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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따라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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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목 = 님 따라 나서자
|지은이 = [[저자:김억|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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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逆天)을 부를것이 순천(順天)을 받들것이<br />대장부 세상났다가 그저 옐줄 있는다.<br /><br />이목숨 귀할시고 모두들 아낀다면<br />일월(日月)의 충의도고는 보잘것이 있는고.<br /><br />설사(設使)에 죽어라도 충혼(忠魂)은 그저남아<br />사악을 눕히기전야 가실줄이 있과저.<br /><br />신풍(新風)이 부는고야 육탄이 튀는고야<br />풍탄(風彈)이 튀는곳에 거칠것이 없나니.<br /><br />맘들을 한데모아 역천(逆天)을 부서지고<br />님따라 손높이들고 나설때는 왔나니.
== 라이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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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일제 강점기의 시]]
[[분류:친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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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자어류/권15 대학2 大學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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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Dongsob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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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語類卷第十五
*
* 大學二
'''대학(2)
* 經下
'''경(하)
* 15:1 器遠問: “致知者, 推致事物之理. 還當就甚麽樣事推致其理?”
'''기원(器遠)<ref>조숙원(曹叔遠). 기원(器遠)은 그의 자(字).</ref>의 질문: 앎을 지극히 함(致知)이란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推致) 것입니다. 응당 어떤 사건의 이치를 지극히 해야 합니까?'''
曰: “眼前凡所應接底都是物. 事事都有箇極至之理, 便要知得到. 若知不到, 便都沒分明; 若知得到, 便著定<ref>이 부분은 주자어류휘교의 교감을 따라 便決定著로 해석하였다</ref>恁地做, 更無第二著·第三著. 止緣人見道理不破, 便恁地苟簡, 且恁地做也得, 都不做得第一義.”
'''대답: 눈 앞에서 응접하는 모든 것이 물(物)이다. 사사건건에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죄다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알면 반드시(決定著) 그렇게 실천하게 되니 제2책(第二著)이니 제3책(第三著)이니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다만 도리를 분명하게 간파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어설픈 것이다. 당장은 저런 식으로 해도 되겠지만 어떻게해도 최선책(第一義)은 해낼 수 없다.'''
曹問: “如何是第一義?”
'''조(기원)의 질문: 무엇이 최선책(第一義)입니까?'''
曰: “如‘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之類, 決定著恁地, 不恁地便不得. 又如在朝, 須著進君子, 退小人, 這是第一義. 有功決定著賞, 有罪決定著誅, 更無小人可用之理, 更無包含小人之理. 惟見得不破, 便道小人不可去, 也有可用之理. 這都是第二義·第三義, 如何會好! 若事事窮得盡道理, 事事占得第一義, 做甚麽剛方正大! 且如爲學, 決定是要做聖賢, 這是第一義, 便漸漸有進步處. 若便道自家做不得, 且隨分依稀做些子, 這是見不破. 所以說道: ‘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謂吾身不能者, 自賊者也.” 賀孫(62이후).
'''대답: '임금은 인(仁)에 머물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은 효(孝)에 머문다'같은 것들은 반드시(決定著) 이와 같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예를 들어 조정에서 봉직할 때에는 반드시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내쳐야 하니 이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다. 공이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시상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주살해야 하니, 소인을 쓸 수 있다는 이치나 소인도 포용한다는 이치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을 완전히 내칠 수 없다는둥 소인을 써도 되는 이치가 있다는둥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제2책이니 제3책이니 하는 것들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사사건건에서 도리를 완전히 밝혀내면 사사건건마다 최선책(第一義)를 점할 수 있으니 무엇을 하든 강건하고 방정하고 올바르고 당당하다(剛方正大). 학문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최선책(第一義)이니 (이렇게 하면) 점점 진보가 있게 된다. 만약 자기는 그렇게는 못하니까 일단 자기 분수에 맞게 조금만(依稀) 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ref>맹자4A:2</ref>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라는 뜻이다.'''
섭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卓錄云:
'''<황탁의 기록>
曹兄問: "格物窮理, 須是事事物物上理會?”
'''<조형의 질문: 격물궁리(格物窮理)는 사사물물 각각의 상황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曰: “也須是如此, 但窮理上須是見得十分徹底, 窮到極處, 須是見得第一著, 方是, 不可只到第三第四著便休了. 若窮不得, 只道我未窮得到底, 只得如此, 這是自恕之言, 亦非善窮理也. 且如事君, 便須是‘進思盡忠, 退思補過’, '道合則從, 不合則去'. 也有義不可得而去者, 不可不知.”
'''<대답: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궁리할 적에 반드시 100퍼센트 철저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탐구가 지극한 지점(極處)까지 도달하여 반드시 최선책(第一著)을 이해해야만 한다. 제 3책이나 제 4책 정도에 도달하고 그만두어버리면 안 된다. (제대로) 궁리하지 못하고서, 그저 나는 끝까지 궁리하지 못해서 이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변명이지 궁리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아가면 충(忠)을 다할 생각을 하고 물러나면 잘못을 개선할 생각을'하고<ref>춘추좌씨전 선공 12년</ref>, '도가 맞으면 따르고 맞지 않으면 떠'나야<ref>예기 내칙</ref> 하지만 의리상 떠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몰라서는 안 된다.>'''
又云: “如‘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這皆是極處.”
'''<다시 대답: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같은 것들은 모두 지극한 지점(極處)이다.>
以下致知.>
'''<이 아래로는 치지(致知)에 관한 조목들>
* 15:2 致知所以求爲眞知. 眞知, 是要徹骨都見得透. 道夫(60이후).
'''치지는 참으로 알게(眞知)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다(眞知)는 것은 뼛속까지 꿰뚫어 투철히 이해하려는 것이다.
* 15:3 問: “致知莫只是致察否?”
'''질문: 치지는 그저 살피기를 지극히 한다(致察)는 것 아닙니까?
曰: “如讀書而求其義, 處事而求其當, 接物存心察其是非·邪正, 皆是也.” 㝢(61이후).
'''대답: 예컨대 책을 읽을 적에 그 의리를 구하고, 일을 처리할 적에 마땅하게 하기를 구하고, 사물을 접하거나 마음을 수습하여 보존할(存心) 적에<ref>곧, 활동할 때나 혼자 묵상할 때나</ref>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살피는 행위가 모두 이것(치지)이다.'''
* 15:4 因鄭仲履之問而言曰: “致知乃本心之知. 如一面鏡子, 本全體通明, 只被昏翳了, 而今逐旋磨去, 使四邊皆照見, 其明無所不到.” 蓋卿(65때).
'''정중리의 질문에 대한 답: 치지는 본심의 앎(本心之知)이다.<ref>이 부분은 문법적으로 애매하다. 치지는 동작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심지지는 성질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마음의 성질을 말한다.지금 본문처럼 쓰면 '동작=성질'과 같이 되므로 말이 순조롭지 않다. 차라리 '치지의 지(知)라는 것은 본심지지를 말한다'정도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 조목 전체가 불교적 메타포와 어휘가 농후하지만 '본심'은 특히나 불교적 표현이다. 주희는 이 표현을 평소에 잘 쓰지 않는다. '본심지지'의 경우 어떤 내용성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 그 자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거울의 성질 가운데 밝게 비추고 투영하는 성질 정도를 지시하는 말이다.</ref> 예를 들어 거울은 본래 온전히 밝지만 흐린 것이 끼었을 뿐이다. 이제 점점 갈고닦아 사방을 모두 비추도록하면 그 밝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15:5 致知有甚了期! 方(41때).
'''치지에 무슨 끝날 기약이 있겠나?
* 15:6 致知工夫, 亦只是且據所已知者, 玩索推廣將去. 具於心者, 本無不足也.
'''치지공부는 역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의지하여 (그것을) 완미하고 확장해나가는 것 뿐이다. 마음에 갖춘 것은 본래 부족함이 없다.'''
* 15:7 格物者, 格, 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若是窮得三兩分, 便未是格物. 須是窮盡得到十分, 方是格物. 賀孫(62이후).
'''격물(格物)에서 격(格)은 남김없이 다한다(盡)는 뜻이다.<ref>주희가 격을 이렇게 풀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아래 15:9에서처럼 '이르다'로 풀이한다.</ref>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남김없이 다 파고들어야<ref>궁(窮)은 대개 '궁구하다'라고 풀이하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끝까지 탐구하고 파고들어 모조리 알고자하는 행위가 '궁구'이다. 여기서는 '파고들다'나 '탐구하다' 정도로 번역하겠다.</ref> 한다. 만약 2할이나 3할쯤 파고들었다면 격물이 아니다. 남김없이 파고들어 100퍼센트에 이르러야 격물이다.'''
하손의 기록.
* <以下格物, 兼論窮理.>
'''<이 아래로 격물에 관한 조목들. 궁리에 관한 논의도 겸한다.>
* 15:8 居甫問: “格物工夫, 覺見不周給.”
'''거보(서우)의 질문: 격물공부가 두루 미치지 않는 듯합니다.
曰: “須是四方八面去格.” 可學(62때).
'''대답: 사방팔방에 나아가 탐구해야(格) 한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9 格物. 格, 猶至也, 如‘舜格于文祖’之‘格’, 是至于文祖處. 芝(63때).
'''격물의 격은 이르다(至)와 같다.<ref>현실의 여러 사태와 사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 그것에 내재한 모종의 패턴을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까지가 '격'이다. 그래서 격물의 '격'은 이르다, 탐구하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번역어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격하다'로도 풀이하겠다.</ref> 예컨대 '순임금이 문조의 묘에 격하여(舜格于文祖)'<ref>상서 순전</ref>에서의 '격'은 문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0 問: “格物, 還是事未至時格, 事旣至然後格?”
'''질문: 격물은 사태가 아직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태가 이른 뒤에 '격'하는 것입니까?<ref>육아로 비유하자면 애를 낳기 전에 육아의 도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를 낳은 후에 탐구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ref>
曰: “格, 是到那般所在. 也有事至時格底, 也有事未至時格底.” 芝(63때).
'''대답: '격'은 (자신이) 저것이 있는 곳으로 이르는 것이다. 사태가 이르렀을 때 '격'하는 경우도 있고 사태가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경우도 있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1 格物者, 如言性, 則當推其如何謂之性; 如言心, 則當推其如何謂之心, 只此便是格物. 砥(61때).
'''격물이란, 예를 들어 성(性)이다 하면 무엇을 성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하고 심(心)이다 하면 무엇을 심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격물이다.
지(砥)의 기록. (61세)
* 15:12 窮理格物, 如讀經看史, 應接事物, 理會箇是處, 皆是格物. 只是常敎此心存, 莫敎他閑沒勾當處. 公且道如今不去學問時, 此心頓放那處? 賀孫(62이후).
'''궁리와 격물은, 예컨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고 사태와 사물에 접하고 대응하면서 각각의 경우에 옳은 지점을 헤아리는 것이 모두 격물이다. 그저 늘 이 마음을 간직해야지, 한가로이 일 없는 자리에 머물지 말라. 그대가 한 번 말해보라. 요즘 학문하지 않을 때에는 그대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3 格物, 須是從切己處理會去. 待自家者已定疊, 然後漸漸推去, 這便是能格物. 道夫(60이후).
'''격물은 자신에게 절실한 지점에서부터 헤아려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선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다음에 천천히 밀고 나가야 격물이 가능하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 “格物”二字最好. 物, 謂事物也. 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 便有一箇是, 一箇非, 是底便行, 非底便不行. 凡自家身心上, 皆須體驗得一箇是非. 若講論文字, 應接事物, 各各體驗, 漸漸推廣, 地步自然寬闊. 如曾子三省, 只管如此體驗去. 德明(44이후).
'''격물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좋다. 물은 사건과 사물이다.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남김 없이 파고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는데 옳은 것이면 행하고 그른 것이면 행하지 않는다. 대개 옳고 그름을 자신의 심신상에서 모두 체험(體驗)해야 한다. 문자를 강론하고 사건과 사물에 대응할 적에 각각의 경우(의 옳고 그름)를 체험하며 점점 미루어 넓혀간다면 (자신의) 지평이 자연히 드넓어질 것이다. 증자(曾子)가 매일 세 가지 항목으로 반성한 것처럼<ref>논어 1:4.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불충했는가? 붕우(朋友)와 더불어 사귐에 신실하지 못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ref> 그저 이렇게 체험해가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15 文振問: “物者, 理之所在, 人所必有而不能無者, 何者爲切?”
'''문진(文振)의 질문: 물(物)은 이치가 있는 곳이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으며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절실합니까?'''
曰: “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皆人所不能無者. 但學者須要窮格得盡. 事父母, 則當盡其孝; 處兄弟, 則當盡其友. 如此之類, 須是要見得盡. 若有一毫不盡, 便是窮格不至也.” 人傑(51이후).
'''대답: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든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는 이라면 더더욱 반드시 남김 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부모를 모실 때는 효를 다해야 하고 형제간에 지낼 때는 우애를 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남김 없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16 格物, 莫先於五品. 方子(59이후).
'''격물(格物)의 대상은 오륜(五品)<ref>오품(五品)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 곧 오륜을 말한다. 상서 순전을 보라.</ref>이 최우선이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17 格物, 是窮得這事當如此, 那事當如彼. 如爲人君, 便當止於仁; 爲人臣, 便當止於敬. 又更上一著, 便要窮究得爲人君, 如何要止於仁; 爲人臣, 如何要止於敬, 乃是. 銖(67이후).
'''격물(格物)은 이 사안은 이래야 하고 저 사안은 저래야 한다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임금은 어찌하여<ref>방법을 묻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것인지 불분명하다.</ref> 인에 멈추어야 하는지, 신하는 어찌하여 경에 멈추어야 하는지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18 格物者, 格其孝, 當考論語中許多論孝; 格其忠, 必‘將順其美, 匡救其惡’, 不幸而仗節死義. 古人愛物, 而伐木亦有時, 無一些子不到處, 無一物不被其澤. 蓋緣是格物得盡, 所以如此. 節(64이후).
''' '격물(格物)'이란, 효(孝)를 격(格)하려면 '논어'에서 효를 논한 많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하고 충(忠)을 격(格)하려면 반드시 '임금이 잘하는 것은 받들어 따르고(將順其美), 임금이 잘못하는 것은 바로잡아 제지해야(匡救其惡)'<ref>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장(將)은 소학집해에 의하면 받든다는 뜻. 광구(匡救)는 바로잡아 제지한다는 뜻이다. 일역판에서는 효경의 주석서 하나를 인용하여 장(將)을 행(行)의 뜻으로 풀이했다.</ref>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仗節死義).<ref>후한서 오한(吳漢)전. 장(仗)은 붙잡는다는 뜻.</ref> 옛사람들은 만물을 사랑하여 나무를 베는 것에도 때가 있었다. 이 사랑이 도달하지 못한 곳이 조금도 없었으며, 이 은택을 입지 못한 사물이 하나도 없었다. 대개 격물을 완전하게 해냈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9 格物, 須眞見得決定是如此. 爲子豈不知是要孝?爲臣豈不知是要忠?人皆知得是如此. 然須當眞見得子決定是合當孝, 臣決定是合當忠, 決定如此做, 始得. 㝢(61이후).
'''격물(格物)할 적에는 결단코 반드시 이러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식이 되어서 어찌 효도해야 함을 모르겠나? 신하가 되어서 어찌 충성해야 함을 모르겠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자식은 결단코 반드시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결단코 반드시 충성해야 하며 결단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0 如今說格物, 只晨起開目時, 便有四件在這裏, 不用外尋, 仁義禮智是也. 如才方開門時, 便有四人在門裏. 僩(69이후).
'''지금 말한 격물의 경우, 그저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이미 네 가지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밖에 나가 찾을 필요가 없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바로 이 네 가지이다. 마치 (조금 전) 문을 열자마자 (여러분) 네 사람이 문 안에 있었던 것과 같다.<ref>마지막 문장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강론하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빗댄 것일 수도 있다. 일역판에서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구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풀이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1 子淵說: “格物, 先從身上格去. 如仁義禮智, 發而爲惻隱·羞惡·辭遜·是非, 須從身上體察, 常常守得在這裏, 始得.”
'''자연(子淵)이 말함: '격물'은 우선 자기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발현되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되는 것을 자기자신에게서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늘 속에 간직해야 됩니다.
曰: “人之所以爲人, 只是這四件, 須自認取意思是如何. 所謂惻隱者, 是甚麽意思? 且如赤子入井, 一井如彼深峻, 入者必死, 而赤子將入焉! 自家見之, 此心還是如何? 有一事不善, 在自家身上做出, 這裏定是可羞; 在別人做出, 這裏定是惡他. 利之所不當得, 或雖當得, 而吾心有所未安, 便要謙遜辭避, 不敢當之. 以至等閑禮數, 人之施於己者, 或過其分, 便要辭將去, 遜與別人, 定是如此. 事事物物上各有箇是, 有箇非, 是底自家心裏定道是, 非底自家心裏定道非. 就事物上看, 是底定是是, 非底定是非. 到得所以是之, 所以非之, 卻只在自家. 此四者, 人人有之, 同得於天者, 不待問別人假借. 堯舜之所以爲堯舜, 也只是這四箇, 桀紂本來亦有這四箇. 如今若認得這四箇分曉, 方可以理會別道理. 只是孝有多少樣, 有如此爲孝, 如此而爲不孝; 忠固是忠, 有如此爲忠, 又有如此而不喚做忠, 一一都著斟酌理會過.” 賀孫(62이후).
'''대답: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바로 이 네 가지 뿐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드시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측은지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보자.<ref>맹자 2A:6</ref> 이 우물이 이토록 깊고 험하여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되는데 어떤 아이가 빠지려 한다! 자신이 그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어떤 좋지 못한 일을 자기 자신이 했다고 한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부끄러울(羞)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그를 미워할(惡) 것이다. 얻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그런 이익이 있거나, 혹여 비록 적절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겸손하게 사양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ref>감히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ref> 심지어 사소한 예절에서도(等閑禮數) 남이 나에게 베풀 때 분수를 넘어버리면 그것을 사양하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 반드시 이렇게 한다. 모든 사건과 사물에는 각각 옳고 그름이 있다. 옳은 것은 자기 마음 속에서 반드시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반드시 그르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니라) 사건과 사물쪽에 가서 보면 옳은 것은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반드시 그르다. 그러나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판단의 근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이 네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하늘로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요순이 요순이 된 이유 역시 이 네 가지일 뿐이다. 걸왕과 주왕도 원래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 이 네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만 비로소 다른 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효(孝)에도 그 양상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해서 효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똑같이 했는데 불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忠)은 충인데, 이렇게 해서 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다시 똑같이 이렇게 했는데 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 신중히 살펴보고 헤아려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22 問: “格物最難. 日用間應事處, 平直者卻易見. 如交錯疑似處, 要如此則彼礙, 要如彼則此礙, 不審何以窮之?”
'''질문: '격물'이 가장 어렵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에 대응하는 경우 중에서 평이직절한 것이야 보기 쉽습니다만 복잡하고 애매한 것들은 이렇게 하려 하면 저것이 장애가 되고, 저렇게 하려 하면 이것이 방해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탐구해야 합니까?
曰: “如何一頓便要格得恁地! 且要見得大綱, 且看箇大胚模是恁地, 方就裏面旋旋做細. 如樹, 初間且先斫倒在這裏, 逐旋去皮, 方始出細. 若難曉易曉底, 一齊都要理會得, 也不解恁地. 但不失了大綱, 理會一重了, 裏面又見一重; 一重了, 又見一重. 以事之詳略言, 理會一件又一件; 以理之淺深言, 理會一重又一重. 只管理會, 須有極盡時.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成四節次第, 恁地方是.” 㝢(61이후).
'''대답: 어떻게 첫 술에(一頓)<ref>'일둔'은 한 차례, 한 번 등의 뜻이다. 주희는 종종 음식을 한 술 먹는 것을 '일둔'이라고 형용한다. 124:13 참조.</ref> 그렇게 (완벽하게) 격물하려 하는가? 우선은 큰 줄기(大綱)를 보아야 한다. 우선 전체적인 틀(mould)이<ref>大胚模에 대해서는 14:6 참조.</ref>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旋旋)<ref>선선(旋旋)은 차례차례 순서대로 조금씩 함을 말한다.</ref> 세밀한 것을 해나가야 한다. 나무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우선 나무를 베어 여기에 쓰러뜨려 놓은 다음에 순서대로(逐旋) 한겹씩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안쪽의 섬세한 부분이 드러난다. 만약 이해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모두 일제히 헤아리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할 수가 없다.<ref>여기서 해(解)는 can과 같다.</ref> 그러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한 겹을 헤아리고 나면 그 안에 또 한 겹을 보게 되고, 그 한 겹을 이해하고 나면 또 다시 그 아래 한 겹을 보게 된다. 일의 자세함과 간략함으로 말하자면, (간략한 것) 한 건을 헤아리고 다시 (자세한 것) 한 건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치의 얕음과 깊음으로 말하자면, (얕은 것) 한 겹을 헤아리고 다시 (깊은 것) 한 겹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헤아리다 보면 반드시 완전히 남김없이 헤아리게 되는 때가(極盡時) 올 것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는'<ref>중용 20장.</ref> 것이 네 단계의 절차를 이룬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3 或問: “格物是學者始入道處, 當如何著力?”
'''누군가의 질문: '격물'은 배우는 이가 처음으로 도(道)에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曰: “遇事接物之間, 各須一一去理會始得. 不成是精底去理會, 粗底又放過了; 大底去理會, 小底又不問了. 如此, 終是有欠闕. 但隨事遇物, 皆一一去窮極, 自然分明.”
'''대답: 상황을 만나고 사물을 접하는 사이에 각각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 설마하니 정밀한 것은 헤아리고 거친 것은 방치하며 큰 것은 헤아리고 작은 것은 탐문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하면 결국 무언가 빠뜨리게 된다. 다만 사물과 상황에 따라 모두 하나하나 끝까지 파고들면 자연히 분명해진다.
又問: “世間有一種小有才底人, 於事物上亦能考究得仔細, 如何卻無益於己?”
'''재질문: 세상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과 사물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할 수 있는데도 어째서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曰: “他理會底, 聖人亦理會, 但他理會底意思不是. 彼所爲者, 他欲人說, ‘他人理會不得者, 我理會得; 他人不能者, 我能之’, 卻不切己也.”
'''대답: 그들이 헤아린 대상은 성인도 헤아리지만, 그들의 (상황과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려는 의도(意思)는 (성인의 의도와)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나는 헤아린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고 타인이 말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절실하지 못하다.
又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聖人何事不理會, 但是與人自不同.” 祖道(68때).
'''다시 대답: '문왕과 무왕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남아있습니다. 현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불현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합니다. 문무의 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ref>논어 19:22</ref>라고 하였다. 성인<ref>직전 인용이 공자의 배움의 과정에 대한 것이므로 여기서 성인은 공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옳다.</ref>이 어떤 일이든 헤아리지 않았겠는가? 다만 (남들이 알아주기나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히 다를 뿐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24 傅問: “而今格物, 不知可以就吾心之發見理會得否?”
'''부(傅)<ref>일역판에서는 부정 傅定(자는 敬子)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15:21에서 질문한 자연(子淵)일 가능성도 있다.</ref>의 질문: 이제 '격물'을 할 때,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에서 발현하는 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는 것 아닙니까?<ref>마음에서 발현한 것을 면밀히 살피는 방식의 공부법은 당시 호남의 여러 학자들(예컨대 호굉)이 주장한 것으로 이른바 호상학파의 찰식단예(察識端倪)설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대한 이승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란 일상의 마음 씀씀이 가운데서 현행하는 의식의 흐름을 면밀하게 관찰하다가 '측은지심'과 같은 본성(性)의 실마리(端倪)가 문득 발현할 때 이를 즉각 포착하려는 자기직관의 수행법이다. '이발찰식' 또는 '찰식단예'의 수양법은 성품을 '기르는 일(涵養)'보다 본성을 '찰식'하는 일에 방법론적 우선성을 두는 전형적인 '선찰식후함양'의 수행법이다. '성품 기르기(涵養)'보다 '마음 관찰하기(察識)'를 중시하는 호상학의 수행법은 양구산과 사상채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이들 수행법은 다시 스승인 정명도의 '식인(識仁)'설에 근거를 두고 불교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이승환, 2009, "찰식에서 함양으로: 호상학의 이발찰식 수행법에 대한 주자의 비판")</ref>
曰: “公依舊是要安排, 而今只且就事物上格去. 如讀書, 便就文字上格; 聽人說話, 便就說話上格; 接物, 便就接物上格. 精粗大小, 都要格它. 久後會通, 粗底便是精, 小底便是大, 這便是理之一本處. 而今只管要從發見處理會. 且如見赤子入井, 便有怵惕·惻隱之心, 這箇便是發了, 更如何理會. 若須待它自然發了, 方理會它, 一年都能理會得多少! 聖賢不是敎人去黑淬淬裏守著. 而今且大著心胸, 大開著門, 端身正坐以觀事物之來, 便格它.” 蘷孫(68이후).
'''대답: 그대는 여전히 머리를 굴려 안배(安排)하려고 한다. 지금은 우선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격물해야 한다. 독서의 경우는 읽고 있는 글에서 격물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에서 격물하고, 사물을 접할 때는 그렇게 접한 사물에서 격물하라. 정밀하든 거칠든, 크든 작든 모두 격물해야 한다. 오래도록 이렇게 하다가 회통(會通)<ref>회통은 융회관통(融會貫通)이다. 서로 달라 보였던 것이 녹아서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막혀 있던 것이 꿰뚫려 하나가 되는 지적 경험을 말한다.</ref>하면 거친 것이 곧 정밀한 것이요,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다. 여기가 바로 모든 이치의 단일한 뿌리가 되는 지점이다.<ref>현상적으로 우리가 보고 발견하는 인간세계와 자연세계의 패턴들은 그 양상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러한 패턴들이 공유하고 있는 패턴성 그 자체는 하나이다. 패턴의 이러한 다양성과 통일성을 주희는 자주 '리일분수(理一分殊)'라고 표현했다. '리지일본처(理之一本處)'는 패턴의 통일성, 곧 '리일'을 말한다.</ref> 이제 (그대는) 그저 발현된 지점에서만 헤아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놀랍고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발현된 지점인데, 여기서 더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만약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일년 내내 몇 개쯤 헤아릴 수 있겠나? 성현은 사람들더러 (마음이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저 암흑 속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슴을 크게 열고, 문을 넓게 열고,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 다가오는 사태와 사물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격물하라.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25 世間之物, 無不有理, 皆須格過. 古人自幼便識其具. 且如事君事親之禮, 鐘鼓鏗鏘之節, 進退揖遜之儀, 皆目熟其事, 躬親其禮. 及其長也, 不過只是窮此理, 因而漸及於天地鬼神日月陰陽草木鳥獸之理, 所以用工也易. 今人皆無此等禮數可以講習, 只靠先聖遺經自去推究, 所以要人格物主敬, 便將此心去體會古人道理, 循而行之. 如事親孝, 自家旣知所以孝, 便將此孝心依古禮而行之; 事君敬, 便將此敬心依聖經所說之禮而行之. 一一須要窮過, 自然浹洽貫通. 如論語一書, 當時門人弟子記聖人言行, 動容周旋, 揖遜進退, 至爲纖悉. 如鄕黨一篇, 可見當時此等禮數皆在. 至孟子時, 則漸已放棄. 如孟子一書, 其說已寬, 亦有但論其大理而已. 僩(69이후).
'''세상 모든 것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으므로 모두 낱낱이 격물해야 한다. 옛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사물이 이치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군주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예법, (중요한 의식에서) 종치고 북치는 절차, (의식에서 사람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몸짓을 모두 눈으로 익히고 몸소 실천했다. 더 자라서는 그저 이 이치를<ref>사군사친, 종고갱장, 진퇴읍손에 내재한 의미를 말한다.</ref> 깊이 연구한 데 불과하다. 이어서 나아가 점차 천지, 귀신, 일월, 음양, 초목, 조수의 이치까지 이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쉬웠다.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예절(禮數)<ref>예수(禮數)는 숫자로 규정된 의식(ritual)의 절차를 말한다. 절을 두 번 하고 술을 세 번 따르는 등이 그것이다. 흔히 쓰는 '예절(禮節)'이란 말의 '절' 역시 이런 종류의 의식을 규정하는 절차와 단계, 참여자의 위아래를 나누는 등급 따위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통한다. 일역판에서 예수를 예절로 번역한 것을 참조하여 따랐다.</ref>(의 전통이 모두 사라져서) 그것을 전혀 강습할 수가 없으므로 오로지 성인이 남긴 경전에 의존하여 저 홀로 유추하고 연구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격물(格物)과 주경(主敬)<ref>주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1. 먼저 어려서 몸으로 익혀서 습관화하고 2. 나중에 머리로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캐묻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원하는 만큼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1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의 과정이 일종의 명상수련에 해당하는 '경(敬)'공부이다. '격물'은 '캐묻고 이해하는' 2번 과정이다.</ref>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마음에서 고대인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여 그 도리를 좇아 실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먼저 스스로 효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효심을 가지고 고대의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군주를 공경히 섬기는 것의 경우도 (먼저 그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인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깊이 연구하면 자연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꿰뚫게 된다. '논어' 한 권을 예로 들자면, 당시 문인제자들이 성인의 말과 행동, (중요한 의식에서의) 몸가짐과 동작,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지극히 상세하다. '향당(鄕黨)' 편을 보면 당시 이러한 예절(禮數)이 모두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버려졌다. '맹자' 한 권을 보면, 그 논의가 이미 완화되어,<ref>예절을 굳게 지키고 실천하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ref> 역시 거시적인 이치만<ref>디테일은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ref> 논하고 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6 問竇從周: “曾看‘格物’一段否?”
'''선생이 두종주(竇從周)에게 질문: '격물' 한 단락은 읽어보았는가?
因言: 聖人只說“格物”二字,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且自一念之微, 以至事事物物, 若靜若動, 凡居處飮食言語, 無不是事, 無不各有箇天理人欲. 須是逐一驗過, 雖在靜處坐, 亦須驗箇敬·肆. 敬便是天理, 肆便是人欲. 如居處, 便須驗得恭與不恭; 執事, 便須驗得敬與不敬. 有一般人專要就寂然不動上理會, 及其應事, 卻七顚八倒, 到了, 又牽動他寂然底. 又有人專要理會事, 卻於根本上全無工夫. 須是徹上徹下, 表裏洞徹. 如居仁, 便自能由義; 由義, 便是居仁. “敬以直內”, 便能“義以方外”; 能“義以方外”, 便是“敬以直內.” 德明(44이후).
'''(선생이) 이어서 말함: 성인은 단지 '격물' 두 글자를 말했을 뿐이니, 이는 구체적인 사태와 사물에서 이치를 헤아리도록 요구한 것이다. 하나의 미미한 생각에서부터 온갖 사사물물에 이르기까지,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거처, 음식, 언어 등 사태(事) 아닌 것이 없으며, 각각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함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각의 사태와 사물을 따라)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비록 고요한 곳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경건한지(敬) 방종한지(肆) 점검해야 한다. 경건하면 천리이고, 방종하면 인욕이다. 집에 있는 경우는 공손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하고, 일을 집행할 경우에는 경건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ref>거처공, 집사경(居處恭, 執事敬)은 논어 19:19</ref>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寂然不動)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사태에 대응할 적에 오히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자빠져서(七顚八倒) 결국 자신의 그 고요한 것까지 뒤흔들어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사태에서 헤아리려 하고 뿌리가 되는 지점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위쪽으로도 아래쪽으로도<ref>하학과 상달을 말한다.</ref> 끝까지 꿰뚫고, 바깥쪽으로도 안쪽으로도<ref>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을 말한다.</ref> 완전히 꿰뚫어야 한다. 인(仁)에 기거하면 저절로 의(義)로운 길을 걸을 수 있고, 의로운 길을 걸으면 곧 인에 기거하는 것이다.<ref>맹자 7A:33</ref>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敬以直內)' 하면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義以方外)' 할 수 있으며,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으면 곧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ref>주역 곤괘 문언전.</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27 才仲問: “格物, 是小學已有開明處了, 便從大學做將去, 推致其極.”
'''재중(才仲)의 질문: '격물'은 소학의 단계에서 이미 개명(開明)된 것이 있고, 대학의 단계에서 (그 개명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나가서 극치까지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曰: “人也不解無箇發明處. 才有些發見處, 便從此挨將去, 漸漸開明. 只如一箇事, 我才發心, 道‘我要做此事’, 只此便是發見開明處了, 便從此做將去. 五代時, 有一將官, 年大而不識字. 旣貴, 遂令人於每件物事上書一名字帖之, 渠子細看, 久之, 漸漸認得幾箇字. 從此推將去, 遂識字.” 璘(62때).
'''대답: 사람은 (기존에) 발명(發明)된 부분이 없을 수 없다<ref>해(解)는 can의 의미.</ref>. 조금이라도 발현된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밀고 나가 점점 열어 밝힌다(開明).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에 대하여 발심(發心)하여, '내가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한다면 여기가 바로 발현된 부분이요 개명된 부분이니 거기에서 시작하여 해나가야 한다. 오대(五代) 때의 어떤 장수는 나이는 많은데 글자를 알지 못했다. 신분이 귀해진 그는 사람을 시켜 주변의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이게 하였다. 그는 그것들을 꾸준히 세심히 보았고, 점차 글자 몇 개를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밀고 나가서 마침내 글자를 알아보게 되었다.<ref>구오대사 권15 양서(梁書) 한건(韓建)</ref>'''
린(璘)의 기록. (62세)
* 15:28 問: “格物則恐有外馳之病?”
'''질문: '격물'을 하면 바깥쪽으로 정신이 팔리는(外馳) 병폐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曰: “若合做, 則雖治國平天下之事, 亦是己事. ‘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不成也說道外馳!”
'''대답: 만약 응당 해야 하는 것이라면 치국평천하의 일이라 할지라도 역시 자기 (내면의) 일이다. '주공(周公)은 세 왕<ref>우, 탕, 문무를 말한다. 문왕과 무왕을 하나씩 세면 네 왕이지만 어째서인지 맹자는 셋으로 셌다.</ref>의 치적을 포괄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셨다. 혹여 (세 왕이 했던 것 가운데)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하여, 다행히 무언가 터득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앉아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ref>맹자 4B:20. 우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훌륭한 말을 좋아했다. 탕은 중도를 잡았으며 어진이를 세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 보기를 자기 몸의 상처 보듯 하였으며 도를 소망하면서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무왕은 가까이 있는 이를 편애하지 않고 멀리 있는 이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세 왕의 네 가지 일'이다.</ref> 설마하니 주공의 마음도 바깥쪽으로 팔렸다고 하진 않겠지?
又問: “若如此, 則恐有身在此而心不在此,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有此等患.”
'''재질문: 그렇게하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 있지 않아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ref>대학 전7장.</ref>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曰: “合用他處, 也著用.”
'''대답: 그렇게 해야하는 경우에는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ref>'著'는 '須著'의 뜻이다.</ref>
又問: “如此, 則不當論內外, 但當論合爲與不合爲.”
'''재질문: 그렇다면 내면이냐 외면이냐를 논할 것이 아니라, 다만 응당 해야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논해야 할 뿐입니다.
先生頷之. 節(64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29 若格物, 則雖不能盡知, 而事至物來, 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 雖不中, 不遠矣. 節(64이후).
''' '격물'의 경우, 비록 모두 완전히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일이 닥치고 사물이 왔을 때 큰 것은 조금 더해서 처리하고 작은 것은 조금 덜어내서 처리하면(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ref>일역판의 각주에 의하면 이는 양팔저울로 무게를 재는 경우를 시각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큰 물건을 저울의 한쪽에 올려두면 다른 쪽 팔에는 좀 무거운 무게추를 더해주어야 균형이 맞다. 작은 물건을 올릴 경우엔 무게추를 덜어주어야 균형이 맞다.</ref>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雖不中, 不遠矣).<ref>대학 전9장.</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0 問: “格物工夫未到得貫通, 亦未害否?”
'''질문: '격물' 공부는 꿰뚫는(貫通)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曰: “這是甚說話! 而今學者所以學, 便須是到聖賢地位, 不到不肯休, 方是. 但用工做向前去, 但見前路茫茫地白, 莫問程途, 少間自能到. 如何先立一箇不解做得便休底規模放這裏了, 如何做事! 且下手要做十分, 到了只做得五六分; 下手做五六分, 到了只做得三四分; 下手做三四分, 便無了. 且諸公自家裏來到建陽, 直到建陽方休. 未到建陽, 半路歸去, 便是不到建陽. 聖賢所爲, 必不如此. 如所謂: ‘君子鄕道而行, 半途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也, 俛焉日有孶孶, 斃而後已! ’又曰: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憂之如何? 如舜而已矣.’” 卓(미상).
'''대답: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 배우는 이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반드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이 없어야 옳다. 다만 힘껏 앞을 향해 해나갈 뿐이다. 그저 앞길을 막막하게 보면서(茫茫地白) 어디까지 왔는지 묻지 말라(莫問程途). (계속 앞을 향해 나가면) 잠시 후에 저절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f>10:31의 유사한 구절을 참조하라.</ref> 어째서 해보기도 전에 '안 되면 그만둔다(不解做得便休)'는 한계(規模)<ref>규모(規模)는 틀, 구조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미리 이러이러한 틀을 잡아서 한계선을 정해둔다는 뜻으로 쓰였으므로 이렇게 의역하였다.</ref>를 여기다 정해두려 하는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일을 해내겠나? 처음부터 100%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50-60%정도만 하게 되고 처음부터 50-60%를 하려고 하면 결국 30-40%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처음부터 30-40%를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또, 그대들이 그대들 집에서 건양(建陽)까지 오려면 건양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멈춘다. 건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가면 건양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현이 하는 일은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예컨대 '군자는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에<ref>본문은 반도(半途)이나 인용 출처인 예기 표기(表記) 쪽은 '중도(中道)'이다.</ref> 그만두면 자신이 늙었음을 잊고 앞으로 살 날이 부족한 것도 모르고 날마다 부지런히(孶孶) 몰두하다(俛焉)<ref>'俛'에 관해서는 14:59 참조.</ref> 죽고 나서야 멈춘다.'<ref>예기 표기(表記)</ref> 고 하였고, 또 '순(舜)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한데 나는 여전히 평범한 촌사람을 면치 못하는구나. 이런 것은 (군자가)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여 어떻게 하는가? 순처럼 할 뿐이다.'<ref>맹자 4B:28</ref>라고 하였다.'''
탁(卓)의 기록.
* 15:31 人多把這道理作一箇懸空底物. 大學不說窮理, 只說箇格物,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如此方見得實體. 所謂實體, 非就事物上見不得. 且如作舟以行水, 作車以行陸. 今試以衆人之力共推一舟於陸, 必不能行, 方見得舟果不能以行陸也, 此之謂實體. 德明(44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리를 공중에 붕 뜬 물건으로 여긴다.<ref>공중에 붕 떴다는 말은 공리공담, 실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14:44에 유사한 구문이 있으니 참조하라.</ref> '대학'에서 이치를 파고들라(窮理)고 말하지 않고 그저 사물에 나아가라(格物)고만 말한 것은 곧 사람들더러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여 (도리를) 헤아리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란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들어 물 위를 가고, 수레를 만들어 육지를 간다.'<ref>주례 고공기</ref>같은 경우 이제 시험삼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배를 육지 위로 밀어보면 결코 운행할 수 없을 것이니, 그제서야 비로소 배는 과연 육지를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다.<ref>실체(實體)는 문자 그대로 옮길 수 없다.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ousia)'의 번역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주자어류에서의 실체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치를 말한다. 한편 요즘 세간에서 종종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에서 '실체'는 우시아보다는 주자어류에서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운 것처럼 들린다.</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2 問: “道之不明, 蓋是後人舍事跡以求道.”
'''질문: '도(道)가 밝지 못하게'<ref>중용 제 4장.</ref> 된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 구체적인 상황(事跡)을 도외시하기 때문입니까?
曰: “所以古人只道格物. 有物便有理, 若無事親事君底事, 何處得忠孝!” 節(64이후).
'''대답: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저 '격물(格物)'이라고만 하였다.<ref>직전 조목 참조.</ref> 사물과 상황이 있으면 (그곳에) 이치가 있다. 만약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긴다는 상황(事)이 없다면 충(忠)과 효(孝)(라는 이치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3 “窮理”二字不若格物之爲切, 便就事物上窮格. 如漢人多推秦之所以失, 漢之所以得, 故得失易見. 然彼亦無那格底意思. 若格之而極其至, 則秦猶有餘失, 漢亦當有餘得也.”
''' '궁리(窮理)'라는 두 글자는 '격물(格物)'이라는 표현이 친근하고 절실한(切)<ref>'절(切)'은 어떤 말이 무척 구체적이고 실감나서 우리 피부에 딱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ref> 것에 미치지 못한다. 곧, 실제 사건과 사물의 현장에서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가 실패한(失) 이유와 한나라가 성공한(得) 이유를 많이 분석해준 덕에 (우리는) 그 득실(得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격(格)하는 정신은 없다.<ref>주희에 의하면 격물은 각각의 사건과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람들의 탐구는 방향이 틀렸다기 보다는 그 정도가 못미쳤다는 것이다.</ref> 만약 격(格)하여 그 극한까지 이르면 진나라에는 기존에 들춰내지 못했던 실패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한나라에는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성공 지점이 있을 것이다.'''
又云: “格, 謂至也, 所謂實行到那地頭. 如南劍人往建寧, 須到得郡廳上, 方是至, 若只到建陽境上, 卽不謂之至也.” 德明(44이후).
'''다시 말함: '격(格)'은 '도달하다(至)'라는 뜻이다. 이른바 '실제로 가서 그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검(南劍)<ref>남송의 남검주.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연평구 즈음으로 복건 한가운데에 있다.</ref> 사람이 건녕(建寧)<ref>남송의 건녕부. 치소가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소속인 건구시(建瓯市)에 있다.</ref>에 가는 경우 반드시 군청(郡廳)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만약 건양(建陽)<ref>남송 건녕부 건양현. 건녕부 치소의 북쪽에 있다.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건양구. 남검주의 치소에서부터 걸어서 북상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먼저 도달하고, 여기서 더 북상하면 건양현에 도달한다. 물론 남검주의 서북쪽 끄트머리에서 출발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도달하기 전에 건양현 경내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역시 하나의 비유로서는 부자연스럽다. 건양을 '건녕'이라고 했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ref>의 경계에만 도달했을 뿐이라면 도달했다고 하지 않는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4 格物, 不說窮理, 卻言格物. 蓋言理, 則無可捉摸, 物有時而離; 言物, 則理自在, 自是離不得. 釋氏只說見性, 下梢尋得一箇空洞無稽底性, 亦由他說, 於事上更動不得. 賀孫(62이후).
''' '격물' 같은 경우, '궁리'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격물'이라고 말하였다. 생각건대 그 까닭은 이치(理)라고 말하면 붙잡을 것이 없어서 사물이 때로 (이치를 논의할 때) 분리되어 버리지만, 사물(物)이라고 말하면 이치는 자연히 그 안에 있어서 본래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ref>오늘날의 표현으로 치환하자면, 현실을 논하면 이론은 자연히 그 논의 속에 있지만 이론을 논하다보면 현실을 때로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ref> 석씨(釋氏)는 그저 '본성을 본다(見性)'고만 하는데, 결국 공허하고 근거 없는(空洞無稽)<ref>공동은 속이 빈 것이다. 이론만 있지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무계는 계고(稽考)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뿔달린 토끼나 날개달린 말처럼 현실에서 찾아내어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ref>본성을 찾는 것이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한다 해도(亦由他說)<ref>유(由)는 '따르다', 역(亦)은 '만일'로 풀었다.</ref> 현실의 사태에서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35 所謂窮理者, 事事物物, 各自有箇事物底道理, 窮之須要周盡. 若見得一邊, 不見一邊, 便不該通. 窮之未得, 更須款曲推明. 蓋天理在人, 終有明處. “大學之道, 在明明德”, 謂人合下便有此明德. 雖爲物欲掩蔽, 然這些明底道理未嘗泯絶. 須從明處漸漸推將去, 窮到是處, 吾心亦自有準則. 窮理之初, 如攻堅物, 必尋其罅隙可入之處, 乃從而擊之, 則用力爲不難矣. 孟子論四端, 便各自有箇柄靶, 仁義禮智皆有頭緖可尋. 卽其所發之端, 而求其可見之體, 莫非可窮之理也. 謨(50이후).
'''이른바 궁리(窮理)란,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 각각에 본래 그 사태와 사물 고유의 도리가 있으니 그것을 반드시 남김없이 완전히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보지 않으면 두루 통달했다(該通)고 할 수 없다. 아직 다 탐구하지 못했다면 더욱 상세하게 미루어 밝혀야 한다. 생각건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으니 (우리 안에) 끝끝내 밝은 지점이 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밝은 덕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물욕에 엄폐(掩蔽)되었다 하더라도 이 밝은 도리는 결코 민멸된(泯絶) 적이 없다. 밝은 곳에서부터 점점 밀고 나가서 궁극적으로 올바른 지점(是處)에 도달하면 내 마음에도 저절로 준칙(準則)이 있게 된다. 궁리(窮理)의 초반부는 마치 단단한 물체를 가공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두들기면 힘쓰기가 어렵지 않다. 맹자가 사단(四端)을 논하여 각각 손잡이(柄靶)가 생겼다.<ref>착수할 지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ref> 인의예지(仁義禮智)에는 모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頭緖)가 있다. 발현되어 나온 실마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의 인식 시야에 들어온 본체(可見之體)를 찾아나가면 탐구(窮)할 수 없는 이치가 없다.'''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36 格物窮理, 有一物便有一理. 窮得到後, 遇事觸物皆撞著這道理: 事君便遇忠, 事親便遇孝, 居處便恭, 執事便敬, 與人便忠, 以至參前倚衡, 無往而不見這箇道理. 若窮不至, 則所見不眞, 外面雖爲善, 而內實爲惡, 是兩箇人做事了! 外面爲善是一箇人, 裏面又有一箇人說道: “我不好.” 如今須勝得那一箇不好底人去方是. 豈有學聖人之書, 爲市井之行, 這箇窮得箇甚道理! 而今說格物窮理, 須是見得箇道理親切了, 未解便能脫然去其舊習. 其始且見得箇道理如此, 那事不是, 亦不敢爲; 其次, 見得分曉, 則不肯爲; 又其次, 見得親切, 則不爲之, 而舊習都忘之矣. 子蒙(미상).
''' '격물'과 '궁리'로 말하자면, 물건이 하나 있으면 이치도 하나 있다. 가장 깊은 지점까지 탐구하고 나면 사태를 만나고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항상 이 도리와 조우하게 된다. 군주를 섬김에 있어서는 충(忠)이라는 도리와 조우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효(孝)라는 도리와 조우하며, 거처할 때는 공손함을,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함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충실함(忠)을 (만나고),<ref>논어 19:19</ref> 나아가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ref>논어15:5</ref> 어딜 가든 이 도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게 된 것이다. 만약 가장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못하면 보는 것이 참되지 않아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악하게 되니, 이는 마치 두 사람이 따로 일하는 셈이다. 겉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 있고, 속으로 '나는 나쁜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다. 이제 그 좋지 않은 사람을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성인의 책을 배우면서 행실은 시정잡배일 수 있나! 대체 무슨 도리를 탐구했다는 말인가! 이제 격물과 궁리를 말할 때, 반드시 이 도리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해야 하니, 구습을 곧바로 깨끗하게 벗어나는 것은 (생각처럼) 잘 안 된다. 처음에는 우선 이 도리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저 옳지 않은 일을 역시 감히 하려고 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분명해지면서 (그런 옳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해져서 (옳지 않은 일을 전혀) 하지 않아서 구습을 모두 잊게 된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37 不是要格那物來長我聰明見識了, 方去理會, 自是不得不理會.
''' '저 사물을 격물해서 나의 총명과 견식을 키워야겠다'하고난 다음에(方) 헤아리는(理會) 것이 아니다. 도저히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헤아리는(理會) 것이다.'''
* 15:38 大學說一“格物”在裏, 卻不言其所格者如何. 學者欲見下工夫處, 但看孟子便得. 如說仁義禮智, 便窮到惻隱·羞惡·辭遜·是非之心; 說好貨好色好勇, 便窮到太王公劉文武; 說古今之樂, 便窮到與民同樂處; 說性, 便格到纖毫未動處. 這便見得他孟子胸中無一毫私意蔽窒得也, 故其知識包宇宙, 大無不該, 細無不燭! 道夫(60이후).
''' '대학'에서 '격물'을 언급하지만 격물하는 양상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이가 노력을 기울일 곳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맹자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인의예지라면 곧바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깊이 탐구한다.<ref>맹자 1A:7</ref>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고 용맹을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곧바로 태왕, 공유, 문왕, 무왕의 사례를 깊이 탐구한다.<ref>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맹자 1B:5, 용맹을 좋아하는 일은 1B:3을 보라.</ref> 고금의 음악의 경우라면 곧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同樂) 측면을 깊이 탐구한다.<ref>맹자 1B:1</ref> 본성(性)을 말할 때는 털끝만큼도 움직임이 없는 지점(纖毫未動)<ref>주희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발동하기 전의 상태(未發)를 말한다.</ref>을 깊이 탐구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 어떤 사의(私意)도 맹자의 가슴 속을 가리거나 막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지식(知識)은 우주(宇宙)를 포괄한다. 큰다고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고, 작다고 비추지도 않는 것도 없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39 居甫問: “格物窮理, 但理自有可以彼此者.”
'''거보(居甫)의 질문: 사물을 탐구하고 이치를 파고들지만, 다만 이치 중에는 본래 이쪽저쪽 상황을 보고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曰: “不必如此看. 理有正, 有權. 今學者且須理會正. 如娶妻必告父母, 學者所當守. 至於不告而娶, 自是不是, 到此處別理會. 如事君匡救其惡, 是正理. 伊川說‘納約自牖’, 又是一等. 今於此一段未分明, 卻先爲彼引走. 如孔子說‘危行言孫’, 當春秋時亦自如此. 今不理會正當處, 纔見聖人書中有此語, 便要守定不移, 駸駸必至於行孫矣. 此等風俗, 浙江甚盛, 殊可慮!” 可學(62때).
'''대답: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치에는 정(正)<ref>원칙이다.</ref>이 있고, 권(權)<ref>상황윤리이다.</ref>이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는 우선 정(正)을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맞이할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한다'는 것은<ref>맹자 5A:2</ref> 배우는 이가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에 관해서는 따로 헤아려야 한다. 군주를 섬길 때는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바로잡아 제지하는(匡救其惡)것이 정리(正理)이다.<ref>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15:18 참조.</ref> 하지만 이천(伊川)이 '약속을 창문으로 들인다'<ref>주역 감괘 육사효. 약(約)은 상대방을 속박하는 말이다. 이러이러한 것은 하지 않고 저러저러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등의 내용으로 군주를 제약하는 말이다. 문과 창문은 각각 큰길과 샛길을 뜻한다. 군주에게 윤리적 처방을 들일 때 정당하게 하는 것이 물론 좋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회를 틈타 측면으로 집어넣는 유도리를 발휘하는 게 좋다는 의미이다.</ref>에 대해 해설한 내용은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쪽 부분을<ref>원칙을 말한다.</ref> 아직 분명히 알지 못했는데 저쪽 부분으로 먼저 끌려가서는 안 된다. 공자가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ref>논어 14:4. 위(危)는 높음, 손(孫)은 낮음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도 행실도 높게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이에 대하여 군자는 행실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없지만 무도한 상황에서 타협없이 말하면 위험하므로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ref>고 했는데, 춘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역시 당연히 이와 같다.<ref>주희는 이를 상황윤리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것을 '원칙'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처럼 풀었는데 적절하지 않다.</ref> 지금 정당(正當)한 곳은 헤아리지도 않고 성인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자마자 그것을 꽉 붙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점차 행실마저 타협하여 낮춰서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풍속이 절강(浙江)에서 매우 성행하니 큰 걱정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40 問: “格物之義, 固要就一事一物上窮格. 然如呂氏楊氏所發明大本處, 學者亦須兼考.”
'''질문: '격물'이란 물론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깊이 파고들라는(窮格) 것입니다. 하지만 여씨(呂氏)<ref>이정의 제자 여대림이다.</ref>와 양씨(楊氏)<ref>이정의 제자 양시.</ref>가 밝힌 큰 근본(大本)이 되는 지점<ref> 여대림이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의 영역에서 '중(中)'을 찾아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구중(求中)'론이라고 한다. '큰 근본이 되는 지점(大本處)'이란 중용의 한 구절에서 '중(中)'을 천하의 큰 근본이라고 지칭한 것을 암시한다. 이정유서 18:82를 보라. 양시 역시 마음의 내면에 초월적 영역을 설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깊이 침잠한 끝에 극적으로 어떠한 경지로 도약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주희가 중용혹문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ref>도 배우는 이라면 역시 아울러 탐구해야 합니다.
曰: “識得, 卽事事物物上便有大本. 不知大本, 是不曾窮得也. 若只說大本, 便是釋老之學.” 德明(44이후).
'''대답: (도리를) 알고 나면(識得)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 큰 근본(大本)이 있다.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큰 근본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만약 오직 큰 근본만 말할 뿐이라면 그것은 석씨와 노자의 학문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41 致知·格物, 只是一箇. 道夫(60이후).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은 하나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以下致知·格物.>
'''<이 아래로 치지와 격물에 관한 조목>
* 15:42 “致知·格物, 一胯底事.”
'''치지와 격물은 하나(一胯)<ref>과(胯)는 개(個)와 같다. 수량사이다.</ref>이다.
先生擧左右指來比並. 泳(66때).
선생이 좌우 손가락을 들어 병렬시켰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43 格物, 是逐物格將去; 致知, 則是推得漸廣. 賜(66이후).
'''격물은 각각의 사물을 하나하나 탐구(格)해나가는 것이고, 치지는 점차 넓게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다.
사(賜)의 기록. (66세 이후)
* 15:44 剡伯問格物·致知.
'''섬백(剡伯)<ref>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어류 및 여러 다른 문헌에서 공섬(龔剡), 공섬백(龔剡伯), 공염(龔郯), 공염백(龔郯伯)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ef>이 격물과 치지에 관하여 질문.
曰: “格物, 是物物上窮其至理; 致知, 是吾心無所不知. 格物, 是零細說; 致知, 是全體說.” 時擧(64이후).
'''대답: 격물은 각각의 사물에서 그 지극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내 마음에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격물은 구체적인 설명이고, 치지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 15:45 張仁叟問致知·格物.
'''장인수(張仁叟)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物莫不有理, 人莫不有知. 如孩提之童, 知愛其親; 及其長也, 知敬其兄; 以至於飢則知求食, 渴則知求飮, 是莫不有知也. 但所知者止於大略, 而不能推致其知以至於極耳. 致之爲義, 如以手推送去之義. 凡經傳中云致者, 其義皆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이치가 없는 사물도 없고 앎이 없는 사람도 없다.<ref>대학장구 격물보망장을 참조하라.</ref> 예컨대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ref>맹자 7A:15. 어류 14:92를 참조하라.</ref>같은 경우부터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을줄 알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을줄 아는'<ref>공자가어 왕언해</ref>데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앎이다. 단지 아는 것이 대략적인 데 그쳐서 그 앎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도록 밀고 나갈(推致) 수 없을 뿐이다. '치(致)'는 손으로 밀어낸다(推送)는 뜻이다. 경전에서 '치'라고 한 곳들은 그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5:46 問: “知如何致? 物如何格?”
'''질문: 지(知)는 어떻게 지극히(致) 하며, 물(物)은 어떻게 탐구(格)합니까?'''
曰: “‘孩提之童, 莫不知愛其親; 及其長也, 莫不知敬其兄.’ 人皆有是知, 而不能極盡其知者, 人欲害之也. 故學者必須先克人欲以致其知, 則無不明矣. ‘致’字, 如推開去. 譬如暗室中見些子明處, 便尋從此明處去. 忽然出到外面, 見得大小大明. 人之致知, 亦如此也. 格物是‘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之類. 事事物物, 各有箇至極之處. 所謂‘止’者, 卽至極之處也. 然須是極盡其理, 方是可止之地. 若得八分, 猶有二分未盡, 也不是. 須是極盡, 方得.”
'''대답: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ref>맹자 7A:15. 직전 조목 참조.</ref>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앎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한까지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욕(人欲)이 (그 앎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반드시 먼저 인욕을 극복하여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하니, 그렇게하면 밝지 않은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젖히는(推開) 것을 의미한다. 마치 암실에서 미약한 빛을 발견하여 그 빛을 따라 (출구를) 찾아 나가다 보면 홀연히 암실 밖으로 나와서 이토록(大小) 큰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앎을 지극히하는 것도 이와 같다. 격물은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머문다' 같은 것이다.<ref>임금과 신하가 '물'이고 인과 경이 그 물에 내재한 도리이다. 사사물물에서 그것에 내재한 도리를 찾는 것이 격물이다. 14:104 참조.</ref> 사태와 사물마다 각각 지극한 지점이 있다. 이른바 '멈춘다(止)'는 것은 바로 그 지극한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치를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 비로소 멈출 만한 곳이 된다. 만약 80%는 되었는데 20%가 미진하다면, 그건 (멈출 지점이) 아니다. 반드시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만 한다.
又曰: “知在我, 理在物.” 祖道(68때).
'''다시 대답: 앎은 나에게 있고, 이치는 사물에 있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47 黃去私問致知·格物.
'''황거사(黃去私)<ref>황의강의 형 황의용(黃義勇).</ref>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致’字有推出之意, 前輩用‘致’字多如此. 人誰無知? 爲子知孝, 爲父知慈. 只是知不盡, 須是要知得透底. 且如一穴之光, 也喚做光, 然逐旋開剗得大, 則其光愈大. 物皆有理, 人亦知其理, 如當慈孝之類, 只是格不盡. 但物格於彼, 則知盡於此矣.”
'''대답: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낸다(推出)는 뜻이 있다. 선배 학자들이 '치'자를 이런 의미로 쓴 경우가 많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앎이 없겠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할 줄 알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할 줄 안다. 단지 이 앎이 미진할 뿐이니 반드시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벼파서(開剗)<ref>개잔(開剗)은 작은 구멍을 날카로운 물건으로 깎고 파내어 크게 만드는 것이다.</ref> 점점[逐旋] 크게 만들면 그 빛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고 사람들도 그 이치를 알고 있으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애하고 효도해야 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그저 탐구(格)가 미진할 뿐이다. 단, 저쪽에서 사물을 깊이 탐구하기만 하면 앎은 이쪽에서 남김없이 완전해지게 된다.'''
又云: “知得此理盡, 則此箇意便實. 若有知未透處, 這裏面便黑了.” 人傑(51이후).
'''다시 대답: 이 이치를 완전히 다 알게 되면 이 의지(意)<ref>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가 진실하게 된다. 만약 앎에 아직 철저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이 안쪽이<ref>의지(意)를 말한다.</ref> 캄캄해져버린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48 劉圻父說格物·致知.
'''유기부(劉圻父)<ref>이름은 자환(自寰)이다.</ref>가 격물과 치지를 설명했다.
曰: “他所以下‘格’字·‘致’字者, 皆是爲自家元有是物, 但爲他物所蔽耳. 而今便要從那知處推開去, 是因其所已知而推之, 以至於無所不知也.” 義剛(64이후).
