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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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라트차 아나차크 타이
타이의 국기 타이의 문장
(국기) (문장)
표어: สพฺเพสํ สํงฆภูตานํ สามคฺคี วุฑฺฒิสาธิกา
국가: 플렝 차트
타이의 위치
수도 방콕
북위 13°44′, 동경 100°30′
공용어 태국어
정부 형태
군주
총리
입헌 군주제, 내각 책임제
라마 9세
손티 분야랏글린 (정치개혁평의회 의장)
독립
 • 수코타이 왕조
 • 아유타야 왕조
 • 탁신 왕조
 • 차크리 왕조
크메르 제국에서 독립
1238년1368년
1350년1767년
1767년1782년
1782년 4월 7일 - 현재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514,000 km² (49위)
0.4%
인구
 • 2005년 어림
 • 2000년 조사
 • 인구 밀도
 
65,444,371명 (19위)
60,916,441명
127명/km² (59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5,595억 (20위)
$8,542 (72위)
HDI
 • 2003년 조사

0.778 (73위)
통화 (ISO 4217:THB)
(화폐단위:-)
시간대
 • 여름 시간
(UTC+7)
없음 
ISO 3166-1
·Alpha-2
·Alpha-3
인터넷 도메인 .th
국제 전화 +66
타이의 왕실 국가국가이다.
타이의 지도
타이의 지도

타이 왕국(타이어: ราชอาณาจักรไทย 랏차 아나짝 타이)은 동남아시아의 나라이다. 동쪽으로 라오스캄보디아, 남쪽으로 타이 만말레이시아, 서쪽으로 안다만 해미얀마와 접하고 있다.

한문으로 음차한 태국(泰國)이라고도 부르며, 1949년까지 사용했던 시암(태국어발음으로는 싸얌)(สยาม)이라는 옛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타이(ไทย)는 "자유"라는 뜻이다. 이 나라는 군대를 제비뽑기로 가서 검은색 제비는 안도, 빨간색 제비는 군입대 당첨이다. 이 나라 전봇대는 온통 사각이어서 이 올라가지 못한다.

목차

[편집]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타이의 역사입니다.

타이에는 반 치앙 문명 때부터 여러 다양한 토착 문화가 존재하여 왔다.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타이는 인도중국 그리고 이웃한 동남아시아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타이에 세워진 최초의 국가는 전통적으로는 1238년에 세워진 불교국가인 수코타이 왕국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13세기에서 15세기에 크메르 제국이 쇠퇴 및 멸망한 것에 뒤이은 것이다. 한 세기 뒤, 수코타이 왕국은 14세기 중반에 세워진 더 큰 타이의 국가인 아유타야 왕국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1431년의 시암 군대에 의한 앙코르 약탈 이후, 크메르의 조신(朝臣)들과 힌두교적 관습들이 아유타야 왕국으로 대량 유입되었고, 크메르의 관습과 종교적 의식들이 시암의 궁정 문화에 수용되었다.

1767년 아유타야 왕국이 버마인들에게 무너졌고 톤부리가 탁신 대왕 통치하의 짧은 기간 동안 타이의 수도였다. 1782년에 라마 1세 대왕의 짜끄리 왕조가 방콕을 수도로서 세우면서 타이 역사의 현 시기(라타나코신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왕조는 4차례 바뀌었으며 현재는 짜끄리 왕조가 통치한다. 유럽 세력들은 16세기부터 타이를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타이는 19세기 당시, 다른 나라들이 프랑스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독립국으로 계속 존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은 타이가 19세기에 매우 유능한 통치자가 오랜 기간 통치를 하였고 프랑스인과 영국인들 사이의 경쟁의식과 긴장감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타이는 유럽의 2개의 식민 지배 권력의 식민지가 된 동남아시아에서 완충국으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서구의 영향으로 타이는 19세기에 많은 개혁이 있었고, 영국의 무역 이익을 위하여 주요 조계(租界)를 설정하였다. 또한 타이는 말레이 인종이 거주하는 남쪽의 세 개 지역(이 곳은 나중에 말레이시아 북부의 주가 된다.)의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파타니라 불리는 말레이 인종이 거주하는 나머지 지역(이는 다시 4개의 구역으로 세분된다.)은 오늘날에도 타이의 영토로 남아 있다.

