'<ref>글자에 출입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중용 첫 장의 '천명지위성'을 언급한 것이다.</ref>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이 밝은 덕을 가지고 있다. 단지 물욕에 의해 어둡게 뒤덮혀(昏蔽) 깜깜하게 막혀버린(暗塞) 것뿐이다. 순(㽦)의 기록. (59세) *  16:3 自人受之, 喚做“明德”; 自天言之, 喚做“明命”. 今人多鶻鶻突突, 一似無這箇明命. 若常見其在前, 則凜凜然不敢放肆, 見許多道理都在眼前. '''사람이 받았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명덕(明德)'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준) 하늘 쪽에서 말하자면 '명명(明命)'이라고 부른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흐리멍텅하니(鶻鶻突突)<ref>단순한 흐리멍텅함 보다는 사리에 어둡고 시비선악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ref> 저 '밝은 명령'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만약 항상 그것이<ref>'명명(明命)'을 말한다. 대학장구 전 1장 참조.</ref> 자기 앞에 있음을 본다면, 두려움에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하여 저 많은 도리가 모두 눈앞에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又曰: “人之明德, 卽天之明命. 雖則是形骸間隔, 然人之所以能視聽言動, 非天而何.” 또 말함: 사람의 밝은 덕은 곧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비록 육신이라는 간격이 있지만,<ref>사람의 밝은 덕은 육신 안에 있고 하늘은 육신 바깥에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까닭이 하늘(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問:“苟日新, 日日新”. ''' '진실로 어느 하루 새로워졌거든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苟日新, 日日新)'에 관한 질문.<ref>대학 전 2장.</ref> 曰: “這箇道理, 未見得時, 若無頭無面, 如何下工夫? 才剔撥得有些通透處, 便須急急躡蹤趲鄕前去.” '''대답: 이 도리를 파악하기 전에는 단서가 없으니(無頭無面)<ref>여기서 두면(頭面)은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실의 '머리', 곧 실마리를 말한다.</ref> 어떻게 공부(工夫)할 수 있겠나? (물욕을) 도려내어(剔撥)<ref>이 표현에 대해서는 14:77 참조.</ref> 조금이라도 통하는 구멍이 생기면 시급히 그 자취를 따라(躡蹤) 달려나아가야 한다(趲鄕前去).<ref>주희에 따르면 사람은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도리를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든 이미 아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배움의 시작은 바로 그 이미 아는 지점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14:19를 참조하라.</ref> 又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文王能使天下無一民不新其德, 卽此便是天命之新.” '''다시 말함: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命)은 새롭다.'<ref>시경 대아 문왕편의 한 구문으로 대학 전 2장에서 인용했다.</ref> 문왕은 천하에 한 사람도 그 자신의 덕을 새롭게 하지 않은 이가 없게 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명을 갱신한(天命之新) 것이다. 又云: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다시 말함: '하늘은 우리 백성을 통해서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을 통해서 듣는다.'<ref>본래 서경 상서 태서편의 구문으로 맹자 5A:5에서 인용했다. 여기서는 주나라가 천명을 얻었다는 신화적 언명을 '민심을 얻었다'는 평이한 언어로 해석한 것이다.</ref> 或問: “此若有不同, 如何?” '''누군가의 질문: 이것에 만약 차이가 있으면<ref>하늘이 본 것과 백성이 본 것이 같지 않으면</ref> 어떡합니까? 曰: “天豈曾有耳目以視聽! 只是自我民之視聽, 便是天之視聽. 如帝命文王, 豈天諄諄然命之! 只是文王要恁地, 便是理合恁地, 便是帝命之也.” '''대답: 하늘이 어디 귀와 눈이 있어서 보고 듣고 하겠나? 그저 우리 백성들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다. 제(帝)<ref>중국 고대(특히 상나라 시기)에 섬겼던 인격신이다. 후에 천제(天帝)나 상제(上帝) 등의 관념으로 진화한다. 주희는 이치(理)의 여러 속성 가운데 세상의 주인으로서 주재하고 주관한다는 점을 특별히 지시하는 낱말이라고 보았다. 1:21을 참조하라.</ref>가 문왕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말의 경우도, 그게 어찌 하늘이 조잘조잘 간곡하게(諄諄) 명령했다는 것이겠나? 문왕이 하고자 한 것이<ref>상나라 정벌을 말한다.</ref> 곧 이치상(理)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요, 그것이 곧 제(帝)가 명령했다(命之)는 것이다.<ref>제명문왕 부터는 81:133과 거의 같다.</ref> 又曰: “若一件事, 民人皆以爲是, 便是天以爲是; 若人民皆歸往之, 便是天命之也.” '''또 말함: 예컨대 어떤 일을 백성들이 모두 옳다고 여긴다면 그게 바로 하늘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에게 백성이 모두 귀순한다면 그게 바로 하늘이 명했다(天命之)는 것이다. 又曰: “此處甚微, 故其理難看.” 賀孫(62이후). '''또 말함: 이 부분은 매우 미묘하므로 그 이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4 “顧諟天之明命”, '諟', 是詳審, '顧諟', 見得子細. 僩(69이후). ''' '고시천지명명(顧諟天之明命)'<ref>본래 서경 상서 태갑편의 구문으로 대학 전 1장에서 인용했다.</ref>에서 '시(諟)'는 상세히 살핀다는 뜻이요<ref>대학장구에서는 두 가지 다른 훈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이것(是)', 다른 하나는 '상세히 살핌'이다.</ref> '고시(顧諟)'는 자세히 이해한다는 뜻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5 “顧諟天之明命”, 只是照管得那本明底物事在. 燾(70때). ''' '고시천지명명'은 단지 원래부터 밝은 저 물건을 잘 돌보는(照管)<ref>일역판에서는 '컨트롤하다'라고 풀이한 것은 조금 지나치다. 조관(照管)은 자신이 책임지고 담당한 물건이 잘못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관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것이다.<ref>문미의 재(在)는 강조표현이다.</ref> 도(燾)의 기록. (70세) *  16:6 “顧諟天之明命”, 便是常見這物事, 不敎昏著. 今看大學, 亦要識此意. 所謂“顧諟天之明命”, “無他, 求其放心而已”. 方子(59이후). 佐同. ''' '고시천지명명'은 바로 이 물건을 항상 지켜봐서 어둡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제 '대학'을 볼 때도 역시 이 뜻을 알아야 한다.<ref>6:82를 보면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마음을 찾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에 더하여 '이제 대학을 볼 때도...'라고 이어받은 것이다.</ref> 이른바 '고시천지명명'은 '다름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ref>맹자 6A:11.</ref> 방자(方子)의 기록. 좌(佐)의 기록도 같다. (59세 이후) <ref>이 조목은 6:82의 후반부와 일치한다.</ref> *  16:7 先生問: “‘顧諟天之明命’, 如何看?” '''선생의 질문: '고시천지명명'을 어떻게 보는가? 答云: “'天之明命', 是天之所以命我, 而我之所以爲德者也. 然天之所以與我者, 雖曰至善, 苟不能常提撕省察, 使大用全體昭晰無遺, 則人欲益滋, 天理益昏, 而無以有諸己矣.” '''대답: '하늘의 밝은 명령(明命)'은 하늘이 나에게 명령한 것을 내가 나의 덕(德)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지극히 선하다고는(至善) 하나, 만일 항상 또렷한 정신으로 성찰하지(提撕省察)<ref>제시(提撕)는 본래 상대방의 귀를 붙잡고 끌어올린다는 뜻으로 자주 '각성시키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이정(二程) 등 여러 도학자들이 거경(居敬) 공부를 설명할 적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ref> 못하여 그 (밝은 명령의) 전체대용(大用全體)<ref>주희는 주로 '전체대용'으로 쓰는데 여기서는 앞뒤가 바뀌어있다. '온전한 본체'는 진리에 대한 체험적이고 불가역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말하고 '위대한 작용'은 그러한 이해에 힘입어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을 말한다. 번역의 경우 글자의 대의에 지장이 없으므로 '전체대용'이라고 풀이하였다.</ref>을 남김없이 명료하게(昭晰) 하는데 실패한다면 인욕은 날로 불어나고 천리는 날로 어두워져서 자기 안에 (밝은 명령을) 간직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曰: “此便是至善. 但今人無事時, 又卻恁昏昏地; 至有事時, 則又隨事逐物而去, 都無一箇主宰. 這須是常加省察, 眞如見一箇物事在裏, 不要昏濁了他, 則無事時自然凝定, 有事時隨理而處, 無有不當.” 道夫(60이후). '''선생의 말: 이것<ref>밝은 명령</ref>은 지극히 선한(至善) 것이다. 다만 요즘 사람들은 일이 없을 때도 흐리멍텅하고, 일이 있을 때는 또 사건과 사물에 끌려가버려 주재하는 힘(主宰)<ref>주재는 오늘날 말로 주인님, 마스터(master), 로드(lord) 정도의 의미이다. 여기서는 도덕원칙에 대한 확고하고 명징한 식견을 바탕으로 복잡한 사안 속에서 시비선악을 명쾌히 파악하여 상황을 주도하는 힘을 말한다. 주재하는 힘이 없어서 끌려가버리는 사람과 주재하는 힘이 있어 제대로 대응하는 사람의 대비에 관해서는 15:52를 참조하라.</ref>이 전혀 없다. 이것<ref>밝은 명령</ref>을 항상 성찰해서, 마치 정말로 여기에 있는 어떤 물건 하나를 보는 것처럼 해서 그것<ref>밝은 명령</ref>을 어둡고 탁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일이 없을 때는 자연히 고요하게 안정되고(凝定), 일이 있을 때는 이치에 따라 처리하여 마땅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8 “顧諟天之明命”, 古註云: “常目在之.” 說得極好. 非謂有一物常在目前可見, 也只是長存此心, 知得有這道理光明不昧. 方其靜坐未接物也, 此理固湛然淸明; 及其遇事而應接也, 此理亦隨處發見. 只要人常提撕省察, 念念不忘, 存養久之, 則是理愈明, 雖欲忘之而不可得矣. 孟子曰: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所謂求放心, 只常存此心便是. 存養旣久, 自然信向. 決知堯舜之可爲, 聖賢之可學, 如菽粟之必飽, 布帛之必煖, 自然不爲外物所勝. 若是若存若亡, 如何會信, 如何能必行. ''''고시천지명명'에 대한 옛 주석에서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고 했는데, 이 설명이 매우 좋다.<ref>여기서 고주는 공안국의 주석을 말한다.</ref> 이는 눈 앞에 늘 어떤 물건이 있어서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이 마음을 길이 간직하여 이 도리가 광명하고 어둡지 않음을 알라는 것이다. 이제 막 고요히 앉아 아직 사물을 접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 이치는 물론 밝고 투명(湛然淸明)<ref>모두 물로 비유한 것이다. 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불순물이 가라앉으므로 맑고 투명하다.</ref>하지만, 일을 만나 대응할 때에도 이 이치는 역시 가는 곳마다 드러난다. 사람들이 늘 또렷한 정신으로 성찰하여(提撕省察) 매 순간 잊지 않고(念念不忘) (이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기르기만(存養)<ref>존양(存養)은 맹자7A:1의 '존기심(存其心), 양기성(養其性)'에서 따온 표현이다. 주희는 마음을 보존/간직한다는 것을 일종의 경(敬) 공부로 파악했다.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양성(養性)은 이러한 명상수련을 통하여 우리 내면의 선량한 부분이 두텁게 배양됨을 말한다. '기른다'는 메타포는 식물을 길러내는 데서 온 것으로 주희의 학문체계에서 매우 자주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규성("정자에서의 지식과 직관의 문제(2003)")이 이러한 점을 들어 성리학을 '정원사의 철학'이라고 부른 것은 적절하다.</ref> 하면 이 이치가 더욱 밝아져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게 된다. 맹자가 말했다: '학문(學問)하는 방법에는 다른 것이 없고, 그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高海波, "试论朱子对《孟子》「求放心」句的诠释"(2020)을 참조하라.</ref> 이른바 '잃어버린(放) 마음을 찾는다'는 것은, 그저 이 마음을 항상 간직하기만(存) 하면 된다.<ref>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오래도록 간직하고 기르면 자연히 믿게 된다. 요순처럼 될 수 있고(堯舜之可爲)<ref>맹자 6B:2.</ref> 성현을 배울 수 있음을<ref>통서 제 20장.</ref> 확신(決知)하기를 마치 밥을 먹으면 반드시 배부르고 옷을 걸치면 반드시 따뜻해지는 것처럼 (확실하게) 한다면 자연히 외물(外物)에게 패배하지 않게 된다. 만약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없었다하면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반드시 실행할 수 있겠나. 又曰: “千書萬書, 只是敎人求放心. 聖賢敎人, 其要處皆一. 苟通得一處, 則觸處皆通矣.” 僩(69이후). '''다시 말함: '천 권, 만 권의 책이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라고 가르칠 뿐이다.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는 요점은 모두 하나이다. 일단 한 곳이라도 통하면, 접촉하는 곳마다 다 통하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9 問: “‘顧諟天之明命’, 言‘常目在之’, 如何?” '''질문: '고시천지명명'에서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常目在之)'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顧諟, 是看此也. 目在, 是如目存之, 常知得有此理, 不是親眼看. ‘立則見其參於前, 在輿則見其倚於衡’, 便是這模樣. 只要常常提撕在這裏, 莫使他昏昧了. 子常見得孝, 父常見得慈, 與國人交, 常見得信.” 㝢(61이후). '''대답: '고시(顧諟)'는 이것을 본다는 것이다. '눈을 둔다(目在)'는 것은 눈길을 거기에 둔다(目存之)는 말과 같으니, 항상 이 이치가 있음을 알고 있으라는 것이지 실제로 육안으로 보라는 것이 아니다.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본다'<ref>논어 15:5</ref>는 것이 바로 이런 식(模樣)이다. 단지 항상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하여<ref>'在這裏'는 강조표현이다.</ref> 그것이<ref>밝은 명령(明命)</ref> 어두워지지(昏昧) 않게 해야 한다. 아들은 항상 효성의 도리(孝)를 보고, 아비는 항상 자애의 도리(慈)를 보고, 나라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항상 신의의 도리(信)를 본다.<ref>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여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자신이 견지해야 할 최선의 도덕원칙을 확고하게 인식한다는 말이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0 問: '顧, 謂常目在之'. 天命至微, 恐不可目在之, 想只是顧其發見處.” '''질문: '고(顧)는 항상 눈을 거기에 둔다는 말이다'<ref>대학장구 전 1장.</ref>의 경우, 하늘의 명령은 지극히 은미해서 눈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그것이 발현된 지점을 보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曰: “只是見得長長地在面前模樣. ‘立則見其參於前, 在輿則見其倚於衡’. 豈是有物可見!” 義剛(64이후). '''대답: 단지 그것이 항상 내 앞에 있음을 보라는 식(模樣)이다.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게 어찌 실제로 물건이 있어 볼 수 있다는 것이겠나?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6:11 問“常目在”之意. ''' '항상 눈을 둔다'의 의미에 관한 질문. 先生以手指曰: “如一件物在此, 惟恐人偸去, 兩眼常常 在此相似.” 友仁(69때). '''선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함: 마치 어떤 물건이 여기에 있는데 누군가가 훔쳐 갈까 두려워 두 눈의 시선이 항상 거기에 있는 것과 같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ref>이 조목은 비록 대의는 같으나 상황설명은 조선고사본 쪽이 더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  16:12 問: “如何目在之?” '''질문: 눈이 거기에 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ref>역시 조선고사본 쪽이 조금 더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常在視瞻之間, 蓋言存之而不忘.” 㝢(61이후). '''대답: 항상 시야에 두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3 因說“天之明命”, 曰: “這箇物事, 卽是氣, 便有許多道理在裏. 人物之生, 都是先有這箇物事, 便是天當初分付底. 旣有這物事, 方始具是形以生, 便有皮包裹在裏. 若有這箇, 無這皮殼, 亦無所包裹. 如草木之生, 亦是有箇生意了, 便會生出芽櫱; 芽櫱出來, 便有皮包裹著. 而今儒者只是理會這箇, 要得順性命之理. 佛·老也只是理會這箇物事. 老氏便要常把住這氣, 不肯與他散, 便會長生久視. 長生久視也未見得, 只是做得到, 也便未會死. 佛氏也只是見箇物事, 便放得下, 所以死生禍福都不動. 只是他去作弄了.” ''' '천지명명'에 대해 설명하다가 말함: 이 물건은<ref>밝은 명령</ref> 기운(氣)인데, 많은 도리가 그 안에 있다. 사람과 사물이 태어날 적에도 모두 먼저 이것부터 있으니 바로 하늘이 최초에 나누어준(分付) 물건이다. 이 물건이 먼저 있어야 비로소 형태를 갖추어 태어나고 껍질<ref>사람의 경우는 신체가 껍질이다. 68:88을 보라.</ref>이 생겨 그것을 감싸안게 된다. 만약 이 물건은 있는데 껍질이 없다면 역시 감싸안을 수 없다. 초목이 태어날 적에도 마찬가지로 먼저 생의(生意)가 있고 나서 싹이 나올 수 있고, 싹이 나와야 껍질이 생겨 감싸안게 된다. 지금 유자(儒者)는 단지 이 물건을 이해하여 성명의 이치(性命之理)에 순응하고자 할 뿐이다. 불교와 노장 또한 단지 이 물건을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노씨(老氏)는 이 기운(氣)을 항상 잡아두어 흩어지지(散) 않게 하여<ref>주희 당시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물체는 공기처럼 편재한 어떤 희박한 에너지 입자들(곧, 기운)이 촘촘하게 모여서 생긴 것들이다. 이렇게 모인 상태가 취(聚)이고, 이 모임이 유지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이 산(散)이다. 영어로 치면 산(散)은 '분해(disintegration)'에 가깝다. 앞서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밝은 명령'도 역시 '기운'이라고 했으니, 한 사람의 죽음 역시 이 기운의 흩어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모종의 수를 써서 이 분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면 (주희 당시의 상식으로는) 그 사람은 당연히 불로불사할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ref> 장생구시(長生久視)<ref>도덕경 제 59장. 오래 산다는 뜻.</ref>하고자 한다. 장생구시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이론상) 완벽히 해내기만 한다면 역시 불로불사할 수 있다. 불씨(佛氏) 역시 이 물건을 보고 (집착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사생화복(死生禍福)에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이 물건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을 뿐이다.<ref>장난(弄)이란 표현은 불교도들이 이상에서 설명한 이치를 모르고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알기는 아는데 그것을 부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우리는 돈을 부적절하게 활용하는 사람을 두고 종종 '돈지랄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그 돈이 가짜라는 말이 아니다. 불교도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는 표현은 126:134에서도 보인다.</ref> 又曰: “'各正性命, 保合太和', 聖人於乾卦發此兩句, 最好. 人之所以爲人, 物之所以爲物, 都是正箇性命. 保合得箇和氣性命, 便是當初合下分付底. 保合, 便是有箇皮殼包裹在裏. 如人以刀破其腹, 此箇物事便散, 卻便死.” 蘷孫(68이후). '''다시 말함: 성인이 '각정성명(各正性命), 보합태화(保合太和)'<ref>주역 건괘 단전. '건의 도리가 변하고 화하여 만물 각각의 본성을 바르게 하나니, 위대한 (음양의) 조화를 온전히 지킨다(乾道變, 各正性命, 保合大和)' 68:87과 88을 참조하라.</ref>라는 두 구절을 건괘(乾卦)에 둔 것이 매우 좋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 사물이 사물인 이유가 다 이 (하늘이 부여해준) 바른 성명(性命)이다. 온전히 지켜냈다는(保合) 음양의 조화로운 기운과 성명은 바로 최초에 하늘이 나누어준(分付) 물건이다. 보합(保合)은 껍질로 감싸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칼로 배를 가르면 이 물건이 흩어져서<ref>여기서도 일관되게 '흩어지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주목하라.</ref> 죽게 된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4 而今人會說話行動, 凡百皆是天之明命. “人心惟危, 道心惟微”, 也是天之明命. 蘷孫(68이후). '''지금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늘의 밝은 명령 때문이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다'<ref>서경 상서 대우모</ref>는 것 또한 하늘의 밝은 명령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傳二章釋新民 == '''전 2장. '신민(新民)' 해석. *  16:15 “苟日新”一句是爲學入頭處. 而今爲學, 且要理會“苟”字. 苟能日新如此, 則下面兩句工夫方能接續做去. 而今學者只管要日新, 卻不去“苟”字上面著工夫. “苟日新”, 苟者, 誠也. 泳(66때). ''' '진실로 어느 하루 새로워졌거든(苟日新)'<ref>대학 전 2장. 탕왕의 세수대야에 새겨진 명문이다.</ref> 한 구절은 배움에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제 배움에 종사하려면 우선 '진실로(苟)'라는 한 글자를 헤아려야 한다. 진실로 어느 하루 이렇게 새로워질 수 있어야 그 아래의 두 구절 공부<ref>대학 전 2장.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日日新)'와 '또 하루 새롭게 하라(又日新)'이다.</ref>를 연이어 해나갈 수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그저 '일신(日新)'하려고만 하지 '진실로(苟)' 부분에 힘을 쓰려하지 않는다. '구일신'에서 '구(苟)'는 '진실로'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6 苟, 誠也. 要緊在此一字. 賀孫(62이후). ''' '구(苟)'는 '진실로(誠)'이다. 이 한 글자가 핵심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7 “苟日新”. 須是眞箇日新, 方可“日日新, 又日新”. 泳(66때). ''' '구일신(苟日新)'의 경우, 반드시 진정으로 어느 하루 새로워져야 비로소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 또 하루 새롭게(日日新, 又日新)'할 수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8 舊來看大學日新處, 以爲重在後兩句, 今看得重在前一句. “苟”字多訓“誠”字. 璘(62때). '''이전에 '대학'의 '일신(日新)' 부분을 볼 적에는 뒤쪽 두 구절에 중점이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첫 구절에 중점이 있음을 알겠다. '구(苟)' 자는 대개 '진실로'로 풀이한다. 린(璘)의 기록. (62세) *  16:19 “苟”字訓誠, 古訓釋皆如此. 乍見覺差異. 人誠能有日新之功, 則須日有進益. 若暫能日新, 不能接續, 則前日所新者, 卻間斷衰頹了, 所以不能“日日新, 又日新”也. 人傑(51이후). ''' '구(苟)'자는 '진실로(誠)'로 풀이하니, 옛 훈석(訓釋)도 모두 이러하다. 얼핏 보면(乍見) 두 글자가 다르다고 느껴질 것이다. 누군가 진실로(誠) 어느 하루 새로워지는 성취(功)가 있었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매일 진보가 있어야 한다. 만약 잠시동안 그날 하루 새로워질 수 있었으되 그것을 지속하지 못하면 이전에 새로워졌던 것도 끊어지고 쇠퇴해버린다. 그래서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 또 하루 새롭게(日日新, 又日新)'하지 못하게 된다. *  16:20 “‘苟日新’, 新是對舊染之汙而言. ‘日日新, 又日新’, 只是要常常如此, 無間斷也. 新與舊, 非是去外面討來. 昨日之舊, 乃是今日之新.” ''' '구일신(苟日新)'에서 '신(新)'은 지난날(舊)의 오염의 반댓말이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은 그저 항상 그렇게 하여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新)이냐 구(舊)냐 하는 것은 바깥에서 가져오는(討)<ref>토(討)는 돈을 주고 사거나 혹은 다른 수를 써서 무언가를 마련해온다는 뜻이다.</ref> 것이 아니다. 어제의 구(舊)가 오늘의 신(新)이다. 道夫云: “這正如孟子‘操存舍亡’說, 存與亡, 非是有兩物.” '''내(道夫)가 말함: 이는 맹자의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진다(操存舍亡)'는 말에서<ref>맹자 6A:8.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며 무시로 드나들어 그 향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한 말이로구나!(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ref> '있음(存)'과 '없음(亡)'이 두 가지 별개의 물건이 아닌 것과 꼭 같습니다. 曰: “然. 只是在一念間爾. 如‘顧諟天之明命’, 上下文都說明德, 這裏卻說明命. 蓋天之所以與我, 便是明命; 我之所得以爲性者, 便是明德. 命與德皆以明爲言, 是這箇物本自光明, 顯然在裏, 我卻去昏蔽了他, 須用日新. 說得來, 又只是箇存心. 所以明道云: “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約之使反覆入身來, 自能尋向上去, 下學而上達也.”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단지 한 순간의 생각(一念間)에 (마음을 잡아서 간직하느냐 아니면 놓쳐버리느냐가) 달려있을 뿐이다.<ref>15:107을 보라.</ref> 예컨대 '고시천지명명(顧諟天之明命)' 같은 경우 앞 뒤 문장의 표현은 모두 '명덕(明德)'인데, 여기서만 명명(明命)이라고 말한다.<ref>대학 전 2장을 보면 '고시천지명명' 직전 구문에서 '극명덕(克明德)'이라고 했고 직후 구문에서 '극명준덕(克明峻德)'이라고 써 놓았기 때문에 그 중간에 낀 '명명(明命)'이 튀어보인다.</ref> 대개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 밝은 명령(明命)이고, 내가 받아서 나의 본성(性)으로 삼은 것이 밝은 덕(明德)이다. 명령(命)과 덕(德)을 모두 밝다(明)고 수식하고 있는데, 이 물건은 본래 광명하여 명백히(顯然) 우리 속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그것을 (물욕으로) 어둡게 뒤덮어버렸기 때문에 날마다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결국 '마음을 간직한다(存心)'는 것일 뿐이다.<ref>16:8을 참조하라.</ref> 그래서 명도(明道)<ref>북송의 정호.</ref>는 이렇게 말했다. '성현의 수많은 말은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놓쳐버린 마음을(已放之心) 붙잡아와서(約之)<ref>약(約)은 예법과 규범 등 객관화된 규칙으로 자기 자신을 단속함을 말한다. 놓치다(放)는 표현이 본래 개와 닭을 놓친 데서 유래한 것임은 앞서 16:8에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약(約)' 역시 되찾아온 짐승이 달아나지 못하게 제약하고있는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이 좋다.</ref> 자기 안에 되돌려 놓음으로써(反覆入身來) 스스로 위를 향해 나아가(尋向上去)<ref>진리를 이해하고 체화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말한다.</ref> '비근한 것을 익혀 고원한 것에 통달(下學而上達)'<ref>논어 14:37. 일상적이고 구체적이고 각자에게 절실한 차원에서의 인식과 실천을 통해 보다 비일상적이고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인식과 실천으로 나아감을 이른다.</ref>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ref>이정유서 1:22</ref> *  16:21 湯“日日新”. 書云: “終始惟一, 時乃日新.” 這箇道理須是常接續不已, 方是日新; 才有間斷, 便不可. 盤銘取沐浴之義. 蓋爲早間盥濯才了, 晩下垢汙又生, 所以常要日新. 德明(44이후). '''탕(湯)임금의 '일일신(日日新)'에 대해<ref>16:15 참조.</ref> '서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것이 바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終始惟一, 時<ref>時는 是와 같다.</ref>乃日新).'고 했다.<ref>서경 상서 함유일덕 제 6장.</ref> 이 도리는 항상 이어져 끊임이 없어야만 비로소 '일신(日新)'이다. 잠시라도 끊어지면 안 된다. 탕 임금의 반명(盤銘)은 목욕(沐浴)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ref>명(銘)은 물건에 새긴 글귀를 말한다. 자신이 자주 드나들고 기거하는 공간에 있는 물건에 새겨두고 매일 되새기는 글귀를 '좌우명(座右銘)'이라고 한다. 이때 새기는 글귀의 성격을 새기는 물건에서 취하곤 하는데, 예컨대 거울에 새기는 글귀는 밝음이나 비춤 같은 의미를 취하고 돌에 새기는 글귀는 견실하다는 의미를 취하는 등이다. 탕임금의 '반명'이란 '욕조(盤)'에 새긴 글귀이므로 몸에 붙은 오염을 씻어내어 스스로를 새롭게한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 반(盤)은 전통적으로 '세숫대야' 정도로 풀이하는데 실제로 출토된 서주시대 '반'들은 오늘날 세숫대야 정도의 크기부터 욕조 크기까지 다양하다.</ref> 대개 아침에 다 씻어도 저녁이면 다시 더러워지기 때문에 항상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22 徐仁父問: “'湯之盤銘曰 ... 日日新.’ 繼以‘作新民’. 日新是明德事, 而今屬之‘作新民’之上. 意者, 申言新民必本於在我之自新也.” '''서인보(徐仁父)의 질문: (대학 전 2장은) '탕(湯)임금의 반명(盤銘)에서 ...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日日新)'를 '스스로를 새롭게하려는 백성들을 진작시킨다(作新民)'<ref>원출전은 서경 주서 강고 제 7장. 대학 전 2장에서 탕임금의 반명에 이어서 인용하고 있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 부분을 '스스로 새롭게하려는 백성들을 진작시킨다(振起其自新之民)'라고 주석하였다. 조금 어색한 감은 있지만 주희의 주석에 따라 번역했다.</ref>로 잇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日新) 것은 자기 덕을 밝히는(明德) 일인데, 이제 여기서는 '스스로를 새롭게하려는 백성들을 진작시킨다(作新民)'에 소속시킵니다.<ref>탕의 반명은 '수신'에 속하는 일이고 신민은 '치인'에 속하는 일인데 전자를 후자에 배속시킨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문제제기이다.</ref> 제 생각에는(意者) 백성을 새롭게 하는(新民)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새롭게 하는 것에(自新) 기반해야 함을 거듭 간곡히(申言) 말한 것 같습니다. 曰: “然. 莊子言: ‘語道而非其序, 則非道矣.’ 橫渠云: ‘如中庸文字, 直須句句理會過, 使其言互相發.’ 今讀大學, 亦然. 某年十七八時, 讀中庸大學, 每早起須誦十遍. 今大學可且熟讀.” 賀孫(62이후). '''대답: 그렇다. 장자(莊子)는 '도를 말하면서 그 순서가 틀렸으면 이는 도가 아니다'<ref>장자 천하편</ref>고 했고 횡거(橫渠)<ref>북송의 장재.</ref>는 '중용(中庸)의 글은 반드시 한 구절씩 순서대로 이해해 나가면서 그 말이 서로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ref>경학리굴 학대원(하) 13. 근사록 3:77에도 수록되어 있다.</ref>고 했다. 이제 '대학'을 읽을 때도 그러해야 한다. 내가 17, 18세 무렵 '중용'과 '대학'을 읽을 적에는 매일 아침 열 번씩 송독(誦)<ref>소리내어 외웠다는 말이다.</ref>했다. 이제 (여러분도) 우선 '대학'을 익숙해질 때까지 읽는 것이 좋겠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 鼓之舞之之謂作. 如擊鼓然, 自然使人跳舞踴躍. 然民之所以感動者, 由其本有此理. 上之人旣有以自明其明德, 時時提撕警策, 則下之人觀瞻感發, 各有以興起其同然之善心, 而不能已耳. 僩(69이후). ''' '작(作)'은 사람을 고무(鼓舞)시킨다는 뜻이다. 북(鼓)을 치는 것과 같으니, 자연히 사람들을 춤추고(舞) 뛰게 만든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들을 일신하려고 고무하는 위정자의 노력에) 감격하여 움직이는 까닭은 그들에게 본래부터 이 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먼저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힌 뒤에 때때로 일깨우고 독려해주면(提撕警策) 아랫사람은 그것을 보고 감격하고 발심하여 각자 (누구나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그 똑같은 선한 마음을 일으켜 멈출 수 없게 되는 것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4 “周雖舊邦, 其命維新.” 自新新民, 而至於天命之改易, 可謂極矣. 必如是而後爲“止於至善”也. 僩(69이후). '''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命)은 새롭다.'<ref>시경 대아 문왕편의 한 구문으로 대학 전 2장에서 인용했다. 민심을 얻었으니 기존의 제후국 지위에서 벗어나 천하를 차지할 명분을 얻었다는 말이다. 16:3을 보라.</ref> 자신을 새롭게 하고(自新)<ref>주나라 문왕이 자신의 명덕을 밝혀 스스로를 새롭게 하였음을 말한다.</ref> 백성들을 새롭게 하여(新民)<ref>그에 바탕하여 백성들은 고무하고 독려하여 일신했음을 말한다.</ref> 천명을 교체하는(改易) 일에 이르렀으니,<ref>이에 힘입어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천자국이 되었음을 말한다.</ref> 지극하다(極)고 할 만하다. 반드시 이와 같아야만 '최선의 지점에 머무른다(止於至善)'<ref>대학 삼강령 중 세 번째이다.</ref>가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5 “其命維新”, 是新民之極, 和天命也新. 大雅(49이후). ''' '기명유신(其命維新)'은 신민(新民)의 극치로 천명(天命)조차도 새로워졌다는 것이다.<ref>화(和)...야(也)... 구문은 '~조차도'이다. 화(和)는 현대중국어의 련(連)과 같다.</ref>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傳三章釋止於至善 == 전 3장. '지어지선(止於至善)'<ref>지선(至善)은 각각의 사태와 상황에 있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리, 가장 훌륭한 스탠스를 말한다. 주희가 자주 드는 사례로 말하자면 자식된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스탠스가 효(孝)이고 어버이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스탠스는 자(慈)라는 식이다. 지(止)는 바로 그러한 스팟에 1)도달해서 2)멈추고 3)머무르는 일을 모두 지시할 수 있다. 사람의 수양을 여정으로 비유하자면 그러한 스팟에 도달하려고 열심히 길을 가는 것도 '지'이고, 그러한 스팟을 지나쳐가지 않고 딱 맞게 멈추는 것도 '지'이고, 그 자리에 멈춘 뒤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는 것도 '지'이다. 이렇게 보면 동계 스포츠 '컬링'에서 득점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14:101, 108 등을 참조하라.</ref> 해석. *  16:26 “緡蠻黃鳥, 止于丘隅.” 物亦各尋箇善處止, “可以人而不如鳥乎”! 德明(44이후). ''' '면만(緡蠻)거리며 우는 황조(黃鳥)여, 깊은 산 모퉁이(丘隅)에 멈추었도다(止)<ref>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하는 모든 구문들은 '지(止)'자와 관련되어있음에 주의하라. </ref>.'<ref>본래 시경 소아(小雅) 면만(綿蠻)편의 한 구절인데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했다. '면만(緡蠻 혹은 綿蠻)'은 새 울음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ref> 사물들도 각자 좋은 자리(善處)를 찾아서 멈추거늘(止) '사람이면서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ref>대학 전 3장. 공자의 한탄이다.</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27 “於緝熙敬止.” 緝熙, 是工夫; 敬止, 是功效收殺處. 㝢(61이후). ''' '오! 계속 이어 밝히어 경건히 그치셨도다!'<ref>시경 대아 문왕편의 구문을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어(於)'는 '오'라고 읽는다. 감탄사이다. 시집전에 따르면 '집(緝)'은 계속하다, '희(熙)'는 밝히다, '경(敬)'은 경건히, '지(止)'는 어조사이다. 어조사라는 것은 강하고 구체적이고 단독적인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다만 대학의 저자는 이 '지(止)'에 '그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인용한 것이므로 우리가 시경이 아니라 대학을 해석할 적에는 역시 '그치다'라고 해석해주어야 한다. 대학혹문의 해당부분을 보면 주희도 이러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ref> '계속 이어 밝히다(緝熙)'는 노력하는 과정이다(工夫). '경지(敬止)'는 성취한 결과(功效)를 수확(收殺)하는<ref>살(殺)은 강조 표현이다.</ref> 지점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8 或言: “大學以知止爲要.” '''누군가의 말: '대학'에서는 머무를 자리를 아는 것(知止)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曰: “如君便要止於仁, 臣便要止於敬, 子便止於孝, 父便止於慈. 若不知得, 何緣到得那地位. 只這便是至善處.” '''대답: 예컨대 임금은 인(仁)에 머물러야 하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러야 하고 아들은 효(孝)에 머물러야 하고 아비는 자(慈)에 머물러야 한다.<ref>대학 전 3장의 일부를 패러프레이즈한 것이다. 대학 전 3장에서는 16:27에서 다룬 시경 대아 문왕편의 '지(止)'자를 이렇게 해석하였다.</ref> 만약 (이러한 지점들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수로 저 지점들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것들이 바로 지극히 선한(至善) 지점들이다. 道夫問: “至善, 是無過不及恰好處否?” '''나(道夫)의 질문: 지극히 선한 지점이란 지나침도(過) 못미침도(不及) 없이 딱 알맞은 지점 아닙니까?<ref>컬링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좋다.</ref> 曰: “只是這夾界上些子. 如君止於仁, 若依違牽制, 懦而無斷, 便是過, 便不是仁. 臣能陳善閉邪, 便是敬; 若有所畏懼, 而不敢正君之失, 便是過, 便不是敬.” 道夫(60이후). '''대답: 이는 (과불급이라는) 두 영역 사이 경계선의(夾界) 아주 작은 부분이다. 임금이 인(仁)에 머무르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주변에 끌려다니며(牽制) 이랬다저랬다(依違)하며 우유부단한 것이 지나침(過)이고, 불인(不仁)이다. 신하가 능히 선을 개진하고(陳善) (임금의) 삿된 마음을(邪心) 막는 것이 경(敬)이다.<ref>맹자 7A:1</ref> 만일 두려움을 느끼고 임금의 잘못을 감히 바로잡지 못한다면 곧 지나침(過)이고 불경(不敬)이다.<ref>이부분도 맹자 7A:1의 취지와 부합한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9 問: “至善, 如君之仁, 臣之敬, 父之慈, 子之孝者, 固如此. 就萬物中細論之, 則其類如何?” '''질문: 지극히 선한 지점이란, 예컨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비의 자(慈), 아들의 효(孝) 같은 경우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사만물의 세세하고 구체적인 경우에서 논하자면 그 (지극히 선한 지점의) 종류가 어떻게 됩니까?<ref>예를 들어달라는 주문이다.</ref> 曰: “只恰好底便是. ‘坐如尸’, 便是坐恰好底; ‘立如齊’, 便是立恰好底.” 淳(61·70때). 㝢同. '''대답: (과불급 없이) 딱 알맞은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시동(尸童)<ref> 과거 제사를 지낼 적에 제사를 받는 귀신이 빙의할 몸 역할을 맡은 어린아이를 말한다.</ref>처럼 앉으라'는 것은 앉아있을 때의 딱 알맞은 방법이요 '제사 모시듯 서 있으라'는 것은 서있을 때의 딱 알맞은 방법이다.<ref>좌여시와 입여재의 출처는 예기 곡례상이다. 이 조목은 14:104와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우(㝢)의 기록도 동일하다. *  16:30 周問: “注云: ‘究其精微之蘊, 而又推類以通<ref>통행본 대학장구에서는 '진(盡)'이다. 대학혹문에서는 그대로 '통(通)'이다.</ref>其餘.’ 何也?” '''주(周)의 질문: 대학장구에서 '그 정밀하고 은미한(精微) 깊은 뜻(蘊)을 탐구하고, 다시 유추하여 그 나머지 것들에 통한다'<ref>대학장구와 대학혹문의 전 3장을 보라. 대학 원문에서 말한바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타인과의 교류할 적의 신(信)이라는 다섯가지 '지극히 선한 지점'에 대한 주석이다.</ref>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大倫有五, 此言其三, 蓋不止此. ‘究其精微之蘊’, 是就三者裏面窮究其蘊; ‘推類以通其餘’, 是就外面推廣, 如夫婦·兄弟之類.” 淳(61·70때). '''대답: 큰 윤리(大倫)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세 가지만 언급하고 있다.<ref>군신, 부자, 붕우, 부부, 형제관계 가운데 앞의 세 경우만 전 3장에서 언급했다.</ref> (윤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 정밀하고 은미한 깊은 뜻을 탐구한다'는 것은 언급된 세 가지의 깊은 뜻을 끝까지 파고든다는(窮究) 것이고, '유추하여 그 나머지 것들에 통한다'는 것은 바깥쪽으로, 예컨대 부부나 형제관계와 같은 윤리까지 미루어 넓히는 것이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謨錄云: “須是就君仁, 臣敬, 子孝, 父慈, 與國人信上推究精微, 各有<ref>성화본과 조선정판본은 '무(無)' 여기서는 다른 판본들을 따라 '유'로 해석했다.</ref>不盡之理. 此章雖人倫大目, 亦只擧得三件. 必須就此上推廣所以事上當如何, 所以待下又如何. 尊卑大小之間, 處之各要如此.”> '''<모(謨)의 기록: 군주의 인(仁), 신하의 경(敬), 자식의 효(孝), 부모의 자(慈), 나라 사람들과의 신(信)이라는 지점에서 정밀하고 은미한 것을 탐구해야(推究) 하지만, 이것들 각각으로는 채 다하지 못한 이치가 있다. 이 장은 인륜의 큰 항목이지만 세 가지만 거론했을 뿐이다. 반드시 이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어떠해야 하고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은 또 어떠해야 하는지까지 미루어 넓혀가야 한다. 존비(尊卑)와 대소(大小)간의 관계에서도 각각 이렇게 처신해야 한다.> *  16:31 問: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此是詩人美武公之本旨耶? 姑借其詞以發學問自修之義耶?” '''질문: '"자르고(切) 간(磋) 듯하다"<ref>절/차는 골각기(骨角器)를 만드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큼직큼직하게 자르고 나중 단계에서는 표면을 문질러 연마한다.</ref>는 것은 배움을 말한(道學) 것이다. "쪼으고(琢) 간(磨) 듯하다"<ref>탁/마는 석기(石器)나 옥기(玉器)를 만드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역시 처음 단계에서는 큼직큼직하게 쪼개고 나중 단계에서는 표면을 문질러 연마한다.</ref>는 것은 자신을 닦은(自修) 것이다.<ref>'닦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15:125를 참조하라.</ref>'<ref>대학 전 3장에서 시경 위풍 기욱을 인용한 후 그 가운데 '절차탁마'라는 표현을 풀이하는 부분이다. 이 시는 논어 1:15에서도 인용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이것은 (시경 기욱편의) 시를 쓴 사람이 무공(武公)<ref>춘추시대 위(衛)나라 무공. ?~BCE 758. </ref>을 찬미한 본래 취지입니까? 아니면 임의로 그 말을 빌려 학문(學問)과 수양(自修)의 뜻을 드러낸 것입니까?<ref>경전에서 시경의 시를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부연할 적에는 시경 본래의 문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 문구만을 임의로 빌려오는 경우가 있기에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후자와 같은 방식으로 시를 활용하는 경우로 논어 3:8의 '회사후소(繪事後素)'장, 8:3 '전전긍긍(戰戰兢兢)'장, 9:30의 '당체지화(唐棣之華)'장 등이 있다.</ref> 曰: “武公大段是有學問底人. 抑之一詩, 義理精密. 詩中如此者甚不易得.” 儒用(70때). '''대답: 무공은 상당히 학문이 있는 사람이었다. 억(抑)<ref>시경 대아 억. 모씨에 따르면 위무공이 주나라 려왕을 풍자하기 위해 지은 시이다.</ref> 편은 의리(義理)가 정밀하다. 시경 속에서 이런 것은 대단히 얻기 어렵다. 유용(儒用)의 기록. (70세) *  16:32 “至善”一章, 工夫都在“切磋琢磨”上. 泳(66때). ''' '지선(至善)' 장에서 힘 쓰는(工夫) 지점은 모두 '절차탁마(切磋琢磨)'에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33 旣切而復磋之, 旣琢而復磨之, 方止於至善. 不然, 雖善非至也. 節(64이후). '''자르고 나서 다시 갈고, 쪼으고 나서 다시 갈아내야 비로소 지극히 선한 지점에 멈춘 것이다(止於至善). 그렇지 않으면 비록 선하다곤 하더라도 지극한 것은 아니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34 傳之三章, 緊要只是“如切如磋, 如琢如磨”. 如切, 可謂善矣, 又須當磋之, 方是至善; 如琢, 可謂善矣, 又須當磨之, 方是至善. 一章主意, 只是說所以“止於至善”工夫, 爲下“不可諠兮”之語拖帶說. 到“道盛德至善, 民不能忘”, 又因此語一向引去. 大槪是反覆嗟詠, 其味深長. 他經引詩, 或未甚切, 只大學引得極細密. 賀孫(62이후). '''대학 전(傳) 제 3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르고 간 듯하고, 쪼고 간 듯하다'이다. 자르기만 해도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시 또 갈아야만 비로소 지극히 선한 것이 된다. 쪼으기만 해도 선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시 또 갈아내야 비로소 지극히 선한 것이 된다. (기욱편) 제 1 장(章)<ref>시경 기욱편은 총 3 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것은 그 중 제 1장이다.</ref>의 취지(主意)는 '지어지선(止於至善)'공부의 방법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아래의 '(백성들이) 잊지 못하네(不可諠兮)'라는 말까지 연결(拖帶)해서 설명하고 있다.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道盛德至善, 民不能忘)'<ref>대학 전 3장에서 시경 기욱편 제 1장의 '잊지 못하네(不可諠兮)' 부분을 이렇게 해설했다.</ref>의 경우도 또 이 말<ref>'절차탁마'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에서부터 곧바로(一向) 이끌어낸 것이다.<ref>절차탁마는 학문과 자기수양 공부, 곧 '지어지선'을 성취하기 위한 공부의 방법이다. 그러한 노력으로부터 도출되어나오는 결과가 바로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이고, 이러한 훌륭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본 백성들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ref> 이는 대체로 반복하여 영탄한 것으로 그 의미가 심장하다(其味深長). 다른 경서에서 시를 인용할 때는 딱 맞지(切) 않는 경우도 있는데, 오직 '대학'만큼은 극히 세밀하게 인용한다.<ref>기욱편을 장별로 분석한 것은 어류 81:5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35 魏元壽問切磋琢磨之說. '''위원수(魏元壽)가 절차탁마에 관하여 질문. 曰: “恰似剝了一重, 又有一重. 學者做工夫, 消磨舊習, 幾時便去敎盡! 須是只管磨礱, 敎十分淨潔. 最怕如今於眼前道理略理會得些, 便自以爲足, 便不著力向上去. 這如何會到至善田地!” 賀孫(62이후). '''대답: 마치 한 겹을 벗겨내면 또 한 겹이 있는 것과 같다. 배우는 이가 공부(工夫)하여 구습(舊習)을 갈아 없애는(消磨)데 언제쯤에나 다 제거하게 될까! 반드시 끊임없이 갈고 닦아(磨礱) 100% 정결하게 해야 한다. 지금 눈앞의 도리를 약간 이해했다고 해서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더 위로 나아가려 힘쓰지 않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지극히 선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겠나! 하손의 기록. (62세 이후) *  16:36 骨·角, 卻易開解; 玉·石, 儘著得磨揩工夫. 賀孫(62이후). '''뼈와 뿔은 비교적 쉽게 잘라낼(開解) 수 있으나<ref>절차탁마의 '절차'를 말한다.</ref> 옥과 돌은 모두 갈고 닦는(磨揩) 노력(工夫)이 많이 필요하다.<ref>'탁마'를 말한다.</ref> 하손의 기록. (62세 이후) *  16:37 瑟, 矜莊貌; 僩, 武貌; 恂慄, 嚴毅貌. 古人直是如此嚴整, 然後有那威儀烜赫著見. 德明(44이후). ''' '슬(瑟)'은 긍지있고 장엄한(矜莊) 모습이고, '한(僩)'은 무인의 풍모(武)이며, '준률(恂慄)'은 엄숙하고 굳센(嚴毅)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줄곧(直是) 이렇게 엄숙하고 단정하였으니, 그런 뒤에야 비로소 저 위엄있는 몸짓(威儀)이 혁혁하게(烜赫)<ref>'훤(烜)'은 대학에서는 '훤(喧)'이라고 썼다.</ref> 드러났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38 問: “解瑟爲嚴密, 是就心言? 抑就行言?” '''질문: '슬(瑟)'을 엄밀(嚴密)로 해석한 것은 마음을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행동을 두고 한 말입니까? 曰: “是就心言.” '''대답: 마음을 두고 한 말이다. 問: “心如何是密處?” '''질문: 어떻게 해야 마음이 엄밀(密)한 것입니까? 曰: “只是不粗疏, 恁地縝密.” 㝢(61이후). '''대답: 거칠고 소략하지 않고 이렇게 세세하고 촘촘한(縝密) 것이다. *  16:39 “僩, 武毅之貌.” 能剛强卓立, 不如此怠惰闒颯. 僩(69이후). ''' '한(僩)은 무인처럼 굳센 모습이다.'<ref>대학장구 전 3장에서 주희가 쓴 말이다.</ref> 강하고 굳건하게 우뚝 설 수 있어서 이처럼 게으르게 퍼질러 시들어있지(怠惰闒颯) 않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40 問: “瑟者, 武毅之貌; 恂慄, 戰懼之貌. 不知人當戰懼之時, 果有武毅之意否?” '''질문: '슬(瑟)'은 무인처럼 굳센 모습이고, '준률(恂慄)'은 전율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입니다.<ref>대학 전 3장에서 '슬'자를 '준률'의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ref>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전율하고 두려워할 때에 정말로 무인처럼 굳센 기상이 있습니까? 曰: “人而懷戰懼之心, 則必齋莊嚴肅, 又烏可犯!” 壯祖(미상). '''대답: 사람이 전율하고 두려운 마음을 품으면 반드시 장중하고 엄숙해지니(齋莊嚴肅) 또 어찌 범(犯)할 수 있겠나!<ref>범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타인에게 개입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모욕주거나 비판하거나 기세를 꺾고 풀을 죽이는 등이다. 굳센 모습, 전율, 두려움, 장중함, 엄숙함 등은 모두 군대나 학교 등에서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적에 참가자가 취하게 되는 진지하고 엄격한 태도를 가리킨다.</ref> 장조(壯祖)의 기록. *  16:41 問: “恂慄, 何以知爲戰懼?” '''질문: '준률(恂慄)'이 전율과 두려움을 뜻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曰: “莊子云: ‘木處, 則恂慄危懼.’” 廣(65이후). '''대답: 장자(莊子)가 말하길 '나무 위에 있으면 준률(恂慄)하여 두렵다.'고 했다.<ref>오늘날 통행본 장자 제물론에서는 '木處, 則惴慄恂懼'라고 하였다. 대의에 큰 지장은 없지만 어쨌든 글자를 잘못 인용한 것이다.</ref><ref>17:57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42 大率切而不磋, 亦未到至善處; 琢而不磨, 亦未到至善處. “瑟兮僩兮”, 則誠敬存於中矣. 未至於“赫兮喧兮”, 威儀輝光著見於外, 亦未爲至善. 此四句是此段緊切處, 專是說至善. 蓋不如此, 則雖善矣, 未得爲至善也. 至於“民之不能忘”, 若非十分至善, 何以使民久而不能忘. 古人言語精密有條理如此. 銖(67이후). '''대체로 자르기만 하고 갈지 않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곳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쪼으기만 하고 갈지 않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곳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장중하고 굳세면(瑟兮僩兮)' 진실함과 경건함(誠敬)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된다. (하지만) '혁혁하게(赫兮喧兮)' 위엄있는 몸짓과 광휘(威儀輝光)가 겉으로 드러나는데 이르지 못하면 역시 아직 지극히 선한 것은 아니다. 이 네 구절은<ref>절차(切磋), 탁마(琢磨), 슬한(瑟僩), 혁훤(赫喧)을 말한다.</ref> 이 단락<ref>대학 전 3장을 말한다.</ref>에서 매우 핵심적인 부분으로, 전적으로 '지극한 선함(至善)'만 해설하고 있다. 대개 이렇게<ref>절차탁마, 슬한혁훤을 말한다.</ref> 하지 않으면 비록 선하더라도 '지극히 선한' 것은 될 수 없다. '백성들이 잊지 못하네(民之不能忘)'<ref>전 3장의 마지막 구문이다.</ref>의 경우, 만약 100% 지극히 선하지 않다면 어떻게 백성들이 오래도록 잊지 못하게 할 수 있겠나? 옛사람들의 말은 이렇게 정밀하고 조리가 있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43 “民之不能忘也”, 只是一時不忘, 亦不是至善. ''' '민지불능망(民之不能忘)'의 경우, 단지 일시적으로 잊지 못하는 것뿐이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아니다. 又曰: “‘瑟兮僩兮, 赫兮喧兮’者, 有所主於中, 而不能發於外, 亦不是至善; 務飾於外, 而無主於中, 亦不是至善.” 銖(67이후). '''다시 말함: '슬혜한혜, 혁혜훤혜(瑟兮僩兮, 赫兮喧兮)'의 경우, 내면에 주인으로 세운 것이(主於中)<ref>맹자 6A:6에 대한 주희의 주석에서 '공손함이란 경건함이 외면으로 발현한 것이요 경건함이란 공손함이 내면에서 주인이 된 것이다(恭者, 敬之發於外者也, 敬者, 恭之主於中者也)'라고 하였다. '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주인으로 세웠다'라고 번역했다. 어류 6:146부터 150까지에서 이러한 표현이 반복되는데 해당 부분을 번역한 청계판(1998), 소나무판(2001), Bruce 영역판(1922), 성리대전판(권6, 440쪽), 왕샤오농 영역판(2018) 등을 참조할 만하다. 청계판은 '위주로 하다', 소나무판은 '마음속에 중점을 두다', 성리대전판은 '주장하다', Bruce는 '... is subjective', 왕샤오농은 'prevails in the inside'라고 했다.</ref> 있어도 외면에 발현하지 못한다면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아니다. 외면을 꾸미는 데 힘써도 내면에 주인이 없으면 역시 지극히 선한 것이 아니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44 問“前王不忘”云云. ''' 질문: '전대의 왕을 잊지 못하네(前王不忘)'<ref>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시로, 본래는 시경 주송 열문편이다. 열문편은 주나라 종묘의 큰 제사 때 쓰이던 음악이다. 여기서 전대의 왕은 주나라 무왕을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모씨) 문왕과 무왕을 말한다고 하기도 한다(정현).</ref> (내용 생략).<ref>'운운(云云)'은 이 뒷부분의 내용이 본래 있었으나 여정덕이 1270년판(통행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략했을 수도 있고 최초 기록자가 생략한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15:105 같은 경우는 여정덕의 생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 조목은 어느쪽인지 알 수 없다.</ref> 曰: “前王遠矣, 盛德至善, 後人不能忘之. ‘君子賢其賢’, 如堯舜文武之德, 後世尊仰之, 豈非賢其所賢乎! ‘親其親’, 如周后稷之德, 子孫宗之, 以爲先祖先父之所自出, 豈非親其所親乎!” 㝢(61이후). '''대답: 전대의 왕이 (시간적으로) 멀리 있으나 그의 성대한 덕(盛德)과 지극한 선함(至善)을 후세 사람들이 잊을 수 없다. '군자는 전왕의 현명함을 현명하다 여긴다(君子賢其賢)'<ref>대학 전 3장에서 '전왕불망'을 풀이하는 부분이다. 군자가 전대의 왕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은 전대의 왕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인정하기 때문이다.</ref>는 것은, 예컨대 요임금, 순임금, 문왕과 무왕의 덕을 후세 사람들이 존경하고 우러러 본다. 이것이 어찌 그 현명함을 현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나?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긴다(親其親)'<ref>역시 전 3장의 말이다. 시경 주송 열문편의 음악을 듣고 있는 제사의 주체들은 주나라의 왕과 제후들이니 모두 문왕과 무왕의 후손들이다. 그들이 문왕과 무왕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문무의 현명함 때문이고 둘째로 문무가 그들의 직접적인 조상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현기현'이고 후자가 '친기친'이다.</ref>는 것은, 예컨대 주나라 후직(后稷)<ref>주나라 왕실의 전설적인 시조이다.</ref>의 덕을 그 자손들이 종실로 높여서(宗之)<ref>이 부분은 번역하기 어렵다. '종'의 객체가 되는 것이 후직이 아니라 후직의 '덕'이므로 '종'은 '높이다'가 되어야 적절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후직의 후손들이 후직을 혈통상의 조상으로 여기고 제사지낸다는 것이므로 '종'을 '종실로 삼다'나 '시조로 삼다' 정도로 풀이하는 것도 적절해 보인다.</ref> 자신들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나온 곳으로 여긴다. 이것이 어찌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45 問“君子賢其賢而親其親.” ''' '군자현기현이친기친(君子賢其賢而親其親)'에 관한 질문. 曰: “如孔子仰文武之德, 是‘賢其賢’, 成康以後, 思其恩而保其基緖, 便是‘親其親’.” 木之(68때). '''대답: 예를 들어, 공자가 문왕과 무왕의 덕을 앙모한 것이 '현기현'이고, 성(成)왕과 강(康)왕<ref>문왕의 아들이 무왕, 그 아들이 성왕, 그 아들이 강왕이다.</ref> 이후 문왕과 무왕의 은혜를 그리워하며 그들이 개창한 기업(基緖)을 지켜나가는 것이 '친기친'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46 或問“至善”章. '''누군가가 '지선(至善)' 장<ref>대학 전 3장.</ref>에 관해 질문. 曰: “此章前三節是說止字, 中一節說至善, 後面‘烈文’一節, 又是詠歎此至善之意.” 銖(67이후). '''대답: 이 장의 앞부분 세 단락<ref>시경 상송 현조편을 인용한 단락, 시경 소아 면만편을 인용한 단락, 시경 대아 문왕편을 인용한 단락을 말한다. 첫 단락은 주자어류에서 다루지 않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16:26부터 30까지에 해당한다.</ref>은 '멈춤(止)'을 설명하고, 가운데 한 단락은 '지극한 선함(至善)'을 설명하며,<ref>시경 위풍 기욱편을 인용한 단락이다. 16:31에서 43까지에 해당한다.</ref> 마지막으로 '열문(烈文)'편을 인용한 한 단락은<ref>시경 주송 열문편을 인용한 단락이다. 어류에서는 16:44와 45까지에 해당한다.</ref> 다시 이 지선(至善)의 의미를 영탄(詠歎)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傳四章釋本末 == '''전 4장. '본말(本末)' 해석. *  16:47 問“聽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 '소송을 청문하여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과 다르지 않으나, 반드시 (백성들의) 송사 자체가 없게 하리라!'에 관한 질문.<ref>대학 전 4장의 첫 구문이다. 논어 12:13에 같은 구문이 있다. 여기서는 구체적인 질문 내용이 생략되어있지만 아래 주희의 대답을 보면 그 얼개를 대강 짐작해볼 수 있다.</ref> 曰: “固是以修身爲本, 只是公別底言語多走作. 如云: ‘凡人聽訟, 以曲爲直, 以直爲曲, 所以人得以盡其無實之辭. 聖人理無不明, 明無不燭, 所以人不敢.’ 如此, 卻是聖人善聽訟, 所以人不敢盡其無實之辭, 正與經意相反. 聖人正是說聽訟我也無異於人, 當使其無訟之可聽, 方得. 若如公言, 則當云‘聽訟吾過人遠矣, 故無情者不敢盡其辭’, 始得. 聖人固不會錯斷了事. 只是它所以無訟者, 卻不在於善聽訟, 在於意誠·心正, 自然有以薰炙漸染, 大服民志, 故自無訟之可聽耳. 如成人有其兄死而不爲衰者, 聞子皐將至, 遂爲衰. 子皐何嘗聽訟? 自有以感動人處耳.” 僩(69이후). '''대답: 물론 여기서 자신을 닦는[修身] 것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지만, 자네의 다른 말들은 대부분 본지에서 벗어난다. 예를 들어 (자네가) '평범한 사람들이 소송사건을 청문하여 판결할 적에는 굽은 것을 곧다고 여기고 곧은 것을 굽었다고 여기니, 그래서 (소송 당사자인) 사람들이 실상 없는 말(無實之辭)<ref>쉽게 말해 '거짓말'이다.</ref>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모든 이치에 밝고[理無不明] 그 밝음이 모든 곳을 비추므로[明無不燭] 사람들이 감히 실상 없는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고 한 대목은, 그렇게 되면 오히려 성인이 소송 판결을 남들보다 잘하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인) 사람들이 감히 실상 없는 말을 다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어 경(經)의 의미와 정반대가 된다. 성인이 여기서‘소송의 판결 수준은 나도 남과 다를 게 없다. 응당 판결해야할 소송 자체가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꼭 이렇게 말했다고 해야만 된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성인은) 마땅히 '소송의 판결은 내가 남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실상 없는(無情) 자들이 감히 말을 다하지 못한다'고 했어야만 된다. 물론 성인이 사건을 잘못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성인이 (자기 지역에서) 소송이 없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소송 판결을 잘 하는데 있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진실하게 하고[意誠] 마음을 바르게 하여[心正] 자연히 백성의 심지를 물들여 감화시켜(薰炙漸染) 크게 감복시키는데 있다. 그래서 저절로 판결할 소송도 없게 되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성(成) 땅의 어떤 사람이 자기 형이 죽었는데도 최(衰)<ref>상복의 일종이다.</ref>를 입지 않던 자가 있었는데 자고(子皐)<ref>공자의 제자</ref>가 부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최(衰)를 입었다.<ref>예기 단궁 하</ref> (이 이야기 속에서) 자고가 언제 소송 하나라도 판결한 적이 있던가? 자연스레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48 使他無訟, 在我之事, 本也. 恁地看, 此所以聽訟爲末. 泳(66때). '''사람들로 하여금 소송이 없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니 근본(本)이다. 이렇게 볼 때, 소송사건을 청문하여 판결하는 것은 말단[末]이 된다. 영(泳) 기록. (66세) *  16:49 “無情者不得盡其辭”, 便是說那無訟之由. 然惟先有以服其心志, 所以能使之不得盡其虛誕之辭. 義剛(64이후). ''' '실상 없는 자들이 말을 다하지 못한다[無情者不得盡其辭]'<ref>대학 전 4장에서 공자의 말을 해설하는 부분이다.</ref>가 바로 소송 자체가 없게 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먼저 그들의 심지를 감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服其心志] 그들이 거짓된 말(虛誕之辭)을 다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의강(義剛) 기록. (64세 이후) *  16:50 “大畏民志”者, 大有以畏服斯民自欺之志. 卓(미상). ''' '백성의 심지를 크게 두렵게 한다[大畏民志]'<ref>역시 대학 전 4장에서 공자의 말을 해설하는 부분이다.</ref> 는 것은, 백성들이 스스로를 속이려는 심지(自欺之志)를 크게 외복(畏服)<ref>상대방을 두렵게 하여 제압하는 것이다.</ref>시킨 것이다.<ref>'자기(自欺)'는 대학 전 6장 '성의'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개념이다. 대략 풀이하자면, 사람은 본성상 누구나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게 되어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데 실제로 실패했다면 이는 행위주체(agent)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본래의 소명(선한 본성)을 속이고 기만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서 '스스로를 속임'은 그리스 윤리학의 '의지박약(akrasia)'에 준한다. </ref> 탁(卓)의 기록. == 傳五章釋格物致知 == ''' 전 5장 '격물치지' 해석. <ref>본래 '대학'에는 이 부분이 없다. 주희는 대학의 '전' 부분이 '경' 부분을 남김 없이 부연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격물치지'에 관해서 만큼은 설명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본래는 이 부분이 있었으나 경전의 전승 과정에서 망실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자신의 학설에 근거하여 망실된 부분을 보충하는 챕터를 새로 써서 집어넣었으니 그 유명한 '보망(補亡)'장이다.</ref> *  16:51 劉圻父說: “‘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恐明明德便是性.” '''류기보(劉圻父)가 말함: '사람의 마음은 영명(靈)<ref>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등의 의식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을 '령(靈)' 혹은 '명(明)'이라고 한다. 오늘날 말로 가장 흡사한 것은 아마도 의식(Consciousness)일 것이다.</ref>하므로 지(知)가 없는 경우가 없고,<ref>'지(知)' 역시 그 의미가 령과 비슷하다. 세상을 감각하고 판별하는 능력이다. 주희는 종종 한 글자를 더 붙여서 '지각(知覺)'이라고 부른다. 물론 지가 감각하고 판별하는 대상은 감각기관의 감각대상인 실물들 뿐만아니라 형질이 없는 이치(理)까지 포함한다. 장원태 주희의 지각 개념의 연원 -지 개념과 관련된 논의를 중심으로-(2010)을 참조하라.</ref> 천하의 사물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다.'<ref>대학 전 5장. 일명 '보망장'</ref> 아마도 ‘밝은 덕을 밝히는 것(明明德)’이 곧 본성(性) 같습니다.<ref>이 주장은 아래에서의 주희의 논박과 별개로 '명명덕'이 아니라 '명덕'을 '성'과 등치시켜야 말이 된다. '명명덕'은 동명사인데 '성'은 명사이기 때문에 등치시키기 어렵다. 일역판은 명덕과 본성의 관계에 관해서 14:65, 14:115, 5:44, 14:85 등을 비롯하여 한원진의 주자언론동이고 권2의 해당부분(곽신환 역주 기준으로 112쪽) 참조하라고 하고 있다. 한원진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덕은 마음(心)이라고 결론짓는다.</ref> 曰: “不是如此. 心與性自有分別. 靈底是心, 實底是性. 靈便是那知覺底. 如向父母則有那孝出來, 向君則有那忠出來, 這便是性. 如知道事親要孝, 事君要忠, 這便是心. 張子曰: ‘心, 統性情者也.’ 此說得最精密.” '''대답: 그렇지 않다. 마음(心)과 본성(性)은 본래 구분된다. 영명(靈)한 것이 마음(心)이며, 실질적인 내용으로 가득찬(實) 것이 본성(性)이다.<ref>실(實)은 실물(實物), 곧 실제로 존재하여 현실상에 임팩트를 끼친다는 뜻도 있고, 우리를 속이는 가짜(假)가 아니라 진짜 진품이라는 뜻도 있다. 과자 봉투를 열어봤는데 70%만 차있으면 실(實)하다고 할 수 없다. 100% 차있어야 실한 것이고 빈 공간(虛)이 있으면 허(虛)한 것이다. 누군가가 이러이러한 것이 있다고 말한 뒤 실제로 그 물건을 가져와서 자신의 말이 사실(事實)임을 입증하는 것이 실증(實證)이다. 실증할 수 있는 물건만이 확실(確實)하다. 실증을 위해 들고와야 하는 물건은 구체적인 물건이므로 '실'은 구체성과 현실(現實)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주희의 생각에 충이나 효 같은 이치들은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이며 구체적이고 확실하며 현실적인 임팩트를 가지는 진짜 이치이다. 우리의 본성은 이런 것으로 실(實)하게 가득차 있다. 반면에 우리의 마음(心)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작동하고 활동하는 존재이며 그 활동에 있어 어떤 도덕적 내용성은 없다. 그러므로 주희는 명덕(이는 주희에게 있어 심과 동의어인데)을 '비어있으나 영명하여 어둡지 않은(虛靈不昧)' 물건이라고 정의했다. '비어있다'는 내용성을 결하고 있다는 뜻이니 심의 작용이나 활동에 본질필연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속성이 붙어있지 않다는 말이다.이처럼 심=명덕=지각활동에 도덕적 내용성이 없음에 대해서는 주자언론동이고(2002) 138쪽을 보라. 98:43을 보면 짐승의 심장을 해부해 보면 모두 속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들어 마음(=심장)은 허(虛)한 물건임을 입증하려 하고 있다. 이는 '비었다'는 말이 도덕심리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물리적인 측면에도 적용되는 표현임을 시사한다. 또한 4:39, 5:14, 5:45를 참조하라.</ref> 영명함이란 곧 지각(知覺)<ref>위의 주석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의식(Consciousness)의 감각하고 판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20:94를 참조하라.</ref>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대하면 효(孝)가 나오고, 임금을 대하면 충(忠)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본성이다.<ref>부모를 보면 우리 의식 속에서 효심이 솟아오르고 임금을 보면 충심이 솟아오르는데 이와 같이 되도록 미리 정해져있다고 한다면 그 미리 정해진 실질적인 내용이 곧 본성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는 죽을 위기에 처한 어린 동물을 보고 의식의 수면으로 측은해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걸 보면 이와 같은 형태로 우리의 마음이 미리 인(仁)한 속성으로 세팅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리 정해진 속성을 본성이라고 한다. 5:14, 23을 참조하라.</ref> '부모를 섬길 때 효도해야 하고 임금을 섬길 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知道)은 마음(心)이다.<ref>마음(心)은 (자신의 본성 그 자체인) 실질적인 도덕원칙들을 헤아리고 구체적인 상황들이 제한하고 있는 조건을 헤아려서 최선의 판단을 내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행위주체(agent)이다. 5:3을 참조하라.</ref> 장자(張子)가 '마음(心)은 본성과 감정(性情)을 아우르는(統)<ref>통(統)은 포괄하고 아우른다는 뜻도 있고 통솔하고 제어한다는 뜻도 있다. 개념적으로 보면 마음은 본성과 감정을 모두 그 하위범주로 포괄하는 상위범주이다. 실제 작동하는 양상을 보면 우리의 의식은 도덕적 본성에 따라 도덕적이거나 그렇지 못한 감정을 발산하므로 마음이 본성과 감정 양측을 통솔하고 제어한다고 할 수 있다. 5:65를 보라.</ref> 자이다'라고 했는데, 매우 정밀(精密)한 설명이다. 次日, 圻父復說過. 先生曰: “性便是那理, 心便是盛貯該載·敷施發用底.” '''다음 날, 유기보가 다시 같은 말을 하자 선생이 말함: 본성(性)이 이치(理)이고, 마음(心)은 그것을 가득 담고있다(盛貯該載)가 발산하여 작동시키는(敷施發用) 것이다.<ref>저장과 발산은 5:48에 거의 같은 표현이 보이니 참조하라.</ref> 問: “表裏精粗無不到.” '''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表裏精粗) 모두 통달하지 않음이 없다'<ref>대학 전 5장. 격물치지에 꾸준히 힘을 쓰면 결국 만사만물의 이치에 모두 통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겉, 속, 정밀, 거침이 각각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16:54부터 57까지에 자세하다. 거칠다는 표현에 대해서만 조금 부연하자면 이는 표면이 거칠거나 성격이 거친 것이 아니라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의미에서의 거침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적에 대개 먼저 대상을 '거칠게' 스케치한 뒤 정밀하게 다듬어나간다.</ref>에 관한 질문. 曰: “表便是外面理會得底, 裏便是就自家身上至親至切·至隱至密·貼骨貼肉處. 今人處事多是自說道: ‘且恁地也不妨.’ 這箇便不是. 這便只是理會不曾到那貼底處. 若是知得那貼底時, 自是決然不肯恁地了.” 義剛(64이후). 子寰同. '''대답: 겉이란 바깥쪽에서 헤아려 이해(理會)할 수 있는 것이고, 속이란 자기 일신상에서 지극히 친근하고 절실하게, 지극히 은밀하게, 뼈와 살에 사무치는 지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일을 처리할 때 대개 ‘이 정도만 해도 괜찮겠지’라고 중얼거린다. 이는 잘못이다. 이는 이해(理會)가 깊이 사무치는 지점까지 이른 적이 없는 것이다. 정말로 사무치는 지점까지 이해하면 자연히 결단코 적당히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자환(子寰)의 기록도 동일하다.<ref>자환은 본 조목에서 질문하고 있는 류기보(劉圻父)의 이름이다. '기보'는 자(字).</ref> *  16:52 問: “‘因其已知之理推而致之<ref>'致之'는 통행본 대학장구에서 '益窮之'라고 썼다. 14:88을 보라.</ref>, 以求至乎其極’, 是因'定省'之孝以至於色難養志, 因事君之忠以至於陳善閉邪之類否?” '''질문: '이미 알고 있는 이치로부터 미루어 지극히 하여 그 극치에 이르기를 추구한다(因其已知之理推而致之, 以求至乎其極)'<ref>대학장구 전 5장.</ref>이란, '저녁에는 부모님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새벽에는 부모님의 안부를 살펴야 한다'<ref>예기 곡례 상. 14:81을 참조하라.</ref> 같은 효도로부터 시작하여 안색을 부드럽게 하고(色難)<ref>논어 2:8. 주희의 주석에 의하면 부모를 깊이 사랑하는 자식은 마음 속에 화기(和氣)가 있고, 화기가 있는 자의 얼굴에는 반드시 화색(和色)이 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효성은 애써 흉내내기 어려우니 '어렵다'고 한 것이다.</ref>의향을 봉양하는(養志)<ref>맹자 4A:19. 맹자에 의하면 증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봉양할 적에는 식사 후에 아버지에게 먼저 '여분의 음식은 누구에게 주시렵니까'하고 물었고 아버지가 '여분이 있느냐'고 물으면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반면에 증자의 아들인 증원이 증자를 봉양할 적에는 누구에게 줄 것인지 묻지 않았고 설령 증자가 묻는대도 '여분이 없다'고 대답했다. 맹자는 증원의 봉양은 아버지의 입과 몸을 봉양한 것이고 증자의 봉양은 아버지의 의향을 봉양한 것이니 두 사람의 수준 차가 크다고 평가했다.</ref> 효도에 이르고, 임금을 섬기는 충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선한 것을 진설하여 (임금 마음 속의) 삿된 것을 막아내는(陳善閉邪)<ref>맹자 4A:1. 14:114를 참조하라.</ref> 충성에 이르는 등등을 의미합니까? 曰: “此只說得外面底, 須是表裏皆如此. 若是做得大者而小者未盡, 亦不可; 做得小者而大者未盡, 尤不可. 須是無分毫欠闕, 方是. 且如陸子靜說‘良知良能', '四端根<ref>이 글자는 이상하다. 현재 수중에 있는 모든 판본에서 일관되게 '근(根)'이라고 하지만 육구연의 평소 화법을 생각해 보면 본(本)이 더 어울린다. 우선은 그대로 둔다.</ref>心’, 只是他弄這物事. 其他有合理會者, 渠理會不得, 卻禁人理會. 鵝湖之會, 渠作詩云: ‘易簡工夫終久大.’ 彼所謂易簡者, 苟簡容易爾, 全看得不子細. ‘乾以易知’者, 乾是至健之物, 至健者, 要做便做, 直是易; 坤是至順之物, 順理而爲, 無所不能, 故曰簡. 此言造化之理. 至於‘可久則賢人之德’, 可久者, 日新而不已; ‘可大則賢人之業’, 可大者, 富有而無疆. 易簡有幾多事在! 豈容易苟簡之云乎?” 