'''대답: 대학에서 '격(格)'과 '치(致)'라는 글자를 쓴 이유는, 모든 것이 본래 자신의 소유이지만 외물에 의해 가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아는 곳에서부터 밀어 젖혀 나가야 하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고 나가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49 郭叔雲問: “爲學之初, 在乎格物. 物物有理, 第恐氣稟昏愚, 不能格至其理.”
'''곽숙운(郭叔雲)의 질문: 배움의 시작은 격물에 있습니다. 사물마다 이치를 가지고 있지만 (저의) 기질(氣稟)이 어리석고 어두워 그 이치를 다 탐구해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曰: “人箇箇有知, 不成都無知, 但不能推而致之耳. 格物理至徹底處.”
'''대답: 사람은 누구나 앎을 가지고 있다. 설마하니 아무것도 모르겠는가? 단지 밀고 나가서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격물은<ref>일역판은 고정연원록 하권 20의 구문을 근거로 格物理至徹底處 앞에 格物是 세 글자를 더하여 번역했다.</ref> 사물의 이치를 철저한 지점까지 탐구하는 것이다. '''
又云: “致知·格物, 只是一事, 非是今日格物, 明日又致知. 格物, 以理言也; 致知, 以心言也.” 恪(64때).
'''또 말함: 치지와 격물은 하나일 뿐이니 오늘 격물하고 내일 다시 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파악의 대상인) 이치 쪽에서 말한 것이고, 치지는 (파악의 주체인) 마음 쪽에서 말한 것이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50 問: “致知, 是欲於事理無所不知; 格物, 是格其所以然之故. 此意通否?”
'''질문: (일설에 의하면)<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자리에 '일설(一說)' 두 글자가 있다.</ref> 치지는 사태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고, 격물은 (해당 사태와 사물이) 지금과 같이 된 이유(所以然之故)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통합니까?'''
曰: “不須如此說. 只是推極我所知, 須要就那事物上理會. 致知, 是自我而言; 格物, 是就物而言. 若不格物, 何緣得知. 而今人也有推極其知者, 卻只泛泛然竭其心思, 都不就事物上窮究. 如此, 則終無所止.”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이미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려면 반드시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치지는 내쪽에서 말한 것이고 격물은 사물쪽에서 말한 것이다. 격물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앎을 얻겠나? 지금 사람들 중에서도 앎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막연히 자기 심사(心思)를 고갈시킬 뿐, 전혀 실제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끝내 멈출 곳(所止)<ref>사람이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지극히 선한, 최선의 지점을 말한다.</ref>이 없다.'''
義剛曰: “只是說所以致知, 必在格物.”
'''나(義剛)의 말: 그래서 '앎을 지극히하는(致知) 것은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는(格物) 데에 달려있다'<ref>대학 본문의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15:140을 참조하라.</ref>고 말했습니다.'''
曰: “正是如此. 若是極其所知去推究那事物, 則我方能有所知.” 義剛(64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미) 아는 것을 지극히하여 저 사태와 사물들을 미루어 탐구할 때 자신에게 비로소 앎이 생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1 致知·格物, 固是合下工夫, 到後亦離這意思不得. 學者要緊在求其放心. 若收拾得此心存在, 已自看得七八分了. 如此, 則本領處是非善惡, 已自分曉. 惟是到那變處方難處, 到那裏便用子細硏究. 若那分曉底道理卻不難見, 只是學者見不親切, 故信不及, 如漆雕開所謂“吾斯之未能信”. 若見得親切, 自然信得及. 看得大學了, 閒時把史傳來看, 見得古人所以處事變處, 儘有短長. 賀孫(62이후).
'''치지와 격물은 물론 (배움의) 처음부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나중에가서도 이 (격물치지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要緊)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求其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따라서 주희의 경학체계 안에서 구방심 공부는 '거경(居敬)' 공부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류 59:156, 160 등을 보면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 제자들이 이미 질문하고 있다. 곽신환 역주 주자언론동이고(2002)의 137쪽을 보라. 高海波, "试论朱子对《孟子》「求放心」句的诠释"(2020)을 참조하라.</ref>. 만약 이 마음을 잘 수습하여 보존할 수 있다면 이미 70-80%는 (도리를) 이해한 것이다. 이와 같다면, 근본적인 지점(本領處)에서의 시비와 선악에 대한 이해가 이미 밝은 것이다. 오직 변칙적인 상황의 경우 대처하기 어려울 뿐이니, 그런 케이스들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명확한 도리 같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단지 (그 도리에 대하여) 배우는 이의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칠조개(漆雕開)가 '저는 이것을 아직 믿지 못하겠습니다'<ref>논어 5:5</ref>고 한 것과 같다.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하면 자연히 믿어진다. '대학'을 다 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역사서의 인물전기를 읽어보면 옛사람들이 변칙적인 사태에 대처한 것에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현저함을 볼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52 人之一心, 本自光明. 常提撕他起, 莫爲物欲所蔽, 便將這箇做本領, 然後去格物·致知. 如大學中條目, 便是材料. 聖人敎人, 將許多材料來修治平<ref>조선고사본에서는 '治平'를 '持'로 적었다.</ref>此心, 令常常光明耳. <按:“修治”字疑.> 伊川云: “我使他思時便思, 如此方好". 倘臨事不醒, 只爭一晌時, 便爲他引去. 且如我兩眼光𪰻𪰻, 又白日裏在大路上行, 如何會被別人引去草中! 只是我自昏睡, 或暗地裏行, 便被別人胡亂引去耳. 但只要自家常醒得他做主宰, 出乎萬物之上, 物來便應. 易理會底, 便理會得; 難理會底, 思量久之也理會得. 若難理會底便理會不得, 是此心尙昏未明, 便用提醒他. 驤<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ref>(60·65때).
'''사람의 마음은 본래 광명하다. 항상 그놈을 일깨워(提撕) 물욕에 가리지 않도록 하여 이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은 후에 격물과 치지를 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의 조목들은 재료이다. 성인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이 마음을 평안히 다스려(修治平) 항상 빛나게 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여정덕의 안(按):“수치(修治)”두 글자는 의심스럽다>.<ref>이부분의 교감은 의견이 갈린다. 현행본의 편자인 여정덕은 이 두 글자를 빼고 '평(平)' 하나만 남기는 쪽을 추천했다. 홍계희가 편집한 조선정판본은 '평(平)'을 작은 글자로 썼다. 이 경우 '평'은 그 바로 앞의 '치(治)'를 평성(平聲)으로 읽으라는 음주(音注)가 된다. 이의철의 고문해의는 조선정판본의 교감을 비판하였으나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주자어류휘교 쪽은 성화본을 추종하여 '평'을 주석으로 보았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을 따라 '수치평'을 '수지(修持)'로 바꿔서 해석했다. 어느쪽이 옳은지 알 수 없기에 여기서는 우선 저본 그대로 글자를 하나하나 풀어두었다.</ref> 이천(伊川)이 말하길, '내가 내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였을 때 (내 마음이) 생각을 하는 것, 이렇게 되어야 좋다'<ref>이정유서 18:85. 이정유서와 비교해보면 글자에 다소 출입이 있다. 정이는 여기서 나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상태와 내 통제에 따라 마음이 활발히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안히 안정되기도 하는 상태를 비교하고 있다.</ref> 사태에 임하여 일을 처리할 적에 깨어있지 않으면 순식간에(只爭一晌時)<ref>晌은 수량사이다.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爭은 다투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어 = 순식간에.</ref> 저쪽에게 이끌려가버린다.<ref>내가 사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나를 다루게 된다는 뜻이다.</ref> 예컨대 내가 두 눈을 부릅떠 안광이 번쩍번쩍하고 더군다나 백주대낮에 큰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풀숲으로 끌고갈 수 있겠나? 나 자신도 혼침하고 또 어두운 곳을 가고 있으면 남에게 아무렇게나 끌려 가버리고 만다. 그저 스스로 늘 자기 마음을 깨워서 관리자[主宰]로 삼아, 만물의 바깥에 있으면서 사물이 오면 바로 대응하도록 할 뿐이다. 헤아리기 쉬운 것은 바로 헤아릴 수 있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도 심사숙고하면 헤아릴 수 있다. 헤아리기 어려운 것을 헤아릴 수 없다면 이는 이 마음이 아직 어두워 밝지 못해서이니 그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양(驤)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 15:53 問“致知在格物”.
'''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에 관한 질문.
曰: “知者, 吾自有此知. 此心虛明廣大, 無所不知, 要當極其至耳. 今學者豈無一斑半點, 只是爲利欲所昏, 不曾致其知. 孟子所謂四端, 此四者在人心, 發見於外. 吾友還曾平日的見其有此心, 須是見得分明, 則知可致. 今有此心而不能致, 臨事則昏惑, 有事則膠擾, 百種病根皆自此生.”
'''대답: 지(知)란, 우리에게 본래 이 앎<ref>도덕적인 앎을 말한다.</ref>이 있다. 우리 마음은 허명(虛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할 뿐이다.<ref>'요당(要當)'은 '...해야한다.'</ref> 오늘날 배우는 이에게 어찌 한 조각의(一斑半點) 앎도 없겠나? 단지 이익과 욕심에 가려져서 그 앎을 지극히한 적이 없을 뿐이다. 맹자가 이른바 사단(四端)이란, 이 네 가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서 밖으로 발현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吾友)<ref>주희는 종종 제자들을 이렇게 불렀다.</ref>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 마음<ref>여기서는 사단을 말한다. 사단 역시 모두 '....한 마음(心)'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ref>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본[的見] 적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사단을) 분명히 보아야만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 지금 이런 마음이 있는데도 (앎을) 지극히하지 못하여 일을 처리할 때는 흐리멍텅하고 큰 사건이 생기면 허둥지둥하는 것이니, 온갖 병폐의 뿌리가 모두 여기에서 생겨난다.'''
又問: “凡日用之間作事接人, 皆是格物窮理?”
'''재질문: 일상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모두 격물궁리입니까?
曰: “亦須知得要本. 若不知得, 只是作事, 只是接人, 何處爲窮理!”
'''대답: 역시 근본(要本)을 알아야 한다.<ref>대학 전 4장에서 공자의 송사판결을 두고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한다(此謂知本)'라고 한 것을 참조하라.</ref> 근본을 알지 못하면 그냥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 것일 뿐이다. 대체 어디가 궁리가 되겠나?'''
* 15:54 致知分數多. 如博學·審問·愼思·明辨, 四者皆致知, 只力行一件是行. 言致, 言格, 是要見得到盡處. 若理有未格處, 是於知之之體尙有未盡. 格物不獨是仁孝慈敬信五者, 此只是大約說耳. 且如說父子, 須更有母在, 更有夫婦在. 凡萬物萬事之理皆要窮. 但窮到底, 無復餘蘊, 方是格物. 大雅(49이후).
''' '치지'는 비중(分數)이 크다. 예를 들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이 네 가지 모두 치지이며, 역행(力行) 하나만 행(行)에 관한 것이다.<ref>중용 제 20장에 나오는 공부의 다섯 항목이다. 앞의 네 가지(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고)는 모두 이지적인 행위, 역행 하나만 몸소 실천하는 행위이다. 굳이 계산하자면 '치지'가 전체 공부의 80%를 차지하는 셈이다.</ref> '지극히하다(致)'니 '탐구하다(格)'니 하는 것은 끝까지[盡處]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어떤) 이치에 대항여 (끝까지) 탐구하지(格) 못한 점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의 본질(知之之體)에 있어 미진함이 있는 것이다. 격물은 인(仁), 효(孝), 자(慈), 경(敬), 신(信) 다섯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ref>대학 전3장에서 열거한 다섯 덕목이다.</ref> 이는 대략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부자(父子)'라고 말하면 그 안에는 필시 어머니도 포함되고 부부도 포함된다.<ref>부친과 아들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는(e.g. 부자유친) 모친과 자녀, 부친과 모친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도 포함한다는 뜻이다.</ref> 무릇 모든 사태와 사물의 이치는 모조리 탐구해야(窮) 한다. 바닥까지 파고들어(窮) 남은 것이 없어야만 '격물(格物)'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55 致知·格物, 便是“志於道”. “據於德”, 卻是討得箇匡格子. 義剛(64이후).
''' 치지와 격물은 바로 '도에 뜻을 두었다'이다. '덕을 굳게 지켰다'<ref>이상 논어 7:6.</ref>는 테두리(匡格子)<ref>일역판에서는 광격(匡格)을 광곽(匡郭)과 같은 것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현대중국어에서 광격(框格)이 네모난 프레임, 격자 등을 의미하므로 광격자는 그냥 그대로 테두리나 프레임 정도로 풀이하면 된다. '격(格)'을 '곽(郭)'으로 바꿔서 풀이하는 것은 지나치다.</ref>를 마련한(討得)<ref>토(討)는 물건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올 수도 있고 어디서 주워올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없던 것을 찾아서 가져왔으면 모두 '토'이다. 14:161을 참조하라.</ref> 것이다.<ref>덕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택할 수 있는 행위의 선택지들 가운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한 후 해야 할 것의 영역 안에 꾸준히 머무르며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테두리'로 비유한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6 格物·致知, 是極粗底事; “天命之謂性”, 是極精底事. 但致知·格物, 便是那“天命之謂性”底事. 下等事, 便是上等工夫. 義剛(64이후).
'''격물과 치지는 매우 거친 일이고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는 것은 매우 정밀한 일이다.<ref>거친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 일상의 공간에 속한다는 뜻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질료적 감각이 없는 형이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ref> 그러나 치지와 격물이 곧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의 일이다. 하등의 일이 곧 상등의 공부(工夫)이다.<ref>형이하의 세계를 관찰하고 파고들어 그것에 내재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그러므로 하등의 세계에서 상등의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7 曹又問致知·格物.
'''조(曹)<ref>아마도 조숙원(曹叔遠)인 듯하다. 자는 기원(器遠).</ref>가 다시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此心愛物, 是我之仁; 此心要愛物, 是我之義; 若能分別此事之是, 此事之非, 是我之智; 若能別尊卑上下之分, 是我之禮. 以至於萬物萬事<ref>조선고사본에서는 '萬事'가 없다.</ref>, 皆不出此四箇道理. 其實只是一箇心, 一箇根柢出來抽枝長葉.”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이 대상(物)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인(仁)이고, 이 마음이 대상을 사랑해야만 한다 것은 나의 의(義)이다. 만약 이 일은 옳고 이 일은 그르다고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지(智)이다. 만약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분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예(禮)이다. 모든 사태와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네 가지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저 이 한 마음일 뿐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가지가 뻗고 잎이 자라는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5:58 蔣端夫問: “‘致知在格物.’ 胸中有見, 然後於理無不見.”
'''장단부(蔣端夫)<ref>인적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61:81에도 등장한다.</ref>의 질문: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의 경우, (먼저) 가슴 속에 본 것이 있은 후에야 보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됩니다.
曰: “胸中如何便有所見? 譬如嬰兒學行, 今日學步, 明日又步, 積習旣久, 方能行. 天地萬物莫不有理. 手有手之理, 足有足之理, 手足若不擧行, 安能盡其理! 格物者, 欲究極其物之理, 使無不盡, 然後我之知無所不至. 物理卽道理, 天下初無二理.” 震(65때).
'''대답: 가슴 속에 어떻게 바로 본 것이 있게 되는가? 아기가 걷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오늘 걸음을 배우고 내일 또 걸어서 습관이 오래 쌓인 후에야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천지 만물에는 이치 없는 것이 없다. 손에는 손의 이치가 있고, 발에는 발의 이치가 있다.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치를 다할 수 있겠나! 격물이란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남김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나의 앎이 다다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사물의 이치(物理)가 바로 도덕적 이치(道理)이니, 천하에 애초에 두 가지 이치가 없다.<ref>물리와 도리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각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다.</ref>'''
진(震)의 기록. (65세)
* 15:59 問: “知至·意誠, 求知之道, 必須存神索至, 不思則不得誠. 是否?”
'''질문: '지지(知至)'와 '의성(意誠)'<ref>팔조목 가운데 치지와 성의를 수련한 결과를 말한다. 앎을 지극히 하는 공부를 하여 앎이 지극해진 상태,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하여 의지가 진실해진 상태이다. 의지에 관해서는 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의 경우, 앎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정신을 보존하여 지극한 지점을 찾아야 하고(存神索至)<ref>양웅의 법언(法言) 문신(問神)편의 한 구절이다. 색(索)은 수색하다, 지(至)는 지극한 지점이다.</ref>, 사려하지(思) 않으면 진실해질 수 없습니다. 맞습니까?
曰: “致知·格物, 亦何消如此說. 所謂格物, 只是眼前處置事物, 酌其輕重, 究極其當處, 便是, 亦安用存神索至! 只如吾胸中所見, 一物有十分道理, 若只見三二分, 便是見不盡. 須是推來推去, 要見盡十分, 方是格物. 旣見盡十分, 便是知止<ref>조선정판본에서는 '止'를 '至'로 썼다.</ref>.” 震(65때).
'''대답: 치지와 격물을 어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겠나. 이른바 격물이란 단지 눈앞에서 사태와 사물을 처리하면서 각각의 경중을 따져 각각의 마땅한 지점이 어디인지 깊이 탐구하는 것일 뿐이다. '존신색지(存神索至)'를 또 어디다 쓰겠는가? 예를 들어 자기 가슴 속에서 이해한 것으로 말하자면, 한 사물에 100%의 이치가 있는데 그 중 20~30%를 이해했을 뿐이라면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꾸준히 밀고 나가서 100%를 모두 이해해야 비로소 격물이다. 100%를 모두 이해하고 나면 '멈추어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안(知止)' 것<ref>조선정판본을 따르자면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知至)'이다. 애초에 질문자의 질문이 지지(知至)였음을 감안하면 조선정판본의 기록도 말이 된다.</ref>이다.'''
진(震)의 기록. (65세)
* 15:60 或問: “致知須要誠. 旣是誠了, 如何又說誠意?" <ref>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는 이 자리에 '왈(曰)'자가 있어서 여기서부터 주희의 대답임을 표시하였다. 지록에서는 '왈' 대신 '선생운(先生云)'이라고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치지(致知)'를 하려면 진실해야(誠)합니다. 그런데, 이미 (치지의 과정에서) 진실해졌는데 왜 다시 '성의(誠意)'를 말합니까?
"致知上本無‘誠’字, 如何强安排‘誠’字在上面說? 爲學之始, 須在致知. 不致其知, 如何知得! 欲致其知, 須是格物. 格物云者, 要窮到九分九釐以上, 方是格.” 謙(65때).
'''(대답): (대학에서) '치지' 앞에는 본래 '성(誠)'자가 없는데 어째서 억지로 '성'자를 앞에다 배치하고 말하는가? 배움의 시작은 반드시 치지에 달려있다. 그 앎을 지극히하지(致其知) 못하면 어떻게 (도리를) 알 수 있겠나(知得)? 앎을 지극히하려면 반드시 격물해야 한다. 격물이란, (도리를) 99%<ref>'구분구리(九分九釐)'의 분과 리는 오늘날 '할푼리'라고 할 때의 푼과 리이다. 오늘날은 할이 1/10, 푼이 1/100, 리가 1/1000이지만 주희 당시에는 푼이 1/10, 리가 1/100이었다.</ref>이상 탐구해내야만 비로소 '격'이다.
겸(謙)의 기록. (65세)
* 15:61 若不格物·致知, 那箇誠意·正心, 方是捺在這裏, 不是自然. 若是格物·致知, 便自然不用强捺.
'''격물치지(格物致知)하지 않으면 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은 이 안쪽에[在這裏]<ref>어류의 많은 조목들에서 '在這裏'는 '이 안쪽', '내면' 등을 의미한다. 일역판은 미우라 쿠니오의 선행연구에 따라 이 표현을 단순한 강조표현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ref> 억지로 눌러두는(捺) 것이니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격물치지하면 자연히 억지로 누를 필요가 없다.'''<ref>예컨대,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도리의 경우, 왜 사랑해야 하는지 알아야(격물치지)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중단없이(성의정심)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어떠한 도리를 열심히 실천하려고만 한다면(격물치지 없는 성의정심) 이는 '억지로 눌러두는' 것에 불과하다.</ref>
* 15:62 元昭問: “致知·格物, 只作窮理說?”
'''원소(元昭)<ref>서림(徐琳)의 자(字)이다.</ref>의 질문: 치지와 격물을 그저 '이치를 탐구한다(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曰: “不是只作窮理說. 格物, 所以窮理.”
'''대답: 궁리(窮理)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궁리의 방법(所以)이다.<ref>격물은 구체적인 사태나 사물에 1)접근해서 2)자세히 관찰하며 생각하고 3)그러다 이치를 발견하고 4)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발견의 수준을 고도화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궁리(=이치를 탐구함)는 2번에서 4번까지의 의미로 쓰일 뿐 1번의 뉘앙스는 거의 없다. 주희는 '격물'이라는 말을 다소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한다. 1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4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고 3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1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는 식이다. 이 조목에서는 격물을 1번 뜻으로 사용했지만 15:59나 15:60에서는 4번 뜻을 강조하고 있다.</ref>'''
又問: “格物是格物與人. 知物與人之異, 然後可作工夫<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此意頗切當)'가 더 있다.</ref>.”
'''재질문: 격물이란 사물과 사람을 '격'하는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의 차이를 알고 나서야 힘써 노력(工夫)할 수 있습니다.<ref>격물을 1번~2번 정도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ref><ref>조선고사본을 따르자면 이 단락 전부가 인용이며 마지막에 '이 뜻이 꽤 타당합니다'라고 평가하는 형태가 된다.</ref>'''
曰: “若作致知在格物論, 只是胡說! 旣知人與物異後, 待作甚合殺? 格物, 是格盡此物. 如有一物, 凡十瓣, 已知五瓣, 尙有五瓣未知, 是爲不盡. 如一鏡焉, 一半明, 一半暗, 是一半不盡. 格盡物理, 則知盡. 如元昭所云, 物格·知至當如何說?”
'''대답: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 (는 대학의 원문)으로 논하자면, (방금 자네의 말은) 그저 헛소리(胡說)일 뿐이다. 사람과 사물이 다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장차(待) 어떻게(作甚) 마무리하려(合殺) 하는가?<ref>고문해의의 해석을 따랐다. 원소가 격물과 궁리(=치지)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게 설정한 것에 화가 난 주희가 '그런 식으로는 치지가 격물에 달려있다는 경문을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는 장차, '작심'은 어떻게, '합살'은 매조지함이다. 합살은 본래 악곡의 연주를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39:2에서 '如何合殺'이라고 말한 부분을 참조하라.</ref> 격물이란 이 사물을 남김없이 '격'하는 것이다.<ref>격물을 4번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ref>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 모두 열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조각은 알았지만 나머지 다섯 조각은 아직 알지 못한다면 이는 남김없이 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거울이 있는데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면 이는 절반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완전히 '격'하면 앎은 남김 없이 완전해진다. 자네(元昭)의 말과 같다면 '사물을 다 탐구한 뒤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知至)'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ref>직전 질문에서 원소는 '격'을 1~2번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물을 모두 '격'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앎이 지극해지지는 않는다. 주희는 격물을 4번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대학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격물의 완료가 곧바로 앎의 지극함을 의미한다.</ref>'''
子上問: “向見先生答江德功書如此說.”
'''나(子上)<ref>정가학(鄭可學)의 자이다. 조선고사본에 따라 본 조목의 기록자를 정가학으로 간주하고 이와 같이 번역했다.</ref>의 질문: 전에 선생님께서 강덕공(江德功)<ref>강묵(江默).</ref>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ref>회암집 권 44의 답강덕공 제 2서를 말한다. 此所謂‘格物而至於物, 則物理盡’者也. 物理皆盡, 則吾之知識廓然貫通, 無有蔽礙, 而意無不誠, 心無不正矣. 此大學本經之意, 而程子之說然也. 其宏綱實用, 固已洞然無可疑者 : 而微細之間, 主賓次第․文義訓詁詳密精當, 亦無一毫之不合. 今不深考, 而必欲訓致知以․窮理’, 則於主賓之分有所末安 : 知者吾心之知, 理者事物之理. 以此知彼, 自有主賓之辨, 不當以此字訓彼字也. 訓格物以‘接物’, 則於究極之功有所未明. 人莫不與物接, 但或徒接而不求其理, 或粗求而不究其極, 是以雖與物接, 而不熊知其理之所以然與其所當然也. 今曰一與物接而理無不窮, 則亦太輕易矣. 蓋特出於聞聲悟道․見色明心之餘論, 而非吾之所謂窮理者, 固未可同年而語也. 且考之他書, ‘格’字亦無訓‘接’者. 以義理言之則不通, 以訓詁考之則不合, 以功用求之則又無可下手之實地, 竊意聖人之言必不如是之差殊疎略, 以病後世之學者也.</ref>
曰: “渠如何說, 已忘卻.”
'''대답: 그가 뭐라고 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子上云: “渠作接物.”
'''내(子上)가 말함: 그는 (격물을) '접물(接物)'로 풀었습니다.<ref>격물을 1번 뜻으로 푼 것이다.</ref>
曰: “又更錯.”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기록자를 '可學'으로 적시하고 있다.</ref>
'''대답: 더더욱 틀렸구나.
* 15:63 陳<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글자가 없다.</ref>問: “大學次序, 在聖人言之, 合下便都能如此, 還亦須從致知格物做起? 但他義理昭明, 做得來恐易<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耶'가 더 있다.</ref>.”
'''진(陳)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 순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시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그래도 성인은 의리(義理)에 매우 밝으니 (격물치지)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曰: “也如此學. 只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易'이 더 있다.</ref>聖人合下體段已具<ref>조선고사본은 '具'를 '其'로 썼다.</ref>, 義理都曉得, 略略恁地<ref>조선고사본은 '略略恁地'가 없고 '但'이 있다.</ref>勘驗一過. 其實大本處都盡了, 不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用'을 '要'로 썼다.</ref>學, 只是學那沒<ref>조선고사본에서는 '沒'을 '不'로 썼다.</ref>緊要底. 如中庸言: ‘及其至也, 雖聖人有所不知不能焉.’ 人多以至爲道之精妙處. 若是道之精妙處有所不知不能, 便與庸人無異, 何足以爲聖人! 這至, 只是道之盡處, 所不知不能, 是沒緊要底事. 他大本大根元無欠闕, 只是古今事變, 禮樂制度, 便也須學.” 寅. <ref>기록자명의 경우 조선고사본은 淳, 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서는 '㝢',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寅'이다.</ref>
'''대답: (성인) 역시 그렇게 배운다. 다만 성인은 애초에 뼈대(體段)<ref>디테일은 몰라도 구조적 측면에서는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비근한 번역어는 아마도 '와꾸'일 것이다.</ref>가 이미 갖춰져 있고 의리(義理)에도 모두 밝으니 대략적으로 그렇게 한 번 점검해보는 것이다. 사실, 큰 근본이 이미 다 되었으므로 더 배울 필요가 없다. 그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는 것 뿐이다. '중용'에서 말하길,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ref>중용 제12장.</ref>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부분'을 도(道)의 정묘(精妙)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도의 정묘한 지점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지극한 부분'은 단지 도를 남김없이 다 한 지점이요,<ref>주희는 이 '지극'을 문제의 핵심부나 산의 정상처럼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나중에 나오는 물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것들로 파악했다. 63:60을 참조하라.</ref>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일 뿐이다. 성인은 큰 근본과 뿌리에서는 부족함이 없으나, 고금(古今)의 사변(事變), 예악제도(禮樂制度)는 역시 배워야 한다.'''
인(寅)의 기록.
* 15:64 子善問物格.
'''자선(子善)<ref>반시거의 자(字)이다.</ref>이 '물격(物格)'<ref>격물이 완성된 결과가 물격이다.</ref>에 관하여 질문함.
曰: “物格是要得外面無不盡, 裏面亦淸徹無不盡, 方是不走作.” 恪(64때). <以下物格.>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 여정덕이 붙인 주석일 것이다. 조선정판본에서는 물격을 '격물(格物)'이라고 적고 있어 다른 모든 판본과 다르다.</ref>
'''대답: 사물이 '격'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바깥쪽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안쪽으로도 역시 맑고 투명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여야 비로소 (마음이) 달아나지 않게 된다.<ref>바깥쪽, 안쪽, 달아남 등의 키워드는 15:28, 66, 67, 69에서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15:66을 참고하라.</ref>
각(恪)의 기록. (64세)
<以下物格.>
'''<이 아래로 물격(物格)에 관한 조목들>
* 15:65 上而無極·太極, 下而至於一草·一木·一昆蟲之微, 亦各有理. 一書不讀, 則闕了一書道理; 一事不窮, 則闕了一事道理; 一物不格, 則闕了一物道理. 須著逐一件與他理會過. 道夫(60이후).
'''위로는 무극(無極)인 태극(太極)<ref>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첫 구문이다. 주희는 이 부분을 '극 없는 위대한 극'으로 풀었다. 태극은 세계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이치(理)인데, 그것이 이치라는 것은 형체와 질감 없이 순전히 이론적인 존재, 곧 형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태극의 이러한 형이상자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로 '무극'이다. 주희의 태극론에 관해서는 주광호(2020) 제 13장을 참조하라.</ref>에서부터 아래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미미한 곤충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이치가 있다. 책 한 권을 읽지 않으면 책 한 권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고, 사태 하나를 파고들지(窮) 않으면 사태 하나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며, 사물 하나를 탐구하지(格)하지 않으면 사물 하나어치의 도리를 결여하게 된다. 반드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헤아려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66 叔文問: “格物莫須用合內外否?”
'''숙문(叔文)의 질문: 격물 공부는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ref>이치를 알고자하는 '안쪽'의 노력(즉, 인식)과 여러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려는 '바깥쪽'의 노력(즉, 실천) 양쪽이 모두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15:28, 15:69를 참조하라. 아래 15:67도 같은 내용이다. '안쪽과 바깥쪽의 합일(合內外)'이라는 표현은 이정유서 11:18이 유명하다. '경건함으로 안쪽을 곧게하고 의로움으로 바깥쪽을 바르게 하니 안쪽과 바깥쪽을 합일하는 도리이다(敬以直內, 義以方外, 合內外之道也.)' </ref>
曰: “不須恁地說. 物格後, 他內外自然合. 蓋天下之事, 皆謂之物, 而物之所在, 莫不有理. 且如草木禽獸, 雖是至微至賤, 亦皆有理. 如所謂‘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自家知得這箇道理, 處之而各得其當便是. 且如鳥獸之情, 莫不好生而惡殺, 自家知得是恁地, 便須‘見其生不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方是. 要之, 今且自近以及遠, 由粗以至精.” 道夫(60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사물이 '격'되고 나면 안쪽과 바깥쪽은 자연히 합치한다. 대개 천하의 모든 사태를 통틀어 '사물(物)'이라고 부르는데, 사물이 있는 곳에 이치가 없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초목과 금수는 비록 지극히 미미하고 천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모두 이치가 있다. 예를 들어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ref>산의 남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ref>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ref>산의 북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ref>을 벤다'<ref>주례(周禮) 지관(地官) 산우(山虞)</ref>는 말 처럼, 자신이 이러저러한 도리를 알고서 각각의 사물을 처리하기를 각자에게 적합하고 알맞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본능적으로(情) 모두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자신이 (동물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ref>이것이 안쪽이고 가까운 곳이고 거친 것이다.</ref>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해야'<ref>이것이 바깥쪽이고 먼 곳이고 정밀한 것이다. 출전은 맹자 1A:7</ref> 한다. 요컨대, 이제 가까운 데에서부터 먼 곳으로, 거친 것에서부터 정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ref>이치를 알고자하는 노력의 끝에 이치를 알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치에 맞게 사태에 대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안쪽'은 독립변수, '바깥쪽'은 종속변수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寓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우(寓)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67 問: “格物須合內外始得?”
'''질문: 격물은 반드시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해야만 합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주광호(2020, 482)도 이 부분을 번역하고 유려하게 해설하고 있으니 참고하라.</ref>
曰: “他內外未嘗不合. 自家知得物之理如此, 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 便見合內外之理. 目前事事物物, 皆有至理. 如一草一木, 一禽一獸, 皆有理. 草木春生秋殺, 好生惡死. ‘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皆是順陰陽道理. <砥錄作“皆是自然底道理”.> 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 ‘見生不忍見死, 聞聲不忍食肉’, 非其時不伐一木, 不殺一獸, ‘不殺胎, 不殀夭, 不覆巢’, 此便是合內外之理.” 㝢(61이후).
'''대답: 안쪽과 바깥쪽은 애초에 합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자기 스스로 이 사물의 이치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면 그 이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사물에) 대응하게 되니, (이렇게 되었을 때 여기서 우리는)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를 보게 된다. 눈앞의 사태와 사물에는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에도 모두 이치가 있다. 초목은 봄에 나고 가을에 죽으며, (금수는)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을 베는'<ref>직전 조목 참조.</ref> 것은 모두 음양의 도리를 따른 것이다.<지(砥)의 기록에서는 "모두 자연스러운 도리이다."> 자기 스스로 만물이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아 한 몸임을(均氣同體),<ref>여대림(呂大臨)이 극기명(克己銘)에서 만물일체를 주장한 부분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비록 상호 독립된 개체인 것처럼 보여도 그 구성물질은 모두 우주로부터 골고루 나누어받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실은 한 몸(同體)이다.</ref> 알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ref>직전 조목 참조. 글자에는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하고, 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짐승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며, '새끼를 밴 것을 죽이지 않으며, 어린 개체를 죽이지 않으며, 둥지를 뒤엎지 않는다'.<ref>예기 왕제</ref> 이것이 바로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砥錄略.>
'''<지(砥)의 기록은 생략한다.>
* 15:68 “知至, 謂天下事物之理知無不到之謂. 若知一而不知二, 知大而不知細, 知高遠而不知幽深, 皆非知之至也. 要須四至八到, 無所不知, 乃謂至耳.”
'''지지(知至)란 천하의 사태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나의 앎이 이르지(到) 않은 경우가 없음을 말한다. 만약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고, 큰 것은 알지만 작은 것은 모르고, 고원(高遠)한 것은 알지만 심오한(幽深) 것은 모른다면, 이는 모두 '앎이 이른(知之至)'<ref>지지(知至)의 지(至)는 '지극하다'라고도 풀지만 '이르렀다'고도 풀이한다. 지극(至極)이라는 말부터가 극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니 사실 '지극하다'와 '이르렀다'는 서로 통한다. 본고에서는 문맥에 따라 두 번역어를 바꿔 쓰고 있다.</ref>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방팔방에 두루 이르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르렀다(=지극해졌다)'고 할 수 있다.
因指燈曰: “亦如燈燭在此, 而光照一室之內, 未嘗有一些不到也.” 履孫(65때).
이어서 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 등불이 여기 있으면서 그 빛이 실내 전체를 밝혀서 그 빛이 이르지(到) 않는 곳이 조금도 없는 것과 같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以下知至.>
'''<이 아래로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69 知至, 謂如親其所親, 長其所長, 而不能推之天下, 則是不能盡之於外; 欲親其所親, 欲長其所長, 而自家裏面有所不到, 則是不能盡之於內. 須是其外無不周, 內無不具, 方是知至. 履孫(65때).
'''지지(知至)로 말하자면, 어버이를 친애하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되<ref>맹자 4A:11</ref> 그것을 미루어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바깥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어버이를 친애하고 싶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고 싶은데 자기 안에서 (지극한 데까지)도달하지 못한 바가 있으면 이는 안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바깥쪽으로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안쪽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지지(知至)이다.<ref>안쪽과 바깥쪽에 관해서는 앞선 15:66과 67을 참조하라.</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70 子升問: “知止便是知至否?”
'''자승의 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가 곧 '앎이 지극해졌다(知至)' 아닙니까?
曰: “知止就事上說, 知至就心上說. 知止, 知事之所當止; 知至, 則心之知識無不盡.” 木之(68때).
'''대답: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지지(知止)는 각각의 사태에 있어서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아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에 미진한 데가 없는 것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5:71 知止, 就事上說; 知至, 就心上說, 擧其重而言. 閎祖(59이후).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각자 더 중점을 둔 부분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ref>직전 15:70을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72 問: “‘致知’之‘致’, ‘知至’之‘至’, 有何分別?”
'''질문: '치지(致知)'의 '치'와 '지지(知至)'의 '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ref>대학의 본문을 보면 팔조목을 순서대로 나열한 후 그것을 도치시켜서 역순으로 나열한다. 예컨대 격물(格物)에 대해서는 물격(物格)이라고 하고 성의(誠意)에 대해서는 의성(意誠)이라고 하는 식이다. 유독 치지(致知)만 지치(知致)가 아니라 지지(知至)라고 적혀있다.</ref>
曰: “上一‘致’字, 是推致, 方爲也. 下一‘至’字, 是已至.” <先著“至”字, 旁著“人”字, 爲“致”. 是人從旁推至.> 節(64이후).
'''대답: 위의 '치(致)'자는 밀고 나가는(推致) 것이니 곧 (어떤) 행위(爲)이다. 아래의 '지(至)'자는 이미 도달한(至) 것이다. <먼저 '지(至)'자를 쓰고 옆에 '인(人)'자를 쓰면 '치(致)'자가 된다. 옆에서 사람이 미는 것이다.><ref>이 파자해는 무척 이상하다. 우선 치(致)의 우변이 인(人)이라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에게 어떤 근거가 있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73 格物, 只是就事上理會; 知至, 便是此心透徹. 廣(65이후).
'''격물(格物)은 실제 사태에서 헤아리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이 마음이 완전히 투명한 것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5:74 格物, 便是下手處; 知至, 是知得也. 德明(44이후).
'''격물은 (공부에) 착수하는 곳이고, 지지(知至)는 (공부의 결과) 앎을 이룬 것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75 致知未至, 譬如一箇鐵片, 亦割得物事, 只是不如磨得芒刃十分利了, 一鍤便破. 若知得切了, 事事物物至面前, 莫不迎刃而解. 賀孫(62이후).
'''치지(致知) 공부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未至) 것은, 비유하자면, 쇠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물건을 자를 수야 있겠지만 100% 예리하게 갈아낸 날카로운 칼날(芒刃)이 단번에 (물건을) 파괴하는 것만은 못하다. 앎이 절실해지고나면 온갖 사태와 사물이 면전에 도달하자마자 모조리 포정(庖丁)의 칼에 닿은 소고기처럼 해체되어버린다(迎刃而解).<ref>14:80 참조.</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6 未知得至時, 一似捕龍蛇, 捉虎豹相似. 到知得至了, 卻恁地平平做將去, 然節次自有許多工夫. 到後來絜矩, 雖是自家所爲, 皆足以興起斯民. 又須是以天下之心審自家之心, 以自家之心審天下之心, 使之上下四面都平均齊一而後可. 賀孫(62이후).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知至) 못했을 때는 마치 용과 뱀과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는 것 같다가도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오히려 이렇게 평이하게 해 나가게 된다.<ref>고수나 달인의 도드라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일을 숨쉬듯이 평이하게 해낸다는 것이다. 온갖 애를 써가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괴인들보다 평범하게 주먹 한 번 휙 휘두르는 사이타마가 훨씬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 '원펀맨'의 장면들이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간의 훈련을 거치고 나온 손오공과 손오반이 초사이어인 상태를 평이하고 차분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묘사한 '드래곤볼'을 참조하라.</ref> 하지만 그 중간 단계들에는 자연히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나중에 혈구(絜矩) 부분에 이르면<ref>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ref>, 비록 자기 한 사람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백성들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다.<ref>전 10장. 윗사람이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고 그 도덕성이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아랫사람들 역시 윗사람과 똑같은 심사를 가진 사람이니만큼 금방 그것을 따라하여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 노인을 잘 모시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효심이 흥하고 ......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마음이 흥한다.'</ref> 또, 천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의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살펴서 상하사방이 모두 고르고 균일하게(平均齊一) 되어야만 한다.<ref>이 부분은 혈구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평균제일(平均齊一)'이라고 한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균질화라기보다는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간격이 균일해진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내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들면 나는 내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위에서 아래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아래' 각 마디가 모두 똑같이 '상호존중'이라는 동일한 간격으로 정렬될 것이다. 전 10장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7 鄭仲履問: “某觀大學知至, 見得是乾知道理.”
'''정중리(鄭仲履)의 질문: 제가 '대학'의 지지(知至)를 살펴보고 건지(乾知)의 도리라고 이해했습니다.<ref>주역 계사상전 1의 '건이 (세상의) 큰 시작을 맡고 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乾知大始, 坤作成物)'를 말한다. 주희는 이 '지(知)'를 담당하고 주관한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여기서 정중리는 '알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듯하다. 74:21 참조.</ref>
曰: “何用說乾知! 只理會自家知底無不盡, 便了.” 蓋卿(65때).
'''대답: '건지(乾知)'를 가지고 설명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저 자신의 앎에 미진함이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78 知至, 如易所謂極深; ‘惟深也, 故能通天下之志’, 這一句略相似. 能慮, 便是硏幾; 如所謂‘惟幾也, 故能成天下之務’, 這一句卻相似. 蘷孫(68이후).
'''지지(知至)<ref>조선정판본은 '지(至)'가 '지(止)'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주희는 여기서 주역 계사전의 '극심'과 '연기'라는 개념쌍을 대학의 '지지'와 '능려'라는 개념쌍과 비교하고 있는데 대학 본문의 체제상 '능려'와 짝이 되는 것은 '지지(知至)'가 아니라 '지지(知止)'이기 때문이다. 번역자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이 조목은 14:163과 사실상 같으니 함께 놓고 비교하는 것이 좋다.</ref>는 '역(易)'에서 이른바 극심(極深)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어류 14:146과 163을 참조하라.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ref>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천하 모든 것의 의지를 완전히 이해한다(通)'는 (계사전의) 구절과 대략 비슷하다. 능려(能慮)는 연기(硏幾)이다.<ref>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ref>'사태의 기미를 세밀하게 살폈(幾)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계사전) 구절과 비슷하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79 問: “定·靜·安·慮·得與知至·意誠·心正是兩事, 只要行之有先後. 據先生解安·定·慮·得與知至似一般, 如何?”
'''질문: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ref>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알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定), 안정되면 조용해지고(靜), 조용해지면 편안해지고(安), 편안해지면 심사숙고할 수 있게 되고(慮), 심사숙고하면 실제로 그 최선의 지점을 찾아 머물게 된다(得). 대학 경문에서 '멈출 곳을 안(知止)' 다음 일어나는 일련의 연쇄반응을 이렇게 묘사했다.</ref>과 지지(知至), 의성(意誠), 심정(心正)은 서로 별개의 일이고,<ref>팔조목의 과정이다. 대학 경문에서 묘사한 인식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팔조목에서 묘사한 과정이 서로 별개의 프로세스라는 말이다. 주희는 이 두 프로세스를 나란히 놓고 이쪽의 이 단계는 저쪽의 저 단계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5:139에서는 '앎이 지극해짐(知至)'까지가 경문의 '지지(知止)'에 해당하고 그 이후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여섯 조목은 경문의 정/정/안/려/득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14:174에서는 팔조목의 치지와 성의 사이에 정/정/안/려/득을 모두 배치했다. 14:157에서도 치지 뒤에 정/정/안/려/득을 배치했지만 성의가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ref> 단지 실천에 선후 순서가 필요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바에 따르면, 안, 정, 려, 득과 지지(知至)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ref>확신하기 어려우나 질문자는 정/정/안/려/득을 먼저 실천하고 성의/정심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ref>
曰: “前面只是大綱且如此說, 後面卻是學者用力處.” 去僞(46때).
'''대답: 앞부분<ref>경문의 정정안려득 부분이다.</ref>은 단지 큰 얼개를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뒷부분<ref>팔조목 쪽이다.</ref>이 오히려 배우는 이가 힘써야 할 곳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5:80 致知, 不是知那人不知底道理, 只是人面前底. 且如義利兩件, 昨日雖看義當爲然, 而卻又說未做也無害; 見得利不可做, 卻又說做也無害; 這便是物未格, 知未至. 今日見得義當爲, 決爲之; 利不可做, 決定是不做, 心下自肯自信得及, 這便是物格, 便是知得至了. 此等說話, 爲無恁地言語, 冊子上寫不得. 似恁地說出, 卻較見分曉. 植(64때).
'''치지(致知)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도리를 알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 면전에 있는 것(을 알라는 것)뿐이다. 의(義)와 리(利) 두 가지를 예로 들자면, 어제는 비록 정의(義)를 마땅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오히려 다시 '아직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사리사욕(利)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서도 오히려 다시 '그렇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이는 사물(物)을 아직 끝까지 탐구(格)하지 못했고, 앎(知)이 아직 지극해지지(至) 못한 것이다. 오늘 정의를 마땅히 실천해야 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그렇게 실천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이해했으면 결단코 추구하지 않아서 마음 속에서 기꺼이 스스로 믿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사물이 끝까지 탐구된(格) 것이요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학 본문에) 이런 말이 없기 때문에 책에는(冊子)<ref>대학장구 혹은 대학혹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 쓸 수 없었다.<ref>이 부분은 지시대명사가 많아서 직역만으로는 뜻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책자'를 주희 본인의 주석서로 본 것은 번역자의 추측이다.</ref> 이런식으로 설명하면 비교적 분명하게 이해되는 것 같다.<ref>이 조목의 대의는 28:19와 흡사하다.</ref>
식(植)의 기록.
<以下物格·知至.>
'''<이 아래로는 물격(物格),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81 問: “格物·窮理之初, 事事物物也要見到那裏了?”
'''질문:'격물(格物)'과 '궁리(窮理)'의 초기단계에서 모든 사태와 사물을 그런 수준까지(那裏)<ref>후술하겠지만, 이치를 100% 이해하여 의심이 없는 수준을 말한다</ref> 보아야합니까?
曰: “固是要見到那裏. 然也約摸是見得, 直到物格·知至, 那時方信得及.” 㝢(61이후).
'''대답: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수준까지 보아야 한다. 하지만 (초기단계에는 먼저) 큰 틀(約摸)을 보고, 물격(物格)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비로소 (이치를) 믿을 수 있게 된다.<ref>28:25의 말미가 이 조목과 일치한다. 28:25는 논어 5:5의 해석에 관한 문답이다.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게 하였는데 칠조개가 '저는 아직 이것에 대해 아직 믿지 못합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답하니 공자가 기뻐한다. 여기서 '믿음'은 이치(理)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앎이 지극(知至)해지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면 이치를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82 守約問: “物格·知至, 到曾子悟忠恕於一唯處, 方是知得至否?”
'''수약(守約)<ref>이굉조의 자가 수약이다.</ref>의 질문: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증자가 '예(唯)'라는 한 마디로 충서(忠恕)를 깨달은 정도에 이르러야<ref>논어 4:15</ref> 비로소 앎이 지극해지는 것(知至) 아닙니까?
曰: “亦是如此. 只是就小處一事一物上理會得到, 亦是知至.” 賀孫(62이후).
'''대답: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일사일물처럼 작은 곳에 나아가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역시 지지(知至)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83 或問: “‘物格而后知至’一句, 或謂'物格而知便至'. 如此, 則與下文‘而后’之例不同.”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而后知至)'는 구절에서, 어떤 이는 '사물이 탐구되면 앎은 곧 지극해진다(物格而知便至)'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아래 문장에서 '이후에(而后)'를 반복하는 체제와 일관되지 않습니다.<ref>대학 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후에'를 반복하고 있다. 물격이후지지(物格而后知至) 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 의성이후심정(意誠而后心正) 심정이후신수(心正而后身修) 신수이후가제(身修而后家齊) 가제이후국치(家齊而后國治) 국치이후천하평(國治而后天下平). '이후에'라고하면 앞 단계와 뒷 단계의 선후가 명확하다. 먼저 앞 단계를 마치고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면 곧'이라고 쓰면 앞 단계가 완료됨과 동시에 뒷단계도 완료되므로 전자와 후자는 선후관계가 아니게 된다.</ref>
曰: “看他文勢, 只合與下文一般說. 但且謂之物格, 則不害其爲一事一物在. 到知, 則雖萬物亦只是一箇知. 故必理無不窮, 然後知方可盡. 今或問中卻少了他這意思.”
'''대답: 대학의 문장의 흐름을 보면 아래쪽 문장들과 일치하도록 ('이후에'라고) 말해야 한다. 다만 사물이 탐구되었다고(格) 한다면 (탐구된 것이) 한 가지 사태나 한 가지 사물에 그쳐도 된다. '앎'의 경우, 사물이 제아무리 많아도 앎은 그저 하나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탐구하지(窮) 않은 이치가 없어야만 앎을 다했다 할 수 있다. 지금 대학혹문에는 이 의미가 빠져 있다.<ref>회암집 권46의 답황상백 제4서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논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5:84 “大學物格·知至處, 便是凡聖之關. 物未格, 知未至, 如何殺也是凡人. 須是物格·知至, 方能循循不已, 而入於聖賢之域, 縱有敏鈍遲速之不同, 頭勢也都自向那邊去了. 今物未格, 知未至, 雖是要過那邊去, 頭勢只在這邊. 如門之有限, 猶未過得在.”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진다는 지점이 바로 범부와 성인을 가르는 관문(凡聖之關)이다.<ref>관문은 누군가는 통과시키고 누군가는 통과시키지 않는 군사요새이다. 예컨대 장안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함곡관(函谷關)을 넘어야 한다. 넘지 못하면 장안에도 못가는 것이고 넘으면 장안에 들어갈 수 있다. 후금의 군대가 북경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해관(山海關)을 넘어야 한다. 넘으면 천하를 차지하지만 넘지 못하면 거병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된다. 이처럼 'xx관'이라는 표현은 우리를 어떤 경지로 인도하는 잘 닦인 길이라기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돌려보내는 난관과 같은 이미지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ref> 사물이 아직 '격'되지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도(如何殺)<ref>살(殺)은 살(煞)과 통한다. 현대 중국어 '셤머(什麽:무엇)' 정도에 해당한다.</ref> 범부이다. 반드시 사물이 탐구되고(格) 앎이 지극해져야만 순차적으로 중단 없이 계속 (전진)해서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入於聖賢之域). 민첩한가 둔한가(敏鈍)의 차이와 빠르냐 느리냐(遲速)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추세(頭勢)는 완전히 그쪽<ref>관문 너머의 성현의 영역쪽</ref>으로 향해 간다. 지금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格) 못하고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면 비록 그쪽으로 가고자 해도 추세(頭勢)는 이쪽을<ref>관문을 넘지 못한 범부의 영역쪽</ref> 향해 있다. 문에 문턱이 있는데 아직 그걸 넘어가지 못한 셈이다.'''
問: “伊川云‘非樂不足以語君子’, 便是物未格, 知未至, 未過得關否?”
'''질문: 이천(伊川)이 '즐기지 못하면 군자라 하기에 부족하다'<ref>이정유서 17:69. 글자의 출입은 있으나 대의는 같다. 논어집주 1:1에도 인용되어있다.</ref>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사물이 탐구되지(格) 않고 앎지 지극하지 못하여 관문을 넘지 못한 것입니까?
曰: “然. 某嘗謂, 物格·知至後, 雖有不善, 亦是白地上黑點; 物未格, 知未至, 縱有善, 也只是黑地上白點.” 伯羽(61때).
'''대답: 그렇다. 내가 일찍이 말했듯, 물격지지한 뒤라면 비록 불선(不善)이 있더라도 역시 흰 땅 위의 검은 점과 같고, 물격지지하지 못했다면 비록 선(善)이 있더라도 역시 검은 땅 위의 흰 점과 같을 뿐이다.
백우(伯羽)의 기록. (61세)
<以下論格物·致知·誠意是學者之關.>
'''<이하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가 배우는 이에게 관문임을 논하는 조목들>
* 15:85 格物是夢覺關. <格得來是覺, 格不得只是夢.> 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過得此二關, 上面工夫卻一節易如一節了. 到得平天下處, 尙有些工夫. 只爲天下闊, 須著如此點檢.”
'''격물은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요, <격물을 해내면 깬 것이고 격물하지 못하면 꿈일 뿐이다> 성의(誠意)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성의를 해내면 선이고, 해내지 못하면 악일 뿐이다> 이 두 관문을 넘어서면 그 위쪽단계의 노력(工夫)은 매 단계 더 쉬워진다. 평천하의 단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그저 천하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렇게 (평천하 조목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뿐이다.
又曰: “誠意是轉關處.”
'''다시 말함: 성의는 전환점(轉關處)<ref>번역은 '전환'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에도 '관(關)'자가 쓰였음에 유의하라. 주희는 관문이라는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ref>이다.
又曰: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 蘷孫(68이후).
'''또 말함: 성의는 사람과 귀신을 가르는 관문이다(人鬼關). <성의를 해내면 사람이고, 해내지 못하면 귀신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86 致知·誠意, 是學者兩箇關. 致知乃夢與覺之關, 誠意乃惡與善之關. 透得致知之關則覺, 不然則夢; 透得誠意之關則善, 不然則惡. 致知·誠意以上工夫較省, 逐旋開去, 至於治國·平天下地步愈闊, 卻須要照顧得到. 人傑(51이후).
'''치지와 성의는 배우는 이의 두 관문이다. 치지는 꿈과 깨어남을 가르는 관문(夢覺關)이고, 성의는 선과 악을 가르는 관문(善惡關)이다. 치지의 관문을 돌파하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넘지 못하면 꿈속이다. 성의의 관문을 돌파하면 선이고 넘지 못하면 악이다. 치지와 성의의 다음 단계의 공부(工夫)은 비교적 힘이 덜 든다. 순서대로 열어(開)<ref>관문의 메타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ref> 나가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면 그 범위(地步)가 더욱 넓어지므로 오히려 더 주의해야(照顧) 한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87 知至·意誠, 是凡聖界分關隘. 未過此關, 雖有小善, 猶是黑中之白; 已過此關, 雖有小過, 亦是白中之黑. 過得此關, 正好著力進步也. 道夫(60이후).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은 범부와 성인의 경계를 가르는 관문(關隘)<ref>애(隘)는 험준한 곳에 설치된 요새이다. 기본적으로 '관'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통과의 어려움을 약간 더 강조한 표현으로 보인다.</ref>이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비록 작은 선(善)이 있더라도 여전히 검은 바탕 위의 하얀 점이다. 이 관문을 넘고 나면, 비록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역시 흰 바탕의 검은 점이다.<ref>15:84를 보라.</ref> 이 관문을 넘고 나면 힘써 전진하기에 딱 좋다(正好).'''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88 “大學所謂‘知至·意誠’者, 必須知至, 然後能誠其意也. 今之學者只說操存, 而不知講明義理, 則此心憒憒, 何事於操存也! 某嘗謂誠意一節, 正是聖凡分別關隘去處. 若能誠意, 則是透得此關; 透此關後, 滔滔然自在去爲君子. 不然, 則崎嶇反側, 不免爲小人之歸也.”
''' '대학'에서 이른바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이란, 반드시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야 의지가 진실해질(意誠)<ref>15:9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배우는 이들은 단지 마음을 지키는(操存) 것만 말할 뿐<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공부, 일종의 명상 공부를 말한다. 여기서는 성의의 단계를 말한다.</ref> 의리(義理)를 강론하여 밝힐(講明) 줄 모른다.<ref>지적 사유를 통해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공부이다. 여기서는 치지의 단계를 말한다.</ref> (그런데 이렇게 하면) 그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니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부터 성의(誠意)의 단계는 성인과 범부를 가름하는 관문(關隘)이 되는 자리(去處)라고 했다. 만약 의지를 진실하게(誠意) 할 수 있으면 이 관문을 돌파한 것이다. 이 관문을 돌파한 후에는 도도(滔滔)<ref>황하나 양자강처럼 큰 물이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부단히 흐르는 모양이 '도도'한 것이다.</ref>히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군자가 될 것이다. 돌파하지 못하면 길이 구불구불 험난하여<ref>관문은 기본적으로 지세가 매우 험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통과가 용이한 지점에 설치하는 방어시설이다. 그러므로 여행자가 어떤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은 매우 험하고 난해하고 비효율적인 우회로를 찾아가야 함을 뜻한다.</ref> 결국 소인이 되는 걸 면치 못할 것이다.'''
“致知所以先於誠意者如何?”
'''(누군가의 질문): 치지가 성의에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致知者, 須是知得盡, 尤要親切. 尋常只將‘知至’之‘至’作‘盡’字說, 近來看得合作‘切至’之‘至’. 知之者切, 然後貫通得誠意底意思, 如程先生所謂眞知者是也.” 謨(50이후).
'''대답: 치지란, 반드시 남김없이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친근하고 절실해야(親切) 한다. 보통은 그저 '지지(知至)'의 '지(至)'를 '남김없이 다함(盡)'이라고 해설하나, 나는 요즘 '절실하다(切至)'<ref>'절지'는 18:6에서도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ref>라고 할 때의 '지(至)'로 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앎이 절실해진 뒤에야 '의지를 진실하게 한다(誠意)'는 것의 취지를 관통할 수 있다.<ref>정말로 자신의 실존에 호소하는 절실한 도덕인식은 자연스럽게 간절한 실천의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통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ref> 정자(程子)가 말한 '참된 앎(眞知)'<ref>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 바로 그것이다.<ref>본 조목은 약간의 글자 출입을 제외하면 117:10의 후반부와 일치한다.</ref> '''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89 論誠意, 曰: “過此一關, 方是人, 不是賊!”
'''성의(誠意)를 논하며 말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사람이고, 도적(賊)<ref>한 두 사람이 은밀히 돌아다니며 재물을 훔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수십수백명이 무리지어 유랑하며 마을을 약탈하는 것도 '도적(賊)'이라고 불렀다. 관문은 군대가 지키는 요새이니 도적떼는 통과하지 못한다.</ref>이 아니다.
又曰: “過此一關, 方會進.”
'''다시 말함: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다.
<一本云: “過得此關, 道理方牢固.”> 方子(59이후).
'''<다른 책에서는 '이 관문을 넘어서야 도리가 비로소 견고해진다'라고 했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90 鍾唐傑問意誠.
'''종당걸(鍾唐傑)<ref>원주(袁州) 평향(萍鄉) 사람이다. 주자문인(朱子門人) 354쪽을 보라.</ref>이 성의에 대해 물었다.
曰: “意誠只是要情願做工夫, 若非情願, 亦强不得. 未過此一關, 猶有七分是小人.” 蓋卿(65때).
'''대답: 의성(意誠)이란 진정으로 원하여(情願) 노력(工夫)하려는 것이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면 역시 강요할 수 없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여전히 70%는 소인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91 意誠·心正, 過得此關, 義理方穩. 不然, 七分是小人在.
'''의성(意誠)과 심정(心正)의 경우, 그 관문을 넘어서야 의리(義理)가 비로소 안정된다. 넘지 못하면 70%는 소인이다.
又曰: “意不誠底, 是私過; 心不正底, 是公過.” 方子(59이후).
'''다시 말함: 의지(意)가<ref>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ref> 진실하지 않으면 '사(私)'에서 잘못된 것이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공(公)'에서 잘못된 것이다.<ref>이 부분은 의미를 잘 모르겠다. 추후 보충하겠다. 16:131을 참조하라.</ref>
* 15:92 深自省察以致其知, 痛加剪落以誠其意. 升卿(62때).