라마 4세 때 문호를 개방하였고, 라마 5세는 국가를 개혁하였다. 라마 5세는 지식인에게 해외 유악을 장려하였고, 관료로 삼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1917년에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게 된다. 전후 승전국으로 처리되어 국제 연맹에 가입할 수 있었고, 1932년의 무혈 혁명으로 지금의 입헌군주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송크람 대령이 이끄는 군사정권이 국왕 라마 7세를 영국으로 추방하고 1992년까지 60년간 타이를 장악하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비시 프랑스와 상대하였다. 그러나 타이는 1946년에 국제 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1948년대한민국의 독립을 승인하였으며 한국 전쟁 때 대한민국을 지원하여 1200명 정도의 군인이 희생되었다. 이 나라는 반공(反共)을 앞세운 군사정권의 지배를 받았으며 여러 차례의 쿠데타를 경험하였다. 1987년 방콕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이후로도 1991년에 수친다 장군의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다시 연장되었고,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소한 50명이 사망하였다. 결국 라마 9세에 의해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되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민주화된 것은 아니어서, 종과 주인의 구분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타이를 강타하였고 타이의 화폐인 은 1 미국 달러 당 56밧까지 치솟았다.(1997년 이전에는 대략 25밧이었다.) 그 이후로 밧은 다시 평가절상되기 시작하여 2007년 5월 현재는 33밧 정도이다.

2006년에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 총사령관이 해외를 방문한 탁신 치나왓 총리를 축출한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편집]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타이의 행정 구역입니다.

수도방콕(타이에서는 끄룽텝이라 부른다)이며, 치앙마이나 핫야이 등의 주요 도시가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타이는 76개의 짱왓으로 나누어진다(타이의 주 참조). 짱왓은 한국의 도 개념과 비슷하다. 짱왓보다 하위개념으로 암퍼가 있다. 다시 암퍼는 암퍼므엉과 땀본 등으로 나뉘어진다. 짱왓의 도청소재지는 암퍼므엉이라고 불리운다. 많은 암퍼므엉의 이름은 짱왓의 이름과 같다.

[편집]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타이의 정치입니다.

타이은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타이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국왕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있다. 지폐, 달력, 도로 광고판에 사진기를 들고 있거나 아이를 무등 태운 국왕의 인자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타이의 왕정제도나 국왕에 대해 비판하는 행위는 해서는 아니된다.

타이 국민들이 무조건 그들의 국왕이나 왕족들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국왕과 시리낏 여왕의 사이에 4명이 자식이 있는데 그중에 왕위계승자인 마하 와찌라롱껀 황태자는 태국인들의 드러내지 않는 불신을 받고 있다. 국왕은 정치적인 힘은 갖고 있지 않다고 헌법에 씌여 있으나 국민의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하다.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국왕은 쿠데타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국왕의 승인을 얻지못한 쿠데타는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국왕과 관련하여 외국인들의 눈에 가장 이색적으로 비추어지는 광경은 국왕의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거의 기는 자세로 인사를 하는 관리나 국민들의 모습이다.

국왕의 강력한 왕권과 타이의 신비스러움 때문에 19세기 당시 몽꿋 국왕의 이야기는 'Anna And The King'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현 국왕은 푸미폰 야둔야뎃 국왕으로 짜끄리 왕조 제 9대왕 (1946. 즉위)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형태로는 내각 책임제를 취한다. 다만 2006년 9월 19일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 개혁 평의회'를 구성해 유지되고 있다. 이는 2006년 9월 20일 국왕이 '모든 군과 공무원은 손티의 지시에 따르라'고 지시한 것에 의한 것으로 군의 발표에 의하면 2주내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예정이다. 현 의회는 양원제로 되어 있다.

2004년 1월 회교도 거주지역인 남부의 3개주(빠따니 주, 나라티왓 주, 야라 주)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한 이래 남부지역에서 간헐적인 소요 및 지속적인 사상자가 발생중에 있다.[1]

[편집] 지리

국토의 면적은 51만4천제곱킬로미터로 세계 49위이다. 이는 프랑스미국캘리포니아 주와 비슷한 크기이다.

