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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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또는 초대교회는 기원후 30년경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 기원후 313년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의해 국교로 공인되기까지의 기독교를 칭하는 말이다. 혹은 제1회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기원후 325년까지로 보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는 대부분 초대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편집] 승천 직후와 사도시대
예수가 승천한 후 그의 열두제자와 그 외 신자가 예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열흘 동안 마가(마르코)의 다락방에서 기도한 후에, 성령이 임하여 방언을 받고 사역하기 시작한 이래, 복음은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도 시대 당시 교회는 크게 두가지 교파를 갖게 된다.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이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는 등, 유대교의 종파로 존재했다. 이스라엘에 거주한 본토파 유대인들이 그 신도들이었다.예루살렘교회의 신학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사도행전 22:20이다.
두 번째는 그리스 파 교회이다. (율법과 유대교에 대해 비판적이며,해외파 유대인들이 신도였다. 기독교 순교자이자 부제인 스데파노가 대표적인 그리스파 교회의 성직자이다. 그리스파 교회의 신학성격을 이해하려면 사도 바울로의 목회서신 특히,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등을 읽어보면 된다.
기원후 70년의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잃는다. A.D 90년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추방당한 사건 이후, 유대교의 소종파로서의 성격을 잃게 되고 이후 로마제국내의 비유대인사이에 전파되는 종교로 발달해 가게 된다. 또한 그리스파 교회도 유대교와의 대립끝에 소멸되고 말았다.
초기 기독교 시기는 기독교 발달에 중요한 시기였는데, 현재 사용되는 신약성경의 정립 (기원후 45~140년경), 로마의 기존 종교와의 경쟁, 그리고 로마황제 콘스탄틴 대제에 의한 국교 인정등 주요한 사건들이 이 기간중에 일어났다.
[편집] 기독교 변증시대
로마시대 당시 기독교는 반대자들의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순교자 유스틴(Justin)등이 기독교를 변호하였다. 이를 기독교 변증이라고 하는데, 사도 바울로와 복음서 편집자들에 의해 시도되어온 일이기도 하다.
[편집] 신앙 체계
- 예수의 신성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를 "말씀"(로고스) 로 표현하였는데, 이시기 그리스 철학에서 로고스는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질서와 힘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기독교 초기부터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신약 성경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 역시 예수의 부활과 신성을 강조한다. 초기 기독교의 분파중에서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따라서 요한 복음역시 부정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수적으로 소수에 속했고,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고 나서부터는 이단으로 지목되기도 하여 그나마 남아 있던 세력은 극소수로 줄어들었다.
- 삼위 일체
삼위 일체 개념은 신약에는 극명하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의 연관성은 신약 성경의 여러 부분에 표현되어 있으며, 마태복음의 경우 저자인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둘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만들어진 방대한 기록의 대부분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성자와 성부'로 표현하고 있다.
'삼위'라는 표현은 초대 교회 시절부터 자주 사용되어왔고 고대의 침례 의식의 기록에서도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삼위가 하나의 몸을 이룬다는 삼위 일체의 개념은 초기에는 비교적 불확실 했으며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4세기 초가 되면서 자세히 정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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