人傑(51이후). '''대답: 이 말은 다만 바깥쪽만을 설명했을 뿐이다. 반드시 겉과 속이 모두 그러해야 한다. 만약 큰 것을 해냈더라도 작은 것에서 미진하다면 역시 불가하다. 작은 것을 해냈어도 큰 것에서 미진하다면 더욱더 불가하다. 반드시 털끝만큼의 부족함도 없어야만 한다. 예컨대 육자정(陸子靜)<ref>주희의 라이벌인 상산 육구연(陸九淵, 1139-1193)이다.</ref>은 '양지양능(良知良能)'<ref> 맹자 7A:15가 원출전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이 양능이요, 생각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 양지이다(孟子曰, 人之所不學而能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 양(良)은 좋다는 뜻이다. 사람이 타고난 천연의 좋은 본성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후에 육구연과 왕수인이 중시하면서 이 개념의 특징과 지위가 달라지게 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본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진래의 '양명 철학'(2003, 전병욱 옮김)의 288쪽을 보라. </ref>을 설파하고 '사단(四端)은 마음에 뿌리를 둔다(根心)'<ref>인간이 도덕적일 수 있는 타고난 근거를 주희 같으면 본성(性)이라고 하겠지만 육구연은 꾸준히 본심(本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맹자가 말한 사단지심이야말로 인간의 '본심'이라고 주장한다. 진래의 '송명성리학(1997, 안재호 옮김)'275쪽을 보라. 근심(根心)이라는 표현은 맹자 7A:21에서 유래한다.</ref>고 하는데, 이는 그가 이 물건을 가지고 장난치고(弄)<ref>'장난치다'는 표현은 상대방이 완전히 잘못 짚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무언가를 어느 정도 알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엇나갔을 때 보통 이 글자를 쓴다. 16:13을 보라.</ref>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 외에 응당 헤아려야 하는 것들을 그는 헤아리지 못하면서 오히려 남들이 헤아리려는 것을 금지한다.<ref>주희의 육구연 비판은 어류 권 124의 여러 조목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아호의 모임(鵝湖之會)<ref>주희와 육구연 형제가 여조겸의 중재로 1175년에 아호사에서 만나서 여러 문제를 토론했던 사건을 말한다. 진래의 '주희의 철학'(2002, 이종란 외 옮김) 428쪽, 수징난의 '주자평전'(2015, 김태완역) 상권 698쪽을 참조하라.</ref>에서 그가 지은 시에서 '이간 공부가 끝내 장구하며 위대하다(易簡工夫終久大)'<ref>육구연은 자기네 육씨형제의 학문을 쉽고 간단한(易簡) 학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주희의 학문을 지리멸렬(支離)하다고 평가한다. 이주해와 박소정이 완역한 육구연집(2018) 제 3권 317쪽을 보라. 중화서국판 육구연집 기준으로 301쪽이다. 또한 '주자평전'(2015) 상권 708쪽에서 이 시의 전후맥락을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하였는데, 그가 말한 이간이란 단지 적당히 하고(苟簡) 쉽게쉽게 가는(容易) 것일 뿐이요, 결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자세하고 주도면밀하게 간파하지 못한다. '건(乾)<ref>팔괘의 하나로 하늘을 상징한다.</ref>은 쉬움으로 주관하고(乾以易知)'<ref>주역 계사상 제 1장. '건은 쉬움으로 다스리고 곤은 간단함으로 능하다(乾以易知, 坤以簡能).'</ref>의 경우, 건이란 지극히 강건한(健) 것이니, 강건한 자는 해야 할 일을 곧바로 해버리므로 정말로(直是) '쉽다'. 곤(坤)<ref>팔괘의 하나로 땅을 상징한다.</ref>은 지극히 유순한 것이니, 이치에 따라 행하여 능하지 못하는 바가 없으므로 '간단하다'. 이는 우주의 생성변화(造化)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오래 지속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덕이다(可久則賢人之德)'<ref>주역 계사상 제 1장. '(그 사람의 마음 속이) 쉬우면 (남들이 그 사람의 속을) 알기 쉽고, (그 사람이 하려는 바가) 간단하면 (남들이 그 사람을) 따르기 쉽다. 알기 쉬우면 친해지고 따르기 쉬우면 (서로 협력하여) 성취가 있다. 친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성취가 있으면 크게 될 수 있다.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덕이요 크게 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사업이다(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주희는 앞선 구절에서는 지(知)를 '주관하다'로 풀이하였으나 여기서부터는 같은 글자를 '알다'로 풀이한다. 74:22부터 48까지가 이 부분을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끝없이 날마다 새로워진다(日新)는 것이다. '크게 될 수 있으면 이는 현인의 사업이다(可大則賢人之業)'의 경우, 크게 될 수 있다는 것은 풍부하게 갖추어(富有) 끝이 없다는 것이다.<ref>주역 계사상 제 5장. '풍부하게 갖추었다는 것은 큰 사업을 말하고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성대한 덕을 말한다(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ref> 이간(易簡)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담겨 있는가! 어찌 적당히 하고(苟簡) 쉽게쉽게 가자는(容易) 말이겠는가? *  16:53 任道弟問: “‘致知’章, 前說窮理處云: ‘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且經文‘物格而后知至’, 卻是知至在後. 今乃云‘因其已知而益窮之’, 則又在格物前.” '''내 동생인 임도(任道)의 질문: 대학장구의 치지(致知)장의 앞부분에서 이치를 파고드는(窮理) 것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경문(經文)에서는 '사물이 다 탐구된(物格)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而后知至)'라고 되어 있어, 앎(知)이 지극해지는 것이 오히려 나중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파고든다'라고 한다면 이는 또 사물의 탐구(格物)에 선행하게 됩니다.<ref>대학의 경문에 따르면 격물이 치지에 선행해야 하는데 주희의 보망장의 표현은 마치 치지가 격물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ref> 曰: “知先<ref>조선고사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원(元)'이다.</ref>自有. 才要去理會, 便是這些知萌露. 若懵然全不向著, 便是知之端未曾通. 才思量著, 便這箇骨子透出來. 且如做些事錯, 才知道錯, 便是向好門路, 卻不是方始去理會箇知. 只是如今須著因其端而推致之, 使四方八面, 千頭萬緖, 無有些不知, 無有毫髮窒礙. 孟子所謂: ‘知皆擴而充之,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擴而充之’, 便是‘致’字意思.” 賀孫(62이후). '''대답: 앎(知)은 본래부터(元)<ref>혹은, '앎이란 무엇보다 먼저(先)'</ref>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가서 살피고 헤아리는 즉시<ref>격물을 말한다.</ref> 그 앎의 싹이 틔워나온다.<ref>격물의 결과로서 치지를 말한다.</ref> 만약 멍하니 아무 쪽으로도 관심이 향하지 않으면 이는 앎의 싹이 아직 나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어떤 대상에 대하여) 사유(思量)하기만 하면 그 즉시 (그 대상에 대한) 앎의 골자(骨子)가 싹터나올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잘못하였을 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이미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이지, 그제서야 비로소 앎(知)을 얻기 위해 헤아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ref>격물과 치지가 별개의 단계가 아니라는 뜻이다.</ref> 이제는 바로 이 (앎의) 싹(端)<ref>질문자가 언급한 '이미 아는 이치(已知之理)'를 말한다.</ref>에서부터 미루어 나가 지극히 하여(推致) 사방팔방(四方八面), 온갖 복잡한 것들(千頭萬緖)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전혀 없으며, 털끝만큼의 막힘(窒礙)도 없도록 해야 한다. 맹자(孟子)가 말한 '(나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널리 확장하고 가득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막 타오르기 시작하고 샘이 막 솟아나기 시작하는 기세와 같을 것이다(知皆擴而充之, 若火之始然, 泉之始達).'<ref>맹자 2A:6.</ref>에서 이 '확장하고 채운다(擴而充之)'는 것이 바로 '치(致)'자의 의미이다. 하손(賀孫)의 기록.<ref>하손은 이 조목의 질문자인 임도의 형이다.</ref> (62세 이후) *  16:54 致知, 則理在物, 而推吾之知以知之也; 知至, 則理在物, 而吾心之知已得其極也. '''치지(致知)란, 사물에 있는 이치(理)를 나의 앎(知)을 미루어서(推) 파악하는(知)<ref>이 문장에서 지(知)가 두 번 쓰였으나 뉘앙스는 다르다. 앞의 앎은 직전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했듯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 부분을 미루어 확장하여 아직 알지 못하는 이치를 간파하는 행위가 두 번째 지(知)이다.</ref> 것이다. 지지(知至)란, 사물에 있는 이치에 대하여 나의 마음 속 앎(知)이 (그 이치의) 극치까지 터득한 것이다. 或問: “‘理之表裏精粗無不盡, 而吾心之分別取舍無不切.’ 旣有箇定理, 如何又有表裏精粗?” '''누군가의 질문: '대학(大學)'에서 '이치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내 마음의 분별과 취사가 모두 적절하지 않음이 없다'<ref>이 부분은 통행본과 다르다. 통행본 쪽은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에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라고 쓴다. 반면에 회암집 권 50의 답주순필 제 10서를 비롯하여 어류 16:59, 15:151 등에서는 이 조목과 비슷하게 쓰고 있다. 일역판의 역자들은 본 조목이 통행본 성립 이전의 미완성고를 인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ref>고 했습니다. 이미 확정된 이치(定理)<ref>14:163을 참조하라.</ref>가 있는데 어째서 다시 (이치들 사이에)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칠다는 차이가 있습니까? 曰: “理固自有表裏精粗, 人見得亦自有高低淺深. 有人只理會得下面許多, 都不見得上面一截, 這喚做知得表, 知得粗. 又有人合下便看得大體, 都不就中間細下工夫, 這喚做知得裏, 知得精. 二者都是偏, 故大學必欲格物·致知. 到物格·知至, 則表裏精粗無不盡.” 賀孫(62이후). '''대답: 이치에는 본래 겉과 속, 정밀하고 거칠다는 차이가 있다. (이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에도 자연히 높고 낮고 깊고 얕다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직 아래 부분의 이치만 잔뜩 이해할 뿐<ref>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것들이다.</ref> 그 윗부분은<ref>추상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이다.</ref> 전혀 간파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겉을 안다', '거친 것을 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큰 틀(大體)은 간파하지만, 그 중간에서 세세하게 노력(工夫)하는 것은 전혀 하지 않는다.<ref>16:52에서 주희가 육구연을 비판한 내용과 같다.</ref> 이런 경우 '속을 안다', '정밀한 것을 안다'고 한다. 이 둘은 모두 편향되었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고(格物) 앎을 지극히(致知)하게끔 한다. 사물이 다 탐구되고(物格) 앎이 지극해지는(知至) 경지에 이르면 결국 겉과 속, 정밀하고 거친 것을 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55 問表裏精粗. ''' '표리정조'<ref>대학장구 전 5장.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須是表裏精粗無不到. 有一種人只就皮殼上做工夫, 卻於理之所以然者全無是處. 又有一種人思慮向裏去, 又嫌眼前道理粗, 於事物上都不理會. 此乃談玄說妙之病, 其流必入於異端.” 銖(67이후). '''대답: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에 모두 통달'<ref>대학 전 5장.</ref>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표면적인(皮殼) 부분에서만 공부(工夫)하는 바람에 이치(理)의 소이연(所以然)<ref>어떤 현상을 그와같이 되게끔 해준 원인이 되는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현상이다. 어떤 법칙이 작용하였기에 사과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가를 탐구한 끝에 찾아낸 '중력의 법칙' 같은 것이 '소이연지리(所以然之理)'이다. 문법적으로는 대략 'the law(理) by(以) which(所) it is so(然)' 정도로 이해하면 좋다.</ref>에 관해서는 전혀 맞는 것이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생각(思慮)이 오직 안쪽으로만(裏) 향하고 눈앞의 도리는 또 거칠다고(粗) 싫어해서(嫌), 실제 사태와 사물들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현묘한 것만 읊어대는(談玄說妙) 병통이니 그러다 결국 이단(異端)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56 問表裏. '''겉과 속(表裏)에 관한 질문. 曰: “表者, 人物之所共由; 裏者, 吾心之所獨得. 表者, 如父慈子孝, 雖九夷八蠻, 也出這道理不得. 裏者, 乃是至隱至微, 至親至切, 切要處.” '''대답: 겉(表)이란 사람과 사물이 다 같이 따라가는(共由)<ref>중용장구 제 20장에서 주희는 '공통된 도란, 천하고금이 함께 따라가는 길이다(達道者, 天下古今所共由之路).'라고 하였다. 유(由)는 정해진 길이 있을 때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않고 그 길을 따라 쭉 걸어간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맹자 7A:33에서 '유의(由義)'라고 할 때에도 분명 의를 하나의 길로 간주하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는 이미지를 시사하고 있다.</ref> 것이고, 속(裏)이란 내 마음 속으로 홀로 얻은 것이다.<ref>주희는 누구나 따라야 할 규범인 '도'를 종종 우리 앞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주어진 길로 형상화한다. 반면에 '덕'은 각각의 개체가 모종의 과정을 거쳐 획득한(得) 상태 같은 것이므로 각 개체에 국한된 구체적인 것이지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무언가가 아니다. 6:17에서 '도란, 사람들이 다 같이 따라가는 것이요, 덕이란 자신이 홀로 얻은 것이다(道者, 人之所共由, 德者, 己之所獨得).'와 비교해보면 본 조목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겉'은 '도'이고 '속'은 '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34:46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보인다.</ref> 겉이란, 예를 들어 아비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하는 것은 그 어떤 오랑캐라 할지라도 이 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ref>그만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이라는 말이다.</ref> 속이란, 지극히 은밀하고 지극히 미세하며 지극히 친근하고 지극히 절실한 핵심부분이다. 因擧子思云: “語大, 天下莫能載; 語小, 天下莫能破.” '''이어서 자사(子思)의 말을 거론했다: '큰 것으로 말하자면 천하도 이를 싣지 못하며, 작은 것으로 말하자면 천하도 이를 깨뜨리지 못한다.'<ref>중용 제 12장. 다시 한 번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과 개체가 획득한 상태를 대비하고 있다.</ref> 又說“裏”字云: “‘莫見乎隱, 莫顯乎微.’ 此箇道理, 不惟一日間離不得, 雖一時間亦離不得, 以至終食之頃亦離不得.” 蘷孫(68이후). '''다시 '리(裏)' 자를 설명했다: '은밀한(隱) 것만큼 노출된(見) 것이 없으며 미세한(微) 것만큼 현저한(顯) 것이 없다'<ref>중용 제 1장. 중용의 본래 맥락에서 이 부분은 자기 자신만 안다고 생각하는 어떤 마음 속의 악한 의념이 남들의 눈에는 명백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성경 구절 가운데 '자기 눈의 대들보' 운운하는 이야기와 같은 취지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석하면 이 인용구는 지금 이 조목에 딱 맞지 않다. 번역자의 생각에 이 구문을 본 조목의 흐름에 맞추어 해석하려면 은밀하고 미세한 것은 '속'을 말하고 노출되고 현저한 것은 '겉'을 말한다고 해야 할 듯하다.</ref> 이 도리는 단 하루라도 이탈해서는 안 되고, 단 한 시진(一時)이라도 이탈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한 식경(終食之頃)<ref>논어 4:5. 밥 한 끼 먹는 시간이다.</ref>조차도 이탈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f>이 역시 중용 1장을 레퍼런스 삼아 이해해야 한다. '도(道)란 것은 잠시도 이탈할 수 없는 것이니, 이탈할 수 있으면 도(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한다(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보지 않는 바에도 삼가며 두려워하는 것은 '속'의 측면이요 '덕'의 측면이요 '은밀하고 미세한' 측면이다.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는 '겉', '도', '노출되고 현저한' 측면이다.</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57 傅問表裏之說. '''부(傅)<ref>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렵다.</ref>가 표리(表裏)의 해설에 관하여 질문. 曰: “所說‘博我以文, 約我以禮’, 便是. ‘博我以文’, 是要四方八面都見得周匝無遺, 是之謂表. 至於‘約我以禮’, 又要逼向身己上來, 無一毫之不盡, 是之謂裏.” '''대답: '문(文)<ref>텍스트 뿐만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적 전승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말로 훌륭한 전통과 깊은 교양 등에 가깝다.</ref>으로 나를 넓혀주시고, 예(禮)로 나를 붙잡아(約)<ref>방종한 마음을 묶어주는 규범과 규약을 말한다. 16:20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주셨다.'<ref>논어(論語) 9:10. 비슷한 표현을 논어 6:25, 12:15에서도 볼 수 있다.</ref>에서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문으로 나를 넓힌다'는 것은 사방팔방으로 모두 남김없이 두루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겉(表)이라고 한다. '예로 나를 붙잡는다'의 경우는 다시 자기 스스로에게 절실하게 밀착하여<ref>16:51에서 '뼈와 살에 사무친다(貼骨貼肉處)'고 한 부분을 참조하라.</ref> 털끝만큼의 미진함도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속(裏)이라고 한다. 子升云: “自古學問亦不過此二端.” '''자승(子升)<ref>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의 몇몇 곳에서 목지(木之)의 기록에 '형인 자승(子升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자승이 목지의 친족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ref>의 말: 예로부터 학문(學問)이란 역시 이 두가지 방면(二端)<ref>박학과 약례를 말한다. 대체로 전자는 지적이고 후자는 수행적이다.</ref>에 불과합니다. 曰: “是. 但須見得通透.” 木之(68때). '''대답: 그렇다. 다만 반드시 투철하게 이해해야 한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58 問精粗. ''' '정조(精粗)'에 관한 질문. 曰: “如管仲之仁, 亦謂之仁, 此是粗處. 至精處, 則顔子三月之後或違之. 又如‘充無欲害人之心, 則仁不可勝用; 充無欲穿窬之心, 則義不可勝用’. 害人與穿窬固爲不仁不義, 此是粗底. 然其實一念不當, 則爲不仁不義處.” 蘷孫(68이후). '''대답: 관중의 인(管仲之仁) 같은 경우도 인(仁)이라고 한다.<ref>논어 3:22, 14:17, 14:18을 보라. 공자는 관중이 인(仁)하냐는 문제에 있어 제한적으로 긍정하고 있다.</ref> 이것은 거칠게(粗)<ref>이 표현에 관해서는 16:52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말한 것이다. 정밀(精)하게 말하자면, 안자(顔子)도 석달에 한 번 쯤 인(仁)을 어겼다<ref>논어 6:5</ref>(고 할 때의 '인'이다). 또, 예를 들어 '남을 해치려 하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인(仁)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며, 담을 넘어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의(義)를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ref>맹자 7B:31.</ref> 같은 경우, 남을 해치고 담을 넘는 것은 물론 불인불의(不仁不義)하다. 이는 (불인불의의)를 거칠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한 순간의 생각이라도 마땅하지 않으면 불인불의하게 된다.<ref>이는 불인불의를 정밀한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59 周問大學補亡“心之分別取舍無不切”. '''주모(周謨)가 대학 보망장의 '마음의 분별과 취사가 모두 적절하지 않음이 없다'<ref>이 표현은 16:54를 참조하라.</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只是理徹了, 見善, 端的如不及; 見不善, 端的如探湯. 好善, 便端的‘如好好色’; 惡不善, 便端的‘如惡惡臭’. 此下須連接誠意看. 此未是誠意, 是醞釀誠意來.” 淳(61·70때). '''이치를 철저히 꿰뚫으면, 선(善)을 보고는 정말로 (자신은 그에) 못 미치는 듯이 (분발)하며 불선(不善)을 보고는 정말로 끓는 물을 더듬는 것처럼 (기피)하게 되고,<ref>논어 16:11</ref> 선을 좋아하기를 정말로 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고 불선을 싫어하기를 정말로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게 된다.<ref>대학 전 6장.</ref> 여기서부터는 '성의(誠意)'장과 연결시켜서 보아야 한다. 여기는<ref>'마음의 분별과 취사가 적절'해지는 격물치지의 단계를 말한다.</ref> 아직 의지를 진실하게(誠意) 한 것은 아니고, 의지의 진실성을 준비하는(醞釀)<ref>온양(醞釀)은 술을 빚기 위해 곡식이나 과일 등을 발효시키는 작업이다. 격물치지의 끝자락에서 성의라는 술이 이미 차근차근 익어가고 있다는 말이다.</ref> 단계이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謨錄云: “此只是連著誠意說. 知之者切, 則見善眞如不及, 見不善眞如探湯, 而無纖毫不實故爾.”> '''<모(謨)의 기록: 이는 성의장과 연결해서 설명한 것이다. 앎이 절실해지면 선을 보고는 정말로 (자신은 그에) 못 미치는 듯이 (분발)하며 불선을 보고는 정말로 끓는 물을 더듬는 것처럼 (기피)하니, 이는 털끝만큼도 (자신의 의지가) 진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  16:60 李問“吾之所知無不切.” 이(李)가 '자신이 아는 바가 절실하지 않음이 없다'<ref>통행본 대학장구에는 없는 구절이다. 일역판은 사서찬소(四書纂疏)에서 인용한 '황씨'의 기록을 근거로 이 부분이 대학장구 옛 판본의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일역판은 이 황씨가 황간(黃幹)일 수도 있고 황사의(黃士毅)일 수도 있다고 하나 지준호는 '『四書大全』黃氏 · 勉齋黃氏 註解 硏究(2002)'에서 황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某向說得較寬, 又覺不切; 今說較切, 又少些寬舒意; 所以又說道‘表裏精粗無不盡’也. 自見得‘切’字, 卻約向裏面.” 賀孫(62이후). '''대답: 내가 예전에 한 설명이 다소 느슨하고(寬) 또 긴절(緊切)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설명은 보다 긴절하지만 또 느슨함(寬)이 좀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겉과 속(表裏), 정밀하고 거친 것(精粗)에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이 역시 통행본과는 다르다. 16:54를 보라.</ref>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절(切)'자가 사람의 내면을 붙잡아준다는(約)<ref>'약'에 관해서는 16:57을 참조하라.</ref>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62세 이후) *  16:61 安卿問“全體大用”. '''안경(安卿)<ref>안경이라는 자를 쓰는 제자가 둘인데, 여기서는 진순을 말한다. 이에 대한 고증은 일역판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이 '(마음의) 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ref>대학장구 전 5장. 이 문구에 대해서는 16:7과 54를 참조하라. 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에 대해 물었다. 曰: “體用元不相離. 如人行坐: 坐則此身全坐, 便是體; 行則此體全行, 便是用.” 道夫(60이후). '''대답: 본체(體)와 작용(用)은 원래 뗄 수 없다. 사람이 걸었다 앉았다 하는 것과 같다. 앉으면 이 몸(身)이 통체로 앉으니, 곧 '본체(體)'이다. 걸으면 이 본체(體)가 통체로 움직이니, 곧 '작용(用)'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62 問: “‘格物’章補文處不入敬意, 何也?” '''질문: '격물(格物)' 장의 보충문<ref>앞서 설명했듯 대학 전 5장은 원문이 이미 망실되었다는 판단 하에 주희가 직접 써서 채워 넣은 것이다.</ref>에 경(敬)<ref>경건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주희는 '두려워하는 마음'에 가깝다고 풀이한다. 일을 처리할 적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미칠 파장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신함을 말한다(15:141).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학문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를 거경(居敬) 혹은 지경(持敬)이라고 하고 후자를 궁리(窮理)라고 한다. 거경에 대해서는 16:8의 주석을 참조하라. 궁리는 대학에서의 격물치지 단계를 말한다.</ref>에 관한 내용을 넣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ref>거경과 궁리가 학문의 두 축인데 어째서 여기서는 궁리에 대해서만 설명하느냐는 질문이다.</ref> 曰: “敬已就小學處做了. 此處只據本章直說, 不必雜在這裏; 壓重了, 不淨潔.” 㝢(61이후). '''대답: 경(敬)은 이미 소학(小學)의 부분에서 다 한 것이다.<ref>다 했으니 더는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주희가 여기서 '이미 다 한 것이다'고 말한 것은 '경'은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소학 단계의 과업이므로 그 일에 대한 설명은 소학용 교재에 다 써놓고 끝내는 것이 맞지 대학용 교재에까지 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ref> 이 부분에서는<ref>대학 전 6장, 격물치지의 단계를 말한다.</ref> 이 장(本章)의 본래 취지에 맞게 직설(直說)할 뿐, 다른 것을 여기다 섞어 넣을 필요가 없다. 억지로 쑤셔 넣으면 깔끔하지 못하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63 問: “所補‘致知’章何不效其文體?” '''질문: 치지(致知)장을 보충하신 글은 왜 (대학의 다른 장들의) 문체를 모방해서 쓰시지 않은 겁니까? 曰: “亦曾效而爲之, 竟不能成. 劉原父卻會效古人爲文, 其集中有數篇論, 全似禮記.” 必大(59-60때). '''대답: 모방해서 쓰려고 했는데 끝내 해내지 못했다. 류원보(劉原父)<ref>류창(劉敞, 1019-1068). 자는 원보. 문집으로 '공시집(公是集)'이 있으며 현재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다. 주희가 말한 예기의 문체를 모방한 글은 공시집 권 37에 보인다. 류원보의 글에 대한 주희의 평가는 어류 85:7, 85:10, 139:70을 참조하라.</ref>는 옛사람의 문체를 잘 모방해서 그의 문집에는 '예기(禮記)'와 매우 흡사한 글이 몇 편 있다. 필대(必大)의 기록. (59-60세 무렵) == 傳六章釋誠意 == '''전 제6장. 성의(誠意) 해석. *  16:64 “誠其意”, 只是實其意. 只作一箇虛字看, 如“正”字之類. 端蒙(50이후). ''' '그 의지를 성(誠)하게 한다'는 것은 그 의지를 진실(實)하게 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정말로(正)'의 경우처럼 (성이라는 글자를) 허자(虛字)<ref>'이후에(而後)'나 '그...(其)' 처럼 문법적 기능을 하기 위해 놓인 글자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이나 실을 부사취급하라는 말로 보인다. 그 경우 현대어로는 조금 구어적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진실로~' 상태로 한다' 정도가 되겠다. 15:139를 참조하라.</ref>로 간주하라.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6:65 說許多病痛, 都在“誠意”章, 一齊要除<ref>강희년간에 간행된 여유량본 이후 판본들은 모두 이렇게 '요제(要除)'라고 쓰지만 그 이전 판본들은 일관되게 '격물(格物)'이라고 쓴다. 조선정판본과 고문해의의 저자들은 옛 판본에서 '격물'이라고 썼음을 알고 있었으나 '요제'로 쓰는 게 옳다고 판정했다. 일역판은 '요제'로 쓴 판본 가운데 여유량본이 가장 오래되었음을 들어 여유량이 글의 의미를 고려하여 리교(理校)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만 일역판의 생각대로 여유량이 문헌적 근거 없이 교감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교감한 것인지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이상 예단할 수 없다. 여기서는 우선 '요제'로 풀이한다.</ref>了. 下面有些小爲病痛, 亦輕可. 若不除去, 恐因此滋蔓, 則病痛自若. 泳(66때). '''무수한 병통에 대한 설명이 모두 성의(誠意)장에 있다. (여기서 병통들을) 일제히 제거해버리고 나면 이 다음 단계에서 약간의 병통이 있다 해도 대수로울 것 없다(輕可).<ref>가볍고 사소하다는 뜻이다. 可에는 별 뜻이 없다. 비슷한 단어로 미가(微可)나 소가(小可) 등이 있다. 106:26을 보라.</ref> 만약 (성의의 단계에서 완전히) 뿌리뽑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점점 불어나서(滋蔓)<ref>'자(滋)'는 식물의 생장을, '만(蔓)'은 칡넝쿨 같은 것이 무성히 뒤덮고 있는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잡초를 뿌리뽑지 못했을 때 다시 자라나 논밭에 만연해지는 광경을 가지고 병통을 뿌리뽑지 못했을 때의 결말을 형용한 것이다.</ref> 병통이 예전과 똑같이 될 것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66 問: “誠意是如何?” '''질문: 성의(誠意)가 무엇입니까? 曰: “心只是有一帶路, 更不著得兩箇物事. 如今人要做好事, 都自無力. 其所以無力是如何? 只爲他有箇爲惡底意思在裏面牽繫.<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又曰'이 있는데, 있는 쪽이 더 적절하다. 이 조목은 여기서부터 끝까지 부분이 13:90에서 반복된다.</ref> 要去做好事底心是實, 要做不好事底心是虛. 被那虛底在裏面夾雜, 便將實底一齊打壞了.” 賀孫(62이후). '''대답: 마음 속에는 길이 한 줄기(一帶路) 있을 뿐이니, 두 물건이 동시에 붙어있지 못한다.<ref>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을 떠올려 보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는 두 사람이 그 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다.</ref> 오늘날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전혀 힘이 없다. 힘이 없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저 악을 행하려는 생각이 속에서 끌어당기고 있어서일 뿐이다. 좋은 일을 하려는 마음은 진실(實)하고 좋지 않은 일을 하려는 마음은 허망(虛)하다. 그 허망한 것이 마음 속에 끼어들면 진실된 것마저 함께 무너뜨려 버리고 만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67 詣學升堂云云, 敎授請講說大義. '''담주(潭州)의 주학(州學)<ref>당시의 공립학교는 행정단위마다 하나씩 있었다. 현에 있는 학교는 현학, 주에 있는 학교는 주학, 부에 있는 학교는 부학이다.</ref>에 가서 강당에 올랐다. (생략) 교수(敎授)<ref>주학의 교원이다.</ref>가 대학의 대의(大義)를 강의해 달라고 청하였다. 曰: “大綱要緊只是前面三兩章. 君子小人之分, 卻在‘誠其意’處. 誠於爲善, 便是君子, 不誠底便是小人, 更無別說.” 琮(65때記見). '''대답: 큰 틀에서 중요한 부분은 앞쪽 두세 장이다.<ref>경문을 비롯하여 전 2~3장까지를 말한다. 삼강령을 다루고 있다.</ref> 하지만 군자와 소인의 갈림길은 '의지를 진실하게(誠其意)'하는 지점에 있다. 선을 행하는 데 진심이면 군자요, 진실하지 않으면 소인이니, 그 밖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종(琮)의 기록. (65세) <ref>106:40 쪽에 이 일에 대한 더 자세한 기록이 있으니 참조하라. 모두 주희가 담주(潭州)의 지주 겸 형호남로경략안무사(荊湖南路經略安撫使)로 부임했을 당시 담주 주학에 나아가 강의했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주희는 1193년 12월에 이 직위에 임명되었고 1194년 5월 5일에 부임했다가 8월에 환장각대제(煥章閣待制) 겸 시강(侍講)에 임명되어 임안부(臨安府)로 떠났다. 담주는 오늘날 장사(長沙), 형호남로는 호남(湖南), 임안부는 항주(杭州)이다.</ref> *  16:68 器遠問: “物格·知至了, 如何到誠意又說‘毋自欺也’?毋者, 禁止之辭?” '''기원(器遠)의 질문: 사물이 탐구되고(物格) 앎이 지극해졌는데(知至) 어째서 성의의 단계에서 다시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毋自欺也)'<ref>자신을 기만한다는 것은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여 실제로는 악을 행하는 경우와 같이 내면의 의지가 나약하여 스스로 올바르다고 받아들인 도덕원칙을 위반하는 일을 말한다. 오늘날 윤리학 용어로 의지박약(Akrasia)이나 도덕적태만(Acedia)에 가깝다. 이러한 의지박약을 하필 '기만'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군주와 간신배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올바른 일을 하려는 내 귓가에 '아이, 귀찮은데 그냥 하지 말까...?'라고 속삭이며 유혹하는 목소리 또한 나 자신이다. 무엇이 옳은지 대강은 알고 있는 군주를 교묘한 말로 기만하여 잘못된 길로 끌고 가는 간신배처럼, 나를 기만한 것은 나 자신이므로 '자신이 자신을 기만한' 셈이 된다. 이찬의 '지행문제의 도덕심리학적 이해(2009)'를 참조하라. 또한 15:115를 참조하라.</ref>고 하는 것입니까? '말라(毋)'는 것은 금지하는 말 아닙니까? 曰: “物旣格, 知旣至, 到這裏方可著手下工夫. 不是物格·知至了, 下面許多一齊掃了. 若如此, 卻不消說下面許多. 看下面許多, 節節有工夫.” 賀孫(62이후). '''대답: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부(工夫)에 착수할 수 있다.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졌다고해서 그 다음 단계들이 모두 일거에 해결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저 많은 (격물치지의) 다음 단계들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음 단계들의 저 많은 설명을 보면 단락마다 다 힘쓸(工夫) 부분이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自欺.> '''<이 아래로 '자신을 기만함(自欺)'에 관한 조목들> *  16:69 亞夫問: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此章當說所以誠意工夫當如何.” '''아부(亞夫)의 질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 이 장은 응당 의지를 진실하게(誠意)하려면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工夫當如何) 설명해야 합니다. 曰: “此繼於物格·知至之後, 故特言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若知之已至, 則意無不實. 惟是知之有毫末未盡, 必至於自欺. 且如做一事當如此, 決定只著如此做, 而不可以如彼. 若知之未至, 則當做處便夾帶這不當做底意在! 當如此做, 又被那要如彼底心牽惹, 這便是不實, 便都做不成.” 賀孫(62이후). '''대답: 이 장은 물격(物格)과 지지(知至) 뒤를 잇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를 특별히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만약 앎이 이미 지극하다면 의지는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 앎이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하면 반드시 스스로를 기만하는 지경에 이른다. 예를 들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반드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만약 앎이 지극하지 않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는 부분에 당연히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섞이게 된다!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데 또 저렇게 하려는 마음에 끌려가 버리면 이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니 전혀 그 일을 해내지 못하게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70 問: “知不至與自欺者如何分?” '''질문: 앎이 지극하지 못함(知不至)<ref>치지 단계에서의 잘못이다.</ref>과 스스로를 기만함(自欺)<ref>성의 단계에서의 잘못이다.</ref>은 어떻게 구분합니까?<ref>주희는 종종 앎(知)의 미진함을 의지박약(Akrasia) 혹은 도덕적태만(Acedia)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런 말을 얼핏 들으면 치지와 성의가 서로 독립된 항목처럼 느껴지지 않으므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16:59를 참조하라.</ref> 曰: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只爲是知不至耳.” '''대답:‘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가도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ref>대학 전 6장. 이 뒤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남들이 자신을 보기를 자신의 폐부(肺腑)를 보듯이 하는데, 그렇게 숨기고 드러내봤자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 君子必愼其獨也.)' 마지막 문장의 '신기독(愼其獨)'이라는 표현은 15:11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이는 단지 앎이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ref>제자가 질문한 두 가지 경우 중에 전자의 경우라는 말이다.</ref> 問: “當其知不至時, 亦自不知其至於此. 然其勢必至於自欺.” '''질문: 앎이 지극하지 못하고, 이런 지경에 이르렀음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그 형세상 반드시 스스로를 기만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曰: “勢必至此.” '''대답: 형세상 반드시 그 지경에 이른다. 頃之, 復曰: “不識不知者卻與此又別. 論他箇, 又卻只是見錯, 故以不善爲善, 而不自知耳. 其與知不至而自欺者, 固是‘五十步笑百步’, 然卻又別.” '''잠시후 다시 말함: 불식부지(不識不知)한 자는 또 이것과 구별된다. 그 경우를 논해보자면<ref>처음부터 잘 모르는 사람들, 불식부지한 사람들이다.</ref> 단지 견해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불선을 선으로 여기고도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나 앎이 지극하지 못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람들이나 '오십보백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구별은 된다.<ref>전자는 도덕적 무지, 후자는 의지박약이다.</ref> 問: “要之二者, 其病源只是欠了格物工夫.” '''질문: 결국 양쪽 다 그 병의 근원은 격물(格物) 공부의 부족함입니다. 曰: “然.”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ref>이 조목을 비롯하여 '스스로를 기만함'에 관한 위아래 몇 조목은 이찬(2009)을 참조하라.</ref> *  16:71 問劉棟: “看大學自欺之說如何?” '''류동(劉棟)에게 질문함: 대학(大學)의 '스스로를 기만함(自欺)'에 관한 설명을 어찌 보는가? 曰: “不知義理, 卻道我知義理, 是自欺.” '''대답: 의리(義理)를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은 의리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스스로를 기만함'입니다. 先生曰: “自欺是箇半知半不知底人. 知道善我所當爲, 卻又不十分去爲善; 知道惡不可作, 卻又是自家所愛, 舍他不得, 這便是自欺. 不知不識, 只喚做<ref>조선고사본, 성화본, 조선정판본에서는 '做'이다. 본 조목을 인용하고 있는 진덕수의 서산독서기 권 17에서도 '做'이다. 만력본, 여유량본, 하서린본(류씨전경당본) 등은 '欺'이다. 아마도 만력본을 내면서 이 글자를 교감한 듯하다. 일역판은 이상의 근거를 들어 '做'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경부주 14-6에서 이 조목을 인용하고 있는데 역시 '做'이다. 심경주해총람 상권 541쪽의 논의를 참고할 만하다. 여기서도 일역판과 심경부주를 따라 번역했지만 저본을 따라 번역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도 주석에 남겨두었다.</ref>不知不識, 卻不喚做‘自欺’.” 道夫(60이후). '''선생이 말함: 스스로를 기만함(自欺)이란,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사람(의 태도)이다. 선이란 자신이 응당 행해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선을 100% 행하지 않고, 악이란 행해서는 안 됨을 알면서도 스스로 좋아하여 버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부지불식(不知不識)은 그냥 부지불식(不知不識)이라고 부를 뿐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부르지 않는다.<ref>부지불식(不知不識)은 그냥 '기만'이라고 부른다. 부지불식(不知不識)하면 차라리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부르지 않는다(不知不識, 只喚欺, 不知不識, 卻不喚做自欺).</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72 或問“誠其意者毋自欺”. '''누군가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ref>대학 전 6장.</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譬如一塊物, 外面是銀, 裏面是鐵, 便是自欺. 須是表裏如一, 便是不自欺. 然所以不自欺, 須是見得分曉. 譬如今人見烏喙之不可食, 知水火之不可蹈, 則自不食不蹈. 如寒之欲衣, 飢之欲食, 則自是不能已. 今人果見得分曉, 如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見善如飢之欲食, 寒之欲衣, 則此意自<ref>조선고사본에서는 '自是'이다. 진덕수의 사서집편에서도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조선고사본과 같다. 의미상 차이는 크지 않다.</ref>實矣.” 祖道(68때). '''대답: 비유하자면, 어떤 물건이 한 덩이 있는데 겉이 은(銀)이고 속이 철(鐵)인 경우가 곧 '스스로를 기만함'이다. 반드시 겉과 속이 일치해야만 '스스로를 기만함'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도덕원칙의 당위성을) 분명하게 깨달아야만 한다. 비유하자면, 오늘날 사람들이 오훼(烏喙)<ref>각시투구꽃의 뿌리덩이로 초오(草烏)라고도 한다. 오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덩이가 부자(附子)인데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독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사약의 주 성분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약용으로도 쓴다.</ref>를 먹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 자연히 그것들을 먹지도 밟지도 않는 것과 같다.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여 자연히 멈출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약 오늘날 사람들이 오훼(烏喙)를 먹으면 안 되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수준으로 분명하게 깨달아서 선(善)을 보기를 마치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고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듯 한다면 그의 의지가 저절로 진실하게 될 것이다.<ref>이 조목에서 드는 비유들은 14:157, 15:146에도 보인다.</ref>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73 自欺, 非是心有所慊. 外面雖爲善事, 其中卻實不然, 乃自欺也. 譬如一塊銅, 外面以金裹之, 便不是眞金. 人傑(51이후).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自欺)이란, 그 마음 속에서 통쾌하고 만족스러운<ref>대학 전6장에서 자기기만이 없는 표리일관의 상태를 자겸(自謙, 혹은 自慊)이라고 한다. 주희는 이 글자를 쾌(快)와 족(足)이라고 풀이한다. 맹자2A:2(그 유명한 호연지기장이다)에도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있으면(行有不慊於心)...'이라는 표현이 있다. 주희는 대학쪽의 '겸'은 통쾌함에 가깝고 맹자쪽의 '겸'은 만족스러움에 가깝다고 풀이한다. 16:83과 87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상태가 아닌 것이다. 겉으로는 선한 일을 하지만 그 속은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함(自欺)'이다. 마치 동(銅) 한 덩이를 금(金)으로 감싼 것이 진짜 금(眞金)이 아닌 것과 같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74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注云: “心之所發, 陽善陰惡, 則其好善惡惡, 皆爲自欺, 而意不誠矣.” 而今說自欺, 未說到與人說時, 方謂之自欺. 只是自家知得善好, 要爲善, 然心中卻覺得微有些沒緊要底意思, 便是自欺, 便是虛僞不實矣. 正如金, 已是眞金了, 只是鍛鍊得微不熟, 微有些渣滓去不盡, 顔色或白·或靑·或黃, 便不是十分精金矣. 顔子“有不善未嘗不知”, 便是知之至; “知之未嘗復行”, 便是意之實. '''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ref>대학 전 6장.</ref> 주석에서는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이 양으로는 선하고 음으로는 악하다면 그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모두 자신을 기만함이 되어 의지가 진실하지 않게 된다.'<ref>통행본과 다르다. 예전 버전인 것으로 보인다. 16:88, 16:107, 16:108 등을 보면 주희가 이 부분의 주석을 여러차례 수정한 경과를 추적할 수 있다. 본 조목에 대한 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ref>라고 하였다. 지금 '자신을 기만함'이라고 하였는데, 아직 타인과 대화하기 전일 때라야 비로소 '자신을 기만함'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은 선이 좋은줄 알아서 선을 행하고자 하나,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아주 조금이라도 중요성을 낮춰보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기만이니, 헛되고 거짓되어 진실하지 못하게 된다. 꼭 금과 같다. 이미 진금(眞金)이라 하더라도 제련(鍛鍊)상에 약간의 미진함이 있어서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찌꺼기가 조금 남아서 그 빛깔이 하얗거나 파랗거나 또는 노랗게 되어버리면 100% 정금(精金)이 아니게 된다. 안자(顔子)가 '불선이 있거든 알아채지 못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곧 앎의 지극함(知之至)이요, '불선을 알고나면 (그 잘못을) 반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그 의지의 진실함이다(意之實).<ref>이 두 인용구의 출처는 이정외서 2:65. 표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같은 책 5:14도 참조하라.</ref> 又曰: '如顔子地位, 豈有不善! 所謂不善, 只是微有差失, 便能知之; 才知之, 便更不萌作'. 只是那微有差失, 便是知不至處.” 僩(69이후). '''다시 말함: '안자(顔子)의 경지에서 어찌 불선(不善)함이 있겠는가? 이른바 불선(不善)하다는 것은 다만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니,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안자는) 즉시 자각할 수 있었고, 알기만 하면 곧 다시는 (그 잘못이) 싹터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바로 앎이 지극하지 못한 지점이다.<ref>이 인용구의 출처는 이정외서 5:14이다. 여기서는 약간 축약된 형태이긴 하나 대의에 지장은 없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75 所謂自欺者, 非爲此人本不欲爲善去惡. 但此意隨發, 常有一念在內阻隔住, 不放敎表裏如一, 便是自欺. 但當致知. 分別善惡了, 然後致其愼獨之功, 而力割去物欲之雜, 而后意可得其誠也. 壯祖(미상). '''이른바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이란, 그 사람이 애초에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ref>조선고사본 쪽에는 이러한 기조로 누군가가 발언한 것을 인용하는 말이 이 조목의 앞부분에 붙어 있다.</ref> 단지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려는) 이 의지가 틔워나오는 족족<ref>隨는 '하는족족'이다.</ref> 항상 한 가지 생각이 내면에서 가로막아서,<ref>阻隔은 서로 다른 물건들이 만나려는 것을 중간에서 막아서는 것이다. 住는 행위가 계속되는 뉘앙스를 만들어주는 조사이다.</ref> 겉과 속이 일치하지 못하게 할 때가<ref>放敎는 사역표현이다.</ref> 곧 '스스로를 기만함'이다. 오직 반드시 앎을 지극히하고 선악을 분별한 후에야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는(愼獨)' 공부의 효과를 성취할 수 있고, 섞여든 물욕을 힘써 잘라낸 후에야 그 의지를 진실하게(意可得其誠) 할 수 있다. 장조(壯祖)의 기록. (기록시기 미상) *  16:76 <ref>조선고사본 쪽은 이 앞에 매우 긴 설명이 붙어있다. 질문: '이른바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의 경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切謂). 무(毋)는 금지하는 말이요 신독(謹獨)이 금지의 근거가 됩니다. 사람이 배움을 알고 나서는 선악 또한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므로 선을 선하게 여기고도 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그 악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욕망에 순종하는 것을 좋다고(美) 여겨 남 모르게 방종하고,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 즐겁다(樂)는 것을 알지 못하여 열심히 꾸며서 공개된 자리에서 스스로 (선함을) 드러내니, 이는 속에 있는 것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 쪽이야 물론 반드시 기만한다는 보장이 없겠거니와 자기 쪽은 이미 (남을 기만하기에 앞서) 진실한 부분이 전혀 없게 됩니다. 이 어찌 '스스로를 기만함'이 아니겠습니까? 대답: 이는 대단히 낭패(狼狽)한 지경이다. (問: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切謂毋者, 禁止之詞, 而謹獨則又所以爲禁止之地. 人既知學, 其於善惡, 亦嘗有以識別之矣. 但知有未至, 故善善而不能進於善, 惡惡而不能去其惡. 見從欲之爲美, 而隂肆於幽隱之間, 未知循理之爲樂, 而勉強矯飾以自著於顯明之處, 殊不知有諸中, 必形諸外. 在人固未必可欺, 而在我者已先無實矣. 豈不爲自欺者乎? 曰: 此是大段狼狽處. </ref>只今有一毫不快於心, 便是自欺也. 道夫(60이후). '''지금 자기 마음에 터럭만큼이라도 통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곧 '자신을 기만한' 상태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77 看如今未識道理人, 說出道理, 便恁地包藏隱伏, 他元不曾見來. 這亦是自欺, 亦是不實. 想他當時發出來, 心下必不安穩. 賀孫(62이후). '''내가 보기에 이제 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도리를 말할 적에는 이처럼 포장하고 감추려는 태도가 있는데, 그는 애초에 (도리를) 본 적도 없다. 이 역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요, 역시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내 생각에 그는 (도리에 관한) 그런 말들을 내뱉을 당시에 마음속이 틀림없이 불안했을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78 國秀問: “大學誠意, 看來有三樣: 一則內全無好善惡惡之實, 而專事掩覆於外者, 此不誠之尤也; 一則雖知好善惡惡之爲是, 而隱微之際, 又苟且以自瞞底; 一則知有未至, 隨意應事, 而自不覺陷於自欺底.” '''국수(國秀)의 질문: 대학의 '성의(誠意)' 부분에는 제가 보기에 세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첫째, 내면에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진정성이 전혀 없으면서 오직 겉에서 덮어 숨기는(掩覆) 데만 급급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장 진실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둘째, 선을 좋아하고과 악을 싫어하는 게 맞다고 알고는 있지만, 은밀하고 미묘한 지점에서 또 구차하게 스스로 눈을 감아버리는(瞞) 경우입니다. 셋째, 아직 앎이 지극하지 못하여 생각나는대로 사태에 대응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기만하는 데 빠지는 경우입니다. 曰: “這箇不用恁地分, 只是一路, 都是自欺, 但有深淺之不同耳.” 燾(70때). '''대답: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눌 필요 없이 그저 한 갈래 길일 뿐이다. (세 경우) 모두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다만 (기만의) 깊이가 서로 다를 뿐이다. <ref>원나라 류인(劉因)이 편찬한 사서집의정요(四書集義精要)에서 이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 글자의 출입이 조금 있으니 참조하라.</ref> 도(燾)의 기록. (70세) *  16:79 次早云: “夜來國秀說自欺有三樣底, 後來思之, 是有這三樣意思. 然卻不是三路, 只是一路, 有淺深之不同.” '''이튿날 아침에 말함: 어젯밤 국수(國秀)가 '자신을 기만함에는 세 가지 양상이 있다'고 설명한 것은, 그 후에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이 세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세 갈래 다른 길이 아니라 단지 한 갈래 길인데, 깊이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又因論以“假託”換“掩覆”字云:‘假託’字又似重了, ‘掩覆’字又似輕, 不能得通上下底字. '''다시 이어서 (국수가 말한) '엄부(掩覆)'<ref>덮어 숨기는 것이다. 직전 16:78을 참조하라.</ref>라는 표현을 '가탁(假託)'<ref>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다.</ref>이란 표현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함: '가탁'은 너무 무거운 것 같고, '엄부'는 또 너무 가볍게 느껴져 앞뒤 글자들과 흐름이 잘 통하지 않는다. 又因論誠與不誠, 不特見之於外, 只裏面一念之發, 便有誠僞之分. 譬如一粒粟, 外面些皮子好, 裏面那些子不好. 如某所謂: ‘其好善也, 陰有不好者以拒於內; 其惡惡也, 陰有不惡者以挽其中.’ 蓋好惡未形時, 已有那些子不好·不惡底藏在裏面了.” 燾(70때). '''또 이어서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誠與不誠)을 논함: 겉으로 드러난 것 뿐만이 아니다. 내면에서 한 생각이 틔워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진실함과 거짓됨의 구분이 있다. 곡식(粟) 낱알로 비유하자면, 껍데기는 좋은데 안쪽이 좋지 않은 것과 같다.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선을 좋아하나 음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 안쪽에서 막아서고, 악을 싫어하나 음으로는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 안쪽에서 붙잡아 당긴다.'<ref>대학혹문 전 6장.</ref> 대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적에도 이미 (선을) 좋아하지 않고 (악을) 싫어하지 않는 마음이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  16:80 人固有終身爲善而自欺者. 不特外面, 有<ref>31:28에서는 '蓋有'</ref>心中欲爲善, 而常有箇<ref>31:28에서는 '一箇'</ref>不肯底意思<ref>31:28에서는 '思'가 없음. </ref>, 便是自欺也<ref>31:28에서는 '也'가 없음.</ref>.<ref>"不特外面, 有心中欲爲善, 而常有箇不肯底意思, 便是自欺也."는 성화본, 만력본, 여유량본, 류씨전경당본(=하서린본), 조선정판본, 화각본에서 모두 주석으로 처리했다. 성리대전 역시 이 부분을 주석처리했다(완역성리대전 7권 422쪽을 보라). 조선고사본에는 이 조목 자체가 없다. 이 부분은 확실히 "人固有終身爲善而自欺者" 부분을 부연하고 있으므로 주석으로 처리한대도 자연스럽다. 다만 31:28에서 이 부분을 거의 그대로 본문처리하여 반복하고 있고 또 조선고사본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본문으로 보고 번역했다.</ref> 須是要打疊得盡. 蓋意誠而後心可正. 過得這一關後, 方可進. 拱壽(65때). '''사람 중에 정말로 평생 선을 행하면서도 자신을 기만하는 자가 있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늘상 (선행을) 기꺼워하지 않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기꺼워하지 않는 생각을) 반드시 남김없이 거두어들여야(打疊) 한다. 왜냐하면 의지가 진실해야만 그 마음(心)이 바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문 하나를 넘어서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공수(拱壽)의 기록. (65세) *  16:81 問“自慊”. ''' '자겸(自慊)'에 관한 질문. 曰: “人之爲善, 須是十分眞實爲善, 方是自慊. 若有六七分爲善, 又有兩三分爲惡底意思在裏面相牽, 便不是自慊. 須是‘如惡惡臭, 如好好色’方是.” 卓(미상). '''대답: 사람이 선을 행할 적에, 반드시 100% 진실하게 선을 행해야만 비로소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다(自慊)'. 만약 60~70%만 선을 행하고, 악행을 하려는 생각 20~30% 정도가 있어 안쪽에서 끌어당긴다면 그것은 자겸(自慊)이 아니다. '악취를 싫어하듯, 미색을 좋아하듯'<ref>대학 전 6장.</ref> 해야만 한다. 탁(卓)의 기록. (기록시기 미상) <自慊.> '''이 아래로 '자겸'에 관한 조목들. *  16:82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慊者, 無不足也. 如有心爲善, 更別有一分心在, 主張他事, 卽是橫渠所謂“有外之心, 不可以合天心”也. 祖道(68때). ''' '악취를 싫어하듯, 미색을 좋아하듯 해야 하니, 이를 일러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다(自慊)고 한다.'<ref>대학 전 6장.</ref>의 경우, 여기서 겸(慊)이란 '부족함 없음'을 뜻한다. 예컨대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그와 별개로 또 다른 것을 주장(主張)하는 마음이 10% 정도 있다면<ref>여기서 '在'는 '있다'가 아니라 단정적인 말투를 표현하는 어조사이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이는 바로 횡거(橫渠)가 말한 바 '자기 밖의 타자를 상정하는 마음으로는 하늘의 마음에 합치하지 못한다'<ref>장재의 정몽 대심(大心)편에 나온다. 하늘은 지극히 커서 그 바깥(外)이 없으므로 하늘의 마음은 타자를 상정하지 않는다. 즉, 하늘의 눈으로 보면 만물이 자신과 일체이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마음이 지극히 커져서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를 상정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그 마음은 하늘의 마음에 합치한다. 반대로 자기 밖에 자기가 아닌 무언가가 있다고 보는 마음(有外之心)은 아직 만물일체관을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대학 전 6장의 '스스로 만족스럽다'를 장재의 무외지심으로 설명한 것은 이정유서 11:147 쪽이 오리지널이다.</ref>는 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83 “‘自慊’之‘慊’, 大意與孟子‘行有不慊’相類. 子細思之, 亦微有不同: 孟子慊訓滿足意多, 大學訓快意多. 橫渠云: ‘有外之心, <蜀錄作“自慊”.> 不足以合天心.’ 初看亦只一般. 然橫渠亦是訓足底意思多, 大學訓快意多.” ''' '자겸(自慊)'의 겸(慊)자는 대의는 맹자의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있으면(行有不慊於心)'<ref>맹자 2A:2</ref>과 비슷하나, 자세히 생각해보면 역시 미묘한 차이가 있다. 맹자쪽에서는 겸(慊)에‘만족(滿足)'의 의미가 많으나 대학에서는 '통쾌함(快)'의 의미가 많다. 횡거(橫渠)가 말한 '자기 밖의 타자를 상정하는 마음으로는(有外之心)<촉록(蜀錄)에서는 자겸(自慊)><ref>판본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자면 통행본 주자어류는 여정덕이 1263년 1차적으로 출간하고 1270년에 증보해서 출간한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이다. 여정덕에 의하면 그의 대전본이 재료로 삼은 것들로 4록(錄)2류(類)가 있었다고 한다. 책 제목이 'XX어록'으로 끝나는 것은 각각의 기록자가 주희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을 별다른 편집 없이 물리적으로 합쳐서 출간한 것이다. 책 제목이 'xx어류'로 끝나는 것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각자 출간한 어록을 모은 뒤 각각의 조목을 주제별로 '헤쳐모여'한 것을 말한다. 어류대전 이전에 어록이 4개 어류가 2개 있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어록이 지주(池州) 출간본인 '지록'이고(1215년 출간) 어류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황사의가 미주(眉州)에서 출간한 '촉류'이다(1219년 출간). 미주가 오늘날 사천성에 있고 사천성은 고대 촉(蜀)나라가 있던 자리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촉류를 기초로 하여 업데이트된 버전이 휘주본 주자어류, 이른바 '휘류(徽類)'인데(1249-1252), 오늘날 큐슈대학 도서관에 소장중인 조선고사본이 바로 이 휘류의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한편 여기서 '촉록에서는 자겸'이라고 쓴 주석은 아마도 여정덕의 것으로 보이는데 촉록은 '촉류'라고 했어야 한다. 실제로 조선고사본에서는 '유외지심'이 '자겸'이라고 써 있으니 여정덕의 주석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고사본에는 '자겸' 아래에 '지본에서는 유외지심(池本作有外之心)'이라고 주석이 달려있다. 즉, 지본에서 유외지심이라고 쓴 것을 촉류에서 자겸이라고 쓰고 그것을 여정덕이 다시 유외지심으로 되돌린 것이다.</ref> 하늘의 마음에 합치하지 못한다.'도 처음엔 역시 (대학쪽과) 동일하다고 보았지만, 횡거도 결국 만족스럽다는 의미가 많고 대학은 통쾌하다는 의미가 더 많다. 問: “大學說‘自慊’, 且說合做處便做, 無牽滯於己私, 且只是快底意, 少間方始心下充滿. 孟子謂‘行有不慊’, 只說行有不滿足, 則便餒耳.” '''질문: 대학에서 '자겸'을 해설하기를, 해야할 것을 바로 해버려서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에 붙잡혀 지체됨이 없다고 설명하니, (이런 경우) 우선은 단지 통쾌하다는 의미 뿐이지만 이윽고 비로소 마음 가득 만족스럽게 됩니다. 맹자가 말한 '행하고서 만족스럽지 못하면'은 단지 행함에 만족스럽지 못하면 '(호연지기가) 굶주린다(餒)'는 말일 뿐입니다.<ref>맹자에 따르면 호연지기(=거대한 기운)란 올바른 일을 오래도록 실천하여 마음 속에 부끄러울 게 없는 사람에게서 뻗어나오는 당당한 기세이다. 반면에 자신의 사적인 욕망이나 현실적인 다른 문제들 때문에 올바른 일을 실천하지 못하고 타협해버리면 그 순간 이 호연지기는 '굶주려'버린다. 어제까지 당당했던 사람도 한 두 번 이렇게 타협하다보면 어느새 기세가 사그라들고 겸연쩍고 옹졸해질 것이니 이런 현상을 '굶주렸다'고 형용한 것이다.</ref> 曰: “固是. 夜來說此極子細. 若不理會得誠意意思親切, 也說不到此. 今看來, 誠意‘如惡惡臭, 如好好色’, 只是苦切定要如此, 不如此自不得.” 賀孫(62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어젯밤 이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설명했다. 만약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誠意)'의 의미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다면 (자네가) 이렇게까지 설명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보니 '성의'장의 '악취를 싫어하듯, 미색을 좋아하듯'처럼 그저 기필코 간절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진실하지 않으면 당연히 해내지 못한다. 하손(賀孫)의 기록.(62세 이후) *  16:84 字有同一義而二用者. “慊”字訓足也, “吾何慊乎哉”, 謂心中不以彼之富貴而懷不足也; “行有不慊於心”, 謂義須充足於中, 不然則餒也. 如“忍”之一字, 自容忍而爲善者言之, 則爲忍去忿慾之氣; 自殘忍而爲惡者言之, 則爲忍了惻隱之心. “慊”字一從“口”, 如胡孫兩“嗛”, 皆本虛字, 看懷藏何物於內耳. 如“銜”字或爲銜恨, 或爲銜恩, 亦同此義. 㽦(59때). '''뜻은 하나인데 용법이 둘인 글자들이 있다. '겸(慊)'자는 '만족함(足)'이라고 풀이한다. 예를 들어 '내 어찌 부족하랴(吾何慊乎哉)'<ref>맹자 2B:2.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내 따를 수 없거니와, 저들이 부유함으로 나를 대하면 나는 내 인(仁)으로써 대하며, 저들이 관작(官爵)을 가지고 대하면 나는 내 의(義)를 가지고 대할 것이니, 내 어찌 부족하랴(曾子曰: 晉楚之富, 不可及也, 彼以其富, 我以吾仁, 彼以其爵, 我以吾義, 吾何慊乎哉?)?' 이에 대한 주희의 집주는 다음과 같다. '겸(慊)은 한(恨)스러워하고 적다고 여기는(少) 것이다. 겸(嗛)이라고도 쓰는데, 자서(字書)에서는 '입에 물건을 머금은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겸(慊) 역시 그저 마음에 머금은 것이라는 뜻이니, 통쾌함(快)도 되고 만족함(足)도 되며 한스러워함(恨)도 되고 적다고 여김(少)도 되는 것은 사안에 따라 마음에 머금은 바가 달라서일 뿐이다(慊, 恨也, 少也. 或作嗛, 字書以爲口銜物也. 然則慊亦但爲心有所銜之義, 其爲快爲足爲恨爲少, 則因其事而所銜有不同耳).' 유사한 설명이 대학혹문 전 6장부에도 보인다.</ref>는 마음속에서 타인의 부귀를 가지고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행하고서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바가 있으면(行有不慊於心)'<ref>맹자 2A:2</ref>는 의로움이 마음 속을 가득 채워야(充足)하며 그렇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굶주린다(餒)는 말이다. '인(忍)'자의 경우와 같으니, 용인(容忍)하며 선을 행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분노와 욕망(忿慾)의 기운(氣)을 참아낸다(忍)는 뜻이 된다. 잔인(殘忍)하게 악을 행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참아낸다(忍)는 뜻이 된다. '겸(慊)'자는 어떤 경우 '구(口)'자를 구성요소로 가지고 있으니 원숭이(胡孫)의 양쪽 볼주머니(兩嗛) 같은 경우가 그렇다.<ref>원숭이나 다람쥐가 입 안 가득 무언가를 집어넣으면 양쪽 볼이 부풀어오른다. 주희는 '겸(嗛)'은 그런 볼주머니를 말하며 나아가 '머금다'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ref> 모두 본래 허자(虛字)<ref>'이후에(而後)'나 '그...(其)' 처럼 문법적 기능을 하기 위해 놓인 글자를 말한다. 여기서는 구체적 내용을 결한 글자라는 말이다.</ref>이니 어떤 물건을 안에 머금고 있느냐를 보아야 할 뿐이다. 예컨대 '함(銜)'자가 원한을 품다(銜恨)가 되기도 하고 은혜를 품다(銜恩)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다. 순(㽦)의 기록. (59세) *  16:85 “誠意”章皆在兩箇“自”字上用功. 人傑(51이후). '''성의(誠意)장은 모두 이 두 개의 '자(自)'자<ref>자기(自欺)와 자겸(自慊)을 말한다.</ref> 부분에서 힘을 써야 한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自欺·自慊.> '''<이 아래로 스스로를 기만함(自欺)과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러움(自慊)에 관한 조목들> *  16:86 問: “‘毋自欺’是誠意, ‘自慊’是意誠否?‘小人閒居’以下, 是形容自欺之情狀, ‘心廣體胖’是形容自慊之意否?” '''질문: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毋自欺)'는 '의지를 진실하게 함(誠意)'이고,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러움(自慊)'은 '의지가 진실되게 됨(意誠)' 아닙니까?<ref>전자가 노력, 후자가 결과라는 뜻이다.</ref> '소인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小人閒居)'이하의 구문은<ref>'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가도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 대학 전 6장. 또한 16:70을 참조하라.</ref>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정황을 형용한 것이고,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는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自慊)'다는 의미를 형용한 것 아닙니까? 曰: 然. 後段各發明前說. 但此處是箇牢關. 今能致知, 知至而意誠矣. 驗以日用間誠意, 十分爲善矣. 有一分不好底意思潛發以間於其間, 此意一發, 便由斜徑以長, 這箇卻是實, 前面善意卻是虛矣. 如見孺子入井, 救之是好意, 其間有些要譽底意思以雜之; 如薦好人是善意, 有些要人德之之意, 隨後生來; 治惡人是好意, 有些狼<ref>성화본과 조선고사본에서는 '한(很)'이다.</ref>疾之意隨後來, 前面好意都成虛了. 如垢<ref>조선정판본에서는 '구(姤)'이다.</ref>卦上五爻皆陽, 下面只一陰生, 五陽便立不住了. 荀子亦言: ‘心臥則夢, 偸則自行, 使之則謀.’ <見解蔽篇.> 彼言‘偸’者, 便是說那不好底意. 若曰‘使之則謀’者, 則在人使之如何耳. 謀善謀惡, 都由人, 只是那偸底可惡, 故須致知, 要得早辨而豫戒之耳.” 大雅(49이후). '''대답: 그렇다. 뒤쪽이 각각 앞쪽의 말을 밝히고 있다.<ref>질문자의 두 번째 질문을 긍정한 것이다.</ref> 다만 이 부분은 매우 견고한 관문이다.<ref>성의 공부를 관문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서는 15:84부터 91까지를 참조하라.</ref> 이제 앎을 지극히할(致知) 수 있어서 (그 결과) 앎이 지극해지고(知至) 의지가 진실해졌고(意誠), 일상 속에서 의지를 진실하게 하였는지 점검해 보아도 100% 선하다고 하자. 단 10%, 좋지 못한 생각(意思)이 아무도 모르게 틔워나와(潛發) 그 사이에 끼어들면, 그 의지(意)는 틔워나오는 즉시 비뚤어진 길(斜徑)을 따라 점점 자라나서 결국 이쪽이 오히려 알맹이(實)가 되고 앞서의 선한 의지 쪽이 오히려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발견하고 구하려는 것은 좋은 의지이지만 그 사이에 칭찬을 받고 싶은 생각이 섞인다든가, 좋은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선한 의지이지만 그 사람이 내게 은덕을 입은 것으로(德之) 생각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뒤따라 일어난다든가, 악인을 징벌(治)<ref>치(治)는 징치(懲治)의 뜻이다.</ref>하는 것은 좋은 의지이지만 잔인한(狼疾)<ref>'한질(很疾)'은 서경 주서 주고 11장에서 '질한(疾很)'이라고 썼다. 사납게 미워한다는 뜻이다. '랑(狼)' 역시 흉포하고 잔인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성화본과 조선고사본 쪽을 따르든 통행본을 따르든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맹자 6A:14에 '랑질(狼疾)'이라는 표현이 있으나 이쪽의 경우 문자 그대로 빠르게 달리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이리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본 조목과 무관하다.</ref> 생각이 뒤따라 일어나면 앞서의 좋은 의지는 모두 헛된 것이 되어버린다. 마치 (주역의) 구(姤)괘에서 위의 다섯 효(爻)가 모두 양(陽)이고 제일 아래에 단지 음(陰)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도 다섯 양이 버티지 못하는 것과 같다.<ref>구(姤)는 여섯 효 가운데 초효만 음이지만 그 음의 기세가 막 태어나 장성하고 있기에 나머지 다섯 양을 위협한다.</ref> 순자(荀子) 역시 '마음은 누우면 꿈꾸고, 흐리멍텅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며, 시키면 꾀한다.'고 하였다 <순자(荀子) 해폐편(解蔽篇)에 보인다.> 여기서 '흐리멍텅하면'이란 것이 바로 이 좋지 못한 의지를 말한 것이다.<ref>좋지 못한 의지는 방심을 틈타 제멋대로 자라난다는 말이다.</ref> '시키면 꾀한다'의 경우, 그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선을 꾀하든 악을 꾀하든 모두 그 사람을 따른다. 단지 저 흐리멍텅함이야말로 미워할 만하니, 반드시 앎을 지극히하여 조기에 알아보고 미리 경계해야 할 뿐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6:87 或問“自慊”·“自欺”之辨. '''누군가가 '자겸(自慊)'과 '자기(自欺)'의 차이를 물음. 曰: “譬如作蒸餅, 一以極白好麵自裏包出, 內外更無少異, 所謂‘自慊’也; 一以不好麵做心, 卻以白麵作皮, 務要欺人. 然外之白麵雖好而易窮, 內之不好者終不可揜, 則乃所謂<ref>다른 모든 판본에서는 '위(爲)'이지만 중화서국판에서 문맥에 맞게 리교(理校)한 것이다.</ref>‘自欺’也.” 壯祖(미상). '''대답: 예를 들어, 증병(蒸餅)<ref>쪙빙은 얇은 밀가루 피 여러겹을 마치 계란말이처럼 층층이 쌓아서 쪄낸 음식이다. 각 층 사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다. 오늘날 중국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재료와 형태만으로 따지자면 오늘날 한국의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레이프케잌과 비슷하다. 다만, 주희 당시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쪙빙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 번역자는 자신이 없다. 일역판에서는 '만두(マントウ)'라고 번역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15:112에서 동일한 비유를 들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을 만들 적에 어떤 사람은 아주 곱고 좋은 밀가루(白麵)로 안쪽에서 바깥쪽까지 만들어서 안과 밖이 조금도 다르지 않게 하니, 이른바 '자겸(自慊)'이다. 다른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밀가루로 속부분을 만들고서 고운 밀가루로 겉껍데기를 만들어 남을 기만하는데 힘쓴다. 하지만 겉부분의 고운 밀가루가 비록 좋다고 해도 금방 바닥나서(易窮) 안쪽의 좋지 못한 부분을 끝내 가릴 수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자기(自欺)'이다. 장조(壯祖)의 기록. (기록시기 미상) *  16:88 問: “‘誠其意者, 毋自欺也.’ 近改注云: ‘自欺者, 心之所發若在於善, 而實則未能, 不善也.’ ‘若’字之義如何?” 질문: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誠其意者, 毋自欺也).'에 대하여 최근에 개정하신 주석에서는 '스스로를 기만함이란, 마음에서 틔워나온 의지의 방향이 선 쪽에 있는 듯하지만(若) 실제로는 그렇게 해낼 수 없어서 불선하게 된다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약(若)'자는 어떤 의미입니까?<ref>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장구나 혹문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장구의 옛 판본으로 보인다. 16:74를 참조하라.