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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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야파는 (히브리어: תֵּל־אָבִיב-יָפוֹ 텔아비브; 아랍어: تَلْ أَبِيبْ يَافَا)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다음으로 가장 인구가 높은 도시이다. 인구는 38만 2천명이고 주위 도시권의 인구는 304만명이다. 지중해를 접하고 있다. 1880년대 유대인 이주자들이 물가가 비쌌던 야파 (아랍어: يافا 야파)를 대처할 곳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텔아비브의 규모는 커졌고 2007년 중동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가 되었다.[1] 텔아비브에서 하얀색상의 건물이 많기로 알려진 화이트 시티는 200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텔은 언덕을 의미하며 아비브는 봄을 의미한다. 이 명칭은 나훔 소콜로프가 테오도르 헤르츨이쓴 《오래 된 새로운 땅》을 히브리어로 번역했을 때 지어준 제목이기도 하다. 이 명칭은 고대 이스라엘의 파괴를 상징하는 동시에 재탄생을 갈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소콜로프는 에제키엘 3장 15절에서 이름을 얻었다. ("나는 내 겨레가 사로잡혀 와서 살고 있는 그발 강 가 텔아비브에 이르렀다. 나는 얼빠진 사람이 되어 칠 일간 그들 가운데 앉아 있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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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1909년 유대인 가족들이 아랍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샀을 당시 야파를 대처 할곳으로 지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당시 터키군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야파와 텔아비브에서 쫓겨났지만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기 시작 할 때 다시 돌아왔다. 1920년대 팔레스타인으로 오는 유대인 이주자들이 늘어나면서 아랍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결과로 유대인들은 야파를 떠났고 텔아비브의 인구는 서서히 늘어났다.[3]
제1차 중동 전쟁이 시작되기 며칠전 야파에 있던 아랍군이 텔아비브를 공격했으나 독립 선언하기 이틀전 유대인들은 다시 도시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전쟁당시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생포해서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임시수도가 되었다. 전쟁전 야파는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이 가장 많은 도시였다. 대략 7만명내지 8만명의 아랍인들이 존재했으나 유대인 민병이었던 이르군과 하가나가 침입해서 오직 4천명만 야파에 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부분의 대사관들은 텔아비브에 위치해있다. 1980년대 13개 대사관들이 텔아비브로 돌아왔고 현재 예루살렘에는 오직 두 대사관만이 남아있다.[4] [5][6]
건축적으로 텔아비브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건설된 화이트 시티로 잘 알려져있다. 하얗고 밝은 색상의 건물들이 많아서 화이트 시티로 불린다. 나치 독일을 탈출한 건축가들이 모던주의의 영향을 받아 건물들을 전부 바우하우스식이나 국제주의식으로 지었다. 2003년 유네스코가 세계 유산으로 지정했다.[7] 1960년대 급속도로 늘어났던 이민자들을 위해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초고층빌딩의 숫자는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마천루는 샬롬 타워와 아즈리엘리 센터등등이있다.
[편집] 지형과 기후
텔아비브는 모래 언덕에 지어져서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예루살렘은 텔아비브의 동남쪽에 위치해있으며 거리는 대략 60킬로미터 정도 된다. 하이파는 9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으며 텔아비브의 북쪽에 위치해있다.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를 소유한다. 여름은 덥고 봄과 가을은 맑은 편이며 겨울은 시원하고 비가 자주온다. 계절에 상관없이 습기가 높고 비는 주로 10월에서 5월사이 온다. 겨울에는 평균 기온이 10℃에서 15℃사이라서 주로 5℃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여름에는 기온이 26℃로 올라간다. 1년당 평균 강우량은 530mm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1년중 300일정도로 맑은 날이 많은 편이다.[8] 봄과 가을은 짧은 편이다.
[편집] 인구 통계
38만 2천 5백명이 넘는 인구가 존재하며 91.8%는 유대인이고 4.2%는 아랍인이고 4%는 "기타"로 분류된다.[9] 시의 면적은 50.6 km²이고 인구 밀도는 한 km²당 7,455명이다. 몇몇 예측에 의하면 대략 5만명의 불법 체류자가 텔아비브에 있다고 한다.[10]
[편집] 종교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은 예루살렘이지만 텔아비브에 있는 시나고그의 숫자는 500곳이 넘는다. 이 중 350곳이 활동중이다. 아랍 기독교인들과 야파의 높은 무슬림 인구의 영향으로 교회와 모스크도 찾아볼 수 있다.[11]
[편집] 문화
텔아비브는 이스라엘의 문화 수도로 여겨진다.[12] 이스라엘은 1인당 박물관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 이 중 대부분이 텔아비브에 위치해있다.[13] 고고학 유적을 모은 에레츠 이스라엘 박물관과 텔아비브 미술 박물관이 유명하다. 텔아비브대학 캠퍼스에있는 디아스포라 박물관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동성애자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편집] 교육
텔아비브 대학과 바일란 대학으로 유명하다. 텔아비브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대학이며 두 대학의 학생 숫자를 합치면 5만명이 넘는다.
[편집] 자매결연
[편집] 주석
- ↑ Worldwide Cost of Living Survey 2007
- ↑ 에제키엘 3장
- ↑ Virtual Israel Experience - 텔아비브-야파
- ↑ http://www.icaj.nl/nieuwsbrief/sep2005/25_jaar_ambassade.htm
- ↑ Foreign Ministry reaction to the transfer of the Dutch embassy from Jerusalem to Tel Aviv- 26 August 1980. Israel's Foreign Relations: Selected Documents. Israel Ministry of Foreign Affairs. 2007년 6월 3일에 접속 확인.
- ↑ Embassies and Consulates in Israel. Israel Science and Technology Homepage. Israel Science and Technology. 2007년 7월 18일에 접속 확인.
- ↑ White City of Tel-Aviv -- the Modern Movement. The List - World Heritage List. 유네스코. 2007년 6월 24일에 접속 확인.
- ↑ Tel Aviv Climate and Weather. World Travels. 2007년 7월 10일에 접속 확인.
- ↑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data as of 31.12.2005 [1]. 기타는 아랍 기독교인이 아닌 소수를 가리킴.
- ↑ Migration News. 2007년 5월 22일에 접속 확인.
- ↑ Holy Tel Aviv tours. www.dailyjews.com. 2007년 7월 7일에 접속 확인.
- ↑ B.A. Kipnis (8 October, 2001). [http://www.lboro.ac.uk/gawc/rb/rb57.html Tel Aviv, Israel - A World City in Evolution: Urban Development at a Deadend of the Global Economy]. Globalization and World Cities Study Group and Network at Loughborough University. 2007년 7월 17일에 접속 확인.
- ↑ Science & Technology. Consulate General of Israel in Los Angeles. 2007년 5월 26일에 접속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