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개혁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토지개혁은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는 개혁정책을 말한다. 지주와 소작인간의 계급갈등을 막는 효과가 있으며, 공산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정권에서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경제 실천을 위해서 토지개혁이 시행되었다.

목차

[편집] 한반도의 토지개혁

한반도에서는 1945년 8.15광복이후 남한북한에서 토지개혁이 시행되었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건국으로 공산주의경제에 근거, 모든 사유재산이 국유화되면서 그 의미가 없어지게 되지만, 무상몰수·무상분배를 통해서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하지만 토지를 북한정부에게 몰수당한 지주들의 입장에서 토지개혁은 생존의 터전을 잃게 하는 것이어서, 자본주의 경제를 따르는 남한으로 월남하게 된다. 남한에서는 미군정에 의해서 유상몰수·유상분배로 토지개혁이 시행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지주와 소작인들간의 계급갈등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었다. 역사학계에서는 토지개혁으로 혜택을 본 농민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의 토지개혁은 토지개혁의 본래목적인 토지분배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편집] 칠레의 토지개혁

사회주의자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시절, 칠레에서는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토지개혁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주의성격의 개혁정책들은 빈부의 격차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민중들에게는 지지를 받되, 기득권을 침해당한 칠레 보수층들에게는 지주나 고용주들이 고의적으로 노동자들의 실업율을 높이고 급기야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9.11쿠데타(1973년)로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는 반발을 샀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편집] 일본의 토지개혁

일본에서는 미군정당시 농업발전을 위해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토지개혁이 시행되었다. 물론 미군정이 토지개혁을 실시한 이유는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일본이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토지개혁은 1920년대 일본 사회주의계에서 도조(소작인이 토지를 임대한 지주에게 내는 세금) 비율 낮추기 운동으로 소작인들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고자 노력할 정도로 뿌리깊은 계급갈등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편집] 참고자료

  • 《우리역사의 수수께끼》 2권/이덕일외 공저/김영사
  • 《일본사 103장면》/하종강 외 공저/가람기획
이 문서는 역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