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규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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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崔寅奎, 1911년 ~ ?)는 한국의 영화 감독이다.
평안북도 영변 출신이다. 인기 영화 배우였던 김신재의 남편이기도 하며, 형인 최완규는 고려영화사 사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친일 영화를 여럿 연출했다. 예를 들어 부인인 김신재가 출연한 〈태양의 아이들(일본어: 太陽の子供達)〉은 시골의 국민학교 교사가 내선일체 논리를 잘 홍보하여 제자들을 지원병으로 참전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비슷한 주제를 형상화한 〈신풍의 아들들(일본어: 神風の子供達)〉과 〈사랑의 맹서(일본어: 愛の誓)〉 도 발표했다.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는 총 26편이었는데, 이 가운데 친일영화로 분류하기 모호한 8편을 뺀 나머지 영화 18편은 분명한 친일 영화이다. 최인규는 이 18편 가운데 감독별 편수로는 가장 많은 다섯 편을 연출했다[1]. 최인규와 김신재 부부는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목록 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 만들어진 최초의 한국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2] 〈자유만세〉(1946년)를 연출했으나, 1949년 흑산도를 배경으로 한 사실주의 영화 〈파시(波市)〉를 마지막으로 한국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북조선으로 납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신상옥은 최인규의 조감독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고[4], 자신의 영화 스승으로 나운규와 찰리 채플린, 그리고 최인규를 꼽은 바 있다[5].
[편집] 참고자료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최인규
- 《컬처뉴스》 (2005.9.2) 한국 영화의 근간도 친일 - 친일영화편/ 인민배우 문예봉, 〈자유만세〉 최인규도 포함
[편집] 주석
- ↑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이효인, 영화계 친일행위의 논리와 성격 《디지털 웹진 Now Art》 (2002년 광복 57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 문화예술의 친일 논리와 성격)
- ↑ 듀나, 영화 별점 평가 - 자유만세 (1946) (2004.1.30)
- ↑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최인규 (崔寅奎)
- ↑ 《한겨레신문》 (2006.4.12) 납북·탈북 ‘영화같은 인생’ 막 내려 - 신상옥 감독 별세
- ↑ 《씨네21》 (2001.12.19) 영화기자 모임 해체 요구 시위, 일 경찰‘영화인폭동사건’이라며 검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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