</ref> 曰: “‘若’字只是外面做得來一似都善, 其實中心有些不愛, 此便是自欺. 前日得孫敬甫書, 他說‘自慊’字, 似差了. 其意以爲, 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 如此了然後自慊. 看經文, 語意不是如此. ‘此之謂自慊’, 謂‘如好好色, 惡惡臭’, 只此便是自慊. 是合下好惡時便是要自慊了, 非是做得善了, 方能自慊也. 自慊正與自欺相對, 不差毫髮. 所謂‘誠其意’, 便是要‘毋自欺’, 非至<ref>다른 문헌적 근거는 전무하지만 이치상 이 글자는 본래 '시(是)'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직전 구문의 '非是...了, 方能...也'가 여기서 반복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ref>誠其意了, 方能不自欺也. 所謂不自欺而慊者, 只是要自快足我之志願, 不是要爲他人也. 誠與不誠, 自慊與自欺, 只爭這些子毫髮之間耳.” '''대답: '약(若)'자는 그저 겉으로만 흡사 모두(一似都) 선한 것처럼 했을뿐, 사실 그 마음속으로는 다소 좋아하지 않는(不愛)<ref>'불애(不愛)'는 본 조목 마지막 부분의 '불원(不願)'이나 중간 즈음의 '지원(志願)'과 연결지어 해석해야 한다.</ref> 기색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전에 손경보(孫敬甫)의 서신을 받았는데 그가 '자겸'을 설명한 부분은 잘못된 것 같다.<ref>회암집 권 63의 답손경보 제 6서를 말한다.</ref> 그의 뜻은, 선을 좋아하기를 '마치 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는' 것처럼 분명해진 뒤라야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自慊)'는 것이다.<ref>A를 완수하면 B가 된다는 구조인데, A와 B 사이에 시간차가 있어서 양자간의 연결이 우연적이고 느슨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ref> 그러나 경전을 보면 말 뜻이 그렇지 않다. '이것이 이른바 자겸이다(此之謂自慊).'<ref>대학 전 6장.</ref>는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하는 바로 이것(此)이<ref>대학에서 '차지위자겸(此之謂自慊)'이라고 했을 때의 '차(此)'가 가리키는 대상이 바로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라는 말이다.</ref>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自慊)'는 말이다.<ref>A의 완수가 그 즉시 B를 의미한다. 양자간의 연결이 필연적이고 긴밀하다는 표현이다.</ref>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당초의 시점에서부터 곧바로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선행을 한 다음에야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非是). 자겸(自慊)은 바로 자기(自欺)와 정확히 반대되는 것으로, 이 둘 사이에는 터럭만큼의 빈 틈도 없다(不差毫髮).<ref>배중률(排中律)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중간에 걸친 영역 없이 양자가 깔끔하게 대치한다는 말이다.</ref>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誠其意)' 하려면 '자신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 뒤에야 그제서야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非是).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아서 통쾌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은, 단지 자기의 심지와 의욕(志願)을 통쾌하게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이지 타인의 칭찬을 받으려는(爲他人) 것이 아니다.<ref>답손경보 제6서에서도 타인의 칭찬을 갈구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손경보가 보내온 편지에 그러한 혐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f> 진실함과 아님(誠與不誠), 자기만족(自慊)과 자기기만(自欺) 사이의 간극은 털끝을 다투는 정도에 불과하다. 又曰: “自慊則一, 自欺則二. 自慊者, 外面如此, 中心也是如此, 表裏一般. 自欺者, 外面如此做, 中心其實有些子不願, 外面且要人道好. 只此便是二心, 誠僞之所由分也.” 僩(69이후). '''다시 말함: 자기만족(自慊)은 하나, 자기기만(自欺)은 둘이다. 자기만족이란 겉이 이러한데 속도 이러하여 표리일관한 것이다. 자기기만이란 겉으로는 이렇게 하는데 속으로는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지만, 우선 겉으로는 남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듣고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마음이요, 진실과 허위가(誠僞) 나뉘는 분기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89 問“誠意”章. '''성의(誠意)장에 관한 질문. 曰: “過此關, 方得道理牢固.” '''대답: 이 관문을 지나야 비로소 도리(道理)가 견고해진다. 或云: “須無一毫自欺, 方能自慊. 必十分自慊, 方能不自欺, 故君子必愼獨.” '''누군가 말함: 털끝만큼도 스스로를 기만함이 없어야만 비로소 스스로 통쾌하게 만족스러울 수 있고, 반드시 100% 통쾌하게 만족스러워야만 비로소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ref>'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15:113을 참조하라.</ref>한다. 曰: “固是. 然‘欲誠其意者, 先致其知’. 知若未至, 何由得如此? 蓋到物格·知至後, 已是意誠<ref>성화본에서는 '성의(誠意)'</ref>八九分了. 只是更就上面省察, 如用兵禦寇, 寇雖已盡翦除了, 猶恐林谷草莽間有小小隱伏者, 或能間出爲害, 更當搜過始得.” 銖(67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히해야 한다' 앎이 지극해지지 못했다면 무슨 수로 그렇게 (의지를 진실하게) 하겠는가? 대개 사물이 탐구되고(物格)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이미 의지(意)가 80~90% 정도 진실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위쪽 단계에서 성찰해야 하니,<ref>격물치지로 90% 완수되었다 하더라도 성의라는 위쪽 단계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일역판에서는 '상면(上面)'을 위쪽 단계가 아니라 '성의단계에서(誠意上面)'와 같은 뜻으로 번역했다.</ref> 마치 병력을 사용하여 도적을 막을 적에 도적이 모두 소탕되었더라도 여전히 산골짜기 초목 사이에 소소히 잠복해 있다가 간혹 튀어나와 해를 끼칠까 우려되므로 다시 철저히 수색해야만 하는 것과 같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90 問: “‘知至而後意誠’, 則知至之後, 無所用力, 意自誠矣. 傳猶有愼獨之說, 何也?” '''질문: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성실해'<ref>대학 경문.</ref>진다고 하였으니,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별도로 힘쓰지 않아도 의지는 저절로 성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 6장에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하라는 말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知之不至, 則不能愼獨, 亦不肯愼獨. 惟知至者見得實是實非, 灼然如此, 則必戰懼以終之, 此所謂能愼獨也. 如顔子‘請事斯語’, 曾子‘戰戰兢兢’, 終身而後已, 彼豈知之不至. 然必如此, 方能意誠. 蓋無放心底聖賢, ‘惟聖罔念作狂’. 一毫少不謹懼, 則已墮於意欲之私矣. 此聖人敎人徹上徹下, 不出一‘敬’字也. 蓋‘知至而後意誠’, 則知至之後, 意已誠矣. 猶恐隱微之間有所不實, 又必提掇而謹之, 使無毫髮妄馳, 則表裏隱顯無一不實, 而自快慊也.” 銖(67이후). '''대답: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 신독(愼獨)할 수도 없을 뿐더러 기꺼이 신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직 앎이 지극해진(知至) 사람이라야 옳고 그름을 진실로 간파하여 이처럼 (시비판단이) 명백하므로 반드시 전전긍긍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을) 매조지할 것이다(終之).<ref>주역 건괘 구삼효에서 '이를 곳을 알아 이르르고 ... 맺을 곳을 알아 매조지한다(知至至之 ... 知終終之)'라는 말로 각각 자신의 덕을 진전시키는 공부(進德)와 올바른 지점에서 떠나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는 공부(居業)를 표현했다. 69:55를 보라.</ref> 이것이 이른바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愼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자(顔子)가 '이 말에 종사하겠습니다(請事斯語)'<ref>논어 12:1에서 공자가 안연에게 극기복례와 비례물시/청/언/동을 가르치자 안연이 답한 말이다. 선생의 말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다.</ref>라고 한 것과, 증자(曾子)가 생을 마칠 때까지 '전전긍긍(戰戰兢兢)'<ref>논어 8:3에서 증자가 제자들에게 남긴 유훈의 일부이다.</ref>한 것의 경우, 그들이 어찌 앎이 지극하지 않아서 그랬겠는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어서 그런 것이다.<ref>안자와 증자는 앎이 지극해진 뒤에도 추가로 이상과 같은 '신독'의 실천을 통해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완수했다는 뜻이다.</ref> 대개 마음을 놓치는(放心)<ref>'방심(放心)'에 대해서는 16:8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성현(聖賢)은 없다. '성인이라도 생각하지(念) 않으면 미치광이가 된다.'<ref>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 이 뒷부분은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惟狂克念作聖).'이다. 15:107을 보라.</ref> 터럭만큼이라도 삼가고 조심하지 않으면 이미 사사로운 욕망(意欲之私) 쪽으로 추락해 버린다. 이러한 까닭에(此) 성인이 사람들에게 철두철미하게 가르치는 것이 '경(敬)'이라는 한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ref>일종의 명상법이다. 몸가짐을 단정하게 가다듬고 마음을 수렵집중하여 각성시키는 것이다.</ref> 생각건대 (대학 경문에서)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성실해진다'고 하였으니,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의지가 이미 진실해진 것이다. 그래도 은미한 틈새에 혹시라도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걱정되어 다시금 반드시 일깨우고(提掇)<ref>'제철(提掇)'은 '제시(提撕)'와 같다. 멍때리는 사람의 귀를 잡아 끌어 각성시키는 것이 제시(提撕)이다. 이정(二程) 등 여러 도학자들이 거경(居敬) 공부를 설명할 적에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ref> 삼가하여 터럭만큼도 멋대로 치달려나감(妄馳)이 없도록 하면 겉과 속, 노출된 지점과 은미한 지점이 모두 진실하지 않음이 없어서 스스로 통쾌하고 만족스럽게 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愼獨.> '''<이 아래로 신독에 관한 조목들.> *  16:91 問: “或言, 知至後, 煞要著力做工夫. 竊意致知是著力做工夫處. 到知至, 則雖不能無工夫, 然亦無大段著工夫處.” '''질문: 누군가는 앎이 지극해진 후에도 매우(煞) 힘써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앎을 지극히하는 것이야말로 힘써 노력하는 지점이요,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비록 노력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힘써 노력할 지점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曰: “雖不用大段著工夫, 但恐其間不能無照管不及處, 故須著防閑之, 所以說‘君子愼其獨也’.” '''대답: 비록 대단히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관리(照管)<ref>유심히 잘 살펴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ref>가 미흡한 부분이 없을 수 없음이 염려되어<ref>이 부분은 문장은 조합이 좋지 않다. '공(恐)'은 가능성을, '불능무(不能無)'는 필연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니 한 문장 안에 섞이기 어렵다. 일단은 이렇게 풀어둔다.</ref> 반드시 방비해야(防閑)<ref>막아 지키는 것이다.</ref> 한다. 그래서 '군자는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愼獨)'고 말하는 것이다. 行夫問: “先生常言知旣至後, 又可以驗自家之意誠不誠.” '''행보의 질문: 선생님께서는 항상 앎이 지극해진 후 또 자신의 의지가 진실한지 아닌지 점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先生久之曰: “知至後, 意固自然誠. 但其間雖無大段自欺不誠處, 然亦有照管不著所在, 所以貴於愼其獨. 至於有所未誠, 依舊是知之未眞. 若到這裏更加工夫, 則自然無一毫之不誠矣.” 道夫(60이후). '''선생이 한동안 생각하다 말함: 앎이 지극해진 후에는 물론 의지가 자연히 진실하다. 다만 그 사이에 비록 자신을 크게 기만하여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야 없다 하더라도 관리(照管)가 전혀 안 되는 부분 역시 있다.<ref>여기서 '재(在)'는 단정하는 느낌의 어기사이다. '있다'는 '유(有)'를 번역한 것이다. '불착(不著)'이 동사 뒤에 보조용언으로 붙으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강조표현이 된다.</ref> 그래서 신독(愼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만일 여전히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진정한 앎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지점에서 노력을 더한다면 자연히 한 점의 진실하지 못함도 없게 될 것이다.<ref>주희는 기본적으로 도덕원칙에 대하여 골수에 사무치는 완전한 앎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인격도야 차원에서나 선행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어떤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꺼려한다. 하지만 그러한 입장을 강하게 견지해버리면 대학의 팔조목 공부는 '치지' 단계에서 사실상 끝나버리고 이후 여섯 조목은 모두 췌언이 되어버린다. 철학자로서의 주희라면 몰라도 경학자로서의 주희는 이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때는 앎이 지극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다가도 다른 때에는 앎이 지극해진 뒤에도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며 갈팡질팡한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92 光祖問: “物格·知至, 則意無不誠, 而又有愼獨之說. 莫是當誠意時, 自當更用工夫否?” '''광조의 질문: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면 그 의지에 진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인데 다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의지를 진실하게 할 적에 응당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曰: “這是先窮得理, 先知得到了, 更須於細微處用工夫. 若不眞知得到, 都恁地鶻鶻突突, 雖十目視, 十手指, 衆所共知之處, 亦自七顚八倒了, 更如何地愼獨!” 賀孫(62이후). '''대답: 먼저 이치를 탐구하여 완전히 알고 나서도 다시 세미한 부분(細微處)<ref>세미한 부분이란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 곧 '독(獨)'을 말한다.</ref>에서 노력해야 한다. 만약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眞知得到) 이렇게 완전히 흐리멍텅(鶻鶻突突)하다면 제아무리 열 개의 눈이 바라보고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켜(十目視, 十手指)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지점(衆所共知之處)<ref>앞서 말한 '세미한 부분', '독'과 동일한 지점이다.</ref>에서도<ref>대학 전6장에서 인용한 증자의 말이다.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무섭구나(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자기 내심의 사특한 생각은 자기가 보기엔 매우 은미하여 남에게 보일 것 같지 않으나 타인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나 명백히 보인다는 뜻이다. '신독(愼獨)'을 설명하는 구문이다.</ref> 역시 엉망진창으로 실패할 것이다(七顚八倒). 다시 어떻게 신독(愼獨)을 하겠는가? 하손(賀孫)의 기록.(62세 이후) *  16:93 “知至而後意誠”, 已有八分. 恐有照管不到, 故曰愼獨. 節(64이후). '''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진다'에서 이미 80% 정도 이루어진 것이다.<ref>16:89에 유사한 표현이 보인다.</ref> 관리가 미흡한 부분<ref>나머지 20%이다. 관리미흡에 관해서는 16:91과 92를 보라. </ref>이 있을까 염려되므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愼獨)'하라고 말한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94 致知者, 誠意之本也; 愼獨者, 誠意之助也. 致知, 則意已誠七八分了, 只是猶恐隱微獨處尙有些子未誠實處, 故其要在愼獨. 銖(67이후). ''' '치지'는 '성의'의 뿌리(本)이고 '신독'은 '성의'의 조력자(助)이다.<ref>치지, 성의, 신독의 관계에 대해서는 16:90부터 93까지의 설명을 참조하라.</ref> 앎을 지극히 하면(致知) 의지는 이미 70~80% 정도 진실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자기 혼자만 아는 은미한 지점(隱微獨處)에 아직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염려된다. 그래서 신독이 긴요하다.<ref>내용이 대체로 16:93과 다르지 않다.</ref>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95 “誠意”章上云“必愼其獨”者, 欲其自慊也; 下云“必愼其獨”者, 防其自欺也. 蓋上言“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故君子必愼其獨”者, 欲其察於隱微之間, 必吾所發之意, 好善必“如好好色”, 惡惡必“如惡惡臭”, 皆以實而無不自慊也. 下言“小人閒居爲不善”, 而繼以“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者, 欲其察於隱微之間, 必吾所發之意, 由中及外, 表裏如一, 皆以實而無少自欺也. 銖(67이후). ''' '성의'장 위쪽에서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라(必愼其獨)'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自慊)'기를 바란 것이다. 아래쪽에서 (똑같이) '필신기독(必愼其獨)'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만하(自欺)'는 것을 방비한 것이다.<ref>대학 전 6장에서 '필신기독' 네 자가 두 차례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자겸'에 뒤따라 나오고 다음에는 '자기'에 뒤따라 나오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경전의) 위쪽에서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미색을 좋아하듯이 함을 일러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의 취지는 사람들이 감춰진 미세한 틈새를 살펴 선을 좋아함의 경우에는 반드시 미색을 좋아하듯이 (철저히 진실하게) 하고 악을 싫어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악취를 싫어하듯이 (철저히 진실하게) 하여 자신이 틔워낸 의지(吾所發之意)를 반드시 완전히 진실하게 하여 조금도 통쾌히 만족스럽지 않음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아래쪽에서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라고 하고 이어서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고 말한 것의 취지는 사람들이 감춰진 미세한 틈새를 살펴 안으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겉과 속이 일관되어 자신이 틔워낸 의지(吾所發之意)를 반드시 완전히 진실하게 하여 조금도 자신을 기만함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96 誠意者, 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 皆是眞情. 旣是眞情, 則發見於外者, 亦皆可見. 如種麻則生麻, 種穀則生穀, 此謂“誠於中, 形於外”. 又恐於獨之時有不到處, 故必愼獨. 節(64이후). '''성의란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는 것이니, 모두 진실한 감정(眞情)이다. 이미 진실한 감정인 이상 겉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모두 (남들이) 볼 수 있다. 마치 마 심은 데 마 나고 곡식 심은 데 곡식이 나듯 하는 것을 일러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홀로(獨) 있을 때 (진실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까 우려되므로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는(愼獨)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97 或說愼獨. '''누군가가 신독(愼獨)에 대해 설명함. 曰: “公自是看錯了.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已是實理了, 下面‘故君子必愼其獨’, 是別擧起一句致戒, 又是一段工夫. 至下一段, 又是反說小人之事以致戒. 君子亦豈可謂全無所爲! 且如著衣喫飯, 也是爲飢寒. 大學看來雖只恁地滔滔地說去, 然段段致戒, 如一下水船相似, 也要柂, 要楫.” 蘷孫(68이후). '''대답: 그대가 잘못 보았다.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고 미색을 좋아하듯이 함을 일러 통쾌하게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한다.'는 이미 진실한 이치(實理)<ref>주희는 불순물 없는 진실성에 관한 이치를 종종 '실리'라고 표현한다. 21:19에서 충신(忠信)을 실리라고 하고 21:28에서 충(忠)과 성(誠)을 실리라고 부르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이지만, 아래쪽의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한다'는 말은 그와 별개로 한 구절을 들어 훈계한(致戒) 것이니 또다른 한 단락의 공부(工夫)이다.<ref>이 문장은 크게 '이미(已是) ... 또다른(又是)...'로 짜여져 있다. '이시'로 묶이는 부분은 질문자와 주희가 동의하는 곳이고 '우시' 부분이 바로 주희가 반론하는 지점이다.</ref> 아래쪽 단락의 경우는 또 반대로 소인의 일을 말하여 경계한 것이다. 군자의 경우도 어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全無所爲) 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 역시 추위와 배고픔 때문이다. 대학(大學)이 비록 그저 이렇게 도도(滔滔)히<ref>거스를 수 없는 무거운 기세로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말한다.</ref> 강물이 흐르듯 설명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락마다 훈계하고(致戒) 있다. 마치 강물을 타고 내려가는 배라도 키를 잡고 노를 저어야 하는 것과 같다.<ref>주희의 대답으로부터 질문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질문자는 아마도 격물치지의 공부를 완수한 학습자가 이 단계에 이르러 추가로 힘써 노력해야 한다거나 혹여 잘못될까 계속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거나 하는 아이디어를 거부한 듯하다. 주자어류고문해의도 비슷하게 추측하고 있다.</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98 或問: “在愼獨, 只是欲無間.” '''누군가의 질문: '신독(愼獨)은 그저 간격이 없고자(無間)<ref>'무간(無間)'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틈이 없음을 말한다. 시간적으로 틈이 없다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어떤 일이나 상태가 지속될 때에 중간에 끊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공간적으로 틈이 없는 경우는 말 그대로 벌어진 간격이 없다는 말이다. 대개는 시간적 의미로 쓰이나 여기서는 앞선 몇 조목에서 공간적인 간격 속에 삿된 생각이 잠복해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공간적인 은유로 해석했다. 정리하자면, 은미한 틈새에 삿된 생각이 잠복해있지 않기 때문에 겉과 속, 표면과 이면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ref>하는 것 뿐입니다.' 先生應. 節(64이후). '''선생이 긍정했다.<ref>전경당본의 편집자 하서린은 이 조목이 불완전하다고 판단했다. '재(在)'자의 경우는 확실히 처리하기 난감하지만 번역자는 조목 자체가 불완전하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99 問“誠意”章句所謂“必致其知, 方肯愼獨, 方能愼獨”. '''성의장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에서 '반드시 그 앎을 지극히 해야만 비로소 기꺼이 신독(愼獨)하게 되고, 또 비로소 신독(愼獨)할 수 있게 된다'<ref>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ref>에 대한 질문. 曰: “知不到田地, 心下自有一物與他相爭鬭, 故不會肯愼獨.” 銖(67이후). '''대답: 앎이 일정 수준(田地)에 이르지 못하면 마음 속에 자연히 어떤 것이 있어 그 앎과 다툰다. 그래서 기꺼이 신독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100 問: “自欺與‘厭然揜其不善而著其善’之類, 有分別否?” '''질문: 스스로를 기만함(自欺)과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 같은 것 사이에 구별이 있습니까? 曰: “自欺只是於理上虧欠不足, 便胡亂且欺謾過去. 如有得九分義理, 雜了一分私意, 九分好善·惡惡, 一分不好·不惡, 便是自欺. 到得厭然揜著之時, 又其甚者. 原其所以自欺, 又是知不至, 不曾見得道理精至處, 所以向來說‘表裏精粗’字<ref>조선고사본에는 '자(字)' 앞에 '저(底)'가 있어서 문세가 더 부드럽다.</ref>. 如知‘爲人子止於孝’, 這是表; 到得知所以必著孝是如何, 所以爲孝當如何, 這便是裏. 見得到這般處, 方知決定是著孝, 方可以用力於孝, 又方肯決然用力於孝. 人須是埽去氣稟私欲, 使胸次虛靈洞徹.” 木之(68때). '''대답: 자기기만(自欺)은 이치에 대한 이해에 부족한 점이 있을 때 혼란을 일으키고 속여넘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리를 90%는 터득했으나 사적인 의념(私意)이 10% 섞여서 90%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지만 10%는 선을 좋아하지 않고 악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기만(自欺)이다. '겸연쩍게 불선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심각한 경우이다.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이유를 따져보면, 이는 다시 앎이 충분하지 않아서 도리의 정미하고 지극한 지점을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친 것(表裏精粗)'<ref>16:54부터 60까지 이 표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ref>이 네 글자는 대학장구 전 5장, 곧 보망장의 구문이다. 그러므로 경전의 말이 아니라 주희가 '쓴' 표현이다.</ref> 예를 들어, '아들이 되어서는 효에 머문다(爲人子止於孝)'는 겉(表)이다. 반드시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효도는 응당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바로 속(裏)이다. 이러한 지점들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결단코 효도를 해야 함을 알게 되고, 비로소 효도에 힘쓸 수 있게 되고, 또 비로소 기꺼이 결연히 효도에 힘쓸 수 있게 된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의 영향과 사욕(氣稟私欲)을 제거하여 가슴 속을 텅 비고 영묘하며 투명하게(虛靈洞徹) 해야 한다.<ref>허령불매에 관해서는 16:51을 참조하라.</ref>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以下論揜其不善.> <ref>거의 모든 판본에서 '論揜其不善以下'라고 쓴 것을 중화서국판에서 이렇게 교감했다.</ref> '''<이 아래로는 불선(不善)함을 숨김에 관하여 논하는 조목들> *  16:101 問意誠. ''' 의지가 진실해짐(意誠)에 관하여 질문함. 曰: “表裏如一便是. 但所以要得表裏如一, 卻難. 今人當獨處時, 此心非是不誠, 只是不柰何他. 今人在靜處非是此心要馳騖, 但把捉他不住. 此已是兩般意思. 至如見君子而後厭然詐善時, 已是第二番罪過了.” 祖道(68때). '''겉과 속이 같다는 것(表裏如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겉과 속을 같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이 마음이 진실되지 않은 것은 아니요, 단지 그것(他)<ref>악한 의지를 말한다.</ref>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럴 뿐이다.<ref>다시말해, 고의로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과실로 저지르는 짓이라는 것이다. 주희는 자기기만(즉, 의지박약으로 인한 도덕행위 실패 현상)에 대하여 자주 '그걸 어찌할 수 없어서...(不柰何他)'라고 말한다. 16:108을 보라.</ref> 오늘날 사람들이 조용히 있을 적에 이 마음이 달려나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요, 단지 그것(他)<ref>이 마음을 말한다.</ref>을 붙잡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생각(意思)이 둘이다. 군자를 만나고 나서야 겸연쩍게 거짓으로 선행을 하는 것은<ref>이 구문에 대해서는 직전 16:100조를 참조하라.</ref> 이미 또다른(第二番) 죄과가 되는 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102 誠意, 只是表裏如一. 若外面白, 裏面黑, 便非誠意. 今人須於靜坐時見得表裏有不如一, 方是有工夫. 如小人見君子則掩其不善, 已是第二番過失. 人傑(51이후). '''성의(誠意)는 단지 겉과 속의 일치(表裏如一)일 뿐이다.<ref>직전 16:101조를 참조하라.</ref> 만약 겉은 하얀데 속이 검다면 성의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좌(靜坐)할 적에 반드시 표리가 일치하지 않음을 간파해야만 비로소 공부한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소인이 군자를 만나고서 자신의 불선함을 감추려는 것은 이미 또다른 과실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03 此一箇心, 須每日提撕, 令常惺覺. 頃刻放寬, 便隨物流轉, 無復收拾. 如今大學一書, 豈在看他言語, 正欲驗之於心如何. ‘如好好色, 如惡惡臭’, 試驗之吾心, 好善·惡惡, 果能如此乎? 閒居爲不善, 見君子則掩其不善而著其善, 是果有此乎? 一有不至, 則勇猛奮躍不已, 必有長進處. 今不知爲此, 則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 大雅(49이후). '''이 하나의 마음(心)은 반드시 매일 일깨워서(提撕)<ref>'제시(提撕)'에 관해서는 16:7을 참조하라. </ref> 항상 깨어 있게(常惺覺)<ref>'상성성(常惺惺)'은 이정의 제자 사량좌(謝良佐)가 '경(敬)' 공부를 해설할 때 사용했던 표현으로 늘 또랑또랑하게 깨어있는 마음상태를 말한다.</ref> 해야 한다. 잠시라도 느슨히 풀어놓으면, 바로 외물을 따라 흘러가버려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된다. 지금 대학(大學)이라는 책을 보는 의의가 어찌 그 언어를 읽는 데 있겠는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 (대학에서 말한 내용을) 점검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미색을 좋아하듯이, 악취를 싫어하듯이'라는 말을 자신의 마음에서 시험해보라.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이 과연 이와 같을 수 있는가?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다가 군자를 만나면 자신의 불선함을 감추고 선을 드러내는 일은, 과연 이러한 일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미진함이 있으면 용맹하게 떨쳐 일어나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성장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해야 함을 알지 못한다면, 책은 책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는(書自書, 我自我) 셈이니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6:104 問: “‘誠於中, 形於外’, 是實有惡於中, 便形見於外. 然誠者, 眞實無妄, 安得有惡! 有惡, 不幾於妄乎?” '''질문: '속으로 진실하면(誠)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진실로 내면에 악이 있으면 외면으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ref>실제로 대학 전6장을 보면 소인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 불선한 짓을 하다가 군자를 만나면 비로소 불선을 감추고 선을 드러내는데 남들의 눈에는 그 속이 뻔히 보인다는 구문에 바로 이어서 '이것을 일러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세대로 읽어 보면 질문자의 지적이 타당하다.</ref> 그러나 성(誠)이란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眞實無妄) 것인데, 어찌 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악이 있다면, 거짓됨(妄)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曰: “此便是惡底眞實無妄, 善便虛了. 誠只是實, 而善惡不同. 實有一分惡, 便虛了一分善; 實有二分惡, 便虛了二分善.” 淳(61·70때). '''대답: 이것은 바로 악함 쪽으로 진실되어 거짓이 없으면(眞實無妄) 선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성(誠)은 단지 (특정한 쪽으로) 진실되다는 것일 뿐이니, 선악의 구분과는 다르다.<ref>어느쪽으로든 순도가 100%가 되는 것이 '성'이니 선이나 악처럼 의지의 방향성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ref> 실제로 악이 10% 있으면 선이 10% 사라지게 되고, 악이 20% 있으면 선이 20% 사라지게 된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  16:105 “誠於中, 形於外.” 大學和“惡”字說. 此“誠”只是“實”字也. 惡者卻是無了天理本然者, 但實有其惡而已. 方(41때). ''' '속으로 진실하면(誠) 겉으로 드러난다'의 경우, 대학에서는 '악(惡)'자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성(誠)'자는 그저 '실(實)'자의 의미일 뿐이다. 악이란 천리의 본연(天理本然)을 결여한 것이지만, 그래도 (악인의 마음 속에는) 진실로(實) 악이 있을 뿐이다.<ref>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주희도 기본적으로 선이 아닌 것을 악으로 본다. 선은 표준(standard)이며, 이 표준에 적중(中節)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벗어나서(過不及) 실패한 케이스들이 바로 악이다. 다만 주희는 경학적 난제 앞에서 종종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타협하곤 하는데, 여기서도 경학적으로 원만한 해석을 제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실유기악(實有其惡)'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 김철호, 악은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3.</ref> 방(方)의 기록. (41세). *  16:106 凡惡惡之不實, 爲善之不勇, 外然而中實不然, 或有所爲而爲之, 或始勤而終怠, 或九分爲善, 尙有一分苟且之心, 皆不實而自欺之患也. 所謂“誠其意”者, 表裏內外, 徹底皆如此, 無纖毫絲髮苟且爲人之弊. 如飢之必欲食, 渴之必欲飮, 皆自以求飽足於己而已, 非爲他人而食飮也. 又如一盆水, 徹底皆淸瑩, 無一毫砂石之雜. 如此, 則其好善也必誠好之, 惡惡也必誠惡之, 而無一毫强勉自欺之雜. 所以說自慊, 但自滿足而已, 豈有待於外哉! 是故君子愼其獨, 非特顯明之處是如此, 雖至微至隱, 人所不知之地, 亦常愼之. 小處如此, 大處亦如此; 顯明處如此, 隱微處亦如此. 表裏內外, 精粗隱顯, 無不愼之, 方謂之“誠其意”. 孟子曰: “人能充無欲害人之心, 而仁不可勝用也.” 夫無欲害人之心, 人皆有之. 閑時皆知惻隱, 及到臨事有利害時, 此心便不見了. 且如一堆金寶, 有人曰: “先爭得者與之.” 自家此心便欲爭奪推倒那人, 定要得了方休. 又如人皆知穿窬之不可爲, 雖稍有識者, 亦不肯爲. 及至顚冥於富貴而不知恥, 或無義而受萬鍾之祿, 便是到利害時有時而昏. 所謂誠意者, 須是隱微顯明, 小大表裏, 都一致方得. 孟子所謂: “見孺子入井時, 怵惕惻隱, 非惡其聲而然, 非爲內交要譽而然.” 然卻心中有內交要譽之心, 卻向人說: “我實是惻隱·羞惡.” 所謂爲惡於隱微之中, 而詐善於顯明之地, 是所謂自欺以欺人也. 然人<ref>성화본, 만력본, 조선정판본에서는 人을 又로 썼다. 정판본의 교감주에서는 이본에서 人이라고 썼다고 기록했고 주자어류고문해의는 이 교감주를 받아들였다.</ref>豈可欺哉!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欺人者適所以自欺而已! “誠於中, 形於外”, 那箇形色氣貌之見於外者自別, 決不能欺人, 祇自欺而已! 這樣底, 永無緣做得好人, 爲其無爲善之地也. 外面一副當雖好, 然裏面卻踏空, 永不足以爲善, 永不濟事, 更莫說誠意·正心·修身. 至於治國·平天下, 越沒干涉矣. 僩(69이후). '''무릇 악을 싫어함에 있어 진실하지 않고 선을 행함에 있어 과감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그런 듯하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고, 혹은 별개의 목적을 가지고 (선을) 행하고, 혹은 시작은 부지런했으나 결국에는 게을러지고, 혹은 90%는 선을 행하나 여전히 10%는 대충 넘기려는(苟且) 마음일 경우, 이는 모두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여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병환(患)이다.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겉과 속, 안과 밖이 철저히 모두 그러하여 티끌만큼도 대충 넘겨가며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爲人) 폐단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배고프면 반드시 먹고자하고 목마르면 반드시 마시고자 함이 모두 자신의 포만을 스스로 추구하는 것일 뿐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爲他人)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또 마치 한 대야의 물이 모두 철저히 맑고 깨끗하여 모래나 돌 한 점 섞이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다면, 선을 좋아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진실로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진실로 싫어하여 단 한 점의 억지 노력이나 자기 기만도 섞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통쾌히 만족한다(自慊)'고 말한 것은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니 어찌 외부에 의존함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니(君子愼其獨), 그저 노출된 곳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은밀한 곳, 남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역시 늘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다. 작은 곳에서 이와 같고, 큰 곳에서도 이와 같으며, 노출된 곳에서 이와 같고, 은밀한 곳에서도 이와 같다. 겉과 속, 안과 밖, 정밀함과 거침, 은밀함과 노출됨 그 어디에서나 삼가고 조심하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 마음을 확충한다면 인(仁)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ref>맹자 7B:31.</ref>이라고 했다. 무릇 남을 해치려 하지 않는 마음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모두 (남을) 측은히 여길줄 알지만, 실제 상황에 닥쳐서 이해관계가 생기면 이 마음은 곧 보이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금은보화가 한 무더기 있는데 누군가 말하기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에게 주겠다'라고 하면, 자신의 이 마음은 곧 다투어 빼앗고 다른 사람을 밀쳐 쓰러뜨리려고 하여 반드시 (그것을) 얻고 나서야 그만두려 한다. 또 예컨대 사람들은 모두 도둑질(穿窬)이 해서는 안 될 짓임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자라면 역시 하려 들지 않는다. 부귀에 눈이 멀어(顛冥)<ref>본래 장자(莊子) 칙양(則陽)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부끄러움을 잊거나, 혹은 정당성 없이(無義) 만종의 녹봉을 받는 경우는<ref>'종'은 곡식의 양을 재는 그릇으로 용량의 단위로 쓰였다. 춘추좌씨전에 대한 두예의 주석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도량형을 기준으로 1종은 6곡(斛)4두(斗), 즉 여섯 섬 네 말이다. 한 섬은 열 말, 한 말이 열 되(升)인데, 한 되의 용량은 시대와 장소마다 다르다. 주희가 살았던 송대를 기준으로 하면 쌀 한 되가 592g 가량이므로 1종은 쌀 379kg이다. 송대에 검소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쌀 소비량이 하루에 한 되 정도였으므로, 640되(1종)의 곡식은 한 사람의 생활임금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주희에게 만종의 봉록이란 대략 사람 1만명을 고용해서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액수로 느껴졌을 것이다. 조복현, 중국 송대 가계수입과 생활비 (上), 신서원, 2016. 40쪽을 보라. 참고로 '만종'의 봉록과 의불의(義不義)를 연결시켜 설명하는 것은 맹자(孟子)에 빈출하는 화법이다. 맹자 2B:10을 보라.</ref> 곧 이해관계에 얽혀 종종 미혹되어서 그런 것이다. 이른바 '성의(誠意)'란, 반드시 은밀한 것과 노출된 것, 작은 것과 큰 것, 겉과 속이 모두 일치해야만 가능하다. 맹자가 말했다.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는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惻隱)해하는 까닭은 (잔인하다는) 오명을 싫어해서 그러한 것도 아니요 어린아이의 부모(父母)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며 명성을 구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ref>맹자 2A:6. 글자의 출입이 많으니 인용이라기 보다는 맹자의 해당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ref> 그러나 마음속에 교분과 명성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남들에게는 오히려 '나는 진실로 측은히 여기고(惻隱) 수치스러워한다(羞惡)'고 말한다면 이는 이른바 은밀한 곳에서는 악을 행하고 노출된 곳에서는 선을 가장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스스로를 속임으로써 남을 속인다(自欺以欺人)는 것이다. 하지만 남을 어찌 속일 수 있으랴! '남들이 나를 보기를 마치 내 폐와 간을 보듯이 한다'<ref>대학장구 전6장.</ref>면, 남을 속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속으로 진실하면 겉으로 드러난다.' (속이 어떠한가에 따라) 밖으로 드러난 안색과 몸가짐과 분위기(形色氣貌)가 각자 달라서(自別) 결코 남을 속일 수는 없고 그저 자신만 속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될 길이 없으니, 그에게는 선을 행할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의 외면적 요소가<ref>일부(一副)는 여러 다른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는 한 세트, 한 벌을 말한다. 사람의 외양에 대해서 쓰일 경우 외양 판단의 기준이 되는 여러 요소들의 종합이다. 직역하자면 '외모요소 한 세트...'가 될 것이나 여기서는 조금 더 부드럽게 의역했다. 당(當)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미우라구니오(2012, 410쪽)는 접미어일 것으로 추측했다.</ref> 비록 멀쩡해 보여도 그 속은 오히려 공허하여(踏空) 영원히 선을 행하기에 부족하고 영원히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하니(不濟事),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莫說).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에 있어서는 더더욱 관련이 없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以下全章之旨.> '''<이 아래로는 장 전체의 취지에 관한 조목들> *  16:107 問: “‘誠意’章‘自欺’注, 今改本恐不如舊注好.” '''질문: '성의(誠意)'장의 '자기 기만(自欺)'에 대한 주석은 (대학장구) 개정본쪽이 구본만 못한 것 같습니다. 曰: “何也?” '''대답: 어째서인가? 曰: “今注云: ‘心之所發, 陽善陰惡, 則其好善惡惡皆爲自欺, 而意不誠矣.’ 恐讀書<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은 '讀書'를 '初讀'으로 썼다. 여기서는 초독으로 보고 번역했다.</ref>者不曉. 又此句, 或問中已言之. 卻不如舊注云: ‘人莫不知善之當爲, 然知之不切, 則其心之所發, 必有陰在於惡而陽爲善以自欺者. 故欲誠其意者無他, 亦曰禁止乎此而已矣.’ 此言明白而易曉.” '''말함: 지금 주석에는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ref>의지(意)를 말한다.</ref>이 양으로는 선하고 음으로는 악하다면 자신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모두 자신을 기만한 것이 되어 의지가 진실하지 않게 된다.'<ref>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16:74를 참조하라.</ref>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 읽는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까 염려되고, 또 이 구절은 중용혹문(中庸或問)<ref>이 부분은 대학혹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용혹문 제 20장부분을 참조하라.</ref>에서 이미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옛 주석에서 '응당 선을 행해야 함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 앎이 절실하지 못하면 그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ref>역시 의지(意)를 말한다.</ref> 가운데 반드시 음으로는 악으로 향하지만 양으로는 선을 행하여 자신을 기만하는 부분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데는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다. 역시 이것을 금지(禁止)하라고 말할 뿐이다'라고 한 말이 명백하고 깨닫기 쉬운 것만 못합니다. 曰: “不然. 本經正文只說‘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初不曾引致知兼說. 今若引致知在中間, 則相牽不了, 卻非解經之法. 又況經文‘誠其意者, 毋自欺也’, 這說話極細. 蓋言爲善之意稍有不實, 照管少有不到處, 便爲自欺, 未便說到'心之所發, 必有陰在於惡, 而陽爲善以自欺'處. 若如此, 則大故無狀, 有意於惡, 非經文之本意也. 所謂‘心之所發, 陽善陰惡’, 乃是見理不實, 不知不覺地陷於自欺; 非是陰有心於爲惡, 而詐爲善以自欺也. 如公之言, 須是鑄私錢, 假官會, 方爲自欺, 大故是無狀小人, 此豈自欺之謂邪! '''대답: 그렇지 않다. 본래 경전의 정문(正文)은 단지 '이른바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만 했을 뿐, 애초에 '치지(致知)'를 끌고와서 겸하여 설명한 적이 없다.<ref>질문자가 인용한 구주에서 '그 앎이 절실하지 못하면(知之不切)'이라고 한 부분이 치지와 관련된 지점이다.</ref> 지금 만약 '치지'(의 취지)를 끌어다 중간에 놓으면 (그에 상응하는 본문이 없어) 어디에도 매달 수 없으니(相牽不了), 경전을 주해하는 법에 어긋난다. 게다가(況) 또 경문에서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한 말은 (논의의 스케일이) 극히 세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대략 이런 이야기인데,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진실하지 않거나 관리(照管)<ref>유심히 잘 살펴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유사한 표현이 16:91, 93 등에 있으니 참고하라.</ref>하는 눈이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곧 자기기만(自欺)이 된다는 말이지, 아직 곧바로 '그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 가운데 반드시 음으로는 악으로 향하지만 양으로는 선을 행하여 자신을 기만하는 부분이 있다'<ref>질문자가 인용한 구본 주석이다.</ref>고 말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ref>후자를 말한다. 전자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섬세하고 미묘하고 후자는 단순하며 노골적이다.</ref> 이는 대단히(大故) 추악(無狀)하여 악행에 그 의도가 있는 것이니 경문의 본뜻에 어긋난다. 이른바 '마음에서 틔워나온 것이 양으로는 선하고 음으로는 악하다'<ref>질문자가 인용한 개정본 주석이다.</ref>는 것은 이치에 대한 이해가 진실하지 못해서(見理不實)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데에 빠진다는 말이지, 음으로 악을 행하려는 마음을 품고서 거짓으로 선을 행하여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네의 말 대로라면 반드시 사전(私錢)을 주조하거나<ref>관의 허락 없이 사적으로 금속을 녹여 동전을 주조하는 행위를 말한다.</ref> 지폐(官會)<ref>송대의 지폐를 '회자(會子)'라고 한다. 정해진 시일 안에 가져오면 금속화폐로 교환해준다는 약속이 적힌 종이문서인데,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지폐라기보다는 어음에 가깝다. 관회(官會)는 관에서 발행한 이러한 지폐를 말한다.</ref>를 위조하는 정도의 악행이어야 비로소 자신을 기만하는(自欺) 것이 되는데, 이는 대단히 추악한 소인이다. 이를 어떻게 자기기만(自欺)이라고 하겠나? <又曰: “所謂‘毋自欺’者, 正當於幾微毫釐處做工夫. 只幾微之間少有不實, 便爲自欺. 豈待如此狼<ref>조선고사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狼을 郎으로 썼다.</ref>當, 至於陰在爲惡, 而陽爲善, 而後謂之自欺邪! 此處語意極細, 不可草草看.”> '''<또 대답함: 이른바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지극히 미세하고 작은 부분(幾微毫釐)에서 하는 공부에 해당한다. 그저 아주 미세한 틈에 조금이라도 진실하지 않음이 있기만 하면 곧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것이 된다. 어찌 이렇게 퇴락하여(狼當)<ref>랑당(狼當) 혹은 랑당(郞當)은 곤궁하고 쇠잔해짐, 퇴락하고 영락함, 무능력함, 낭패함 등의 의미가 있다. 주자어류사휘연구 213쪽, 669쪽을 보라.</ref> 음으로는 악으로 향하지만 양으로는 선을 행하는 지경에 이른 후에야 자기기만(自欺)라고 하겠나? 이 부분의 어의(語意)는 극히 세밀하니, 적당히 훑어서는 안 된다.> 此處工夫極細<ref>조선고사본은 '欺' 뒤에 '在'가 있다.</ref>, 未便說到那粗處. 所以前後學者多說差了. 蓋爲牽<ref>류씨 전경당본의 편집자 하서린이 이와같이 교감한 것이다. 다른 모든 판본에서는 '잠/렴(賺)'이다.</ref>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却'자가 있다.</ref>下文‘小人閒居爲不善’一段看了, 所以差也.” '''이 부분의 공부는 극히 세밀하며, 그 거친 부분(粗處)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ref>세밀함이란 심리상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악의를 박멸하는 일의 미세한 스케일을 말한다. 거친 부분이란 사전을 주조하는 등의 단순하고 노골적인 악행을 말한다.</ref> 그래서 고금의 학자들이 대부분 잘못 설명했다. 아래 문장의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한 단락과 연결하여(牽連)<ref>전경당본의 교감에 따라 번역하면 말이 잘 통한다. 하지만 여전히 왜 애초에 다른 모든 판본에서 잠(賺)이라고 썼는지, 그리고 그것을 교감한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심경주해총람 상권 545-547쪽에서 이 글자를 여러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번역자가 보기에는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 번역자는 賺이 자겸(自慊)이나 겸(謙)의 오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번역은 '자겸을 아래쪽 ...에 붙여서 보아버렸기 때문에'처럼 되는데, 대학 전6장 본문의 구조를 감안하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f> 보아버렸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又問: “今改注下文云: ‘則無待於自欺, 而意無不誠也.’ 據經文方說‘毋自欺’. 毋者, 禁止之辭. 若說無待於自欺, 恐語意太快, 未易到此.” '''재질문: 지금 개정된 주석의 아래 문장에는 '...면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이 의지에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경문에 의하면 이제 막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라(毋)'는 금지(禁止)하는 말이니, 만약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이'라고 하신다면 어의(語意)가 너무 장쾌하여(太快)<ref>묘사하고 있는 경지가 너무도 깨끗하고 완벽하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일역본은 논의의 진행이 너무 성급(性急)하다고 해석했는데 일리가 있다.</ref>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曰: “旣能禁止, 其心之所發皆有善而無惡, 實知其理之當然, 使<ref>조선고사본은 '使'를 '便'으로 썼다. 재질문에서 '則無待於自欺'라고 했으니 여기서도 '便無待於自欺'라고 써야 말이 잘 통한다. 아래쪽에서 주희가 이 부분을 재삼 설명할 적에도 '便無待於自欺矣'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번역은 조선고사본을 따랐다.</ref>無待於自欺, 非勉强禁止而猶有時而發也. 若好善惡惡之意有一毫之未實, 則其發於外也必不能掩. 旣是打疊<ref>여유량본은 '疊'을 '환(圜)'으로 썼다.</ref>得盡, 實於爲善, 便無待於自欺矣. 如人腹痛, 畢竟是腹中有些冷積, 須用藥驅除去這冷積, 則其痛自止. 不先除去冷積, 而但欲痛之自止, 豈有此理!” 僩(69이후). '''대답: 일단 성공적으로 금지해내서 그 마음에서 틔워나오는 것이 모두 선하여 악함이 없어서 진실로 그 이치의 당위성(理之當然)을 알게 되면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으니, 억지로 금지하지만 여전히 종종 (악의가) 티워나오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만약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의지에 조금이라도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 역시 결코 감출 수 없다. 일단 깨끗하게 정리해내서(打疊得盡) 선행에 대하여 진심이 되면 스스로를 기만할 필요도 없게 된다. 예컨대 사람의 복통은 필경 배 속에 냉적(冷積)<ref>장내에 쌓인 차가운 기운을 말한다.</ref>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반드시 약을 써서 그 냉적을 몰아내야만 그 통증이 저절로 그치게 된다. 먼저 냉적을 제거하지도 않고 그저 통증이 저절로 그치기를 바란다면,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나?<ref>주희의 이 답변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질문자의 지적처럼 대학 본문에서는 분명 금지하는 말을 썼다. 그런데 금지하는 말이 담고 있는 '억지로 애써 틀어막는(勉强禁止)' 듯한 느낌을 회피하고 자연스러운 경지로서의 '자기 속임 없음'을 그려내려다 보니 금지를 자연스러운 금지와 억지 금지로 나누어 대립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난맥상 때문인지 통행본 대학장구에서는 자연스러운 금지라는 설명을 포기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틀어막는 쪽으로 주석의 방향이 바뀌었다. 또, 앞서 구주를 비판할 때 '치지'의 요소가 불필요하게 들어있다고 지적했으면서 이 부분의 첫 문장에서는 도리어 '實知其理之當然'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앞뒤가 상충한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08 敬子問: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注云: ‘外爲善, 而中實未能免於不善之雜.’ 某意欲改作‘外爲善, 而中實容其不善之雜’, 如何? 蓋所謂不善之雜, 非是不知, 是知得了, 又容著在這裏, 此之謂自欺.” '''경자의 질문: '이른바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에 대한 주석에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진실로 불선함이 섞임을 면치 못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진실로 불선함이 섞이는 것을 용인한다'라고 고쳤으면 하는데 어떨런지요? 대개 이른바 불선함의 섞임이란,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용인하여 마음 속에 두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를 두고 스스로를 기만한다고 합니다. 曰: “不是知得了容著在這裏, 是不柰他何了, 不能不自欺. 公合下認錯了, 只管說箇‘容’字, 不是如此. ‘容’字又是第二節, 緣不柰他何, 所以容在這裏. 此一段文意, 公不曾識得它源頭在, 只要硬去捺他, 所以錯了. <大槪以爲有纖毫不善之雜, 便是自欺.> 自欺, 只是自欠了分數. 恰如淡底金, 不可不謂之金, 只是欠了分數. 如爲善, 有八分欲爲, 有兩分不爲, 此便是自欺, 是自欠了這分數.” '''대답: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시 용인하여 마음 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ref>악한 의지를 말한다.</ref> 어찌할 수가 없어서 부득불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것이다.<ref>고의가 아니라 과실이라는 뜻이다. 16:101에서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그대는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을) 오인하여 계속 '용(容)'자만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용'자는 (심리적으로) 또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그것을<ref>기발생한 악한 의지를 말한다.</ref>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용납하여 마음 속에 두는 것이다. 이 단락의 문의(文意)에 대하여 그대는 그 근원(源頭)<ref>대학 8조목 공부에 있어서 '원두(源頭)'가 되는 지점은 격물치지의 단계이다. 15:96, 97을 참조하라.</ref>을 파악하지 못하고서, 그저 무리하게 그것<ref>악의를 말한다</ref>을 억누르려 하니까 잘못되는 것이다. <대략, 불선함이 극미량만 섞여도 곧바로 자기기만이 된다는 말이다.><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을 본문으로 처리했다.</ref>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은 그저 스스로 함량이 미달한다는(欠了分數)<ref>분수(分數)는 비율이다. 예컨대 24K의 금 함량이 100%라면 18K의 금 함량은 75%이다.</ref> 것이다. 마치 순도가 낮은 금(淡底金)<ref>'담(淡)'은 농도상의 희박함이다. 여기서는 금 함량이 낮다는 말이다.</ref>도 금이 아니라고야 할 수는 없지만 그저 함량이 부족할 뿐인 것과 같다. 예컨대 선을 행함에 있어 80%는 행하려 하나 20%는 행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요 스스로 함량이 미달한 것이다.''' 或云: “如此, 則自欺卻是自欠.” '''누군가의 말: 말씀하신 대로라면 자기를 기만한다는 것은 실은 스스로 (함량이) 미달한 것이군요. ''' 曰: “公且去看. <又曰: “自欺非是要如此, 是不柰它何底.”> 荀子曰: ‘心臥則夢, 偸則自行, 使之則謀.’ 某自十六七讀時, 便曉得此意. 蓋偸心是不知不覺自走去底, 不由自家使底, 倒要自家去捉它. ‘使之則謀’, 這卻是好底心, 由自家使底.” '''대답: 그대가 한번 살펴보라. <또 말함: 자기를 기만함은 그렇게 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순자(荀子)는 '마음은 누우면 꿈꾸고, 흐리멍텅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며, 시키면 꾀한다.'고 하였다.<ref>순자(荀子) 해폐편(解蔽篇). 16:86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인용하고 있다.</ref> 나는 16~7 세 때 이 구절을 읽고서 바로 그 뜻을 깨달았다. 대개 흐리멍텅한 마음은 부지불식간에 저혼자 멀리 가버리니, 자신이 부리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가서 잡아와야 하는 것이다. '시키면 꾀한다'는 것은 반면에 좋은 마음이니, 자신이 부리고 시킬 수 있는 것이다. 李云: “某每常多是去捉他, 如在此坐, 心忽散亂, 又用去捉它.” '''이(李)가 말함<ref>이 조목 최초 질문자인 이경자를 말한다.</ref>: 저는 매양 자주 그것을 잡아오는데, 예컨대 여기 이렇게 좌정해도 마음이 돌연 산란해져서 다시 그놈을 잡으러 가야 합니다.''' 曰: “公又說錯了. 公心粗, 都看這說話不出. 所以說格物·致知而後意誠, 裏面也要知得透徹, 外面也要知得透徹, 便自是無那箇物事. 譬如果子爛熟後, 皮核自脫落離去, 不用人去咬得了. 如公之說, 這裏面一重不曾透徹在. 只是認得箇容著, 硬遏捺將去, 不知得源頭工夫在.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此是聖人言語之最精處, 如箇尖銳底物事. 如公所說, 只似箇樁頭子, 都粗了. 公只是硬要去强捺, 如水恁地滾出來, 卻硬要將泥去塞它, 如何塞得住!” '''말함: 그대가 또 잘못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 거칠고 성글어서(粗)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격물(格物)·치지(致知)한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진다고 말하는 까닭은, 안으로도 투철하게 알고 밖으로도 투철하게 알면 자연히 그런 일<ref>선을 향한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말한다.</ref>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과일이 완전히 익은 후에는<ref>격물치지의 공부가 난숙해진 후에는</ref> 껍질과 씨앗이 저절로 떨어져 나가서<ref>악한 의지가 섞이지 않아서</ref> 사람이 깨물어 제거할 필요가<ref>무리하게 억누를 필요가</ref>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은 경우는 그 안쪽 껍질 한 겹을 아직 뚫고 들어가지(透徹) 못한 것이다.<ref>여전히 과일과 껍질의 비유가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이와 같이 의역했다. 이경자는 도덕실천에 있어서의 정서적 추동력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주희의 진단은 도덕원리에 대한 인식의 철저성 쪽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ref> 그저 (이 악의를) 용인하고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서 무리하게 억누르려 할 뿐 근원(源頭)<ref>역시 격물치지를 말한다.</ref>에서의 공부는 알지 못한다. '이른바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성인의 말씀 중 가장 정밀한 부분이니, 흡사 예리한 물건과 같다. 그대가 한 말은 그저 말뚝(樁頭子)같아서 모두 거칠고 성글다. 그대는 다만 무리해서 억제하려 할 뿐이니, 마치 물이 이렇게 분출하려 하는데 오히려 억지로 진흙으로 막으려 하는 것과 같다.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又引中庸論誠處, 而曰: “一則誠, 雜則僞. 只是一箇心, 便是誠; 才有兩箇心, 便是自欺. 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 他徹底只是這一箇心, 所以謂之自慊. 若才有些子間雜, 便是兩箇心, 便是自欺. 如自家欲爲善, 後面又有箇人在這裏拗你莫去爲善; 欲惡惡, 又似有箇人在這裏拗你莫要惡惡, 此便是自欺. <因引近思錄“如有兩人焉, 欲爲善”云云一段, 正是此意.> 如人說十句話, 九句實, 一句脫空, 那九句實底被這一句脫空底都壞了. 如十分金, 徹底好方謂之眞金, 若有三分銀, 便和那七分底也壞了.” '''다시 중용(中庸)에서 성(誠)을 논한 부분을 인용하여 말함: 하나이면 진실(誠)이요, 섞이면 거짓이다.<ref>중용장구 제 20장에 유사한 언급이 보인다.</ref> 마음이 하나이기만 하면 곧 진실(誠)이요, 둘이 되기만 하면 곧 자기기만(自欺)이다.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 하고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는 것은 그저 철저히 마음이 하나라는 것이니, 그래서 스스로 통쾌히 만족한다고(自慊) 말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 사이에 무언가 섞인다면 곧 마음이 둘인 것이요,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것이다. 마치 자기는 선을 행하려 하나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여기에서 그대가 선을 행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과 같고, 악을 싫어하려 하나 흡사 또 다른 사람이 여기에서 그대가 악을 싫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스스로를 기만하는(自欺) 것이다. <이어서 근사록(近思錄)의 '마치 두 사람이 있어, 선을 행하려 하는데...'<ref>근사록 4:21. 원출전은 이정유서 2下:18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 속에 늘 두 사람이 있는 듯하여 선을 행하려 하면 악이 그 틈새에 끼어들고 불선을 행하려 하면 또 수오지심이란 것이 있는 듯하지만 본래 두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이 교전한다는 증거이다.(有人胸中常若有兩人焉, 欲爲善, 如有惡以爲之間, 欲爲不善, 又若有羞惡之心者. 本無二人, 此正交戰之驗也.)</ref> 운운한 단락이 정확히 이 뜻이라고 인용함.> 마치 사람이 열 마디 말을 하는데, 아홉 마디는 진실하고 한 마디는 헛소리(脫空)라면, 이 한 마디 헛소리가 그 진실한 아홉 마디를 모두 망쳐 버리는(壞了)<ref>'괴(壞)'는 '무너진다' 보다는 현대 중국어 '화이(坏)'에 가깝다. 그르치다, 나쁘다, 망가지다, 망치다, 썩다 등을 의미한다.</ref> 것과 같다. 순도 100%인 금 같은 경우, 철저히 좋아야만 진금(眞金)이라 하지, 만약 30%가 은이라면 나머지 70% 금까지도 망쳐 버린다. 又曰: “佛家看此亦甚精, 被他分析得項數多, 如云有十二因緣, 只是一心之發, 便被他推尋得許多, 察得來極精微. 又有所謂‘流注想’, 他最怕這箇. 所以潙山禪師云: ‘某參禪幾年了, 至今不曾斷得這流注想.’ 此卽荀子所謂‘偸則自行’之心也.” 僩(69이후). '''또 말함: 이에 대한 불가의 이해 또한 매우 정밀하니 그들은 이를 여러 항목으로 분석해냈다. 예컨대 열두 가지 인연(因緣)<ref>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12연기를 말한다.</ref>이 그저 한 마음의 발현일 뿐이라고 하는데(一心之發),<ref>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 '12 인연은 모두 한 마음이 지은 것이다(十二因緣皆一心作)'라고 했다.</ref> 그들은 이토록 많은 것을 추적하여 극히 정밀하게 관찰해낸다. 또 이른바 '흐르는 생각(流注想)'<ref>끊임 없이 서로 이어져 흐르는 상념을 말한다.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 권 1. '그러나 여러 지위에서 지혜와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확고한 말씀의 뜻을 분별하고, 가장 훌륭하고 끝없는 선근을 성숙시키며, 자기 마음에 나타난 망상의 허위를 벗어나 숲에 조용히 앉아서 상ㆍ중ㆍ하의 수행을 닦으면, 자기 마음의 망상이 상속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餘地相智慧, 巧便分別, 決斷句義. 最勝無邊善根成熟, 離自心現妄想虛僞, 宴坐山林, 下中上修, 能見自心妄想流注.)' 번역은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통합대장경 서비스에서 재인용. 어류 21:13, 72:115에서도 유주상을 언급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이란 것이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위산(潙山) 선사가<ref>위산영우 (771-853)를 말한다.</ref> 말하기를 '나는 선을 참구한 지 몇 년이 되었으나, 지금까지도 이 흐르는 생각을 끊지 못했다'고 했다.<ref>이 말은 위산어록, 조당집 등 다른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ref> 이것이 바로 순자가 말한 '흐리멍텅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음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09 次早, 又曰: “昨夜思量, 敬子之言自是, 但傷雜耳. 某之言, 卻卽說得那箇自欺之根. 自欺卻是敬子‘容’字之意. ‘容’字卻說得是, 蓋知其爲不善之雜, 而又蓋庇以爲之, 此方是自欺. 謂如人有一石米, 卻只有九斗, 欠了一斗, 此欠者便是自欺之根, 自家卻自蓋庇了, 嚇人說是一石, 此便是自欺. 謂如人爲善, 他心下也自知有箇不滿處, 他卻不說是他有不滿處, 卻遮蓋了, 硬說我做得是, 這便是自欺. 卻將那虛假之善, 來蓋覆這眞實之惡. 某之說卻說高了, 移了這位次了, 所以人難曉. 大率人難曉處, 不是道理有錯處時, 便是語言有病; 不是語言有病時, 便是移了這步位了. 今若只恁地說時, 便與那‘小人閒居爲不善’處, 都說得貼了.” 僩(69이후).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말함: 어젯밤 생각해 보니 경자의 말이 옳기는 옳다만 잡박하다는 흠이 있을 뿐이다. 나의 말은 (자기 기만 자체가 아니라) 자기 기만의 뿌리를 설명한 것이다. 자기 기만은 경자가 말한 '용인(容)'한다는 의미이다. '용(容)'자는 옳게 말했다. 이는 그 불선(不善)이 섞여들었음을 알고도 다시 이 흠결을 덮어둔 채로 행위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기 기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한 섬의 쌀이 있는데 실제로는 아홉 말뿐이고 한 말이 부족하다면, 이 부족한 것이 자기 기만의 뿌리이다. 스스로 이 흠결을 덮어두고 다른 사람에게는 한 섬이라고 큰소리치는(嚇)<ref>'혁(嚇)'은 협박조로 사기치는 행위를 말한다. 좋지 않은 물건을 강매하는 광경을 떠올리면 적당하다.</ref> 것이 자기 기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선(善)을 행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만, 자신에게 그런 지점이 있음을 말하지 않고 도리어 덮어두고는 자신은 옳은 행위를 했다고 강변하는 것이 자기 기만이다. 거짓된 선으로 진정한 악을 덮는 것이다. 나의 설명은 지나치게 고원해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버렸기에<ref>격물치지라는 '원두처'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는 말이다.</ref>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는 도리(道理)에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니면 언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요, 언어에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니면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만약 단순히 이렇게 말한다면, 저기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쪽과도 말이 완전히 부합한다(貼).<ref>'첩(貼)'은 상응하다, 타당하다, 적합하다, 온당하다 등의 뜻이 있다. 현대 중국어 '티에(帖)', '투어티에(妥帖)'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10 次日, 又曰: “夜來說得也未盡. 夜來歸去又思, 看來‘如好好色, 如惡惡臭’一段, 便是連那'毋自欺也'說. 言人之毋自欺時, 便要‘如好好色, 如惡惡臭’樣方得. 若好善不‘如好好色’, 惡惡不‘如惡惡臭’, 此便是自欺. 毋自欺者, 謂如爲善, 若有些子不善而自欺時, 便當斬根去之, 眞箇是‘如惡惡臭’, 始得. 如‘小人閒居爲不善’底一段, 便是自欺底, 只是反說. ‘閒居爲不善’, 便是惡惡不‘如惡惡臭’; ‘見君子而後厭然, 揜其不善而著其善’, 便是好善不‘如好好色’. 若只如此看, 此一篇文義都貼實平易, 坦然無許多屈曲. 某舊說忒說闊了·高了·深了. 然又自有一樣人如舊說者, 欲節去之又可惜. 但終非本文之意耳.” 僩(69이후). '''다음 날 또 말함: 어젯밤 말한 것도 역시 미진하다. 어젯밤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 부분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부분에 이어서 하는 말이었다. 이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기만을 금지할 때는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 해야만 된다는 말이다.<ref>어떤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희가 16:108에서 이러한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무리하게 강제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의 입장이 정 반대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16:91의 주석에서 이미 한 번 언급했듯, 주희는 격물치지 이후의 단계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것들을 모두 격물치지라는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역시도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공부의 현장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갈팡질팡한다. 16:108에서 전자의 입장이었다면 본 조목에서는 후자의 입장이 된 것이다. 16:120에서도 이 부분을 회고하며 이러한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ref> 만약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 하지 않거나,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자기 기만이다. 스스로를 기만하지 말라는 것은 예컨대 선을 행하는데 약간의 불선한 의지를 가지고서 자신을 기만하는 경우, 곧바로 그 뿌리를 잘라 제거하여 진정 '악취를 싫어하듯' 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소인(小人)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하여' 부분은 자신을 기만하는 부분인데, 그저 (선악의 순서를) 뒤집어 말한 것일 뿐이다.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 한다'는 것은 악을 싫어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듯' 하지 않는 것이며, '군자(君子)를 본 뒤에는 겸연쩍게 그 불선(不善)함을 숨기고 선(善)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선을 좋아하기를 '미색을 좋아하듯'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편<ref>대학 전 6장을 말한다.</ref>의 문의(文義)가 완전히 현실에 부합하고(貼實) 평이(平易)하며, 일직선으로 탁 트여(坦然) 이런저런 굴곡이 없다.<ref>탄연(坦然)과 굴곡(屈曲)은 모두 문장을 길에 비유한 것이다. 탄연은 평평하고 고른 길이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모습이고 굴곡은 커브길이다.</ref> 나의 예전 설은 지나치게 넓고 높고 깊게 설명했다. 그러나 또 예전 설에서 말한 것 같은 사람도 분명 있으니,<ref>16:108에서 질문자 이경자가 처음 인용하는 주희의 주석 내용이 본 조목에서의 '예전 설'이다. 108을 보면 이경자는 자기기만 사태에 있어 각자의 고의성을, 주희는 불가피성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 설에서 말한 것 같은 사람도...'는 불가피하게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 이들을 말한다.</ref> 예전 설을 삭제하고자 하면서도 또 아깝다. 