'''깊이(深自) 성찰하여 앎을 지극히하고, 통렬히 잘라내어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
승경(升卿)의 기록. (62세)
<致知·誠意.>
'''<치지와 성의에 관한 조목>
* 15:93 知與意皆出於心. 知是知覺處, 意是發念處. 閎祖(59이후).
'''지(知)와 의(意)는 모두 마음(心)에서 나온다. 지는 지각(知覺)하는 곳이고, 의는 의념(念)이 일어나는 곳이다.<ref>의(意)는 도덕행위를 추동하는 속마음이다. 실천해야 마땅한 어떤 윤리원칙이 있을 적에 그것을 망설임 없이 실천하게끔 추동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다.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이를 '심(心)에서 발출한 것(心之所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것에 가깝다. 지각(知覺)은 목전의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인지적 활동이다. 의(意)에 관해서는 김나윤의 "주자 도덕론에서 의와 성의의 함축"(2022)를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94 致知, 無毫釐之不盡. 守其所止, 無須臾之或離. 致知, 如一事只知得三分, 這三分知得者是眞實, 那七分不知者是虛僞. 爲善, 須十分知善之可好, 若知得九分, 而一分未盡, 只此一分未盡, 便是鶻突苟且之根. 少間說便爲惡也不妨, 便是意不誠. 所以貴致知, 窮到極處謂之‘致’. 或得於小而失於大, 或得於始而失於終, 或得於此而失於彼, 或得於己而失於人, 極有深淺. 惟致知, 則無一事之不盡, 無一物之不知. 以心驗之, 以身體之, 逐一理會過, 方堅實. 僩(69이후).
'''치지(致知)는 털끝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멈춰야 할 최선의 지점을 고수하여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치지란, 가령 어떤 사안에 관하여 단지 30%만 알았다면, 알고 있는 30%만 진실이며 알지 못하는 나머지 70%는 허위이다. 선을 행하려면 선이 좋아할 만한 것임을 100% 알아야 하니, 만약 90%는 알겠는데 10% 미진하다면 바로 그 미진한 10%가 곧 (선을 행함에 있어서의) 모호함과 구차함의(鶻突苟且) 뿌리가 된다. 머지않아 '악을 행하는 것도 괜찮아'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곧 의지(意)가 진실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므로 치지(致知)를 귀하게 여기니, 지극한 지점에 이를 때까지 탐구하고 파고드는 것을 '치(致)'라고 한다. 작은 것은 얻고 큰 것은 잃거나, 처음에는 얻고 나중에는 잃거나, 여기서는 얻고 저기서는 잃거나, 자신에게는 얻고 타인에게는 잃는 경우가 있으니, (앎에 있어서) 깊이의 차이가 지극히 크다. 오직 앎이 지극해야만 한 가지 사안도 남김없이 다하지 못함이 없고, 한 가지 사물도 남김없이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 마음으로 체감하고 몸으로 체험하며(以心驗之, 以身體之)<ref>양시(楊時)의 말이다. 구산집 권 12와 권 27을 보라. 어류 113:13도 참조하라.</ref> 하나하나 헤아려나가야 비로소 견실하게 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95 說爲學次第, 曰: “本末精粗, 雖有先後, 然一齊用做去. 且如致知·格物而後誠意, 不成說自家物未格, 知未至, 且未要誠意, 須待格了, 知了, 卻去誠意. 安有此理! 聖人亦只說大綱自然底次序是如此. 拈著底, 須是逐一旋旋做將去始得. 常說田子方說文侯聽樂處, 亦有病. 不成只去明官, 不去明音? 亦須略去理會始得. 不能明音, 又安能明官! 或以宮爲商, 以角爲徵, 自家緣何知得. 且如‘籩豆之事, 則有司存’, 非謂都不用理會籩豆, 但比似容貌·顔色·辭氣爲差緩耳. 又如官名, 在孔子有甚緊要處? 聖人一聽得郯子會, 便要去學. 蓋聖人之學, 本末精粗, 無一不備, 但不可輕本而重末也. 今人閒坐過了多少日子, 凡事都不肯去理會. 且如儀禮一節, 自家立朝不曉得禮, 臨事有多少利害!” 雉(미상).
'''배움의 순서에 대하여 말함: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 사이에 물론 선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제히 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치지와 격물 다음이 성의라고 해서 설마 '나는 사물을 아직 격하지 못했고 앎을 아직 지극히하지 못했으니 의지를 진실되게 하는 공부는 아직 할 필요 없다. 반드시 격물과 치지를 완수하기를 기다렸다가 의지를 참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할 참인가?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나! 성인도 단지 대강의 자연스러운 순서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자신이) 잡은 것을(拈著底)<ref>아마도 그때그때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는 사태, 사안, 상황, 사물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고문해의는 이 '잡은' 것을 '요점을 잡아서 말해보자면' 정도로 해석했다.</ref>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야 된다. 나는 늘 전자방(田子方)이 문후(文侯)가 음악을 듣는 것을 가지고 말한 곳에 병통이 있다고 말한다.<ref>전국책 권22 위책(魏策)에 보인다. 위문후와 전자방이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중 문후가 종소리의 높낮이가 맞지 않다는 것을 듣고 알아냈다. 전자방은 문후의 음감을 칭찬하는 대신 '임금이 밝으면 관리의 일을 즐기고 밝지 못하면 음악을 즐긴다'라고 충고했다.</ref> 설마하니 관리의 일에만 밝고 음악에는 밝지 않아야 한단 말인가? (음악) 역시 대강이라도 이해해야만 한다.<ref>여기서 주희는 음악을 '잡은 것(拈著底)'의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다.</ref> 음악에 밝지 못하면서 어떻게 관리의 일에 밝을 수 있겠나? 누군가가 궁(宮)을 상(商)이라고 하고 각(角)을 치(徵)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걸 무슨 수로 알아채겠나? 예를 들어, '변두(籩豆)의 일은 담당자(有司)가 있다'<ref>논어8:4. 여기서 증자는 제사그릇(籩豆)의 종류와 그 각각에 무얼 담느냐와 같은 디테일한 사안은 그것을 담당하는 하급관리가 알아서 할 일이므로 고위 정무직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위 정무직이 신경쓸 일은 행동거지(動容貌)가 사납거나 태만하지 않게 하는 것(斯遠暴慢矣), 안색을 바로잡아(正顔色) 신실하게 하는 것(斯近信矣) 말하는 매너가(出辭氣) 비루하거나 도리에 위배되지 않게 하는 것(斯遠鄙倍矣)이다.</ref>는 말은 변두와 관련된 일을 전혀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용모, 안색, 사기에 비하여(比似) 다소(差) 느슨하다는(緩)<ref>덜 중요하다는 뜻이다.</ref> 것일 뿐이다. 또 관직 명칭(官名) 같은 것은 공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 성인<ref>공자</ref>은 담자(郯子)가 (관직 명칭의 유래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듣자마자 그에게 가서 배웠다.<ref>이 이야기는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17년조에 보인다.</ref> (공자가 그렇게 한) 까닭은 성인의 배움은 근본과 말엽, 정밀함 부분과 거친 부분(本末精粗)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단지 근본을 경시하고 말엽을 중시하면 안 될 뿐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ref>'다소(多少)'는 종종 현대중국어 '얼마나(多麽)'와 같다. 여기서는 말의 앞뒤를 고려하여 평서형으로 풀었다.</ref> 날들을 일없이 앉아 보내면서 그 모든 사안들에 대하여 기꺼이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례(儀禮)의 한 절목(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도) 자신이 입조(立朝)했는데 (문제의 그) 예(禮)를 알지 못한다면 실무에 임하면서 득실(利害)이 대체 얼마나 많겠나?
치(雉)의 기록.
* 15:96 吳仁甫問: “誠意在致知·格物後, 如何?”
'''오인보(吳仁甫)의 질문: 성의가 치지와 격물 뒤에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源頭只在致知. 知至之後, 如從上面<ref>판본에 따라 '面上'인 경우도 있다. 자세한 것은 일역판(2007)의 교감주를 참조하라.</ref>放水來, 已自迅流湍決, 只是臨時又要略略撥剔, 莫令壅滯爾.” 銖(67이후).
'''대답: 원천(源頭)은 치지에 있다. 앎이 지극해진(知至) 후에는 마치 위에서부터 물이 흘러와서 이미(已自) 급류(迅流)가 둑을 터뜨리고 나온(湍決) 것과 같다. 그저 그때그때 (가로막는 것들을) 대충 제거하여 막힘이 없도록 해주면 될 뿐이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97 問: “誠意莫只是意之所發, 制之於初否?”
'''누군가의 질문: 성의는 의지의 발현을 초기에 제어하는(制之於初) 것입니까?
曰: “若說制, 便不得. 須是先致知·格物, 方始得. 人莫不有知, 但不能致其知耳. 致其知者, 自裏面看出, 推到無窮盡處, 自外面看入來, 推到無去處, 方始得了. 意方可誠. 致知·格物是源頭上工夫. 看來知至便自心正, 不用‘誠意’兩字也得. 然無此又不得, 譬如過水相似, 無橋則過不得. 意有未誠, 也須著力. 不應道知已至, 不用力.”
'''대답: 제어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반드시 먼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을 해야만 한다. 앎(知)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 앎을 지극하게 하지 못할 뿐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致知) 것이란, 안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바깥쪽으로 끝없는 지경까지 밀고 나가고, 바깥쪽에서 (이치를) 간파하여 안쪽으로 막다른 지점까지(無去處)<ref> 직역하면 '더는 갈 곳 없는 지점'이다. 18:4, 18:72를 참조하라.</ref> 밀고 들어가야만 비로서 성취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 치지와 격물은 원천에서의 노력(工夫)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저절로 마음이 바르게 될 테니 '성의'라는 두 글자는 필요 없을 것도 같다(看來).<ref>'간래(看來)'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뒤집기 위해 적당한 추측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순서대로라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인데 치지의 결과 정심이 이루어지면 성의는 불필요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영문으로치면 'it seems...'와 같다.</ref> 하지만 '성의'가 없으면 또 안 된다. 마치 물을 건너는 것과 같아서 다리가 없으면 건널 수 없다. 의지에 진실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다시 힘을 써야 한다. 앎이 이미 지극하니 더 힘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15:98 知若至, 則意無不誠. 若知之至, 欲著此物亦留不住. 東西南北中央皆著不得. 若是不誠之人, 亦不肯盡去, 亦要留些子在. 泳(66때).
'''앎이 지극하면 의지는 진실하지 않음이 없다. 앎이 지극하면 이 물건<ref>사의나 사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ref>을 마음에 붙여놓으려(著)<ref>주자어류에서 '착(著)'이 이렇게 본래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15:101을 보라.</ref>해도 머물지 못한다. 동서남북과 중앙 어디에도 붙여놓지 못한다. 반면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사의와 사욕을) 기꺼이 모두 제거하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기려 한다.<ref>마지막 글자인 '재(在)'는 문장의 분위기를 단정적으로 만들어주는 허사이다.</ref>
<知至·意誠.>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99 問: “知至到意誠之間, 意自不聯屬. 須是別識得天理人欲分明, 盡去人欲, 全是天理, 方誠.”
'''누군가의 질문: 지지(知至)에서 의성(意誠)까지는 뜻(意)이<ref>여기서 '의(意)'자는 '의성(意誠)'의 '의'와는 다른 뜻으로 쓰였음에 주의하라.</ref>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습니다.<ref>내버려두어도 아래로 흘러가는 물처럼 두 단계가 이어지지 않고, 그 사이에 모종의 인위적 노력을 쏟아야만 이어진다는 말이다.</ref>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분명히 식별하고 인욕을 모두 제거하여 오로지 천리만 있어야 비로소 진실해집니다.<ref>식별하고(別識) 모두 제거하는(盡去)등의 행위가 바로 앞에서 암시한 인위적 노력이다.</ref>
曰: “固是. 這事不易言. 須是格物精熟, 方到此. 居常無事, 天理實然. 有纖毫私欲, 便能識破他, 自來點檢慣了. 譬有賊來, 便識得, 便捉得他. 不曾用工底, 與賊同眠同食也不知!” 大雅(49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 일은 쉽게 말할 수 없다.<ref>이 단계를 설명하기 난해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 단계를 쉬운 것처럼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ref> 반드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 해야만 여기에<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의성'의 단계를 말한다.</ref> 도달할 수 있다. 평소(居常) 특별한 일이 없을 적에 천리(天理)는 진실로 이러하다(實然).<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천리가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ref> 털끝만큼이라도 사욕이 있을 경우 그것을 바로 간파(識破)할 수 있는 것은 전부터(自來) (자신을) 점검(點檢)하는 데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ref>고문해의에 의하면 위쪽에서 격물을 '정밀하고 숙련되게(精熟)'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익숙하게 점검하는' 노력이다.</ref> 비유하자면, 도적이 오면 바로 알아차리고 체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평소 노력하지 않는 이는 도적과 함께 먹고 자면서도 알지 못한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100 周震亨問知至·意誠, 云: “有知其如此, 而行又不如此者, 是如何?”
'''주진형(周震亨)이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에 관하여 질문: 어떤 이가 이치가 그러함을 알면서도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此只是知之未至.”
'''대답: 이는 단지 그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問: “必待行之皆是, 而後驗其知至歟?”
'''재질문: 반드시 그의 행동이 모두 옳게 된 다음에야 그의 앎이 지극해졌음을 확인(驗)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不必如此說. 而今說與公是知之未至, 公不信, 且去就格物·窮理上做工夫. 窮來窮去, 末後自家眞箇見得此理, 是善與是惡, 自心甘意肯不去做, 此方是意誠. 若猶有一毫疑貳底心, 便是知未至, 意未誠, 久後依舊去做. 然學者未能便得會恁地, 須且致其知. 工夫積累, 方會知至.”
'''대답: 꼭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ref>여기서 '여(與)'는 현대 중국어의 '급(給)'처럼 '~에게' 정도의 의미이다.</ref> 말하기를 그대의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다고 해도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우선 사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格物窮理) 데에 힘을 써보라. 깊이 연구한 끝에 스스로 이 이치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이 선과 악을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악을) 행하지 않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의지가 진실되게(意誠) 된 것이다. 만약 여전히 조금이라도 의심(疑貳)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않은 것이고,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않은 것이니, 시간이 오래 지나면 도로 (악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가 곧바로 그렇게 (의지가 진실되게) 될 수는 없으니, 우선 반드시 앎을 지극하게 해야 한다. 노력(工夫)이 쌓여야 앎을 지극하게 할 수 있다.'''
* 15:101 “‘知至而后意誠’, 須是眞知了, 方能誠意. 知苟未至, 雖欲誠意, 固不得其門而入矣. 惟其胸中了然, 知得路逕如此, 知善之當好, 惡之當惡, 然後自然意不得不誠, 心不得不正.”
''' '앎이 지극해진(知至) 뒤에 의지가 진실해진다(意誠)'는 것은 반드시 진정으로 알아야 비로소 의지가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하면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정말이지 문을 찾아 들어갈 방법이 없다. 오직 가슴 속에서 분명하게 길이(路逕) 이와 같음을 알고 선이란 좋아해야 마땅하고 악이란 미워해야 마땅함을 안 뒤에야 비로소 자연히 의지가 진실해지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이 바르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因指燭曰: “如點一條蠟燭在中間, 光明洞達, 無處不照, 雖欲將不好物事來, 亦沒安頓處, 自然著它不得. 若是知未至, 譬如一盞燈, 用罩子蓋住, 則光之所及者固可見, 光之所不及處則皆黑暗無所見, 雖有不好物事安頓在後面, 固不得而知也.
'''이어서 촛불을 가리키며 말함: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촛불을 밝혀두어(點) 그 빛이 사방에 미쳐 구석구석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면 설령 좋지 않은 것들을(不好物事) 가져오려고 해도 역시 놓을(安頓) 자리가 없으니 자연히 그런 것들은 여기 붙어있을 수 없다(著它不得).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은 비유하자면 등잔(盞燈)을 등갓(罩子)으로 덮은 것과 같아서 빛이 닿는 곳이야 물론 볼 수 있겠지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완전히 깜깜해서 보이지 않으므로 설령 좋지 않은 물건을 뒤에다 가져다 놓아도 정말이지 알아챌 도리가 없다.
<炎錄云: “知旣至, 則意可誠. 如燈在中間, 纔照不及處, 便有賊潛藏在彼, 不可知. 若四方八面都光明了, 他便無著身處.”>
'''<염(炎)의 기록: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의지(意)가 진실해질 수 있다. 비유하자면 방 한가운데 등불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빛이 비추지 않는 곳에 도적이 숨어들면 알아챌 수가 없다. 만약 사방팔방이 모두 밝아지면 도둑이 몸 붙일 곳이 없게 된다.>
所以貴格物, 如佛·老之學, 它非無長處, 但它只知得一路. 其知之所及者, 則路逕甚明, 無有差錯; 其知所不及處, 則皆顚倒錯亂, 無有是處, 緣無格物工夫也.”
'''그래서 격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부처와 노자의 학문은,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길 하나(一路)를 알 뿐이다. 그들의 앎이 미치는 곳에서는 길(路逕)이 매우 분명하여 잘못될 곳이 없으나 그들의 앎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모두 전도착란(顚倒錯亂)<ref>넘어지고 헤매는 것이다. 길을 모를 때 여행자가 겪는 어려움이 보통 넘어지는 것과 길을 잃는 것이다.</ref>하여 옳은 곳이 하나도 없다. 이는 격물의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問: “物未格時, 意亦當誠.”
'''누군가의 질문: 사물이 아직 탐구되지 않았을 때에도 의지는 응당 진실하게 해야합니까?'''
曰: “固然. 豈可說物未能格, 意便不用誠! 自始至終, 意常要誠. 如人適楚, 當南其轅. 豈可謂吾未能到楚, 且北其轅! 但知未至時, 雖欲誠意, 其道無由. 如人夜行, 雖知路從此去, 但黑暗, 行不得. 所以要得致知. 知至則道理坦然明白, 安而行之. 今人知未至者, 也知道善之當好, 惡之當惡. 然臨事不如此者, 只是實未曾見得. 若實見得, 自然行處無差.” 僩(69이후).
'''대답: 당연히 그렇다. 어찌 '사물을 아직 탐구하지 못했으니 의지는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지는 항상 진실하게 해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초(楚)나라<ref>남쪽지방의 대명사이다. 북쪽지방의 경우는 연(燕)나라.</ref>로 가고자 한다면 수레의 머리(轅)가 남쪽을 향해야 한다. 어찌 '나는 아직 초나라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일단 수레 머리를 북쪽으로 돌려놓아야겠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저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는 의지를 진실하게 하려 해도 그 길(道)을 따라 걸을 수 없을 뿐이다. 마치 사람이 밤길을 갈 적에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너무 어두워서 나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앎을 지극하게 해야(致知) 하는 것이다. 앎이 지극해지면 도리(道理)가 탄연명백(坦然明白)<ref>앞길이 밝고 평탄한 것이다. 계속해서 도덕원칙을 길로, 그 원칙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밝기로, 그 원칙에 대한 의욕적인 실천을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하라.</ref>하니 편안하게 나아갈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앎은 아직 지극하지 못해도 선은 마땅히 좋아해야 하고 악은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태에 임하여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저 (도리를) 진정으로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자연히 실천에도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02 欲知知之眞不眞, 意之誠不誠, 只看做不做如何. 眞箇如此做底, 便是知至·意誠. 道夫(60이후).
'''(어떤 사람의) 앎이 진정한지, 의지가 진실한지 알고 싶다면 그저 실천 여부를 보면 된다. 정말로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앎이 지극하고(知至) 의지가 진실한(誠意)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03 問“知至而后意誠”.
'''<nowiki/>'지지이후의성(知至而后意誠)'에 관한 질문.'''
曰: “知則知其是非. 到意誠實, 則無不是, 無有非, 無一毫錯, 此已是七八分人. 然又不是今日知至, 意亂發不妨, 待明日方誠. 如言孔子‘七十而從心’, 不成未七十心皆不可從! 只是說次第如此. 白居易詩云: ‘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詩人玩弄至此!” 可學(62때).
'''대답: 안다는 것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아는 것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그 사람의 행동에) 옳지 않음이 없고, 그른 것이 없으며, 털끝만큼의 착오도 없다. 이는 이미 70-80%는 된 사람이다. 그러나 또 '오늘 막 앎이 지극해졌으니 (오늘은) 의지가 어지러이 발출해도 괜찮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의지를 진실되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일흔이 되고나서는 마음을 따라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ref>논어 2:4</ref>는 말이 설마 일흔이 되기 전에는 자기 마음을 따라서는 절대 안 된다는 뜻이겠나? 단지 순서가 그러하다는 것 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행년 서른아홉, 세모(歲暮)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ref>시의 제목은 은궤(隱几)이다. 본래 '사십심부동(四十心不動)'인 걸 여기서는 '맹자심부동(孟子心不動)'으로 바꿔서 썼다. 이 시를 인용한 다른 조목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주희는 정말로 이렇게 외고 있었던 듯하다.</ref>라고 했는데, 시인의 말재주가(玩弄) 이정도 수준에 이르렀구나!<ref>15:104와 140:32가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백거이의 재치를 진지하게 비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璘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린(璘)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104 舜功問: “致知·誠意是如何先後?”
'''순공(舜功)의 질문: 치지(致知)와 성의(誠意)는 어째서 선후가 이렇게 됩니까?
曰: “此是當初一發同時做底工夫, 及到成時, 知至而后意誠耳. 不是方其致知, 則脫空妄語, 猖狂妄行, 及到誠意方始旋收拾也. 孔子‘三十而立’, 亦豈三十歲正月初一日乃立乎! 白樂天有詩: “吾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此詩人滑稽耳!” 璘(62때).
'''대답: 이는 애초에 동시(一發同時)에 하는 공부(工夫)다. 다 완성된 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나서 의지가 진실해진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치지의 단계에서 헛소리를 하고(脫空妄語)<ref>'탈공'은 근거할 만한 실질이 없는 것이다.</ref> 미친짓을 하다가(猖狂妄行), 성의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서둘러(旋) 수습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서른에 홀로 섰다(立)'고 한 것이 어찌 서른이 되는 해의 정월 초하루가 되어서야 홀로 섰다는 말이겠나? 백락천(白樂天)이 시에서 '내(吾) 나이<ref>본래는 15:103에서와 같이 '행년(行年)'이다.</ref> 서른아홉, 세모의 해가 기우는 이때, 맹자(孟子)는 (마흔살이 되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데, 나도 이제 거의 다 왔구나.'라고 한 것은 시인이 재주를 넘은(滑稽)<ref>활계 (혹은 '골계')는 순간적인 재치로 웃음을 유발하는 말재주를 말하기도 하고, 강남지방에서 유행했다는 일종의 곡예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에 골계열전(滑稽列傳)이 있다.</ref>것 뿐이다.<ref>15:103과 140:32를 참고하라.</ref>
린(璘)의 기록. (62세)
* 15:105 學者到知至意誠, 便如高祖之關中, 光武之河內. 芝(63때).
'''배우는 이가 지지(知至)와 의성(意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마치 한고조(高祖)의 관중(關中), 광무제(光武)의 하내(河內)와 같다.<ref>관중은 오늘날 섬서성 서안(西安) 인근이고 하내는 하남성 심양(沁阳) 인근이다. 두 곳은 각각 한고조 유방과 후한 광무제의 근거지로 그 기반이 굳건하여 그들이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치지와 성의 공부가 완성되면 이는 배우는 이의 굳건한 기반이 된다는 뜻이다. 자치통감 권61 헌제 흥평2년 윤5월조를 보라.</ref>
* 15:106 問:“‘知至而后意誠, 故天下之理, 反求諸身, 實有於此.' 似從外去討得來”云云.
'''질문: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졌으므로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정말로 (자기 내면에) 다 있다.'<ref>고문해의는 이 구문을 대학혹문의 초기 판본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측했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이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흡사한 구절이 있다. 혹문의 전 5장 8번째 조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천하 사물을 다 탐구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내게 갖춰져 있는 것이요 외부로부터 얻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격물(格物)에 대하여 역시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면' 천하 사물이 내게 있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한 자가 있는데 이 또한 그럴싸하긴 하다.<양시의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반성해 진실하다'는 것은 바로 '물격지지(物格知至)' 이후의 일이니, 이치에 대한 탐구가 지극하여 남김없이 다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저 모든 천하의 이치를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해보면 누구나 마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잡고 다리로 걷는 것처럼 완벽하게 자기 안에 갖추어져 있어서 털끝만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음을알 수 있다. 정말로 이러한 것을 바로 격물(格物)의 일로 여긴 것도 아니고, 또한 '단순히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에만 힘쓰면 천하의 이치는 저절로 모두 진실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又有以爲天下之物, 不可勝窮, 然皆備於我, 而非從外得也. 所謂格物, 亦曰反身而誠, 則天下之物無不在我者, 是亦似矣.〈楊中立說〉然反身而誠, 乃爲物格知至以後之事, 言其窮理之至無所不盡. 故凡天下之理, 反求諸身, 皆有以見其如目視耳聽手持足行之畢具於此, 而無毫髮之不實耳. 固非以是方爲格物之事, 亦不謂但務反求諸身, 而天下之理自然無不誠也.)" 주희는 여기서 시선을 내면에 고정해두고 (어차피 사물은 다 내 안에 있는 것 아니냐는 전제하에) 스스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배격하기 위해 격물이란 시선을 외부에 두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사태의 이치를 탐구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용과 같은 주요 경전에서 말한 '반구저신(反求諸身)'과 같은 권위있는 표현을 존중해야 하므로 1. 먼저 나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치를 탐색하고 탐구하여 알고 나면 2. 그 이치가 내 안에 앎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므로 3. 돌이켜 내 안에서 구해보면 다 거기 있다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경전의 문구와 조화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놓고 나면 우리는 모두 이치를 외부에서 구해서 마련해 가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게 되면 이치가 본래부터 자신 안에 상존한다는 주희의 본성론에 위배되는 것 처럼 들린다. 본 조목에서의 질문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ref>같은 경우, (천하의 이치를) 아마도 바깥쪽에서 마련해온 것 같습니다. (생략)<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로 다음과 같은 문답이 더 있다. 아마도 여기서 생략처리된 부분일 것이다.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무엇이 안쪽이고 무엇이 바깥쪽인가?' 내가 답했다. '치지격물이란 바깥에 가서 이치를 마련해온 뒤에 비로소 자신에게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깥에 가서 구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생이 말했다. '먼저 이 이치가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이 모르게 된 것인가? (이치를) 알게된 다음에야 비로소 이 이치가 있게 된 것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先生問節曰: "如何是内, 如何是外?" 節答曰: "致知格物是去外討, 然后方有諸己, 是去外討得入來." 曰: "是先有此理後自家不知? 是知得後方有此理?" 節無以答.)"</ref>
曰: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厲聲言“弗思”二字.>
'''대답: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외부에서 내 안으로 녹아들어온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ref>맹자 6A:6</ref> <'생각하지 않을(弗思)' 두 글자를 강하게 말했다.>
又笑曰: “某常說, 人有兩箇兒子, 一箇在家, 一箇在外去幹家事. 其父卻說道在家底是自家兒子, 在外底不是!” 節(64이후).
'''또 웃으며 말함: 내가 늘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은 집에 있고 다른 아들은 밖에 나가서 가족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아비가 집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고 밖에 있는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구나!<ref>여기서 감절(甘節)은 치지와 성의 공부의 결과 내면에 확보하게 된 '이치'란 본래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바깥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이치를 인식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객관적인 어떤 것, 나와 무관한 것을 가져와서 애써 내면화하는 작업, 남의 아들을 잡아와서 내 아들로 만드는 작업이다. 주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치는 물론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본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본유한다고 생각하므로 바깥에 있는 아들이나 집안에 있는 아들이나 다 자신의 아들이다.</ref>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07 或問: “知至以後, 善惡旣判, 何由意有未誠處?”
'''어떤 사람의 질문: 앎이 지극해진 다음 선악도 이미 판별되었는데 무슨 연유로 의지에 아직 진실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까?
曰: “克己之功, 乃是知至以後事.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一念纔放下, 便是失其正. 自古無放心底聖賢, 然一念之微, 所當深謹, 纔說知至後不用誠意, 便不是. ‘人心惟危, 道心惟微’, 毫釐間不可不子細理會. 纔說太快, 便失卻此項工夫也.” 銖.
'''대답: 극기(克己)<ref>논어 12:1</ref>하는 노력은 앎이 지극해진 이후의 일이다.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ref>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ref> 한 생각(一念)이라도 놓치는(放下) 순간 그 바름을 잃게 된다. 예로부터 마음을 놓치는(放心) 성현은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생각은 은미하니 깊이 삼가야 한다.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를 진실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바로 틀린 것이다.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하'니<ref>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제 15장</ref> 털끝만한 것까지 세심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충 빨리 하라고 말하는 순간 이 항목에서의 공부(工夫)를 상실하게 된다.
수(銖)<ref>중화서국판에서는 록(錄)으로 오기했다.</ref>의 기록. (67세 이후)
* 15:108 問椿: “知極其至, 有時意又不誠, 是如何?”
'''선생이 나(椿)에게 질문했다: 앎이 지극해졌는데도 종종 의지가 또 진실하지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椿無對.
'''나(椿)는 대답하지 못했다.
曰: “且去這裏子細窮究.”
'''선생: 일단 이 부분을 세심하게 연구해 보아라.
一日, 稟云: “是知之未極其至.”
'''하루는 내가 말씀드렸다: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先生曰: “是則是. 今有二人: 一人知得這是善, 這是惡; 又有一人眞知得這是善當爲, 惡不可爲. 然後一人心中, 如何見得他是眞知處?”.
'''선생: 그 말이 맞기는 한데... 지금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이것이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이것이 선이므로 당연히 해야 하고 이것은 악이므로 당연히 하면 안 됨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眞知). 그렇다면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그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지(眞知) 알 수 있을까?<ref>이에 대하여 주희 자신은 15:102에서처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15:100에서처럼 행동을 보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대학장구 전6장에서는 이는 남은 모르고 자신만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독(愼獨)'해야 한다고 말한다.</ref>
椿亦無以應.
'''나는 또 대답하지 못했다.
先生笑曰: “且放下此一段, 緩緩尋思, 自有超然見到處.” 椿(59때)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이 부분을 내려놓고 천천히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초연(超然)히 깨닫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춘(椿)의 기록. (59세)
* 15:109 誠意, 方能保護得那心之全體.
'''의지를 진실되게 하면(誠意) 비로소 이 마음 전체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以下誠意.>
'''<이 아래로 성의에 관한 조목들>
* 15:110 問“實其心之所發, 欲其一於理而無所雜”.
''' '마음이 발하는 것(心之所發)<ref>주희에 따르면 이 네 글자가 바로 의(意)자의 사전적 정의이다.</ref>을 진실되게 하고, 그것이 한결같이(一)<ref>이 형용사는 순수성과 일관성을 의미한다. 순수하고 일관되게 이치에 귀속한다는 뜻이다.</ref> 이치에 귀속하여 다른 것과 섞이지 않게하라'<ref>대학혹문의 경1장 부분에 "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라는 말이 있다. 대학장구는 크게 두 종류의 통행본이 있는데 하나는 조선에서 유행했던 사서대전본이고 다른 하나는 오영(吳英)과 오지충(吳志忠) 부자가 교감한 가경 16년본(1811)이다. 가경본은 후에 중화서국판 사서집주의 저본이 된다. 대전본에서는 성의에 대하여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라고 적은 반면 가경본에서는 "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라고 적고 있어서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주희는 대학장구와 혹문을 매우 여러번 개수했기 때문에 이본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단지 어느쪽이 더 최신버전인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어류의 이 부분은 아무래도 통행본 대학혹문과 가경본 대학장구를 섞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버전보다 앞선 것인지 더 나중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쉬지아싱(許家星)의 "论朱子的诚意之学—以诚意章詮释修改为中心(2011)", 최혜미의 "大學章句 ‘誠意’의 주석에 대한 韓·中 학자들의 변석 양상 一考(2016)"을 참고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只爲一, 便誠; 二, 便雜. ‘如惡惡臭, 如好好色’, 一故也. ‘小人閒居爲不善, <止><ref>긴 문장을 중간부분을 생략해서 인용할 적에 '~까지'라는 의미로 이 글자를 작게 쓴다.</ref>著其善’, 二故也. 只要看這些便分曉. 二者, 爲是眞底物事, 卻著些假攙放裏, 便成詐僞. 如這一盞茶, 一味是茶, 便是眞. 才有些別底滋味, 便是有物夾雜了, 便是二.” 蘷孫(68이후).
'''대답: "하나(一)면 순수하고(誠) 둘이면(二) 잡스럽다(雜). '악취를 싫어하듯이 악을 싫어하고, 호색을 좋아하듯이 선을 좋아'<ref>대학 전 6장.</ref>하는 까닭은 하나(一)이기 때문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악을 행하고 (중략) 선함을 드러내'<ref>대학 전 6장을 축약한 것이다. "소인은 한가로이 지낼 때 불선한 짓을 하여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다 군자를 본 이후에는 겸연쩍게 자신의 불선함을 가리고 선함을 드러낸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 揜其不善, 而著其善)"이다.</ref>는 까닭은 둘(二)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보아야 하는데, 보기만 하면 바로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둘이란, 진짜 물건 안에다 가짜를 조금 섞어 넣은 것으로, 곧 사기와 거짓(詐僞)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차 한 잔이 한결같이 차 맛만 난다면 이는 진짜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맛이 첨가되면 곧 섞인 물건이요 둘(二)이다.
* 15:111 意誠後, 推盪得渣滓靈利, 心盡是義理.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게 된 후에는 찌꺼기(渣滓)를 깨끗하게(靈利)<ref>영리(靈利):남김없이 모조리 깔끔하게</ref> 씻어내서(推盪)<ref>우리말 '소탕(掃蕩)하다'의 '탕(蕩)'과 통한다. 남김없이 제거했다는 뜨이다. 일역판에서는 '눌러서 짜내다(押し出す)' 정도로 번역했는데 썩 만족스럽지 않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치약 튜브이고 찌꺼기는 치약이고 성의공부는 치약을 모조리 쥐어짜내는 과정처럼 느껴진다.</ref> 마음이 전부 의리(義理)로 가득하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以下意誠.>
'''<이 아래로는 의성(意誠)에 관한 조목들>
* 15:112 意誠, 如蒸餅, 外面是白麵, 透裏是白麵. 意不誠, 如蒸餅外面雖白, 裏面卻只是粗麵一般. 閎祖(59이후).
'''의지가 진실하다는(意誠) 것은 증병(蒸餅)<ref>쪙빙은 얇은 밀가루 피 여러겹을 마치 계란말이처럼 층층이 쌓아서 쪄낸 음식이다. 각 층 사이에 약간의 양념이 들어간다. 오늘날 중국에서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재료와 형태만으로 따지자면 오늘날 한국의 카페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레이프케잌과 비슷하다. 다만, 주희 당시에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먹는 음식을 쪙빙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 번역자는 자신이 없다. 일역판에서는 찐만두라고 번역했는데 맞지 않다고 본다. 16:87에서 동일한 비유를 들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겉부분도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고 속으로 들어가도 고운 밀가루로(白麵) 만든 것과 같다.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은 증병의 겉부분은 비록 고운 밀가루로 만들었더라도 속부분은 거친 밀가루로(粗麵)<ref>입자가 굵고 거친 통밀가루 같은 것을 떠올리면 좋다.</ref> 만든 것과 같다.<ref>이 비유는 16:87에서도 반복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13 “心, 言其統體; 意, 是就其中發處. 正心, 如戒懼不睹不聞; 誠意, 如愼獨.”
'''심(心)은 통체로(統體) 말한 것이고, 의(意)는 그 속에서 발출하는(發) 것이다.<ref>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 통체로 지시하면 '심'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주희의 심(心)은 인지적인 기관(mind)과 정서적 기관(heart)를 하나로 합친 거에 가깝다. 이때문에 많은 영역자들이 습관처럼 '허트-마인드(heart-mind)'라는 신조어를 써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 의(意)는 그러한 '심'에서 솟아나는(發) 의지(will)나 동기(motive)에 가깝다. '마음'과 '의지'를 정의하는 조목들은 권5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5:88을 보라.</ref> 정심(正心)은 '(자신이) 보고 듣지 않는 바를 경계하고 두려워한다'<ref>중용 제 1장의 '계신공구'부분을 패러프레이즈한 것이다. '(자신이) 보지 않는 바를 삼가고 경계하며 (자신이) 듣지 않는 바를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주희에 의하면 이는 미발(未發)의 상태에서의 자기수양의 노력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명상공부이다. 우리 마음의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이 마음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활동하는 양상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했을 때 보다(睹)와 듣다(聞)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마음의 적극적 활동을 말한다. 그런 활동을 중지하면 '계신공구'이다. 62:91, 62:79를 보라.</ref>는 것과 같고, 성의는 '혼자만 아는 곳을 삼간다(愼獨)'<ref>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주희는 계신공구를 미발단계에서의 공부, 신독을 이발단계에서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체인공부, 후자는 찰식공부이다. 62:92를 보라.</ref>와 같다.
又曰: “由小而大. 意小心大.” 閎祖(59이후).
'''또 말함: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라. 의(意)는 작고 심(心)은 크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正心·誠意.>
'''<이 아래로 정심(正心)과 성의(誠意)에 관한 조목들>
* 15:114 康叔臨問: “意旣誠矣, 心安有不正?”
'''강숙림(康叔臨)의 질문: 의지가 이미 진실한데, 마음에 어찌 바르지 않음이 있습니까?
曰: “誠只是實. 雖是意誠, 然心之所發有不中節處, 依舊未是正. 亦不必如此致疑, 大要只在致知格物上. 如物格·知至上鹵莽, 雖見得似小, 其病卻大. 自修身以往, 只是如破竹然, 逐節自分明去. 今人見得似難, 其實卻易. 人入德處, 全在致知·格物. 譬如適臨安府, 路頭一正, 著起草鞋, 便會到. 未須問所過州縣那箇在前, 那箇在後, 那箇是繁盛, 那箇是荒索. 工夫全在致知·格物上.” 謙(65때).
'''대답: '성(誠)'은 '실(實)'이다. 비록 의지가 진실하더라도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心之所發)이<ref>의지(意)를 말한다.</ref> 각각의 상황에 정확히 온당하지(中節) 않은 경우가 있으면<ref>의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엉망인 일들을 떠올려 보라.</ref> 아직 여전히 바르지(正)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고,<ref>성의 단계와 정심 단계 사이의 연결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ref> 핵심은 그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만약 사물이 다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단계에서(物格知至) 소홀하면, 보이기는 작게 보여도 그 병폐가 크다. 수신(修身)의 단계 이후로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마디 저절로 분명해진다.<ref>대학에서 제가, 치국, 평천하 부분은 파죽지세로 이해해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ref>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워 보여도 사실은 쉽다. 사람이 덕(德)으로 들어가는 지점은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비유하자면, 임안부(臨安府)<ref>오늘날 항저우. 당시 남송의 수도였다.</ref>에 갈 적에 길이 정확하기만 하다면(一正)<ref>중국어에서 일(一)은 종종 조건(if)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도 문맥을 살펴 그렇게 해석했다. '한결같이'일 가능성도 있다.</ref> 짚신만 신으면<ref>'착(著)'은 뒤에 신발에 해당하는 목적어가 오면 '신발을 신다'가 된다. '기(起)'는 현대중국어에서 동사의 뒤에 붙어서 동작의 방향(주로 위쪽)을 표현하거나 그 동작이 시작됨, 그 동작의 가능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예컨대 '칸치라이(看起來)'는 '내가 이렇게 보면...' 정도의 의미이고 '쭈어치(做起)'는 시작한다는 의미이다.</ref> 도달할 수 있다. 중간에 거쳐가는 주현(州縣) 가운데 어느 것이 앞이고 어느것이 뒤인지, 어느 것이 번성하고 어느 것이 황량한지 물을 필요가 없다. 힘 쓸 곳은(工夫) 전부 치지와 격물에 있다.
<以下論格物·致知·誠意·正心.>
'''<이 아래로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에 관한 조목들>
* 15:115 問: “心, 本也. 意, 特心之所發耳. 今欲正其心, 先誠其意, 似倒說了.”
'''질문: 마음(心)은 뿌리(本)이고, 의지(意)는 그저 마음에서 발출하는 것 정도입니다. 지금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런 설명은 순서가 뒤집힌 것 같습니다.
曰: “心無形影, 敎人如何撑拄. 須是從心之所發處下手, 先須去了許多惡根. 如人家裏有賊, 先去了賊, 方得家中寧. 如人種田, 不先去了草, 如何下種. 須去了自欺之意, 意誠則心正. 誠意最是一段中緊要工夫, 下面一節輕一節.”
'''대답: "마음은 형체가 없는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탱하고있으라고(撑拄)<ref>탱주(撑拄)는 지탱(支撑)과 같다. 어떤 물건이 쓰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는 것이다.</ref> 해야 할까? 반드시 마음에서 발출한 곳에서 착수해야 하며, (거기서) 우선 수많은 악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예컨대 집에 도둑이 들면 우선 도둑을 없애야만 집안이 평온해지는 것과 같다. 예컨대 누군가 밭에 파종할 적에 우선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씨를 뿌릴 수 있겠나? 반드시 자신을 기만하려는 의지를<ref>'자기자신을 기만함(自欺)'은 대학 전 6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주희는 이를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지만 의지가 진실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의 윤리학 용어로 '의지박약(Akrasia)'에 가깝다. 이찬의 '지행문제의 도덕심리학적 이해(2009)'를 참조하라.</ref> 제거해야 한다. 의지가 진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된다. '성의'는 일련의 공부 가운데 매우 중요한 공부이며, 그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가벼워진다.
或云: “致知·格物也緊要.”
'''누군가가 말함: 치지와 격물도 중요합니다.
曰: “致知, 知之始; 誠意, 行之始.” 蘷孫(68이후).
'''대답: 치지는 앎(知)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行)의 시작이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16 或問: “意者心之所發, 如何先誠其意?”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에서 발출하는 것인데, 어떻게 (마음보다) 의지를 먼저 진실하게 합니까?
曰: “小底卻會牽動了大底. 心之所以不正, 只是私意牽去. 意才實, 心便自正. 聖賢下語, 一字是一字, 不似今人作文字, 用這箇字也得, 改做那一字也得.”
'''대답: 역설적으로 작은 것이 큰 것을 끌고 갈 수 있다. 마음이 바르지 않은 까닭은 단지 사사로운 의지(私意)가 끌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의지가 진실해지는 순간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 성현이 구사하는 언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의미가 있으니, 요즘 사람들이 글을 쓸 때처럼 이 글자를 써도 되고 저 글자로 바꿔써도 된다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 15:117 格物者, 知之始也; 誠意者, 行之始也. 意誠則心正, 自此去, 一節易似一節. 拱壽(65때).
'''격물은 앎의 시작이고, 성의는 행함의 시작이다. 의지가 진실해면 마음이 바르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매 단계 더 쉬워진다.<ref>15:115를 축약한 듯한 내용이다.</ref>
공수(拱壽)의 기록. (65세)
* 15:118 致知·誠意兩節若打得透時, 已自是箇好人. 其它事一節大如一節, 病敗一節小如一節. 自修(65때).
'''치지와 성의 두 단계를 투철하게 해내면(打得透), 이미(已自) 좋은 사람이다. 그 다음 단계는, 일의 스케일은 매 단계 더 커지지만, 병폐는 매 단계 더 작아진다.
자수(自修)의 기록. (65세)
* 15:119 格物者, 窮事事物物之理; 致知者, 知事事物物之理. 無所不知, 知其不善之必不可爲, 故意誠; 意旣誠, 則好樂自不足以動其心, 故心正. 恪.<ref>중화서국판에서는 기록자의 이름을 '格'이라고 적었으나 옳지 못하다. 조선정판본 등을 따라 恪으로 교감한다.</ref>
'''격물이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치지란 사사물물의 이치를 아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모르는 것이 없어서, 선하지 않은 짓을 행해서는 절대로 안 됨을 알기 때문에 의지가 진실해진다. 의지가 성실해지면 좋아하는(好樂)<ref>대학 전 7장에서 마음의 바름을 깨뜨리는 요소들 중 하나로 거론한다.</ref> 것이 자연히 마음을 동요하지 못하게 되므로 마음이 바르게 된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120 格物·致知·正心·誠意, 不可著纖毫私意在其中. <椿錄云: “便不是矣.”> 致知·格物, 十事格得九事通透, 一事未通透, 不妨; 一事只格得九分, 一分不透, 最不可. 凡事不可著箇“且”字. “且”字, 其病甚多.
'''격물, 치지, 정심, 성의는 그 속에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의지(私意)도 두어서는 안 된다. <춘(椿)의 기록에는 '옳지 않다(便不是矣).'> 치지와 격물에 있어서 열 가지 사안 가운데 아홉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했는데 한 가지는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는 괜찮지만, 한 가지 사안을 90%만 탐구하여 이해하고 나머지 10%는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불가하다.<ref>비유하자면, 열 문제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홉 문제를 철저히 이해했으나 한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여 아직 건드리지도 못한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단 풀이에 성공한 아홉문제의 경우는 완전히 이해가 되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고 나머지 한 문제도 수험생의 철저한 성미로 볼 때 시간이 허락될 때 이해해낼 것이다. 반면에 한 문제가 주어졌는데 그것을 90%까지만 이해한 상태에서 그만두고 방치하는 학생이라면 '철저한 성미'가 없음을 알 수 있고, 풀었다는 그 문제 또한 정말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ref> 모든 일에 '일단은(且)'<ref>'일단은 이렇게'라거나 '우선 이렇게 해두고'라는 표현에는 대충대충의 혐의가 있다. 물론 주희 본인은 이 말을 종종 사용한다.</ref>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일단은'에는 병폐가 매우 많다.
* 15:121 格物·致知·誠意·正心, 雖是有許多節次, 然其進之遲速, 則又隨人資質敏鈍. 履孫(65때).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은 비록 여러 단계가 있지만, 진전의 속도는 또 그 사람의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 <ref>이 조목만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질이 민첩하냐 둔하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둔한 자질을 가진 사람을 구박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전진의 속도는 어차피 자질에 따른 것이니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15:84를 보라.</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22 大學於格物·誠意, 都鍛煉成了, 到得正心·修身處, 只是行將去, 都易了. 蘷孫(68이후).
''' '대학'은 격물과 성의에서 단련(鍛煉)이 모두 끝난다. 정심과 수신의 경우는 그저 쭉 나아가는 것 뿐이니 모두 한결 쉽다.<ref>이 조목은 16:123과 매우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123 致知·誠意·正心, 知與意皆從心出來. 知則主於別識, 意則主於營爲. 知近性, 近體; 意近情, 近用. 端蒙(50이후).
'''치지, 성의, 정심에서 지(知)와 의(意)는 모두 심(心)에서 나온다. 지는 식별(別識)을 주관하고,<ref>이치를 식별하는 일이다. 15:99에서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ref> 의는 영위(營爲)<ref>의도를 가지고 개입하여 일을 처리함을 말한다. 1:18을 참조하라.</ref>를 주관한다. 지는 본성(性), 본체(體)에 가깝다. 의는 감정(情), 작용(用)에 가깝다.<ref>주희의 심리학 체계에 의하면 심(心)은 우리 정신영역을 통틀어 지시하는 말이다. 그 심의 생래적 퀄리티가 성(性)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래적 퀄리티가 현실로 발현된 모습이 정(情)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슬픈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면, 보고 느끼고 슬퍼하고 우는 모든 일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心)이 보고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슬퍼하고 마음이 운 것이니 모두 마음이 주관한 일이다. 이 슬픔은 마음이 타고난 어떤 성질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 발현된 것이다. 발현된 것이 감정이고, 원래 가지고 있던 성질 쪽이 본성이다. 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 15:124 敬之問誠意·正心·修身.
'''경지(敬之)<ref>주희의 삼남인 주재(朱在)이다.</ref>가 성의, 정심, 수신을 질문.
曰: “若論淺深意思, 則誠意工夫較深, 正心工夫較淺; 若以小大看, 則誠意較緊細, 而正心·修身地位又較大, 又較施展.” 賀孫(62이후).
'''대답: 깊이로 논하자면 성의의 노력(工夫)이 더 깊고 정심의 노력이 더 얕다. 크기로 보자면 성의가 더 긴밀하고 세밀하다. 정심과 수신의 영역은 더 크고 더 널리 펼쳐진다.<ref>넓고 크다는 것은 응용의 영역이 넓고 크다는 뜻이다. 예컨대 평천하의 공부는 치국의 공부에 비해 적용 면적이 넓고 크다. 다만 공부의 내용이 얼마나 정밀한가를 따지자면 치국이 평천하보다 정밀하다.</ref>
* 15:125 誠意·正心·修身, 意是指已發處看, 心是指體看. 意是動, 心又是該動靜. 身對心而言, 則心正是內. 能如此修身, 是內外都盡. 若不各自做一節功夫, 不成說我意已誠矣, 心將自正! 則恐懼·好樂·忿懥引將去, 又卻邪了. 不成說心正矣, 身不用管! 則外面更不顧, 而遂心跡有異矣. 須是“無所不用其極”. 端蒙(50이후).
'''성의, 정심, 수신의 경우, 의지(意)는 이미 발출한 지점을 지시한 것이고 마음(心)은 본체(體)를 지시한 것이다. 의지는 움직임이고, 마음은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포함한다.<ref>마음의 여러 측면을 이발과 미발에 배속한 것에 관해서는 5:71을 참조하라.</ref> 몸(身)과 마음(心)을 상대하여 말하면 마음이 바로 안쪽이다. 이렇게 몸을 닦을(修)<ref>'수(修)'는 대개 '닦다'라고 번역하는데, 어떤 기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컨디션을 올리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옷을 수선(修繕)하거나 차량을 수리(修理)한다고 할때도 이 '수'자를 쓴다. 늘 안경을 닦아 깨끗함을 유지하고 화장실의 거울을 닦고 거실 창문을 닦는 것도 '닦다'이다. 더 나은 번역어를 고민해보았으나 딱히 떠오르지 않아 우선은 '닦다'로 해둔다.</ref> 수 있다면 안쪽과 바깥쪽이 모두 남김없이 완전해진다. 만약 각각의 단계에서 고유한 노력(功夫)을 별도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설마하니 '내 의지가 이미 진실하니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라고 할 참인가? 그러면 두려움(恐懼), 좋아함(好樂), 분노(忿懥)<ref>대학 전7장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는 원인으로 두려움, 좋아함, 분노, 근심걱정을 꼽았다.</ref>에 끌려가서 (마음이) 사특해져버릴 것이다. 설마하니 '내 마음이 바르게 되었으니 몸은 돌볼 필요가 없다!'고 할 참인가? 그러면 외면을 더는 돌보지 않아서 결국 마음과 행적에 차이가 생겨버린다. 반드시 '모든 일에서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ref>대학 전 2장.</ref>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6 或問: “意者, 乃聽命於心者也. 今曰‘欲正其心, 先誠其意’, 意乃在心之先矣.”
'''누군가의 질문: 의지(意)는 마음(心)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하라'<ref>대학 경 1장</ref>고 하는데, 의지가 마음의 앞에 있게 됩니다.
曰: “‘心’字卒難摸索. 心譬如水: 水之體本澄湛, 卻爲風濤不停, 故水亦搖動. 必須風濤旣息, 然後水之體得靜. 人之無狀汙穢, 皆在意之不誠. 必須去此, 然後能正其心. 及心旣正後, 所謂好惡哀矜, 與修身齊家中所說者, 皆是合有底事. 但當時時省察其固滯偏勝之私耳.” 僩(69이후).
'''대답: '심(心)'이라는 개념은 포착하기 어렵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물과 같다. 물의 본체(體)<ref>'체(體)'는 보통 '본체'라고 번역하는데 영역자들의 경우 '실체(substance)'나 '본질(essence)'을 선호한다. 여기서는 물의 본질적인 속성을 말한다.</ref>는 맑고 투명(澄湛)하지만, 바람과 파도가 그치지 않아서 물 역시 요동치게 된다. 반드시 바람과 파도가 멈춘 뒤에야 물의 본체가 고요해진다. 사람의 추악하고(無狀) 더러운 행실은 모두 의지가 진실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다. 반드시 이것을 제거한 뒤에야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 마음이 바르게 되고 나서 보면 (대학에서) 이른바 좋아함과 싫어함(好惡), 가엽고 불쌍히 여김(哀矜) 및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부분에서 말하는 것들<ref>대학 전 8장에서는 수신과 제가를 해설하는데, 감정적 치우침으로 인하여 판단력이 흐려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문구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친애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미워하는 감정에 치우쳐 편벽됨이 생기고 외경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애긍심에서 편벽됨이 생기고 거만함에서 편벽됨이 생긴다. 그런데 주희는 대학장구의 이 부분 주석에서 이러한 감정들이 '사람에게 있어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在人, 本有當然之則)'라고 하여 한편으로 긍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감정들이 치우치고 함닉하여 수신과 제가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긴 하지만 한결같이 부정적인 대학 본문의 엄격함에 비하면 주희의 주석은 확실히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ref>이 모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다(合有底事).<ref>대학장구에서 '본래 당연히 가지고 있는 법칙이다(本有當然之則)'고 한 것과 상통한다.</ref> 다만 때때로 그 막히고 치우친 사사로움을 성찰해야 할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壯祖錄疑同聞別出.>
'''<장조(壯祖)의 기록은 동석에서 같은 말을 들은 듯하다. 별도의 조목으로 따로 배치했다.><ref>바로 다음 조목이다. 15:115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 15:127 問: “心者, 身之主; 意者, 心之發. 意發於心, 則意當聽命於心. 今曰‘意誠而后心正’, 則是意反爲心之管束矣, 何也?”
'''질문: 마음(心)은 몸(身)의 주인이고 의지(意)가 마음에서 발출한다면 의지는 당연히 마음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대학에서는)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하니, 의지가 역으로 마음을 통제(管束)하는 꼴이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曰: “心之本體何嘗不正? 所以不得其正者, 蓋由邪惡之念勃勃而興, 有以動其心也. 譬之水焉, 本自瑩淨寧息, 蓋因波濤洶湧, 水遂爲其所激而動也. 更是大學次序, 誠意最要. 學者苟於此一節分別得善惡·取舍·是非分明, 則自此以後, 凡有忿懥·好樂·親愛·畏敬等類, 皆是好事. 大學之道, 始不可勝用矣.” 壯祖(미상).
'''대답: 마음의 본체가 언제 한 번 바르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마음이) 바름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사악(邪惡)한 생각(念)이 뭉게뭉게(勃勃) 일어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물로 비유하자면, 본래는 깨끗하고 고요하지만(瑩淨寧息), 파도가 거칠게 치솟으면(洶湧) 그 결과 물도 격동하게 된다. 더욱이 '대학'의 순서에서는 성의(誠意)가 가장 중요하다. 배우는 이들이 이 대목에서 선악과 취사와 시비의 분별을 명확히 할 수만 있으면 그 이후에 나오는 저 모든 분노(忿懥), 좋아함(好樂), 친애(親愛), 외경(畏敬) 등의 일들이 모두 좋은 일(好事)이다.<ref>'모두 좋은 일'에 관해서는 15:126을 보라. 분노와 좋아함은 15:125를, 친애와 외경은 126을 보라.</ref> '대학'의 도는 이때 비로소 이루 다 쓸 수 없게(不可勝用) 된다.<ref>그 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맹자 7A:23이나 7B:31을 보라.</ref>
장조(壯祖)의 기록.<ref>장조가 주희를 사사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15:126의 원주가 사실이라면 역시 69세 이후에 들은 내용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f>
* 15:128 問: “心如何正?”
'''질문: 마음은 어떻게 바로잡습니까?
曰: “只是去其害心者.” 端蒙(50이후).
'''대답: 마음을 해치는 것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단몽(端蒙)의 기록. (50세 이후)
* 15:129 或問正心修身.
'''어떤 사람이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에 관하여 질문.
曰: “今人多是不能去致知處著力, 此心多爲物欲所陷了. 惟聖人能提出此心, 使之光明, 外來底物欲皆不足以動我, 內中發出底又不陷了.” 祖道(68때).
'''대답: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치지(致知)에 힘을 쓰지 못하여 이 마음이 대부분 물욕에 함닉(陷)당하게 되었다.<ref>주희가 욕망이 마음을 '함'한다고 할 때의 주된 이미지는 사람을 깊은 물에 빠뜨리는(陷溺) 장면이다. 11:5와 13:23을 보라.</ref> 오직 성인만이 이 마음을 끌어내어(提出)<ref>물에 빠진 사람을 붙잡아 끄집어내는 장면을 떠올리면 좋다.</ref> 밝게 만들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밖에서 들어온 물욕이 나를 움직이기 부족하고 안에서 발출한 것도 나를 함닉시키지 못하게 된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130 心纔不正, 其終必至於敗國亡家. 僩(69이후).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 가정을 파멸시키는(敗國亡家) 지경에 이른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31 "誠意正心章, 一說能誠其意, 而心自正; 一說意誠矣, 而心不可不正.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문(問)'자가 이 조목의 제일 앞에 있다. 조선고사본 쪽이 더 합리적이므로 그쪽을 따라 번역한다.</ref>: 修身齊家亦然否?"
질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장은, 어디서는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만 있으면 마음은 저절로 바르게 된다고 하고, 또 다른 데서는 의지가 진실해졌어도 마음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ref>전자는 성의의 완성과 함께 정심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말인 반면 후자는 성의 이후에도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 정심해야 한다는 말이다.</ref>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이와 같습니까?
曰: “此是交會處, 不可不看.”
'''대답: 이것은 두 단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니<ref>성의단계와 정심단계가 교차하고 수신단계와 제가단계가 교차한다는 말이다.</ref> 살피지 않을 수 없다.
又曰: “誠意以敬爲先.” 泳(66때).
또 말함: 성의는 경(敬) 공부가 우선이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32 或問: “正心·修身<ref>매우 많은 판본에서는 '성의(誠意)'로 적혀있다. 다만 주희가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가지고 답변하는 만큼 질문도 정심과 수신이어야 말이 된다. 본 조목과 사실상 동일한 16:166쪽도 정심과 수신의 관계를 질문하고 있다. 전경당본(1876)에서 이러한 근거로 이렇게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ref>, 莫有淺深否?”
'''누군가의 질문: 정심과 수신에 깊고 얕은 차이가 있습니까?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自心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出來. 但正心, 卻是萌芽上理會. 若修身與絜矩等事, 都<ref>직전 교감주와 마찬가지로 전경당본(1876)에서 却을 都로 교감했고 중화서국본도 이쪽을 따르고 있다. 다만 16:166은 却이다. 어느쪽을 택해도 큰 차이는 없으나 이 경우는 특별히 더 강한 근거가 없는 한 却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ref>是各就地頭上理會.”
'''대답: 정심은 마음의 레벨에서 말한 것이고 수신은 실제 사태에 대응하고 처리하는(應事接物) 레벨에서 말한 것이다. 무슨 사태가 됐든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수신과 혈구(絜矩)<ref>대학 전 10장에서 언급한 혈구지도를 말한다. 15:76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같은 것도 모두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정심은 (마음에서 막 틔워나온) 맹아(萌芽)의 레벨에서 탐구하는 것이고 수신과 혈구 같은 일들은 각각의 사례에 나아가 탐구하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6:166과 거의 동일하다.</ref>
* 15:133 毅然問: “‘家齊, 而后國治, 天下平.’ 如堯有丹朱, 舜有瞽瞍, 周公有管蔡, 卻能平治, 何也?”
