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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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제명(玄濟明, 일본식 이름:玄山濟明, 1902년 12월 8일 ~ 1960년 10월 16일[1])은 한국작곡가이다. 아호는 현석(玄石).

대구 출생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서양음악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평양의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시카고에 유학하여 음악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의 서양음악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 조선음악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문예회에 참여하여 친일 활동을 시작한 후 대동민우회,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등 친일 단체에 연이어 참가했다. 조선음악협회의 음악회에서 친일적인 내용의 성악곡 〈후지산을 바라보며〉를 발표하고 대화숙 주최 '국민음악의 밤'과 같은 친일 행사에 참가해 독창을 하거나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전국 순회 가창지도대에 참가하는 등, 그의 친일 행적은 음악가들 가운데서 매우 뚜렷한 편이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소속의 우익 음악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울대학교에 음악대학을 설치해 예술학부 초대 학부장을 맡았다.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고 지휘자로 활동했으며, 창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려 오페라 연출자로도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 예술원의 종신회원을 지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5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음악 부문과 전쟁지원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2].

작품으로는 가곡 〈고향생각〉, 〈그집앞〉, 〈나물 캐는 처녀〉, 〈희망의 나라로〉 등이 유명하다.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동아일보》(1960.10.17) 玄濟明 音樂博士
  2. 《오마이뉴스》 (2005.4.7) 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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