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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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왕조의 깃발;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사용함
합스부르크 왕조의 깃발;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기 전까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사용함

합스부르크 왕가 또는 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을 말한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동안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과 연결되어있었다.

목차

[편집] 역사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은 슈바벤지방 (현재의 스위스)에 세워진 합스부르크 성 또는 하비히츠부르크 성(매의 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가문은 독일의 남부지방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하여 신성 로마 제국에서 큰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나중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선출에도 개입하였다.

초기 합스부르크 백작 가문의 문장
초기 합스부르크 백작 가문의 문장

독일왕으로는 최초의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은 루돌프 1세이다. 그는 1282년두 아들 알브레히트와 루돌프에게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를 물려주었고 이때부터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왕가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이후에는 부르고뉴, 그의 아들 펠리페는 에스파냐 왕위에도 결혼으로 인해 개입하게 되어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일지역 뿐 만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의 왕위에도 관여하게 되고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는 에스파냐의 왕 카를로스 1세가 되었다. 또한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도 편입해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계열과 에스파냐 계열의 가문으로 나누어 지게 되었다. 이 무렵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 독일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에스파냐 왕, 포르투갈 왕의 왕가로 유럽 최대의 왕실가문로 부상했다.

1700년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하였고 1740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계승자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트링겐(로렌)의 공작, 프란츠 스테판과 결혼함으로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합스부르크-로렌 왕가로 바뀌게 된다.

1804년 합스부르크-로렌 왕가의 프란츠 2세는 스스로를 오스트리아 황제로 칭하였고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합스부르크 왕가는 해체되었다.

[편집] 초기 합스부르크 왕가 군주 목록

1273년 루돌프 1세가 독일왕이 되기 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는 현재의 스위스와 남 독일 지역의 백작의 집안 이었다.

[편집] 합스부르크 백작

  • 라트보트 백작 (985년경–1035년)
  • 베르너 1세 (1025년 / 1030년1096년)
  • 오토 2세 (1111 죽음)
  • 베르너 2세(1135년경 - 1167년)
  • 알브레히트 3세 (1199년 죽음): 그의 치세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가 확장됨
  •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2세 (1232년 죽음)
  • 알브레히트 4세 (1239년 / 1240년 죽음); 루돌프 4세(나중에 독일왕 루돌프 1세가 됨)의 아버지

[편집] 독일의 왕

[편집] 오스트리아 공작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나중에는 케른텐, 티롤의 공작이 된다.

루돌프 4세가 죽자, 그의 형제인 알브레히트 3세와 레오폴트 3세는 1365년부터 1379년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위를 공동으로 통치했다가 1379년 영토를 나누었다. 이때 합스부르크는 알브레히트 계열(오스트리아 공작)과 레오폴트 계열(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티롤의 공작)로 가문이 분리된다.

[편집] 알브레히트 계열 : 오스트리아 공작

[편집] 레오폴트 계열: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티롤의 공작

[편집] 레오폴트 계열의 방계 (인너 오스트리아)

[편집] 레오폴트 계열의 방계 (티롤)

  • 프리드리히 4세 (1402–1439)
  • 지기스문트 (1439–1446)

[편집] 합스부르크 가문의 재통합

지기스문트는 자식이 없어 프리드리히 5세의 아들인막시밀리안을 양자로 삼았다. 막시밀리안에 의해 합스부르크 왕가는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편집] 재통합 이전의 독일왕 및 신성로마제국 황제

[편집] 재통합 이전의 헝가리 왕

[편집] 합스부르크의 주요 유럽 군주

[편집]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왕

카를로스 2세의 사후 에스파냐 왕위를 놓고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짐

[편집]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 신성로마황제, 오스트리아 대공

카를 6세는 아들이 없어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프란츠 스테판과 결혼 시켰음,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대공녀 이자 헝가리 왕국보헤미아의 여왕으로 통치했다 (1740년1780년).

[편집] 합스부르크-로렌 : 신성로마황제 및 오스트리아 대공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의 해 해제되고 합스부르크로렌 가문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가로 남는다.

레오폴트 2세의 후손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은 에스파냐로 가서 알폰소 12세의 왕비가 되고 알폰소 13세를 낳고 그의 섭정을 맡았다.


[편집] 합스부르크-로렌 :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편집] 합스부르크의 헝가리 왕

수세기 동안 헝가리 왕국의 왕위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헝가리의 왕위 계승은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젊은 왕위 계승자를 헝가리 왕으로 임명하여 제왕의 연습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다음의 헝가리 왕의 재위기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재위기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편집] 알브레히트 계열

[편집] 오스트라아 합스부르크

[편집] 합스부르크-로렌

[편집] 합스부르크 출신 프랑스 왕비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프랑스는 유일하게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이 나오지 않은 세력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의 가문의 지배하에 유럽을 두기 위해 또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가문의 딸들을 프랑스의 왕들과 결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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