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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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은 오늘날 이란의 영토에 근거한 여러개의 제국을 서양에서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을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그후로 1935년까지 이지역에 일어났던 여러개의 제국들을 서양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페르시아 제국이라 불렀다.
[편집] 역사
[편집] 메디아 제국(기원전 728년 - 기원전 550년)
- 이 부분의 본문은 메디아입니다.
[편집] 아케메네스 제국(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 이 부분의 본문은 아케메네스 왕조입니다.
키루스 대왕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다.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로니아 제국를 물리침으로써 최고로 강한 나라에 이르게 된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에 키루스 원통이라는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1879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수 있으며 노예제를 금지하며 궁궐을 짓는 모든 일꾼은 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키루스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병합한다. 제국의 영토는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 최고의 영토가 된다. 아케메네스의 영토는 인더스강에서 부터 유럽에 이르렀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중국을 제외한 그 당시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세계를 통일하였다.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때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으로 부른다. 잘 알려진 아테네의 마라톤 전투와 스파르타 300명이 나라를 지켜냈던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은 아케메네스 제국과의 전쟁이야기이다.
[편집]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기원전 330년 – 기원전 25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는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르고 아케메니아 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쉽게 큰 땅을 복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케메니아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제는 자신들을 페르시아의 계승자로 부르면서 다리우스 3세에게 장엄한 장례식을 해주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딸 스타데이라와 결혼하였다.
[편집] 파르티아 제국 (250 BC–AD 226)
- 이 부분의 본문은 파르티아입니다.
[편집]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226년–651년)
- 이 부분의 본문은 사산조 페르시아입니다.
사산제국은 로마제국과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하여 서로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훗날 비잔틴 제국에게 크게 패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이슬람 제국에 의하여 사산제국은 멸망의 길로 가게된다. 사산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야즈게르드는 투르크의 지원과 당나라의 지원을 요청하여 복원을 시도하지만 이슬람 제국에게 패하여 무너지고 만다.
[편집] 이슬람 제국 (650–1037)
이슬람 제국은 그때까지 있었던 가장 큰 나라를 만들게 되는데 지금의 스페인 땅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편집] 셀주크 제국(투르크) (1037–1219)
- 이 부분의 본문은 셀주크 제국입니다.
북동쪽에 있던 셀주크 투르크족의 침공하여 이슬람 제국은 흔들리게 된다. 이 투르크 족은 셀주크 제국을 만들게 된다.
[편집] 몽골 제국 점령 시대(1219–1500)
[편집] 샤파비드 제국 (1500–1722)
사파비드제국은 이란,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등을 포함하며 점차 성장해 가다가 오스만투르크에 막혀서 더이상 팽창하지 못한다. 사파비드제국은 시아파 이슬람교를 종교로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큰 시아파의 나라가 되며 오늘날 이란의 시아파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