그래도 결국 (나의 예전 설은 대학) 본문의 뜻은 아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ref>16:106부터 여기까지 자기기만에 대해 논한 내용은 한원진의 주자언론동이고(곽신환역) 147-156쪽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6:111 看“誠意”章有三節: 兩“必愼其獨”, 一“必誠其意”. “十目所視, 十手所指”, 言“小人閒居爲不善”, 其不善形於外者不可揜如此. “德潤身, 心廣體胖”, 言君子愼獨之至, 其善之形於外者證驗如此. 銖(67이후). ''' '성의'장에는 세 단락이 있다.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해야 한다(必愼其獨)'가 두 단락, '반드시 그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必誠其意)'가 한 단락 있다.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十目所視, 十手所指)'는'소인이 한가로이 집에 있을 적에는 불선(不善)한 짓을'하는데, 그 불선함이 밖으로 드러나 감출 수 없음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德潤身, 心廣體胖)'는 군자의 신독(愼獨)의 노력이 극에 이르러 그 선함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의 증거가 이과 같다는 말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112 問“十目所視, 十手所指”. '''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十目所視, 十手所指)'에 관한 질문. 曰: “此承上文‘人之視己, 如見其肺肝’底意. 不可道是人不知, 人曉然共見如此.” 淳(61·70때). '''대답: 이는 위쪽 문장인 '남들이 나를 보기를 마치 내 폐와 간을 보듯이 한다'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다. 남들은 모를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다들 이처럼 분명하게 보고 있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十目所視以下.> '''<'십목소시(十目所視)' 이하 부분에 관한 조목들> *  16:113 魏元壽問“十目所視”止“心廣體胖”處. '''위원수(魏元壽)가 '십목소시(十目所視)'부터 '심광체반(心廣體胖)'까지 부분을 질문. 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不是怕人見. 蓋人雖不知, 而我已自知, 自是甚可皇恐了, 其與十目十手所視所指, 何以異哉?‘富潤屋’以下, 卻是說意誠之驗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이며,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다'는 남들이 보는 것이 두렵다는 말이 아니다. 대개 남들은 알지 못해도 나는 이미 스스로 알고 있으니, 이 자체로 매우 두려운 일이다. 이것이 열 개의 눈과 열 개의 손가락이 보고 가리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대로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富潤屋)' 이하 부분은 의지가 진실해졌을 때의 증거가 이와 같다는 설명이다. *  16:114 “心廣體胖”, 心本是闊大底物事, 只是因愧怍了, 便卑狹, 便被他隔礙了. 只見得一邊, 所以體不能常<ref>조선고사본, 성화본, 조선정판본에서는 '常'을 '得'으로 썼다. 통행본 대학장구에서 '항상 펴지고 편안하다(常舒泰)'고 했으니 '상'으로 교감하는 것에 근거가 없지는 않으나 '득'이라고 써서 안 될 것은 없다. 여기서는 '득'으로 처리했다.</ref>舒泰. 僩(69이후). '''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 마음은 본래 광활한 물건인데 수치심(愧怍) 때문에 비좁아지고(卑狹) 끊어지고 막혀(隔礙) 버린다.<ref>모두 길로 비유한 것이다. 마음은 본래 폭이 넓고 잘 정비된 길인데 나쁜 생각이 섞이면 비좁고 중간중간 끊어지고 막히는 길이 되어버린다.</ref> 한쪽 면만 보기 때문에 몸이 펴지고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15 伊川問尹氏: “讀大學如何?” 對曰: “只看得‘心廣體胖’一句甚好.” 又問如何, 尹氏但長吟“心廣體胖”一句. 尹氏必不會嚇人, 須是它自見得. 今人讀書, 都不識這樣意思.<ref>이 조목은 어류 97:88과 매우 흡사하다. </ref> '''이천(伊川)<ref>정이(程頤, 1033-1107). 호는 이천선생. 정씨 형제 가운데 동생 쪽이다.</ref>이 윤씨(尹氏)<ref>윤돈(尹焞, 1071-1142). 자는 화정(和靖). 정씨 형제의 이름난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ref>에게 '대학을 읽어 보니 어떠한가'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저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는 한 구절이 매우 좋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 하였다. 어떻게 좋냐고 재차 묻자 윤씨는 단지 '심광체반' 한 구절을 길게 읊기만 하였다. 윤씨는 분명 남을 속이지(嚇)<ref>97:88에서는 이 자리에 '만(瞞, 속이다)'자를 썼다. '만'은 진상을 덮어서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느낌에 가깝다면 '혁'은 위협하고 윽박질러 속이는 느낌에 가깝다. 주자어류사휘연구 583쪽을 보라.</ref> 못하므로 반드시 그 스스로 자득(自見得)한 것이리라.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을 적에 이런 의미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다.<ref>이 이야기는 이정집, 화정집에 보이지 않는다.</ref> *  16:116 問: “尹和靖云: ‘“心廣體胖”只是樂.’ 伊川云: ‘這裏著“樂”字不得.’ 如何?” '''질문: 윤화정(尹和靖)이 말하길 '심광체반(心廣體胖)'은 즐거움(樂)일 뿐이다.'고 하자 이천(伊川)은 '여기에 락(樂)자를 쓸 수 없다'고 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ref>이 이야기의 원출전은 이정외서 12:68와 12:115이다.</ref> 曰: “是不勝其樂.” 德明(44이후). '''대답: 그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ref>윤화정의 말에는 의식적으로 안배하는 기색이 남아있다.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다는 표현 쪽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 '불승(不勝)'은 '불감당(不堪當, 감당하지 못함)'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거나 그 양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ref> *  16:117 問“心廣體胖”. '''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평안해진다(心廣體胖)'에 관한 질문. 曰: “'無愧怍', 是無物欲之蔽, 所以能廣大.” '''대답: '부끄러울(愧怍) 것이 없다'<ref>대학장구 전 6장. 주희의 주석에 있는 구문이다.</ref>는 물욕에 뒤덮힘이 없다는 것이니, 그래서 크고 넓을(廣大) 수 있다. 指前面燈云: “且如此燈, 後面被一片物遮了, 便不見一半了; 更從此一邊用物遮了, 便全不見此屋了, 如何得廣大!” 蘷孫(68이후). '''전면의 등(燈)을 가리키며 말함: 예컨대 이 등의 뒷면이 무언가에 가로막혀서 (이 방의) 절반은 (우리가) 보지 못한다. 나아가 이쪽 면까지 무언가 가지고 와서 가로막아 버리면 (이 방) 전체를 전혀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크고 넓을(廣大) 수 있겠나?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18 問: “‘誠意’章結注云: ‘此大學一篇之樞要.’”. '''질문: '성의' 장을 마무리하는 주석에서 '이것이 대학(大學) 한 편의 중추(樞要)<ref>'추(樞)'는 지도리이다. 여닫는 문이 회전하는 중심축, 혹은 그런 중심축이 되는 기둥을 세우는 움푹 파인 공간을 말한다. </ref>이다.'라고 하셨습니다.<ref>이 부분은 통행본 대학장구에 보이지 않는다.</ref> 曰: “此自知至處便到誠意, 兩頭截定箇界分在這裏, 此便是箇君子小人分路頭處. 從這裏去, 便是君子; 從那裏去, 便是小人. 這處立得脚, 方是在天理上行. 後面節目未是處, 卻旋旋理會.” 㝢(61이후) '''대답: 이는 '앎이 지극해짐(知至)'부분에서 '의지를 진실하게 함(誠意)'에 이르기까지 두 영역(兩頭截)<ref>일역판은 '양두(兩頭)'를 한 단어로, '절정(截定)'을 또 한 단어로 읽었는데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양두절은 아마도 양두(兩頭)와 양절(兩截)이 합쳐진 형태일 것이다.</ref>이 여기에다 경계선을 정해 두었다.<ref>두 영역은 '지지'와 '성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 군자와 소인, 몽매함과 깨어남 따위를 말한다. 15:84부터 91까지 이와 흡사한 메타포를 구사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여기가 바로 군자와 소인의 길이 갈리는 지점이다. 이쪽 길을 따라 가면 군자이고, 저쪽 길을 따라 가면 소인이다. 여기<ref>군자의 길을 말한다.</ref>에 발을 딛어야(立得脚)만 비로소 천리(天理)를 걷게 된다. 이 뒤쪽의 공부 단계들<ref>정심에서 평천하까지 다섯 단계를 말한다.</ref>에 있어 미진한 지점들은 천천히 헤아려도(理會)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19 居甫問: “‘誠意’章結句云: ‘此大學之樞要.’ 樞要說誠意, 是說致知?” '''거보(居甫)<ref>제자 서우(徐㝢)의 자이다.</ref>의 질문: '성의(誠意)' 장의 맺음말(結句)에서 '이것이 대학(大學)의 중추(樞要)이다'라고 했습니다. 중추가 성의라는 말입니까, 치지(致知)라는 말입니까? 曰: “上面關著致知·格物, 下面關著四五項上. 須是致知. 能致其知, 知之旣至, 方可以誠得意. 到得意誠, 便是過得箇大關, 方始照管得箇身心. 若意不誠, 便自欺, 便是小人; 過得這箇關, 便是君子.” '''대답: (성의는) 위쪽으로는 치지격물(致知格物)과 관련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성의 이후) 너댓가지<ref>4~5라고 하면 4보다는 5에 가깝다. 어류에서 이처럼 두 숫자를 연용할 적에는 뒤쪽 숫자가 진짜인 경우가 많다. 일역판의 주석에서 이 점을 잘 지적해 냈다.</ref> 항목과 관련이 있다.<ref>다섯 항목이란 정심부터 평천하까지를 말한다.</ref> 반드시 앎을 지극히(致知)해야 한다. 앎을 지극히할 수 있어서 앎이 지극해진 후에야 비로소 의지를 진실히 할 수 있다(誠得意). 의지가 진실해지면 곧 큰 관문을 통과한 것이니, 비로소 몸과 마음(身心)을 돌볼(照管) 수 있게 된다.<ref>몸과 마음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이란 '정심'과 '수신'의 단계를 말한 것이다.</ref> 의지가 진실하지 않다면 자기기만이요 소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군자다. 又云: “意誠, 便全然在天理上行. 意未誠以前, 尙汨在人欲裏.”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의지가 진실해지면 온전히 천리(天理)를 걷게 된다. 의지가 진실해지기 전에는 여전히 인욕(人欲)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20 因說“誠意”章, 曰: “若如舊說, 是使初學者無所用其力也. 中庸所謂明辨, “誠意”章而今方始辨得分明.” 蘷孫(68이후). '''이어서 '성의' 장을 설명하며 말함: 예전 설(舊說)<ref>대학 성의장에 대한 주석은 매우 자주 바뀌었으므로 '구설'이라고만 하면 어떤 설인지 단정할 수 없다. 16:74, 88, 107, 108, 109, 110에서 주장한 것들 모두가 일종의 '예전 설'이기 때문이다. 고문해의에서는 예기정의의 주석을 말한다고 했지만 의심스럽다.</ref> 같은 경우는 초학자가 힘 쓸 곳이 없게 만든다.<ref>성의라는 단계가 격물치지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는 측면보다는 격물치지에 이어서 추가로 애써 노력해야 할 공부의 항목이라는 말이다. 16:108에서의 입장이 자연스러운 귀결에 가까웠다면 16:110에서는 애써 노력하는 항목 쪽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을 감안하면 이 조목에서 말하는 '예전 설'은 16:108에서의 입장을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상당하다.</ref> 중용(中庸)에서 '분명하게 변석한다(明辨)'고 했는데,<ref>중용 제 20장.</ref> '성의' 장은 이제야 비로소 분명하게 변석할 수 있게 되었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21 讀“誠意”一章, 炎謂: “過此一關, 終是省事.” ''' '성의' 장을 읽고서 내가(炎) 말함: 이 관문을 넘으면 결국 일을 덜게 됩니다(省事). 曰: “前面事更多: 自齊家以下至治國, 則其事已多; 自治國至平天下, 則其事愈多, 只是源頭要從這裏做去.” '''대답: 앞으로(前面) 일이 더 많다. 제가부터 치국까지도 이미 일이 많지만 치국에서 평천하까지는 일이 더욱 많다. 다만 여기 근원(源頭)을 따라 해나가야 한다.<ref>주희는 대체로 팔조목의 순서상 먼저 나오는 것들을 전면이라고 부른다. 다만 여기서는 그렇게 보면 해석이 어려워진다. 15:85, 86, 118, 124, 152 등 여러 곳에서 주희는 팔조목은 나중으로 갈 수록 일 자체는 크고 많아진다고 말한다. 격물치지와 같은 초반 단계들은 세밀하지만 일의 스케일 자체는 작다. 반면에 치국평천하와 같은 후반 단계들은 정밀성은 떨어져도 각 사안의 규모와 그 적용되는 범위의 폭은 초반 단계들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다. 따라서 이 조목에서의 '전면'은 성의 단계를 마친 독자의 목전에 놓인 단계들, 곧 정심부터 평천하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목전에 놓인 단계들은 가면 갈수록 일이 많아져서 제가도 많지만 치국은 더 많고 평천하는 더 많다.</ref> 又曰: “看下章, 須通上章看, 可見.” 炎(60·65때). '''다시 말함: 아래 장을 볼 때는 반드시 위 장과 연결해서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염(炎)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 傳七章釋正心修身 == '''전 7장 정심(正心)과 수신(修身)<ref>'수(修)'는 대개 '닦다'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기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컨디션을 올리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옷을 수선(修繕)하거나 차량을 수리(修理)한다고 할때도 이 '수'자를 쓴다. 늘 안경을 닦아 깨끗함을 유지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닦고 거실 창문을 닦는 것도 '닦다'이다. '정(正)'은 물건이 똑바로 서서 중심을 잘 잡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정'의 반대말은 '편의(偏倚, 치우침)'이다. 마음의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뜻이다.</ref>해석. 대학 전 7장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자신을 닦음이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마음에 분노(忿懥)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두려워(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걱정(憂患)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所謂修身, 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요),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  16:122 或問: “‘正心’章說忿懥等語, 恐通不得‘誠意’章?” '''누군가의 질문: '정심'장에서 분노(忿懥) 등을 설명하는 어구는 '성의'장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曰: “這道理是一落索. 才說這一章, 便通上章與下章. 如說正心·誠意, 便須通格物·致知說.” '''대답: 이 도리는 한묶음(一落索)이다.<ref>'락(落)'은 '락(絡)'과 통한다. 줄로 꿰어 연결한다는 의미이다. '삭(索)'은 새끼줄이다. 송대의 동전 1개가 1 문(文)인데, 규모가 있는 거래에서는 1천개의 동전을 새끼줄로 연결하여 묶어서 사용했다. 이 묶음이 1 관(貫)이다. 일락색(一落索)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는 이미지는 이런 동전꿰미에 가까울 것이다.</ref> 이 한 장을 설명하면 곧 그 위아래 장들과 통한다. 예를 들어 정심과 성의에 대해 설명할 경우 반드시 격물치지와 연결지어(通) 설명해야 한다. *  16:123 大學於“格物”·“誠意”章, 都是鍊成了, 到得正心·修身處, 都易了. 蘷孫(68이후). ''' '대학'은 격물과 성의 장에서 단련(鍛煉)이 모두 끝난다. 정심과 수신하는 단계의 경우 모두 한결 쉽다.<ref>이 조목은 15:122와 매우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24 問: “先生近改‘正心’一章, 方包括得盡. 舊來說作意或未誠, 則有是四者之累, 卻只說從誠意去.” '''질문: 선생께서 최근에 '정심'(正心) 장 주석을 개정하셨는데,<ref>여기서 말한 개정판이 통행본인지는 알 수 없다.</ref> 이제야 비로소 모두 온전히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구설에서는 '혹여 의지(意)가 진실하지 못하면 이 네 가지 얽매임<ref>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선호함(好樂), 걱정함(憂患)을 말한다.</ref>이 있다'고 하셨는데,<ref>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ref> 이는 오히려 성의(誠意)로부터 설명하신 것입니다. 曰: “這事連而卻斷, 斷而復連. 意有善惡之殊, 意或不誠, 則可以爲惡. 心有得失之異, 心有不正, 則爲物所動, 卻未必爲惡. 然未有不能格物·致知而能誠意者, 亦未有不能誠意而能正心者.” 人傑(51이후). '''대답: 이 일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끊어지고, 끊어지면서도 다시 연결된다.<ref>다음 조목에 흡사한 표현이 나온다.</ref> 의지에는 선악 차이가 있으니, 혹여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면 악이 되어버릴 수 있다. 마음에는 득실의 차이가 있으니, 마음에 바르지 않음이 있으면 외물에 흔들리지만 그렇다고 꼭 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ref>주희에 의하면 이 단계에서는 이미 의지가 진실하기 때문에 설령 마음이 올바름을 잃고 흔들린다 하더라도 그걸 '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누군가의 마음에 악함이 있다면 그건 '성의'의 단계에서 잘못된 것이지 '정심'의 단계에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ref> 하지만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해내지 못하고서 성의(誠意)를 해내는 사람은 없으며, 성의(誠意)를 해내지 못하면서 정심(正心)을 해내는 사람 역시 없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25 或問“正心”·“誠意”章. 先生令他說. '''누군가가 '정심(正心)'과 '성의(誠意)' 장에 대해 질문하자 선생이 그에게 설명해 보라고 시켰다. 曰: “意誠則心正.” '''(질문자가) 말함: 의지가 진실하면 곧 마음도 바르게 됩니다.<ref>주희의 대답 방향으로 보건대 질문자는 정심이 성의에 자동적으로 수반하는 것처럼 설명한 듯하다.</ref> 曰: “不然. 這幾句連了又斷, 斷了又連, 雖若不相粘綴, 中間又自相貫. 譬如一竿竹, 雖只是一竿, 然其間又自有許多節. 意未誠, 則全體是私意, 更理會甚正心! 然意雖誠了, 又不可不正其心. 意之誠不誠, 直是有公私之辨, 君子小人之分. 意若不誠, 則雖外面爲善, 其意實不然, 如何更問他心之正不正! 意旣誠了, 而其心或有所偏倚, 則不得其正, 故方可做那正心底工夫.” 廣(65이후). '''(선생이) 말함: 그렇지 않다. 이 몇 구절은 연결되었다가도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도 다시 연결되니, 비록 서로 붙어 연결된(粘綴) 것 같지 않아도 그러는 가운데 또 서로 관통한다. 대나무 한 줄기로 비유하자면, 비록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줄기일 뿐이지만 그 중간에 또 자연히 여러 마디가 있는 것과 같다. 의지가 진실하지 않으면 전체가 다 사사로운 의지일 뿐이니 무슨 '정심'에 또 힘을 쓸 수 있겠나? 하지만 의지가 진실해졌다 하더라도 다시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의지의 진실성 여부는 곧 공사(公私)의 갈림길이며, 군자와 소인의 분기점이다.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면 겉으로는 선해도 그 속뜻은 진정으로 선하지 않은 것이니, 그의 마음이 바른지 어쩐지를 다시 따져봐야 무엇하겠는가? 의지가 진실해진 뒤에도 그 마음에 혹여 치우침이 있으면 바르게 될 수 없으므로 (이런 전제조건 하에서야) 비로소 저 '정심'하는 데 힘을 쓸 만하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126 亞夫問致知·誠意. '''아부(亞夫)가 치지와 성의에 대해 질문함. 曰: “心是大底, 意是小的. 心要恁地做, 卻被意從後面牽將去. 且如心愛做箇好事, 又被一箇意道不須恁地做也得. 且如心要孝, 又有不孝底意思牽了. 所謂誠意者, 譬如飢時便喫飯, 飽時便休, 自是實要如此. 到飽後, 又被人請去, 也且胡亂與他喫些子, 便是不誠. 須是誠, 則自然表裏如一, 非是爲人而做, 求以自快乎己耳. 如飢之必食, 渴之必飮, 無一毫不實之意. 這箇知至·意誠, 是萬善之根. 有大底地盤, 方立得脚住. 若無這箇, 都靠不得. 心無好樂, 又有箇不無好樂底在後; 心無忿懥, 又有箇不無忿懥底在後. 知至後, 自然無.” 恪(64때). '''대답: "마음(心)은 큰 것이고, 의지(意)는 작은 것이다.<ref>주희의 표준적인 정의에 의하면 의(意)는 심에서 틔워나온 것(心之所發)이다. 그러므로 심이 먼저고 의가 나중이며 심이 크고 의가 작다고 할 수 있다. 15:113을 참조하라.</ref> 마음이 이렇게 하려고 해도 오히려 의지가 뒤로 당겨 끌고 가버린다.<ref>의지가 마음을 견인한다는 식의 설명은 15:116에도 보인다.</ref> 예를 들어, 마음이 어떤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만, 의지가 다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 버린다. 예를 들어 마음은 효도하려고 하지만, 불효하려는 의지가 끌고 가버린다. 이른바 성의(誠意)란, 비유하자면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배부르면 멈추는 것처럼 자연히 진심으로(實) 그렇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배가 불렀는데 또 누군가의 식사 초대를 받아 다시 생각없이(胡亂)<ref>'호란(胡亂)'은 어떤 행위를 조리없이 임의로 수행하는 태도를 말한다.</ref> 그와 밥을 조금 더 먹는다면 이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진실해야만 자연스럽게 겉과 속이 같아지니, 남 보라고(爲人)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통쾌(快)<ref>'쾌(快)'는 전 6장의 '자겸(自慊)'을 풀이한 말이다. 온전히 순도 높게 선을 추구하여 실천했을 때 찾아오는 강하고 뿌듯한 자기만족감, 통쾌하고 상쾌한 기분을 말한다.</ref>하기를 추구할 뿐이다. 마치 굶주리면 반드시 먹고 목마르면 반드시 마시는 것처럼, 조금도 진실하지 못한 의도가 없어야 한다. 여기 이 '앎이 지극해짐(知至)'과 '의지가 진실해짐(意誠)'이 만선(萬善)의 뿌리이다. 큰 기반이 있어야 비로소 발을 딛고 설 수 있다. 이 기반이 없으면 전혀 딛고 의지할 수 없다. 마음에 선호함(好樂)이 없어도 또 그 배후에는 선호가 없을 수 없다는 (의지가) 있고, 마음에 분노(忿懥)가 없어도 또 그 배후에는 분노가 없을 수 없다는 (의지가) 있다.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는 자연히 그런 것들이 없다. 각(恪)의 기록. (64세) *  16:127 敬之問: “誠意·正心. 誠意是去除得裏面許多私意, 正心是去除得外面許多私意. 誠意是檢察於隱微之際, 正心是體驗於事物之間.” '''경지<ref>주희의 삼남인 주재(朱在)이다.</ref>의 질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의 경우, 성의는 내면의 여러 사의(私意)를 제거하는 것이고 정심(正心)은 외면의 여러 사의(私意)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성의는 은밀한 세미한 곳에서 스스로를 단속하는(檢察) 것이고, 정심은 사물 사이에서 체험(體驗)하는 것입니다.<ref>경지는 15:124에서도 성의와 정심에 관하여 질문하는데, 그 역시 이쪽과 동일하게 하손의 기록이다. 15:124쪽은 구체적인 질문의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ref> 曰: “到得正心時節, 已是煞好了. 只是就好裏面又有許多偏. 要緊最是誠意時節, 正是分別善惡, 最要著力, 所以重複說道‘必愼其獨’. 若打得這關過, 已是煞好了. 到正心, 又怕於好上要偏去. 如水相似, 那時節已是淘去了濁, 十分淸了, 又怕於淸裏面有波浪動蕩處.” 賀孫(62이후). '''대답: 정심의 단계에 이르렀으면 이미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그저 그 좋은 상태에도 다시 여러 치우침이 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의의 단계에서 바로 선악을 분별하는 데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 6장에서) '반드시 자기 혼자만 아는 자기 마음을 조심'하라고 중복해서 말한 것이다.<ref>16:95와111에서 성의장(전 6장)을 '필신기독'을 기준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이 관문을 돌파했으면 이미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정심의 경우는 그 좋은 상태에서도 다시 치우쳐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이 단계에서 이미 탁한 불순물을 제거하여 완전히 맑아졌지만, 그 맑은 상태에서도 다시 물결이 일렁여 동탕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28 問: “意旣誠, 而有憂患之類, 何也?” '''질문: 의지가 이미 진실해졌는데도 걱정(憂患) 같은 것들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曰: “誠意是無惡. 憂患·忿懥之類卻不是惡. 但有之, 則是有所動.” 節(64이후). '''대답: 성의(誠意)는 악함이 없는(無惡) 상태이다. 근심(憂患)과 분노(忿懥) 등은 악이 아니다. 다만 있으면 (마음이) 동요할 뿐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29 意旣誠矣, 後面忿懥·恐懼·好樂·憂患·親愛·賤惡, 只是安頓不著在. 便是“苟志於仁矣, 無惡也”. 泳(66때). '''의지가 이미 진실해졌다면 그 후의 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선호(好樂), 걱정(憂患), 친애(親愛), 혐오(賤惡)<ref>앞의 넷은 전 7장, 뒤의 둘은 전 8장에서 거론하는 감정이다.</ref> 등은 그저 (마음이) 중심을 못잡은 것에 불과하다. 바로 '진실로 인(仁)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ref>논어 4:4</ref>는 의미이다. 영(泳) 기록. (66세) *  16:130 問: “心體本正, 發而爲意之私, 然後有不正. 今欲正心, 且須誠意否? 未能誠意, 且須操存否?” '''질문: 마음의 본체는 본래 올바르며 그것이 틔워나와 사사로운 의지(意)가 된 뒤에야 바르지 못함이 있게 됩니다. 이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우선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합니까? 의지를 진실하게 하지 못했다면 우선 (달아난 마음을) 붙잡아 두는(操存)<ref>'조존(操存)'은 일종의 명상 수련이다. 15:88, 16:20 등을 참조하라.</ref> 공부를 해야 합니까? 曰: “豈容有意未誠之先, 且放他喜怒憂懼不得其正, 不要管它, 直要意誠後心卻自正? 如此, 則意終不誠矣. 所以伊川說: ‘未能誠意, 且用執持.’” 大雅(49이후). '''답변: 의지가 진실해지기 전에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이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하게 방치해 두고 돌보려 하지 않고, 그저 의지가 진실해지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바로잡힐 거라 기대만 하고, 어찌 (이런 태도를) 용납할 수 있겠나? 이런 식이면 의지는 끝내 진실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천(伊川)은 '의지를 진실하게 하지 못하겠거든 우선 (마음을) 붙잡고(執持)<ref>위쪽의 '조존'과 같은 의미이다. 9:19, 119:40 등을 참조하라.</ref> 있어야 한다'<ref>아마도 이정유서 19:5를 인용한 듯하다. '배우는 이가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든 모름지기 자신의 심지를 붙잡아야 한다(學者未到不動處, 須是執持其志)'</ref>고 말했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6:131 誠意, 是眞實好善惡惡, 無夾雜. ''' '성의(誠意)'는 진실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여 (다른 의지와 의도가) 섞임이 없는 것이다. 又曰: “意不誠, 是私意上錯了; 心不正, 是公道上錯了.” '''다시 말함: 의지가 진실하지 못함은 사의(私意)의 차원에서 잘못된 것이다. 마음이 바르지 못함은 공도(公道)의 차원에서 잘못된 것이다. <ref>이러한 논조는 16:127에서 경지가 성의와 정심을 각각 내면과 외면에서의 공부로 배당한 것과 비슷하다.</ref> 又曰: “好樂之類, 是合有底, 只是不可留滯而不消化. 無留滯, 則此心便虛.” 節(64이후). '''다시 말함: 선호함(好樂) 등등은 당연히 있는 것이니, 그저 체해서 소화시키지 못해서는 안 될 뿐이다. 체함이 없다면 이 마음은 비어있다(虛).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32 問: “忿懥·恐懼·憂患·好樂, 皆不可有否?” '''질문: 분노, 두려움, 걱정, 선호 같은 것이 전혀 없어야 합니까? 曰: “四者豈得皆無! 但要得其正耳, 如中庸所謂‘喜怒哀樂發而中節’者也.” 去僞(46때). '''대답: 어떻게 이 네 가지 감정이 전혀 없을 수 있겠나? 다만 그 올바르게 조절되어야 할 뿐이다. 중용(中庸)에서 말한 '희로애락이 틔워나와 절도에 맞다'<ref>중용 제 1장. '중절(中節)'은 도리, 곧 각각의 상황이 요구하는 도덕 규범에 꼭 맞는 종류의 감정을 꼭 맞는 만큼만 발출한 경우를 말한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과녁의 한 가운데 적중했다는 의미이다.</ref>와 같은 것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6:133 心有喜怒憂樂則不得其正, 非謂全欲無此, 此乃情之所不能無. 但發而中節, 則是; 發不中節, 則有偏而不得其正矣. 端蒙(50이후). '''마음에 기쁨, 분노, 걱정, 선호가 있으면 올바르지 못하다 것은 이러한 감정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감정은 본래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틔워나올 때 절도에 맞으면 올바르고, 절도에 맞지 않으면 치우쳐 올바르지 못하게 될 뿐이다. *  16:134 好·樂·憂·懼四者, 人之所不能無也, 但要所好所樂皆中理. 合當喜, 不得不喜; 合當怒, 不得不怒. 節(64이후).<ref>조선고사본에는 본 조목의 머리에 '재정심자비시무(在正心者非是無)' 일곱 글자가 더 있다.</ref> '''좋아함, 즐거움, 걱정, 두려움의 네 가지 감정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좋아하고 즐기는 대상이 모두 이치에 맞아야 한다. 기뻐하는 게 당연한 경우에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성내는 게 당연한 경우에는 성내지 않을 수 없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35 四者人所不能無也, 但不可爲所動. 若順應將去, 何“不得其正”之有! 如顔子“不遷怒”, 可怒在物, 顔子未嘗爲血氣所動, 而移於人也, 則豈怒而心有不正哉! 端蒙(50이후). '''이 네 가지<ref>분노(忿懥), 두려움(恐懼), 선호함(好樂), 걱정함(憂患)을 말한다.</ref>는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감정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 만약 순리대로 반응해 나간다면 어찌 '올바름을 얻지 못'할 수 있겠나? 안자(顔子)가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다'고 함은, 화를 낼 사유는 (분노의) 대상 쪽에 있으므로 안자는 한번도 혈기(血氣)에 휘둘려서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ref>논어 6:2</ref> 그러니 어찌 화를 냄에 있어 마음에 올바르지 못함이 있겠나? *  16:136 正心, 卻不是將此心去正那心. 但存得此心在這裏, 所謂忿懥·恐懼·好樂·憂患自來不得. 賀孫(62이후).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이 마음을 가지고 저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를 비롯한 전통시대 사상가들은 자기수양에 관한 언어적 표현들의 재귀성(Reflexivity)을 종종 단호하게 비판한다. 회암집 권 67의 관심설(觀心說)을 참조하라. 주희에 앞서 불교인들, 예컨대 영명 연수(永明 延壽, 904-975)가 같은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다음을 참조하라. 존 메이컴 편집, 주희 철학사상의 불교적 뿌리(2024). 162-174쪽.</ref> 그저 이 마음을 이 속에 잘 간직하고 있기만 하면,<ref>'간직하다(存)'는 16:130의 '조존'이나 '집지'와 같은 의미이다.</ref>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과 같은 감정들은 자연히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37 問: “忿懥·恐懼·好樂·憂患, 皆以‘有所’爲言, 則是此心之正不存, 而是四者得以爲主於內.” '''질문: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모두 '...하는 바가 있으면(有所)'하는 형태로 표현됩니다. 이는 이 마음에 올바름이 부재하여 이 네 감정이 내면에서 주인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曰: “四者人不能無, 只是不要它留而不去. 如所謂‘有所’, 則是被他爲主於內, 心反爲它動也.” 道夫(60이후). '''답변: 이 네 가지 감정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마음에 체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른바 '...하는 바가 있으면(有所)'의 경우 같으면, 내면에서 그것들에게 주인자리를 빼앗겨 마음이 오히려 그것들에게 휘둘리는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138 大學七章, 看“有所”二字. “有所憂患”, 憂患是合當有, 若因此一事而常留在胸中, 便是有. “有所忿懥”, 因人之有罪而撻之, 才撻了, 其心便平, 是不有; 若此心常常<ref>하서린의 전경당본 이전의 모든 판본에서 두 번째 '常'은 '又'이다. 여기서는 다른 판본들 쪽을 따르겠다.</ref>不平, 便是有. 恐懼·好樂亦然. 泳(66때). '''대학 전 7장의 '...하는 바가 있으면(有所)'이라는 두 글자를 보라. '걱정하는 바가 있으면(有所憂患)'에서 걱정이란 (사람에게) 당연히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걱정이) 항상 가슴 속에 체류한다면, 그것이 바로 (대학에서 말한) '있으면(有)'의 의미이다.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有所忿懥)'의 경우, 어떤 사람이 죄를 지어서 그를 처벌하고<ref>'달(撻)'은 채찍질이라는 뜻이다.</ref>, 벌하자마자 자신의 마음이 곧 평온해졌다면 이는 '있(有)'지 않은 것이다. 만약 자기 마음이 늘 또 평온하지 못하다면 곧 '있는(有)' 것이다. 두려움과 선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泳) 기록. (66세) *  16:139 “心有所忿懥, 則不得其正.” 忿懥已自粗了. 有事當怒, 如何不怒. 只是事過, 便當豁然, 便得其正. 若只管忿怒滯留在這裏, 如何得心正. “心有所好樂, 則不得其正.” 如一箇好物色到面前, 眞箇是好, 也須道是好. 或留在這裏, 若將去了, 或是不當得他底, 或偶然不得他底, 便休, 不可只管念念著他. 賀孫(62이후). '''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분노는 원래 단순한(粗)<ref>여기서 '추(粗)'를 '거칠다'라고 번역하면 폭력적이라는 의미로 느껴져 적절치 않다. 추는 정밀하지 못하다는 의미이다.</ref> 감정이다. 화나는 게 당연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나? 다만 일이 지나간 다음에는 (마음이) 탁 트여야만 올바름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분노가 계속해서 내면에 체류한다면 어떻게 마음이 올바를 수 있겠나? '마음(心)<ref>대학 전 7장의 본문에서는 '신(身)'이다. 정이의 교감에 따라 주희는 이 글자를 '심(心)'으로 고쳐 읽는다. 대학장구의 해당부분을 참조하라.</ref>에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좋은 물건들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정말로 좋은 것이라면 역시 좋다고 말해야 한다. 혹여 (그 중 어떤 물건을)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누가) 그것을 가져가버릴 경우, 혹시라도 그것이 (내가) 가져서는 마땅치 않은 물건이라거나, 혹시 우연히 (내가)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바로 포기하고 그만두어야지 계속해서 그것만 생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0 問: “伊川云: ‘忿懥·恐懼·好樂·憂患, 人所不能無者, 但不以動其心.’ 旣謂之忿懥·憂患, 如何不牽動他心?” '''질문: 이천(伊川)은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니, 다만 그것들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ref>이런 내용에 가장 가까운 문구는 이정유서 19:5이다. 의미는 비슷하나 문구는 사뭇 다르니 주의하라.</ref> 이미 분노하고 걱정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曰: “事有當怒當憂者, 但過了則休, 不可常留在心. 顔子未嘗不怒, 但不遷耳.” '''대답: 당연히 화내고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다만 그 일이 지나가고 나면 그만 두어야지 마음속에 계속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안자(顔子)는 화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화를 다른 데로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ref>논어 6:2를 거론한 것이다. 16:135를 보라.</ref> 因擧樓<ref>다른 모든 판본에서 '루(樓)'는 '반(柈)'으로 썼다. 여유량본(강희본)에서 교감한 이후 류씨 전경당본(하서린본)에서 받아들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 경우 번역이 상당히 달라지므로 아래 주석에서 두 가지 번역을 다 제시하도록 하겠다.</ref>中: “果怒在此, 不可遷之於彼.” 德明(44이후). '''이어서 그릇 속 과일을 집어 들고 말함: 여기에 있는 분노를 저기다 옮겨서는 안 된다(因擧柈中果: "怒在此, 不可遷之於彼.").<ref>여유량본을 따르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어서 건물 안쪽을 거론하며 말함: 만약 분노가 여기에 있으면 저쪽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因擧樓中: “果怒在此, 不可遷之於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141 心不可有一物. 喜怒哀樂固欲得其正, 然過後須平了. 且如人有喜心, 若以此應物, 便是不得其正. 人傑(51이후). '''마음에 어떤 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희노애락의 감정은 물론 (그 감정의 발산 방향과 정도에 있어서) 올바르게 하고자 해야 하지만, (사태가) 지나가고 난 후에는 평정심을 회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 기쁜 마음이 있더라도 그 마음만으로 (여러 다른) 사물에 대처하면 올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42 看心有所喜怒說, 曰: “喜怒哀樂固欲中節, 然事過後便須平了. 謂如事之可喜者, 固須與之喜, 然別遇一事, 又將此意待之, 便不得其正. 蓋心無物, 然後能應物. 如一量稱稱物, 固自得其平. 若先自添著些物在上, 而以之稱物, 則輕重悉差矣. 心不可有一物, 亦猶是也.” 㽦(59때). ''' '마음(心)<ref>16:139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에 기뻐하고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부분의 설명을 읽고 말함: 희노애락의 감정은 물론 (그 감정의 발산 방향과 정도에 있어서) 절도에 맞게(中節) 하고자 해야 하지만, 일이 지나간 후에는 평정심을 회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뻐할 만한 일이 있으면 물론 당연히 기뻐해야 하지만, 별개의 사태와 조우했을 때도 이 (기쁜) 감정을 가지고 대처하면 올바름을 얻을 수 없다. 이는 마음 속에 사물이 없고 나서야(無物) 사물에 적절히 대응할(應物)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양팔저울(一量稱)<ref>축자역하자면 한(一) 개(量)의 저울(稱)과 같은 형태일 것이다.</ref>이 물건을 달 때 실로 자연스레 평형을 이루는 것과 같다. 만약 저울 (한쪽) 위에 미리 어떤 사물을 올려놓고 다른 사물을 달면 경중(輕重)이 모두 잘못되게 된다. 마음 속에 일물(一物)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역시 이 저울의 경우와 같다. 순(㽦)의 기록. (59세) *  16:143 “四者心之所有, 但不可使之有所私爾. 才有所私, 便不能化, 梗在胸中. 且如忿懥·恐懼, 有當然者. 若定要他無, 直是至<ref>다른 모든 판본에서 '용(用)'이나 전경당본부터 '지(至)'로 교감했다. 문맥상 타당하므로 전경당본을 따라 번역하였다.</ref>死方得, 但不可先有此心耳. 今人多是才忿懥, 雖有可喜之事亦所不喜; 才喜, 雖有當怒之事亦不復怒, 便是蹉過事理了, 便‘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了. 蓋這物事才私, 便不去, 只管在胸中推盪, 終不消釋. 設使此心如太虛然, 則應接萬務, 各止其所, 而我無所與, 則便視而見, 聽而聞, 食而眞知其味矣. 看此一段, 只是要人不可先有此心耳. 譬如衡之爲器, 本所以平物也, 今若先有一物在上, 則又如何稱!” '''네 가지 감정(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마음에 (당연히) 있는 것이요, 다만 (그 감정들에) 사사로운 부분이 있게 해서는 안 될 뿐이다. 사사로운 부분이 생겨버리면 (감정이) 소화가 되지 않아 흉중에 막혀버린다. 예를 들어, 화나고 두려운 것이 당연한 경우들이 있다. 만약 이러한 감정을 결단코 없애려 한다면 죽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단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화가 나기만 하면 비록 기뻐할 만한 일이 생겨도 기뻐하지 않고, 기쁘기만 하면 화나는 게 당연한 일이 있어도 다시 화내지 않으니, 이는 사리에 어긋난(蹉過) 것이요,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이 물건(物事)<ref>감정을 말한다.</ref>이 사사롭게 되면서 (다른 데로) 가버리지 않고 흉중에 계속 남아 요동치며(推盪) 끝내 소화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만약 마음이 태허(太虛)와 같다면 만사에 적절히 대응하여 각각이 다 마땅한 처분을 얻어서(應接萬務, 各止其所)<ref>밀려오는 주문을 정확히 처리해서 각각의 손님이 제 몫을 받아 제 자리에 앉게 만들어 주는 카페 알바생의 경우와 같다.</ref> 나는 전혀 관여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면 보이고, 들으면 들리며, 먹으면 진정으로 그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단락을 보면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이러저러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라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양팔저울이라는 기구는 본래 물건을 달아 평형을 이루는 것인데, 이제 만약 저울에 미리 어떤 물건을 올려두면 어떻게 평형을 이루겠나? 頃之, 復曰: “要之, 這源頭卻在那致知上. 知至而意誠, 則‘如好好色, 如惡惡臭’, 好者端的是好, 惡者端的是惡. 某常云, 此處是學者一箇關. 過得此關, 方始是實.” '''잠시 후 다시 말함: 결국 이것의 근원(源頭)은 저 치지(致知) 쪽에 있다. 앎이 지극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지면 '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 하게 되는데, 좋은 것은 정말로 좋아하고, 나쁜 것은 정말로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 부분이 배우는 이에게 하나의 관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진실하게 된다. 又曰: “某常謂此一節甚異. 若知不至, 則方說惡不可作, 又有一箇心以爲爲之亦無害; 以爲善不可不爲, 又有一箇心以爲不爲亦無緊要. 譬如草木, 從下面生出一箇芽子, 這便是不能純一, 這便是知不至之所爲.” '''다시 말함: 나는 항상 이 부분이 매우 특별하다고 말했다. 만약 앎이 지극하지 못하면 비록 악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도 마음 한편에서는 또 '해도 무방하지'라고 생각하며, 비록 선한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도 마음 한편에서는 '안해도 대수로울 것 없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풀과 나무가 아래쪽으로도 싹을 내는 것과 같다.<ref>싹이 위쪽으로도 나고 아래쪽으로도 났다는 말인 듯하다.</ref> 이는 순일(純一)하지 못한 것이요, 앎이 지극하지 못한 탓이다. 或問公私之別. '''누군가가 공사(公私)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今小譬之: 譬如一事, 若係公衆, 便心下不大段管; 若係私己, 便只管橫在胸中, 念念不忘. 只此便是公私之辨.” 道夫(60이후). '''대답: 작은 비유를 들자면, 어떤 일이 공중(公衆)에 관계된 것이라면 속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私己)와 관계된 것이라면 가슴 속에 걸려서 끊없이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공사(公私)의 차이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144 “忿懥·好樂·恐懼·憂患, 這四者皆人之所有, 不能無. 然有不得其正者, 只是應物之時不可夾帶私心. 如有一項事可喜, 自家正喜, 驀見一可怒底事來, 是當怒底事, 卻以這喜心處之, 和那怒底事也喜了, 便是不得其正. 可怒事亦然. 惟誠其意, 眞箇如鑑之空, 如衡之平, 姸媸高下, 隨物定形, 而我無與焉, 這便是正心.” ''' 분노, 선호, 두려움, 걱정. 이 네 가지 감정은 모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름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저 사물에 대응할 때 사심(私心)을 끼고 하면 안 될 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뻐할 만한 일이 있어서 스스로 막 기뻐하고 있는 참인데 갑자기 화를 낼 만한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당연히 화를 내야 할 일임에도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대처한다고 하자. 화를 낼 일임에도 기뻐함이 바로 '올바름을 얻지 못한' 것이다. 화를 낼 만한 일도 마찬가지이다.<ref>반대로 1. 화를 낼 만한 일이 있어서 화를 내는 참인데 2. 기뻐할 만한 일이 생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ref> 오직 의지를 진실히 하여 진정으로 거울처럼 비어 있고 저울처럼 평평하여, 아름다움과 추함, 높고 낮음을 마주하는 사물에 따라 형태를 정하여 자신이 관여함이 없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심(正心)이다.<ref>거울이 비어있다는 말은, 요즘식으로 치면, 카메라에 필터가 없다는 뜻과 같다. 아름다운 사물이 찾아오면 아름다운 형태 그대로 보여주고 큰 사물이 오면 큰 형태 그대로 보여준다. 미리 정해진 견해나 방향성 없이 마주하는 사물에 따라 그 사물의 형태를 출력하여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거울의 비움이다. 저울의 평평함 역시 같은 취지의 비유이다. '자신이 관여함이 없다'는 것은 이 메카니즘이 무정하고 자연스러워 사심이 개입할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16:143에서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因說: “前在漳州, 見屬官議一事, 數日不決, 卻是有所挾. 後忽然看破了, 道: ‘這箇事不可如此.’ 一向判一二百字, 盡皆得這意思. 此是因事上見這心親切.” '''이어서 말함: 전에 장주(漳州)<ref>오늘날 복건성 장주. 주희는 1190년 4월부터 1191년 2월까지 장주 지주직을 맡았다.</ref>에 있을 때, 속관(屬官)들을 만나 한 가지 일을 논의하며 며칠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는 (내가 사심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문득 이를 간파하고서 '이 일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단숨에 판결문 1~200 자를 써냈는데 모두 이런 취지였다. 이것이 실제 사태(事上)를 통해 이 마음을 친근하고 절실히(親切)<ref>'친절'은 피부에 와닿게 아는 것이다. 바퀴달린 의자를 딛고 섰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져본 사람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친근하고 절실히 안다.</ref> 안다는 것이다.<ref>이 일은 다음 145조에서 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역판은 128:25에서 묘사된 사안이 본 조목에서 언급한 사안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번역자가 보기에 128:25는 106:27에서 기백건의 소송을 처리한 경험과 더 비슷해 보인다. 주희의 장주시절 경험에 관해서는 106:22부터 39까지가 자세하다. 수징난의 주자평전 제 18장도 이 시점을 다루고 있어서 유익하다. 그밖에, 어류 3:43에서는 장주에서 처리한 어떤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본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ref> <賀孫錄別出.> '''<하손의 기록은 별개의 조목으로 배치함> *  16:145 先之問: “心有所好樂, 則不得其正.” '''선지(先之)<ref>제자 황탁(黃卓)의 자가 선지이다.</ref>가 '마음에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을 수 없고'에 관하여 질문함. 曰: “心在這一事, 不可又夾帶那一事. 若自家喜這一項事了, 更有一事來, 便須放了前一項, 只平心就後一項理會, 不可又夾帶前喜之之心在這裏. 有件喜事, 不可因怒心來, 忘了所當喜處; 有件怒事, 不可因喜事來, 便忘了怒. 且如人合當行大門出, 卻又有些回避底心夾帶在裏面, 卻要行便門出. 雖然行向大門出, 念念只有箇行便門底心在這裏, 少刻或自拗向便門去. 學者到這裏, 須是便打殺那要向便門底心, 心如何不會端正! 這般所在, 多是因事見得分明. 前在漳州, 有一公事, 合恁地直截斷. 緣中間情有牽制, 被他撓數日. 忽然思量透, 便斷了, 集同官看, 覺當時此心甚正. 要知此正是正心處.” 賀孫(62이후). '''대답: 마음이 이 일에 있을 때, 다시 저 일을 끼고 와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이 어떤 일을 기뻐했는데 다시 다른 일이 생겼다면 앞의 일을 내려놓고 평정한 마음으로 뒤의 일을 처리해야지, 앞에서 기뻐했던 마음을 끼고 이쪽으로 와서는 안 된다. 어떤 기쁜 일이 있을 때, 화난 마음 때문에 당연히 기뻐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어떤 화날 일이 있을 때, 기쁜 일 때문에 화낼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당연히 대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에 끼고 있어서 옆문(便門)으로 나가려고 한다. 비록 대문으로 나가고 있지만 옆문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내면에 이어진다면 잠시 후에 혹 방향을 틀어 옆문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배우는 이는 이런 상황에서 옆문으로 가려는 마음을 단호히 제거해야 하니, 그러면 마음이 어찌 올바르게 되지 않겠나?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실제 사안을 통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전에 장주에 있었을 때 어떤 공무가 있었는데 바로 단호하게 이러이러하게 결단해야 했다. 하지만 속으로 감정에 얽매여 며칠 동안 흔들렸다. 문득 생각이 투명해져서 바로 결단을 내리고 동료들을 소집해 보여주었을 때, 그 당시 내 마음이 매우 바른 상태임을 느꼈다. 이런 것이 바로 정심(正心)하는 지점임을 알아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6 敬之問: “‘正心’章云: ‘人之心要當不容一物.’” '''경지(敬之)의 질문: ‘정심(正心)’장에서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물건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曰: “這說便是難. 才說不容一物, 卻又似一向全無相似. 只是這許多好樂·恐懼·忿懥·憂患, 只要從無處發出, 不可先有在心下. 看來非獨是這幾項如此, 凡是先安排要恁地, 便不得. 如人立心要恁地嚴毅把捉, 少間只管見這意思, 到不消恁地處也恁地, 便拘逼了. 有人立心要恁地慈祥寬厚, 少間只管見這意思, 到不消恁地處也恁地, 便流入於姑息苟且. 如有心於好名, 遇著近名底事, 便愈好之; 如有心於爲利, 遇著近利底事, 便貪欲.” 賀孫(62이후). '''대답: 이 설명은 어렵다. 하나의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면 마치 줄곧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저 선호함, 두려움, 분노, 걱정 같은 여러 감정들이 (기존에 선행하는 다른 감정적 윤색 없이) 영점에서 발출해야지, 마음속에 미리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 몇 가지 감정의 경우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이러이러하게 하겠노라고 미리 안배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마음 먹고 이렇게 엄격하게 통제하려 하는데 한동안 계속해서 그렇게만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버려서 (부당하게) 핍박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마음 먹고 이렇게 느슨하게 풀어주려 하는데 한동안 계속해서 그렇게만 생각하다 보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버려서 나사빠진 무사안일주의(姑息苟且)<ref>고식(姑息)은 눈 앞의 편안함만 추구하는 것, 곧 기강이 풀린 것이다. 구차(苟且)는 근시안적인 방침으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려는 무사안일주의를 말한다.</ref>에 빠지게 된다. 명성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경우에는 명성에 가까운 일을 만나면 더욱 좋아하게 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경우 이익에 가까운 일을 만나면 탐욕스럽게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7 人心如一箇鏡, 先未有一箇影象, 有事物來, 方始照見姸醜. 若先有一箇影象在裏, 如何照得! 人心本是湛然虛明, 事物之來, 隨感而應, 自然見得高下輕重. 事過便當依前恁地虛, 方得. 若事未來, 先有一箇忿懥·好樂·恐懼·憂患之心在這裏, 及忿懥·好樂·恐懼·憂患之事到來, 又以這心相與滾合, 便失其正. 事了, 又只苦留在這裏, 如何得正? 賀孫(62이후).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아서 처음에는 아무런 상도 없지만 사물이 오면 그제서야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추어 준다. 만약 어떤 상이 거울 안에 미리 들어 있다면 어떻게 제대로 비출 수 있겠나? 사람의 마음은 본래 담담하니 텅 비고 밝아서(湛然虛明) 사물이 오면 그에 따라 감촉하고 대응하니 자연스럽게 (그 사물의) 높고 낮고 가볍고 무거움을 알 수 있다. (왔던) 일이 지나가고 나면 당연히 다시 이전처럼 텅 비어야 된다. 만약 일이 오기 전에 먼저 분노함, 선호함, 두려움, 걱정하는 마음이 하나라도 내면에 들어 있으면 분노, 선호, 두려움, 걱정할 만한 일이 실제로 닥쳐왔을 때 다시 (앞서 품고 있던) 그 마음과 (실제 사태가) 뒤섞여서 그 바름을 잃게 될 것이다. 일이 끝난 후에도 이 마음이 내면에 애써(苦)<ref>주희는 정심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감정적 편향이 부지불식간에 잔류해서는 안 됨을 주장할 적에 상류(常留)나 류체(留滯)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고류(苦留)라고 하면 억지로 잔류시킨다는 뜻이니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ref> 남겨둔다면 어떻게 바를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48 葉兄又問“忿懥”章. 섭(葉)형<ref>직전조목의 기록자인 섭하손이다.</ref>이 다시 '분노(忿懥)'장에 관하여 질문함. 曰: “這心之正, 卻如稱一般. 未有物時, 稱無不平, 才把一物在上面, 便不平了. 如鏡中先有一人在裏面了, 別一箇來, 便照不得. 這心未有物之時, 先有箇主張說道: ‘我要如何處事.’ 才遇著事, 便以是心處之, 便是不正. 且如今人說: ‘我做官, 要抑强扶弱.’ 及遇著當强底事, 也去抑他, 這便也是不正.”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의 바름은 마치 저울과 같다. 물건을 달기 전에는 저울이 평형을 이루고 있다가 무언가를 올리면 그 즉시 평형을 잃는다. 마치 거울 안에 미리 한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와도 비춰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마음에 아직 무언가 들어있지 않은 시점에 먼저 어떤 주의주장을 가지고 '나는 이러이러하게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러다가 일이 닥치면 바로 그 마음으로 대처하게 되는데, 이러면 바르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제 어떤 사람이 '내가 관직을 맡으면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울 것이다(抑强扶弱)'고 말한다고 하자. 그러다가 강한 게 당연한 사람을 만나서도 그를 억누르게 되는데, 이 역시 바르지 못한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6:149 喜怒憂懼, 都是人合有底. 只是喜所當喜, 怒所當怒, 便得其正. 若欲無這喜怒憂懼, 而後可以爲道, 則無是理. 小人便只是隨這喜怒憂懼去, 所以不好了. 義剛(64이후).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은 모두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는 것들이다. 다만 기뻐할 만한 것에 기뻐하고 화낼 만한 것에 화내면 바름을 얻는다는 것 뿐이다. 만약 이러한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야 도(道)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럴 리(理) 없다. 소인은 단지 이러한 기쁨, 분노, 걱정, 두려움에 휩쓸려 가버리기 때문에 좋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6:150 問“忿懥”章. ''' '분노' 장에 관한 질문. 曰: “只是上下有不恰好處, 便是偏.” 可學(62때). '''대답: 위아래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곧 기운(偏) 것이다.<ref>'정(正)'은 물건이 똑바로 서서 중심을 잘 잡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정'의 반대말은 기울고 치우친 것이다. 목재나 석재 등을 이용해 어떤 구조물을 만들 적에 내가 방금 집어넣은 부품이 상하사방의 다른 부품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무언가가 기울어져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태에 대한 나의 대응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내 마음 어딘가가 바르지 못하고 기울어져있다는 뜻이다.</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6:151 問忿懥. '''분노(忿懥)에 관한 질문. 曰: “是怒之甚者.” '''대답: 심하게 화(怒)<ref>대학 전 7장의 '분치(忿懥)'는 일관되게 '분노'로, '노(怒)'는 화로 번역했다.</ref>가 난 것이다. 又問: “忿懥比恐懼·憂患·好樂三者, 覺得忿懥又類過於怒者.” '''재질문: 두려움(恐懼), 걱정(憂患), 선호(好樂) 이 세 가지에 비하면, 분노는 그 분류상 화를 넘어선 것처럼 느껴집니다. 曰: “其實也一般. 古人旣如此說, 也不須如此去尋討.” 履孫(65때). '''대답: 실제로는 모두 같은 것이다. 옛 사람들이 이미 이렇게 말했으니, 굳이 이렇게 캐물을 필요는 없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6:152 問: “喜怒憂懼, 人心所不能無. 如忿懥乃戾氣, 豈可有也?” '''질문: 기쁨, 화, 걱정,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에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분노(忿懥) 같은 경우는 삿된 기운인데 어찌 있어도 되는 것이겠습니까? 曰: “忿又重於怒心. 然此處須看文勢大意. 但此心先有忿懥時, 這下面便不得其正. 如鏡有人形在裏面, 第二人來便照不得. 如稱子釘盤星上加一錢, 則稱一錢物便成兩錢重了. 心若先有怒時, 更有當怒底事來, 便成兩分怒了; 有當喜底事來, 又減卻半分喜了. 先有好樂, 也如此; 先有憂患, 也如此. 若把忿懥做可疑, 則下面憂患·好樂等皆可疑.” '''대답: 분노는 화보다 강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세(文勢)의 큰 뜻을 보아야 한다. 이 마음이 먼저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 장면에서 바름을 얻지 못한다. 이는 마치 거울에 사람의 형상이 미리 들어 있으면 다음 사람이 와도 비춰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는 마치 저울의 영점(定盤星)<ref>간칭(竿稱)의 양편이 균형을 이루는 영점을 말한다. 성(星)은 눈금이다.</ref>을 1전(錢)<ref>무게의 단위. 약 4g이다.</ref>만큼 (왼쪽으로) 옮기면 1전짜리 물건을 잴 적에 무게가 두 배로 나와 버리는 것과 같다.<ref>간칭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유튜브 등을 검색하면 쉽게 영상을 찾아볼 수 있으니 참조하라.</ref> 마음에 먼저 화가 들어 있는 경우 화내는 게 당연한 일이 추가로 생기면 화가 두 배가 되어 버리고, 기뻐하는 게 당연한 일이 생겨도 기쁨이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먼저 선호함이 들어 있어도 이와 같고 먼저 걱정이 들어 있어도 역시 이와 같다. 분노를 가지고 의심할 수 있으면 (본문의 순서상) 그 다음 부분인 걱정과 선호 등도 모두 의심할 수 있다. 問: “八章謂: ‘五者有當然之則.’ 如敖惰之心, 則豈可有也?” '''질문: 전 8장에서 '이 다섯 가지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준칙이 있다'고 주석하셨는데 업신여기는(敖惰) 마음 같은 것이 어찌 있어도 되는 것이겠습니까?<ref>다음 장인 전 8장에서 사람이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균형을 잃고 치우치는 경우를 다섯 가지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친애하는 태도가 치우치면 누군가를 부당하게 편애하게 될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 다섯 가지 태도에 관하여 '마땅히 따라야 할 준칙(當然之則)'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살피지 않기 때문에 치우치게 된다고 말한다. 질문한 제자는, 예컨대, 친애하는 태도의 경우에야 좋은 친애와 나쁜 친애가 있을 수 있으니 그 태도에 '당연지칙'이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업신여기는' 태도의 경우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니 거기에 다시 좋은 오만함과 나쁜 오만함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16:176~183을 참조하라.</ref> 曰: “此處亦當看文勢大意. 敖惰, 只是一般人所爲得人厭棄, 不起人敬畏之心. 若把敖惰做不當有, 則親愛·敬畏等也不當有.” 淳(61·70때). '''대답: 이 부분 역시 문세의 큰 뜻을 보아야 한다. 업신여김이란, 어떤 사람들의 행위가 남들의 혐오감(厭棄)을 사서 경외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이다. 만약 업신여김을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면 친애와 경외 등 역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f>친애할 만한 이를 친애하고 업신여겨야 마땅한 이를 업신여기는 것이 '바름(正)'이다. 업신여김은 친애와 경외의 반대항이다. 그러므로 업신여김이 없어 마땅한 것이라면 친애와 경애 역시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조는 대학혹문 전 8장 마지막 부분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寓錄略>. '''<우(寓)의 기록은 생략.><ref>조선고사본에서는 '問八章謂'부터 끝까지가 독립된 조목이며 기록자는 우(寓)이고 순(淳)의 기록 역시 동일하다고 주석해 두었다.</ref> *  16:153 劉圻父說“正心”章, 謂: “不能存之, 則四者之來, 反動其心.” '''류기보가 '정심' 장을 설명하며 말함: '(달아난 마음을 붙잡아 와서) 간직하지 못하면, 이 네 가지 감정이 발생하여 오히려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ref>이 13 글자는 류기보가 주희의 주석의 어떤 구문을 직접인용한 것이다. 통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주자어류고문해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정심장은 마음이 감정적 편향에 흔들리느냐 마느냐를 논하고 있을 뿐인데 주희의 이전 주석에서는 '불능존지'를 그 앞에 두어서 감정의 발동 이전에 마음을 붙잡아 간직하는 '정시공부(靜時工夫)'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시공부가 실제로 필요하느냐 여부와 무관하게 주희의 이전 주석이 대학 정심장이 주장하는 범위를 벗어난 것임은 분명하다.</ref> 曰: “是當初說時添了此一節. 若據經文, 但是說四者之來, 便撞翻了這坐子耳.” '''대답: 당초에 (대학을) 해설할 적에 그 구절을 덧붙였다. 하지만 경문을 보면 단지 네 가지 감정이 발생하여 이 자리(坐子)를 뒤엎는다(撞翻)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又曰: “只爭箇動不動.” '''다시 말함: 그저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를 다툴 뿐이다.<ref>일역판은 유기보의 대사로 처리했으나 여기서는 주희의 말로 보았다. 대학 본문에서 마음이 움직이기 이전의 고요한 시점에 대해 말했으면 주희는 기존의 주석을 고수해도 된다. 만약 대학 본문에서 그런 시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면 주희는 기존 주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가 관건인 것이다.</ref> 又曰: “若當初有此一節時, 傳文須便說在那裏了. 他今只恁地說, 便是無此意. 卻是某於解處, 說絮著這些子.” 義剛(64이후). '''다시 말함: 애당초 이 구절이 있으려면<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여기서 '時'는 '則'의 역할을 한다.</ref> (대학 전 7장의) 본문 쪽에 이런 설명이 있어야 했다. 본문에서 이제 그냥 저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니 이런 뜻은 없는 것이다.<ref>본문은 감정이 마음을 흔드느냐 마느냐를 논할 뿐 그에 선행하는 정시공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ref> 내가 해석할 적에 이런 (관련성 없는) 내용들을 번쇄하게 말했을 뿐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의 기록도 동일하니 생략한다고 주석해 두었다.</ref> *  16:154 今不是就靜中動將去, 卻是就第二重動上動將去, 如忿懥·好樂之類. 德明(44이후). '''여기서는 고요한 상태에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층위의 움직이는 상태에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이는 분노(忿懥)와 선호(好樂) 같은 것들이다.<ref>대학 전 7장에서 다루는 주제는 마음에서 분노 같은 감정들이 발출하여 주변 사물에 적용될 때의 잘잘못이니 모두 '움직임'의 상태에서 그 움직임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층위의 움직이는 상태에서 움직임'의 의미이다. 16:153에서 거론하고 있는 주희의 이전 주석은 이와 달리 마음에서 감정이 발출하기 이전의 '고요한' 상태를 논하고 있다. 본 조목은 직전 조목과 연결해서 보아야 이해하기 쉬우니 서로 참조하라. 고문해의 역시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155 敬之問“心有所好樂則不得其正”章, 云: “心不可有一毫偏倚. 才有一毫偏倚, 便是私意, 便浸淫不已, 私意反大似身己, 所以‘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경지가 '마음에 선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함' 장에 대해 질문함: 마음에는 조금도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있으면 곧 사의(私意)이니, 계속 젖어 들다 보면 결국 사의가 자기 몸보다 더 커지게 됩니다.<ref>주자어류고문해의는 이를 '이득을 좇아 목숨을 잃는(徇利忘身)' 경우라고 해석했다.</ref>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曰: “這下是說心不正不可以修身, 與下章‘身不修不可以齊家’意同, 故云: ‘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視聽是就身上說. 心不可有一物, 外面酬酢萬變, 都只是隨其分限應去, 都不關自家心事. 才係於物, 心便爲其所動. 其所以係於物者有三: 或是事未來, 而自家先有這箇期待底心; 或事已應去了, 又卻長留在胸中不能忘; 或正應事之時, 意有偏重, 便只見那邊重, 這都是爲物所係縛. 旣爲物所係縛, 便是有這箇物事, 到別事來到面前, 應之便差了, 這如何會得其正! 聖人之心, 瑩然虛明, 無纖毫形跡. 一看事物之來, 若小若大, 四方八面, 莫不隨物隨應, 此心元不曾有這箇物事. 且如敬以事君之時, 此心極其敬. 當時更有親在面前, 也須敬其親. 終不成說敬君但只敬君, 親便不須管得! 事事都如此. 聖人心體廣大虛明, 物物無遺.” 賀孫(62이후). '''대답: 그 아래로는<ref>'보아도 보이지 않고...'를 비롯하여 그 이하의 구절들을 말한다.</ref>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몸을 닦을 수 없다는 말이니, 다음 장의 '몸이 닦이지 않으면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와 의미가 같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악한줄 모르고 자기 묘(苗)가 큰 줄 모른다'고 했다.<ref>대학 전 8장에서 인용하는 속담이다.</ref> 보고 들음은 신체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마음에는 한 물건도 있어서는 안 되니, 무수한 외부의 변화에 대응하기를 그저 모두 (각 대상 사물의) 개별적 특성(分限)에 맞추어 응대할 뿐, 자기자신의 마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게 한다.<ref>16:143의 주석에서 언급한 비유를 다시 들자면, 밀려오는 주문을 무심히 처리하는 카페 알바생의 마음가짐과 같다. 이정유서 2上:13의 표현과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사물에 얽매이는 순간 마음은 그것에 의해 움직여져(=흔들려) 버린다. 사물에 얽매이게 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일이 오기 전에 자기에게 앞서 기대하는 마음이 있거나, 일에 대응하여 처리한 후에도 그것이 가슴에 오래 잔류하여 잊을 수 없거나, 일을 막 처리하는 중에 의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서 그쪽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이들 모두가 사물에 얽매이는 것이다. 일단 사물에 얽매이고 나면 그 물건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이 눈 앞에 닥쳐왔을 때 대응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니 어떻게 바름을 얻을 수 있겠나? 성인의 마음은 형연히 밝고 텅 비어(瑩然虛明) 조금도 (이전에 대응했던 사안의) 흔적이 없다. 일단 사물이 다가오는 것을 보기만 하면 크든 작든 사방팔방으로 각 사물의 (개별적 특성에) 따라 모조리 응대해내지만 그의 마음에는 애초부터 (응대해낸) 그 사물이 들어 있었던 적이 없다. 예를 들어, 공경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섬길 적에 그의 마음은 지극히 경건하다. 그 순간 그의 면전에 자신의 어버이가 있어도 역시 어버이를 공경해야 한다. 결국 임금을 공경한다고 해서 단지 임금만 공경하고 어버이는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ref>이 사례는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가 자신의 주장을 일관되게 펴려고 했다면 A에 대응하는 태도를 견지하다가 B가 나타나면 B를 대응하는 태도로 마음을 빠르게 바꾸는 케이스를 제시했어야 한다.</ref> 모든 일이 이와 같다. 성인의 마음(心體)은 광대허명(廣大虛明)하여 어떤 사물도 (그 안에) 남겨두지 않는다(無遺).<ref>대개 '무유'는 빼먹지 않고 다 포괄한다는 뉘앙스로 쓰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는 앞서 성인의 마음을 '형연허명(瑩然虛明)하여 조금도 사물의 흔적이 없다(無纖毫形跡)'고 묘사한 것에 준하여 번역했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56 正叔見先生, 言明心·定心等說. 因言: “心不在焉, 則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정숙(正叔)<ref>제자 여대아(余大雅)이다.</ref>이 선생을 뵙고 마음을 밝히고(明心) 안정시키는(定心) 등에 관하여 말했다. 이어서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曰: “這箇, 三歲孩兒也道得, 八十翁翁行不得!” 伯羽(61때). '''대답: 이건 세 살 짜리 아이도 말할 수 있지만 여든 노인도 실천하지 못한다. 백우(伯羽)의 기록. (61세) *  16:157 黃丈云: “舊嘗問: ‘“視而不見, 聽而不聞”, 只是說知覺之心, 卻不及義理之心.’ 先生曰: ‘才知覺, 義理便在此; 才昏, 便不見了.’” 方子(59이후). '''황(黃) 어르신<ref>황간(자는 직경)을 말한다.</ref>이 말함: 예전에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는 지각하는 마음<ref>오늘날의 의식(Consciousness)에 해당한다.</ref>을 설명한 것일 뿐 의리(義理)의 마음을 언급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질문하자 선생께서 '지각하면 의리(義理)가 곧 그 안에 있고 흐리멍텅(昏)하면 (의리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셨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學蒙錄別出.> '''<학몽(學蒙)의 기록은 별개의 조목으로 배치함> *  16:158 直卿云: “舊嘗問: ‘視之不見, 聽之不聞處, 此是收拾知覺底心, 收拾義理底心?’ 先生曰: ‘知覺在, 義理便在, 只是有深淺.’” 學蒙(65이후). '''직경(直卿)이 말함: 예전에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부분은 지각하는 마음을 수습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의리(義理)의 마음을 수습하라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선생께서 '지각이 있으면 의리(義理)가 있다.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고 하셨다. 학몽(學蒙)의 기록. (65세 이후) *  16:159 夜來說: “心有喜怒不得其正.” 如某夜間看文字, 要思量改甚處, 到上床時擦脚心, 都忘了數. 天明擦時, 便記得. 蓋是早間未有一事上心, 所以記得. 孟子說: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者幾希.” 幾希, 不遠也. 言人都具得此, 但平日不曾養得, 猶於夜間歇得許多時不接於事, 天明方惺, 便恁地虛明光靜. 然亦只是些子發出來, 少間又被物欲梏亡了. 孟子說得話極齊整當對. 如這處, 他一向說後去, 被後人來就幾希字下注開了, 便覺意不連. 賀孫(62이후). '''지난밤 '마음에 기쁨과 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ref>대학 전 7장의 취지를 이렇게 요약한 것이다.</ref>에 대해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내가 밤에 글을 보면서 어디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가도 침상에 들어 각심(脚心)<ref>발바닥 가운데 움푹 들어간 지점을 말한다. 족심(足心)이라고도 한다.</ref>을 문지르다 보면<ref>주먹으로 발바닥 한가운데를 마사지하는 동작을 말한다. 소식의 양생결(養生訣)에서 이러한 동작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활인심방(活人心方)의 반쌍각족심(攀雙脚足心)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다.</ref> 그 수량을 모두 까먹어 버린다. 그런데 새벽에(天明) (기상하여) 문지를 적에는(擦時) 문득 기억해 낸다.<ref>일역판에서는 달리 번역했다. 찰(擦)은 기본적으로 문지르고 마찰하는 동작을 가리키지만 여기서 파생되어 무언가에 아주 가까이 접근하는 동작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컨대 천찰량(天擦亮)이라고 하면 하늘이 밝음에 가까워진 것, 곧 새벽이 되었음을 말한다. 일역판에서는 천명찰(天明擦)이 천찰명(天擦明)과 동일한 표현이라고 보고 '새벽녁에'라고 번역했다. 이렇게 번역할 경우 본 조목 후반부의 '천명방성(天明方惺)'과 호응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도 글자의 순서를 바꿔 읽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ref> 이는 아침에 마음에 올려둔 일이 아직 하나도 없기 때문에 기억이 난 것이다. 맹자가 말하기를 '아침(平旦)의 기운(이 들어찬 상태)에서도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好惡)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근접한 부분이 (그나마도) 얼마 없다.'고 했다.