[편집] 경제

[편집] 개관

타이는 신흥공업국 중 하나이다. 타이는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연 9%에 가까운 성장율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고율 성장기를 보낸 다음, 타이의 화폐 의 평가절하 압력을 받아오다가 1997년에 회복할 수 없는 재정적 약점을 보이고 정부가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변경하여야만 했던 위기를 맞이하였다. 밧은 오랫동안 미화 1달러 당 25밧에 안정되어 있었다가 1998년 1월에 56밧까지 가치가 떨어지고, 그 해에 경제 규모는 10.2% 수축하였다. 타이 은행의 붕괴는 더 큰 아시아 금융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타이는 1998년에 회복 국면에 접어들어 2000년에는 4.2% 확장되고 4.4% 성장하였는데 이는 같은 해에 20%나 증가한 수출 덕분이었다. 2001년 세계 경제의 약화로 성장은 그 기세가 꺾기었다가 중국의 급성장과 "탁시노믹스"라고도 널리 알려진 탁신 친나왓 총리의 여러가지 국내 경기 부양 정책으로 인하여 그 이후에는 경기가 좋아졌다. 2003년2004년의 경기 성장은 연간 6%를 상회하였다. [2]

타이의 연간 수출액은 1235억 달러를 상회한다.(2006년)[2] 주요 수출 품목은 , 섬유, 신발, 수산물, 고무, 보석, 자동차, 컴퓨터, 가전제품 등이다. 타이는 세계 제1위의 쌀 수출국으로서 매년 도정미 650만톤을 수출한다. 쌀은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곡물이다. 타이는 메콩 강 유역의 나라 중 가장 높은 경지율(27.25%)을 보인다.[3] 이 중 55%는 쌀 경작지이다. [4]

중요한 산업으로는 전자 제품, 전자 부품, 컴퓨터 부품, 자동차가 있다. 또한 관광업은 타이 GDP의 5% 정도를 기여하고 있다.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과 그들의 사업도 GDP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편집] 경제 수준

  • 2003년말 경제의 주요 지표이다.
  • 국내총생산: 1,423억$
  • 1인당 GDP: 2.251$
  • 경제성장률: 6.7%
  • 수출: 1235억$(단, 2006년)
  • 수입: 750억$
  • 외환보유고 : 421억$
  • 외채: 522억$

[편집] 관광 산업

주요 산업은 관광업이다. 이 나라는 유명한 관광 명소들과 문화재로 인해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태국의 관광산업은 국가 수입의 60%에 이를 정도로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곳곳에 관광지와 유적지가 펼쳐져 있다.

방콕의 주요 관광지는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왓 프라깨우), 새벽사원(왓 아룬) 등이 대표족이다. 동남아시아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인 <카오산> 지역도 전세계 젊은이들과 친교를 쌓을 수 있는 장소이다.

방콕 근교로는 영화로 유명한 깐짜나부리의 <콰이강의 다리>, 한국의 개성 쯤 되는 <아유타야>, 경주쯤 되는 <나컨빠톰>, 동남아시아 최대의 수상시장 <담넌싸두악>, 태국왕의 여름 별궁 <방빠인>이 유명하다.

태국 중부 지역의 대표적인 것은 동남아시아 최대의 위락도시 <팟타야>, 태국왕실 전용의 휴양지 <후아힌>이 존재한다. 남부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는 <푸껫>과 <피피>섬이 존재하며, 북부 지역 문화 중심지 <치앙마이>, 산악 민족의 중심 도시 <치앙라이>, 구름 위의 별천지라 불리는 미얀마 국경도시 <매헝썬>까지 존재하고 있다.

