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감시 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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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감시 초소(GP, Guard Post)는 한국전쟁 휴전 후, 군사분계선에 위치한 감시 초소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군사분계선(휴전선이라고도 함)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 km의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는 누구도 무장을 하고 들어갈 수 없게 하였다. 그 비무장지대 안에는 각각 북측 비무장지대에 북조선 GP, 남쪽 비무장지대에 한국측 GP가 설치되어 있다. 군사분계선으로 부터 남북으로 2km 떨어진 지점에 각각 남북한의 철조망이 쳐 있으며, 이 철조망에 위치한 초소를 GOP 초소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에 남북이 무장 GP 100여 개를 설치, 운영하는 것 자체가 정전협정 위반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1]
[편집] GP 사건 일지
- 1973년 3월 7일
- 1984년 - 조모 일병이 22사단 GP 근무 중 내무반에 수류탄 3개를 투척, 총기를 난사해 병사 15명을 사망케 한 후 북으로 도주했다. 대한민국 군대 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고이다.[3]
- 1990년 10월 19일 - 국군 5 사단 36연대 10중대 소속의 이모 이병이 저녁 GP 근무를 마치면서 수류탄 하나를 훔쳐서, 다음날 새벽 3시에 자고 있는 1개월 선임병의 허리 밑에 넣어 터뜨렸다.[4]
- 1995년 9월 4일 - GP 근무중이던 부소대장 육군 중사 한효수(24)가 총기를 빼앗아 월북함. 소대장 국승기(25·학군 32기) 중위와 총기를 빼앗긴 사병 7명이 구속됨.[5]
- 1996년 4월 11일 - 대한민국의 15대 총선일이다.
- 투표가 마감된 후인 밤 9시 30분, 북조선측 GP에서 10명의 북조선군이 나옴.
- 밤 10시 30분 4명이 북측 GP로 복귀, 6명은 남하
- 3명 1조는 군사분계선에 대기
- 1996년 4월 12일
- 3명 1조는 새벽 0시 37분 MDL을 넘어옴. 비무장.
- 0시 49분 MDL 남쪽 2백m의 고지에 도착
- 3시 17분까지 고지에서 대기
- 3시 42분 북측 GP로 복귀[6]
- 1996년 4월 17일 - 북한군 병사 7명이 무장을 하고서 중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옴. 한국 국방부가 중부전선 MDL 침범 사건을 발표하면서 11일의 군사분계선 침범 사실도 공개.
- 1996년 7월 16일 - 오전. 북조선 병사 14명이 중동부전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남북한 GP 간에 23분 동안 3백여발의 소총과 포사격을 가하였다. 한국군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GP 관측구와 지하벙커 입구 일부가 파손됨. 북측에는 엠뷸런스가 긴급출동하여 20분 동안 머무름.[7]
- 오전 10시 57분 조선인민군 7명이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먹실리 중동부전선 국군 3 사단 비무장지대내 군사분계선 남방 70m까지 월경
- 한국군이 경고 방송 후 정전협정에 의거해 오전 11시 2분 2백발의 공중 경고사격
- 이에 대응해 북측 GP에서 남측 GP 두 곳에 소총 및 기관총으로 70∼80발의 조준사격을 가함
- 23분간의 교전 중, 북조선군은 종류 미상의 포탄 2발과 박격포로 추정 10여발의 포탄사격을 가해 한국군 GP 2곳을 공격
- 한국군은 대전차화기인 57㎜ 무반동총과 M2 중기관총으로 대응사격
- 12시 2분 군사분계선을 월경한 북조선군이 복귀함.
- 오후 1시30분부터 2시간동안 정전위 소속 영국군 장군을 비롯한 7명이 현장조사
- 1998년 2월24일 - 판문점으로부터 1.5㎞ 떨어진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국군 241 GP에서 김훈(金勳) 중위가 권총에 의해 사망.