<ref>맹자 6A:8. "비록 사람에게 보존된 것에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냐마는 그 선량한 마음(良心)을 잃어버림이 또한 도끼가 매일 아침 나무를 베어 가는 것과 같으니, (이런데도 그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밤사이 자라나는 바(에 더하여) 아침(平旦)의 기운(이 들어찬 상태)에서도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근접한 부분이 (그나마도) 얼마 없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억압하여 파괴(梏亡)하니, 억압하여 파괴(梏亡)하기를 반복하면 야기(夜氣)가 충분히 보존될 수 없고, 야기(夜氣)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 거리가 멀지 않게(不遠) 된다. 남들은 그 사람의 금수(禽獸) 같은 행실만 보고서는 애초에 좋은 자질이 없었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모습이겠는가?(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 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사람은 본래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삶 속에서 종종 이를 잃어버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마음은 애초에 본래적인 것이어서 일상에서 벗어나 밤사이 휴식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자라나며 또 아침이 되어 내면이 청명하게 비어있을 때 조금이라도 발현된다. 다만 그 정도가 미미해서 '얼마 없다'고 하는 것이다. '호오의 취향이 다른 사람들과 근접한 부분'은 이 선한 마음을 의미한다. 이 선한 마음은 사람 모두에게 보편적인데, 그 보편성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인 케이스들을 보면 대개 극악무도한 일에 대하여 다함께 지탄(싫어함)하고 순선무악한 일에 대하여 다함께 찬탄(좋아함)하는 경우들이다. 그러므로 '호오의 취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ref> '얼마 없다(幾希)'는 (금수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不遠)'는 뜻이다.<ref>앞의 주석에서 인용한 구문에서 기희(幾希)와 불원(不遠)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라. 사람다운 부분이 얼마 없다는 말은 짐승과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말과 같다.</ref> 이는 이런 말이다. 사람은 모두 이것<ref>본래 타고난 선량한 마음이다.</ref>을 갖추고 있지만 낮동안에는 길러내지 못하고 밤중에 일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몇시진간 (마음을) 쉬고 나면 새벽에 막 깨어나서는 이렇게 허명광정(虛明光靜)하게 된다.<ref>구름 한 점 없는 새벽 하늘의 속성으로 마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잡념이 없으므로 허하고 정하며 의식이 투명하게 세계를 비추고 있으므로 명하고 광하다.</ref> 그래도 역시 아주 조금 틔워나왔을 뿐이어서 잠시 후 다시 물욕이 억압하여 파괴해 버린다. 맹자는 (이 구문을) 지극히 가지런하게(齊整) 대구가 되도록(當對) 썼다.<ref>사람다운 데가 '얼마 없다(幾希)'와 금수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不遠)'가 가지런하게 대구가 된다.</ref> 이 부분 같은 경우 맹자는 뒤쪽까지 쭉 이어 말하고 있는데, 후대 사람들이 '얼마 없다(幾希)' 밑에다 주석을 달아 (본문의 간격이) 벌어져서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가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ref>주희가 살던 당시 대중적인 맹자 주석서는 조기(趙岐)의 주에 손석(孫奭)의 소를 더한 맹자주소(孟子注疏)로 오늘날 십삼경주소에 포함되어 있다. 일역판의 역자들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송각본 맹자주(사부총간본과 고궁박물원장본)에는 실제로 '기희' 밑에 조기의 주가 달려있다고 한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60 問: “‘誠意·正心’二段, 只是存養否?” '''질문: 성의와 정심 두 단락은 그저 존양(存養)<ref>존양에 대해서는 16:8의 주석을 참조하라.</ref>공부인 것 아닙니까? 曰: “然.” 㝢(61이후). '''대답: 그렇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61 說“心不得其正”章, 曰: “心, 全德也. 欠了些箇, 德便不全, 故不得其正.” ''' '마음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함'장에 대해 해설하며 말함: 마음(心)은 완전한 덕(全德)이다.<ref>이 부분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ref> 약간만 부족해도 덕이 완전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又曰: “心包體用而言.” '''다시 말함: 마음(心)은 본체와 작용(體用)<ref>16:7을 참조하라.</ref> (두 측면을) 다 포괄해서 말한 것이다.<ref>주희는 자주 심(心)의 본질적 특성(體)을 성(性), 실제 작동하는 양상(用)을 정(情)이라고 말한다. 5:65를 참조하라.</ref> 又問: “意與情如何?” '''재질문: 의지(意)와 감정(情)은 무슨 차이입니까?<ref>성의장에서 다루는 것이 의지(意)의 진실성이고 정심장에서 다루는 것이 감정(情)의 편향이기 때문에 이 두 개념에 대해 물은 것이다.</ref> 曰: “欲爲這事, 是意; 能爲這事, 是情.” 子蒙(미상). '''대답: 어떤 일을 하고자하는 욕구가 의지(意)이다.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감정(情)이다. 자몽(子蒙)의 기록.<ref>일역판에서도 지적하고 있듯 송시열은 주자언론동이고에서 이 조목의 진실성을 강하게 의심했다.</ref> == 傳八章釋修身齊家 == 전 8장. 수신과 제가 해석. *  16:162 忿懥·恐懼·好樂·憂患皆不能無, 而親愛·畏敬·哀矜·敖惰·賤惡亦有所不可無者. 但此心不爲四者所動, 乃得其正, 而五者皆無所偏, 斯足以爲身之修也. 人傑(51이후).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은 모두 없을 수 없고, 친애(親愛), 경외(畏敬), 애틋함(哀矜), 업신여김(敖惰), 혐오(賤惡) 또한 없을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 그저 이 마음이 저 네 가지 감정에 의해 흔들리지 않아야 그 바름을 얻게 되고 저 다섯 가지 태도에 있어 전혀 편향이 없어야 자기 자신을 닦기에 충분하다는 것 뿐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63 或問: “‘正心’章說忿懥·恐懼·好樂·憂患, ‘修身’章說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 如何?” '''누군가의 질문: '정심' 장에서는 분노, 두려움, 선호, 걱정을 설명하고 '수신' 장에서는 친애, 혐오, 경외, 애틋함, 업신여김을 설명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是心卓然立乎此數者之外, 則平正而不偏辟, 自外來者必不能以動其中, 自內出者必不至於溺於彼.” '''대답: 마음이 이 몇몇의 영향권 밖에 우뚝 서 있으면 치우침 없이 평정(平正)하여 외부에서 오는 것도 결코 그 안을 흔들 수 없고 내부에서 나오는 것도 그것을 함닉시키지 못한다. 或問: “畏敬如何?” '''누군가의 질문: 경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曰: “如'家人有嚴君焉', 吾之所當畏敬者也. 然'當不義則爭之', 若過於畏敬而從其令, 則陷於偏矣. 若夫賤惡者固當賤惡, 然或有長處, 亦當知之. 下文所謂: ‘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此是指點人偏處, 最切當.” 人傑(51이후). '''대답: 예를 들어 '집안에 엄한 부모가 있으면'<ref>주역 가인괘 단전. 이때 엄군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을 지칭한다.</ref> 내가 당연히 경외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가) '의롭지 못한 경우에는 다투어야 하니',<ref>효경 간쟁장.</ref> 만약 지나치게 경외하여 그 (불의한) 명령에 따르면 치우침에 빠지게 된다. 혐오할 만한 (나쁜) 사람은 물론 당연히 혐오해야 하겠지만, 그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또한 알아 주어야 한다. 아래 구절에서 말하길 '좋아하면서도 그 악한 점을 알고, 싫어하면서도 그 훌륭한 점을 아는 자는 천하에 드물다.'고 했다. 이는 사람의 치우친 곳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우 절실하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64 心須卓立在八九者之外, <謂忿懥之類.> 而勿陷於八九者之中, 方得其正. 聖人之心, 周流應變而不窮, 只爲在內而外物入不得, 及其出而應接, 又不陷於彼. 蘷孫(68이후). '''마음은 반드시 이 8~9 가지<ref>이렇게 숫자를 두 개 거론할 경우 뒤쪽의 숫자가 진짜이다. 전 7장에서 말한 네 가지 감정과 8장에서 말한 다섯 태도를 합한 것이다. 16:162에서 아홉가지 감정과 태도를 모두 열거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영향권 밖에 우뚝 서서 <분노와 같은 것들을 말함.> 이 8~9가지에 함닉당하지 말아야 하니, 그래야 비로소 그 바름을 얻게 된다. 성인의 마음이 두루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면서도 다함이 없는(不窮)<ref>궁(窮)은 에너지의 고갈 혹은 능력의 부족으로 막히거나 중단되는 사태를 말한다.</ref> 까닭은 (변화에 대응하는 주체인 마음이) 내면에 있을 때는 외물이 들어오지 못하고,<ref>사태와 접촉하기 이전의 상태, 곧 정시(靜時)를 말한다.</ref> 나가서 (변화에) 응접할 때도<ref>동시(動時)를 말한다.</ref> 상대측에 함닉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65 問: “七章·八章頗似一意, 如何?” '''질문: 전 7장과 8장이 대체로 같은 뜻인 것 같은데, 왜 그런 것입니까? 曰: “忿懥之類, 心上理會; 親愛之類, 事上理會. 心上理會者, 是見於念慮之偏; 事上理會者, 是見於事爲之失.” 去僞(46때). '''대답: 분노와 같은 것들은 마음의 차원에서 헤아리고 친애와 같은 것들은 사태의 차원에서 헤아린다. 마음의 차원에서 헤아린다는 것은 생각(念慮)이 치우친 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사태의 차원에서 헤아린다는 것은 행위(事爲)가 잘못된 지점에서 보라는 것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6:166 正卿問: “大學傳正心·修身<ref>거의 같은 조목인 15:132에서는 '성의(誠意)'이다. 해당 조목의 교감주를 참조하라.</ref>, 莫有深淺否?” '''정경(正卿)의 질문: 대학 전(傳) 부분의 정심과 수신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습니까?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從<ref>15:132에서는 '자(自)'</ref>心上<ref>15:132에는 이 글자가 없음</ref>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得<ref>15:132에는 이 글자가 없음.</ref>出. 但正心<ref>15:132에서는 이 뒤에 '각(卻)'이 있음.</ref>是萌芽上理會. 若修身及<ref>15:132에서는 '여(與)'</ref>絜矩等事, 卻是各就地頭上理會.” 恪(64때). '''대답: 정심은 마음의 레벨에서 말한 것이고 수신은 실제 사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應事接物) 레벨에서 말한 것이다. 무슨 사태가 됐든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수신과 혈구(絜矩)<ref>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5:76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같은 것도 모두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정심은 (마음에서 막 틔워나온) 맹아(萌芽)의 레벨에서 탐구하는 것이고 수신과 혈구 같은 일들은 각각의 사례에 나아가 탐구하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5:132와 거의 동일하니 참조하라.</ref> 각(恪)의 기록. (64세) *  16:167 問: “‘正心’章旣說忿懥四者, ‘修身’章又說‘之其所親愛’之類, 如何?” '''질문: '정심'장에서 이미 분노 등 네 가지를 설명했는데 '수신'장에서 다시 '친애하는 바에...'등을 설명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忿懥等是心與物接時事, 親愛等是身與物接時事.” 廣(65이후). '''대답: 분노 등은 마음과 사물이 접촉할 때의 일이고 친애 등은 몸과 사물이 접촉할 때의 일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168 正心·修身, 今看此段大槪差錯處, 皆未在人欲上. 這箇皆是人合有底事, 皆恁地差錯了. 況加之以放辟邪侈, 分明是官街上錯了路! 賀孫(62이후). '''정심과 수신은 지금 생각해 보니 대개 이 단계에서의 잘못들은 모두 인욕(人欲)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는 일들인데 모두 이처럼 잘못을 범하고 만다. 하물며 거리낌 없이 방종하기까지(放辟邪侈) 해버린다면 분명 대로에서도 길을 잃는 꼴이 될 것이다!<ref>가장 쉬운 사태에 대한 대응조차 잘못될 것이라는 말이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69 子升問: “‘修身齊家’章所謂‘親愛·畏敬’以下, 說凡接人皆如此, 不特是一家之人否?” '''자승의 질문: 수신제가장<ref>전 8장이다.</ref>에서 말한 바 누군가를 친애하고 누군가를 경외하는 등의 구문은 집안 사람을 대할 때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타인을 대함이 모두 이러하다는 설명 아닙니까?<ref>전 8장은 타인을 대할 때의 편향이 주제이다. 비록 장의 제목은 '수신제가'이나 가족 구성원을 대하는 원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대한 일반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ref> 曰: “固是.” '''대답: 물론 그렇다. 問: “如何修身卻專指待人而言?” '''질문: 어째서 '몸을 닦음(修身)'(이라는 제목을 달고) 오로지 타인을 대하는 일만 말한 것입니까?: 曰: “修身以後, 大槪說向接物待人去, 又與只說心處不同. 要之, 根本之理則一, 但一節說闊一節去.” 木之(68때). '''대답: 수신 이하의 단계들은 대개 사물과 사람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설명해 가니 마음만 설명한 곳들과는 같지 않다. 요컨대, 근본이 되는 이치는 하나이지만, 매 단계 설명할 때마다 (논의의 범위가) 확장되어 나간다.<ref>14:21과 15:85에서 유사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170 第八章: '人, 謂衆人; 之, 猶於也.' '之其', 亦如於其人, 卽其所向處. 泳(66때). '''제 8장의 주석에서 '인(人)은 중인(衆人)을 이른다. 지(之)는 어(於)와 같다.'<ref>대학 전 8장에 대한 주희의 주석이다. 주석의 대상이 되는 원문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 치우치며(人, 之其所親愛而辟焉)'이다.</ref>라고 했다. '지기(之其)'도 역시 '그 사람에 대하여'와 같으니 곧 그 (주체의 마음이) 향하는 대상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71 “之其所親愛”之“之”, 猶往也. 銖(67이후). '''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에서 '지(之)'는 '왕(往)'과 같다.<ref>갈 지(之)의 기본 뜻은 '가다'이다. 어떤 대상에게로 마음이 '간다'는 의미로 이 글자를 풀이했다는 말이다. 직전 조목에서 어(於)로 풀이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현(鄭玄) 역시 지를 갈 적(適)자로 풀었다.</ref>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172 問: “大學, 譬音改僻, 如何?” '''질문: 대학에서 비(譬)의 음을 벽(僻)으로 고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전 8장 해석의 핵심은 비/벽(辟)자이다. 예기의 판본에 따라 '譬'라고 쓰기도 하고 '辟'이라고 쓰기도 한다. 주희의 대학장구 이전에는 辟라고 써있어도 그 음이나 뜻이나 '비(譬)'와 같다고 보고 풀이했다. 이 경우 '人, 之其所親愛而辟焉'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 나아가 (그 대상이 가진 미덕을 헤아린 후 자기 자신과) 비교해 보다'가 된다. 주희도 처음에는 이러한 주석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후에 포기하고 벽(辟)을 편벽됨/치우침(僻)으로 풀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ref> 曰: “只緣人心有此偏僻.” '''대답: 사람의 마음에 이러한 치우침이 있기 때문이다. 問: “似此, 恐於‘修身在正其心’處相類否?” '''질문: 그렇다면 (제 7장의) '수신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 부분과 너무 비슷할 것 같습니다. 曰: “略相似.” 㝢(61이후). '''대답: 대체로 비슷하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73 問: “古注, 辟作譬, 似窒礙不通.” '''질문: 고주(古注)<ref>정현의 주석을 말한다.</ref>에서 '비(辟)'를 '비(譬)'로 쓴 것은 의미가 막혀서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公亦疑及此. 某正以他說‘之其所敖惰而譬焉’, 敖惰非美事, 如何譬得? 故今只作僻字說, 便通. 況此篇自有僻字, 如‘辟則爲天下僇矣’之類是也.” 大雅(49이후). '''대답: 그대 역시 의심이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나도 마침 그가<ref>정현을 말한다.</ref> '업신여기는 대상에게 나아가 (그 대상이 가진 업신여김 당할 만한 지점을 헤아린 후 자기 자신과) 비교해 본다'를 설명한 부분을 보고서 업신여김은 좋은 일이 아닌데 어째서 비교가 되는 것일까 (의심했다). 그래서 이제는 '비(辟)'를 '벽(僻, 치우침)'으로 해석하는데, (이렇게 하면 의미가) 통한다. 하물며 이 책에는<ref>대학을 말한다.</ref> 이미 '벽(僻)'자가 있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임금의 마음이) 치우치면(辟) 천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ref>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는 시이다. 본래는 시경 소아 절남산.</ref> 등이 그것이다. *  16:174 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各自有當然之則, 只不可偏. 如人飢而食, 只合當食, 食纔過些子, 便是偏; 渴而飮, 飮才過些子, 便是偏. 如愛其人之善, 若愛之過, 則不知其惡, 便是因其所重而陷於所偏; 惡惡亦然. 下面說: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上面許多偏病不除, 必至於此. 泳(66때). '''친애, 혐오, 경외, 애틋함, 업신여김에는 각각 마땅한 법칙이 있다. 그저 치우치지 않아야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굶주리면 먹는 것이 마땅하지만,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먹으면 치우친 것이 된다. 목이 마르면 마시는 것이 마땅하지만,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마시면 치우친 것이 된다. 타인의 선함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지나치면 그 사람의 악한 면모를 알지 못하게 되니, 이는 그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하여 치우침에 빠진 것이다. 악함을 싫어하는(惡惡)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아래쪽 부분에서 '사람은 자기 자식이 악한줄 모르고 자기 묘(苗)가 큰 줄 모른다.'고 했다. 위쪽 부분에서 서술한 치우침에 관한 여러 병폐를 제거하지 못하면 반드시 이러한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75 “人之其所親愛而僻焉”, 如父子是當主於愛, 然父有不義, 子不可以不爭; 如爲人父雖是止於慈, 若一向僻將去, 則子有不肖, 亦不知責而敎焉, 不可. “人之其所賤惡而僻焉”, 人固自有一種可厭者, 然猶未至於可賤惡處, 或尙可敎, 若一向僻將去, 便賤惡他, 也不得. “人之其所畏敬而僻焉”, 如事君固是畏敬, 然“說大人則藐之”, 又不甚畏敬. 孟子此語雖稍粗, 然古人正救其惡, 與“陳善閉邪”, “責難於君”, 也只管畏敬不得. 賀孫(62이후). ''' '사람들은 자신이 친애하는 대상에게 치우친다.' 예를 들어, 아비와 아들 간에는 당연히 사랑이 주가 되어야 하지만 아버지에게 의롭지 못한 점이 있을 때 아들이 다투지 않아서는 안 된다. 남의 아비가 되어서는 물론 자애로움에 머물러야(止)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아들에게 못난 점이 있을 때에도 꾸짖고 가르칠 줄 모르게 되니,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에게 치우친다.' 사람에게는 본래 싫어할 만한 점들이 있지만, 아직 혐오할 만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아서 오히려 교정할 만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만약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를 혐오하게 되니,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외하는 대상에게 치우친다.' 예를 들어,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물론 경외해야 하지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유세할 적에는 상대방을 가볍게 여겨라.'<ref>맹자 7B:34</ref>는 말처럼 너무 심하게 경외하지는 말아야 한다. 맹자의 이 말은 다소 거칠지만, 옛 사람들이 (임금의) 악함을 바로잡기 위하여, 예컨대 '(임금에게) 선한 것을 아뢰어 (임금 마음 속의) 사특한 생각을 막으며', '임금에게 (도덕적으로) 어려운 수준을 요구'<ref>맹자 4A:1</ref>했던 것처럼, 역시 쭉 경외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176 問: “‘齊家’段, 辟作‘僻’.” '''질문: '제가(齊家)' 단락에서 '비(辟)'를 '벽(僻, 치우침)'으로 해석합니다. 曰: “人情自有偏處, 所親愛莫如父母, 至於父母有當幾諫處, 豈可以親愛而忘正救! 所敬畏莫如君父, 至於當直言正諫, 豈可專持敬畏而不敢言! 所敖惰處, 如見那人非其心之所喜, 自懶與之言, 卽是忽之之意.” '''대답: 인간의 감정에는 본래 치우침이 있다. 친애의 대상으로 부모만한 것이 없지만 부모에게도 마땅히 완곡하게 간언해야(幾諫)<ref>논어 4:18</ref> 할 경우가 있다. 어찌 친애의 감정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를 잊을 수 있겠나? 경외의 대상으로 군부(君父)만한 것이 없지만 마땅히 직언정간(直言正諫)해야 할 경우가 있다. 어찌 경외의 태도만을 고수하여 과감히 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업신여기는 대상의 경우, 예컨대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연히 그와 대화하는데 태만해지면 이는 그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問: “敖惰, 惡德也, 豈君子宜有?” '''질문: 업신여김은 악덕인데 어찌 군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게 적절하겠습니까? 曰: “讀書不可泥, 且當看其大意. 縱此語未穩, 亦一兩字失耳. 讀書專留意小處, 失其本領所在, 最不可.” 㝢(61이후). '''대답: 독서할 때는 (작은 부분에) 구애되지 말고 우선 그 대의(大意)를 보아야 한다. (나의) 이 말에 설령 온당치 못한 점이 있더라도 기껏해야 한 두 글자 정도 잘못되었을 뿐일 것이다. 독서할 때 작은 부분에만 주의를 기울이다 그 본령(本領)이 있는 곳을 잃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 될 일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77 問: “章句曰<ref>조선고사본은 이 질문 부분이 훨씬 길다. "又問: '人之其所親愛賤惡畏敬哀矜敖惰而辟焉.' 章句曰:"</ref>: ‘人於五者本有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竊謂: 則之爲言, 法也. 性之所固有, 事之所當然, 而不可易也."가 더 있다.</ref> 然敖之與惰, 則氣習之所爲, 實爲惡德.<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非性之所有. 若比之四者而言, 則是性有善惡."가 더 있다.</ref> 至若哀矜之形, 正良心苗裔, 偏於哀矜不失爲仁德之厚, 又何以爲‘身不修, 而不可以齊其家’者乎?” '''질문: 대학장구에서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하여 본래 마땅히 따라야할 법칙(則)이 있다'고 합니다.<ref>통행본 대학장구의 문구는 약간 다르다. '이 다섯가지는 사람에게 있어 본래 마땅히 따라야할 법칙이 있다(五者在人, 本有當然之則).'</ref> 그러나 업신여김은 기질과 습관(氣習)<ref>사람에게 있어 본성은 본래적인 것이고 기습은 비본래적인 것이다. 조선고사본을 보면 기록자가 이 말에 앞서 본성을 거론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기습을 거론한 것이 짝이 된다.</ref>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로 나쁜 덕성입니다. 애틋함이 드러나는 경우 같으면 정말로 선한 마음(良心)에서 나온(苗裔)<ref>'묘예(苗裔)'의 원래 뜻은 후예/후손이다. 애틋한 마음은 사람의 본래적 선한 마음에서 직접 나온 존재라는 뜻이다.</ref> 것이니, 애틋해하는 쪽으로 치우친대도 여전히 인덕이 두터운 게 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또 어찌하여 '몸을 닦지 않으면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경우가 되는 겁니까? 曰: “敖惰, 謂如孔子之不見孺悲, 孟子不與王驩言. 哀矜, 謂如有一般大姦大惡, 方欲治之, 被它哀鳴懇告, 卻便恕之.” '''대답: 업신여김은 예컨대 공자가 유비(孺悲)를 만나주지 않고<ref>논어 17:20. 주희의 집주에 의하면 유비는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에게 사상례를 배운 적이 있다. 이때 분명 공자에게 득죄한 것이 있었는데 공자는 고의로 만나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를 가르쳐준 것이라고 한다.</ref> 맹자가 왕환(王驩)과 말을 섞지 않은 경우와 같다.<ref>맹자 2B:6과 4B:27에 보인다. 왕환은 제나라의 대부이다.</ref> 애틋함은 예컨대 대단히 간사하고 사악한 자를 막 처벌하려 할 적에 그가 애처롭게 울부짖고 간곡하게 고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용서해줘 버리는 경우와 같다. 道夫云: “這只是言流爲姑息之意.” '''내(道夫)가 말함: 그건 그저 원칙없는 관용(姑息)으로 흘러가 버렸다는 말일 뿐입니다. 曰: “這便是哀矜之不得其正處.” 道夫(60이후). '''대답: 그게 바로 애틋함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한 경우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178 或問“之其所敖惰而辟焉”. '''누군가가 '업신여기는 대상에게 치우친다'에 관하여 질문함. 曰: “親者則親愛之, 賢者則畏敬之, 不率者則賤惡之, 無告者則哀矜之. 有一般人, 非賢非親, 未見其爲不率, 又不至於無告, 則是泛然沒緊要底人, 見之豈不敖惰. 雖聖賢亦有此心. 然亦豈可一向敖惰他! 一向敖惰, 便是辟了. 畏敬·親愛·賤惡·哀矜莫不皆然. 故下文曰: ‘愛而知其惡, 惡而知其美.’ 如所敖惰之人, 又安知其無善之可愛敬! 所謂敖惰者, 只是闊略過去.” 高(65때). '''대답: 친한 사람을 친애하고 현명한 사람을 경외하며 (일러 주어도) 따르지 않는(不率) 사람을 혐오하고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을 애틋해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명하지도 친하지도 않고 따르지 않은 적도 없고 또 하소연할 데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다지 긴요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니, 그들을 만나볼 적에 어찌 건성이지(敖惰) 않겠나?<ref>오타(敖惰)는 오만함과 게으름이다. 누군가를 만나볼 적에 상대방을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 건성으로 대하며 정성을 다하지 않는 태도가 '오타'이다. 그 마음가짐 부분에 주목하여 번역할 때는 '업신여김'이 적절하고 그 태도에 주목하여 번역하자면 '건성'이 더 낫다. 지금까지 줄곧 업신여김으로 번역하였으나 여기서는 건성이 더 어울린다고 판단하여 건성이라 번역했다.</ref> 비록 성현이라도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으나, 어찌 한결같이 상대방을 건성으로 대해서야 되겠는가? 한결같이 건성이면 곧 치우친 것이다. 경외, 친애, 혐오, 애틋함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다음 문장에서 '사랑하면서도 그 악한 면을 알고 싫어하면서도 그 훌륭한 면을 안다'고 했다. 건성으로 취급당한 사람들에게 또 사랑하고 경외할 만한 훌륭한 점이 없을 줄 어찌 아는가? 이른바 건성(敖惰)이란 그저 대충 대한다는(闊略) 것이다. 고(高)의 기록. (65세) *  16:179 問敖惰. '''(타인을) 건성으로 대함에 관한 질문. 曰: “大抵是一種沒要緊底, 半上落下底人. 且如路中撞見如此等人, 是不足親愛畏敬者, 不成强與之相揖, 而致其親愛畏敬! 敖惰是人之所不能無者.” '''대답: 대체로 중요하지 않은, 어중간한(半上落下) 사람들이다. 길에서 우연히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 그들은 친애하거나 경외하기에 부족한 사람들인데 설마하니 억지로 서로 읍하며 친애와 경외를 다할 참인가? 건성으로 대하는 태도는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다. 又問: “‘敖惰’二字, 恐非好事.” '''재질문: '오타(敖惰)'라는 두 글자는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曰: “此如明鑑之懸, 姸者自姸, 醜者自醜, 隨所來而應之. 不成醜者至前, 須要換作姸者! 又敖惰是輕, 賤惡是重. 旣得賤惡, 如何卻不得敖惰? 然聖人猶戒其僻, 則又須點檢, 不可有過當處.” 履孫(65때) '''대답: 이는 마치 밝은 거울을 걸어둔 것과 같다. 아름다운 자는 그대로 아름답게 추한 자는 그대로 추하게, 오는대로 그대로 대응한다. 설마하니 추한 자가 면전에 왔는데 아름다운 상으로 바꾸어 보여주어야 한단 말인가? 또 건성(敖惰)은 가볍고 혐오(賤惡)는 무겁다.<ref>전 8장에서 거론한 다섯 가지 태도 가운데 이 두 가지가 부정적인 태도이다. 건성은 그 중 가벼운 쪽이고 혐오가 훨씬 본격적이다.</ref> 혐오는 되는데 어째서 건성은 오히려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나 성인도 이것이 치우치게 됨을 경계하였으니, 또 반드시 점검하여 선을 넘는 부분이 없도록 해야 한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6:180 蔡問“敖惰”之說. '''채(蔡)가 건성(敖惰)을 설명한 대목을 질문함. 曰: “有一般人, 上未至於可親愛, 下未至於可賤惡, 只是所爲也無甚好處, 令人懶去接他, 是謂敖惰. 此敖惰, 不是惡德.” 淳(61·70때). '''대답: 어떤 사람들은 위로는 친애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며 아래로는 혐오할 수준까지 이르지 않고, 단지 하는 행위들 또한 그다지 훌륭하달 것이 없어서 남들로 하여금 건성으로 대하게 만들 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건성(敖惰)'이다. 건성은 악덕이 아니다.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文蔚錄云: “非如常人傲忽惰慢, 只是使人見得他懶些.”> '''<문위(文蔚)의 기록에서는 이렇게 말함: '평범한 사람들이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그 사람의 훌륭하달 것 없는 행위 등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접견함에 있어 조금 건성건성 하도록 만들 뿐이다.> *  16:181 或問: “敖惰是凶德, 而曰‘有當然之則’, 何也?” '''누군가의 질문: 건성(敖惰)은 흉덕(凶德)인데도 '(거기에도) 마땅히 따라야할 법칙이 있다'<ref>대학장구 전 8장.</ref>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古人用字不如此. 敖惰, 未至可賤可惡, 但見那一等沒緊要底人, 自是恁地. 然一向去敖惰他, 也不可如此.” '''대답: 옛 사람들은 (이 두) 글자를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건성(敖惰)'은 혐오할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단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접견할 적에 자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한결같이 건성으로 대하는 것은 역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  16:182 問: “君子亦有敖惰於人者乎?” '''질문: 군자에게도 남을 업신여기는(敖惰) 경우가 있습니까? 曰: “人自有苟賤可厭棄者.” 德明(44이후). '''대답: 사람 중에는 본래 비루하여 싫어할 만한 자들이 있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183 問敖惰. '''오타(敖惰)에 관한 질문. 曰: “敖便是惰, 敖了便惰. 敖了都不管它, 便是惰.” 義剛(64이후). '''대답: 오만함이(敖) 곧 태만함(惰)이니, (심정이) 오만해지면 곧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태만해진다. (심정이) 오만해져서 타인을 전혀 개의치 않으면 그것이 곧 태만함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6:184 因學者問大學“敖惰”處, 而曰: “某嘗說, 如有人問易不當爲卜筮書, 詩不當去小序, 不當協韻, 及大學敖惰處, 皆在所不答.” 僩(69이후). '''배우는 이들이 대학의 '오타(敖惰)' 부분에 질문한 것을 계기로 말함: 내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주역은 점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거나,<ref>주역이라는 책의 본질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주역 연구자들의 견해는 크게 둘로 갈린다. 예컨대 정이는 주역에서 의리(義理)를 읽어내려 하였으나 주희는 이 책을 기본적으로 점치는 책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독해했다. 주광호(2020) 제 7장을 참조하라.</ref> 시경에서 소서(小序)<ref>주희 이전에 가장 크게 유행했던 시경의 주석서는 한나라 때 두 명의 모(毛)씨가 붙인 것이다. 모시는 시경의 각 편 앞에 해당 시 해석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서문 두 종류를 붙여 두었는데 이를 대서(大序)와 소서라고 부른다. 대체로 이 시는 누구를 풍자한 것이라거나 누구를 찬미한 것이라는 등인데, 주희는 이런 해석을 싫어했다. 이 서문의 저자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확정된 설이 없으나 주희는 후한서 유림전의 기사를 근거로 위굉(衛宏)이 지은 것으로 간주한다. 더 자세한 것은 박소동역 모시정의(2021)의 해제를 참조하라.</ref>를 제거해서는 안 된다거나, 협운(協韻)<ref>시경이나 초사 등 고대에 만들어진 운문은 후에 각 글자의 음이 변하면서 운이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대의 주석가들 가운데 이런 글자들의 운을 맞추기 위해 '이 글자는 써 있기는 A라고 써있지만 소리내어 읽을 때는 B라고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주석하는 이들이 등장했는데, 이러한 주석법을 '협운'이라 한다. 주희는 특히 협운을 선호했다.</ref>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질문하거나, 대학의 '오타(敖惰)' 부분에 대해 묻는 경우 모두 답하지 않는다<ref>'재소부답(在所不答)'은 '답하지 않는 바에 있다.' 곧, 답하지 않는 질문들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말이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185 或問: “‘之其所親愛·哀矜·畏敬而辟焉’, 莫是君子用心過於厚否?” '''누군가의 질문: '친애하고 애틋해하고 경외하는 대상에게 치우'친 경우들은 군자의 마음씀이 후한 쪽으로 지나친 것 아닙니까? 曰: “此可將來‘觀過知仁’處說, 不可將來此說. 蓋不必論近厚·近薄. 大抵一切事, 只是才過便不得. ‘觀過知仁’乃是因此見其用心之厚, 故可知其仁, 然過則終亦未是也. 大凡讀書, 須要先識認本文是說箇甚麽. 須全做不曾識他相似, 虛心認他字字分明. 復看數過, 自然會熟, 見得分明. 譬如與人乍相見, 其初只識其面目, 再見則可以知其姓氏·鄕貫, 又再見則可以知其性行如何. 只恁地識認, 久後便一見理會得. 今學者讀書, 亦且未要便懸空去思他. 中庸云‘博學之, 審問之’, 方言‘愼思之’. 若未學未問, 便去思他, 是空勞心耳!” '''대답: 그 말을 가지고 '(그가) 잘못한(過)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인(仁)함을 안다'<ref>논어 4:7.</ref>를 해석할 수는 있겠으나 여기를 해석할 수는 없다. 후한 쪽에 가까웠는지 박한 쪽에 가까웠는지 따질 필요 없이 일체의 사안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지나치면(過)<ref>지나침(過)이 곧 잘못함(過)이다. 컬링을 할 적에 돌이 목표지점을 지나치는 것이 곧 잘못인 것과 마찬가지이다.</ref> 안 되기 때문이다. '(그가) 잘못한(過)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인(仁)함을 안다'는 곧 (그 잘못의 내용을) 통해서 그의 마음 씀씀이가 후함을 볼 수 있으니 그가 인함을 알겠다는 것이지만, 지나쳤다면(過) 결국 역시 옳지 못한 것이다. 대개 책을 읽을 때는 먼저 본문(本文)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식(識認)해야 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 책을 전혀 알지(識) 못하는 것처럼 마음을 비우고 그 책의 한 글자 한 글자를 분명하게 인지(認)해야 한다.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자연히 익숙해지고 분명히 알게(見)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막 만났을 때 처음에는 얼굴만 인식(識)할 뿐이지만, 다시 만나면 그 사람의 성씨와 고향을 알(見) 수 있고, 또 다시 만나면 그 사람의 성격과 행실이 어떠한지 알(見) 수 있다. 계속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인식(識認)하기를 오래도록 하다보면 (나중에는 처음 보는 사람도) 일견에 이해할(理會)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이들이 책을 읽을 때에도 역시 그 책에 대하여 곧장 추상적으로(懸空) 생각하려 해서는 안 된다. 중용(中庸)에서도 '넓게 배우고, 자세히 물어'본 뒤에야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배우기도 묻기도 전에 곧장 생각부터 하면 헛되이 마음만 수고로울(勞心) 뿐이다. 又云: “切須記得‘識認’兩字.” 時擧(64이후). '''다시 말함: 인식(識認)이라는 두 글자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6:186 問: “大學釋‘修身齊家’章, 不言修身, 何也?” '''"질문: 대학에서 '수신제가' 장을 해석할 때, '수신(修身)'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ref>이 말은 주희더러 '수신'이라는 말을 주석에 넣지 않은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제 8장의 본문 말미에서 장 전체를 해설하는 말에서 '수신'이라는 표현이 빠진 이유를 묻는 것이다. 제 7장과 9장의 본문 구성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8장의 마지막 문구는'이를 일러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한다(此謂身不修, 不可以齊其家)'인데 7장의 경우는 '이를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한다(此謂修身, 在正其心)'이고 9장의 경우는 '이를 일러 나라를 다스림이 그 집안을 다스림에 있다고 한다(此謂治國, 在齊其家)'이다. 7장과 구장은 모두 팔조목을 긍정형(수신, 정심, 제가, 치국)으로 언급했으나 8장만 유독 부정형(신불수)으로 언급하고 있다.</ref> 曰: “好而不知其惡, 惡而不知其美, 是以好爲惡, 以曲爲直, 可謂之修身乎!” 節(64이후). '''대답: (상대방을) 좋아하여 그 악한 부분을 알지 못하고 (상대방을) 싫어하여 그 훌륭한 부분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좋은 점을 악한 점으로 여기고 굽은 것을 곧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걸 수신(修身)이라 할 수 있겠나?<ref>'수신'이 아니라 '신불수(身不修)'라고 적혀있는 까닭을 설명한 것이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87 大學最是兩章相接處好看, 如'所謂修身在正其心'者. 且如心不得其正, 則“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若視而見, 聽而聞, 食而知味, 則心得其正矣. 然於親愛·敖惰五者有所僻焉, 則身亦不可得而修矣. 嘗謂修身更多少事不說, 卻說此五者, 何謂? 子細看來, 身之所以不修者, 無不是被這四五箇壞. '''대학에서 두 장이 연결되는 부분들, 예컨대 '이른바 몸을 닦음은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다(所謂修身在正其心)' 같은 것들이 가장 볼만하다(好看).<ref>호간(好看)은 아름답다는 뜻 이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 볼만하다, 체면, 풍광, 이해하기 쉽다 등의 뜻이 있다. 주자어류사휘연구 395쪽을 참조하라.</ref> 예를 들어, 마음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만약 보면 보이고, 들으면 들리며, 먹으면 그 맛을 안다고 하면 이는 마음이 그 바름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친애와 업신여김 등 다섯 가지 태도에 치우침이 있다면 역시 몸을 닦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수신에 대해 더 많은 일들을 말하지 않고 딱 이 다섯 가지만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세히 살펴 보면, 몸이 닦이지 않는 것은 이 너댓 가지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닌 경우가 없다. 又云: “意有不誠時, 則私意爲主, 是主人自爲賊了! 到引惹得外底人來, 四方八面無關防處, 所以要得先誠其意.” 子蒙(미상). '''다시 말함: 의지가 진실하지 않으면 사의(私意)가 주인이 되는데, 이는 주인이 스스로 도둑이 되는 꼴이다. 그 결과 바깥 사람들을 끌어들여 사방팔방에 방어할 수 있는 지점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하는 까닭이다. 자몽(子蒙)의 기록. (기록연대 미상) *  16:188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五者, 其實則相串, 而以做工夫言之, 則各自爲一事. 故‘物格, 而後知至; 知至, 而後意誠; 意誠, 而後心正; 心正, 而後身修’. 著‘而’字, 則是先爲此, 而後能爲彼也. 蓋逐一節自有一節功夫, 非是儱侗言知至了意便自誠, 意誠了心便自正, 身便自修, 中間更不著功夫. 然但只是上面一截功夫到了, 則下面功夫亦不費力耳.” '''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마음을 바로잡아야 하고,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하며, 의지를 진실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앎을 지극히 해야 하며, 앎을 지극히 함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ref>대학 경 1장.</ref> 이 다섯 가지는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각 단계의 수행(工夫)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각각 독립된 사안이다. 그래서 '사물을 탐구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며,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인다.' 여기서 '이(而)'라는 글자는 먼저 이 것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而後) 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각 단계마다 별개의 수행(工夫)이 필요하니, 단순히 앎이 지극해지면 의지가 저절로 진실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지면 마음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몸이 저절로 닦이므로 그 사이에 수행이 필요치 않다고 뭉뚱그려(儱侗) 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앞 단계에서의 수행이 충분히 이루어지면 다음 단계에서는 힘이 덜 든다는 정도이다. 先生曰: “亦有天資高底人, 只頭正了, 便都正去. 若夾雜多底, 也不能如此.” 端蒙(50이후). '''선생이 말함: 역시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는 첫 단계(頭)가 바로잡히면 나머지 전부가 바로잡힌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순한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렇게 할 수가 없다.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6:189 問: “‘正心修身’章後注, 云‘此亦當通上章推之, 蓋意或不誠, 則無能實用其力以正其心者’云云.” '''질문: '정심수신'장의 뒷부분 주석에서 '이 또한 윗 장과 연결지어 생각해야 하니, 의지가 진실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힘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하 생략)<ref>조선고사본에 의하면 여기서 생략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제 생각에 사람의 마음이 분분히 소란스러워 그 허명한 본체를 상실하게 되는 까닭은 다름아니라 생각(念慮)이 선행에 대해 진실하지 못해서 매번 사사롭고 삿된 것들이 내면에 섞여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그것에 엮여서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앎을 지극히하여 시비선악을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어서 틔워나오는 하나하나의 생각(念)이 모두 진실하여 악함이 없게 된다면 마음의 본체가 어찌 찬란하여 모든 곳을 비추고 혼연히 크고 올바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간격은 극히 미세한 틈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 있는 이상 어디 다시 힘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切謂人之心所以膠膠擾擾, 失其虚明之本體者, 只爲念慮之間不誠於爲善, 毎毎雜得私邪在裏, 故心爲之累而不得其正. 今既能致其知, 判別得是非善惡分明, 一念之發, 誠實無惡, 則心之本體豈不光明洞達, 渾全正大? 其間直有毫芒之間耳. 然則意既能誠, 則復何所待於用力哉?)' 여기서 '그 간격은 극히 미세한 틈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其間直有毫芒之間耳)'는 해석하기 어려우나 아마도 치지/성의/정심이라는 세 단계 사이의 간격이 아주 좁다는 말인 듯하다.</ref> 曰: “大學所以有許多節次, 正欲學者逐節用工. 非如一無節之竹, 使人才能格物, 則便到平天下也. 夫人蓋有意誠而心未正者, 蓋於忿懥·恐懼等事, 誠不可不隨事而排遣也. 蓋有心正而身未修者, 故於好惡之間, 誠不可不隨人而節制也. 至於齊家以下, 皆是敎人節節省察用功. 故經序但言心正者必自誠意而來, 修身者必自正心而來. 非謂意旣誠而心無事乎正, 心旣正而身無事乎修也. 且以大學之首章便敎人‘明明德’, 又爲格物以下事目, 皆爲明明德之事也. 而平天下, 方且言先謹乎德等事, 亦可見矣.” 壯祖(미상). '''대답: 대학이 여러 단계로 구성된 이유는 배우는 이들이 각 단계별로 힘을 쓰기를 원해서이다. 마치 마디가 없는 대나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격물을 해내자마자 곧바로 평천하에 도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의지는 진실하더라도 마음은 아직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분노와 두려움 같은 일에 있어 진실로 그 (사태의 구체적) 정황에 맞추어 (분노와 두려움 같은 감정을) 조절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마음은 바르더라도 몸은 아직 닦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태도에 있어 진실로 (접하는 구체적인) 사람에 맞추어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태도를) 절제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집안을 다스리는 것 이하의 경우도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각 단계별로 성찰하고 힘을 쓰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경문(에서 나열한) 순서에서(經序)<ref>'경서'는 대학의 서문으로 볼 수 없다. 서문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장구의 서문은 주희 본인이 작성하였으나 그것을 '경서'라고 부를 수는 없다. 서문이 아니라 서두정도로 풀이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ref> 단지 마음을 바르게 함은 반드시 의지를 진실하게 함으로부터 나오며, 몸을 닦음은 반드시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부터 나온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의지가 일단 진실해지면 마음을 바로잡을 일이 없고 마음이 일단 바르게 되면 몸을 닦을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또, 대학의 첫 장에서 곧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덕을 밝히'게 하였고, 다시 격물 이하의 조목들을 두었는데 모두 명명덕의 일이다. (마지막 조목인) 평천하에서 '우선 덕을 신중히 하라(先謹乎德)'<ref>대학 전 10장.</ref>는 등의 일을 말하고 있는 데서도 (팔조목이 모두 명명덕의 일임을) 볼 수 있다. 장조(壯祖)의 기록. (기록연대 미상). *  16:190 大學如“正心”章, 已說盡了. 至“修身”章又從頭說起, 至“齊家治國”章又依前說敎他<ref>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록(池錄)에는 이 뒤에 '治它是' 세 글자가 더 있었다. 기록자의 이름으로 보아 지록 권 34에 있었을 듯한데 해당권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ref>, 何也?蓋<ref>역시 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록에는 이 뒤에 '是'가 있었다.</ref>要<ref>이 뒤에 '得'이 있었다.</ref>節節去照管. 不成卻<ref>'卻'는 '只'였다.</ref>說自家在這裏, 心正·身修了, 便都只聽其<ref>'其'는 '它'였다.</ref>自治! 蘷孫(68이후). '''대학의 '정심(正心)' 장 같은 경우 이미 (해야) 할 설명을 다 했지만, '수신(修身)' 장에 이르러 다시 처음부터 설명하고, '제가치국(齊家治國)' 장에 이르러서도 이전에 했던대로 다시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는데, 왜 그런 것인가?<ref>지록을 따라 번역했다. 현행본대로 번역할 경우 '...다시 설명하여 남을 가르치는데' 정도가 된다. 전 7장에서 9장까지의 내용이 대동소이한 이유를 두고 자문자답하는 것이다.</ref> 이는 각 단계를 하나하나 주의하여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ref>집안관리의 단계, 나라관리의 단계 등 관리하는 범주 별로 빼먹지 말고 잘 살펴보라는 말이다.</ref> 설마하니 자기 자신은 이 지점에서 마음이 바르게 되고 몸이 다 닦였다고 하여 나머지는 모두 사람들이(它)<ref>관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가장의 관리 대상이 되는 가족구성원이나 임금의 관리 대상이 되는 백성들 등이다.</ref> 스스로 다스리도록 맡겨 두자고 할 참인가?<ref>대학에서 수신장 이후 부분은 어떤 관리직을 맡은 독자를 상정하고 있음에 유의하라.</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6:191 說大學“誠意”章, 曰: “如今人雖欲爲善, 又被一箇不欲爲善之意來妨了; 雖欲去惡, 又被一箇尙欲爲惡之意來妨了. 蓋其知之不切, 故爲善不是他心肯意肯, 去惡亦不是他心肯意肯. 這箇便是自欺, 便是不誠. 意才不誠, 則心下便有許多忿懥·恐懼·憂患·好樂而心便不正. 心旣不正, 則凡有愛惡等事, 莫不倚於一偏. 如此, 如何要家齊·國治·天下平? 惟是知得切, 則好善必如好好色, 惡惡必如惡惡臭. 是非爲人而然, 蓋胸中實欲如此, 而後心滿意愜.” 賀孫(62이후). '''대학 '성의'장을 해설하고서 말함: 지금 사람들이 비록 선을 행하고자 하여도 다시 선을 행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방해를 받게 되고, 비록 악을 제거하고자 하여도 다시 계속해서 악을 행하고 싶다는 의지의 방해를 받게 된다. 이는 그의 앎이 절실하지 못하여서 그의 마음과 의지가 선을 행하는데 기껍지 않고 악을 제거하는데도 역시 기껍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요 진실하지 못함이다.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분노, 두려움, 걱정, 선호 등의 (감정적 편향이) 발생하여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친애와 혐오 등의 태도가 예외없이 한쪽으로 치우치에 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어떻게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천하를 평정하겠는가? 앎이 절실해지기만 하면 선을 좋아하기를 반드시 미색을 좋아하듯 하게 되고 악을 싫어하기를 반드시 악취를 싫어하듯 하게 된다. 이는 남 보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가슴속에서부터 진정으로 그렇게 하고자 한 뒤에야 마음과 의지가 통쾌하고 만족스럽게 되는 것이다.<ref>의지가 진실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통쾌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에 대해서는 16:73 및 81~90등 본권 여러 곳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傳九章釋家齊國治 == 전 9장, 가제(家齊)와 국치(國治) 해석. *  16:192 或問: “‘齊家’一段, 是推將去時較切近否?” '''누군가의 질문: 제가(齊家) 단계에서는 (도덕적 앎의 적용 영역을 더 넓게) 미루어 나아갈 때 비교적 더 가깝고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曰: “此是言一家事, 然而自此推將去, 天下國家皆只如此.” '''대답: 이 단락은 한 집안의 일을 말하고 있지만 거기서부터 (적용 영역을 더 넓게) 미루어 나아가고 보면 천하와 국가도 모두 이와 같을 뿐이다. 又問: “所畏敬在家中, 則如何?” '''재질문: 집안에서 (누군가를) 경외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曰: “一家之中, 尊者可畏敬, 但是有不當處, 亦合有幾諫時. 不可道畏敬之, 便不可說著. 若如此惟知畏敬, 卻是辟也.” 祖道(68때). '''대답: 한 집안에서 (위계상) 높은 사람을 경외하는 것은 좋지만 (그에게) 부당한 점이 있다면 역시 완곡하게 간언해야 할 때가 있다. '경외하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만약 그처럼 경외할줄만 안다면 (그쪽이) 오히려 치우친(辟) 것이다.<ref>16:176에 비슷한 논의가 있으니 참조하라.</ref>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6:193 或問“不出家而成敎於國”. '''누군가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에 관하여 질문함. 曰: “孝以事親, 而使一家之人皆孝; 弟以事長, 而使一家之人皆弟; 慈以使衆, 而使一家之人皆慈, 是乃成敎於國者也.” 人傑(51이후). '''대답: 효성으로 부모를 섬기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효도하게 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어르신을 섬기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공경하게 되며 자애로움으로 사람들을 부리면 집안의 모든 사람이 자애롭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194 李德之問: “‘不出家而成敎於國’, 不待推也.” '''이덕지(李德之)의 질문: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ref>대학 전 9장.</ref>는 미루기(推)를 기다리지 않습니다.<ref>전 9장의 해당 문구만 보면 추가로 어떤 작업을 할 필요 없이 집안에서의 도덕적 성취가 더 넓은 영역에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느낌이 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曰: “不必言不待推. 玩其文義, 亦未嘗有此意. 只是身修於家, 雖未嘗出, 而敎自成於國爾.” 蓋卿(65때). '''대답: 굳이 '미루기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 없다. 그 문장의 의미(文義)를 천천히 곱씹어 보면 역시 전혀 그런 뜻이 없다. 그저 집안에서 몸이 닦이면 비록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더라도 교화가 저절로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ref>여기서 주희가 이덕지의 주장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았음에 유의하라. 16:193이나 195 등, '미루다(推)'라는 동사의 적극성이 문제가 될 때면 주희의 대답은 모호해진다.</ref>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6:195 “孝者所以事君, 弟者所以事長, 慈者所以使衆.” 此道理皆是我家裏做成了, 天下人看著自能如此, 不是我推之於國. 泳(66때). ''' '효는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고, 공경은 어르신을 섬기는 방법이며, 자애는 사람들을 부리는 방법이다.'<ref>대학 전 9장.</ref> 이 도리는 모두 자신의 가정에서 달성하는 것으로, 천하 사람들이 보고 자연히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내가 그것을 나라로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196 劉潛夫問: “‘家齊’章並言孝·弟·慈三者, 而下言康誥, 以釋‘使衆’一句, 不及孝弟, 何也?” '''류잠부(劉潛夫)의 질문: '제가(齊家)' 장에서 효도, 공경, 자애 세 가지를 아울러 말했는데도<ref>16:195를 참조하라.</ref> 아래에서는 '강고(康誥)'를 인용하여 '사람들을 부린다(使衆)'<ref>이는 효도, 공경, 자애 가운데 자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ref>는 한 구문만 해석하고 효도와 공경은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ref>대학 전 9장에서 인용한 서경 강고 인용부는 다음과 같다. 강고에서 '어린아이(赤子)를 보호하듯이 한다.' 하였으니, 진정으로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답을) 구하면 비록 (어머니의 짐작이 완벽히) 적중하지는 않더라도 (정답에서 아주) 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ref> 曰: “孝弟二者雖人所固有, 然守而不失者亦鮮. 唯有保赤子一事, 罕有失之者. 故聖賢於此, 特發明夫人之所易曉者以示訓, 正與孟子言見赤子入井之意同.” 壯祖(미상). '''대답: 효도와 공경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잘 지켜 상실하지 않는 이 또한 드물다. 오직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일 하나만은 잘못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성현이 여기서 특별히 사람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여 가르쳐준 것이니, 맹자가 말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다는 예시와 꼭 같은 취지이다. 장조(壯祖)의 기록. *  16:197 “心誠求之”者, 求赤子之所欲也. 於民, 亦當求其有不能自達. 此是推其慈幼之心以使衆也. 節(64이후). ''' '진정으로 구하면'이란,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여 답을) 구하는 것이다. 백성에게도 역시 그들 스스로 (윗사람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짐작하여 답을) 구해야 한다. 이것이 어린아이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을 미루어 사람들을 부린다는 것이다.<ref>강고 인용문에 대한 주희의 이러한 해석은 이정을 따른 것이다. 이정유서 2上-26, 대학혹문의 전 9장 부분을 참조하라.</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198 問“治國在齊其家”. ''' '나라를 다스림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다'<ref>전 9장.</ref>에 관한 질문. 曰: “且只說動化爲功, 未說到推上. 後章方全是說推. ‘如保赤子’一節, 只是說‘慈者所以使衆’一句. 保赤子, 慈於家也; ‘如保赤子’, 慈於國也. 保赤子是慈, ‘如保赤子’是使衆.” '''대답: 우선 그저 감화(動化)가 효과를 내는(爲功)<ref>일역판은 '공(功)'을 '공(工)' 정도로 보고 이 부분을 '노력하다(つとめる)'라고 번역했다. 비록 후대의 판본이긴 하지만 사서대전에서는 '위본(爲本)'이라고 쓰고 있으니 참고하라.</ref> 것을 설명했을 뿐, (가정에서 나라 쪽으로) 미루어 확장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다음 장<ref>전 10장을 말한다.</ref>에 가서야 비로소 전체가 다 미루어 확장함에 대한 설명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라는 대목은 '자애는 사람들을 부리는 방법이다'라는 대목에 대한 설명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집안에서의 자애이고,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는 나라에서의 자애이다.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자애요, '어린아이를 보호하듯이'는 사람들을 부리는 것이다. 直卿云: “這箇慈, 是人人自然有底. 慈於家, 便能慈於國, 故言: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㝢(61이후). '''직경(直卿)이 말함: 이 자애란 것은 사람들 각각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자애로우면, 나라에서도 자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에 인한 기풍이 일어나고 한 집안의 겸양하면 온 나라가 겸양하는 기풍이 일어난다.'<ref>전 9장.</ref>고 하였습니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199 “一家仁”以上, 是推其家以治國; “一家仁”以下, 是人自化之也. 節(64이후). ''' '한 집안이 인(仁)하면'<ref>전 9장.</ref> 구절 이상(以上)은 그 집안(에서의 도덕적 성취)을 미루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고, '한 집안이 인(仁)하면' 구절 이하(以下)는 사람들이 저절로 감화되는 것이다.<ref>문제의 구절은 전 9장의 가운데 부분이다. 주희는 그 앞부분과 뒷부분의 성격을 이와 같이 파악한 것이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00 問: “九章本言治國, 何以曰‘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 都是說治天下之事也? 至言‘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又似說修身, 如何?” '''질문: 제 9장은 본래 치국(治國)에 대하여 말하는데, 어찌하여 '요순(堯舜)이 천하(天下)를 인(仁)으로써 이끌자 백성들이 그들을 따랐다'<ref>전 9장.</ref>고 했습니까? 이는 모두 천하를 다스리는 일[治天下之事]을 설명한 것입니다. '군자(君子)는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악(惡)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ref>전 9장.</ref>고 말한 부분의 경우는 또 수신(修身)을 설명한 것 같은데, 어째서입니까? 曰: “聖人之言, 簡暢周盡. 修身是齊家之本, 齊家是<ref>하서린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又'로 썼다.</ref>治國之本. 如言‘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之類, 自是相關, 豈可截然不相入也!” 謨(50이후). '''대답: 성인(聖人)의 말씀은 간략하고(簡) 막힘이 없으며(暢) 두루 포괄한다(周盡). 수신(修身)은 제가(齊家)의 근본이고, 제가(齊家)는 치국(治國)의 근본이다. 예를 들어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에 인(仁)한 기풍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謙讓)하면 온 나라에 겸양(謙讓)하는 기풍이 일어난다' 등등은 (수신, 제가, 치국의 내용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서로 관련되어 있으니, 어찌 뚝 잘라내어 서로 통하지 않게 할 수 있겠나?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去僞同.> '''<거위(去僞)의 기록도 동일함.><ref>여기서 생략된 거위의 기록은 조선고사본에서 볼 수 있다. 글자의 출입이 있으나 대동소이하므로 반복하지 않겠다.</ref> *  16:201 問“有諸己而後求諸人”.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에 대한 질문. 曰: “只從頭讀來, 便見得分曉. 這箇只是‘躬自厚而薄責於人’, ‘攻其惡, 無攻人之惡’.” 卓(미상). '''답변: (전 9장의) 첫 부분부터 읽어 내려오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자신을 책망할 때는 두텁게 하고 남을 책망할 때는 얇게 한다(躬自厚而薄責於人)'<ref>논어 15:14.</ref>, '자신의 악(惡)을 다스리고, 남의 악은 다스리지 않는다'<ref>논어 12:21.</ref>는 뜻이다. *  16:202 問: “‘有諸己而後求諸人’, 雖曰'推己以及'人, 是亦示人以反己之道.” '''질문: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비록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推己以及人]'<ref>대학장구 전 9장에서 주희가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다.</ref>고 하셨지만 또한 스스로를 반성하는 도리[反己之道]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曰: “這是言己之爲法於人處.” 道夫(60이후). '''대답: 이는 자기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法]가 되는 지점을 말한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03 吳仁甫<ref>조선고사본에서는 오인보가 아니라 '或'의 질문인데, 그 아래 '지본에서는 李仁甫라고 적혀있다'는 주석이 달려있다.</ref>問: “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오인보(吳仁甫)가 '자신에게 선(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악(惡)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에 대하여 질문함. 曰: “此是退一步說<ref>조선고사본에 의하면 지본에서는 이 밑에 '語意' 두 글자가 더 있다.</ref>, 猶言‘溫故知新而可以爲人師’, 以明未能如此, 則不可如此; 非謂溫故知新, 便要求爲人師也. <池本“不可”下云: “爲人師耳. 若曰‘有諸己而後求諸人’, 以明無諸己不可求諸人也; ‘無諸己而後非諸人’, 以明有諸己卽不可非諸人也.”<ref>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서는 "如此; 非謂溫故知新, 便要求爲人師也. 然" 총 16글자가 없다. </ref>> 然此意<ref>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는 '意'자가 없다.</ref>正爲治國者言. 大凡治國禁人爲惡, 而欲<ref>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서는 '欲'자가 아니라 '勸'자이다.</ref>人爲善, 便<ref>조선고사본의 주석에 의하면 지본에는 '便' 뒤에 '是'가 있다.</ref>求諸人, 非諸人. 然須是在己有善無惡, 方可求人·非人也.” '''대답: 이는 한 걸음 물러서서 말한 것으로, 비유하자면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知新而可以爲人師)'라는 말은 이렇게 하지 못하면(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지 못하면) 곧 저렇게 할 수 없음(남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지,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자마자 곧바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ref>정리하자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을 주희는 '한 걸음 물러서서....'라고 표현한 것이다.</ref> <지본(池本)에서는 '불가(不可)'아래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의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일 뿐이다. '자신에게 선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 말은 자신에게 선이 없으면 남에게 요구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고, '자신에게 악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는 말은 자신에게 악함이 있으면 남을 비난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뜻은 딱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治國者)을 위한 말이다. 대개 나라를 다스림이란 사람들이 악(惡)을 행하는 것을 금하고 선(善)을 행하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곧 남에게 선을 요구하고[求諸人] 남의 악함을 비난하는 것[非諸人]이다. 그러나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선(善)이 있고 악(惡)이 없어야만 비로소 남에게 (선을) 요구하고 남의 악함을 비난할 수 있다. 或問: “范忠宣‘以恕己之心恕人’, 此語固有病. 但上文先言‘以責人之心責己’, 則連下句亦未害.” '''누군가의 질문: 범충선(范忠宣)<ref>범순인(范純仁, 1027-1101)의 시호가 충선이다.</ref>의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以恕己之心恕人)'는 말은 물론 병통이 있습니다만, 앞선 구절에서 먼저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는다(以責人之心責己)'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아래 구절도 나쁘지 않습니다.<ref>'連A亦B'는 'A도 B하다'이다. 해당 내용은 범충선공집 보편에 보인다. 주희가 편찬한 삼조명신언행록의 11-1에서도 인용하고 있다.(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 苟能以責人之心責己, 恕己之心恕人, 不患不至聖賢地位也.)</ref> 曰: “上句自好, 下句自不好. 蓋才說恕己, 便已不是. 若橫渠云: ‘以愛己之心愛人, 則盡仁; 以責人之心責己, 則盡道.’ 語便不同. 蓋‘恕己’與‘愛己’字不同. 大凡知道者出<ref>조선고사본에서는 '者出'을 '君子發'로 썼다.</ref>言自別. 近觀聖賢言語與後世人言語自不同, 此學者所以貴於知道也.” 銖(67이후). '''대답: 윗 구절은 그 자체로 좋고 아래 구절은 그 자체로 좋지 않다. 대개 '자신을 용서한다(恕己)'고 말하는 즉시 이미 옳지 않기 때문이다. 횡거(橫渠)가 말하기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면 인(仁)을 다하는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신을 꾸짖으면 도(道)를 다하는 것이다.'<ref>정몽 중정편.</ref>고 하였으니, 말이 벌써 다르다. 대개 '서기(恕己, 자신을 용서함)' 와 '애기(愛己, 자신을 사랑함)'는 글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도(道)를 아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이 절로 다르다. 근래에 성현(聖賢)의 말씀과 후세 사람들의 말을 살펴보니 절로 달랐다. 이것이 배우는 사람들이 도(道)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204 “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是責人之恕; 絜矩與“己所不欲, 勿施於人”, 是愛人之恕. ''' '자신에게 선이 있은 뒤에 남에게 그것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악이 없은 뒤에 남의 악함을 비난한다'는 것은 남을 꾸짖을 때의 서(恕)이다. 혈구(絜矩)<ref>16:166을 참조하라.</ref>의 도리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ref>논어 12:2.</ref>는 것은 남을 사랑할 때의 서(恕)이다. 又曰: “推己及物之謂恕. 聖人則不待推, 而發用於外者皆恕也. ‘己所不欲, 勿施於人’, 則就愛人上說. 聖人之恕, 則不專在愛人上見, 如絜矩之類是也.” 高(65때). '''다시 말함: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을 서(恕)라고 한다. 그러나 성인(聖人)은 (의식적으로) 미룰[推] 필요 없이도 밖으로 드러나 작용하는 것이 모두 서(恕)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은 남을 사랑하는[愛人]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서(恕)가 전적으로 남을 사랑하는 측면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니, 혈구(絜矩)같은 종류가 그것이다. 고(高)의 기록. (65세) *  16:205 問: “‘所藏乎身不恕’處, ‘恕’字還只就接物上說, 如何?” '''질문: '몸에 지닌 바를 서(恕)하지 못하다'<ref>대학 전 9장. '몸에 지닌 바'란 자기 자신에게 선함은 있고 악함은 없음을 말한다. 서(恕)는 자기 자신의 유선무악한 상태에 기반하여 남에게 선하기를 요구하고 남의 악함을 꾸짖음을 말한다.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ref>에서, '서(恕)'자는 단지 타인을 응대하는[接物] 차원에서만 설명한 것입니까? 曰: “是就接物上見得. 忠, 只是實心, 直是眞實不僞. 到應接事物, 也只是推這箇心去. 直是忠, 方能恕. 若不忠, 便無本領了, 更把甚麽去及物! 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程子'를 '伊川'으로 썼음.</ref>說: ‘“維天之命, 於穆不已”, 忠也, 便是實理流行<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여섯글자가 주석처리됨.</ref>; 乾道變化, 各正性命”, 恕也, 便是實理及物<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여섯글자가 주석처리됨.</ref>.’” '''대답: 타인을 응대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도리를) 볼 수 있다. 충(忠)은 단지 진실한 마음(實心)일 뿐이니, 그저 진실되어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타인을 응대하고 사안에 대처하는 때에도 역시 그저 이 (진실한) 마음을 미루어 나아가는 것 뿐이다. 충(忠)하기만 하면 곧 서(恕)할 수 있다. 만약 충(忠)하지 못하면 근본(本領)이 없게 되니, 다시 무엇을 가지고 타인에게 미치겠는가?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하늘의 명(命)이여,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도다'<ref>시경 주송 천지명. 중용 제 26장에서 재인용.</ref>는 충(忠)이니, 진실한 이치(實理)가 두루 작동하는(流行) 것이다. '건의 도리(乾道)가 변화하여 만물 각각의 성명(性命)을 바르게 한다'<ref>주역 건괘 단전.</ref>는 서(恕)이니, 진실한 이치(實理)가 만물에 미치는 것이다."<ref>이정외서 7:2. 참고로 이정외서의 7:1에서 기록한 정호의 말은 이것과 약간 다르다. "명도가 말함: '하늘의 명이여,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도다'라 하니, 충하지 않은가? '천지가 변화하여 초목이 무성하네'라 하니, 서하지 않은가?(明道曰: 維天之命, 於穆不已, 不其忠乎? 天地變化, 草木蕃, 不其恕乎?)"</ref>라고 했다. 守約問: “恁地說, 又與‘夫子之道, 忠恕而已矣’之‘忠恕’相似.” '''수약(守約)의 질문: 그렇게 설명하시니, '부자(夫子)의 도(道)는 충서(忠恕)일 뿐이다'<ref>논어 4:15.</ref>에서의 '충서(忠恕)'와도 비슷합니다. 曰: “只是一箇忠恕, 豈有二分<ref>조선고사본, 성화본, 조선정판본에서는 '分'을 '樣'으로 썼음.</ref>! 聖人與常人忠恕也不甚相遠.” '''답함: 똑같은 충서(忠恕)일 뿐이니 어찌 두 가지로 나뉘겠는가? 성인(聖人)과 보통 사람의 충서(忠恕) 사이의 거리 역시 그다지 멀지 않다. 又曰: “盡己, 不是說盡吾身之實理, 自盡便是實理. <此處切恐有脫誤.> 若有些子未盡處, 便是不實. 如欲爲孝,<ref>조선고사본은 여기서부터 이하가 다르다. '只略略有兩三分孝, 更有七分未盡, 便是不實. 略略有一分弟, 更九分以上未盡, 亦是不實'</ref> 雖有七分孝, 只中間有三分未盡, 固是不實. 雖有九分孝, <一作弟> 只略略有一分未盡, 亦是不實.”<ref>조선고사본에서는 '雖有'부터 '亦是不實'까지를 지록에서 이와 같이 기록했다며 주석처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통행본은 조선고사본의 본문을 주석으로 보내고 주석을 본문화한 것이다.</ref>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자기 자신을 다한다[盡己]는 것은<ref>충(忠)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이다.</ref> 내 몸의 진실한 이치(實理)를 다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다하는 것[自盡]이 바로 진실한 이치(實理)이다. <이 부분은 기록에 탈락이나 오류가 있는 듯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곧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효도를 하고자 할 때 비록 70%는 효성스럽다 해도 그 속에 30%의 미진함이 있다면 정말로 진실하지 못한(不實) 것이다. 비록 90%는 효성스럽다 해도(孝)<다른 판본에서는 '공경함(弟)'>, 대략 10%의 미진함이 있다면 이 또한 진실하지 못한(不實)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06 李德之問: “‘齊家’·‘治國’·‘平天下’三章, 看來似皆是恕之功用.” '''이덕지(李德之)의 질문: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세 장(章)은 제가 보기에 모두 서(恕)의 효과(功用)인 듯합니다. 