'''의연(毅然)<ref>황의강(黃義剛)이다.</ref>의 질문: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는데, 요(堯)에게는 단주(丹朱)<ref>요의 아들로 불초자식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고, 순(舜)에게는 고수(瞽瞍)<ref>순의 아버지로 못난 아비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고, 주공에게는 관채(管蔡)<ref>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형제들이다. 못난 형제의 대명사이다.</ref>가 있었는데도 오히려 (나라와 천하를) 다스리고 태평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ref>고대의 성인들은 집안도 다스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냐는 질문이다.</ref>
曰: “堯不以天下與丹朱而與舜, 舜能使瞽瞍不格姦, 周公能致辟于管蔡, 使不爲亂, 便是措置得好了. 然此皆聖人之變處. 想今人家不解有那瞽瞍之父, 丹朱之子, 管蔡之兄, 都不須如此思量, 且去理會那常處.” 淳(61·70때).
'''대답: 요는 천하를 단주에게 주지 않고 순에게 주었으며, 순은 고수가 간사함에 이르지 못하게 했고(不格姦),<ref>서경(書經) 우서(虞書) 요전(堯典)</ref> 주공은 관숙과 채숙을 주살하여(致辟) (주나라의) 혼란거리가 되지 못하게 했으니<ref>서경(書經) 주서(周書) 채중지명(蔡仲之命).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숙은 죽였고 채숙은 가택연금시켰고 곽숙(霍叔)은 서인으로 강등시켰다.</ref> 적절히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성인이 임기응변한(變) 경우이다.<ref>'상(常)'은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적인 윤리이다. 반면에 '변(變)'은 원칙의 준수가 역설적으로 윤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칙을 뒤집음으로써(주로 정 반대 방향을 뒤집는다)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말하자면 '상황윤리'이다. 15:39과 51에서 정도와 상도를 구분한 것을 참조하라.</ref> 생각건대 지금 사람들은 고수와 같은 아버지나 단주와 같은 아들이나 관채와 같은 형이 있을 수 없으니<ref>'불해(不解)'는 cannot이다.</ref>, 전혀 그런쪽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우선은 (성인이) 상도(常)를 쓴 지점을 탐구하라.
순(淳)의 기록. (61세, 70세)
* 15:134 “壹是”, 一切也. 漢書平帝紀“一切”, 顔師古注: “猶如以刀切物, 取其整齊.” 泳(66때).
''' '일시(壹是)'는 일체(一切)라는 뜻이다.<ref>대학 경 1장의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라는 구문의 자구풀이이다.</ref> 한서(漢書) 평제기(平帝紀)의 '일체(一切)'에 대한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에서 '마치 칼로 물건을 자른 것 같다는 뜻으로, 그 가지런하다는(整齊) 속성을 취한 것이다.<ref>다수의 물건의 크기와 모양, 배치 간격 등이 고르고 가지런한 모양을 말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한서 평제기 원문과 그에 대한 안사고의 주석은 원시(元始) 원년(元年) 춘정월 조에 보인다. 글자에 약간의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
영(泳)의 기록. (66세)
* 15:135 李從之問: “‘壹是皆以修身爲本’, 何故只言修身?”
'''이종지(李從之)<ref>'주자문인' p.84 에서는 이덕지(李德之)의 오기로 본다.</ref>의 질문: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ref>대학 경 제 1장</ref>고 했는데, 왜 그저 수신만 말합니까?
曰: “修身是對天下國家說. 修身是本, 天下國家是末. 凡前面許多事, 便是理會修身. ‘其所厚者薄, 所薄者厚’, 又是以家對國說.” 㽦(59때).
'''대답: 수신은 천하, 국, 가에 상대해서 말한 것이다. 수신이 근본이고 천하, 국, 가는 말단이다.<ref>위 인용구에 이어서 대학 경 1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그 근본이 어지럽고서 말단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으며, 후하게(厚) 할 것을 박하게(薄) 하고 박하게(薄) 할 것을 후하게(厚) 하는 경우는 존재한 적이 없다(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이에 대한 주희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근본은 몸(身)을 말하고 후하게 할 것은 집안(家)을 말한다(本, 謂身也, 所厚, 謂家也).'</ref> 무릇 (팔조목) 앞부분의 여러 일들은<ref>격물, 치지, 성의, 정심을 말한다.</ref> 수신의 실천이다. '후하게 할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하게 할 것을 후하게 한다'는 것은 집안(家)<ref>후하게 할 것이다.</ref>을 나라(國)<ref>박하게 할 것이다.</ref>에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순(㽦)의 기록. (59세)
* 15:136 問: “大學解: ‘所厚, 謂家.’ 若誠意正心, 亦可謂之厚否?”
'''질문: '대학'의 해설서<ref>대학장구를 말한다.</ref>에서 '후하게 할 것은 집안이다'<ref>15:135를 보라.</ref>라고 했는데, 성의와 정심 역시 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曰: “不可. 此只言先後緩急. 所施則有厚薄.” 節(64이후).
'''대답: 불가하다. 이는<ref>격물부터 수신까지의 단계를 말하는 듯하다.</ref> 단지 선후와 완급을 말할 뿐이다.<ref>격물부터 수신까지는 시간적 순서와 시급성의 순서를 기준으로 이와 같이 정렬한 것일 뿐이다. '격물에게 후하게 베풀어주고 성의에게 덜 베풀어준다' 같은 말은 어색하다.</ref> 베푸는 바에는<ref>제가 이후부터는 수양의 결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이므로 '베푸는' 단계이다.</ref> 후하고 박하고가 있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37 問: “大學之書, 不過明德·新民二者而已. 其自致知·格物以至平天下, 乃推廣二者, 爲之條目以發其意, 而傳意則又以發明其條目者. 要之, 不過此心之體不可不明, 而致知·格物·誠意·正心, 乃其明之之工夫耳.”
'''질문: '대학'이라는 책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 두 가지일 뿐입니다.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의 여덟 조목은) 곧 이 두 가지를 확장하여 (이 두 가지를 위한) 조목으로 삼아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드러낸 것이며, 전(傳)<ref>대학은 가장 앞쪽인 경 1장에서 팔조목을 대략적으로 소개한 후 그 뒤의 전(傳)에서 다시 자세히 설명한다.</ref>의 뜻은 다시 그 조목들(의 의미를) 밝힌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이 마음의 본체는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치지, 격물, 성의, 정심이 바로 그것을 밝히려는 공부(工夫)인 것에 불과합니다.
曰: “若論了得時, 只消‘明明德’一句便了, 不用下面許多. 聖人爲學者難曉, 故推說許多節目. 今且以明德·新民互言之, 則明明德者, 所以自新也; 新民者, 所以使人各明其明德也. 然則雖有彼此之間, 其爲欲明之德, 則彼此無不同也. 譬之明德卻是材料,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 卻是下工夫以明其明德耳. 於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之際, 要得常見一箇明德隱然流行于五者之間, 方分明. 明德如明珠, 常自光明, 但要時加拂拭耳. 若爲物欲所蔽, 卽是珠爲泥涴, 然光明之性依舊自在.” 大雅(49이후).
'''대답: 다 깨닫고(了得) 난 시점으로 논하자면 '명명덕(明明德)' 한 구절만 있으면 되니, 그 아래에 붙은 저 많은 것들이 다 불필요하다. 성인은 배우는 이들이 (명명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저 많은 단계들을 (두고 상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제 먼저 명덕과 신민을 짝지어 말하자면, 명명덕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신민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자신의 명덕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냐 타인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덕을 밝히고자 하는 점에 있어서는(其爲欲明之德)<ref>이 구문을 축자역하면 '그 밝히고자 하는 덕이 됨'이 된다. 직역으로 무난하게 풀어낼 자신이 없으므로 일단 이렇게 의역해둔다.</ref> 서로 차이가 없다. 비유하자면 명덕은 원재료이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애써 노력하여(下工夫) 그 명덕을 밝히려는 것이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의 단계에서 항상 명덕이 은연중에 이 다섯 가지 사이에서 흐르고 있음을 보아야만 비로소 (우리의 이해가) 분명해진다. 명덕은 마치 밝은 구슬(明珠)과 같아서 항상 스스로 밝게 빛나긴 하지만 그래도 때때로 털고 닦아주어야 한다. 만약 물욕이 뒤덮어버리면(蔽),<ref>통상적으로 이 글자는 '가리다' '가리워지다'로 번역한다. 하지만 '가리다'는 이 글자의 본래 이미지가 바가지나 이불 같은 것으로 휙 덮어버리는 것, 혹은 진흙 같은 것을 쏟아부어 뒤덮어버리는 것임을 잘 드러내주지 못한다.</ref> 구슬은 진흙에 오염되겠지만, 그래도 저 빛나는 성질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以下總論綱領·條目.>
'''<이하의 조목들은 대학의 강령과 조목들에 대한 총론>
* 15:138 大學“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此三箇是大綱, 做工夫全在此三句內. 下面知止五句是說效驗如此. 上面是服藥, 下面是說藥之效驗. 正如說服到幾日效如此, 又服到幾日效又如此. 看來不須說效亦得, 服到日子滿時, 自然有效. 但聖人須要說到這田地, 敎人知“明明德”三句. 後面又分析開八件: 致知至修身五件, 是明明德事; 齊家至平天下三件, 是新民事. 至善只是做得恰好. 後面傳又立八件, 詳細剖析八件意思. 大抵閑時喫緊去理會, 須要把做一件事看, 橫在胸中, 不要放下. 若理會得透徹, 到臨事時, 一一有用處. 而今人多是閑時不喫緊理會, 及到臨事時, 又不肯下心推究道理, 只說且放過一次亦不妨. 只是安于淺陋, 所以不能長進, 終於無成. 大抵是不曾立得志, 枉過日子. 且如知止, 只是閑時窮究得道理分曉, 臨事時方得其所止. 若閑時不曾知得, 臨事如何了得? 事親固是用孝, 也須閑時理會如何爲孝, 見得分曉, 及到事親時, 方合得這道理. 事君亦然. 以至凡事都如此.
''' '대학'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 이 세 가지가 큰 줄기(大綱)이니, 실제로 힘을 쓰는(工夫) 것은 전적으로 이 세 구 안에 있다. 그 아래 '지지(知止)'로 시작하는 다섯 구는<ref>정/정/안/려/득의 다섯 항목을 말한다. 권 14의 말미에 자세하다. 예컨대 14:157과 158을 보라.</ref> 그 효험이 이와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위는<ref>삼강령이다.</ref> 약을 복용하는 것이고, 아래는<ref>정/정/안/려/득이다.</ref> 약의 효험을 말한 것이다. 마치 복용한지 며칠이 지나면 효과가 이러하고, 다시 며칠 복용하면 효과가 또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만 보니 효험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복용을 시작하여 날짜가 차면 자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단, 성인은 반드시 이 지점까지 설명하여 사람들이 '명명덕' 세 구에 대하여 잘 알게 하려고 한 것뿐이다. 그 다음 부분에서 다시 여덟 건을<ref>경 1장에서 설명한 격/치/성/정/수/제/치/평의 팔조목이다.</ref> 분석하는데, 치지에서 수신까지 다섯 건은 명명덕의 일이고, 제가에서 평천하까지 세 건은 신민의 일이다. 지어지선은 단지 (명명덕과 신민을) 잘 해낸다는 것이다. 그 뒤의 전(傳) 부분에서 여덟 건을 세워서 팔조목의 의미를 상세히 분석한다.<ref>전 1장부터 10장까지에서 순차적으로 팔조목을 설명한 것을 말한다.</ref> 대체로 한가할 때 절실히(喫緊) 헤아려서, 반드시 한 번에 한 건씩 주목하여 마음 한켠에 걸어두고(橫在胸中)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투철하게 이해하면 실제 사태에 직면했을 적에 하나하나 다 쓸모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한가할 때도 절실하게 헤아리려하지 않고,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도 기꺼이 심력을 다해 도리를 탐구하려하지 않으며, 그저 '한 번 쯤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저 천박하고 비루한(淺陋) 식견에 안주해버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끝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이는 대개 한 번도 마음의 지향점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여(立得志) 하루하루 헛되이 시간만 보내서(枉過)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한가할 때 도리를 철저히 탐구하여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 사태에 직면할 적에 비로소 그 멈출 곳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得其所止). 만약 한가할 때 이해해두지 않으면 실제 사태에 직면하여 어떻게 일을 제대로 처리할(了得) 수 있겠나? 부모를 모시는 데에는 물론 당연히 효(孝)의 도리를 사용하지만, 역시 한가할 때 어떻게 해야 효(孝)가 되는 건지 헤아려서 분명히 알아두어야만 실제로 부모를 모실 때가 되었을 때 이 도리에 부합할 수 있다. 임금을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다.
又問: “知止, 是萬事萬物皆知得所止, 或只指一事而言?”
'''재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 같은 경우, 모든 사태와 모든 사물에 있어 각각 멈출 지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한 가지 사안만 가리켜 말한 것입니까?
曰: “此徹上徹下, 知得一事, 亦可謂之知止.”
'''대답: 한 가지 일을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역시 '멈출 곳을 알았다(知止)'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又問: “上達天理, 便是事物當然之則至善處否?”
'''재질문: '위로 천리에 통달하고...(上達天理)'<ref>논어 14:37</ref>는 바로 사태와 사물의 '당연(當然)한 법칙(則)'<ref>법칙에는 두 가지 구분되는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만유인력의 법칙'의 경우처럼 어떠한 현상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게임의 법칙'의 경우처럼 우리가 어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룰을 말한다. 전자와 같은 의미를 주희는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라고 하고 후자와 같은 의미는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이라고 한다. 대학혹문 11장, 주자어류 17:43 등을 참조하라.</ref>이요 지극히 선한 지점(至善處) 아닙니까?
曰: “只是合禮<ref>조선고사본은 '理'이다. 여기서는 '예'로 두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ref>處, 便是天理. 所以聖人敎人致知·格物, 亦只要人理會得此道理.”
'''대답: 그저 예(禮)에 합치하는 지점이 곧 천리(天理)이다. 성인이 사람들에게 치지격물하도록 한 까닭 역시 그저 사람들이 이 도리를 이해하게 하려고 해서였을 뿐이다.
又問: “大學'表裏精粗'如何?”
'''재질문: '대학'에서 '바깥쪽 측면과 안쪽 측면, 정밀한 부분과 거친 부분(表裏精粗)'<ref>대학장구 전 5장.</ref>은 어떻습니까?
曰: “自是如此. 粗是大綱, 精是裏面曲折處.”
'''대답: 말 그대로다. 거친 부분은 큰 틀(大綱)이고 정밀한 부분은 안쪽의 상세한(曲折) 부분이다.
又曰: “外面事要推闡, 故'齊家而后治國, 平天下'; 裏面事要切己, 故修身·正心, 必先誠意. 致知愈細密.”
'''다시 말함: 바깥쪽 일은 미루어 드러내야(推闡)<ref>불명확한 도리를 추론하여(推) 명백하게 설명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闡) 것이다.</ref> 하므로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다.'고 하였다. 안쪽 일은 자신에게 절실해야 하므로 '몸을 닦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의지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앎을 지극히하는 것은 더욱 정밀한 작업이다.
又問眞知.
'''다시 '진정한 앎(眞知)'이 무엇인지 질문.
曰: “曾被虎傷者, 便知得是可畏. 未曾被虎傷底, 須逐旋思量箇被傷底道理, 見得與被傷者一般, 方是.” 明作(63이후).
'''대답: 호랑이에게 다쳐본 사람은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호랑이에게 다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차근차근 '호랑이에게 다침'의 도리를 잘 생각해서 호랑이에게 정말 다쳐본 사람과 똑같이 (호랑이의 무서움에 대하여 절실하게) 알게 되어야 한다.<ref>호랑이 이야기의 원조는 이정유서 2上:24이다.</ref>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39 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 大學中大抵虛字多. 如所謂“欲”·“其”·“而后”, 皆虛字; “明明德·新民·止於至善”, “致知·格物·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實字. 今當就其緊要實處著工夫. 如何是致知·格物以至于治國·平天下? 皆有節目, 須要一一窮究著實, 方是. 道夫(60이후).
'''격물과 치지는 그 멈출 곳을 알고자하는(知其所止)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그 멈출 곳을 얻고자하는(得其所止) 것이다. 물격(物格)과 지지(知至)는 그 멈출 곳을 안 것이고, 의성, 심정, 신수, 가제, 국치, 천하평은 그 멈출 곳을 얻은 것이다. '대학'에는 대체로 허자(虛字)가 많다. 이른바 '원하다(欲)', '그(其)', '이후에(而后)'는 모두 허자이고,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 치지, 격물,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실자(實字)이다. 이제 응당 그 중요하고 실질적인 지점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치지하고 격물하여 치국과 평천하까지 이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대학에) 모두 각각의 단계가 있으니 하나하나 착실하게 탐구하여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0 自“欲明明德於天下”至“先致其知”, 皆是隔一節, 所以言欲如此者, 必先如此. “致知在格物”, 知與物至切近, 正相照在. 格物所以致知, 物才格, 則知已至, 故云在, 更無次第也. 閎祖(59이후).
'''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에서부터 '...먼저 앎을 지극히해야 한다.'라는 구절까지 모두 한 단계 간격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ref>팔조목 가운데 뒤의 일곱조목간의 관계는 모두 'ㅇㅇ하려면 먼저 ㅇㅇ한다'의 형식으로 서술하지만 마지막 두 조목인 치지와 격물의 관계에 대해서만 이렇게 간단하게 서술한다.</ref>고 (특이하게 말)한 것은 지(知)와 물(物)이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하고(相照) 있기 때문이다.<ref>소박하게 설명하자면 인식이라는 이벤트는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객체가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므로 격물(인식대상에 접근하여 탐구)과 치지(탐구의 결과 앎을 획득)는 동일한 이벤트를 각각 객체쪽과 주체쪽에서 해설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조목은 '지극히 밀접'하여 '정확히 서로 조응'한다.</ref> 사물을 탐구하여 그로써 앎이 지극해지는 것이니, 사물이 탐구되자마자 앎은 이미 지극하다. 그래서 '~에 있다(在)'고 말하고 별도의 선후 순서가 없는 것이다.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141 大學“明明德於天下”以上, 皆有等級. 到致知格物處, 便較親切了, 故文勢不同, 不曰“致知者先格其物”, 只曰“致知在格物”也. “意誠而后心正”, 不說是意誠了便心正. 但無詐僞便是誠. 心不在焉, 便不正. 或謂但正心, 不須致知·格物, 便可以修身·齊家, 卻恐不然. 聖人敎人窮理, 只道是人在善惡中, 不能分別得, 故善或以爲惡, 惡或以爲善; 善可以不爲不妨, 惡可以爲亦不妨. 聖人便欲人就外面攔截得緊, 見得道理分明, 方可正得心, 誠得意. 不然, 則聖人告顔子, 如何不道非禮勿思, 卻只道勿視聽言動? 如何又先道“居處恭, 執事敬”, 而後“與人忠”?“敬”字要體得親切, 似得箇“畏”字.
''' '대학'에서 '명명덕을 천하에 밝힌다' 다음의 것들은 모두 (뚜렷하게) 등급이 나눠지는데 치지와 격물에 이르러서는 (양자 사이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더 긴밀하다.<ref>이 부분은 직전 조목의 설명을 참조하라.</ref> 그래서 문세(文勢)가 달라지는데, '앎을 지극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사물을 탐구한다'고 하지 않고 그저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할 뿐이다.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의 경우, 의지가 진실해지기만 하면 마음이 곧바로 바르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기만과 작위가 없기만하면 곧 '진실(誠)'하다. (이에 더하여) 마음을 여기에 두지 않으면(心不在焉)<ref>대학장구 전 7장. '마음이 여기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ref> 바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그저 마음만 바르게 하면(正心) 치지도 격물도 필요 없이 바로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인이 사람들로하여금 이치를 탐구하게 한 것은 그저 (다음과 같은) 이런 말이다(只道).<ref>여기서부터 '성득의(誠得意)' 까지가 궁리(窮理) 공부의 취지를 설명한 것이다.</ref> 사람은 선악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여 때로는 선을 악으로 오인하고 악을 선으로 오인한 결과 선은 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악은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성인은 사람들이 바깥쪽을 단단히 막아내고(攔截)<ref>뒤에서 언급될 '비례물시'의 경우처럼 행동거지를 잘 다스려 악을 멀리하고 도리를 견지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란절(攔截)은 길을 막아 적의 전진을 돈좌(頓挫)시키는 행위를 말한다.</ref> 도리를 분명히 보기를 바랐으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得心) 의지를 진실하게 할 수 있다(誠得意).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안자(顔子)에게 왜 '예가 아니면 생각하지 말라(非禮勿思)'<ref>만약 이렇게 말했으면 공자는 안회에게 어떤 도덕심리상의 공부, 예컨대 성의나 정심 공부를 주문한 것이 된다.</ref>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실행하지도 말라(勿視聽言動)'고만 말했겠나?<ref>논어 12:1. 이른바 '극기복례'장을 말한다.이는 모두 구체적인 행실과 행동거지의 레벨에서 악을 경계하라는 것이니 성의나 정심과 같은 도덕심리 레벨에서의 공부와는 범주가 다르다.</ref> 왜 또 먼저 '집에서 기거할 적에는 공손하고, 나가서 집무할 때에는 경건하라(居處恭, 執事敬)'고 말한 뒤에야 '남과 교제할 적에 진심을 다하라(與人忠)'고 했겠나?<ref>논어 13:19. 거처공과 집사경은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이고 여인충은 마음의 진실성을 점검하는 도덕심리 공부이다. 전자를 후자보다 우선했다는 주장이다.</ref> '경건하라(敬)'는 글자는 친근하고 절실하게 체득해야 한다. '두려움(畏)'<ref>일을 처리할 적에 경건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처리가 미칠 파장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신함을 말한다. 이는 '두려움'의 정서에 가깝다.</ref>과 비슷하다.<ref>이 조목은 전체적으로 두서가 없다. 주희는 어디선가 접한 잘못된 입장을 세운 뒤 그것을 공박하려고 한다. 이때 문제의 '잘못된 입장'은 도리에 대한 지적인 탐구와 이해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도덕의지와 정서, 정념 같은 심리적인 힘을 고양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스탠스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을 논박하려면 이지적인 탐구와 이해의 중요성, 즉 '궁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더니 금방 일상에서 몸가짐을 다스리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쪽으로 빠져버린다.</ref>'''
<銖記:先生嘗因諸生問敬宜何訓, 曰: “是不得而訓也. 惟‘畏’庶幾近之.” 銖云: “以‘畏’訓‘敬’, 平淡中有滋味.” 曰: “然.”> 榦(미상).
'''<수(銖)의 기록: 선생은 일찍이 '경'자를 어떻게 풀이(訓)<ref>위에서 말한 것처럼 'A라는 글자는 B라는 글자와 뜻이 같다.'는 식의 글자풀이를 말한다.</ref>해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이는 풀이할(訓) 수 없다. 오직 '두려움(畏)'이 가장 가까울 뿐이다'라고 하였다. 내가(銖) '경을 외로 풀이하니 담박한(平淡) 가운데 깊은 맛이 있다(滋味)'고 했다.<ref> '평담(平淡)'은 맛으로 치면 물과 같은 것이다. '경' 같은 단어의 뜻은 특수한 학문적 맥락에 의존하고 있는데 반해 '외'는 일상언어에 가까우므로 그 평범성과 일상성을 물맛에 비긴 것이다. 다만 평범하고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입 안에 넣고 굴려보면 그 안에 비범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바로 '자미(滋味)가 있다'이다. 비슷한 표현이 26:93에 보이니 참조하라.</ref> 선생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간(榦)의 기록.
* 15:142 “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 <至>"致知在格物.” “欲”與“先”字, 謂如欲如此, 必先如此, 是言工夫節次. 若“致知在格物”, 則致知便在格物上. 看來“欲”與“先”字, 差慢得些子, “在”字又緊得些子. 履孫(65때).
''' '명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부터>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에 관해서는, '하고자 한다면(欲)'과 '먼저(先)'라는 글자는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欲) 반드시 먼저(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부의 단계별 순서를 말한 것이다. '치지가 격물에 있다'같은 경우 치지가 바로 격물에 있다는 것이다.<ref>치지가 격물에 수반한다는 말이다.</ref> 내 생각에 '하고자 한다면'과 '먼저'라는 글자는 (앞 조목과 뒷 조목을 연결시키는 정도가)<ref>이 부분은 일역판의 의견을 따랐다.</ref> 조금 느슨하고, '있다(在)'는 글자는 그보다 조금 더 긴밀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143 大學言‘物格而后知至', <止>'天下平.’ 聖人說得寬. 不說道能此卽能彼, 亦不說道能此而後可學彼. 只是如此寬說, 後面逐段節節更說, 只待人自看得如何. 振(미상).
''' '대학'에서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진다' 부터 '천하가 태평해진다'까지는 성인이 느슨하게 말하였다(說得寬). '이것을 잘 하면 저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고 '이것을 잘 하게 된 이후에 저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느슨하게 말해놓고 뒷부분에서는 순서대로 조목조목 다시 설명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스스로 어떻게 이해할지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그저 기다릴(待)<ref>이 '기다린다'는 표현은 책을 저술해놓고 서문의 말미에 자주 사용한다. 자신이 할 일은 다 했으니 훗날의 독자가 내 저술의 취지를 제대로 알아줄지 말지는 내 손을 떠난 문제이므로 훗날의 일로 맡겨놓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다.</ref> 뿐이다.
진(振)의 기록.
* 15:144 蔡元思問: “大學八者條目, 若必待行得一節了, 旋進一節, 則沒世窮年, 亦做不徹. 看來日用之間, 須是隨其所在而致力: 遇著物來面前, 便用格; 知之所至, 便用致; 意之發, 便用誠; 心之動, 便用正; 身之應接, 便用修; 家便用齊; 國便用治, 方得.”
'''채원사(蔡元思)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을 만약 반드시 한 조목을 완전히 해내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 단계로 점차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도 다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일상생활 중에 처한 상황에 따라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어떤 사물과 조우하여 그것이 눈앞에 이르면 격물을 사용하고, 앎이 이르는 곳에서는 치지를 사용하며, 의지가 발출하면 성의를 사용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정심을 사용하고, 몸이 사태와 사물을 접하고 응대할(應接) 때면 수신을 사용하며, 집안에서는 제가를 사용하고, 나라에서는 치국을 사용해야만 됩니다.
曰: “固是. 他合下便說‘古之欲明明德於天下’, 便是就這大規模上說起. 只是細推他節目緊要處, 則須在致知·格物·誠意迤邐做將去”云云.
'''대답: 물론 그렇다. '대학'에서 (팔조목을 언급하는) 첫 시작을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전체적인 구조를 거론한 것이다. 단지 그 조목들 가운데 긴요한 곳을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치지, 격물, 성의부터 순서대로 해나가야 한다. (후략)
又曰: “有國家者, 不成說家未齊, 未能治國, 且待我去齊得家了, 卻來治國; 家未齊者, 不成說身未修, 且待我修身了, 卻來齊家! 無此理. 但細推其次序, 須著如此做. 若隨其所遇, 合當做處, 則一齊做始得.” 僩(69이후).
'''다시 대답: 국(國)과 가(家)를 가진 자가 설마하니 '집안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으니 나라를 아직 다스릴 수 없구나. 우선 가서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말할 것인가? 집안을 아직 다스리지 못한 자가 설마하니 '몸이 아직 닦이지 않았으니 우선 몸을 제대로 닦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와서 집안을 다스리겠다'고 말하겠는가? 그런 이치는 없다. 그러나 그 순서를 세밀하게 따져보자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ref>격물치지부터 치국평천하까지의 정방향 순서를 말하는 것이다.</ref> 일상에서 조우하는 상황에 따라 마땅한 것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모든 공부를) 일제히 수행해야만 한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145 大學自致知以至平天下, 許多事雖是節次如此, 須要一齊理會. 不是說物格後方去致知, 意誠後方去正心. 若如此說, 則是當意未誠, 心未正時有家也不去齊, 如何得! 且如“在下位不獲乎上”數句, 意思亦是如此. 若未獲乎上, 更不去治民, 且一向去信朋友; 若未信朋友時, 且一向去悅親, 掉了朋友不管. 須是多端理會, 方得許多節次.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知, 不是做一件淨盡無餘, 方做一件. 若如此做, 何時得成! 又如喜怒上做工夫, 固是; 然亦須事事照管, 不可專於喜怒. 如易損卦“懲忿窒慾”, 益卦“見善則遷, 有過則改”, 似此說話甚多. 聖人卻去四頭八面說來, 須是逐一理會. 身上許多病痛, 都要防閑. 明作(63이후).
''' '대학'에서 치지부터 평천하까지 많은 일들이 비록 순서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그래도 일제히 힘써야(理會) 한다. 사물을 탐구한 후에야 비로소 앎을 지극히하러 가고, 의지가 진실해진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바르게하러 간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의지가 아직 진실하지 못하고 마음이 아직 바르지 못한 때에는 집안이 있더라도 집안을 다스리러 가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이럴 수 있겠나! 예를들어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등의 몇 구절도 이와 같은 의미이다.<ref>맹자 7A:12와 중용 제 20장에 비슷한 구문이 있다. 다음은 맹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는 데 길이 있으니,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벗에게 믿음을 받는데 길이 있으니, 어버이를 섬겨 기쁨을 받지 못하면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데 길이 있으니, 몸을 돌이켜봄에 성실하지 못하면 어버이에게 기쁨을 받지 못할 것이다. 몸을 성실히 하는데 길이 있으니, 선(善)을 밝게 알지 못하면 그 몸을 성실히 하지 못할 것이다(居下位而不獲於上, 民不可得而治也. 獲於上有道, 不信於友, 弗獲於上矣. 信於友有道, 事親弗悅, 弗信於友矣. 悅親有道, 反身不誠, 不悅於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其身矣).' 팔조목을 치국부터 성의까지 역순으로 나열한 것과 비슷한 논조이다.</ref>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을 때 다시 백성을 다스리는 쪽으로 가지 않고 전적으로 벗에게 믿음을 받는 쪽만 신경써버리고, 벗에게 믿음을 받지 못할 때도 전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쪽만 신경써버려서 벗과의 관계는 완전히 방기하여 돌보지 않는다. 반드시 다방면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저 여러가지 단계들은 성인 역시 간략하게 선후를 구분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준<ref>여(與)는 오늘날 중국어 'gei(給)'와 같다.</ref> 것일 뿐이니 한 단계를 깨끗하게 해내고 나서야 다음 단계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대체 어느때 다 성취할 수 있겠나!<ref>이 지점까지는 이전 몇 조목과 그 논조가 같으므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ref> 또, 기쁨과 노여움(喜怒)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옳다. 다만 역시 사안마다 돌봐야 하며, 기쁨과 노여움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ref>화제가 기쁨과 노여움으로 옮겨간 것에는 어떤 대화의 맥락이 작용했음이 틀림 없으나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ref> '주역'의 손괘(損卦)에서는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懲忿窒慾)'<ref>주역 손괘 상전.</ref>고 하고, 익괘(益卦)에서는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見善則遷, 有過則改)'<ref>주역 익괘 상전.</ref>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말이 매우 많다. 성인은 온갓 방면(四頭八面)에 관하여 다 말하였으니, 하나하나 공을 들여 살펴야 한다. 일신상의 수많은 병통에 대하여 모두 방비해야 한다.
명작(明作)의 기록. (63세 이후)
* 15:146 問: “知至了意便誠? 抑是方可做誠意工夫?”
'''질문: '앎이 지극해지면 의지는 바로 진실해집니까? 아니면 그제서야 의지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曰: “也不能恁地說得. 這箇也在人. 一般人自便能如此. 一般人自當循序做. 但知至了, 意誠便易. 且如這一件事知得不當如此做, 末梢又卻如此做, 便是知得也未至. 若知得至時, 便決不如此. 如人旣知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豈肯更試去食烏喙, 蹈水火! 若是知得未至時, 意決不能誠.”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이것도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절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응당 순서에 따라 실천해야 한다. 단, 앎이 지극해지고나면 의지가 진실해지는 것은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다시 그렇게 하고 말았다면 이는 앎이 아직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앎이 지극해진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이미 오훼(烏喙)<ref>각시투구꽃의 뿌리덩이로 초오(草烏)라고도 한다. 오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덩이가 부자(附子)인데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알칼로이드 독성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사약의 주 성분으로 독성이 매우 강하지만 양을 조절하여 약용으로도 쓴다.</ref>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과 물구덩이와 불구덩이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했을 때, 그가 어찌 다시 오훼를 한 번 먹어보고 물구덩이와 불구덩이를 한 번 밟아보려 하겠나?<ref>그렇게 하면 죽는다는 걸 지극하게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그걸 먹거나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100% 진심인 것이다.</ref> 앎이 지극하지 못할 때 의지는 결코 진실해질 수 없다.
問: “知未至之前, 所謂愼獨, 亦不可忽否?”
'''질문: 앎이 지극해지기 전에도 이른바 '신독(愼獨)'<ref>중용 제 1장에서 '계신공구'에 뒤이어 나오는 구절이다. '독'은 남들은 모르고 나 혼자 아는 내 마음 속 생각들이다. 그런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참을 기미(幾)라고 하는데, 악한 생각 삿된 생각이 막 비져나오는 기미를 경계하고 살피는 공부가 '신독'이다. 이는 일종의 성의에 해당하므로 여기서 제자는 '격물치지를 완수하기 이전에도 성의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 되는 거지요?'라고 물은 것이다. 15:113을 참조하라.</ref>을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曰: “也不能恁地說得. 規模合下皆當齊做. 然這裏只是說學之次序如此, 說得來快, 無恁地勞攘, 且當循此次序. 初間‘欲明明德於天下’時, 規模便要恁地了. 旣有恁地規模, 當有次序工夫; 旣有次序工夫, 自然有次序功效: ‘物格, 而后知至; 知至, 而后意誠; 意誠, 而后心正; 心正, 而后身修; 身修, 而后家齊; 家齊, 而后國治; 國治, 而后天下平.’ 只是就這規模恁地廣開去, 如破竹相似, 逐節恁地去.” 㝢(61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큰 틀(規模)에서는 원래부터 모두 일제히 해야 한다. 여기서는 배움의 순서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요, 빠르게 설명하면 그렇게 번잡하지도 않으니 일단은 이 순서를 따라야 한다. 처음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다면'이라고 한 것은 큰 틀은 이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틀이 잡힌 다음에는 반드시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어야 한다. 순서에 따른 공부가 있으면 자연히 순서에 따른 효과가 있다. '사물이 탐구된 이후에 앎이 지극해지고,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며,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이며, 몸이 닦인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며,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ref>이것이 순서대로 노력한 결과 순서대로 체감하는 효과이다.</ref> 단지 이 큰 구도(規模) 속에서 이렇게 확장해 나가야 한다. 마치 대나무를 쪼개듯이 각각의 마디를 따라 이렇게 해나가야 한다.<ref>대나무 쪼개기의 비유는 15:114를 보라. 여덟 마디가 있는 대나무를 세로방향으로 쪼개면 각각의 마디를 순서에 따라 파죽지세로 쪼개나가게 된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147 說大學次序, 曰: “致知·格物, 是窮此理; 誠意·正心·修身, 是體此理; 齊家·治國·平天下, 只是推此理. 要做三節看.” 雉(미상).
''' '대학'의 순서를 설명함: 치지와 격물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성의, 정심, 수신은 이치를 체득(體)하는 것이며, 제가, 치국, 평천하는 이치를 미루어 확장하는(推) 것이다.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치(雉)의 기록.
* 15:148 大學一篇卻是有兩箇大節目: 物格·知至是一箇, 誠意·修身是一箇. 才過此二關了, 則便可直行將去. 泳(66때).
''' '대학'에는 모두 두 개의 중요한 단계가 있다.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이고, 성의수신(誠意修身)이 하나이다. 이 두 관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일직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149 物格·知至, 是一截事; 意誠·心正·身修, 是一截事; 家齊·國治·天下平, 又是一截事. 自知至交誠意, 又是一箇過接關子; 自修身交齊家, 又是一箇過接關子. 賀孫(62이후).
''' 물격지지(物格知至)가 하나의 덩어리이고, 의성(意誠)과 심정(心正)과 신수(身修)가 또 하나의 덩어리이며, 가제(家齊)와 국치(國治)와 천하평(天下平)이 또 하나의 덩어리이다. 지지(知至)와 성의(誠意)의 교차점이 두 영역이 연접한 관문(過接關子)<ref>과접(過接)은 두 영역이 붙어있어서(接) 그 경계선을 통과(過)할 수 있는 지점이다. 68:28에서 봄과 가을을 겨울과 여름이라는 두 영역 사이의 '과접처'라고 설명한 것을 참조하라. 관자(關子)는 관문이다.</ref>이고, 수신(修身)에서 제가(齊家)의 교차점이 또 두 영역이 연접한 또 하나의 관문이다.<ref>본 조목에서는 팔조목을 '공부형'(격물 치지 성의)로 쓰기도 하고 '완성형'(물격 지지 의성)으로 쓰기도 하는데 딱히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두 개의 관문을 소개할 적에 전자를 '지지와 성의의 관문'이라고 소개했으면 그 뒤쪽 관문은 응당 '신수와 제가'의 관문이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또 신수가 아니라 '수신'이라고 쓴다. 어째서 그런지 이유는 알기 어렵다.</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0 自格物至修身, 自淺以及深; 自齊家至平天下, 自內以及外. 敬仲(62때).
'''격물에서 수신까지는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요,<ref>15:124에서는 성의가 깊고 정심은 얕다고 했다.</ref> 제가에서 평천하까지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경중(敬仲)의 기록. (62세)
* 15:151 或問: “格物·致知, 到貫通處, 方能分別取舍. 初間亦未嘗不如此, 但較生澀勉强否?”
'''누군가의 질문: 격물과 치지는 관통하는 경지(貫通處)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시비선악을) 취사분별을 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초기에도 이렇게 (취사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상대적으로 생소하여 애써가며 해야하는 것 뿐이지 않습니까<ref>숙련자가 힘을 빼고 하는 일을 초심자가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ref>?
曰: “格物時是窮盡事物之理, 這方是區處理會. 到得知至時, 卻已自有箇主宰, 會去分別取舍. 初間或只見得表, 不見得裏; 只見得粗, 不見得精. 到知至時, 方知得到; 能知得到, 方會意誠, 可者必爲, 不可者決不肯爲. 到心正, 則胸中無些子私蔽. 洞然光明正大, 截然有主而不亂, 此身便修, 家便齊, 國便治, 而天下可平.” 賀孫(62이후).
'''대답: '격물'의 단계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는 때이니, 이는 곧 (사물과 사태에 대하여) 처리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지지(知至)'의 단계에 이르면 이미 주체성(主宰)이 생겨 취사분별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간혹 겉만 보고 속은 보지 못하거나, 거친 스케치만 보고 정밀한 디테일은 보지 못한다. 앎이 지극해짐(知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겉과 속, 거침과 정밀함을 모두) 알게 된다. 알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의지가 성실해질 수 있어서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은 결코 하지 않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되면(心正) 가슴 속을 뒤덮은(蔽)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어서 투명하게(洞然) 광명정대(光明正大)하며,<ref>'뒤덮다(蔽)'에 대해서는 15:137을 참조하라. 덮고 있는 것이 없으니 마음 본연의 광명정대한 빛(곧, 명덕)이 밖으로 발산하는데 막힘이 없다. 이 빛은 휘황찬란하다기보다는 밝고 명료하고 또렷한 실내조명 같은 것이다. 불 꺼진 방은 어둑하여 사물의 윤곽이 흐려서 대강의 스케치만 보인다. 그러다 불이 켜지면 그 밝은 빛에 힘입어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고 명료하게 포커스가 잡힌다. 통연(洞然)은 그런 느낌을 형용하는 말이다.</ref> 칼로 자른듯이(截然) 주관이 있어(有主) 혼란스럽지 않게 된다.<ref>사태와 사물의 윤곽이 또렷하게 보이므로 시비선악의 취사분별이 확고하여 혼란스럽거나 흔들림이 없다.</ref> 이에 몸이 닦이고, 집안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해질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52 格物·致知, 比治國·平天下, 其事似小. 然打不透, 則病痛卻大, 無進步處.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這裏縱有未盡處, 病痛卻小. 格物·致知, 如“知及之”; 正心·誠意, 如“仁能守之”. 到得“動之不以禮”處, 只是小小未盡善. 蓋卿(65때).
'''격물과 치지는 치국과 평천하에 비하면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커서 진보할 수 없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規模)은 크지만 이 단계에서 조금 미진하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격물과 치지는 '앎이 이른 것(知及之)'과 같고, 정심과 성의는 '인으로 지킬 수 있다(仁能守之)'와 같다.<ref>논어 15:32. '앎이 미쳐도 인으로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앎이 이른다는 것은 이지적인 사유의 결과 주어진 도덕원칙에 대하여 납득하는 것을 말하고 인으로 지킨다는 것은 그러한 도덕원칙을 몸으로 받아들여 그 원칙과의 싱크로율이 고조됨을 말한다. 이지적으로 납득하기만 하고 그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치 잘 만들어졌으되 그것을 실행할 리소스가 부족한 앱(App)처럼 '얻더라도 반드시 잃게' 된다.</ref> '예로써 움직이지 않는다'<ref>논어15:32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더라도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앎이 미치고 인으로 지킬 수 있고 (백성들에게) 장중하게 임하더라도 (그들을) 예로써 움직이지 않으면 완전히 선(善)하지 못하다(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예는 이치를 현실사회에서 드러내주는 구체적인 규칙들이고 '움직인다'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주희는 여기서 '장중하게 임하고 예로써 움직이는' 것을 대학의 치국과 평천하 단계의 일에 비기고 있다.</ref>의 경우는 단지 선(善)하지 못한 부분이 소소하게 있다는 것뿐이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方子錄云: “格物·誠意, 其事似乎小. 然若打不透, 卻是大病痛.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若有未到處, 其病卻小, 蓋前面大本領已自正了. 學者若做到物格·知至處, 此是十分以上底人.”>
'''<방자(方子)의 기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함: 격물과 성의는 그 일이 작은 것 같지만 투철하게 해내지 못하면 그 병통은 오히려 크다. 치국과 평천하는 비록 스케일은 크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병통이 오히려 작다. 이는 (팔조목의) 앞쪽에 위치한 근본적인 부분(大本領)에서 이미 올바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가 만약 '사물이 탐구되고 앎이 지극해지는' 데까지 이르렀으면 그는 이미 100%를 초과한(十分以上)<ref>마치 요즘 사람처럼 주희도 '100% 이상'이니 '200%'니 하는 과장법을 쓴다. 14:106을 참조하라.</ref> 인물이다.>
* 15:153 問: “看來大學自格物至平天下, 凡八事, 而心是在當中, 擔著兩下者. 前面格物·致知·誠意, 是理會箇心; 後面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心之功用.”
'''질문: 제 생각에 '대학'은 격물에서 평천하까지 이르기까지 일이 모두 여덟가지가 있는데 마음(心)이 그 한가운데에 있으면서(當中) (앞과 뒤) 양쪽(兩下)<ref>이 다음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격/치/성 까지가 앞쪽이고 수/제/치/평이 뒤쪽이다.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앞쪽이 수기(修己), 뒤쪽이 치인(治人)이다.</ref>을 모두 지탱하고 있습니다. 앞쪽의 격물, 치지, 성의는 마음을 헤아리는(理會) 것이고, 뒤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마음의 효과(功用)입니다.<ref>배우는 이가 실제로 작업하는 지점은 '수기' 부분이고, 수기에서 열심히 작업한 결과가 '치인'이라는 말이다.</ref>
曰: “據他本經, 去修身上截斷. 然身亦是心主之.” 士毅(미상).
'''대답: 대학의 본경(本經)<ref>대학 경 1장을 말한다.</ref>에서는 수신(修身)을 기준으로 자른다.<ref>대학 경 1장.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ref> 그러나 몸 또한 마음이 주재하는 것이다.
사의(士毅)의 기록.
* 15:154 自明明德至於治國·平天下, 如九層寶塔, 自下至上, 只是一箇塔心. 四面雖有許多層, 其實只是一箇心. 明德·正心·誠意·修身, 以至治國·平天下, 雖有許多節次, 其實只是一理. 須逐一從前面看來, 看後面, 又推前面去. 故曰“知至而後意誠, 意誠而后心正”也. 子蒙(미상).
''' 명명덕에서 치국, 평천하까지는 마치 아홉 층의 보탑(九層寶塔)과 같으니,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그저 탑의 중심축(心) 하나가 있을 뿐이다. 외면(四面)에 제아무리 층이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중심축 하나 뿐이다. 명덕, 정심, 성의, 수신에서 치국, 평천하에 이르기까지 제아무리 단계가 많이 있어도 실제로는 '이치(理)' 하나 뿐이다. 반드시 하나하나 앞에서부터 이해해나가야 한다. 뒷부분에 대한 이해도 결국 앞부분을 확장해(推)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앎이 지극해진 이후에 의지가 진실해지고, 의지가 진실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고 했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155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至‘致知在格物’, 詳其文勢, 似皆是有爲而後爲者.”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까지, 문장의 흐름(文勢)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무엇을 한 이후에 무엇을 한다는 것 같습니다.<ref>대학 경문에서 팔조목을 설명하는 대목은 'A를 한 이후에 B를 한다'와 같은 형태로 문장을 구성한다. 15:83을 참조하라.</ref>
曰: “皆是合當爲者. 經文旣自明德說至新民, 止於至善, 下文又卻反覆明辨, 以見正人者必先正己. 孟子曰: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亦是此意.” 道夫(60이후).
'''대답: 모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다. 경문에서 이미 명덕에서 신민과 지어지선까지 설명해놓고<ref>삼강령이다.</ref> 그 아래 문장에서 다시 반복해서 분명히 변론하여<ref>팔조목이다.</ref> 남을 바로잡으려는(正人) 이는 반드시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正己) 함을 보여주었다. 맹자가 말하길,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안에 있고, 집안의 근본은 자기 일신에 있다'<ref>맹자 7A:5</ref>고 했다. 이것도 역시 같은 취지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56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 至‘致知在格物’, 向疑其似於爲人. 今觀之, 大不然. 蓋大人, 以天下爲度者也. 天下苟有一夫不被其澤, 則於吾心爲有慊; 而吾身於是八者有一毫不盡, 則亦何以明明德於天下耶! 夫如是, 則凡其所爲, 雖若爲人, 其實則亦爲己而已.”
'''질문: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에서 '치지가 격물에 있다'까지, 전에는 그것이 위인지학(爲人)<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 그런데 '대학혹문'에서는 이런 뜻이 아니라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정의한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ref> 같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인(大人)은 (생각의) 기준(度)이 천하인 사람입니다.<ref>漢書 권 52에서 '무릇 성인은 천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자입니다(夫聖人以天下為度者也).'라고 하였다.</ref> (대인은)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합니다(慊). 그런데 자신의 일신에 이 여덟 가지 조목 가운데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히 해내지 못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명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이와 같다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비록 위인지학(爲人)같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역시 위기지학(爲己)일 뿐입니다.<ref>천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치국 평천하가 모두 직분 내의 일이다. 그러므로 위인지학(직분 바깥의 일에 종사함)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위기지학(직분 안쪽의 일에 종사함)이라는 논리이다.</ref>
先生曰: “爲其職分之所當爲也.” 道夫(60이후).
'''선생의 대답: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파일:KakaoTalk 20240605 154354490.jpg|섬네일|주자어류 15-156 그림]]
<ref>중화서국본 314쪽의 그림을 참조할 것</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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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2wt5zfit3smw1dr8ap1v5lvk5ipu8
번역:주자어류/권17 대학혹문상 大學四或問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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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1T09:03:59Z
Thomas Dongsob Ahn
16640
62까지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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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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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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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語類卷第十七
주자어류 권 17
* 大學四或問上
대학 4 / 혹문 상(上)<ref>앞서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 대학에 관하여 논하였다. 권 17은 대학에 관한 네 번째 권이자 대학혹문의 상권에 관한 것이므로 이와 같은 부제가 붙었다. 대학혹문은 주희가 지은 대학의 참고서로 상/하 두 권으로 묶여있다. 가상의 질문자가 질문하면 주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목이 '누군가의 질문(或問)'이다. 논어, 맹자, 중용혹문도 있다.</ref>
* 經一章
== 경 1장 ==
<ref>대학은 경 1장과 전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자어류 권 14부터 16까지는 대학의 이 순서에 맞추어 조목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학혹문 역시 대학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하여 전 10장에서 끝난다. 주자어류 권 17과 18 역시 혹문의 순서에 따라 경 1장부터 시작한다.</ref>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단락 ===
* 或問吾子以爲大人之學一段
''' '누군가의 질문: 그대는 대인의 학문이라고...'
<ref>대학혹문의 각 장은 여러 단락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류 17:1부터 18까지는 모두 그중 첫 번째 단락에 관한 내용이다. 어류 권 17과 18은 대학혹문을 먼저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고 여기다 대학혹문 전체를 인용하여 번역하는 것도 그 분량을 감안하였을 때 적절치 못하다. 박완식이 2010년에 번역한 '대학, 대학혹문, 대학강어'를 옆에 두고 참조하는 것이 좋다. 혹은 고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생들의 번역을 웹상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이쪽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B%8C%80%ED%95%99#.E3.80.8E.ED.98.B9.EB.AC.B8.E3.80.8F_.EA.B2.BD1.EC.9E.A5 대학혹문 번역문(고려대 의적단)]).</ref>
* 17:1 問友仁: “看大學或問如何?”<ref>조선고사본은 상황 묘사가 보다 자세하다. '선생이 내게 물었다: 자네가 오늘 대학혹문을 읽었는데 어떠한가?(先生問友仁曰: 公今日看大學或問如何?)'</ref>
'''(선생이) 나(友仁)에게 질문함: 대학혹문을 보니 어떠한가?
曰: “粗曉其義.” <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뜻은 대강 깨쳤으나 아직 다 깨치지 못한 듯합니다. (云: 粗曉其義, 但恐未然.)'</ref>
'''(나의) 대답: 그 뜻을 대강 깨쳤습니다.
曰<ref>조선고사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선생이 한두군데를 찍어서 내게 설명해보라고 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先生擧一二處令友仁說. 先生曰:)'</ref>: “如何是‘收其放心, 養其德性’?”
'''(선생이) 말함: 무엇이 '그 놓쳐버린 마음을(放心)<ref>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그래서 주희가 '구방심(求放心)'을 요구할 때 이를 '거경(居敬)' 으로 치환해도 말이 통한다. 실제로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장한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본래 맹자에서 '방(放)'과 '존(存)'이라는 동사쌍으로 보이고자 한 이미지는 기르는 개나 닭이 울타리를 넘어 달아난 것을 수색해서 찾아오는 상황이었다. 주인이 고의로 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짐승이 집을 나가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므로 '방심'은 '놓친 마음', '잃어버린 마음', '놓아버린 마음', '풀려난 마음', '달아난 마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반대로 '존심(存心)'이나 '구방심'은 그렇게 달아난 것을 되찾아 집안에 가져온 뒤 다시 달아나지 못하게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개 '찾아오다', '보존하다', '간직하다', '간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ref> 거두어들이고 그 덕성(德性)을 기른다[收其放心, 養其德性]'는 것인가?
曰: “放心者, 或心起邪思, 意有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至於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截斷不續, 至於耳目言動皆然, 此乃謂之收. 旣能收其放心, 德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之外, 又養箇德性也.”
'''(나의) 대답: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란, 혹 마음(心)에 삿된 생각(邪思)이 일어나고, 의지(意)에 망령된 상념(妄念)이 생기며, 귀로 삿된 말을 듣고, 눈으로 혼란한 색을 보며, 입으로 도(道)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손발의 움직임이 예(禮)에 맞지 않는 데 이르기까지가 모두 놓침[放]입니다.<ref>이 주장의 레퍼런스는 물론 논어 12:1의 '극기복례'이다.</ref> 거두어들임[收]이란, 곧 삿된 생각과 망령된 상념이 있는 지점에서 딱 끊어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귀·눈·말·움직임[耳目言動]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거두어들인다[收]고 합니다. 자신의 놓쳐버린 마음(放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이상 덕성(德性)은 자연히 길러집니다. 방심(放心)을 거두는 것과 별개로 다시 덕성(德性)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曰: “看得也好.” 友仁(69때).
'''(선생이) 말함: 잘 보았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 問: 或問"'以七年之病, 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方得.
'''질문: 《혹문(或問)》에서 "'일곱 해 된 병에 세 해 묵은 쑥을 구하는[七年之病, 求三年之艾]' 경우<ref>맹자 4A:9. 직전 조목의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소학의 단계를 거친 적 없이 없었던 어른이 이렇게 빼먹은 과정을 보충하는 방안으로 거경공부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주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어렸을 적에 도덕원칙들을 신체화/습관화 시킨 뒤 (곧, 소학의 단계) 커서 그러한 도덕원칙들을 이지적으로 묻고 따져서 이해하는 것이다(곧, 대학의 단계). 하지만 주희가 보기에 오늘날에는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소학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 작업이 '경(敬)'공부이다. 비유하자면 평생에 걸쳐 (소학 때 못 했던 것을) 벌충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검정고시 같은 것이다. 일곱 해 된 병은 소학의 공부를 건너뛴 기간이고 세 해 묵은 쑥은 그것을 뒤늦게 따라잡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거경공부이다.</ref>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미 배움을 잃은[失學]<ref>어렸을 적에 소학의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ref> 뒤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이 노력하고 분발해야만 해낼 수 있습니다.
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趲補得前許多欠闕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沒長進, 如何要塡補前面!” 賀孫(62이후).
'''대답: 시기를 놓친 뒤에 배우려면 반드시 이처럼 이전에 건너뛴 빈칸들을 서둘러[趲] 보충하여야 한다. '남이 한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만에 능숙히 해내거든 자신은 천 번을 한다.’<ref>중용 제 20장.</ref>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고 유유히 세월만 보내며 그날그날 해야할 공부(工夫)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인데 무슨 수로 이전(에 건너뛴) 부분을 메우려 하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 持敬以補小學之闕. 小學且是拘檢住身心, 到後來‘克己復禮’, 又是一段事. 德明(44이후).
'''경(敬)을 견지함으로써[持敬]<ref>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마음을 진실하고 순수하며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端慤純一靜專) 유지한다는 말이다(14:19). 조금 더 비근하게 설명하자면 흐리멍텅한 정신을 고조시켜 맑고 투명하고 집중된 상태로 유지하는 명상수련과 흡사하다. 어린아이가 평소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도 엄숙한 선생님 앞에 서거나, 교실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거나, 그밖에 진지한 이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몫을 수행하는 동안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산만한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시키게 된다. 소학에서 요구하는 공부들, 예컨대 거처를 청소하고 어른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부들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처럼 평온하게 통일된 상태로 세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희가 소학 트레이닝을 겪지 않은 어른들에게 거경/지경 공부를 권하는 것은 A에 대한 대체물로서 (그와는 전혀 다른 범주의) B를 가져와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A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달성하고자했던 궁극적 목표를 생으로 가져와서 빨리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십년의 공부를 몇년 안에 따라잡아서 해치워야하는 검정고시준비과정과 제일 가깝다. 한편 주희는 이처럼 마음을 특정한 상태로 세팅하고 유지하는 공부를 적극적인 이지적 탐구와 더불어 배움의 두 축으로 삼았다. 전자가 거경(居敬)/지경(持敬), 후자가 궁리(窮理)이다. 전자가 소학의 목표라면 후자는 대학의 목표이니, 주희의 '학'은 결국 소학과 대학일 뿐이라고 해도 좋다.</ref> 빼먹은 소학(小學) 단계를 보충한다. 소학(小學)은 일단은 몸과 마음을 꾸준히 붙들어매는[拘檢]<ref>'住'는 동사 뒤에 붙어서 행위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이다.</ref> 것이다. 훗날(에 하게 될)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공부의) 경우는 또다른 단계의 일이다.<ref>극기복례 역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붙들어매는 공부의 범주에 속한다. 다만 (주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도상 더 높은 수준의 공부일 뿐이다. 17:1을 보라.</ref>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7:4 問: “大學首云明德, 而不曾說主敬, 莫是已具於小學?”
'''질문: 《대학》 첫머리에서 명덕(明德)을 말하면서 주경(主敬)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까닭은 (주경이) 이미 소학(小學) 단계에서 갖추어져 있기 때문 아닙니까?<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固然. 自小學不傳, 伊川卻是帶補一‘敬’字.” 可學(62때).
'''대답: 진실로 그렇다. 소학(小學)이 전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이천(伊川)<ref>정이(程頤)</ref>이 '경(敬)' 자 하나를 가지고 보충하였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5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致知至治國·平天下, 皆不外此. 人傑(51이후).
''' ‘경(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공부이다. 격물(格物) 치지(致知)로부터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6 問或問說敬處.
'''《혹문》에서 경(敬)을 설명한 부분에 대해 질문함.
曰: “四句不須分析, 只做一句看.”
'''대답: 저 네 구절<ref>대학혹문에서 주희는 경을 다음의 네 가지 문구를 가지고 설명한다. 정씨형제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제엄숙(整齊嚴肅)', 사량좌의 '상성성법(常惺惺法)', 윤돈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한다는 측면, 상성성법은 집중한 의식의 각성되고 고양된 느낌,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그렇게 집중된 의식의 단단히 안정된 느낌을 형용한다.</ref>은 나누어 분석할 필요 없이 그저 한 구절로 보라.
次日, 又曰: “夜來說敬, 不須只管解說, 但整齊嚴肅便是敬, 散亂不收斂便是不敬. 四句只行著, 皆是敬.” 燾(70때).
'''다음 날 다시 말함: 어젯밤에 경(敬)에 대해 설명했는데, 계속 해설만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경(敬)이고, 산란하여 수렴하지 못하면 불경(不敬)이다. 저 네 구절은 단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7 或問: “大學論敬所引諸說有內外之分.”
'''누군가의 질문: 《대학》<ref>사실은 대학'혹문'이라고 해야 옳다.</ref>에서 경(敬)을 논하며 인용한 여러 설(說)에는 내외(內外)의 구분이 있습니다.<ref>굳이 구분하자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고 나머지 셋은 내면이다.</ref>
曰: “不必分內外, 都只一般, 只恁行著都是敬.” 僩(69이후).
'''대답: 꼭 내외(內外)로 나눌 필요는 없다. 모두 매한가지다. 그저 그렇게 실천해가기만 하면 모두 경(敬)이다.<ref>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같은 취지의 문답이 실려 있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8 問: “敬, 諸先生之說各不同. 然總而行<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言'으로 썼다.</ref>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질문: 경(敬)에 대한 여러 선생의 설(說)이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실천하여 항상 이 마음을 간직하면[常存]<ref>'존(存)'자의 번역에 대해서는 17:1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되는 것입니까?”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斂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履孫(65때).
