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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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한강》으로 데뷔했다. 그의 데뷔 시기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으로 관제 선동 영화가 주로 제작되던 시기였다. 1942년에는 영화사가 통폐합되어 국책 영화만 제작할 수 있었다.
최운봉은 지원병 제도를 드러내놓고 홍보하는 《지원병》(1941년)에 이어, 《나는 간다(일본어: 今ど我は行く)》, 《태양의 아들들(일본어: 太陽の子供達)》, 《감격의 일기(일본어: 感激の日記)》, 《우리들의 전쟁(일본어: 我れらの戰爭)》 등 친일 영화에 잇따라 출연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목록 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1949년 함세덕의 희곡을 영화화한 《마음의 고향》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월북했다[1].
[편집] 참고자료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최운봉
- 《오마이뉴스》 (2007.1.29) 한국영화스타 8-② 영화배우 황철/ 친일, 월북, 그리고 인민배우
- 권박효원, 〈지원병〉에서 〈해방 뉴-쓰〉까지 - 관람기/ 3.1절 앞둔 국회, '친일·해방영화' 상영 《오마이뉴스》 (2005.2.28)
[편집] 주석
- ↑ 정종화, 한국영화 성장기의 토대에 대한 연구 - 동란기 한국영화 제작을 중심으로 -,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석사논문,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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