曰: “如‘治國’·‘平天下’兩章是此意. ‘治國’章乃責人之恕, ‘平天下’章乃愛人之恕. ‘齊家’一章, 但說人之偏處.” 蓋卿(65때). '''대답: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 두 장은 그런 의미이다. '치국(治國)' 장은 남을 꾸짖을 때의 서(恕)이고, '평천하(平天下)' 장은 남을 사랑할 때의 서(恕)이다. '제가(齊家)' 장은 단지 사람이 치우치는 부분을 설명했을 뿐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때). *  16:207 仁甫問“治國在齊其家”. '''인보(仁甫)가 '치국재제기가(治國在齊其家)'에 대해 질문함. 曰: “這箇道理, 卻急迫不得. 待到他日數足處, 自然通透. 這箇物事, 只是看得熟, 自然有條理. 上面說‘不出家而成敎於國’, 此下便說其所以敎者如此, 這三者便是敎之目. 後面卻是說須是躬行, 方會化得人. 此一段只此兩截如此.”賀孫(62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로 긴 주석이 달려있다. '道夫錄同而畧云: 仁甫問治國在齊其家一章. 曰: 上面說不出家而成敎於國, 此下便說其所以敎者如此. 這三事是敎之目, 後面却是說須是躬行, 方會化得人.'</ref> '''대답: 이 도리(道理)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 훗날 (집안을 다스리는 노력의) 시간이 충분히 쌓이면 저절로 (나라를 다스리는 단계까지) 훤히 통하게 될 것이다. 이 일(物事)은 그저 익숙하게 보기만 하면[看得熟] 자연스레 일관된 맥락(條理)을 파악할 수 있다. 윗부분에서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라에서 교화가 이루어지게 한다.'고 했고, 그 아래에서는 그 교화의 구체적인 방법이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하였으니, 이 세 가지<ref>효(孝), 제(弟), 자(慈)이다.</ref>가 바로 교화의 항목들이다. 뒷부분에서는 반드시 몸소 실천해야만[躬行] 비로소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다[化得人]고 말한다. 이 단락(一段)은 이렇게 이 두 부분[兩截]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ref>효, 제, 자를 설명한 부분 까지가 한 부분, 그 이후가 한 부분이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08 因講“禮讓爲國”, 曰: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自家禮讓有以感之, 故民亦如此興起. 自家好爭利, 卻責民間禮讓, 如何得他應! 東坡策制<ref>여유량본과 하서린본(전경당본) 이전에는 모두 '策別'로 썼다. '책제'는 정책제안문, '책별'은 그러한 정책제안문 가운데 소식의 문집에서 부록으로 처리된 부분이라는 뜻이다.</ref>‘敦敎化’中一段, 說得也好, 雖說得粗, 道理卻是如此. <“敦敎化”云“欲民之知信, 莫若務實其言; 欲民之知義, 莫若務去其貪”云云.> 看道理不要玄妙, 只就粗處說得出便是. 如今官司不會制民之産, 民自去買田, 又取他牙稅錢. 古者群飮者殺. 今置官誘民飮酒, 惟恐其不來, 如何得民興於善!” 淳(61·70때). '''예(禮)와 겸양(讓)으로 나라를 다스린다'<ref>논어 4:13.</ref>를 강론하다 말함: '한 집안이 인(仁)하면 온 나라에 인(仁)한 기풍이 일어나고, 한 집안이 겸양(謙讓)하면 온 나라에 겸양(謙讓)하는 기풍이 일어난다.'<ref>대학 전 9장.</ref> 자기 자신이 예(禮)를 지키고 겸양(讓)하여 백성을 감동시킬 수 있으므로 백성 또한 이와 같이 흥기(興起)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이익 다투기를 좋아하고 백성들에게는 거꾸로 예를 지키고 겸양하라고 요구하면서 어찌 그들이 (교화에) 호응하기를 바라는가? 동파(東坡)<ref>소식(蘇軾, 1036-1101).</ref>의 책제(策制) '교화를 돈독히 함(敦敎化)'<ref>사고전서본 동파전집 권 47에 보인다. 곳에 따라 이 문장의 제목을 '숭교화(崇敎化, 교화를 드높임)'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남송 광종(光宗)의 이름 '돈(惇)'을 피휘한 것이다.</ref> 중 한 단락도 설명을 잘 했는데, 비록 거칠게(粗) 설명하긴 했지만 도리는 실로 이와 같다. <'돈교화'에 이르기를: 백성이 신의(信)를 알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말이 신실해지도록 힘씀만 한 것이 없고, 백성이 의리(義)를 알기를 바란다면 자신의 탐욕을 제거하기에 힘씀만 한 것이 없다. (생략)> 도리를 볼 때는 현묘(玄妙)함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대략적인(粗) 차원에서 설명해 낼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다.<ref>앞서 소식의 거친(대략적인) 설명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ref> 예를 들어 요즘 관청(官司)은 백성의 생업 기반(民之産)을 마련해주지[制] 못하여<ref>경작지를 나누어주지 못한다는 말이다.</ref> 백성들이 스스로 가서 밭을 사는데도 도리어 그들에게서 거간세(牙稅錢)<ref>'아항(牙行)'은 중개사무소, '아인(牙人)'은 중개업자이다. 아세전은 이런저런 중개 업자들에게 중개면허를 발급하면서 수취하는 영업세의 일종이다. 일역판에서는 건염이래계년요록의 건염 2년조와 3년조의 몇몇 부문을 인용하여 여기서 주희가 말한 아인세란 부동산 매매시의 취등록세와 유사한 세목이었을 거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를 거두어들인다. 옛날에는 무리지어 술 마시는 자는 죽였는데,<ref>서경 주서 주고.</ref> 지금은 관서를 설치하여<ref>주로 각고(榷酤)라고 부르는 술 전매제도를 말한다. 각은 전매를, 고는 술의 매매를 뜻한다. 송조의 술 전매에 관해서는 송사 식화지의 관련 조목을 참조하라.</ref> 백성들이 음주하도록 유도하고 그저 백성들이 와서 안 마시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으니, 어찌 백성들이 선(善)한 기풍을 일으키기를 바라는가? 순(淳)의 기록. (61세, 70세)<ref>이 조목은 26:114와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  16:209 問: “齊家·治國之道, 斷然‘是父子兄弟足法, 而後人法之’. 然堯舜不能化其子, 而周公則上見疑於君, 下不能和其兄弟, 是如何?” '''질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의 도리는 단연코 '부자형제(父子兄弟)가 충분히 본받을 만한 뒤에야 사람들이 그들을 본받는다'<ref>대학 전 9장. 시경 조풍(曹風) 시구(鳲鳩)편을 인용한 뒤에 붙인 코멘트이다.</ref>입니다. 그러나 요(堯)와 순(舜)임금은 자기 아들을 교화시키지 못했고,<ref>요의 아들 단주와 순의 아들 상균은 못난 아들의 대명사이다.</ref> 주공(周公)은 위로는 임금<ref>주공은 섭정으로서 자신의 조카인 성왕을 보좌했는데 숙부가 조카의 왕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ref>에게 의심을 받았으며 아래로는 그 형제<ref>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공의 형제들로 주공을 의심하여 반란을 일으켰다.</ref>들과 화합하지 못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聖人是論其常, 堯舜是處其變. 看他‘烝烝乂, 不格姦’, 至於‘瞽瞍底豫’, 便是他有以處那變處. 且如他當時被那兒子恁地, 他處得好<ref>조선고사본은 '他却處得那兒子好'라고 썼다.</ref>, 不將天下與兒子<ref>조선고사본은 '他不將那天下與那兒子'라고 썼다.</ref>, 卻傳與賢<ref>조선고사본은 '後却傳與那賢'라고 썼다.</ref>, 便是他處得那兒子好. 若堯當時把天下與丹朱<ref>조선고사본은 '若使堯當時把个天下與丹朱'라고 썼다. 또, '堯'자 뒤에 빈 칸이 하나 있다.</ref>, 舜把天下與商均, 則天下如何解安! 他那兒子如何解寧貼! 如周公被管蔡恁地, 他若不去致辟于商, 則周如何不擾亂! 他後來盡死做這一著時, 也是不得已著恁地. 但是而今且去理會常倫. 而今如何便解有箇父如瞽瞍, 有箇兄弟如管蔡. 未論到那變處.” 賀孫(62이후). '''대답: 성인(聖人)은 그 원칙을 논한 것이고,<ref>대학 전 9장의 해당 구문을 두고 말한 것이다.</ref> 요·순은 임기응변한 것이다. 순(舜)임금이 '(자기 아버지인 고수를) 서서히 다스려 간악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여'<ref>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ref> 마침내 '고수(瞽瞍)가 행복해지는'<ref>맹자 4A:28.</ref>데 이른 것을 보면, 이는 그가 변칙적인 상황에 대처해낸 것이다. 또 그는<ref>요임금을 말하는 듯하다.</ref> 당시 자기 아들에게 저런 일을 당하였는데도 잘 대처하여 천하를 자기 아들에게 주지 않고 도리어 현자<ref>순임금을 말하는 듯하다.</ref>에게 주었으니, 이는 자기 아들에게 잘 대처한 것이다. 만약 요임금이 당시에 천하를 (자기 아들인) 단주(丹朱)에게 주고 순임금이 천하를 (자기 아들인) 상균(商均)에게 주었더라면 천하가 어찌 평안할 수 있었겠는가? 그 아들들이 어찌 안녕할 수 있었겠는가? 예컨대 주공은 관숙과 채숙에게 저런 일을 당하였는데, 만약 그가 상(商) 땅에서 (반란에 실패하여 체포된 관숙과 채숙 등)을 처형하지[致辟] 않았더라면 주(周)나라가 어찌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ref>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숙은 죽였고 채숙은 가택연금시켰고 곽숙(霍叔)은 서인으로 강등시켰다.</ref> 그가 후에 죽음을 무릅쓰고[盡死] 이 한 수(這一著)를 두었을 때에도 역시 부득이하여 그렇게 했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우선 원칙적인 윤리[常倫]를 이해하도록 하라. 지금 당장 어찌 고수(瞽瞍)와 같은 아버지가 있으며, 관숙이나 채숙과 같은 형제가 있겠는가? 아직 변칙적인 상황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ref>15:133과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 傳十章釋治國平天下 == '''전 10장 치국평천하 해석. *  16:210 或問: “大學旣格物·致知了, 又卻逐件各有許多工夫在.” '''누군가의 질문: 대학(大學)에서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한 다음에도 다시 또 각 단계를 따라 각각 많은 공부(工夫)가 있습니다. 曰: “物格·知至後, 其理雖明, 到得後來齊家·治國·平天下, 逐件事又自有許多節次, 須逐件又徐徐做將去. 如人行路, 行到一處了, 又行一處. 先來固是知其所往了, 到各處又自各有許多行步. 若到一處而止不進, 則不可; 未到一處而欲踰越頓進一處, 亦不可.” 璘(62때). '''대답: 사물을 탐구하고(格物) 앎을 지극히하여(致知) 그 이치에 밝아졌다 하더라도 나중에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게 되면 또 각각의 단계에 따라 나름의 다양한 절차(節次)가 있으니, 모름지기 다시 각 단계별로 하나씩 천천히 해 나가야 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먼 길을 갈 적에 한 곳에 도달하고 난 다음에 다시 다음 장소로 가는 것과 같다. 물론 가장 먼저 최종 목적지[所往]를 알아야 하지만,<ref>격물치지를 말한 것이다.</ref> 각각의 중간 지점에 도착하는 데에도 또 각자 가야할 여정[行步]이 있는 것이다. 중간 목적지 한 곳에 도착한 뒤에 그대로 멈추고 나아가지 않아서도 안 되고, 도착하기도 전에 해당 중간 목적지를 뛰어넘어[踰越] 바로 다음 목적지로 나아가려[頓進] 해도 안 된다. 린(璘)의 기록. (62세) *  16:211 味道問“平天下在治其國”. '''미도(味道)<ref>섭하손.</ref>가 '평천하재치기국(平天下在治其國)'에 관하여 질문함. 曰: “此<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三'이 있다.</ref>節見得上行而下效, 又見得上下雖殊而心則一.” 道夫(60이후). '''대답: 이 (세) 구절<ref>대학 전 10장은 '위에서 ㅇㅇ을 하면 아래에서 ㅇㅇ을 본받아 흥기하고'와 같은 구조를 세 번 반복하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세 구절'이라고 한 것이다.</ref>에서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음을 볼 수 있고, 또 위와 아래가 비록 달라도 그 마음은 하나임을 볼 수 있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12 問“平天下在治其國”章. ''' '평천하재치기국(平天下在治其國)' 장(章)에 대한 질문. 曰: “此三句見上行下效, 理之必然, 又以見人心之所同. ‘是以君子有絜矩之道’, 所以以己之心度人之心, 使皆得以自盡其興起之善心. 若不絜矩, 則雖躬行於上, 使彼有是興起之善心, 而不可得遂, 亦徒然也.” '''대답: 이 세 구문<ref>노노(老老), 장장(長長), 휼고(恤孤)를 말한다.</ref>은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 이치상 필연임을 보여주며, 또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모두 똑같이 여기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모두 각자 그 선한 마음을 온전히 일으킬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만약 혈구(絜矩)하지 않으면 비록 위에서 몸소 행하여 저들로 하여금 이러한 선한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그 선한 의사대로 (실제로) 성취하게 할 수 없으니 역시 헛될 뿐이다. <ref>선한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은 임금이 자기 가족에게 잘 하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자신도 자기 가족에게 잘 해야겠다는 의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지를 실천에 옮기려면 물질적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임금의 역할은 그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조건을 만족시켜주려는 동기는 타인의 처지와 자신의 처지를 동치시키는 마음, 곧 공감과 연민에서 나온다. 이 공감과 연민이 바로 혈구의 도리이다.</ref> 又曰: “因何恁地上行下效? 蓋人心之同然. 所以絜矩之道: 我要恁地, 也使彼有是心者亦得恁地. 全章大意, 只反覆說絜矩. 如專利於上, 急征橫斂, 民不得以自養, 我這裏雖能興起其善心, 濟甚事! 若此類, 皆是不能絜矩.” 賀孫(62이후). '''또 말함: 어찌하여 이처럼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가? 이는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혈구(絜矩)의 도리란, 내가 이렇게 하고 싶으면 똑같이 이러한 마음을 가진 저 사람 또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체 장(章)의 큰 뜻은 혈구(絜矩)에 대한 반복 설명일 뿐이다. 만약 위에서 이익을 독점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 백성이 스스로 봉양할 수 없다면, 내가 여기에서 비록 선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종류는 모두 혈구(絜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13 才卿問: “‘上老老而民興孝’, 恐便是連那老衆人之老說?” '''재경(才卿)의 질문: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孝)심을 일으키고’라는 구절은, (윗사람 본인 집안의 노인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집안의 노인들을 노인으로 대접한다는 설명<ref>맹자 1A:7에서의 설명과 같은 취지로 이해한 것이다. 맹자에서는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는 그 마음으로 남의 노인도 노인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 전 10장의 혈구지도의 취지는 이와 다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의 노인을 잘 대접하는 것을 보고 아랫사람이 역시 자기 집안의 노인을 잘 대접한다는 것이다.</ref>인 듯합니다. 曰: “不然. 此老老·長長·恤孤方是就自家身上切近處說, 所謂家齊也. 民興孝·興弟·不倍此方是就民之感發興起處, 說治國而國治之事也. 緣爲上行下效, 捷於影響, 可以見人心之所同者如此. ‘是以君子必有絜矩之道也’, 此一句方是引起絜矩事. 下面方解說絜矩, 而結之云: ‘此之謂絜矩之道.’ 蓋人心感發之同如此, 所以君子須用推絜矩之心以平天下, 此幾多分曉! 若如才卿說, 則此便是絜矩, 何用下面更絮說許多. 才卿不合誤曉老老·長長爲絜矩, 所以差也. 所謂‘文王之民無凍餒之老者’, 此皆是絜矩已後事, 如何將做老老說得!” 僩(69이후). '''대답: 그렇지 않다. 여기서 노인을 노인대접하고(老老) 어른을 어른대접하고(長長) 고아를돌본(恤孤)다는 것은 바로 자기 몸에 가까운(切近) 지점에서 설명한 것이니, 이른바 집안을 다스린다[家齊]는 것이다. 백성들이 효(孝)심을 일으키고, 공경(弟)심을 일으키고, 서로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것은 바로 백성이 감발하여 흥기하는 차원에서 나라를 다스려 나라가 다스려지는 일[治國而國治之事]을 설명한 것이다.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 빠른[捷於影響] 데에서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모두 똑같이 여기는 바가 이와 같음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는 구절이 혈구(絜矩)의 일을 이끌어내고, 아랫부분에서는 혈구(絜矩)를 해설한 뒤에 ‘이를 혈구(絜矩)의 도리라고 한다’고 결론짓는다. 대개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감발하는 것이 이렇게 똑같으므로 군자는 반드시 혈구(絜矩)하는 마음을 미루어 천하를 평정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분명한가! 만약 재경(才卿)의 설명과 같다면 이것<ref>노노(老老)와 장장(長長) 등.</ref>이 곧 혈구(絜矩)이니, 아랫부분에서 다시 군더더기처럼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겠나? 재경(才卿)이 적절치 못하게도 노노(老老)·장장(長長)을 혈구(絜矩)라고 오인한 것이니, 그래서 틀린 것이다. 이른바 ‘문왕(文王)의 백성 중에는 얼고 굶주리는 노인이 없었다’<ref>맹자 7A:22.</ref>는 것은 모두 혈구(絜矩)한 이후의 일이니, 어찌 이것을 노노(老老)의 사례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14 老老興孝, 長長興弟, 恤孤不倍, 這三句是說上行下效底道理. “是以君子有絜矩之道”, 這卻是說到政事上. “是以”二字, 是結上文, 猶言君子爲是之故, 所以有絜矩之道. 旣恁地了, 卻須處置敎他得所, 使之各有以遂其興起之心始得. '''노인을 노인대접(老老)하면 효심(孝)이 흥하고, 어른을 어른대접(長長)하면 공경심(弟)이 흥하고, 고아를 돌보면(恤孤) (사람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不倍]. 이 세 구문은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上行下效] 도리를 설명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를 가진다’는 정사(政事)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이 때문에[是以]’라는 두 글자는 윗글을 맺는 표현으로, 군자는 이러한 까닭으로 혈구(絜矩)의 도리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미 이렇게 되었다면, 모름지기 그들이 제자리를 얻도록 잘 처치(處置)하여 각자 그 일으킨 의사를 성취할 수 있게[遂其興起之心] 해야만 된다. *  16:215 所謂絜矩者, 矩者, 心也, 我心之所欲, 卽他人之所欲也. 我欲孝弟而慈, 必欲他人皆如我之孝弟而慈. “不使一夫之不獲”者, 無一夫不得此理也. 只我能如此, 而他人不能如此, 則是不平矣. 人傑(51이후). '''이른바 혈구(絜矩)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구(矩)는 마음[心]<ref>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자기 부모를 충분히 제대로 대접하고 아이들을 충분히 제대로 지원해주고 싶어하는 욕망을 말한다.</ref>이니,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ref>내가 내 아이를 지원해주고 싶은 만큼 남도 자기 아이를 지원해주고 싶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ref> 내가 (원껏) 효도하고 공경하며 자애롭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원껏) 효도하고 공경하며 자애로울 수 있기를 원한다.‘한 사람의 지아비라도 얻지 못함이 없게 한다[不使一夫之不獲]’는 것은, 한 사람의 지아비라도 이 이치를 얻지 못함이 없었다는 말이다. 단지 나만 이처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이처럼 할 수 없다면, 이는 불평(不平)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6:216 問: “絜矩之道, 語脈貫穿如何? 久思未通.” '''질문: 혈구(絜矩)의 도리는 말의 맥락을 어떻게 관통합니까?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는데도 통하지 않습니다. “<ref>조선고사본은 이 지점에 '선생은 자못 의아해 하며 "어째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가?"라고 말했다(先生頗訝以爲如何如此難曉).' 열 두 자가 더 있다.</ref>上面說人心之所同者旣如此, 是以君子見人之心與己之心同, 故必以己度人之心, 使皆得其平. 下面方說所以絜矩如此.” 賀孫(62이후). '''대답: 윗부분에서 설명하기를, 사람들의 마음(人心)이 (원하는 바가 서로) 이정도로 똑같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군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자기 마음과 같음을 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以己度人之心]<ref>여기서의 '마음'은 모두 욕망을 말한다는 것에 유의하라. 앞서 215조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모두 균평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아랫부분에서 와서야 비로소 혈구(絜矩)하는 방법이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한다.<ref>아랫부분이란 대학 전 10장의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래사람을 시키지 말고...(所惡於上, 毋以使下)' 이하를 말한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17 問: “‘上老老而民興孝’, 下面接‘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似不相續, 如何?” '''질문: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킨다’는 구절 아래에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를 가진다’를 붙이면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한데 어째서 이런 것입니까? 曰: “這箇便是相續. 絜矩是四面均平底道理, 敎他各得老其老, 各得長其長, 各得幼其幼. 不成自家老其老, 敎他不得老其老; 長其長, 敎他不得長其長; 幼其幼, 敎他不得幼其幼, 便不得.” 㝢(61이후). '''대답: 그게 바로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혈구(絜矩)는 모든 방면으로 균평한 도리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할 수 있게 하고, 각자 자기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할 수 있게 하고, 각자 자기 아이를 아이로 대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ref>이전 몇 조목에서 강조했듯이 이는 백성들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는 말이다.</ref> 설마하니 자기 집 노인만 노인으로 대접하고 남들은 자기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할 수 없게 하고, 자기 집 어른만 어른으로 대접하고 남들은 자기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지 못하게 하며, 자기 집 아이만 아이로 대접하고 남들은 자기 아이를 아이로 대접하지 못하게 할 셈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  16:218 仁甫問絜矩. '''인보(仁甫)가 혈구(絜矩)에 관하여 질문함. 曰: “上之人老老·長長·恤孤, 則下之人興孝·興弟·不倍, 此是說上行下效. 到絜矩處, 是就政事上言. 若但興起其善心, 而不有以使之得遂其心, 則雖能興起, 終亦徒然. 如政煩賦重, 不得以養其父母, 又安得以遂其善心! 須是推己之心以及於彼, 使之‘仰足以事父母, 俯足以育妻子’, 方得. 如詩裏說大夫行役無期度, 不得以養其父母. 到得使下, 也須敎他內外無怨, 始得. 如東山·出車·杕杜諸詩說行役, 多是序其室家之情, 亦欲使凡在上者有所感動.” '''대답: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고[老老],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며[長長], 고아를 돌보면[恤孤], 아랫사람들의 효심(孝)이 흥하고, 공경심(弟)이 흥하며, 서로 저버리지 않게 되니[興孝·興弟·不倍], 이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는 것[上行下效]을 말한다. 혈구(絜矩) 같은 경우는 정사(政事)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다. 만약 단지 그 선한 마음을 일으키기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이룰 수 있게[得遂其心] 해주지 않는다면 설령 흥기시킬 수 있었다 하더라도 역시 끝내는 헛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정사가 번거롭고 부세가 무거워 자기 부모를 봉양할 수 없다면, 다시 어떻게 그 (효도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ref>여기서는 욕망이라는 뜻이다.</ref>을 이룰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살리기에 충분하게[仰足以事父母, 俯足以育妻子]’ 해야 된다.<ref>맹자 1A:7</ref> 예컨대 시경(詩經)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大夫)가 기약 없이 행역(行役)하면'<ref>시경 왕풍 군자우역편의 모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군자를 대부로 바꾼 것 이외에는 동일하다. 행역은 징집되어 군에 복무함을 말한다.</ref> 그 부모를 봉양할 수 없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경우 역시 그들로 하여금 안팎으로 원망이 없게 해야 된다. 〈동산(東山)〉<ref>시경 빈풍</ref>, 〈출거(出車)〉<ref>시경 소아</ref>, 〈체두(杕杜)〉<ref>시경 당풍</ref> 등 여러 시(詩)에서 행역(行役)에 대해 말한 것을 보면 그 가족의 정을 서술한 것이 많은데, 이 또한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끼고 움직이는 바가 있게 하려고 의도한 것이다. 又曰: “這處正如齊宣王愛牛處一般: 見牛之觳觫, 則不忍之心已形於此. 若其以釁鍾爲不可廢而復殺之, 則自家不忍之心又只是空. 所以以羊易之, 則已形之良心不至於窒塞, 而未見之羊, 殺之亦無害, 是乃仁術也. 術, 是做得巧處謂之術.” '''다시 말함: 이 부분은 제선왕(齊宣王)이 소를 아낀 이야기와 꼭 같다.<ref>맹자 1A:7</ref> 소가 벌벌 떠는 것[觳觫]을 보고서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이미 여기에 드러났다. 만약 흔종(釁鍾) 의식을 폐할 수 없다 하여 도로 소를 죽였다면, 자기의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도 모두 헛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이니[以羊易之], (이렇게 되면) 이미 드러난 좋은 마음[良心]이 (바깥으로 통하지 못하고 마음속 어느 지점에서) 막혀버리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직접 눈으로) 본 적 없는 양은 죽여도 무방하니, 이것이 바로 인(仁)한 방법[仁術]이다. 술(術)이란 교묘하게 대처하는 것을 이른다. 又曰: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是兩摺說, 只以己對人而言. 若絜矩, 上之人所以待己, 己又所以待人, 是三摺說, 如中庸‘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 所求乎臣以事君未能也’, 一類意.” '''다시 말함: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영달하고자 하면 남을 영달하게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ref>논어 6:28</ref>는 이중[兩摺]으로 설명한 것으로, 단지 자신과 남을 대립시켜 말한 것뿐이다. 혈구(絜矩)의 경우는 윗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을 (가지고) 내가 다시 (나의 아래)사람을 대하는 것이니, 이는 삼중[三摺]으로 설명한 것으로,<ref>나의 윗사람, 나, 나의 아랫사람이라는 3층구조이다. 앞서 논어 인용문의 경우는 나와 남이라는 2층 구조이다.</ref> 중용(中庸)의 ‘(내가 내) 자식에게 요구하는 수준으로 아버지를 섬기지 못했고[所求乎子以事父未能也], (내가 내) 신하에게 요구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섬기지 못했다[所求乎臣以事君未能也]’는 것과 같은 취지이다.<ref>중용 제 13장.</ref> 又曰: “晁錯言‘人情莫不欲壽, 三王能生之而不傷’云云, 漢詔云云, ‘孝心闕焉’, 皆此意.” 賀孫(62이후). <ref>조선고사본은 이 지점에서 한서의 조서 내용을 주석으로 제시하고 있다. '今天下孝子順孫願自竭盡以承其親,外迫公事,內之資財,是以孝心闕焉。朕甚哀之。 爲復子若孫,令得身帥妻妾遂其供養之事。' 내용은 통행본 한서의 기사를 축약한 것이다. '內之資財'의 '之'는 '乏'의 오기이다. 다음 주석을 참조하라.</ref> '''또 말함: “조조(晁錯)가 ‘사람의 심정은 장수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는데, 삼왕(三王)은 능히 살려주고 해치지 않았습니다[人情莫不欲壽, 三王能生之而不傷]’ 운운한 것과,<ref>한서 권 19 조조전. '詔策曰: 通於人事終始. 愚臣竊以古之三王明之. 臣聞三王臣主俱賢, 故合謀相輔, 計安天下, 莫不本於人情. 人情莫不欲壽, 三王生而不傷也.'주자어류의 인용구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동소이하다.</ref> 한서의 조서(詔書)에서 운운한 ‘이에 효심(孝心)을 결여하고 있다[孝心闕焉]’<ref>한서 권 6 무제본기 건원원년 하4월 기사(己巳) 조에 실린 조서의 내용이다. '詔曰:「古之立教,鄉里以齒,朝廷以爵,扶世導民,莫善於德。然則於鄉里先耆艾,奉高年,古之道也。今天下孝子順孫願自竭盡以承其親,外迫公事,內乏資財,是以孝心闕焉。朕甚哀之。民年九十以上,已有受鬻法,為復子若孫,令得身帥妻妾遂其供養之事。'</ref> 등이 모두 이러한 취지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19 問: “絜矩一條, 此是上下四方度量, 而知民之好惡否?” '''질문: 혈구(絜矩) 조목은 상하사방(上下四方)을 헤아려서 백성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까? 曰: “知在前面, 這處是推. ‘老老而民興孝, 長長而民興弟, 恤孤而民不倍’, 這處便已知民之好惡與己之好惡相似. ‘是以君子有絜矩之道’, 便推將去, 緊要在‘毋以’字上.” '''대답: 아는 것[知]은 그 앞부분에 있고, 이곳은 미루어 확장하는[推] 곳이다.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키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경심(弟)을 일으키며, 고아를 돌보면 백성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이미 백성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흡사함을 안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는 곧 미루어 나아가는 것이니, 그 핵심은 '~로써 ~하지 말고[毋以]'라는 표현에 있다.<ref>예컨대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을 아래사람에게 시키지 말고...(所惡於上, 毋以使下)'</ref> 又曰: “興, 謂興起其善心; 遂, 謂成遂其事.” '''다시 말함: '흥(興)'은 그 선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이르고, '수(遂)'는 그 일을 이루는 것을 이른다.<ref>'흥'은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부모를 편안히 모시고 아이를 잘 품어주고 싶다는 소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수'는 그런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다. '수'자는 현행본 대학장구에는 보이지 않는다. 대학혹문 전 10장 부분 및 어류 16:212, 214, 218, 221, 249 등 여러 곳에서 일관되게 이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장구의 예전 판본에서 쓰였으나 후에 개정하면서 삭제했을지도 모르겠다.</ref> 又曰: “爲國, 絜矩之大者又在於財用, 所以後面只管說財. 如今茶鹽之禁, 乃是人生日用之常, 卻反禁之, 這箇都是不能絜矩.”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나라를 다스림[爲國]에 있어서 혈구(絜矩)의 큰 부분은 또 재정(財用)에 있으니, 그래서 이 뒤로 계속 재물(財)에 대해 말한 것이다.<ref>전 10장에서 논지를 전개하는 순서를 말한 것이다.</ref> 오늘날 차(茶)와 소금(鹽)에 대한 금지조치<ref>금지란 전면 금지가 아니라 사적 생산과 매매에 대한 금지조치이다. 두 가지 모두 근대이전 중원 제국들이 즐겨 전매했던 품목이다. 일역판은 송회요집고 염법10의 한 대목을 인용하여 주희 당시 국가 세입의 절반이 소금 전매에서 나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대의 차염 전매에 관한 자세한 논의로는 김영제, 당송재정사(1995), 180쪽을 참조하라.</ref> 같은 경우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도리어 금하였으니, 전혀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20 “上老老而民興孝”, 是化; 絜矩處, 是處置功用處. 振(미상). ''' '위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킨다'는 것은 교화[化]이고, (그 뒤에 이어지는) 혈구(絜矩) 부분은 (구체적인 조치를) 시행(處置)하여 효과(功用)를 보는 지점이다. 진(振)의 기록. (미상) *  16:221 問絜矩之道. '''혈구의 도리에 관한 질문. 曰: “能使人興起者, 聖人之心也; 能遂其人之興起者, 聖人之政事也.” 廣(65이후). '''대답: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성인(聖人)의 마음이고, 그들이 일으킨 선한 마음을 성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성인의 정사(政事)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6:222 “平天下, 謂均平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此與中庸所謂‘所求乎臣, 以事君未能’者同意. 但中庸是言其所好者, 此言其所惡者也.” '''천하를 평정한다[平天下]는 것은 고르고 평평하게 함[均平]을 이른다.<ref>'平'은 물이 요동치지 않아 수면이 평평한 호수나 바다의 이미지가 있다. '평정한다'로 번역할 경우 온 세상이 마치 그러한 표면처럼 안정된 상태에 진입함을 말한다. 이러한 평평함은 각 개체간의 격차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됨을 의미하므로 '균평하다'나 '공평하다'로 번역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ref>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시키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이것은 《중용》에서 이른바 '(내가 내) 신하에게 요구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섬기지 못했다'<ref>중용 제 13장.</ref>는 것과 같은 뜻이다. 다만 《중용》은 그 좋아하는 바를 가지고 말한 것이고, 여기서는 그 싫어하는 바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問: “前後左右何指?” '''질문: 전후좌우<ref>대학 전 10장에서 혈구지도를 설명한 부분은 화자의 위치를 중앙으로 상정하고 '내가 나의 앞사람에게 바라지 않는 것을 뒷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와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고 있다.</ref>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曰: “譬如交代官相似. 前官之待我者旣不善, 吾毋以前官<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之'자가 있다.</ref>所以待我者待後官也. 左右, 如東鄰西鄰. 以鄰國爲壑, 是所惡於左而以交於右也. 俗語所謂‘將心比心’, 如此, 則各得其平矣.” '''대답: 비유하자면 관직을 교대하는 관리와 비슷하다. 전임 관리가 나를 대하는 것이 이미 좋지 않았다면, 나는 전임 관리가 나를 대한 방식으로 후임 관리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 좌우(左右)는 동쪽 이웃, 서쪽 이웃과 같다. 이웃 나라를 도랑[壑]으로 삼는 것은<ref>맹자 6B:11. 도랑은 물이 나가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홍수가 났는데 이웃나라 쪽으로 배수되도록 물길을 트면 이웃나라를 도랑으로 삼는 것이니 혈구의 도리가 아니다.</ref>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과 교류하는 꼴이다. 속담에서 이른바 '내 마음을 가지고 남의 마음과 비교해 본다[將心比心]'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각자 모두 공평함을 얻게 될 것이다. 問: “章句中所謂‘絜矩之道, 是使之各得盡其心而無不平也’, 如何?” '''질문: 장구에서 이른바 '혈구의 도리란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자기 마음<ref>소망, 소원 등의 의미이다.</ref>을 원껏 다하여<ref>원껏 효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그 소원을 만족시킨다는 의미이다.</ref> 공평하지 않음이 없게<ref>모두가 원껏 효도한다는 의미에서 공평한 것이다.</ref> 하는 것이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통행본 대학장구의 문구는 이와 조금 다르다. '피아지간에 각각 자기 분수에 따른 소원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상하사방이 균등하고 방정해져서 천하가 평정될 것이다(使彼我之間, 各得分願, 則上下四旁, 均齊方正, 而天下平矣.).'</ref> 曰: “此是推本‘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須是留他地位, 使人各得自盡其孝弟不倍之心. 如‘八十者其家不從政; 廢疾非人不養者, 一子不從政’, 是使其各得自盡也. 又如生聚蕃息, 無令父子兄弟離散之類.” 德明(44이후). '''대답: 이는 근본<ref>효심, 공경심, 동정심 등을 말한다.</ref>을 미루어 확장하는<ref>자기 안에 존재하는 이러한 근본적 감정들을 보고서 백성들에게도 이러한 감정이 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다. 16:219의 유사한 표현을 참조하라.</ref> 부분이다.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심(孝)을 일으키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경심(弟)을 일으키며, 고아를 돌보면 백성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들의 자리[地位]<ref>백성들의 자리이다.</ref>를 남겨주어 그들이 각자 자신의 효심, 공경심,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다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80 세인 자는 그 집안 전체의 징용을 면제하며, 불치의 병에 걸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하는 자는 아들 하나의 징용을 면제한다.'<ref>예기 왕제편. 인용문은 조금 다르다. 예기 쪽은 다음과 같다. '80 세인 자는 아들 하나의 징용을 면제한다. 90 세인 자는 해당 집안 전체의 징용을 면제한다. 불치의 병에 걸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하는 자는 가족 한 명의 징용을 면제한다.(八十者,一子不從政,九十者,其家不從政,廢疾非人不養者,一人不從政.)'</ref>같은 경우도 그들이 각자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다할 수 있게끔 해주려는 것이다. 또 예컨대 '자손을 많이 낳아[生聚蕃息] 부자형제간에 흩어지지 않게 하라'<ref>출전을 알 수 없다. 일역판은 포효숙주의(包孝肅奏議集) 권 7에 실린 상주문 하나에서 '生聚蕃息'을 찾아 인용하고 있으나 뒷부분은 없다.</ref> 등도 같은 취지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6:223 “所惡於上”, “所惡於下”, “所惡於前”, “所惡於後”, “所惡於右”, “所惡於左”, 此數句, 皆是就人身切近處說. <如上文老老·長長·恤孤之意.> 至於“毋以使下”, “毋以事上”, “毋以先後”, “毋以從前”, “毋以交於左”, “毋以交於右”, 方是推以及物之事. 僩(69이후). '''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앞선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뒷선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오른쪽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왼쪽사람에게서 싫었던 것', 이 몇 구절은 모두 자기 몸에 가까운 곳[人身切近處]에서 말한 것이다. <윗글의 노노(老老)·장장(長長)·휼고(恤孤)의 뜻과 같다.> '아랫사람에게 시키지 말며',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뒷선사람에 선행하지 말며, '앞선사람을 좇지 말며', '왼쪽사람과 교류하지 말며', '오른쪽사람과 교류하지 말며'<ref>모두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지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ref>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루어 확장하여 타자에 미치는[推以及物]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24 問絜矩. '''혈구(絜矩)에 관한 질문. 曰: “只把‘上下’·‘前後’·‘左右’等句看, 便見. 絜, 度也. 不是眞把那矩去量度, 只是自家心裏暗度那箇長那箇短. 所謂度長絜大, 上下前後左右, 都只一樣. 心無彼己之異, 只是將那頭折轉來比這頭. 在我之上者使我如此, 而我惡之, 則知在我下者心亦似我如此, 故更不將所責上底人之心來待下人. 如此, 則自家在中央, 上面也占許多地步, 下面也占許多地步, 便均平正方. 若將所責上底人之心來待下, 便上面長, 下面短, 不方了. 下之事我如此, 而我惡之, 則知在我之上者心亦似我如此. 若將所責下底人之心更去事上, 便又下面長, 上面短了. 左右前後皆然. 待前底心, 便折轉來待後; 待左底心, 便折轉來待右, 如此便方. 每事皆如此, 則無所不平矣.” 㝢(61이후). '''대답: 그저 상하(上下), 전후(前後), 좌우(左右) 등의 구문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혈(絜)'은 측량[度] 행위이다. 정말로 저 직각자[矩]<ref>ㄱ 모양의 측정도구이다. 옛말로는 '곱자'이다.</ref>를 가지고 길이를 측량하라는 것은 아니요, 그저 자기 마음속으로 저것은 길고 이것은 짧구나 하고 조용히 재보는[暗度] 것이다. 이른바 '길이를 재고 크기를 헤아린다[度長絜大]'<ref>한나라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의 한 구문을 인용한 것이다.</ref>는 것인데, (재본 결과) 상하전후좌우가 모두 똑같아야 한다. 마음은 남과 내가 다를 게 없으니, 그저 저쪽 편을 가지고 와서 이쪽 편에 대어볼 뿐이다. 내 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이렇게 부리는데 내가 그것을 싫어했다면 내 아래에 있는 사람의 마음 또한 나와 같을 것임을 알 수있으므로 다시는 내가 책망했던 윗사람의 그 마음을 가지고 내 아랫사람을 대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하면 자기 자신이 중앙에 있으면서 위쪽으로도 어느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아래쪽도 어느정도 자리를 차지하여 일정하게 네모반듯하게[均平正方] 된다.<ref>동일한 규격의 정사각형이 전후좌우로 연속적으로 펼쳐진 격자무늬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ref> 만약 (내가) 책망했던 윗사람의 그 마음을 가지고 내 아랫사람을 대한다면 위로는 길고 아래로는 짧아서 네모반듯하지 않게[不方] 될 것이다. 아랫사람이 나를 이렇게 모시는데 내가 그것을 싫어했다면 내 위에 있는 사람의 마음 또한 나와 같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책망했던 아랫사람의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내 윗사람을 모신다면 이것도 아래로는 길면서 위로는 짧아지게 될 것이다. 좌우와 전후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내가) 앞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내 뒷 사람을 대하고, 왼쪽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오른쪽 사람을 대하면 곧 네모반듯하게[方] 된다. 매사에 모두 이와 같이 하면 공평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25 “所謂絜矩者, 如以諸侯言之, 上有天子, 下有大夫. 天子擾我, 使我不得行其孝弟, 我亦當察此, 不可有以擾其大夫, 使大夫不得行其孝弟. 且如自家有一丈地, 左家有一丈地, 右家有一丈地. 左家侵著我五尺地, 是不矩, 我必去訟他取我五尺. 我若侵著右家五尺地, 亦是不矩, 合當還右家. 只是我也方, 上也方, 下也方, 左也方, 右也方, 前也方, 後也方, 不相侵越. 如‘伐冰之家, 不畜牛羊’.” '''이른바 혈구(絜矩)라는 것은, 예컨대 제후(諸侯)로 말할 것 같으면 위에는 천자(天子)가 있고 아래에는 대부(大夫)가 있다. 천자가 나를 괴롭혀 내가 효제(孝弟)를 실천할 수 없게 한다면 나 또한 이러한 사정을 잘 헤아려서 나의 대부(大夫)를 괴롭혀 그들이 효제(孝弟)를 실천할 수 없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예컨대 자기 집에 (가로세로) 한 장(丈)<ref>약 3미터이다.</ref>의 땅이 있고, 왼쪽 집에 한 장의 땅이 있으며, 오른쪽 집에 한 장의 땅이 있다고 하자. 왼쪽 집이 내 땅 다섯 척<ref>10척이 1장이다. 다섯 척은 약 1.5미터이다.</ref>을 침범했다면, 이는 네모반듯(矩)<ref>각자의 마땅한 몫, 지켜 마땅한 규범을 공간적으로 은유한 것이다.</ref>하지 않는 것이니, 나는 반드시 그에게 소송을 걸어 내 땅 다섯 척을 찾아와야 한다. 내가 만약 오른쪽 집 땅을 다섯 척 침범했다면, 이 또한 규준(矩)에 맞지 않는 것이니, 응당 오른쪽 집에 돌려주어야 한다. 그저 나도 네모반듯하고[方], 위도 네모반듯하며, 아래도 네모반듯하고, 왼쪽도 네모반듯하며, 오른쪽도 네모반듯하고, 앞도 네모반듯하며, 뒤도 네모반듯하여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얼음 캐는 집안은(伐冰之家) 소나 양을 기르지 않는다'<ref>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맹헌자(孟獻子)의 말이다. 벌빙지가(伐冰之家)란 지위가 경대부(卿大夫) 이상인 집안을 말하는데, 경대부 이상이어야 예법상 상례와 제례 등에 얼음을 쓸 일이 있기 때문이다. 불휵우양(不畜牛羊)은 소와 양 등을 길러 백성과 이익을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대기업은 골목상권을 노리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다.</ref>는 말과 같다. 亞夫云: “務使上下四方一齊方, 不侵過他人地步.” '''아부(亞夫)가 말함: 상하사방(上下四方)이 한결같이 네모반듯하여 타인의 영역[地步]을 침범하지 않게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曰: “然.” 節(64이후). '''대답: 그렇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26 或問絜矩. '''누군가가 혈구(絜矩)에 관하여 질문함. 曰: “譬之, 如左邊有一人侵我地界, 是他不是了; 我又不可去學他, 侵了右邊人底界. 前人行擁住我, 我行不得; 我又不可學他擁了後人; 後人趕逐我不了, 又不可學他去趕前人. 上下亦然.” '''대답: 비유하자면, 왼쪽 사람이 내 땅의 경계를 침범했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이 된다. 내가 또 그에게서 배워서 오른쪽 사람의 땅 경계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앞사람이 길을 막아 내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면 내가 또 그에게서 배워서 뒷사람을 막아서는 안 된다. 뒷사람이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 (그의) 잘못이 된다면 (내가) 다시 그에게서 배워서 앞사람을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상하(上下)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椿云: “此一人卻是中立也.” '''춘(椿)이 말함: 이 사람은 가운데 서 있군요. 曰: “是.” 椿(59때). '''대답: 그렇다. 춘(椿)의 기록. (59세 때) *  16:227 絜矩, 如自家好安樂, 便思他人亦欲安樂, 當使無‘老稚轉乎溝壑', '壯者散而之四方’之患. ‘制其田里, 敎之樹畜’, 皆自此以推之. 閎祖(59이후). 혈구(絜矩)는, 예를 들어 자신이 안락함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 또한 안락함을 원할 것임을 생각하여, 응당 '늙은이와 어린이가 도랑에 굴러다니고',<ref>맹자 3A:3</ref> '장정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ref>맹자 1B:12, 2B:4</ref> 환란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토지를 구획하여 마련해주고, (식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는 법을 가르치는 것'<ref>맹자 7A:22</ref>이 모두 이것을<ref>남들도 안락함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ref> 미루어 확장한 것이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6:228 問: “論上下四旁, 長短廣狹, 彼此如一, 而無不方. 在矩, 則可以如此. 在人則有天子諸侯大夫士庶人之分, 何以使之均平?” '''질문: 상하사방(上下四旁)의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長短廣狹]이 피차 한결같아서 네모반듯하지 않음이 없다고 (대학에서) 논하는데, 직각자[矩]라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의 경우에는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의 구분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균평(均平)하게 할 수 있습니까? 曰: “非是言上下之分欲使之均平. 蓋事親事長, 當使之均平, 上下皆得行. 上之人得事其親, 下之人也得以事其親; 上之人得長其長, 下之人也得以事其長.” 節(64이후). '''대답: 상하(上下)의 신분 구분을 균평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일을 균평하게 하여 상하(上下) 누구나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윗사람이 자기 어버이를 섬길 수 있다면 아랫사람 역시 그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 윗사람이 자기 어른을 공경할 수 있다면 아랫사람 역시 자기 어른을 공경할 수 있어야 한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조목의 앞 뒤로 문답이 더 붙어있다. 앞부분은 '질문: 천하를 평정함을 논하면서 재물과 이익을 언급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問: 論平天下, 而言財利者何也?) 대답: 천하가 평정되지 않는 까닭이 모두 그것 때문이어서이다.(曰: 天下之所以不平者, 皆因此也.)', 뒷부분은 '자복황후께서 (돌아가시지 않고) 매양 생일에 이르시니 대단히 장수하고 계시다. 하지만 어떻게 천하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각자 자기 분수에 맞는 수준에서 자기 어버이를 섬기고 어른을 섬길 수 있다는 취지이다.(如慈福皇后毎至生日, 上壽非常, 天下之人豈能此? 但各随其分, 得盡其事親事長之意.)'이다. 자복황후는 남송 고종의 두 번째 황후로 1197년에 사망했다(향년 83세). 황후 사망 후라면 이렇게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이 대화가 1197년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ref> *  16:229 問: “‘絜矩’六節, 如‘所惡於上, 無以使下’, 及左右前後, 常指三處, 上是一人, 下是一人, 我居其中. 故解云: ‘如不欲上之無禮於我, 則我亦不以無禮使其下.’ 其下五節意皆類此.” '''질문: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絜矩)'부분 여섯 구절, 예컨대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을 아래사람에게 시키지 말고' 및 좌우전후(左右前後)<ref>16:223, 224 등을 참조하라.</ref>를 보면 항상 세 지점을 가리킵니다. 위에 한 사람, 아래에 한 사람이 있고 자신은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해석에서 '만약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아랫사람을 무례하게 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아래 다섯 구절의 뜻도 모두 이와 유사합니다. 先生曰: “見曾子之傳發明‘恕’字, 上下四旁, 無不該也.” 過(65이후). '''선생의 대답: 증자(曾子)의 전승(傳)에서<ref>주희는 대학의 저자가 증자라고 생각했다. 또, 논어에서 증자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핵심적인 도리가 '서(恕)'이므로 대학의 전 9장이나 10장의 취지에도 부합한다.</ref> '서(恕)' 자를 밝혀내어 상하사방(上下四旁) 모두를 포괄함을 볼 수 있다. 과(過)의 기록. (65세 이후) *  16:230 恕, 亦是絜矩之意. 振(미상). '''서(恕) 역시 혈구(絜矩)의 의미이다. 진(振)의 기록. (미상) *  16:231 陶安國問: “絜矩之道, 是廣其仁之用否?” '''도안국(陶安國)의 질문: 혈구(絜矩)의 도리(道)는 자기 인(仁)의 쓰임[用]을 확장하는 것 아닙니까? 曰: “此乃求仁工夫, 此處正要著力. 若仁者, 則是擧而措之, 不待絜矩, 而自無不平者矣.” '''대답: 이는 인(仁)을 구하는 공부(工夫)이니, 바로 이 부분에 힘을 쓸[著力] 필요가 있다. 인자(仁者) 같은 경우는 혈구(絜矩)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올바른 정책을) 채택하고 시행하여 저절로 균평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자이다. 銖曰: “仁者, 則‘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不待推矣. 若絜矩, 正恕者之事也.” '''내(銖)가 말함: 인자(仁者)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현달하고자 하면 남을 현달하게 하니[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ref>논어 6:28</ref> 미루어 헤아릴[推]필요가 없습니다. 혈구(絜矩) 같은 경우는 딱 서자(恕者)<ref>인자가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서자는 열심히 남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실천하는 사람이다.</ref>의 일입니다. 先生頷之. 銖(67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임.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6:232 德元問: “‘我不欲人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 與絜矩同否?” '''덕원(德元)의 질문: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나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 한다'<ref>논어 5:11</ref>는 혈구(絜矩)와 같지 않습니까? 曰: “然. 但子貢所問, 是對彼我說, 只是兩人; 絜矩則是三人爾. 後世不復知絜矩之義, 惟務竭民財以自豐利, 自一孔以上, 官皆取之, 故上愈富而下愈貧. 夫以四海而奉一人, 不爲不厚矣. 使在上者常有厚民之心而推與共之, 猶慮有不獲者, 況皆不恤, 而惟自豐殖, 則民安得不困極乎! 易‘損上益下’曰益, ‘損下益上’曰損. 所以然者, 蓋邦本厚則邦寧而君安, 乃所以益也. 否則反是.”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다만 자공(子貢)의 질문은 자신과 상대방을[彼我] 대립시켜 말한 것이니 양자간의 관계일 뿐이지만, 혈구(絜矩)는 삼자간의 관계이다. 후세에는 다시 혈구(絜矩)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오직 백성의 재물을 고갈시켜 자신의 풍족한 이득으로 삼기에만 바쁘니, 이익이 한 푼(一孔)<ref>송대 돈거래의 최소단위인 1문(文)을 말한다. 아마도 동전 한가운데 구멍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ref>이라도 있거든 관에서 모두 가져가므로 위는 갈수록 부유해지고 아래는 갈수록 가난해진다. 무릇 사해(四海)를 가지고서 (군주) 한 사람을 봉양하니 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윗사람이 늘 백성을 후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미루어 함께 나눈다 하더라도 오히려 혜택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걱정해야할 판인데, 하물며 전혀 (백성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오직 자기 재산만 불리려 한다면 백성들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나? 《주역(易)》에서 '위를 덜어 아래를 보태는 것[損上益下]'을 익(益)이라 하고,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는 것[損下益上]'을 손(損)이라 하였다.<ref>주역 익괘와 손괘의 단전.</ref> 이것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대개 나라의 근본(백성)이 두터우면 나라가 평안하고 군주가 안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득(益)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반대로 (손해)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33 李丈<ref>성화본을 제외하면 모두 '文'이라고 썼다. 중화서국판은 성화본에 의거하여 '丈'으로 교감했다. 64:197, 90:31 등 李丈인지 李文인지 알기 어려운 조목이 많다. 윙칫찬의 '주자문인'의 '李文' 단락을 참조하라.</ref>問: “盡得絜矩, 是仁之道, 恕之道?” 이 선배(李丈)<ref>기록자가 질문자를 존칭으로 기록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당자(李唐咨)라고 단정했는데 그 근거는 알 수 없다.</ref>의 질문: 혈구(絜矩)를 다하는 것은 인(仁)의 도(道)입니까, 서(恕)의 도(道)입니까? 曰: “未可說到那裏. 且理會絜矩是如何.” '''대답: 아직 거기까지 말할 단계가 아니다. 우선 혈구(絜矩)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라. 問: “此是‘我不欲人之加諸我, 吾亦欲無加諸人’意否?” '''질문: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나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 한다'<ref>논어 5:11</ref>는 뜻 아닙니까? 曰: “此是兩人, 須把三人看, 便見. 人莫不有在我之上者, 莫不有在我之下者. 如親在我之上, 子孫在我之下. 我欲子孫孝於我, 而我卻不能孝於親; 我欲親慈於我, 而我卻不能慈於子孫, 便是一畔長, 一畔短, 不是絜矩.” 㝢(61이후). '''대답: 그건 양자간의 관계이다. 반드시 삼자 관계로 보아야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윗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다. 예를 들어 어버이는 내 위에 있고, 자손은 내 아래에 있다. 자손이 자기에게 효도하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못하고, 어버이가 자기를 아껴주기를(慈) 바라면서 자기는 자손을 아껴주지 못한다면 곧 한쪽은 길고 다른쪽은 짧은 것이니 혈구(絜矩)<ref>혈구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직각자를 활용하여 여러개의 정사각형을 그리다' 정도가 된다. 그려놓고 보니 직사각형이나 사다리꼴이라면 '혈구'라고 할 수 없다.</ref>가 아니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34 絜矩, 非是外面別有箇道理, 只是前面正心·修身, 推而措之, 又不是他機巧·變詐·權謀之說. 賀孫(62이후). '''혈구(絜矩)는 외부에 어떤 별개의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대학) 앞쪽 부분에서 정심(正心), 수신(修身)한 것을 미루어 시행하는[推而措之] 것일 뿐이니, 저 기교(機巧)·속임수(變詐)·권모술수(權謀)의 설(說)과는 또 다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5 絜矩之說, 不在前數章, 卻在治國·平天下之後. 到這裏, 也是節次成了, 方用得. 道夫(60이후). '''혈구(絜矩)의 설(說)이 앞의 여러 장(章)에 있지 않고 후면의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장에 위치한 것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순서에 따라[節次]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앞서의 공부를 미루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36 “君子先愼乎德”一條, 德便是‘明德’之‘德’. 自家若意誠·心正·身修·家齊了, 則天下之人安得不歸於我! 如湯武之東征西怨, 則自然有人有土. 賀孫(62이후). ''' '군자는 먼저 덕(德)을 삼간다'<ref>대학 전 10장. 덕을 삼간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냐는 질문에 대해 대학혹문 전 10장부에서는 격물치지부터 수신까지라고 답하고 있다.</ref>는 대목에서 덕(德)은 바로 '명덕(明德)'의 덕이다. 만약 자기의 의지가 진실해졌고[意誠], 마음이 바르게 되었으며[心正], 몸이 닦였고[身修], 집안도 다스려졌다면[家齊] 천하 사람들이 어찌 자기에게 귀의하지 않을 수 있겠나?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 동쪽을 정벌하면 서쪽에서 원망한 것과 같으니,<ref>사방의 군주가 자기 백성을 학대하고 있기 때문에 탕왕이나 무왕 같은 유덕한 군주가 (예컨대) 우선 서쪽 나라의 군주를 정벌하러 가면 동쪽 나라 백성들이 왜 자신들이 후순위가 되었느냐며 원망한다는 뜻이다. 정확히는 무왕이 아니라 탕왕의 정벌에 관한 일화로 상서 중훼지고 제 6장, 맹자 1B:11에 보인다.</ref> (이렇게 되면) 자연히 백성을 얻고 영토를 얻게 될[有人有土] 것이다.<ref>백성과 영토를 얻는다는 표현은 대학 전 10장의 후반부에서 취한 표현이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7 或問“爭鬭其民而施以劫奪之敎”. '''누군가 '백성들과 (이득을 놓고) 투쟁함으로써 (그들에게) 서로 협박하고 빼앗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부분을 질문함.<ref>대학 전 10장의 '爭民施奪'에 대한 주희의 주석이다.</ref> 曰: “民本不是要如此. 惟上之人以德爲外, 而急於貨財, 暴征橫斂, 民便效尤, 相攘相奪, 則是上敎得他如此.” 賀孫(62이후). '''대답: 백성들은 본래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윗사람이 덕(德)을 바깥으로(外) 취급하고 재물[貨財]에 급급하여<ref>대학 전 10장의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덕(德)은 근본(本)이고 재(財)는 말단(末)인데 근본을 바깥으로 취급하고 말단을 안쪽으로 취급하면 백성과 이득을 다투어 그들의 재산을 빼앗게 되고, 이러한 착취행위는 결국 백성들더러 서로 상대방의 재산을 탈취하라고 가르치는 셈이라고 하였다. 바깥쪽/안쪽이라는 대립쌍은 각각 부차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의미한다.</ref> 난폭하게 징수하고 마구잡이로 뜯어가면 백성들이 곧 그 나쁜 것을 본받아[效尤] 서로 빼앗고 약탈하니, (이렇게 되면) 이는 윗사람이 그러라고 가르친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38 或問“爭民施奪”. '''누군가 '백성과 다툼으로써 서로 빼앗으라고 가르친다.'<ref>대학 전 10장. 직역하면 '민(民)을 쟁(爭)하여 탈(취하라는 내용의 가르침을)을(奪) 베푼다(施).' 정도가 된다.</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是爭取於民, 而施之以劫奪之敎也. ‘媢疾以惡之’, 是徇其好惡之私.” 節(64이후). '''대답: 이는 백성에게서 다투어 빼앗음으로써 (그들에게) 서로 협박하고 빼앗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시기질투하여 그를 미워한다'<ref>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서경 주서 태서편의 한 구문이다.</ref>는 자신의 사적인 호불호[好惡之私]를 따른다는 것이다.<ref>타인이 훌륭한 말을 했을 때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사람과는 반대로 타인을 시기질투하는 사람은 남이 훌륭한 말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을 미워하는 나의 마음을) 따라 그 사람을 배척하게 된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39 斷斷者是絜矩, 媢疾者是不能. “唯仁人放流之”, 是大能絜矩底人; “見賢而不能擧, 擧而不能先”, 是稍能絜矩; “好人之所惡”者, 是大不能絜矩. 節(64이후). '''진실하고 한결같은[斷斷]<ref>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서경 주서 태서편에서 혈구를 잘 하는 사람의 품성을 형용한 말이다. 주희의 주석에서 '성일(誠一)하다'라고 풀었다.</ref> 사람은 혈구(絜矩)할 수 있고, 시기질투하는[媢疾]<ref>16:238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사람은 할 수 없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그들을) 유배보낸다'<ref>대학 전 10장. 타인을 시기질투하여 좋은 말을 할수록 배척하는 이가 있다면 이들은 나라를 망치는 자이니 이들을 결연히 내쫓는 것이야말로 어진 행위이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만이 (다른 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지공무사한 이유로) 이들을 확실히 내칠 수 있다.</ref>는 것은 혈구(絜矩)에 매우 능숙한 사람이고, '현자를 보고도 등용하지 못하며, 등용하더라도 먼저 하지 못하는 것'<ref>대학 전 10장. 앞선 구절에 이어서 나오는 구문이다. 훌륭한 사람을 쓰기를 미적거리는 이유는 타인의 훌륭함을 질투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ref>은 혈구(絜矩)를 조금 할 수 있는 사람이며, '남들이 싫어하는 바를 좋아하는 것'<ref>대학 전 10장. 앞선 구절에 이어서 나오는 구문이다. 여기서 '싫어하는 바'란 단순한 테이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혐오감정을 말한다. 예컨대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바이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전혀 혈구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ref>은 전혀 혈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40 “擧而不能先”, 先是早底意思, 不能速用之意. 泳(66때). ''' '등용하더라도 먼저 하지 못한다'<ref>대학 전 10장. 앞 조목을 참조하라.</ref>에서 '선(先)'은 빠르다[早]는 뜻이다. 신속하게 등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241 “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平天下”一章, 其事如此廣闊. 然緊要處只在這些子, 其粗說不過如此. 若細說, 則如“操則存”, “克己復禮”等語, 皆是也. 僩(69이후). ''' '군자에게는 큰 도(道)가 있으니, 반드시 충(忠)과 신(信)으로 얻고, 교만함[驕泰]으로 잃는다.'<ref>대학 전 10장.</ref>, 평천하(平天下) 장(章)은 그 일(의 스케일)이 이처럼 광활하다. 그러나 긴요한 지점은 그저 여기 몇 대목<ref>앞서 언급한 충신과 교태를 말한다.</ref>에 있을 뿐이니, 그 대략적인 설명이 이정도에 불과하다. 세밀하게 설명한 경우 같으면 '잡으면 보존된다[操則存]',<ref>맹자 6A:8. 자세한 설명은 16:20, 16:130 등을 참조하라.</ref>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간다[克己復禮]'<ref> 논어 12:1</ref>등의 말이 모두 그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42 趙唐卿<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아래 '여방(汝倣)'이라고 주석이 붙어있다. 조여방은 주희의 제자로 자(字)는 당경이다.</ref>問: “十章三言得失, 而章句云: ‘至此而天理存亡之機決矣! ’何也?” '''조당경(趙唐卿)의 질문: 제 10장에서 세 차례 득실(得失)을 말하고 있는데, 장구(章句)에서 '여기에 이르러 천리(天理)의 존망(存亡)이 판가름난다!'<ref>현행본 대학장구에서는 '기(機)'를 '기(幾)'라고 썼다. 기(機)는 전통적으로 '기틀'로 번역하는데, 요즘말로는 트리거에 가깝다. 천리가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를 판가름할 트리거가 여기서 당겨진다는 뜻이다.</ref>고 하였으니 어째서입니까? 曰: “他初且言得衆·失衆, 再言善·不善, 意已切矣. 終之以忠信·驕泰, 分明是就心上說出得失之由以決之. 忠信乃天理之所以存, 驕泰乃天理之所以亡.”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지(砥)'로 썼다.</ref>(61이후). '''대답: 그것<ref>대학 전 10장을 말한다.</ref>은 처음에는 먼저 사람들을 얻느냐 잃느냐[得衆失衆]를 말하고,<ref>전 10장에서 시경 문왕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 두번째에는 선(善)과 불선(不善)(에 따라 천명을 얻느냐 잃느냐를) 말하니 뜻이 이미 절실하다.<ref>전 10장에서 서경 강고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 마지막에 충신(忠信)과 교태(驕泰)로 마무리하니, 명백히 마음(心)의 차원에서 (앞선 요소들의) 득실(得失)의 이유를 설명해내어 (득실에 관한 의논을) 종결지은 것이다. 충신(忠信)은 곧 천리(天理)가 보존되는 이유이고, 교태(驕泰)는 천리(天理)가 사라지는 이유이다.<ref>역시 대학 전 10장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 직전 16:241을 참조하라.</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6:243 問“仁者以財發身”. ''' '어진 사람은 재물로써 스스로를 일으킨다'<ref>대학 전 10장. 재물을 써서 사람을 얻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어질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소진하여 재물을 얻는다.</ref>에 관한 질문. 曰: “不是特地散財以取名, 買敎人來奉己. 只是不私其有, 則人自歸之而身自尊. 只是言其散財之效如此.” 賀孫(62이후). '''대답: 특별히 재물을 나누어주어 명예를 얻고 사람들을 매수해서<ref>일역판은 '매교(買敎)'를 모두 사역동사로 처리했다.</ref> 자기를 받들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기가) 가진 것을 사유물로 보지 않으니 사람들이 저절로 그에게 귀의하여 자신이 저절로 존귀해지는 것 뿐이다. 그저 자기 재산을 나누어주는 일의 효과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6:244 “仁者以財發身”, 但是財散民聚, 而身自尊, 不在於財. 不仁者只管多聚財, 不管身之危亡也. 卓(미상). ''' '어진 사람은 재물로써 스스로를 일으킨다'는 단지 재물이 흩어지고 백성이 모여서 자신이 저절로 존귀해진다는 것 정도이지, (자신이 존귀해지는 사태가 필연적으로) 재물에 달린 것은 아니다.<ref>이 부분은 해석하기 까다롭다.</ref> 어질지 못한 자는 오직 재물을 많이 모으기만 할 뿐, 자기 일신이 (축재로 인하여) 위험해지는 것은 돌보지 않는다. 탁(卓)의 기록. (미상) *  16:245 蜚卿問: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 如何上仁而下便義?” '''비경(蜚卿)<ref>주희의 제자 동백우(童伯羽).</ref>의 질문: '윗사람이 인(仁)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이 의(義)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ref>대학 전 10장.</ref>의 경우, 어째서 윗사람은 인(仁)인데 아랫사람은 의(義)입니까?<ref>윗사람이 A라는 덕성을 갖추면 아랫사람이 그에 감화되어 역시 동일한 덕성을 갖추게 되는 경우를 상상한 것이다.</ref> 曰: “這只是一箇. 在上便喚做仁, 在下便喚做義, 在父便謂之慈, 在子便謂之孝.” '''답하다: (그 두 가지는) 하나일 뿐이다. 위에 있으면 인(仁)이라 부르고, 아래에 있으면 의(義)라 부르며, 아버지에게 있으면 자(慈)라 하고, 아들에게 있으면 효(孝)라고 한다. 直卿云: “也如‘孝慈則忠.’” '''직경(直卿)<ref>주희의 제자 황간(黃幹).</ref>이 말함: 또 '효성스럽고(孝) 자애로운(慈) 것이 곧 충(忠)이다.'<ref>논어 2:20</ref>는 것과 같습니다. 曰: “然.”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46 “雖有善者”, 善, 如而今說會底. 閎祖(59이후). ''' '비록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ref>대학 전 10장의 마지막 대목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여기서 '잘하다'는 기술적인 탁월함을 말하니 도덕적 품성과는 무관하다.</ref>에서, 선(善)은 지금 말하는 '잘하는[會底]'과 같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6:247 “國不以利爲利”. 如秦發閭左之戍, 也是利; 墮名城, 殺豪傑, 銷鋒鏑, 北築長城, 皆是自要他利. 利不必專指財利. 所以孟子從頭截斷, 只說仁義. 說到“未有仁而遺其親, 未有義而後其君”, 這裏利卻在裏面. 所以說義之所安, 卽利之所在. 蓋惟義之安, 則自無不利矣. 泳(66때). ''' '나라는 이득을 이득으로 여기지 않는다.'<ref>대학 전 10장.</ref> 예를 들어 진(秦)나라가 마을 왼편(閭左)<ref>진나라 때 마을 왼편(서쪽)은 빈민촌이었다.</ref>에 사는 빈민들을 징병한 것도 이득(利)을 위한 것이었고,<ref>사기에 의하면 해당 사건은 제 2세황제 원년 7월에 있었던 일이다.</ref> 이름난 성곽(城)을 허물고, 호걸(豪傑)들을 살해하고, 칼날과 화살촉을 녹이고, 북쪽에 장성(長城)을 쌓은 것도 모두 자기 이익(利)을 스스로 추구했던 것이다.<ref>가의의 과진론 상편에서 열거한 바 진시황의 정책들이다. 성곽을 허물고 호걸을 살해하고 병장기를 수거하여 녹이는 등은 모두 천하통일 이후 어수선한 내부통제를 위한 정책이었다. 장성축조는 흉노의 견제가 목적이다.</ref> 이득(利)이 꼭 재리(財利)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맹자(孟子)가 처음부터 (이득에 관한 모든 논의를) 딱 잘라버리고 그저 인의(仁義)만 설명했던 것이다.<ref>맹자 1A:1.</ref> 설명이 '인(仁)하면서 그 어버이를 유기하는 경우는 없었고, 의(義)로우면서 그 임금을 뒤로하는 경우는 없었다'<ref>맹자 1A:1.</ref>고하는 데 이르러서는, 역설적으로 그 안에 이득(利)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의리(義)상 편안한 곳이 바로 이득(利)이 있는 곳'<ref>이정유서 16:3의 한 대목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본래는 다음과 같다. '성인은 의로움을 이로움으로 여기니, 의리상 편안한 곳이 바로 이득이 된다(聖人以義爲利, 義安處, 便爲利.).'</ref>이라고 하였다. 대개 의리상 편안하기만 하면 자연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248 問: “末章說財處太多.” '''질문: 마지막 장은 재물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曰: “後世只此一事不能與民同.” 可學(62때). '''대답: 후세(後世)<ref>삼대의 황금시대가 종료된 이후의 세상을 말한다.</ref>에는 단지 그거 하나를 백성들과 함께하지 못한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6:249 第九章十章齊家·治國, 旣已言化, 平天下只言措置之理. 絜, 度也; 矩, 所以爲方也. 方者, 如用曲尺爲方者也. 何謂“是以君子有絜矩之道”?上面人旣自有孝弟, 下面民亦有孝弟, 只要使之自遂其孝弟之心於其下, 便是絜矩. 若拂其良心, 重賦橫斂以取之, 使他不得自遂其心, 便是不方. 左右前後皆然. 言是以者, 須是如此. 後面說民之父母, 所好所惡, 皆是要與民同利之一事. 且如食祿之家, 又畜雞豚牛羊, 卻是與民爭利, 便是不絜矩. 所以道“以義爲利”者, “義以方外”也. 泳(66때). '''제 9장과 제 10장의 경우, 제가와 치국 부분에서 이미 교화[化]를 설명했고,<ref>윗사람이 효성스러우면 아랫사람도 효심을 일으킨다는 등의 설명을 말한다.</ref> 평천하(平天下) 부분에서는 단지 조치(措置)<ref>구체적인 정책결정과 실천을 말한다.</ref>의 이치만을 말한다. 혈(絜)은 헤아림[度]이고, 구(矩)는 방형을 만드는 도구[所以爲方]이다. 방(方)이라는 것은 예컨대 직각자[曲尺]를 써서 사각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絜矩)의 도리(道)를 가진다'<ref>대학 전 10장. 첫머리에서 교화에 대해 설명한 후 바로 이어서 나오는 문구이다.</ref>라고 하는가? 위에서 이미 스스로 효심과 공경심(孝弟)이 있거든 백성 또한 아래에서 효심과 공경심을 가지게 되니, 그저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효제(孝弟)하려는 마음을 (사회의) 하층부에서 이룰 수 있게 해주려는 (지도자의 심정이) 바로 혈구(絜矩)이다. 만약 그 좋은 마음[良心]을 거슬러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함부로 거두어들여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효제하려는) 그 마음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면 곧 네모반듯하지 않은 것[不方]이다. 좌우전후(左右前後)도 모두 그러하다.<ref>16:225와 228의 논의를 참조하라.</ref> '이 때문에[是以]'라고 말한 것은 '응당 이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이어 백성의 부모 (가 된다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싫어한다)라고 설명한 것은<ref>대학 전 10장에서 시경 소아 남산유대편을 인용하고 설명한 부분을 말한다.</ref> 모두 백성과 이익을 함께 하는[與民同利] 일 하나를 요구한 것이다. 또, 녹을 먹는 집안[食祿之家]이 다시 닭, 돼지, 소, 양을 기른다면, 이는 (백성과 이익을 함께하기는 커녕) 반대로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니,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ref>대학 전 10장에서 인용하고 있는 맹헌자(孟獻子)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 16:225를 참조하라.