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의 루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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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2세 또는 루이 말더듬이왕 (프랑스어: Louis le Bègue, 846년 11월 1일 – 879년 4월 10일) 은 대머리왕 샤를의 맏아들로 866년 동생 샤를의 뒤를 이어 아키텐을 물려받았고 877년 아버지에 뒤를 이어 프랑스 왕이 되었지만 황제는 되지 못했다.
그는 세번 결혼 했는데 첫번째 부인인 부르고뉴의 앙스가르데와의 사이에서 루이와 샤를로망을 낳았다. 이 두 아들은 나중에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된다. 두번째 부인에게서는 자식이 었고 마지막 부인인 파리의 아델라이데와의 사이에서 유복자인 샤를을 낳았다. 샤를은 나중에 두 형이 모두 죽고 한참 후에 와우이에 오른다.
그는 877년 랭스의 대주교에게 대관식을 받았는데 이듬해 9월 트루아에서 종교회의를 주재하던 교황 요한 8세에게 다시 한번 대관식을 받았는데 아마도 황제의 지위를 주려고 하였을 수도 있다. 루이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아버지 보다 겨우 2년을 더 살았으므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이 없었다. 죽기 직전 그는 유럽을 침입해 내려오는 바이킹족에 대한 원정에 나섰는데 얼마 되지 않아 병이 났고 879년 4월 10일 죽었다. 그의 사후 왕국은 두 아들 루이와 샤를로망에게 분할되었다.
| 전 임 샤를 대머리왕 |
서 프랑크의 왕 877년 - 879년 |
후 임 루이와 샤를로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