[편집] 화폐

타이의 화폐 단위는 으로, 1밧은 100사땅(satang)이다. 지폐는 20, 50, 100, 500, 1000 밧이 있으며, 동전은 25, 50 사땅과 1, 2, 5, 10 밧이 있다. 전 권종에 모두 국왕이 그려져 있다. 사땅 동전은 보통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등에서 간혹 사용되며 일반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타이의 형법에서는 "돈을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편집] 자연 자원

주요 자연 자원으로는 주석, 천연 고무, 텅스텐, 천연 가스, 탄탈럼, 목재, , 물고기, 석고, 갈탄, 형석, 경작지, , 타피오카, 안티몬 등이 있다.

[편집] 사회

[편집] 교통

[편집] 항공

2006년에 개항한 타이의 관문인 수완나품 공항방콕 시내에서 동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국제선을 운항하고, 이전의 국제공항이었던 돈므앙 국제공항이 현재는 국내선 전용 공항이다.

[편집] 뚝뚝

1970년대 뚝뚝(Tuk Tuk) 사가 개발한 트라이 시클이다. 오토바이에 리어카 같은 승객 탑승용 좌석이 붙어 있는 남아시아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필리핀의 뚝뚝은 운전석 옆에 리어카가 매달린 모습이 일반적이고, 태국의 경우는 뒤에 붙어 있는 것다.

방콕의 뚝뚝은 이국적인 형태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지만 타보면 매연과 소음 때문에 금새 후회하게 된다. 신호 무시, 과속, 세 바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안전 사고도 잦은 편이며 요금도 택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편이다.

[편집] 모떠싸이(오토바이 택시)

오토바이로 짧은 거리를 데려다 주는 택시 영업을 한다. 주로 골목 입구에 여러 오토바이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으며 순번에 따라 손님을 태운다.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는 형광색 조끼를 입었는데 랍짱이라고 부른다.

[편집] BTS

방콕의 교통난을 위해 만든 지상철이다. 2가지 노선이 있으며 사얌역이 환승역이다.

[편집] 교육

이 부분의 본문은 타이의 교육입니다.

타이의 교육 제도는 유치원 제도가 이미 기본적으로 정착되어 왔으며, 초 중 고 대학교의 기본 학제가 한국과 같거나 비슷하게 운영된다. 유치원 및 영아 유치원 교육은 교육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라기보다는 그 필요성이 높기 때문에 존재한다. 노동이 가능한 연령의 여성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따라서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상당하기 때문에 부모의 출근 시간대에서부터 퇴근 시간대까지 아이들을 돌봐 주는 탁아소의 역할을, 부담하는 요금에 따라서 탄력 있게 감당하고 있다.

타이에서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야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상급학교 진학은 시험을 통하여 하기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좋은 중학교를, 좋은 중학교를 위해서는 좋은 초등학교를, 좋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좋은 유치원을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관심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좀 멀고 힘이 들더라도 좀 더 나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애를 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타이에서 교육의 기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상당히 닫혀져 있는 것이다.

타이에는 중 고교 과정을 위해 각각 3년을 들여야만 하는 정규 학제 이외에도, 중고교 졸업장을 비교적 손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로 열려 있다.

첫째로, 주간에는 일하면서 야간 수업 또는 주말 수업으로 2년 정도 공부하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을 수 있는 준 정규 과정이 전국적으로 많은 정규학교에 병설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내면 졸업할 수 있다.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은 제때에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2-3년 정도 자기 학년보다 늦어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둘째로, 준 정규 과정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업 시간 및 수업 연한을 갖고 중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수 있는 경우도 있다. 셋째로, 검정 고시가 있다.

대학 과정은 분야별로 명문대가 있는데, 방콕의 쭐라롱껀,탐마쌋,까셋대학교등이 명문이며 지방의 명문으로는 북부의 치앙마이 대학교, 남부의 송클라나카린대학교가 있다. 한편, 공부는 하고 싶으나 가정형편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방콕에는 물론 지방에도 곳곳에 개방대학이 개설되어 있다. 그 중 방콕에 있는 람캄행 대학은 세계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누구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학비가 저렴하여 등록금과 교재 구입비를 포함하여 한 학기당 25-30달러 정도 되므로 공부를 하고픈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강의는 하나도 안들어도 되고, 시험 성적으로 학점을 얻는다. 하지만, 졸업이 쉽지 않아 이 학교를 나오면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편집] 범죄