</ref> 그러므로 '의로움(義)을 이득으로(利) 삼는다'<ref>대학 전 10장. 맹헌자의 말에 대한 결론이다.</ref>고 말한 것은 '의로움(義)을 가지고 바깥(外)을 반듯하게 한다[義以方外]'<ref>주역 곤괘 문언전.</ref>는 것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6:250 問: “絜矩以好惡·財用·媢疾彦聖爲言, 何也?” '''혈구를 '좋아하고 싫어함', '재용(財用)', '타인의 훌륭함을 시기함' 등을 가지고 설명한 것은 어째서입니까?<ref>모두 대학 전 10장에서 혈구지도를 설명할 때 언급한 내용들이다.</ref> 曰: “如桑弘羊聚許多財, 以奉武帝之好. 若是絜矩底人, 必思許多財物, 必是侵過著民底, 滿著我好, 民必惡. 言財用者, 蓋如自家在一鄕之間, 卻專其利, 便是侵過著他底, 便是不絜矩. 言媢疾彦聖者, 蓋有善人, 則合當擧之, 使之各得其所. 今則不擧他, 便失其所, 是侵善人之分, 便是不絜矩. 此特言其好惡·財用之類, 當絜矩. 事事亦當絜矩.” 節(64이후). '''예를 들어 상홍양(桑弘羊)<ref>전한 무제시기의 재무관료. 소금과 철 등에 대한 전매제도를 비롯하여 여러 재정정책을 설계했다.</ref>은 재물을 많이 모아 무제(武帝)의 기호에 맞추어 섬겼다. 혈구(絜矩)하는 사람 같았으면 반드시 '이 많은 재물은 틀림없이 백성의 것을 침탈하여 나의 기호를 만족시키는 것이니, 백성은 반드시 싫어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재용(財用)을 언급한 것은,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이 한 고을에 있으면서 그 이익을 독점한다면 이는 그들의 것을 침탈하는 것이니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훌륭함을 시기함[媢疾彦聖]을 언급한 것은, 대개 훌륭한 인재[善人]<ref>대학 원문을 살펴보아도 이 경우 기능적 탁월함을 말하는 것인지 도덕적인 훌륭함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중립적인 표현으로 번역했다.</ref> 있으면 마땅히 그를 등용하여 각자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얻게 해야 하는데 지금 그를 등용하지 않는다면 곧 그가 제자리를 잃게 되니, 이는 유능한 사람의 직분[分]을 침탈하는 것이므로 바로 혈구(絜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그 좋아하고 싫어함, 재용(財用) 등의 경우에 마땅히 혈구(絜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그밖의) 모든 일에 있어서 역시 마땅히 혈구(絜矩)해야 한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6:251 問: “自致知至於平天下, 其道至備, 其節目至詳至悉, 而反覆於終篇者, 乃在於財利之說. 得非義利之辨, 其事尤難, 而至善之止, 於此尤不可不謹歟? 不然, 則極天命人心之向背, 以明好惡從違之得失, 其丁寧之意, 何其至深且切耶?” '''질문: 치지(致知)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그 도(道)가 지극히 갖추어졌고 그 절목(節目)이 지극히 상세하며 포괄적인데 (조금 놀랍게도) 마지막 편에서 반복되는 내용은 바로 재리(財利)에 관한 설명입니다. 이는 의로움(義)과 이로움(利)을 구별하는 일이 무척 어려우므로 지선(至善)에 멈추어 머무르는[至善之止] 공부를 이 부분에서 더욱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아닙니까?<ref>'得非'는 '...가 아닐 수 있겠나?'이다. 득(得)은 '...수 있다'와 같다.</ref> 만약 (이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면, (윗사람의 태도와 조치가)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을 배반하는가 아닌가를 극한까지 파고들어 (윗사람의) 좋아함과 싫어함, 따르고 어김[好惡從違]의 잘잘못[得失]을 밝힌 (대학 전 10장의) 그 간곡한[丁寧] 뜻이 어째서 이토록 지극히 깊고 또 간절한 것입니까? 曰: “此章大槪是專從絜矩上來. 蓋財者, 人之所同好也, 而我欲專其利, 則民有不得其所好者矣. 大抵有國有家所以生起禍亂, 皆是從這裏來.” '''대답: 이 장(章)은 대체로 혈구(絜矩) 하나로부터 풀어낸 것이다. 대개 재물[財]은 사람들 누구나 좋아하는 바이지만 내가 그 이익을 독점하고자 하면 백성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자가 있게 된다. 대체로 자기 나라나 자기 집안을 보유하고서 화란(禍亂)을 일으키는 까닭은 모두 여기에서 기인한다. 道夫云: “古注, 絜音戶結反. 云結也.” '''내가(道夫) 말함: 고주(古注)에 혈(絜)의 음은 호결(戶結) 반절(反)이라 하고,<ref>반절(反切)은 전통시대 한문 문헌에서 낱글자의 음가를 표기하는 방법이다. '호결'에서 앞글자의 초성과 뒷글자의 중성과 종성을 합치라는 뜻이다. '絜'은 'ㅎ'와 ㅕㄹ'을 합쳤으므로 '혈'이 된다. 다만 현행본 예기정의에는 이와 같은 음주가 없다.</ref> (그 뜻은) '맺음[結]'이라고 했습니다.<ref>이 뜻풀이는 현행본 예기정의에 있다.</ref> 曰: “作‘結’字解, 亦自得. 蓋荀子莊子注云: ‘絜, 圍束也.’ 是將一物圍束以爲之則也.” '''대답: '결(結)'자로 해석해도 된다.<ref>'自得'은 '自行'과 같다. '된다', '좋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대개 《순자(荀子)》나 《장자(莊子)》의 주(注)에서 '혈(絜)은 둘레를 묶는 것[圍束]이다'라고 하였으니, 어떤 물건을 가지고 (다른 사물의) 둘레를 묶어 측량의 단위[則]로 삼는 것이다.<ref>순자 비상(非相)편에 나오는 '혈(揳)'자에 대한 양경(楊倞)의 주에서 '혈(揳)은 혈(絜)과 같으니 묶는다는 뜻이다(揳, 與絜同, 約也.)'라고 했다. 어떤 물건을 밧줄 따위로 묶어보아 그 둘레를 측정하는 것이다. '호결반(戶結反)'이라는 음주 역시 순자 양경주에 보인다. 장자 인간세편의 '묶어서 측정해보니 백아름이나 되었다(絜之百圍)'에 대한 성현영(成玄英)의 소(疏)에서 '혈(絜)은 묶는 것이다.(絜, 約束也)'라고 하였다. 다만 순자와 장자의 주해서 어느 쪽에서도 '圍束'이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대학혹문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순자와 장자를 언급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又曰: “某十二三歲時, 見范丈所言如此. 他甚自喜, 以爲先儒所未嘗到也.” 道夫(60이후). '''다시 말함: 내가 12~13세 때 범(范) 어르신<ref>'장(丈)'은 손윗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여기서 말하는 범씨는 범여규(范如圭, 1102-1160)이다. 해당 에피소드는 회암집 권 55의 답소숙의(答邵叔義) 제 2서에 보인다. 회암집 권 89에는 주희가 작성한 범여규의 신도비문이 실려있다.</ref>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스스로 몹시 기뻐하며 선유(先儒)들이 일찍이 도달하지 못했던 해석이라고 여겼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6:252 或問: “絜矩之義, 如何只說財利?” '''누군가의 질문: 혈구(絜矩)의 도리(義)를 어찌하여 단지 재리(財利)만 가지고 설명합니까? 曰: “必竟人爲這箇較多. 所以生養人者, 所以殘害人者, 亦只是這箇. 且如今官司皆不是絜矩. 自家要賣酒, 便敎人不得賣酒; 自家要榷鹽, 便敎人不得賣鹽. 但事勢相迫, 行之已久, 人不爲怪, 其實理不如此.” 學蒙(65이후). '''대답: 그것은 필경 사람들이 이것을 추구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아서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기르는[生養人] 것도, 사람을 해치는[殘害人] 것도 역시 이것 뿐이다. 또 예를 들자면, 오늘날 관청(官司)은 전혀 혈구(絜矩)하지 않는다. 관청 자신이 술을 팔고자 하니 남들이 술을 팔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소금을 전매하고자 하니 남들이 소금을 팔지 못하게 한다. 다만 사세(事勢)가 절박하고<ref>관청이 재정적으로 타이트하다는 말이거나 백성들이 반성적으로 사유할 여유 없이 타이트하게 살고 있다는 말인 듯하다.</ref> (전매책이) 시행된 지 오래되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뿐이고, 기실 이치(理)는 그렇지 않다. 학몽(學蒙)의 기록. (65세 이후) *  16:253 因論“治國平天下”章財用處, 曰: “財者, 人之所好, 自是不可獨占, 須推與民共之. 未論爲天下, 且以作一縣言之: 若寬其賦斂, 無征誅之擾, 民便歡喜愛戴; 若賦斂稍急, 又有科敷之擾, 民便生怨, 決然如此.” '''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장의 재용(財用) 부분에 대해 논하다가 말함: 재물이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이므로 본래 독점해서는 안 되며, 응당 (그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미루어 백성과 공유해야 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논하기 전에 우선 현(縣) 하나를 다스리는 것으로 말해보자. 만약 부세[賦斂]를 너그럽게 하고 징발하고 처벌하는 소란[征誅之擾]<ref>'정주(征誅)'는 군사적인 정벌 혹은 부세를 징수하고 (미납자를) 처벌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는 천하가 아니라 현급 스케일에서의 통치행위를 말하고 있으며 또 뒷 구절에서도 일관되게 세무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정주(征誅)' 역시 세무정책으로 해석하였다.</ref>이 없다면 백성들이 곧 기뻐하며 (현령을) 사랑하고 받들어 모실 것이다. 만약 부세가 자못 급박하고 또 할당액을 정해 부과하는[科敷] 소란이 있다면 백성들이 곧 원망을 품게 되니, (그 인과적 필연성이) 결단코 이러하다. 又曰: “寧過於予民, 不可過於取民. 且如居一鄕, 若屑屑與民爭利, 便是傷廉. 若饒潤人些子, 不害其爲厚. 孟子言: ‘可以取, 可以無取, 取傷廉; 可以與, 可以無與, 與傷惠.’ 他主意只是在‘取傷廉’上, 且將那與傷惠來相對說. 其實與之過厚些子, 不害其爲厚; 若才過取, 便傷廉, 便不好. 過與, 畢竟當下是好意思. 與了, 再看之, 方見得是傷惠, 與傷廉不同. 所以‘子華使於齊, 冉子與之粟五秉’, 聖人雖說他不是, 然亦不大故責他. 只是才過取, 便深惡之, 如冉求爲之聚斂而欲攻之, 是也. 僩(69이후). '''다시 말함: 차라리 백성에게 주는 것[予民]이 지나칠지언정, 백성에게서 취하는 것[取民]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또 예컨대 어떤 고을에 살면서 만약 꼬치꼬치[屑屑] 백성과 이익을 다툰다면 이는 곧 청렴함[廉]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을 조금 넉넉하게 해주는[饒潤] 것 같으면 (결과적으로) 후(厚)하게 된다해도 무방하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취해도 좋고 취하지 않아도 좋은 경우에 취하면 청렴의 원칙을 손상시키고,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은 경우에 주면 은혜의 원칙을 손상시킨다'<ref>맹자 4B:23.</ref> 고 하였다. 그의 주된 취지는 단지 '취하면 청렴의 원칙을 손상시킨다'는 데 있는데, '주면 은혜의 원칙을 손상시킨다'를 가지고 (구색을 맞춰) 한 쌍으로 설명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주는 것이 후한 쪽으로 조금 지나쳐서 후하게 되는 것은 무방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취하면 곧 청렴함을 손상시키니 좋지 못하다. 지나치게 주는 것[過與]은 필경 당장은 좋은 취지일 것이다. 준 다음 다시 생각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은혜의 원칙을 해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 청렴의 원칙을 손상시키는 경우와는 다르다. 그래서 '자화(子華)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염자(冉子)가 그에게 곡식 다섯 병(秉)을 주'<ref>논어 6:3. 공자는 곡식 6 말 4 되를 주라고 했는데 염구는 스승의 지침을 어기고 자의로 16 섬을 주었다.</ref>었을 때는 성인<ref>공자를 말한다.</ref>이 비록 그의<ref>염구(冉求)를 말한다. 염자는 염구의 존칭이다.</ref> 처사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못했다며 꾸짖지도 않으셨다. 단,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취하면 즉시 깊이 미워하셨으니, 염구(冉求)가 (계씨를 위해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과하게) 수탈하자 그를 성토하고자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ref>논어 11:16.</ref><ref>맹자에 대한 인용부부터 끝까지는 어류 57:54와 거의 같다.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으니 참조하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6:254 問: “‘平天下’章言財用特詳, 當是民生日用最要緊事耳.” '''질문: '평천하(平天下)' 장에서 재용(財用)에 대한 설명이 특히 상세한 것은, 분명 백성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曰: “然. 孟子首先所言, 其原出此.” '''대답: 그렇다. 맹자(孟子)가 가장 먼저 말한 내용은 그 근원이 여기이다.<ref>맹자 1A:1의 내용은 의로움과 이로움을 판별하라는 것이므로 이 말에 꼭 맞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 1A:5까지 이어지는 양혜왕과의 대담 내용은 실제로 백성의 처지에 이입하여 민생을 돌보라는 것이므로 대학 전 10장의 취지에 부합한다.</ref> 子升問此章所言反覆最詳之意. '''자승(子升)<ref>16:57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이 이 장(章)에서 말한 바가 여러번 반복되고 가장 상세한 이유를 질문함. 曰: “要之, 始終本末只一理. 但平天下是一件最大底事, 所以推廣說許多. 如明德·新民·至善之理極精微. 至治國·平天下, 只就人情上區處, 又極平易, 蓋至於平而已耳. 後世非無有志於天下國家之人, 卻只就末處布置, 於本原上全不理會.” '''대답: 요약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뿌리부터 말단까지 이치는 하나일 뿐이다. 다만 평천하(平天下)는 (스케일이) 가장 큰 일이므로 미루어 넓혀서 많이 설명한 것이다. 명덕(明德), 신민(新民), 지선(至善)의 이치는 지극히 정미(精微)하다.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경우는 그저 인정(人情)의 차원에서 처리[區處]할 뿐이요 또 지극히 평이(平易)하니, (그래서 천하가) 평정(平)에 도달하고야 마는 듯하다. 후세에 천하와 국가에 뜻을 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로되, 도리어 말단[末處]의 차원에서만 조치[布置]할 뿐, 뿌리에 대해서는 전혀 헤아리려(理會) 하지 않았다. 因言: “莊子, 不知他何所傳授, 卻自見得道體. 蓋自孟子之後, 荀卿諸公皆不能及. 如說: ‘語道而非其序, 非道也.’ 此等議論甚好. 度亦須承接得孔門之徒, 源流有自. 後來佛氏之敎有說得好處, 皆出於莊子. 但其知不至, 無細密工夫, 少間都說得流了, 所謂‘賢者過之’也. 今人亦須自理會敎自家本領通貫, 卻去看他此等議論, 自見得高下分曉. 若一向不理會得他底破, 少間卻有見識低似他處.” '''이어서 말함: 장자(莊子)는 어디에서 전수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도체(道體)를 스스로 보았다. 생각건대 맹자 이후로 순경(荀卿)<ref>순자.</ref> 등 여러 사람들은 모두 (장자의 경지에) 미치지 못한 듯하다. 예를 들어 '도(道)를 말하는데 그 순서에 어긋나면 도(道)가 아니다'<ref>장자 외편 천도편. 얼핏 형이상학적인 직관처럼 보이지만 기실 이 부분의 취지는 기왕의 인륜질서에 대한 긍정이다. 군신이나 부자 등 인간사회의 '순서'들은 마치 자연세계에 춘하추동의 순서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마땅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도편의 저자는 만약 누군가가 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이러한 인륜질서상의 자연스러운 순서에 어긋나는 말을 하면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주장한다.</ref>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의론은 매우 좋다. 생각건대 역시 분명 공문(孔門)의 제자들을 이어받은 것 같으니, (이처럼) 그 원류(源流)에 출처가 있는 것이다. 훗날 불씨(佛氏)의 가르침 중에서도 잘 설명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모두 장자(莊子)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앎이[知] 지극하지 못하고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어서 이윽고 설명이 모두 흘러버리니,<ref>흐르는 말은 근거 없는 말이다. '유설(流說)'이나 '유언(流言)'은 모두 근거없는 허망한 소리를 말한다.</ref> 이른바 '현명한 자는 지나치고'<ref>중용 제 4장. 주희의 주석에 의하면 현명한 자는 실천 쪽으로 지나치게 쏠려 있어서 앎을 지극히하려 노력하지 않는다.</ref>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도 모름지기 스스로 헤아려(理會) 자기 본령(本領)<ref>일역판은 본령이 '유가의 학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아래 이어지는 문답을 보면 그보다는 진리의 핵심적인 부분을 말한 것으로 풀어야 좋을 듯하다.</ref>을 철저히 깨우치도록(通貫) 하고 나서 저들의 저러한 의론들을 살펴보아야 하니 (그러면) 저절로 높낮이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만약 한결같이 저들의 것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이윽고 반대로 저들보다 견식의 수준이 낮은 지점이 생기게 된다.<ref>일역판을 따라 '사(似)'를 정도상의 비교열위를 나타낸 것으로 풀었다.</ref> 因說, 曾點之徒, 氣象正如此. '''이어서 증점(曾點)의 무리의 기상(氣象)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함.<ref>논어 11:25. 공자가 제자들에게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은 '늦봄에 봄옷이 다 지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아이 예닐곱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증점은 증자의 아버지이다.</ref> 又問: “論語集注說曾點是‘雖堯舜事業亦優爲之’. 莫只是堯舜事業亦不足以芥蔕其心否?” '''다시 질문: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증점(曾點)을 '요순(堯舜)의 사업이라도 또한 넉넉히 해낼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요순의 사업이라도 역시 그의 마음을 흔들지(芥蔕) 못한다 뜻 아닙니까?<ref>현행본 논어집주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ref> 曰: “堯舜事業也只是這箇道理.” '''대답: 요순의 사업 역시 이 도리(道理)일 뿐이다. 又問: “他之所爲, 必不中節.” '''다시 질문: 그의 행위는 필시 절도에 맞지[中節] 않았을 것입니다.<ref>그 말이 고원한데 비하여 행실은 법도에 구속되지 않아 종종 선을 넘었을 것이라는 것이 증점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정주학파의 통상적인 해석이다.</ref> 曰: “本領處同了, 只是無細密工夫.” 木之(68때). '''대답: 본령(本領)이 되는 지점은 (성인과 그 수준이) 같았고, 그저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었을 뿐이다.<ref>질문자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다.</ref>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6:255 人治一家一國, 尙且有照管不到處, 況天下之大! 所以反反覆覆說. 不是大著箇心去理會, 如何照管得! 泳(66때). '''사람이 한 집안, 한 나라를 다스릴 때에도 오히려 관리가[照管] 미흡한 곳이 있거늘, 하물며 저 거대한 천하(를 다스리는) 경우에랴! 그래서 거듭 반복하여 설명한 것이다. 마음을 크게 먹고 살피지(理會) 않는다면 어찌 제대로 돌볼[照管] 수 있겠는가? 영(泳)의 기록. (66세) == 주해 == 3g1hidobq4fabv1jhux2vw9wdazdbz8 번역:주자어류/권17 대학혹문상 大學四或問上 114 86377 394516 392658 2025-07-05T14:54:29Z Thomas Dongsob Ahn 16640 56 394516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ref>장식의 말. 17:45를 보라.</ref> 위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ref>군무를 말한다.</ref>·전곡(錢穀)<ref>재무를 말한다.</ref>·변두(籩豆)<ref>제사와 의전을 말한다.</ref>·유사(有司)<ref>그밖의 모든 실무를 말한다.</ref>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理會]<ref>'리회(理會)'의 번역에 관해서는 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ref>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위. 효행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된다.</ref>나 여묘(廬墓)<ref>부모의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사는 행위. 역시 효행의 일종으로 거론된다.</ref> 같은 것은,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듬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행위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곧 남을 위하는[爲人] 행위이다.<ref> 이 부분은 대학혹문의 특정 구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대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의 사무를 보기를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사무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갑병, 전곡, 변두, 유사의 업무조차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구나 하여 수행한다면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고 여묘살이하고 망가진 수레와 파리한 말을 타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하는[爲人] 것일 뿐이다.(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馬, 亦爲人耳.)'</ref>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기원(器遠)<ref>주희의 제자 조숙원(曹叔遠)</ref>의 질문: 자방(子房)<ref>한(漢)의 개국공신 장량(張良, BC 250-BC 186).</ref>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대답: 그는 애당초 오직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남헌이 말하기를(南軒云)'이 더 있다.</ref>“爲己者無所爲而然”.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다. 이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이 응당 해야 할 바라고 보아서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떤 다른 (목적)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也. 這是見得凡事皆吾所當爲, 非求人知, 不求人譽, 無倚無靠之謂否?)'가 더 있다.</ref> '''행부(行夫)<ref>'행보'라고 읽어야 할지 '행부'라고 읽어야 할지 확실치 않다.</ref>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질문함.<ref>이 부분에 대해서는 17:45와 46, 47을 참조하라.</ref>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대답: 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有所爲者] 남을 위한다는 것[爲人]이다. 이에 관해서는 반드시 천하의 일이 기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본연의 직분[性分]의 범위 밖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니 (그렇게 알게 된) 뒤에 그것을 실천해야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될 뿐이다.<ref>대학혹문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활연대공하여, 천하를 봄에 그 어떤 사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고, 그 어떤 일도 자신의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다. 혹여 천한 필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여전히 자기 직분의 범위 안에 있다고 여긴다.(是以君子之心, 豁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去聲內也)'</ref>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의 경우,<ref>맹자 7B:33.</ref> 요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망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애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통곡한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망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니, 이는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기꺼이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더러 하라고 시키면 그제서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경우[爲人]가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내가(道夫) 말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ref>17:47을 참조하라.</ref>는 매우[已甚] 분명하니, (이러한 행위들이 위기가 되느냐 위인이 되느냐는) 사람들 각자의 소견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ref>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는 뜻이다.</ref> 又問: “割股一事如何?” '''(내가) 다시 질문함: 할고(割股)는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대답: 할고(割股)는 물론 옳지 않지만, 만약 성심(誠心)으로 한 일이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면 역시 (옳은 쪽으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나의 말): 요즘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재질문: "요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들 자신의 (할고 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자인합니다<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곡절(을 살펴보면) 역시 매우 난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윽고, ...(再問: 如今都不問如何, 都<不只>自認自家不是, 然其曲折亦甚難處. 久之,)'가 더 있다.</ref>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사정을) 자세히 물으시고 한동안 경악하셨다. 이내 안색을 바로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사람) 자신의 계산이 지나쳤던[過計] 것일 뿐이다. 설사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역시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의 일(에 대처하는 자세로는) 오직 정직함[直] 뿐이다. (그 사람은) 어디 한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행부(行夫)의 말: 그래도 (체포될 경우) 옥에 갇혀 돈을 써야 하니[著]<ref>'著'은 종종 '須著'의 준말로 쓰인다. '~해야 한다'의 의미이다. 17:38의 용례를 참조하라.</ref>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대답: 세상에 어떻게[那] 조금도 젖지 않고[霑濕]<ref>'점유(沾濡)'라고도 쓴다.</ref> 면할 수[解]<ref>'解'는 영어에서의 can과 같다.</ref> 있겠는가! 앞서 말한 경우 같으면, (그 사람은)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했더라면 그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하고서 곧 그렇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어는 것처럼[滴水滴凍]<ref>'적수성동(滴水成凍)'의 형태로도 사용한다. 확고부동함, 과감함, 엄정함을 의미하며, 확실하게 하나하나 사안을 격파해가는 기상을 형용하기도 한다. 주자어류사휘연구 p.255 참조.</ref> 해나가서 뒷날의 여러 사건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f>본 조목의 후반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일역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짐작한다. 송회요집고등을 보면 당시 의도적인 할고를 통해 효자로 인정받아 세금과 요역을 면제받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급 관청에서는 할고행위가 보고되면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자행한 것인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고, 조사 결과 불순한 할고라고 판단되면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사건의 당사자는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할고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자신이 위선자로 지목되어 관청의 조사를 받게 될까 두려워 할고하지 않았고, 그 결과 (어쩌면 할고를 통해 병이 나을 수도 있었을) 부모가 사망한 것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질문: ‘극명덕(克明德)’<ref>대학 전 1장.</ref>에 대하여 ‘극(克)은 능(能)이다.’<ref>해당부분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ref>고 하였는데, 《대학혹문》 에서는 도리어 ‘이겨내려는[克] 노력을 다할 수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能'자가 없고 '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라고 쓰고 있다.</ref>고 풀이하여 다시‘이겨내어 다스리다[克治]’의 ‘극(克)’처럼 보이는데, 어째서입니까?<ref>극(克)은 능(能)이나 승(勝)으로 훈한다. 대학장구에서는 능으로 훈했는데 혹문에서는 승으로 훈했으니 이상하다는 질문이다.</ref>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ref>여유량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於'를 '如'로 적고 있다.</ref>‘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대답: 이 ‘극(克)’ 자는 비록 ‘능(能)’ 자로 훈(訓)하지만, 그래도 ‘극(克)’ 자가 ‘능(能)’ 자보다 무겁다. ‘능(能)’ 자는 힘이 없고 ‘극(克)’ 자는 힘이 있다. 곧 다른 사람은 능하지 못한데 문왕(文王)만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단지 ‘능명덕(能明德)’이라고만 썼으면 말의 뜻이 모두 약해졌을 것이다. 무릇 글자 중에는 훈(訓)과 뜻[義]은 같지만 음향[聲響]이 완전히[頓] 달라서 힘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극(克)’과 ‘능(能)’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능히 삼택의 마음을 안다[克宅厥心]’<ref>상서 주서 입정(立政)편 제 12장. 본래 '惟克厥宅心'이어야 하는데 본 조목에서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택(宅)'은 지위이다. 입정편에서 세 가지 큰 지위에 거한 자를 '삼택' 혹은 '삼유택(三有宅)'이라고 부른다. '惟克厥宅心'은 문왕(文王)이 이 삼택의 마음을 능히 잘 알았다는 뜻이다.</ref>, ‘능히 큰 덕을 밝힌다[克明俊德]’<ref>상서 우서 요전 제 2장. 대학 전 1장에서도 인용하고 있다.</ref> 등과 같은 것들에서 (이 차이를) 볼 수 있다.<ref>주희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대학혹문에서 밝은 명령에 대해 설명한 곳에서 말하기를(或問說明命處云)'이 더 있다.</ref>: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如何是體? 如何是用?'이 없고 '일상 속의 어디가 전체대용의 지점입니까?(日用間如何是全體大用處)'라고 적혀 있다.</ref> '''질문:‘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이 일상[日用] 속에서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다'<ref>대학혹문.</ref>에서, 체(體)는 무엇이고 용(用)은 무엇입니까?<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대학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전체대용(全體大用)'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명덕(明德)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양상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ref>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이 없고, 그 대신 '可見.'과 '如喜怒哀樂'의 사이에 '體與用不相離, 如這是體, 起來運行便是用.'이 있다.</ref>‘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ref>조선고사본에서는 '擧此一節'</ref>, 體·用便<ref>조선고사본에서는 '便'을 '亦'으로 적었다.</ref>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하의 주석에서처럼 '희노는 용이요,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如喜怒是用, 所以能喜怒者, 便是體)'라고 적고 있다.</ref>”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을 간단히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 㝢同.)'라고 적고 있다.</ref> '''대답: 체(體)와 용(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몸[身]은 체(體)이고 일어나 가려는 것은 용(用)이다.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모두 경악하고 측은한 마음[怵惕惻隱之心]이 있다’는 단지 이 한 가지 단서에서 체(體)와 용(用)을 볼 수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용(用)이고, 희노애락의 원천[所以喜怒哀樂]은 체(體)이다. <진순의 기록: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ref>'소이(所以)'는 가능근거이다. 우리의 몸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걷고 달리는 것이 가능하고 핸드폰이 있어야 앱이 돌아가는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솟구침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능근거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ref><ref>본 조목은 서우와 진순이 각각 기록한 것인데 조선고사본에서는 진순의 것을 수록했고 여정덕본에서는 서우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되 진순의 것을 주석으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ref>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 구문이 더 있다. '늘 반복하여 생각하지만 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용』(제 16장)에서 말하기를, '마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은 귀신(鬼神)의 성정과 공효[德]가 이처럼 성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몸 밖에 (실제로) 있는 물건입니다만, 지금 이른바 (밝은) 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나의 이 작은 마음 속에 갖추어진 것이니, 애초에 어찌 형체가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정말로 그것이 앞에 참여하고 있고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듯이 하라"고 하니,(常反覆思之, 而未會其意. 如中庸言, 如在其上, 如其左右, 是言鬼神之德如此其盛也. 猶曰鬼神者, 身外之物也. 今之所謂德者, 乃天之所以命我, 而具於一心之微, 初豈有形體之可見? 今乃曰眞若見其參於前而倚於衡,)'</ref> 不知<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其'가 더 있다.</ref>所見者果何物耶?” '''질문: 《대학혹문》에서 ‘"항상 거기에 눈을 두어서[常目在之]"<ref>대학 전 1장에 나오는 '고식(顧諟)'에 대한 주희의 풀이이다. 대학장구에 보인다.</ref> 마치 정말로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음"<ref>논어 15:5</ref>을 보듯이 한다면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제 7장. '이루어진 본성을 간직하고 간직함이 도의가 나오는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ref>’<ref>대학혹문. 어류 16:9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물건입니까?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대답: 이 어찌 볼 수 있는 물건이겠는가? 다만 뭇 사람들이 성찰(省察)할 줄 몰라서 일상생활[常行日用] 속에서 매양 이 (밝은) 덕(德)을 잊고 지내며,<ref>'與'는 뒤따라오는 명사구를 목적어로 확정해준다. '相'은 뒤따라오는 동사의 일방적인 적용을 나타낸다. 뭇 사람들'이' 밝은 덕'을' 잊고 사는 것이지, 밝은 덕과 사람들이 서로를 잊고 산다는 말이 아니다.</ref> 자신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른바 '자세히 살핀다[顧諟]'는 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늘 이 이치(理)를 간직하고 있으라는 것 정도이다.<ref>'在'는 단정적 어감의 어기사로, 문언의 '焉'과 같다.</ref> 일단 말을 냈으면 말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當然之則]이 있으니 실언해서는 안 되고, 일단 일을 행했으면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에 불과할 뿐이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무슨 물건이 있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는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질문: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17:51을 참조하라.</ref>를 인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대답: 하늘이 명(命)한 바를 '밝은 명령(明命)'이라 하고, 내가 내 속에 얻은 것을 '밝은 덕(明德)'이라 하니, (이 둘은)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것을[這些] 자기 속에 잘 간직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속에 간직하기만 하면,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충(忠)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반드시 효(孝)할 수 있을 것이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를 보면 깜짝 놀라는(怵惕)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고, 담을 뚫고 넘어[穿窬] (도둑질하는) 무리를 보면 수치스럽고 미워하는[羞惡]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며, 응당 공경(恭敬)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공경할 수 있을 것이고, 응당 사양[辭遜]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사양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반드시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곧 이 본성(性)이 발현한 것이 모두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이것을<ref>밝은 명령이자 밝은 덕.</ref> 잘 간직하지도 못하면서 틔워나오길 기대한다면 그 무엇이 도리에 합치할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질문: '자세히 살피다[顧諟]’<ref>대학 전 1장.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顧諟天之明命]'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ref> 구절은 《대학혹문》에서 다시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대답: 사람의 본성(性)은 본래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일상생활[日用]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 뿐이다. 법칙[則]이란 이른바 천리(天理)이다. 사람이 매사를 옳게 한다면 곧 천리(天理)에 합치된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동일한)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만약 이 뜻을 이해한다면 하늘이 어찌 (사람보다) 클 것이며 사람이 어찌 (하늘보다) 작을 것인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다[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에 대한 질문.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대답: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의 탄생은 하늘에서 얻었으니, 이 사람을 낳은 이상 하늘은 다시 사람 안에 있게 된다. 말하고 움직이며 보고 듣는 것[語言動作視聽] 모두가 다 하늘이다. 바로 지금 (내가) 말하고 떠드는 것도 하늘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살핀다[顧諟]'함은 항상 (명덕의) 찬란한 광명(光明)이 내 눈 앞을 비추도록 보라는 것이다.<ref>유사한 표현이 14:73에 있으니 참조하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덕원(德元)<ref>곽우인(郭友仁)</ref>의 질문: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ref>물그릇에 새긴 글귀이다. 대학 전 2장에 보인다.</ref>은 어느 책에서 보입니까? 曰: “只<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是'가 있다.</ref>見於大學.” '''대답: 오직 《대학》에서만 보인다. 又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又曰'이 없다.</ref>: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得'이 있다.</ref>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다시 말함: 성탕(成湯)의 공부(工夫)는 모두 '경(敬)' 자 하나에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대단히 단정하고 삼가는[修飭]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가 실천한 공부를 말할 때 또한 매우 드러나게[著] 말했다. 예를 들어 우(禹)임금의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했다[克勤于邦, 克儉于家]'<ref>상서 우서 대우모 제 14장.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으니, (이는) 너의 현명함이니라.(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ref> 같은 부류는 도리어 대강(大綱)을 말한 것이다. 탕(湯) 임금에 대해서는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했다[檢身若不及]'<ref>아무리 단속해도 부족하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상서 상서 이훈 제 5장. '위에 거하시어 능히 밝히시며, 아래에 거하시어 능히 충성하시며, 사람을 허여하되 다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시어 만방을 소유함에 이르셨으니, 오직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居上克明, 爲下克忠,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以至于有萬邦, 玆惟艱哉)'</ref>고 말한다.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내가[文蔚] 말함: '의(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제어하며[以義制事, 以禮制心]',<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8장.</ref>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불리지 않았다[不邇聲色, 不殖貨利]'<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5장.</ref> 등의 말에서 '날로 새로워짐[日新]'<ref>대학 전 2장.</ref>의 효과[功]를 볼 수 있습니다.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說'이 있다.</ref>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대답: 진실로 그렇다. 내가 《대학혹문》 중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상세히 실은 것은, 남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요, 역시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썼으면[經心] 해서일 뿐이다. 문위(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 '''질문: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경건함(敬)이 태만(怠)함을 이기면 길(吉)하고, 태만(怠)함이 경건함(敬)을 이기면 멸(滅)하며, 의(義)가 욕(欲)을 이기면 따르고[從], 욕(欲)이 의(義)를 이기면 흉(凶)하다.'고 하는데 '종(從)' 자는 무슨 뜻입니까?<ref>대대례기(大戴禮記) 무왕천조(武王踐阼)편에서 태공망이 무왕에게 조언할 적에 단서(丹書)라는 책을 인용하며 한 말이다.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단서가 어떤 책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무왕천조편은 상해박물관 소장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 컬렉션(속칭 '상박초간') 가운데서도 발견되었다. 馬承源,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七), 上海古籍出版社, 2008. 상박초간본과 대대례기본을 비교한 논문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문병순, "≪上博(七)·武王踐阼≫篇 板本 비교 분석", 중국어문논총 41, 2009. 59-74.</ref>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통행본의 51:36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짐작컨대 51:36과 17:56은 본래 하나의 조목이었는데 앞부분은 대학혹문에서 인용한 단서에 관한 문답이고 뒷부분은 맹자 1B에 관한 문답인 관계로 여정덕이 둘로 나누어 지금과 같이 배치한 듯하다.</ref> '''대답: 종(從)은 순(順)이다. 경건(敬)하면 세워지고[豎起], 태만(怠)하면 쓰러진다[放倒].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는 것이 의(義)이고,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욕(欲)이다. 여기에서 경(敬)과 의(義)는 (각각) 본체(體)와 작용(用)이니, 또한 곤괘(坤卦)에서 설명한 경(敬)과 의(義)(의 관계)와 같다.<ref>주역 곤괘 문언전의 '경건함을 가지고 안쪽을 올곧게 하고 의로움을 가지고 바깥쪽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를 말한다. 내면의 경건함 쪽이 본체, 외면의 올바른 행실 쪽이 작용이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 17:57 “‘엄밀하고 굳세다[瑟兮僩兮]’는 것은 엄숙하고 두려워함[恂慄]이다. ‘한(僩)’ 자는 옛날에는 너그럽고 큼[寬大]으로 훈(訓)했다. 내가 경(經)과 자(子)에 실린 바를 보니, 혹 ‘忄’ 변을 따르거나 혹 ‘扌’ 변을 따르는 다름이 있지만, 모두 굳세고 굳건한 모습[武毅之貌]이 있다고 말하므로, 내가 주(注) 가운데 바로 무의(武毅)로써 그것을 설명했다.” o 도부(道夫)가 말하다: “이와 같이 주(注)해야 비로소 ‘슬(瑟)’ 자 및 아랫글의 순률(恂慄) 설(說)과 서로 부합합니다.” o 답하다: “또한 예컨대 ‘순(恂)’ 자를 정씨(鄭氏, 정현)는 ‘준(峻)’으로 읽었다. 내가 처음에 말하기를, 이것은 단지 ‘온순한 모습[恂恂如也]’의 ‘순(恂)’이니, 어찌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장자(莊子)》를 읽다가 이른바 ‘나무에 있을 때는 곧 두려워 떨며 무서워한다[木處則惴慄恂懼]’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씨(鄭氏)의 음(音)이 마땅함을 알았다. 이와 같은 부분은 내가 《혹문(或問)》 중에 미처 싣지 못했다. 요컨대 이와 같은 부분은 모름지기 글을 많이 읽은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o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58 묻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배우는 자의 일인데,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盛德至善]’을 《혹문(或問)》에서는 곧 성인(聖人)을 가리켜 말했으니, 어째서입니까?” o 답하다: “뒷부분에서 설명한 것이 커서 성인(聖人)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이는 윗글의 ‘문왕(文王)이 계속 밝히고 공경하여 그침[緝熙敬止]’에 연결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 또한 손 놓고 팔짱 끼고[揷手掉臂] 저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모름지기 배워야 비로소 된다. 공자(孔子)께서 이르신 바 ‘덕(德)을 닦지 못하며, 학문(學)을 강론하지 못하며, 의(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하며,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이것이 무슨 긴요함이 있는가? 성인께서 도리어 근심하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직 그것을 근심하셨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이다. 이른바 ‘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者]’는 곧 단지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직 성인(聖)이라도 생각을 망령되이 하면 미치광이가 되고, 오직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우(寓)도 같음. • 17:59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 이미 배우고도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다시 강습(講習)하고 토론(討論)하여 그것을 구하니, 뼈나 뿔을 다루는 자가 이미 자르고[切]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磋]과 같다. 잘라서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磋] 매끄럽고 윤택함[滑澤]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뼈나 뿔을 다루는 자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미 닦고도[修]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또한 성찰(省察)하고 극치(克治)하여 그것을 마치니, 옥이나 돌을 다루는 자가 이미 쪼고[琢]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磨]과 같다. 쪼는 것[琢]은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磨] 정밀하고 세밀함[精細]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옥이나 돌을 다루는 것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것을 취하여 군자가 지선(至善)에 임함을 비유하니, 이미 격물(格物)하여 머무를 곳[所止]을 알기를 구하고, 또한 힘을 써서 그 머무를 곳[所止]을 얻기를 구한다. 정심(正心)·성의(誠意)가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이다①. ‘엄밀하고 굳세며[瑟兮僩兮], 빛나고 성대함[赫兮喧兮]’ 여기에 이르면,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등에 넘쳐[睟面盎背] 밖으로 드러나니,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의 증험(驗)이다.” o 도부(道夫)가 말하다: “그러므로 《혹문(或問)》 중에 시종(始終)과 조리(條理)의 구별이 있는 것이니,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o 답하다: “그렇다.” o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o ①: (편집자 주: 원문에는 각주 표시가 있으나 내용은 없음) • 17:60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다”는 도리어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의 일로 삼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는 도리어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로 삼으니, 모두 공부(工夫)가 정밀(精密)함을 요구한다. 도학(道學)은 시작하는 부분이고, 자수(自修)는 성취하는 부분이다. 중간의 공부는 이미 강구(講求)하고 또다시 강구하며, 이미 극치(克治)하고 또다시 극치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미 정밀한데 그 더욱 정밀함을 구하고, 이미 치밀한데 그 더욱 치밀함을 구하는 것이다. o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7:61 주(周)가 묻다: “절차(切磋)는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이고, 탁마(琢磨)는 마치는 조리[終條理]입니다. 마치는 조리가 비교적 치밀합니까?” o 답하다: “시작하는 조리와 마치는 조리 모두 치밀해야 하니, 강론하고 익힘[講貫]에 더욱 강론하고 익히며, 수양하고 삼감[修飭]에 더욱 수양하고 삼가야 한다.”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62 묻다: “탁마(琢磨) 뒤에 다시 슬한(瑟僩)·혁훤(赫喧)이 있는데, 어찌하여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이 됩니까?” o 답하다: “그것은 공부하는 부분이 아니라 성취된 뒤의 기상(氣象)이 그러한 것이다. ‘점잖고 교양 있는 문왕[穆穆文王]’ 또한 기상(氣象)이다.” o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7hqb40vhn3wdgoyp4yxxi40tc2lx7wn 394567 394516 2025-07-06T11:05:56Z Thomas Dongsob Ahn 16640 57 394567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ref>장식의 말. 17:45를 보라.</ref> 위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ref>군무를 말한다.</ref>·전곡(錢穀)<ref>재무를 말한다.</ref>·변두(籩豆)<ref>제사와 의전을 말한다.</ref>·유사(有司)<ref>그밖의 모든 실무를 말한다.</ref>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理會]<ref>'리회(理會)'의 번역에 관해서는 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ref>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위. 효행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된다.</ref>나 여묘(廬墓)<ref>부모의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사는 행위. 역시 효행의 일종으로 거론된다.</ref> 같은 것은,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듬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행위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곧 남을 위하는[爲人] 행위이다.<ref> 이 부분은 대학혹문의 특정 구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대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의 사무를 보기를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사무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갑병, 전곡, 변두, 유사의 업무조차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구나 하여 수행한다면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고 여묘살이하고 망가진 수레와 파리한 말을 타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하는[爲人] 것일 뿐이다.(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馬, 亦爲人耳.)'</ref>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기원(器遠)<ref>주희의 제자 조숙원(曹叔遠)</ref>의 질문: 자방(子房)<ref>한(漢)의 개국공신 장량(張良, BC 250-BC 186).</ref>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대답: 그는 애당초 오직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남헌이 말하기를(南軒云)'이 더 있다.</ref>“爲己者無所爲而然”.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다. 이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이 응당 해야 할 바라고 보아서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떤 다른 (목적)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也. 這是見得凡事皆吾所當爲, 非求人知, 不求人譽, 無倚無靠之謂否?)'가 더 있다.</ref> '''행부(行夫)<ref>'행보'라고 읽어야 할지 '행부'라고 읽어야 할지 확실치 않다.</ref>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질문함.<ref>이 부분에 대해서는 17:45와 46, 47을 참조하라.</ref>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대답: 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有所爲者] 남을 위한다는 것[爲人]이다. 이에 관해서는 반드시 천하의 일이 기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본연의 직분[性分]의 범위 밖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니 (그렇게 알게 된) 뒤에 그것을 실천해야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될 뿐이다.<ref>대학혹문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활연대공하여, 천하를 봄에 그 어떤 사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고, 그 어떤 일도 자신의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다. 혹여 천한 필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여전히 자기 직분의 범위 안에 있다고 여긴다.(是以君子之心, 豁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去聲內也)'</ref>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의 경우,<ref>맹자 7B:33.</ref> 요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망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애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통곡한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망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니, 이는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기꺼이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더러 하라고 시키면 그제서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경우[爲人]가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내가(道夫) 말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ref>17:47을 참조하라.</ref>는 매우[已甚] 분명하니, (이러한 행위들이 위기가 되느냐 위인이 되느냐는) 사람들 각자의 소견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ref>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는 뜻이다.</ref> 又問: “割股一事如何?” '''(내가) 다시 질문함: 할고(割股)는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대답: 할고(割股)는 물론 옳지 않지만, 만약 성심(誠心)으로 한 일이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면 역시 (옳은 쪽으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나의 말): 요즘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재질문: "요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들 자신의 (할고 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자인합니다<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곡절(을 살펴보면) 역시 매우 난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윽고, ...(再問: 如今都不問如何, 都<不只>自認自家不是, 然其曲折亦甚難處. 久之,)'가 더 있다.</ref>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사정을) 자세히 물으시고 한동안 경악하셨다. 이내 안색을 바로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사람) 자신의 계산이 지나쳤던[過計] 것일 뿐이다. 설사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역시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의 일(에 대처하는 자세로는) 오직 정직함[直] 뿐이다. (그 사람은) 어디 한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행부(行夫)의 말: 그래도 (체포될 경우) 옥에 갇혀 돈을 써야 하니[著]<ref>'著'은 종종 '須著'의 준말로 쓰인다. '~해야 한다'의 의미이다. 17:38의 용례를 참조하라.</ref>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대답: 세상에 어떻게[那] 조금도 젖지 않고[霑濕]<ref>'점유(沾濡)'라고도 쓴다.</ref> 면할 수[解]<ref>'解'는 영어에서의 can과 같다.</ref> 있겠는가! 앞서 말한 경우 같으면, (그 사람은)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했더라면 그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하고서 곧 그렇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어는 것처럼[滴水滴凍]<ref>'적수성동(滴水成凍)'의 형태로도 사용한다. 확고부동함, 과감함, 엄정함을 의미하며, 확실하게 하나하나 사안을 격파해가는 기상을 형용하기도 한다. 주자어류사휘연구 p.255 참조.</ref> 해나가서 뒷날의 여러 사건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f>본 조목의 후반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일역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짐작한다. 송회요집고등을 보면 당시 의도적인 할고를 통해 효자로 인정받아 세금과 요역을 면제받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급 관청에서는 할고행위가 보고되면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자행한 것인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고, 조사 결과 불순한 할고라고 판단되면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사건의 당사자는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할고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자신이 위선자로 지목되어 관청의 조사를 받게 될까 두려워 할고하지 않았고, 그 결과 (어쩌면 할고를 통해 병이 나을 수도 있었을) 부모가 사망한 것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질문: ‘극명덕(克明德)’<ref>대학 전 1장.</ref>에 대하여 ‘극(克)은 능(能)이다.’<ref>해당부분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ref>고 하였는데, 《대학혹문》 에서는 도리어 ‘이겨내려는[克] 노력을 다할 수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能'자가 없고 '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라고 쓰고 있다.</ref>고 풀이하여 다시‘이겨내어 다스리다[克治]’의 ‘극(克)’처럼 보이는데, 어째서입니까?<ref>극(克)은 능(能)이나 승(勝)으로 훈한다. 대학장구에서는 능으로 훈했는데 혹문에서는 승으로 훈했으니 이상하다는 질문이다.</ref>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ref>여유량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於'를 '如'로 적고 있다.</ref>‘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대답: 이 ‘극(克)’ 자는 비록 ‘능(能)’ 자로 훈(訓)하지만, 그래도 ‘극(克)’ 자가 ‘능(能)’ 자보다 무겁다. ‘능(能)’ 자는 힘이 없고 ‘극(克)’ 자는 힘이 있다. 곧 다른 사람은 능하지 못한데 문왕(文王)만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단지 ‘능명덕(能明德)’이라고만 썼으면 말의 뜻이 모두 약해졌을 것이다. 무릇 글자 중에는 훈(訓)과 뜻[義]은 같지만 음향[聲響]이 완전히[頓] 달라서 힘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극(克)’과 ‘능(能)’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능히 삼택의 마음을 안다[克宅厥心]’<ref>상서 주서 입정(立政)편 제 12장. 본래 '惟克厥宅心'이어야 하는데 본 조목에서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택(宅)'은 지위이다. 입정편에서 세 가지 큰 지위에 거한 자를 '삼택' 혹은 '삼유택(三有宅)'이라고 부른다. '惟克厥宅心'은 문왕(文王)이 이 삼택의 마음을 능히 잘 알았다는 뜻이다.</ref>, ‘능히 큰 덕을 밝힌다[克明俊德]’<ref>상서 우서 요전 제 2장. 대학 전 1장에서도 인용하고 있다.</ref> 등과 같은 것들에서 (이 차이를) 볼 수 있다.<ref>주희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대학혹문에서 밝은 명령에 대해 설명한 곳에서 말하기를(或問說明命處云)'이 더 있다.</ref>: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如何是體? 如何是用?'이 없고 '일상 속의 어디가 전체대용의 지점입니까?(日用間如何是全體大用處)'라고 적혀 있다.</ref> '''질문:‘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이 일상[日用] 속에서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다'<ref>대학혹문.</ref>에서, 체(體)는 무엇이고 용(用)은 무엇입니까?<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대학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전체대용(全體大用)'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명덕(明德)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양상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ref>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이 없고, 그 대신 '可見.'과 '如喜怒哀樂'의 사이에 '體與用不相離, 如這是體, 起來運行便是用.'이 있다.</ref>‘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ref>조선고사본에서는 '擧此一節'</ref>, 體·用便<ref>조선고사본에서는 '便'을 '亦'으로 적었다.</ref>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하의 주석에서처럼 '희노는 용이요,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如喜怒是用, 所以能喜怒者, 便是體)'라고 적고 있다.</ref>”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을 간단히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 㝢同.)'라고 적고 있다.</ref> '''대답: 체(體)와 용(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몸[身]은 체(體)이고 일어나 가려는 것은 용(用)이다.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모두 경악하고 측은한 마음[怵惕惻隱之心]이 있다’는 단지 이 한 가지 단서에서 체(體)와 용(用)을 볼 수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용(用)이고, 희노애락의 원천[所以喜怒哀樂]은 체(體)이다. <진순의 기록: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ref>'소이(所以)'는 가능근거이다. 우리의 몸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걷고 달리는 것이 가능하고 핸드폰이 있어야 앱이 돌아가는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솟구침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능근거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ref><ref>본 조목은 서우와 진순이 각각 기록한 것인데 조선고사본에서는 진순의 것을 수록했고 여정덕본에서는 서우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되 진순의 것을 주석으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ref>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 구문이 더 있다. '늘 반복하여 생각하지만 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용』(제 16장)에서 말하기를, '마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은 귀신(鬼神)의 성정과 공효[德]가 이처럼 성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몸 밖에 (실제로) 있는 물건입니다만, 지금 이른바 (밝은) 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나의 이 작은 마음 속에 갖추어진 것이니, 애초에 어찌 형체가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정말로 그것이 앞에 참여하고 있고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듯이 하라"고 하니,(常反覆思之, 而未會其意. 如中庸言, 如在其上, 如其左右, 是言鬼神之德如此其盛也. 猶曰鬼神者, 身外之物也. 今之所謂德者, 乃天之所以命我, 而具於一心之微, 初豈有形體之可見? 今乃曰眞若見其參於前而倚於衡,)'</ref> 不知<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其'가 더 있다.</ref>所見者果何物耶?” '''질문: 《대학혹문》에서 ‘"항상 거기에 눈을 두어서[常目在之]"<ref>대학 전 1장에 나오는 '고식(顧諟)'에 대한 주희의 풀이이다. 대학장구에 보인다.</ref> 마치 정말로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음"<ref>논어 15:5</ref>을 보듯이 한다면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제 7장. '이루어진 본성을 간직하고 간직함이 도의가 나오는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ref>’<ref>대학혹문. 어류 16:9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물건입니까?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대답: 이 어찌 볼 수 있는 물건이겠는가? 다만 뭇 사람들이 성찰(省察)할 줄 몰라서 일상생활[常行日用] 속에서 매양 이 (밝은) 덕(德)을 잊고 지내며,<ref>'與'는 뒤따라오는 명사구를 목적어로 확정해준다. '相'은 뒤따라오는 동사의 일방적인 적용을 나타낸다. 뭇 사람들'이' 밝은 덕'을' 잊고 사는 것이지, 밝은 덕과 사람들이 서로를 잊고 산다는 말이 아니다.</ref> 자신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른바 '자세히 살핀다[顧諟]'는 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늘 이 이치(理)를 간직하고 있으라는 것 정도이다.<ref>'在'는 단정적 어감의 어기사로, 문언의 '焉'과 같다.</ref> 일단 말을 냈으면 말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當然之則]이 있으니 실언해서는 안 되고, 일단 일을 행했으면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에 불과할 뿐이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무슨 물건이 있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는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질문: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17:51을 참조하라.</ref>를 인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대답: 하늘이 명(命)한 바를 '밝은 명령(明命)'이라 하고, 내가 내 속에 얻은 것을 '밝은 덕(明德)'이라 하니, (이 둘은)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것을[這些] 자기 속에 잘 간직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속에 간직하기만 하면,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충(忠)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반드시 효(孝)할 수 있을 것이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를 보면 깜짝 놀라는(怵惕)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고, 담을 뚫고 넘어[穿窬] (도둑질하는) 무리를 보면 수치스럽고 미워하는[羞惡]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며, 응당 공경(恭敬)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공경할 수 있을 것이고, 응당 사양[辭遜]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사양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반드시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곧 이 본성(性)이 발현한 것이 모두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이것을<ref>밝은 명령이자 밝은 덕.</ref> 잘 간직하지도 못하면서 틔워나오길 기대한다면 그 무엇이 도리에 합치할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질문: '자세히 살피다[顧諟]’<ref>대학 전 1장.