'''대답: 기실 매한가지이다. (마음이) 경건(敬)할 때 같으면 자연히 (마음이) '하나로 집중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고[主一無適]', 자연히 (몸가짐이) '단정하고 엄숙하며[整齊嚴肅]’, 자연히 '항상 반짝반짝 깨어있고[常惺惺]',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不容一物]'. 다만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이 사씨(謝氏)나 윤씨(尹氏)의 설(說)<ref>'상성성'이 사씨, '기심수렴 불용일물'이 윤씨의 설이다.</ref>보다 더 분명하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9 或問: “先生說敬處, 擧伊川主一與整齊嚴肅之說與謝氏常惺惺之說. 就其中看, 謝氏尤切當.”
'''누군가의 질문: 선생님께서 경(敬)을 설명하신 부분에서 이천(伊川)의 주일(主一)과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 그리고 사씨(謝氏)의 상성성(常惺惺) 설(說)을 거론하셨습니다.<ref>이 설들에 대해서는 17:6을 참조하라.</ref> 그중에서 보면 사씨(謝氏)의 설명이 더욱 절실하고 적절[切當]<ref>'절(切)'은 어떤 설명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친숙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말이다.</ref>합니다.
曰: “如某所見, 伊川說得切當. 且如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若無整齊嚴肅, 卻要惺惺, 恐無捉摸, 不能常惺惺矣.” 人傑(51이후).
'''대답: 내가 보기엔 (사씨보다) 이천(伊川)이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몸가짐을 정제엄숙(整齊嚴肅)하게 하면 이 마음이 보존[存]<ref>'존(存)'에 관해서는 17:1을 참조하라.</ref>되어 반짝반짝 깨어있을[惺惺] 수 있게 된다. 만약 정제엄숙(整齊嚴肅)한 자세 없이 반짝반짝 깨어있으려[惺惺] 한다면 아마 구체적으로 붙잡을 데가 없어[無捉摸]<ref>'정제엄숙'은 몸을 이렇게 하고 옷매무새를 저렇게 하라는 행동지침이므로 당장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므로 '붙잡을 데'가 있다. '상성성'은 의식의 각성된 상태를 형용한 말이므로 이 설명 속에는 어떤 행동지침이 없다.</ref> 늘 반짝반짝 깨어있을[常惺惺]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7:10 問: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자리에 '然則所謂敬者又若何而用力邪下' 14자가 더 들어있다.</ref>擧伊川及謝氏尹氏之說, 只是一意說敬.”
'''질문: 《혹문》에서 이천(伊川) 및 사씨(謝氏), 윤씨(尹氏)의 설(說)을 거론한 것은 그저 한 뜻으로 경(敬)을 설명한 것입니까?
曰: ‘主一無適’, 又說箇‘整齊嚴肅’; ‘整齊嚴肅’, 亦只是‘主一無適’意. 且自看整齊嚴肅時如何這裏便敬. 常惺惺也便是敬. 收斂此心, 不容一物, 也便是敬. 此事最易見. 試自體察看, 便見. 只是要敎心下常如此.”
'''대답: ‘주일무적(主一無適)’이라 하고 다시 ‘정제엄숙(整齊嚴肅)’이라 했는데 ‘정제엄숙(整齊嚴肅)’ 역시 그저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뜻이다. 어디 한번 정제엄숙(整齊嚴肅)할 때 어떻게 내면이 바로 경건(敬)해지는지 스스로 살펴 보라. '상성성(常惺惺)'해도 곧 경건(敬)하다. '수렴차심 불용일물[收斂此心, 不容一物]'<ref>본래는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不容一物)'이다. 경에 대한 이 네 가지 설명법은 17:6에 자세하니 참조하라.</ref>해도 곧 경건(敬)하다. 이 일은 매우 알기 쉽다. 시험 삼아 스스로 체험[體察]해 보면<ref>'체찰(體察)'은 몸소 체험/관찰하는 것이다.</ref> 바로 알 수 있다. 단지 마음을 항상 이와 같이 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因說到放心: “如惻隱·羞惡·是非·辭遜是正心, 才差去, 便是放. 若整齊嚴肅, 便有惻隱·羞惡·是非·辭遜. 某看來, 四海九州, 無遠無近, 人人心都是放心, 也無一箇不放. 如小兒子才有智識, 此心便放了, 這裏便要講學存養.” 賀孫(62이후).
'''이어서 말이 방심(放心)에 미쳤다: 측은(惻隱)·수오(羞惡)·시비(是非)·사손(辭遜)<ref>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이다.</ref> 같으면 바른 마음[正心]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놓친(放) 것이다. 정제엄숙(整齊嚴肅)한다면 곧 (놓친 마음을 다시 붙들어 와서) 측은·수오·시비·사손의 마음이 있게 된다. 내 생각에 사해(四海)와 구주(九州)<ref>온세상을 말한다.</ref> 어디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람들 각각의 마음은 모두 놓쳐버린 마음(放心)이니, 놓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아이 같은 경우도 지식[智識]이 생기자마자 이 마음을 바로 놓쳐버리게 되니, 이 지점에서 곧 강학(講學)과 존양(存養)<ref>강학과 존양은 각각 궁리와 거경 공부를 말한다. 17:1과 17:3의 주석을 참조하라.</ref>을 필요로 한다.
o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1 光祖問: “‘主一無適’與‘整齊嚴肅’不同否?”
'''광조(光祖)<ref>주희의 제자 가운데 광조가 셋이나 있다. 일역판은 여기서는 그 중 증흥종(曽興宗, 1146-1212)을 말한다고 주장한다.</ref>의 질문: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은 다르지 않습니까?<ref>둘 다 경건(敬)한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이다. 주일무적은 의식의 집중이라는 측면, 정제엄숙은 몸가짐을 엄숙하게 가다듬고 유지한다는 측면을 말한다. 앞의 몇 조목에서 자세하니 참조하라.</ref>
曰: “如何有兩樣! 只是箇敬. 極而至於堯舜, 也只常常是箇敬. 若語言不同, 自是那時就那事說, 自應如此. 且如大學論語孟子中庸都說敬; 詩也, 書也, 禮也, 亦都說敬. 各就那事上說得改頭換面. 要之, 只是箇敬.”
'''대답: 어찌 두 종류가 있겠나? 경(敬)은 하나 뿐이다. (거경 공부를) 지극히 하여 요순(堯舜)의 경지에 이른다 해도 역시 언제나 이 하나의 경(敬)일 뿐이다. 표현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러저러한 때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말했기 때문에 자연히 응당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 예컨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이 모두 경(敬)을 말하고, 《시경》, 《서경》, 《예기》 또한 모두 경(敬)을 말하고 있다. 각각 이러저러한 일을 가지고 얼굴을 바꿔가며(改頭換面)<ref>껍데기, 표현방식만 바꾸었지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ref>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경(敬)은 하나일 뿐이다.
又曰: “或人問: ‘出門·使民時是敬, 未出門·使民時是如何?’ 伊川答: ‘此“儼若思”時也.’ 要知這兩句只是箇‘毋不敬’. 又須要問未出門·使民時是如何. 這又何用問, 這自可見. 如未出門·使民時是這箇敬; 當出門·使民時也只是這箇敬. 到得出門·使民了, 也只是如此. 論語如此樣儘有, 最不可如此看.”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어떤 사람이 묻기를 ‘문을 나설 때와 백성을 부릴 때 경건(敬)하다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ref>논어 12:2. </ref>라고 하니, 이천(伊川)이 답하기를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할[儼若思]’<ref>예기 곡례 상.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하라(毋不敬,儼若思)'</ref> 때이다’라고 했다.<ref>이정유서 18:10. '질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뵙듯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 하라고 하는데, 아직 문을 나서지 않았고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합니까? 대답: 이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엄숙해야 할 때이다. 문을 나섰을 때의 경건함이 이와 같다면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떨지 알 만하다. 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問: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方其未出門未使民時, 如何? 曰: 此儼若思之時也. 當出門時其敬如此, 未出門時可知也. 且見乎外者出乎中者也.)</ref> 이 두 구절<ref>주일무적과 정제엄숙을 말한다.</ref> 모두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毋不敬]’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야 하는데, 이걸 또 물을 필요가 있나? 이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을 나서기 전과 백성을 부리기 전에도 이 경(敬) 하나일 뿐이고,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릴 때에도 역시 이 경(敬) 하나일 뿐이다. 문을 나서고 백성을 부린 뒤에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논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으니, 결코 (이천에게 질문한 어떤 사람 처럼) 저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2 或問“整齊嚴肅”與“嚴威儼恪”之別.
'''누군가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엄위엄각(嚴威儼恪)’<ref>엄숙하고 위엄있는 안색과 거동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편에 등장하는 문구이다.</ref>의 차이에 대해 질문함.
曰: “只一般. 整齊嚴肅雖非敬, 然所以爲敬也. 嚴威儼恪, 亦是如此.” 燾(70때).
'''대답: 똑같다. 정제엄숙(整齊嚴肅)이 경(敬)은 아니지만 경(敬)을 행하는 수단이다. 엄위엄각(嚴威儼恪) 역시 그렇다.<ref>이정유서 15:182와 같은 취지이다. '엄위엄각은 경의 도리가 아니다. 다만 경에 이르러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嚴威儼恪, 非敬之道. 但致敬, 須自此入.)'</ref>
도(燾)의 기록. (70세 때)
* 17:13 問: “上蔡說: ‘敬者, 常惺惺法也.’ 此說極精切.”
'''질문: 상채(上蔡)<ref>사량좌</ref>가 말하기를 ‘경(敬)이란 늘 반짝반짝 깨어있기[常惺惺] 위한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지극히 정밀하고 절실합니다[極精切].<ref>17:9를 참조하라.</ref>
曰: “不如程子整齊嚴肅之說爲好. 蓋人能如此, 其心卽在此, 便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 而內不惺惺者. 如人一時間外面整齊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寬了, 便昏怠也.”
'''대답: 정자(程子)의 '정제엄숙(整齊嚴肅)' 설(說)만큼 좋지는 않다. 대개 사람이 이처럼<ref>정제엄숙을 말한다.</ref>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이 곧 여기에 있어서[在此]<ref>의식(consciousness)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반짝반짝 깨어있게[惺惺] 되기 때문이다. 외면이 정갈하고 단정하며 엄숙(整齊嚴肅)하면서 내면이 반짝반짝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잠시라도[一時間] 외면이 정제엄숙(整齊嚴肅)하면 곧 그 시간만큼 깨어있게 되고, 잠시라도 (몸가짐이) 풀어지면[放寬] 곧 흐릿하고 나태해지게[昏怠] 된다.
祖道曰: “此箇是氣. 須是氣淸明時, 便整齊嚴肅. 昏時便放過了, 如何捉得定?”
'''내(祖道)가 말함: 이것은 기(氣)의 문제입니다. 모름지기 기(氣)가 맑고 밝을 때[淸明]는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흐릿할 때는 곧 방만하게[放過] 되니, 어떻게 해야 제대로 붙잡을 수 있습니까?<ref>'정(定)'은 현대 중국어 '주(住)'와 같다. 동사의 뒤에 붙어 'x得住'라고 하면 그 동작을 확실히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x不住'는 그 동작을 제대로 해낼 역량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ref>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志者, 氣之帥也.’ 此只當責志. 孟子曰: ‘持其志, 毋暴其氣.’ 若能持其志, 氣自淸明.”
'''대답: ‘심지(志)는 기(氣)를 통솔하는 장수이다[志者, 氣之帥也].’<ref>맹자 2A:2. 이른바 부동심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지(志)는 오늘날 말로 의지나 심지, 기(氣)는 의욕이나 기운, 에너지 정도에 해당한다. 심지가 장수라면 기는 병사들이다. 군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실제 에너지는 병사들에게서 나오지만(의욕과 기운), 병사들 각각이 어디로 움직여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방향성은 장수에게서 나온다(의지와 심지). 예컨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심지의 명령이지만 실제로 공부하지 않고 침대에 붙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욕과 기운의 항명과 태업 때문이다.</ref> 이는 응당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심지(志)를 붙잡되 자기 기(氣)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持其志, 毋暴其氣]’고 하셨다.<ref>맹자 같은 곳.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병사들이 움직여야 한다. 장수의 뜻이 굳건하고 일관되면 병사들이 그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높으니 심지를 굳건히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병사들의 항명과 태업에도 이유가 있으니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일하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경우 그런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Kwong-loi Shun, Mencius and Early Chinese Thought(1997). P.68, 112-119를 참조하라.</ref> 만약 자기 심지(志)를 붙잡을 수 있다면 기(氣)는 저절로 맑고 밝아진다[淸明].
或曰: “程子曰: ‘學者爲習所奪, 氣所勝, 只可責志.’ 又曰: ‘只這箇也是私, 學者不恁地不得.’ 此說如何?”
'''누군가 말함: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는 습관에게 빼앗기고 기(氣)에게 패배하니,<ref>도저히 의욕이 생기지 않아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ref> 단지 심지(志)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ref>이정유서 15:96. '배우는 자는 기에게 패배하고 습관에게 빼앗기니, 단지 심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뿐이다.(學者, 爲氣所勝, 習所奪, 只可責志.)' 문구의 배치가 다르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고, 또 (심지를 붙잡으려는 것에 관해서)‘이 또한 사사로운 마음(私)일 뿐이지만,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ref>이정외서 8:6. '심지를 붙잡는 것을 논하다 선생이 말함: (심지를 붙잡으려는 마음) 또한 사사로운 마음일 뿐이다. 그래도 배우는 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因論持其志先生曰: 只這箇也是私. 然學者不恁地不得.)'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의는 같다.</ref>고 하셨습니다. 이 설명은 어떻습니까?
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先生曰'이다.</ref>: “涉於人爲, 便是私. 但學者不如此, 如何著力! 此程子所以下面便放一句云‘不如此不得’也.” 祖道(68때).
'''대답: 인위(人爲)에 관련되면 곧 사사롭다(私).<ref>기운과 의욕의 자연스러운 추세에 맡겨두지 않고 심지를 다져서 특정한 방향으로 우리의 의욕을 몰고 가려는 것은 어느정도 작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ref> 다만 배우는 자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힘을 쓰겠는가[著力]?<ref>'착력(著力)' 두 글자에 이미 작위성이 담겨있다.</ref> 이것이 정자(程子)께서 (사사롭다고 한 다음 그) 아래에다 바로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문을 덧붙이신 까닭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14 因看涪陵記善錄, 問: “和靖說敬, 就整齊嚴肅上做; 上蔡卻云‘是惺惺法’, 二者如何?”
'''부릉기선록(涪陵記善錄)<ref>정이의 제자 윤돈(尹焞)의 어록이다. 기록자는 윤돈의 제자인 풍충서(馮忠恕). 윤돈과 풍충서가 교유한 곳이 사천 부릉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 아마도 청 중엽까지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일실되었다. 이정외서 권 12에서 이 책으로부터 여덟 조목을 인용하고 있다.</ref>을 보다가 (선생이) 질문함: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은 경(敬)을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측면에서 설명하고,<ref>본래 윤돈의 설명은 '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이다. 윤돈의 지침은 그 초점이 엄숙함에 있으므로 정이의 '정제엄숙'과 조응한다.</ref>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는 오히려 ‘반짝반짝 깨어있게 해주는 방법[惺惺法]이다’라고 하니, 이 두 설명이 어떠한가?<ref>비슷한 취지의 문답이 회암집 권 56의 답정자상(答鄭子上) 제 14서에 실려있다. 정자상은 이 조목의 기록자인 정가학이다. '(질문) 和靖論敬以整齊嚴肅, 然專主於內; 上蔡專於事上作工夫, 故云敬是常惺惺法之類. (답변) 謝尹二說難分內外, 皆是自己心地功夫. 事上豈可不整齊嚴肅, 靜處豈可不常惺惺乎?'</ref>
厚之云: “先由和靖之說, 方到上蔡地位.”
'''후지(厚之)가 대답함: 먼저 화정(和靖)의 설(說)을 따른 뒤에야 상채(上蔡)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曰: “各有法門: 和靖是持守, 上蔡卻不要如此, 常要喚得醒. 要之, 和靖底是, 上蔡底橫.
'''(선생이) 말함: 각각 (나름의) 법문(法門)<ref>불교 용어. 진리에 이르는 방법, 경로 등을 이른다.</ref>이 있다. 화정(和靖)은 붙잡아 지키는 것[持守]이다. 상채(上蔡)는 이와 같이 하려 하지 않고 늘 깨어있고자[喚得醒] 한다. 화정(和靖)의 설은 옳고, 상채(上蔡)의 설은 비뚤다. <ref>횡설(橫說)은 횡설수설의 횡설이다. 조리가 없거나, 너무 고원하거나, 견강부회한 억지 주장을 이른다. 주희가 사량좌의 주장을 횡설이라고까지 했을까 의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잠재적 의문에 답하는 차원에서 고문해의는 114:40에서 주희가 여조겸의 주장 하나를 '횡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상채의 설을 '횡'이라고 했으면 화정의 설은 '종(縱)'이나 '직(直)'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시(是)'와 '직(直)'은 자형이 가까우므로 전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교감할 경우 화정의 설과 상채의 설 사이에 우열과 정부정은 없고 범주의 차이만 남게 된다. 확신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일단 이렇게 남겨둔다.</ref>
渠<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은 '渠'를 '某'라고 적었다. 주자어류고문해의에서는 이것을 '횡거'라고 볼 경우 이어지는 '역왈경이직내'가 불완전인용이 된다고 지적하고,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일역판의 역자들 역시 이하의 '역왈경이직내'가 장재의 저작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渠'를 '某'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만, 고문해의는 이 앞 부분을 '화정의 설은 옳고 상채의 설은 비뚤다(和靖底是, 上蔡底橫.).'라고 구두를 끊어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고 일역판은 '횡모(橫某)가 말했다'처럼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류의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기록자가 정가학(鄭可學)인 조목은 자주 비경(蜚卿)과 후지(厚之) 등 여러 사람이 등장해 다자간 문답을 주고받으므로 각 발언이 누구의 질문이고 누구의 답변인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정가학 조목들은 자주 자신의 발언을 '某曰'이나 '某云' 등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예컨대 4:38이나 7:24, 8:27, 19:93, 28:34, 106:32 등을 살펴보라.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일역판 보다는 고문해의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다. 여기서는 고문해의를 따른다.</ref>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云'이라고 적었다.</ref>: ‘易曰: “敬以直內.” ’伊川云: ‘主一.’ 卻與和靖同. 大抵敬有二: 有未發, 有已發. 所謂‘毋不敬’, ‘事思敬’, 是也.”
'''내(某)가 말함: 《주역》에서 '경(敬)으로써 내면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하였고,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마음을 하나로 한다[主一]’고 하였으니, 오히려 화정(和靖)의 주장과 같습니다. 대체로 경(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생각과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시점[未發]의 경과 이미 발한 뒤[已發]의 경입니다. 이른바 ‘경건하지 않음이 없게하라[毋不敬]’<ref>예기 곡례 상.</ref>와 ‘일을 할 적에는 경건할 것을 생각하라[事思敬]’<ref>논어 16:10.</ref>가 그것입니다.<ref>미발의 경과 이발의 경의 구분에 관해서는 17:11을 참조하라.</ref>
曰: “雖是有二, 然但一本, 只是見於動靜有異, 學者須要常流通無間."
'''(선생이) 말함<ref>고문해의와 일역본 모두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비록 두 가지가 있다 해도 뿌리는 하나이니, 그저 동(動)과 정(靜)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항상 (동/정 사이의) 흐름이 중단없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해야 한다. <ref>17:11의 논의를 참조하라. 정시의 경은 문을 나서기 전의 경건함이고 동시의 경은 문을 나서서 사태와 사물에 대처할 때의 경건함이다. 앞선 질문에서의 인용구로 말하자면 주역의 '경이직내'와 이천의 '주일무적', 윤돈(화정)의 '기심수렴 불용일물'은 정시의 경건함이다. 논어의 '사사경'은 동시의 경건함이다.</ref>
又: "如和靖之說固好, 但不知集義, 又卻欠工夫."
'''또 (내가 말함)<ref>이 대목을 이렇게 독립시켜 질문자의 질문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직전의 '曰: 雖是有二...'와 직후의 '曰: 亦是...'의 관계가 불분명해진다. 고문해의의 경우 일단은 앞쪽 曰을 주희의 대답으로, 뒤쪽 '曰'을 질문자의 추가 질문이라고 보았으나, 실은 상세히 읽어 보면 질문하는 말투가 아니어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고 하였다. 일역판에서는 앞의 왈과 뒤의 왈을 모두 주희의 말로 해석하기 위하여 이 부분을 이렇게 질문자의 말로 떼어냈다. 여기서는 일역판을 따랐다.</ref>: 화정(和靖)의 설(說) 같은 경우 물론 좋긴 하지만 (그는) '의(義)에 부합하는 행위를 오래 축적해야 함[集義]'<ref>맹자 2A:2.</ref>을 알지 못했고, 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힘씀[工夫]이 부족했습니다.<ref>질문자는 화정의 경을 미발의 경건함, 정시의 경건함 쪽에 배속하고 있다. 이 경우 수행자 자신이야 홀로 방에 앉아 마음을 경건하게 길러낼 수 있을지라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매 순간 올바르고 경건한 선택을 내림으로써 스스로를 키워내는 과정은 겪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송대 문헌에서 거경(居敬)과 집의(集義) 공부를 이처럼 동/정, 내/외, 체/용의 두 방면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다. 이정유서 18:101 '질문: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응당 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경은 (내면을) 함양하는 것 뿐이다.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부분은 모름지기 '집의'를 써야 한다.(問: 必有事焉, 當用敬否? 曰: 敬只是涵養一事, 必有事焉, 須當集義.) '질문: 경과 의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경은 자신을 붙잡는 도리이고 의는 시비를 알고 이치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가 된다.(問: 敬義何別? 曰: 敬只是持己之道, 義便知有是有非, 順理而行, 是爲義也.)' 또 남헌집(南軒集) 권 32 답유성지(答㳺誠之)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거경과 집의 공부는 병행하며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다. 만약 경건하게 할 줄만 알고 의로운 행위를 축적할 줄은 모른다면 이른바 경이라는 것 또한 멀뚱히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마음의 본체가 사방으로 두루 흘러 영향을 미칠 수 있겠나? 집(集)은 축적한다(積)라는 뜻이다. 세상 모든 사건과 사물에 의로움(義)없는 것이 없으되 (그 의로움은) 사람의 마음에서 드러나니, 구체적인 사태 하나하나에서 (의로운 판단과 행위를) 모아서 축적해야 한다.(居敬集義, 工夫並進, 相須而相成也. 若只要能敬, 不知集義, 則所謂敬者, 亦塊然無所爲而已, 烏得心體周流哉? 集訓積, 事事物物, 莫不有義, 而著乎人心, 正要一事一件上集.)'</ref>
曰: “亦是渠才氣去不得, 只得如此. 大抵有體無用, 便不渾全.”
'''(선생의) 대답<ref>고문해의에서는 일단 주희의 말로 보았으나 확신하지 못했다. 일역판도 주희의 말로 보았다.</ref>: 그는<ref>윤돈을 말한다.</ref> 역시 그 재기(才氣)<ref>재치있고 민활함을 말한다.</ref>가 부족했기에[去不得]<ref>'去得'은 현대 중국어 '可以'와 같다. '去不得'은 이에 대한 부정표현이다. 주희가 보기에 윤돈은 순발력이나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묵묵히 정진하는 캐릭터였다. 예컨대 101:102-122를 보라.</ref> 단지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개 본체(體)만 있고 작용(用)이 없으면 온전할[渾全] 수 없다.<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ref>
又問: “南軒說敬, 常云: ‘義已森然於其中.’”
'''다시 질문함<ref>기록자인 가학의 질문인 듯하다.</ref>: 남헌(南軒)<ref>장식(張栻)이다.</ref>은 경(敬)을 설명할 적에는 늘 ‘(경건하기만 하면) 의(義)는 이미 그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義已森然於其中]’고 말합니다.<ref>남헌집에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 오히려 위 주석에서 인용했듯 장식은 개인적 차원에서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사회적 차원에서 시비판단을 내리고 의로운 행적을 누적하는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한 바 있다.</ref>
曰: “渠好如此說, 如仁智動靜之類皆然.” 可學(62때).
'''대답: 그는 이처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인(仁)·지(智)·동(動)·정(靜) 등에 (대해서 말할 적에) 모두 그러하다.<ref>장식의 계사논어해(癸巳論語解) 권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과 정이라는 것은 인(仁)과 지(知)의 본질[體]이니, 물을 좋아하고(樂水) 산을 좋아(樂山)한다는 것은 그 본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동(動)하면 즐겁고 정(靜)하면 장수한다. 일삼는 바 없이 실천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항상 영원히 올바르며 굳건하니 어찌 장수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知)의 본질은 동적이지만 이치는 각기 멈추는 곳이 있으니 정(靜)이 결국 그 속에 있다. 인(仁)의 본질은 정적이지만 두루 흘러 쉬지 않으니 동(動)이 결국 그 속에 있다. 동과 정이 교차하여 드러나며 본체와 작용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인과 지의 (진정한) 뜻을 깊이 체득한 자가 아니라면 (동정과 체용의 관계를) 알아보지 못한다.(動靜者, 仁知之體, 樂水樂山, 言其體則然也. 動則樂, 靜則夀. 行所無事, 不其樂乎? 常永貞固, 不其夀乎? 雖然, 知之體動, 而理各有止, 靜固在其中矣. 仁之體靜, 而周流不息, 動亦在其中矣. 動靜交見, 體用一源, 仁知之義, 非深體者, 不能識也.)'</ref>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15 問謝氏惺惺之說.
'''사씨(謝氏)의 '성성(惺惺)' 설(說)에 대하여 질문함.
曰: “惺惺, 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今人說敬, 卻只以‘整齊嚴肅’言之, 此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爲敬!”
'''대답: '성성(惺惺)'이란 마음이 흐릿하지 않다는[不昏昧] 말이니, 그저 이것이 바로 경(敬)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敬)에 대해 말할 적에 그저 ‘정제엄숙(整齊嚴肅)’만 가지고 설명한다. 이것도 물론 경(敬)이긴 하다만, 마음이 만약 흐릿하여 이치를 밝게 비춰주지 못한다면, 비록 억세게 붙잡는다[强把捉]<ref>주희는 의식(consciousness)을 바짝 긴장시켜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로 유지하는 행위를 대개 물건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는 느낌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파착(把捉), 지(持), 지수(持守) 등은 글자는 달라도 동일한 현상을 지시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ref> 한들 어찌 경(敬)이 될 수 있겠는가?
又問孟子告子不動心.
'''또, 맹자(孟子)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에 대하여 질문함.
曰: “孟子是明理合義, 告子只是硬把捉.” 砥(61때).
'''대답: 맹자(孟子) (의 부동심은) 이치를 밝히고 의로움(義)에 부합하여 (획득하는 것)이고, 고자(告子)는 단지 (마음을) 억지로 단단히 붙잡아[硬把捉]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ref>부동심을 논한 맹자 2A:2는 난해한 조목이다. 주자어류 권 52의 200여 조목이 모두 이에 관한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주희가 생각하기에 고자는 세상의 여러 일과 서책 등으로부터 이치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도가적인 인물이다. 세상 일을 관찰하고 서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희가 생각하는 맹자의 부동심은 적극적으로 이치를 따져서 파악하고(즉, 지언知言) 의로운 행위를 실천함으로써(즉, 집의集義)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때문에 맹자의 부동심을 명리합의(明理合義)라고 평가하고 고자의 부동심을 경파착(硬把捉)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이때 명리는 이지적 노력, 집의는 실천적 노력이다. 자세한 분석은 장원태, "맹자 3.2에 대한 고찰", 2013과 김명석,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2021을 참조하라.</ref>
지(砥)의 기록. (61세 때)
* 17:16 或問: “謝氏常惺惺之說, 佛氏亦有此語.”
'''누군가의 질문: 사씨(謝氏)<ref>사량좌이다.</ref>의 상성성(常惺惺) 설(說)<ref>앞서 십여 조목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의 경우, 불씨(佛氏) 역시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曰: “其喚醒此心則同, 而其爲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在此, 無所作爲, 其異處在此.” 僩(69이후).
'''대답: 이 마음을 일깨우는[喚醒此心] 점에서는 같지만 그 도(道)의 성격은 다르다. 우리 유학(儒學)에서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이 많은 도리를 관조하게[照管] 하려는 것인데, 불씨(佛氏)는 헛되이 일깨워[在此]<ref>'재차'는 의식의 집중되고 각성된 상태를 말한다.</ref> (실제로) 하는 바가(作爲) 아무것도 없으니, 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17 問: “和靖說: ‘其心收斂, 不容一物.’”
'''질문: 화정(和靖)<ref>윤돈이다.</ref>이‘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고 했습니다.<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斂.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直是更不著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斂緊密,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賀孫(62이후).
'''대답: 이 마음이 그 어떤 대상에도 전혀 붙어있지 않으면[不著一物] 그게 바로 수렴(收斂)이다. 그는 윗 구절에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사당[神祠]에 들어갈 때, 그때에는 그 어떤 사안도 전혀 마음에 더 붙일 수 없고 단지 공경(恭敬)함만 있을 뿐이다’고 하였으니,<ref>사고전서본 화정집(和靖集) 권 7, '예컨대 누군가 사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할 적에 그 마음이 수렴되어 그 어떤 다른 사안도 전혀 붙일 수 없다. 이것이 하나로 집중됨[主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且如人到神祠中致敬時, 其心收斂, 更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ref> 이 말이 매우 친근하고 절실하다. 지금 사람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곧 바짝 수렴하여 그 어떤 빈틈[空罅]도 없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생각[思量]을 마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 버리면 마음은 곧 두 갈래 길이 되어버린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18 問尹氏“其心收斂不容一物”之說.
'''윤씨(尹氏)<ref>윤돈.</ref>의 '기심수렴 불용일물(其心收斂, 不容一物)'<ref>자기 마음을 거두어들여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17:8, 14 등을 참조하라.</ref> 설(說)에 대한 질문.
曰: “心主這一事, 不爲他事所亂, 便是不容一物也.”
'''대답: 마음이 어떤 한 가지 일을 주인으로 세워[主]<ref>'주(主)'자의 번역이 까다로운데, 전통적으로 '주장하다', '위주로 하다'와 같이 옮긴다. 여기서는 자신의 내면에 품은 여러 생각들의 위계서열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 즉 '주인'의 자리에 어떤 생각이나 마음가짐을 올려두었다는 의미에서 이상과 같이 번역했다. </ref> 다른 일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으면 곧 한 물건도 (내 마음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問: “此只是說靜時氣象否?”
'''질문: 이는 고요할 때[靜時]의 기상(氣象)을 설명한 것 아닙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又問: “只靜時主敬, 便是‘必有事’否?”
'''재질문: 고요할 때[靜時] 경(敬)을 주인으로 세우는[主] 것이 곧 '반드시 일삼는 것이 있어[必有事]'<ref>본래 출전은 맹자 2A:2. 정씨 형제에 의하면 마음의 고요한 측면에 대해서도 모종의 의식적[用意] 노력을 동반한 공부가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경(敬)이다.(이정유서 18:35) 맹자의 '반드시 일이 있다[必有事]'에서 '일삼다'는 의식적 노력에 대한 요청인데, 여기서 맹자가 요청한 것을 정씨 형제는 경공부라고 해석했다. 이정유서 15:186'필유사언은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는 말이니, 경이다.(必有事焉, 謂必有所事, 是敬也)'. 주희는 이러한 해석이 맹자의 본래 문맥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배격하지는 않는다. 52:162, 회암집 권40 답하숙경 제 29서('主敬存養, 雖説必有事焉, 然未有思慮作爲, 亦靜而已.'), 권 61 답임덕구(答林德久) 제 6서(질문: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않는다[必有事焉而勿正]’에 대해서, 명도와 이천은 대부분 “경(敬)을 위주로 한다”하고, 일설에는 “마땅히 의(義)를 모아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위 글의 ‘의(義)를 모아 생겨나는 것이다’를 이어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한다’라는 것은 여러 가지 선(善)을 축적하는 공부가 아니겠습니까?‘必有事焉而勿正’, 二程多主於敬, 一說須當集義, 是承上文‘是集義所生者’而言. 所謂必有事, 則積集衆善工夫否? 답변: 맹자의 앞뒤 구절에 ‘경(敬)’자는 없고, ‘의(義)’자만 있을 뿐입니다. 정자는 이를 바꾸어서 ‘경(敬)’자로 설명했는데, 맹자의 본의와는 다릅니다. 집주를 보면 또한 자세히 음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孟子上下文無‘敬’字, 只有‘義’字, 程子是移將去‘敬’字上說, 非孟子本意也. 集註亦可細玩.)등을 보라. 이 '일삼음[事]'을 주희는 기본적으로 '의로운 행실을 축적[集義]'하는 행위로 본다. 예컨대 52:93, 97, 167 등을 보라.</ref> 아닙니까?
曰: “然.” 僩(69이후).
'''대답: 그렇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단락 ===
此篇所謂在明明德一段
''' 이 책의 이른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
* 17:19 問: “或問說‘仁義禮智之性’, 添‘健順’字,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을 설명하면서 ‘건(健)'과 '순(順)’ 자를 첨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ref>대학혹문의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하늘의 도가 널리 작동하여 세상 만물을 틔워주고 길러주는데 그 창조하고 변화하는 내용물은 (따지고 보면) 음양과 오행일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음양과 오행이란 것도 (음양오행은 그 분류상 氣인데) 반드시 먼저 이치가 있고 난 다음에 기(氣)가 있는 것이요, 사물이 (실제로) 탄생한 측면에서는 또 기(氣)가 (먼저) 응취한 덕분에 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물의 탄생은 필히 (먼저) 이 이치를 얻은 연후에 건, 순, 인, 의, 예, 지의 본성이 있게 되고, 필히 이 기를 얻은 연후에 혼, 백, 오장, 백해의 신체가 있게 된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무극의 진수와 2&5(음양과 오행이다)의 정수가 신비롭게 합쳐져 (사람이 탄생했다)"는 말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대개 맹자이래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할 적에는 '인의예지' 혹은 '인의예지신' 정도를 언급하는데 여기서는 '건'과 '순' 두 형용사가 더 들어갔으니 그 이유를 물은 것이다.</ref>
曰: “此健順, 只是那陰陽之性.” 義剛(64이후).
'''대답: 이 건순(健順)이란 그저 저 음양(陰陽)의 성질일 뿐이다.<ref>주역에서 순양괘인 건(乾)괘의 성질이 굳건함(健), 순음괘인 곤(坤)괘의 성질이 유순함(順)이다. 인의예지신의 경우는 대개 백호통(白虎通)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오행(목화토금수)에 하나씩 배당한다. 예컨대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해당하며 그 방위는 동쪽이다. 어류 6:45를 참조하라. 대학혹문에서 인간의 탄생을 말하면서 단순히 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만 했다면 인의예지신만 언급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만 '음양'오행의 정수를 받았다고 했으니 음과 양의 성질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더 첨부해서 앞뒤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ref>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7:20 問<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或問中' 세 글자가 더 있다.</ref>“健順仁義禮智之性”.
''' '건(健)·순(順)·인(仁)·의(義)·예(禮)·지(智)의 본성(性)'에 대한 질문.<ref>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曰: “此承上文陰陽五行而言. 健, 陽也; 順, 陰也; 四者, 五行也. 分而言之: 仁禮屬陽, 義智屬陰.”
'''대답: “이는 윗글의 음양(陰陽)·오행(五行)을 이어받아 말한 것이다. 건(健)은 양(陽), 순(順)은 음(陰)이며, 네 가지<ref>인의예지(仁義禮智)</ref>는 오행(五行)이다. 나누어 말하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立天之道, 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仁何以屬陰?”
'''질문: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道)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道)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라 한다.’<ref>주역 설괘전. 설괘전의 설명대로라면 음-유-인, 양-강-의가 각각 같은 범주로 묶여야 한다. 이에 대한 주희의 반론은 어류 6:54를 참조하라.</ref>고 했는데, 인(仁)이 어찌하여 음(陰)에 속합니까?
曰: “仁何嘗屬陰! 袁機仲正來爭辨.<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일곱자가 없다. 서산독서기 갑집 권 8에서는 이 부분을 '袁機仲力爭'이라고 썼다.</ref> 他<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便'자가 더 있다.</ref>引<ref>'타인' 두 글자는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주석으로 처리했다.</ref>‘君子於仁也柔, 於義也剛’爲證. 殊不知論仁之定體, 則自屬陽. 至於論君子之學, 則又<ref>조선고사본에는 '又'자가 없다. </ref>各自就地頭說, 如何拘文牽引得! 今只觀天地之化, 草木發生, 自是條暢洞達, 無所窒礙, 此便是陽剛之氣. 如云: ‘采薇采薇, 薇亦陽<ref>하서린의 전경당본은 이 글자를'作'이라고 썼다.</ref>止.’ ‘薇亦剛止.’ 蓋薇之生也, 挺直而上, 此處皆可見.”
'''대답: 인(仁)이 어찌 일찍이 음(陰)에 속했겠는가? 때마침 원기중(袁機仲)<ref>원추(袁樞, 1131-1205)의 자가 기중이다. 어류 6:55를 보면 그는 의를 양에, 인을 음에 배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회암집 권 38의 답원기중별폭(答袁機仲別幅)에도 원기중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주희의 반론이 실려있으니 참조하라.</ref>이 (그런 내용으로) 논쟁을 걸어왔다.<ref>여기서 '래(來)'는 찾아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쪽을 '향해서' 어떤 동작을 수행했다는 뜻에 가깝다.</ref> 그는 ‘군자는 인(仁)에 대해서는 유(柔)하고, 의(義)에 대해서는 강(剛)하다’<ref>양웅의 법언(法言) 군자(君子)편. 주자어류 6:136을 보면 주희도 양웅의 이 발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거나, 본체가 강한 덕목이 작용은 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웅과 자신의 견해 차이를 해소하려고 할 뿐이다.</ref>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는 인(仁)의 확정적 본질[定體]을 논하자면 당연히 양(陽)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또 각자의 경우[地頭]에 맞게 설명한 것이니,<ref>고문해의에서는 인의 확정적 본질을 논하는 경우에는 양에 속하고 인의 배움을 논하는 경우에는 음에 속한다고 정리했다.</ref> 어찌 (양웅의 법언에서 사용한) 문자(의 표현)에 얽매이는가?<ref>구문색인(拘文牽引)은 표현에 구애되어 얽매인 것이다.</ref> 이제 가만 보면 천지가 변화[天地之化]하여 초목이 탄생하고 발육할 적에 자연히 쭉쭉 뻗어나가 막히거나 걸리는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양강(陽剛)한 기(氣)이다. 예를 들어 ‘고사리 캐고 고사리 캐니, 고사리 또한 양(陽)하네[采薇采薇, 薇亦陽止].’ ‘고사리 또한 강(剛)하네[薇亦剛止].’라 하였다.<ref>시경 소아 녹명지십 채미(采薇)편. 시경 쪽 원문은 '채미채미, 미역작지(采薇采薇 薇亦作止)', '채미채미, 미역유지(采薇采薇, 薇亦柔止)', '채미채미, 미역강지(采薇采薇, 薇亦剛止)'인데, 이는 고사리가 막 땅에서 자라나와 부드러운 단계를 거쳐 다 자라서 뻣뻣한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경과를 노래한 것이다. 주희는 우선 '作'을 '陽'으로 잘못 썼고, 또 중간에 위치한 '柔'를 생략하고 마지막 '剛'만을 인용함으로써 시경 채미편을 자신이 앞서 주장한 것처럼 초목이 양강(陽剛)하다는 말의 경전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ref> 대개 고사리는 나면서부터 똑바로 위로 자라니, 이러한 (고사리의 특성)에서 (초목의 양강(陽剛)한 성질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問: “禮屬陽. 至樂記, 則又以禮屬陰, 樂屬陽.”
'''질문: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예(禮)는 양(陽)에 속합니다. (하지만) 〈악기(樂記)〉에서는 또 예(禮)를 음(陰)에 배속하고 악(樂)을 양(陽)에 배속합니다.<ref>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기 악기편에서는 악을 하늘에, 예를 땅에 배속했다. '악은 하늘에서 말미암아 제작하고 예는 땅을 따라 제작한다(樂由天作, 禮以地制)'</ref>
曰: “固是. 若對樂說, 則自是如此. 蓋禮是箇限定裁節, 粲然有文底物事; 樂是和動底物事, 自當如此分. 如云‘禮主其減, 樂主其盈’之類, 推之可見.” 僩(69이후).
'''대답: 물론 그렇다. 악(樂)과 한 쌍으로 말하자면 당연히 그렇다. 대개 예(禮)는 한정짓고 선을 그으며[限定裁節] 찬란하게 문채가 있는[粲然有文] 것이고, 악(樂)은 조화롭고 감동시키는[和動]<ref>예기 악기편에 나오는 표현이다.</ref>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예가 양, 악이 음으로) 나뉜다. ‘예(禮)는 줄이는[減]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채우는[盈] 것을 위주로 한다[禮主其減, 樂主其盈]’라고 하는 것 등은 (앞선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ref>예기 악기편. '악이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요 예란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악은 채우는 것을 위주로 한다.(樂也者,動於內者也;禮也者,動於外者也。故禮主其減,樂主其盈.)' 줄이는 것은 '음'적인 운동, 채우는 것이 '양'적인 운동이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떠올려 보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1 問: “健順在四端何屬?”
'''질문: 건순(健順)은 사단(四端) 중 어디에 속합니까?
曰: “仁與禮屬陽, 義與智屬陰.”
'''대답: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한다.
問: “小學: ‘詩·書·禮·樂以造士.’ 注云: ‘禮, 陰也.’”
'''질문:《소학(小學)》에 ‘시(詩)·서(書)·예(禮)·악(樂)으로써 선비를 만든다’<ref>소학에서 예기 왕제편을 인용한 부분이다.</ref>고 하였는데, 주(注)에 ‘예(禮)는 음(陰)이다’라고 하였습니다.<ref>주석은 예기 왕제편에 대한 정현의 주석이다.</ref>
曰: “此以文明言, 彼以節制言.”
'''대답: 이쪽은 문채나고 빛나는(文明) 측면에서 (예를) 설명한 것이고<ref>양에 속한다는 설명이다.</ref> 저쪽은 구별짓고 제약하는(節制) 측면에서 설명한 것이다.<ref>소학의 주석에 대한 설명이다.</ref>
問: “禮<ref>성화본은 '義'로 썼다. 이 조목의 첫 질문의 내용을 보나 이어지는 대화의 맥락상으로 보나 '義'가 더 어울리므로 이쪽으로 번역했다.</ref>智是束斂底意思, 故屬陰否?”
'''질문: 의(義)와 지(智)는 거두어들이는[束斂] 느낌이 있으므로 음(陰)에 속하는 것입니까?
曰: “然.”
'''대답: 그렇다.
或問: “智未見束斂處.”
'''누군가의 질문: 지(智)는 거두어들이는 측면을 보지 못하겠습니다.<ref>일역판은 이 질문과 6:56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여기서의 '누군가'가 해당 조목의 기록자인 심한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ref>
曰: “義猶略有作爲, 智一知便了, 愈是束斂. 孟子曰: ‘是非之心, 智也.’ 纔知得是而愛, 非而惡, 便交過仁義去了.” 胡泳(69때).
'''대답: 의(義)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作爲) 조금 있지만, 지(智)는 한 번 알면 그걸로 끝이니 더욱 거두어들이는 쪽이다. 맹자(孟子)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라고 한다. 옳은[是] 줄 알고서 사랑하고 그른[非] 줄 알고서 미워하자마자 인(仁)과 의(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호영(胡泳)의 기록. (69세 때)
* 17:22 問陰陽五行健順五常之性.
'''음양(陰陽)·오행(五行)·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에 대한 질문.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陰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且如狗子, 會咬人底, 便是稟得那健底性; 不咬人底, 是稟得那順底性. 又如草木, 直底硬底, 是稟得剛底; 軟底弱底, 是稟得那順底.” 僩<ref>조선고사본에서는 '기손(蘷孫)'으로 썼다.</ref>(69이후).
'''대답: 굳건함(健)은 저 양(陽)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고, 유순함(順)은 저 음(陰)의 기(氣)를 부여받은 것이며, 다섯가지 떳떳한 품성(五常)은 오행(五行)의 이치(理)를 부여받은 것이다. 사람과 사물[人物]은 모두 건순(健順)·오상(五常)의 성질(性)을 부여받았다. 또 예컨대 개[狗子] 중에 사람을 무는 놈은 바로 저 굳건(健)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요, 사람을 물지 않는 놈은 저 유순(順)한 성질(性)을 부여받은 놈이다. 또 초목(草木) 중에 곧고 단단한 것은 강(剛)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저 윤순(順)<ref>이 글자는 엄밀한 문언이었으면 '柔'라고 썼어야 한다.</ref>한 것을 부여받은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3 問: “或問‘氣之正且通者爲人, 氣之偏且塞者爲物’, 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바르고 통한[正且通]<ref>바르다는 것은 도덕적 올바름보다는 똑바로 서있는 물건의 경우처럼 밸런스가 좋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통함은 공간적으로 이동할 때 장애 없이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모습이다.</ref> 기(氣)는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偏且塞] 기(氣)는 사물이 된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物之生, 必因氣之聚而後有形, 得其淸者爲人, 得其濁者爲物. 假如大鑪鎔鐵, 其好者在一處, 其渣滓又在一處.”
'''대답: 사물의 생성은 반드시 (먼저) 기(氣)가 모인 뒤에 형체가 있게 되니, 그 맑은[淸] 것을 얻은 자는 사람이 되고 그 탁한[濁] 것을 얻은 자는 사물이 된다. 예를 들어 큰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면 잘 정련된 것이 한 쪽에 모이고 찌꺼기[渣滓]는 다른 한 쪽에 모이는 것과 같다.
又問: “氣則有淸濁, 而理則一同, 如何?”
'''재질문: 기(氣)에는 청탁(淸濁)이 있지만 이치(理)는 똑같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固是如此. 理者, 如一寶珠. 在聖賢, 則如置在淸水中, 其輝光自然發見; 在愚不肖者, 如置在濁水中, 須是澄去泥沙, 則光方可見. 今人所以不見理, 合澄去泥沙, 此所以須要克治也. 至如萬物亦有此理. 天何嘗不將此理與他. 只爲氣昏塞, 如置寶珠於濁泥中, 不復可見. 然物類中亦有知君臣母子, 知祭, 知時者, 亦是其中有一線明處. 然而不能如人者, 只爲他不能克治耳. 且蚤·虱亦有知, 如飢則噬人之類是也.” 祖道(68때).
'''대답: 진실로 그러하다. 이치(理)라는 것은 하나의 보배 구슬과 같다. (구슬이) 성현(聖賢)에게 있으면 마치 맑은 물[淸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휘광(輝光)이 자연히 드러나지만, 어리석고 불초(不肖)한 자에게 있으면 마치 탁한 물[濁水]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진흙과 모래[泥沙]를 걸러내야만 비로소 그 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이치(理)를 보지 못하니 마땅히 진흙과 모래를 걸러내야 한다. 이것이 모름지기 (자기 기질을) 다스려야만[克治] 하는 까닭이다. 만물(萬物)의 경우에도 역시 이 이치(理)가 있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이 이치(理)를 그것들에게 주지 않았겠는가? 단지 기(氣) 때문에 흐리고 폐색하여[昏塞] 마치 보배 구슬을 탁한 진흙탕 속에 둔 것처럼 (그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러나 사물들 중에서도 군신(君臣)·모자(母子)를 알고, 제사(祭)를 알며, 때[時]를 아는 종류가 있으니,<ref>당시 사람들은 벌과 개미[蜂蟻]에게 엄정한 군신관계가 있고. 호랑이와 이리[虎狼]에게 부자(혹은 모자)간에 친밀한 관계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豺獺]이 사냥한 짐승을 널어놓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낼 줄 안다고 생각했다. 호랑이와 이리의 친애함은 장자 천운편, 승냥이와 수달의 제사는 예기 왕제편이 최초의 출전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주자어류 4:9, 11, 19 등을 참조하라.</ref> 역시 그 속에 한 가닥 밝은 부분[一線明處]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과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자기 기질을) 다스릴[克治] 수 없어서일 뿐이다. 또 벼룩[蚤]과 이[虱] 또한 (제한된 정도의) 지성(知)이 있으니, 예를 들어 굶주리면 사람을 무는 것 등이 이것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때)
* 17:24 問: “或問云: ‘於其正且通者之中, 又或不能無淸濁之異, 故其所賦之質, 又有智愚賢不肖之殊.’ 世間有人聰明通曉, 是稟其氣之淸者矣, 然卻所爲過差, 或流而爲小人之歸者; 又有爲人賢, 而不甚聰明通曉, 是如何?”
'''질문: 《대학혹문》에서 ‘그 바르고 통한[正且通] 자 중에서도 또 간혹 청탁(淸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으므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다시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고 했습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해당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나 통한 기에도 간혹 청탁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미추의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추한 사람은 불초하니, 다시 서로 똑같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회암집 권 62 답이회숙(答李晦叔) 제 6서에서는 본 조목에서 인용한 것과 흡사한 버전으로 혹문을 인용하고 있다.</ref> 세상 사람 중에 총명하고 통달한[聰明通曉] 자는 맑은[淸] 기(氣)를 부여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하는 바가 어긋나서 혹 소인(小人)의 부류가 되고 마는 자들이 있고, 또 한편으로 사람됨이 현명하지만[賢] 그다지 총명하고 통달하지 못한 자도 있으니, 이는 어째서입니까?
曰: “或問中固已言之, 所謂‘又有智愚賢不肖之殊’, 是也. 蓋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事<ref>다수의 판본에서 '了'로 적었다.</ref>者, 智也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淸和溫恭之德. 又有人極溫和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爲學便是要克化, 敎此等氣質令恰好耳.” 僩(69이후).
'''대답: 《대학혹문》에서 이미 이에 관하여 말했으니, 이른바 ‘또 지(智)·우(愚)·현(賢)·불초(不肖)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대개 그 부여받은 기질[所賦之質]에 바로 이러한 네 가지 범주가 있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은[聰明曉事] 자가 똑똑하되[智] 혹 현명하지 못하다면[不賢], 이는 곧 부여받은 것 가운데 맑고 온화하며[淸和] 따스하고 공손한[溫恭] 덕(德)이 부족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지극히 온화(溫和)하되 그다지 사리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바로 현명하지만[賢] 똑똑하지[智]는 못한 것이다. 배움(學)이란 바로 이러한 자기 기질을 이겨내고 변화시켜[克化] 딱 알맞게[恰好] 만들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5 舜功問: “序引參天地事, 如何?”
'''순공(舜功)의 질문: (대학혹문의) 서문(序)에서 '천지(天地)와 더불어 셋이 되는[參天地]' 일을 인용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ref> '삼천지(參天地)'는 본래 중용 제 22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면 남이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 셈이 된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했다면 이미 (이 사람의 위격은) 천지와 같으니,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서문이 아니라 경 1장에서 '명덕'을 설명하는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오직 사람만은 태어나면서 바르고 통한 기운을 얻었으니 그 본성이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허령통철(虛靈洞徹)하여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니, 사람이 금수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처럼 되어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되어 (천지의) 낳고 기르는 일을 도울 수 있는 까닭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른바 명덕(明德)이란 것이다.(唯人之生, 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ref>
曰: “初言人之所以異於禽獸者, 至下須是見己之所以參化育者.”
'''대답: 처음에는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을 말하였으니, (이어지는) 그 아래에서는 모름지기 자신이 (천지가 만물을) 낳고 기르는 일에 참여하는[參化育] 까닭을 보아야 한다.
又問: “此是到處, 如何?”
'''다시 질문: 이 과정은 종착점이[到處] 어떻게 됩니까?
曰: “到, 大有地步在. 但學者須先知其如此, 方可以下手. 今學者多言待發見處下手, 此已遲卻. 纔思要得善時, 便是善.” 可學(62때).
'''대답: (종착점에) 도달하기까지 크게 (여러가지) 단계들이[地步] 있다. 다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종착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비로소 손을 쓸[下手] 수 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발현되는 경우[發見處]를 기다렸다가 손을 쓴다고 많이들 말하는데,<ref>이 발언은 아마도 호상학자들의 '찰식이발지제' 공부를 염두에 둔 듯하다. 고문해의는 회암집 권 51의 답동숙중(答董叔重) 제 3서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지적했다.</ref> 이러면 이미 늦고 만다.<ref>'-却'은 현대 중국어 '-掉'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행위가 완성되었음을 표시한다. 예컨대 '망각(忘却)'은 잊어버린다는 행위가 완성된 것이다.</ref> 선(善)을 얻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즉시 바로 선(善)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때)
* 17:26 問: “或問‘自其有生之初’以下是一節; ‘顧人心稟受之初, 又必皆有以得乎陰陽五行之氣’以下是一節; ‘苟於是焉而不値其淸明純粹之會’, 這又轉一節; 下又轉入一節物欲去, 是否?”
'''질문: 《대학혹문》에서 ‘최초에 태어났을 때부터[自其有生之初]’ 이하가 한 단락이고, ‘생각건대 최초에 사람이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을(稟受) 적에는 또 반드시 모두 음양(陰陽)·오행(五行)의 기(氣)를 얻음이 있었다’ 이하가 한 단락이며, ‘진실로 이 단계에서 그 청명하며 순수한 것들(을 받을) 기회[淸明純粹之會]를 만나지 못한다면’여기서 다시 전환되어 한 단락이고, 이어서 그 아래에서 다시 전환되어 '물욕(物欲)' 한 단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ref>질문자가 인용한 네 단락은 모두 현행본 대학혹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현행본을 사서혹문의 최후개정판이라고 간주할 경우 여기서의 네 단락은 모두 구판의 문구들이 된다. 아래 주희의 말에 더해 여기서 인용된 부분만 가지고 추론하자면 제 1구는 인간 고유의 도덕적 동질성, 제 2구는 음양오행의 정수를 얻어 탄생한 인간의 신체적 동질성, 제 3구는 그럼에도 타고난 기질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는 사실, 제 4구는 좋은 조건을 타고났으나 물욕에 빠져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일역판 역시 이와 흡사하게 추론했으니 참조하라.</ref>
曰: “初間說人人同得之理, 次又說人人同受之氣. 然其間卻有撞著不好底氣以生者, 這便被他拘滯了, 要變化卻難.”
'''대답: 처음에는 사람마다 똑같이 얻는 이치(理)를 설명하고,<ref>제 1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그 다음에는 또 사람마다 똑같이 받는 기(氣)를 설명한 것이다.<ref>제 2구를 설명한 것이다.</ref> 그러나 그 사이에 도리어 좋지 못한 기(氣)를 만나[撞]<ref>'撞'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질문자가 인용한 제 3구의 '値'와 같다.</ref> 태어나는 자가 있으니,<ref>제 3구에 대한 해설이다.</ref> 그 경우 곧 그 (기에) 구속되고 막혀서[拘滯] 변화시키고자 하여도 어렵다.<ref>제 4구를 해설한 것이다.</ref>
問: “如何是不好底氣?”
'''질문: 어떠한 것이 좋지 못한 기(氣)입니까?
曰: “天地之氣, 有淸有濁. 若値得晦暗昏濁底氣, 這便稟受得不好了. 旣是如此, 又加以應接事物, 逐逐於利欲, 故本來明德只管昏塞了. 故大學必敎人如此用工, 到後來卻會復得初頭渾全底道理.” 賀孫(62이후).
'''대답: 천지의 기(氣)에는 청탁이 있다. 만약 어둡고 혼탁한[晦暗昏濁] 기(氣)를 만난다면, 이는 곧 좋지 못한 것을 받은[稟受]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데 또 사물을 응대함[應接事物]에 있어 사사건건 이욕(利欲)을 쫓아다니므로, 본래의 명덕(明德)이 계속 흐리고 폐색[昏塞] 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들이 이와 같이 힘을 쓰도록 가르쳐서, 나중에는 도리어 최초의 온전한[渾全] 도리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27 林安卿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擴將去.”
'''임안경(林安卿)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이 끝내 은폐될 수 없음을 설명한 부분이다.</ref>고 했습니다. 모름지기 이렇게 깨달은 지점들[覺處]에 나아가 앎을 지극히 하고(致知) 확충해[充擴] 나가야 합니다.
曰: “然. 昨日固已言之. 如擊石之火, 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 如何等得這般時節! <林先引或問中“至於久而後有覺”之語爲比, 先生因及此.> 那箇覺, 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대답: 그렇다. 어제 진실로 이미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을 때려서 나오는 스파크[擊石之火]와 같으니, 작은 불씨[些子]일 뿐이지만, 착화하기만 하면 곧 온 들판을 다 태울[燎原]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먼저 크게 깨달은[大覺] 다음에 비로소 격물(格物)·치지(致知)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런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임안경[林]이 먼저 《대학혹문》 중의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至於久而後有覺]'<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이정(二程)의 말이다. 원출전은 이정유서 18:18. '질문: 배움은 어떻게 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대답: 앎을 지극히하는 공부가 최우선이다.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면 생각이 매일 더욱 밝아질 것이고, (이렇게 하기를) 오래 한 이후에 깨닫게 된다.(問: 學何以有至覺悟處? 曰: 莫先致知. 能致知, 則思一日愈明一日, 久而後有覺也.)'</ref>는 말을 인용하여 비유하자 선생이 이어서 이것을 언급하신 것이다.> (대학혹문에서 말한) 저 깨달음이란[那箇覺] 사물이 탐구되어 앎이 지극해진[物格知至] 뒤의 대철대오[大徹悟]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면 일은 모두 끝난다. 순간적인 깨달음[介然之覺] 같은 경우는 하루 동안에도 무시로 무수히[無時無數] 터져나오니,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려[識認] 붙잡아 지키고[操持] 확충하고 길러[充養]<ref>산란하는 마음을 수습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덕성을 두텁게 배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17:1과 3에서 설명하고 있는 소학 단계에서의 공부를 참조하라.</ref>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又問: “‘眞知’之‘知’與‘久而後有覺’之‘覺’字, 同否?”
'''다시 질문: ‘참된 앎[眞知]'<ref>진리를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 알아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이정이 자주 언급한 것이다. 이정유서 2上:24 '참으로 아는 것과 평범하게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본 일인데, 어떤 농부가 호랑이에게 물려 다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변에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독 그 농부만 안색이 변하여 다른 사람들과 반응이 달랐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참으로 안' 것은 아니다. 참으로 안다는 것은 저 농부와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선을 알면서도 불선을 행하는 것은 역시 참으로 알지 못해서이다. 참으로 알았다면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眞知與常知異. 常見一田夫曾被虎傷, 有人說虎傷人, 衆莫不驚, 獨田夫色動, 異於衆. 若虎能傷人, 雖三尺童子, 莫不知之, 然未嘗眞知. 眞知須如田夫乃是. 故人知不善, 而猶爲不善, 是亦未嘗眞知. 若眞知, 決不爲矣.)</ref>이라고 할 때의 ‘지(知)’와 ‘오래 한 뒤에야 깨달음이 있다[久而後有覺]’의 ‘각(覺)’ 자는 (의미가) 같지 않습니까?