타이는 관광국으로서, 국제적인 범법자들의 도피처로 선호되는 국가이다. [1]

[편집] 문화

[편집] 언어

타이어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타이어는 크메르족과 몬족의 언어가 섞여 만들어졌다. 자음 44자, 모듬 32자이고, 5개의 성조가 있다. 북부 지방은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표준어와 큰 차이가 없다.[5]

[편집] 종교

소승불교는 현대 타이의 동일성과 신념의 중심된 위치를 차지하는 타이의 국교이다. 달력, 풍습 등도 불교적인 것이 많다. 실제로, 타이의 불교는 서서히 발전하여 동물숭배나 조상숭배로부터 기원된 지역 종교들을 포섭하였다.

이슬람교는 제 2의 세력이다. 로마 가톨릭개신교 종파들도 소수 존재한다. 개신교의 경우 타이 기독교 연맹, 타이 침례교 연맹등의 교단들을 갖고 있다.

타이는 불교 국가이지만,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타이 종교청의 지도를 받는다.

[편집] 주민

타이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타이의 주류에서는 벗어난 여러 인종들도 타이의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도 거주하고 있으며 타이의 문화적 영향이 강하게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격한 전통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화교 또한 타이 사회, 특히 방콕 주변에서 특징적인 요소이다. 화교의 타이 사회로의 성공적인 진입은 이들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타이의 전 수상 탁신 친나왓이다. 그는 2001년부터 정권을 잡았으나 2006년 9월 19일 쿠데타에 의하여 축축된 바 있다.

[편집] 왕실 존경

타이는 왕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대단한 나라이다. 거리는 물론 식당이나 가정집에도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 따라서 왕실을 모욕하는 말이나 행동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사진을 훼손하거나 돈을 밟는 등의 행동은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극장에서 국왕 찬가가 연주될 때는 외국인도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기립해 예의를 표하는 것이 좋다. [6]

[편집] 전통 문화

조상에 대한 존경은 타이의 정신적 관습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타이 사람들은 환대하는 마음과 관대한 마음을 가졌으나 강한 사회적 계급 의식도 있다. 타이 문화에서 어른 공경은 중요한 요소이다. 연장자가 항상 가족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의례를 주관한다. 타이의 전통 인사법인 "와이"는 두 사람 중 젊은 사람이 먼저 하는데, 이는 손바닥끼리 서로 닿도록 두 손을 모은 다음, 손가락 끝은 위로 향하게 하고 얼굴이 손에 닿도록 머리를 숙여서 하는 인사이다. 이 인사를 할 때는 남자는 "사왓디 끄랍", 여자는 "사왓디 까"라는 인사말을 함께 한다. 그러면 연장자가 같은 방법으로 답례한다. 타이의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부모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이며 "와이"를 행한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와이는 타인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인데 이는 인도 문화권의 나마스테와 비슷하다.

무에 타이(타이식 권투)는 타이의 국가적인 스포츠이다. 타이 사람들은 그냥 "무에"라고 부르는 격투기이다. 과거에, 무에는 궁정 병사들이 전장에서 무장해제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배웠다. 병사들이 제대한 뒤 그들 상당수는 불교 승려가 되었고 사찰에 머물렀다. 타이 사람들의 삶은 불교, 사찰과 가깝게 관련되어 있는데 타이 사람들은 자녀들을 사찰에 보내 승려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무에는 사찰의 교과목 중 하나이다.[7].

무에 타이는 1990년대에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격투기가 있지만 무에 타이는 팔꿈치를 포함한 때리기 공격, 던지기 공격, 무릎 공격을 허용하는 규칙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축구가 무에 타이를 대신하여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제는 타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 타이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팀을 텔레비젼을 통해 응원하는 장면은 낯설지가 않게 되었다. 또 한가지 과거에 인기있었던 스포츠로 날리기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대거나 발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머리는 신체에서 가장 신성한 것으로, 발은 가장 더러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시아권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타이의 문화도 서구화의 영향에 압도되어 가고 있으며 전통적인 금기사항의 일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타이에서는 과 문서들이 비종교적으로 가장 숭배되는 물건이다. 따라서, 책을 탁자에서 미끄러지게 하거나 바닥에 놓아서는 안 된다.