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顧諟天之明命]'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ref> 구절은 《대학혹문》에서 다시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대답: 사람의 본성(性)은 본래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일상생활[日用]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 뿐이다. 법칙[則]이란 이른바 천리(天理)이다. 사람이 매사를 옳게 한다면 곧 천리(天理)에 합치된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동일한)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만약 이 뜻을 이해한다면 하늘이 어찌 (사람보다) 클 것이며 사람이 어찌 (하늘보다) 작을 것인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다[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에 대한 질문.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대답: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의 탄생은 하늘에서 얻었으니, 이 사람을 낳은 이상 하늘은 다시 사람 안에 있게 된다. 말하고 움직이며 보고 듣는 것[語言動作視聽] 모두가 다 하늘이다. 바로 지금 (내가) 말하고 떠드는 것도 하늘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살핀다[顧諟]'함은 항상 (명덕의) 찬란한 광명(光明)이 내 눈 앞을 비추도록 보라는 것이다.<ref>유사한 표현이 14:73에 있으니 참조하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덕원(德元)<ref>곽우인(郭友仁)</ref>의 질문: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ref>물그릇에 새긴 글귀이다. 대학 전 2장에 보인다.</ref>은 어느 책에서 보입니까? 曰: “只<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是'가 있다.</ref>見於大學.” '''대답: 오직 《대학》에서만 보인다. 又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又曰'이 없다.</ref>: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得'이 있다.</ref>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다시 말함: 성탕(成湯)의 공부(工夫)는 모두 '경(敬)' 자 하나에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대단히 단정하고 삼가는[修飭]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가 실천한 공부를 말할 때 또한 매우 드러나게[著] 말했다. 예를 들어 우(禹)임금의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했다[克勤于邦, 克儉于家]'<ref>상서 우서 대우모 제 14장.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으니, (이는) 너의 현명함이니라.(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ref> 같은 부류는 도리어 대강(大綱)을 말한 것이다. 탕(湯) 임금에 대해서는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했다[檢身若不及]'<ref>아무리 단속해도 부족하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상서 상서 이훈 제 5장. '위에 거하시어 능히 밝히시며, 아래에 거하시어 능히 충성하시며, 사람을 허여하되 다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시어 만방을 소유함에 이르셨으니, 오직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居上克明, 爲下克忠,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以至于有萬邦, 玆惟艱哉)'</ref>고 말한다.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내가[文蔚] 말함: '의(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제어하며[以義制事, 以禮制心]',<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8장.</ref>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불리지 않았다[不邇聲色, 不殖貨利]'<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5장.</ref> 등의 말에서 '날로 새로워짐[日新]'<ref>대학 전 2장.</ref>의 효과[功]를 볼 수 있습니다.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說'이 있다.</ref>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대답: 진실로 그렇다. 내가 《대학혹문》 중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상세히 실은 것은, 남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요, 역시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썼으면[經心] 해서일 뿐이다. 문위(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 '''질문: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경건함(敬)이 태만(怠)함을 이기면 길(吉)하고, 태만(怠)함이 경건함(敬)을 이기면 멸(滅)하며, 의(義)가 욕(欲)을 이기면 따르고[從], 욕(欲)이 의(義)를 이기면 흉(凶)하다.'고 하는데 '종(從)' 자는 무슨 뜻입니까?<ref>대대례기(大戴禮記) 무왕천조(武王踐阼)편에서 태공망이 무왕에게 조언할 적에 단서(丹書)라는 책을 인용하며 한 말이다.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단서가 어떤 책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무왕천조편은 상해박물관 소장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 컬렉션(속칭 '상박초간') 가운데서도 발견되었다. 馬承源,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七), 上海古籍出版社, 2008. 상박초간본과 대대례기본을 비교한 논문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문병순, "≪上博(七)·武王踐阼≫篇 板本 비교 분석", 중국어문논총 41, 2009. 59-74.</ref>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통행본의 51:36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짐작컨대 51:36과 17:56은 본래 하나의 조목이었는데 앞부분은 대학혹문에서 인용한 단서에 관한 문답이고 뒷부분은 맹자 1B에 관한 문답인 관계로 여정덕이 둘로 나누어 지금과 같이 배치한 듯하다.</ref> '''대답: 종(從)은 순(順)이다. 경건(敬)하면 세워지고[豎起], 태만(怠)하면 쓰러진다[放倒].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는 것이 의(義)이고,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욕(欲)이다. 여기에서 경(敬)과 의(義)는 (각각) 본체(體)와 작용(用)이니, 또한 곤괘(坤卦)에서 설명한 경(敬)과 의(義)(의 관계)와 같다.<ref>주역 곤괘 문언전의 '경건함을 가지고 안쪽을 올곧게 하고 의로움을 가지고 바깥쪽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를 말한다. 내면의 경건함 쪽이 본체, 외면의 올바른 행실 쪽이 작용이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ref>조선고사본은 이 앞에 '大學言'이 있다.</ref>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 ‘슬혜한혜[瑟兮僩兮]란 전율하고 두려워힌다[恂慄]는 뜻이다.'<ref>대학혹문.</ref> 에서,‘한(僩)’ 자는 옛날에는 관대(寬大)라고 훈(訓)했다. 내가 경(經)과 자(子)에 실린 바를 보니, ‘심방변(忄)’ 을 쓰거나 ‘재방변(扌)’ 을 쓰는 등의 차이가 있지만, 무인처럼 굳건한 모습[武毅之貌]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주석에서<ref>대학장구.</ref> 직접적으로 '무의(武毅)'로 설명했다.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내(道夫)가 말함: 이 주석과 같아야만 ‘슬(瑟)’ 자 및 아랫글의 '준률(恂慄)' 설(說)에 부합합니다.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대답: 예컨대 ‘준(恂)’ 자를 정씨(鄭氏)<ref>정현(鄭玄)</ref>는 ‘준(峻)’으로 읽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건 그저 순순여야(恂恂如也)<ref>논어 10:1. 신실하다는 뜻.</ref>의 순(恂)일 뿐인데, 어찌 반드시 그렇게 (준이라고) 읽어야 하는가'라고 했었다. 《장자(莊子)》를 읽다가 이른바 ‘나무 위에 있으면 두려워 전율한다[惴慄恂懼]’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씨(鄭氏)의 음(音)이 타당함을 알았다. 이와 같은 부분은 내가 《대학혹문》에 미처 싣지 못했다. 요컨대 이런 것들은 모름지기 글을 많이 읽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6:41과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 17:58 묻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배우는 자의 일인데,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盛德至善]’을 《혹문(或問)》에서는 곧 성인(聖人)을 가리켜 말했으니, 어째서입니까?” o 답하다: “뒷부분에서 설명한 것이 커서 성인(聖人)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이는 윗글의 ‘문왕(文王)이 계속 밝히고 공경하여 그침[緝熙敬止]’에 연결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 또한 손 놓고 팔짱 끼고[揷手掉臂] 저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모름지기 배워야 비로소 된다. 공자(孔子)께서 이르신 바 ‘덕(德)을 닦지 못하며, 학문(學)을 강론하지 못하며, 의(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하며,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이것이 무슨 긴요함이 있는가? 성인께서 도리어 근심하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직 그것을 근심하셨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이다. 이른바 ‘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者]’는 곧 단지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직 성인(聖)이라도 생각을 망령되이 하면 미치광이가 되고, 오직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우(寓)도 같음. • 17:59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 이미 배우고도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다시 강습(講習)하고 토론(討論)하여 그것을 구하니, 뼈나 뿔을 다루는 자가 이미 자르고[切]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磋]과 같다. 잘라서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磋] 매끄럽고 윤택함[滑澤]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뼈나 뿔을 다루는 자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미 닦고도[修]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또한 성찰(省察)하고 극치(克治)하여 그것을 마치니, 옥이나 돌을 다루는 자가 이미 쪼고[琢]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磨]과 같다. 쪼는 것[琢]은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磨] 정밀하고 세밀함[精細]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옥이나 돌을 다루는 것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것을 취하여 군자가 지선(至善)에 임함을 비유하니, 이미 격물(格物)하여 머무를 곳[所止]을 알기를 구하고, 또한 힘을 써서 그 머무를 곳[所止]을 얻기를 구한다. 정심(正心)·성의(誠意)가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이다①. ‘엄밀하고 굳세며[瑟兮僩兮], 빛나고 성대함[赫兮喧兮]’ 여기에 이르면,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등에 넘쳐[睟面盎背] 밖으로 드러나니,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의 증험(驗)이다.” o 도부(道夫)가 말하다: “그러므로 《혹문(或問)》 중에 시종(始終)과 조리(條理)의 구별이 있는 것이니,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o 답하다: “그렇다.” o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o ①: (편집자 주: 원문에는 각주 표시가 있으나 내용은 없음) • 17:60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다”는 도리어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의 일로 삼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는 도리어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로 삼으니, 모두 공부(工夫)가 정밀(精密)함을 요구한다. 도학(道學)은 시작하는 부분이고, 자수(自修)는 성취하는 부분이다. 중간의 공부는 이미 강구(講求)하고 또다시 강구하며, 이미 극치(克治)하고 또다시 극치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미 정밀한데 그 더욱 정밀함을 구하고, 이미 치밀한데 그 더욱 치밀함을 구하는 것이다. o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7:61 주(周)가 묻다: “절차(切磋)는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이고, 탁마(琢磨)는 마치는 조리[終條理]입니다. 마치는 조리가 비교적 치밀합니까?” o 답하다: “시작하는 조리와 마치는 조리 모두 치밀해야 하니, 강론하고 익힘[講貫]에 더욱 강론하고 익히며, 수양하고 삼감[修飭]에 더욱 수양하고 삼가야 한다.”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62 묻다: “탁마(琢磨) 뒤에 다시 슬한(瑟僩)·혁훤(赫喧)이 있는데, 어찌하여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이 됩니까?” o 답하다: “그것은 공부하는 부분이 아니라 성취된 뒤의 기상(氣象)이 그러한 것이다. ‘점잖고 교양 있는 문왕[穆穆文王]’ 또한 기상(氣象)이다.” o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b0jwbxuw84y2or4t5qytrms5i2rm5n7 394568 394567 2025-07-06T11:49:41Z Thomas Dongsob Ahn 16640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394568 wikitext text/x-wiki {{번역 머리말 | 제목 = 주자어류 017 | 다른 표기 = | 부제 = 대학4 / 혹문 상(上) | 부제 다른 표기 = | 저자 = | 편집자 = | 역자 = | 이전 = | 다음 = | 설명 = }} 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ref>장식의 말. 17:45를 보라.</ref> 위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ref>군무를 말한다.</ref>·전곡(錢穀)<ref>재무를 말한다.</ref>·변두(籩豆)<ref>제사와 의전을 말한다.</ref>·유사(有司)<ref>그밖의 모든 실무를 말한다.</ref>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理會]<ref>'리회(理會)'의 번역에 관해서는 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ref>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위. 효행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된다.</ref>나 여묘(廬墓)<ref>부모의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사는 행위. 역시 효행의 일종으로 거론된다.</ref> 같은 것은,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듬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행위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곧 남을 위하는[爲人] 행위이다.<ref> 이 부분은 대학혹문의 특정 구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대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의 사무를 보기를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사무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갑병, 전곡, 변두, 유사의 업무조차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구나 하여 수행한다면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고 여묘살이하고 망가진 수레와 파리한 말을 타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하는[爲人] 것일 뿐이다.(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馬, 亦爲人耳.)'</ref>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기원(器遠)<ref>주희의 제자 조숙원(曹叔遠)</ref>의 질문: 자방(子房)<ref>한(漢)의 개국공신 장량(張良, BC 250-BC 186).</ref>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대답: 그는 애당초 오직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남헌이 말하기를(南軒云)'이 더 있다.</ref>“爲己者無所爲而然”.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다. 이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이 응당 해야 할 바라고 보아서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떤 다른 (목적)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也. 這是見得凡事皆吾所當爲, 非求人知, 不求人譽, 無倚無靠之謂否?)'가 더 있다.</ref> '''행부(行夫)<ref>'행보'라고 읽어야 할지 '행부'라고 읽어야 할지 확실치 않다.</ref>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질문함.<ref>이 부분에 대해서는 17:45와 46, 47을 참조하라.</ref>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대답: 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有所爲者] 남을 위한다는 것[爲人]이다. 이에 관해서는 반드시 천하의 일이 기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본연의 직분[性分]의 범위 밖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니 (그렇게 알게 된) 뒤에 그것을 실천해야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될 뿐이다.<ref>대학혹문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활연대공하여, 천하를 봄에 그 어떤 사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고, 그 어떤 일도 자신의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다. 혹여 천한 필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여전히 자기 직분의 범위 안에 있다고 여긴다.(是以君子之心, 豁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去聲內也)'</ref>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의 경우,<ref>맹자 7B:33.</ref> 요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망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애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통곡한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망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니, 이는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기꺼이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더러 하라고 시키면 그제서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경우[爲人]가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내가(道夫) 말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ref>17:47을 참조하라.</ref>는 매우[已甚] 분명하니, (이러한 행위들이 위기가 되느냐 위인이 되느냐는) 사람들 각자의 소견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ref>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는 뜻이다.</ref> 又問: “割股一事如何?” '''(내가) 다시 질문함: 할고(割股)는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대답: 할고(割股)는 물론 옳지 않지만, 만약 성심(誠心)으로 한 일이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면 역시 (옳은 쪽으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나의 말): 요즘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재질문: "요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들 자신의 (할고 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자인합니다<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곡절(을 살펴보면) 역시 매우 난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윽고, ...(再問: 如今都不問如何, 都<不只>自認自家不是, 然其曲折亦甚難處. 久之,)'가 더 있다.</ref>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사정을) 자세히 물으시고 한동안 경악하셨다. 이내 안색을 바로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사람) 자신의 계산이 지나쳤던[過計] 것일 뿐이다. 설사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역시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의 일(에 대처하는 자세로는) 오직 정직함[直] 뿐이다. (그 사람은) 어디 한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행부(行夫)의 말: 그래도 (체포될 경우) 옥에 갇혀 돈을 써야 하니[著]<ref>'著'은 종종 '須著'의 준말로 쓰인다. '~해야 한다'의 의미이다. 17:38의 용례를 참조하라.</ref>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대답: 세상에 어떻게[那] 조금도 젖지 않고[霑濕]<ref>'점유(沾濡)'라고도 쓴다.</ref> 면할 수[解]<ref>'解'는 영어에서의 can과 같다.</ref> 있겠는가! 앞서 말한 경우 같으면, (그 사람은)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했더라면 그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하고서 곧 그렇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어는 것처럼[滴水滴凍]<ref>'적수성동(滴水成凍)'의 형태로도 사용한다. 확고부동함, 과감함, 엄정함을 의미하며, 확실하게 하나하나 사안을 격파해가는 기상을 형용하기도 한다. 주자어류사휘연구 p.255 참조.</ref> 해나가서 뒷날의 여러 사건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f>본 조목의 후반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일역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짐작한다. 송회요집고등을 보면 당시 의도적인 할고를 통해 효자로 인정받아 세금과 요역을 면제받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급 관청에서는 할고행위가 보고되면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자행한 것인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고, 조사 결과 불순한 할고라고 판단되면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사건의 당사자는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할고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자신이 위선자로 지목되어 관청의 조사를 받게 될까 두려워 할고하지 않았고, 그 결과 (어쩌면 할고를 통해 병이 나을 수도 있었을) 부모가 사망한 것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질문: ‘극명덕(克明德)’<ref>대학 전 1장.</ref>에 대하여 ‘극(克)은 능(能)이다.’<ref>해당부분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ref>고 하였는데, 《대학혹문》 에서는 도리어 ‘이겨내려는[克] 노력을 다할 수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能'자가 없고 '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라고 쓰고 있다.</ref>고 풀이하여 다시‘이겨내어 다스리다[克治]’의 ‘극(克)’처럼 보이는데, 어째서입니까?<ref>극(克)은 능(能)이나 승(勝)으로 훈한다. 대학장구에서는 능으로 훈했는데 혹문에서는 승으로 훈했으니 이상하다는 질문이다.</ref>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ref>여유량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於'를 '如'로 적고 있다.</ref>‘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대답: 이 ‘극(克)’ 자는 비록 ‘능(能)’ 자로 훈(訓)하지만, 그래도 ‘극(克)’ 자가 ‘능(能)’ 자보다 무겁다. ‘능(能)’ 자는 힘이 없고 ‘극(克)’ 자는 힘이 있다. 곧 다른 사람은 능하지 못한데 문왕(文王)만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단지 ‘능명덕(能明德)’이라고만 썼으면 말의 뜻이 모두 약해졌을 것이다. 무릇 글자 중에는 훈(訓)과 뜻[義]은 같지만 음향[聲響]이 완전히[頓] 달라서 힘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극(克)’과 ‘능(能)’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능히 삼택의 마음을 안다[克宅厥心]’<ref>상서 주서 입정(立政)편 제 12장. 본래 '惟克厥宅心'이어야 하는데 본 조목에서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택(宅)'은 지위이다. 입정편에서 세 가지 큰 지위에 거한 자를 '삼택' 혹은 '삼유택(三有宅)'이라고 부른다. '惟克厥宅心'은 문왕(文王)이 이 삼택의 마음을 능히 잘 알았다는 뜻이다.</ref>, ‘능히 큰 덕을 밝힌다[克明俊德]’<ref>상서 우서 요전 제 2장. 대학 전 1장에서도 인용하고 있다.</ref> 등과 같은 것들에서 (이 차이를) 볼 수 있다.<ref>주희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대학혹문에서 밝은 명령에 대해 설명한 곳에서 말하기를(或問說明命處云)'이 더 있다.</ref>: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如何是體? 如何是用?'이 없고 '일상 속의 어디가 전체대용의 지점입니까?(日用間如何是全體大用處)'라고 적혀 있다.</ref> '''질문:‘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이 일상[日用] 속에서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다'<ref>대학혹문.</ref>에서, 체(體)는 무엇이고 용(用)은 무엇입니까?<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대학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전체대용(全體大用)'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명덕(明德)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양상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ref>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이 없고, 그 대신 '可見.'과 '如喜怒哀樂'의 사이에 '體與用不相離, 如這是體, 起來運行便是用.'이 있다.</ref>‘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ref>조선고사본에서는 '擧此一節'</ref>, 體·用便<ref>조선고사본에서는 '便'을 '亦'으로 적었다.</ref>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하의 주석에서처럼 '희노는 용이요,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如喜怒是用, 所以能喜怒者, 便是體)'라고 적고 있다.</ref>”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을 간단히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 㝢同.)'라고 적고 있다.</ref> '''대답: 체(體)와 용(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몸[身]은 체(體)이고 일어나 가려는 것은 용(用)이다.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모두 경악하고 측은한 마음[怵惕惻隱之心]이 있다’는 단지 이 한 가지 단서에서 체(體)와 용(用)을 볼 수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용(用)이고, 희노애락의 원천[所以喜怒哀樂]은 체(體)이다. <진순의 기록: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ref>'소이(所以)'는 가능근거이다. 우리의 몸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걷고 달리는 것이 가능하고 핸드폰이 있어야 앱이 돌아가는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솟구침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능근거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ref><ref>본 조목은 서우와 진순이 각각 기록한 것인데 조선고사본에서는 진순의 것을 수록했고 여정덕본에서는 서우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되 진순의 것을 주석으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ref>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 구문이 더 있다. '늘 반복하여 생각하지만 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용』(제 16장)에서 말하기를, '마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은 귀신(鬼神)의 성정과 공효[德]가 이처럼 성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몸 밖에 (실제로) 있는 물건입니다만, 지금 이른바 (밝은) 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나의 이 작은 마음 속에 갖추어진 것이니, 애초에 어찌 형체가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정말로 그것이 앞에 참여하고 있고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듯이 하라"고 하니,(常反覆思之, 而未會其意. 如中庸言, 如在其上, 如其左右, 是言鬼神之德如此其盛也. 猶曰鬼神者, 身外之物也. 今之所謂德者, 乃天之所以命我, 而具於一心之微, 初豈有形體之可見? 今乃曰眞若見其參於前而倚於衡,)'</ref> 不知<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其'가 더 있다.</ref>所見者果何物耶?” '''질문: 《대학혹문》에서 ‘"항상 거기에 눈을 두어서[常目在之]"<ref>대학 전 1장에 나오는 '고식(顧諟)'에 대한 주희의 풀이이다. 대학장구에 보인다.</ref> 마치 정말로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음"<ref>논어 15:5</ref>을 보듯이 한다면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제 7장. '이루어진 본성을 간직하고 간직함이 도의가 나오는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ref>’<ref>대학혹문. 어류 16:9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물건입니까?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대답: 이 어찌 볼 수 있는 물건이겠는가? 다만 뭇 사람들이 성찰(省察)할 줄 몰라서 일상생활[常行日用] 속에서 매양 이 (밝은) 덕(德)을 잊고 지내며,<ref>'與'는 뒤따라오는 명사구를 목적어로 확정해준다. '相'은 뒤따라오는 동사의 일방적인 적용을 나타낸다. 뭇 사람들'이' 밝은 덕'을' 잊고 사는 것이지, 밝은 덕과 사람들이 서로를 잊고 산다는 말이 아니다.</ref> 자신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른바 '자세히 살핀다[顧諟]'는 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늘 이 이치(理)를 간직하고 있으라는 것 정도이다.<ref>'在'는 단정적 어감의 어기사로, 문언의 '焉'과 같다.</ref> 일단 말을 냈으면 말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當然之則]이 있으니 실언해서는 안 되고, 일단 일을 행했으면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에 불과할 뿐이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무슨 물건이 있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는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질문: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17:51을 참조하라.</ref>를 인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대답: 하늘이 명(命)한 바를 '밝은 명령(明命)'이라 하고, 내가 내 속에 얻은 것을 '밝은 덕(明德)'이라 하니, (이 둘은)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것을[這些] 자기 속에 잘 간직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속에 간직하기만 하면,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충(忠)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반드시 효(孝)할 수 있을 것이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를 보면 깜짝 놀라는(怵惕)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고, 담을 뚫고 넘어[穿窬] (도둑질하는) 무리를 보면 수치스럽고 미워하는[羞惡]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며, 응당 공경(恭敬)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공경할 수 있을 것이고, 응당 사양[辭遜]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사양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반드시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곧 이 본성(性)이 발현한 것이 모두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이것을<ref>밝은 명령이자 밝은 덕.</ref> 잘 간직하지도 못하면서 틔워나오길 기대한다면 그 무엇이 도리에 합치할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질문: '자세히 살피다[顧諟]’<ref>대학 전 1장.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顧諟天之明命]'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ref> 구절은 《대학혹문》에서 다시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대답: 사람의 본성(性)은 본래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일상생활[日用]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 뿐이다. 법칙[則]이란 이른바 천리(天理)이다. 사람이 매사를 옳게 한다면 곧 천리(天理)에 합치된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동일한)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만약 이 뜻을 이해한다면 하늘이 어찌 (사람보다) 클 것이며 사람이 어찌 (하늘보다) 작을 것인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다[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에 대한 질문.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대답: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의 탄생은 하늘에서 얻었으니, 이 사람을 낳은 이상 하늘은 다시 사람 안에 있게 된다. 말하고 움직이며 보고 듣는 것[語言動作視聽] 모두가 다 하늘이다. 바로 지금 (내가) 말하고 떠드는 것도 하늘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살핀다[顧諟]'함은 항상 (명덕의) 찬란한 광명(光明)이 내 눈 앞을 비추도록 보라는 것이다.<ref>유사한 표현이 14:73에 있으니 참조하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덕원(德元)<ref>곽우인(郭友仁)</ref>의 질문: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ref>물그릇에 새긴 글귀이다. 대학 전 2장에 보인다.</ref>은 어느 책에서 보입니까? 曰: “只<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是'가 있다.</ref>見於大學.” '''대답: 오직 《대학》에서만 보인다. 又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又曰'이 없다.</ref>: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得'이 있다.</ref>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다시 말함: 성탕(成湯)의 공부(工夫)는 모두 '경(敬)' 자 하나에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대단히 단정하고 삼가는[修飭]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가 실천한 공부를 말할 때 또한 매우 드러나게[著] 말했다. 예를 들어 우(禹)임금의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했다[克勤于邦, 克儉于家]'<ref>상서 우서 대우모 제 14장.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으니, (이는) 너의 현명함이니라.(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ref> 같은 부류는 도리어 대강(大綱)을 말한 것이다. 탕(湯) 임금에 대해서는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했다[檢身若不及]'<ref>아무리 단속해도 부족하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상서 상서 이훈 제 5장. '위에 거하시어 능히 밝히시며, 아래에 거하시어 능히 충성하시며, 사람을 허여하되 다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시어 만방을 소유함에 이르셨으니, 오직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居上克明, 爲下克忠,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以至于有萬邦, 玆惟艱哉)'</ref>고 말한다.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내가[文蔚] 말함: '의(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제어하며[以義制事, 以禮制心]',<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8장.</ref>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불리지 않았다[不邇聲色, 不殖貨利]'<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5장.</ref> 등의 말에서 '날로 새로워짐[日新]'<ref>대학 전 2장.</ref>의 효과[功]를 볼 수 있습니다.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說'이 있다.</ref>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대답: 진실로 그렇다. 내가 《대학혹문》 중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상세히 실은 것은, 남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요, 역시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썼으면[經心] 해서일 뿐이다. 문위(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 '''질문: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경건함(敬)이 태만(怠)함을 이기면 길(吉)하고, 태만(怠)함이 경건함(敬)을 이기면 멸(滅)하며, 의(義)가 욕(欲)을 이기면 따르고[從], 욕(欲)이 의(義)를 이기면 흉(凶)하다.'고 하는데 '종(從)' 자는 무슨 뜻입니까?<ref>대대례기(大戴禮記) 무왕천조(武王踐阼)편에서 태공망이 무왕에게 조언할 적에 단서(丹書)라는 책을 인용하며 한 말이다.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단서가 어떤 책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무왕천조편은 상해박물관 소장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 컬렉션(속칭 '상박초간') 가운데서도 발견되었다. 馬承源,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七), 上海古籍出版社, 2008. 상박초간본과 대대례기본을 비교한 논문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문병순, "≪上博(七)·武王踐阼≫篇 板本 비교 분석", 중국어문논총 41, 2009. 59-74.</ref>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통행본의 51:36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짐작컨대 51:36과 17:56은 본래 하나의 조목이었는데 앞부분은 대학혹문에서 인용한 단서에 관한 문답이고 뒷부분은 맹자 1B에 관한 문답인 관계로 여정덕이 둘로 나누어 지금과 같이 배치한 듯하다.</ref> '''대답: 종(從)은 순(順)이다. 경건(敬)하면 세워지고[豎起], 태만(怠)하면 쓰러진다[放倒].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는 것이 의(義)이고,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욕(欲)이다. 여기에서 경(敬)과 의(義)는 (각각) 본체(體)와 작용(用)이니, 또한 곤괘(坤卦)에서 설명한 경(敬)과 의(義)(의 관계)와 같다.<ref>주역 곤괘 문언전의 '경건함을 가지고 안쪽을 올곧게 하고 의로움을 가지고 바깥쪽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를 말한다. 내면의 경건함 쪽이 본체, 외면의 올바른 행실 쪽이 작용이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ref>조선고사본은 이 앞에 '大學言'이 있다.</ref>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 ‘슬혜한혜[瑟兮僩兮]란 전율하고 두려워힌다[恂慄]는 뜻이다.'<ref>대학혹문.</ref> 에서,‘한(僩)’ 자는 옛날에는 관대(寬大)라고 훈(訓)했다.<ref>모시(毛詩)의 위풍(衛風) 기욱(淇澳)편에서 이와 같이 훈했다.</ref> 내가 여러 전적[經子]<ref>경자(經子)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준말이다. 다양한 문헌을 이른다.</ref>에 실린 바를 보니, ‘심방변(忄)’ 을 쓰거나 ‘재방변(扌)’ 을 쓰는 등의 차이가 있지만,<ref>재방변을 쓰면 '한(撊)', 심방변을 쓴 글자는 현재 폰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후자의 경우는 순자(荀子) 영욕(榮辱)편에 대한 양경(楊倞)의 주석에서 이 글자를 사용한 바 있다.</ref> 무인처럼 굳건한 모습[武毅之貌]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주석에서<ref>대학장구.</ref> 직접적으로 '무의(武毅)'로 설명했다.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내(道夫)가 말함: 이 주석과 같아야만 ‘슬(瑟)’ 자 및 아랫글의 '준률(恂慄)' 설(說)에 부합합니다.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대답: 예컨대 ‘준(恂)’ 자를 정씨(鄭氏)<ref>정현(鄭玄)</ref>는 ‘준(峻)’으로 읽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건 그저 순순여야(恂恂如也)<ref>논어 10:1. 신실하다는 뜻.</ref>의 순(恂)일 뿐인데, 어찌 반드시 그렇게 (준이라고) 읽어야 하는가'라고 했었다. 《장자(莊子)》를 읽다가 이른바 ‘나무 위에 있으면 두려워 전율한다[惴慄恂懼]’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씨(鄭氏)의 음(音)이 타당함을 알았다. 이와 같은 부분은 내가 《대학혹문》에 미처 싣지 못했다. 요컨대 이런 것들은 모름지기 글을 많이 읽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6:41과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58 問: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揷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①.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曰: “然.” 道夫(60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 • 17:58 묻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배우는 자의 일인데,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盛德至善]’을 《혹문(或問)》에서는 곧 성인(聖人)을 가리켜 말했으니, 어째서입니까?” o 답하다: “뒷부분에서 설명한 것이 커서 성인(聖人)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이는 윗글의 ‘문왕(文王)이 계속 밝히고 공경하여 그침[緝熙敬止]’에 연결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聖人) 또한 손 놓고 팔짱 끼고[揷手掉臂] 저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모름지기 배워야 비로소 된다. 공자(孔子)께서 이르신 바 ‘덕(德)을 닦지 못하며, 학문(學)을 강론하지 못하며, 의(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하며,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이것이 무슨 긴요함이 있는가? 성인께서 도리어 근심하신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직 그것을 근심하셨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이다. 이른바 ‘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者]’는 곧 단지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직 성인(聖)이라도 생각을 망령되이 하면 미치광이가 되고, 오직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우(寓)도 같음. • 17:59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 이미 배우고도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다시 강습(講習)하고 토론(討論)하여 그것을 구하니, 뼈나 뿔을 다루는 자가 이미 자르고[切]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磋]과 같다. 잘라서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磋] 매끄럽고 윤택함[滑澤]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뼈나 뿔을 다루는 자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미 닦고도[修] 오히려 그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면 또한 성찰(省察)하고 극치(克治)하여 그것을 마치니, 옥이나 돌을 다루는 자가 이미 쪼고[琢] 다시 그것을 가는 것[磨]과 같다. 쪼는 것[琢]은 하나의 바탕[樸]을 여기에 얻으면 또한 괜찮은 듯하지만, 또한 그것을 갈아서[磨] 정밀하고 세밀함[精細]에 이르게 하니, 이것이 옥이나 돌을 다루는 것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이것을 취하여 군자가 지선(至善)에 임함을 비유하니, 이미 격물(格物)하여 머무를 곳[所止]을 알기를 구하고, 또한 힘을 써서 그 머무를 곳[所止]을 얻기를 구한다. 정심(正心)·성의(誠意)가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이다①. ‘엄밀하고 굳세며[瑟兮僩兮], 빛나고 성대함[赫兮喧兮]’ 여기에 이르면,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등에 넘쳐[睟面盎背] 밖으로 드러나니, 바로 도학(道學)·자수(自修)의 증험(驗)이다.” o 도부(道夫)가 말하다: “그러므로 《혹문(或問)》 중에 시종(始終)과 조리(條理)의 구별이 있는 것이니,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o 답하다: “그렇다.” o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o ①: (편집자 주: 원문에는 각주 표시가 있으나 내용은 없음) • 17:60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切如磋]’은 도학(道學)이다”는 도리어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의 일로 삼고,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함[如琢如磨]’은 자수(自修)이다”는 도리어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로 삼으니, 모두 공부(工夫)가 정밀(精密)함을 요구한다. 도학(道學)은 시작하는 부분이고, 자수(自修)는 성취하는 부분이다. 중간의 공부는 이미 강구(講求)하고 또다시 강구하며, 이미 극치(克治)하고 또다시 극치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미 정밀한데 그 더욱 정밀함을 구하고, 이미 치밀한데 그 더욱 치밀함을 구하는 것이다. o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7:61 주(周)가 묻다: “절차(切磋)는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이고, 탁마(琢磨)는 마치는 조리[終條理]입니다. 마치는 조리가 비교적 치밀합니까?” o 답하다: “시작하는 조리와 마치는 조리 모두 치밀해야 하니, 강론하고 익힘[講貫]에 더욱 강론하고 익히며, 수양하고 삼감[修飭]에 더욱 수양하고 삼가야 한다.” o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62 묻다: “탁마(琢磨) 뒤에 다시 슬한(瑟僩)·혁훤(赫喧)이 있는데, 어찌하여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이 됩니까?” o 답하다: “그것은 공부하는 부분이 아니라 성취된 뒤의 기상(氣象)이 그러한 것이다. ‘점잖고 교양 있는 문왕[穆穆文王]’ 또한 기상(氣象)이다.” o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4mnhcn4jsasuczj7cuydt702hqikv5j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27 250 102163 394512 394204 2025-07-05T12:52:30Z ZornsLemon 15531 39451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ᄯᅩ {{du|파란}}이 망ᄒᆞᆯ 지음에 그 왕이 치민ᄒᆞᄂᆞᆫ 법을 아지 못ᄒᆞ고 그 ᄇᆡᆨ셩은 글을 아지 못ᄒᆞ며 ᄯᅩ 나타ᄒᆞ야 날노 빈약ᄒᆞᆫ 데 이르고 ᄯᅩ 술을 질겨ᄒᆞ야 금일ᄉᆞ만 알고 명일 일은 ᄉᆡᆼ각지 아니ᄒᆞ니 이 두 가지가 다 망국ᄒᆞᆯ 장본이라 근ᄅᆡ {{du|영국}} 령ᄉᆞ관이 {{du|파란}} 고도에 잇든 ᄌᆞㅣ {{du|영국}}에 보ᄒᆞ야 왈 {{du|파란}} 일경이 지금에 크게 이러ᄂᆞᄂᆞᆫ 빗치 잇셔 통상과 농ᄉᆞ와 ᄇᆡᆨ공이 날노 흥왕ᄒᆞ니 그 부강ᄒᆞᆷ을 가이 셔셔 보리라 ᄒᆞ니 실노 의사 밧기러라】 {{du|아라사}}의 남방을 ᄀᆡ쳑ᄒᆞᆷ도 ᄯᅩᄒᆞᆫ {{u|대피득}}으로부터 위시ᄒᆞ니 일쳔칠ᄇᆡᆨ십일년【슉종 ᄉᆞᆷ십칠년】에 {{du|토이기}} {{du|아라사}}의 핍박ᄒᆞᆫ ᄇᆡ 되야 {{du|아슉부}}<ref>아조브(Azov)</ref> ᄯᅡ을 바치고 ᄯᅩ {{du|극돌}}과<ref>케르손(Kherson)</ref> {{du|ᄀᆡ마아}}와<ref>크리미아(Crimea)</ref> {{du|비사잘팔}}<ref>베사라비아(Bessarabia)</ref> 셰 ᄯᅡ와 밋 {{du|흑ᄒᆡ}} 겻ᄒᆡ 잇ᄂᆞᆫ 각 디방을 다 {{du|아라사}}에 속ᄒᆞ고 {{du|쳥국}} ᄯᅡ {{du|이리}}<ref>키르기스(Kirghis)</ref> 셔븍방은 폭원이 광활 극대ᄒᆞᄆᆡ 비록 {{du|아라사}}에 속ᄒᆞ야도 토디 황무ᄒᆞ야 용쳐ㅣ 업스나 그 동은 토품이 비옥ᄒᆞ야 바리기 가셕ᄒᆞ거ᄂᆞᆯ {{du|아}}인이 ᄯ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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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重煥<br/> 印刷所 京城府公平洞五十五番地 大東印刷株式會社<br/> 發行所 新舊書林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siokaghddrhjvm1is9krytwfpdpab4u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41 250 102355 394517 2025-07-05T15:17:28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쳘로 삼리가 되고 {{du|미국}}은 ᄉᆞᄇᆡᆨ 방리에 쳘로ㅣ ᄉᆞᆷ리어ᄂᆞᆯ {{du|아라사}}ᄂᆞᆫ 일쳔이ᄇᆡᆨ 방리에 겨우 ᄉᆞᆷ리가 되니 무ᄉᆞᆷ 일을 건지리요 그럼으로 {{du|아라사}}에 무슈ᄒᆞᆫ 고유지디가 잇셔 샹등ᄆᆡᆨ을 산츌ᄒᆞ되 ᄆᆡᄆᆡᄒᆞᆯ 량ᄎᆡᆨ이 업고 그 갑슨 쳔ᄒᆞ미 ᄆᆡ두에 한돈 오푼 【조션 엽젼】이 되나 한갓... 394517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쳘로 삼리가 되고 {{du|미국}}은 ᄉᆞᄇᆡᆨ 방리에 쳘로ㅣ ᄉᆞᆷ리어ᄂᆞᆯ {{du|아라사}}ᄂᆞᆫ 일쳔이ᄇᆡᆨ 방리에 겨우 ᄉᆞᆷ리가 되니 무ᄉᆞᆷ 일을 건지리요 그럼으로 {{du|아라사}}에 무슈ᄒᆞᆫ 고유지디가 잇셔 샹등ᄆᆡᆨ을 산츌ᄒᆞ되 ᄆᆡᄆᆡᄒᆞᆯ 량ᄎᆡᆨ이 업고 그 갑슨 쳔ᄒᆞ미 ᄆᆡ두에 한돈 오푼 【조션 엽젼】이 되나 한갓 도로ㅣ 불통ᄒᆞᄂᆞᆫ 고로 항구와 대도회에 슈운치 못ᄒᆞ고 젼야간에 썩어 바리며 지금에 오직 다ᄒᆡᆼᄒᆞᆫ 바ᄂᆞᆫ {{du|아라사}} 졍부ㅣ 쳘로ᄅᆞᆯ 증츅고ᄌᆞ ᄒᆞᆯᄉᆡ {{du|가돈하}}<ref>(Don)</ref> 하슈가에 탄광이 잇슴을 위ᄒᆞ야 쳘로ᄅᆞᆯ ᄊᆞ아 산에 드러가 셕탄을 운젼코자 ᄒᆞ고 ᄯᅩ 한 길은 동으로 시작ᄒᆞ야 {{du|셔ᄇᆡᆨ리아}}와<ref>시베리아(Siberia)</ref> {{du|흡극도}}<ref>캬흐타(Kyakhta)</ref> {{du|흑룡강}} 일ᄃᆡ로 가게 ᄒᆞ고 ᄯᅩ 한 길은 {{du|아셰아쥬}} 즁앙 {{du|ᄇᆡᆨ잡라}} 일ᄃᆡ에 이르게 ᄒᆞ랴 ᄒᆞ니 만일 이 큰 녁ᄉᆞᄅᆞᆯ 창ᄀᆡᄒᆞ면 {{du|아라ᄉᆞ}}이 반다시 타국 ᄉᆞᄅᆞᆷ의게 ᄎᆔ신케 ᄒᆞ야 거ᄋᆡᆨ되ᄂᆞᆫ 금을 차관ᄒᆞᆫ 후에야 비로쇼 일을 경영ᄒᆞ리러라 【{{du|셔ᄇᆡᆨ리아}} ᄃᆡ쳘로ᄅᆞᆯ 년ᄅᆡ로 졈졈 증츅ᄒᆞ니 {{du|아라ᄉᆞ}}의 흥ᄒᆞᆷ이 장찻 여긔 잇슬리로다】 {{du|아라ᄉᆞ}}ㅣ ᄉᆡ 토디ᄅᆞᆯ ᄀᆡ쳑ᄒᆞᄆᆡ 그 크기 무한ᄒᆞ나 리익은 보지 못ᄒᆞ고 도리혀 거관을 허비ᄒᆞ니 그 {{du|파란}}국 다사림과 {{du|리ᄒᆡ}} {{du|흑ᄒᆡ}} 두 사이에 잇ᄂᆞᆫ {{du|고고사}}라<ref>코카서스(Caucasus)</ref> ᄒᆞᄂᆞᆫ ᄯᅡ와 {{du|아셰아쥬}} 즁앙 디경을 다사리ᄆᆡ ᄆᆡ년 용비 젹지 아니ᄒᆞ니 나의 의견에ᄂᆞᆫ ᄌᆞ차 이후로ᄂᆞᆫ {{du|아라ᄉᆞ}}ㅣ 만일 강토ᄅᆞᆯ ᄀᆡ쳑ᄒᆞᆯ 마음이 잇셔도 필연 젼일의 복쳘을 발바 무용ᄒᆞᆫ ᄯᅡᄅᆞᆯ 장만치 아니ᄒᆞᆯ 거시요 ᄯᅩ {{du|아영}} 량국이 다 극ᄃᆡᄒᆞᆫ 속지 잇셔 부득이 뎜령ᄒᆞᄆᆡ 엇ᄀᆡ가 날로 무거우니 ᄃᆡ져 이 두 나라ㅣ 각기 ᄌᆞ긔 힘을 혜아려 다시 무거운 짐을 더ᄒᆞ야 그 엇ᄀᆡᄅᆞᆯ 누르게 아니ᄒᆞ리로다 【{{du|영국}} 총리 {{du|인도}} ᄉᆞ무 ᄃᆡ신 {{u|유박나}}<ref>노스브룩(Lord Northbrook)</ref> 후작이 말ᄒᆞ야 왈 ᄂᆡ {{du|아라ᄉᆞ}}의 ᄯᅳᆺ슬 보니 다시 남방을 ᄀᆡ쳑ᄒᆞ야 인도에 이르러 타인의 ᄯᅡ을 뎜령치 아니ᄒᆞᆯ 거시요 다만 이믜 뎜령ᄒᆞᆫ ᄯᅡ을 보호코자 ᄒᆞ야 부득이 ᄌᆞ연 남의 토디ᄅᆞᆯ 침탈ᄒᆞᆷ이니 우리 {{du|영국}}의 ᄯᅳᆺ과 갓다 ᄒᆞ더라】 ::뎨십오졀 교화라 {{du|아라사}} 국즁에 산쳐ᄒᆞ야 교화업ᄂᆞᆫ 인민이 불계기슈ㅣ러니 이졔 {{du|아라사}}ㅣ 농ᄉᆞᄒᆞᆷ과 공작ᄒᆞᆷ을 가라쳐 유용ᄒᆞᆫ ᄇᆡᆨ셩을 ᄆᆡᆫ드니 이에 져의 종낙이 셔로 모이여 거쳐ᄒᆞ고 {{du|아}}황을 공쥬로 셤기니 【공쥬ᄂᆞᆫ 졔후ㅣ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pagbidp6gwp7vw44n2crtx534asc49p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42 250 102356 394518 2025-07-05T15:17:47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텬ᄌᆞ 섬김과 갓틈이라】 다ᄒᆡᆼᄒᆞ도다 연이나 {{du|아라사}}의 교화ㅣ 실로 깁지 못ᄒᆞ야 다만 그 ᄌᆞ긔 아ᄂᆞᆫ 것과 릉ᄒᆞᆫ 거스로 가라치고 극진ᄒᆞᆫ 디경에 이르지 못ᄒᆞ며 {{du|아}}인의 족젹이 이르ᄂᆞᆫ ᄯᅡᄂᆞᆫ 곳 ᄌᆞ긔 나라 판도에 예속ᄒᆞ고 노비ᄅᆞᆯ 둠과 ᄆᆡᄆᆡᄒᆞᆷ을 금ᄒᆞ며 법률이 ᄯᅩᄒᆞᆫ 극히 엄... 394518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텬ᄌᆞ 섬김과 갓틈이라】 다ᄒᆡᆼᄒᆞ도다 연이나 {{du|아라사}}의 교화ㅣ 실로 깁지 못ᄒᆞ야 다만 그 ᄌᆞ긔 아ᄂᆞᆫ 것과 릉ᄒᆞᆫ 거스로 가라치고 극진ᄒᆞᆫ 디경에 이르지 못ᄒᆞ며 {{du|아}}인의 족젹이 이르ᄂᆞᆫ ᄯᅡᄂᆞᆫ 곳 ᄌᆞ긔 나라 판도에 예속ᄒᆞ고 노비ᄅᆞᆯ 둠과 ᄆᆡᄆᆡᄒᆞᆷ을 금ᄒᆞ며 법률이 ᄯᅩᄒᆞᆫ 극히 엄ᄒᆞ야 포학ᄒᆞᆫ 데 이르니 ᄃᆡ져 그 ᄯᅳᆺ에 혜오ᄃᆡ 법이 엄치 아니면 치민치 못ᄒᆞᆫ다 ᄒᆞ며 ᄯᅩ 법을 변경ᄒᆞ면 ᄇᆡᆨ셩이 심복지 아니ᄒᆞᆯ가 겁ᄒᆞᆷ이라 연이나 통이언지ᄒᆞ면 {{du|아라사}}의 관할 바든 인민들이 젼일보다ᄂᆞᆫ 좀 낫더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koaa5eynyd6uhb0wasja1dazg4oungr 페이지:오자셔실긔.djvu/21 250 102357 39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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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지ᄂᆞᆫ뒤에ᄂᆞᆫ,쳔금으로덕을갑흐리라ᄒᆞ엿더라<br>오운이쓰기를맛추ᄆᆡ뒤에오ᄂᆞᆫᄉᆞᄅᆞᆷ이볼가두려워ᄒᆞ야흙으로써가리우고률양을지나다시삼ᄇᆡᆨ여리를ᄒᆡᆼᄒᆞ야한곳에일으니ᄯᅡ일흠은오추라그곳에닐으러한쟝ᄉᆞ를맛나니이마가ᄂᆡ여밀고눈이깁흐며형샹은쥬린범갓고소ᄅᆡᄂᆞᆫ우뢰갓더라한ᄉᆞᄅᆞᆷ으로더부러싸호ᄆᆡ여러ᄉᆞᄅᆞᆷ이만유ᄒᆞ되듯지아니ᄒᆞ더니안으로좆ᄎᆞ한부인이불너ᄀᆞᆯ오ᄃᆡ젼져야싸호지말나ᄒᆞᆫᄃᆡ그ᄉᆞᄅᆞᆷ이두려워ᄒᆞᄂᆞᆫ빗치잇셔々즉시손을멈추고집으로도라가거ᄂᆞᆯ운이괴이ᄒᆞ게녁여겻ᄒᆡ잇ᄂᆞᆫᄉᆞᄅᆞᆷ다려물어ᄀᆞᆯ오ᄃᆡ그러ᄒᆞᆫ쟝ᄉᆞ가엇지일ᄀᆡ부인을두려워ᄒᆞᄂᆞ뇨ᄒᆞᆫᄃᆡ겻ᄒᆡᄉᆞᄅᆞᆷ이답왈이ᄉᆞᄅᆞᆷ은우리시골의용ᄆᆡᆼ잇ᄂᆞᆫ쟝ᄉᆞ라힘이만인을ᄃᆡ젹ᄒᆞ야아모리강포ᄒᆞᆫᄉᆞᄅᆞᆷ이라도두려워ᄒᆞ지아니ᄒᆞᄂᆞ니앗가안으로죳ᄎᆞ불으든부인은그모친이오젼져라불으든것은그ᄉᆞᄅᆞᆷ의셩명이니본ᄅᆡ에효심이지극ᄒᆞ야어미를셤기ᄆᆡ거ᄉᆞ리ᄂᆞᆫ일이업ᄂᆞᆫ지라비록셩이ᄂᆞᆫᄯᆡ를당ᄒᆞᆯ지라도그모친이닐은다ᄒᆞ면곳긋치ᄂᆞ니라ᄒᆞ거ᄂᆞᆯ운이탄왈이ᄂᆞᆫ진실로곳은렬ᄉᆞㅣ로다ᄒᆞ고그잇흔날의관을졍졔ᄒᆞ고그집에가셔ᄎᆞ지니젼져가나와맛거ᄂᆞᆯ운이셩명을고ᄒᆞ고원통ᄒᆞᆫᄉᆞ졍을셜파ᄒᆞ니젼져ᄀᆞᆯ오ᄃᆡ그ᄃᆡ가이러ᄒᆞᆫ원통ᄒᆞᆫ일을당ᄒᆞ고엇지오왕을드러가뵈여군ᄉᆞ를쳥ᄒᆞ야원슈를갑지아니ᄒᆞᄂᆞ뇨ᄒᆞ거ᄂᆞᆯ운이왈인도ᄒᆞᄂᆞᆫᄉᆞᄅᆞᆷ이업셔々나아가지못ᄒᆞ노라ᄒᆞᆫᄃᆡ젼져ᄀᆞᆯ오ᄃᆡ그ᄃᆡ말이올토다이졔날에루츄ᄒᆞᆫ집에왕림ᄒᆞ시니무슨말ᄉᆞᆷ을ᄒᆞ시려ᄒᆞ나뇨운이왈그ᄃᆡ의효셩을공경ᄒᆞ야친구로ᄉᆞ괴기를원ᄒᆞ야차잣노라ᄒᆞᆫᄃᆡ젼져대희ᄒᆞ야즉시드러가모친ᄭᅴ고ᄒᆞ고오운을마져드러가졀ᄒᆞ야친구로ᄉᆞ괴니깃부미골육갓더라그날밤을갓치자고잇흔날운이젼져다려닐너ᄀᆞᆯ오ᄃᆡ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s8hh03q0ourpcvrdf46sa7clgj5ulyp 394521 394519 2025-07-05T15:18:27Z Bborang 18488 394521 proofread-page text/x-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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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5jnb1ynd4u4ultd8o50o9l9vk89n9m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44 250 102358 394520 2025-07-05T15:18:17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ᄐᆡ셔신사 권이십 {{du|영국}} {{u|마간셔}} 원본 {{u|리졔마ᄐᆡ}} 번역 {{du|청국}} {{u|채이강}} 술고 ::{{du|토이긔}}국이라 【{{du|당}}나라 ᄉᆞ긔에 칭ᄒᆞᆫ 바 {{du|돌궐}}이니 이졔 {{du|청}}인이 번역ᄒᆞ야 {{du|토이긔}}라 ᄒᆞ니 대져 그 글자 음이 상ᄉᆞᄒᆞᆷ이라】 ::뎨일졀 {{du|돌궐}}의 근원과 지파라 {{u|야소}} 강ᄉᆡᆼ시에 {{du|달달}}이라<ref>... 394520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ᄐᆡ셔신사 권이십 {{du|영국}} {{u|마간셔}} 원본 {{u|리졔마ᄐᆡ}} 번역 {{du|청국}} {{u|채이강}} 술고 ::{{du|토이긔}}국이라 【{{du|당}}나라 ᄉᆞ긔에 칭ᄒᆞᆫ 바 {{du|돌궐}}이니 이졔 {{du|청}}인이 번역ᄒᆞ야 {{du|토이긔}}라 ᄒᆞ니 대져 그 글자 음이 상ᄉᆞᄒᆞᆷ이라】 ::뎨일졀 {{du|돌궐}}의 근원과 지파라 {{u|야소}} 강ᄉᆡᆼ시에 {{du|달달}}이라<ref>타타르(Tartary)</ref> ᄒᆞᄂᆞᆫ 종뉴ㅣ 잇스니 명왈 {{du|흉노}}라 {{du|리ᄒᆡ}} 바다와 {{du|즁국}} ᄉᆞ이에 ᄅᆡ왕ᄒᆞ야 교화가 무엇신지 모르며 옛젹 ᄉᆞ긔 짓ᄂᆞᆫ ᄉᆞᄅᆞᆷ이 져의 교화ㅣ 업고 ᄯᅩ 면목이 괴악ᄒᆞ다 ᄒᆞ야 말호ᄃᆡ {{du|흉노}}ᄂᆞᆫ 눈이 젹고 눈방울은 깁흐며 코의 납작ᄒᆞᆷ이 얼골과 갓치 평평ᄒᆞ고 ᄯᅩ 터러 귀가 적고 슈염이 업스니 이ᄂᆞᆫ 짐ᄉᆡᆼ이 ᄉᆞᄅᆞᆷ쳐럼 셔셔 울미라 ᄒᆞ며 그 더욱 깁히 뮈워ᄒᆞ든 ᄌᆞᄂᆞᆫ ᄯᅩ 일으되 {{du|흉노}}ᄂᆞᆫ 여호와 삵긔의 종자ㅣ니 인류에 ᄎᆞᆷ예치 못ᄒᆞ리라 ᄒᆞ나 만일 그 담략을 론ᄒᆞ면 ᄯᅩ 다 말호ᄃᆡ ᄉᆞᄅᆞᆷ이 비ᄒᆞᆯ 자ㅣ 업다 ᄒᆞ며 {{du|흉노}}ㅣ ᄯᅩ 말달니기ᄅᆞᆯ 잘ᄒᆞ야 지극히 용녈ᄒᆞᆫ 말이라도 ᄒᆞᆫ 번 ᄎᆡᄅᆞᆯ 치면 다 마음과 갓치 치빙ᄒᆞ야 쥰마와 다르미 업스니 이ᄂᆞᆫ 다른 종락 ᄉᆞᄅᆞᆷ이 밋츨 자ㅣ 업다 ᄒᆞ고 성품이 ᄊᆞ홈을 조와ᄒᆞ고 수효가 ᄯᅩ 만흔 고로 {{du|구라파}} {{du|아셰아}} ᄉᆞᄅᆞᆷ이 두리지 아니 리 업고 {{du|즁국}}은 {{du|흉노}}ᄅᆞᆯ 방비코ᄌᆞ ᄒᆞ야 동븍방에 장셩 ᄉᆞ쳔오ᄇᆡᆨ리ᄅᆞᆯ ᄊᆞ앗스되 【만리쟝셩이라】 오히려 항상 그 ᄒᆡᄅᆞᆯ 당ᄒᆞ야 심지어 ᄆᆡ년 폐ᄇᆡᆨ을 쥬고 화친을 청ᄒᆞ야 거의 그 속국과 갓다 ᄒᆞ니 그 용한ᄒᆞᆷ을 가지러라 {{du|흉노}}의 종젹이 표홀무상ᄒᆞ야 졸연히 남으로 침노ᄒᆞ다가 ᄯᅩ 셔편을 야료ᄒᆞ며 ᄯᅩ 셕일에 가지 아니ᄒᆞ든 ᄯᅡ에 드러가기ᄅᆞᆯ 조하ᄒᆞ야 ᄌᆡ물 잇ᄂᆞᆫ 대로 다 창탈ᄒᆞᆫ 연후에야 비로소 도라가며 ᄯᅩ ᄯᅡ로이 ᄒᆞᆫ 부락이 잇셔 남으로 {{du|박잡라}})ᄅᆞᆯ<ref>보카라(Bokhara)</ref> 【지금 {{du|즁국}} {{du|신강}} 셔븍방이라】 범ᄒᆞ야 필경 웅거ᄒᆞ고 그 일홈을 곳쳐 왈 {{du|돌궐}}이라 ᄒᆞ니 후에 {{du|아자ᄇᆡᆨ}}이<ref>아랍(Arab)</ref> ᄉᆞᄅᆞᆷ이 ᄉᆞ긔ᄅᆞᆯ 지어 왈 셰계 토디 즁 조흔 자ㅣ {{du|박잡라}}에셔 더 지날 곳이 업스니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11hf419erty0t1i324vi9tgkfck80i7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45 250 102359 394522 2025-07-05T15:18:46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du|흉노}}ㅣ 비록 그 명승지디ᄅᆞᆯ 뎜령ᄒᆞ얏스나 필경 오ᄅᆡ 누리지 못ᄒᆞ리라 ᄒᆞ더니 셔력 륙ᄇᆡᆨ이십이년【{{du|신라}} 진평왕 시】에 {{du|아ᄌᆞᄇᆡᆨ}} ᄯᅡ에 회회교 시조 {{du|모한묵덕}}이<ref>마호메트(Mohammed)</ref> 츌셰ᄒᆞ야 {{du|아ᄌᆞᄇᆡᆨ}} ᄉᆞᄅᆞᆷ을 가르쳐 왈 우리 등이 텬하 셰계 ᄉᆞᄅᆞᆷ을 인도ᄒᆞ야 다 뎡도에... 394522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du|흉노}}ㅣ 비록 그 명승지디ᄅᆞᆯ 뎜령ᄒᆞ얏스나 필경 오ᄅᆡ 누리지 못ᄒᆞ리라 ᄒᆞ더니 셔력 륙ᄇᆡᆨ이십이년【{{du|신라}} 진평왕 시】에 {{du|아ᄌᆞᄇᆡᆨ}} ᄯᅡ에 회회교 시조 {{du|모한묵덕}}이<ref>마호메트(Mohammed)</ref> 츌셰ᄒᆞ야 {{du|아ᄌᆞᄇᆡᆨ}} ᄉᆞᄅᆞᆷ을 가르쳐 왈 우리 등이 텬하 셰계 ᄉᆞᄅᆞᆷ을 인도ᄒᆞ야 다 뎡도에 도라 오게 ᄒᆞ여야 바야흐로 공덕이 원만ᄒᆞ리라 ᄒᆞ니 {{du|아ᄌᆞᄇᆡᆨ}} ᄉᆞᄅᆞᆷ이 신종ᄒᆞᄂᆞᆫ 자ㅣ ᄉᆞ방에 나아가 젼교ᄒᆞᆯᄉᆡ 불청ᄒᆞᄂᆞᆫ ᄌᆞᄂᆞᆫ 병력으로ᄡᅥ 겁박ᄒᆞ니 이에 셔방인이 회교ᄅᆞᆯ 죳ᄂᆞᆫ 자ㅣ ᄐᆡ반이요 ᄯᅩ 동으로 ᄒᆡᆼᄒᆞ야 동방 졔국을 삭평코ᄌᆞ ᄒᆞ다가 {{du|박잡라}}에 이르러 {{du|돌궐}}과 ᄊᆞ혼지 여러 ᄒᆡ에 {{du|돌궐}}이 력진ᄒᆞ야 항복ᄒᆞ거눌 회교인이 {{du|돌궐}}로 ᄒᆞ야곰 의구히 {{du|박잡라}}에 잇게 ᄒᆞ나 {{du|돌궐}}인은 거의 회교인의 노복이 되야 유령시종ᄒᆞ고 미긔에 {{du|돌궐}}이 다 회교ᄅᆞᆯ 쥰ᄒᆡᆼᄒᆞ더라 {{du|돌궐}}이 {{du|박잡라}}ᄅᆞᆯ 웅거ᄒᆞᆫ지 ᄉᆞᆷᄉᆞᄇᆡᆨ년에 면목이 변ᄒᆞ야 량션ᄒᆞ고 셩졍도 ᄯᅩᄒᆞᆫ 순슉ᄒᆞ나 만일 ᄊᆞ홈을 당ᄒᆞ야 창을 메이고 젼장에 나아가면 담략이 심이 장ᄒᆞ고 ᄯᅩ 츙심이 경경ᄒᆞ야 등한이 항복지 아니ᄒᆞ니 이럼으로 회교왕이 ᄋᆡ즁이 녁이여 수하 친군을 ᄉᆞᆷ으며 지어 공로ㅣ 잇다 ᄒᆞ야 장군 벼ᄉᆞᆯ을 가진 자ㅣ 잇고 ᄯᅩ 그 우등되ᄂᆞᆫ 자ᄅᆞᆯ 가리혀 일ᄉᆡᆼ을 관할ᄒᆞ야 {{du|당}}나라 졀도ᄉᆞ와 지금 {{du|청}}나라 순무ᄉᆞ와 갓탄 ᄌᆞ도 잇스며 회왕 좌우에 잇셔 집졍대신된 ᄌᆞ도 잇고 셕년 {{du|돌궐}}의 츄한무례ᄒᆞ든 긔습이 변ᄒᆞ야 온ᄌᆞᄒᆞ고 묵즁ᄒᆞ며 【이졔 {{du|돌궐}} ᄉᆞᄅᆞᆷ이 이 풍긔 잇더라】 셔력 일쳔여년간【고려 초】에 {{du|돌궐}}이 ᄯᅩ {{du|박잡라}}ᄅᆞᆯ 주장ᄒᆞ더라 ::뎨이졀 {{du|동라마}}국 도셩을 파ᄒᆞᆷ이라 {{du|돌궐}}이 회교ᄅᆞᆯ 쥰ᄒᆡᆼᄒᆞᆫ지 수ᄇᆡᆨ년에 현져이 셕일 ᄉᆞᄅᆞᆷ은 아니나 용ᄆᆡᆼᄒᆞᆫ 긔운은 의연히 변치 아니ᄒᆞ야 무론 동셔남븍ᄒᆞ고 토디 ᄀᆡ쳑ᄒᆞᆷ을 상ᄎᆡᆨ이라 ᄒᆞ고 동으로ᄂᆞᆫ {{du|아셰아}} ᄯᅡᄅᆞᆯ 엇고 일쳔일ᄇᆡᆨ년【{{du|고려}} 숙종 오년】에 ᄯᅩ 셔으로 {{du|소아셰아}}와 밋 {{du|셔리아}}) ᄯᅡ을 어드며 {{du|유ᄐᆡ}}국 도셩 {{du|야로살ᄂᆡᆼ}}은<ref>예루살렘(Jerusalem)</ref> 텬주교와 긔독교인이 다 {{u|야소}}의 강ᄉᆡᆼᄒᆞᆫ ᄯᅡ히라 ᄒᆞ야 귀즁히 녁이더니 이졔 ᄯᅩ {{du|돌궐}}의게 ᄲᆡᆺ긴 바ㅣ 되고 그 {{du|소아셰아쥬}}ᄅᆞᆯ 어들 ᄯᅢ에ᄂᆞᆫ {{du|영국}} 리수 일리 허ᄂᆞᆫ 【{{du|영국}} 일리ᄂᆞᆫ 조션 ᄉᆞᆷ리 가량이라】 곳 {{du|라마국}}의 {{du|긍ᄉᆞ단}}) 【동경 셔울이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6q6jvqj395jhc43aer18te3lk9c3md9 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46 250 102360 394523 2025-07-05T15:19:05Z ZornsLemon 1553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du|동라마}} 황뎨 그 핍박ᄒᆞᆷ을 보고 심이 겁ᄂᆡ야 {{du|구쥬}} 각국에 구원을 청ᄒᆞ야 왈 {{du|돌궐}}인이 소도쳐에 긔독교ᄅᆞᆯ 원수갓치 녁이니 우리 각국이 합력ᄒᆞ야 막ᄌᆞ ᄒᆞ니 기시 {{du|동라마}}의 위ᄐᆡᄒᆞᆷ이 조셕에 잇더라 이ᄯᅢ {{du|돌궐}}이 {{du|유ᄐᆡ국}} {{du|야로살ᄅᆡᆼ}}을 어든 후에 긔독교인이 {{du|야로살ᄅᆡᆼ}}에... 394523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du|동라마}} 황뎨 그 핍박ᄒᆞᆷ을 보고 심이 겁ᄂᆡ야 {{du|구쥬}} 각국에 구원을 청ᄒᆞ야 왈 {{du|돌궐}}인이 소도쳐에 긔독교ᄅᆞᆯ 원수갓치 녁이니 우리 각국이 합력ᄒᆞ야 막ᄌᆞ ᄒᆞ니 기시 {{du|동라마}}의 위ᄐᆡᄒᆞᆷ이 조셕에 잇더라 이ᄯᅢ {{du|돌궐}}이 {{du|유ᄐᆡ국}} {{du|야로살ᄅᆡᆼ}}을 어든 후에 긔독교인이 {{du|야로살ᄅᆡᆼ}}에 오ᄂᆞᆫ ᄌᆞᄂᆞᆫ 다 학ᄃᆡᄒᆞ며 혹 그 ᄯᅡ에 뉴람ᄒᆞᄂᆞᆫ ᄉᆞᄅᆞᆷ의 ᄒᆡᆼ장을 겁탈ᄒᆞ기도 ᄒᆞ고 긔독교의 대주교ᄅᆞᆯ 머리ᄅᆞᆯ ᄭᅥ들너 각 져ᄌᆞ로 조리돌니다가 옥에 가두며 ᄯᅩ {{du|구쥬}} ᄉᆞᄅᆞᆷ은 {{du|야로살ᄅᆡᆼ}}을 성인의 ᄯᅡ히라 ᄒᆞᄂᆞᆫ 고로 {{u|야소}} 졸ᄒᆞᆫ 후 다시 환ᄉᆡᆼᄒᆞ야 사라ᄂᆞᆫ 곳에 한 례ᄇᆡ당을 지엇더니 이ᄯᅢ에 회교인이 항상 그 당에 드러와 무례ᄒᆞᆫ 일을 ᄒᆡᆼᄒᆞ며 긔독교인은 감히 당에 드러오지 못ᄒᆞᄂᆞᆫ지라 {{du|구쥬}} 셔방 각국인이 더욱 불평ᄒᆞ야 다 말ᄒᆞ되 {{du|돌궐}}이 {{du|유ᄐᆡ}}국을 졈거ᄒᆞᆷ은 오히려 고ᄉᆞᄒᆞ고 그 인민을 학ᄃᆡᄒᆞ며 ᄯᅩ 긔독교인을 능멸ᄒᆞ니 이ᄂᆞᆫ 용서치 못ᄒᆞ리라 ᄒᆞ고 드ᄃᆡ여 각국이 합병ᄒᆞ야 젼ᄌᆡᆼᄒᆞᆫ지 이ᄇᆡᆨ년이 되도록 {{du|돌궐}}이 의연히 강셩ᄒᆞ고 {{du|구쥬}} ᄉᆞᄅᆞᆷ은 젼장에셔 쥭은 자ㅣ 이ᄇᆡᆨ만 인에 이르니 {{du|구쥬}} 각국이 다시 감히 츌병ᄒᆞ야 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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ᄃᆡ아비명올죳ᄎᆞ계찰이라ᄒᆞᄂᆞᆫᄉᆞᄅᆞᆷ의게밋치게ᄒᆞᄂᆞᆫ고로여졔와이ᄆᆡ의게ᄎᆞ례로젼ᄒᆞ얏더니계찰에게닐으ᄆᆡ계찰이ᄉᆞ양ᄒᆞ고ᄌᆞ리를피ᄒᆞ야다른곳으로가니맛당히져번의아달을셰울것이로ᄃᆡ왕료가왕위를탐ᄒᆞ야ᄉᆞ양ᄒᆞ지아니ᄒᆞ고맛ᄎᆞᆷᄂᆡ스ᄉᆞ로셔々왕이되니공ᄌᆞ광이심즁에불복ᄒᆞ야가만히왕료를죽일ᄯᅳᆺ을두더니이에상을잘보ᄂᆞᆫᄉᆞᄅᆞᆷ을어드니일홈이피리라쳔거ᄒᆞ야오ㅅ나라져ᄌᆞ관리를삼고당부ᄒᆞ되널니호걸을구ᄒᆞ야나의도음을삼게ᄒᆞ라ᄒᆞ엿더니일々은오운이통소를불고오ㅅ나라져ᄌᆞ로지나갈ᄉᆡ피리가통쇼소ᄅᆡ를들으니심히비챵ᄒᆞ지라곳쳐ᄌᆞ셰히들으니그소ᄅᆡ를대강분변ᄒᆞᆯ지라ᄎᆞ져나아가다가오운을보고대경왈ᄂᆡ일즉이ᄉᆞᄅᆞᆷ을샹봄이만흐되이러ᄒᆞᆫ상모는보지못ᄒᆞ얏도다ᄒᆞ고이에오운을읍ᄒᆞ야마져드려셔샹좌에안치니운이황감ᄒᆞᆷ을겸양ᄒᆞ거ᄂᆞᆯ피리ᄀᆞᆯ오ᄃᆡᄂᆡ드르니초ㅅ나라히그츙신오샤를죽이ᄆᆡ그아달ᄌᆞ셔외국으로다라낫다ᄒᆞ더니그ᄃᆡ가아니냐ᄒᆞ거ᄂᆞᆯ운이몸을굽푸리고대답지아니ᄒᆞᆫᄃᆡ피리ᄯᅩᄀᆞᆯ오ᄃᆡᄂᆡ그ᄃᆡ를ᄒᆡ코져ᄒᆞᆷ이아니라그ᄃᆡ를위ᄒᆞ야부귀를구ᄒᆞ야쥬려ᄒᆞᆷ이로라ᄒᆞ거ᄂᆞᆯ오운이그졔야ᄌᆞ긔실졍을셜화ᄒᆞ얏더니일즉히겻ᄒᆡᄉᆞᄅᆞᆷ이그ᄉᆞ연을오왕ᄭᅴ고ᄒᆞᆫᄃᆡ오왕이피리의게령ᄒᆞ야오운을다리고궐ᄂᆡ로드러오라ᄒᆞ거ᄂᆞᆯ피리일변ᄉᆞᄅᆞᆷ을보ᄂᆡ여공ᄌᆞ광의게통긔ᄒᆞ고오운을곳쳐목욕식이여의복을갈아입히고한가지궁즁에드러가오왕ᄭᅴ보인ᄃᆡ왕이그샹모를긔특히녁여어질믈짐작ᄒᆞ고즉시대부벼ᄉᆞᆯ을식히거ᄂᆞᆯ잇흔날운이궐ᄂᆡ에드러가샤은ᄒᆞ고부형의원통ᄒᆞᄉᆞ졍을고ᄒᆞ야니를갈으니눈가운ᄃᆡ로죳ᄎᆞ불이나오거ᄂᆞᆯ오왕이그긔샹을쟝ᄒᆞ게녁이고마ᄋᆞᆷ에그졍경을어엿비녁여군ᄉᆞ를됴발ᄒᆞ야원슈를갑허주기로허락ᄒᆞ더라공ᄌᆞ광이원ᄅᆡ에오운의지혜와용ᄆᆡᆼ을들은지라거두워둘ᄉᆡᆼ각이잇더니몬져오왕ᄭᅴ보임을듯고오왕의쇼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j4g31ap261se4eqere95le1ykvu3390 페이지:오자셔실긔.djvu/24 250 102363 394526 2025-07-05T15:53:55Z Bbo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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緇{{작게|츼}}衣{{작게|의}}之{{작게|지}}宜{{작게|의}}兮{{작게|혜}}여敝{{작게|폐}}予{{작게|여}}又{{작게|우}}改{{작게|ᄀᆡ}}爲{{작게|위}}兮{{작게|혜}}{{분주|호리|라}}適{{작게|뎍}}子{{작게|ᄌᆞ}}之{{작게|지}}館{{작게|관}}兮{{작게|혜}}라還{{작게|션}}予{{작게|여}}授{{작게|슈}}子{{작게|ᄌᆞ}}之{{작게|지}}粲{{작게|찬}}兮{{작게|혜}}{{분주|호리|라}}<br /> :緇{{작게|츼}}衣{{작게|의}}의宜{{작게|의}}홈이여敝{{작게|폐}}커든내ᄯᅩ다시호리라子{{작게|ᄌᆞ}}의館{{작게|관}}애適{{작게|뎌ㅣ}}ᄒᆞ논디라還{{작게|션}}ᄒᆞ야내子{{작게|ᄌᆞ}}를粲{{작게|찬}}으로授{{작게|슈}}호리라<br />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mzlhcmbq49gdgj4jjkrhf7vt1691von 페이지:詩經諺解 제2책.djvu/83 250 102373 394549 2025-07-06T05:33:41Z 이유리아 1852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緇{{작게|츼}}衣{{작게|의}}之{{작게|지}}好{{작게|호}}兮{{작게|혜}}여敝{{작게|폐}}予{{작게|여}}又{{작게|우}}改{{작게|ᄀᆡ}}造{{작게|조}}兮{{작게|혜}}{{분주|호리|라}}適{{작게|뎍}}子{{작게|ᄌᆞ}}之{{작게|지}}館{{작게|관}}兮{{작게|혜}}라還{{작게|션}}予{{작게|여}}授{{작게|슈}}子{{작게|ᄌᆞ}}之{{작게|지}}粲{{작게|찬}}兮{{작게|혜}}{{분주|호리|라}}<br /> :... 394549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이유리아"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緇{{작게|츼}}衣{{작게|의}}之{{작게|지}}好{{작게|호}}兮{{작게|혜}}여敝{{작게|폐}}予{{작게|여}}又{{작게|우}}改{{작게|ᄀᆡ}}造{{작게|조}}兮{{작게|혜}}{{분주|호리|라}}適{{작게|뎍}}子{{작게|ᄌᆞ}}之{{작게|지}}館{{작게|관}}兮{{작게|혜}}라還{{작게|션}}予{{작게|여}}授{{작게|슈}}子{{작게|ᄌᆞ}}之{{작게|지}}粲{{작게|찬}}兮{{작게|혜}}{{분주|호리|라}}<br /> :緇{{작게|츼}}衣{{작게|의}}의好{{작게|호}}홈이여敝{{작게|폐}}커든내ᄯᅩ다시造{{작게|조}}호리라子{{작게|ᄌᆞ}}의館{{작게|관}}애適{{작게|뎍}}ᄒᆞ논디라還{{작게|션}}ᄒᆞ야내子{{작게|ᄌᆞ}}를粲{{작게|찬}}으로授{{작게|슈}}호리라<br /> ○緇{{작게|츼}}衣{{작게|의}}之{{작게|지}}蓆{{작게|셕}}兮{{작게|혜}}여敝{{작게|폐}}予{{작게|여}}又{{작게|우}}改{{작게|ᄀᆡ}}作{{작게|작}}兮{{작게|혜}}{{분주|호리|라}}適{{작게|뎍}}子{{작게|ᄌᆞ}}之{{작게|지}}館{{작게|관}}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3w45gscufzz946ahqxj8xs4efmmgkjl 페이지:詩經諺解 제2책.djvu/84 250 102374 394550 2025-07-06T05:48:53Z 이유리아 18521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兮{{작게|혜}}라還{{작게|션}}予{{작게|여}}授{{작게|슈}}子{{작게|ᄌᆞ}}之{{작게|지}}粲{{작게|찬}}兮{{작게|혜}}{{분주|호리|라}}<br /> :緇{{작게|츼}}衣{{작게|의}}의蓆{{작게|셕}}홈이여敝{{작게|폐}}커ᄃᆞᆫ내ᄯᅩ다시作{{작게|작}}호리라子{{작게|ᄌᆞ}}의館{{작게|관}}애適{{작게|뎍}}ᄒᆞ논디라還{{작게|션}}ᄒᆞ야내子{{작게|ᄌᆞ}}를粲{{작게|찬}}으로授{{... 394550 proofread-page text/x-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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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쥬역언해 제1책.djvu/21 250 102380 394558 2025-07-06T06:41:10Z Zymeu 18464 /* 교정 안 됨 */ 새 문서: :純슌ᄒᆞ며粹슈ᄒᆞᆫ거시精졍ᄒᆞ고【本義】剛강ᄒᆞ며健건ᄒᆞ며中듕ᄒᆞ며正졍ᄒᆞᆫ거시純슌ᄒᆞ고粹슈ᄒᆞ야精졍ᄒᆞ고 六륙爻효發발揮휘ᄂᆞᆫ旁방通통情졍也야{{작게|ㅣ오}}<br> :六륙爻효로發발揮휘홈은情졍을旁방으로旁방通통홈이오 時시乘승六륙龍룡{{작게|ᄒᆞ야}}以이御어天텬也야{{작게|ㅣ니}}雲운行ᄒᆡᆼ雨우施시ㅣ라天텬下하平평也야{{작... 394558 proofread-page text/x-wiki <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ymeu" /></noinclude>:純슌ᄒᆞ며粹슈ᄒᆞᆫ거시精졍ᄒᆞ고【本義】剛강ᄒᆞ며健건ᄒᆞ며中듕ᄒᆞ며正졍ᄒᆞᆫ거시純슌ᄒᆞ고粹슈ᄒᆞ야精졍ᄒᆞ고 六륙爻효發발揮휘ᄂᆞᆫ旁방通통情졍也야{{작게|ㅣ오}}<br> :六륙爻효로發발揮휘홈은情졍을旁방으로旁방通통홈이오 時시乘승六륙龍룡{{작게|ᄒᆞ야}}以이御어天텬也야{{작게|ㅣ니}}雲운行ᄒᆡᆼ雨우施시ㅣ라天텬下하平평也야{{작게|ㅣ라}} :時시로六륙龍룡을乘승ᄒᆞ야ᄡᅥ天텬을御어ᄒᆞᄂᆞ니雲운이行ᄒᆡᆼᄒᆞ며雨우ㅣ施시ㆍᄂᆞᆫ디라天텬下하ㅣ平평<noinclude><references/></noinclude> og43t2e82abp1lxjbza9k0n0l3becop 페이지:詩經諺解 제4책.djvu/83 250 102381 394559 2025-07-06T07:00:40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더더작게|참}}慘{{더더작게|참}}히ᄒᆞ야國{{더더작게|국}}의虐{{더더작게|학}}ᄒᆞ욤을念{{더더작게|념}}ᄒᆞ노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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