曰: “大略也相似, 只是各自所指不同. 眞知是知得眞箇如此, 不只是聽得人說, 便喚做知. 覺, 則是忽然心中自有所覺悟, 曉得道理是如此. 人只有兩般心: 一箇是是底心, 一箇是不是底心. 只是才知得這是箇<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箇'의 순서가 '箇是'로 뒤집혀있다. 만력본과 화각본에서는 '是箇'를 주석처리했다. 여유량본과 전경당본에서는 저본(중화서국판)과 같다.</ref>不是底心, 只這知得不是底心底心, 便是是底心. 便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 知得不是底心便是主, 那不是底心便是客. 便將這箇做主去治那箇客, 便常守定這箇知得不是底心做主, 莫要放失, 更那別討箇心來喚做是底心! 如非禮勿視聽言動, 只才知得這箇是非禮底心, 此便是禮底心, 便莫要視. 如人瞌睡, 方其睡時, 固無所覺. 莫敎纔醒, 便抖擻起精神, 莫要更敎他睡, 此便是醒. 不是已醒了, 更別去討箇醒, 說如何得他不睡. 程子所謂‘以心使心’, 便是如此. 人多疑是兩箇心, 不知只是將這知得不是底心去治那不是底心而已.”
'''대답: 대략 비슷하니, 그저 각자 지시하는 바[所指]가 다를 뿐이다. 참된 앎[眞知]은 참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단지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안다고 하는 정도가 아니다. 깨달음[覺]이란 홀연히 마음속에 스스로 깨닫는 바[覺悟]가 있어서 도리가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종류의 마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옳은[是]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옳지 않은[不是] 마음이다. 그저 이것이 '옳지 않은 마음'임을 알기만 하면 곧 이 '옳지 않은 마음'을 아는 마음[知得不是底心底心]이 바로 '옳은 마음[是底心]'이다.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이 바로 주인(主)이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이 바로 손님(客)이다. 이것을 주인(主)으로 삼아 저 손님(客) 쪽을 다스려서, 항상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굳게 지켜[守定] 주인(主)으로 삼고 놓치지[放失] 말아야 하니, 다시 어디서[那]<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별도로 마음을 마련해와서[討]<ref>'討'는 물건을 구해다 온다는 뜻이다.</ref> '옳은 마음'이라고 부를 것인가? 예(禮)가 아니면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聽言動]<ref>논어 12:1.</ref>는 말의 경우, '이건 예(禮)가 아니구나'라고 아는 그 마음[知得這箇是非禮底心]이야말로 바로 '예(禮)의 마음[禮底心]'이니, (이 마음을 주인으로 옹립한 사람은) 곧 (예에 어긋나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예컨대 사람이 꾸벅꾸벅 조는[瞌睡] 경우, 잠이 든 동안에는 전혀 지각하는[覺]<ref>깨달을 '각(覺)'은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 사물을 지각하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중의적으로 쓴 것이다.</ref> 바가 없다. 그저[莫敎]<ref>고문해의에서는 '只是'나 '除是'와 같다고 풀면서 '莫'을 부정사로, '敎'를 사역동사로 보는 해석을 배격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근거로 어류 130:77을 제시했는데, 사실 어류 전체에서 '막교'가 이런 식으로 쓰인 곳은 130:77 한 군데인 반면 다수의 다른 조목에서는 모두 '~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여전히 의심스럽다. 한어대사전에서는 '막교'를 '막비(莫非)'와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님이 없다'가 된다. 일역판은 고문해의의 제언을 따랐다.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지만 달리 더 낫게 해석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우선 고문해의를 따라 번역해 두었다.</ref> 막 깨어나자마자[纔醒] 번쩍 정신을 차리고[抖擻起精神]<ref>'두수(抖擻)'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몸을 번쩍 일으키는 등을 말한다.</ref> 다시는 그 자신이 잠들도록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깨었다[醒]는 것이다. 이미 깨어난 뒤에 다시 별도로 '깨어있음'을 마련해와서 어떻게 하면 그 자신이 다시 잠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자(程子)의 이른바 ‘마음으로 마음을 부린다[以心使心]’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ref>이정유서 18:85. '질문: 마음은 누가 부립니까? 대답: 마음으로 마음을 부리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저 혼자 하라고 맡겨두면 달아나 버린다. (曰: 心誰使之? 曰: 以心使心則可. 人心自由, 便放去也.)'</ref>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하면) 마음이 두개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는데,<ref>마음 A로 마음 B를 통제한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한 사람에게 있어 마음은 하나 뿐이라는 주희의 평소 생각에 배치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변론하는 것이다. '이심사심'이라고 말해도 사실은 하나뿐인 마음이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다. 16:136, 34:196, 96:52 등을 보라.</ref> 단지 이 '옳지 않음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저 '옳지 않은 마음'을 다스릴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元思云: “上蔡所謂‘人須是識其眞心, 方乍見孺子入井之時, 其怵惕·惻隱之心, 乃眞心也.'”
'''원사(元思)가 상채(上蔡)<ref>사량좌이다.</ref>의 이른바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眞心]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막 보았을 때의 그 경악하며[怵惕] 측은해하는[惻隱] 마음이 바로 참된 마음[眞心]이다.'에 관하여 발언함.<ref>상채어록 권2의 한 대목을 주희가 맹자집주 2A:6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집주쪽의 문장은 본 조목과 일치하나 상채어록의 원문과는 조금 다르다. '사람은 모름지기 그 참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의 (마음이) 참된 마음이다. (人須識其眞心. 見孺子將入井時, 是眞心也.)'</ref>
曰: “孟子亦是只<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是只'가 '只是'로 순서가 뒤집혀있다.</ref>討譬喩, 就這親切處說仁之心是如此, 欲人易曉. 若論此心發見, 無時而不發見, 不特見孺子之時爲然也. 若必待見孺子入井之時, 怵惕·惻隱之發而後用功, 則終身無緣有此等時節也.”
'''대답: 맹자(孟子) 역시 그저 비유를 하나 가져와서[討] 이렇게 친근하고 절실한[親切] 지점 위에서 인(仁)한 마음이란 이와 같음을 설명하여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 마음의 발현(發見)을 논하자면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으니[無時而不發見], 꼭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반드시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경악하며 측은해하는 마음이 발현된 뒤에야 힘을 써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순간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ref>발현된 것을 근거로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마음 속의 본래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당시 표현으로 이발찰식 공부라고 불렀다. 오늘날 호남성 장사에 해당하는 형호남로 담주(潭州)를 근거지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러한 방향의 공부를 주장했는데, 이를 통칭 '호상학(湖湘學)'이라고 부른다. 17:25에 이어 여기에서도 주희는 호상학의 공부방법론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어서 원사가 호상학의 거두인 호굉(胡宏)의 말을 인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ref>
元思云: “舊見五峰答彪居仁<ref>'彪居正'의 오기이다.</ref>書, 說齊王易<ref>성화본, 조선정판본, 조선고사본에서는 '易'을 '愛'로 적었다.</ref>牛之心云云, 先生辨之, 正是此意.”
'''원사(元思)가 말함: 옛날 오봉(五峰)<ref>호굉(胡宏, 1105~1161)이다. 호상학의 거두로 장식(張栻, 1133-1180)의 스승이다.</ref>이 표거정(彪居正)에게 답한 편지에서 제나라 임금(齊王)이<ref>맹자와 대담한 제선왕을 말한다.</ref> 소를 바꾼 마음[易牛之心]<ref>맹자 1A:7. 제나라 선왕이 제사에 쓰일 희생물인 소가 두려움에 떨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을 말한다.</ref> 운운한 것을 보았는데,<ref>호굉의 주저인 지언(知言) 권 4에 이 대담이 실려있다. '다른날 물었다: 사람이 인하지 못한 까닭은 그 좋은 마음을 놓쳐서입니다. 놓친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좋은) 마음을 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대답: 제나라 임금이 소를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좋은 마음의 싹이 이욕(利欲)의 틈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러난 그것을 붙잡아 간직하고 간직하여 기르고 길러서 확충하여 매우 커질 때까지 그치지 않으면 하늘과 똑같아진다. 이 마음이 발현하는 단서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그것을 인식하는데 있을 뿐이다.(他日問曰: 人之所以不仁者, 以放其良心也. 以放心求心, 可乎? 曰: 齊王見牛而不忍殺, 此良心之苖裔, 因利欲之間而見者也. 一有見焉, 操而存之, 存而養之, 養而充之, 以至于大大而不已, 與天同矣. 此心在人, 其發見之端不同, 要在識之而已.)</ref> 선생님께서 (호굉과 표거정 사이의)그 대담을 논변하신 글<ref>주희가 장식, 여조겸과 함께 1170년(41세)에 완성한 호자지언의의(胡子知言疑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회암집 권 73에 수록되어 있는데, 분량이 상당하며 또 본 조목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이라고 하기 어려우므로 인용하지는 않겠다.</ref>이 바로 이런 뜻이었습니다.
曰: “然. 齊王之良心, 想得也常有發見時. 只是常時發見時, 不曾識得, 都放過<ref>성화본, 조선고사본, 조선정판본에서는 이 뒤에 '去'자가 있다.</ref>了. 偶然愛牛之心, 有言語說出, 所以孟子因而以此推廣之也.”
'''대답: 그렇다. 제나라 임금(齊王)의 좋은 마음[良心]도 생각해 보면 역시 늘상 발현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평상시 발현될 적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적이 없어서 모두 놓쳐버렸을[放過] 뿐이다. 우연히 소를 아끼는 마음[愛牛之心]이 말로 발화되었기 때문에 맹자(孟子)가 그 기회에 그것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又問: “自非物欲昏蔽之極, 未有不醒覺者.”
'''다시 질문: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지[物欲昏蔽之極]않은 이상 (여지껏) 깨어나지[醒覺] 못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曰: “便是物欲昏蔽之極, 也無時不醒覺. 只是醒覺了, 自放過去, 不曾存得耳.” 僩(69이후).
'''대답: 설령<ref>'便是'는 '설령[即使]', '비록[雖是]'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문해의를 참조하라.</ref> 물욕(物欲)에 흐려지고 폐색됨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사람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없다. 단지 깨어나고 나서도 스스로 놓쳐버려[放過去] 한번도 (제대로) 간직하지[存得] 못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28 友仁說“明明德”: “此‘明德’乃是人本有之物, 只爲氣稟與物欲所蔽而昏. 今學問進修, 便如磨鏡相似. 鏡本明, 被塵垢昏之, 用磨擦之工, 其明始現. 及其現也, 乃本然之明耳.”
'''내(友仁)가 ‘명명덕(明明德)’을 설명했다: 이 ‘명덕(明德)’은 바로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물건인데, 단지 기품(氣稟)<ref>각자가 타고난 정신/신체적 퀄리티를 말한다. '품'은 누군가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ref>과 물욕(物欲)에 뒤덮혀 흐려졌을 뿐입니다. 지금 학문(學問)을 하여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가는[進修]<ref>'진수'는 주역 건괘 문언전의 '진덕수업(進德修業)'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는 주역본의에서 '진덕'을 마음의 진정성(忠信)을 배양하는 공부로, '수업'을 언행을 가다듬고 단속하는 공부로 풀이했다.</ref> 것은 마치 거울을 갈고닦는[磨鏡]<ref>당시 거울은 청동거울임을 명심해야 한다. '마경'이란 유리거울을 헝겁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청동거울을 숯돌 등을 가지고 갈아내는 작업에 가깝다.</ref> 것과 비슷합니다. 거울은 본래 밝지만 먼지와 때[塵垢]에 의해 흐려진 것을 갈고닦는[磨擦] 노력을 들여야만 그 밝음이 비로소 드러납니다. 드러나게 되면 곧 본래의 밝음[本然之明]일 뿐입니다.
曰: “公說甚善. 但此理不比磨鏡之法.”
'''대답: 그대(公)의 설명이 매우 좋다. 다만 이 이치(理)는 거울을 갈고닦는 법[磨鏡之法]으로 비유할 수 없다.
先生略擡身, 露開兩手, 如閃出之狀, 曰: “忽然閃出這光明來, 不待磨而後現, 但人不自察耳. 如孺子將入於井, 不拘君子小人, 皆有怵惕·惻隱之心, 便可見.”
선생이 몸을 약간 일으켜 두 손을 펼쳐 (빛이) 번쩍 나오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서 말함: 홀연히 이 광명(光明)이 번쩍 나오는 것이지, 갈고닦기를 기다린 뒤에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이 광명을) 살피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군자(君子)냐 소인(小人)이냐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友仁云: “或問中說‘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而其本體已洞然’, 便是這箇道理.”
'''내가(友仁) 말함: 《대학혹문》 중에 ‘그러므로 제아무리 뒤덮혀 흐려짐이 극심하다 하더라도 순간적으로[介然之頃] 한 번 깨닫기만[覺] 하면 이 빈틈[空隙] 속에서 그 본체(本體)는 이미 환하다[洞然矣]’<ref>직전 17:27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조하라.</ref>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先生頷之, 曰: “於大原處不差, 正好進修.” 友仁(69때).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함: 큰 근원[大原]의 차원에서 어긋나지 않았으니, (덕을) 진전시키고 (사업을) 닦기에[進修] 딱 좋을 때이다.
우인(友仁)의 기록. (69세 때)
* 17:29 問: “或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而吾之'가 더 있다.</ref>所以明而新之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지점에 '又'가 더 있다. 조선고사본처럼 인용해야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非可以私意苟且爲也.’ 私意是說著不得人爲, 苟且是說至善.”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 구차한 것을[苟且]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의(私意)는 인위(人爲)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구차(苟且)는 지극한 선[至善]을 말하는 것입니다.<ref>대학혹문 인용구는 '사사로운 뜻으로 구차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풀어야 맞겠으나 여기서 질문자가 '구차(苟且)'가 '지선(至善)'을 지시한다고 보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번역해 두었다. '구차(苟且)'라는 표현은 오늘날 한국어에서 '구차한 살림살이'의 경우처럼 가난하고 변변찮은 모양새를 뜻하지만, 주희 당시에는 '임시변통(makeshift)' 같은 뜻으로 쓰였다. 질문자가 구차(苟且)를 지선으로 오인한 까닭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을 보라.</ref>
曰: “才苟且, 如何會到極處!”
'''대답: 조금이라도 구차하면[苟且] 어떻게 지극한 지점[極處]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賀孫擧程子<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以'가 더 있다.</ref>義理精微之極<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姑以至善目之之語'가 더 있다. 이렇게 인용해야 문장이 현행본 대학혹문에 더 가깝게 된다.</ref>.
'''내가(賀孫) 정자(程子)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義理)’<ref>대학혹문에서 인용한 정이의 말이다.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원출전은 이정유서 15:183이다. '선이란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우선은[且] '지선'이라고 지목한다.(善者, 義理之精微, 無可得名. 且以至善目之.)' '임시로[姑]'나 '우선은[且]'은 모두 '구차(苟且)'와 같다. 최초의 질문자와 섭하손(두 사람은 동일인일 수도 있다)은 정자가 계속해서 지극한 진리에 '구차하게' 지선(至善)이라고 임시적인 라벨을 붙이고 있다고 하니 대학혹문의 다른 구절에 등장한 '구차(苟且)'라는 표현 역시 지선(至善)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오인한 듯하다.</ref>라는 말을 거론했다.
曰: “大抵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事皆有箇極好處. 今之人, 多是理會得半截, 便道了. 待人看來, 喚做好也得, 喚做不好也得. 自家本不曾識得到, 少刻也會入於老, 也會入於佛, 也會入於申韓之刑名. 止緣初間不理會到十分, 少刻便沒理會那箇是白, 那箇是皂, 那箇是酸, 那箇是鹹. 故大學必使人從致知直截要理會透, 方做得. 不要恁地半間半界, 含含糊糊. 某與人商量一件事, 須是要徹底敎盡. 若有些子未盡處, 如何住得. 若有事到手, 未是處, 須著極力辨別敎是. 且看孟子, 那箇事恁地含糊放過<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去'가 더 있다.</ref>! 有一字不是, 直<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須'가 더 있다.</ref>爭到底. 這是他見得十分極至, 十分透徹, 如何不說得?” 賀孫(62이후).
'''대답: 대체로 지선(至善)은 그저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 100퍼센트 단정하고 딱 맞아서[端正恰好] 조금도 옳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 조금도 (목표에) 이르지 못한 데가 없는 지점이다. 예컨대 임금을 섬김[事君]에 반드시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섬긴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경(敬)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림[治民]에 반드시 요(堯)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식과 같아야 비로소 인(仁)이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예외 없이 지극히 좋은 지점[極好處]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반절[半截]만 이해하고서 다 했다고 말한다. 남이 보고서 판단하기를 좋다고 해도 괜찮고[得] 좋지 않다고 해도 괜찮다[得]는 식이다. 이 표현에 대해서는 15:116을 참조하라.<ref>여기서 '득(得)'은 현대중국어 '行(xing)', 영어 'OK'와 같다. 누가 뭐라 해도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나른한 태도를 뜻한다.</ref> 자기 자신의 인식이 본래 (목표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 조금만 지나면 노자(老子)에게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佛]에게 들어갈 수도 있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자(韓非子)의 형명학(刑名)에도 들어갈 수 있다.<ref>전국시대 법가, 특히 신불해와 한비자의 학문을 형명(刑名) 또는 형명(形名)이라고 부른다. 이는 형벌과 관련된 이름은 아니다. 관료 각각에게 부여된 직무의 내용이 명칭(名)이고,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형체(形)이다. 형체와 명칭, 실질과 명칭이 서로 부합하도록 국가기구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형명학'이라는 별칭이 나온 것이다.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1999. P.514-515.</ref> 그저 애초에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도 어느 것이[那] 희고 어느 것이 검으며, 어느 것이 시고 어느 것이 짠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ref>여기서 '那'는 의문사이다. 현대중국어 '哪'와 같다.</ref> 그러므로 《대학》에서는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치지(致知) 단계에서부터 칼로 자른듯[直截]<ref>'직절(直截)'은 단순하고 명백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확실성, 철저성을 의미한다.</ref> 철저히 이해하도록[理會透] 요구하니, (이렇게 해야) 비로소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어중간하고[半間半界]<ref>'반간불계(半間不界)'와 같다. 철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ref> 웅얼거리듯[含含糊糊]<ref>함호(含糊)는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고 웅얼거린다는 뜻이다.</ref>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남과 무슨 일을 상의할 때에는 반드시 남김없이 철저히 하고자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곳이 있다면 어떻게 멈출 수 있겠는가? 만약 일이 손에 들어왔을 때 맞지 않은 곳이 있다면, 모름지기 극력(極力)으로 변별하여 맞게 만들어야 한다. 또 맹자(孟子)를 보라. (그가) 무슨 일을 그렇게 웅얼웅얼 대충 넘어가던가? 한 글자라도 맞지 않으면 끝까지[到底] 다투었다. 이(렇게 다툰 이유)는 그의 이해가 100퍼센트 지극하고 100퍼센트 투철했기 때문이니, (이러하다면 맹자가) 어찌 논변[說]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f>여기서는 심상하게 '말하다[說]'라고 풀어서는 안 된다. 논변을 너무 좋아한다는 당시의 악평에 대한 맹자의 변론으로 맹자 3B:9를 참조하라.</ref>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0 問: “或問說明德處云: ‘所以應乎事物之間, 莫不各有當然之則.’ 其說至善處, 又云: ‘所以見於日用之間者, 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二處相類, 何以別?”
'''질문: 《대학혹문》에서 명덕(明德)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기를 ‘사물(事物)에 응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혹문에서 지선(至善)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또 이르기를 ‘일상생활[日用] 사이에 나타나는 바에 각각 본래 그러한 일정한 법칙[本然一定之則]이 없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분이 서로 유사한데, 어떻게 구분합니까?<ref>현행본 대학혹문에는 질문자 진순이 인용한 두 문구 가운데 후자만 있다. 전자는 아마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개정의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ref>
曰: “都一般. 至善只是明德極盡處, 至纖至悉, 無所不盡.” 淳(61·70때).
'''대답: 모두 같은 이야기다. 지선(至善)은 단지 명덕(明德)이 남김없이 지극한 곳[極盡處]일 뿐이니, 지극히 섬세하고 상세하여[至纖至悉] 다하지 않음이 없다.<ref>같은 취지의 발언이 14:114에서도 보이는데 이 역시 진순이 질문하고 기록한 조목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31 仁甫問: “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
'''(다음 인용구에 대한) 인보(仁甫)의 질문: '지극히 정미한 의리여서 이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임시로[姑] '지선(至善)'이라고 지목한다.'<ref>대학혹문. 17:29를 참조하라.</ref>
曰: “此是程先生說. 至善, 便如今人說極是. 且如說孝, 孟子說‘博弈好飮酒, 不顧父母之養’, 此是不孝. 到得會奉養其親, 也似煞强得這箇, 又須著如曾子之養志, 而後爲能養. 這又似好了, 又當如所謂‘先意承志, 諭父母於道', '不遺父母惡名’, 使'國人稱願道‘幸哉有子如此’', 方好.”
'''대답: 이는 정(程) 선생의 설명이다. 지선(至善)은 곧 요즘 사람들이 '극히 옳다[極是]'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컨대 효(孝)를 말함에 있어, 맹자(孟子)가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는다’<ref>맹자 4B:30.</ref>고 한 것, 이것은 불효(不孝)이다. 자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는 경우는 역시 (앞서 말한) 그것보다는 꽤[煞] 나은[强得] 듯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증자(曾子)가 (어버이의) 뜻을 봉양한[養志] 것과 같이 해야만<ref>맹자 4A:19. 아버지의 의지를 살펴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ref> 비로소 봉양을 잘하는 것이다. 이정도로도 좋은 듯하지만, 다시 마땅히 이른바 ‘부모의 뜻을 한발 앞서 헤아려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道)로 인도하며',<ref>예기 제의편. '군자의 효도란 (어버이의) 생각을 한 발 앞서 알아차려 그 뜻을 받들고, 부모를 타일러 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봉양이나 하는 사람이니 어찌 효도한다고 하겠나?(君子之所為孝者, 先意承志,諭父母於道. 參,直養者也,安能為孝乎?)</ref>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아',<ref>예기 제의편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자기 행실을 삼가서 부모에게 오명을 끼치지 않으면 잘 보내드렸다고 할 만하다.(父母旣沒,愼行其身,不遺父母惡名,可謂能終矣.)'</ref>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저런 아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게'<ref>예기 제의편. '좋은 고기를 익혀서 드리는 것은 효가 아니라 봉양[養]이다. 군자가 말하는 효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칭찬하며 "좋겠다! 아들이 있어서." 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효이다.(亨孰膻薌,嘗而薦之,非孝也,養也。君子之所謂孝也者,國人稱愿然曰:『幸哉有子!』如此,所謂孝也已).</ref> 해야만 충분하다 하겠다.
又云: “孝莫大於尊親, 其次能養. 直是到這裏, 方喚做極是處, 方喚做至善處.”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효(孝)는 어버이를 높이는 것[尊親]보다 큰 것이 없고, 그 다음이 잘 봉양하는 것[能養]이다.<ref>예기 제의편. '큰 효도는 존친이요, 그 다음은 욕먹이지 않는 것이요, 그 아래가 잘 봉양하는 것이다.(大孝尊親,其次弗辱,其下能養)'</ref>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극히 옳은 곳[極是處]'이라 하고, 비로소 지선(至善)한 곳이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2 郭德元問: “或問: ‘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略知二者之當務,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此三者, 求之古今人物, 是有甚人相似?”
'''곽덕원(郭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오직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고, 또 스스로 충분히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도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은 달갑지 않은[不屑] 자가 있으며, 또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이다.</ref>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가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문구를 약간 축약한 형태이다. 아래 원주에서 인용한 탁록(卓錄) 쪽은 '因'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현행본 대학혹문과 일치한다.</ref>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부류를 고금(古今)의 인물 가운데서 찾아보면 누구와 비슷합니까?
曰: “如此等類甚多. 自謂能明其德而不屑乎新民者, 如佛·老便是; 不務明其明德, 而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如管仲之徒便是; 略知明德新民, 而不求止於至善者, 如前日所論王通便是<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如此'가 더 있다.</ref>. <卓錄云: “又有略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因<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狃'으로 썼다.</ref>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如前日所論王通之事是也.”><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 전체가 없는 대신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선생은 며칠 앞서 왕통론(王通論)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先生前此數日作王通論, 其間有此語.)'</ref> 看他於己分上亦甚修飭, 其論爲治本末, 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狹, 不曾就本原上著功,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始是. 看古之聖賢別無用心, 只這兩者是喫緊處: 明明德,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 正如佛家說, ‘爲此一大事因緣出見於世’, 此亦是聖人一大事也. 千言萬語, 只是說這箇道理. 若還一日不扶持, 便倒了. 聖人只是常欲扶持這箇道理, 敎他撑天柱地.” 文蔚(59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있다. '卓録同. 又問: "秦漢以下, 無一人知講學明理, 所以無善治.” 曰: “然.” 因泛論歷代以及本朝太宗眞宗之朝, 可以有爲而不爲. “太宗每日看太平廣記數卷, 若能推此心去講學, 那裏得來? 不過寫字作詩, 君臣之間以此度日而已. 眞宗東封西祀, 糜費巨萬計, 不曾做得一事. 仁宗有意於爲治, 不肯安於小成, 要做極治之事. 只是資質慈仁, 卻不甚通曉用人, 驟進驟退, 終不曾做得一事. 然百姓戴之如父母. 契丹初陵中國, 後來卻服仁宗之德, 也是慈仁之效. 緣它至誠惻怛, 故能動人如此.' 이 내용은 선두 네 글자를 제외하고 127:8과 일치하므로 그쪽을 참조하라. 여기서 번역하지는 않겠다.</ref>
'''대답: “이러한 부류는 매우 많다. 스스로 자신의 (밝은) 덕(德)을 밝힐 수 있다고 하면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로는 예컨대 불가와 노자[佛·老]가 바로 그렇다.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政敎)와 법도(法度)만 가지고도 충분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예를 들어 관중(管仲)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을 대략 알지만 지선(至善)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는 않는 자는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ref>584-617. 호는 문중자(文中子).</ref>이 바로 그렇다. <탁(卓)의 기록에는 “또 이 두 가지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임을 대략 알지만 작은 성취[小成]에 안주하고 근시안적 이익[近利]을 따라서[因] 지선(至善)이 있는 곳(所在)에 도달하여 머무르기를 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예를 들어 전날 논의했던 왕통(王通)의 경우가 그렇다.”라고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기 일신의 차원[己分上]에서도 깊이 수양했으며[修飭], 그 다스림의 본말(本末)을 논한 것도 조리가 있었으니, 이 세상[斯世]에 대해 진지하게 뜻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스케일[規模]이 얕고 좁아서 일찍이 근본[本原]의 차원에서는 힘을 쓰지[著功]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做不徹] 못한 것이다. 반드시 그 최선의 것[極]<ref>지선(至善)을 말한다.</ref>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만 한다. 가만 보면 옛 성현(聖賢)은 다른데 마음을 씀이 없었고, 그저 이 두 가지<ref>명명덕과 신민</ref>만이 긴요한 부분[喫緊處]이었다. 명덕(明德)을 밝힘에 있어서는 조금도 사욕(私欲)이 없기를 원했고, 백성을 새롭게 함[新民]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든 각각의 사안(事事物物)에 대해 모두 마땅하게 처신하기를 원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 하나의 큰 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ref>법화경 서품 '제불과 세존이 오직 이 하나의 큰 인연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다.(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ref>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성인(聖人)의 하나의 큰일[一大事]이다.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단지 이 도리를 설명할 뿐이다. 만약 하루라도 부지(扶持) 않으면 곧 쓰러져버린다. 성인(聖人)은 그저 언제나 이 도리를 부지하여 하늘과 땅을 지탱하게[撑天柱地] 하고자 하셨을 뿐이다.
문울(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33 問: “明德而不能推之以新民, 可謂是自私.”
'''질문: 명덕(明德)을 밝혔으되 그것을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하지[新民] 못한다면, 자기 생각만 한다[自私]<ref>자기 자신만을 위함, 자기 생각만 함,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있음. 주희는 보통 '자사자리(自私自利)'와 같은 형태로 사용하며 주로 불교를 비판할 적에 꺼내는 표현이다. 불교는 자기 일신의 구원만 신경쓸 뿐 세상을 구원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취지이다.</ref>고 할 만합니다.
曰: “德旣明, 自然是能新民. 然亦有一種人不如此, 此便是釋·老之學. 此箇道理, 人人有之, 不是自家可專獨之物. 旣是明得此理, 須當推以及人, 使各明其德. 豈可說我自會了, 我自樂之, 不與人共!”
'''대답: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면 자연히 백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불교와 노자의 학문이다. 이 도리는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미 이 이치를 밝혔다면, 반드시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推以及人] 각자 자기 덕(德)을 밝히게 해야 한다. 어찌 나 혼자 해냈으니 나 혼자만 그것을 즐기고 남과 공유하지 않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因說: 曾有學佛者王天順, 與陸子靜辨論云: “我這佛法, 和耳目鼻口髓腦, 皆不愛惜. 要度天下人, 各成佛法, 豈得是自私!”
'''이어서 (내가) 말함: 일전에 불교를 배운 왕천순(王天順)<ref>누군지 확실치 않다. 상산집(象山集) 권 2의 여왕순백(與王順伯) 제 2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왕천순은 왕순백의 이름을 오기한 것일 수 있다.</ref>이 육자정(陸子靜)<ref>육구연이다.</ref>과 변론하며 이르기를 '나의 이 불법(佛法)은 귀·눈·코·입·골수·뇌[耳目鼻口髓腦]까지 모두 다<ref>'和...皆'는 현대 중국어 '連...都'와 같다. '~까지 모두다', '~마저도 모두 다' 정도의 의미이다.</ref> 아끼지 않고 천하 사람들을 제도하여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데 이게 어떻게 자기 생각만 하는 것[自私]입니까!”라고 하였습니다.
先生笑曰: “待度得天下人各成佛法, 卻是敎得他各各自私. 陸子靜從初亦學佛, 嘗言: ‘儒佛差處是義利之間.’ 某應曰: ‘此猶是第二著, 只它根本處便不是. 當初釋迦爲太子時, 出遊, 見生老病死苦, 遂厭惡之, 入雪山修行. 從上一念, 便一切作空看, 惟恐割棄之不猛, 屛除之不盡. 吾儒卻不然. 蓋見得無一物不具此理, 無一理可違於物. 佛說萬理俱空, 吾儒說萬理俱實. 從此一差, 方有公私·義利之不同.’ 今學佛者云‘識心見性’, 不知是識何心, 是見何性.” 德明(44이후).
'''선생이 웃으며 말함: 천하 사람들이 각자 불법(佛法)을 이루도록 제도하겠다는 것은<ref>서두의 '대(待)'는 '욕(欲)'이나 '장요(將要)'와 같다. 어떤 것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말한다.</ref> 도리어 그들 각자가 자기 생각만 하도록[各各自私] 가르치는 것이다. 육자정(陸子靜) 역시 처음에는 불교를 배웠는데, 일찍이 (내게) 말하기를 ‘유교와 불교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의 차이이다’고 하였다.<ref>이 대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1175년 아호에서의 만남, 혹은 1181년 백록동서원에서의 만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f> 내가 응답하기를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第二著]이다. 그저 그 근본(根本)부터가 옳지 않다. 당초 석가(釋迦)가 태자(太子)였을 때 성문 밖으로 나가 노닐다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싫어하게 되어 설산(雪山)에 들어가 수행하였다.<ref>석가모니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말한다.</ref> 그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곧 일체를 공(空)으로 보게 되었고, 오직 그것을<ref>본질적으로 허망한 이 세상 일체를</ref> 잘라내어 버림[割棄]이 과감하지 못할까, 제거함[屛除]이 완벽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ref>불교의 출세간주의에 대한 설명이다. 세간의 일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ref> 우리 유학[吾儒]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대개 한 물건도 이 이치(理)를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이치도 사물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모든 이치[萬理]가 모두 헛되다[空]고 말하고, 우리 유학은 모든 이치가 모두 진실[實]하다고 말한다.<ref>'실(實)'을 '진실하다'고 번역하긴 했지만, 여기서 '공'은 내용물이 빈 그릇을, '실'은 내용물이 가득찬 그릇을 연상시키고 있음에 주의하라. 주희가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는 본질이자 당위(곧, 이치)가 있으며 그 이치가 '진실되다'라고 말할 때는 불교에서 각각의 사건과 사물에 그러한 본질이자 당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ref> 이 하나의 차이로부터 비로소 공(公)과 사(私), 의(義)와 이(利)의 차이가 있게 된다.’ 지금 불교를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본다[識心見性]’고 말하지만, 대체 무슨 마음을 알고 무슨 성품을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o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 知止而後有定以下一段
'머물 곳을 알고 나서 확정된다' 이하 단락
* 17:34 問: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能知所止] 곧 마음[方寸] 속에서 사사물물(事事物物) 모두 확정불변한 이치[定理]가 있게 된다.’에 관한 질문.<ref>대학혹문. 14:126과 163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14:163을 보면 한 제자가 지적하기를 주희가 대학장구와 대학혹문에서 '定'자를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장구의 주석에서는 '심지에 확정된 방향이 생긴다(志有定向)'고 해설하는 반면 대학혹문에서는 '마음 속에서 사사물물에 확고한 이치가 있게 된다(方寸之間, 事事物物皆有定理矣)'라고 해설한다. 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지는 만큼 그러한 앎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정신적 동력인 의지력 또한 그에 비례하여 투철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는 도덕적 앎이 투철해져서 각각의 경우에 객관적인 도덕률이 확고하게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는 知止를 인지의 차원으로, 有定을 의욕의 차원으로 나누어 본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知止도 인지, 有定도 인지의 차원이다. 14:163에서 주희는 '그게 그거다'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있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ref>
曰: “定·靜·安三項若相似, 說出來煞不同. 有定, 是就事理上說, 言知得到時, 見事物上各各有箇合當底道理. 靜, 只就心上說.”
'''대답: 정(定)·정(靜)·안(安)<ref>대학 본문에서 제시한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 다섯 단계 가운데 세 꼭지를 말한 것이다. 14:157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물에 접촉하여(物格) 앎이 지극해지면(知至)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이 확정적인(定) 이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치가) 확정적(定)이란 것은 마치 추운 자가 옷을 갈망하고 굶주린 자가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너무 확정적이라서)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견해가 이렇게 확정(定)되면 마음이 동요하거나 달아나지 않으므로 고요(靜)할 수 있다. 고요(靜)해지고 나면 가는 곳마다 편안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컨대 부귀함이나 빈천함이나 환난 등 어디에 처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족족 편안하다. 고요함(靜)은 마음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요 편안함(安)은 몸과 상황에 중점을 두고 말한 것이다. 만약 사람의 견해가 확정되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고요(靜)해질 수 있겠나. 마음이 고요(靜)하지 않으면 저렇게 하고 싶다가도 다시 이렇게 하고 싶어지니 몸이 어떻게 편안(安)할 수 있겠나. 사려할 수 있다는 것은 눈 앞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태가 닥쳤을 때 그것을 (아는대로) 실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자식은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실제로)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길 때에 이르러 각각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사정과 미묘한 부분을 사려하여 (마땅히) 멈출 (최선의) 지점을 얻을(得) 수 있다.'</ref> 세 항목은 비슷한 듯하지만 설명하면 자못 다르다. 확정됨(定)이 있다는 것은 사리(事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앎이 지극해졌을 때 사물마다 각각 마땅히 그러해야 할 도리가 있음을 (확실하게) 본다는 말이다. 고요함(靜)은 (같은 내용을)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뿐이다.<ref>14:129에서 거의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問: “‘無所擇於地而安’, 莫是‘素富貴行乎富貴, 素貧賤行乎貧賤’否?”
'''질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편안히 안정된다’<ref>대학혹문</ref>는 것은 아마도 ‘부귀(富貴)에 처하면 부귀한대로 행하고, 빈천(貧賤)에 처하면 빈천한대로 행한다’<ref>중용 제 14장. '소(素)'는 '현재(見在)'의 뜻이다.</ref>는 것 아닙니까?”
曰: “這段須看意思接續處. 如‘能得’上面帶箇‘慮’字, ‘能慮’上面帶箇‘安’字, ‘能安’上面帶箇‘靜’字, ‘能靜’上面帶箇‘定’字, ‘有定’上面帶箇‘知止’字, 意思都接續. 旣見得事物有定理, 而此心恁地寧靜了, 看處在那裏: 在這裏也安, 在那邊也安, 在富貴也安, 在貧賤也安, 在患難也安.<ref>조선고사본은 이 뒤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가 한 번 생각해 보라(看如何? 公且看,)'가 더 있다.</ref> 不見事理底人, 有一件事, 如此區處不得, 恁地區處又不得, 這如何會有定! 才不定, 則心下便營營皇皇, 心下才恁地, 又安頓在那裏得! 看在何處, 只是不安.” 賀孫(62이후).
'''대답: 이 단락은 모름지기 의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능득(能得)’ 위에는 ‘려(慮)’ 자가 있고, ‘능려(能慮)’ 위에는 ‘안(安)’ 자가 있으며, ‘능안(能安)’ 위에는 ‘정(靜)’ 자가 있고, ‘능정(能靜)’ 위에는 ‘정(定)’ 자가 있으며, ‘유정(有定)’ 위에는 ‘지지(知止)’ 자가 있으니, 뜻이 모두 이어진다. 이미 사물에 확고불변한 이치[定理]가 있음을 보고서 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졌다면[寧靜], 어떤[看]<ref>의문구 앞에 나오는 '간(看)'은 '그 어떤... 막론하고(不管, 儘管)'으로 풀이한다. 14:143, 157을 참조하라.</ref> 상황에 처했느냐를 막론하고, 여기에 있어도 편안하고[安], 저기에 있어도 편안하며, 부귀(富貴)에 있어도 편안하고, 빈천(貧賤)에 있어도 편안하며, 환난(患難)에 있어도 편안하다.<ref>부귀, 빈천, 환난은 질문자가 인용한 중용 제 14장에서 들고 있는 예시들이다.</ref> 사리(事理)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안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고 저렇게 처리해도 잘 되지 않으니, 이런 경우 어떻게 확고함(定)이 있을 수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확고(定)하지 못하면 마음속이 곧바로 안절부절 불안하니[營營皇皇], 마음속이 조금이라도 그렇게 되면 또 어디에 (자신을) 편안히 둘[安頓] 수 있겠는가! 어디에[看] 있든 그저 불안할 뿐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5 “能慮則隨事觀理, 極深硏幾.”
'''‘사려할 수 있으면[能慮] 사안에 따라 이치를 관찰하여 깊음을 지극히하고 기미를 갈고닦는다[隨事觀理, 極深硏幾].’<ref>대학혹문. '극심'과 '연기'는 본래 주역 계사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논의는 14:146을 참조하라.</ref>에 관한 질문.
曰: “到這處又更須審一審. ‘慮’字看來更重似‘思’字. 聖人下得言語恁地鎭重, 恁地重三疊四, 不若今人只說一下便了, 此聖人所以爲聖人.” 賀孫(62이후).
'''대답: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시 한 번 신중히 살펴보아야[審]<ref>'심(審)'은 극심연기의 '연(硏)'을 풀이한 말이다.</ref> 한다. ‘려(慮)’ 자는 내 생각에 ‘사(思)’ 자보다[似]<ref>여기서 '사(似)'는 '어(於)'와 같다.</ref> 더 무겁다. 성인이 표현을 고른 것이 이렇게 진중(鎭重)하고 이렇게 거듭 반복되니[重三疊四], 요즘 사람들이 그저 한 번 말하고 마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래서 성인은 성인인 것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36 安卿問: “知止是始, 能得是終. 或問言: ‘非有等級之相懸.’ 何也?”
'''안경(安卿)의 질문: 지지(知止)는 시작이고 능득(能得)은 끝입니다.<ref>이에 대한 설명은 17:34의 주석을 참조하라.</ref> 《대학혹문》에서는 (양자간에) ‘등급(等級)이 서로 현격히 벌어져 있지 않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이 말을 풀어써두어서 표현이 조금 다르다. '공자의 지우학(志于學)부터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까지와 맹자의 선인(善人), 신인(信人)으로부터 성인(聖人), 신인(神人)까지가 실로 등급이 현격히 벌어져 있어서 평생토록 거쳐가는 순서인 것과는 같지 않다.(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 孟子之善信以至聖神,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ref>고 말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也不是無等級,<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여섯 글자가 없다.</ref> 中間許多只是小階級, 無那大階級.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便是大階級, 步卻闊. 知止至能得, 只如志學至立相似, 立至不惑相似. 定·靜·安, 皆相類, 只是中間細分別恁地.”
'''대답: 역시 등급(等級)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의 많은 것들은 단지 작은 계단[階級]들일 뿐 그렇게 큰 계단은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ref>논어 2:4에서 공자가 자신이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ref>부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ref>공자가 7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 경지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많은 것들은 곧 큰 계단이니 보폭이 오히려 넓다. 지지(知止)부터 능득(能得)까지는 배움에 뜻을 두는 것[志學]부터 스스로 섰다[立]<ref>공자가 30세에 달성한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고, 스스로 섰다[立]부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不惑]<ref>40세의 경지이다.</ref>까지와 비슷하다. 정(定)·정(靜)·안(安)은 모두 비슷한 부류요, 단지 중간에 저처럼 세밀하게 구별했을 뿐이다.
問: “到能得處是學之大成, 抑後面更有工夫?”
'''질문: 능득(能得)의 경지에 이르면 배움에 대성한[學之大成] 것입니까, 아니면 뒤에 공부가 더 있습니까?
曰: “在己已盡了,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亦只是自此推去.” 㝢(61이후).
'''대답: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는[在己] 이미 다 했고,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하지만, (후자는) 역시 그저 여기서<ref>자기 자신의 차원이다.</ref> 미루어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ref>이 부분은 14:152와 흡사하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 古之欲明明德於天下一段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단락
* 17:37 問: “或問‘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 是能得已包齊家治國說了. 前晩何故又云‘能得後, 更要去齊家, 治國, 平天下'?”
'''질문: 《대학혹문》에서 ‘성의(誠意)에서 평천하(平天下)까지는 저 지선(至善)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ref>대학혹문.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이란 명명덕의 일이요 제가, 치국, 평천하란 신민의 일이다. 격물치지는 지선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요, 성의부터 평천하까지는 저 지선의 자리를 얻어 거기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ref>라고 하였는데, 이는 '능득(能得)'이 이미 제가(齊家)와 치국(治國)까지 포함하여 설명한 것입니다.<ref>전통시대 유학이 커버하는 영역을 크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으로 나누었을 때, 인용된 대학혹문의 문구대로라면 두 영역이 수기로 일원화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f>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어찌하여 또 ‘능득(能得)한 뒤에 다시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ref>치인의 영역이 수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제 저녁의 대화란 17:36을 말한다. 17:34 또한 참조하라.</ref>
曰: “以修身言之, 都已盡了. 但以明明德言之, 在己無所不盡, 萬物之理亦無所不盡. 如'至誠惟能盡性', 只盡性時萬物之理都無不盡了. 故盡其性, 便盡人之性; 盡人之性, 便盡物之性.” 㝢<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㝢同)'이다.</ref>(61이후).
'''대답: 수신(修身)으로 말하자면 이미 다 된 것이다.<ref>대학의 '능득'이란 문구는 수기와 치인 가운데 수기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말이다.</ref> 단,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차원에서도 남김 없이 다 하고 만물의 이치 또한 남김 없이 다 하는 것이다.<ref>명덕을 밝히는 일을 수기에 국한시켜 보지 말고, 수기와 치인을 포함하는 상위의 범주로 보라는 말이다.</ref> 예컨대 '오직 지극한 진정성(誠)이라야 (자신의) 본성(性)을 온전히 다할 수 있고'<ref>중용 제 22장의 한 구문을 축약한 것이다.</ref>, 오직 (자신의) 본성(性)을 다할 때라야 만물의 이치도 남김 없이 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본성(性)을 다하면 곧 남의 본성(性)을 다하게 되고, 남의 본성(性)을 다하면 곧 사물의 본성(性)을 다하게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7:38 蜚卿言: “或問云: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其長, 而天下無不平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伯羽謂' 세 자가 더 있다. '비경(蜚卿)'이 동백우(童伯羽)의 자(字)이므로 한 사람이 연이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ref> 明德之功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內, 或未盡化, 況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德乎?”
'''비경(蜚卿)이 말함: 《대학혹문》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덕(明德)을 밝힐 수 있다면, 각자 자신의 의지를 참되게 하고[誠其意],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正其心], 각자 자신의 몸을 갈고닦고[修其身], 각자 자신의 어버이를 친애하며[親其親], 각자 자신의 어른을 공경하여[長其長], 천하가 평정되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덕(明德)의 공효(功)가 과연 이와 같다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도 규문(閨門) 안에서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한 경우가 있었거늘, 하물며 커다란 천하 전체가 요순(堯舜)의 교화에 순복하여 각자 자신의 덕(德)을 밝힐 수 있으리라 말하시는 것입니까?
曰: “大學‘明明德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是有如此規模, 卻是自家本來合如此, 不如此便是欠了他底.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己推而納之溝中, 伊尹也只大槪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說‘比屋可封’,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不如此不得. 到得做不去處, 卻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卻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內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爲聖賢之學.” 道夫(60이후).
'''대답: 《대학》의 ‘천하에 명덕을 밝힌다[明明德於天下]’는 것은 일단은 그 규모(規模)<ref>대강의 윤곽선, 원대한 스케일 같은 의미이다.</ref>가 이러하다고 설명한 것뿐이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규모(規模)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은 본래부터 응당 이와 같아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곧 (본래의) 자기 것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윤(伊尹)은 평범한 백성 한 사람이라도 (요순과 같은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밀어서 도랑에 빠뜨린 것처럼 생각했다.<ref>맹자 5A:7.</ref> (그러나) 이윤(伊尹)도 역시 그저 대체로 이렇게 하고자 했다는 것 뿐이니, 또 어떻게 단 한 사람도 그 혜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또 예컨대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만하다[比屋可封]’<ref>한서 왕망전(王莽傳). '명성한 세상에는 나라에 훌륭한 사람이 많으므로, 요순 시대에는 집집마다 봉작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明聖之世,國多賢人,故唐虞之時,可比屋而封.)'</ref>는 것 역시 한두 집 정도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의 규모(規模)가 당연히 이와 같아야 하며 이와 같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던 것 뿐이다. (세웠던 스케일에 걸맞게) 해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ref>'做不去'는 '할 수 없다', '做得去'는 '할 수 있다'이다.</ref> 규모(規模)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반면<ref>'著'은 '須著'과 같다. '반드시'.</ref> 공부(工夫)는 한 마디 한 마디 나아가야 한다. 규모(規模)와 단계별 순서[次第]도 없이 그저 지엽적인 것들[細碎處]에만 힘을 쓰면 곧바로 (오늘날) 세간의 공리(功利)를 따지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규모(規模)는 있지만 세밀한 공부(工夫)가 없다면 또 한갓 빈 규모(空規模)이고 말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規模)의 크기를 지극히하고 안으로는 미루어 (구체적인) 사사물물(事事物物)의 부분에 이르게 하여 그 어느 방면으로도 공부(工夫)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聖賢)의 배움이 성현의 배움이 되는 까닭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39 問或問“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
'''《대학혹문》의 '마음의 신명[心之神明]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ref>대학혹문. '저 지(知) 같은 경우는 마음의 신명이니,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若夫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신명의 신(神)은 우리 의식의 완성도가 높음을, 명(明)은 의식의 활동성을 가리킨다. 재(宰)는 컨트롤한다는 의미이다. 묘(妙)를 운용하다로 풀이한 것은 17:40을 참조하라.</ref>에 대한 질문.
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대답: 신(神)은 그렇게 정밀하고 아름답다[精彩]는 것이요, 명(明)은 그렇게 밝게 빛난다는[光明] 것이다.
又曰: “心無事時, 都不見; 到得應事接物, 便在這裏; 應事了, 又不見: 恁地神出鬼沒!”
'''다시 말함: 마음은 일이 없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도 응사접물(應事接物)하게 되면 곧 이 안에[在這裏]<ref>마치 주인의 부주의로 인해 풀려나 달아나버린 가축처럼, 정신이 산만하여 마음이 '이 안에 없는' 상태가 바로 '방심(放心)'의 상태이다. 경건한 자세를 견지하면 산란한 정신을 수습하여 집중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집중된 상태를 어류에서는 자주 '여기 있다(在這裏)'고 표현한다.</ref> 있으며, 일에 대한 응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되니, 이렇게나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다!
又曰: “理是定在這裏, 心便是運用這理底, 須是知得到. 知若不到, 欲爲善也未肯便與你爲善; 欲不爲惡, 也未肯便不與你爲惡. 知得到了, 直是如飢渴之於飮食. 而今不讀書時, 也須收斂身心敎在這裏, 乃程夫子所謂敬也. ‘整齊嚴肅’, 雖只是恁地, 須是下工夫, 方見得.” 賀孫(62이후).
'''다시 말함: 이치(理)는 이 안에<ref>자신의 내면을 말한다.</ref> 확고하게 있고, 마음[心]은 바로 이 이치(理)를 운용(運用)하는 주체이니, 반드시 앎[知]이 지극해져야 한다. 만약 앎[知]이 지극해지지 못하면 선(善)을 행하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선(善)을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악(惡)을 행하지 않고자 해도 (마음은) 선뜻 자네와 함께 악(惡)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앎[知]이 지극해지고나면 바로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마시고 먹으려는 것[飢渴之於飮食]과 같이 (선을 행하고 불선을 피하게) 된다. 지금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반드시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여[收斂身心] 여기에 있도록[在這裏] 해야 하니, 이것이 곧 정부자(程夫子)<ref>정씨 형제를 말한다.</ref>께서 말씀하신 경(敬)이다.<ref>경에 대한 설명은 17:1부터 18까지에 걸쳐 자세히 적혀있으니 참조하라.</ref> ‘정제엄숙(整齊嚴肅)’이 비록 이런 것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힘써 해보아야만[工夫]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0 德元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或問"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고 적혀있다.</ref>: “何謂‘妙衆理’?”
'''덕원(德元)의 질문: (대학혹문의)‘묘중리(妙衆理)’는 무슨 말입니까?<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大凡道理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或錄此下云: “便只是理. 才知得,”><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便只是知得我底道理, 非是以我之知去知彼道理也. 道理固本有, 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或錄云: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夏熱冬寒,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所以謂之‘妙衆理’, 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或錄云: “蓋知得此理也.”>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주석이 없다.</ref>
'''대답: 무릇 도리(道理)는 모두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앎[知]이란 것은 <혹자의 기록에서는 이 다음에 이렇게 말함: “그저 이치(理)일 뿐이다. 알게 되면”> 곧 나에게 있는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지, 나의 앎[知]을 가지고 저쪽의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ref>주희는 '지(知)'를 여러 다른 의미로 사용하므로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앎'과 두 번째 '알게 되는'과 네 번째 '알게 되는'은 어떤 것을 알게 되는 행위(to know)를 뜻하고 세 번째 '나의 앎'은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을 뜻한다.</ref> 도리는 물론 (자기 자신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앎[知]을 사용해야만 비로소 틔워낼 수 있다.<ref>여기서의 앎은 의식(consciousness)이나 인지(cognition)에 가깝다.</ref> 만약 앎[知]이 없었다면 도리가 무슨 수로 드러나겠는가? <혹자의 기록: “알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먼저 가지고 있던 도리이다. 앎[知]이 없으면 도(道)를 놓아둘 곳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알아야 하니, 그런 다음에야 도리가 정박할 곳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우며, 임금은 인(仁)하고 신하는 공경(敬)하는 것을, 앎[知]이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한다[妙衆理]’고 했으니, 여러 이치를 잘 운용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운용(運用)’이라는 글자는 병폐가 있으므로 그저 ‘묘(妙)’ 자를 쓸 수밖에 없었다.” <혹자의 기록: “대개 이 이치를 안다는 뜻이다.”>
又問: “知與思, 於身最切緊.”
'''재질문: 앎[知]과 생각[思]은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긴요합니다.
曰: “然. 二者只是一事. 知如手, 思是使那手去做事, 思所以用夫知也.” 僩(69이후). <ref>조선고사본에는 이 뒤에 총 196자의 긴 주석이 달려있는데, 본 조목과 비교하면 첫 질문은 약간 다르고 주희의 대답 부분은 동일하며, 재질문과 재대답이 없는 형태이다. 첫 질문만 번역하고 주희의 대답부분 번역은 생략한다. '혹자의 기록. 곽형의 질문: "대학혹문에서 '(앎은) 묘중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묘중리'는 무슨 말입니까? 혹시 여러 이치의 오묘한 신비를 탐색하여 주재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或錄云:郭兄問: "或問'妙衆理而宰萬物者也', 何以謂之妙衆理? 豈非以知能探賾衆理之妙, 而爲之主宰乎?", 曰: "大凡道理, 皆是我自有之物, 非從外得. 所謂知者, 便只是理. 才知得, 便是自知得我之道理, 非是我以知去知那道理也. 道理固本有, 須用知, 方發得出來. 若無知, 道理何從而見? 才知得底, 便是自家先有之道理也. 只是無知, 則道無安頓處. 故須知, 然後道理有所湊泊也. 如冬寒夏熱, 君仁臣敬, 非知, 如何知得? 所以謂之妙萬理, 如云能運用萬理. 只是運用字又有病, 故只下得个妙字, 蓋知得此理也.")</ref>
'''대답: 그렇다. 그 둘은 하나일 뿐이다. 앎[知]은 손과 같고, 생각[思]은 저 손을 부려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니, 생각[思]이란 저 앎[知]을 사용하는 것이다.<ref>여기서의 '앎'은 알 수 있는 능력(intelligence) 혹은 의식(consciousness)에 가깝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1 問: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다음에 '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이 있다. 해당 부분은 대학혹문의 직접인용이다. 17:39를 보라.</ref>“知如何宰物?”
'''질문: 앎[知]이 어떻게 만물을 주재(宰)합니까?<ref>17:39와 40을 참조하라.</ref>
曰: “無所知覺,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是知覺.” 道夫(60이후).
'''대답: 지각(知覺)<ref>지각(知覺)은 사태의 패턴을 알아차리고 시비를 구분하는 등 인지적 활동 전반을 말한다. 주희는 심지어 이나 벼룩이 사람을 무는 것까지도 지각의 활동이라고 말한다.</ref>이 없으면 만물을 재제(宰制)<ref>힘을 행사하여 무언가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표현으로 '컨트롤하다' 정도의 뜻이다.</ref>할 수 없다. 만물을 재제(宰制)하려면 역시 지각(知覺)해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2 或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주석으로 '知者妙衆理而宰萬物'가 더 적혀있다.</ref>: “‘宰萬物’, 是‘主宰’之‘宰’, ‘宰制’之‘宰’?”<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부분 전체가 주석처리되어있고, 이어서 역시 주석으로 '答'자가 적혀있다.</ref>
'''누군가의 질문: ‘재만물(宰萬物)’은 ‘주재(主宰)’의 ‘재(宰)’입니까, ‘재제(宰制)’의 ‘재(宰)’입니까?”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대답: 주(主)가 바로 재(宰)이고, 재(宰)가 바로 제(制)이다.<ref>주(主)는 무언가를 소유한 주인, 재(宰)는 일을 통괄하는 매니져, 제(制)는 컨트롤의 뜻이다. 결국 세 글자 모두 같은 실상을 지시하는 말이다.</ref>
又問: “孟子集注言: ‘心者, 具衆理而應萬事.’ 此言‘妙衆理而宰萬物’, 如何?”
'''재질문: 《맹자집주(孟子集注)》에서는 ‘마음이란 여러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여기<ref>대학혹문을 말한다.</ref>서는 ‘여러 이치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妙’字便稍精彩, 但只是不甚穩當, ‘具’字便平穩.” 履孫(65때).
'''대답: ‘묘(妙)’ 자는 조금 정채(精彩)롭긴 하지만 그다지 온당(穩當)하진 못하고, ‘구(具)’ 자는 평온(平穩)하다.<ref>'묘'는 난이도가 높은 동작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는 인상이 있다. 그와 비교하면 '구'는 훨씬 수수하고 무엇보다도 정적이다.</ref>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때)
* 17:43 郭兄問“莫不有以知夫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68자가 더 있다. '當然之則, 如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 臣何故用敬, 父何故用慈, 子何故用孝. 畢竟未曉, 敢以君何故用仁問先生, 伏望敎誨, 俾知所以然之故' 번역은 번역문의 주석쪽을 참조하라.</ref>”
'''곽형(郭兄)이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과 그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其所當然之則]을 알지 못함이 없다”<ref>이치(理)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소이연지고(所以然之故)'는 어떤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이유를 말한다. 예컨대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소당연지칙(所當然之則)'은 우리가 이런저런 상황에 처하였을 때 준수해야 마땅한 법칙을 말한다. 예컨대 부모가 되어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다. 현행본 대학혹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천하의 사물에는 반드시 각자 그렇게 되는 까닭과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이다.(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또, 혹문의 전 5장 부분에서도 '다른 수 없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점과 반드시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莫不有以見其所當然而不容巳, 與其所以然而不可易者.)'고 적고 있다.</ref>에 대해 질문함.<ref>조선고사본에 적힌 68자를 이어서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란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비의 자(慈)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되는 까닭이란 임금은 어째서 인(仁)해야 하는지, 신하는 어째서 경(敬)해야 하는지,아비는 어째서 자(慈)해야 하는지, 아들은 어째서 효(孝)해야 하는지 등입니다. 끝내 깨치지 못하겠으니, 감히 '임금은 어째서 인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선생님께 묻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게 해주십시오.</ref>
曰: “所以然之故, 卽是更上面一層. 如君之所以仁, 蓋君是箇主腦, 人民土地皆屬它管, 它自是用仁愛. 試不仁愛看, 便行不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자연히 이렇게 하게 된다(自然用如此).'</ref> 非是說<ref>조선고사본에서는 '是說'이 '說是'로 적혀있다.</ref>爲君了, 不得已用<ref>조선고사본에서는 '以'</ref>仁愛<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行之'</ref>, 自是理合如此. 試以一家論之: 爲家長者便用愛一家之人, 惜一家之物, 自是理合如此, 若天使之然. 每常思量著, 極好笑, 自那原頭來便如此了.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蓋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 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它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爲哉! 且以仁言之: 只天地生這物時便有箇仁, 它只知生而已. 從他原頭下來, 自然有箇春夏秋冬,<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四象'.</ref> 金木水火土. <初有陰陽, 有陰陽, 便有此四者.>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주석이 없다.</ref>故賦於人物, 便有仁義禮智之性.<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自它原頭處便如此了'</ref> 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則'</ref>屬春, 屬木. 且看春間天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天地'가 없다.</ref>發生, 藹然和氣, 如草木萌芽, 初間僅一針許, 少間漸漸生長<ref>조선고사본에서는 '長'을 '發'로 적었다.</ref>, 以至枝葉花實, 變化萬狀, 便可見他生生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生之'가 없다.</ref>意. 非仁愛, 何以如此. 緣他本原處有箇仁愛溫和之理如此, 所以發之於用, 自然慈祥惻隱. 孟子說‘惻隱之端’, 惻隱又與慈仁不同, 惻隱是傷痛之切. 蓋仁, 本只有慈愛, 緣見孺子入井, 所以傷痛之切<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也'</ref>. 義屬金, 是天地自然有箇淸峻剛烈之氣. 所以人稟得, 自然有裁制, 便自然有羞惡之心. 禮智皆然. 蓋自本原而已然, 非旋安排敎如此也. 昔龜山問一學者: ‘當見孺子入井時, 其心怵惕·惻隱, 何故如此?’ 學者曰: ‘自然如此.’ 龜山曰: ‘豈可只說自然如此了便休? 須是知其所自來, 則仁不遠矣.’ 龜山此語極好. 又<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引'</ref>或人問龜山曰: ‘“以先知覺後知”, 知·覺如何分?’ 龜山曰: ‘知是知此事, 覺是覺此理.’ 且如知得君之仁, 臣之敬, 子之孝, 父之慈, 是知此事也; 又知得君之所以仁, 臣之所以敬, 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是覺此理也.” 僩(69이후).
