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니섹스트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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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니섹스트 공의회 또는 트룰로 공의회(라틴어:Concilium Quinisextum)는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692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트룰로 궁에서 소집한 기독교 공의회이다.

[편집] 이름의 유래

퀴니섹스트 (Quinisext) 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5와 6을 뜻하는 'quin'과 'sex'를 합친 것으로 이전에 벌어진 두차례 세계공의회 (제5차 세계 공의회와 제6차 세계공의회)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공의회가 벌어진 장소의 이름인 트룰로를 따서 트룰로 공의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편집] 공의회의 내용

691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제창하여 이듬해 열린 퀴니섹스트 공의회에서는 165명의 동방의 주교들이 참석해 토론을 벌였는데 별로 중요한 쟁점도 없이 사소한 문제를 씨름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공의회는 102조항의 교회법을 마련했는데, 이 가운데 많은 법이 서방 교회의 관행과 교회법령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102조의 교회법 조항중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 교회법 3조 : 성직자의 재혼을 금한다. 세례를 받은 이후에 과부, 창녀, 노예, 여배우와 결혼한 남자는 절대 사제가 될 수 없다.
  • 교회법 11조 : 사제는 유대인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거나 유대인과 함께 목욕탕에 들어 갈 수 없다.
  • 교회법 65조 : 초승달이 뜰 때 모닥불을 피워놓고 주위를 돌려 춤추는 행위는 금지된다.
  • 교회법 79조 : 크리스마스 선물은 금지된다.
  • 교회법 96조 : 머리털을 도발적이거나 유혹적으로 곱슬거리도록 만든자는 성당에 올 수 없다.

[편집] 서방교회의 거부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서방 교회에 공의회 대표단을 초청하지도 않았지만 공의회가 끝난뒤 즉각 로마 교회에 공의회의 결정을 수용하라고 강요했다. 교황 세르지오 1세는 당연히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뒤에도 몇명의 교황을 거치면서 이 교회법들은 서방교회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아본 적이 없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이 공의회를 제5차와 6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로마 가톨릭은 이 공의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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