  • 그림자 놀이
  • 낭 탈룽

[편집] 음식

타이의 음식은 다섯 가지 기본적인 맛, 단 맛, 향이 강한 맛, 신 맛, 쓴 맛, 짠 맛이 어울어져 있다. 타이 음식에 보통 쓰이는 재료로는 마늘, 고추, 라임 쥬스, 레몬 그라스, 생선 소스가 있다. 주식은 , 특히 다양한 자스민 쌀(홈 말리 쌀이라고도 함)이며 거의 매 끼니에 포함된다. 타이는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며 타이 사람들은 1년에 100킬로그램(도정미 기준)의 쌀을 소비한다.[4]. 타이가 원산지인 5000여 가지의 쌀이 필리핀에 있는 국제쌀연구소(IRRI)의 유전자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 타이의 국왕은 국제쌀연구소의 공식 후원자이다.

[편집] 언론

타이 사회는 최근에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언론과 미디어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 많은 영어, 타이어, 중국어 신문들이 유통되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타이의 잡지들은 매혹적이고 우아하게 보이려고 머릿기사에 영어를 쓴다. 방콕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큰 사업 건들은 영어로 진행된다. 타이 사람들끼리 말할 때에도 그들이 교육을 받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영어로 말한다. 타이는 2003년 기준으로 매일 최소한 1300만 부수의 신문이 유통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신문 시장이다.

[편집] 대외 관계

[편집] 대한민국

타이와 대한민국의 관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인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이의 옛 이름인 시암 왕조는 1391년, 1393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당시 고려 ,조선)에 교역사절단을 파견했다. 1394년에는 조선의 사절단이 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해로에 나타나는 해적 때문에 교류가 중단되었다.

단절된 양국관계는 1950년 태국정부가 3,650명의 태국 젊은이들을 유엔군의 일부로써 한국전쟁에 파견해 대한민국을 지원함으로써 재개되었다. 타이 육군은 129명의 사상자와 1,139명의 부상자를 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한민국1972년까지 주둔하였다.

타이를 방문하는 대한민국 국적 관광객이 70만명을 넘어서면서 양국간에 교류와 이해가 증진되고 있다. 타이는 대한민국-타이 비자면제협정에 의거, 관광 및 방문, 행사참여 등 영리 목적으로의 입국이 아닌 경우는 90일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하다. [1]

[편집] 북조선

타이는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는다.

[편집] 부록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1. 1.0 1.1 1.2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해외안전여행사이트
  2. 2.0 2.1 CIA world factbook - Thailand
  3. CIA world factbook - Greater Mekong Subregion
  4. 4.0 4.1 IRRI country profile
  5. 타이어는 크메르족과~: 트래블게릴라 편,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100배 즐기기》(랜덤하우스중앙, 2005년) 30쪽.
  6. 타이는 왕실에~: 트래블게릴라 편,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100배 즐기기》(랜덤하우스중앙, 2005년).
  7. Muay Thai History
아시아의 나라 아시아 대륙
그루지야¹ | 네팔 | 대한민국 | 동티모르 | 라오스 | 러시아¹ | 레바논 | 말레이시아 | 몰디브 | 몽골
미얀마 | 바레인 | 방글라데시 | 베트남 | 부탄 |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⁴| 브루나이 | 사우디아라비아 | 스리랑카 | 시리아
싱가포르 | 아랍에미리트 | 아르메니아¹ | 아제르바이잔¹ | 아프가니스탄 | 예멘 | 오만 |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 이라크 | 이란 | 이스라엘 | 인도 | 인도네시아 | 일본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중화민국⁴ | 중화인민공화국
카자흐스탄¹ | 카타르 | 캄보디아 | 쿠웨이트 | 키르기스스탄 | 키프로스² | 타이 | 타지키스탄 | 터키¹ |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³ | 필리핀
속령
마카오5 | 홍콩5
¹.일부 영토가 유럽에도 속함. ².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이유로 종종 유럽으로 분류.
³.아시아의 비독립 국가. ⁴.불인정 또는 일부 인정 국가. 5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