'''대답: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란 다시 한 단계 더 위의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은 임금은 두뇌[主腦]여서 인민과 토지가 모두 그의 관할이니 그는 자연히 인애(仁愛)하게 된다. 어디 한번 (임금이) 인애(仁愛)하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즉시 말이 안 된다[行不得].<ref>'행부득(行不得)'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어 성립하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 소유인데 사람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 보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ref> 임금이 되고 나서 부득이하게 인애(仁愛)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치상 당연히 이렇다는 말이다. 어디 한번 한 집안으로 논해보자. 가장(家長)이 된 자는 곧 온 집안 사람을 사랑하고 온 집안 물건을 아끼게 되니, 이치상 당연히 그렇게 되어 마치 하늘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우스우니, 저 근원[原頭]에서부터 이와 같이 된 것이다. 또, 아버지가 자애롭게 되는 까닭과 아들이 효도하게 되는 까닭의 경우는, 대개 부자(父子)란 본래 같은 하나의 기(氣)인데 한 사람의 몸이 둘로 나뉜 것 뿐이므로,<ref>기는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자식의 신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서 연유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양측은 동질의 물질을 두 장소에 나누어둔 것 뿐이다. 비유하자면 같은 물을 두 그릇에 나누어 담은 것과 같다.</ref> 그 은혜와 사랑이 서로 이어지는[恩愛相屬] 것은 자연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중대한 인간관계의 범주[大倫]<ref>예컨대 오륜(五倫) 같은 것이다.</ref>들이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天理)가 그렇게 시킨 것이다. 어찌 억지로 노력하는 요소가 끼어들 틈이 있겠나? 또, 인(仁)으로 말해보자면, 천지(天地)가 이 사물들을 낳으면서 인(仁)이 있게 되니, 그것은<ref>천지를 말한다.</ref> 단지 낳을[生] 줄만 알 뿐이다. 그 근원[原頭]으로부터 흘러나와 자연히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있게 된다. <먼저 음양(陰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있고 나서 이 네 가지가 있게 된다.><ref>본문의 맥락으로 보면 이 '네 가지'는 춘하추동이다. 다만 조선고사본쪽을 따르자면 이 네 가지는 사상(四象)이다. 사상은 음양이 한 차례 더 분화한 형태, 곧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을 말한다.</ref> 그러므로 (그것들이) 사람과 사물(人物)에게 부여되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이 있게 된다. 인(仁)은 봄에 속하고 목(木)에 속한다.<ref>17:19, 6:45를 참조하라.</ref> 또, 봄철에 천지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온화한 기운이 가득한 것[藹然和氣]을 보라. 예컨대 초목의 싹[萌芽]이 처음에는 겨우 바늘 하나 크기였다가 이윽고 점점 생장하여 가지, 잎, 꽃, 열매에 이르도록 변화만상(變化萬狀)하니, 이에 그것의<ref>천지.</ref> 낳고 낳는[生生] 의지를 볼 수 있다. (천지의) 인애(仁愛)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겠는가. 그것의 본원(本原)에 인애온화(仁愛溫和)의 이치가 이렇게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발현되어 작용할 적에 자연히 자애롭고 측은하다[慈祥惻隱]. 맹자(孟子)가 ‘측은(惻隱)의 단서[端]’<ref>사단의 하나인 측은지심을 말한다.</ref>를 말하였는데, 측은(惻隱)은 또 자인(慈仁)과 다르니, 측은(惻隱)은 상심하고 애통함[傷痛]이 간절한 것이다. 대개 인(仁)은 본래 자애(慈愛)만 있을 뿐이지만,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심하고 애통함이 간절한 것이다. 의(義)는 금(金)에 속하니, 천지에는 자연히 맑고 준엄하며 굳세고 맹렬한 기운[淸峻剛烈之氣]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그것을 부여받으면 자연히 재제(裁制)<ref>선을 긋고 잘라내고 절제하고 통제하는 행위.</ref>함이 있게 되고, 자연히 수오지심(羞惡之心)<ref>불명예를 수치스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다.</ref>이 있게 된다. 예(禮)와 지(智)의 경우도 모두 그러하다. 대개 본원(本原)으로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지, 임의로[旋]<ref>'旋'은 멋대로, 임의로(隨意).</ref> (의도를 가지고) 안배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옛날 구산(龜山)<ref>이정의 제자 양시.</ref>이 어떤 배우는 이에게 묻기를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깜짝 놀라고 측은한데[怵惕惻隱], 어째서 이러한가?’ 하니, 그 사람이 답하기를 ‘자연히 그러합니다.’라고 하였다. 구산(龜山)이 말하기를 ‘어찌 그냥 자연히 그렇다고만 말하고 말 수 있는가? 반드시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所自來]를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인(仁)에서 멀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ref>구산집(龜山集) 권 11, 어록 2. '(선생이) 말함: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본 사람에게 반드시 측은지심이 드는데, 자기의 고통이 아닌데도 빠진자를 위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조의 대답: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멈출 수 없습니다." (선생이) 말함: 어찌 자연스럽게 그러하겠나? 이 이치를 몸소 탐구하여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인의 도리가 멀지 않게 될 것이다." (曰: "孺子將入於井, 而人見之者, 必有惻隠之心, 疾痛非在己也, 而爲之疾痛, 何也?" 似祖曰: "出於自然, 不可已也." 曰: "安得自然如此? 若體究此理, 知其所從來, 則仁之道不遠矣.")' 주희의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ref> 구산의 이 말이 대단히 좋다. 또 어떤 사람이 구산에게 묻기를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친다”에서 앎(知)과 깨우침(覺)은 무슨 차이입니까?’라고 하니, 구산이 말하기를 ‘지(知)는 이 일[事]을 안다는 것이고, 각(覺)은 이 이치[理]를 깨닫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ref>양시가 아니라 이정의 말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 1에 보인다. 해당 텍스트는 양시가 이정의 어록을 문어체로 바꾼 작품이다. 이때문에 양시의 말인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누군가의 질문: "석씨는 '말 한마디에 깨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왜 꼭 부처인가? 맹자도 그렇게 말했다. 먼저 안 자가 뒤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뒤에 깨친 자를 깨우친다. 앎은 이 일을 안다는 것이고 깨달음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或問:釋氏有言下覺,如何? 子曰:何必浮屠氏? 孟子言之矣. 以先知覺後知,以先覺覺後覺. 知者,知此事也. 覺者,覺此理也.)'</ref> 예컨대 임금의 인(仁)과 신하의 경(敬), 아들의 효(孝), 아버지의 자(慈)를 아는 것은 이 일을 아는 것이다. 나아가, 임금이 인(仁)하게 되는 까닭, 신하가 경(敬)하게 되는 까닭, 아버지가 자(慈)하게 되는 까닭, 아들이 효(孝)하게 되는 까닭을 아는 것은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7:44 或問“格物”章本有“所以然之故”.
'''대학혹문의 ‘격물(格物)’ 장(章)에 원래는 ‘그렇게 되는 까닭[所以然之故]'이라는 표현이 있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듣기로, 천도가 작동하여 (만물을) 만들어내고 길러냄에, 소리와 색과 모양을 가지고서 천지 사이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모두 물(物)이다. 물이 있고 나면, 이 물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까닭에는 각각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어서 자연히 그만둘 수 없으니, 이는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을 받은 것이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曰: "吾聞之也: 天道流行, 造化發育, 凡有聲色貌象而盈於天地之間者, 皆物也; 旣有是物, 則其所以爲是物者莫不各有當然之則而自不容已, 是皆得於天之所賦而非人之所能爲也.)"</ref>
曰: “後來看得, 且要見得‘所當然’是要切處. 若果見得不容已處, 則自可黙會矣.”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 나중에 보니, 우선은 ‘그렇게 해야 마땅한 바[所當然]’를 알게 하는 것이 긴요하고 절실[要切]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정말로 그만둘 수 없다는[不容已] 측면<ref>'소당연'을 말한다.</ref>을 보게 된다면 저절로 묵묵히 이해할[默會]<ref>묵묵히 이해함은 소리로 발성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개념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감의 차원에서 절감하여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비가역적인 변화가 발생함을 말한다.</ref> 수 있게 될 것이다.
===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 단락 ===
* 治國平天下者諸侯之事一段
'치국과 평천하는 (천자와) 제후의 일이다'<ref>치국은 제후의 일이고 평천하는 천자의 일이다. 대학혹문 원문에서는 '천자와 제후의 일(天子諸侯之事)'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는 천자 부분이 생략된 형태로 인용되어 있다.</ref> 단락
* 17:45 問: “南軒謂: ‘爲己者, 無所爲而然也.’”
'''질문: 남헌(南軒)<ref>장식(張栻)</ref>이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ref>논어 14:25.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타인의 인정과 주목을 목표로 배움에 종사한다면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전자가 위기지학, 후자가 위인지학이다.</ref>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也].’<ref> 남헌집 권14. 맹자강의서(孟子講義序). '배우는 사람이 공자와 맹자에 깊이 마음을 두어 반드시 그 문을 찾아 들어가려 한다면, 내 생각에 의(義)와 이(利)의 분별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대개 성인의 학문은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 위하는 바 없이 그러함이 (바로 중용에서 말한) 천명(命)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고, 본성(性)이 치우치지 않는 이유이며, 가르침(敎)이 무궁한 이유이다. 무릇 위하는 바가 있어서 그리 되는 것들은 모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요 천리(天理)가 간직된 바가 아니니, 이것이 바로 의와 이의 구분이다.(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爲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爲而然也. 無所爲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敎之所以無窮也. 凡有所爲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해당 부분은 주희가 대학혹문에서 직접인용하고 있다.</ref>라고 했습니다.
曰: “只是見得天下事皆我所合當爲而爲之, 非有所因而爲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之'를 '也'로 적었다.</ref>. 然所謂天下之事皆我之所當爲者, 只恁地强信不得. 須是學到那田地, 經歷磨鍊多後, 方信得過.” 道夫(60이후).
'''대답: 단지 천하의 일이 모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보았기에 (그 모든 일들을) 하는 것이지,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하여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ref>통상적인 논어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기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위인지학으로, '자기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위기지학이라고 본 것이다. 대학혹문 경 1장의 14절에서는 치국과 평천하는 모두 천자나 제후쯤 되는 사람들의 일인데 평범한 사대부가 대학을 읽으며 치국 평천하를 꿈꾸는 것은 직분을 벗어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므로 '위인지학'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군자란 자신이 모시는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어 백성들에게 요순의 은택을 입히려고 하므로 치국 평천하가 모두 군자의 '직분'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대학의 치국 평천하 부분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 직분 내의 것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위기지학'이 된다. 관련하여 어류 15:156을 보라.</ref> 그러나 이른바 천하의 일이 모두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은, 그저 그렇게 억지로 믿는[强信] 것으로는 안 된다. 반드시 배워서 저 경지[田地]에 도달하여 많은 경험과 단련[經歷磨鍊]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확실히 믿어지게 된다[信得過].<ref>'得過'의 '득'은 가능성을, '과'는 방향을 나타내는 보어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46 問爲己.
'''위기(爲己)에 대해 묻다.<ref>직전 조목을 참조하라.</ref>
曰: “這須要自看, 逐日之間, 小事大事, 只是道我合當做, 便如此做, 這便是無所爲. 且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會身己. 才說要人知, 便是有所爲. 如世上人才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爲人之甚者.” 賀孫(62이후).
'''대답: 이는 모름지기 스스로 보아야 하니, 매일매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그저 '나는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하는 바가 없는 것[無所爲]이다. 예컨대 글을 읽을 때, 그저 '나는 이렇게 (이걸)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자기자신을 신경써야[理會] 한다'<ref>'리회(理會)'는 종종 어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살피고 헤아리는 행위를 말한다. 8:91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이 된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이 글을 읽자마자 (자기가) 읽은 것을 활용하여[安排] 완전히[好]<ref>'好'는 이어지는 동작의 완성도가 높음을 나타낸다.</ref> 시문(時文)<ref>과거시험답안.</ref>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중에서도 남을 위함[爲人]이 심한 경우이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7 “‘爲己者, 無所爲而然.’ 無所爲, 只是見得自家合當做, 不是要人道好. 如甲兵·錢穀·籩豆·有司, 到當自家理會便理會, 不是爲別人了理會. 如割股·廬墓, 一則是不忍其親之病, 一則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爲己.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爲人.”
'''‘자신을 위하는 자[爲己者]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無所爲而然].’<ref>장식의 말. 17:45를 보라.</ref> 위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그저 자기 자신이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이지,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갑병(甲兵)<ref>군무를 말한다.</ref>·전곡(錢穀)<ref>재무를 말한다.</ref>·변두(籩豆)<ref>제사와 의전을 말한다.</ref>·유사(有司)<ref>그밖의 모든 실무를 말한다.</ref>와 같이, 자기 자신이 마땅히 처리[理會]<ref>'리회(理會)'의 번역에 관해서는 직전 조목의 주석을 참조하라.</ref>해야 할 때가 되면 곧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할고(割股)<ref>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위. 효행의 케이스로 종종 거론된다.</ref>나 여묘(廬墓)<ref>부모의 무덤 곁에 여막을 짓고 사는 행위. 역시 효행의 일종으로 거론된다.</ref> 같은 것은, 하나는 그 어버이의 병듬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버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행위이다. 만약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곧 남을 위하는[爲人] 행위이다.<ref> 이 부분은 대학혹문의 특정 구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대저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천하의 사무를 보기를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자신의 사무로 여기고 수행한다면 갑병, 전곡, 변두, 유사의 업무조차도 모두 자신을 위하는[爲己]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겠구나 하여 수행한다면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내고 여묘살이하고 망가진 수레와 파리한 말을 타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하는[爲人] 것일 뿐이다.(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廬墓、敝車羸馬, 亦爲人耳.)'</ref>
器遠問: “子房以家世相韓故, 從少年結士, 欲爲韓報仇, 這是有所爲否?”
'''기원(器遠)<ref>주희의 제자 조숙원(曹叔遠)</ref>의 질문: 자방(子房)<ref>한(漢)의 개국공신 장량(張良, BC 250-BC 186).</ref>이 집안 대대로 한(韓)나라를 섬겼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선비를 모아 한(韓)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위하는 바가 있는 것[有所爲] 아닙니까?
曰: “他當初只一心欲爲國報仇. 只見這是箇臣子合當做底事, 不是爲別人, 不是要人知.” 賀孫(62이후).
'''대답: 그는 애당초 오직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저 이것이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보았을 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7:48 行夫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남헌이 말하기를(南軒云)'이 더 있다.</ref>“爲己者無所爲而然”.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다. 이는 모든 일이 다 자신이 응당 해야 할 바라고 보아서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떤 다른 (목적)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 아닙니까? (也. 這是見得凡事皆吾所當爲, 非求人知, 不求人譽, 無倚無靠之謂否?)'가 더 있다.</ref>
'''행부(行夫)<ref>'행보'라고 읽어야 할지 '행부'라고 읽어야 할지 확실치 않다.</ref>가 “자신을 위하는 자는 위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다[爲己者無所爲而然]”에 대해 질문함.<ref>이 부분에 대해서는 17:45와 46, 47을 참조하라.</ref>
曰: “有所爲者, 是爲人也. 這須是見得天下之事實是己所當爲, 非吾性分之外所能有, 然後爲之, 而無爲人之弊耳. 且如‘哭死而哀, 非爲生者’. 今人弔人之喪, 若以爲亡者平日與吾善厚, 眞箇可悼, 哭之發於中心, 此固出於自然者. 又有一般人欲亡者家人知我如此而哭者, 便不是, 這便是爲人. 又如人做一件善事, 是自家自肯去做, 非待人敎自家做, 方勉强做, 此便不是爲人也.”
'''대답: 위하는 바가 있다는 것은[有所爲者] 남을 위한다는 것[爲人]이다. 이에 관해서는 반드시 천하의 일이 기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며 자기 본연의 직분[性分]의 범위 밖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니 (그렇게 알게 된) 뒤에 그것을 실천해야 남을 위하는 폐단[爲人之弊]이 없게 될 뿐이다.<ref>대학혹문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활연대공하여, 천하를 봄에 그 어떤 사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고, 그 어떤 일도 자신의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바가 아니라고 여김이 없다. 혹여 천한 필부의 처지에 있더라도 자기 임금을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여전히 자기 직분의 범위 안에 있다고 여긴다.(是以君子之心, 豁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去聲內也)'</ref> 예컨대 ‘죽은 이를 위해 곡하며 슬퍼하는 것은 산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의 경우,<ref>맹자 7B:33.</ref> 요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喪)에 조문할 때, 만약 망자가 평소 나와 잘 지냈으므로 참으로 애석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통곡한다면 이는 진실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망자의 가족이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곡하니, 이는 옳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남을 위하는 것[爲人]이다.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이 기꺼이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자기더러 하라고 시키면 그제서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곧 남을 위하는 경우[爲人]가 아니다.
道夫曰: “先生所說錢穀·甲兵·割股·廬墓, 已甚分明, 在人所見如何爾.”
'''내가(道夫) 말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전곡(錢穀)·갑병(甲兵)·할고(割股)·여묘(廬墓)<ref>17:47을 참조하라.</ref>는 매우[已甚] 분명하니, (이러한 행위들이 위기가 되느냐 위인이 되느냐는) 사람들 각자의 소견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ref>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는 뜻이다.</ref>
又問: “割股一事如何?”
'''(내가) 다시 질문함: 할고(割股)는 어떻습니까?
曰: “割股固自不是. 若是誠心爲之, 不求人知, 亦庶幾.”
'''대답: 할고(割股)는 물론 옳지 않지만, 만약 성심(誠心)으로 한 일이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면 역시 (옳은 쪽으로) 거의 가깝다[庶幾].
“今有以此要譽者.”
'''(나의 말): 요즘 이로써 명예를 구하려는 자가 있습니다.
因擧一事爲問. 先生詢究, 駭愕者久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재질문: "요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다들 자신의 (할고 등의) 행위가 옳지 않다고 자인합니다<그럴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곡절(을 살펴보면) 역시 매우 난처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윽고, ...(再問: 如今都不問如何, 都<不只>自認自家不是, 然其曲折亦甚難處. 久之,)'가 더 있다.</ref> 乃始正色直辭曰: “只是自家過計了. 設使後來如何, 自家也未到得如此. 天下事惟其直而已. 試問鄕鄰, 自家平日是甚麽樣人! 官司推究亦自可見.”
'''이어서 한 가지 일을 들어 물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사정을) 자세히 물으시고 한동안 경악하셨다. 이내 안색을 바로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다: (그사람) 자신의 계산이 지나쳤던[過計] 것일 뿐이다. 설사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역시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천하의 일(에 대처하는 자세로는) 오직 정직함[直] 뿐이다. (그 사람은) 어디 한번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자기 자신이 평소 어떤 사람인지! 관청(官司)에서 조사해도 역시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行夫曰: “亦著下獄使錢, 得箇費力去.”
행부(行夫)의 말: 그래도 (체포될 경우) 옥에 갇혀 돈을 써야 하니[著]<ref>'著'은 종종 '須著'의 준말로 쓰인다. '~해야 한다'의 의미이다. 17:38의 용례를 참조하라.</ref> 고생이 많을 것입니다.
曰: “世上那解免得全不霑濕! 如先所說, 是不安於義理之慮. 若安於義理之慮, 但見義理之當爲, 便恁滴水滴凍做去, 都無後來許多事.” 道夫(60이후).
'''대답: 세상에 어떻게[那] 조금도 젖지 않고[霑濕]<ref>'점유(沾濡)'라고도 쓴다.</ref> 면할 수[解]<ref>'解'는 영어에서의 can과 같다.</ref> 있겠는가! 앞서 말한 경우 같으면, (그 사람은)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의리(義理)에 대한 생각에서 편안했더라면 그저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임을 이해하고서 곧 그렇게 물방울이 떨어지자마자 어는 것처럼[滴水滴凍]<ref>'적수성동(滴水成凍)'의 형태로도 사용한다. 확고부동함, 과감함, 엄정함을 의미하며, 확실하게 하나하나 사안을 격파해가는 기상을 형용하기도 한다. 주자어류사휘연구 p.255 참조.</ref> 해나가서 뒷날의 여러 사건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f>본 조목의 후반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다. 일역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짐작한다. 송회요집고등을 보면 당시 의도적인 할고를 통해 효자로 인정받아 세금과 요역을 면제받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급 관청에서는 할고행위가 보고되면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부당이득을 목적으로 자행한 것인지 확인하고 조사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고, 조사 결과 불순한 할고라고 판단되면 체포하여 투옥시키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사건의 당사자는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할고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도 자신이 위선자로 지목되어 관청의 조사를 받게 될까 두려워 할고하지 않았고, 그 결과 (어쩌면 할고를 통해 병이 나을 수도 있었을) 부모가 사망한 것이다.</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전 1장 ==
* 傳一章
전 1장
===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 然則其曰克明德一段
'그렇다면 (전 1장에서) 극명덕이라고 한 것은...' 단락
* 17:49 問: “‘克明德’, ‘克, 能也’. 或問中卻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질문: ‘극명덕(克明德)’<ref>대학 전 1장.</ref>에 대하여 ‘극(克)은 능(能)이다.’<ref>해당부분에 대한 대학장구의 주석.</ref>고 하였는데, 《대학혹문》 에서는 도리어 ‘이겨내려는[克] 노력을 다할 수 있다’<ref>현행본 대학혹문에서는 '能'자가 없고 '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라고 쓰고 있다.</ref>고 풀이하여 다시‘이겨내어 다스리다[克治]’의 ‘극(克)’처럼 보이는데, 어째서입니까?<ref>극(克)은 능(能)이나 승(勝)으로 훈한다. 대학장구에서는 능으로 훈했는데 혹문에서는 승으로 훈했으니 이상하다는 질문이다.</ref>
曰: “此‘克’字雖訓‘能’字, 然‘克’字重於<ref>여유량본 이전의 판본들은 모두 '於'를 '如'로 적고 있다.</ref>‘能’字. ‘能’字無力, ‘克’字有力. 便見得是他人不能, 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德’, 語意便都弱了. 凡字有訓義一般, 而聲響頓異, 便見得有力無力之分, 如‘克’之與‘能’是也. 如云‘克宅厥心’, ‘克明俊德’之類, 可見.” 僩(69이후).
'''대답: 이 ‘극(克)’ 자는 비록 ‘능(能)’ 자로 훈(訓)하지만, 그래도 ‘극(克)’ 자가 ‘능(能)’ 자보다 무겁다. ‘능(能)’ 자는 힘이 없고 ‘극(克)’ 자는 힘이 있다. 곧 다른 사람은 능하지 못한데 문왕(文王)만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단지 ‘능명덕(能明德)’이라고만 썼으면 말의 뜻이 모두 약해졌을 것이다. 무릇 글자 중에는 훈(訓)과 뜻[義]은 같지만 음향[聲響]이 완전히[頓] 달라서 힘이 있고 없음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극(克)’과 ‘능(能)’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능히 삼택의 마음을 안다[克宅厥心]’<ref>상서 주서 입정(立政)편 제 12장. 본래 '惟克厥宅心'이어야 하는데 본 조목에서는 글자의 순서를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택(宅)'은 지위이다. 입정편에서 세 가지 큰 지위에 거한 자를 '삼택' 혹은 '삼유택(三有宅)'이라고 부른다. '惟克厥宅心'은 문왕(文王)이 이 삼택의 마음을 능히 잘 알았다는 뜻이다.</ref>, ‘능히 큰 덕을 밝힌다[克明俊德]’<ref>상서 우서 요전 제 2장. 대학 전 1장에서도 인용하고 있다.</ref> 등과 같은 것들에서 (이 차이를) 볼 수 있다.<ref>주희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 顧諟天之明命一段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 단락
* 17:50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대학혹문에서 밝은 명령에 대해 설명한 곳에서 말하기를(或問說明命處云)'이 더 있다.</ref>: “‘全體大用, 無時不發見於日用之間’. 如何是體? 如何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如何是體? 如何是用?'이 없고 '일상 속의 어디가 전체대용의 지점입니까?(日用間如何是全體大用處)'라고 적혀 있다.</ref>
'''질문:‘온전한 본체[全體]와 위대한 작용[大用]이 일상[日用] 속에서 발현되지 않는 때가 없다'<ref>대학혹문.</ref>에서, 체(體)는 무엇이고 용(用)은 무엇입니까?<ref>본체(體)와 작용(用)은 주희 고유의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이다. 이 개념쌍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체언'과 '용언'이라는 문법용어를 되짚어보시기를 권한다. 나, 너, 소, 말 등 정지된 형태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는 물체들을 지시하는 말이 체언이다. 그렇게 그려낸 물체의 작동을 서술하는 '서술부'에 넣을 만한 말들이 '용언'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이 있으면 '자전거'가 체, '움직인다'가 용이다. 어류 1: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귀가 본체라면 들음(hearing)은 작용이다. 눈이 본체라면 봄(seeing)은 작용이다(假如耳便是體, 聽便是用; 目是體, 見是用)" 5:65도 참조하면 좋다. 대학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전체대용(全體大用)'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명덕(明德)과 그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양상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ref>
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 <ref>조선고사본에서는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 便是用.'이 없고, 그 대신 '可見.'과 '如喜怒哀樂'의 사이에 '體與用不相離, 如這是體, 起來運行便是用.'이 있다.</ref>‘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ref>조선고사본에서는 '擧此一節'</ref>, 體·用便<ref>조선고사본에서는 '便'을 '亦'으로 적었다.</ref>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하의 주석에서처럼 '희노는 용이요,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如喜怒是用, 所以能喜怒者, 便是體)'라고 적고 있다.</ref>”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61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 <淳錄云: “所以能喜怒者, 便是體.”> 㝢'을 간단히 '순의 기록. 우의 기록도 같다(淳. 㝢同.)'라고 적고 있다.</ref>
'''대답: 체(體)와 용(用)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몸[身]은 체(體)이고 일어나 가려는 것은 용(用)이다.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모두 경악하고 측은한 마음[怵惕惻隱之心]이 있다’는 단지 이 한 가지 단서에서 체(體)와 용(用)을 볼 수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용(用)이고, 희노애락의 원천[所以喜怒哀樂]은 체(體)이다. <진순의 기록: 희노할 수 있게끔 해주는 원천이 체이다.><ref>'소이(所以)'는 가능근거이다. 우리의 몸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걷고 달리는 것이 가능하고 핸드폰이 있어야 앱이 돌아가는 것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솟구침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능근거가 먼저 존재해야 한다.</ref><ref>본 조목은 서우와 진순이 각각 기록한 것인데 조선고사본에서는 진순의 것을 수록했고 여정덕본에서는 서우의 기록을 기준으로 하되 진순의 것을 주석으로 삽입한 것처럼 보인다.</ref>
* 17:51 問: “或問: ‘常目在之, 眞若見其“參於前, 倚於衡”也, 則“成性存存”, 而道義出矣.’<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다음 구문이 더 있다. '늘 반복하여 생각하지만 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중용』(제 16장)에서 말하기를, '마치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고 한 것은 귀신(鬼神)의 성정과 공효[德]가 이처럼 성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귀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몸 밖에 (실제로) 있는 물건입니다만, 지금 이른바 (밝은) 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나의 이 작은 마음 속에 갖추어진 것이니, 애초에 어찌 형체가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마치 정말로 그것이 앞에 참여하고 있고 멍에에 기대고 있음을 보듯이 하라"고 하니,(常反覆思之, 而未會其意. 如中庸言, 如在其上, 如其左右, 是言鬼神之德如此其盛也. 猶曰鬼神者, 身外之物也. 今之所謂德者, 乃天之所以命我, 而具於一心之微, 初豈有形體之可見? 今乃曰眞若見其參於前而倚於衡,)'</ref> 不知<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其'가 더 있다.</ref>所見者果何物耶?”
'''질문: 《대학혹문》에서 ‘"항상 거기에 눈을 두어서[常目在之]"<ref>대학 전 1장에 나오는 '고식(顧諟)'에 대한 주희의 풀이이다. 대학장구에 보인다.</ref> 마치 정말로 “(서 있을 때는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음"<ref>논어 15:5</ref>을 보듯이 한다면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주역 계사상전 제 7장. '이루어진 본성을 간직하고 간직함이 도의가 나오는 문이다(成性存存, 道義之門)'</ref>’<ref>대학혹문. 어류 16:9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조하라.</ref>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물건입니까?
曰: “此豈有物可見! 但是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 每與是德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在. 一出言, 則言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一行事, 則事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不過如此耳, 初豈實有一物可以見其形象耶!” 壯祖(미상).
'''대답: 이 어찌 볼 수 있는 물건이겠는가? 다만 뭇 사람들이 성찰(省察)할 줄 몰라서 일상생활[常行日用] 속에서 매양 이 (밝은) 덕(德)을 잊고 지내며,<ref>'與'는 뒤따라오는 명사구를 목적어로 확정해준다. '相'은 뒤따라오는 동사의 일방적인 적용을 나타낸다. 뭇 사람들'이' 밝은 덕'을' 잊고 사는 것이지, 밝은 덕과 사람들이 서로를 잊고 산다는 말이 아니다.</ref> 자신이 이것을 가지고 있는줄도 모르고 있다. 지금 이른바 '자세히 살핀다[顧諟]'는 것은 그저 마음속에서 늘 이 이치(理)를 간직하고 있으라는 것 정도이다.<ref>'在'는 단정적 어감의 어기사로, 문언의 '焉'과 같다.</ref> 일단 말을 냈으면 말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當然之則]이 있으니 실언해서는 안 되고, 일단 일을 행했으면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마땅한 법칙이 있으니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에 불과할 뿐이니, 애초에 어찌 실제로 무슨 물건이 있어 그 형상(形象)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는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2 問: “引‘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질문: '이루어진 본성(性)을 간직하고 간직하여[成性存存] 도의(道義)가 (거기서) 나올 것이다.'<ref>17:51을 참조하라.</ref>를 인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曰: “自天之所命, 謂之明命, 我這裏得之於己, 謂之明德,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會忠; 事親必會孝; 見孺子,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 便自然會恭敬; 合辭遜處, 便自然會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會合道理!” 賀孫(62이후).
'''대답: 하늘이 명(命)한 바를 '밝은 명령(明命)'이라 하고, 내가 내 속에 얻은 것을 '밝은 덕(明德)'이라 하니, (이 둘은)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것을[這些] 자기 속에 잘 간직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속에 간직하기만 하면,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충(忠)할 수 있을 것이고, 어버이를 섬김에 반드시 효(孝)할 수 있을 것이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를 보면 깜짝 놀라는(怵惕)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고, 담을 뚫고 넘어[穿窬] (도둑질하는) 무리를 보면 수치스럽고 미워하는[羞惡] 마음이 바로 틔워나올 것이며, 응당 공경(恭敬)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공경할 수 있을 것이고, 응당 사양[辭遜]해야 할 곳에서는 바로 자연스레 사양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반드시 이 마음을 잘 간직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곧 이 본성(性)이 발현한 것이 모두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이것을<ref>밝은 명령이자 밝은 덕.</ref> 잘 간직하지도 못하면서 틔워나오길 기대한다면 그 무엇이 도리에 합치할 수 있겠나?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 是三者固皆自明之事一段
'이 세 가지는 실로 모두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단락
* 17:53 問: “‘顧諟’一句, 或問復以爲見‘天之未始不爲人, 而人之未始不爲天’, 何也?”
'''질문: '자세히 살피다[顧諟]’<ref>대학 전 1장. '하늘의 밝은 명령을 자세히 살핀다[顧諟天之明命]' 원출전은 서경 상서 태갑편.</ref> 구절은 《대학혹문》에서 다시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曰: “只是言人之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則, 所謂天理也. 人若每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只一理. 若理會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壯祖(미상).
'''대답: 사람의 본성(性)은 본래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일상생활[日用]에는 마땅히 따라야 할 법칙[當然之則]이 있지 않음을 말한 것 뿐이다. 법칙[則]이란 이른바 천리(天理)이다. 사람이 매사를 옳게 한다면 곧 천리(天理)에 합치된다. 하늘과 사람은 본래 (동일한)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 만약 이 뜻을 이해한다면 하늘이 어찌 (사람보다) 클 것이며 사람이 어찌 (하늘보다) 작을 것인가?
장조(壯祖)의 기록. (미상)
* 17:54 問“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
''' '하늘은 일찍이 사람이 아닌 적이 없고 사람은 일찍이 하늘이 아닌 적이 없다[天未始不爲人, 而人未始不爲天]'에 대한 질문.
曰: “天卽人, 人卽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旣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只今說話, 天便在這裏. 顧諟, 是常要看敎光明燦爛, 照在目前.” 僩(69이후).
'''대답: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의 탄생은 하늘에서 얻었으니, 이 사람을 낳은 이상 하늘은 다시 사람 안에 있게 된다. 말하고 움직이며 보고 듣는 것[語言動作視聽] 모두가 다 하늘이다. 바로 지금 (내가) 말하고 떠드는 것도 하늘이 그 안에 있다. '자세히 살핀다[顧諟]'함은 항상 (명덕의) 찬란한 광명(光明)이 내 눈 앞을 비추도록 보라는 것이다.<ref>유사한 표현이 14:73에 있으니 참조하라.</ref>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전 2장 ==
* 傳二章
전 2장
===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 或問盤之有銘一段
'누군가의 질문: 욕조(盤)에 명문(銘)을 새긴 까닭은...' 단락
* 17:55 德元問: “湯之盤銘, 見於何書?”
'''덕원(德元)<ref>곽우인(郭友仁)</ref>의 질문: 탕(湯) 임금의 반명(盤銘)<ref>물그릇에 새긴 글귀이다. 대학 전 2장에 보인다.</ref>은 어느 책에서 보입니까?
曰: “只<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是'가 있다.</ref>見於大學.”
'''대답: 오직 《대학》에서만 보인다.
又曰<ref>조선고사본에서는 '又曰'이 없다.</ref>: “成湯工夫全是在‘敬’字上. 看<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得'이 있다.</ref>來, 大段是一箇修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亦說得大段地著. 如禹‘克勤于邦, 克儉于家’之類, 卻是大綱說. 到湯, 便說‘檢身若不及’.”
'''다시 말함: 성탕(成湯)의 공부(工夫)는 모두 '경(敬)' 자 하나에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대단히 단정하고 삼가는[修飭] 사람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가 실천한 공부를 말할 때 또한 매우 드러나게[著] 말했다. 예를 들어 우(禹)임금의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했다[克勤于邦, 克儉于家]'<ref>상서 우서 대우모 제 14장. '나라 일에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으니, (이는) 너의 현명함이니라.(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ref> 같은 부류는 도리어 대강(大綱)을 말한 것이다. 탕(湯) 임금에 대해서는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했다[檢身若不及]'<ref>아무리 단속해도 부족하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상서 상서 이훈 제 5장. '위에 거하시어 능히 밝히시며, 아래에 거하시어 능히 충성하시며, 사람을 허여하되 다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몸을 단속하되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시어 만방을 소유함에 이르셨으니, 오직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居上克明, 爲下克忠,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 以至于有萬邦, 玆惟艱哉)'</ref>고 말한다.
文蔚云: “‘以義制事, 以禮制心’, ‘不邇聲色, 不殖貨利’等語, 可見日新之功.”
'''내가[文蔚] 말함: '의(義)로써 일을 제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제어하며[以義制事, 以禮制心]',<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8장.</ref>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재물을 불리지 않았다[不邇聲色, 不殖貨利]'<ref>상서 상서 중훼지고 제 5장.</ref> 등의 말에서 '날로 새로워짐[日新]'<ref>대학 전 2장.</ref>의 효과[功]를 볼 수 있습니다.
曰: “固是. 某於或問中所以特地詳載者, 非<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說'이 있다.</ref>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耳.” 文蔚(59이후).
'''대답: 진실로 그렇다. 내가 《대학혹문》 중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상세히 실은 것은, 남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요, 역시 배우는 자들이 마음을 썼으면[經心] 해서일 뿐이다.
문위(文蔚)의 기록. (59세 이후)
* 17:56 問: “丹書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從’字意如何?”
*
'''질문: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경건함(敬)이 태만(怠)함을 이기면 길(吉)하고, 태만(怠)함이 경건함(敬)을 이기면 멸(滅)하며, 의(義)가 욕(欲)을 이기면 따르고[從], 욕(欲)이 의(義)를 이기면 흉(凶)하다.'고 하는데 '종(從)' 자는 무슨 뜻입니까?<ref>대대례기(大戴禮記) 무왕천조(武王踐阼)편에서 태공망이 무왕에게 조언할 적에 단서(丹書)라는 책을 인용하며 한 말이다. 대학혹문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질문한 것이다. 단서가 어떤 책인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로 무왕천조편은 상해박물관 소장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 컬렉션(속칭 '상박초간') 가운데서도 발견되었다. 馬承源, 上海博物館藏戰國楚竹書(七), 上海古籍出版社, 2008. 상박초간본과 대대례기본을 비교한 논문으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문병순, "≪上博(七)·武王踐阼≫篇 板本 비교 분석", 중국어문논총 41, 2009. 59-74.</ref>
曰: “從, 順也. 敬便豎起, 怠便放倒. 以理從事, 是義; 不以理從事, 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亦猶坤卦說敬·義.” 㝢(61이후).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통행본의 51:36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짐작컨대 51:36과 17:56은 본래 하나의 조목이었는데 앞부분은 대학혹문에서 인용한 단서에 관한 문답이고 뒷부분은 맹자 1B에 관한 문답인 관계로 여정덕이 둘로 나누어 지금과 같이 배치한 듯하다.</ref>
'''대답: 종(從)은 순(順)이다. 경건(敬)하면 세워지고[豎起], 태만(怠)하면 쓰러진다[放倒].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는 것이 의(義)이고, 이치[理]를 기준으로 일을 따르지 않는 것이 바로 욕(欲)이다. 여기에서 경(敬)과 의(義)는 (각각) 본체(體)와 작용(用)이니, 또한 곤괘(坤卦)에서 설명한 경(敬)과 의(義)(의 관계)와 같다.<ref>주역 곤괘 문언전의 '경건함을 가지고 안쪽을 올곧게 하고 의로움을 가지고 바깥쪽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를 말한다. 내면의 경건함 쪽이 본체, 외면의 올바른 행실 쪽이 작용이다.</ref>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전 3장 ==
* 傳三章
전 3장
===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 復引淇澳之詩一段
'다시 시경 기욱(淇奧)편을 인용한 까닭은...' 단락
* 17:57 “‘<ref>조선고사본은 이 앞에 '大學言'이 있다.</ref>瑟兮僩兮者, 恂慄也’. ‘僩’字, 舊訓寬大. 某看經子所載, 或從‘忄’·或從‘扌’之不同, 然皆云有武毅之貌, 所以某注中直以武毅言之.”
''' ‘슬혜한혜[瑟兮僩兮]란 전율하고 두려워힌다[恂慄]는 뜻이다.'<ref>대학혹문.</ref> 에서,‘한(僩)’ 자는 옛날에는 관대(寬大)라고 훈(訓)했다.<ref>모시(毛詩)의 위풍(衛風) 기욱(淇澳)편에서 이와 같이 훈했다.</ref> 내가 여러 전적[經子]<ref>경자(經子)는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준말이다. 다양한 문헌을 이른다.</ref>에 실린 바를 보니, ‘심방변(忄)’ 을 쓰거나 ‘재방변(扌)’ 을 쓰는 등의 차이가 있지만,<ref>재방변을 쓰면 '한(撊)', 심방변을 쓴 글자는 현재 폰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전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소공(昭公) 18년조에, 후자의 경우는 순자(荀子) 영욕(榮辱)편에 대한 양경(楊倞)의 주석에 등장한다.</ref> 무인처럼 굳건한 모습[武毅之貌]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주석에서<ref>대학장구.</ref> 직접적으로 '무의(武毅)'로 설명했다.
道夫云: “如此注, 則方與‘瑟’字及下文恂慄之說相合.”
'''내(道夫)가 말함: 이 주석과 같아야만 ‘슬(瑟)’ 자 및 아랫글의 '준률(恂慄)' 설(說)에 부합합니다.
曰: “且如‘恂’字, 鄭氏讀爲‘峻’. 某始者言, 此只是‘恂恂如也’之‘恂’, 何必如此. 及讀莊子, 見所謂‘木處則惴慄恂懼’, 然後知鄭氏之音爲當. 如此等處, 某於或問中不及載也. 要之, 如這般處, 須是讀得書多, 然後方見得.” 道夫(60이후).
'''대답: 예컨대 ‘준(恂)’ 자를 정씨(鄭氏)<ref>정현(鄭玄)</ref>는 ‘준(峻)’으로 읽었다.<ref>대학에 대한 정현의 주석에서 보인다. '준(恂)자는 간혹 준(峻)자로 쓴다.(恂字, 或作峻)'</ref> 나는 처음에는 '이건 그저 순순여야(恂恂如也)<ref>논어 10:1. 신실하다는 뜻.</ref>의 순(恂)일 뿐인데, 어찌 반드시 그렇게 (준이라고) 읽어야 하는가'라고 했었다. 《장자(莊子)》를 읽다가 이른바 ‘나무 위에 있으면 두려워 전율한다[惴慄恂懼]’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씨(鄭氏)의 음(音)이 타당함을 알았다. 이와 같은 부분은 내가 《대학혹문》에 미처 싣지 못했다. 요컨대 이런 것들은 모름지기 글을 많이 읽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다.<ref>이 조목은 16:41과 흡사하니 참조하라.</ref>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58 問<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로 '시경 기욱편을 인용한(引淇奥詩如)'가 더 있다.</ref>: “切磋琢磨, 是學者事, 而‘盛德至善’, 或問乃指聖人言之, 何也?”
'''질문: '절차탁마(切磋琢磨)'<ref>대학 본문에서 인용한 시경 기욱편이다.</ref>는 배우는 자의 일인데,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盛德至善]’<ref>대학 본문에서 시경 기욱편의 한 구문을 해석한 말이다.</ref>을 《대학혹문》에서 성인(聖人)을 가리켜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ref>주희는 대학혹문에서 '성덕지선'을 성인의 풍모를 형용한 말이라고 풀이했다.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들이 잊지 못한 것은, 대개 사람의 마음이 다 똑같이 (가지고 있는) 바이지만, 성인은 이것을 먼저 얻은 데다가 또 이렇게 충만하게 채워 밝게 드러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두 이를 우러러 잊지 못했던 것이다. '성덕'은 자기자신이 얻은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지선'은 이치의 지극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절차탁마'는 이러한 지점에 머물기를 구하는 것뿐이다. ('盛德至善, 民不能忘', 蓋人心之所同然, 聖人旣先得之而其充盛宣著又如此. 是以民皆仰之而不能忘也. '盛德', 以身之所得而言也; '至善', 以理之所極而言也. '切磋琢磨', 求其止於是而已矣.)'</ref>
曰: “後面說得來大, 非聖人不能. 此是連上文‘文王於緝熙敬止’說. 然聖人也不是插手掉臂做到那處, 也須學始得<ref>조선고사본에서는 '始得'이 없다.</ref>. 如孔子所謂: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此有甚緊要? 聖人卻憂者, 何故? 惟其憂之, 所以爲聖人. 所謂‘生而知之者’, 便只是知得此而已. 故曰: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淳(61·70때). 寓同. <ref>조선고사본에서는 순이 아니라 우의 단독기록으로 적었다.</ref>
'''대답: 뒷부분에서 설명한 것은 무척 커서 성인(聖人)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는 윗글의 ‘문왕(文王)께서, 아! 끝없이 밝히고 공경하시어 그치셨도다[緝熙敬止].’<ref>시경 대아 문왕편의 구문을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어(於)'는 '오'라고 읽는다. 감탄사이다. 시집전에 따르면 '집(緝)'은 끝없이 계속하다, '희(熙)'는 밝히다, '경(敬)'은 경건히, '지(止)'는 어조사이다. 어조사라는 것은 강하고 구체적이고 단독적인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다만 대학의 저자는 이 '지(止)'에 '그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인용한 것이므로 우리가 시경이 아니라 대학을 해석할 적에는 역시 '그치다'라고 해석해주어야 한다. 대학혹문의 해당부분을 보면 주희도 이러한 차이를 알고 있었다.</ref>에 이어서 설명한 것이다.<ref>문왕은 성인이니 '성덕지선'은 역시 성인을 형용한 말이라는 것이다.</ref> 그러나 성인(聖人)도 손놓고 수수방관하며[揷手掉臂] 저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니, 역시 모름지기 배워야만 (그렇게) 된다. 예컨대 공자(孔子)가 이른바 ‘덕(德)이 닦이지 못하며, 학문(學)이 강마되지 못하며, 의(義)를 듣고도 (그쪽으로) 옮겨가지 못하며,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ref>논어 7:3</ref>같은 경우, 여기에 무슨 긴요함이 있는가? (그런데도) 성인이 도리어 걱정하신 것은 어째서인가? 바로 그것을 걱정하셨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이다. 이른바 ‘나면서부터 아는 자[生而知之者]’<ref>논어 7:19</ref>(라는 말에서 안다는 것이)란 그저 이것을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이 된다.’<ref>서경(書經) 주서(周書) 다방(多方)편 제 17장.</ref>고 하였다.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우(寓)의 기록도 같음.
* 17:59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旣學而猶慮其未至, 則復講習討論以求之, 猶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切得一箇樸在這裏, 似亦可矣, 又磋之使至於滑澤, 這是治骨角者之至善也. 旣修而猶慮其未至, 則又省察克治以終之, 猶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琢, 是琢得一箇樸在這裏, 似亦得矣, 又磨之使至於精細, 這是治玉石之至善也. 取此而喩君子之於至善, 旣格物以求知所止矣, 又且用力以求得其所止焉. 正心·誠意, 便是道學·自修.<ref>저본 교감주: 하서린본에서는 이 부분에 오류가 있지 않나 의심했다.</ref> ‘瑟兮僩兮, 赫兮喧兮’, 到這裏, 睟面盎背, 發見於外, 便是道學·自修之驗也.”
''' '"자르고(切) 간(磋) 듯하다"<ref>절/차는 골각기(骨角器)를 만드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큼직큼직하게 자르고 나중 단계에서는 표면을 문질러 연마한다.</ref>는 것은 배움을 말한(道學) 것이다. "쪼으고(琢) 간(磨) 듯하다"<ref>탁/마는 석기(石器)나 옥기(玉器)를 만드는 과정을 형용한 것이다. 역시 처음 단계에서는 큼직큼직하게 쪼개고 나중 단계에서는 표면을 문질러 연마한다.</ref>는 것은 자신을 닦은(自修) 것이다.'<ref>'닦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15:125를 참조하라.</ref>'<ref>대학 전 3장에서 시경 위풍 기욱을 인용한 후 그 가운데 '절차탁마'라는 표현을 풀이하는 부분이다. 16:31을 보라. 이 시는 논어 1:15에서도 인용하고 있으니 참조하라.</ref> 배운 뒤에도 오히려 자신이 아직 (목표 지점에)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여 다시 강습(講習)하고 토론(討論)하여 그것을 구하는 모습이 마치 골각(骨角)을 다루는 장인이 자른[切] 뒤에도 다시 그것을 가는[磋] 모습과 같다. 잘라서 (마감이 덜 된) 한 덩어리를[樸] 얻는 정도도 역시 그럭저럭 괜찮은 듯하겠지만,<ref>'재저리(在這裏)'는 동작의 확실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ref> 다시 그것을 갈아서[磋] 매끄럽게[滑澤] 하는 것은 골각을 다루는 장인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닦은[修] 뒤에도 오히려 자신이 아직 (목표한 정도에) 이르지 못함을 염려하여 다시 성찰(省察)하고 다스려[克治] (닦는 일을) 완수하는 모습이 마치 옥석(玉石)을 다루는 장인이 쪼은[琢] 뒤에도 다시 그것을 가는[磨] 모습과 같다. 쪼아서[琢] (마감이 덜 된) 한 덩어리를[樸] 얻는 정도도 역시 그럭저럭 괜찮은 듯하겠지만, 다시 그것을 갈아서[磨] 정밀하게[精細] 하는 것은 옥석을 다루는 장인의 지극한 선[至善]이다. (장인들의) 이러한 점을 취하여 군자와 지선(至善)의 관계를 비유하였으니, 격물(格物)하여 머무를 곳을 알기를[知所止] 구한 뒤에도 다시 힘을 써서 그 머무를 곳을 얻기를[得其所止] 구한다. 정심(正心)·성의(誠意)가 곧 '배움을 말한다(道學)'와 '자신을 닦는다(自修)' 에 해당한다.<ref>대체로 '도학'은 이지적인 공부, '자수'는 실천적 공부라는 인상이 강하다(예컨대 9:3). 그러므로 도학과 자수를 뭉쳐서 정심과 성의에 배속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고, 하서린이 이 부분을 의심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일역판에서는 뒤쪽에서 '도학과 자수의 효과(道學自修之驗)'라는 표현을 썼으니만큼 이 부분도 원래는 '도학과 자수의 첫머리(道學自修之首)'라거나 '도학과 자수의 시작(道學自修之由)'같은 표현이었는데 뒤쪽 두 글자가 탈락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ref> ‘장중하고 굳세며[瑟兮僩兮], 혁혁하게 빛나는[赫兮喧兮]’경지에 이르면,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온몸에 넘쳐[睟面盎背]<ref>맹자 7A:21</ref> 밖으로 드러나니, 바로 도학(道學)과 자수(自修)의 효과[驗]이다.
道夫云: “所以或問中有始終條理之別也, 良爲此爾.”
'''내(道夫)가 말함: 그래서 《대학혹문》에서 시조리(始條理)와 종조리(終條理)의 구별이 있으니, 정확히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ref>대학혹문. '뼈나 뿔은 결을 찾을 수 있으므로 자르고 가는 작업이 쉬우니, 이른바 시조리(始條理)의 일이다. 옥이나 돌은 결이 없고(渾全) 단단하므로 쪼으고 가는 작업이 어려우니, 이른바 종조리(終條理)의 일이다.(曰: "骨角脉理可尋, 而切磋之功易, 所謂'始條理'之事也; 玉石渾全堅確, 而琢磨之功難, 所謂'終條理'之事也.)' 시조리와 종조리라는 표현은 맹자 5B:1에서 따온 것이다. 의례용 악곡의 연주에 있어서 곡을 시작하는 행위와 맺는 행위를 말한다. 맹자는 각각을 지혜의 일(智之事)과 성스러움의 일(聖之事)이라고 하였는데, 어떠한 사상적 운동을 개창하는 것보다 완성하는 것이 더 어렵고 위대한 일임을 암시한 것이다.</ref>
曰: “然.” 道夫(60이후).
'''대답: 그렇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7:60 “‘如切如磋’, 道學也”, 卻以爲始條理之事; “‘如琢如磨’, 自修也”, 卻以爲終條理之事, 皆是要<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切'자가 더 있다.</ref>工夫精密. 道學是起頭處, 自修<ref>조선고사본과 성화본에서는 '自修'를 '脩身'이라고 썼다.</ref>是成就處. 中間工夫, 旣講求又復講求, 旣克治又復克治, 此所謂"已精而求其益精, 已密而求其益密也". 謨(50이후).
''' '"자르고(切) 간(磋) 듯하다"는 것은 배움을 말한(道學) 것이다.'는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의 일로 삼고, '"쪼으고(琢) 간(磨) 듯하다"는 것은 자신을 닦은(自修) 것이다.'는 마치는 조리[終條理]의 일로 삼으니, 모두 정밀(精密)하게 공부(工夫)하라는 것이다.<ref>이상의 내용은 직전 17:59를 참조하라.</ref> 도학(道學)은 시작하는 부분이고, 자수(自修)는 성취하는 부분이다. 중간의 공부는 강구(講求)한 뒤에 다시 강구하고 다스린[克治] 뒤에 다시 다스리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이미 정밀한데 더욱 정밀하기를 구하'고, '이미 치밀한데 더욱 치밀하기를 구한다'는 것이다.<ref>대학혹문</ref>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7:61 周問: “切磋是始條理, 琢磨是終條理. 終條理較密否?”
'''주(周)<ref>주모(周謨). 직전 조목의 기록자이다.</ref>의 질문: 절차(切磋)는 시작하는 조리[始條理]이고, 탁마(琢磨)는 마치는 조리[終條理]입니다. 마치는 조리가 상대적으로 더 엄밀한 것 아닙니까?<ref>17:59를 참조하라.</ref>
曰: “始終條理都要密, 講貫而益講貫, 修飭而益修飭.” 淳(61·70때).
'''대답: 시조리와 종조리 모두 엄밀해야 하니, 강론하고 익히고서[講貫] 더욱 강론하고 익히며, 닦고 삼가고서[修飭] 더욱 닦고 삼가야 한다.<ref>직전 17:60과 흡사하다. 강구(講求)를 강관(講貫)으로, 극치(克治)를 수식(修飭)으로 대체했을 뿐이다.</ref>
순(淳)의 기록. (61세 혹은 70세 때)
* 17:62 問: “琢磨後, 更有瑟僩赫喧, 何故爲終條理之事?”
