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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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皮千得, 1910년 4월 21일 - 2007년 5월 25일)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작가이다. 호는 금아(琴兒)이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의 호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1946년부터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피천득은 2007년 5월 25일 서울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97세였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별곡〉, 〈파이프〉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서정시집》,《금아시문선》, 수필집 《인연》등이 있다.
[편집] 평가
이양하와 함께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편집] 비판론
영문학자 이태동은 피천득의 수필은 산문에 속하는 수필에 시적인 요소를 너무 강조하여 내용이 단편적이고 감각적이라고 비판한다. '인연'을 포함해 그의 작품 대부분은 주제의식, 도덕성 측면에서 정전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에 일간지 기자들이 '인연'을 세계적인 걸작처럼 평가한 '눈먼 과찬'은 죽은이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예의가 아니라며 지나친 과찬 보다는 객관적 평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1]
또한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과 현실의 일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피천득 수필의 비정치성은 야유에 가까울 정도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인연'은 하숙집 딸과의 추억을 회고하며 2차대전을 사적인 추억의 들러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십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그녀와의 결혼이 이루어졌을지 모른다는 대목이 있다. '일어나지 말았으면'이 아니라 미리 일어나기를 바라는 점에서 그의 현실인식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인연'은 상대 여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짝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하는 데서도 , 고작 세번의 만남에 어색하게 악수도 나누지 않고 이별했다면서도 결혼까지 진전했을 것이라는 데에서도 의문을 남긴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