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오류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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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오류와 진실은 그동안 잘못 알려진 한국사를 모아놓은 문서이다.

목차

[편집] 고구려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한 왕

이 부분의 본문은 고구려 문자명왕입니다.

고구려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한 왕은 흔히 광개토대왕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자명왕이다. 광개토대왕은 “땅을 넓힌 왕”이란 뜻이고, “넓은 땅을 통치한 왕”이라는 뜻은 아니다.

[편집] 의자왕과 3천 궁녀?

이 부분의 본문은 백제 의자왕입니다.

백제 의자왕과 3천 궁녀의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멸망한 나라의 멸망할 만한 합당한 이유로서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이며, 오히려 의자왕시대 백제신라에서 두려워할 정도로 군사강국이었다는 점에서 의자왕을 주색을 밝힌 방탕한 군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충신 성충이 간(諫)하다가 감옥에 갇혀 옥사했다는 이야기도 실제로는 의자왕의 귀족층 숙청에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으며, 3천 궁녀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후대에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창작된 이야기이다.

[편집] 서희는 말로써 요나라 대군을 물리쳤다?

서희가 말로써 요나라 대군을 물리쳤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말로만” 요나라 대군을 물리쳤다는 말은 틀리다. 요나라 장수 소손녕이 청천강 남쪽의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다가 중랑장 대도수(大道秀)에게 패하게 되자 비로소 고려와의 담판에 응하게 되었고, 그때 서희가 나서서 담판을 짓고, 압록강 동쪽 280리 땅(흔히 강동 6주)을 얻었다. 다시 말해 대도수의 활약과 서희의 담판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이지, 서희의 담판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는 아니다.

[편집] 함흥차사?

이 부분의 본문은 함흥차사입니다.

함흥차사조선 태조 이성계가 죽였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적어도 야사가 아닌 정사에서 차사로 보내진 사람을 이성계가 죽이지는 않았다. 당시에 차사로 보내진 사람은 성석린(뒤에 최초의 판한성부사)을 비롯하여 왕사 무학대사, 환관 김완(金完), 예문관 대제학 이직(李稷), 청원군 심종(沈淙), 예문관 제학 유창(劉敞), 안평 부원군 이서, 승려 익륜과 설오 등이다.

오히려 차사를 보내지 않아 섭섭하다고 이성계가 말한바와 같이 교통 사정이 열악하여 일부만이 이성계를 알현했을 뿐이다.

태종 이방원과 태조 이성계가 왕자의 난 이후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또한 태조 이성계가 태종 이방원을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음을 지켜본 백성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편집] 홍길동은 허구의 인물?

홍길동(洪吉同)은 연산군시대 큰 도적이라고 불린 강도들의 수괴(首傀)이며, 실존 인물이다. 후대에 허균이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지었는데, 그 주인공은 홍길동(洪吉童)으로 실존 인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둘을 자주 착각하나 서로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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