'''질문: 탁마(琢磨) 뒤에 다시 슬한(瑟僩)과 혁훤(赫喧)이 있는데, 어찌하여 (탁마가) 마치는 조리[終條理]가 됩니까?<ref>탁마가 '마치는 조리'라면 그 뒤에 추가로 이어지는 구문이 없어야 하는데 어째서 '슬한혁훤' 부분이 더 붙어있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서 사용한 용어들에 대해서는 17:59를 참조하라.</ref>
曰: “那不是做工夫處, 是成就了氣象恁地. ‘穆穆文王’, 亦是氣象也.” 㝢(61이후).<ref>조선고사본에서는 이 뒤에 '순의 기록도 동일함(淳錄同).'이 더 있다.</ref>
'''대답: 거기는 공부하는 부분이 아니다. 성취한 기상(氣象)이 이러하다는 것이다.<ref>수면앙배(睟面盎背)한 기상을 말한다. 역시 17:59를 참조하라.</ref> ‘심원하신 문왕[穆穆文王]’<ref>시경 대아 문왕편의 구문을 대학 전 3장에서 인용한 것이다.</ref> 역시 기상(氣象)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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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빈핍ᄒᆞᆫ ᄇᆡᆨ셩이 ᄯᅩᄒᆞᆫ 가ᄂᆞᆫ 자ㅣ 만은 고로 일쳔팔ᄇᆡᆨᄉᆞ십륙년【헌종 십이년】에 장졍을 곳처 죄인을 보ᄂᆡ지 아니ᄒᆞ니 ᄌᆞᄎᆞ로 다른 ᄇᆡᆨ셩의 가ᄂᆞᆫ 자ㅣ 더욱 만터라
::뎨ᄉᆞᆷ졀 {{du|감나ᄃᆡ}} ᄯᅡ히라
{{du|영국}} 속디에 가장 큰 자ㅣ {{du|감나ᄃᆡ}}라 그 ᄯᅡ히 {{du|아미리가쥬}}에 잇셔 {{du|미국}} 븍방과 졉경ᄒᆞ얏스니 폭원이 {{du|미국}} 십ᄉᆞᆷᄉᆡᆼ과 방불ᄒᆞ나 【{{du|감나ᄃᆡ}} 디경은 {{du|구라파쥬}} ᄉᆞ분의 ᄉᆞᆷ을 뎜거ᄒᆞ고 {{du|미국}} 일경ᄭᅡ지 {{du|영}}리로 ᄉᆞᆷᄇᆡᆨ오십팔만 방리가 되니 가위 크도다 만일 {{du|청국}}으로 론ᄒᆞ면 {{du|만쥬}} {{du|몽고}} {{du|셔장}} {{du|신강}}을 합ᄒᆞ야 {{du|영}}리로 ᄉᆞᄇᆡᆨᄉᆞ십륙만 방리가 되더라】 한갓 긔후ㅣ 고한ᄒᆞ야 {{du|미국}} 갓치 번성치ᄂᆞᆫ 못ᄒᆞ나 증증일상ᄒᆞ야 ᄅᆡ두 흥왕ᄒᆞᆷ이 한량 업슬너라
{{du|감나ᄃᆡ}} ᄯᅡ히 극히 비옥ᄒᆞ야 곡식의 풍등ᄒᆞᆷ이 왕왕 소료에 지나니 {{du|감나ᄃᆡ}}의 {{du|만니로발}}ᄉᆡᆼ은<ref>매니토바(Manitoba)</ref> {{du|미국}} {{du|밀셰셰피}}ᄉᆡᆼ과<ref>미시시피(Mississippi)</ref> 상근ᄒᆞᆫ ᄯᅡ히나 {{du|밀셰셰피}}ᄉᆡᆼ은 한 일앙 밧ᄒᆡ 십ᄉᆞ 두ㅣ 나되 농부ㅣ 종년 근고ᄒᆞ고 {{du|만니로발}}ᄉᆡᆼ은 별로 용력지 아니ᄒᆞ야도 ᄉᆞ십 두ᄅᆞᆯ 거두니 옥토라 일홈이 ᄉᆞ쳐에 파젼ᄒᆞ야 가ᄂᆞᆫ 자ㅣ 불가승수요 근ᄅᆡ에 {{du|영국}}이 ᄯᅩ {{du|감나ᄃᆡ}} 동ᄒᆡ 어귀로셔 {{du|셔ᄒᆡ}}ᄭᆞ지 쳘로ᄅᆞᆯ ᄊᆞ흐니 장이 일만리라 이에 츌립 화물이 날로 증가ᄒᆞ니 다시 수년이 되면 {{du|영길리}} 젼국의 량식을 장찻 이 ᄯᅡ에셔 취용ᄒᆞ야도 핍졀치 아니ᄒᆞᆯ 거시요 그 지즁의 보ᄇᆡᄅᆞᆯ 캐면 ᄂᆡ두 흥왕을 ᄯᅩ 가히 알너라
{{du|감나ᄃᆡ}} 비록 큰 ᄯᅡ히나 디광인희ᄒᆞᆫ 고로 젼일 {{du|영국}}의 공장이 타국에 갓든 자ㅣ {{du|미쥬}} {{du|오쥬}}ᄅᆞᆯ 락토라 ᄒᆞ더니 이졔ᄂᆞᆫ {{du|감나ᄃᆡ}} 흥셩ᄒᆞᆷ을 듯고 가ᄂᆞᆫ 자ㅣ ᄯᅩᄒᆞᆫ 만흐니 일쳔팔ᄇᆡᆨ칠십오년【대군주 십이년】에ᄂᆞᆫ 다만 일만 칠쳔ᄉᆞᆷᄇᆡᆨ칠십팔 인이러니 일쳔팔ᄇᆡᆨ팔십칠년【대군주 이십ᄉᆞ년】에ᄂᆞᆫ ᄉᆞ만 ᄉᆞ쳔ᄉᆞᄇᆡᆨ이십ᄉᆞ 인이 되고 ᄯᅩ 혹 {{du|감나ᄃᆡ}}로셔 {{du|미쥬}}에 가ᄂᆞᆫ ᄌᆞ도 잇더라
{{du|감나ᄃᆡ}}에 인구ᄂᆞᆫ 비록 적으나 그 량식과 수목 등 물화가 다 타국의 쓰이ᄂᆞᆫ 고로 {{du|구쥬}}의 긔계와 포속과 니ᄌᆞ와 양융과 상환ᄒᆞ니 츌구화ᄂᆞᆫ {{du|영}}금 일쳔륙ᄇᆡᆨ만 방이요 입구화ᄂᆞᆫ 일쳔구ᄇᆡᆨ만 방이요 ᄯᅩ {{du|감나ᄃᆡ}}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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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불셜)쳔디팔양신쥬경.djvu/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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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T12:05:26Z
곽승훈
18480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와니ᄆᆡ망냥과죠명ᄇᆡᆨ귀와여러모진귀신이다토아와그횡병과모진즁챵과모진병주물닙어그통고를슈ᄒᆞ야휴식ᄒᆞ미이시미업슬지라도션디식을만나위ᄒᆞ야이경삼편을닑으면이여러모진귀신이다쇼멸하고즉시병이나아몸이강강ᄒᆞ야힘이죡ᄒᆞ고경닑은공덕으로이ᄀᆞᄐᆞᆫ복을어드리라만일호유즁ᄉᆡᆼ이음욕진유우티간탐질투가만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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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니ᄆᆡ망냥과죠명ᄇᆡᆨ귀와여러모진귀신이다토아와그횡병과모진즁챵과모진병주물닙어그통고를슈ᄒᆞ야휴식ᄒᆞ미이시미업슬지라도션디식을만나위ᄒᆞ야이경삼편을닑으면이여러모진귀신이다쇼멸하고즉시병이나아몸이강강ᄒᆞ야힘이죡ᄒᆞ고경닑은공덕으로이ᄀᆞᄐᆞᆫ복을어드리라만일호유즁ᄉᆡᆼ이음욕진유우티간탐질투가만흘지라도만일이경을보고신심으로공경ᄒᆞ야공양하고곳이경삼편을닑으면우티등악이다쇼멸하고ᄌᆞ비희샤로불법분을어드리라<br/>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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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詩經諺解 제5책.djvu/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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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dtjd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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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더 작게|이}}月{{더 작게|월}}ㅅ初{{더 작게|초}}吉{{더 작게|길}}이러니곧寒{{더 작게|한}}暑{{더 작게|셔}}ᄅᆞᆯ離{{더 작게|리}}ᄒᆞ것다心{{더 작게|심}}의憂{{더 작게|우}}홈이여그毒{{더 작게|독}}이ᄀᆞ장苦{{더 작게|고}}ᄒᆞ도다뎌共{{더 작게|공}}ᄒᆞᄂᆞᆫ人{{더 작게|인}}을念{{더 작게|념}}ᄒᆞ야涕{{더 작게|톄}}ㅣ零{{더 작게|령}}홈을雨{{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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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작게|이}}月{{더 작게|월}}ㅅ初{{더 작게|초}}吉{{더 작게|길}}이러니곧寒{{더 작게|한}}暑{{더 작게|셔}}ᄅᆞᆯ離{{더 작게|리}}ᄒᆞ것다心{{더 작게|심}}의憂{{더 작게|우}}홈이여그毒{{더 작게|독}}이ᄀᆞ장苦{{더 작게|고}}ᄒᆞ도다뎌共{{더 작게|공}}ᄒᆞᄂᆞᆫ人{{더 작게|인}}을念{{더 작게|념}}ᄒᆞ야涕{{더 작게|톄}}ㅣ零{{더 작게|령}}홈을雨{{더 작게|우}}ᄀᆞᆮ티호라엇디歸{{더 작게|귀}}홈을懷{{더 작게|회}}티아니ᄒᆞ리오마ᄂᆞᆫ이罪{{더 작게|죄}}罟{{더 작게|고}}ᄅᆞᆯ畏{{더 작게|외}}ᄒᆞ얘니라<br/>
○昔{{더 작게|셕}}我{{더 작게|아}}徃{{더 작게|왕}}矣{{더 작게|의엔}}日{{더 작게|일}}月{{더 작게|월}}方{{더 작게|방}}除{{더 작게|져ㅣ러니}}曷{{더 작게|갈}}云{{더 작게|운}}其{{더 작게|기}}還{{더 작게|환고}}歲{{더 작게|셰}}聿{{더 작게|율}}云{{더 작게|운}}莫{{더 작게|모ㅣ엇다}}念{{더 작게|념}}我{{더 작게|아}}獨{{더 작게|독}}兮{{더 작게|혜어ᄂᆞᆯ}}我{{더 작게|아}}事{{더 작게|ᄉᆞ}}孔{{더 작게|공}}庶{{더 작게|셔ㅣ로다}}心{{더 작게|심}}之{{더 작게|지}}憂{{더 작게|우}}矣{{더 작게|의여}}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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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T12:36:21Z
Lawhunt
17313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天{{더더작게|텬}}子{{더더작게|ᄌᆞ}}{{분주|ᅵ|오}}亦{{더더작게|역}}云{{더더작게|운}}可{{더더작게|가}}使{{더더작게|ᄉᆞ}}{{분주|ᄂᆞᆫ|}}怨{{더더작게|원}}及{{더더작게|급}}朋{{더더작게|붕}}友{{더더작게|우}}{{분주|ᅵ로|다}}<br> :ᄀᆞᆯ오ᄃᆡ가仕{{더더작게|ᄉᆞ}}ᄒᆞᆯ꺼시라ᄒᆞ나심히棘{{더더작게|극}}ᄒᆞ고ᄯᅩ殆{{더더작게|ᄐᆡ}}ᄒ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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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天{{더더작게|텬}}子{{더더작게|ᄌᆞ}}{{분주|ᅵ|오}}亦{{더더작게|역}}云{{더더작게|운}}可{{더더작게|가}}使{{더더작게|ᄉᆞ}}{{분주|ᄂᆞᆫ|}}怨{{더더작게|원}}及{{더더작게|급}}朋{{더더작게|붕}}友{{더더작게|우}}{{분주|ᅵ로|다}}<br>
:ᄀᆞᆯ오ᄃᆡ가仕{{더더작게|ᄉᆞ}}ᄒᆞᆯ꺼시라ᄒᆞ나심히棘{{더더작게|극}}ᄒᆞ고ᄯᅩ殆{{더더작게|ᄐᆡ}}ᄒᆞ도다可{{더더작게|가}}히使{{더더작게|ᄉᆞ}}ᄒᆞ염즉디몯ᄒᆞ다니르ᄂᆞᆫ이ᄂᆞᆫ罪{{더더작게|죄}}ᄅᆞᆯ天{{더더작게|텬}}子{{더더작게|ᄌᆞ}}ᄭᅴ得{{더더작게|득}}ᄒᆞ고ᄯᅩᄒᆞᆫ可{{더더작게|가}}히使{{더더작게|ᄉᆞ}}ᄒᆞ염즉ᄒᆞ다니르ᄂᆞᆫ이ᄂᆞᆫ怨{{더더작게|원}}이朋{{더더작게|붕}}友{{더더작게|우}}에及{{더더작게|급}}ᄒᆞ놋다<br>
○謂{{더더작게|위}}爾{{더더작게|이}}遷{{더더작게|쳔}}于{{더더작게|우}}王{{더더작게|왕}}都{{더더작게|도}}{{분주|ᅵ라|혼을}}曰{{더더작게|왈}}予{{더더작게|여}}未{{더더작게|미}}有{{더더작게|유}}室{{더더작게|실}}家{{더더작게|가}}{{분주|ᅵ라|ᄒᆞ야}}鼠{{더더작게|셔}}思{{더더작게|ᄉᆞ}}泣
</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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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dtjd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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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더 작게|단}}我{{더 작게|아}}不{{더 작게|블}}暇{{더 작게|가ㅣ로다}}念{{더 작게|념}}彼{{더 작게|피}}共{{더 작게|공}}人{{더 작게|인ᄒᆞ야}}睠{{더 작게|권}}睠{{더 작게|권}}懷{{더 작게|회}}顧{{더 작게|고호라}}豈{{더 작게|긔}}不{{더 작게|블}}懷{{더 작게|회}}歸{{더 작게|귀리오마ᄂᆞᆫ}}畏{{더 작게|외}}此{{더 작게|ᄎᆞ}}譴{{더 작게|견}}怒{{더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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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작게|단}}我{{더 작게|아}}不{{더 작게|블}}暇{{더 작게|가ㅣ로다}}念{{더 작게|념}}彼{{더 작게|피}}共{{더 작게|공}}人{{더 작게|인ᄒᆞ야}}睠{{더 작게|권}}睠{{더 작게|권}}懷{{더 작게|회}}顧{{더 작게|고호라}}豈{{더 작게|긔}}不{{더 작게|블}}懷{{더 작게|회}}歸{{더 작게|귀리오마ᄂᆞᆫ}}畏{{더 작게|외}}此{{더 작게|ᄎᆞ}}譴{{더 작게|견}}怒{{더 작게|노ㅣ니라}}<br/>
녜내갈제ᄂᆞᆫ日{{더 작게|일}}月{{더 작게|월}}이보야흐로除{{더 작게|져}}ᄒᆞ더니언제그還{{더 작게|환}}ᄒᆞᆯ고歲{{더 작게|셰}}드듸여莫{{더 작게|모}}ᄒᆞ것다念{{더 작게|념}}컨댄내혼재어ᄂᆞᆯ내일이심히庶{{더 작게|셔}}ᄒᆞ도다心{{더 작게|심}}의憂{{더 작게|우}}홈이여憚{{더 작게|단}}ᄒᆞ야내暇{{더 작게|가}}티몯호라뎌共{{더 작게|공}}ᄒᆞᄂᆞᆫ人{{더 작게|인}}을念{{더 작게|념}}ᄒᆞ야睠{{더 작게|권}}睠{{더 작게|권}}히懷{{더 작게|회}}ᄒᆞ야顧{{더 작게|고}}호라엇디歸{{더 작게|귀}}홈을思{{더 작게|ᄉᆞ}}티아니ᄒᆞ리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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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詩經諺解 제5책.djvu/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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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T13:29:19Z
Ghdtjd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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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오마ᄂᆞᆫ이譴{{더 작게|견}}怒{{더 작게|노}}ᄅᆞᆯ畏{[더 작게|외]}ᄒᆞ얘니라<br/> ○昔{{더 작게|셕}}我{{더 작게|아}}徃{{더 작게|왕}}矣{[더 작게|의엔]}日{{더 작게|일}}月{{더 작게|월}}方{{더 작게|방}}奧{{더 작게|욱이러니}}曷{{더 작게|갈}}云{{더 작게|운}}其{{더 작게|기}}還{{더 작게|환고}}政{{더 작게|졍}}事{{더 작게|ᄉᆞ}}愈{{더 작게|유}}蹙{{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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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ᄂᆞᆫ이譴{{더 작게|견}}怒{{더 작게|노}}ᄅᆞᆯ畏{[더 작게|외]}ᄒᆞ얘니라<br/>
○昔{{더 작게|셕}}我{{더 작게|아}}徃{{더 작게|왕}}矣{[더 작게|의엔]}日{{더 작게|일}}月{{더 작게|월}}方{{더 작게|방}}奧{{더 작게|욱이러니}}曷{{더 작게|갈}}云{{더 작게|운}}其{{더 작게|기}}還{{더 작게|환고}}政{{더 작게|졍}}事{{더 작게|ᄉᆞ}}愈{{더 작게|유}}蹙{{더 작게|츅이로다}}歲{{더 작게|셰}}聿{{더 작게|율}}云{{더 작게|운}}莫{{더 작게|모ㅣ라}}采{{더 작게|ᄎᆡ}}蕭{{더 작게|쇼}}穫{{더 작게|확}}菽{{더 작게|슉호라}}心{{더 작게|심}}之{{더 작게|지}}憂{{더 작게|우}}矣{{더 작게|의어}}自{{더 작게|ᄌᆞ}}貽{{더 작게|이}}伊{{더 작게|이}}戚{{더 작게|쳑이로다}}念{{더 작게|념}}彼{{더 작게|피}}共{{더 작게|공}}人{{더 작게|인ᄒᆞ야}}興{{더 작게|흥}}言{{더 작게|언}}出{{더 작게|츌}}宿{{더 작게|슉호라}}豈{{더 작게|긔}}不{{더 작게|블}}懷{{더 작게|희}}歸{{더 작게|귀리오마ᄂᆞᆫ}}畏{{더 작게|외}}此{{더 작게|ᄎᆞ}}反{{더 작게|반}}覆{{더 작게|복이니라}}<br/>
녜내갈제ᄂᆞᆫ日{{더 작게|일}}月{{더 작게|월}}이보야흐로奧{{더 작게|욱}}ᄒᆞ더니언제그還{{더 작게|환}}ᄒᆞᆯ고政{{더 작게|졍}}事{{더 작게|ᄉᆞ}}ㅣ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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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0T13:39:17Z
Ghdtjdals
18466
/*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옥蹙{{더 작게|츅}}ᄒᆞ도다歲{{더 작게|셰}}드듸여莫{{더 작게|모}}ᄒᆞᆫ디라蕭{{더 작게|쇼}}ᄅᆞᆯ采{{더 작게|ᄎᆡ}}ᄒᆞ며菽{{더 작게|슉}}을穫{{더 작게|확}}호라心{{더 작게|심}}의憂{{더 작게|우}}홈이여스스로戚{{더 작게|쳑}}을貽{{더 작게|이}}ᄒᆞ도다뎌共{{더 작게|공}}ᄒᆞᄂᆞᆫ人{{더 작게|인}}을念{{더 작게|념}}ᄒᆞ야니러出{{더 작게|츌}}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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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蹙{{더 작게|츅}}ᄒᆞ도다歲{{더 작게|셰}}드듸여莫{{더 작게|모}}ᄒᆞᆫ디라蕭{{더 작게|쇼}}ᄅᆞᆯ采{{더 작게|ᄎᆡ}}ᄒᆞ며菽{{더 작게|슉}}을穫{{더 작게|확}}호라心{{더 작게|심}}의憂{{더 작게|우}}홈이여스스로戚{{더 작게|쳑}}을貽{{더 작게|이}}ᄒᆞ도다뎌共{{더 작게|공}}ᄒᆞᄂᆞᆫ人{{더 작게|인}}을念{{더 작게|념}}ᄒᆞ야니러出{{더 작게|츌}}ᄒᆞ야宿{{더 작게|슉}}호라엇디歸{{더 작게|귀}}홈을懷{{더 작게|회}}티아니ᄒᆞ리오마ᄂᆞᆫ이反{{더 작게|반}}覆{{더 작게|복}}홈을畏{{더 작게|외}}ᄒᆞ얘니라<br/>
○嗟{{더 작게|챠}}爾{{더 작게|이}}君{{더 작게|군}}子{{더 작게|ᄌᆞᄂᆞᆫ}}無{{더 작게|무}}恒{{더 작게|ᄒᆞᆼ}}安{{더 작게|안}}處{{더 작게|쳐ㅣ어다}}靖{{더 작게|졍}}共{{더 작게|공}}爾{{더 작게|이}}位{{더 작게|위ᄒᆞ야}}正{{더 작게|졍}}直{[더 작게|직]}是{{더 작게|시}}與{{더 작게|여ㅣ면}}神{{더 작게|신}}之{{더 작게|지}}聽{{더 작게|텽}}之{{더 작게|지ᄒᆞ야}}式{{더 작게|식}}穀{{더 작게|곡}}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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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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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rns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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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만흐ᄆᆡ 븍방 ᄉᆞᄅᆞᆷ이 ᄯᅩᄒᆞᆫ ᄯᅡ라 득리ᄒᆞᆯ ᄲᅮᆫ 아니라 ᄯᅩ 남방인이 면화ᄅᆞᆯ 심을 ᄯᅢ에 항상 븍방인의게 ᄌᆞ본을 취ᄒᆞ야 즁변으로 갑고 면화가 된 후에ᄂᆞᆫ 븍방에 가서 물건을 환ᄆᆡᄒᆞ야 슌환부졀ᄒᆞ야 셔로 ᄉᆡᆼ계가 되ᄂᆞᆫ 고로 븍방인도 ᄯᅩᄒᆞᆫ 노예 ᄉᆞᄂᆞᆫ 법을 곳치고ᄌᆞ 아니ᄒᆞ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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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x-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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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흐ᄆᆡ 븍방 ᄉᆞᄅᆞᆷ이 ᄯᅩᄒᆞᆫ ᄯᅡ라 득리ᄒᆞᆯ ᄲᅮᆫ 아니라 ᄯᅩ 남방인이 면화ᄅᆞᆯ 심을 ᄯᅢ에 항상 븍방인의게 ᄌᆞ본을 취ᄒᆞ야 즁변으로 갑고 면화가 된 후에ᄂᆞᆫ 븍방에 가서 물건을 환ᄆᆡᄒᆞ야 슌환부졀ᄒᆞ야 셔로 ᄉᆡᆼ계가 되ᄂᆞᆫ 고로 븍방인도 ᄯᅩᄒᆞᆫ 노예 ᄉᆞᄂᆞᆫ 법을 곳치고ᄌᆞ 아니ᄒᆞ더라
이러ᄒᆞᆫ지 다년에 븍방인이 홀연히 ᄉᆡᆼ각ᄒᆞ되 흑노 두ᄂᆞᆫ 거슨 텬리 에 올치 아니ᄒᆞ다 ᄒᆞ야 긔여히 곳치고ᄌᆞ ᄒᆞ더니 일쳔팔ᄇᆡᆨᄉᆞᆷ십일년 【순조 ᄉᆞᆷ십일년】 졍월에 {{u|가리ᄉᆡᆼ}}이라<ref>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ref> ᄒᆞᄂᆞᆫ ᄉᆞᄅᆞᆷ이 신보관을 셰우고 젼혀 흑노 ᄆᆡᄆᆡᄒᆞᆷ이 불가ᄒᆞᆷ을 의론ᄒᆞ니 미긔에 븍방 ᄉᆞᄅᆞᆷ이 다 그 어질믈 감동ᄒᆞ야 일창ᄇᆡᆨ화ᄒᆞ야 셔로 간졀히 권ᄒᆞ며 ᄯᅩ 동지ᄒᆞᆫ ᄉᆞᄅᆞᆷ 십이인이 흑노 방셕회ᄅᆞᆯ 셰웟더니 그 후 ᄉᆞᆷ년 즁에 흑노 방석회가 이ᄇᆡᆨ 처이요 십년이 지나ᄆᆡ 곳 이쳔 처이 되야 글을 져술ᄒᆞ고 의론을 셰워 주야 강론ᄒᆞ니 남방 ᄉᆞᄅᆞᆷ이 그 회즁인 보기ᄅᆞᆯ 원슈갓치 너기며 븍방 ᄉᆞᄅᆞᆷ 즁 남방인과 졍분이 둣터온 ᄌᆞᄂᆞᆫ ᄯᅩᄒᆞᆫ 남방 ᄉᆞᄅᆞᆷ을 위ᄒᆞ야 그 회ᄅᆞᆯ 져희ᄒᆞ며 {{du|발ᄉᆞ등}}<ref>보스턴(Boston)</ref> 디방에ᄂᆞᆫ 녀ᄌᆞ이 모히여 ᄯᅩ 셕노회ᄅᆞᆯ 셰울 ᄉᆡ ᄒᆞᆫ 남자ㅣ 들어와 ᄃᆡ단히 야료ᄒᆞ며 {{du|비랍덕비아}}<ref>필라델피아(Philadelphia)</ref> 디방은 더욱 창궐ᄒᆞ야 흑노ᄅᆞᆯ 쥭이고 방옥을 소화ᄒᆞ며 셕노회인이 회의ᄒᆞᆯ ᄯᅢ에 왕왕이 들어와 야단ᄒᆞᄂᆞᆫ 자ㅣ 만터라
남븍ᄉᆡᆼ이 흑노ᄅᆞᆯ 인ᄒᆞ야 론난ᄒᆞᆫ지 ᄉᆞᆷ십년에 븍방인의 분한ᄒᆞ고 강ᄀᆡᄒᆞᆫ 모양은 불가형언이라 심지어 노예 둔 ᄌᆞᄅᆞᆯ 믜워ᄒᆞ야 인류가 아니라 ᄒᆞᄂᆞ 니도 잇셔 이에 남븍ᄉᆡᆼ이 수화상극과 갓타며 그 남방에 벼ᄉᆞᆯᄒᆞᆫ ᄉᆞᄅᆞᆷ은 ᄇᆡᆨ계로 남방인을 위로코ᄌᆞ ᄒᆞ야 흑노ㅣ 도망ᄒᆞᄂᆞᆫ ᄌᆞㅣ 잇스면 곳 긔포ᄒᆞ야 그 주인의게 보ᄂᆡ고 븍방인은 노예 방셕ᄒᆞᆯ 마음이 날로 심ᄒᆞ야 ᄡᅥ ᄒᆞ되 져의 셰력으로 ᄉᆞᄅᆞᆷ을 압졔ᄒᆞ고 도덕과 의리ᄅᆞᆯ 아지 못ᄒᆞᆫ다 ᄒᆞ야 셔로 시비ᄒᆞ기ᄅᆞᆯ 마지 아니ᄒᆞ니 이럼으로 피ᄎᆞ 원슈ᄅᆞᆯ 결ᄒᆞ야 필경 국가의 화단을 일우더라
::뎨오졀 일쳔팔ᄇᆡᆨ륙십년에 인군 쳔거ᄒᆞᆷ이 미흡ᄒᆞᆷ이라
{{du|미국}}의 인군 되ᄂᆞᆫ 자ㅣ ᄆᆡ양 남방 ᄉᆞᄅᆞᆷ에 만코 혹 남방 ᄉᆞᄅᆞᆷ이 아니라도 반다시 남방인과 동심합의ᄒᆞ니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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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태셔신사 하.djvu/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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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rns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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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이ᄂᆞᆫ 남방의 권이 븍방보다 더ᄒᆞᆷ이라 일쳔팔ᄇᆡᆨ륙십년【쳘종 십일년】에 ᄯᅩ ᄉᆡ 인군을 쳔거ᄒᆞᆯᄉᆡ 븍방 ᄉᆞ름이 이 긔회ᄅᆞᆯ 인ᄒᆞ야 흑노ᄅᆞᆯ 방셕코ᄌᆞ ᄒᆞ니 남방 ᄉᆞᄅᆞᆷ이 말ᄒᆞ되 우리 남ᄉᆡᆼ은 다 가히 ᄌᆞ주ᄒᆞᆯ지라 너의 ᄯᅡ로이 븍ᄉᆡᆼ에셔 ᄌᆞ주ᄒᆞ고 셔로 불상간셥ᄒᆞᆷ이 올타 ᄒ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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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include><pagequality level="1" user="ZornsLemon" /></noinclude>{{옛한글쪽 시작}}
이ᄂᆞᆫ 남방의 권이 븍방보다 더ᄒᆞᆷ이라 일쳔팔ᄇᆡᆨ륙십년【쳘종 십일년】에 ᄯᅩ ᄉᆡ 인군을 쳔거ᄒᆞᆯᄉᆡ 븍방 ᄉᆞ름이 이 긔회ᄅᆞᆯ 인ᄒᆞ야 흑노ᄅᆞᆯ 방셕코ᄌᆞ ᄒᆞ니 남방 ᄉᆞᄅᆞᆷ이 말ᄒᆞ되 우리 남ᄉᆡᆼ은 다 가히 ᄌᆞ주ᄒᆞᆯ지라 너의 ᄯᅡ로이 븍ᄉᆡᆼ에셔 ᄌᆞ주ᄒᆞ고 셔로 불상간셥ᄒᆞᆷ이 올타 ᄒᆞ더니 밋 인군을 쳔거ᄒᆞᄆᆡ 다 {{u|림긍}}을<ref>링컨(Lincoln)</ref> 들어 인군 위에 올리니 {{u|림긍}}은 원ᄅᆡ 븍방인이요 ᄌᆞ소로 노예 길으믈 불합다 ᄒᆞ든 ᄇᆡ라 남방 ᄉᆞᄅᆞᆷ이 크게 진동ᄒᆞ더라
::뎨륙졀 남ᄉᆡᆼ이 불복ᄒᆞᆷ이라
남방 ᄉᆞᄅᆞᆷ이 {{u|림긍}}이 대통령 됨을 보고 흑노ᄅᆞᆯ 방셕ᄒᆞᆯ가 염녀ᄒᆞ야 다 졍부ᄅᆞᆯ 향ᄒᆞ야 ᄌᆞ퇴ᄒᆞ고 한 나라 됨을 원치 아니ᄒᆞ니 당초 남방 각 ᄉᆡᆼ이 나라ᄅᆞᆯ 합ᄒᆞᆯ ᄯᅢ에 븍방과 명의가 갓지 아니ᄒᆞᆫ 고로 그 ᄌᆞ퇴ᄒᆞᆷ도 ᄯᅩᄒᆞᆫ 스ᄉᆞ로 흣터짐이요 반란ᄒᆞᆷ과 다르니 대져 각 ᄉᆡᆼ이 합ᄒᆞ야 ᄉᆡ 나라히 될 ᄯᅢ에 {{du|미국}}에 두 당이 잇셔 ᄒᆞᆫ 당은 말ᄒᆞ되 국권이 놉지 못ᄒᆞ면 각 ᄉᆡᆼ이 리산키 쉬우니 인군이 대권을 가짐이 올타 ᄒᆞ며 ᄯᅩ 그 외 ᄒᆞᆫ 당은 말ᄒᆞ되 국권이 과즁ᄒᆞ면 각 ᄉᆡᆼ이 반다시 {{du|구라파}}인과 갓치 인군의 학졍을 바드리니 이ᄂᆞᆫ 각 ᄉᆡᆼ의 권이 국권보다 즁ᄒᆞᆷ이 올타 ᄒᆞ야 두 당이 상지불결ᄒᆞ고 ᄯᅩ 이윽고 븍ᄉᆡᆼ ᄉᆞᄅᆞᆷ이 말ᄒᆞ되 우리 비록 각 ᄉᆡᆼ의 ᄌᆞ원을 ᄯᅡ라 합ᄒᆞ얏스나 이믜 일국이 되얏스니 다시ᄂᆞᆫ 단단코 난호이지 못ᄒᆞ리라 ᄒᆞ며 남방 졔ᄉᆡᆼ ᄉᆞᄅᆞᆷ은 왈 각 ᄉᆡᆼ이 다 ᄌᆞ주지권이 잇스니 합고ᄌᆞ ᄒᆞ면 합ᄒᆞ고 난호고ᄌᆞ ᄒᆞ면 난호일지라 무ᄉᆞᆷ 불가ᄒᆞᆷ이 잇스리요 ᄒᆞ더라
이에 남방인이 다 ᄌᆞ퇴ᄒᆞ야 일국이 되고ᄌᆞ ᄒᆞᆯᄉᆡ 드ᄃᆡ여 일쳔팔ᄇᆡᆨ륙십년 【쳘종 십일년】 십이월 이십일에 {{du|남가록리나ᄉᆡᆼ}}이<ref>사우스 캐롤라이나(South Carolina)</ref> 먼져 란을 이리키고 기외 {{du|작이가}}와<ref>조지아(Georgia)</ref> {{du|아랍파마}}와<ref>앨러배마(Alabama)</ref> {{du|밀셜셜피}}와<ref>미시시피(Mississippi)</ref> {{du|노의ᄉᆞ나}}와 {{du|복녹리달}} 다셧 ᄉᆡᆼ이 분분이 ᄌᆞ퇴ᄒᆞ고 ᄯᅩ 수월이 지나ᄆᆡ {{du|비졀니아}}와<ref>버지니아(Virginia)</ref> {{du|븍가록리나}}와<ref>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ref> {{du|텬ᄂᆡ셔}}와<ref>테네시(Tennessee)</ref> {{du|아감ᄉᆞ}}와<ref>아칸사스(Arkansas)</ref> {{du|퇴극ᄉᆞ}}<ref>텍사스(Texas)</ref> 다셧 ᄉᆡᆼ이 ᄯᅩ ᄌᆞ퇴ᄒᆞ니 이 ᄌᆞ퇴ᄒᆞᆫ 십일 ᄉᆡᆼ의 토디ᄂᆞᆫ {{du|영국}} 리수 일ᄇᆡᆨ만 방리요 남녀 인구ㅣ 륙ᄇᆡᆨ만 명이요 흑노ㅣ ᄉᆞᆷᄇᆡᆨ만 명이라 다 ᄯᅡ로이 합ᄒᆞ야 일국이 되고 셩명ᄒᆞ야 반포 왈 븍ᄉᆡᆼ ᄉᆞᄅᆞᆷ이 만일 핍박ᄒᆞ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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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합고ᄌᆞ ᄒᆞ면 오직 병력으로 ᄊᆞ홀이라 ᄒᆞ더라 ::뎨칠졀 남북ᄉᆡᆼ이 교젼ᄒᆞᆷ이라 븍ᄉᆡᆼ이 먼져 {{du|남가록리나ᄉᆡᆼ}}이 반ᄒᆞᆷ을 듯고 혜오ᄃᆡ 이ᄂᆞᆫ 션ᄀᆡ지질이라 불과 반월에 가히 삭평ᄒᆞ리라 ᄒᆞ얏더니 수월이 지나ᄆᆡ 반ᄒᆞᄂᆞᆫ 자ㅣ 졈졈 만커ᄂᆞᆯ 이에 일쳔팔ᄇᆡᆨ륙십일년 【쳘종 십이년】 칠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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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고ᄌᆞ ᄒᆞ면 오직 병력으로 ᄊᆞ홀이라 ᄒᆞ더라
::뎨칠졀 남북ᄉᆡᆼ이 교젼ᄒᆞᆷ이라
븍ᄉᆡᆼ이 먼져 {{du|남가록리나ᄉᆡᆼ}}이 반ᄒᆞᆷ을 듯고 혜오ᄃᆡ 이ᄂᆞᆫ 션ᄀᆡ지질이라 불과 반월에 가히 삭평ᄒᆞ리라 ᄒᆞ얏더니 수월이 지나ᄆᆡ 반ᄒᆞᄂᆞᆫ 자ㅣ 졈졈 만커ᄂᆞᆯ 이에 일쳔팔ᄇᆡᆨ륙십일년 【쳘종 십이년】 칠월 이십일일에 군ᄉᆞᄅᆞᆯ 발ᄒᆞ야 {{du|비졀나아ᄉᆡᆼ}}에 일으러 남ᄉᆡᆼ인과 ᄊᆞ호다가 대ᄑᆡᄒᆞ니라
남ᄉᆡᆼ ᄉᆞᄅᆞᆷ이 이믜 이긔ᄆᆡ 더욱 창궐ᄒᆞ거ᄂᆞᆯ 븍ᄉᆡᆼ이 곳 민간에 령을 나려 ᄌᆞ원 츌젼ᄒᆞᄂᆞᆫ 자ㅣ 잇거든 속히 군부에 와셔 보ᄒᆞ라 ᄒᆞ니 령이 나린지 불긔일에 무론 빈부 인민ᄒᆞ고 셩군 작ᄃᆡᄒᆞ야 오ᄂᆞᆫ 자ㅣ ᄇᆡᆨ만이라 이에 갈진심력ᄒᆞ야 긔혜이 남방을 평코ᄌᆞ ᄒᆞ더라
::뎨팔졀 항구ᄅᆞᆯ 봉ᄒᆞᆷ이라
남ᄉᆡᆼ은 원ᄅᆡ 량식이 풍족ᄒᆞ나 다만 창포와 약탄과 의복과 의약 등은 젼혀 외국인의 졉졔ᄒᆞᆷ을 기다릴지라 이에 {{du|미국}} 졍부ㅣ 곳 령을 나려 남방 각 ᄉᆡᆼ 항구ᄅᆞᆯ 봉ᄒᆞ야 션쳑 ᄅᆡ왕을 금ᄒᆞ니 남ᄉᆡᆼ인이 크게 곤ᄒᆞ더라
남ᄉᆡᆼ에 븍으로부터 남으로 오ᄂᆞᆫ 쟝강이 잇스니 {{du|밀셜셜피}} 강수라 흘너 {{du|믁셔가}} 바다에 일으니 남ᄉᆡᆼ이 이 강을 인ᄒᆞ야 ᄯᅩ 분ᄒᆞ야 동셔 냥부ㅣ 되고 {{du|밀셜셜피}} 바다에 항구ㅣ 잇스니 {{du|{{sic|슈|뉴}}옥량}}이라<ref>뉴올리언즈(New Orleans) ‘뉴옥량’의 오기</ref> 일쳔팔ᄇᆡᆨ륙십이년 【쳘종 십ᄉᆞᆷ년】 사월에 븍ᄉᆡᆼ인이 {{du|뉴옥냥}} 항구ᄅᆞᆯ ᄲᆡ아스니 남ᄉᆡᆼ인이 곳 타국과 도로ㅣ 불통ᄒᆞ고 ᄯᅩ {{du|노의나ᄉᆞ}}와 {{du|퇴극ᄉᆞ}}와 {{du|아감ᄉᆞ}} ᄉᆞᆷᄉᆡᆼ은 다 {{du|밀셜셜피}}강 셔편에 잇스니 븍인이 이 강을 어드면 져 ᄉᆞᆷᄉᆡᆼ ᄉᆞᄅᆞᆷ은 곳 강 동편에 잇ᄂᆞᆫ 다른 졔ᄉᆡᆼ과 셔로 구원치 못ᄒᆞᆯ지라 남ᄉᆡᆼ이 그 강을 굿게 직희거ᄂᆞᆯ 븍방인이 바다 어귀로 죳ᄎᆞ 븍으로 향ᄒᆞᆯᄉᆡ 이ᄯᅢ에 {{u|격난탈}}<ref>그랜트(Grant)</ref> 졔독이 【{{u|격난탈}}은 후에 {{du|미국}} 대통령이라】 강변 각 요ᄒᆡ처ᄅᆞᆯ 웅거ᄒᆞ니 {{du|밀셜셜피}} 강 셔편에 잇ᄂᆞᆫ ᄉᆞᆷᄉᆡᆼ이 고립ᄒᆞ야 구원ᄒᆞᆯ 자ㅣ 업고 ᄯᅩ 일쳔팔ᄇᆡᆨ륙십ᄉᆞᆷ년 【쳘종 십ᄉᆞ년】 칠월 ᄉᆞ일에 {{du|비극ᄉᆞ파}}<ref>빅스버그(Vicksburg)</ref> ᄯᅡ흘 이긔고 즁병을 둔찰ᄒᆞ니 남ᄉᆡᆼ이 드ᄃᆡ여 분ᄒᆞ야 둘이 되고 동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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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소식이 불통ᄒᆞ더라 이ᄯᅢ에 남ᄉᆡᆼ인이 {{du|비졀니아}}ᄉᆡᆼ에 도회ᄅᆞᆯ 셰우니 이 ᄉᆡᆼ은 븍ᄉᆡᆼ {{du|화셩돈}} 도셩과 상거ㅣ 불과 {{du|영}}리 일ᄇᆡᆨᄉᆞᆷ십리라 븍ᄉᆡᆼ이 더욱 분한ᄒᆞ야 군ᄉᆞ 이십만을 조발ᄒᆞ야 {{u|마극뇌란}}으로<ref>매클렐런(M’Clellan)</ref> 졔독을 ᄉᆞᆷ고 남ᄉᆡᆼ 졔독 {{u|니위}}로<ref>리(Lee)</ref>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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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불통ᄒᆞ더라
이ᄯᅢ에 남ᄉᆡᆼ인이 {{du|비졀니아}}ᄉᆡᆼ에 도회ᄅᆞᆯ 셰우니 이 ᄉᆡᆼ은 븍ᄉᆡᆼ {{du|화셩돈}} 도셩과 상거ㅣ 불과 {{du|영}}리 일ᄇᆡᆨᄉᆞᆷ십리라 븍ᄉᆡᆼ이 더욱 분한ᄒᆞ야 군ᄉᆞ 이십만을 조발ᄒᆞ야 {{u|마극뇌란}}으로<ref>매클렐런(M’Clellan)</ref> 졔독을 ᄉᆞᆷ고 남ᄉᆡᆼ 졔독 {{u|니위}}로<ref>리(Lee)</ref> 더부러 셔로 막다가 {{u|마극뇌란}}이 겁ᄂᆡ야 젼군을 명ᄒᆞ야 퇴ᄒᆞᄂᆡ {{u|니위}} 뒤ᄅᆞᆯ ᄶᅩᆺᄎᆞ 칠일만에 {{du|졀몰ᄉᆞ}}<ref>제임스(James)</ref> 하수에 이르러 븍ᄉᆡᆼ인의 병함 잇슴을 보고 그졔야 다시 핍박지 못ᄒᆞ더라
남병이 {{u|마극뇌란}}이 퇴ᄒᆞᆷ을 보고 곳 간도로 ᄶᅩᆺᄎᆞ 븍ᄉᆡᆼ에 일으러 {{du|화셩돈}}을 치고ᄌᆞ ᄒᆞ거ᄂᆞᆯ {{du|미국}} 졍부ㅣ {{u|마졔독}}을 불너 셩야 회군ᄒᆞ야 남병을 막으라 ᄒᆞ얏더니 필경 광일지구ᄒᆞ야 이긔지 못ᄒᆞᄂᆞᆫ지라 {{du|미국}} 졍부ㅣ {{u|마졔독}}이 병법에 릉치 못ᄒᆞᆷ을 알고 일쳔팔ᄇᆡᆨ륙십이년【쳘종 십ᄉᆞᆷ년】에 {{u|마졔독}}을 쳬ᄎᆞᄒᆞ니라
::뎨구졀 노예라 이
ᄀᆡ젼 쳐음에 {{du|미국}} 졍부ㅣ 흑노 ᄉᆞ건을 판리키 심이 어려우니 대져 븍ᄉᆡᆼ인은 다 젼ᄌᆡᆼ이 흑노로 인ᄒᆞ야 난 쥴 아랏스니 타일에 국가ㅣ 반ᄃᆞ시 흑노ᄅᆞᆯ 방셕ᄒᆞ야 그 폐ᄅᆞᆯ 졔ᄒᆞ리라 ᄒᆞ며 ᄯᅩ 남븍이 교젼 이후로부터 남ᄉᆡᆼ에 잇ᄂᆞᆫ 흑노ㅣ 왕왕이 셩군결당ᄒᆞ야 븍ᄉᆡᆼ으로 오거ᄂᆞᆯ 졍부ㅣ 그 흑노ᄅᆞᆯ 안돈ᄒᆞᆯ 방ᄎᆡᆨ이 업스니 ᄒᆞᆫ가지 어려온 일이요 ᄯᅩ ᄎᆞ외에 흑노ㅣ 잇셔도 반치 아니ᄒᆞᆫ 각 ᄉᆡᆼ 여러이 잇스니 이졔 만일 신법을 ᄂᆡ여 흑노ᄅᆞᆯ 방셕ᄒᆞ라 ᄒᆞ면 이ᄂᆞᆫ 반치 아니ᄒᆞᆫ ᄉᆡᆼ을 핍박ᄒᆞ야 ᄒᆞᆫ가지 반ᄒᆞ라 ᄒᆞᆷ이라 이 ᄯᅩ 한가지 어려운 일이니 {{du|미국}} 졍부의 ᄉᆞ셰 실노 극난ᄒᆞ더라
연이나 ᄉᆞ이지ᄎᆞᄒᆞᄂᆡ ᄂᆡ 이졔 병력을 인ᄒᆞ야 폐단을 혁졔ᄒᆞ리라 ᄒᆞ고 이에 일쳔팔ᄇᆡᆨ륙십이년 【쳘종 십ᄉᆞᆷ년】 구월에 {{u|림긍}} 대통령이 령을 반포ᄒᆞ야 왈 남ᄉᆡᆼ에 흑노ᄂᆞᆫ ᄂᆡ 다 방셕ᄒᆞ노니 일쳔팔ᄇᆡᆨ륙십ᄉᆞᆷ년 【철종 십ᄉᆞ년】 졍월 일일 위시ᄒᆞ야 흑노로 ᄒᆞ야곰 다 ᄌᆞ주케 ᄒᆞ고 각군 각디에 임의 왕ᄅᆡᄒᆞ야 평민과 갓치 ᄃᆡ졉ᄒᆞ라 ᄒᆞ니 흑노 ᄉᆞᆷᄇᆡᆨ만이 운무ᄅᆞᆯ 헷치고 쳥텬을 본 듯ᄒᆞ며 수 월이 지나ᄆᆡ 븍ᄉᆡᆼ ᄉᆞᄅᆞᆷ이 ᄯᅩᄒᆞᆫ
{{옛한글쪽 끝}}<noinclude><references/></noincl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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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ᄌᆞ원ᄒᆞ야 흑노ᄅᆞᆯ 방셕ᄒᆞ고 일쳔팔ᄇᆡᆨ륙십오년【ᄃᆡ군쥬 이년】에 국가 법률 외에 ᄒᆞᆫ 조목을 더 쳠입ᄒᆞ야 영영히 흑노 ᄆᆡᄆᆡᄒᆞᆷ을 금ᄒᆞ니 이에 노예 폐단이 다 업셔지더라 ::뎨십졀 최후 젼ᄌᆡᆼ이라 븍ᄉᆡᆼ이 남ᄉᆡᆼ의 반ᄒᆞᆷ으로부터 젼국 인민이 다 ᄊᆞ홈을 도득ᄉᆡ 젼ᄌᆡᆼ이 필ᄒᆞᆯ ᄯᅢ에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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ᄌᆞ원ᄒᆞ야 흑노ᄅᆞᆯ 방셕ᄒᆞ고 일쳔팔ᄇᆡᆨ륙십오년【ᄃᆡ군쥬 이년】에 국가 법률 외에 ᄒᆞᆫ 조목을 더 쳠입ᄒᆞ야 영영히 흑노 ᄆᆡᄆᆡᄒᆞᆷ을 금ᄒᆞ니 이에 노예 폐단이 다 업셔지더라
::뎨십졀 최후 젼ᄌᆡᆼ이라
븍ᄉᆡᆼ이 남ᄉᆡᆼ의 반ᄒᆞᆷ으로부터 젼국 인민이 다 ᄊᆞ홈을 도득ᄉᆡ 젼ᄌᆡᆼ이 필ᄒᆞᆯ ᄯᅢ에 군사ㅣ 일ᄇᆡᆨ만 명이요 병션이 륙ᄇᆡᆨ쳑이요 ᄯᅩ 민간은 ᄌᆡ물을 ᄂᆡ여 국가의 취ᄃᆡᄒᆞᆷ을 기다리고 졔조국은 주야로 군긔ᄅᆞᆯ 지으며 지어 {{du|구쥬}} 각 졔조창이 {{du|미국}}을 ᄃᆡ신ᄒᆞ야 창포ᄅᆞᆯ ᄆᆡᆫ드니 대져 {{du|미국}}은 원ᄅᆡ ᄐᆡ평ᄒᆞᆫ 나라히라 양병치 아니ᄒᆞ더니 이졔 홀연히 오대쥬 만국 즁에 뎨일 군ᄉᆞ 만흔 나라히 되고 ᄯᅩ 젼ᄌᆡᆼ 수년에 병법이 연슉ᄒᆞ며 수륙군 졔독과 지ᄎᆞ 장수ㅣ 다 용병ᄒᆞᄂᆞᆫ 대ᄌᆡ 잇슨 연후에야 일국이 쳔거ᄒᆞ야 인군을 ᄉᆞᆷ으니 {{u|격난탈}}과 {{u|셰이만}}과<ref>셔먼(Sherman)</ref> {{u|타마사}}와<ref>토머스(Thomas)</ref> {{u|사례단}}이<ref>셰리던(Sheridan)</ref> 다 당시 위명이 ᄃᆡ져ᄒᆞ든 졔독이러라
븍ᄉᆡᆼ에ᄂᆞᆫ ᄌᆡ물이 충일ᄒᆞ고 장사ㅣ ᄯᅩᄒᆞᆫ 만흐며 남ᄉᆡᆼ은 날노 쇠ᄑᆡᄒᆞ야 잇ᄂᆞᆫ 바 네 ᄉᆡᆼ ᄯᅡ도 ᄯᅩᄒᆞᆫ 븍군이 요로ᄅᆞᆯ 단졀ᄒᆞᆫ ᄇᆡ 되야 만ᄉᆞ 만물이 다 결핍ᄒᆞ고 국고ㅣ ᄯᅩᄒᆞᆫ 공허ᄒᆞ고 병ᄋᆡᆨ이 다 억지로 츙군ᄒᆞᆫ ᄇᆡ라 븍군을 ᄃᆡ적지 못ᄒᆞᆯ 쥴 알고 도망ᄒᆞᄂᆞᆫ 자ㅣ 날노 만터라
남ᄉᆡᆼ ᄉᆞᄅᆞᆷ의 곤경이 여ᄎᆞᄒᆞ나 연이나 {{u|니위}} 졔독의 신긔묘산이 ᄇᆡᆨ츌ᄒᆞ야 전ᄌᆡᆼ 이러난지 ᄉᆞᆷ년에 여러 번 븍군을 파ᄒᆞ고 일쳔팔ᄇᆡᆨ륙십ᄉᆞᆷ년 【쳘종 십ᄉᆞ년】 칠월에 븍군과 ᄉᆞᆷ일 대젼ᄒᆞ다가 필경 대ᄑᆡᄒᆞ야 상망ᄒᆞᆫ 자ㅣ ᄐᆡ반이라 {{u|니졔독}}이 위연 탄왈 이ᄂᆞᆫ 텬망아요 비젼지죄라 ᄒᆞ고 셩야 회군ᄒᆞ야 남ᄉᆡᆼ엣 도라가니 종ᄎᆞ로 븍ᄉᆡᆼ에 남병의 ᄌᆞ최 업더라
이ᄯᅢ에 {{du|미국}} 졍부ㅣ {{u|격난탈}}을 명ᄒᆞ야 대병을 거ᄂᆞ리고 {{u|니위}} 졔독을 ᄶᅩᆺᄎᆞ 남ᄉᆡᆼ에 이르니 {{u|니졔독}}이 북군이 이름을 듯고 부하 군ᄉᆞ 륙만인을 명ᄒᆞ야 {{du|비졀니아ᄉᆡᆼ}} 산곡간에 ᄆᆡ복ᄒᆞ고 {{u|격난탈}}을 기다리더니 일쳔팔ᄇᆡᆨ륙십ᄉᆞ년 【ᄃᆡ군쥬 원년】 오월 ᄉᆞᆷ일에 {{u|격난탈}}의 군ᄉᆞ 십이만이 이르거ᄂᆞᆯ {{u|니위}} 졔독이 진젼에 ᄒᆡᄌᆞᄅᆞᆯ 파고 군ᄉᆞᄅᆞᆯ 그 속에 감초고 {{u|격난탈}}을 막으니 종ᄎᆞ로 냥군이 ᄊᆞ혼지 십여일에 {{u|격난탈}}의 군사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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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더더작게|읍}}血{{더더작게|혈}}{{분주|ᄒᆞ|야}}無{{더더작게|무}}言{{더더작게|언}}不{{더더작게|불}}疾{{더더작게|질}}{{분주|ᄒᆞᄂᆞ|니}}昔{{더더작게|셕}}爾{{더더작게|이}}出{{더더작게|츌}}居{{더더작게|거}}{{분주|앤|}}誰{{더더작게|슈}}從{{더더작게|죵}}作{{더더작게|작}}爾{{더더작게|이}}室{{더더작게|실}}{{분주|오|}}<br> :너ᄅᆞᆯ닐오ᄃᆡ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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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작게|읍}}血{{더더작게|혈}}{{분주|ᄒᆞ|야}}無{{더더작게|무}}言{{더더작게|언}}不{{더더작게|불}}疾{{더더작게|질}}{{분주|ᄒᆞᄂᆞ|니}}昔{{더더작게|셕}}爾{{더더작게|이}}出{{더더작게|츌}}居{{더더작게|거}}{{분주|앤|}}誰{{더더작게|슈}}從{{더더작게|죵}}作{{더더작게|작}}爾{{더더작게|이}}室{{더더작게|실}}{{분주|오|}}<br>
:너ᄅᆞᆯ닐오ᄃᆡ王{{더더작게|왕}}都{{더더작게|도}}애遷{{더더작게|쳔}}ᄒᆞ리라혼을ᄀᆞᆯ오ᄃᆡ내室{{더더작게|실}}家{{더더작게|가}}ᄅᆞᆯ두디몯호라ᄒᆞ야鼠{{더더작게|셔}}思{{더더작게|ᄉᆞ}}ᄒᆞ야泣{{더더작게|읍}}血{{더더작게|혈}}ᄒᆞ야言{{더더작게|언}}을疾{{더더작게|질}}티아님이업ᄂᆞ니녜네나가居{{더더작게|거}}ᄒᆞᆯ제ᄂᆞᆫ뉘조차네室{{더더작게|실}}을作{{더더작게|작}}ᄒᆞ뇨<br>
::雨{{더더작게|우}}無{{더더작게|무}}正{{더더작게|졍}}七{{더더작게|칠}}章{{더더작게|쟝}}<br><br>
詩{{더더작게|시}}經{{더더작게|경}}諺{{더더작게|언}}解{{더더작게|ᄒᆡ}}卷{{더더작게|권}}之{{더더작게|지}}十{{더더작게|십}}一{{더더작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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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big> 詩{{더더작게|시}}經{{더더작게|경}}諺{{더더작게|언}}解{{더더작게|ᄒᆡ}}卷{{더더작게|권}}之{{더더작게|지}}十{{더더작게|십}}二{{더더작게|이}}<br> ::小{{더더작게|쇼}}旻{{더더작게|민}}之{{더더작게|지}}什{{더더작게|습}}<br> 旻{{더더작게|민}}天{{더더작게|텬}}疾{{더더작게|질}}威{{더더작게|위}}{{분주|ᅵ|}}敷{{더더작게|부}}于{{더더작게|우}}下{{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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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더더작게|쇼}}旻{{더더작게|민}}之{{더더작게|지}}什{{더더작게|습}}<br>
旻{{더더작게|민}}天{{더더작게|텬}}疾{{더더작게|질}}威{{더더작게|위}}{{분주|ᅵ|}}敷{{더더작게|부}}于{{더더작게|우}}下{{더더작게|하}}圡{{더더작게|토}}{{분주|ᄒᆞ|야}}謀{{더더작게|모}}猶{{더더작게|유}}回{{더더작게|회}}遹{{더더작게|율}}{{분주|ᄒᆞ|니}}何{{더더작게|하}}日{{더더작게|일}}斯{{더더작게|ᄉᆞ}}沮{{더더작게|져}}{{분주|오|}}謀{{더더작게|모}}臧{{더더작게|장}}{{분주|으|란}}不{{더더작게|블}}從{{더더작게|죵}}{{분주|ᄒᆞ|고}}不{{더더작게|블}}臧{{더더작게|장}}{{분주|을|아}}覆{{더더작게|복}}用{{더더작게|용}}{{분주|ᄒᆞᄂᆞ|니}}我{{더더작게|아}}視{{더더작게|시}}謀{{더더작게|모}}猶{{더더작게|유}}{{분주|혼|ᄃᆡ}}亦{{더더작게|역}}孔{{더더작게|공}}之{{더더작게|지}}邛{{더더작게|공}}{{분주|이로|다}}<br>
:旻{{더더작게|민}}天{{더더작게|텬}}의疾{{더더작게|질}}威{{더더작게|위}}ᅵ下{{더더작게|하}}圡{{더더작게|토}}애敷{{더더작게|부}}ᄒᆞ야謀{{더더작게|모}}猶{{더더작게|유}}ᅵ回{{더더작게|회}}ᄒᆞ고遹{{더더작게|율}}케ᄒᆞ니어ᄂᆡ날의이沮{{더더작게|져}}ᄒᆞᆯ고謀{{더더작게|모}}의臧{{더더작게|장}}ᄒ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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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ᄯᅢ에셰존이무상정각을이루사삼신사지는와팔해육통이구죡하야허공이다하고세게가다하야사못쳐보시고아시는지라삼게즁생의륜회하는근본을보시고탄식왈삼게는륜회의근본이라즁생이엇지오온에싸이여열두가지인연으로무명업을벗지못하고생노병사를면치못하야고액을밧나니이제내가졍각을어듬애맛당히즁생을교화하리라하시고즉시미간백호상광을노으사대텬셰게에비추시니시방졔불과십지보살과과벽디불셩문과연각과나하이각々광명을좃차혹련화도타며사좌봉황공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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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ᄉᆞ제법을듯더니그즁에아라가셥과가라가섭두사람이숙세인연으로사제법을증득하니라세존이생각하사대차익과교진여등륙인이나를좃차고행하고ᄯᅩ젼세인연이잇스니몬져졔도하리라하시고사제법을셜하시니라이날세존의게문법득도한대즁들이모도즐거하더라이ᄯᅢ오백상고등이칠보를가지고지나더니텬신이공즁에서외여왈대각이츌세하섯스니너의들은금은을앗기지말고세존젼에공양하야무량복을어들지어다하니다른상고는드른체도아니하고그즁에두사람이발원하야벽옥바리두개를내여밀슈를담어세존ᄭᅦ공양하거늘세존이바더공양하시고그바리두개를포개여손으로만지시니둘이합하야한그릇이되니일홈을응양긔라하다상고의일홈은졔위바라타라각々제도하야인텬복을바드니라이ᄯᅢ에교진여와차익들이다시세존ᄭᅦ엿자오대비록세존을모셧사오나수발을업게못하엿사오니금일조차삭발하고법좌에모시리다이말맛치지안어수발이져졀노ᄯᅥ러지고가사몸에입펴사문에참녜하엿거늘세존이다시설법하야일으사되너의발원으로말미암아이졔비구되여나를좃차한가지교화즁생하려니와네의게오온식상이공하냐아니공하냐교진여등이엿자오대임의법을듯사오니오온이다공한지라엇지아상이잇사오릿가셰존이다시좌우로도라보시며가라사되오온이공하고아상이업슬진대일체가쳥졍하고평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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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h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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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龜{{더더작게|귀}}이믜厭{{더더작게|염}}혼디라내게猶{{더더작게|유}}ᄅᆞᆯ告{{더더작게|고}}티아니ᄒᆞ며謀{{더더작게|모}}夫{{더더작게|부}}ᅵ심히多{{더더작게|다}}ᄒᆞ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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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ory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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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옛한글쪽 시작}} ::噫{{더 작게|희}}噫{{더 작게|희}}一{{더 작게|일}}章{{더 작게|쟝}}<br/> 振{{더 작게|진}}鷺{{더 작게|로}}于{{더 작게|우}}飛{{더 작게|비ᄒᆞ니}}于{{더 작게|우}}彼{{더 작게|피}}西{{더 작게|셔}}雝{{더 작게|옹이로다}}我{{더 작게|아}}客{{더 작게|ᄀᆡᆨ}}戾{{더 작게|려}}止{{더 작게|지ᄒᆞ니}}亦{{더 작게|역}}有{{더 작게|유}}斯{{더 작게|ᄉᆞ}}容{{더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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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噫{{더 작게|희}}噫{{더 작게|희}}一{{더 작게|일}}章{{더 작게|쟝}}<br/>
振{{더 작게|진}}鷺{{더 작게|로}}于{{더 작게|우}}飛{{더 작게|비ᄒᆞ니}}于{{더 작게|우}}彼{{더 작게|피}}西{{더 작게|셔}}雝{{더 작게|옹이로다}}我{{더 작게|아}}客{{더 작게|ᄀᆡᆨ}}戾{{더 작게|려}}止{{더 작게|지ᄒᆞ니}}亦{{더 작게|역}}有{{더 작게|유}}斯{{더 작게|ᄉᆞ}}容{{더 작게|용이로다}}<br/>
:振{{더 작게|진}}ᄒᆞᆫ鷺{{더 작게|로}}ㅣ飛{{더 작게|비}}ᄒᆞ니뎌西{{더 작게|셔}}雝{{더 작게|옹}}에ᄒᆞ놋다우리客{{더 작게|ᄀᆡᆨ}}이戾{{더 작게|려}}ᄒᆞ니ᄯᅩᄒᆞᆫ이容{{더 작게|용}}이잇도다<br/>
在{{더 작게|ᄌᆡ}}彼{{더 작게|피}}無{{더 작게|무}}惡{{더 작게|오ᄒᆞ며}}在{{더 작게|ᄌᆡ}}此{{더 작게|ᄎᆞ}}無{{더 작게|무}}斁{{더 작게|역ᄒᆞ니}}庶{{더 작게|셔}}幾{{더 작게|긔}}夙{{더 작게|슉}}夜{{더 작게|야ᄒᆞ야}}以{{더 작게|이}}永{{더 작게|영}}終{{더 작게|죵}}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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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팔상록.djvu/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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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ma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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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피안에올나열반에도지못함을엇지근심하리요여러비구등이합쟝배례하고엿잣오되금일세존이녹야원에서쳐음으로셜법하사우셰즁생의보삼으로하야금삼도즁생을공겨아사이텬복뎐을엇게하소서세존이왈엇지일으되삼보라하나뇨비구등이대답하되우리세존은삼게에도사시고셕가여래불이시니후래즁생이귀의하야남무불이라할것이요이녹야원에서쳐음으로고집멸도의법을설하시니남무법이라할것이오ᄯᅩ교진여등여러비구들이법을드고나한과를어덧스니이거이승보라할지니불법승삼보는인천에대보며복뎐이됨으로소이다세존이쳥파에착하다하시고엄연단좌하시고셜법하사야사등오십비구를ᄯᅩ졔도하시니숙세에인연으ㄹ감응함일너라세존이여러제자를불너왈너의들이타방세계에두루단녀근기가순숙지못한즁생을위하야셜법졔도하라나도마갈제국에들어가어진졔자를엇고져하노라하시노복이ᄯᅩ한비구되여법좌에기리모시매하쳔한몸이바로텬궁에오름갓흔지라처음에대왕이노복을설산에보내여태자의동졍을아라오라하시는것을노복이인하야산즁에모셔금일에이르니세존과한가지로본궁을기리ᄭᅳᆫ코몸이법좌에잇스니인세사람을엇지다시생각하오릿가마는부자난쳔셩지친이라ᄉᆡᆼ육하신은혜호텬망극이오니엇지부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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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관셰음보살)륙자대명왕다라니신주경.djvu/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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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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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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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안 됨 */ 새 문서: {{작게|슉}}也{{작게|야}}의洵{{작게|슌}}美{{작게|미}}且{{작게|챠}}好{{작게|호}}{{분주|ㅣ니|라}}<br /> :叔{{작게|슉}}이狩{{작게|슈}}ᄒᆞ니巷{{작게|항}}애酒{{작게|쥬}}를飮{{작게|음}} ᄒᆞ리업도다엇디酒{{작게|쥬}}를飮{{작게|음}}ᄒᆞ리업ᄉᆞ리오마ᄂᆞᆫ叔{{작게|슉}}의진실로美{{작게|미}}ᄒᆞ고ᄯᅩ好{{작게|호}}ᄒᆞᆷ만ᄀᆞᆮ디몯ᄒᆞ니라<br /> ○叔{{작게|슉}}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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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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