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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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구(洪茶丘, 1244년 ~ 1291년)은 고려 말기의 원종, 충렬왕 때의 부원(附元) 분자로 원나라의 장수, 본명은 홍준기(洪俊奇), 몽고명은 찰구이(察球爾)로 본관은 당성(唐城, 현재의 南陽)이다. 다구란 이름은 어릴적 이름이다. 몽고에 투항한 대선(大宣)의 손자이며 함께 몽고로 투항하여 고려 침략을 도왔던 복원(福源)의 아들로, 몽고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종군하여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1261년 원종 2년에 부친의 관직인 관령귀부고려군민총관(管領歸附高麗軍民摠管)에 임명되었다. 1269년 고려왕 원종이 임연(林衍)을 제거하고자 원나라에 군사요청을 하였을 때 고려에 들어왔다. 이때 봉주(鳳州) 둔전총관부(屯田總管府)에 군을 주둔하면서 고려의 부원 세력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이 후 삼별초의 난의 진압 지휘, 1274년 소용대장군안무사고려군민총관(昭勇大將軍安撫使高麗軍民總管)이 되어 왜 정벌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고 동정우부도원수(東征右副都元帥)가 되어 고려대장군 김방경과 함께 왜 정벌에 참여했으나 실패로 끝나자 1275년 다시 원나라로 돌아갔다.
1275년 위득유(韋得儒)에 의한 김방경 무고사건이 발생하자 고려에 돌아와 김방경을 고문하며 사건을 확대시켜 고려를 위태에 빠뜨렸으나 충렬왕의 무죄 항변과 적극적인 외교 활동으로 세조의 소환을 받아 원나라로 돌아갔다.
1279년 원나라가 2차 왜 정벌을 추진하자 정동행성우승(龍虎衛上將軍征東行省右丞)이 되어 고려에 입국 고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왜 정벌을 강행했다. 하지만 또 다시 실패하여 곧 원나라로 돌아갔다. 이 후에 1284년 재차 왜 정벌을 계획했으나 원 조정 내부의 문제로 무산되었고 1287년 원나라 내에서 발생한 내안(乃顔)의 반란을 진압하여 요양행성우승(遼陽行省右丞)이 되었다.
1290년 숙환으로 일단 사직했으나 내안의 잔당인 합단(哈丹)이 고려를 침략하자 요양행성의 관리로 재 등용되었지만 1291년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