- 1998년 6월 11일 - 김대중 정부 집권 초기.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장파리 비무장지대(DMZ)에서 북측 GP에서 사격을 가해옴.[8]
- 1999년 -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창군 이래 최대 조사요원을 투입시켜 4개월여 동안 진행한 김훈 중위 사망사건 재조사에서 자살로 결론내림.[9][10][11]
- 2001년 11월 27일 - 오전 10시 42분, 경기 파주군 파평면 장파리 비무장지대(DMZ) 북방 7㎞ 지점의 북측 GP에서 남측 GP를 향해 정전협정 상 DMZ에서 사용할수 없도록 돼 있는 7.62㎜ 기관총 사격을 2,3발 가함. 북한군이 쏜 총탄 1발은 북측 초소에서 770㎙ 떨어진 남측 GP 벙커의 유리창을 파손. 한국군 인명피해 없음. 한국군은 교전규칙에 따라 “총격도발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즉각 도발을 중지하라”는 경고방송과함께 1분 여 소총으로 15발 가량 대응사격. 북한이 개발한 최대사거리 4,700m, 유효사거리 100m의 72형 기관총으로 추정[12]
- 2003년 7월 17일 - 오전 6시 10분.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북방 20㎞ 지점 비무장지대(DMZ)내 북한군 GP에서 1.1㎞ 떨어진 남측 GP를 향해 4발의 총격을 가함. 기관총으로 추정. 4발 중 3발이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한국측 GP 옹벽 하단부에 맞음. 한국군은 교전규칙에 따라 피격 1분 뒤인 6시11분 K3 기관총으로 17발을 응사 후, "너희들은 우리 GP로 총격도발을 했다. 즉각 사과하라. 이번 사건은 전적으로 너희들 책임이다"라고 북측에 경고방송을 함.[13] 4발 중 3발이 1100m나 떨어진 한국군 GP 옹벽에 정확히 꽂힌 것은 조준 사격이므로 이는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한국군 내에 있었으나, 다수 의견은 우발적 사건이라고 판단함.[14] 비무장지대에서는 사용금지된 14.5㎜ 기관총탄으로 밝혀짐. K3 기관총으로 17발이 아니라 M60 기관총 17발을 대응사격했다는 보도도 있음.[15]
- 2005년 6월 19일 새벽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내 국군 28 사단 소속 GP에서 총기난사 사건 발생. 8명 사망, 2명 부상.[16] 2004년에 군 복무 중 사망한 병사는 총 134명으로 95년 330명 사망의 절반 수준이다.[17]
- 범인: 김동민 일병(22)
- 사건내용: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난사해 7명이 현장에서 즉사
- 사망자: 소초장 김종명 중위(26.학군41기), 전영철(22), 조정웅(22), 박의원(22), 이태련(22), 차유철(22), 김인창(22), 이건욱(21) 모두 상병
- 부상자: 김유학(22), 박준영(22) 모두 일병
- 2006년 5월 26일 - 낮 12시 47분. 강원도 화천군 북방 비무장지대 안 북한강 지류 금성천 부근에서 북조선군 5명이 군사분계선에 접근하는 상황을 확인하고 모두 4회의 경고방송을 했으나, 이중 비무장한 2명이 군사분계선을 20~30m 넘어와 남측 GP에서 K-3 기관총 12발의 경고사격을 실시했으며, 경고사격 뒤 북조선군은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철수. 북한군 병사들이 냄비 등을 들고 있었고, 5명 중 4명은 비무장이었기에, 군사분계선인 금성천에 물고기 잡으러 온 것으로 추정.[18]
- 2006년 7월 31일 - 저녁에 강원도 양구군 동부전선 21사단 GP를 향해 북조선군이 2발의 총격을 가함. 1발이 GP 시설물에 맞음. 한국군은 6발의 대응사격을 가함. 2003년 7월 17일 도발 이후 처음.[19]
- 2007년 8월 6일 - 오후 1시 30분, 강원도 인제 북방 비무장 지대에서 북한군이 한국군 GP를 향해 총격을 가해 한국군이 10여 발의 경고사격을 가함. 한국군 인명피해 없음.[20]
[편집] 주석과 참고자료
- ↑ 사설 '비무장지대 GP 철거' 남북군사회담을 경향신문 2005-06-28
- ↑ “백골부대 24년전에도 북과 교전… 적진지 박살” 세계일보 1997-07-18
- ↑ 총기는 저절로 난사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2005-07-19
- ↑ 총기는 저절로 난사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2005-07-19
- ↑ 비무장지대 육군중사 월북사건 문책/장교 등 무더기 구속 한겨레 1995-09-19
- ↑ 긴장조성 겨냥한 “다목적 시위”/북한군 「분계선」 침범 배경 동아일보 1996-05-19
- ↑ 비무장지대서 총격전/북한군 군사분계선 넘어와 교전 한국경제 1997-07-17
- ↑ 북한군, 연천 DMZ서 총격 세계일보 2003-07-18
- 1998.2.2= 공동경비구역(JSA) 북조선군 1명 2회 MDL(군사분계선) 월경
- 98.3.12= 북조선군 12명 MDL 40∼50m 월경 침범 (아측 경고방송 2회, 경고사격 20여발)
- 98.6.11= 북조선군 GP(경계초소)서 아군 GP 방향 자동소총 4발 발사
- 2001.9.19∼20= 강원 철원군 DMZ(비무장지대)서 북한군 MDL 월경(아측 경고사격)
- 2001.11.27= 파주군 장파리 DMZ서 남측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 2003.7.17= 북한군, 경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아군 경고사격)
- ↑ 김훈중위 사망사건 공방 안팎 [경향신문] 1999-04-15
- ↑ '김훈중위 사건'또 불거진 의혹 수사 다시 원점 [문화일보] 1999-04-14
- ↑ 「권총臺帳」 조작 혐의 포착/金 중위 사망 수사 [세계일보] 1998-12-12
- ↑ 北, DMZ 아군초소에 총격 [한국일보] 2001-11-28
- ↑ 北, DMZ서 총격 / 우리군 즉각 응사·인명피해 없어 한국일보 2003-07-18
- ↑ 北총격 / 우발적 총격이냐 의도된 도발이냐 국민일보 2003-07-18
- ↑ 북한군 DMZ서 총격 - 아군 즉각 응사...인명피해 없어 경향신문 2003-07-18
- ↑ 軍 기강해이 도 넘었다 한국일보 2005-06-19
- ↑ 총기는 저절로 난사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2005-07-19
- ↑ 북한군 병사 2명 군사분계선 침범 한겨레 2006-05-27
- ↑ 북한군, 어젯밤 전방GP에 총격 동아일보 2006-08-01
- ↑ 北, 아군GP 향해 총격..軍경고사격(1보) 연합뉴스 2007-08-06
[편집] 더 보기
-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년 9월 18일 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