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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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허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년 11월 21일 - 1834년 2월 12일)는 독일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계몽주의 비판과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정설을 화해시키려는 인상적인 시도로 유명하다. 그는 또한 성서에 대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목차 |
[편집] 생애
- 1. 어린 시절과 사상의 형성
- 2. 가정교사, 목회 임직, 최초의 저서들
- 3. 목회
- 4. 교육
- 5. 죽음
[편집] 철학적 체계
[편집] 윤리학
[편집] 종교적 체계
슐라이어마허는 근대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작품은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1799)과 [신앙론](1821/22; 2판: 1830/31)이다. 우선 그의 [종교론]에서 근대신학이 정초해 놓은 새로운 방향정위를 살펴볼 수 있다. 20세기의 새로운 신학적 사상들은 슐라이어마허와의 비판적인 대화를 시도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오늘날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 칼 바르트: “나는 슐라이어마허의 낭만주의 신학을 일생동안 진지하게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그의 신학을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밝히 드러내고 싶었습니다.”(Karl Barth: Briefe, hr. von Jürgen Fangmeier und Hinrich Stoevesandt, Zürich 1975, 466: F. W. Kantzenbach, Programm der Theologie, 199에서 재인용)
-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적 중요성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1.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을 “주체”로 생각한 최초의 신학자이다. 여기서 주체(subjectum)은 모든 것을 지탱하는 근원을 뜻한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모든 삶과 사유의 중심이면서, 모든 것은 바로 그 자신에 의해 이끌어져야 한다. 따라서 주체로서의 인간에게 종교란 외부적인 어떤 힘에 굴복하거나 순복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는 교리를 중요시하는 정통주의와 결별한다. 이로서 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가 된다.
2. 슐라이어마허는 당시의 철학적 사상을 수용한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사유를 요약하는 deus sive natura를 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는 ‘신’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우주’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는 ‘세계정신’ ‘인간성’ ‘역사발전’과 같은 당시의 정신사의 보편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개념들을 수용한다.
3.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단지 시대의 아들만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의 개념들과 정신사적 작업들을 수용하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슐라이어마허에게서 시작되는 근대신학은 근대정신을 수용, 비판하는 신학이다.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론의 첫 번째 강연에서 무엇이 종교가 아니며, 무엇이 참으로 종교의 본질인지를 암시하는 말을 한다.
“종교가 존재하며 작용하고 있는 곳에서는 그것이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심정을 움직이며 인간 영혼의 모든 기능을 서로 뒤섞이게도 하고 떼어놓기도 하여 영혼의 모든 활동을 무한자에 대한 놀라움의 직관으로 용해시킨다는 것을 종교 자체가 드러내 보여주어야 한다. ...여러분이 경멸해 마지 않는 이 모든 체계 속에서 여러분은 결코 종교를 발견하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발견할 수 없다. 종교는 이런 곳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들은 모든 학파의 체계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체계는 죽은 글씨가 머무는 자리와 이것을 양산해내는 재배지와 다르지 않다. 정신이나 영은 대학에 매여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순서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에 부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최신한 역, 34-6)
우리는 여기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는 교리체계나 문자의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영(靈)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의 종교는 인간의 심성에 “새로운 계시”(37)를 가져다 주며 “신의 불꽃”을 “순간”(37)에 형성시키며 “증발”(36)한다. 그러므로 이 영의 종교의 스쳐감을 영구히 하고자 문자화하고 체계화하는 노력 그 자체는 종교의 참된 본질과는 상관없는 후속작업에 불과하다. 종교가 떠나고 난 뒤에 오는 공허감에 대한 변상일 뿐이다. 영의 종교, 순간적 스쳐감을 통해 신적 불꽃을 지피는 이 종교의 자리는 “모든 선한 영혼의 내면”(43)이다. 종교를 파악하는 두 가지 접근이 있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종교에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체의 중심에서부터 이해하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외벽에서부터 접근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종교는 그 자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종교는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sui generis)(38-43)
두 번째 강연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종교는 우주의 영원하고 이상적인 내용과 본질에 대한, 그리고 무한자와 시간적인 존재 가운데 있는 영원자에 대한 경건한 직관이며 느낌이다”라는 종교의 본질규정이다. 즉, 종교는 지식도 도덕적 의지도 아닌 감정과 연관한다.
“종교는 자기 안에 어떠한 법전도 지니지 말아야 한다.”(49)
그러나 종교들을 살펴보면, 역사적인 종교들은 나름대로 형이상학적인 진리와 도덕적인 규범들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은 오늘날 종교학적 연구에서 시도하는 종교현상학적 방법과는 다른 관념적인 접근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란 결코 순수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다만 종교에 속하는 낯선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일이란 종교를 이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53)
“이렇듯 순전한 금강석은 불량한 덩이로 아주 감추어져 있지만, 이것은 정말 은폐되어 있기 위함이 아니라 더욱 안전하게 발견되기 위함이다.”(54)
슐라이어마허는 지금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실증적 종교들 또는 역사적 종교들에 대해 말하지만, 그 자체를 넘어서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은 역사상의 종교들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완전한 분리는 마치 육체 없는 영혼처럼 허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다만,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질규정을 통해 역사적 종교들이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영의 종교’가 이들에게는 낯선 요소로 머물러 있음을 지적한다.
종교의 본질은 사유나 행위가 아니라 직관과 감정(Gefühl)이다.
