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의 군주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여기서는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의 군주의 목록을 다룬다.

프랑크족은 원래 군사적 성격의 명칭인 둑스(dux)와 작은 왕(小王)을 뜻하는 레굴리(reguli)가 지배하였다. 509년경 잘리어 왕가와 메로빙거 왕가가 여러 작은 부족과 소왕을 통합해면서 비로서 규모있는 집단이 되었고 카롤링커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인 “프랑크의 왕”의 칭호를 쓰게 되었다.

나중에 카롤링거왕조는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로 나뉘면서 “프랑크의 왕”(rex Francorum )의 칭호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목차

[편집] 초기의 군주들

잘리어 프랑크족의 주요군주

  • 메로베치 (447–458) : 메로빙거 왕조의 이름이 바로 이 메로비치에서 유래함
  • 힐데리히 1세 (458–481) : 메로베치의 아들
  • 클로비스 1세 (481–511) : 힐데리히의 아들 나중에 갈리아 전체를 통합함

507년 리푸아리아 프랑크족도 클로비스를 왕으로 받아들인다.

[편집] 메로빙거왕조의 프랑크 왕

전체 프랑크

클로비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영토 뿐만 아니라 서고트족의 남부 프랑스 영토를 병합하여 갈리아 전체를 통합하였으며 작은 프랑크 소왕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는 파리에 중심을 두고 수아송, 랭스, 메츠, 오를레앙에 각각 주요 거점을 두었다. 그의 사후 왕국은 네명의 아들에 의해 각 거점별로 나누어 지게 된다.

수아송

파리

오를레앙

랭스

클로타르 1세는 형제들의 죽음 이후 모든 프랑크 왕국을 계승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가 죽가 자시 프랑크 왕국은 그의 4명의 아들들에 의해 쪼개진다.

수아송 (후에 네우스트리아)

파리

오를레앙 (후에 부르고뉴)

랭스메츠 (아우스트라시아)


클로타르 2세는 아우스트라시아의 브룬힐다와 그녀의 손자를 꺾고 왕국을 통합한다. 그러나623년 왕국의 국경가와를 위해 아들에게 아우스트라시아를 넘기고 왕에 앉힌다. 그의 아들은 629년에 아키텐의 왕이 되고 계승자인 다고베르트 1세는 634년에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이 된다.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고뉴

아키텐

아우스트라시아

679년, 토이데리히 3세는 다시한번 모든 프랑크의 소왕국을 통일한다. 이 때부터 잠시 내전기간을 제외하고 프랑크는 1개의 통일 왕조로 간주된다.

[편집] 카롤링거 왕조

[편집] 궁재

원래 카롤링거 왕조는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의 궁재였다. 687년, 헤르스탈의 피핀은 "프랑크의 공작과 백작"(dux et princeps Francorum)의 지위를 얻고 사실장 전권을 행사하였다. 연대기 사가들은 이때부터를 사실상의 피핀의 재위기간으로 본다.

  • 피핀 1세 (아우스트라시아: 623–629 및 639–640)
  • 그리모알트 1세 (아우스트라시아: 643–656; 662년 죽음)
  • 피핀 2세 (아우스트라시아: 680–714, 네우스트리아 및 부르고뉴: 687–695)
  • 드로고 (부르고뉴: 695–708)
  • 그리모알트 2세 (네우스트리아: 695–714, 부르고뉴: 708–714)
  • 테우도알트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및 부르고뉴: 714–716)
  • 카를 마르텔 (아우스트라시아: 715–741, 네우스트리아 및 부르고뉴: 718–741)
  • 카를로만 (아우스트라시아: 741–747)
  • 피핀 3세 (네우스트리아 와 부르고뉴: 741–751, 아우스트라시아: 747–751)

751년, 피핀 3세는 프랑크의 왕이 되었고 궁재의 직위는 없어졌다. 카롤링거 왕조가 메로빙거 왕조를 대체하게 된다.

[편집] 프랑크의 왕


경건왕 루트비히는 생전에 자신의 영토를 여러 부분으로 분할했다. 838년의 마지막 분할에서 그는 아키텐을 포함한 서쪽을 카를 2세 대머리에게, 이탈리아를 포함한 동쪽을 로타르에게, 나머지를 독일왕 루트비히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840년 경건왕 루트비히가 죽자 내전에 돌입하여 3년 동안 내전이 벌어졌고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은 최종 분할되었다. 로타르는 황제의 직위와 이탈리아를 유지하고 카를은 서프랑크 왕국과 아키텐을 차지했다. 독일왕 루트비히는 나머지 동 프랑크 왕국 전체를 받았다. 이 세부분으로 나뉜 프랑크 왕국이 각각 오늘날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모태가 된다.

서프랑크 (후에 프랑스)

중 프랑크

동프랑크 (후에 독일)

이 다음으로 프랑스는 카페 왕조가 다스린다.
자세한 것은 프랑스의 군주항목을 볼 것.

855년 로타르가 죽자 그의 왕국은 아들들에게 분할 된다.

루트비히는 그의 영토를 아들들에게 나주어 주었는데 최종적으로 882년 서자인 막내아들에게 모두 돌아감

  • 카를만 (876년-880년), 바이에른 상속, 877년부터는 이탈리아왕.
  • 루트비히 3세 (876년-882년), 작센, 프랑코니아, 튀링겐을 받음, 879년에 형 카를만에게 바이에른도 상속받음
  • 카를 비만왕 (876년-887년), 알레마니아 상속, 879년 카를만에게 이탈리아왕을 882년 루트비히에게 동 프랑크를 받음 881년 황제가 됨

카를 3세의 퇴위후, 동프랑크는 조카에게 상속되었다.

루트비히 유아왕은 마지막 카롤링거 가문의 동 프랑크 왕이었다. 그는 콘라트 1세에게 상속되었다가 그 다음 작센의 오토 왕조에게 넘어간다.
자세한 것은 독일의 군주를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