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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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덕(黃信德, 1889년 ~ 1983년 11월 22일)은 추계예대 설립자인 대한민국의 교육인이다. 아호는 추계(秋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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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평양 출신으로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나 일찍부터 신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3·1 운동에 참가했고 3·1 여성동지회 초대 회장을 지낸 황애덕이 황신덕의 큰언니이다.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했다. 귀국한 뒤로는 《시대일보》, 《중외일보》,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1927년 좌우 합작의 여성 독립 운동 세력인 근우회의 핵심부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30년대 말부터 광복 시점까지 각종 강연과 좌담회, 기고를 통하여 친일 활동을 했다. 1940년부터 박찬주의 후원으로 설립한 경성가정의숙(현 중앙여자고등학교의 전신) 교장을 지내면서는 일제의 전시 체제에 적극 협력했다. 당시 부교장은 박순천이었다.

국민총력조선연맹 위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으로 친일 단체에도 가입했다. 조선임전보국단에는 김활란, 모윤숙, 박인덕 등이 여성 평의원으로 참가했다. 황신덕은 이들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일신보》와 같은 친일 매체에 친일 기고문을 싣거나 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광복 직후 건국부녀동맹 결성에 적극 나섰고 이후 미군정남조선과도입법의원 입법의원을 지냈다. 1960년대부터는 추계학원 이사장으로서 많은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3·1 여성동지회 회장도 역임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도 선정되었다. 3·1 여성동지회가 주최하는 행사가 황신덕 때문에 친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일평생 교육으로 국가에 세운 공은 덮고 강제로 했던 친일 행위를 들추어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있다[1][2].

[편집] 같이 보기

  • 추계예술대학교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김정빈, 3.1절을 맞는 감회 《미주한국일보》 (2007.3.1)
  2. 정옥희, 흙 다시 만져보자 《미주한국일보》 (2006.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