“종교는 형이상학과 같이 우주를 그 본성에 따라 규정하고 설명하기를 원치 않으며, 도덕과 같이 자유와 인간의 신적인 자의(恣意)가 갖는 힘으로부터 우주를 더 형성하고 완성하기를 또한 원치 않는다. 종교의 본질은 사유나 행위가 아니라 직관과 감정이다.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려 하며 우주의 고유한 서술과 행위 속에서 그에게 경건히 귀기울여 들으려 하고 스스로 어린아이의 수동성으로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에 사로잡히고 충만하게 채워질 수 있으려고 한다.”
위의 문장은 슐라이어마하의 [종교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형이상학과 도덕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종교의 본질이 명확하게 규정되고 있다. 중요한 몇 단어를 살펴보자면, “우주”, “직관과 감정”, 그리고 “어린아이의 수동성”이 종교이해에서 중심이다.
여기서 “우주”란 단지 물리학적 천체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과 자연세계를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인간을 둘러싼 생성 소멸의 우주적인 활동으로서, 인간의 지적, 도덕적 활동에 의해 다시금 파악되고 형성되는 삶의 총체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인간은 늘 우주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면서 새롭게 그것을 형성하고 체험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우주에 대한 반응에 앞서 먼저 우주의 끊임없는 활동이 전제된다. 이 우주가 인간을 사로잡는다. 인간이 우주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주가 인간을 직시하다.
슐라이어마허에게서 우주는 인간주체와 대립되어 그저 관찰될 수 있는 단순한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활동의 지평이며 환경이며, 인간과 더불어 관계하는 포괄적인 생동하는 공간이다. 형이상학과 도덕이 단지 우주를 객관적인 대상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면,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질규정과 관련해서 우주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생동하는, 무한한 힘으로 파악한다. 이점에서 우주를 단지 인간의 유한한 인식의 소유물로 전환시켜 버린 관념론의 환상과는 달리, 우주의 무한성을 사랑한 스피노자를 그는 한껏 예찬한다.(59-60) 그러나 우주는 단지 인간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과 관계하는 한, 인간 안에서 자신을 형성한다. 즉, 무한한 우주과 유한한 인간 안에서 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한성 안에 있는 무한성을 파악하게 된다.
“종교는 다른 모든 개별자와 유한자 가운데서 무한자를 보는 것에 못지않게 인간 속에서 무한자를 보며 그 각인된 흔적과 연출을 본다.”(57)
또한“직관”이란 단지 인간의 인식적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직관은 우주의 활동에 상응하는 대응적 행위일 뿐이다.
“모든 직관은 직관되는 존재가 직관하는 존재에 끼치는 영향으로부터 출발하며, 직관하는 존재의 본성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종합되며 파악되는, 직관되는 존재의 근원적이고 독립적인 행위로부터 출발한다.”(60)
심지어 슐라이어마허는 “우주의 고유한 서술과 행위 속에서 그에게 경건히 귀기울여 들”을 것을 요구한다. 우주가 인간에게 걸어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 즉, 경청의 행위가 바로 종교의 행위이다. 종교는 대상을 규정하고 파악하는 능동적인 태도에서가 아니라, 귀 기울여 듣는 수동적 태도, “스스로 어린아이의 수동성으로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에 사로잡히고 충만하게 채워”지는 태도에서 발생한다.
[편집] 일반적 특성
[편집] 저서 및 연구
[편집] 참조문헌
종교적 체계 부분은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1799)(최신한 역)의 첫번째와 두번째 강의를 중심으로 내용정리를 한 것이다.
- Geck, Albrecht, Schleiermacher als Kirchenpolitiker. Die Auseinandersetzungen um die Reform der *Kirchenverfassung in Preußen (1799–1823), Unio et Confessio XX, Bielefeld 1997 (333 S.).
- Geck, Albrecht, Die „demokratische“ Kirche in einem demokratischen Staat. Zur Edition der kirchenpolitischen *Schriften Friedrich Schleiermachers — Nicht nur ein Beitrag zum Preußenjahr 2001, in: Praktische Theologie. *Zeitschrift für Religion, Gesellschaft und Kirche 37 (2002), 154–157.
- Geck, Albrecht, Sozialethische und sozialpolitische Ansätze in der philosophischen und theologischen *Systematik Schleiermachers, in: Friedrich, Martin/Friedrich, Norbert/Jähnichen, Traugott/Kaiser, Jochen-*Christoph (Hgg.), Sozialer Protestantismus im Vormärz. Bochumer Forum zur Geschichte des sozialen *Protestantismus 2, Münster 2001, 133–146.
- Geck, Albrecht, Schleiermachers Kirchen- und Real-Kirchenpolitik zwischen Revolution und Restauration (1799–1823), in: Barth, Ulrich/C.-D. Osthövener (Hgg.), 200 Jahre „Reden über die Religion“. Akten des 1. *Internationalen Kongresses der Schleiermacher-Gesellschaft Halle 14.–17. März 1999, Schleiermacher Archiv 19, Berlin/New York 2000, 909–927.
- Nowak, Kurt, Schleiermacher. Leben, Werk und Wirkung, Göttingen 2001.
- Lundberg, Phillip (2005). Tallyho - The Hunt for Virtue: Beauty, Truth and Goodness - Nine Dialogues by Plato. AuthorHouse. ISBN 1-4184-4976-8.
- 슐라이어마허 [종교론] 최신한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2.
- M.Redeker, [슐라이에르마허의 생애와 사상] 주재용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 목창균, [슐라이에르마허의 신학사상], 한국신학연구소, 1991.*
- 종교론 요약정리는 http://spur.egloos.com/531675
[편집] 주석
[편집]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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