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노부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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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노부타네 (原田 信種, はらだ のぶたね 1560년 ~ 1598년)는 센고쿠 시대의 지쿠젠의 호족, 다카스야마 성의 성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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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가독상속
에로쿠 3년(1560년)아버지 구사노 시게나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때 이름은 고로이다. 아버지 시게나가는 원래 하라다 다카타네의 아들이었지만, 구사노씨에 양자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류조지씨가 압박해 옴에따라, 고로를 인질로 보냈다. 하지만, 하라다씨의 가독을 이은 숙부 하라다 지카타네는 오토모씨의 전쟁대한 책임(또는 모반에 대한 책임)으로 자결을 명받고 그의 아들 하라다 히데타네는 지카타네(히데타네의 아버지)가 죽기전에 전쟁에서 전사했었다. 가문의 단절을 우려한 조부 하라다 다카타네가 아버지 구사노 시게나가에게 요청을 해 류조지의 인질로 되어 있던 고로를 불려 들이게 된다. 그리고, 하라다씨를 상속한다. 이름을 하라다 노부타네로 개명한다.
[편집] 처세술
다이쇼 6년(1578년) 오토모씨와 시마즈씨의 미미가와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오토모씨가 대패하자 아키즈키 다네자네와 함께 류조지씨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다이쇼 12년(1584년) 오키타나와테 전투에서 류조지씨가 시마즈씨에 대패하게된다. 이렇게 되어 규슈의 패권은 시마즈씨가 가지게 된다. 이에 하라다 노부타네도 시마즈씨 종속했지만, 얼마 안있어 규슈정벌(1587년)을 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로 진군한다.
[편집] 항복 그리고 조선으로
정벌하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한다. 하지만, 소령을 숨긴 것이 발각되어 소령을 대부분 빼앗긴다. 이렇게되어 하라다씨는 몰락하게고, 히고로 전봉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군의 소속으로 출병한다. 그리고, 1598년 울산성 전투에서 전사 혹은 병사한다. 하지만, 전사하지 않고 1592년 조선에 상륙하자마자 항복해 조선을 위해 싸운 김충선이라는 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